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색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5만원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입사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시비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청탁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497
  • [업계소식-CF]기분 좋은 날 ‘놀부 가는 날’

    [업계소식-CF]기분 좋은 날 ‘놀부 가는 날’

    외식문화기업 놀부가 최근 탤런트 엄지원을 모델로한 TV CF를 선보였다. 호주 시드니에서 촬영된 이 CF는 ‘오늘 같은 날´이라는 핵심 슬로건을 중심으로 기분 좋은 날의 에피소드를 화면에 밝게 담았다. 외식업계 광고로는 드물게 음식을 먹는 장면이 없는 게 이색적이다. 광고 속에는 음료수를 마시려고 자판기에 동전을 넣자 음료수와 함께 수많은 동전이 쏟아지는 등 총 네 가지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 [Metro] 성남시민 건강축제 2일 개막

    성남시는 2일부터 16일까지 수정구 양지동 남한산성 유원지 놀이마당 일대에서 ‘성남시민 건강축제’를 개최한다고 31일 밝혔다. 성남시의사회와 치과의사회, 한의사회, 약사회로 구성된 성남시민건강축제 공동추진위원회가 주관하며, 다양한 의료분야를 체험할 수 있는 건강체험관이 운영된다. 성남시민 건강 걷기대회와 이색적인 부대 프로그램도 마련된다.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29)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서울대성당

    [종교건축 이야기] (29)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서울대성당

    한국정교회. 신교인지, 구교인지, 아니 한국에선 그 존재마저도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 하지만 엄연히 전국에 2000명의 세례교인이 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교회다. 서울을 비롯해 인천 부산 전주 춘천 양구 용미리 등 7개의 정교회 성당에서 매일 하루 두번씩 예배가 열리며 주말엔 어김없이 성찬예배가 진행된다. 이 가운데 서울 마포경찰서 맞은 편 언덕의 성 니콜라스 대성당(마포구 아현1동 424-1)은 한국정교회의 총본산격으로, 한국에선 처음 세워진 비잔틴 양식의 독특한 공간이다. “하나인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정교회 교인들은 신앙의 신조 ‘니케아 신경’을 외울 때 이렇게 말한다.‘그리스도께서 세우셨고, 오순절에 거룩한 사도들에 의해 세상에 널리 전파되었고 위대한 교부들에 의해 조직되고 지역공의회와 세계 공의회의 보호를 받은 교회’.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 5대 교구가 형성되어 내려오던 그리스도교는 1054년 동서방 교회의 분열로 인해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의 4개 지역을 관할하는 정교회와 로마를 배경으로 한 로마 가톨릭으로 갈라졌다. 이 가운데 정교회는 서방교회라 부르는 로마 가톨릭과 구분해 동방교회로 통한다. 한국정교회는 아직 독립교회나 자치교회로 인정받지 못한 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를 모교회(母敎會)로 선교활동을 펼치는 작은 교회. 그리스에서 파송된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를 중심으로 그리스 출신의 주교와 한국인 신부 6명, 한국인 보제신부 1명, 러시아 출신 신부 1명 등 9명의 사제가 사역하고 있다. 종교로서의 정교회는 1900년에야 이 땅에 처음 들어왔지만 정교회와 우리와의 만남은 800년전 고려시대부터 있어왔다. 몽골 군이 유럽을 유린하던 중세시대 몽골에 파견되었던 로마 교황청의 사절이 남긴 기록을 들여다 보면 몽골의 왕실은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이어서 러시아에서 온 대공(大公)을 후하게 대접했다. 당시 볼모로 잡혀가 있던 고려 왕실 등의 귀족 자제들이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조선 영조시대 청나라 베이징에 사신으로 갔던 이윤신은 ‘문견사건(聞見事件)’에서 ‘큰 코 오랑캐’라는 의미의 대비달자(大鼻獺子)를 만났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 대비달자는 바로 ‘코 큰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 조선 선교책임자로 입국한 러시아 흐리산토스 쉐헤트콥스키 대신부가 그해 2월17일 러시아 공사 관저의 큰 방에서 성찬예배를 드린 것이 한국정교회의 시초. 한국정교회는 그 날을 생일로 삼고 있다. 고종으로부터 부지를 하사받아 지금 경향신문 자리인 서울 정동 22번지에 첫 성당을 세웠는데 러시아에서 제작해 들여온 7개의 크고 작은 이색 종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소리가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이후 정교회는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의 선교사가 모두 추방되면서 사실상 단절됐지만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교구로 조직되어 교세를 늘여가다가 한국전쟁을 맞아 다시 철퇴를 맞았다.1947년 한국인 사제 알렉세이 김의한이 서품되었지만 전쟁 발발 두 달뒤 납북되어 처형되었고 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던 것이다. 정동성당도 전쟁의 와중에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당시 한국에 파병된 그리스 병사들이 매월 1달러씩 모아 성당 복구 비용에 보태기도 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육군의 종군 사제인 안드레아스 할쿄풀로스 대신부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보리스 문이춘이 교회재건에 나서 1968년 아현동 언덕에 지금의 성당을 세워 놓았다. 로마 가톨릭 교회들이 긴 사각형의 공간을 도드라지게 만들어 신과의 만남을 강조하는 바실리카 양식을 택한다면 정교회 교회들은 한결같이 중앙의 둥근 돔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하늘의 빛을 수렴하는 비잔틴 양식을 쓴다. 성니콜라스 대성당도 다르지 않다. 멀찌감치서 볼 때도 지붕의 둥근 돔이 가장 먼저 눈에 든다. 성당 입구 왼쪽에 선 아치형 종탑도 보통 교회나 성당의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모두 5개의 크고 작은 종들에 내리 걸린 줄을 잡아당겨 치도록 했는데 요즘도 매일 예배 때 어김없이 종이 울린다. 정교회가 처음 들어오면서 선교사들이 러시아에서 7개의 종을 들여왔는데 전쟁중 2개만 남긴 채 모두 파손되었고 지금은 이 2개와 나중에 그리스 정부가 기증해온 3개의 종을 모아 5개의 종을 걸었다.1978년 종탑을 세울 때도 파병 그리스 병사들이 모금한 돈이 쓰여졌다고 한다. 정문 위에 걸린 수호성인 성 니콜라스의 금색 모자이크상을 보며 성당 문을 들어서면 비잔틴 양식 그대로 천장의 거대한 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중앙 돔을 기준으로 신자석과 전례공간인 지성소가 나뉘지만 중앙 돔 양쪽에 사각형 공간을 각각 두어 결국 내부 공간은 십자가 모양을 갖추고 있다. 성당 문 바로 앞에는 양쪽에 촛불을 밝히는 성초대가 있는데 신자들이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나를 희생하고 이타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정화의 공간이다. 전례공간으로 가다 보면 신자석 앞 왼편에 세례조가 눈에 띈다. 전통적으로 침수 세례를 고수하는 정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지하 1.5m 깊이의 공간에 물을 채워 신자들이 세번 물속에 잠기는 과정을 통해 세례를 받는다. 정교회는 로마 가톨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화(聖畵)를 중시한다고 한다.4세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성화는 대부분 복음서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리스도교의 심오한 진리를 신자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보조교재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성당 안은 온통 성화로 도배되다시피 장식됐다. 모두 그리스 아테네대학의 소존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제작해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중앙 돔 역시 거대한 성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상 만물을 주관하는 꼭대기의 예수를 정점으로 성모 마리아와 천사·세례요한, 구약의 예언자 아브라함·다윗·모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이른바 구약의 의인들이 차례로 그려져 있다. 결국 이 돔은 천상의 예수님부터 지상의 인간까지 연결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신자석과 전례공간인 지성소를 구분하는 이코노스타시스(성상 칸막이)도 천주교 성당과는 달리 높게 쳐져 있어 독특하다. 꼭대기에는 정교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꽃봉오리 십자가가 올려져 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짊어진 예수의 고귀함을 아름답게 표현한 십자가이다. 성상 칸막이 중간의 ‘아름다운 문’ 양쪽에는 역시 예수와 세례요한, 성모마리아상이 새겨졌다. 성상 칸막이 안쪽의 전례공간 구성은 천주교 성당과 비슷하지만 제대 벽은 성모상과 아기예수, 최후의 만찬을 형상화한 성화로 마감하고 있다. 성당 왼쪽, 선교사관과 사무실·교육실로 쓰이는 건물의 지하엔 성 막심 성당이 있다. 중앙 성당이 일요일 성찬예배가 열리는 곳이라면 이곳은 평일 두차례씩 예배가 열리는 소성당. 초기 선교사들이 입던 제의와 18세기 제작된 성화, 복음경, 한글 기도문, 성가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러시아 신자들을 위한 예배와 영어 예배도 이곳에서 열린다. kimus@seoul.co.kr ■ “교세 확장보다 진실된 믿음 전파에 힘써” 소티리오스 트람바스(78) 대주교는 1975년 문이춘 신부의 후임으로 그리스 정교회에서 부임해 32년간 한국정교회를 이끌고 있는 한국정교회의 가장 웃어른. 교인 2000명에 불과하지만 한국정교회를 대표하며, 세례며 온갖 성사를 주례하는 ‘영적 아버지’로 통한다.“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달랑 성당 하나밖에 없었어요. 종탑도 없이 성당 한 쪽에서 종 몇 개를 매달아 예배를 알리곤 했는데, 돌이켜 보면 놀랄 만한 성장을 이뤘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정교회는 천주교 못지않게 이 땅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세계 어느 지역 정교회에도 뒤지지 않는 신자들의 열성과 신심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소티리오스 대주교. 그는 “한국의 정교회 교인들은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가르침’의 의미를 가진 정교회 교리에 존경스러울만큼 충실한 채 성숙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거듭 자랑한다. “서구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인해 교세를 확장시켜 나갔지만 정교회는 초기 교회의 진리를 훼손하지 않은 채 진실된 믿음(복음) 전파에 치중해온 역사를 갖습니다. 지금도 세계의 정교회는 이같은 초기 교회의 정신을 올곧게 지키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이 분쟁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한국은 지구상 유례없는 다종교국가라는 소티리오스 대주교는 “그러나 같은 종파이면서도 분열을 재생산하는 한국의 개신교는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며 “성장과 신자 확보에 치중하지 않는 정교회를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다.
  • [이색거리 탐방] (17) 종로4가 예지동 시계골목

