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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사 뒤에 숨은 ‘여성의 감성’

    “네. 나는 여자예요. 틀림없는 여자이지요. 그것이 내 비극입니다. 여성인 나와 결연한 혁명가인 나 사이에 깊은 심연이 가로놓여 있어서 나는 그리 행복하지 못합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아나키스트이자 페미니스트인 엠마 골드만(1869~1940). 자유연애와 언론자유를 주창하고,8시간 노동을 위해 싸우는 등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모든 체제에 맞서 싸워온 그녀의 투사적 면모 뒤에는 이처럼 한 여성으로서 연약하고 감성적인 모습이 감춰져 있었다. ‘엠마 골드만’(캔데이스 포크 지음, 이혜선 옮김, 한얼미디어 펴냄)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그녀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평전이다. 저자는 엠마 골드만이 오랜 연인이었던 시카고의 사회운동가 벤 리트먼과 주고 받은 미공개 연애편지를 통해 그녀가 자서전에서도 공개하길 꺼렸던 사생활과 내면의 갈등을 역동적으로 조명한다. 캘리포니아대에서 문학을 공부하던 저자가 우연히 발견한 엠마 골드만의 편지에는 결혼제도에 반대하고 자유연애를 신봉했던 그녀가 ‘바람둥이’ 벤 리트먼과 연애하면서 그와 안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해 괴로워하고, 집착하는 모습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모순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엠마는 사랑에 대한 열망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냄으로써 자신의 정치활동에 감정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대부분 지니고 있으면서도 표출하지 못하고 있던 열망을 분명히 표명했다. 성적인 억압이 가해지던 시기에 엠마는 용감히도 남녀관계를 정치적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황홀한 연애경험을 일상생활의 극치라고 이야기했다.” 러시아의 작은 도시 코브노의 유대인 지구에서 가난한 상인의 딸로 태어난 엠마는 8살 때 가족을 떠나 할머니와 고모 손에서 자라며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여섯살에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했고,1887년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일어난 시카고의 헤이마켓 폭탄테러사건에 자극받아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구속과 수감 생활을 반복하다 미국에서 강제 추방되고, 러시아와 스웨덴,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를 떠돌다 캐나다에서 뇌졸중으로 숨졌다. 저서에 ‘저주받은 아나키즘‘‘러시아에 대한 나의 환멸‘, 자서전 ‘나의 생애‘ 등이 있다.2만 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조선 선비는 비판적 지식인의 전형”

    “조선 선비는 비판적 지식인의 전형”

    조선시대 선비와 선비정신의 현대적 의미와 계승 방안을 모색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남명학연구원(원장 이성우)과 한국선비문화연구원설립 추진위원회(위원장 이현재)는 24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선비와 선비정신‘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마련한다. 이장희 전 성균관대 교수가 ‘선비의 본의와 선비정신´이라는 주제로 기조발표하고, 최봉영 항공대교수, 최석기 경상대교수, 조영달 서울대교수 등이 논문을 발표한다. 중국 인민대 갈영진 교수는 ‘한중 선비정신 비교연구´를, 일본 고베대 다카하시 마사아키 교수는 ‘선비와 무사도´에 대해 발표한다. 조영달 서울대교수는 발표문 ‘현대사회의 지식인과 선비정신의 사회적 재해석´에서 “서구의 신사도나 일본의 무사정신, 그리고 한국의 선비정신은 그 시대 지성을 대표하는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명 조식(1501~1572)으로 대표되는, 높은 식견과 덕을 갖추고 산림에 의거한 유학자들을 흔히 처사라 하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조선시대 선비상의 한 전형이기도 하다. 남명은 현실에 대한 급격한 변혁보다 안정을 추구한 퇴계의 현실관과 달리, 선비는 현실정치의 모순에 맞서 이를 과단한 언어로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둔하는 처사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닌 비판자였던 셈이다. 조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과거의 선비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는 지식인”이라면서 “선비와 지식인의 공통적인 사회적 기능은 문명사적 개척자와 사회적 균형추로서의 지성”이라고 지적했다. 설석규 경북대교수는 ‘남명학파의 선비정신´에서 “조식은 세상의 모순에 초연한 탈속형 선비나 분수를 지키며 자처하는 자수형 선비,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조차 거부하는 방임형 선비의 면모와는 거리가 있었다.”면서 “평생 동안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향촌에서 학문연구와 제자양성으로 일관한 처사형 선비의 범주에 포함되면서도 개혁의 방향을 모색한 개혁지향형 선비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봉영 한국항공대교수는 국어사전에 수록된 선비의 정의가 원래 의미와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표문 ‘한국사와 선비의 전통´에서 “오늘날 국어사전에는 선비를 ‘학식이 있되 벼슬하지 않은 사람´으로 풀이되고 있으나 선비가 학문을 하는 것은 관직에 나아가서 실천하기 위한 것으로 선비가 학식을 갖고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특별하거나 대단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장희 전 성균관대교수는 기조발표문에서 “조선조의 선비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선비의 긍정적인 면은 제쳐 두고 비리만을 들추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올바른 선비란 예의염치를 중시하고, 포부가 크고 강인하며, 공론을 그르칠 염려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봉창 의사 한때는 ‘모던보이’ 였다

