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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화 ‘금빛 질주’

    한국 여자스피드스케이팅 ‘기대주’ 이상화(16·휘경여고 1년)가 여자 빙속 사상 처음으로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이상화는 지난 19일 핀란드 셰뇨키에서 열린 2005세계스피드스케이팅주니어선수권 여자 500m 결선에서 39초93으로 결승선을 통과, 안네테 게르리첸(40초44)과 이레네 우스트(40초74·이상 네덜란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여자 스프린터가 세계주니어선수권을 제패한 것은 이상화가 처음. 1990년 스프린트선수권 3위, 93년 세계선수권 은메달 등 한국 여자 빙속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유선희도 주니어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남자부에서는 76년 세계선수권 남자부 종합우승을 차지했던 이영하 등이 주니어대회를 제패한 바 있다. 이상화는 20일 여자 1000m에서 1분22초46을 기록, 우스트(1분22초44)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이틀 연속 메달을 거머쥐었다. 이상화는 이날 결선에서 스타트가 돋보였지만, 후반 들어 체력이 떨어지며 우스트에 0.02초 차로 금메달을 내줘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여자 1500m에서는 이주연(경희여고)이 2분07초78로 동메달을 따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부고]

    ●오윤관(스포츠서울 편집부장)씨 조모상 5일 전남 영광종합병원, 발인 7일 오전 10시30분 (061)351-1621 ●김종국(전 한국은행 인사부장)종철(전 주택은행 지점장)종원(전 금호석유화학 부사장)씨 모친상 변용성(을지대학병원 치과과장)윤주일(재미 사업)씨 빙모상 6일 한양대병원, 발인 8일 오전 10시 (02)2290-9459 ●신현목(성균관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현양(삼성물산 건설부문 토목부장)현수(봉은중 교사)현임(대한약사회 약사)씨 모친상 이오봉(월간조선 사진부장)씨 빙모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91 ●유덕윤(전 덕성화학 전무이사)씨 별세 진용(LG텔레콤 직원)씨 부친상 6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30분 (02)590-2660 ●정만기(약사)찬기(한전 KDN 차장)광용(연합뉴스 월간부 부장대우)씨 부친상 5일 부천 가톨릭성가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32)340-7307 ●강민구(문화일보 편집부 차장)씨 부친상 5일 서울대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2072-2032 ●하윤상(삼성SDS 대리)씨 부친상 종필(포스코 광양제철소 부관리직)종수(LG LNS 부장)씨 형님상 종숙(성신여대 과장)씨 오라버니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64 ●권순호(세명자동차 대표)순일(한나라당 사무총장 보좌역)순우(대한제당연구소 선임연구원)씨 부친상 5일 경북 영천 중앙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54)338-4401 ●최현종(삼진FAN 대표)현생(현대모비스 차장)현태(대한전문건설협회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협의회 사무국장)씨 모친상 오평세(천안여고 교사)이공우(현대금속 대표)신민범(삼진상사 〃)씨 빙모상 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6시30분 (02)3010-2239 ●전상선(선오건설 상무)씨 모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54 ●엄순성(한국지구교역처 구매관)창기(영지기업 대표)씨 부친상 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30분 (02)3410-6915 ●강정일(대신강업 대표)씨 별세 강우성(대신강업 대리)영길(주식회사 씨아이 실장)씨 부친상 고현택(대신강업 부장)김상우(삼일회계법인 S.A)씨 빙부상 강영택(씨아이 대표)씨 형님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30분 (02)3010-2294 ●이구연(주식회사 새길로 대표)광연(한국청소년장애인총연합회 총재)무용(오연자원개발 대표)인연(울터두부마을 〃)씨 모친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8시 (02)3010-2292 ●신덕균(캐나다 거주)창균(호주 〃·의사)철균(로열컨설팅 대표)씨 모친상 김부남(광진제약 대표)이기학(전 로커스디에스 고문)씨 빙모상 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7일 오전 10시 (02)3010-2236 ●한기웅(미국 거주·화공학박사)기호(주식회사 엘씨엠 대표)경숙(한경숙안과 원장)씨 모친상 이계용(산부인과 원장)씨 빙모상 5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30분 (02)590-2352 ●박귀하·일하(사업)형근(삼보컴퓨터 과장)창수(사업)씨 부친상 김영기(사업)정한주(고양 사랑의교회 목사)정윤용(현대자동차 과장)김용복(한솔화학 〃)씨 빙부상 6일 안산장례식장, 발인 12일 오전 9시30분 (031)438-4541 ●손희남(KTF 차세대연구소장)씨 부친상 5일 천안 순천향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 (041)578-1499 ●박동윤(충남도의회 의장)씨 상배 6일 충남 태안보건의료원, 발인 8일 오전 9시 (041)675-3523 ●박찬기(명지대 정외과 교수)씨 모친상 이은우(대거전자 전무)씨 빙모상 6일 대구 보광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53)527-1027 ●이상화(코콜스포츠 대표)미선(추계초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30분 (02)3010-2265 ●임종수(저작권협회 평의원)씨 상배 지선(작곡가)지상(학생)씨 모친상 6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 (02)3410-6912 ●이종은(육군 대령)종묵(서울대 국문과 교수)종헌(UPI 지국장)씨 모친상 장문재 이상태씨 빙모상 6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8일 오전 8시 (053)959-4441
  • 근대문학 여명기 개척 27인의 작품세계 조명

    한국 근대문학을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책읽기 한 가지. 민음사가 펴낸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논문집’(전2권)을 통해서다. 김동환 박종화 심훈 이상화 김소월 정지용 나도향 채만식 등 한국문학의 초석을 다진 작가 27명의 문학적 업적이 분석돼 있다. 대산문화재단과 민족문학작가회의는 2001년 이후 해마다 탄생 100주년을 맞는 작가들을 기념하는 문학제를 열어왔다. 개별 작가론을 빌려 우리 근대문학을 점검하고 평가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이번 책은 지금까지 주제별로 발제된 논문들을 묶어 작가세계를 압축적으로 해설한 중간 성과물인 셈. 근대 작가들에게 관심 많은 일반독자는 물론이고, 작가별 연구에 필수적인 서지들이 덧붙어 있어 관련 분야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매우 요긴할 책이다. 책에 등장한 인물들의 탄생연도는 1901∼1904년. 엄혹한 일제 식민지시대에 청년기를 보내며 한국 근대문학의 여명기를 개척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1권 ‘근대 문학, 갈림길에 선 작가들’은 1901년과 1902년에 태어난 작가들을 다뤘다.1부의 주인공은 김동환 박영희 박종화 심훈 이상화 최서해(1901년생) 등 6명.‘근대성 추구’와 ‘반봉건 투쟁’이라는 이중과제를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패를 겪었는지 짚었다.2부에는 시인 김상용 김소월 정지용과 소설가 나도향 주요섭 채만식(1902년생)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이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깊이있는 인식과 평가는 한국문학의 뿌리를 짚어보는 데 길라잡이가 될 만하다. 이상화 심훈 김동환의 시세계를 분석한 최동호(고려대 교수) 시인은 특히 이상화를 “남과 북의 문학사에서 모두 높이 평가되는 이채로운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는 또 정지용을 “자기 나름의 시학과 시인됨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출발하였으며 시작(詩作)행위를 예술행위로 인식한 20세기 최초의 전문적 시인”이라고 해설했다. 제2권 ‘어두운 시대의 빛과 꽃’에서는 1903년과 1904년에 태어난 작가들이 주인공. 권환 김기진 김영랑 김진섭 송영 양주동 윤기정 이은상 최명익(1903년생) 등 9명은 1부에서, 계용묵 박용철 박화성 이양하 이육사 이태준 등 6명(1904년생)은 2부에서 각각 조명됐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황현산 김인환 임규찬 김재용 우찬제 등이 참여했다. 각권 2만 5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찬란한 ‘서양미술 400년’

    찬란한 ‘서양미술 400년’