    [이색거리 탐방] (17) 종로4가 예지동 시계골목

    28일 오후 1시 서울 종로4가 예지동 시계골목. 마치 1시30분을 가리키는 시침처럼 비스듬하게 자리잡은 골목을 들어서자 손목에 찬 시계바늘이 한참에 뒤로 도는 느낌이다. 한 20년 전으로 되돌아갔을 법한 서울 풍경이다. 한때 국내 최대의 예물상가이자 시계명장들의 사관학교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었지만 2007년 5월 종로 시계골목은 어느 순간 멈춰 선 듯하다. ●요지경속 시계·귀금속골목 예지동 108∼156번지. 광장시장 맞은편에 위치한 이곳엔 약 1400여개의 시계와 귀금속 상가가 밀집해 있다.1500원짜리 중국산 아동용시계부터 1500만원짜리 스위스 산 피아제시계까지 한 점포에서 살 수 있는 요지경 같은 곳이다. 우리에겐 ‘시계골목’이란 이름이 익숙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시계·귀금속 골목’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곳의 시계전문 점포는 300여곳. 나머지 대부분의 점포는 시계와 귀금속을 같이 판다. 시계수리점만 해도 40여곳이 넘는다. 종로4가 시계 귀금속도매상 번영회 정권천(48) 회장은 “우리나라 시계의 역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라면서 “비록 오래되고 비좁은 골목이지만 시계와 보석류라면 없는 것 없고 가격경쟁력도 어느 곳 못지않다.”고 말했다. ●청계천과 함께한 역사 시계상가의 역사는 청계천과 함께 한다.3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한 김연수(67)씨는 “자유당 시절 청계천변에서 장사를 하던 시계상인들이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이쪽으로 몰려 터를 잡은 것이 시계 골목의 시초가 됐다.”고 말했다. 60년대에 사과 궤짝으로 시작한 진열대는 70∼80년대 유리 진열장으로 변하면서 상가는 전성기를 맞았다. “그땐 장사하는 게 폼 났지. 종로에서 시계가게 한다는 것만으로 동네에선 유지 소리를 들었으니까.” 시계가 중심이던 진열장에 귀금속이 들어온 것은 70년대 말부터다. 광산 바람이 불었던 당시 전국에서 채취한 금은을 사줄 만한 시장이 필요해서였다. 그만큼 이 곳은 돈이 모이던 곳이었다. 너나할 것 없이 귀금속가게를 차리면서 상가는 번창을 거듭했다. 어느덧 명실공히 국내최대의 예물전문상가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하지만 90년도 중반을 넘자 시계를 중심으로 상가는 침체기를 걸었다. 복병은 삐삐와 휴대전화였다. 늘 지니고 다니는 삐삐(무선호출기)가 늘어나면서 손목시계의 자리를 빼앗기 시작하더니 얼마 못가 그 삐삐의 자리를 휴대전화가 차지했다.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은 찾기 힘들 정도가 됐다. 이곳 골목은 직격탄을 맞았다. ●우린 아직 짱짱하다 비록 노병이지만 아직은 건재하다. 신용 때문이다. 번영회 정권천 회장은 “한 자리에서 30년 이상 장사를 해온 상인들이 많기 때문에 첫째도 둘째도 신용”이라면서 “이 때문에 적어도 인근에서 짝퉁은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도매상인 탓에 물건 값은 시중보다 30∼40% 싸다. 카르티에나 로렉스·피아제 등 명품 시계는 20%이상, 세이코·아르마니 등 20만원대 중저가 시계는 일반 매장에 비해 30∼40%까지 싸다. 예물용 보석도 시중가보다 30%정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시계수리에 있어서도 한국최고를 자부한다. 인근에 부품상이 많아 없는 부품이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유영규 정은주기자 whoami@seoul.co.kr
  • “1만명이 달렸다”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공직자와 함께 하는 제6회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대회가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 일대에서 개인 마라토너와 490여개 단체 소속 선수 등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화창한 봄날씨 속에 참가자들은 하프코스(21.0975㎞),10㎞코스,5㎞코스, 키즈러닝(2.5㎞) 등 4개 부문에서 그동안 틈틈이 달리며 쌓아온 실력을 겨뤘다. 하프코스 남자 부문에서는 신호철(41)씨가 1시간15분32초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여자 부문에서는 유정미(37)씨가 1시간26분13초로 제일 먼저 들어왔다.10㎞에서는 남자 여흥구(31)씨와 여자 김윤경(40)씨가 각각 32분53초,37분53초로 1위를 했다. 공직 기관 중에는 국세청이 가장 많은 369명이 참가했다. 1위 단체상은 211명이 참가한 LG카드가 받았다. 전국언론노조 서울신문지부와 보워터코리아에서도 각각 78명과 66명이 참가, 단체상 2∼3위를 받았다. 남자 최고령 참가자 최근우(84)씨와 여자 최고령 참가자 임춘순(72)씨, 최연소 참가자인 진수현(4)군, 양팔 없는 마라토너 김황태(31)씨가 이색 참가자로 눈길을 끌었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서브-3’ 기록보유자 2명이 동호회를 이끄는 한국산업은행 마라톤 동호회 29명도 참가했다. 서울신문 노진환 사장은 대회사에서 “한국 스포츠의 미래는 육상과 체조 등 기초 종목의 육성에 있다.”면서 “마라톤 마니아들이 가장 참가하고 싶은 대회 중 하나로 성장한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대회가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대회는 행정자치부·스포츠서울 후원,SK텔레콤·포스코·효성·하우젠·STX·현대건설·한국산업은행·대한생명·삼성생명·한화·기업은행·금호아시아나 협찬, 로드스포츠 주관으로 열렸다. 공식 의류는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메이커인 휠라에서 협찬했다. 글=임일영 정현용기자 argus@seoul.co.kr 동영상=손진호 기자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5일 TV 하이라이트]