    이봉창 의사 한때는 ‘모던보이’ 였다

    두 장의 사진이 있다.1932년1월 일본 도쿄 왕궁앞에서 히로히토 일왕 폭살을 시도하다 사형당한 이봉창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태극기 앞에서 폭탄을 양손에 들고 찍은 사진이다. 배경이나 구도는 똑같지만 한 장은 활짝 웃는 얼굴이고, 다른 한 장은 무표정한 얼굴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봉창 의사의 모습은 전자다. 하지만 후자가 진짜이고, 전자는 독립영웅의 결연한 이미지를 위해 누군가가 ‘창안´한 합성사진이라면?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너머북스)의 저자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전작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에서 새로운 백범일지 분석을 시도했던 배 연구원은 이번엔 박제된 독립투사 이봉창이 아닌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인간 이봉창의 과장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삶의 진실에 초점을 맞췄다. 기노시타 쇼조는 이봉창의 일본 이름이다. 억지로 창씨 개명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으로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이봉창이 스스로 바꾼 이름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봉창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일제의 식민정책에 협조하며 근대문물의 혜택을 누린 ‘모던보이´였다. 차별에 대한 불만은 있었으나 반일 민족의식은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다 1928년 히로히토 즉위식을 보려고 오사카에서 교토로 갔다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유치장에 갇힌 뒤 자의식에 극전 반전이 일어난다. 이후 상해로 건너간 이봉창은 백범 김구를 만나면서 독립투사로 변모한다. 하지만 이봉창이 도쿄로 돌아가 폭탄을 던지기까지 20일간의 기록은 우리가 기대하는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가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재구성한 이봉창의 행적에는 술마시고, 영화보고, 유곽에 드나들고, 골프를 치며 소일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저자는 “독립운동의 영웅과 식민지적 근대를 상징하는 인간형인 ‘모던보이´는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이미지 같지만 이봉창의 삶은 그 두 가지가 한 인간을 통해 복합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웅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운동사를 쓰고 싶었고, 이봉창은 그런 문제의식을 보여 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현재의 자본주의는 ‘흐름의 경제’

    1980년대 후반 학생운동권과 노동운동현장의 필독서였던 이진경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그린비)이 20년 만에 증보판으로 재출간됐다.‘사사방´이란 약칭으로 통용되던 이 책은 당시 한국의 사회구성체논쟁에 과학적 사회분석의 틀을 제시하며, 사회변혁세력의 이론적 길잡이로 각광받았다. 증보판 ‘사사방´에는 초판이 발간된 1987년 이후 20년이 흐른 기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보여 주는 글들이 새롭게 추가됐다. 여전히 필명 이진경으로 활동하는 박태호 서울산업대교수는 논문 ‘87년 이후 한국사회와 사상의 변화´ ‘자본주의와 흐름의 경제´와 에세이 ‘제국주의와 제국 사이´ ‘촛불시위와 대중의 흐름´을 통해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제점과 변화 가능성의 지점을 새롭게 제시한다. 저자는 “박정희체제 이래 한국의 다양한 정치적 세력들을 분할하고 결집시키던 적대의 구도는 이른바 ‘민주-반민주´의 대립이었으나 87년 이후 정치적 대립을 전체화하는 새로운 대결의 지점은 여러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와 결부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즉 한국사회를 양분하는 주요 모순이 ‘민주-반민주´의 전선에서 ‘다수자-소수자´의 전선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수자와 소수자는 숫자가 아닌 이권이나 이득의 많고 적음을 의미한다. 이른바 ‘민주인사´들이 다수자의 척도에 서서 행동하는 경우 그들은 다수자쪽에 있는 것이고, 보수적인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배타적인 대기업노조의 모습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진경은 또 전지구적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흐름의 경제´로 규정한다. 영토국가시기에 성립된 과거의 자본주의가 자본과 국가가 동일한 공간을 통해 결합해 작동하는 ‘공간의 경제´라면, 지금은 정보기술혁명을 바탕으로 자본과 노동력의 흐름이 공장의 경계를 벗어나 사회적 영역 전반으로 확장되는 시기라고 분석한다. 또 대중은 그 자체로 진보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으며, 촛불시위처럼 흐름을 형성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대중의 활동이나 대중정치를 흐름의 양상에 개입하는 문제로 사유하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지적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웃음의 대학’으로 정극 도전하는 황정민

    ‘웃음의 대학’으로 정극 도전하는 황정민

    배우 황정민이 데뷔 이래 처음으로 정극 무대에 선다. 오는 24일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연극열전 아홉번째 작품으로 막올리는 2인극 ‘웃음의 대학’(이해제 연출)에서 작가 역할을 맡았다. 극단 학전 출신인 그는 스크린으로 활동반경을 넓히기 전 ‘지하철1호선’‘모스키토’‘캐츠’ 등 뮤지컬 작품에만 열중했었다. 올초 ‘나인’으로 오랜만에 뮤지컬에 복귀한 바 있는 그가 이번엔 자신의 장기인 노래와 춤의 도움 없이 오로지 연기로만 승부하는 정극 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재작년쯤 연극열전 기획자인 홍기유 대표가 ‘근사한 작품이 있다’며 대본과 영화비디오를 주더라고요. 영화는 안 보고 대본만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하겠다’고 구두 약속을 했었죠.” 황정민을 단번에 사로잡은 ‘웃음의 대학’은 일본 극작가 미타니 고우키의 희곡으로 1996년 초연 당시 요미우리연극대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2004년 영화로도 제작돼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영화 ‘웰컴 미스터맥도널드’‘더 우초우텐 호텔’ 등도 그의 작품이다. ‘웃음의 대학’은 1940년대 2차대전의 전시상황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웃음을 잃어버린 시대, 사사건건 코미디 대본을 검열하는 검열관(송영창)과 어떻게든 공연 허가를 받으려고 대본을 자꾸 수정하는 작가의 좌충우돌 신경전이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 안에 강압적인 시대를 비꼬는 날카로운 풍자의 칼날이 숨겨 있다. “코미디극인데 굳이 배우가 애써 웃기려고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짜인 대본이에요. 그러면서 미타니 고우키가 생각하는 웃음에 대한 철학이 아주 잘 드러나 있지요.” 작가는 검열관에 맞서는 대신 공연에 대한 욕심으로 대본을 계속 수정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은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결국 검열관도 그의 웃음에 매료된다. 미타니 고우키는 이를 통해 권력도 꺾지 못하는 창작 열정과 웃음이 메마른 영혼을 어떻게 순화시키는지를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펼쳐보인다. 베테랑 배우라도 2인극은 모노극 못지않게 힘든 작업이다.“외워야 할 대사가 엄청나다.”며 짐짓 엄살을 부린 그는 이내 “1시간40분 동안 배우의 쫀쫀한 연기로만 무대를 채우는 짜릿한 경험을 놓칠 수 없었다.”며 활짝 웃었다. 사실 그는 현재 촬영중인 영화 ‘공중곡예사’의 스케줄과 연극 연습이 겹치는 바람에 적지 않게 고생했다. “어릴 때 ‘칠수와 만수’‘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2인극을 보면서 나도 저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면 무대는 배우의 예술이고, 그중에서도 2인극이나 모노극은 대충 묻어가기 힘들다는 점에서 배우에겐 도전이자 영광이지요.” 상대역인 송영창과는 첫 만남이다.“워낙 연기를 잘 하는 선배이고, 긴장과 이완이 자유자재인 배우여서 편하게 연습하고 있어요. 저야 뭐 검열관이 요구하면 변명하고 따라가는 역할이라 쉬운 편이에요.(웃음)” 그는 극중 작가의 모습과 자신이 많이 닮았다고 했다. 무대를 사랑하고, 연극을 사랑하고, 그리고 오직 관객만 신경쓴다는 점에서 “내가 일하는 방식이랑 비슷하다.”고 말했다.“카메라 앞에 서거나 무대에 섰을 때에만 배우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때가 제일 행복하고,‘아, 내가 배우 맞구나’라고 느낍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공연 리뷰] -태양의 서커스 두번째 ‘알레그리아’

