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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마일리지 유감/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마일리지 유감/이순녀 논설위원

    한동안 TV를 켜면 줄줄이 먹방이더니 요즘은 여행 프로그램이 대세다. 지상파, OTT를 가리지 않고 방송사마다 다양한 콘셉트의 여행 예능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홈쇼핑 채널도 여행상품 판매 방송을 대폭 늘려 팬데믹 기간 한껏 눌려 있던 여행 욕구를 부추긴다. 오로라 성지인 캐나다 옐로나이프를 소개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우연히 봤다. 오로라 여행은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시청했다. 화면으로만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직접 육안으로 보면 얼마나 경이로울까. 내친김에 이럴 때를 대비한 비장의 무기,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확인했다. 십수 년간 차곡차곡 쌓은 결과물은 6만 8520마일. 밴쿠버 왕복 보너스 항공권에 필요한 7만 마일 고지가 코앞이었다. 그런데 웬걸, 4월부터 바뀌는 개편안에 따르면 8만 마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인 줄 알았더니 누구 말대로 티끌은 티끌일 뿐인가. 소비자를 우롱하는 항공사의 횡포에 입맛이 쓰다.
  • [씨줄날줄] 포드·中 CATL 배터리 동맹/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포드·中 CATL 배터리 동맹/이순녀 논설위원

    중국 네트워크 장비업체 H3C는 2003년 미국 통신회사 스리콤과 중국 화웨이의 합작법인으로 출발했다. 3년 뒤 스리콤은 화웨이 지분을 전량 인수했고, 2010년엔 미국 휴렛팩커드(HP)가 스리콤을 인수해 H3C를 자회사로 만들었다. 이후 전직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불법 사이버 감시 폭로로 중국이 사이버보안 규정을 강화하자 HP에서 분사한 HPE는 2016년 H3C 지분 51%를 중국 반도체 대기업 칭화유니그룹에 매각했다. 중국 기업과의 합작으로 엄격한 규정을 비껴가려는 의도였다. 칭화유니그룹은 지난달 초 상하이증권거래소에 H3C의 지분 49%를 HPE로부터 매입한다고 공시했다. 인수가 완료되면 H3C는 칭화유니의 100% 자회사가 된다. 미국 정부가 H3C와 제휴한 반도체 기업을 수출통제 명단에 올리자 압박을 느낀 HPE가 손을 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년간 미중 관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기업 변천사가 아닐 수 없다. 미국 2위 자동차기업 포드가 지난 13일(현지시간) 세계 1위 중국 배터리 기업 CATL과 손잡고 35억 달러(약 4조 5000억원)를 들여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미시간주 마셜에 CATL 기술 기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공장을 지어 2026년부터 가동하겠다는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합작사 설립이 아닌 기술제휴 형식이라는 점이다. 이유는 미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때문이다. IRA는 중국 등 ‘우려국가’에서 제조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기술을 들여와 미국에서 미국 기업이 생산하면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해 우회한 것이다.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국가 정책보다 저가 배터리 공급을 통한 자사 이익을 우선한 포드의 선택은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과거 중국은 미국에 자동차 기술을 알려 달라고 했는데, 이제 미국이 중국에 기술을 달라고 하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일부 정치인은 CATL을 중국 공산당의 ‘트로이 목마’에 비유하며 포드를 비판했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한 상대국 기술을 규제하려는 정부와 규제를 회피하려는 기업의 숨바꼭질도 멈추지 않을 듯싶다.
  • [씨줄날줄] 행동주의 펀드/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행동주의 펀드/이순녀 논설위원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펀드는 SK텔레콤 지분 6.66%를 취득한 뒤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을 가하며 경영진 교체와 사외이사제 도입 등을 요구했다. SK텔레콤은 배당금 확대 등 일부 요구를 수용했지만 타이거펀드는 이듬해 보유 지분 전량을 SK 계열사에 매각했다. 시세차익은 6300억원에 달했다. 국내 기업이 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당한 첫 사례였다.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 삼아 기업을 압박하다 주가가 오르면 단기 시세차익을 챙겨 떠나는 해외 투기성 자본의 ‘먹튀’ 행태는 이후 반복적으로 벌어졌다. 2003년 소버린자산운용(SK), 2004년 헤르메스인베스트먼트(삼성물산), 2006년 칼 아이칸연합(KT&G), 2015년과 2018년 엘리엇매니지먼트(삼성그룹, 현대차)의 사례가 반복되면서 ‘행동주의 펀드=기업사냥꾼’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지게 됐다. 외국계와 달리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출발은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2006년 등장한 라자드자산운용의 한국지배구조개선펀드(장하성펀드)는 주주 권익 보호와 투명한 기업문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의 신호탄으로 관심을 모았다. 2018년 한진칼 지분을 매입한 뒤 한진그룹 지배구조와 재무구조 개선을 촉구했던 KCGI, 일명 강성부펀드는 오너 일가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등에 업고 이름을 날렸다.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촉발한 케이팝 거목 SM엔터테인먼트의 지배구조 변화가 화제다. 얼라인은 지난해부터 SM이 창업주이자 최대 주주인 이수만 전 총괄이 설립한 연예기획사 ‘라이크기획’과 불공정한 계약을 맺어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면서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을 요구해 왔다. 얼라인은 7대 금융지주에도 ‘주주환원 정책이 부족하다’며 배당성향을 확대하라고 공개 요구한 상태다.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명분은 기업 가치 훼손이다. 경영진의 잘못으로 주주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논리다. 반면 단기 실적주의에 빠질 수 있고, 시설 투자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성장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본격적인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 [길섶에서] 2월 단상/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2월 단상/이순녀 논설위원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오세영 시인의 시 ‘2월’의 첫 구절이다. 어쩌면 이리도 내 마음과 똑같을까. 지인이 SNS 대화방에 올린 시를 읽으며 무릎을 쳤다. 2월은 애매한 달이다. 한 해의 시작인 1월은 새로움으로 반짝이고, 봄을 앞둔 3월은 설렘으로 싱그러운데 중간에 낀 2월은 이도 저도 아니게 어정쩡한 느낌이다. 다른 달에 비해 날수가 적어서 더 아쉽고, 애틋한 달이기도 하다. 그 2월도 벌써 삼분의 일이 지났다. 결심은 옅어지고, 조바심은 쌓이는 때. 흘러간 시간을 후회하지도 말고, 다가올 앞날을 미리 두려워하지도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시의 다음 연은 이렇다.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지나치지 말고 오늘은/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 풍경에 오래도록 눈을 맞춰야겠다.
  • [씨줄날줄] AI 규제/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AI 규제/이순녀 논설위원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 ‘챗GPT’가 선풍을 일으키면서 AI 기술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법적 규제의 시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챗GPT는 지난해 11월 30일 공개 이후 두 달 만에 월 이용자가 1억명을 넘어설 정도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논문을 쓰거나 의사시험을 통과하며 고도의 전문 지식을 뽐내고, 일상 대화도 술술 주고받는 AI의 놀라운 진화에 세계는 경탄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표절, 시험부정, 가짜뉴스 같은 부작용과 편향적인 데이터 학습으로 인한 성별·인종·소수자 차별 등 인권과 윤리를 침해할 가능성도 한층 심각해졌다.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최고기술책임자(CTO)조차 AI 기술 악용에 대한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미라 무라티 CTO는 5일(현지시간)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챗GPT는 사실을 지어낼 수 있고, 나쁜 의도를 가진 이용자들에게 악용될 수 있다”면서 “AI를 규제하는 것은 지금도 이르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제이크 오친클로스 미국 하원의원은 지난달 25일 의회 연설에서 챗GPT가 작성한 연설문을 낭독하며 “새 기술에 적대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관련 정책이나 법규가 너무 늦어져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EU) 집행위원도 “챗GPT가 보여 주듯 AI 기술은 위기도 제공하기 때문에 법으로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AI 관련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1년 4월 초안을 발표한 ‘AI법’이 올해 제정될 전망이다. 이 법은 위험도에 따라 AI를 3단계로 분류해 그에 맞는 규제를 부과한다. 가령 안면인식 기술처럼 인권 침해 소지가 있으면 전면 금지하고, 직원 채용에서는 AI의 적합성과 편향성을 엄격하게 평가하는 방식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 유럽 국가들은 물론 전 세계 국가의 AI 윤리 기준 및 관련법 제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0년 마련한 ‘인공지능 윤리기준’이 고작이다. 이듬해 ‘인공지능기본법’을 국회에 발의했으나 아직 진척이 없다.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 SF영화 같은 암울한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AI 규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서둘러야 할 때다.
  • [길섶에서] 경동시장/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경동시장/이순녀 논설위원