    ●아시아의 창(KBS1 밤 1시25분) 고립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인접해 있는 인도와 중국뿐 아니라 서방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아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지켜온 나라 부탄. 그러나 최근 서구문명이 들어오면서 부탄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그 변화 속에 자신들만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부탄인들의 노력을 들어본다. ●좋은 나라 운동본부(KBS2 오후 8시50분) 약 2억원의 세금을 미납한 체납자. 체납자는 시가 5억원의 집에 거주하고 있다. 또 다른 체납자는 10년간 1억 3000만원의 세금납부를 미뤄오고 있다. 아들과 공동명의로 하던 사업에서 발생한 세금이지만 아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납세의무를 무시하는 고액세금체납자들의 비양심을 추적한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서경은 소영과의 결혼을 다시한번 생각하라며 애원하지만, 태현은 자신이 힘들 때 손 내밀어준 여자가 소영이라며 보란듯이 잘 살겠다고 한다. 세영은 당장 고소를 취하하라는 건우에게 가족들도 다 데려가버리라고 한다. 경선은 당당한 세영에게 할 말이 없고, 못난 놈이라며 건우를 탓한다. ●신동엽의 있다! 없다?(SBS 오후 6시50분) 불 파마, 식칼로 커트하기, 낫으로 커트하기 등 이색적인 미용실 헤어디자이너가 자랑하는 오징어 먹물 파마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다. 발가락으로 매달려 사는 박쥐인간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도 알아본다. 또 우리나라 모래사장 위에 지어진 학교가 있는지 없는지도 지켜본다. ●60분-부모(EBS 오전 10시) 결혼 전에는 한결같고, 듬직해보였던 남편. 하지만 결혼 후 말도 없고 물어보는 말만 간신히 대답하는 남편이 답답하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큰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 아닌지, 남편과의 깊어가는 감정의 골을 풀고 싶은데…. 강성경씨가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찾아보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라이프n조이(YTN 오후 8시35분) 지리산 국립공원과 한려해상공원을 끼고 있는 청정의 땅 하동. 섬진강 맑은 강줄기 따라 자연경관은 더없이 수려하고, 푸른 5월의 들판에는 초록빛 야생차가 장관을 이룬다. 물이 맑고 공해가 적어 어딜 가나 최고의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곳, 섬진강 진품 요리 은어와 참게는 그야말로 별미다.
  • 지펠 ‘1위 10년’

    삼성전자가 냉장고 ‘지펠’ 출시 10주년 기념으로 서울 용산역 현대아이파크몰에서 ‘지펠 게이트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21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펠은 1997년 5월 출시된 이후 현재까지 500만대 이상 팔렸다. 세계 50개국 프리미엄 냉장고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펠은 국내 최초의 양문형 냉장고다. 최초의 프리미엄 가전이라는 게 삼성전자측의 주장이다. 독일어로 ‘최고’,‘정상’을 뜻하는 ‘Gifpel’에서 따온 이름으로 ‘냉장고의 정상’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특히 2005년 말 미국 시장에 먼저 출시된 ‘지펠 콰트로’는 세계 최초의 4도어 독립냉각 냉장고로, 해외에서 기술·디자인상을 잇달아 수상하면서 호평받은 제품이다. 이 제품은 지난해 3월 미국 타임지가 ‘미래 트렌드’란 제목의 커버 스토리에서 ‘꼭 가져야 할 제품’으로 꼽기도 했다. 지펠은 디자인에서도 업계를 선도했다.2001년 세계 최초로 양문형 냉장고에 ‘인테리어’ 개념이 도입됐다.2005년 페이즐리, 다마스크 등 문양과 음양각 인쇄기법을 채택했다. 지난해에는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과 손잡고 한국 전통문양의 우아함과 서양 왕실의 화려함을 추구하는 앙드레 김의 최신 디자인을 적용했다. 지난 10년간 판매된 지펠을 한 줄로 세우면 중국 만리장성(총길이 약 2700㎞)을 왕복할 수 있다. 또 냉장고 전면부 면적을 기준으로는 축구장 460개를 채울 수 있는 규모라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양문형 냉장고 판매 100만대를 넘어 연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며 “올해에는 세계시장에서 150만대를 판매해 점유율 23%로 1위에 오르고 2010년에는 양문형 냉장고 매출액 25억달러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6월15일까지 계속되는 행사에서 아이파크몰의 정문과 3층 통로 유리문은 실제 지펠과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지펠 게이트’를 꾸몄다. 방문객들은 지펠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듯한 이색 체험을 할 수 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이색거리 탐방] (16) 용산구 한남동 다국적거리

