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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대통령 “여수 유치위 공약 정부가 보증”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여수 박람회 유치활동에 ‘올인’했다. 노 대통령은 오전 청와대에서 ‘2002 세계박람회 실사단’을 접견한 뒤 오후 여수 신항내 이순신함에서 열린 실사단 환영만찬을 직접 주재했다. 노 대통령은 만찬사를 통해 “여수는 역사의 현장이자 국가와 평화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곳으로 우리 국민은 이 바다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서 “여수에서 동쪽으로 100km 바다를 한려수도라고 부르는데 한려수도 동쪽에 대통령도 별장을 가지고 있을 만큼 우리 국민들은 자랑스러운 환경유산으로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노 대통령은 오현섭 여수시장이 실사단 실뱅 단장을 대통령보다 먼저 소개한 데 대해 “이런 대우는 다시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실뱅단장님이 얘기했지만 2012년에는 더 성대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면서 “여수가 아름다운 도시, 아름다운 바다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며 실사단의 좋은 평가를 당부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국제박람회기구 실사단을 접견하고 다과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유치위원회가 여러분에게 보고한 내용을 정부가 확고히 보증한다.”며 여수시의 박람회 유치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실사단 가는 곳마다 환영인파

    실사단 가는 곳마다 환영인파

    11일 여수는 감동의 물결 그 자체였다. 형형색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수많은 시민들이 세계박람회 실사단을 맞았다. 여수시민들이 연출한 한 편의 드라마에 실사단 7명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날 오후 2시45분 여수공항. 카르맹 실뱅 세계박람회기구 집행위원장 등 실사단 7명은 국방부 취타대와 의장대의 도열 속에 트랩을 내린 뒤 조원빈(5)군 등 화동 7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We Love You’‘See You again in 2012’란 플래카드가 이들 앞에 펼쳐졌다. 공항 계류장까지 밀려든 환영 인파는 손에 손에 태극기와 박람회기구 실사단의 국기, 실사단 인물 그림이 든 피켓을 들고 환호했다. 공항 안팎에만 유치원생, 학생, 흥국사 스님과 신도, 마을주민 등 1000명이 넘게 나왔다. 공항에서 시청까지 오는 10여㎞는 시민 수만명이 나섰다. 도로변 마을 앞마다 주민들이 나와 실사단에 손을 들어 열렬히 환호했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와 지나던 시민들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시내로 접어드는 석창사거리에서 시청앞까지 1.5㎞는 환영인파로 절정을 이뤘다.4차로 중 3개 차로를 점령한 시민들은 목청이 터져라 실사단 버스를 환호했다. 시민과 학생, 직장인 등 수만명이 밀려들면서 차량이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시청 앞에서는 머리에 ‘Welcome to Yeosu’라는 머리띠를 한 유치원생 50여명이 율동에 맞춰 웰컴을 연발하자 실사단이 이들을 껴안으며 기뻐했다. 이어 환영 인파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시청이 떠나갈 듯 연호하자 손을 들어 답례했다. 오현섭 시장은 “실사단이 가는 곳마다 넘쳐나는 환영 인파는 시민들의 박람회 유치 의지이고 이 같은 모습이 실사단에 감동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석창사거리 500여m 구간에서는 실사단의 출신 국가별 전통복장을 한 100여명의 대학생들과 초등학생들이 실사단과 사진을 찍으며 함께 어울렸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선상 환영 만찬도 실사단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환영리셉션은 신항 1부두에 정박한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함(4500t급) 갑판 위에서 열렸다. 국가정상이 오전에 이어 하루에 두 번이나 실사단과 식사를 같이한 것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이어 시민 2만여명이 운집한 거북선 대축제는 실사단이 모습을 보이자 열광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민들을 헤치고 나온 실사단은 진남관 앞에서 판옥선을 타려다 내려 서서 삼도수군 통제영 길놀이와 용줄다리기에 동참, 시민들에게 화답했다. 해양공원으로 옮긴 실사단은 김규리·규란 쌍둥이 자매로부터 145만명의 지지 서명부를 전달받기도 했다. 거북선 대축제의 핵심인 불꽃대축제가 시작되자 여수의 밤하늘은 빛과 함성으로 가득했다. 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 동북아평화 기여”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오전과 오후 에 걸쳐 여수 박람회 유치활동에 ‘올인’했다. 노 대통령은 오후 여수 신항내 이순신함에서 열린 ‘2012 세계박람회 실사단 환영만찬’에 참석, 만찬사를 통해 “여수 세계박람회는 냉전의 빙벽이 허물어지지 않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면서 “세계박람회 유치는 한국이 국제사회가 직면한 여러 과제를 풀고 공동 번영의 길을 열어가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며 실사단의 좋은 평가를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세계박람회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과 애정은 각별하다.1893년 시카고 엑스포에 처음 참가했고, 꼭 100년 후인 1993년에는 대전 엑스포를 개최했다.”면서 “이제 우리는 2012년 세계박람회가 이곳 여수에서 열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국제박람회기구 실사단을 접견하고 다과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유치위원회가 여러분에게 보고한 내용을 정부가 확고히 보증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남해안의 서쪽에 있는 전라도와 동쪽에 있는 경상도는 정치적으로 상당한 갈등이 있고 대립이 있었던 지역”이라면서 “박람회 유치에 성공하면 두 지역이 완전히 서로 협력하고 단결하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모든 정당이 협력해 이 박람회를 추진하고 있고, 앞으로 정권이 혹시 어느 당으로 가든 관계없이 박람회는 성공하게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Let’s Go] “거북선의 힘으로 세계박람회 유치”

    전남 여수 거북선 대축제(10∼14일)는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를 염원해 세계 불꽃축제로 열고 닫는다. 이번 축제는 진남제 등 크고 작은 8개 축제를 하나로 묶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거북선 축제는 11일 세계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여수에 도착하는 날 밤 종화동 해양공원에서 한려수도 여수의 멋과 열기를 담아낸다. 이 축제는 세계박람회 실사단을 겨냥하고 있다.‘Welcome to YEOSU’라는 주제 아래, 불꽃쇼와 레이저빔, 특수조명, 대형워터스크린(가로 세로 40×20m)이 어우러져 밤하늘에 신비한 영상을 수놓는다. 이 불꽃쇼는 ‘동·서양이 하나로(All for One)’라는 주제로 4막으로 짜여졌다. 불꽃대축제는 11일(수요일) 밤 8∼9시,14일(토요일) 밤 9∼9시30분 두 차례 열린다. 연출은 한국, 이탈리아, 독일 등 3개국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맡았다.●볼거리·먹거리 거북선 축제는 41회째인 진남제로 막을 올린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승전을 기념하는 문화제다. 거북선과 판옥선을 앞세운 통제영 길놀이가 재현된다. 여수 하면 생선회다. 서대회·참장어회를 추천한다. 돌산대교 아래, 오동도 바닷가에 횟집 120여곳이 성업 중이다. 돌산갓김치, 고들빼기 김치는 기본. 거북선 블록쌓기, 갓김치 담그기, 노젓기 등 16가지 체험행사도 준비돼 있다. 충무공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삼도수군 지휘본부인 진남관(국보304호)을 비롯해 충민사, 전투함을 만들고 수리하던 선소, 좌수영대첩비도 둘러보자. 여수 주변 오동도와 돌산도, 향일암, 거문도, 백도를 뱃길로 도는 1박2일,2박3일 관광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교통편은 철도 항공 고속도로 등 사통팔달이다. 승용차로 여수까지 서울에서는 5시간, 대구에서 4시간, 부산에서는 3시간이면 충분하다.여수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종방 ‘하얀거탑’ 톱스타·멜로구조 없이도 떴다