    [공연 리뷰] -태양의 서커스 두번째 ‘알레그리아’

    무대가 현실에선 불가능한 꿈과 환상의 세계를 가능케 하는 마법의 공간이라면 태양의서커스(Cirque du Soleil)는 최고의 마법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최고점까지 끌어올려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들의 무대는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 지난해 ‘퀴담’에 이어 두번째 내한 작품인 ‘알레그리아’(스페인어로 환희, 기쁨)는 다시 한번 그 명성을 입증했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 설치된 거대한 천막극장은 적어도 공연이 진행되는 2시간30분 동안 관객의 몸과 마음을 꼼짝없이 옭아매는 행복한 감옥이었다. 광대가 이끄는 악단이 등장해 서커스 특유의 기분 좋은 시끌벅적함으로 문을 연 공연은 이내 숨을 멎게 하는 아찔한 묘기 릴레이로 이어졌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듯 줄 하나에 의지해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여성 무용수의 몸짓은 우아했고, 단단한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며 일사불란한 체조와 텀블링 묘기를 선보이는 남성 출연자들은 매혹적이었다. 손바닥만 한 지팡이 하나에 온몸의 체중을 실어 완벽한 균형을 선보인 핸드 밸런싱은 경이로웠고, 번지 줄에 매달려 마치 한 마리 새처럼 추락과 비상을 거듭하는 플라잉 맨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장난기 가득한 플러, 괴상망측한 차림의 늙고 추악한 다섯 노인 올드 버드, 귀여운 요정 타미르, 그리고 코믹 막간극으로 관객의 긴장을 수시로 이완시켜 준 두 명의 광대 등 독특한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 역시 놓칠 수 없다. 광대들은 관객에게 장난을 걸며 “내꺼야”“사랑해” 등 한국어 대사를 구사해 웃음을 유도했다. 태양의 서커스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특별함은 무대와 조명, 음악이다. 이번 작품에선 1막 끝부분에 대형 환풍기로 거대한 눈보라를 만들어낸 장면이 압권이었다. 역대 태양의서커스 작품 중 최고라는 음악도 인상적이다.55주간 빌보드 월드뮤직 차트에 올랐고,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알레그리아’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한국, 타이완, 두바이를 잇는 아시아 투어를 끝으로 15년간의 공연은 막을 내린다.‘알레그리아’는 1994년작이고,‘퀴담’은 1996년 작이니 국내에선 아우가 형보다 먼저 선보인 셈이다.1544-1555.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미국의 몰락… 중국·인도·브라질 뜬다

    “21세기의 최초 몇십년간 미국은 위대하고도 역사적인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즉 지구촌을 세계화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 세계화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뒤흔들면서 가뜩이나 위태로웠던 초강대국 미국의 지위가 한층 위협받고 있다.‘흔들리는 세계의 축-포스트 아메리칸월드’(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윤종석·이정희·김선옥 옮김, 베가북스 펴냄)는 미국이 유일한 슈퍼파워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일극 체제에서 신흥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다극 체제로 이행하는 시기의 현상과 전망에 대해 분석했다. 저자는 ‘미국의 몰락’이란 관점 대신 ‘나머지 세계의 부상(the rise of the rest )’에 논의의 초점을 맞춘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인류사에서 세 차례의 권력이동이 진행됐다. 첫째는 15~18세기 서구문명의 부상, 둘째는 19세기 말에 시작된 미국의 대두, 세 번째는 현재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나머지 세계의 부상’이다. 정치, 군사적 수준에선 여전히 슈퍼파워가 단 하나인 세계에 머물고 있지만 산업, 금융, 교육, 사회, 문화 등의 차원에서는 힘의 분배가 이뤄지는 ‘포스트 아메리칸월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이른바 ‘신흥시장’이 향후 수십년 동안 발휘하게 될 경제적 중요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내비친다. 또 현재의 인류가 수많은 국지전쟁과 테러리즘에도 불구하고 근대사에서 전례없는 평화와 번성의 시대를 누리고 있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아울러 정치는 어떻게 경제에 빠른 속도로 그 세력과 영향력을 내주고 있는지 그리고 국가와 정부는 어떻게 시민사회와 비정부기구( NGO) 같은 기구들에 이니셔티브를 양보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도 예리한 분석의 칼날을 들이댄다. 저자는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장으로 국제정치와 국제경제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의 추천으로 국제정치전문지 ‘포린어페어지’ 최연소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 책은 지난 5월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민주당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 등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의 필독서로 관심을 모았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1936년 울산 농촌마을 달리 주민센서스 펼쳐보니