    [이색거리 탐방] (16) 용산구 한남동 다국적거리

    서울 용산구 한남동은 ‘작은 국제도시’다. 피부색·언어·국적이 각기 다른 세계인들이 먹고 자고 일하는 곳이다. 특히 한남네거리에서 옥수동 방면으로 올라가는 독서당길에는 좌우로 멕시코·몽골·인도·이탈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이집트·루마니아·아랍에미리트·가나·리비아·말레이시아 등의 대사관 11곳이 자리잡고 있다. 주말인 지난 19일 해외여행을 떠나듯 설렘을 품고 독서당길 ‘다국적거리’를 여행했다. 글 사진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단국대 정문에서 골목길을 지나 독서당길에 도착하면 바로 앞에 멕시코 대사관이 보인다. 이곳을 기준으로 위쪽으로는 각국 대사관이, 아래쪽으로는 음식점이 펼쳐진다. ●대사관 11곳 주변 둘러보기 멕시코 대사관에는 갈색 인물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19세기 멕시코 대통령 베니토 후아레스다. 그는 멕시코 역사상 유일한 인디오 출신 대통령으로 14년간 재임하며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멕시코시티가 서울시와 우호증진을 약속하며 기증한 것이다. 멕시코 대사관 바로 옆에는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 대사관이 붙어 있다. 옛 소련에 이어 두 번째로 공산화된 나라라 북한과는 1948년에, 우리나라와는 1990년 3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인도 대사관을 지나면 오른쪽 건너편에 이탈리아 대사관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관이 나란히 붙어 있다. 남아공은 1995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방한해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면서 우리나라와 급속도로 가까워진 나라다. 이집트·아랍에미리트연합·가나·리비아 대사관을 지나면 서울독일학교가 보인다. 학교 주변에 독일인이 많이 모여 사는 터라 이날도 학교 주변엔 독일인 가족들이 북적댔다. 언덕길 오르는 데 지쳤다면 카페 카사(CASA)에서 한숨 돌려 보자.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면 세계 도시를 감상할 수 있다. 금발의 백인 여성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곱슬머리 흑인 남성이 가볍게 조깅한다. 가족들이 자전거를 자동차 위에 매달고 나들이에 나서는 모습도 흔한 거리표정이다. ●이국적인 음식이 한자리에 자녀들과 대사관을 재미있게 둘러보려면 사전 준비가 필수. 각 국가의 특징(국기·언어·역사)을 집에서 미리 챙겨 보도록 하자. 그러면 숨박꼭질을 하듯 대사관 국기만 보고 어느 나라인지 맞히는 게임을 할 수 있다. 대사관에 도착해서는 그 나라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흥미 있는 여행법. 멕시코 대사관을 지나 한남네거리 방면으로 내려오면 세계 음식거리가 펼쳐진다.‘뉴욕스테이크’는 전통 스테이크에 퓨전 소스를 섞어 인기를 얻은 집. 씹을 때마다 담백한 육즙이 배어 나와 스테이크를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02)749-1021. ‘웨스턴차이나’는 전통 상하이식 딤섬을 선보인다. 딤섬피의 감촉이 부드럽고, 씹히는 해산물이 신선하다. 딤섬을 대나무 통에 쪄내서 은은한 향까지 난다. 입구에서는 딤섬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볼 수도 있다.02)795-3654. ■ 옥에 티 한남동의 옥에 티 첫번째는 ‘경찰’이다. 대사관 주변을 맴돌 때마다 경비경찰이 다가온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사진 찍으면 안 됩니다.”“빨리 지나가십시오.” 경찰의 재촉에 대사관을 맘놓고 구경하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혹시 한국 속의 세계문화를 체험하러 왔다가 경직된 우리 경찰문화만 경험하고 돌아서지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주차도 문제였다. 주변 도로가 주·정차 금지구역인 데다 대사관 주차장은 외교차량 전용이었다. 단국대에 차를 세울 경우 기본 30분에 1500원, 추가 10분당 500원씩 내야 한다.
  • ‘詩心·문학혼’을 논에 심다

    “아따 김 시인, 거기 모줄 좀 잘 잡어. 왜 이리 모줄이 왔다갔다 혀” 19일 오전 10시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도리 늘향골. 시인, 작가 등 문인 50여명이 일일이 손으로 모를 심는 이색적인 장면이 처음 연출됐다. 지금이야 이앙기가 기계적으로 모를 심는 광경이 일상화됐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이맘때 모심기는 농민들의 ‘대동잔치’였다. 그 잔치를 문인들이 재현한 것이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이사장 임헌영)이 주최한 ‘논에 시(詩)를 모시다’ 행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포럼 사무총장인 홍일선 시인의 자택 근처 논에서 진행된 모심기에는 이기형, 양성우, 백무산, 박선욱, 이승철, 방남수, 박홍점, 김우영, 윤일균 시인 등과 소설가 송영, 안재성, 윤동수씨, 김학민 한국사학연금재단 이사장 등이 참여했다. 행사의 시작은 무당시인 오우열씨가 열었다. 늘향골 터줏신에게 모내기를 알리는 ‘고유제’를 행한 뒤 곧바로 모심기에 들어간 문인들은 오전내 주민들과 어울려 땀흘려 모를 심었다.들밥을 함께 먹은 뒤 시인들이 창작한 농업관련 시편들을 낭송하는 자리로 이어졌다.‘농업의 신’에게 농주를 한사발씩 올리는 의식도 함께 했다. 이승철 시인은 “손으로 직접 모를 심는 작업을 문인들이 한 마을에서 집단적으로 행한 것은 근래 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문인들은 농민들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이후 우리 농업의 살길을 함께 모색하는 토론의 시간도 갖고, 남한강 일대의 갈대밭을 산책하면서 시심과 문학혼도 새롭게 가다듬었다.여주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하프마라톤 1만명 참가 ‘성황’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하프마라톤 1만명 참가 ‘성황’

    ‘공직자와 함께 하는 제6회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대회가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 일대에서 개인 마라토너와 490여개 단체 소속 선수 등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화창한 봄날씨 속에 참가자들은 하프코스(21.0975㎞),10㎞코스,5㎞코스, 키즈러닝(2.5㎞) 등 4개 부문에서 그동안 틈틈이 달리며 쌓아온 실력을 겨뤘다. 하프코스 남자 부문에서는 신호철(41)씨가 1시간15분32초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여자 부문에서는 유정미(37)씨가 1시간26분13초로 제일 먼저 들어왔다.10㎞에서는 남자 여흥구(31)씨와 여자 김윤경(40)씨가 각각 32분53초,37분53초로 1위를 했다. 공직 기관 중에는 국세청이 가장 많은 369명이 참가했다. 1위 단체상은 211명이 참가한 LG카드가 받았다. 전국언론노조 서울신문지부와 보워터코리아에서도 각각 78명과 66명이 참가, 단체상 2∼3위를 받았다. 남자 최고령 참가자 최근우(84)씨와 여자 최고령 참가자 임춘순(72)씨, 최연소 참가자인 진수현(4)군, 양팔 없는 마라토너 김황태(31)씨가 이색 참가자로 눈길을 끌었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서브-3’ 기록보유자 2명이 동호회를 이끄는 한국산업은행 마라톤 동호회 29명도 참가했다. 서울신문 노진환 사장은 대회사에서 “한국 스포츠의 미래는 육상과 체조 등 기초 종목의 육성에 있다.”면서 “마라톤 마니아들이 가장 참가하고 싶은 대회 중 하나로 성장한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대회가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대회는 행정자치부·스포츠서울 후원,SK텔레콤·포스코·효성·하우젠·STX·현대건설·한국산업은행·대한생명·삼성생명·한화·기업은행·금호아시아나 협찬, 로드스포츠 주관으로 열렸다. 공식 의류는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메이커인 휠라에서 협찬했다. 임일영 정현용기자 argus@seoul.co.kr
  • [거리 미술관 속으로] (29) 다동 한외빌딩 ‘비약하는 오대양’

    [거리 미술관 속으로] (29) 다동 한외빌딩 ‘비약하는 오대양’

