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세영
    2026-01-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39
  • 4·15총선 “이 여성을 국회로”/여성후보 102명 명단 발표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여성계가 나섰다. 박영숙 여성재단 이사장,정현백 여성연합 공동대표 등 여성계 인사들로 구성된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4월 총선에 나설 여성후보 10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여성네트워크는 여성의 국회진출 확대와 여성유권자 운동을 위해 지난해 11월 출범한 여성정치단체로 여성연합,YWCA,여성민우회 등 주요 여성단체 대표들이 참여하고 있다. 명단에는 고은광순 호주제폐지 국민연대 운영위원,김진애 서울포럼 대표,노혜경 시인,손봉숙 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장명수 한국일보 이사,장하진 한국여성개발원장 등 여성계의 ‘간판급’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여성네트워크는 윤후정 전 여성특위 위원장,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이세중 변호사 등 13인으로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총선여성연대 산하 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아 20일에 걸친 운영위원회의 검증작업 끝에 후보를 확정했다.여성네트워크측은 “도덕성과 신망,공익성과 전문성,민주적 리더십 등을 기준삼아 교차 검증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여성후보 명단. ▲강달금▲강혜숙▲고연호▲고은광순▲곽배희▲권경애▲권혁회▲김경숙▲김금래▲김미희▲김삼화▲김선미▲김송자▲김수영▲김애실▲김영순▲김영신▲김영주▲김완자▲김용분▲김은경▲김은진▲김의숙▲김재옥▲김진애▲김혜경▲김혜련▲김희정▲나도선▲남성희▲노미혜▲노혜경▲민경자▲박문숙▲박순자▲박영자▲박정희▲서영교▲서은경▲서정희▲손봉숙▲송미화▲신명▲신연숙▲신은숙▲신필균▲신혜숙▲심상정▲안명옥▲안성례▲안정선▲양경숙▲원미정▲유승희▲윤선희▲윤원호▲윤인경▲이경숙▲이계경▲이금라▲이미경▲이상덕▲이선희▲이숙자▲이순녀▲이승희▲이양자▲이영순▲이윤자▲이윤정▲이은영▲이인실▲이인호▲이정선▲이정옥▲이정자▲이진영▲이춘호▲이현숙▲이혜훈▲장명수▲장복심▲장성자▲장하진▲장향숙▲전현희▲정연순▲정현정▲조성혜▲조은희▲조춘자▲진수희▲차원갑▲최갑순▲최순영▲최연혜▲최정순▲한명희▲홍경표▲홍미영▲홍성운▲홍승하 이세영기자 sylee@
  • 화교 77% “취업때 차별느껴”

    국내 거주중인 중국인(화교) 10명중 7명은 취업과 승진에서 차별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와 성공회대가 지난해 5월부터 7개월간 화교 693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7%는 취업단계에서,79%는 승진에서 차별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본인이나 가족이 화교라는 이유로 취업이나 승진에서 직접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도 35%에 달했다. ‘언제 심각한 차별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9%가 ‘휴대전화를 구매하거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때’라고 답했고 ‘은행 등 금융기관을 이용할 때’라는 응답이 58%로 뒤를 이었다.‘인권위는 “국가의 사회복지서비스는 한국국적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영주권을 지녔다면 동일하게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美입국 지문채취 인권침해” 진정

    미국이 국내 주요 공항과 항구를 통해 입국하는 한국인에 대해 차별적으로 생체 인식정보를 채취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내용의 진정서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됐다.인권위는 7일 이달 말 미국 출장을 앞둔 이모(34)씨가 “미국 정부가 지난 5일부터 27개 비자 면제국을 뺀 외국인 입국자의 사진을 촬영하고,지문을 채취해 관리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평등권,행복추구권,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냈다고 밝혔다.이씨는 진정서에서 “미국 정부가 생체 인식정보 채취 절차를 시정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상호 호혜평등의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에 입국하는 미국인들에 대해서도 사진촬영과 지문채취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세영기자
  • 낮은 소리/청계천 노점상 풍물시장 지연

    서울신문은 새해를 맞아 삶과 직결된 각종 이해충돌의 현장을 찾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안을 모색하는 새 기획을 마련한다.이미 표면화된 민원성 시위의 원인을 해부하고 대책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예비된 시위’에 대해서도 해법을 찾아보려는 것이다.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불필요하게 지불하고 있는 소모적 비용을 최소화해 보려는 것이다.우선 지난해 강제철거돼 생활기반을 잃은 서울 청계천 노점상들을 위해 서울시가 개장하기로 한 풍물시장의 오늘을 살펴본다. 30년 가까이 서울 청계천에서 잡화노점을 해온 장상문(53)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초조하다.지난해 11월말 청계천 노점 철거 후 한달이 넘도록 일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철거에 협조한 노점상들에게 약속했던 동대문의 풍물시장 개장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장씨는 “그 어렵다던 ‘IMF’ 한파 때도 네 식구 밥줄 구실을 톡톡히 했던 노점이었다.”면서 “3월에 복학할 아들 등록금이라도 마련하려면 하루 24시간 일해도 부족할 판인데 놀고만 있자니 답답해 죽을 노릇”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400여 노점상 “일 못해 파산 직전” 서울 중구 을지로 7가 동대문운동장 축구장.지난해말 서울시가 청계천 노점을 철거하면서 임시 수용시설로 제공한 이곳에는 현재 400여개의 노점좌판이 장사가 시작될 날만 기다리며 39일째 발이 묶여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청계천 노점을 본격 정비하기에 앞서 전국노점상총연합과 서울노점상연합 소속 노점상 400여명에게 정비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동대문운동장을 가수용 시설로 제공하고 이곳에 풍물시장을 조성,생계를 꾸려나가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지난달 10일에는 전기와 수도 등 기반시설 설치와 광고와 이벤트 개최 등 시장 홍보를 시에서 전폭지원한다는 데 상당 부분 의견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기·수도 시설 설치는 물론 노점상끼리 자리를 배정하는 문제도 마무리되지 않았다.최근엔 시가 2005년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공원과 문화공간,주차장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더욱 뒤숭숭해졌다. 7일 오후 운동장에는 노점상 50여명이 나와 좌판을 정리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노점상 백순권(73)씨는 “두달 동안 장사를 못해 집에는 각종 공과금 고지서만 쌓이고 있다.”면서 “물건도 손질하고 돌아가는 얘기도 들을 겸 운동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청계천으로 다시 나가겠다” 일부 노점상은 서울시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잡화상 김모(63)씨는 “철거 전에는 운동장에 들어오기만 하면 시에서 수도와 전기,천막 설치는 물론 시장 홍보도 전폭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시의 말만 믿고 좁은 운동장 안에 모여 있어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공구상 이모(57)씨는 “생활비를 벌려고 공사판에 나가도 나이가 많다고 써주지 않는다.”면서 “이 상태가 계속되면 다시 청계천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측은 풍물시장 개장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를 노점상 탓으로 돌리고 있다.자리배정이 끝나야 전기와 수도 등의 설치가 가능한데 노점상 단체 사이의 갈등으로 합의가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은 400여 노점상들이 시장을 열려고 했지만 자리배치 문제가 합의되지 않아 무산됐다.흥분한 일부 노점상들이 싸움을 벌이는 등 곳곳에서 험악한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서울시 “개장 지연은 노점상간 갈등탓” 서울시 관계자는 “노점상측에서 자리배정은 전적으로 자신들에게 맡겨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면서 “자기들끼리 합의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해 시장 개장이 늦어지는 것을 공연히 서울시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노점상들의 말은 다르다.서울시측이 당초 가수용부지로 운동장 북쪽 스탠드를 제공했을 때만 해도 들어온 노점상이 400명 정도밖에 안돼 자리배정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시측이 500여명을 추가로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용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돼 자리다툼이 벌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전국노점상총연합 관계자는 “애초 동대문운동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강경하게 투쟁하던 전국노점상연합 소속 노점상 500여명이 2주 전 서울시와 협의가 성사돼이번주중 추가로 들어올 예정”이라면서 “상황이 변한 만큼 시장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견인차량 보관소로 쓰이고 있는 남측 스탠드를 추가로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용지를 추가로 제공하는 것이 어렵다는 입장이다.시 관계자는 “노점상측이 요구하는 운동장내 견인차량 보관소 부지는 민간업자와 올해 7월까지 위탁계약이 돼 있어 제공이 어렵다.”면서 “게다가 엄연히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시설을 일부 노점상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세영 김효섭기자 sylee@ ■안호 청계천노점 생존권투쟁위원장 동대문 풍물시장의 개장 지연과 관련,안호 청계천노점 생존권투쟁위원장은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에 가수용부지로 내놓은 곳이 전체 노점상을 수용하기엔 너무 좁고 시의 지원약속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두 달 가까이 장사를 못한 노점상이 많은데. -젊은 상인들은 그나마 공사판에 나가 일이라도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그마저도 못한다.회현역 쪽에서 노숙하는노점상까지 생겼다.지금과 같은 상황이 1개월 이상 이어지면 청계천 노점상들은 다 망한다. 왜 개장이 늦춰지고 있는가. -지난달 10일 서울시 관계자와 협의 당시 시측에서 전기·수도·차양막 설치는 물론 광고와 각종 이벤트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그러던 서울시가 노점상간의 자리배정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다. 자리배정을 둘러싸고 노·노 갈등이 심각하다는데.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노점 위치에 신경을 많이 쓴다.하지만 그 때문에 개장이 늦어지는 것은 아니다.애초 400명을 수용하기로 한 장소에 500명을 더 들여오기로 했다면 시측에서 부지를 더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그런데 시에서는 모든 책임을 상인들에게만 돌리면서 팔짱만 끼고 있다.시측이 ‘노·노 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시에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제공한 면적에서는 1000명이 장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부지만 더 나온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운동장일부라도 내줘야 한다.전기·수도시설 설치와 홍보지원 약속도 빨리 이행해 주기를 바란다. ■권종수 서울시 건설행정과장 서울시 권종수 건설행정과장은 “풍물시장 개장은 자리배정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이 풀린다.”면서 “서울시가 시장 개장에 소극적이라는 일부 노점상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개장이 지연돼 상인 피해가 크다. -서울시와의 협의가 늦어져 500여명의 노점상이 뒤늦게 합류했다.미리 들어와 있던 상인들도 ‘늦더라도 모두 들어온 뒤 시장을 열겠다.’고 했다.예정대로 자리배정이 마무리된다면 이달 중순쯤에는 개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시에 대한 노점상들의 불신이 적지 않은데. -분명히 해둘 것은 동대문운동장은 노점 철거 대가로 시측이 상인들에게 분양해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시에서 불법 노점을 철거해 보관하던 곳에 상인들의 생계를 보전한다는 차원에서 임시방편으로 장사를 허락한 것이다.따라서 이건 애초부터 계약이나 협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수용인원이 배로 늘었으면 시에서도 추가 조치를 강구해야 하지 않나. -일부 노점상들이 견인차량 보관소를 내주기로 시가 합의해 줬다고 하는데 터무니없는 소리다.동대문운동장은 엄연히 공공부지다.공공목적으로 사용하는 주차장을 노점상들 때문에 나가라고 할 수는 없다. 시에서는 현재 도심 순환버스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곳을 노점상들이 추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두고 의견을 조율중이다. 2005년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면 노점상들은 어디로 가나. -관계부서에서 대체부지를 검토중이다.응봉역 주변 중랑천 둔치나 주말에 이용되지 않는 역세권 주차장,공터를 알아봤으나 현재로는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공공부지인 동대문운동장을 일부 상인을 위해 제공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옳지 않다.
  • 사랑으로 일어섭니다/복직준비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씨