    요즘 시장이 상한가다. 주식, 부동산, 코인 다 죽었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문자 그대로 전통시장의 인기가 뜨겁다는 얘기다. 서울 광장시장과 망원시장이 외국인 필수 관광코스, MZ세대 이색 놀이터가 된 지는 오래. 최근 새롭게 떠오른 곳이 바로 경동시장이다. 경동시장 역사는 60년이 넘었다. 1960년 6월 농산물 도소매업을 시작으로 국내 최대 인삼 시장,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명성을 넓혀 왔다. 지난달부터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확 늘었다고 한다. 시장 안 폐관 극장인 경동극장을 개조한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의 유인 효과다. 호기심에 지난 금요일 오후 시장 나들이에 나섰다. 일부러 주말을 피했는데도 200석 자리가 이미 꽉 차 앉을 데가 없었다. 극장 객석을 활용한 계단식 테이블 등 독특한 인테리어가 한약재와 커피향의 묘한 조화만큼이나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전통과 현대가 단절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 우리가 꿈꿔 온 시장의 오래된 미래가 아닐는지.
  • [서울광장] ‘어른 김장하’와 기부 후진국/이순녀 논설위원

    [서울광장] ‘어른 김장하’와 기부 후진국/이순녀 논설위원

    국제구호단체와 지역아동센터 두 곳에 후원금을 내온 지 10년쯤 됐다.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소액인 데다 매월 은행 계좌에서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다 보니 평소엔 기부라는 인식이 거의 없다. 1월 연말정산 시기에 기부금 영수증 발급 안내 문자가 오면 그제야 ‘아, 나도 기부에 동참하고 있구나’ 슬며시 위안 삼는 정도다. 얼마 전 문자를 받고 내친김에 국세청 홈택스에서 확인하니 작년에 이사하면서 헌책과 중고물품 등을 정리해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한 내역도 기부금 공제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적지 않은 금액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놓는 게 기부의 참뜻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세금 혜택을 주는 현실적인 보상책이 나 같은 평범한 시민의 기부를 촉진하는 구실을 하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쓴 채 사소하고 사적인 기부 경험을 늘어놓은 건 설 연휴 앞뒤로 연달아 접한 기부 관련 다큐멘터리와 보고서 때문이다. MBC가 지난 23~24일 방영한 2부작 다큐 ‘어른 김장하’와 대한상공회의소가 19일 발표한 보고서 ‘공익활동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이 그것. 둘 다 내용이 강렬하다. ‘어른 김장하’는 나눔을 실천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지를 각성시킨다는 점에서, 대한상의 보고서는 세계 기부 순위 88위인 한국의 후진적 민낯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만큼 여운이 길게 남고, 고민이 깊어진다. 올해 79세의 김장하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며 벌어들인 재산을 평생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했다. 1983년 설립한 명신고교를 1991년 국가에 헌납했고, 2021년 공익법인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면서 남은 재산을 국립경상대에 기탁했다. 각각 100억, 35억원에 이르는 거액이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외부에 공개된 빙산의 일각일 뿐 선생이 반세기 넘게 수면 아래서 남몰래 행한 나눔의 폭과 깊이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본인 미담에 관해선 한사코 입을 열지 않는 탓에 주변 사람들의 증언 위주로 다큐가 구성된 점은 선생의 남다른 성품을 엿보게 한다. 수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사회 각계 그늘진 곳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두루 살피면서도 자신을 내세우는 자리나 말은 극구 멀리했다. 이 다큐도 지역방송인 경남MBC에서 연말에 먼저 소개된 뒤 ‘이 시대 참 어른’이란 입소문에 힘입어 설 명절 전국에 재방송된 것이다. 반면 한국이 ‘기부 후진국’이라는 통계는 믿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현실이다. 대한상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자선지원재단(CAF)이 2010년부터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 119개국 중 88위였다. 매년 200만명을 대상으로 모르는 사람 돕기, 기부 경험, 자원봉사 항목 등을 설문조사해 순위를 매기는데 한국은 2014년 45위가 최고 기록이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3세 이하 국민의 기부 참여율은 2011년 36.4%에서 2021년 21.6%로, 기부 의향은 같은 기간 45.8%에서 37.2%로 감소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기부 비중도 같은 기간 0.79%에서 0.75%로 줄었다. 민간 기부가 활성화되기는커녕 후퇴하는 이유를 면밀히 살펴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보고서는 2014년부터 세액공제로 바뀐 지원 방식을 소득공제로 재전환하거나 세액공제율을 15%에서 30% 이상으로 높이는 등 과감한 세제 지원을 제안했다. 아울러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완화와 일상에서의 기부문화 프로그램 확산 등도 고려해 볼 만하다.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 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김장하 선생의 말이다. 꼭 부자가 아니어도 가슴에 새겨둘 통찰이 아닐까 싶다.
  • [씨줄날줄] 흑해의 진주/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흑해의 진주/이순녀 논설위원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의 기점은 제정 러시아 시기인 17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년 넘게 이 지역을 통치해 온 오스만제국을 몰아낸 러시아제국의 예카테리나 2세가 유럽으로의 영토 확장을 위한 거점이자 상공업의 중심으로 삼고자 지중해 연안 이곳에 도시를 세웠다. 군사적 요충지이면서 농산물 수송의 길목인 오데사는 이후 전쟁 때마다 적의 최우선 공격 목표가 됐다. 천혜의 기후와 자연을 지닌 오데사는 ‘흑해의 진주’로 불린다. 휴양지로서뿐 아니라 아름다운 문화예술의 도시로 손꼽힌다.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한 항구도시답게 오랜 세월에 걸쳐 다민족 문화가 폭넓게 뿌리내린 결과다. 고대 그리스 유적, 이탈리아 건축,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등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다국적 풍경이 자랑이다. 문학, 미술, 오페라 등 예술 분야에서도 활기가 넘친다. 영화 애호가에겐 러시아혁명을 다룬 무성영화 ‘전함 포템킨’의 배경 도시로도 기억된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차례 기습 공격에 노출됐던 오데사가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5일(현지시간) 오데사 역사지구를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리면서 동시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도 등재했다. 전쟁이나 테러, 자연재해 등으로 파괴되거나 훼손될 위험이 있는 유산이란 의미다. 등재 절차도 긴급하게 진행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유네스코 화상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문화유산이 파괴되는 것을 국제사회가 외면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며 “흑해의 중요 항구이고, 수백만 다국적 국민의 문화적 본향인 오데사 역사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세계유산협약 운영 지침에 규정된 긴급 절차를 밟아 석 달 만에 결정이 내려졌다.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전쟁 중에 이뤄진 등재는 이 도시가 더는 파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우리 공동의 의지를 보여 준다”고 했다. 전쟁은 인명, 재산뿐 아니라 공동체가 축적해 온 문화유산에도 참혹한 상흔을 남긴다. 이를 잊지 않는 게 다음 세대에 대한 지금 세대의 책무다.
  • [씨줄날줄] 한우값의 비밀/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한우값의 비밀/이순녀 논설위원