    ‘서울 도심에서 파도를 감상하다.’ 중구 다동 한외빌딩에는 은빛 파도가 물결친다. 원로 조각가 이승택(75)씨의 ‘비약하는 오대양’덕분이다. 거대한 스테인리스 5개가 숫사슴의 뿔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다. 높이가 족히 5m는 넘어 보인다. 날카로움은 삼각형이 뿜어내는 향기다. 작품의 기둥이 삼각뿔인데다 세워진 모양도 직삼각형이다. 너무 선명한 스테인리스가 날이 선 느낌을 더한다.2∼3m 떨어진 곳에서도 얼굴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다. 이 날카로운 스테인리스 작품이 파도의 물결이라고? “성난 파도를 상상해보라.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작가의 설명을 듣고보니 일렁이는 파도가 눈에 보이는 듯도 하다. 여름철 바닷가에서 느긋하게 즐기는 물결이 아니라, 영화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던 폭풍우 말이다. 아하, 실험미술의 선구자다운 표현력이구나. 작가는 지난 50년간 쉼 없는 실험정신을 보여줬다. 그리고 고희가 훌쩍 넘은 오늘날에도 현장에서 자유정신을 표현한다. 작가의 ‘끼’가 처음 발동한 것은 스물네 살 때.1956년 제2회 국전에서 그는 1개 조각대 위에 2개의 작품을 올려놓으려다 출품을 저지당했다. 이후 원색유리, 각목, 로프, 플라스틱 같은 이색 소재를 활용했고 강이나 산같은 자연물로 매체를 확산했다. 1969년 그는 마침내 바람을 조각했다. 대성리 들판에 혹은 인천 바닷가에 흩날리는 붉은 천 자락을 설치해 바람을 표현했다. 서슬퍼렇던 60,70년대에는 10m,20m 공간에 머리카락을 배열한 설치작업 ‘군의 삭발령’(1967)으로 갑갑한 시대를 비웃은 화려한 전력도 있다. 80년대에 스테인리스로 파도를 표현하는 것은 그에게는 파격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작가는 “조형미술 작품은 현대적인 건물과 수십년간 어울리도록 제작해야 한다. 미래를 내다본 앞선 작품만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그의 유일한 조형미술이다. 그는 21세기를 상상하며 ‘비약하는 오대양’을 제작했다고 했다. 경쟁이 치열한 세계화(오대양)시대에 도약을 꿈꾸는 대한민국을 표현했다. 또 삭막한 도심에 파도라는 자연을 선물하고자 했다. 하루살이 샐러리맨에게 ‘내일을 꿈꾸라.’라고 속삭이고 싶었던 것일까.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Seoul In] 이색 혁신운동 ‘11E&B’ 펼쳐

    도봉구(구청장 최선길) 이색적인 혁신운동 ‘11E&B’를 펼쳐 주목받고 있다. 직원들끼리 한달에 한번 이상 이메일(E메일)을 주고받고, 한달에 1권의 독서(Book)를 하는 운동이다. 창의적이고 건전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독서를 권장하고 편지를 통해 느낌을 정리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감사담당관 2289-1474.
  • [이색거리 탐방] (15)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이색거리 탐방] (15)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처음에는 그냥 신사동과 압구정동을 잇는 보통 길이었다. 길가에 은행나무를 심고, 이 나무가 자라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이후 가로수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강남구 신사동∼압구정동까지 680여m의 가로수길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누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랜드마크 건물을 세운 것도 아니다. 그저 은행나무를 심어 놓았을 뿐인데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피어났다. 어느새 여기에 270곳의 기업 및 점포가 들어섰다. 음식점이 89곳, 의류가게가 76곳, 의류디자인 37곳, 건축사사무소 22곳, 학원 9곳, 병원 4곳, 영화사와 화랑이 각 2곳, 기타 29곳이다. 이면도로에 자리잡고 있는 주택과 건물들도 개조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앞으로 점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화려함보단 문화가 있는 거리 길가에 군데군데 들어선 2층짜리 주택들, 사무용 건물도 모두 5층 안팎이다. 건물이 가로수를 위압하지도, 가로수가 건물을 가리지도 않는 조화다. 주말인 13일 가로수길에는 사람과 차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로데오거리나 명동과 같은 화려함은 없었다.2차선의 좁은 도로, 고풍스럽고 아담한 건물들…. 화랑과 공연장, 옷가게, 음식점 등 영락없는 ‘강북의 삼청동길’이다. 다르다면 삼청동은 한옥풍인데 가로수길은 유럽풍이라는 점. 또 가로수길은 오가는 사람들이 젊은 연인들과 여성들이 특히 많다. 곳곳에서 패션모델들의 작품 촬영광경도 볼 수 있다. ●가로수길은 지금 변신중 가로수길은 유난히 이름이 많다.1990년대 말 일부 영화 제작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제2의 충무로’라고 불리다가 ‘패션거리’‘인테리어거리’로도 불렸다.270여개 점포 가운데 매년 수십개가 간판을 새로 단다. 지금도 인테리어 작업 중인 곳이 10여개나 됐다. 가로수길은 1982년 인사동에 있던 ‘예화랑’이 옮겨온 후 몇몇 화랑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름이 났다. 화랑이 시들해진 이후 외국으로 패션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디자이너 거리’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요즘은 고풍스러운 앤티크가구들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곳곳에 먹을 거리, 즐길 거리 신사동쪽 초입에는 ‘스쿨 푸드’라는 김밥집이 있다. 본래 이름은 ‘장아찌 김밥 앤 냉면’이지만 간판은 ‘스쿨 푸드’로 했다는 게 주인의 설명이다. 가격은 치즈롤이 1만원, 스페셜김밥이 6000원.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다. 중국음식을 찾는다면 전면에 사다리를 걸쳐 놓은 ‘쿠아이’가 있다. 초롱길 옆에 있다. 가격은 삼선짬뽕이 5000원, 신선짬뽕이 6000원. ‘쿠아이’ 길 건너에는 정통 클래식 공연장 ‘빼아뜨루 삐우’가 있다.‘리골레토’ 등 원작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을 공연 중이다. 가격은 VIP석이 5만원(식사+공연은 7만원),S석은 3만원(식사+공연은 5만원)이다. ‘빼아뜨루 삐우’ 바로 옆에는 와인바 ‘와인다인’이 있다. 낮에는 무료로 맛볼 수 있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와인다인’에서 미래희망산부인과까지는 옷가게들이 많다. 옷가게가 끝나는 곳엔 이름난 레스토랑 ‘에이 스토리(A STORY)’가 있다. 조금 더 가면 살사바 ‘가치’가 있다. 이 곳에 들러 살사리듬에 몸을 맡겨 보는 것도 가로수길에서 느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거리에서 만난 유학생 성현정(29·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씨는 “마치 강남속의 강북처럼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것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옥에 티] 턱없이 부족한 주차시설 가로수길에는 주차장이 없다. 유료 주차장이 2∼3곳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거리주차가 많았고, 교통체증도 삼청동 못지않았다. 주차장을 확충하든지 아니면 아예 차없는 거리로 만드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 쓰레기가 많다는 점도 아쉬웠다. 또 하나는 아직은 가로수길을 대표하는 컨셉트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공연 등 문화가 있다는 점에서는 강남의 명소지만 영화면 영화, 디자인이면 디자인…하는 거리의 컨셉트가 분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 이준기 ‘첫눈’ 개봉…일본 네티즌 반응 엇갈려