    등줄기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통증에 환자복이 식은 땀으로 젖는다.시계는 새벽 두시를 가리키고 있다.열흘전 허벅지 피부를 이식받은 오른발 쪽이 몹시 아프다.머리맡을 더듬어 약병을 집어든다.힘겹게 꺼내든 수면제 2알.아내는 습관이 된다며 만류하지만 다섯시간이라도 잠다운 잠을 자려면 어쩔 수 없다.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온몸이 축 늘어진다.두아들 준성,효성의 얼굴이 스치듯 사라진다. ●7차례 대수술… 멀고 험난한 재활의 길 지난해 7월 서울 영등포역 승강장에서 전동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려다 양쪽 발을 잃은 철도 공무원 김행균(金幸均·43)씨.‘아름다운 철도원’이란 부담스러운 별명까지 얻었지만 재활의 길은 고독하고 험난하다. 2일 오후 경기 부천시 순천향병원 6층 병실에서 만난 김씨는 수술 후유증으로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워 보였다.수술은 7차례나 받았다.지난해 11월 왼쪽 발목 절단수술을 받았고 지난달 19일에는 양쪽 허벅지 피부를 떼어내 발가락이 잘린 오른발에 이식했다.13시간이나 걸린 대수술이었다.매일 밤 11시 잠자리에들지만 대여섯 시간 이상 자지 못한다.격심한 새벽 통증 때문이다. ▶관련기사 2면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김씨는 “고통이 올 때마다 가족의 얼굴과 격려 글을 보내온 이름 모를 이웃들을 떠올린다.”면서 “두 다리는 잃었지만 가족과 이웃의 따뜻한 사랑을 몇곱절이나 더 얻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선물상자’에는 전남 보성의 이발사 손정수씨의 격려편지 5통과 전남 나주 금천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카드와 함께 보내온 돼지저금통이 들어있었다. 요즘은 재활운동을 하느라 하루가 짧다.재활에 열심인 것은 복직한 뒤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치료받는 시간 말고는 모두 재활운동을 하고 있다.틈틈이 뉴스도 보고 책읽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사고 어린이 부모의 전화 받았었다” 김씨는 이날 자신의 희생으로 목숨을 구한 아이의 부모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냈다.“사고 며칠 뒤 ‘수술 결과는 어떻습니까.죄송합니다.시간을 내서 반드시 찾아뵙겠습니다.’고 말하고 끊은 전화 한통이 있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 부모의 전화였던 것 같습니다.” 김씨는 “내가 그 부모였더라도 처음에 찾아올 기회를 놓쳤다면 나중엔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라며 그들을 감쌌다.‘아낌 없이 주는 나무’.김씨는 병원에서 이렇게 불린다.지난 9월 입원해 어느덧 ‘고참환자’가 된 김씨는 새 환자가 들어오면 병원생활과 재활 치료의 노하우를 자상하게 알려주고 있다.자신에게만 쏠리는 관심과 격려를 환자들과 나누려고 애쓴다. 담당의사 이영호(36)씨는 “지난달 수술결과가 좋다.”면서 “1주일 뒤 이식한 피부에 감각이 돌아온다면 늦어도 6개월 뒤부터는 혼자 걷고 계단을 오르내릴 만큼 호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글 이영표 이세영기자 sylee@ ■수발 5개월… 아내 배해순씨 1면서 계속 “위만 바라보고 아등바등하던 예전과 달리 주위와 아래 쪽에 눈을 맞추니 새로운 세상이 보이더라구요.” ‘아름다운 철도원’의 아내 배해순(40)씨도 역시 ‘아름다운 아내’였다.그는 남편을 5개월 남짓 병수발 하면서 하루도 좌절하거나 절망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배씨는 “사고 직후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행복했다.”면서 “남편의 몸이 몸통만 남아있어도 평생 내가 팔과 다리가 되어 줄 것이라고 다짐했기 때문에 큰 두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평생을 병상에 누워 지내야 하는 중환자들,몸은 멀쩡 하지만 정신이 병 든 사람들….우리보다 더 절망스러운 환경에서 그들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더라구요.” 남편의 사고소식에 한때 눈앞이 캄캄했으나 병원에서 훨씬 사정이 나쁜 사람들을 보고는 오히려 힘을 얻게 됐다고 했다. 배씨는 “남편이 비록 두 발목은 잃었지만,재활할 수 있다는 희망 하나가 얼마나 큰 삶의 활력소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한가지 배씨가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해오던 자원봉사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점이다.그는 집 근처 부천 중동사회복지관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했었다.배씨는 “남편이 사고를 당한 이후 시간이 나지 않아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배씨는 요즘 큰 아들 준성(14·중학교1년)군이 훌쩍 컸다고 대견해했다.배씨는 “준성이가 막내 효성(9·초등학교2년)이와 함께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해 집안의 모든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볼 때 ‘남편의 사고후 더 많은 것을 얻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준성군은 “선생님과 친구들이 아빠 얘기를 할 때마다 부끄러우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뿌듯하다.”면서 “아빠가 퇴원하면 지난 봄 온 가족이 함께 갔던 영종도 갯벌을 다시 찾고 싶다.”고 소박한 소망을 밝혔다. 이영표기자 tomcat@ ■복귀 기다리는 영등포역 동료들 “김행균씨가 돌아와 예전처럼 함께 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김씨가 근무하던 서울 영등포역 열차운용팀장실.김씨의 직장 동료들은 ‘그의 빈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열차운용팀은 영등포역의 열차운행을 통제하는 ‘사령실’이다.업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팀장급만 10명이 근무한다.승강장에서 승객의 안전을 보살피는 일도 맡고 있다.김씨는 사고 전까지 이곳에서 4개월동안 일했다. 열차운용팀장 이동환(48)씨는 “지난해 7월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요즘도 가끔씩 김씨의 안부를 묻는 승객들이 있다.”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잊혀지겠지만 김씨의 따뜻한 선행이 오래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조에서 일했던 기근(41)씨는 “김씨는 책임감이 강하며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모범적인 동료”라면서 “짧았지만 현장에서 어려움을 함께 나누던 때가 그립다.”고 밝혔다. 김씨가 사고를 당한지 반년이나 지났지만 동료들은 여전히 비슷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장영재(39)씨는 “1년전쯤 안양역에서 승객들을 살피다 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해 숨진 철도원이 있었다.”면서 “열차가 들어오는데도 취객이나 어린아이가 선로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김씨의 일이 떠올라 아찔하다.”고 털어놨다. 이유종기자 bell@ ■쾌유 기원하는 네티즌들 “철도원 아찌 힘내세요!” 네티즌들은 김씨가 보여준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사고 당일인 지난해 7월 25일 만들어진 ‘아름다운 철도원’ 커뮤니티(cafe.daum.net//beautifulrailman)에는 지금까지 2500여명이 가입,김씨의 빠른 쾌유를 빌고 있다. 구랍 28일 김씨에게 병문안을 다녀왔다는 네티즌 ‘연은정’은 “오른쪽 다리가 말썽인데 이것만 잘 아물면 의족도 맞추고 회복도 빨라질 것”이라면서 “다행히 김씨의 얼굴이 밝았다.”고 전했다.ID ‘두레박615’는 “빨리 회복해 이웃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격려했다.네티즌 ‘그사람’도 “마음만이라도 한없는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면서 “‘받은 만큼 베풀고 살겠다.’는 김씨의 말씀이 새해를 맞는 우리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고 밝혔다.영등포역에서 공익요원을 지냈다는 한 네티즌은 예전처럼 열차운용팀장으로 일하기 어렵다면 영업과 또는 관리과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씨가 구한 어린이와 그 부모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낸 글도 많았다.네티즌 ‘daeun0217’은“죽음의 문턱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한 사람을 어떻게 모른척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유종기자
  • 전쟁도 지진도 신의 뜻 새해엔 화합과 평화를/서울 이슬람 중앙성원 송년풍경

    12억 이슬람 신도에게 2003년은 ‘불운과 불행의 해’였다.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한 해는 7만여명의 사상자를 낸 이란의 대지진으로 마침표를 찍고 있다. 한국 사회도 이라크 현지 근로자의 희생과 파병 논란 등을 겪으며 이슬람권에서 발생한 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70년대 ‘중동특수’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갈등과 분쟁의 해’를 마감하는 국내 모슬렘은 “살람 알레이 쿰.”(당신께 평화가 깃들기를)이란 인사말을 나누며 새해에는 화합과 평화가 이뤄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30일 국내 이슬람교의 ‘본산’격인 서울 한남동 이슬람교 중앙성원을 찾은 터키인 후세인(41·사업가)은 “전쟁도 지진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그저 하나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갈등·분쟁 대신 평화를” 11년째 중앙성원에서 ‘이맘’(예배집전자)으로 봉직중인 이행래씨는 이같은 모슬렘의 태도를 ‘정명(定命)’이란 말로 설명했다. “코란에 따르면 모든 재앙은 하나님의 뜻입니다.하지만이것은 ‘체념’과 다릅니다.불행을 개인이나 집단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지요.이를 통해 고통과 슬픔을 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주마’(주일예배)가 열린 지난 26일 오후.성원에서 만난 대부분의 모슬렘은 ‘평화’와 ‘형제애’를 강조하는 이슬람이 한국인에게 호전적이고 가부장적인 종교로 인식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파병은 피를 부를 것” 이날 모인 모슬렘은 600여명.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부터 사업가,학생 등 이들의 직업은 피부색과 언어만큼이나 다양했다. 한국이슬람교 중앙회 이주화 선교국장은 “지역 특성상 인근 대사관 직원과 사업가가 많지만 2∼3개월 전까지 서울 주변의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모슬렘이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것과 달리 젊은 모슬렘 중에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집회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지난 4월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반전집회에는 중앙성원에출석하는 모슬렘 10여명이 반전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참석했다. 튀니지인 모즈(23·서울대 회계학과 3년)는 “유엔이 아닌 미국의 요청으로 군대를 보내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한국군은 무고한 이라크인의 피를 군복에 묻힐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도수 10만…젊은층에선 ‘이슬람 배우기’ 그럼에도 국내 모슬렘은 한 가지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배우려는 젊은이가 점차 늘고 있기 때문이다.이행래 이맘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이슬람 문화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고조되고 있다.”면서 “올해는 파병문제가 불거지고 반전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면서 이슬람의 참모습을 체험하고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자주 성원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
  • “희망이 안보여…”/하루16시간 노동 40대도… 100만원 못갚아… 생계형자살 올 676건