    1793년 프랑스혁명의 세 거두 가운데 한 사람인 장 폴 마라는 고질인 피부병 때문에 반신욕을 하며 집무를 보던 중 반대파의 자객에 의해 암살당한다. 마라의 동지이자 나폴레옹 황제의 수석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는 이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3개월 만에 완성한다. 암살자가 들고 온 편지, 피묻은 칼이 당시 상황을 재연하듯 화면에 그대로 놓여 있는 ‘기록화’ 같은 작품이다. 자객의 단검에 살해된 마라의 시신은 실제로는 선혈이 낭자한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을 마치 격무에 시달리다가 잠이 든 ‘시민의 일꾼’ 같은 모습으로 이상화했다. 엄격한 형식미를 추구한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양식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이 그림이 10여 개월의 복원과정을 거쳐 새 단장한 모습으로 한국을 찾는다. 21일부터 내년 4월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양미술 400년전-푸생에서 마티스까지’가 바로 화제의 전시다. 소개되는 화가는 다비드, 푸생, 부셰, 앵그르, 들라크루아, 쿠르베, 코로, 모네, 시슬레, 피사로, 르누아르, 고갱, 마티스, 뒤피, 피카소, 들로네 등 88명. 미술애호가라면 한번쯤 그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유명 작가들이다. 프랑스 랭스미술관에서 70여점을 대여받은 것을 비롯,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릴, 말로, 몽펠리에, 피카르디 미술관, 트루아 역사박물관 등에서 모두 119점의 작품을 빌려 왔다. 전시는 시대별로 서양 미술 400년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17세기 절대왕정을 배경으로 한 장중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과 국립 미술아카데미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고전주의 양식,18세기 귀족사회가 낳은 장식적인 로코코 양식, 산업기술의 발달로 근대화되기 시작한 19세기의 사조들인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와 20세기 야수파, 큐비즘 등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초대형 전시인 만큼 전시작 중에는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마티스가 친필 글씨를 새겨 랭스미술관에 기증한 ‘재즈’ 판화집, 엽서 한 장 크기인 1호도 채 되지 않는 작품이지만 여인의 코발트빛 옷과 장밋빛 혈색이 생생하게 묘사된 르누아르의 유화 ‘대본낭독’ 등이 공개된다. 특히 ‘대본 낭독’은 워낙 크기가 작아 도난 위험이 커 한번도 해외에서 전시된 적이 없는 작품이지만 특수액자를 제작해 이번에 처음 선보이게 됐다. 고대의 여러 조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부분만을 조합해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앵그르의 두 작품 ‘샘’과 ‘물 속에서 태어난 비너스’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원본 작품들이다. 이밖에 근대회화의 시조인 푸생의 ‘두 발을 적시고 있는 여인과 풍경’, 뒤프레누아의 ‘리코메드 왕의 딸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율리시스에게 들킨 아킬레스’, 사실주의 대가 쿠르베의 ‘협로’, 인상파 화가인 모네의 ‘벨 일의 바위’, 피사로의 ‘루브르’, 고갱의 ‘건초 말리는 사람’, 뒤피의 ‘마리-크리스틴 카지노’, 고갱의 판화 ‘테 아릴 바이네(왕가의 여인)’ 등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입장료 일반 1만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02)2113-3477.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 ‘로댕·부르델·마이욜展’

    오귀스트 로댕, 앙트완 부르델, 아리스티드 마이욜. 서구의 근대조각을 이끈 대표적인 작가들이다.‘근대조각의 바이블’이라 할 이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가 겨울방학을 맞아 마련한 ‘근대조각 3인-로댕·부르델·마이욜’전. 전시는 내년 2월6일까지 이어진다. 로댕은 서구 조각이 구태의연한 전통에 빠져 불모상태에 이른 19세기 후반, 근대 조각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 작가다. 그는 아카데미풍의 이상화된 미의식을 거부하고 인간의 내적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물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서 벗어나 조각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은 것. 이 거장의 뒤를 이은 작가가 바로 동시대 인물인 부르델과 마이욜이다. 로댕의 작업실 조수로 일하면서 로댕을 사사한 부르델은 로댕의 혁신성을 계승하는 한편 조각에서의 건축적 양식에 주목했다. 부르델은 특히 베토벤에서 헤라클레스에 이르기까지 남성 영웅상을 많이 만들었다. 고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마이욜은 섬세한 태피스트리 작업으로 눈을 해친 뒤 조각으로 방향을 튼 작가. 여인의 나상(裸像) 하나만을 집요하게 추구한 점이 특이하다. 이번 전시에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지옥의 문’ 등 로댕 작품 17점과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 등 부르델의 작품 6점,‘드뷔시를 위한 기념비’등 마이욜의 작품 5점이 나와 있다.(02)2014-6552.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대구가 낳은 민족시인 이상화

    [문학이 머문 풍경]대구가 낳은 민족시인 이상화

    “태백산이 높솟고 낙동강 내다른 곳에/오는 세기 앞잡이들 손에 손을 잡았다/높은 내 이상 굳은 나의 의지로 나가자 나가 아 나가자.”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대륜고등학교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노래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이 도도히 살아 있다. 상화는 한때 대륜고의 전신인 대남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이 학교의 교가도 작사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굴종을 강요받았던 암울했던 현실을 넘어 언젠가 봄을 맞이할 미래 세대에 대한 상화의 투자였다. 상화는 이 교가가 문제되어 사직을 하고 교가 부르기도 한때 중단됐었다. 하지만 일제의 만행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화가 지은 교가는 긴 세월을 넘어 오늘도 달구벌에 울려 퍼지고 있다. ●주먹이라도 굵어야 한다 상화는 1901년 음력 4월5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열다섯살 때인 1915년 대구를 떠나 경성 중앙중학교에 입학해 3년을 마치고 다시 대구에 내려온다.1919년 3·1운동 대구거사 모임에 참여하지만 거사 직전에 일제에 발각돼 검거망을 피해 서울로 탈출한다. 프랑스 유학을 꿈꾸며 일본으로 건너갔던 상화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귀국,1927년께 대구로 다시 낙향했지만 일본 관헌에 의해 구금되는 등 고초를 겪는다. 1933년 강사자격증을 취득한 상화는 교남학교에 들어가 교육사업에 전념하게 된다. 이곳에서 영어와 작문을 강의하면서 뜻밖에 과외활동으로 권투부를 만들었다. 대구에서는 최초로 권투부를 만들면서 상화는 ‘나라 빼앗긴 피압박 민족은 주먹이라도 굵어야 한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그러나 그가 작사한 교가가 문제되어 학교를 사직, 미래 세대에 대한 상화의 투자는 미완성으로 끝났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는 시인에게 시를 쓸 수 없도록 강제했지만 상화는 시를 쓰며 저항했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하늘 푸른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중략)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비록 나라는 빼앗겼지만 민족혼을 일깨워줄 봄은 결코 빼앗길 수 없다는 강렬한 저항의 메시지가 담겼다. 교남학교를 사직한 상화는 현재 대구시 계산동에 남아있는 고택으로 이사와 문학에 열중하지만 1943년 위암진단을 받는다. 결국 그해 4월25일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던 봄을 보지 못한 채 타계했다.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뒷산 경주 이씨 가족묘지에 묻힌 상화는 아마 오늘도 못다 부른 조국의 노래를 계속하고 있으리라. ●시민이 지켜낸 상화 고택 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에 자리한 상화 고택은 상화가 타계한 1943년까지 2년6개월간 마지막 창작의 불꽃을 사른 곳이다. 생가인 서문로 12번지 일대는 개발로 흔적없이 사라졌고, 계산동 고택에는 상화의 체취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이곳을 관통하는 도로 개설이 계획되면서 상화 고택이 헐릴 위기에 처하자 시민들이 항의하고 나섰다.2002년 8월 대구지역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보존운동본부’를 결성, 시민 40만여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또 군인공제회가 상화 고택 바로 옆에 26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계획하자 보존운동본부는 상화 고택 보존에 제약이 따른다며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공제회측은 운동본부의 의견을 존중해 상화 고택을 매입해 보존키로 하고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고택을 사들였고 내년 초 대구시에 기부채납할 예정이다. 보존운동본부 윤순영(52·여·분도예술기획대표) 공동상임대표는 “사라질 뻔했던 상화 고택을 시민들이 지켜냈다.”면서 “앞으로 고택 보존을 넘어 상화 고택을 대구문화의 중심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상화의 시비는 1948년 대구 달성공원에 세워졌는데 국내 최초의 시비다. 시비 앞면에는 ‘나의 침실로’ 일부가 새겨져 있다. 1995년 대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는 상화의 동상이 세워졌다. 친일 과거사 청산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상화가 살아 있다면 뭐라고 했을까. 빼앗긴 들은 되찾았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고 노래했을까.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인사]

    ■ 해양수산부 ◇서기관 승진 △감사담당관실 李炳主△혁신담당관실 李安鎬△항만물류과 李瓊揆△항만개발과 羅雄鎭△국립해양조사원 측량과 徐丙德△항로표지담당관실 安鍾烈△해양방재담당관실 徐泰錫 ■ 교육인적자원부 ◇부이사관 승진 △서울대 학사과장 韓聖愚△삼척대 총무과장 金正錫 ■ 산업자원부 △정보화담당관 李相根 ■ 환경부 ◇국장급 전보 △원주지방환경청장 宋在用 ■ 행정자치부 △정부청사관리소장 裵興秀 ■ 특허청 ◇2급 승진 △국제특허연수부장 金悅△특허심판원 심판장 朴明植◇3급 승진△상표심사담당관1 黃淳孝◇직위 승진(국장)△정보기획관 鄭鎭大◇전보△특허심판원 심판장 金昌培△심판행정실장 陳明燮 ■ 현대증권 ◇전보 △마케팅팀장 겸 투자전략팀장 李起東△주엽지점장 石尙烈△서귀포〃 黃圭鎭△반포〃 高汶煥 ■ 하나은행 △화성태안지점 개설준비위원장 李貞雨 ■ TBS ◇라디오국 △국장 이동기△라디오편성부장 정승원△라디오제작〃 이문구△보도〃 이상화◇TV국△국장 이은우△TV편성부장 직무대리 김남일△TV기술부장 정명희◇뉴미디어국△국장 이석우△미디어기술부장 김남하△미디어사업〃 고병선△데이터관리〃 이종은◇심의실△실장 이정명
  • 한국의 전통문양/임영주 지음