    종방 ‘하얀거탑’ 톱스타·멜로구조 없이도 떴다

    MBC 특별기획 드라마 ‘하얀거탑’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껏 받으며 막을 내렸다.24%선의 시청률로 ‘주몽’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하얀거탑’이 ‘의미있는’ 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하얀거탑’이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드라마였다는 점이다. 병원 내 권력 다툼에서 정치드라마로, 마침내 법정드라마로 옮겨가는 긴장감 있는 전개로 이렇다할 멜로 구조 없이도 젊은 시청층 특히 넥타이부대의 관심을 모은 것. #드라마의 새로운 공식을 만들다 한 회에 2000만원이 넘는 고액 출연료의 톱스타나 가수 출신 연기 초년병을 기용해 일단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어 보겠다는 것이 최근 드라마의 경향. 하지만 이에 반기를 든 ‘하얀거탑’엔 특별한 스타가 없다. 주인공인 김명민이 ‘불멸의 이순신’으로 이름이 알려진 정도다. 톱스타의 인기를 등에 업어야만 성공한다는 공식에서 벗어나 탄탄한 원작과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의 조화로 성공한 ‘하얀거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는 언제나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얀거탑’은 야망을 향해 질주하는 출세주의자 장준혁을 통해 인간의 욕심과 타락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어느 누구도 그의 행동이나 생각이 올바르다고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를 온전한 ‘악인’이라 단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때때로 보여주는 인간적인 면모, 비록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낸 뛰어난 의술 등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다양한 매력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로 그림으로써 ‘도덕의 화신’ 최도영보다 오히려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배배 꼬인 출생의 비밀이나 사랑 타령, 좌충우돌식 에피소드로 점철된 드라마들이 판치는 현실에서 캐릭터 위주의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하얀거탑’으로 한 차원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가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첫 씨름시범공연단 ‘트라스포’ 만든 전 한라장사 이기수

    [스포츠 라운지] 첫 씨름시범공연단 ‘트라스포’ 만든 전 한라장사 이기수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갈등이 길어져 씨름이 대중적으로 멀어졌습니다. 젊은 세대를 파고들어 씨름의 매력을 알리고 싶습니다.” 장수 2명이 무대에 오른다. 검으로 무예를 겨루다 한 장수가 그만 검을 떨어뜨린다. 맨손으로 겨뤄보자는 제의가 즉석에서 이뤄지고, 갑옷을 벗어던진 장수들은 다채로운 씨름 기술로 승부를 이어간다…. 불협화음을 토해내는 모래판에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사상 최초로 씨름시범공연단이 생긴 것.‘트라스포 앤 씨름시범공연단(www.trss.co.kr)’이다. 트라스포는 전통(Traditional)과 스포츠(Sports)를 섞어놓은 말이다. 한라장사 출신으로 최욱진-이승삼-손상주 등 기술씨름 계보를 잇던 이기수(40) 전 한라장사가 앞장섰다. 씨름시범공연단 단장을 맡고 있다.1991년 설날대회에서 자신보다 70㎏이나 더 나가는 김정필(약 160㎏)을 거꾸러뜨리는 등 인기를 끌었던 그다. 현역 시절부터 씨름을 어떻게 널리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태권도가 시범단을 통해 국내·외로 그 우수성을 알리는 게 너무 부러웠고, 경기에서 전부 보여줄 수 없는 씨름의 멋과 맛을 팬들과 함께 즐기고 싶었다.”는 설명이다.2004년 코치로 몸담았던 LG씨름단이 해체되며 시쳇말로 ‘백수’가 됐다. 자신은 MBC ESPN 대학씨름 해설위원을 맡게 됐지만, 마음 한 구석은 개운하지 않았다. 위기가 곧 기회라며 그동안 꿈꿨던 씨름시범공연단에 도전하자는 결심을 굳혔다. 잇단 팀 해체로 설 자리를 잃은 장사들을 불러모았다. 회사에 다니고 피트니스클럽 트레이너를 하고, 화원을 꾸리는 등 모래판을 떠났던 ‘테리우스’ 남동욱을 비롯해 금강장사 출신 최성남 등 9명이 의기투합했다. 새달 말 하동화개장터 벚꽃축제를 첫 무대로 올림픽기념사업본부 시범공연, 각종 지역 축제, 한국을 알리는 국제행사까지 나설 계획이다. 단순히 현란한 씨름 기술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고려시대 왕이 씨름을 즐겼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에게 샅바를 잡게 했다는 역사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있는 공연을 하게 된다. 또 젊은 층에게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비보이(B-boy)와 합동 공연도 꾸릴 예정이다. “(최)홍만이가 K-1에,(이)태현이가 프라이드에 갈 때 극구 말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후배들에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죠.” 요즘 씨름판 상황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고 했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던진 말이다. 이 단장은 “아직도 씨름계 반목이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아요. 설 자리를 잃은 선수들과 씨름판을 위해서라도 서로 한 발씩 양보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 이기수 단장은 누구 ●출생 1967년 7월1일 경남 산청생 ●체격 178㎝,93㎏ ●가족 부인 강선정(38)씨와 주흠(13), 찬흠(11) 2남 ●학력 진주 중안초, 진주 중앙중, 진주상고, 경상대, 명지대 체육대학원 ●경력 LG씨름단 선수(1989∼1999년·한라장사 6회 등극), LG씨름단 코치(1999∼2004년), 세종대 강사(2006), MBC ESPN 해설위원(2006∼현재), 국민생활체육 전국씨름연합회 기획이사(2006∼현재)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色色 징검다리 연륙교, 봄물감 찍었네