    한국 사회의 계급 의식을 다룬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는 빈부격차를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가 등장한다. ‘한우 채끝 짜파구리’도 그중 하나다. 인스턴트 면요리에 비싼 한우 채끝살을 고명으로 얹어서 먹는 박 사장 가족의 음식 취향은 단순한 식성이 아닌 부의 과시로 다가온다. 예나 지금이나 한우는 고급 음식의 대명사다. 가격이 비싸다 보니 아무 때나 한우를 즐기긴 쉽지 않다. 생일 등 각종 기념일이나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가욋돈이 들어왔을 때처럼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한우를 사 먹을 엄두를 내는 서민들이 대다수다. 2020년 5월 코로나19 1차 재난지원금으로 4인 가족당 100만원이 지급된 이후 한우 매출이 늘었던 경우가 단적인 사례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한우와 삼겹살 매출이 급증해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지만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요즘 한우값이 묘하다. 도매가격은 폭락했다는데 정작 소비자들은 체감이 안 된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한우 1+등급 도매가격은 1㎏당 1만 6685원으로 전년 같은 달 평균 2만 1071원보다 26.3% 하락했다. 반면 소비자가격은 소폭 하락하거나 오히려 올랐다. 도매가격이 폭락한 원인은 공급 과잉이다. 전국 한우 사육 두수는 355만 마리에 이른다. 2018년부터 공급 과잉 우려가 제기됐지만 코로나 시기 재난지원금 지원 등으로 한우 가격이 급등하면서 자율 감축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소값 하락폭이 커지면서 한우 농가마다 비상이 걸렸다. 지난 13일엔 농민 2명이 목숨을 끊었다. 한우협회는 “한우 두당 생산비는 1100만원인데 도매가격은 700만원에 불과하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정부는 부랴부랴 한우 수출길을 찾아나섰다. 산지는 한우값 폭락에 아우성인데 시장 한우값은 왜 여전히 비쌀까. 답은 유통 구조에 있다. 물류·인건비·운영비 등 유통비 비중이 48.1%를 차지하는 탓에 소값이 내린들 물가 상승으로 물류비 등이 올랐으니 소비자가격이 꿈쩍할 리 없다. 축산농가는 피눈물을 흘리고, 소비자도 겨자마냥 울며 먹어야 하는 한우값의 왜곡을 풀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유통 구조를 단순화하고 중간 마진을 확 낮추는 길뿐이다.
  • [길섶에서] 겨울 과메기/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겨울 과메기/이순녀 논설위원

    예전엔 못 먹었거나 싫어했지만 나이 들어서 즐겨 찾게 된 음식들이 있다. 입맛이 변해서인지, 음식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져서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둘 다 맞을 게다. 겨울철 별미로 꼽히는 과메기도 그런 음식 중 하나다. 청어나 꽁치를 얼렸다 녹였다 반복해 가며 바닷바람에 말린 과메기를 직장 초년생 시절 처음 접했을 땐 비릿한 맛에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러다 마흔 넘어 참맛을 알게 됐다. 포항에서 나고 자란 후배가 송년 모임에 현지에서 직송한 과메기를 가져온 게 계기가 됐다. 과메기에 미역, 쪽파, 마늘, 쌈장 등을 올린 배추쌈을 입에 넣는 순간 맛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그 뒤로 연말 모임에선 과메기 파티가 연례 행사가 됐다. 포항 구룡포 과메기를 먹어야 겨울을 만끽한 느낌이랄까. 어쩌다 보니 이번 겨울엔 아직 과메기를 맛보지 못했다. 이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후배가 집으로 택배를 보내왔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더해진 까닭일까. 어느 겨울 과메기보다 고소하고 쫄깃하다.
  • [씨줄날줄] 문화재관람료 향배/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문화재관람료 향배/이순녀 논설위원

    불국사 6000원, 해인사 3000원, 부석사 2000원, 보리암 1000원….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를 소유한 전국 유명 사찰들의 문화재관람료(문화재 구역 입장료)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 소유자는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 하지만 금액 책정에 대한 규정이 없다 보니 사찰마다 이처럼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여섯 배씩 차이가 난다. 문화재관람료가 왜 이렇게 들쭉날쭉한지, 이 돈이 문화재 보수와 관리에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래도 문화재를 향유하는 대가라면 어찌 됐든 수긍할 여지가 있다. 문제는 문화재 관람과 전혀 상관없는데도 통행료처럼 걷는 사찰의 일방적인 징수 행태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오랫동안 논란을 빚어 온 문화재관람료의 전면적인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그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의 불편을 없애고 문화재 관리에 소홀함이 없도록 사찰 문화재 구역 입장료 징수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재 관리 비용을 사찰이 관람료 징수로 충당해 온 잘못된 관행이 바로잡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7월 조사한 결과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전국 사찰은 57곳이었다. 조계종이 문화재관람료 폐지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오는 5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문화재보호법이 있다. 문화재 소유자가 문화재관람료를 감면하거나 없앨 경우 줄어든 비용만큼 국가가 지원해 준다. 사찰이 관람료를 두고 방문객과 실랑이를 벌일 필요 없이 나랏돈으로 수입을 보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이 올해 확보한 예산은 421억원이다. 문화재청은 “구체적인 집행 절차와 집행 규모 등에 대해선 연구 용역을 맡겼고, 앞으로 지방자치단체 및 관련 기관 등과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불교계가 문화재 보존과 계승에 기여하는 공로는 보상받는 게 맞다. 다만 관람료 징수를 국고 지원으로 대체하려면 그에 걸맞은 투명한 회계가 전제돼야 한다. 조계종 차원에서 관람료 감면 현황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사후 지원금 정산 내역도 철저하게 공개해야 문화재관람료 폐지의 진정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 [길섶에서] 과일 서열/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과일 서열/이순녀 논설위원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이라고 했다. 건강에 그만큼 좋다는 얘기. 그런데 챙겨 먹으려면 은근히 번거롭다. 씻는 건 기본이고, 껍질을 깎아서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야 한다. 예전엔 세척만 잘한 뒤 껍질째 한 알을 손에 들고 먹기도 했지만 잔류 농약 걱정에 치아 건강도 염려해야 하는 나이가 된 탓에 가급적 삼간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사과에는 손이 덜 가고, 방울토마토나 딸기처럼 간편한 과일을 선호하게 됐다. ‘귀차니즘’ 때문에 즐겨 먹는 과일의 종류를 바꾼 건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이마트에서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과일이 딸기라고 한다. 전통적인 1위였던 사과는 포도에까지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업체 측은 사과처럼 연중 내내 즐길 수 있는 과일 대신 겨울과 봄철 계절 과일인 딸기가 1위를 기록한 이유로 1~2인 가구 증가와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를 꼽았다. 같은 포도라도 껍질째 먹는 샤인머스캣 품종의 매출이 월등히 높다. 세태에 따른 과일의 운명이 새삼스럽다.
  • [씨줄날줄] 파르테논 마블스의 귀환/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파르테논 마블스의 귀환/이순녀 논설위원

