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양민학살 파문
미국이 아부그라이브 포로학대 사건을 능가하는 이라크전 최악의 스캔들에 휘말렸다.이라크에서 작전을 벌이던 미 해병대가 지난해 11월 무고한 민간인 20여명을 무차별 살해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이미 사건의 핵심증거와 진술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반전운동 진영에선 벌써부터 ‘이라크판 미라이 학살’로 규정하고 이번 전쟁의 부도덕성을 쟁점화할 태세다.지난 1968년 미군이 베트남의 농촌마을 미라이에서 민간인 500여명을 무참히 학살한 이 사건은 베트남전의 도덕성을 결정적으로 훼손,반전여론을 고조시켜 결국 미군의 철수를 이끌어냈다.
미 해병대는 당초 지난해 11월19일 이라크 서부 안바르주 하디타에서 순찰도중 반군세력과 교전이 발생,이 과정에서 민간인 15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그러나 이후 진행된 조사 결과 해병대는 순찰도중 도로에 매설된 폭탄이 폭발,대원 1명이 숨지자 인근 민가에 난입,부녀자 등 주민들을 무차별 살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디타 주민들의 진술을 인용,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살해된 이라크 주민 24명 중에는 어린이 6명과 여성 다수가 포함돼 있다.군 조사단이 확보한 현장 사진에는 피해자 일부가 머리와 등 부위에 총상을 입는 등 정상적인 교전에 의한 게 아니라 이들이 사실상 처형됐음을 암시하는 증거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최소 12명의 군인들이 민간인 살해와 이후 사건은폐 과정에 가담했다.”면서 “군 조사단이 조만간 이들을 살인과 직무유기,증거조작 등의 혐의로 고발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군 당국은 중간 수사상황을 지난 25일 일부 의원들에게 브리핑했다.의원들은 조사결과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익명의 수사관계자는 범행에 가담한 해병대원은 모두 10여명에 이르지만 하사 등 4명이 직접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이에 앞서 미군 당국은 이 사건 조사와 관련,해당부대의 대대장과 중대장 2명 등 3명을 보직 해임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