    #1936년 울산 농촌마을 달리 주민센서스 펼쳐보니

    “8월6일 오전 7시. 서당 동쪽에 있는 용수로의 다리곁에는 이미 20명 정도의 농민들이 모여있다. 흰 천에 붉은 테를 두르고 ‘달리 농기´라고 검은 먹으로 쓴 농기도 나와 있고, 긴 조선 나발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두 세 사람씩 마을 사람들이 모여든다. 논 안에서 남자들이 일렬횡대가 되어 논매기 지휘자가 배후에 선다. 작업중에는 논매는 소리를 소리 높여 부른다.” ●닭둥우리 등 124건 수집해 가 일본의 아틱뮤지엄 연구원 오가와 도오루가 1936년 여름 경상도 울산의 농촌 마을 달리(達里·현재 울산 남구 달동)에서 목격한 ‘공동 논매기´ 풍경이다. 오가와 도오루는 당시 동료 2명과 함께 7월 하순에서 8월 상순까지 2주간 이곳에 머물며 달리 농민들의 생활상을 조사하고, 닭둥우리·도리깨 등 생활용구 124건을 수집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현재 오사카 국립민족학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이 유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록이 나왔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이 최근 발간한 ‘향수-1936년 울산 달리´는 70년전 손때 묻은 생활 유물들을 통해 당시 울산 주민들의 소박한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생업, 식생활, 의생활, 주생활의 4개 분야로 나누어 분류하고, 조사 당시 촬영된 사진들을 함께 수록해 이해를 도왔다. 1940년 발간된 ‘조선의 농촌위생´이 그 결과물이다. 민속박물관은 이번에 이 단행본도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했다. ●남성평균키 164㎝… 日人보다 6.4㎝ 커 보고서에는 그 시대 농민들의 생활상이 손에 잡힐 듯 세밀하게 담겨있다. 조사 당시 달리는 127가구로 구성된 농촌이었고, 가구수의 73.3%가 소작을 했다. 여성의 초혼 평균 연령은 17.02세, 배우자는 23.67세였다. 계층별로는 상층이 18세,19세가 많고, 중층에서는 17세, 하층에서는 16세와 14세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망률은 32.71%로 일본의 평균 사망률 24.36%보다 높았다. 성인(20~50세)남성의 평균 키는 164㎝로 같은 연령대 일본 농부들(157.6㎝)보다 6.4㎝나 컸다. 몸무게도 56.81㎏으로 일본 남성의 53~54㎏보다 3㎏이상 더 나갔다. 이 연구는 당시 일본 재계 실력자이자 일본 민족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게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부사와는 조사 비용(2500원) 일체를 제공한 것은 물론 개인적으로 설립한 아틱뮤지엄의 연구원 3명을 현지에 파견해 생활문화 자료를 수집토록 했다. 그가 울산에 특히 관심을 보인 이유는 울산 태생으로 도쿄제국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한 강정택(1907~?)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차관으로 6·25때 납북된 강정택은 최응석과 더불어 시부사와의 든든한 후원을 얻었다. 최응석이 조사회를 꾸린 것도 도쿄 제일고 3년 선배인 강정택이 달리에서 ‘농촌사회경제조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일련의 역사적 배경은 울산이 고향인 이문웅 서울대 명예교수의 끈질긴 추적으로 밝혀졌다. 이 교수는 지난 6월 강정택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논문집 ‘식민지 조선의 농촌사회와 농업경제´를 펴내기도 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집단에 희생되는 개인… 군더더기 없는 연출

    집단에 희생되는 개인… 군더더기 없는 연출

    일본 부조리연극의 대가인 극작가 베쓰야쿠 미노루의 ‘죠반니’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사전 지식이 좀 필요하다. 이 작품이 모티브로 삼은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모르고선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은하철도의 밤’은 바다로 나가 소식이 없는 아버지와 병든 어머니를 대신해 인쇄소에서 일하는 어린 죠반니의 이야기다. 늘 따돌림을 당하는 죠반니는 별축제가 열리는 밤, 홀로 언덕에 올라 하나뿐인 친구 캄파넬라와 은하철도를 타는 꿈을 꾼다. 잠에서 깨어나 마을로 내려온 죠반니는 캄파넬라가 물에 빠진 친구 자네리를 구하려다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어린 죠반니의 성장과 우주에 대한 동경, 환상을 담은 ‘은하철도의 밤’은 일본에선 국민 동화로 통할 정도로 유명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도 이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죠반니의 아버지로 가는 여행’이란 부제가 붙은 연극은 기억을 잃은 성인 죠반니(이상직)를 무대로 불러낸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23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죠반니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캄파넬라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힐 것을 강요당한다. 그들은 죠반니가 자네리를 물에 빠트렸고, 이를 본 죠반니의 아버지가 대신 누명을 뒤집어썼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23년 전처럼 별축제가 열리는 날, 그때와 똑같은 상황을 연출해 죠반니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쓴다. 극단 청우의 김광보 연출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 진실과 거짓이 엇갈리는 다층적인 구성의 희곡을 군더더기없이 절제된 솜씨로 무대화했다. 그러나 집단의 진실에 희생되는 개인의 진실, 부조리한 현실에 휘둘리는 소시민의 삶을 통해 아버지의 존재가 희미해진 현대사회에서 스스로 아버지가 돼야 한다는 원작의 주제의식은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부인하고, 아버지가 되기를 꺼리는 죠반니의 여정을 따라가는 과정은 멀리서 들리는 은하철도의 기적소리처럼 아련하고 애매하다. 극단 산울림이 마련한 ‘연극 연출가 대행진’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11월2일까지 서울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된다.(02)744-030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美교육체계가 민주주의 억압?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학자 하워드 진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미국식 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한 책이 나왔다.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하워드 진·도널드 마세도 지음, 김종승 옮김, 궁리 펴냄)는 현재 보스턴대 정치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그가 생애 처음으로 교육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책이다. 공저자인 도널드 마세도 보스턴대 교수와의 대담과 하버드대, 위스콘신-매디슨대 강연, 그 외 각종 잡지 인터뷰와 기고문 등이 실려 있다. 역사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인 하워드 진은 미국의 교육체제가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저버린 채 오히려 체제 유지를 위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들을 억압해 왔다고 비판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미명 하에 멕시코전쟁, 남북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 수많은 전쟁에서 비민주적이고 비양식적인 정책과 태도를 보여왔다. 즉 학생들에게 이상과 대안을 꿈꿀 것을 권하는 대신 ‘사회내 모순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그리고 그것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으로 여기도록’ 가르친다는 것이다. 저자는 민주주의 교육의 핵심으로 올바른 역사 교육을 강조한다.“비록 역사가 어떤 특수한 상황에 담겨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려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러분에게 경계하고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법이 정한 대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발상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발상은 한 개인으로서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박탈해 자기들끼리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결정해온 소수의 법률 제정자 집단한테 모든 권한을 이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과 미국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교육을 포함한 문화가 힘있는 집단들에 의해 통제받고 있다.”면서 “우리는 대중들에게, 특히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에게 독립적인 사상과 인습에서 탈피한 정보를 전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1만 5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한글 어떻게 지었고 어떻게 가꿔왔나