    그리스가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1799년 영국 외교관 토머스 엘긴 경은 대사로 발령받아 아테네로 향한다. 고대 유물 애호가였던 그는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파르테논신전에 매혹돼 1802년부터 10년간 대리석 벽면과 기둥, 조각품 253점을 떼어내 영국으로 실어 날랐다. 자신의 저택을 꾸밀 목적이었지만 막대한 비용 소요로 파산하게 되자 엘긴 경은 영국 정부에 유물 매입을 제안한다. 당시에도 남의 나라 유물을 제멋대로 약탈한 엘긴 경의 행위에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1816년 영국 의회는 유물을 구입해 ‘엘긴 마블스’라는 명칭으로 대영박물관에 이전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200년 넘게 대영박물관의 대표 소장 유물로 자리잡은 ‘파르테논 마블스’가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세계 각국이 진행 중인 약탈 문화재 반환 협상 가운데 가장 상징적이고 유명한 파르테논 마블스의 귀환과 관련해 대영박물관이 4일(현지시간) “건설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귀추가 주목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완전 반환이 아닌 장기 대여 형식이며, 다른 고대 그리스 보물들을 빌려오는 방안이 협의되고 있다고 한다. 유물을 돌려받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온 그리스로서는 어느 때보다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영국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는 최근 여러 국가가 약탈 문화재를 자발적으로 원 소속 국가에 반환하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 중인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 3점을 그리스에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아프리카의 옛 베닌 왕국 유물 20점을 나이지리아 정부에 반환했고, 미국은 2300년 전 사제의 관인 ‘황금관’과 ‘녹색관’을 이집트에 돌려줬다. 약탈, 기증 등 여러 이유로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약 21만여 점이다. 병인양요 때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의궤는 프랑스 정부와의 20년 협상 끝에 2011년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았다. 반면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 중인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의 경우 약탈이 아닌 거래여서 반환 협상이 불가능하다. 재작년 11월 우리 정부가 프랑스에 한국 전시를 요청했으나 진전이 없다. 그리스가 새삼 부럽다.
  • “자립준비청년 ‘의무고용’ 도입하고 마음 상처 보듬어줄 사회적 가족 연결을” [이순녀의 이사람]

    “자립준비청년 ‘의무고용’ 도입하고 마음 상처 보듬어줄 사회적 가족 연결을” [이순녀의 이사람]