    色色 징검다리 연륙교, 봄물감 찍었네

    아침 공기가 찼다. 가끔 자전거를 멈추고 언 손을 입으로 호호 불면서 한 오르막 모퉁이를 돌았다. 저 아래에 다리 하나가 보였다. 이미 지도상에서 보았던 ‘창선교’일 터였다. 남해도와 삼천포 사이에 있는 제법 큰 섬인 창선도를 연결하는 다리다. 그러니까 내 여정은 다시 남해대교를 거쳐 남해도를 벗어나는 게 아닌, 섬끼리 연결된 다리 몇 개를 더 거쳐 사천(삼천포)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창선교를 지나며 보니 바닷물의 물살을 이용해서 잡는 ‘죽방렴’ 모습이 여러 곳 눈에 띄었다. 잘은 모르지만 물고기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지 못해 잡히는 방법인가 보다. 그래서 사진 몇 컷을 찍느라 자전거를 멈춰 좁은 인도에 세웠다. 어젯밤에는 황토 찜질방에서 잠을 잘 잔 것 같은데 어째 몸이 좀 무거웠다. 그래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도 힘에 겨웠다. 창선도로 접어들어 한 모퉁이를 돌아 내려가니 모처럼 평지길이 이어졌다. 들판 사이로 잘 닦인 4차선 도로여서 큰 힘 들이지 않고 달리는데 들판을 달려서인지 손이 시려왔다. artistdiary@hanmail.net # 창선~삼천포 3.4㎞ 4개의 교량 ‘아름다운 길100선´에 입김으로 ‘호호’ 하고 온기를 자주 불었지만 그래도 손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시려 짜증이 났다. 겨울철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힘든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손시려움’이다. 정말 어떤 때는 손이 시리다 못해 아려올 때도 있다. 그렇게 가다 보니 멀리 붉은 색의 연륙교 두어 개가 제법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그 다리들을 건너면 삼천포일 터였다. 도대체 저기는 어떻게 생겼기에 다리들 몇 개가 저리 가까이에 다른 모습으로 붙어있을까? 멀게만 보이던 삼천포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풍경은 바뀌었다. 멀리서 볼 땐 그저 모양새나 내려고 지었을 것 같던 다리가 직접 건너려니 육중한 모습이었다. 창선대교, 늑도대교, 초양대교, 삼천포대교로 연결된 네 개의 다리를 건너야만 삼천포시였다.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길이란다. 다리 자체도 다양한 모습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그것보다는 다리를 지나며 보이는 주변풍경이 훨씬 아름다웠다. 가까이에 보이는 다도해 풍경뿐만 아니라 멀리 육지 쪽의 산들도 아름다웠다. 아마 지리산의 큰 덩어리일 것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이런 다리를 싱겁게 휙 하고 지나는 것보다 자전거를 끌고 인도로 천천히 걸어가며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걷는 것이 자전거 여행의 장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쌀한 바닷바람은 내 몸을 얼게 만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침도 거른 채 달려오다 보니 몸이 더욱 추웠고 배도 고팠다.‘삼천포에 가선 뭔가를 먹으리라.’ 마지막인 삼천포 대교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가려다 나는 포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짭짤한 바닷내를 맡으며 조금 지저분한 구 포구를 지나가는데, 똑같이 생긴 조그만 개 두 마리가 앙칼지게 짖으며 나를 쫓아왔다.“저리 가거라!” 하며 소리를 쳐도 개들은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난감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가능하면 페달을 세게 밟아 속력을 내어 도망갈 수밖에. 크다면 또 모를까, 별로 크지도 않은 개 두 마리에 쫓겨 혼비백산 달아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는 자전거로 좁은 골목길을 누비고 있었다. 하기야 거기엔 그 길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놈들은 멈출 기색이 없었다. 순간 약이 오르기도 해서,‘자전거에서 내려 발로 차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다행히 그쯤에선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아 그대로 위기는 벗어났다. 개들은 이상하리만큼 낯선 사람을 잘 알아본다. 동물의 감각으로 ‘나그네 냄새’(?)를 바로 맡을 수 있나 보다.‘내 행색이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하지. 개도 단 번에 알아보는 나그네….’ # 이순신 장군도 이용한 아담한 ´대방진 굴항´ 그러다가 포구를 도는데 길이 좁아지고 있었다.‘무슨 일로 갑자기 길이 좁아지는 거지?’ 하면서도 그대로 따라 갔다. 어? 거기엔, 조그만 웅덩이 같은 재미있게 생긴 포구 하나가 있었다. 주변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고목들이 군락을 이루듯 한 덩어리로 뭉쳐 있었다. 게다가 나무가 오래돼서인지 어떤 건 쇠기둥으로 가지를 받쳐준 모습도 보였다.‘이 게 뭐지?’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몇 개의 ‘굴항’이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런 걸로 추리해 보면 여기는 ‘굴항’인가 보다. 목선 몇 척이 정박해 있는 모습인데 아마 옛날엔 여기가 조그만 포구였나 보다.‘굴 위주의 배가 들어와서 굴항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그러다 관광안내판을 발견하고는 가서 확인해 보니 ‘대방진 굴항’으로 고려시대 때 왜구들을 물리치려고 인공적으로 지었던 군항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도 이용했다는 아무튼, 재미있게 생긴 포구였다. 대방진 굴항을 한 바퀴 돈 뒤, 나는 다시 선창을 따라 갔다. 수산물 시장인 듯한 건물이 보였고 그 모퉁이를 돌았더니 어? 한 무리의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가 보니 경매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때마침 그 시간에 도착한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자전거를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 그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염치불구하고 그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 현장도 찍었다. 마치 취재를 나온 촬영기자라도 되는 것처럼. 이것 역시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 시끌벅적 생선 경매장엔 인간미 물씬 사실 나는 경매에 참가한 그들이 뭘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렇지만 갓 잡아온 싱싱한 생선을 팔고 사는 흥정의 모습일 것이었다. 어떤 생선은 그릇에서 튀어 나와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여기는 그만큼 삶의 생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생선까지도 활기찼던 것이다. 경매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끌지 않았다. 아니, 금방 파장이었다. 그 반짝하는 시간에 내가 거기에 갈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틈을 이용하여 사진 몇 컷을 찍다 보니 경매가 끝나버려 나중엔 좀 싱겁기까지 했다. 주변에는 시장과 연결돼 있어 여행객에게는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았다. 회시장인지 생선을 다루며 횟감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한 거리를 이루고 있었는데, 사실 나는 그 곳을 지나면서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이런저런 남해안의 싱싱한 생선들이 눈으로 보기만 해도 먹고는 싶은데,‘혼자 들어가서 얼마만치나 사서 먹을 것인가? 게다가 혼자 회를 먹으며 이렇게 빈속에 소주라도 한 잔 마시게 된다면? 내 자전거도 음주운전(?) 상태로 대낮부터 갈지자로 달리게 될 것인가?’ 아무래도 그럴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싱싱한 어시장을 눈으로만 구경하고는 뒷골목으로 향했다. 어시장 뒤편은 시장통으로 연결돼 있었다. 골목을 지나는데 한 아주머니가 “식사를 하시려면 여기로 들어오세요.” 하면서 식당 문을 연다. 그래서 보니, 입구의 가격판 간판엔 2000원과 3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무슨 식사가 이리 싸지?’ 하고 다시 읽어 보니,‘먹장국’‘시래기 국밥’이라고 적혀 있었다. “먹장국이 뭐죠?” 하고 물으니, 문어 먹통을 이용한 시래깃국인데, 밥을 말아 먹는 국밥이라 한다. 듣기도 처음인데다 먹어보지도 못했던 음식이긴 했다. 더구나 아침을 거른 채 추운 겨울 바람을 쐬며 달려와 따끈한 국물이 그리웠던 여행객인 나는, 그 싼값에 끌려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음식이 나왔는데 무엇보다도 김치가 맛깔스럽고 시원했다. 그래서,“아주머니 김치가 참 시원하고 맛있네요.” 했더니,“우리 손님들이 날더러 전라도 아줌마냐고 묻곤 하지예. 나는 산청사람인데, 내 김치가 전라도 맛이라네예.” 하며 환하게 웃는다. 어쨌든, 김치 국물까지 시원했다. #“더 드리까예” 국밥 한그릇에 情 한그릇 덤 그런데 ‘국밥이 겨우 3000원이라고? 이렇게 받고도 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상이 나온 것을 보니 5000원을 받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푸짐했다. 무엇보다도 인정이 느껴지는 국밥집이었다. 그렇게 나는 주린 배를 채웠고 언 몸도 녹였다. 내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어서였을까? “밥 더 드리까예?” 하고 아주머니의 묻는 목소리도 정겨웠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김치가 맛있어서 “조금만 더 주세요.” 하고는 몇 숟갈의 흰 밥에 김치를 걸쳐 먹었다. 모처럼 포만감에 젖어 행복했다. 마음도 느긋해지고 있었다.‘하기야, 나 같은 가난한 여행객에게는 이런 곳이 제격이지.’ 따끈한 정을 느끼며 배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소박하지만 맛도 있는 싼 식당이었다. “아주머니 제가 다음에도 오면 꼭 들르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더니,“언제든지 오세예. 저는 여기에 계속해서 있을깁니더, 잘가입시더.” 인사도 정겹고 밝기만 했다. 식당에서 나와 과일을 조금 사려고 둘러보는데, 길거리에 단감을 놓고 파는 아주머니 몇몇이 눈에 띄었다. 그리로 갔다. 처음에 있던 아주머니가,“감 사이소!” 하며 지나가는 내 팔을 잡는다.“아주머니 잠깐만요. 나도 한 번 구경을 하고 사더라도 사야지요.”라고 대꾸했다.“이 거 하나 깎아먹어 보이소.” 하면서 내 팔을 억세게 잡고는 놓아주질 않는다. “아주머니, 이러지 마세요. 제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하며 팔을 뿌리쳤다. 이제는 밥도 먹어서 배도 부르고, 기분도 나른해서 좀 여유 있게 시장 한 바퀴를 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내 눈에는 또 다른 감 파는 아주머니 모습이 들어와 있었고, 그 억척스러운 아주머니의 행동에 짜증스러운 거부감도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팔을 뿌리치고 그 뒤 한쪽에 조용하게 서 있던 아주머니 앞으로 갔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살짝 웃는 얼굴로,“감 답니더. 사이소.” 한다. 목소리도 나지막했다.“그러지요. 근데, 그 바구니가 얼맙니까?” 하고 물으니,“5000원인데예.” 한다. “아주머니, 보시다시피 제가 지금 자전거로 여행을 하는 중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는 사갈 수가 없습니다. 단 몇 개 정도만 필요하거든요? 그러니 미안하지만 한 2000원어치만 팔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그럽시다.” 하면서 비닐 봉지에 주섬주섬 감을 담기 시작한다. 집에서 따온 감인지 싸기도 해서 2000원어치만도 예닐곱 개를 담고도 더 담는 것이었다. 하기야 이 부근은 진영단감이 특산이어서 단감이 많은가 보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 전에 내 팔을 잡고 실랑이를 하던 아주머니와 언뜻 눈이 마주쳤는데, 고개를 휙 돌리며 외면해 버린다. 나도 머쓱했다. 이 세상에 저렇게 억척스럽거나 드센 사람만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런 사람은 능력이 있어서(?), 이렇게 조용하고 순한 사람에 비해선 장사도 잘하고 빨리 팔아치우고 집에 돌아가리라. 지금의 내 행동이 별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말과 숫기도 없고 순한, 그래서 어쩌면 이런 경쟁의 세계에선 늘 뒤로 밀리는 사람의 편에 서고 싶다. 그 건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아주머니 그만 주세요.” 자꾸만 더 담으려던 아주머니를 말리는데 “두어 개라도 더 드리까예” 하기에,“아주머니, 저는 이걸로 충분합니다. 혹시 나중에 올 다른 사람이 더 달라고 하면, 그때 더 주시면 되겠네요.” 하며 돈을 건넸더니, 그 아주머니도 환하게 웃으며 받는다. 그렇게 시장통에서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식사도 했고 또 이런저런 구경도 하고 먹거리를 준비했는데 퍽 재미 있었다.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시장에서 잘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객에게는 이런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며 느끼는 것들이, 어쩌면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만큼이나 값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행도 사람 사는 일 중의 하나고, 시장의 풍경은 가장 진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삼천포 시장을 벗어나면서 곧 도심을 빠져 나가게 됐다. 따사로운 겨울 남녘의 햇볕에 아늑한 농촌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침과는 달리 어느덧 날씨는 봄날 같았다.
  • ‘한류’ 북한도 녹인다