    9일 한글날을 맞아 한글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최경봉 원광대 국문과 교수, 시정곤 카이스트 교수와 고 박영준 부경대 국문과 교수가 함께 쓴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책과함께 펴냄)과 이대로 외솔회 부회장이 쓴 ‘우리말글 독립운동의 발자취’(지식산업사)가 우선 꼽힌다.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한글 창제의 동기에서부터 정보화 시대에 한글의 가능성까지 한글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한 29가지 이야기를 소개한다.‘한글은 세종의 비밀 프로젝트였다?’‘연산군은 한글 사용을 탄압했다?’‘글자의 이름과 순서는 어떻게 정해졌을까’‘한글날은 왜 10월 9일 일까?’ 등의 질문을 통해 한글의 창제과정과 한글이 대중에게 파급된 경로, 한글 속에 담긴 질서, 오늘날의 한글 맞춤법이 완성된 과정 등을 역사적 사실과 함께 설명한다.1만 2000원. ‘우리말글 독립운동의 발자취’는 한글 지키기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온 이대로 외솔회 부회장의 자서전이라 할 만하다. 한글 단체들의 힘겨운 과거를 적었다. 훈민정음을 만들어쓰게 된 내력, 빌려 쓴 한자에 눌려 한글을 활용하지 못한 사정, 나라를 잃어 우리말글을 빼앗긴 뒤의 피나는 싸움, 우리말글을 되찾은 뒤에도 일본말과 영어 등의 등쌀에 눌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 기나긴 역사를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생생히 기록했다.“한자를 고맙게 빌려쓴 만큼 이제는 한글을 중국에 빌려줄 때도 됐다.”는 이 부회장은 현재 중국 절강월수외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1만 3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정신문화연구’ 가을호 이승만 재조명 논문 2편 게재

    ‘정신문화연구’ 가을호 이승만 재조명 논문 2편 게재

    근현대사 교과서의 ‘좌편향’을 둘러싸고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학술 계간지 ‘정신문화연구’ 가을호가 핵심 쟁점중 하나인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그 주역인 이승만에 대한 상이한 관점의 논문 2편을 나란히 실어 눈길을 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양동안 교수(정치학)의 ‘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 이상호 전임연구원(한국현대사)의 ‘이승만과 맥아더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각각 이승만에 관한 재평가와 이승만과 맥아더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을 설명한다. ●이승만은 정치엘리트보다 민중의 뜻을 중시? 양동안 교수는 논문에서 이승만에 대한 기존의 여러 부정적 평가는 수정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 교수에 따르면 이승만은 정권장악을 위해 민족 분열을 불사한 정치인이 결코 아니었다. 적어도 해방정국에선 ‘통합주의자’였으며, 공산주의자도 포용할 수 있는 융통성을 지녔다. 하지만 자주독립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세력 통합노력이 공산당의 방해로 실패한 후 강력한 반공입장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또 이승만은 미국 의존적이라는 평가와 달리 민족자주의식이 매우 강했다. 한반도에 신탁통치를 실시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대해 시종일관 강경한 반대입장을 견지했다는 게 양 교수의 설명이다. 남한정부수립과 관련해 이승만과 김구가 지속적으로 대립했다는 평가도 옳지않다고 양 교수는 지적한다.1947년 12월 초까지 남한정부수립을 위한 이·김간의 협력관계는 유지됐으며,12월 하순이후 김구가 건국 진영으로부터 이탈한 후에도 이승만은 김구를 끌어안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이와 함께 이승만이 정치엘리트보다 민중을 더 중요시해 농민과 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의 지위향상과 생활개선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양 교수는 “이러한 정치철학을 재조명해 보면 해방공간에서 좌익과 중도파의 격렬한 악선전에도 불구, 이승만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가 높았던 사실 등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의 일부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결론 맺었다. ●이승만과 맥아더의 공통점이 정부 수립에 영향? 이승만과 맥아더는 하지와 더불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이승만과 하지가 때론 우호적으로, 때론 적대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것과 달리 이승만과 맥아더는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호 연구원은 이런 관계가 두 사람의 공통점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연배가 비슷하고, 엘리트 출신이라는 외면적 공통점외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상당히 유사한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첫째, 평화주의자들에 대해 강한 적대의식을 공유했다. 이승만은 평화주의자들이 반미분자들처럼 평화와 민주주의에 위험하다고 평가했고, 맥아더 역시 평화주의자를 국가안정의 적으로 간주했다. 둘째, 두사람 모두 반소·반공주의자였다. 이승만은 1945년 국제연합 결성을 위한 샌프란시스코 회담에서 격렬한 반소·반공 운동으로 명성을 얻은 이래 동아시아의 반공지도자로 부각됐다. 맥아더 역시 공산주의를 위험한 사상으로 치부했다. 기독교 사상에 심취한 점도 비슷하다. 이승만은 1948년 5월30일 국회개원식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고, 맥아더 역시 자신의 개인적 신앙을 점령지에서 구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즉 평화주의자들에 대한 반감, 반소·반공주의, 기독교 사상이라는 세가지 공통점으로 인해 맥아더가 한국내 어떤 정치세력보다 이승만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했고, 이를 바탕으로 1948년8월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기독교 반공국가로 출발하게 됐다고 이 연구원은 설명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역사갈등 해결의 열쇠는 대화”