    고교 졸업 뒤 보육원 퇴소 서울로도움 청할 곳 없어 6개월간 노숙정착금·수당 등 실질 도움엔 부족 벽면녹화 기술 전수해 후배와 창업보육원 경력 인정·1년간 품어주기편견 없이 성원해주는 분위기 절실자립준비청년. 만 18세에 보육원 등 아동양육시설이나 가정위탁보호가 종료돼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이들을 부르는 명칭이다. 해마다 전국적으로 2500여명의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에 나온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 등을 지원하지만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의지할 곳 없이 혈혈단신으로 새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인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좌절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8월 광주 지역에서 자립준비청년 두 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우리 사회는 잠시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정부는 11월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고작해야 자립정착금은 800만원에서 올해부터 1000만원으로 늘리고, 자립수당을 월 35만원에서 40만원으로 5만원 더 주기로 한 게 전부다. 공공임대주택 공급 및 각 시도 기관의 자립지원전담 인력도 늘리겠다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장담 못 한다. 갈 길이 멀다. 부모를 잃었거나 이들에게 버림받은 이 아이들을 우리는 품어 안을 준비가 돼 있는가. 편견 없이 지지해 줄 자세가 돼 있는가. 자립준비청년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정서적인 자립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브라더스키퍼(brother’s keeper)의 김성민(38) 대표는 이런 ‘사회적 가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 자신이 보육원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으로서 가족의 부재가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실내 벽면녹화, 식물인테리어, 조경 서비스 사업을 하는 브라더스키퍼를 2018년 창립하면서 후배들에게 직장 상사가 아닌 가족이 되겠다고 다짐한 이유다. 현재 근무하는 직원 10명 중 8명이 자립준비청년이다. 지난달 말 경기 안양에 있는 사무실에서 김 대표와 마주 앉았다. “경북 안동에 있는 보육원에서 세 살 무렵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살았습니다. 이름도, 생일도 보육원에서 만들어 줬어요. 보육원에선 폭력이 일상이었고, 학교에선 차별과 놀림에 시달리는 지옥 같은 시절이었습니다.” 하루빨리 보육원을 탈출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퇴소를 코앞에 둔 고3이 되니 또 다른 절망이 찾아왔다. “누구는 감옥에 갔고, 누구는 성매매한다더라.” 보육원을 먼저 떠난 형, 누나들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두려움이 몰려왔다.“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니 일주일 안에 나가라고 하더군요. 옷가지가 든 가방 하나 메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때는 정착금 지원 제도 자체가 없었다. 보육원 선배가 보내 준 5만원, 손에 쥔 그 돈이 재산의 전부였다.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강변터미널에서 6개월 노숙 생활을 했다. “당시의 막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후배들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처음엔 막연한 꿈이었는데 어느 순간 제 삶의 목적이자 사명이 됐습니다.” 막 개업한 식당에 무작정 찾아가 일을 달라고 했다. 절실함이 통했는지 식당 주인은 그를 받아 줬다. 첫 직장이었다.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 “고생한 만큼 보상받고 노력한 만큼 칭찬받는 경험이 처음이었어요.” 안정적으로 돈을 모으면서 대학에 진학하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혼자만 잘사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보육원 아동들을 후원하고 교육하는 비영리기관에 들어갔다. “7년 동안 전국 200여개 보육원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 후원은 일시적인 도움일 뿐 자립 기반을 제공하는 게 중요했다. 일자리를 찾아서 연결해 주는 작업에 매달렸다. 6개월 만에 100명을 취업시켰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길어야 3개월, 평균 1~2주 안에 일을 그만뒀다. “회사 사람들이 잘해 주면 불쌍해서 그런가 넘겨짚고, 혼을 내면 보육원 출신이라서 막 대하나 생각해 적응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아이들이 느끼는 자격지심과 피해 의식이 생각보다 컸는데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에요. 초중고 시기에 보육원에 산다는 이유로 차별당한 경험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고 회복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그때 얻었다. 일자리를 연결해 준 회사에서 6개월이 넘도록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후배를 찾아가서 비결을 물었다. “그 친구가 일하는 회사가 조경회사였는데 식물에 사랑과 관심을 쏟으면서 마음이 안정됐다고 하더군요. 이거다 싶었어요.” 식물 전공자도 아닌 그가 식물 관련 사업을 하게 된 계기다. 그 후배와 둘이서 브라더스키퍼를 창립했다. 후배가 다니던 조경회사에서 벽면녹화 기술을 전수받았다. 보육원 아동 70~80%는 공업고나 농업고를 졸업하기 때문에 식물이 낯설지 않고, 조경업도 고령화로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인 데다 미세먼지와 환경오염 등으로 식물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사업성도 높다고 판단했다. 공공기관, 대기업, 공익재단 등과 협업하면서 매출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2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40억~5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성서에 나오는 ‘형제를 지키는 자’에서 이름을 딴 브라더스키퍼에는 남다른 규칙이 있다. 