    지난 27일 저녁 서울 상계동의 40대 가장이 집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은 사실이 29일 뒤늦게 밝혀졌다.유서는 없었다. 부인에게 “희망이 없고 막막하다.죽고 싶다.”는 말을 남긴 게 전부였다. 숨진 최영찬(40·가명)씨는 ‘투잡스족’이었다.새벽엔 신문배달원,낮에는 전자제품 출장기사로 쉴 틈 없이 일했다. ●어느 40대 투잡스족의 죽음 동료들은 그에게 “돈 독이 올랐다.”고 놀렸다.하지만 최씨에게 두 개의 직업은 ‘선택’이 아닌 ‘강요’였다.하루 16시간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150여만원의 월급은 고스란히 은행빚을 갚는 데 들어갔다. 그는 6년전까지 서울에서 작은 전자제품 상점을 운영하던 ‘사장님’이었다.간호사로 일하는 부인의 수입까지 더하면 단란한 네 식구 살림을 꾸려가기엔 부족함이 없었다.하지만 지난 97년 찾아온 외환위기로 가게가 넘어갔다.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13평 반지하 방으로 옮겼다.어떻게든 빚은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투잡스족’이 됐다.하지만 은행빚 5500만원은 끝내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영안실에서만난 부인 김모(38)씨는 “3년만 더 노력하면 빚도 갚고 재출발할 수 있다더니…”라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빈곤의 덫…탈출구가 없다 빈곤을 비관한 ‘생계형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29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생계비관형 자살은 676건.지난해 1년 동안 집계된 600건을 훨씬 넘어섰다. 29일 오전에는 대리운전사 한모(27)씨가 빚독촉을 견디다 못해 서울 중구 소공동 원구단 공원에 있는 나뭇가지에 목을 맸다.한씨가 남긴 유서에는 “빚 100만원을 빨리 갚으라는 사채업자의 전화 때문에 정상적 생활이 힘들다.”고 적혀 있었다. 앞서 지난달 9일에는 카드빚 독촉에 시달리던 실직자 김모(46)씨가 여의도 대로변 승용차 안에서 극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3개월전 직장을 잃은 김씨는 카드빚 1200만원을 갚을 길이 없어 고민해오다 자살을 선택했다. ●“절망과 분노가 자살 부른다”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악화된 빈부격차와 이에 따른 빈곤층의 박탈감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한다.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외환위기 당시만 해도 모두가 고통을 겪었고,처음이니까 차차 나아질 것이란 희망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위기극복의 열매가 소수의 상류층에만 집중되고 나머지 계층은 경제사정이 오히려 악화되면서 박탈감과 절망감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시근로자의 소득불균등 정도를 나타내는 ‘임금소득 지니계수’도 계층간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발표된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올해 6∼8월 평균 임금소득에 대한 지니계수는 0.329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0.319보다 크게 높아졌다.이는 지난 99년 통계청이 임금소득에 대한 지니계수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지니계수는 값이 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가 낮다는 것을 뜻한다. 가톨릭대 심리학과 정남운 교수는 “생계형 자살은 개인이 느끼는 좌절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사회적 행위”라면서 “사회 내부적으로 갈등의 요소를 증가시키고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하는 등 파괴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세영 유지혜기자 sylee@
  • 닭튀김 먹고 걱정… 오리털점퍼도 찜찜 가축 전염병 신드롬 확산

    조류독감,돼지콜레라에 광우병까지 덮치다니…. 식탁에 가장 자주 오르는 3대 육류인 닭·돼지·쇠고기가 ‘전염병 회오리’에 휩쓸리면서 외식업소가 된서리를 맞은 데 이어 가정에서도 먹거리 고민에 빠지고 있다.‘치킨집’과 ‘고깃집’ 등 외식업소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점점 더 뜸해지고 있고 주부들은 식단을 뭘로 짤지 난감해 한다.연말 회식 메뉴 또한 마땅치 않고 인터넷에는 인체에도 전염되느냐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육류판매·외식업체 직격탄 주부 강지혜(45·경기 남양주시 도농동)씨는 식단문제로 가족들과 다투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전염병을 우려해 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꾸자 육류를 즐기는 남편(48)과 아들(17)의 원성이 높다.강씨는 “아무리 인체에 해가 없다고 해도 가족 건강을 책임지는 주부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반포 S백화점 관계자는 “1주일 만에 닭고기 판매량이 40% 줄었다.”면서 “24일 광우병 보도가 나간 뒤에는 구매한 쇠고기를 반품하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연말을 맞아회식이 잦아진 직장인들도 난감하다.회사원 오영상(34)씨는 “고깃집에서 시작해 맥주집과 노래방 순서로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광우병 얘기가 나온 뒤 ‘1차’ 장소를 어디로 정해야 할지 고민할 때 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횟집과 채식뷔페는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강남구 포이동의 SM채식뷔페 관계자는 “조류독감 이후 매출액이 20% 정도 늘었다.”면서 “닷새에 한번 꼴이던 단체회식 손님도 사흘에 한번꼴로 잦아졌다.”고 말했다. ●인터넷도 ‘가축공황’ 육류를 재료로 사용하는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매출이 떨어져 걱정이 태산이다.롯데리아 신촌점 관계자는 “2001년 광우병 파동 당시 하루 매출액이 30만원 정도 줄었다.”면서 “손님들에게 ‘익혀 먹으면 괜찮다.’고 해명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네이버 사이트에는 ‘조류독감’이란 검색어가 뉴스검색어 순위 5위에 올랐다.게시판에는 “어제 밤 치킨집에서 통닭을 시켜먹었는데 자고나니 몸상태가 이상하다.조류독감 아니냐.”,“병에 걸린 오리의 털로 만든 점퍼를 입었다가 조류독감에 걸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등 다양한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철저히 조심하면 예방도 가능 전문가들은 그러나 조류독감이나 돼지콜레라는 대비만 철저하다면 예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고려대 바이러스연구실 정동훈(36) 박사는 “바이러스는 열에 약한데다 감염 경로도 음식물이 아니라 호흡기나 침”이라면서 “독감을 조심하듯 음식물을 충분히 익혀 먹는다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정 박사는 그러나 “광우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은 열에 강하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는 일단 먹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천 산란닭 조류독감 감염 확인 경기권에서 첫 조류독감 감염 농장이 확인됐다.농림부는 25일 오후 8시 현재 경기도 이천시 율면 K씨 농장에서 사육돼 온 산란계가 조류독감에 감염됐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지금까지 홍콩 조류독감 바이러스(H5N1)의 양성 판정이 내려진 농장은 모두 12곳.그밖에 12곳은 검사중이다. 이세영 박지연기자 sylee@
  • “개악주도 의원 낙선운동”394개 시민단체 반발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마련한 정치개혁법안을 둘러싸고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일부 단체는 내년 총선에서 개악을 주도한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반부패국민연대 등 394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부패정치추방과 정치개혁실현을 위한 비상시국회의준비단’은 23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정치권의 자기혁신을 강하게 촉구했다.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과 박상증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 참가자 20여명은 회의를 마친 뒤 국회의장,검찰총장,각 정당 대표를 방문,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시민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사 앞 항의농성에 합류했다. 앞서 국회 정개특위의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위원장 박세일)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권이 비례대표를 획기적으로 늘리자는 정개협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지역구 의석수를 늘리는 등 ‘기득권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면서 “정개특위의 합의내용은 개혁안이 아닌 ‘개악안’”이라고 지적했다. 유영규 이세영기자 whoami@
  • 강남 의상실 사장도… 군납업자들도 “실세…” 한마디에 ‘설설’

    권력실세나 측근을 사칭해 돈을 빼앗는 사기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기업체 대표,기무사 장교에 이어 서울 강남의 의상실 여사장까지 당해 ‘정치인·권력자’라면 ‘꾸뻑 죽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실세’라는 한마디에 ‘30년 옷장사’의 직감과 눈썰미도 빛을 잃었다. 17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계에 강남구 신사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는 백모(61·여)씨가 찾아왔다.고위층의 측근을 사칭한 50대 여성에게 보석 등 1200여만원 상당을 사기당했다는 것이었다. ●‘옷로비 사건’언급하며 비밀엄수 당부 백씨는 “옷차림이 정숙하고 말투도 세련돼 재력있는 집의 사모님으로 알았다.”고 말했다.이 여성이 백씨의 의상실을 찾은 것은 16일 오전.매장 안을 둘러보던 그는 “사업 때문에 선물할 옷이 필요하다.”며 최고급 원단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백씨가 100만원짜리 벨벳 원단을 보여주자 이 여성은 “돈은 아끼지 않겠다.”면서 “크리스마스에 맞춰 선물할 계획이니 오늘 고객에게 가서 치수를 재자.”고 말했다.지난 98년 정·관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고위층 옷로비 사건을 얘기하며 “이런 일엔 비밀유지가 생명”이란 말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백씨를 현혹시킨 것은 이 여성의 전화통화였다.그는 매장 안에서 끊임없이 어디론가 휴대전화를 걸었다.‘시누이’라는 사람과는 “우리가 ‘그 장관’한테 뇌물주려는 것도 아닌데 굳이 비싼 밍크로 할 필요가 있느냐.”며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잠시 뒤엔 ‘사모님’이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호텔에 방을 잡고 있으면 의상실 사장과 함께 가 사이즈를 재겠다.신변노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호텔로 떠나기 전 이 여성은 매장 한편에 전시된 보석진열대에서 1개에 600만원씩 하는 루비반지와 진주반지 2개를 골랐다.그리고 “시누이가 500만원권 수표 3장을 준비했으니 거스름돈 300만원을 가져가자.”며 택시를 잡아타고 H호텔로 향했다.호텔에 가던 도중 이 여성은 시누이에게 보석을 가져다 주겠다며 보석과 거스름돈을 건네받았다.그리고 잠시 기다리라며 택시를 나선 뒤 종적을 감췄다.모든 것이 단 2시간 사이에 벌어졌다.●청와대 측근 사칭만 10여차례 같은 날 청와대 경호실장의 측근을 사칭해 군납업자들로부터 1억여원을 가로챈 류모(48)씨가 사기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류씨는 2000년 11월 군부대에 돼지고기를 납품하는 이모(40)씨에게 “안주섭 청와대 경호실장(현 보훈처장)의 동생이 국가정보원에 다니는데 고교 때부터 친한 사이다.잘 이야기해 군에 돼지고기를 독점 납품하도록 도와주겠다.”고 접근,1500만원을 받는 등 9차례에 걸쳐 1억 400여만원을 받았다. 류씨는 이 과정에서 노숙자에게 돈을 주고 안 처장인 것처럼 박씨에게 전화를 걸게 해 “곧 납품계약이 된다.”고 말하게 하는 등 치밀하게 피해자들을 속였다.피해자들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뒤에도 “경찰 때문에 납품 계약이 깨지게 생겼다.”면서 류씨를 철석같이 믿었다. 올들어 대통령 친척이나 비서관 등 청와대 실세나 측근을 사칭한 범죄는 10여건에 이른다.이런 범죄가 끊이지 않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급행료’ 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한다.경찰대 한종욱 교수는 “오랜 권위주의 통치기간 동안 국민들 스스로 권력에 대한 복종과 숭배를 내면화했다.”면서 “일반인조차 고위층과 ‘줄’을 대는 것을 일종의 ‘보험’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고 지적했다.서울시립대 행정학과 박정수 교수는 “인사와 행정분야에서 투명성을 높이고 미국처럼 로비스트를 합법화하거나 전자입찰을 통해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면 불법거래에 참여하려는 유혹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핵폐기장 재검토’ 이후 부안/ “변한게 없다” 주민반응 냉담