    무늬는 언어나 문자와 마찬가지로 그 민족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고유한 형태를 지니며 독특한 성격을 드러낸다.무늬는 아름다움 이전에 하나의 상징이다.단순한 무늬라도 그 안에 우주의 섭리가 깃들어 있을 수 있고,아무리 현란하고 아름다운 무늬라도 그저 장식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무늬만큼 인류 문명의 발전에 공헌해 온 것이 달리 있을까. 최근 출간된 ‘한국의 전통문양’(임영주 지음,대원사 펴냄)은 우리 전통문양의 상징과 은유의 세계를 전문가의 눈으로 살핀 인문교양서다.문화재전문위원인 저자(61)는 문화재 수리 보수의 장인이자 단청·불화 모사의 대가인 임천 선생의 아들.어려서부터 익힌 저자의 고미술에 대한 감각은 곧 문양에 대한 천착으로 이어졌다.이 책은 지난 30년 문양연구의 결실이다.저자는 갖가지 문양이 베풀어진 유물과 유적을 직접 찾아 600여 컷의 사진과 글로 풀어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 민족의 신화와 전설 속엔 상서로운 동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의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일월 신상(神像) 즉 해와 달의 모습은 하체는 용,상체는 사람의 형상을 한 남녀로 묘사돼 있다.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세발까마귀)다.삼족오는 닭이 이상화된 것으로 간주된다.중국 고전 ‘회남자’에 “일출 때 천계(天鷄)가 울면 천하의 닭이 모두 따라 울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여기서 천계는 저자에 따르면 ‘하늘의 사상’을 의미한다. 저자는 고구려 무용총 천장에 그려진 커다란 두 마리의 새도 봉황이 아니라 천계라는 견해를 밝힌다.저자는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동명설화의 계자(鷄子),알지설화의 금성백계(金城白鷄),수로설화의 자완금란(紫緩金卵) 등도 모두 이와 비슷한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대의 고분벽화 등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면 식물무늬가 적잖이 나타난다.그 중에서도 특히 초화무늬는 각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보여줘 관심을 끈다.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로 서역(西域)의 문양요소가 두드러진 게 특징이다.화려한 보상화문을 비롯해 연화문,모란문,당초문 등이 다채롭게 등장한다.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청동거울 등에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꽃 문양이 사실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조선시대에는 궁중의 꽃담이 주목거리.경복궁 자경전의 담장은 아름다운 화초장으로 유명하다. 저자는 한국 전통문양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한다.“사대부가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문판 거죽에 광두정(廣頭釘)이 가지런히 박혀 있는 것이 보인다.그것은 마치 하늘에 별을 수놓은 듯하다.” 거기엔 물론 우리 전통문양의 미학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그라프·켐프 새달 나란히 내한공연

    그라프·켐프 새달 나란히 내한공연

    플루트의 노대가와 신예 피아니스트가 새달 나란히 내한공연을 갖는다.농익은 플루트의 심오한 선율과 튀어오르는 피아노의 테크닉이 있는 무대다. 먼저 새달 5일 영산아트홀을 찾는 플루트 연주자는 페터 루카스 그라프.이번이 세 번째 내한공연이지만 올해 75세를 맞이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무대다. 스위스 태생으로 플루티스트의 거장 마르셀 모이즈를 사사했고,21세때 스승에게 헌정된 자크 이베르 플루트 협주곡의 녹음을 남기면서 세계적인 연주자로 발돋움했다.1953년 뮌헨 ARD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했고,61∼66년에는 루체른 시립가극장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아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지금까지 60여장이 넘는 음반을 남겼다. 깊은 질감이 느껴지는 플루트의 음색으로 이번 무대를 울릴 곡들은 모차르트의 ‘플루트 소나타’를 비롯해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라이네케의 ‘운디네 소나타’,도플러의 두 대 플루트를 위한 ‘안단테와 론도’ 등.피아니스트 허은과 플루티스트 이상화가 협연한다.오후 7시30분.3만∼5만원.(02)747-2462. 새달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는 신예 피아니스트 프레디 켐프가 첫 내한 무대를 꾸민다. 1977년 영국 런던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98년 제11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3위에 오른 주인공이다.이 대회의 우승자는 국내에도 몇 차례 다녀간 데니스 마추예프.당시 수상결과를 두고 청중 간에 논란이 일면서 켐프는 오히려 우승자보다 러시아에서 더 유명한 연주자가 됐다. 8세 때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데뷔한 뒤,92년에 BBC가 주최한 ‘올해의 영 뮤지션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2001년에는 영국 브릿 어워드에서 ‘최고의 클래식 신인 아티스트’로 뽑히는 영예도 안았다. 타임스지에서 “화려한 테크닉과 시적 감성을 겸비한 피아니스트”라고 칭한 그가 이번 연주회에서 들려줄 곡은 베토벤의 ‘소나타8번 비창’‘소나타 23번 열정’과 쇼팽의 ‘연습곡 Op.25’ 전곡.오후 7시30분.3만∼7만원.(02)541-6234.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서울의 시, 서울의 시인/권오만 엮음

    문학세계에 있어서 공간 배경이 작품의 근간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시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 경향이 짙다. 권오만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국어국문학)의 ‘서울의 시,서울의 시인들’(혜안 펴냄)은 거대도시 서울의 공간적 이미지가 시작(詩作)에서 어떻게 투사돼 왔는지를 조명한 비평서다. 책은 일제강점기에 주목했다.분석목록에 든 근대 ‘서울 詩’는 31편.그들 시에서 서울은 현실 발언보다는 서정시의 공간적 대상으로 등장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서울의 모습이 투영된 최초의 근대시는 최남선의 산문시 ‘천주당의 층층대’(1910년 ‘소년’ 8월호).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북달은재(鐘峴) 천주당(天主堂)의 층층대를 올라가는 촌부자(村夫子)가 있다.(…)집도 높기도 하지! 어찌하면 저렇게 짓노! 저 속에는 무슨 영특한 물건이 들어앉았노? 굉장하렷다?” 지금도 그때 모습 그대로인 명동 천주교당의 풍경이다. 많지 않은 작품 편수에 비해 서울을 자주 인용하기로는 이상화가 꼽힌다.‘가상(街相)’‘달밤-도회(都會)’‘초혼(招魂)’ 등 3편이 빼어난 서정미를 보여준 그의 서울 시다. 신석정이 당시 흑석동에 살고 있던 서정주에게 보낸 ‘흑석고개로 보내는 시’(1943년)에는 일제 암흑기 압살의 흔적이 여실하다.“흑석고개는 어늬 두메 산골인가/서울에서도 한강/한강 건너 산을 넘어가야 한다드고//(…)//정주여/나 또한 흰 복사꽃 지듯 곱게 죽어갈 수도 없거늘/이 어둔 하늘을 무릅쓴 채/너와 같이 살으리라/나 또한 징글징글하게 살어보리라.” 책은 단순히 서울의 한 귀퉁이가 묘사된 시들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8년이나 선배인 신석정이 후배인 서정주에게 띄운 이례적 형태의 ‘헌정시’라는 점에서도 문학사적 의미를 더한다.1만 2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꼬불꼬불 뒷골목] 대구 ‘뽕나무 골목’

    [꼬불꼬불 뒷골목] 대구 ‘뽕나무 골목’