우선 자립준비청년을 우대한다. 보육원에서 지낸 시간들을 감추고픈 부끄러운 기억이 아닌 특별한 경력으로 인정해 준다. 입사하면 1년은 욕설을 하든 폭력을 쓰든 내치지 않고 기다려 준다. 부모로부터 온전히 사랑받고, 용서받는 경험을 하지 못한 아이들을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직원 모두가 식물 이름을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점도 독특하다. 김 대표의 별명은 아프리카 꽃인 ‘바비아나’다. “꽃말이 ‘단란한 가정’이에요. 직원들이 나를 직장 상사로 대하지 않고 가족으로 여기길 바라는 의미입니다.” 브라더스키퍼는 다양한 자립지원 프로그램과 교육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보육원 퇴소 후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을 감안해 자립준비청년들이 알아야 할 법률과 금융 지식 등을 가르친다. 주거지원 연계 서비스, 진로 상담은 물론 자존감 회복 및 자기표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일자리와 정서적인 안정 등 자립준비청년들의 자립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 대표는 지난해 1월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김 대표는 정부가 자립준비청년의 일자리와 사회적 가족을 만들어 주는 일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희망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처럼 기업이 자립준비청년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에 나와서 고민이 있을 때 이를 함께 나눌 사회적 가족을 정부가 발굴해서 연결해 주는 방안도 제안했다. 지자체의 자립지원인력 1명이 150명을 전담해야 하는 현실에선 실질적인 지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으로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이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더 필요한 실정이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사회의 따뜻한 시선과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은 누구나 고아가 됩니다. 시기가 언제인지가 다를 뿐이죠. 자립준비청년들은 그 경험을 먼저 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편견과 차별의 눈으로 대하는 행태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도 한때는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보육원에서 자란 과거를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돌아보니 주변에 고마운 부모님들이 많았음을 알게 됐고, 이제는 보육원 출신임을 오히려 감사히 여기게 됐다고 했다. 브라더스키퍼의 미래가 궁금했다. “다양한 사업 영역을 구축해서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자립준비청년을 고용하는 게 목표입니다. 우선은 전국 10곳에 식물 가전 대리점, 식물카페를 만들어서 지역에서 퇴소하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에요.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법안이나 지원책을 모색하는 일에도 힘쓸 생각입니다.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매달 공청회도 개최할 겁니다.”
  • [씨줄날줄] 이제는 소비기한/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제는 소비기한/이순녀 논설위원

    유통기한이 지난 빵이나 과자, 주스를 앞에 두고 먹을까 말까 망설이던 고민을 이제 좀 덜 수 있을까. 식품에 표기되는 유통기한이 지난 1일부터 먹어도 건강이나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인 소비기한으로 바뀌었다. 1985년부터 사용된 유통기한은 말 그대로 식품의 유통과 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을 뜻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위생안전 기한으로 오해했고, 이로 인해 버리지 않아도 될 식품들을 너무도 많이 내다버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식품 폐기량은 연간 548만t, 처리 비용은 매년 1조 960억원에 이른다.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명확히 제시해 식량 낭비와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취지의 소비기한 표시제가 시행된 것은 2021년 7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미국, 일본, 호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다수 국가도 같은 이유로 소비기한 표시제를 운영 중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2018년 식품 표시 규정에서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표시를 권고했다. 소비기한과 유통기한 외에 보관기준을 지키면 식품의 품질이 전혀 바뀌지 않는 기한을 뜻하는 품질유지기한도 있다. 레토르트식품, 통조림식품, 벌꿀 등이 품질유지기한 표기 대상이다.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평균적으로 얼마나 길까. 지난달 식약처가 23개 식품유형, 80개 품목을 조사해 발표한 ‘식품유형별 소비기한 설정 보고서’를 보면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즉석조리식품은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이 5일로 똑같다. 반면 과자의 경우 유통기한은 45일이지만 소비기한은 81일로 무려 80%나 늘어난다. 두부는 유통기한 17일, 소비기한 23일이며 빵류는 유통기한 20일, 소비기한 31일이다. 다만 올해까지는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둘 다 혼용된다. 업계와 소비자 혼란을 감안해 1년의 계도 기간을 뒀다. 아울러 냉장보관 기준 등 품질관리가 중요한 우유는 예외적으로 2031년 1월 1일부터 소비기한 표시제를 도입한다. 당분간은 소비자가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구별해 인식하고 그에 맞게 식품을 안전하게 섭취하는 수고를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소비기한이 표시된 경우 날짜를 초과한 식품을 먹으면 위험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 [인사]