    “다 소용없어.믿을 수가 있어야지.말하는 것도 장관,총리,대통령이 다 달라.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경찰 철수시키고 구속된 사람들도 풀어줘야 할 것 아냐.” 전북 부안읍에서 45년째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김윤삼(72)씨.14일 현지에서 만난 그는 요즘의 분위기를 “희망 반 불안 반”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김씨는 “정부 입장은 군민 대책위와 논의를 거쳐 주민투표 시기를 결정하되 그 사이 다른 지역에서도 신청하면 받아주겠다는 것”이라면서 “도대체 지금까지 입장과 달라진 게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백지화' 아니므로 안심못해 지난 10일 윤진식 산업자원부장관의 ‘핵폐기장 후보지 원점 재검토’ 발언에도 불구하고 ‘부안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지난 13일 부안수협 앞에서 열린 ‘반핵·평화·생명을 위한 범국민대회’에는 1만명이 넘는 군민이 참석했다.김종성 군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장관의 사퇴를 “절반의 승리”라고 주장했다.정부측이 뒤늦게나마 절차상의 오류와 주민 시위의 정당성을 인정하긴 했지만 ‘전면 백지화’를 약속한 것이 아니므로 안심하긴 이르다는 것이다. 주민들 역시 5개월 넘게 ‘반쪽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지난 13일 부안읍 상가는 토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3분의2가 문을 닫았다.주말 관광객으로 분주해야 할 변산면과 격포면의 주민들 역시 일손을 놓고 집회참석을 위해 읍내로 향했다. 격포면 주민 곽승근(33)씨는 “정부와 군청이 자꾸 시간을 끌면서 다른 음모를 꾸미는 것 아니냐.”면서 “군민들이 더욱 세를 모아 찬성측 목소리가 발을 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찬성 움직임도 ‘꿈틀’ 반대측 기세에 눌려 변변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찬성측 주민들도 세를 규합하고 있다. 지난 12일 부안예술회관에서 열린 ‘2대 국책사업유치를 위한 범군민결의대회’에는 공무원과 핵폐기장 사업시행자인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주민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김명석 부안경제발전협의회장은 “군청과 협조해 찬성여론을 조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 분위기로 봐 찬성측 목소리가 자리잡기엔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부안경찰서 관계자는 “군민대회 참석자 대부분이 공무원과 한수원 직원 가족,일부 건설업자들이었고 전주·김제 등 외부에서 동원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면서 “지역정서상 찬성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공개석상에 얼굴을 드러내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깊어가는 주민 갈등 주민들은 무엇보다 ‘지역공동체의 균열’을 우려하고 있다.이미 주민간 불신은 치유할 수 없는 수위에 이르렀다.반대측 주민들은 찬성측 주민들이 군수와 한수원에 ‘매수’당했다고,찬성측 주민들은 반대로 이들이 외부세력에 ‘세뇌’당했다고 주장한다. 찬성측 집회가 열린 12일 부안예술회관 앞에서는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찬성측 주민 일부는 행사장 안에서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주민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고,성난 반대측 주민들은 행사를 마치고 나가는 찬성측 주민들의 승용차를 향해 발길질을 퍼붓기도 했다.전북대 윤리교육과 이중호 교수는 “집단내 동질성이 강한 농촌사회의 특성상 사회갈등이 일어나면 쉽게 치유되기 힘들다.”면서 “백지화든,주민투표든 이른 시일 안에 결론을 내리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부안 이세영기자 sylee@ 김명석 부안발전協 회장/ “반대많아 정상적토론 불가” 핵폐기장 유치에 찬성하는 김명석 부안경제발전협의회장은 14일 “격앙된 반대여론 때문에 지금으로선 정상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며 투표시기를 늦출 것을 주장했다. 정부가 절차의 잘못을 인정했는데. -시간이 촉박해 김종규 군수가 욕심을 부린 건 인정하지만 법적 하자는 없었다.유치신청 직전 김 군수가 비공식적으로 군의원들의 의견을 물었을 때만 해도 8대5로 찬성이 우세했다. 주민투표는 군민대책위와 협의해 실시한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반대하는 주민들도 알고 보면 지역 종교지도자들과 반핵단체가 퍼뜨린 정보에 세뇌된 사람들이다.불리한 입장이긴 하지만 민·관이 협조해 설득해 나간다면 전망이 어둡지만도 않다. 지역내 반목과 갈등이 심각한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부자간의 의견도 다를 수 있다.하지만 지금 부안은 감정적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는 게 문제다.찬반을 떠나 갈등 치유에 노력해야 한다.원래 주민들은 대단히 온순한 사람들이다.외지인들 때문에 사태가 악화된 만큼 그들만 떠나면 갈등은 해소될 것이라 본다. 원전수거물센터가 왜 필요한가. -원전센터만 들어오면 나도 반대한다.하지만 그것을 유치하면 양성자가속기 사업까지 들어온다.부안은 농어업 의존도가 높은데 이 산업만으로는 미래가 없다.양성자가속기가 들어오면 부설연구소와 산업시설이 들어오고,그러면 인구도 늘고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다. 김진원 대책위 조직위원장/ “시간 끌다가 주민들만 피해” 핵폐기장의 부안 유치에 반대하고 있는 김진원 군민대책위 조직위원장은 14일 “주민투표 시기가 늦춰질수록 찬성측에서 관권과 금권을 동원한 부정선거를 획책할 가능성이 높다.”며 조속한 투표 실시를 촉구했다. 정부가 추가신청을 받기로 했는데. -부안에서 발을 빼려는 수순인지,다른지역과 경쟁시켜 부안내 찬성론자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장관이 구체적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물러난 것은 유감이다. 연내 주민투표가 어렵게 됐는데. -정부가 시간만 끌다가 결국 부안주민만 피해를 떠안게 됐다.주민들은 조속히 문제를 결론짓고 생업으로 복귀하고 싶어한다. 주민갈등 등 후유증이 우려되는데. -갈등은 주민이 아니라 정부가 만든 것이다.빨리 투표를 실시하거나 백지화해 갈등 국면을 끝내야 한다.아직까지는 찬성측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 눈에 띄는 갈등이나 충돌은 없었다.하지만 투표가 늦어지고 찬성측도 찬성운동에 본격 나선다면 심각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왜 원전센터 유치에 반대하는가. -어떤 전문가도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성을 장담하지 못한다.정부가 아무리 안전하다고 떠들어도 지금까지 정부의 행태로 보아 이를 믿을 부안군민이 있겠는가.게다가 핵폐기장이 들어선다면 핵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대를 이어 농사짓고 장사해온 주민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 사진집 ‘작은 평화’낸 가수 한대수 씨/나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히피’