    뽕나무만큼 사람에게 유용한 나무도 드물다.잎은 누에의 먹이가 되고 열매는 ‘오디’라 하여 한약재로 쓰이며,뿌리는 ‘상두’라 해서 기침을 그치게 하는 진해제나 이뇨제로 쓰인다. ‘집터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살 먹은 사람이 명주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맹자의 말도 있다.조상들은 뽕나무가 잘자라야 나라의 태평성대가 이뤄진다고 믿고 곳곳에 뽕나무를 심곤 했다.뽕나무 골목은 대구시 중구 계산성당에서 동아쇼핑 사이의 좁은 골목이다. 이 골목의 역사는 조선 선조 때로 올라간다.임진왜란 원군으로 조선에 왔다가 귀화한 명나라 무장 두사충에게 선조는 이 일대 4000여평의 땅을 주었다.두사충은 이 땅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며 살았다. 그때 다니던 길이 세월이 흘러 골목으로 변하게 되었고,사람들은 이 골목을 뽕나무 골목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옛날 이 일대가 뽕나무 밭이었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뽕나무 한 그루 없다. 인근 한약방 직원에게 “뽕나무 골목을 아느냐?”고 물었다.자신은 이곳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모른다.”고 말했다.40여년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효성슈퍼 주인(72)은 “젊은 사람들 중 뽕나무 골목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이상화 시인이 이곳에 살아서인지 몰라도 주민 중에 문인들이 많았다.”며 “지금은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며 삭막해진 세태를 원망했다.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은 뽕나무 골목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타계한 1943년까지 2년6개월 정도 이곳에서 살았다.이 집에서 시조 ‘기미년’과 수필 ‘나의 어머니’,시 ‘서러운 해조’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1970년대 들어 서울 문인들이 찾아오면서 이상화 고택임이 알려졌다.지금까지 옛 모습이 거의 그대로 간직돼 있다. 그러나 최근 대구 중구청이 이곳을 관통하는 도로를 개설키로 해 헐릴 위기에 처했다.이 때문에 문화관련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보존운동본부’가 출범해 시민 50여만명의 서명을 받는 등 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상화의 형인 이상정 장군의 옛집도 뽕나무 골목을 지키고 있다.이상정 장군은 1921년부터 23년까지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지하조직을 결성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다. 뽕나무 골목 입구에는 중장비 소리로 어수선하다.옛 고려예식장 자리에 대규모 주상복합건물이 건립되고 있다.고려예식장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풍문으로 한때 지역 예식업계를 평정했으나 대형예식장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경쟁에서 밀려 결국 문을 닫았다. 고려예식장 부지에는 서병조 대륜재단 초대이사장의 집이 있었다.집이 운치가 있어 6·25직후 지역 요인들과 미군장교들의 가든파티장소로 이용되었다.고려예식장 업주 우씨는 예식장 건축과정에서 나온 홍송과 돌,목재 등이 너무 좋아 현재 달서구 월곡공원 옆 단양 우씨 재실인 ‘낙동서원’ 부속재로 사용했다. 주상복합건물 건립으로 서상돈 선생의 옛집이 사라졌다.민족운동가인 서상돈선생은 1907년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장해서 전국운동으로 승화시켰다. 건설업체는 건물 건립과정에 파손 등이 우려돼 불가피하게 서상돈 선생의 집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철거된 집의 자재는 현재 컨테이너 2개에 넣어져 공사장 한쪽에 보관돼 있다.건물이 준공된 후 서상돈 선생의 집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이 건설업체의 구상이다.최근 주상복합건물 시행사가 이상화 고택을 매입,대구시에 기부채납할 뜻을 비쳤다.기부채납이 이뤄지면 대구를 상징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대구시의 입장이다. 이상화,이상정,서상돈 고택이 있는 뽕나무 골목이 대구의 근·현대 역사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날이 멀지 않았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꼬불꼬불 뒷골목] 대구 ‘뽕나무 골목’

    뽕나무만큼 사람에게 유용한 나무도 드물다.잎은 누에의 먹이가 되고 열매는 ‘오디’라 하여 한약재로 쓰이며,뿌리는 ‘상두’라 해서 기침을 그치게 하는 진해제나 이뇨제로 쓰인다. ‘집터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살 먹은 사람이 명주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맹자의 말도 있다.조상들은 뽕나무가 잘자라야 나라의 태평성대가 이뤄진다고 믿고 곳곳에 뽕나무를 심곤 했다.뽕나무 골목은 대구시 중구 계산성당에서 동아쇼핑 사이의 좁은 골목이다. 이 골목의 역사는 조선 선조 때로 올라간다.임진왜란 원군으로 조선에 왔다가 귀화한 명나라 무장 두사충에게 선조는 이 일대 4000여평의 땅을 주었다.두사충은 이 땅에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며 살았다. 그때 다니던 길이 세월이 흘러 골목으로 변하게 되었고,사람들은 이 골목을 뽕나무 골목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그러나 지금은 “옛날 이 일대가 뽕나무 밭이었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뽕나무 한 그루 없다. 인근 한약방 직원에게 “뽕나무 골목을 아느냐?”고 물었다.자신은 이곳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모른다.”고 말했다.40여년 이 동네에서 살았다는 효성슈퍼 주인(72)은 “젊은 사람들 중 뽕나무 골목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이상화 시인이 이곳에 살아서인지 몰라도 주민 중에 문인들이 많았다.”며 “지금은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며 삭막해진 세태를 원망했다.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은 뽕나무 골목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타계한 1943년까지 2년6개월 정도 이곳에서 살았다.이 집에서 시조 ‘기미년’과 수필 ‘나의 어머니’,시 ‘서러운 해조’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1970년대 들어 서울 문인들이 찾아오면서 이상화 고택임이 알려졌다.지금까지 옛 모습이 거의 그대로 간직돼 있다. 그러나 최근 대구 중구청이 이곳을 관통하는 도로를 개설키로 해 헐릴 위기에 처했다.이 때문에 문화관련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보존운동본부’가 출범해 시민 50여만명의 서명을 받는 등 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상화의 형인 이상정 장군의 옛집도 뽕나무 골목을 지키고 있다.이상정 장군은 1921년부터 23년까지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지하조직을 결성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만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다. 뽕나무 골목 입구에는 중장비 소리로 어수선하다.옛 고려예식장 자리에 대규모 주상복합건물이 건립되고 있다.고려예식장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풍문으로 한때 지역 예식업계를 평정했으나 대형예식장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경쟁에서 밀려 결국 문을 닫았다. 고려예식장 부지에는 서병조 대륜재단 초대이사장의 집이 있었다.집이 운치가 있어 6·25직후 지역 요인들과 미군장교들의 가든파티장소로 이용되었다.고려예식장 업주 우씨는 예식장 건축과정에서 나온 홍송과 돌,목재 등이 너무 좋아 현재 달서구 월곡공원 옆 단양 우씨 재실인 ‘낙동서원’ 부속재로 사용했다. 주상복합건물 건립으로 서상돈 선생의 옛집이 사라졌다.민족운동가인 서상돈선생은 1907년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장해서 전국운동으로 승화시켰다. 건설업체는 건물 건립과정에 파손 등이 우려돼 불가피하게 서상돈 선생의 집을 철거했다고 밝혔다. 철거된 집의 자재는 현재 컨테이너 2개에 넣어져 공사장 한쪽에 보관돼 있다.건물이 준공된 후 서상돈 선생의 집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이 건설업체의 구상이다.최근 주상복합건물 시행사가 이상화 고택을 매입,대구시에 기부채납할 뜻을 비쳤다.기부채납이 이뤄지면 대구를 상징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대구시의 입장이다. 이상화,이상정,서상돈 고택이 있는 뽕나무 골목이 대구의 근·현대 역사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날이 멀지 않았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미소 - 안티고네에서 모나리자까지/소피 쇼보 지음