    “역사갈등 해결의 열쇠는 대화”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서로 마주 앉아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제2회 역사NGO세계대회 공동 대회장을 맡은 존 W 맥도널드 미국 멀티트랙 외교연구소 대표는 8일 서울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역사 갈등 해결의 열쇠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UN대사 등 직업 외교관으로 40년을 일하고, 이후 비정부기구(NGO)에서 활동해온 맥도널드 대표는 평화를 정착시키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주권국가간 공식외교 채널외에 민간외교, 기업활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북아역사재단과 국내외 역사관련 NGO들이 공동 주최하는 역사NGO세계대회는 9일 개막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12일까지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다.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세계시민사회의 역할’이란 주제아래 23개국 역사NGO관계자 400여명이 참석한다. 박원철 조직위원장은 “역사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시적인 항의나 처방에 급급해선 안된다.”면서 “역사 및 영토의 갈등을 해결하고 아물지 않은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각국의 NGO들 간의 국제적인 연대와 세계시민들과의 활발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는 아라이 신이치 일본 스루가다이대 명예교수, 왕시량 중국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교수, 타이완 영화배우 출신 입법위원 가오친 수메이, 독일 과거사 청산운동 단체인 ‘기억, 책임 미래재단’의 귄터 자토호프 사무총장 등의 주제강연이 마련된다.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미래세대의 역사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캐나다의 ‘ALPHA’는 남경학살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재일 한국인 2세 송부자는 일본에서 차별받는 재일한국인의 실상을 그린 1인극을 공연한다. 필리핀 YMCA의 엘로이사 보레요 사무총장은 “기성세대의 역사를 그대로 복사하지 않고 청년세대가 평화를 건설하는 역사교육에 대해 주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공연리뷰] 스즈키 다다시의 ‘엘렉트라’

    [공연리뷰] 스즈키 다다시의 ‘엘렉트라’

    오른쪽에 놓인 타악기 세트 외에 무대는 텅 비어 있다. 침묵 속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코러스. 휠체어에 의지한 이들은 구호에 맞춰 발을 구르고, 신음과 괴성을 오가는 기이한 소리를 내며 무대 위를 빙빙 돈다. 호흡을 몸 안에 서서히 증폭시켰다가 한순간 외부로 분출시키는 독특한 발성과 현대 무용을 연상케 하는 몸동작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에너지가 절제된 타악 리듬을 타고 객석을 압도한다. 2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인 세계적인 일본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69)의 한·일 합작극 ‘엘렉트라’는 광기와 독기의 원초적 에너지로 가득찬 70분이었다. 원전인 그리스 비극 ‘엘렉트라’는 아버지(아가멤논)를 죽인 어머니(클리템니스트라)에게 복수하는 딸 엘렉트라의 이야기를 통해 복수가 복수를 부르고, 살인이 살인을 낳는 비극적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일본 현대 실험극의 선구자인 스즈키는 이 이야기를 현대사회의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재구성했다. 복수의 독기에 휩싸인 엘렉트라도, 탐욕스러운 욕망의 화신인 클리템니스트라도 모두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등장한다. 무자비한 폭력의 광기에 휩싸인 정신적 장애인들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스즈키 메소드’로 불리는 그만의 독창적인 배우 훈련술로 다져진 한국 배우들의 연기는 지금까지 우리 연극에선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숨막히는 긴장의 순간과 활화산 같은 에너지를 표출하는 극단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배우들의 표현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스즈키는 지난 1월 내한해 한국 배우 16명을 선발한 뒤 8월부터 이들을 일본 토가 예술촌에서 훈련시켰다. 엘렉트라역에는 변유정과 더불어 러시아 타강카 극단의 여배우 나나 타치시빌리가 캐스팅됐다.4일까지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고,10·11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권력 틀어 쥔 글로벌 파워 대해부

    매년 1월 스위스의 작은 휴양 마을 다보스는 한바탕 소란을 겪는다. 전세계 정·관계 유력 인사와 갑부들이 타고 온 제트기, 헬리콥터, 리무진 등으로 인근 공항과 도로는 북새통을 이루고, 각국 미디어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잡기 위해 취재 경쟁을 벌인다. 일명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의 풍경이다. 가진 자들의 고급 사교장이란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포럼의 참석자들이 현재 지구상에서 최상의 권력을 틀어쥔 글로벌 엘리트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슈퍼 클래스’다. 데이비드 로스코프의 ‘슈퍼클래스’(이현주 옮김, 더난출판 펴냄)는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권력과 부를 손에 쥐고, 세계를 주무르는 글로벌 파워 집단의 실체를 해부한 책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이자 국제정책컨설팅회사 로스코프그룹의 CEO인 저자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상무무 부차관을 지내면서 겪은 체험과 방대한 자료조사, 엘리트 집단과의 심층인터뷰를 토대로 슈퍼 클래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출현했고, 전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파헤쳤다. 저자에 따르면 슈퍼클래스는 현재 약 6000명 정도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58세이며, 미국과 유럽의 갑부들이 61%를 차지한다. 남자가 94%로 압도적으로 많고, 대부분 기업체나 금융회사를 소유한 기업가들이다. 그리고 전세계 슈퍼클래스 중 3분의1이 하버드와 예일 등 20개 명문대 출신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CEO,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배우 앤절리나 졸리, 조용기 목사 등이 꼽힌다. 책의 핵심은 슈퍼클래스의 세력 강화로 인한 권력 불평등의 문제다. 개인 자산의 증가는 글로벌 엘리트들의 권력을 강화시켰지만 국가 제도는 약화시켰다. 어떤 국제기구도 글로벌 엘리트 집단을 제어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저자는 이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슈퍼클래스를 이해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본질과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제시하는 미래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2만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동북아 역사갈등 평화적 해법 모색