    이준기 ‘첫눈’ 개봉…일본 네티즌 반응 엇갈려

    일본 팬들의 관심 속에 지난 12일 이준기와 미야자키 아오이(宮崎あおい) 주연의 한일 합작 영화 ‘첫눈’이 개봉했다. 그러나 한류스타 이준기의 출연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것에 비해 그 반응은 다소 미지근 하다. ‘첫눈’을 감상한 일본 팬들은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 영화에 대한 찬사와 비판 등 다양한 반응을 남기고 있다. 아이디 ‘미윳’(みゆッ)은 “감동적인 영화였다. 순수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이준기의 연기가 멋있었다.”고 적었다. ‘나시에’(なしえ)는 “‘왕의 남자’와 달리 이준기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었다. 한국 감독의 눈에 비친 쿄토의 풍경이 이색적” 이라는 평을 남겼다. 반면 아이디 ‘mureneko’는 “영화 초반에 한국의 B급 영화를 보는 듯했으나 쿄토의 풍경이 훌륭해서 봐 줄만 했다.”고 적었으며 ‘아미’(あみ)는 “영화 전개가 다소 억지스럽다.” 밝혔다. 또 네티즌 싯뽀사키마루마리(シッポサキマルマリ)는 “여주인공 말고는 볼 게 없다.”며 혹평했다. 영화 ‘첫눈’은 한국학생 민(이준기)과 일본 여학생 나나에(미야자키 아오이)의 사랑을 교토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그려낸 멜로물로 한국 개봉은 11월 예정이다. 사진= 영화 ‘첫눈’ 공식 홈페이지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세계적 자산운용사들 “한국으로”

    세계적 자산운용사들이 속속 한국에 상륙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맞물려 국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기 때문이다. 또 2010년 퇴직연금이 의무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이에 앞서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의도다. 지난 3월 말 현재 국내 자산운용사는 49개이며 이 중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 외국계 자산운용사는 14개사다. 9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하나금융그룹은 대한투자증권이 보유한 대한투신운용 지분 51%를 UBS로 넘기는 계약을 조만간 맺는다. 매각가격은 지난해 7월 양측이 합의한 가격에서 300억원을 더한 1800억원이다. 그동안 국내 자산운용시장의 성장세를 반영해야 한다는 하나금융그룹측 요구를 UBS가 수용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이에 앞서 골드만삭스는 지난 7일 인프라펀드로 유명한 맥쿼리IMM자산운용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국내에서 주식형 펀드를 판매하기 위해 조직을 구성 중이다. JP모건은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종합자산운용사 허가를 받는 대로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지난해 8월 예비허가, 지난 3월 본허가를 신청한 JP모건은 9일에는 아동복지사업재단에 23만달러(2억원)를 기부하는 등 이미지 제고 등에 나서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사모투자펀드가 최대주주인 랜드마크자산운용은 공개 매각 중이다. 시장에서는 교보자동차보험을 인수한 프랑스 보험그룹 악사와 지난해 11월 설립된 ING자산운용이 인수전에 참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ING자산운용은 은행쪽 판매망을 구축한 랜드마크자산운용을 인수, 몸집 불리기에 들어간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중소형 자산운용사를 인수하는 전략으로 이에 맞설 전망이다. 국내 35개 자산운용사 중 지난 3월 말 현재 수탁고가 1조원이 안되는 회사가 7개사다. 반면 수탁고가 20조원이 넘는 회사는 삼성·미래에셋 두군데로 회사간 차이가 큰 편이다.UBS에 인수된 대한투신운용이 19조 5789억원으로 20조원에 육박한다.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올해와 내년은 인수합병(M&A)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퇴직연금이 의무화되는 2010년에 영업이 정상궤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늦어도 내년까지는 조직이 정비돼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많아짐에 따라 해외투자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외국계 자산운용사는 본사에서 운용 중인 해외펀드의 복제펀드나 외국의 유명 펀드를 골라서 투자하는 재간접펀드(펀드오브펀드)가 주력 상품이다.이에 따라 국내 자산운용사의 해외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화장실 사용 후 물 내립시다” 중국에 이색 포스터

    ”인민 여러분! 화장실 사용 후 꼭 물을 내립시다!”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유명 사슴공원인 미루위안(麋鹿苑) 공용 화장실에 “동지 여러분! 물 내립시다.”라는 재미있는 포스터가 내걸렸다. 공원측이 마련한 이 포스터에는 중국 인민을 대표하는 노동자·농민·군인이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을 배경으로 용변 후에는 반드시 물을 내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화장실에 이러한 포스터까지 등장하게 된 것은 중국인들이 화장실 사용후 뒷처리가 깨끗하지 않기 때문. ’미루위안’의 한 관계자는 “올림픽등을 맞아 화장실 사용 에티켓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유머스런 방법을 채택했을 뿐”이라며 포스터 부착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베이징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중장년층은 대체로 이 포스터에 대해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데 반해 젊은층은 오히려 “신선하다.”며 긍정적이다. 이 사실을 보도한 조간신문 베이징천바오(北京晨報)는 “중년층들은 인민 대표가 어떻게 화장실 모델이 될수 있나?”고 많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나우뉴스 신청미 기자 qingme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회플러스] “어버이 밥상차리고 등교하라”

    ‘부모님 밥상 차려드리고 늦게 등교해라.’제주대 사범대 부속고교(교장 송이환)가 어버이날을 맞아 이색 효도행사를 마련, 눈길을 끌고 있다. 사대부고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이날 학생들의 등교시간을 1시간 늦췄다. 늦춰진 시간만큼 이날은 부모님 밥상을 직접 차려드리고 등교를 하도록 했다. 또 학교측은 이날 학부모를 학교로 초청, 전 교생이 작성한 ‘효도서약’을 부모님께 드리고 효도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행사도 갖는다.
  • [이색거리 탐방] (14) 서대문 북아현동 가구거리