    아버지 오이디푸스의 비극과 형제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운명에 굴하지 않은 여인 안티고네.굴욕적인 삶 대신 고귀한 죽음을 택한 그의 미소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자의 마지막 몸짓이다.그런가 하면 웃는 듯 마는 듯한 모나리자의 미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수수께끼이자 신비다.미소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인류는 오랫동안 미소에 무관심했으며 심지어 함부로 미소 지을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피에타’가 대변하듯 고통은 이상화되고 행복과 기쁨의 표현은 금기시되기도 했다. ●미소의 사회적 효용 살펴 프랑스 작가 소피 쇼보의 ‘미소­안티고네에서 모나리자까지’(진인혜 옮김,영림카디널 펴냄)는 누구나 친숙하게 여기면서도 아무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미소에 관해 다룬다.미소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그 심미적 가치와 사회적 효용을 살핀다. 책은 웃음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미소의 정체를 밝힌다.정신분석학자들은 웃음을 일종의 퇴행현상으로 간주한다.육체가 언어를 압도하고 일시적으로 사고를 정지시키는 현상이 바로 웃음이다.그것은 때로 변화무쌍한 광기를 동반한다.탄자니아에서는 언젠가 열 달 동안 100여명의 사람이 웃다가 죽은 광적인 웃음의 전염병이 있었다고 한다.북극지방에서도 ‘북극 히스테리’라 불리는 이와 비슷한 증상이 발견됐다. ●미소없는 세상에 남는 건 고통뿐 하지만 미소에는 이런 광기가 없다.미소도 전염되지만 치명적인 병이 돼 통탄을 자아낸 적은 없다.저자는 미소를 “나름의 광채와 분위기를 지닌 아리아”로 표현한다.미소를 잃어버리는 순간,그것은 더이상 살아 있는 삶이라 할 수 없다.미셸 투르니에의 소설 ‘방드르디,태평양의 끝’에 나오는 로빈슨 크루소는 어느 날 자신이 더이상 웃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그는 미소를 잃어버렸고 무언의 몸짓언어도 잊어버렸다.다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미소가 없는 세상에 남는 건 결국 고통뿐이다. 미소의 의미가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다.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아프리카인들은 미소를 금기시한다.사람들이 크게 웃는 것을 제한하는 그들은 아이들에게 미소를 짓지 못하게 한다.너무 행복해 보이면 질투심 많은 신들이 지켜보다 데려갈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서양에서는 미소가 민주주의의 영향 아래 고상한 풍습으로 발전했지만,아프리카에서는 차라리 위선과 조롱의 ‘하위웃음’이다. 일본의 미소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일본인들은 별로 웃지 않지만 미소를 철저하게 사회적 규범으로 삼는다.어려서부터 인사하는 법을 배우듯 미소를 배운다.저자에 따르면 일본의 미소는 예절이라는 국민적 종교의 성스러운 예식이다.물론 거기엔 일본 사회의 일상화된 폭력을 감추기 위한 탐미주의의 일환이라는 비판도 따른다. ●유토피아를 향해 열린 창 저자에게 미소란 유토피아를 향해 열린 마지막 창.미소는 과연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테러와 보복으로 일그러진 세상을 바로 펼 수 있을까.저자는 예술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세상을 변화시키듯 미소도 그럴 수 있다고 강조한다.미소는 인류의 ‘마지막 무기’인 셈이다.저자가 구원의 언덕으로 삼는 미소는 요컨대 어두운 현실에 모반을 꿈꾸는 미소,진정한 삶의 혁명을 가져오는 미소다.9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3)흙사람이 보낸 편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4848-16,옛 김해평야의 낙동강 기슭 한 언저리에 소담재(小潭齋)라는 작은 전시실을 겸한 찻집.그 곁 창고같이 허름하고 귀신냄새가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것 같은 어두컴컴한 안쪽에는 뜻밖에도 한국인의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아프고 서러운 배고픔의 역사가 눈 뜨고 서 있다. ●‘소담재’에서 만난 ‘역사’ 배고픔만이 아니다.여자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차별받고 부대끼면서도 죽는날까지 참아야만 했던 한국의 어머니들이 모두 모여 서 계신다.모두가 일하는 모습이다.흔히 노동이라고 표현하는,육체를 수고롭게 움직여 식구들과 이웃의 삶을 보살피고 있는 동작은,멈춘 상태로지만 금방이라도 다시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과 긴장감이 짙게 느껴진다.얼핏 1900년 무렵 개항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고,외세와의 갈등과 시련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고,한국인들의 생활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한국인을 인간의 길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껴안고,업고,다독여 오늘까지 데려오신 어머니 모습이다. 이같은 어머니 모습을 빚고 있는 허경혜씨도 여성이다.우연한 기회에 그의 작품전을 알리는 작은 신문기사를 읽고나서 그의 작품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그런지 몇 해를 지나서 또 우연히 그의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퍽 인상적이었다.그는 그의 작품을 토우(土偶)라 불렀는데,나는 토우라는 이름보다 ‘흙사람’이라는 말이 더 좋겠다고 했다.토우와 흙사람은 좀 다른 세계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허경혜씨의 ‘흙사람’은 한국인의 역사와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한 미술양식이다.따라서 토우,토용(土俑),명기(名器)라고도 부르는 것들과 다르게 보아야 할 것 같다.중국,한국 역사 속에서 자리매김되어온 토우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세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또한 희랍 로마에서 발달한 테라코타(Terra-cotta)나 일본 문화인 하니와(埴輪)와도 다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토우’와는 다른 ‘흙사람’의 세계 이른바 토우는 사람 모습을 갖춘 것과 여러 가지 동물,생활용구 등 모든 표상물들로서 주술적인 우상,무덤에 껴묻기 위한 부장용(副葬用)으로 만든 것들이다.특히 한국과 중국 고대 사회에서의 토우는 인간이 죽은 뒤의 세계와 영혼의 미래를 상징하는 신앙 체계와 관련되어 있다.또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주종관계를 전제로 하여 지배자의 시체와 함께 노비나 하인을 산 채로 파묻던 고대 국가의 습속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이 때 토우에 나타난 인물상들은 여성의 성적 특징을 과장하여 표현함으로써 다산신앙과 풍요를 나타내거나 공예적으로 두드러진 기법을 이용함으로써 그 시대의 우주관이나 사생관(死生觀)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그런 연유로 토우의 외형이 당시의 생활상·사회상을 짐작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하지만 이 토우가 주술적 우상성과 주종관계를 위한 제물로서 인간을 희생시키는 몰인간성 이념을 유지한 채 현대사회의 한 미술형식으로 재현,혹은 답습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무의미한 낭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허경혜씨의 ‘흙사람’은 이런 전통사회에서 있어 온 토우들과는 선명하게 차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흙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로움인데 그런 점에서 전통시대의 나한신앙(羅漢信仰)이 지닌 특징들과 일정한 소통관계를 지니고 있다.한국인들이 꿈꾼 자유로움이 나한신앙에 잘 나타나 있는데,이들 나한상은 다른 불상과 달리 엄격한 도상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자유롭게 바위 위에 앉거나 팔을 괴고 쉬는 자세,기분 좋게 서있는 자세 등으로 표현되는데 표정도 가지각색이다.눈을 내리뜨고 참선하는 얼굴,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거나 빙긋이 미소짓는 모습,찡그린 얼굴 등 다양한 인간의 표정을 보여준다.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화된 성격과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적절하게 융화시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그렇게 볼 때 흙사람은 유장한 한국인의 전통신앙체계를 근간으로 삼되 종교적으로 의존하거나 이미지를 억지로 끌어들이지 않으면서도 전통의 힘과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한국인의 사랑과 믿음,갈등과 불안을 담백하게 형상화시키고 있는 점은 흙사람의 장점이자 미덕이다. 소백산맥 이남의 흙 중에서 산화철 성분이 적고 흙 알갱이가 굵으면서 내화도가 높은 흙을 이용하여 인간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점도 좋아보인다. ●노예노동보다 고통스러웠던 보릿고개 그가 집중하고 있는 20세기 초 중반 무렵의 한국 농촌의 여성상은 수많은 회화와 조각들로 표현되어온 기존의 미술적 혹은 역사적 평가와도 조금은 궤적을 달리해야 할 것 같은 문화다.가난과 질곡으로 압축되는 20세기 초중엽 농촌 사회에서 가장 부자유스럽고 무거운 노동과 정신적 중압감을 받으며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과 가족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많은 일들을 도맡아해 낸 것은 어머니였다.양반 사대부 가정과 달리 민중의 삶은 여성들의 희생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사회구조였다.의료시설과 의약품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가운데서 여러 명의 자식을 생기는 대로 낳아 기르는 일은 죽음에 가까운 위험하고도 무모한 생존 그 자체였다. 식량부족은 곧 산모와 여성들에게 영양결핍을 고질적인 일상으로 만들었고 대가족의 빨래와 식단차리기 등은 견디기 힘든 노예노동에 견줄 만했다.그 어떤 어려움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보릿고개로 불려온,긴 긴 봄날의 굶주림이었다.토지 부족과 식량 부족이 일상화된 가운데서 해마다 반복되는 보릿고개는 특히 젖먹이를 키우거나 임신중인 어머니들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천형과도 같았다. 그런 질곡의 세월은 적어도 보리농사가 시작된 18세기 무렵 이후부터 더욱 극심해진 한국 농촌의 비극이었다.한국 농민들이 하루 세 끼니의 식사를 하게 된 것이 1960년대 이후부터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보릿고개 시절에는 하루 한 끼니조차도 제대로 거치기가 쉽지 않았었다.굶주림과 고난중에도 어머니는 임신을 해야 하고 자식을 낳고 길러야만 집안과 사회가 이루어진다. 똑같이 굶으면서도 임신하고,젖 먹이고,어린 자식 품어 키워내야 하는 역할은 전적으로 어머니 몫이다.따라서 한국 어머니는 한국 역사의 절반이 아닌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온 몸으로 도맡아왔다.그런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역사 바깥이나 다름없는 홀대와 차별의 불길 속에 서서 살아왔다.그러다가 현대사회라는 이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까지 와버렸다.전통적 가치와의 충돌로 생기는 늙으신 농촌 어머니의 고독,깊은 상실감,소외와 박탈감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고백록을 쓰듯이 어머니의 수난사를 흙으로 표현하게 된 것 같다. ●‘강철문명’과 맞서는 흙의 힘 콘크리트와 강철 등 인공적 조형과 냉혈한 금속성,생명의 단절과 괴리를 멈추지 못하는 도시문명 속에서 허경혜씨가 들고나온 것은 흙이다.흙의 부드러움과 온유함,자연성과 생명성을 상징하는 흙 한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한국여성사의 한 단면을 조형해내는 그의 작업은 분명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어머니 마음으로 읽혀진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임을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흙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잠시 우리가 걸어왔고 지향하고 있는 목표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3)흙사람이 보낸 편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 4848-16,옛 김해평야의 낙동강 기슭 한 언저리에 소담재(小潭齋)라는 작은 전시실을 겸한 찻집.그 곁 창고같이 허름하고 귀신냄새가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것 같은 어두컴컴한 안쪽에는 뜻밖에도 한국인의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아프고 서러운 배고픔의 역사가 눈 뜨고 서 있다. ●‘소담재’에서 만난 ‘역사’ 배고픔만이 아니다.여자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차별받고 부대끼면서도 죽는날까지 참아야만 했던 한국의 어머니들이 모두 모여 서 계신다.모두가 일하는 모습이다.흔히 노동이라고 표현하는,육체를 수고롭게 움직여 식구들과 이웃의 삶을 보살피고 있는 동작은,멈춘 상태로지만 금방이라도 다시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과 긴장감이 짙게 느껴진다.얼핏 1900년 무렵 개항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 사회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고,외세와의 갈등과 시련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고,한국인들의 생활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한국인을 인간의 길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껴안고,업고,다독여 오늘까지 데려오신 어머니 모습이다. 이같은 어머니 모습을 빚고 있는 허경혜씨도 여성이다.우연한 기회에 그의 작품전을 알리는 작은 신문기사를 읽고나서 그의 작품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그런지 몇 해를 지나서 또 우연히 그의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퍽 인상적이었다.그는 그의 작품을 토우(土偶)라 불렀는데,나는 토우라는 이름보다 ‘흙사람’이라는 말이 더 좋겠다고 했다.토우와 흙사람은 좀 다른 세계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허경혜씨의 ‘흙사람’은 한국인의 역사와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한 미술양식이다.따라서 토우,토용(土俑),명기(名器)라고도 부르는 것들과 다르게 보아야 할 것 같다.중국,한국 역사 속에서 자리매김되어온 토우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세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또한 희랍 로마에서 발달한 테라코타(Terra-cotta)나 일본 문화인 하니와(埴輪)와도 다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토우’와는 다른 ‘흙사람’의 세계 이른바 토우는 사람 모습을 갖춘 것과 여러 가지 동물,생활용구 등 모든 표상물들로서 주술적인 우상,무덤에 껴묻기 위한 부장용(副葬用)으로 만든 것들이다.특히 한국과 중국 고대 사회에서의 토우는 인간이 죽은 뒤의 세계와 영혼의 미래를 상징하는 신앙 체계와 관련되어 있다.또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주종관계를 전제로 하여 지배자의 시체와 함께 노비나 하인을 산 채로 파묻던 고대 국가의 습속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이 때 토우에 나타난 인물상들은 여성의 성적 특징을 과장하여 표현함으로써 다산신앙과 풍요를 나타내거나 공예적으로 두드러진 기법을 이용함으로써 그 시대의 우주관이나 사생관(死生觀)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그런 연유로 토우의 외형이 당시의 생활상·사회상을 짐작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한다.하지만 이 토우가 주술적 우상성과 주종관계를 위한 제물로서 인간을 희생시키는 몰인간성 이념을 유지한 채 현대사회의 한 미술형식으로 재현,혹은 답습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무의미한 낭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허경혜씨의 ‘흙사람’은 이런 전통사회에서 있어 온 토우들과는 선명하게 차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흙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로움인데 그런 점에서 전통시대의 나한신앙(羅漢信仰)이 지닌 특징들과 일정한 소통관계를 지니고 있다.한국인들이 꿈꾼 자유로움이 나한신앙에 잘 나타나 있는데,이들 나한상은 다른 불상과 달리 엄격한 도상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자유롭게 바위 위에 앉거나 팔을 괴고 쉬는 자세,기분 좋게 서있는 자세 등으로 표현되는데 표정도 가지각색이다.눈을 내리뜨고 참선하는 얼굴,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거나 빙긋이 미소짓는 모습,찡그린 얼굴 등 다양한 인간의 표정을 보여준다.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화된 성격과 너무나 인간적인 면모를 적절하게 융화시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그렇게 볼 때 흙사람은 유장한 한국인의 전통신앙체계를 근간으로 삼되 종교적으로 의존하거나 이미지를 억지로 끌어들이지 않으면서도 전통의 힘과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한국인의 사랑과 믿음,갈등과 불안을 담백하게 형상화시키고 있는 점은 흙사람의 장점이자 미덕이다. 소백산맥 이남의 흙 중에서 산화철 성분이 적고 흙 알갱이가 굵으면서 내화도가 높은 흙을 이용하여 인간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점도 좋아보인다. ●노예노동보다 고통스러웠던 보릿고개 그가 집중하고 있는 20세기 초 중반 무렵의 한국 농촌의 여성상은 수많은 회화와 조각들로 표현되어온 기존의 미술적 혹은 역사적 평가와도 조금은 궤적을 달리해야 할 것 같은 문화다.가난과 질곡으로 압축되는 20세기 초중엽 농촌 사회에서 가장 부자유스럽고 무거운 노동과 정신적 중압감을 받으며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과 가족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많은 일들을 도맡아해 낸 것은 어머니였다.양반 사대부 가정과 달리 민중의 삶은 여성들의 희생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사회구조였다.의료시설과 의약품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가운데서 여러 명의 자식을 생기는 대로 낳아 기르는 일은 죽음에 가까운 위험하고도 무모한 생존 그 자체였다. 식량부족은 곧 산모와 여성들에게 영양결핍을 고질적인 일상으로 만들었고 대가족의 빨래와 식단차리기 등은 견디기 힘든 노예노동에 견줄 만했다.그 어떤 어려움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보릿고개로 불려온,긴 긴 봄날의 굶주림이었다.토지 부족과 식량 부족이 일상화된 가운데서 해마다 반복되는 보릿고개는 특히 젖먹이를 키우거나 임신중인 어머니들에게는 참으로 가혹한 천형과도 같았다. 그런 질곡의 세월은 적어도 보리농사가 시작된 18세기 무렵 이후부터 더욱 극심해진 한국 농촌의 비극이었다.한국 농민들이 하루 세 끼니의 식사를 하게 된 것이 1960년대 이후부터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보릿고개 시절에는 하루 한 끼니조차도 제대로 거치기가 쉽지 않았었다.굶주림과 고난중에도 어머니는 임신을 해야 하고 자식을 낳고 길러야만 집안과 사회가 이루어진다. 똑같이 굶으면서도 임신하고,젖 먹이고,어린 자식 품어 키워내야 하는 역할은 전적으로 어머니 몫이다.따라서 한국 어머니는 한국 역사의 절반이 아닌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온 몸으로 도맡아왔다.그런데도 여자라는 이유로 역사 바깥이나 다름없는 홀대와 차별의 불길 속에 서서 살아왔다.그러다가 현대사회라는 이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까지 와버렸다.전통적 가치와의 충돌로 생기는 늙으신 농촌 어머니의 고독,깊은 상실감,소외와 박탈감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고백록을 쓰듯이 어머니의 수난사를 흙으로 표현하게 된 것 같다. ●‘강철문명’과 맞서는 흙의 힘 콘크리트와 강철 등 인공적 조형과 냉혈한 금속성,생명의 단절과 괴리를 멈추지 못하는 도시문명 속에서 허경혜씨가 들고나온 것은 흙이다.흙의 부드러움과 온유함,자연성과 생명성을 상징하는 흙 한가지 재료를 이용하여 한국여성사의 한 단면을 조형해내는 그의 작업은 분명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어머니 마음으로 읽혀진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임을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흙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잠시 우리가 걸어왔고 지향하고 있는 목표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좋겠다.
  • 50대 여성학자 4인의 ‘새로운 가족이야기’ 담론