    ▲1948년 부산 출생 ▲66년 미국 뉴햄프셔대 수의학과 입학,중도 포기 ▲68년 뉴욕 사진학교 졸업후 귀국,최초의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활동 시작 ▲70년 국전 사진부문 입선 ▲74년 군제대 후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표 ▲75년 2집 ‘고무신’ 발표,‘체제전복 음악’이라는 이유로 모두 금지곡 처분 받음 ▲77년 미국으로 이주,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중 한대수는 히피다.일부일처제를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쇠우리’로 규정하는 자유주의자.그에게 예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에 사랑과 평화의 씨앗을 심은 ‘원조히피’요,자신은 “80년 존 레넌이 뉴욕에서 총맞아 죽은 뒤 지구상에 살아남은 유일한 히피”다. 한대수는 미니멀리스트다.혼자서 먹고 누울 작은 방 한 칸이면 대저택이 안 부럽다.삼촌이 빌려준 서울 연희동의 8평짜리 오피스텔에는 1인용 매트리스와 기타 2대,낡은 괘종시계,CNN뉴스가 나오는 액정 모니터가 전부다. 한대수는 반자본주의자다.그에게 자본주의란 ‘탐욕’과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반인간적 시스템일 뿐이다.무엇보다“50세 이상을 쓰레기로 만드는 반(反)노인적 체제란 점에서” 그는 21세기의 ‘월스트리트’ 자본주의를 증오한다. ●혼자 누울 방 하나면 기쁜 미니멀리스트 연희동의 오피스텔을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배꼽을 드러낸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상반신 포스터였다. “여러 여자들을 모델로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솔직히 브리트니처럼 ‘동’하는 여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어요.무엇보다 저 배꼽이 인상적이었지요.물론 우리나라 이효리도 배꼽의 ‘도발성’에선 브리트니 못지 않지요.” 맞은 편 벽에 걸려 있는 또 하나의 여자 그림.지하도에서 20만원 주고 샀다는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였다.‘마지막 히피’다운 인테리어 컨셉트였다.그의 히피적 기질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스무살 나이에 세상이 못마땅하고 사는 것이 화가 나 ‘물 좀 달라.’며 고함을 내질렀다.군인들은 ‘물 좀 주소’란 그의 노래가 정보기관의 ‘물고문’을 비꼬았다며 마이크를 뺏었다. 하지만 가수가 아닌 사진가 한대수의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그는 뉴욕사진학교를 졸업하고 당당히 대한민국 국전 사진부문에 입선한 ‘제도권’작가다.고통이 애인이고 고독이 정부(情婦)이던 시절,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맨해튼 거리를 헤맸다.이런 그가 35년 작가 인생을 결산하는 사진전을 지난달 서울 서교동의 한 갤러리에서 열었다.그는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충격에 무감각한 ‘언쇼커블’세대 “원래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입니다.그런데 주변에서 영화가 좋다고 성화길래 영화관에 갔어요.박 감독하고는 ‘공동경비구역’에 내 노래를 삽입한 인연으로 술도 가끔 마시는 사이지요.그런데 도저히 눈을 뜨고 못 보겠더라고요.그날 밤 무서워서 잠도 못잤어요.그런 걸 ‘엽기’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리들리 스콧 감독의 ‘한니발’을 볼 때하고 비슷했습니다.” 의외였다.1960년대 ‘반문화’의 메카 뉴욕에서 20대를 보낸 사람이라기엔 너무 여리고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그는 요즘 세대를 “웬만한 충격에는 좀체 반응하지 않는 ‘언쇼커블(unshockable)’세대”라고 규정했다.음악이든,영화든 자꾸 강한 충격을 주려고만 하니까 대중들의 무감각이 심해진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사회가 너무 선해서 ‘에브리보디 해피’하면 엽기도 하나의 오락거리가 될 수 있어요.하지만 어디 그렇습니까.매일 폭탄이 터지고 하루에도 수백명이 굶어죽어 갑니다.이런 때일수록 예술은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고 인간과 자연에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못마땅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지난달 그가 펴낸 사진집의 제목도 ‘작은 평화’다.1967년부터 뉴욕과 로마,런던,모스크바,울란바토르 등 전 세계 12개의 도시를 돌며 찍은 80여개의 장면들을 크고 작은 프레임에 담았다.모델들은 뒷골목의 악사부터 지하도 노숙자,몽골 유목민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정착하지 못한’ 유랑민들이다.사진에는 제목도,설명도 없다. “어디에서 누구를 찍은 사진인지는 중요치 않아요.전세계의 인간들이 처한 보편적 상황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그것은 고통과 소외입니다.뉴욕이나 서울이나 울란바토르나 약자들은 주리고 소외되고 억압받고 있어요.” 그는 무엇보다 50살이 넘는 사람들을 ‘퇴물’로 전락시키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강하게 비난했다.교육받지 못하고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지금쯤 서울역 어딘가에 사과박스를 깔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지난 97년 펴낸 자서전에서 “우리에게도 히피문화가 있었다면 사람들이 좀더 개방적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적었다.그는 히피를 ‘고정관념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도덕에,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맹목에,일부일처제라는 반(反)생물학적 관습에. “뉴욕은 이혼율이 50%가 넘고 우리나라도 세쌍중 한쌍이 이혼합니다.만약 이혼율이 80%에 육박한다면 결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고,자연스럽게 헤어지고….이게 인간 본성에 가까운 것 아닌가요?” ●한대수는 휴머니스트다 그는 히피정신의 핵심을 ‘동의하지 않음을 동의하라.’는 말로 요약한다.그가 볼 때 살육과 전쟁은 ‘다름’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독선과 아집’에서 시작된다.이라크 전쟁도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은 지금 심각한 ‘오만병’에 걸려 있습니다.테러를 빌미로 오리엔트의 중심지 바그다드를 무력으로 정복했지만 보복의 악순환은 3대를 갑니다.미국은 당장 침략행위를 멈춰야 합니다.” 한대수는 어떻든 휴머니스트다.그가 음악과 사진을 업으로 삼은 것도,미니멀리스트적 삶에 집착하는 ‘마지막 히피’로 체제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고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에 대한 지독한 애정 때문이다.도대체 인간은 왜 고통당하는가.그것은 ‘행복의 나라’를 만든 열여섯살 시절부터 9장의 자작앨범을 발표한 지금까지 그가 줄곧 매달려온 ‘화두’다.그는 오늘도 기타와 카메라를 앞에 두고 일생을 매달려온 ‘인간이라는 화두’에 정직하게 대면하고자 노력한다. 글 이세영기자 sylee@ 사진 강성남기자 snk@
  • ‘재벌 대학생’ 떼강도짓/40여차례 유흥비 조달… 30초만에 편의점 털어

    명품 옷을 입은 강남의 말쑥한 대학생들.기업의 임원,교사,공무원을 부모로 둔 젊은이들이 강도짓을 하다 붙잡혔다.10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반.고개를 떨군 6명의 젊은이는 말이 없었다.“왜 그랬느냐.”는 경찰의 질문에도 1시간 넘게 묵묵부답이었다.한참 뒤 주범격인 홍모(21)씨가 입을 열었다.“나이트도 가고 술도 마시고,돈 쓸 일은 많은데 용돈이 넉넉지 않으니 답답하잖아요.” 이들은 지난 7월부터 강남과 성남 분당 일대에서 2명에서 5명씩 패를 이뤄 40차례 남짓 강도행각을 벌였다.새벽시간 손님이 없는 24시간 편의점만 골랐다.20대 여종업원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내리치고,반항하는 30대 주인의 등을 흉기로 찔렀다. ●종업원 감금뒤 물건 팔기도 이들은 분당의 한 중학교 선후배 사이였다.서울의 사립대 휴학생과 패션모델을 꿈꾸는 모델학과 재학생도 있었다.조사를 받는 동안 이들의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오빠들’의 안부를 묻는 여자 후배들의 전화였다. 이들은 지난 7월4일 새벽 3시쯤 서초구 양재동의 한 편의점에 들어가 주인 이모(37)씨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현금 등 130여만원어치를 털었다.범행에 걸린 시간은 30초도 되지 않았다.40여일이 지난 8월21일에도 같은 곳을 터는 대범함을 보였다.10월20일에는 서초구 반포동의 편의점에서 종업원 남모(24)씨의 손발을 테이프로 묶어 창고에 가둔 뒤 종업원 행세를 하며 태연히 물건까지 팔았다. ●폐쇄회로 테이프 폐기 검거 애먹어 편의점 강도사건이 잇따르자 강남과 서초·방배경찰서가 범인 검거에 나섰다.그러나 이들이 범행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의 테이프를 모조리 수거해 가는 바람에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그러나 이들은 지난달 26일 분당의 편의점을 털다 끝내 덜미를 잡혔다.편의점 안에는 CCTV 카메라 4대가 작동중이었지만 이들은 2개의 테이프만 챙겨 나갔다.경찰은 CCTV에 잡힌 화면을 들고 피해지역 동사무소를 찾아 일일이 사진을 대조해 홍씨를 붙잡았다.경찰은 “홍씨는 부모로부터 수십억원대의 4층짜리 빌라를 물려받은 ‘청년재벌’이었다.”면서 “도대체 뭐가 부족해 범죄를 저질렀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서초경찰서는 이날 이들에 대해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부안 장기시위 원동력’ 전문가 분석/독특한 농촌 공동체 자발 참여 늘어

    핵폐기장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시위가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부안에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과거 핵폐기장 후보지로 거론됐던 안면도와 굴업도 등에서 유사한 양상이 전개됐지만 부안처럼 반발이 장기간 지속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저항이 가장 심했던 91년 안면도 사태는 정부의 백지화로 7일만에 끝났다.95년 굴업도 사태는 7개월을 끌었지만 적극 참가자는 주민 300여명뿐이었다. ●‘부안 현상’…학자들도 관심 최근 부안을 방문했던 상지대 사회학과 홍성태 교수는 “인구 7만명도 안 되는 군 단위 자치단체에서 1만명이 넘는 대규모 집회가 여러 차례 열리고 저녁마다 1000명 규모의 집회가 수개월 동안 이어지는 것은 세계 운동사적으로 유례가 드물다.”면서 “부안시위는 사회운동론적 접근이 필요한 독특한 사회현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안 현상’의 원동력을 부안의 독특한 지역문화와 지도부의 탄탄한 조직력,지도부와 주민과의 효과적인 결합 등으로 분석했다.전북대 사회학과 정철희 교수는 “농촌 특성상 정서적 동질성이 강하고집단주의적 공동체문화가 남아 있다.”면서 “부안 시위는 강도와 지속성 면에서 도시에서 나타나기 힘든 현상”이라고 진단했다.7년째 현지에서 목회활동 중인 부안 제일교회 황진형(50) 목사는 “일과 여가를 함께 하고 희로애락을 공유해온 만큼 한가지 이슈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지기 쉽다.”고 말했다. ●애향심이 장기시위 이끈 주요인 5개월 시위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대를 이어 살아온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풀이된다.부안경찰서 관계자는 “생거부안(生居扶安·살아서는 부안에 거주하라.)이란 말이 있을 만큼 주민들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면서 “그래서 위험시설에 ‘죽기살기’로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운동경험이 풍부한 지도부도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시위를 주도하는 핵폐기장 반대 범부안군민대책위에는 20여명이 상근한다.이들 대부분은 학생운동을 하다 귀향한 농민회 간부와 귀농민들이다.김진원 조직위원장과 김종성 집행위원장은 1970∼80년대 서울서 대학을 다닌 ‘386 운동권’으로 농민회를 이끌어왔다.이현민 정책실장은 대학시절 농촌활동을 부안에서 한 것이 계기가 돼 정착했다.문규현 부안성당 주임신부와 김인경 원불교 교무 등 종교계 인사와 지역원로들로 구성된 공동대표단도 주민들에게 높은 신망을 얻고 있다.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조직력 부안군내 13개 읍·면에 구성된 읍·면대책위에는 자율방범대,지역발전협의회 등 기존의 공조직과 부녀회,청년회 등 비공식 조직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실핏줄처럼 부안군민을 엮고 있는 것이다.읍면대책위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것은 농민회다.70년대부터 이어진 가톨릭 농민운동과 87년의 소몰이 시위,89년의 수세투쟁 등을 거치며 경험을 축적한 농민회는 13개 읍면 가운데 8개면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여기에 지속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면서 지도부의 ‘과학적’ 반핵논리를 익힌 주민들의 자발성도 빼놓을 수 없다. 부안 이세영 유지혜기자 sylee@ ■최규만 안면도 반핵투쟁위장의 제언 “정부와의 싸움보다도 주민간 반목이 더 힘들었어요.” 충남 안면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운동을 이끌며 정부와 3년간 싸운 최규만(崔珪滿·사진·50) 당시 ‘안면도 반핵투쟁위원회’ 위원장은 “1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 앙금이 주민들 사이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유치찬성 일부 주민의 얼굴에는 반핵투쟁 집행부에 몸담았던 이웃들을 보면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저 ××,밥맛 떨어져.’라는 표정이 역력하다고 덧붙였다. 당시 반핵 집행부는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탈자가 늘어나자 이를 막기 위해 핵폐기물유치 찬성주민에 대해 ‘경조사에 불참한다.’‘상여도 빌려주지 않는다.’ 등 10개항의 규칙을 정해 불이익을 주었다.그는 “규칙이 만들어진 후 5촌 고모가 숨졌지만 상여를 빌려주지 않아 홍성까지 가 사서 장사를 치렀다.”며 가슴아파했다. ●안면도는 ‘무조건 NO’ 최씨는 “당시 안면도의 분위기는 ‘보상이고 뭐고 무조건 내 고향에 핵폐기장은 안 된다.’여서 부안처럼 대화의 여지가 없었다.”며 “이는 지역이기주의보다 ‘지극한 고향사랑’”이라고 주장했다.그는 “부안은 대화여지를 남겨 수용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안면도 사태’는 90년11월6∼8일 3일간 일어난 사건이다.‘안면도에 핵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선다.’고 보도되자 주민들이 파출소를 습격하고 휘발유 드럼통에 면직원들을 발가벗겨 붙들어 매 ‘인간 바리케이드’를 만든 뒤 경찰 진입을 저지했다.백지화 얘기가 나오면서 진정됐으나 이듬해 재선정된 후보지에 안면도가 들어가자 주민들은 다시 반대운동에 나섰다. ●장기화되면 집안꼴도 엉망진창 최씨는 “투쟁이 장기화된 시기에 정부의 포섭 및 회유로 유치찬성으로 돌아선 주민들과 반목이 시작됐다.”며 “주민들이 생업까지 포기하고 반대활동에 나서 집안꼴도 말이 아니게 됐다.”고 얘기한다.자신도 건축자재상을 해 ‘안면도 갑부’로 불렸으나 사비를 투쟁자금과 손님접대비 등에 쓰면서 사태후 알거지가 됐다고 한다. 최씨는 “가산을 탕진해 고향을 떠날까 했으나 ‘고향사랑’을 외치며 싸운 게 허구였다는 걸 자인하는 것 같아 못 떠났다.”며 “아내와 함께 소일삼아 낚시로 잡은 고기를 ‘시절 좋을 때’ 사뒀던 양식장에 하나둘 넣어기른 게 생업이 됐다.”고 말했다.그는 “일이 끝난 뒤 돈이 없어 자식들이 빈병을 주워 노트를 사는 모습을 보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며 “부안도 장기화되면 나같이 결딴난 이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결정은 이를수록 좋다 최씨는 “주민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고 이를 백퍼센트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정부는 주민투표든 뭐든 조속히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투명하고 일관성있는 정책추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또 “정부가 ‘시간이 없다.’며 밀어붙였지만 10년 이상을 허송세월했다.”며 “사전에 주민이 핵폐기장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게 안전성을 증명할 수 있는 대책과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대화가 안 되는 상태에서 공권력이 투입되면 ‘생존권’이 달린 주민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옹호했다. 안면도 이천열기자 sky@
  • 시들어가는 부안경제 르포/관광객 발길 ‘뚝’… 일손놓고 한숨만