    ■서울신문 ◇국장급 승진△논설위원 이순녀△편집제작부장 정영애 ◇부장급 승진△전국부 차장 이두걸△편집1부 차장 박지연△플랫폼전략부 차장 정영진△멀티미디어부 차장 손진호△IT개발팀 차장 김준수△광고2팀 차장 양진호△윤전2팀장 신양섭△기술지원팀 차장 이구화 ■디지틀조선일보 ◇승진△경영전략본부 재경부장 국장 박현일△콘텐츠사업본부장 국장대우 김미선 ■세계일보 △편집국장 조남규△광고국장 박찬준△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상무이사 겸 편집인 문준식 ■이데일리 ◇부국장대우△마켓IN센터장 권소현 ◇부장△광고국 광고마케팅팀 최광호 ◇부장대우△건설부동산부장 문승관△경제정책부장 윤종성△소비자생활부장 박철근 ■이데일리씨앤비 ◇부국장△보도국장 김정민△편성제작국장 원경호 ◇부장△편성제작국 기술팀 김형만 ◇부장대우△콘텐츠사업국장 직무대행 구창현 ■한국문화재재단 ◇전보△감사실장 신진라△한국무형문화재진흥센터장 이치헌△한류문화복합센터장 박성호△문화재조사연구단 조사연구실장 박강민△청와대 문화사업단장 직무대리 김순호 ■DB INC ◇부사장 승진 △경영지원실장 백민호 ◇상무 신규 선임 △전략서비스사업부 강승식 ■DB하이텍 ◇상무 신규 선임 △파운드리사업부 김호윤△파운드리사업부 김근호△브랜드사업부 고재홍△브랜드사업부 신창희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상무 승진 △미래융합기술원장 김지홍 ◇상무보 신규선임 △고정익사업·수출그룹장 최종원△수출사업실장 김재홍△수출사업관리1실장 박종인△KFX체계·성능실장 강민성△회전익개발그룹장 태진수△미래비행체연구실장 신상준 ■KG그룹 ◇대표이사 선임 △쌍용오토캐피탈(SYAC) 전승재 ◇이사대우 신규선임 △KG ICT 김하영
  • [길섶에서] 사자성어의 진화/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사자성어의 진화/이순녀 논설위원

    인터넷에 떠도는 MZ세대 버전의 사자성어를 접하고 한참을 웃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뜻의 고진감래(苦盡甘來)는 ‘고용해 주셔서 진짜 감사한데 집에 갈래’다. ‘나날이 자라거나 발전한다’는 의미의 일취월장(日就月將)은 ‘일요일에 취하면 월요일에 장난 아님’으로 풀이했다. 어이없다고 해야 하나, 재치 넘친다고 해야 하나. 연말이면 사자성어가 쏟아진다. 한자 네 글자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 각오를 다질 수 있으니 가성비로 따지면 갑이다. 얼마 전 교수들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각계 신년 사자성어도 눈에 띈다. 세종시는 ‘같은 마음과 덕으로 함께 노력한다’는 동심동덕(同心同德)을, 중소기업계는 ‘정성을 다하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금석위개(金石爲開)를 선정했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나만의 사자성어를 고민해 봐야겠다.
  • [서울광장] 성탄 전야 명동 골목은 달랐다/이순녀 논설위원