    ‘한류’ 북한도 녹인다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도 ‘한류(韓流)’ 바람이 거세게 불어 북한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1일 “최근 남한의 영화와 드라마 등이 대거 유입되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이를 보지 않으면 ‘왕따’ 취급을 당한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평양 등에서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대사인 ‘너나 잘하세요.’를 변형한 ‘너나 걱정하세요.’라는 말이 유행어로 번지고 있으며, 드라마 ‘가을동화’나 ‘불멸의 이순신’ 등도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용준·장동건 등 얼짱배우 인기 통일부와 새터민 교육기관 하나원이 교육생 30여명을 대상으로 면담조사를 실시, 지난해 10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남한 가요와 드라마는 평양뿐 아니라 개성이나 남포, 함경북도 등 국경지역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배용준, 장동건 등 남한 배우의 인기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경을 드나드는 여행자 등을 통해 남한 비디오 테이프나 CD 등을 구입, 서로 돌려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칼머리·맘보바지 패션도 따라하기 최근에는 드라마나 영화뿐 아니라 헤어스타일과 패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앞머리를 삐죽삐죽 내린 ‘칼머리’가 유행하고, 통을 좁게 해 다리에 달라붙는 ‘맘보바지’를 여성들이 입은 모습도 자주 목격된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이처럼 ‘남한풍’이 북한 사회에 확산되자 북한 당국은 당·군·청년 조직을 총동원해 사상 재무장을 독려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외부의 심리 모략전을 차단하고 이색 생활풍조의 유입을 경계하자’는 취지의 대민 선전을 강화하면서 남한풍 단속에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당국은 사회 저변에 변화욕구가 커질수록 체제 균열 요인 또한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경공업 투자 증대에 나서는 등 민생 안정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경남 이순신’ ‘전라 이순신’ 통합

    자치단체별로 제각각 추진되고 있는 ‘이순신 마케팅’이 조정된다. 문화관광부가 최근 중복투자를 피하기 위해 자치단체간 협의를 종용한 데 따른 것이다.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국비를 지원받을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의 승전지별로 축제가 열리고, 거북선 및 조형물과 테마공원 조성 등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나 특징이 없고, 내용도 유사해 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었다. 이에 따라 경남도와 전남도 실무자들은 지난 18일 섬진강휴게소에서 만나 그동안 각각 추진해오던 이순신 장군 및 임진왜란 관련 관광상품화 사업에 대해 협의했다고 23일 경남도가 밝혔다. 이날 협의를 통해 양측은 그동안 추진해온 사업 중 5건을 공동으로 추진하고,6건은 각각 추진키로 조정했다. 공동추진사업은 경남이 제시한 ‘거북선을 찾아라’와 사이버 임진왜란, 임진란 뮤지컬 등 3건과 전남이 내놓은 이순신 및 임진왜란 알리기 사업과 거북선을 비롯한 군선 원형복원사업 등이다. 사업비 247억원은 국비를 지원받아 확보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와 함께 경남도는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 정비사업 ▲한산도 통제영 테마마을 조성 ▲한산대첩 병선마당 ▲노량 평화공원 조성 등 4건을 단독으로 추진키로 했다. 사업비는 775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또 전남도는 사업비 1598억원으로 ▲명량대첩 현창사업 ▲이순신 광장 조성사업 등 2건을 추진키로 했다. 양 도는 다음달 중 2차 협의를 갖고 공동사업과 단독 사업을 최종 확정, 국비지원을 건의키로 하고 공동추진 사업의 지방비 부담액은 절반씩 나누기로 했다. 이치형 경남도 관광과장은 “전남과 경남의 협의로 중복투자를 피하는 것은 물론 역할분담으로 사업도 원활하게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신의 아그네스’ 히로인 전예서