    전북 부안군 변산면 변산반도 국립공원.맑은 날이면 수평선 너머로 핵폐기장 논란의 진원지인 위도가 잡힐 듯 시야에 들어오는 곳이다.9년째 식당을 해온 김모(45)씨는 요즘 들어 부쩍 위도쪽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짓는 일이 잦아졌다.지난 7월 위도 핵폐기장 유치선언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김씨는 “지난해 이맘때까지도 늦가을 바다정취를 즐기려는 외지인들로 주말이면 주차할 공간이 없었는데…,평년의 3분의 1수준으로 감소했다.”고 푸념했다. ●높아가는 금융기관 연체율 부안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핵폐기장 문제로 거리로 나선 주민들은 5개월째 생업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큰 수입원이었던 관광객의 발길마저 줄었다.지역내 자금사정을 보여주는 금융기관의 연체율은 14%에 육박했다.수개월 안에 지역경제가 파산에 이를 것이라는 위기감도 팽배하다. 1일 부안수협에 따르면 1월초 9.1%였던 연체율은 7월말 12.3%를 넘어섰고 지난달 말 현재 13.8%까지 치솟았다.실제 지역내 어업생산량을 보여주는 격포와 곰소 수협의 위탁판매량은 지난달 말까지 54억 4000여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7.6% 수준에 불과하다.7월 중순 이후 격포항과 곰소항의 어민들이 5개월째 일손을 놓고 있는 탓이다. 격포면 어촌계의 신상규(51)씨는 “지난 5개월간 조업일수가 30일이 채 되지 않는다.”면서 “언제 정상조업이 이뤄질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격포항 주변에 자리잡은 200여개의 횟집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횟집주인 박병화(48·여)씨는 “어선들이 노는 바람에 상품(上品) 활어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면서 “종업원 수를 15명에서 10명으로 줄였다.”며 허탈해 했다. ●7월 이후 관광객 22% 급감 부안은 관광산업의 의존도가 높다.특히 지난 2001년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관광객이 1년 만에 15%나 늘었다.하지만 언론에 비춰지는 부안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 데다 ‘부안에 가면 봉변당한다.’는 근거없는 소문까지 퍼져 관광객들을 막고 있다. 부안군청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부안의 관광객 수는 156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8%가 늘었다.하지만 7월 이후 4개월간 관광객 수는 지난해 보다 22%가 감소한 126만명에 머물렀다.연간 1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던 관광수입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다. ●“폐기장 이후 지역경제 붕괴” 주민들은 갈등국면이 지속돼 입게 될 당장의 피해보다 핵폐기장이 들어선 이후의 상황을 더 우려한다.20년째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정순(46·여)씨는 “핵폐기장이 들어서 격포와 변산,위도면의 어업과 관광업이 무너지면 부안읍의 자영업자들도 큰 타격을 입는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걱정은 자영업·서비스업 종사 인구가 전체 군민의 46%에 이르는 이 지역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부안수협 관계자는 “수입원이 농·어업과 관광업 밖에 없는데 이마저 핵폐기장 때문에 무너진다면 지역경제 전체가 붕괴될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부안 이세영 유지혜기자 sylee@
  • “주민투표 늦추면 굶어죽을 판”/‘불안한 휴전’ 부안 르포

    모처럼 찾아온 부안의 평화는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30일 전북 부안읍에서는 촛불집회를 봉쇄하려는 경찰과 강행하려는 주민 사이에 밤늦도록 실랑이가 이어졌다.핵폐기장 문제의 해법을 두고 시민단체 중재단과 정부측의 막후협상이 벌어지는 가운데 29일 집회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돼 ‘유화국면’이 이어지리라는 기대감이 싹트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경찰이 촛불집회를 불법 야간집회로 규정,집회장소인 부안수협앞 네거리를 원천봉쇄하면서 24시간 동안 이어진 불안한 ‘휴전상태’는 끝내 결렬됐다.경찰은 4개중대 4000여명을 집회장소 주변에 배치,행사를 강행하려던 군민대책위 김선곤 공동대표 등 30여명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50대 여성 2명이 실신해 인근 병원에서 치료중이다.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던 이들은 한 사복경찰로부터 성적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듣고 흥분,상의를 벗은 상태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 실신했다.이를 지켜본 주민 100여명이 밤 11시가 넘도록 경찰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등 곳곳에서 대치상태가 빚어졌다.대책위는 경찰이 부안수협앞 촛불집회를 불허키로 하자 당분간 부안성당에서 촛불집회를 계속 열기로 했다.이에 따라 경찰도 당초 약속대로 경찰력을 단계적으로 철수키로 했으나 일정별 철수규모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민들 정부카드에 냉담 한편 주민들은 정부측의 ‘선 냉각기,후 주민투표’카드에 극도로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부안읍에서 20년째 국밥집을 운영해온 김종두(57)씨는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정부측 제안에 대해 “불리한 여론을 뒤집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기만책”이라고 일축했다.김씨는 “공짜관광 보내주고 심지어 공청회에 참석하는 주민들에게 값비싼 선물세트를 돌리는 등 한수원의 행태를 보면 도저히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불신을 토로했다. 1개월전 한수원으로부터 일본여행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는 자영업자 김모(50)씨는 “한수원이 주민들을 지위와 재산에 따라 3등급으로 분류해 1등급은 유럽,2등급은 일본과 동남아,3등급은 동해안 관광을 보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주민들은 조급해 하고 있다.‘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지난 7월 김종규 부안군수의 핵폐기장 유치선언 이후 주민들은 유례없는 장기간의 투쟁을 통해 결속력과 자신감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오랜 ‘외도’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5개월 동안 매일 저녁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건어물상 이정순(46·여)씨는 “절박감 때문에 매일 나가지만 솔직히 지치기도 하고 생계에도 타격이 막대하다.”고 털어놓았다.대책위 김진원 조직위원장은 “사태를 조기에 종결짓자는 주민 요구가 높다.”면서 “내년에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것은 그때까지 이들에게 생업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핵은 생태계뿐 아니라 인간성도 파괴” 사태해결이 해를 넘기면 주민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커져 지역공동체의 균열이 심각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부안 제일교회 황진형(50) 목사는 “해결이 지연될수록 지역내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이라면서 “핵 폐기장이 환경뿐 아니라 인간성도 ‘기형’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실제 부안읍에서는 전경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업소 주인과 주민간 갈등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최근에는 한수원이 부안출신 대학졸업자들을 직원으로 특채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성인 자녀를 둔 주민들 사이에 적잖은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다. ●두차례 전국규모 집회 예정 대결과 협상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됐던 29일 부안수협앞 대규모 집회에는 부안군이 생긴 이래 최대 규모인 1만 3000여명의 군민이 참석했다.대책위는 결의문을 통해 사태해결이 지연되면 주민등록증 반납투쟁도 불사하겠다고 주장했다.또 12월 6일과 13일 전국 규모의 연대집회를 부안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안 이세영 유지혜기자 sylee@
  • “도둑맞은 내점수 돌려줘”/‘3번답’ 수험생 재채점 중지 신청 검토