    민법 개정안이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도입하는 시점에서 ‘가족이란인가?’‘가족해체의 시대에 과연 우리는 누구와 살아야 할까?’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들은 답한다.“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라.”다양함이라.이들은 ‘이론’이 아닌,생생한 자신들의 이야기로 ‘현실’을 이야기한다.보통사람들에겐 ‘진보적’이란 말을 듣고 20대 여성들에게선 ‘계몽주의적’이란 비난을 듣는다는 이들을 만났다.조형,조한혜정,조옥라,박혜란,이상화,정진경 등 50대의 페미니스트들의 실제 모습을 살그머니 들여다볼 수 있는 책 ‘또하나의 문화’ 17권이 나온 이래 이들은 “페미니스트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을 듣는단다. ●정상 가족은 없다 이들은 우선 ‘정상 가족’이란 단어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 보였다.그렇다고 페미니스트 가정은 온통 ‘비정상’이라고 지레 단언하는 것은 곤란하다.이들은 가족은 출세할 아이를 기르려는 ‘어머니 CEO’들의 투자 회사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건강한가족 관계는 핏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만 가능해진다.’고 말하며,이미 많은 아이들이 이혼한 부모를 가졌고,재혼한 부모를 가진 현실에서 혈연이 아닌 사람들이 가족안에 들어와 있는 현실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해서 아이들을 스스로 피해자로 낙인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늘 45살에 결혼하겠다.”고 말했던 서강대 조옥라 교수는 정말 40대 중반에 결혼해 10년간 결혼 생활을 했다.아이가 셋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그는 아이들에게 “나는 너희 새엄마이지 엄마일 수는 없다.”고 선언하듯 말하고 시간을 두고 친해지자고 말했다.이런 직설법은 남편은 불편하게 했지만,오히려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자살하지 않으면 탈영하겠다.’는 위협을 달고 군복무를 해 새엄마를 힘들게했던 아들,결혼한 후 여성으로서 고민을 털어놓는 딸은 아버지보다는 오히려 새엄마와 이야기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지낸다. 34살에 결혼해서 아이없이 살고 있다는 정진경 씨는 “남자 친구가 좋아서 결혼했고,아이가 생기지 않았으나 꼭 낳기위해 병원을 다니지 않았다.대개 아이가 생기면서 부부생활이 달라진다는데 우리는 달라질 기회가 없어서 변함없이 대화를 많이 하며 산다.”고 말했다.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살지 않아도 된다? 결코 이혼을 당연시하거나,장려한다는 말은 아니다.50대 부부 중에는 ‘자식이,특히 딸이 결혼할 때까지만’ 참고 살겠다는 부부가 많다. 결혼 20∼30년 후 다시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감성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부부 관계의 질을 한결 높여주는 조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다소 급진적인 견해같지만 “20년이 지난 후 헤어질지 말지를 생각해 본다는 것을 전제로 결혼하면 20대의 결혼도 한결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는 말에 여성들은 긍정적이다. 여성학자란 사실보다 세아들을 모두 유명 대학에 입학시킨 것으로 더 유명해 쑥스럽다는 박혜란씨.그는 “20대에 연애해서 결혼해 전업 주부로 살다가 39살에 여성학을 공부하게 된 날더러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들 말한다.이 말에는 페미니스트는 불행하다는 편견이 담겨있는 틀린 말이지만.어쨌든 그런 나 역시 아이가 모두 떠난 후 남편과의 살아갈 일이 걱정이다.요즘 남편이 중국에 가 있으니 우리는 전화로 재미있게 대화하지만 함께 있을 때는 시큰둥해지게 마련이었다.”고 고백했다. 이화여대 조형 교수는 “20대의 나는 결혼에 대해 양극의 이중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결혼 안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과 만일 결혼한다면 고전적이고 모범적인 가정을 이룰 것이란 두 가지 생각.미국 유학중 결혼했지만 ‘함께 사는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워’ 결국 먼저 귀국함으로써 별거가 시작됐고,20년이나 지난 후 이혼했다고 그는 ‘어렵게’ 사생활을 밝혔다.“그 시절에 헤어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고,내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최후의 결정을 하는 것은 나’라는 생각으로 결혼 생활을 지속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며느리에게 ‘아들을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는 앞으로 10년 정도 함께 살 여자친구를 구해놨다고 밝혔다. ●가족 관계의 무거움연세대 조한혜정 교수는 친정 부모와 한 건물의 아래위층에서 살았다면서 50대인 자신이 아직도 노모의 ‘치명적인 모정’에 짜증날 때가 있다고 말했다.“목욕탕에서 만난 낯선 할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나 그런 것 잘못하는 사람이고,우리 엄마에게는 정작 한번도 그렇게 해본 적도 없는데….아마 기존 관계가 주는 무거움과 부담 때문에 더 부모에게는 잘못하는 것같다.”고 말했다.한편 여성학자는 딸에게 뭐라고 결혼을 권할까.“살아보니 애를 낳고 키우는 그 시기가 무척 좋은 시간이더라.우리가 너무 심각하게 평생 어쩌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고,20년 과제로 생각하고 관계의 나무를 함께 키워갈 사람,아이를 낳고 함께 기를 사람을 만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하지 않은 채 여자친구와 그의 딸,자신의 제자 등 50대 여성 2명과 20대,30대 여성들이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이화여대 이상화 교수는 자신의 ‘가족’을 혈연 공동체가 아니라 ‘주거 공동체’로 보는 것은 편견이라고 못박았다.“가족은 지원체계다.”는 그는 서로 사랑하고 돕고 사는데 정작 ‘큰 아이’인 제자가 수술을 하게 됐을 때 가족인 세 사람은 아무도 ‘보호자’ 노릇을 할 수 없었다며 “우리는 가족이지만 법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글 허남주기자 hhj@ 사진 도준석기자 pado@
  • 책 / 미국사의 전설,거짓말,날조된 신화들-리처드 솅크먼 지음