    ‘신의 아그네스’ 히로인 전예서

    고전은 진부하지 않다. 재미있는 데다 논란거리까지 안겨준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는 1983년 국내 초연 이후 25년이 지났지만, 기적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고 관객들이 열띤 성원을 보낸다는 점에서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할 수 있다.15년전의 명콤비 박정자, 손숙이 다시 뭉쳐 화제를 모은 ‘신의 아그네스’에서 아그네스역의 신인 전예서(26)는 관록의 두 중견 배우에 밀리지 않는 열연을 펼치고 있다. “아그네스는 막연히 순수하고 맑을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대본을 보고 아픔이 많은 인물이라 당황하기도 했어요. 불우함을 이겨내고 성인이 되고 싶어하는 아그네스 자체가 기적이 아닐까요.” 전예서는 2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아그네스역에 발탁되기 직전,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완벽한 수녀 역할을 해내기 위해 수녀원에서 생활할 생각도 했지만, 일반인이 들어가기는 어려워 대신 성당을 자주 찾았다. 연극 무대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아오리역을 장기공연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남성 관객들은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기생 청향역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지고지순한 조선 여인상이 아니라 고관대작에게도 할 말 다하는 똑부러진 기녀였다. 무대에서 전예서는 어린아이같으면서도 상처로 괴로워하는 아그네스의 다면적인 성격을 여러 빛깔의 목소리로 표현해낸다. 박정자의 울림있는 발성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객석 관람객들의 눈동자도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에너지로 빨아들인다. 관록의 두 선배 배우를 보면서 가장 본받고 싶은 것이 체력. 장기공연을 위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신의 아그네스’는 정한용, 정준호 등 배우들이 앞다퉈 찾을 정도로 연기의 교본이 되고 있다. 주부들을 위한 수요일 낮공연, 수녀원의 단체관람도 성황이다. 윤석화, 신애라, 김혜수에 이어 다섯번째로 아그네스역을 맡은 전예서는 그녀만의 ‘오묘한’ 아그네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깔깔깔]

    ●의로운 환자 정신병원의 한 환자가 자살하려던 환자를 욕조에서 꺼내 목숨을 구했다는 소식을 들은 병원장이 목숨을 구해준 그 환자를 불렀다.“봉달씨, 당신의 건강 상태와 영웅적인 행동을 보니 퇴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살려준 그 환자가 밧줄에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저…그 사람은 자살한 것이 아닌데요. 제가 그 사람을 말리기 위해서 매달아 놓은 겁니다.”●역사속 허무개그 1. 이순신장군이 왜군의 조총에 맞았다이순신: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부하:벌써 알렸는데요.이순신:이런. 2. 잔 다르크가 마녀재판을 받고 있다.잔 다르크:내가 만약 마녀라면 불태워 죽여라.재판관:불붙여. 3.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둘 때 영조:저놈을 당장 뒤주에 가두도록 하여라. 설마 죽기야 하겠느냐.한참후신하:죽었는데요.
  • “이순신표 거북선 곧 복원·공개”

    “이순신표 거북선 곧 복원·공개”

    415년 전에 제작된 거북선(귀선·龜船)에서의 화룡점정은 무엇일까. 십중팔구는 용머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거북머리가 아닌 용머리를 달았을까.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이 임금에게 올린 장계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 1592년 6월14일)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신이 일찍이 섬 오랑캐의 변란을 염려하여 전선과는 다른 거북배를 만들었습니다. 이물에는 용의 머리를 달고, 그 아구리로는 대포를 쏘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거북이가 천년을 살면 용, 즉 ‘신귀’가 된다는 이야기(龜變化神龜)가 있다. 아울러 조자용씨가 소장한 ‘귀선도’에 보면 “신귀는 사신(四神)과 사령(四靈)에서 한자리를 차지해 벽사와 길상의 상징이 되어 용왕의 사자로서도 큰 임무를 맡았다.”라고 돼 있다. 따라서 거북선에 용머리를 단 것은 신귀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통 한선(韓船)기능 전승자로 국내 유일한 고대선박 연구가 이원식(73) 원인고대선박연구소 소장. 백제 사신선, 통일신라 교관선, 고려 완도선 등 지난 42년동안 36건의 고대선박을 연구·복원제작해 이 방면에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거북선박사 1호’라는 공식명함을 하나 더 추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새로운 영역을 쌓았다. 지난 달 실시된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심사에서 그가 제출한 논문 ‘1592년 귀선의 주요 치수 추정에 관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 것. 학위수여식은 오는 2월21일. 여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발표한 연구논문의 내용이다.2006년말 현재 역사 서적이나 교과서 등에 게재돼 있는 귀선도(龜船圖)나 정부 기관에 전시된 모형선은 ‘1795년식 거북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1592년 이순신 수군절도사가 창제한 거북선이 아니라 203년이 지난 1795년(정조19년) 규장각에서 편찬한 ‘이충무공 전서’의 ‘귀선지제’에 근거해 만들어졌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따라서 1592년에 일본군의 침략전쟁때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1592년식 거북선’에 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아 연구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 소장이 연구한 대목이 바로 이 ‘1592년식 거북선’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연구의욕으로 400여년 전의 베일을 어느정도 벗겨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에 위치한 그의 자택을 찾았다. 강아지 세마리가 먼저 나와 꼬리치며 낯선 방문자를 맞이한다. 현관 입구에는 ‘한선 기능 전승자’‘원인고대선박연구소’라는 문패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때마침 그는 1592년식 거북선의 복원작업을 위한 설계도, 즉 선체 선도(線圖)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선 1592년식 거북선이 1795년식 거북선과 다른 점을 비교해달라고 요청했다. 첫번째는 크기나 규모면에서 1795년식에 비해 전체적으로 30%정도 작은 것이 특징. 따라서 선체 전장의 길이가 1795년식(34.05m)보다 7m가량 작은 26.27m이고, 선체 선폭은 1795년식(9.15m)보다 1.9m 좁은 7.06m라는 것. 배 밑창에서 갑판까지의 깊이 또한 1795년식의 2.34m보다 다소 낮은 1.92m라고 설명했다. 두번째로는 대포의 포혈.1592년식의 경우 좌우측 각각 6개씩의 포혈이 있는 반면 1795식은 이보다 더 많은 10개씩이다. 또한 1592년식에는 없는 소구경포혈이 1795년식 거북잔등 부분에 설치돼 있다. 특히 용머리의 경우 1592년식은 대포를 발사했으나 1795년식은 유황염초를 피웠다고 했다. 아울러 1795년의 용머리 배치가 90도로 꺾인 반면 1592년식은 이보다 완만한 30∼40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밖에 1592년식에는 거북잔등에 창을 꽂아 적이 오르지 못하도록 했으나 1795년식은 거북그림을 그려넣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라고 이 소장은 밝혔다. 이같은 연구결과의 근거에 대해서는 “1592년 당시 이순신 수군절도사의 일기와 장계,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등 관련 전적(典籍)에 기록된 거북선의 주요수치와 기타 선박 관련자료 등을 참고했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그동안 대한조선학회지 등에 발표한 거북선 관련 선행 연구논문을 활용했다. 특히 전통한선의 제1번 기본치수가 되는 ‘1592년식 거북선의 저판치수자료’ 7건을 발굴했으며 이것이 1592년 거북선 주요치수 연구의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1592년식 거북선은 언제 복원될까. 이 소장은 현재 현대중공업 조선해양연구소에서 ‘한국 전통선박 복원 조사연구’ 프로젝트(책임연구원 민계식 부회장)의 사외연구원으로 몸담고 있다. 이 연구소는 자체적으로 전통 고대선박 복원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1795년식 거북선과 조선통신사선 등 정밀모형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소장이 현재 1592년식 거북선의 선도 및 공작설계도 작업을 마무리 중이서 이르면 올 봄 실험용 모형정도는 언론에 공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거북선연구에 대한 논의는 1958년 숭실대 최영희 교수의 ‘귀선고(龜船考)에서 처음 대두되었으며 1964년을 전후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소장 역시 이 무렵 한강유역과 서해안 및 남해안의 전통 한선의 조선기법을 채록하면서 고대선박 연구에 뛰어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공고 4학년때 6·25가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입대했다가 공군사관학교 조종간부후보1기로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후 제약회사인 ‘한국화이자’에 기계담당 공무직으로 1963년 입사했지만 고대선박 연구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1965년에 ‘국방사학회’에 가입한 뒤 그해 첫 논문인 ‘귀선의 과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내친 김에 ‘원인(元仁)고대선박연구소’라는 민간연구소를 설립했다. 1969년에는 은사로 모시는 김재근 서울대 조선공학과 교수(작고)와 함께 아산 현충사에서 최초의 거북선 복원작업에 들어갔다.1971년에는 인천대림조선소에서 처음으로 원형의 2분의1 1795년식 거북선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이 거북선은 극영화 ‘이순신’(김진규 감독)에 등장했다. 이후 거북선 복원에만 10여차례, 신라시대 전선(戰船), 장보고 무역선, 백제 사신선, 완도 고려선, 조선통신사선 등 30여 척의 고대선박을 복원, 박물관 등에 전시했다. 아울러 ‘한국의 배’‘고대선박 발달사’ 등 4권의 저서를 냈고 논문은 수십편을 발표했다. 그는 뒤늦게나마 정식 학위를 취득하려고 검정고시와 독학사 과정을 거친 뒤 2002년 해양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집념을 보였다.2004년 석사 학위 논문이 통과되자 곧바로 박사과정을 밟았고 일주일에 2∼3일씩 부산과 용인을 오가며 노력한 끝에 이번에 그 결실을 보았다. “앞으로는 기존의 1795년식 거북선은 1592년식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하고 이에 따른 후속 작업은 매우도 중요합니다. 아울러 잘못 알려진 우리의 전통 한선에 대한 수정작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해요.” 주말마다 찾아오는 손자손녀들을 만날 때마다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4년 서울 출생 ▲50년 경기공고 4년 재학때 학도병 입대 ▲65년 원인고대선박연구소 설립 ▲69년 문화공보부 현충사 귀선 고증위원 ▲85년 한국과학사학회 정회원 ▲92∼96년 해군사관학교 해저유물발굴단 자문연구위원 ▲98년 대한조선학회 정회원 ▲2001년 독학사 검정고시 합격, 한국해양대학 장보고연구소 연구원 ▲04년 해양대 공학석사 ▲06년 공학박사 # 주요 상훈 전통한선기능 전승자(노동부장관 지정), 대통령 표창(01년, 한선기능전승 유공) 등 # 주요 작품실적 현충사 거북선(69년), 중앙정보부·해군사관학교 거북선(71년), 미국EXPO 거북선(84년) 등 수십여 작품. 그외 장보고 전선, 조선통신사선, 완도 고려선, 신라 교역선, 백제사신선, 통나무쪽배 등 30여 작품제작
  • “한국인 되면 시각장애인 돕는 일 할래요”