    [이색거리 탐방] (14) 서대문 북아현동 가구거리

    아현 가구거리는 사당, 왕십리와 함께 서울시내 가구거리의 원조로 꼽힌다.1950년대에 가구공장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아현고가도로를 따라 서대문구 북아현동, 마포구 아현동에 걸쳐 100여개의 크고 작은 가구점들이 모양새를 갖췄다.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있는 가구거리는 지하철 2호선 이화여대역부터 이어지는 웨딩숍과 연결돼 있어 예비 신혼부부가 혼수 준비를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건너편 마포구 아현동쪽 가구거리에 브랜드 매장과 고가 수입가구 전문점들이 몰려 있다면, 북아현동쪽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가구가 포진해 있다. 가격은 시중가보다 10∼20% 저렴하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이다. 충정로삼거리에서 아현역 방향 쪽 입구에 주차장이 있다.(02)364-0094,www.ahyeongagu.com 글 사진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서울시내의 가구거리는 수십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큰 쇼룸, 많은 제품, 넓은 주차공간을 확보한 서울 외곽의 가구거리로 고객이 빠져나가면서 다소 침체된 분위기다. 품질과 가격경쟁력으로 승부수를 걸어야 하지만 마냥 가격을 낮출 수만은 없다. 무엇인가 ‘남다른 것’으로 고객을 유입해야 한다. 독특한 디자인, 개성 넘치는 제품, 가격 경쟁력, 전통 가구의 매력으로 아현 가구거리의 명성을 이어가는 매장을 소개한다. ●가구 사면 인테리어까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공주풍의 방을 보고 ‘아, 예쁘다.’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더 집’에 주목하는 게 좋다. 하얗고 화사한 장롱과 화장대, 캐노피에 하얀색 커튼을 드리운 침대를 찾는다면 이 집이 딱이다. 드라마 ‘마이걸’이나 ‘헬로 애기씨’, 영화 ‘B형 남자친구’ 등에 제품을 협찬하기도 했다. 가장 큰 장점은 가구를 구입하면 집의 구조와 분위기에 맞는 인테리어까지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비싼 값을 치러야 인테리어잡지에 나오는 집처럼 꾸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인테리어를 전공한 김종남 상무가 직접 디자인을 한다. 디자인 비용은 무료. 인테리어에 들어가는 자재비만 생각하면 된다. 침대는 130만원, 양문형 장롱, 화장대는 80만원선이다. 하얀색 가구가 부담스러운 것은 쉽게 때가 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 더 집에서 만드는 가구는 자동차 도색에 들어가는 도료를 섞어 사용하고, 가구에 쉽게 얼룩이 지지 않도록 코팅을 하기 때문에 변색의 걱정이 없다.2층에는 앤티크 수입가구 매장을 함께 운영한다. ●천연 느낌을 원한다면 최근 인테리어 경향이라면 자체제작(DIY·Do It Yourself)과 ‘자연주의’를 꼽을 수 있다. 버리기 아까운 가구를 새단장하거나 작은 소품을 직접 만들고, 친환경 재료를 이용해 꾸미는 경향에 들어맞는 매장이 바로 ‘네모디자인’이다. 다양한 가구를 주문제작하는 곳으로, 원하는 디자인에 친환경도료를 이용해 가구를 만들어준다. 원색의 깔끔한 색상보다는 나무의 결을 한껏 살린 자연스러운 색상으로 도색을 해 전원 느낌이 물씬 풍긴다. 최길섭 실장은 “거실이나 방 하나를 서재로 꾸미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책상, 책장 등 서재가구에 관심이 많다.”면서 “오래 머무르는 곳이니만큼 건강에 해롭지 않은 재료를 사용한 가구가 인기를 끈다.”고 트렌드를 소개했다.2m 높이의 5단 책장은 18만원선,110×60㎝ 책상은 나무, 서랍장 구성 등에 따라 10만∼30만원선, 침대는 싱글 사이즈가 50만∼60만원선이다. ●강남의 3분의1 가격 지하철 2·5호선 충정로역에서 아현역쪽 방향으로 아현가구거리 초입에 있는 ‘박진희 갤러리’는 고급 가구 전문점이다. 가구 디자이너 박진희씨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가 절반, 나머지는 수입가구로 구성돼 있다. 아현가구거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매장으로, 침대와 소파 등이 주류를 이룬다. 해외의 유행 경향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국내 소비자 취향에 맞게 디자인해 내놓은 가구가 많다. 의장등록된 고유 디자인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점이 이곳만의 장점으로 꼽힌다. 강남 지역의 가구거리에서 파는 수입가구에 비해 가격이 최고 3분의1 수준으로 저렴한 것도 강점이다. 매장 관계자는 “강남은 비싸야 잘 팔리는 이상한 소비 성향이 퍼져 있지만, 이곳을 찾는 소비자는 실용성을 더욱 높이 친다.”고 말했다. 하얀색 소가죽의 5인용 소파는 350만원선이지만 강남의 가구거리에서는 비슷한 디자인이 800만원선에 팔린다고 소개했다. ●고가구의 운치 아현 가구거리에 있는 커다란 매장을 중심으로 쇼핑하다 보면 한국전통 가구가 가득한 ‘마님방(마님고전가구)’을 놓칠 수 있다. 입구만 겨우 보이는 마님방으로 들어서면 좁고 긴 복도를 따라 장롱부터 낮은 경대까지 고가구가 다양하게 늘어서 있다. 직접 무늬를 새겨넣은 것부터 겉에 그림만 그린 것까지 장식 디자인도 다양하다. 죽3층짝은 65만원, 반닫이는 13만∼25만원선, 오래된 듯한 빈티지 느낌의 전화기는 7만원선이다. 최근 콘솔용으로 인기있는 약장은 20만원선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값비싼 국산에서부터 낮은 가격대의 중국산이 뒤섞여 있으니 설명을 잘 듣고 고르는게 좋다.
  • [종교건축 이야기] (27) 한남동 이슬람 중앙 사원