    “우리들의 심리적 박탈감은 어디서 보상받습니까.” 25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1번 출구 앞.오후 2시가 가까워오자 앳된 모습의 학생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이들은 ‘3’이란 숫자를 적은 A4용지를 들고 있었다.10분쯤 지나자 이들의 숫자는 20여명으로 불었고 40∼50대 중년 여성 10여명도 주변을 맴돌았다. 이들은 인터넷 다음 사이트에 만들어진 ‘언어영역 17번은 3번이 맞습니다’(cafe.daum.net//right173)란 카페의 ‘오프라인 결사대원’이라고 밝혔다.이들은 지난 5일 대입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 17번 문제에서 3번 문항을 정답으로 선택했다.하지만 24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3번만 정답이라는 당초 입장을 뒤집어 5번도 복수정답으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기득권’을 잃게 될 처지에 놓였다. 결사대의 ‘행동대장’ 최인호(18·안양 부흥고 3년)군은 “신문을 샅샅이 뒤졌지만 왜 5번도 정답인지 속 시원한 답변을 찾지 못했다.”면서 “문제를 출제한 교육과정평가원은 우리의 심리적 박탈감을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처음 카페를 개설한 것은 지난 19일.수능 일주일 뒤 17번 문제에서 5번 문항을 선택해 오답처리된 수험생들이 다음 사이트에 ‘2004언어문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problem17)이란 카페를 개설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같은 사이트에 카페를 만들었다.모임의 개설자인 임원석(23)씨는 “처음 ‘5번 응답자 카페’가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역대 수능에서 뒤늦게 복수정답을 인정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대다수 회원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어제 평가원 발표 직후 회원등록이 폭주해 지금은 등록자가 20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무엇보다 평가원의 이번 결정으로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정시모집에서 받게 될 ‘불이익’을 우려했다.양용성(19·재수생)군은 “17번의 경우 배점은 2점이지만 당초 정답률이 15%정도였기 때문에 변환점수로 환산하면 그 비중이 3∼4점에 맞먹는다.”면서 “당락을 좌우할 점수를 고스란히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이들은조만간 수능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자료집을 발간하고,법원에 재채점 중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것도 검토중이다. 이세영기자 sylee@
  • 서울속 연탄마을 /(하)빈곤의 ‘개미지옥’ 실태

    서울의 연탄마을은 빈곤의 ‘개미지옥’이다.탈출하려고 몸부림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든다.1세대의 가난이 2세대에게 대물림되고 부모의 직업마저 자식에게 상속되는 곳.유일한 탈출수단인 ‘교육’은 빈궁한 가계 탓에 그 기회마저 봉쇄된다. 35년 동안 연탄을 때온 이길수(가명·61·영등포구 문래1동)씨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다.지난 70년 고향인 충북 충주 읍내의 다방 여종업원과 사귀다 함께 상경한 뒤 응암동과 홍제동,신대방동 산동네를 거쳐 4년 전 문래1동 ‘쪽방촌’까지 흘러들었다. ●가난과 직업마저 대물림 상경 전 충주에서 본처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었지만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20여년 전 아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다 가출했고,딸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뒤 연락이 없다. 이씨는 “가진 것도,배운 것도 없는 녀석들이니 언젠가는 나처럼 ‘막장’으로 흘러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매일이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성북구 월곡3동,송파구 거여동,영등포구 문래동 등 4개 지역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20가구의 가계를 추적한 결과 1세대의가난이 2세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음을 확인했다.20가구에 살고 있는 1세대 27명의 직업분포(무직자는 최근 5년 직업)는 공사장 인부가 7명,파출부 4명,주방보조 1명,경비원 1명 등 일용직 비율이 48.1%였다.나머지는 자영업자,공장근로자,택시운전사 등이었고,5년간 직업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도 33.3%나 됐다. ●1세대 ‘중졸-일용직’,2세대 ‘고졸-무직’ 다수 2세대 40명 가운데 군 복무·재학중이거나 연락이 두절된 17명을 뺀 23명의 직업분포는 1세대보다 오히려 악화된 양상을 보여줬다.5년간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 않은 무직자가 무려 47.8%였다. 교육수준은 1세대의 경우 중졸이 37.1%로 가장 많았다.초졸이 25.9%,고졸과 무학(無學)이 각각 18.5%로 나타나 전체적으로 중졸 이하 저학력층이 60%가 넘었다.2세대 가운데 만 19세 이상의 성인 34명을 조사한 결과 고졸이 44.1%,중졸이 29.4%였고,전문대 재학 이상의 ‘상대적’ 고학력자는 14.7%에 그쳤다. 이같은 결과는 ‘저소득→저학력→저소득’으로 이어지는 빈곤세습의 구조를여실히 보여준다.홍제3동 주민 정옥선(가명·70·여)씨의 가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가난 때문에 교육기회 놓쳐 정씨는 전북 익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 일을 거들다 31살 때 결혼,공사장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남편을 따라나섰다.대전,충북 괴산,부산,경기 부천 등을 거쳐 남편과 사별한 83년 서울에 정착했다.파출부와 노점을 하며 10년만에 홍제동의 무허가 주택을 샀다.하지만 슬하의 2남2녀는 이미 교육기회를 놓친 뒤였다. 중학교만 마치고 살림을 거들어온 큰아들(37)은 택배회사에 다니다 허리를 다쳐 7개월째 집에서 쉬고 있다.둘째아들(33)은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마치고 용산전자상가에서 수리공으로 일한다. 중학교 졸업 후 부천의 섬유공장에 다니던 큰딸(28)은 동료와 결혼해 역시 부천의 산동네에 산다.막내딸(22)은 전문대까지 보냈지만 취직이 안 돼 미용기술 학원에 다닌다.정씨는 “남들만큼 가르치기만 했어도 자식들만은 지긋지긋한 산동네를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라며 울먹였다.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는 “지금까지교육은 빈곤층 자녀가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면서 “저소득층 자녀들이 학교교육만으로도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영 이유종 기자 sylee@ ■24년 연탄제조 김두용씨 “15년 전만 해도 좋았죠.연탄을 실을 트럭이 공장 입구부터 100m는 쭉 늘어서 있었으니까요.” 2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삼천리연탄공장 연탄기계를 만지던 김두용(사진·54)씨는 “한참 잘 나갈 때에 비하면 20%도 못 찍어낸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김씨가 이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9년.그때만 해도 연탄공장은 최고의 직장이었다.월급을 ‘대기업 못지 않게’ 받을 정도였다. 연료로서 연탄의 최전성기는 86년부터 88년까지.지난해 문을 닫은 대성연탄과 함께 ‘연탄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절이었다.하루에만 200만장 넘게 찍어냈다.김씨는 “월동 기간인 9월 말부터 12월까지 280여명의 직원들이 매일 아침 6시부터 하루 15시간 꼬박 일해도 주문을 맞추기 힘들었다.”면서 “국민들의 겨울을책임진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89년 이후 수요가 급감했다.요즘은 하루 30만장도 못 찍는 날이 많다.그 바람에 직원이 이제는 22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공장의 경우 97년 IMF 위기 이후 연탄 수요가 더 이상 줄지 않는 것.기름값은 오르고 있지만 현재의 공장도가격 184원은 20년 전에 비해 두 배도 안 되는 등 가격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김씨는 “요즘 경제가 어려운 만큼 수입 기름보다 값싸고 품질 좋은 국산 연탄을 쓰는 게 어려운 경제를 위해서도 더 좋다.”고 제안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달동네' 어제와 오늘 “달과 가깝다고 달동네라고 불리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지 알어?” 산 모양이 반달을 닮았다는 월곡동(月谷洞).재개발을 앞둔 서울 성북구 월곡3동 산2번지에 사는 김명자(가명·68·여)씨는 30년 이상 연탄 때는 달동네에 살아온 심정을 이같이 표현했다. 이곳은 지난 1960년대 말∼70년대 농촌과 철거지역에서 이주민들이 몰려들기 전에는 주민들이 산비탈을 갈아엎어 밭을 일구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당시 청계천과 중랑천 주변 무허가건물에 살다 정부 시책에 따라 이주한 주민 대다수도 아직 이 곳에 남아 있다.지난해 6월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뒤에는 주민들이 이사갈 임대주택과 아파트를 알아보느라 분주하다. 서대문구 홍제3동의 ‘개미마을’도 60년대 이농열기를 타고 이주민이 몰려 들어 생겨난 곳이다.당시 인왕산 북쪽 7부 능선까지 빼곡히 들어찬 무허가 판잣집이 1000가구를 넘었다.하지만 70년대 초 남북적십자회담 당시 북한기자들이 동네 모습을 촬영해 보도하면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대대적인 철거작업이 시작됐고 큰길에서 훤히 보이던 윗마을 판잣집은 대부분 철거되고 아래쪽에 있던 200∼300가구만 남았다.철거민들은 ‘광주대단지’라 불리던 지금의 성남으로 강제이주됐다.현재 ‘개미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은 대부분 10∼20년전 이사왔다.하지만 동네 모습은 60∼70년대 그대로다.간혹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촬영지로 이용되기도 한다.지금은 ‘아홉살 인생’이란 영화가 촬영되고 있다. 송파구 거여동 182번지에 흙벽돌에 슬레이트를 얹은 판자촌이 형성된 것은 용산역과 신설동,제기동 등지에 살던 무허가 주택의 주민들이 이주해온 1960년대 후반.서울시 재개발계획에 따른 것이다.지난 63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남한산 서쪽 산기슭에 800여명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이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지금은 900가구를 넘어섰다.동사무소 직원 김영수(51)씨는 “잘 사는 사람들이 인정은 더 박하다.”면서 “3년 전에는 판사 아들이 부모를 여기다 내팽개치고 간 ‘신고려장’도 있었다.”며 혀를 찼다.송파구는 지난 78년부터 재개발을 추진했으나 이곳이 철거되면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세입자 1600여명은 막막하기만 하다. 영등포구 문래1동의 연탄마을 ‘쪽방촌’은 60년대 제조업 중심의 고속성장이 남겨놓은 유물이다.한국전쟁 직후 생겨난 이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피란민들이 모여들었고 경성방적과 방림방적이 들어섰다.여공들로 다락방까지 꽉 찬 70년대 중반이 쪽방촌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쪽방 대신 철재상이빼곡히 들어선 70년대 말부터 여공들은 하나둘씩 이곳을 떠났고 월세수입이 줄면서 집주인들도 이사를 갔다.거기다 ‘IMF 한파’까지 겹쳐 철재상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으며 쪽방촌은 더욱 썰렁해 졌다. 지금은 세들어 사는 독거노인이 대부분이다.주민들은 5∼6년 전부터 소문으로 떠도는 ‘재개발 계획’에 솔깃해 있다.하지만 미래는 확실치 않다.영등포구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도로가 제대로 정비돼 있는 등 재개발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서울속 연탄마을/(상)사용가구 실태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산 1번지.북한산이 마주 보이는 인왕산의 북측 자락에 30년은 족히 됨직한 낡은 집 20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다.가구 당 평균 면적은 10평 미만.대부분 부실한 시멘트 블록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불량가옥들이다.화장실조차 갖추지 못한 집들이 많아 아침이면 공중화장실 앞에 3∼4m씩 길게 줄을 선다.이곳은 10여년전 주거환경개선지역으로 지정됐으나 전혀 진척이 없다. ●30년 전을 살아가는 사람들 20분에 한번씩 힘겹게 비탈길을 왕복하는 마을버스는 1970년대의 산 허리와 2000년대의 산 아래를 연결하는 ‘타임머신’이다.이곳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버스를 타고 ‘시간의 등고선’을 오르내린다. 주민 윤설자(70)씨는 16년째 이 마을에서 700만원짜리 전세방에서 남편과 살고 있다. 그의 일과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연탄을 가는 일로 시작된다.윤씨는 45년째 연탄만 사용해 왔다.하지만 새벽녘 연탄갈이는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3남매가 있지만,연락이 끊기거나 출가해 왕래가 드물다. 윤씨는 “당장이라도 기름보일러로 바꾸고 싶지만 교체비용 200만원과 매달 기름값 10만원이 부담스러워 엄두를 못낸다.”고 푸념했다.이 곳에는 연탄 때는 집이 30가구에 이른다. 지난 1월 서울시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서 연탄을 난방연료로 사용하는 가구는 7500가구.1만 319가구였던 지난해 1월보다 27.6% 줄었다.하지만 이 수치 역시 지난 11개월 동안 진행된 재개발과 주택개량 실적을 고려하면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다. ●서울 연탄가구 5000곳 추정 대한매일 확인 결과 올해 초 연탄때는 가구가 903개였던 동대문구는 답십리 5동의 재개발로 650여가구로 줄었다.618가구였던 송파구도 잠실 2·3단지의 철거로 250여가구만 남았다.동작구는 흑석동과 상도동 일대의 재개발로 607가구에서 300여가구로 줄었다.서울시 관계자는 “지금은 5000가구 정도만 난방용 연탄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같이 연탄사용 가구가 감소하는 것은 80%에 육박한 도시가스 보급률과 지역난방공급의 지속적 확대,재개발과 재건축 등으로 난방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80년대 초반까지도 80%를 웃돌던 연탄의 연료 점유율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실시된 대규모 재개발 사업과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의 200만호 주택공급 정책을 계기로 비율이 급격히 줄었다.91년 53.8%였던 점유율은 93년 31.3%,95년 11.8%로 감소했고,2000년에는 0.9%까지 떨어졌다. 반면 도시가스는 91년 8.7%에서 95년 43.5%,2000년 72.7%로 성장세가 뚜렷하다.그러나 문제는 연탄사용률이 줄었지만 연탄을 쓰던 사람들의 생활상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전·월세 세입자 연탄은 대부분 도시가스 배관의 접근이 어려운 고지대 노후주택 단지나 저소득층 밀집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재개발을 앞둔 지역에 있거나 집주인과 거주자가 다른 집일수록 연탄사용 비율이 높았다. 대한매일 조사결과 홍제 3동 등 서울의 4개 지역 연탄사용가구 20곳 가운데 19곳이 전세와 월세 등 세입자가 거주하는 곳이었다.나머지 한 곳은 시유지에 지어진 무허가주택이었다. 이세영 이두걸 이유종기자 douzirl@ ■연탄의 사회사 지난 1950년대 초까지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장작으로 온돌을 달궈 방을 데웠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중부지역 주민들이 영남지역으로 피난을 가면서 부산을 중심으로 시행되던 연탄 난방법이 전국에 전파됐다.다다미를 깐 목조건물이 대부분이었던 부산에서는 온돌 대신 연탄이 든 흙 화덕을 방안에 놓고 난방과 취사를 겸하는 방법이 일찍부터 보편화돼 있었다. ●부산에서 전파된 연탄 난방법 연탄은 한국의 산업자본주의와 생애주기를 함께 했다.국내 연탄산업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행되던 1960년대 중반.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마무리된 86년 67억 3600만장을 찍어낸 것을 정점으로 급격히 쇠퇴했다.수출주도형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60년대에는 연탄가격을 관리하는 일이 정부의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도시 근로자들의 임금을 가능한 낮게 유지해야 했고,여기에는 도시민의 생필품인 쌀과 연탄의 가격안정이 필수적이었다. ●연탄 품귀로 온 나라가 들썩 이런 점에서 1966년 겨울의 ‘연탄파동’은 한국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만큼 큰 사건이었다.유달리 한파가 일찍 몰아닥친 66년 10월 연탄이 부족하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품귀현상이 빚어져 한 장에 10원이던 19공탄이 17원까지 70%나 폭등했다. 서울지역 곳곳에서 주부들이 연탄집게를 들고 나와 업자들과 대치했다.동장들은 시청 연료과로 몰려가 “연탄배급제를 공정하게 시행하라.”며 농성을 벌였다. 급기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소집,“장관직을 내놓을 각오로 조속한 시일 안에 필요량의 연탄을 공급하라.”고 엄포를 놓았다.경제기획원은 연탄값 폭등을 막기 위해 연탄판매업자의 대량판매를 금지하는 법률안을 마련했다.하지만 가을이면 고시가격을 위반한 연탄업자들이 무더기로 입건됐다는 소식이 어김없이 신문을 장식했다. ●애환 얽힌 연탄의 추억 연탄가스 중독사고만큼 신문에 자주 등장한 사고는 없었다.연탄가스가 많은 해에는 90만명 이상이 중독됐고 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이 때문에 사람들은 연탄가스를 ‘안방사신(死神)’이라고 불렀다.70년대를독산동의 ‘벌집촌’에서 보낸 소설가 성석제는 “겨울이면 날마다 연탄가스 중독자가 생겼고,벌집 주인들의 가장 큰 일과는 아침에 인기척이 없는 방문을 열어 가스중독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연탄은 서민들의 난방·취사연료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퇴근길 어른들은 동네 어귀 포장마차에서 연탄화덕에 구운 양미리,쥐포 등을 안주 삼아 막걸리잔을 기울였다. 요즘의 30,40대들에겐 어린 시절 연탄불에 국자를 올려놓고 엄마 몰래 ‘뽑기’를 만들다 들켜 야단맞은 기억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연탄재는 빙판 진 골목길의 미끄럼 방지용,도심 텃밭의 비료대용으로 제격이었다.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연탄이었기에 시인들은 곧잘 연탄을 ‘이타적 삶’의 메타포로 활용하곤 했다.시인 안도현은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세영 유지혜기자 sylee@ ■설문·심층면접 어떻게 했나 대한매일은 서울시 에너지행정팀이 지난 1월 1일 25개 자치구별로 집계한 ‘가정용 연료사용 현황’을 토대로 조사대상 구를 1차 선정했다.이어 각 구청 지역경제과와 동사무소의 도움으로 이 가운데 연탄사용 가구가 집중된 지역 4곳을 추렸다. 조사지역으로 선정된 곳은 서대문구 홍제3동 산1번지와 성북구 월곡3동 산2번지 등 1960∼70년대에 형성된 달동네 지역,송파구 거여동 181번지 일대와 영등포구 문래1동 영일시장 주변 등 저소득층 밀집주거 지역이다. 표본이 특정 지역에 편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울의 동북과 서북,동남,서남 지역에서 1곳씩을 골랐고 표본수가 적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1개 지역당 5가구씩을 무작위로 추출했다.이어 각 지역의 세대주에게 생활환경과 주거 형태,소득수준 등을 묻는 설문 15개항을 제시하고 심층면접을 병행 실시했다.이 과정에서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에게 기술적 조언을 구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세대주의 사회·경제적 지위 뿐 아니라 전체 가족과 동거중인 가족의 학력과 직업,거주지를 추적하는 가계조사를 통해 빈곤의 대물림이 이뤄지는 실태를 조명했다.
  • 연탄 동네 ‘도시속 섬’/ 세대주 나이 63세·가구당 월수입 48만원