    동북아 역사 갈등의 평화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세계 시민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국내외 역사 관련 NGO들과 동북아역사재단 공동 주최로 8∼12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리는 ‘역사 NGO세계대회’에서다. 올해 2회째인 이번 대회는 ‘동아시아 역사화해를 위한 세계시민사회의 역할’이란 주제 아래 한·중·일을 비롯한 20개국 200여명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교환한다. 주최측은 “역사 갈등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면서 “지난해에 이어 세계 각국의 역사와 평화 관련 NGO들이 평화와 협력을 추구하는 마당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막 심포지엄에선 공동대회장을 맡고 있는 아라이 신이치 일본 스루가다이대 명예교수의 기조 강연에 이어 왕시량 중국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교수의 ‘역사 기억을 통한 미래세대 교육’, 존 W 맥도널드 미국 멀티트랙 외교연구소 대표의 ‘영토 영해 갈등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 등의 논문이 발표된다. 심포지엄에는 리안 감독의 ‘결혼 피로연’ 등으로 잘 알려진 타이완 영화배우 출신 입법위원 가오친 쑤메이도 참석한다. 그는 태평양전쟁에서 타이완 원주민들이 겪은 참혹상을 알리는 한편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원주민들의 합사를 취하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독일의 과거사 청산 운동을 주도하는 ‘기억, 책임 미래재단’의 사무총장 귄터 자토호프와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 독립운동가 무하마드 나사르 등이 참가한다. 워크숍과 세미나도 열린다.‘한·중·일 역사 교과 교류를 위한 제언’과 동아시아 대학생 역사체험 발표 대회, 사할린 한인 역사 복원을 위한 워크숍, 한·일 원폭피해자 증언대회 등이 마련된다. 아울러 ‘역사와 평화 필름 페스티벌’,‘학교현장을 찾아가는 역사교육’‘NGO활동 전시관’,‘한·중·일 대학생 평화 미션 체험’같은 다채로운 부대행사가 진행된다. 문의 역사NGO세계대회 웹사이트(www.historyngo.org).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조선 유학에서 21세기 삶의 길 찾는다

    조선 유학에서 21세기 삶의 길 찾는다

    “실학은 근대적 지향을 핵심 가치로 삼았으나 포스트모던 시대는 유교의 원론, 주자학적 사고와 지향의 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게 됐다.” “보이지 않는 권력이 현대인들을 소외시키는 지금 시대에 유교적 자원은 소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줄 수 있다.” 20세기 근세사에서 조선 유학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짓밟혔다. 식민과 해방, 전쟁, 군사 독재와 민주화정권 교체 등 격변의 세월을 관통하며 망국의 원흉으로 지탄받고, 근대화의 발목을 붙잡는 낡은 시대의 유물로 낙인찍혔다. 유학은, 어쩌면 억울할지 모른다. 아무리 자업자득의 측면이 크다고 해도 근대화 과정에서 조선 유학에 가해진 그 숱한 비판의 칼날은 모두 엄정한 것이었을까.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최근 동시에 펴낸 ‘왜 조선 유학인가’와 ‘조선 유학의 거장들’(이상 문학동네)은 조선 유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뛰어넘어 21세기에 걸맞은 조선 유학의 가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근대화에 매진하던 20세기는 기술과 과학, 개혁을 내세운 실학의 시각으로 주자학을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근대화에 성공한 지금은 다른 질문을 던지고,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왜 조선 유학인가’는 이 같은 질문에 대해 한 교수가 ‘역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문자답한 결과다. 그는 조선 유학이 성취하고자 했던 가치들에 새삼 주목한다.“실학은 근대적 지향을 핵심 가치로 삼았으나 포스트모던 시대는 유교의 원론, 구체적으로 주자학적 사고와 지향의 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게 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 교수는 이런 시각에서 유교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미래의 자원이라고 말한다.“조선 유학은 덕(德)을 통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추구했습니다. 덕성의 기본은 정해진 틀 밖에서 세상을 보는 시야와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어지러운 시대에 전체를 아우르는 안목을 키우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입니다.” ‘삶의 기술(ars vitae)’로써 유학이 지닌 철학적 가치도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그는 “주자학은 우주와 가족의 관계안에서 태어난 인간이 그 관계를 적극 실현하는 한 자유체로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보이지 않는 권력이 현대인들을 소외시키는 지금 시대에 유교적 자원은 소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 유학의 거장들’은 근대화의 시각으로 유학을 비판한 수많은 담론들에 대한 지겨움에서 비롯된 책이다. 누군가에 의해 취사선택된 글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눈과 잣대로 그들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에 따라 율곡 이이부터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정조와 다산을 거쳐 혜강 최한기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이 거쳐온 행적과 사유의 궤적을 원전을 토대로 꼼꼼하게 재구성했다. 조선 유학에 대한 한 교수의 깊은 애정은 매서운 비판을 전제로 한다.‘왜 조선 유학인가’의 첫 장은 유학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통렬한 자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유학의 최소화(minimalist confucianism)’를 주장한다. 그는 “‘보이는 유학’은 사라졌어도 유학의 핵심적 가치인 ‘보이지 않는 유학’은 지금도 살아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서울대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철학과 고전한학 등을 공부했다. 조선 유학의 범형을 연구한 ‘주희에서 정약용으로’, 동양 철학을 알기 쉽게 풀이한 ‘왜 동양철학인가’, 청소년용 동양 고전 해설서 ‘중고생을 위한 고사성어 강의’등의 저서가 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인문학, 대중 속으로 더 가까이…