    [종교건축 이야기] (27) 한남동 이슬람 중앙 사원

    서울 한남대교에서 남산 터널 쪽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왼쪽 이태원 언덕의 도드라진 이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1976년 세워진 뒤 31년간 그 자리를 지키며 한국 이슬람 총본산 역할을 해온 이슬람교 중앙 사원(모스크·용산구 한남동 732~21)이다. 전국 10개의 이슬람 사원과 선교원,40여개의 이슬람교 예배소를 총괄하는 한국 이슬람의 핵. 많은 이들에겐 그저 호기심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지만 3만 5000여명의 한국 무슬림(이슬람 신도)과 10만여 외국인 무슬림들에겐 절실한 신앙공간이다. 이태원 소방서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보광초등학교 삼거리 왼쪽 길을 택해 오르면 허름한 주택들이 줄지어 선 골목 양쪽에 아랍어 간판을 단 집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이슬람 성서인 코란을 비롯해 아랍 과자·음료수를 파는 가게며 서점, 터키 전통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이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골목 끝에 서면 푸른색의 아치형 문이 길을 막는다.‘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하마드는 그분의 사도입니다.’ 이슬람 교리를 가장 극명하게 압축한 문구를 보며 회랑처럼 생긴 오르막길을 올라 너른 마당에 서면 큼지막한 아랍어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라 쓴 중앙 사원이 눈에 든다. 매일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5차례의 이슬람 예배가 어김없이 열리는 곳. 한국은 물론 서남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한국에 온 무슬림들의 신앙이 이어지는 이색지대이다. 멀찌감치선 우람하게 비쳐지는 것과는 달리 막상 사원 앞에 서면 아주 단촐한 인상을 받는다. 모스크를 상징하는 지붕 중앙의 돔(쿱바)과 앞쪽 두 개의 높은 첨탑(미나렛), 그리고 돔과 첨탑을 호위하듯 선 자그마한 첨탑들이 건물 외관을 장식하는 모든 것이다. 전통적으로 사람들을 잘 불러모을 수 있도록 높은 곳에 모스크를 세운 것처럼 한국의 무슬림들도 중앙 사원을 이태원 꼭대기 높은 언덕에 세워놓았다. 사원이 세워진 것은 1976년.6·25전쟁 중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터키 제6여단 사령부의 군(軍) 이맘(이슬람교 예배 인도자), 압둘 가푸르 카라 이스마일 오울루의 전도로 1955년 압둘라 김유도와 우마르 김진규 등 한국 최초의 무슬림이 탄생한 지 21년 만의 일이었다. 중동 붐을 타고 이슬람 국가와의 친교가 긴요했던 무렵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초동 쓰레기 매립장 10만평과 지금의 사원 자리 등 두 군데 중 한 곳을 사원 터로 무상 제공할 뜻을 비쳤다고 한다. 한국 이슬람교가 지금의 부지를 택한 것은 당시 주변에 아랍 상인들과 이슬람 신도들이 모여 살았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태원에 살던 영향력 있는 한국인 신도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인 것으로 전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선 신도층이 두텁지 못해 사원 건립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구걸하다시피 전 세계 이슬람 나라들에 손을 벌려야 했다.1970년 부지가 확보된 뒤 한국의 무슬림들이 모금 사절단을 구성, 이슬람 각국을 돌아 미화 40만달러를 모았다.1974년 10월 첫 삽을 뜬 지 1년 7개월 만인 1976년 5월 마침내 한국 역사상 최초의 이슬람 건축물을 세워놓은 것이다. 당시 개원행사엔 17개 이슬람 국가의 장관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50여명의 종교지도자들이 참석,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붕 위의 첨탑인 미나렛은 이슬람의 가장 대표적인 순례지인 사우디아라비아 하람성원의 것을 그대로 본떴다. 미나렛은 무앗진이라 불리는 사람이 올라가 아잔(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을 외치는 첨탑. 이슬람 전통을 따르자면 매 예배 때마다 무앗진이 이곳에 올라 예배시간을 알려야 하지만 마이크와 스피커로 대신하고 있다. 사무실과 회의실이 들어선 1층에서 계단으로 오르게 되는 2층 예배공간에선 교회나 성당에 흔한 성상이나 초상, 상징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코란 구절만이 빙 둘러 새겨져 있을 뿐이다. 6개의 둔중한 기둥이 떠받치는 중앙 돔과, 양측 벽 위쪽의 아치형 창에서 쏟아지는 자연채광이 바닥의 붉은색 양탄자와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예배공간의 중심은 아랍어로 ‘너희들이 어디에 있건 하람성원을 향할 지니.’라 쓰여진 미흐랍. 전 세계의 이슬람 신도들이 예배 때 마음과 몸을 둔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만든 예배 방향 표시이다. 그 오른쪽, 예배 인도자인 이맘이 올라서서 설교하는 계단인 민바르도 독특하다.2층이 남자 신도들의 예배공간이라면 3층은 여 신도들의 공간. 남녀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슬람 세계의 문화가 이곳에도 살아 있다.3층 여 신도 공간 앞쪽엔 가리개를 쳐 남자 신도나 예배 인도자조차 여 신도들을 볼 수 없도록 했다. 여 신도들은 이맘의 목소리만 듣고 예배드릴 뿐이다. 평일 5차례씩 열리는 예배 참석자는 매회 40명 정도. 대부분 한남동과 이태원 일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외국인 무슬림들이다. 평일과는 달리 금요일 오후 1시 특별 예배엔 전국에서 500여명이 몰리며 한국인 신도도 40∼50명 정도가 참석한다고 한다. 예배는 한국인 이맘 2명과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들어온 선교사 2명이 번갈아 인도한다. 라마단이 끝나는 다음날인 이슬람력 10월1일과 이슬람 성천(聖遷)일인 이슬람력 12월10일의 축제일엔 3000명이 모여 신앙을 넘어선 거대한 만남의 장을 일군다. “서구인들이 이슬람교를 왜곡하기 위해 지어낸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란 말 그대로 많은 한국인들은 이슬람교와 교도들을 호전적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이슬람 중앙 사원의 이행래(70) 이맘. 그는 “순종과 평화를 추구하는 이슬람 신자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며 이슬람 사원은 무슬림들의 본 모습을 가감없이 볼 수 있는 평화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kimus@seoul.co.kr ●한반도와 이슬람교 서기 610년경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도 무하마드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이슬람교. 유일신 ‘알라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 ‘코란’을 따르며,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천국에 임할 수 있음을 기초교리로 삼는 일신교다. 신성에 관한 한 어떠한 복수(複數)적 개념도 받아들이지 않은채 ‘가장 훌륭한 일신교도’라는 자부심을 갖고 사는 이슬람 신도, 즉 무슬림은 전세계 13억명. 이 땅에선 1955년 첫 한국인 무슬림이 탄생하면서 신앙이 태동했지만 한반도와 이슬람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학계에서는 통일신라기 무슬림 상인들의 교역상품이나 이슬람 세계의 것으로 여겨지는 물품들이 흔히 사용된 기록으로 미루어 9세기 중엽부터 이미 접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처용 일행을 ‘동해안에 나타난 모양과 의상이 괴이한 4명의 자연인’으로 묘사한 삼국사기 기록은 ‘처용가’의 주인공이 아랍인이라는 설을 낳기도 했다.11세기 초 고려기엔 ‘대식(大食)’으로 알려진 아랍 상인들이 고려조정과 교역을 자주 시도했다. 고려사에 ‘1024년,1025년,1040년에 아랍 상인이 100여명씩 무리를 지어 수은이나 몰약을 갖고 개경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슬람의 종교와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여말선초(麗末鮮初)기인 13∼14세기 무렵. 당시 원(元)의 간섭을 받았던 고려조정에는 중앙아시아계의 무슬림들이 대거 진출해 있었다. 이들은 고려사에 ‘회회인(回回人)’으로 기술된 투르크계의 위구르 무슬림들로 수도 개성에 이슬람 성원까지 세웠다고 한다. 조선조 세종 때엔 궁중 행사에 무슬림 대표들이 코란을 낭송하며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도 했으며, 그때 이슬람 역법이나 도자기 기술이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조 유교사상으로 인해 이 땅의 이슬람은 15세기 중엽 이후 썰물처럼 빠졌다. 이후 1920년대 들어 소련치하 소수민족인 투르크계 무슬림들이 한반도에 망명해와 학교며 이슬람 성원을 건립하기도 했으나 해방과 한국전쟁의 와중에 대부분 해외로 이주한 것으로 한국이슬람교 중앙회측은 보고 있다.
  • 일본 프리타족 “생존권을 보장하라” 시위

    일본 프리타족 “생존권을 보장하라” 시위

    “불안정한 생활 이대로는 못참겠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전세계가 5월 1일 노동절을 맞이한 가운데 일본 오사카에서는 프리타(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이색적인 시위를 벌였다. 지난달 30일 일본 오사카에서는 ‘가난뱅이(貧乏)들의 메이데이’라는 주제 아래 100여명의 프리타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개선을 요구하며 ‘생존 시위’를 벌였다. 주최측은 “프리타들은 지금도 저임금과 불안정한 생활에 시달리고 있다.”며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져 두고 볼 수 없었다.”고 시위 배경을 밝혔다. 이날 거리 행진에 참가한 프리타 A씨는 “시급을 2000엔(한화1만5천원)으로 인상하고 유급휴가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또 프리타 B씨는 “근로소득 공제를 보장하라.”며 “결과적으로 이 제도는 화이트칼라에만 유리한 제도.”라고 주장 했다. 현재 일본에서 프리타족은 약 200만명으로 추산되며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6년 9월 기준 전체 노동자의 34%가 비정규직 및 프리타로 조사됐다. 사진=아사히신문 홈페이지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