    무게 3.6㎏,발열량 460㎉의 원통형 화석연료.도시가스와 아파트형 주거문화가 보편화된 현실에서 연탄의 몰락은 필연이다.하지만 2003년 11월 현재 서울 시민의 0.15%는 여전히 연탄을 난방연료로 사용하고 있다.정보화시대의 첨단도시 서울에서 산업화시대의 석탄연료에 의지해 겨울을 나야 하는 그들은 누구인가.대한매일은 연탄사용가구가 밀집한 ‘연탄 섬’ 4곳을 찾아 주민의 삶을 밀착 취재했다. 오로지 벌겠다는 일념으로 짐을 꾸렸다.고향인 전남 담양을 뒤로 하고 무작정 떠났다.차창 밖 만경평야는 서글프게 푸르렀다.창신동 산동네에 사글세 판잣집을 얻고 일거리를 찾아 서울거리를 헤맸다.3년 만에 마련한 8평 짜리 전셋집.고향 읍내 기와집이 부럽지 않았다.하지만 시골 부모 생활비에,아이들 학비에,돈은 좀체 모이지 않았다.이사철이면 산동네를 떠도는 생활이 반복됐다.서초동,현저동을 거쳐 홍은동,홍제동까지.윤중호(67·가명·서대문구 홍제3동)씨는 지금도 35년 전과 다름없이 산동네 판잣집에서 연탄을 때며 겨울을 난다.이젠 운명이거니 체념하고 있다. ▶관련기사 13면 대한매일이 서대문구 홍제3동,성북구 월곡3동,영등포구 문래동,송파구 거여동 등 4개 지역에서 연탄을 난방연료로 사용중인 20가구를 무작위로 추출,설문과 심층면접을 실시한 결과 80%인 16가구가 월 소득 50만원 이하의 극빈층으로 조사됐다.전체 20가구의 월 평균소득은 48만 4000원으로 35%인 7가구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가구였다. 이들의 75%는 1960∼70년대 이농열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서울 토박이는 25%에 불과하다.연탄을 사용한 기간은 평균 33.8년.연탄 말고 가스나 기름 등을 사용해본 경험이 전혀 없다는 가구가 85%나 됐다. 조사결과 이들의 85%는 연탄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가격이 저렴해서’라고 답했다.‘동네에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서’라는 응답은 10%,‘사용이 편리해서’나 ‘다른 연료보다 따뜻해서’라는 응답자는 없었다. 세대주 20명의 평균 나이는 62.8세.직업은 무직이 70%,공사장 인부,파출부 등 일용직이 20%였다.무직자 14명 중 4명은 최근 5년 동안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그나마 직업을 가졌던 10명도 모두 일용직이었다. 건강문제도 심각했다.응답가구 모두 가족 중 질병을 앓는 사람이 한 사람 이상 있다고 답했다.질병 가운데 관절염,당뇨,고혈압 등 노인성질환이 70%로 가장 많았고 기관지염,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앓는다는 응답도 25%나 됐다. 월곡3동 달동네 인근에 위치한 백제의원 관계자는 “대부분 고령자로 노인성 질환이 많다.”면서 “부실한 난방 탓에 겨울철에는 호흡기 질환자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극빈층에게는 기초생활보장 제도 뿐 아니라 적극적인 일자리 제공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5%에 불과한 공공부문의 고용비율을 터키와 비슷한 10%로 확대하면 50만∼60만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자활노력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공적부조의 규모 또한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세영 유지혜 기자 sylee@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