    미국의 초월주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결국 중요한 것만 기억에 남는다.”고 했지만,미국인의 역사 인식은 이와 사뭇 다르다.미국인들이 기억하는 역사적 지식은 상당 부분이 신화적인 것이다.시간이 흐르면서 객관적인 사실은 퇴색해 버리고 근거없는 신화는 계속 살아 남는다.‘자유의 종’ 이야기라든가 에이브러햄 링컨과 앤 루틀리지의 낭만적인 사랑에 관한 헛소문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요컨대 ‘미국식’ 신화는 세계를 인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신화가 아니라,역사적 정통성의 부재와 침략과 정복의 역사를 은폐하기 위한 신화인 것이다. ‘미국사의 전설,거짓말,날조된 신화들’(리처드 솅크먼 지음.이종인 옮김,미래M&B 펴냄)은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치부와 허점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미국 역사의 가면과 거품을 가차없이 벗겨낸다.에미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인 저자는 미국사에 드리워진 신화의 아우라를 특유의 우상파괴적인 글쓰기로 거둬낸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反민주주의자였다 미국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미국인들은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독립전쟁을 일으키고 헌법을 물려준 이 건국세대는 정치적 음모나 중상모략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그런 만큼 건국의 아버지를 비판하는 역사가들은 백안시당한다.심지어 미국 서부 유타주의 모르몬교 지도자들은 헌법은 신의 영감을 받아 작성된 문서라고 가르치고 있다.유타에 살면서 건국의 아버지들을 “정치가들”이라고 부르면 그것은 필경 언쟁의 빌미가 된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건국의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민주주의에 부정적이었다.미국의 독립선언문 서명자로 매디슨 행정부의 부통령을 지낸 엘브리지 게리는 이른바 게리맨더링의 효시가 된 인물.또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말 따로 행동 따로였으며 매관매직을 일삼았다.제퍼슨은 인권을 강력하게 옹호한 정치가이긴 했지만,자신이 민주주의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그는 평생 공화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화가들의 그림 또한 거짓 신화를 양산하는 데 한몫했다.‘잔인한 위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초상화는 여러 개가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원래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콜럼버스가 살아 있을 때 제작된 초상화는 단 한 점도 없기 때문이다.미국 독립혁명 지도자 패트릭 헨리의 초상화는 그의 사후 16년이 지나 그려졌으며,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초상화는 신격화된 양상까지 보인다.19세기에 제작된 워싱턴의 흉상은 너무 이상화된 나머지 백악관에서는 한동안 ‘무명의 인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림으로 거짓 신화를 정당화 초상화 못지않게 왜곡된 것이 전쟁,특히 독립전쟁과 관련된 그림들이다.독일 화가 에마누엘 로이체의 ‘델러웨어 강을 가로지르는 워싱턴’이 그 두드러진 예.워싱턴이 델러웨어 강을 건넌 것은 사실이지만 그림에서 묘사된 것처럼 우아하면서도 감동적인 모습으로 건너지는 않았다.의회에서 아직 채택되지 않은 미국 국기가 배에서 휘날리는 것도 의문을 낳는다. 미국은 과연 인종의 용광로인가.미국은 초기 이민자들에게 대단한 텃세를 부렸다.19세기 초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들이 건너왔을 때 개신교 신자들은 “교황이 미국을 파괴하기 위해 피묻은 손을 뻗쳤다.”고 성토했고 필라델피아에서는 폭동을 일으켰다.나중에 남유럽이나 동유럽 사람들이 이민 왔을 때도 보수적인 미국인들은 마치 범죄자 무리가 침범한 것처럼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유서 깊은 뉴잉글랜드 가문 후손인 시인 토머스 베일리는 이렇게 한탄했다.“오,자유,하얀 여신이여! 저렇게 문을 마구 열어 놔둬도 되는 것입니까?” 흥미로운 것은 미국인들이 20세기 들어 비로소 미국을 용광로로 자각했다는 사실이다.그 전의 미국인들이 자신들을 ‘단일민족’으로 생각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당시 영국의 관습과 가치가 우세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문화도 그에 못지않은 영향을 끼쳤다.‘용광로’라는 말은 1908년까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1934년이 지나서야 웹스터 사전에 올랐다. 미국은 ‘호색의 역사’를 지닌 나라다.미국인은 식민지 시대의 청교도들이 매우 금욕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섹스에 관대했다.현대 미국인만큼 성적 부도덕을 허용하진 않았지만,외설추방운동을 편 개혁가앤서니 컴스톡 같은 도덕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폐쇄적이지도 않았다.매사추세츠주의 점잖은 마을인 콩코드에서 독립전쟁전 20년 사이에 태어난 아기의 3분의1이 사생아였다는 사실은 퍽 시사적이다. ●성관계에 관대했던 청교도들 청교도들은 섹스로부터 자녀를 지키려고 크게 노력하지도 않았다.약혼중인 남녀가 옷을 입은 채 한 침대에서 자는 ‘번들링(bundling)’ 관습은 종종 성관계로 이어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습은 널리 퍼졌다.아무튼 청교도는 1600년대에 미국에 정착한 다른 종교그룹들에 비해 도덕적 엄격함만 내세우는 편협한 종교집단은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잘 알려져 있듯이 역사에 대해 어둡다.때론 미국 헌법의 첫 10개 수정조항이 권리장전으로 공포된 것이라는 사실도 모른다.그들은 정작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잊어버려도 좋은 ‘신화적인’ 것은 곧잘 기억한다.문제는 저자의 지적대로 “신화는 보호색이 너무 강해 지적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1만 1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씨줄날줄] 남북 이산 문화재