    “컴퓨터가 좋아요. 한국 사람이 되면 더 열심히 배워서 저같은 시각 장애인들을 돕는 일을 할래요.” 중국 동포 이진니(24·여)씨는 17일 치른 귀화 필기시험에서 90점을 맞았다.60점을 넘으면 합격인데, 최상위권에 들었다. 이씨 덕분에 귀화시험에 처음 도입된 점자 필기시험은 산뜻한 출발을 하게 됐다. 법무부는 이씨와 같은 시각 장애인 외에도 청각 장애인과 지체 장애인 등 다른 장애인 귀화 신청자도 시험을 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씨가 1996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어머니 정명희(50)씨를 따라 입국한 것은 2005년 10월.10여년간 어머니와 떨어져 중국에서 시각 장애인 학교를 다닌 그에게 한국 생활은 낯설기만 했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한국시각장애인 복지관 기숙사로 보냈다. 이씨는 중국에서 시각장애인 1급 판정을 받았다. 세살 때 병치레를 한 뒤 시력을 잃어 어슴프레 빛만 보일 정도다. 그나마 언제 실명이 될지 몰라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걷는 연습도 한다. “중국에서는 중학교 과정까지밖에 못다녔어요. 한국에서 공부도 하고, 컴퓨터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훈련도 재밌어요.” 재활훈련과 컴퓨터 외에도 이씨는 점자공부, 한국 역사 공부를 하며 어느새 어머니의 바람대로 강하고 똘똘한 아가씨가 돼 있었다. 귀화해 한국인이 되는 방법도 이씨 스스로 찾았다. 귀화신청을 한 뒤 법무부 국적난민과에 연락해 시각 장애인이라고 밝히며, 시험을 볼 수 있는지 물었다. 법무부가 한국시각장애인협회 도움을 얻어 점자로 시험을 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하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넉달 동안 한국 역사를 배우고 답안지를 깨끗이 쓰는 법도 배웠어요. 한글을 만든 왕이 ‘새종대왕’인지 ‘세종대왕’인지 익히느라 힘들었어요.” 이씨는 “그래도 시험 덕분에 점자 실력이 많이 늘었다.”며 웃었다. 낙천적인 성격의 이씨는 한국에 온 뒤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장래희망도 안마사에서 사회 복지사로 바꾸었다. “귀화시험 준비를 하면서 ‘내가 살 나라에 대해 모르는게 많구나.’라고 생각했어요.‘남대문’이 뭔지,‘이순신’이 누군지 몰랐던 게 부끄러워요. 시험에 합격했어도 더 공부해야겠어요.”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늘어나는 귀화자] “애국가 밤새워 외웠는데 한국인 되기 어렵네요”

    [늘어나는 귀화자] “애국가 밤새워 외웠는데 한국인 되기 어렵네요”