    인문학과 대중의 열린 만남을 지향하는 ‘2008 인문주간’(교육과학기술부·학술진흥재단 주최)행사가 6일부터 12일까지 서울과 제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인문주간은 2006년 9월 전국 93개 대학의 인문대학장들이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일상으로서의 인문학’을 주제로 한 올해 행사는 대중에게 인문학을 보다 가까이서, 다양한 형태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국 대학과 인문학 민간단체 22곳이 참여해 학술제와 대중강좌, 답사, 문화 체험행사, 공연·전시 등 109개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펼친다. 일주일간의 인문학 축제는 ‘아시아 인문학자 대회’(6일, 중앙대)로 문을 연다.‘아시아에서의 인문가치와 인문학’을 주제로 9일까지 아시아 관련 학자 30여명이 지성의 향연을 벌인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천광싱 타이완 교통대 교수의 기조 발표와 사카이 나오키 미국 코넬대 교수의 강연 등이 예정돼 있다. 전남대 인문학연구소의 ‘다문화 현실과 우리 인문학’(6일), 충남대 대전인문학포럼의 ‘인문학의 사회적 힘’(6일), 서강대의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소통-새로운 지식의 지평 개척’(9일), 대구사회연구소의 ‘인간과 자연의 화해’(11일) 등 인문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장이 펼쳐진다. 현장 답사와 인문학을 결합한 행사도 다채롭다.‘역사학자와 함께 하는 역사 탐방’(7일),‘서울민속기행(10일),‘신화의 세상, 설화의 세상으로’(11일) 등은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직접 다니며 인문학적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 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는 교수들의 모임인 ‘셰익스피어의 아해들’과 아시아교정포럼이 경기 여주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연극 ‘햄릿’(10일)과 충북대의 청주여자교도소 인문강좌(6∼9일) 등도 눈길을 끈다. 행사 문의는 인문주간 웹사이트(hweek.krf.or.kr).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한국 고양이들 데뷔 무대 ‘합격점’

    한국 고양이들 데뷔 무대 ‘합격점’

    뮤지컬 배우에게 ‘캣츠’는 제목 그대로 고양이같은 존재다. 우아한 자태로 사람의 혼을 쏙 빼놓지만 절대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까칠한 상대. 주연과 조연의 구별없이 전 출연자가 골고루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무대이나 인간의 본성을 버리고 완벽하게 고양이로 변신해야 한다는 점에서 ‘캣츠’는 배우의 영광이자 무덤이다. 지난 19일 서울 잠실 샤롯데극장에서 막올린 ‘캣츠’ 한국어 공연에 쏠린 가장 큰 관심도 외국 고양이에 익숙한 관객의 시야에 한국 고양이가 어떻게 비칠까 하는 대목이었다. 올해 스물일곱살인 ‘캣츠’는 국내에서도 1994년 이래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내한 공연에서 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인 만큼 이번 한국어 공연에 대한 부담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고양이들의 데뷔 무대는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해외 공연팀의 유연함과 연륜을 따라잡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눈에 띄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뛰어다니며 고양이의 습성과 동작을 온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을 기대 이상으로 잘 소화해냈다. 사회자격인 ‘멍커스트랩’역의 홍경수, 선지자 고양이 ‘올드 듀터러노미’역의 이희정 등이 안정된 연기력과 가창력으로 극의 중심을 탄탄하게 잡아줬고, 국립발레단 출신의 발레리노 유회웅과 정주영 등은 전문 댄서로서의 탁월한 기량을 맘껏 뽐내 관객을 매료시켰다. 특히 귀여운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펠리스’를 연기한 유회웅은 날렵하고 매끈한 춤 솜씨와 더불어 앙증맞은 표정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면 화제가 됐던 ‘그리자벨라’역의 옥주현과 ‘럼텀터거’역의 아이돌 스타 대성은 스타 캐스팅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옥주현의 ‘메모리’는 흠잡을 데 없는 깔끔한 고음 처리로 감동을 안겨줬고, 무대를 순식간에 장악하는 대성의 쇼맨십도 돋보였다. 하지만 둘다 캐릭터의 내면을 온전히 드러내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는 한계가 아쉬웠다. ‘캣츠’공연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팁 두가지. 공연장에 오기 전 고양이의 이름과 특성 정도는 훑어보는 게 좋다. 우리말 번역이 매끄러워 스토리 이해에 어려움은 없지만 고양이 이름들이 길고 특이해 헷갈리기 쉽다. 또 공연 중간 객석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고양이들(배우)과 장난치는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통로쪽 좌석을 택하길 권한다.12월31일까지.(02)501-7888.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영어공화국’ 한국사회의 현주소

    ‘영어’는 한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이슈 가운데 하나다.‘영어공용화론’에서 ‘탈식민주의 담론’까지 영어를 둘러싼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갑론을박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 영어는 이미 의사소통 도구로서의 기능을 넘어 부와 권력의 열쇠로 신분 상승된 지 오래다. 계간 비평 가을호는 특집 ‘영어와 한국사회’를 통해 ‘영어공화국’의 실태와 현주소를 되짚었다. 송승철 한림대 영문과 교수는 ‘진보의 영어론’에서 우리 사회의 영어 논의는 세계화라는 도도한 흐름 속에서 전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가 “이중언어 구사를 필요조건으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단일언어에 익숙해진 한국은 영어공용화론(보수), 도구적 대안론(중립), 탈식민주의담론(진보)으로 논의의 흐름이 갈라져 있다면서 “이들 세 가지 대안은 모두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공용화론은 공용화를 주장하면서 영어가 가져올 사회 분단을 언급하지 않았고, 번역전문가를 양성하면 된다는 도구적 대안론은 언어가 정치·경제적 권력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 또 탈식민주의담론은 언어 속에 내포된 정치성에 주목하면서도 정작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영어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영어교육은 물론 영어가 까닭없이 특권화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찬길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는 ‘영어교육과 관련된 몇가지 원칙’이란 글을 통해 미국영어건 실용영어건 항간에 떠도는 영어론은 “기능주의에 포획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채 “목적과 용도에 맞는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요컨대 단순히 시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 각국의 문화와 정신이 담긴 ‘삶의 언어’로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호에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특집기고 ‘정의와 정의의 조건’과 기획물 ‘시장과 민주주의의 위기’, 특별좌담 ‘진보의 길을 다시 생각한다.’ 등이 실렸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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