    “미륵보살의 깊은 명상과 자애를,여성적이면서도 여성도 아닌 중성적인 신체가 조용하고도 힘차게 상징하고 있다.이상화된 얼굴에는 말로 형용할 수없는 불가사의한 미소의 흔적이 (중략)영원한 적막을 깨뜨리는 것 같으면서 실은 그것을 더 강조하고 있는 벌어진 오른발 엄지발가락의 동작과 묘사는 한마디로 신묘(神妙).” 작고한 고미술사가 김원룡박사는 저서 ‘한국미의 탐구’(1978,열화당)에서 이렇게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왼 무릎위에 오른 다리를 걸치고 뺨에 오른 손가락을 살짝 대어 깊은 명상에 잠긴 모습을 형상화한 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6세기부터 통일신라 초기까지 약 100년간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김 박사가 예찬한 국보 83호는 7세기전반 신라작품으로 6세기 후반 백제 작품인 국보 78호와 함께 한국 고미술의 최고 걸작품으로 꼽힌다.이 작품들은 또한 일본의 국보인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과 많은 부분이 비슷해 한국미술의 일본전파 사실을 입증하는 작품으로 귀중한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가상은 신라와 백제에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고구려는 적어도 6세기까지는 삼국 가운데 가장 앞선 불교미술을 갖고 있었다.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118호,평양 평천리 출토 금동미륵반가상은 7세기 전반 고구려의 반가상 양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이 반가상이 북에 남겨두고 온 자신의 반쪽과 ‘이산(離散) 상봉’을 한다고 한다.오는 12월6일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북한 고구려 미술품 특별전에서 남쪽의 사유상 본체와 북한 중앙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광배(光背)부분을 나란히 전시한다는 것이다.그동안 고미술사학계에서는 북한이 국보로 보존해 온 ‘영강 7년명 금동광배’가 호암미술관의 금동반가상과 한 짝일 것이라는 추정이 있어 왔다.직접 작품을 분석해 봐야 확인될 일이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남과 북에 흩어져 있는 ‘남북 이산 문화재’의 첫 상봉이 되는 셈이다.학계는 평남 원오리 절터 출토의 흙부처 등 ‘남북이산문화재’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남북 학술교류를 본격화해 문화재의 남북 분단을 극복하는 새로운 장이 열리길 기대해 본다. 신연숙 논설위원 yshin@
  • 현대문학 8월호 ‘탄생 100주년 특집’ 소월詩 다시읽기/소월詩엔 ‘국가·노동’도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김소월은 ‘정한(情恨)’에 익숙한 시인이다.특히나 교과서밖의 시문학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더러는 ‘나라잃은 설움’이나 ‘망국의 한’이 시구에 담겨 있기도 하나 그것이 주된 흐름이나 색깔을 결정하는 본질은 아니었다.그를 아는 대개의 사람들이 이렇게 김소월을 읽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해는 김소월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월간 현대문학이 8월호에 꾸민 ‘김소월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에 실린 충북대 정효구교수의 김소월론 ‘빼앗긴 땅,꿈꾸는 노동’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이 대일 땅이 있었드면’이라는 긴 제목을 가진 시는 1925년 발간된 그의 시집 ‘진달래꽃’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나는 꿈꾸었노라,동무들과 내가 가즈란히/벌가의 하루일을 다 마치고/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즐거이,꿈 가운데.’로 시작되는 시는 얼핏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떠오르게 할 만큼,알려진 소월의 시세계와는 다른 작품이다. 이 글이 드러내는 중요한 흐름은 소월의 뚜렷한 국가관.나라를 잃어버린 비애와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대지,이를테면 땅·들·밭 등 다분히 농경사회적 상상력을 통해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집잃은 내 몸이여,/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대일 땅이 있었드면!/이처럼 떠돌으랴,아침에 저물손에/새라 새롭은 탄식을 얻으면서.’라고 토로한다.그의 시에서는 드물게 노동의 보람과 기쁨에 대한 꿈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보섭대일 땅’이란 실제의 경작,즉 쟁기질할 수 있는 땅에의 향수와 그 땅을 스스로 경작하고 싶은 열망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시적 수사이다. 이를 두고 정교수는 “안타까운 현실인식 속에서 그는 절절하게 솟구쳐 오르는 소망을 피력한다.소망이란 ‘바라건데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섭대일 땅이 있었드면!’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라고 해석한다.그러나 일제에 나라를 강점당한 현실은 소망을 꿈으로 밀어낸다.‘동무들과 내(시인)가 벌판에서의 하루일을 마치고 석양 무렵 안식처로 돌아오는 정경’에서는 ‘땀흘려 가꾸고 거기에서꿈을 수확할 나라가 없음’이 간절한 시각효과를 낸다. ‘인간과 인간,인간과 대지(땅),인간과 노동이 이 장면에서 한치의 어긋남이나 소외도 없이 완벽한 조화와 합일 속에 놓여 있다.’는 정교수의 지적처럼 소월에게서 일찍이 이보다 더한 노동성과 나라정신을 읽은 적이 없다. 소월의 시정신은 마지막 4연에서 빛난다.‘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자칫 가늘은 길이 이어가라.나는 나아가리라/한 걸음.또 한 걸음.보이는 산비탈엔/온 새벽 동무들 저저 혼자……산경을 김매이는’에서는 소월의 연상이미지로 굳어진 ‘체념’과 ‘부정’‘한’대신 ‘희망’과 ‘의지’가 읽힌다.소월이 결코 나라와 민족이라는 집단의 문제를‘허무나 패배주의적 관점에서 다루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나약한 시인’김소월이 아니라 막막한 절망속에서도 ‘언젠가는 다시 올 땅일구고 씨뿌리는 그날’을 꿈꾸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시인’을 만나게 된다.김소월을 더는 ‘패배주의적이고 무기력한정한’의 틀에 가둬둘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교수는 “이 작품에 호감을 갖는 것은 국권을 상실하고 떠도는 자의 비애감을 너무나 절실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공동체의식과 노동의 환희가 농경사회적 상상력을 활용해 참으로 인상깊게 표현되고 있는 점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책꽂이/환경사회학 등

    ◇환경사회학(정대연 지음) ‘자연은 인간없이 살아남을 수 있지만 인간은 자연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국가와 이념을 초월해 세계의 공통관심사가 되고 있는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다뤘다.1920년대부터 다뤄온 환경사회학의 이론과 연구방법의 변천 등이 기술된 지침서.아카넷,2만 5000원. ◇사회적 상상력과 한국시(김응교 지음) 선뜻 다루기 어려운 한국 현대시인들의 시를 사회적 상상력의 시각에서 다룬 책.신동엽과 박두진,북한 시인 리찬은 물론 이상화 문병란 정현종 이성복 김진경 이산하 최승호 이진명 문부식 등 내로라는 시인들이,와세다대 객원교수인 작가의 해부대에 오른다.소명출판,2만원. ◇동아시아의 정치와 경제(정갑영외 지음)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이 지난 2년간의 연구실적을 정리해 엮은 책.‘유럽의 정치와 경제’와 나란히 나온 책으로 동아시아 지역질서와 한국 입법과정의 변화,일본의 군사혁신과 중국의 경제적 위상,그리고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관계 등 관심을 끄는 동아시아 현안들을 밀도있게 다루었다.나남출판,1만원. ◇고흐가 되어 고흐의 길을 가다(노무라 아스시 지음,김소운 옮김) 숱하게 쏟아져 나온 고흐 평전이나 작품해설과 달리 고흐의 탄생지부터 그가 잠들어 있는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 묘지까지 삶의 궤적을 샅샅이 추적해 썼다.화가로서의 삶뿐 아니라 인간 고흐의 체취가 물씬 묻어나는 역저.마·주翰,1만 5000원. ◇중국 개혁-개방의 정치개혁 1980-2000(정재호 편저) 지난 20여년간 숨가쁘게 진행돼 온 중국의 정치·경제 분야 개혁·개방 정책을 다룬 책.분야별로 8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저술한 공동연구서.중국 개혁·개방의 역사성과 체제개혁 내용,도전과 갈등의 시각으로 본 개혁,대외관계의 변화와 전망 등을 깊이 있게 파헤쳤다.부록으로 중국 개혁·개방 연대기와 공산당 정치국의 인적구성 변화,개혁기 핵심 통계지표 등을 실었다.까치,2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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