    시험 3분전.“첨성대를 만든 사람이 누구죠?”파키스탄인 돌루 시이드(37)씨의 질문에 기자는 “신라 시대 석공이 아닐까요.”라며 궁색한 대답을 했다.“이것봐.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른다니까….”타박하면서도 시이드씨의 손은 예상 문제지를 뒤적였다. ●“3번밖에 기회 없는데…”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정부과천청사 안내동 지하에는 귀화시험이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귀화신청을 냈다. 한번에 100명을 웃도는 귀화신청자들이 필기시험을 치른 뒤 합격하면 면접시험을 본다. 지난 10일의 시험장에도 80여명이 모여 시험을 봤다. 귀화신청자 대부분은 중국동포 2∼3세대. 부모를 따라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시험을 본 것이다. 오전 10시30분. 시험장에 들어가는 자녀들을 배웅하기 위해 부모들은 문앞까지 몰렸다. 자녀들이 시험장 안에서 주관식·객관식 문제(20문항)의 답을 찾는 20분이 부모들에게는 20년처럼 느껴진다. 다들 처음 본 사이지만, 금방 서로를 격려한다. “애국가를 밤새워 외웠는데 잘 쓸 수 있겠죠.”“우리 애는 한국말이 서툴러요. 그래도 세종대왕이랑 이순신은 외웠는데….”“3번밖에 기회가 없으니 이번에 떨어지면 큰일이에요.” 시험장 안에 있는 신청자들은 모두 긴장한다. 우리말로 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옆 응시자가 손을 번쩍 들고 감독관에게 질문하는 동안에도 신청자들은 시험지에만 집중했다. 책상 오른쪽 위에는 외국인등록증이 놓여 있다. 시험에 합격하면 외국인등록증은 없어지고 주민등록증 수여와 함께 부모의 호적에 오른다. ●“군대 가야 한다면 가겠습니다.” 신청자들의 편의를 위해 30분 동안의 즉석 채점이 끝나고 필기시험 합격자가 발표된다. 이날 합격률은 52%로 60% 정도 되는 평소 합격률보다 낮았다. 탈락자들은 한국말과 중국말을 섞어가며 복받치는 감정을 토해냈다. 부모들이 항의하지만,“애국가는 다 맞았다는데요.”라는 말이 전부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의 면접시험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치른다. 한국에서 ‘가족’을 이룰 수 있는지 종합 검토를 하는 절차다. 중국에서 1년 전쯤 입국해 국내 인터넷 바이크 동호회에도 가입한 안용철(23)씨는 면접관 앞으로 가자 시킨 사람도 없는데 쓰고 있던 모자를 얼른 벗었다. 면접관이 “애국가 문제를 많이 틀렸다.”고 지적하자 얼굴이 붉어진다. 20대 남성 귀화 신청자에게 빠지지 않는 질문이 군입대에 관한 것이다. 면접관은 “국내 법령이 바뀌어 귀화자들도 모두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게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대부분은 “그렇다면 가겠다.”“의무도 중요하다.”고 대답한다.“지금 대답을 기록해 두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라도 하면 부모들도 “국민이 되면 의무를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나선다. 중국군으로 5년 동안 복무했던 최광욱(24)씨는 “중국군 경력도 있고 중국이 지금보다 발전할 가능성도 높은데, 중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네.”라고 했다. 사실 귀화 신청자보다 더 긴장하는 사람들은 부모들이다. 한국에서 미용 학원에 다니고 있는 김려화(23·여)씨는 10년 전에 한국인과 결혼한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왔다. 그동안 태어난 동생도 처음 봤다. 면접관이 “90년대 초반에 들어와 지금까지 이렇게 성실하게 사시니 보기 좋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아이를 데려오는데 10년이나 걸렸네요.”라며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김철명(26)씨도 김려화씨와 같은 이유로 어머니와 10년을 떨어져 지냈다. 면접관이 “어린 마음에 원망스럽지는 않았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묻자 김씨는 “원망할 처지가 못됩니다.”라며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모두 통과한 신청자들은 보름에서 한달이 지나면 최종 통보를 받는다. 면접에서 불합격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다시 한번 면접을 볼 수 있다. 이날 돌루씨 등 시험을 본 파키스탄인 6명은 아쉽게도 모두 필기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들은 한국에서 5년 이상 산 외국인들이다. 돌루씨가 마지막까지 궁금해 한 예상문제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만들어졌다.”면서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고 귀띔하며 아쉬워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사극 드라마 ‘세종’ ‘광개토왕’ 뜬다

    올해 방송 3사의 대작 드라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난해 하반기를 휩쓴 사극 바람이 올해도 방송 3사의 대작 드라마들로 이어진다. KBS는 먼저 ‘대왕 세종’으로 사극의 색다른 접근법을 선보인다.‘대조영’ 후속으로 오는 9월 방송 예정인 ‘대왕 세종’은 전쟁이나 정쟁(政爭)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 사극의 공식을 벗어나 문화와 과학을 꽃피운 세종의 일대기를 그린다. 100부작 규모로 ‘불멸의 이순신’을 집필했던 윤선주 작가가 극본을 맡을 계획. 세종을 재조명하면서 집현전 학자 등 세종의 신하들에게도 초점을 맞춘다. MBC는 배용준(사진 왼쪽)과 문소리(오른쪽)를 내세운 ‘태왕사신기’를 오는 5월 방송 예정으로 준비중이다.SBS ‘모래시계’로 히트를 친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 콤비가 손잡고 만든다. 한류스타 배용준이 오랜만에 TV에 복귀하고,43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만주를 호령한 광개토대왕의 업적에 청룡과 백호, 주작, 현무 등 사신(四神)의 신화적 요소를 가미해 고구려 역사를 재조명할 예정이며 지난해 3월 촬영을 시작했다. SBS는 ‘왕’이 아닌 내시에 카메라를 돌린다.4월쯤 전파를 탈 예정인 ‘왕과 나’는 사극에서 조연급에 머물러 있던 내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삶과 활약, 애환을 두루 다룬다. 조선 5대 문종 때부터 10대 연산군에 이르기까지 환관을 맡았던 김처선이 극의 주인공.‘용의 눈물’(KBS1)과 ‘여인천하’(SBS)를 만든 김재형 PD가 연출을 맡았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고액권 인물’ 이색제안 봇물

    10만원과 5만원 등 고액권 발행을 위한 실무작업이 올해 안에 본격화될 예정인 가운데 1일 한국은행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고액권의 인물초상을 놓고 이색제안이 쏟아졌다. 백범 김구, 안중근, 유관순 등과 같은 항일애국지사와 장영실 등 과학계 인물 등 단골 후보들뿐 아니라 고대사의 인물들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주몽 등 고구려 열풍을 반영해 광개토대왕을 10만원권 인물 초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꽤 많았다. 고려의 시조인 ‘왕건’도 나왔다. 일본, 중국의 동북공정으로부터 국토 수호의 의지도 강렬했다. 현재 100원 주화의 도안으로 채택돼 있는 충무공 이순신을 고액권으로 ‘격상’시켜 일본의 독도 침탈 움직임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세계적인 문화 수준을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훈민정음이나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등을 채택해야 한다는 의견도 눈길을 끌었다. 한 네티즌은 “네덜란드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화폐도안에 채택했듯 사군자를 넣자.”고도 했다. 국민 단합을 위해 시청앞 월드컵 응원 모습을 도안으로 채택하자는 주장도 나왔다.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영웅과 악당/육철수 논설위원

    인간의 천성에 대한 성선설이나 성악설은 어느 게 옳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근거와 관점을 달리해서 접근한 것일 뿐, 둘 다 말이 되는 얘기여서다. 인간의 이중성(Duality)이 문학과예술 작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때론 천사 같고, 때론 악마 같은 인간의 본성 때문일 것이다. 영웅도 마찬가지다. 살짝 뒤집으면 악당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전쟁영웅은 살인마와 동일선상에 놓아도 무방한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 속 슈퍼맨처럼 선(善)만을 위해 싸우는 절대영웅(Superhero)은 드물다. 몽골에서 칭기즈칸이,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영웅으로 추앙받을지는 몰라도, 처참하게 짓밟힌 우리에겐 전범이요, 학살자일 뿐이다. 왜군의 침입에 맞서 정당방위에 임한 이순신 장군과는 차원이 한참 다르다. 전쟁명분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갖다 붙여도 정복전쟁의 영웅이란 가해자와 피해자의 처지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게 마련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미국민의 평가는 또 다른 의미에서 흥미롭다.AP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부시를 올해 최고의 악당이자 영웅으로 선정했다고 한다.1000명에게 전화로 물었더니, 응답자의 25%가 부시를 올해 최고의 악당으로 꼽았다. 다음은 오사마 빈 라덴(8%),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6%),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5%),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2%) 순이다. 후세인이나 라덴의 추종자들이면 모르되, 자기 나라 대통령이 더 악랄하다는 미국민의 시각은 참 의외다. 부시는 영웅부문에서도 1위(13%)를 차지해 겨우 체면을 살렸다. 부시에 대한 혐오와 지지가 극명해서 이런 해괴한 결과가 나왔겠지만, 민심은 이렇게 야박하고 냉정하며, 나쁜 쪽만 부각시키는 속성을 지녔으니 어찌하겠는가. 한국의 전·현직 대통령들은 국정을 엉망으로 이끌어 국민의 지탄에 직면하면 ‘역사의 평가’를 곧잘 들먹였다. 지금은 악당 취급 받아도 미래엔 영웅으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평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재임중 업적에 대한 빛과 그림자는 경험상 현재나 후대나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있을 때 잘하는 게 최선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14) 진정한 멜팅 폿 에티오피아