    [서울광장] 성탄 전야 명동 골목은 달랐다/이순녀 논설위원

    추위가 매서웠던 지난 24일 저녁 패딩 점퍼와 장갑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서울 지하철 을지로입구역에서 명동으로 가는 길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맞은 성탄절 전야를 즐기려는 인파 행렬은 끝이 없었다. 그 모습에 모처럼 들뜬 기분을 느낀 것도 잠시, 이내 긴장감이 밀려왔다. 주위 사람들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함박웃음이 마스크를 비집고 나올 정도로 즐거워하면서도 앞뒤 좌우를 계속 살폈다. 기우였다. 명동 중심 거리부터 평소와 달랐다. 명동의 명물인 길거리음식 노점상 362곳이 전부 사라져 한결 넓어진 보도를 행인들이 천천히 지나다녔다. 골목마다 사람들로 붐볐지만 좁은 장소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거나 뒤엉키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 유명 칼국수 가게 앞은 대기 인원이 수십 명에 달해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으나 손님들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양쪽으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거리 곳곳에서 경광봉을 들고 인파를 통제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성탄절 인파가 몰릴 것에 대비해 자발적으로 휴업을 결정하고 정비단을 꾸려 순찰과 통행 관리에 나선 노점상 상인들이었다. 경찰, 지방자치단체, 서울교통공사 등 유관 기관의 안전 대비도 강화된 모습이었다. 한 시간 남짓 명동 일대를 돌아다니는 동안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두 달 전 이태원 핼러윈 축제 때도 이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날도 대규모 인파가 예상됐었는데 왜 적절한 대비를 하지 않았을까. 참혹한 재난의 단 한 가지 쓸모가 있다면 잘못을 성찰하고,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는 방책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경찰은 지난 주말 명동, 강남역, 홍대, 부산, 대구, 울산 등 전국 37곳에 50여만명이 몰릴 것으로 추산해 경찰관 650여명, 8개 기동대(480명)를 배치했다. 앞서 지난 17일 부산 불꽃축제 때는 공무원, 소방, 자원봉사자 등 안전 인력 4000여명과 경찰 병력 1200여명이 현장 배치된 덕에 인파 70만명이 몰렸지만 무사히 행사를 마쳤다. 서울시는 오는 31일 보신각 제야의종 타종 행사 참가 인원을 10만명 이상으로 예상하고, 안전 요원을 예년보다 60% 많은 10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행사 전후 지하철 종각역은 무정차 통과한다. 이태원 참사 이후 안전 대비에 대한 인식이 향상된 것은 다행이다. 내년 행정안전부 예산에는 인파 관리, 안전 교육 관련 예산이 증액됐다. 다중 밀집 정도를 분석해 예·경보하는 현장인파 관리 시스템 구축에 14억원, 재난현장에서 신속한 상황 전파를 위한 재난안전통신망 숙달 훈련에 4억원이 배정됐다. 안전 체험교육 확대 예산 11억원도 새로 반영됐다. 이 정도로 어림없지만 우리 사회의 안전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디딤돌로 삼아 차차 확대해 나가길 기대한다. 이제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남았다.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여야 간 이견으로 시작조차 못 하다 예정된 기한(45일)을 절반이나 흘려보내고서야 지난 21일 늑장 가동했다. 하지만 청문회 증인 채택과 조사 기간 연장 여부 등을 놓고 갈등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집중 공격하고, 국민의힘은 ‘닥터카’ 동승 논란을 빚은 신현영 민주당 의원을 겨냥하면서 정쟁이 가열될 조짐이다. 이래선 진상 규명에 다가가기 어렵다. 답답한 유가족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정략을 접고, 국정조사의 본질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로 이태원 참사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 등이 구속됐다. 현장 책임자의 법적 처벌과 별개로 정부 핵심 인사의 정치적ㆍ도의적 책임도 물어야 할 것이다.
  • [씨줄날줄] 닥터카와 골든타임/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닥터카와 골든타임/이순녀 논설위원

    생사기로에 선 응급환자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적정 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재난ㆍ교통사고 등의 중증외상 환자는 1시간, 심혈관질환 환자는 2시간이다. 안타깝게도 골든타임 안에 의료기관에 도착하는 중증응급환자의 비율은 절반이 안 된다.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9월 공개한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올 6월까지 중증응급환자 이송 80만 7131건 가운데 42만 410건, 52.1%가 골든타임을 넘겼다. 1분 1초가 중요한 만큼 신속한 이송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도입된 제도가 닥터헬기와 닥터카다. 전문 의료진이 인공호흡기, 심장충격기 등 장비와 의약품을 갖춘 헬기나 차를 타고 사고 현장으로 출동해 직접 환자를 이송하면서 처치를 할 수 있는 ‘움직이는 응급실’이다. 닥터헬기는 2011년 인천과 전라남도를 시작으로 이달 초 제주 지역까지 총 8대가 거점 응급의료센터에 배치돼 운영되고 있다. 닥터카는 2016년 울산대병원이 처음 도입했다. 이어 2019년 인천 가천대 길병원이 운영을 시작했고, 현재 서울과 세종까지 확대됐다. 닥터헬기는 소음 때문에 야간 비행이 쉽지 않고, 기상의 영향을 받는 데다 이착륙을 위한 헬기장 시설 등 여러 제약이 따르는 탓에 닥터카를 더 늘려 응급환자 이송의 공백을 보완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사 출신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으로 출동하던 명지병원 재난의료지원팀(DMAT) 닥터카를 집으로 불러 함께 이동하느라 재난 대응을 지연시켰다는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명지병원 닥터카는 당일 0시 51분 출발해 54분 후인 1시 45분 사고 현장에 도착했는데, 신 의원 집을 경유하면서 20~30분가량 늦어졌다고 한다. 남편까지 동승시켜 ‘현장 그림’을 찍고 15분 만에 현장을 떠나면서 보건복지부 장관 관용차에 올라탄 사실이 드러나 신 의원을 향한 비판 수위는 더 거세졌다. 신 의원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위 위원을 사임하면서 “국회의원이 아닌 의사로서 수습에 충분한 역할을 하고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이기에 더욱 해서는 안 되는 행위임을 진정 몰랐던 것일까.
  • [길섶에서] 손재주/이순녀 논설위원

    [길섶에서] 손재주/이순녀 논설위원

    손글씨를 써야 할 때 난감하다.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악필은 아니지만 결코 보기 좋다고 할 순 없는 수준이다. 글씨가 예쁘지 않으니 펜을 잘 안 잡게 되고, 자주 안 쓰니 나아질 리가 없다. 작심하고 캘리그래피를 배운 적도 있지만 좀체 실력이 늘지 않는 바람에 금방 흥미를 잃고 그만뒀다. 손으로 하는 일에 대체로 서툰 편이다. 음식 솜씨도 별로고, 그림 그리기나 악기 다루기도 젬병이다. 흔히 말하는 손재주가 없다고나 할까. 반대로 유독 손재주를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캘리그래피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구는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더니 수묵화에 어반 스케치까지 영역을 넓혔다. 사진 찍기도 수준급인데 어느새 드론 촬영도 섭렵했다. 물론 안다. 이 모든 것들이 단지 손끝에서 나온 기술이 아니라 영혼과 육신을 갈고 닦아 얻어낸 결실임을. 내게 부족한 건 손재주가 아니라 어느 한 가지든 온전히 몰입하는 열정과 멈추지 않는 노력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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