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법조비리 내사’ 검·경 딴소리/쌓이는 의혹들
(1) 검찰, 용의자 계좌영장 왜 기각? (2) 경찰, 수사권독립 겨냥 기획수사? (3) ‘브로커' 박씨 왜 검사들과 통화?
경찰이 최근 변호사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사와 변호사 등 법조인이 연루된 ‘법조 비리 의혹’을 내사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경찰 조사를 받던 사건 브로커의 휴대전화 통화목록에서 법조인 30여명의 사무실 전화번호가 확인돼 이 브로커와 법조계 일부 인사의 커넥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건 전말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달 17일부터 형사사건 피의자에게 변호사를 소개해 주겠다며 금품을 챙긴 박모(49·안마시술소 운영)·이모(54)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조사했다.이 과정에서 박씨의 휴대전화 통화 목록을 조사한 결과 검사 사무실 20여곳과 판사 사무실 1곳,변호사 사무실 10여곳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박씨 등은 2000년 10월부터 경찰이 수사 중인 사기 사건의 용의자 박모씨로부터 500만원,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안모씨측으로부터 1200만원,윤락행위 등 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오모씨측으로부터 2500만원을 받는 등 모두 42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박씨에 대해 두차례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서울지검 서부지청은 “박씨가 오씨로부터 받은 2500만원은 모두 변호사 비용으로 사용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잇따라 기각했다.경찰은 법조인들이 브로커 박씨와 구체적으로 연루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박씨와 가족의 은행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2차례 신청했으나 역시 검찰이 기각했다.
●경찰 입장과 검찰 해명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구속영장과 계좌추적 압수수색 영장을 잇따라 기각한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모종의 커넥션을 숨기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전화번호가 확인된 변호사 3명을 우편조사했을 뿐 영장 기각으로 수사가 진척되지 못했다.
당시 용산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수사를 맡았던 황운하(현 강남경찰서 형사과장) 경정은 “용산역 주변에 검찰 간부와의 친분을 내세워 사건청탁을 해주고 거액의 수고비를 받는 브로커가 있다는 소문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면서 “박씨의 최근 3개월간 통화내역을 조회해보니 법조인 사무실 30여곳의 전화번호가 나와 관련 여부를 밝히려고 영장을 신청했다.”고 말했다.용산경찰서 관계자는 “범죄혐의 입증 가능성을 검토하는 등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박씨의 가족 계좌에 대한 포괄적인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했으나,박씨가 오씨 등으로부터 받은 수표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3차례나 발부했고,경찰이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요청한 것에 대해서도 승인을 했다.”며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는 의문을 일축했다.검찰은 “경찰도 아직 현직 검사 20명을 포함한 법조인 30명의 명단을 확인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이와 관련,대검 감찰부 관계자는 “상황은 파악하고 있지만 검·경이 수사에 있어서 판단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검찰은 박씨가 실제 수십명의 법조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사건 브로커 역할에 도움을 얻었는지 밝히기 위해 감찰활동에 착수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
박씨의 전화통화 기록에는 서울지검,서울지검 동부지청,서부지청,북부지청,수원지검 등 여러 검찰청의 검사 사무실 전화번호가 기록돼 있다.안마시술소를 운영하는 박씨가 어떻게 검찰청 등에 수시로 전화하면서 ‘사건 브로커’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다.
경찰은 “박씨의 친척 가운데 변호사가 한 명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박씨의 브로커 역할을 뒷받침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이에 따라 박씨가 윤락가 주변 조직폭력배와 결탁해 일부 법조인과 내밀한 관계를 유지했거나 검찰 내 조직적인 비호세력이 박씨를 보호했을 가능성이 신중하게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용산경찰서의 수사착수 시점이 경찰 수사권 독립문제를 둘러싸고 검·경의 갈등이 첨예화되던 시점이라는 점에 주목,검찰을 겨냥한 기획수사가 아니었느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당시 용산서 형사과장이었던 황운하 경정이 경찰대총동문회장 출신으로서 대외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수사권 독립을 주장한 점도 이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이 사건이 불거지는 것이 수사권 독립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같은 의혹을 부인했다.
장택동 이영표 이세영기자 tae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