    (14) 진정한 멜팅 폿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에 멕시코 스퀘어라는 곳이 있다. 지하철은 없지만 우리나라로 치자면 종로 3가역쯤 되는 곳으로 이 곳에 가면 볼레(아디스 아바바 국제공항 방면) 쪽으로 가는 차, 서드스 키로(아디스 아바바 대학 방면) 쪽으로 가는 차, 피아사(아디스 아바바 시청 방면) 쪽으로 가는 차를 전부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차는 이곳의 대중교통수단인 미니 버스(현지인들은 꼭 미니 택시라고 한다.)를 의미한다. 멕시코를 연상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왜 멕시코 스퀘어라고 부르는지 이유를 물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답변을 해 주는 사람이 없다. 멕시코 스퀘어 한 가운데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이것만으로 멕시코를 연상하기는 어렵다. 멕시코에서 일어난 전쟁에 에티오피아 군대가 참전을 해서라는 설이 있지만 멕시코 정부나 관련 기업의 원조가 있지 않았나 감만 잡을 뿐이다. 문득, 광화문 한복판에 왜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는지 외국인이 물으면 답변을 할 수 있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왜 세종로라고 부르지? 멕시코 스퀘어에서 사르베트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다 보면 오른쪽에 국방부 건물이 보이고 조금 더 걸어가면 왼쪽에 수단 대사관이 보인다. 수단 대사관을 지나 조금만 직진하면 ‘Melting Pot’이라는 레스토랑을 만날 수 있다. AU(African Union) 바로 전에 위치해 있다. 이름에 걸맞게 이 곳에 가면 에티오피아 음식은 물론 아프리카, 아랍, 남미 음식을 모두 먹을 수 있다. 음식 종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인제라가 지겨울 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 곳을 자주 찾는다. 아랍 요리 중에 밥이 포함된 게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는 메뉴 중에 34번과 39번을 강추한다. 흔히 인종, 문화의 도가니라며 미국을 지칭할 때 ‘멜팅 폿’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미국 보다 오히려 더 멜팅 폿이 이곳 에티오피아가 아닐까 싶다. ‘Melting Pot’ 레스토랑에 가면 아주 잘 차려 입은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암하릭어가 아닌 영어나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AU가 가깝다 보니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이 레스토랑을 자주 찾기 때문이다. 현재 AU에는 모로코를 제외한 아프리카의 53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모로코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는 이유로 아프리카 국가를 54개국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로코는 AU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모로코는 아프리카가 아닌 위쪽의 유럽과 친구로 지내고 싶어하는 분위기다. AU만 따져도 에티오피아에서는 아프리카 53개국 사람을 전부 만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한국, 중국, 일본 사람도 이곳에서 다 만날 수 있다. 외교 공관이 100여 개가 넘기 때문에 이런 나라 사람들을 모두 에티오피아에서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셀 수도 없는 NGO단체가 에티오피아를 원조하겠다고 이나라저나라에서 오늘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사람이 가는 곳에 문화가 따라가는 법. 에티오피아는 가히 멜팅 폿의 지존이라 할 수 있겠다. 셈족계와 햄족계의 혼혈이 조상인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또 새로운 문화에 대해서 아주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현재 에티오피아의 대통령 영부인은 피부색이 하얀 독일인이다. 에스닉 그룹(소수민족)이 80여 개가 넘는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이민족에 대해서 그리 배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디스 아바바의 작은 수퍼에 가면 전세계에서 온 물건들을 다 만날 수 있다. 스위스에서 온 유제품, 이탈리아에서 온 파스타, 중동에서 온 잼, 중국에서 온 싸구려 물건들까지 한마디로 박람회장을 연상케 한다. 직접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라고 하지만 전세계에서 온 물건들이 사이 좋게 매장을 채우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국 전쟁 때 참전했던 에티오피아의 6천 여명의 지상군은 미군 중 절반 가까이나 되는 흑인들보다 15개국의 UN참전국 사람들과 형제처럼 잘 어울렸다고 한다. 문화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다른 인종의 피가 섞여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한국 사람들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지금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이지만 그래도 이곳이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문화의 다양성이 인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이문화가 함께할 때 문화가 찬란했었고 융성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함께했던 통일신라가 그랬었고, 말갈을 끌어안았던 고려시대가 또 그랬었다. 암묵적인 차별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가장 큰 힘도 바로 이문화의 수용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너무 가난해서 별볼일 없는 나라로 분류되는 에티오피아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측면에서 보면 멜팅 폿, 에티오피아는 지금의 한국보다는 분명 선진국이다.       <윤오순>
  • 세종로 중앙에 ‘광화문 광장’

    세종로 중앙에 ‘광화문 광장’

    세종로 한가운데에 길이 500m, 폭 27m의 ‘광화문 광장’이 들어선다. 서울 도심에 또 하나의 대형 휴식공간이 만들어지고, 숭례문에서 경복궁에 이르는 보행로가 조성된다. 서울시는 2008년 8월 완공을 목표로 ‘광화문광장 조성사업 계획안’을 확정,27일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개월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광화문광장 조성계획을 확정했다.”면서 “보행자 중심의 도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도시로 만드는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9월 조성안을 3개안으로 압축해 제시했다.▲세종로 양쪽에 만드는 ‘양측배치안’ ▲세종로 중앙에 꾸미는 ‘중앙배치안’ ▲세종문화회관쪽에 배치하는 ‘편측배치안’이다. 지난 10월부터 일반 및 인터넷여론, 시민단체, 전문학회 등 1만 24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앙안이 44.4%로, 양측안(25.9%)이나 편측안(29.7%)보다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이후 시의원, 시민단체, 도시계획 전문가 등 24명으로 구성된 도심재창조시민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중앙배치안을 확정했다. 명칭에 대해서는 ‘세종광장’‘광화문마당’‘시민열린마당’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으나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담은 ‘광화문광장’으로 결정했다.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순신장군 동상부터 광화문삼거리까지 길이 500m, 폭 27m정도의 녹지대를 만든다. 기존의 중앙분리대보다 4.5배 폭이 넓어졌다. 기존의 왕복 16차선 도로는 10차로(각 5차로)로 줄어든다. ‘광화문’의 상징물인 이순신장군 동상은 존치하되 대신 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광화문광장으로 옮겨 세종문화회관과 정통부 청사 사이에 설치할 예정이다. ●교통문제는 서울시는 세종로 차로가 6개 차로 줄어들면 체감교통지체도는 현재보다 60%정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있다. 따라서 세종로로 집중되는 차량을 분산시키기 위해 세종로사거리에서 종로와 서대문사거리 방향으로 가는 좌회전 신호를 만드는 등 차량 우회 대책을 마련 중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탤런트 최성준 부친에 간이식

    간암을 앓고 있는 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키로 했던 탤런트 최성준(41)이 내년 1월3일 수술을 받는다. 3형제 중 장남인 최성준은 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하기로 하고 수술적합성 여부를 검사받아 이달초 수술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최씨의 아버지는 28일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성준은 간 이식을 위해 1년여전부터 술과 담배를 끊었고 지난해 KBS1‘불멸의 이순신’에서 출연한 이후 1년 여간 연기활동도 삼가왔다.최성준은 “당연히 장남이 이식을 해드려야하는 것 아니냐.”며 “살을 빼는 것이 좋다고 해서 그동안 헬스를 다니며 꾸준히 운동해 살을 좀 뺐다.”고 말했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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