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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국민당」 발기인대회/창당준비위원장에 정주영씨 선출

    정주영씨가 주도하는 가칭 「통일국민당」창당발기인대회가 10일 상오 서울 종로구 평동 서진빌딩에서 발기인 1백52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려 공식출범을 선언했다. 이날 대회에서는 정씨가 창당준비위원장에 선출됐고 최고위원에는 정씨를 비롯 김광일의원(무소속)양순직전평민당부총재 윤하정전외무차관 등이,사무총장은 이용준전노동부차관,대변인에는 이인원전KBS감사가 각각 내정됐다. 신당은 창당발기문에서 『우리는 구심점을 잃고 혼란에 빠져있는 국민에게 밝고 희망찬 미래의 꿈을 주는 새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통일국민당의 발기를 선언한다』며서 『우리는 금융실명제 실시로 부패와 금권정치를 청산하고 토지공개념관련법안의 합리적 보완,세제개혁을 통해 경제정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당은 이와함께 ▲합리주의원칙 ▲민주주의원칙 ▲공개주의견지 ▲책임주의신봉 ▲통일성취의 노선과 이상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신당은 오는 20일쯤 창당준비대회를 갖고 2월20일까지 창당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국민당 발기인 명단 강달수 강병규 강부자 강용순 강칙모 구재춘 권금옥 권숙표 권희태 김경인 김광년 김광일 김규벽 김길곤 김달수 김동조 김문환 김성범 김성수 김수현 김수호 김양식 김영구 김영호 김용현 김용호 김윤근 김윤근 김정민 김정강 김정국 김종갑 김진영 김철범 김충섭 남기일 노경규 노병덕 노양학 유중함 문창모 민병철 박광원 박귀희 박로경 박동운 박병순 박병욱 박성호 박성규 박성상 박영자 박재승 박주성 박춘석 박한상 서영훈 손관형 손종극 송석찬 송영진 송운호 송창달 송태희 신상근 신창동 신민선 안비취 안철 양준호 양순직 엄병길 엄정주 오성섭 오진우 오혁진 우기하 우진범 우창록 원광호 유호 윤만중 윤하정 윤한우 이건영 이경희 이계성 이관용 이규설 이래흔 이만기 이상주 이수용 이승춘 이영근 이용준 이인원 이정인 이정현 이종순 이주일 이철희 이충범 이치업 이한두 이헌진 이현재 이효종 이훈 이희태 임인채 정해영 정갑출 정길준 정몽준 정병선 정상봉 정순빈 정연복 정영섭 정우택 정을병 정재경 정주영 정차두 정대원 조영전 지용우 차병기 차화준 채의석 최경만 최광수 최귀동 최만립 최불암 최양규 최왕석 최운용 최종태 탁희준 한근수 한만우 한영수 한운사 한창석 함병선 함영주 홍대원 홍성우 홍종욱 황한수 이상 1백52명
  • 정주영씨 신당 17일께 발기대회/집단지도체제로 운영

    정주영전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주도하는 신당은 당명을 통일국민당(가칭)으로 정하고 오는 2월중 창당준비작업을 모두 완료할 계획이다. 국민당은 이에앞서 신당창당에 필요한 법적요건인 48개 지구당을 조속히 결정,오는 17일쯤 의사 변호사 교수 문필가 노동·농민운동가 연예인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신당창당 발기주비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국민당은 지도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하고 최고위원단을 정씨를 포함,서울 호남 영남 충청 경기 강원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5∼6명으로 구성키로 했다고 7일 민자당을 탈당하고 국민당 창당에 참여한 정몽준의원이 말했다. 신당에는 윤성민전국방장관,서영훈전KBS사장,김광일의원,양순직·오제도·홍성우·박한상·신민선씨등 전현직관료 및 의원등이 참여하고,이상주울산대총장은 발기인으로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전명예회장은 8일 하오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구체적인 창당일정을 밝힐 예정이다.
  • 북한의 핵논리가 갖는 함정(사설)

    북한이 핵사찰 거부의 구실을 또 하나 만들었다.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보호다.그것이 있는 한 핵사찰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그동안의 주요 구실은 주한미군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 전술핵이었다.그것이 미국의 전세계적인 전술핵 철수·폐기선언으로 무의미해지자 이번엔 핵우산의 철거인 것이다. 북한은 핵이 없고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다시 강조하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들고 나선 것이다.한마디로 북한은 어떤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핵사찰을 자진해서 받을 생각이 전연 없는 것이다.주한미군의 핵무기 보유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핵사찰을 요구하고 나서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해야할 판이다.미국이 핵우산의 철거까지 선언한다면 북한은 극동미군 내지는 본토미군의 핵까지 사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올 사람들인 것이다. 핵우산의 보호라는 것은 핵을 갖고 있지 않은 나라에 대한 핵보유국의 핵공격 가능성에 대한 핵강국의 억제를 의미하는 것이다.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너도 나도 핵무장을 서둘게 되는 핵확산의 파국을막는다는데 근본 취지가 있는 것이다.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철거하라는 것은 한국도 핵개발을 서둘라는 소리로 들린다.핵우산의 보호는 지난 68년 핵비확산조약(NPT)체결당시 유엔안보리 결의로 국제적인 보장을 받은 것이다.남북한을 포함하는 NPT가입국은 어느 나라건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그것은 방어적인 것이며 핵공격을 받을 가능성만 없으면 필요없는 것이다.북한의 확실한 핵개발포기 보장이 선행요건인 것이다. 결국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철거요구는 억지요 구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미국의 대한 핵우산 때문에 핵무장을 해야하겠다는 억지인 것이다.그동안 미일은 물론 우리 정부도 북한을 가능한 한 개방과 개혁으로 유도하고 평화공존과 통일로 이끈다는 선의의 목적에 집착한 나머지 북한에 대해 너무 유화적으로만 대하고 양보만 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북한은 그것을 그들의 목적을 위해 악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핵우산 철거요구도 결국은 북한의 핵사찰 거부에 대한 국제압력의 화살을 한미로 돌리고 한국내의 반미·반핵분위기를 선동하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북한은 이미 주한미군의 핵철수 요구로 상당한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꼭 북한의 요구를 들어준 것은 아니더라도 미국은 전술핵 철수와 폐기를 선언한 바 있다.그리고 미국은 물론 일본·한국에서까지 일부 순진하고 이상주의에 치우친 「핵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북한은 이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북한의 이러한 전술·전략과 목적이 통하고 달성되도록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북한의 핵사찰수용은 물론 개방과 개혁으로의 유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그런의미에서 이번 정부의 이례적인 적극대응은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한다.북한의 유엔동시가입수용도 우리의 유화와 양보 일변도의 결실이 아니라 그와 병행한 단독가입불사의 확고하고 적극적인 대응의 결실이 아니었던가 하는 평가가 있었다.정부는 북한 억지의 허구성에 대한 해명이상의 소리만이 아닌 보다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강구해 나가야 할 상황이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 미 전술 핵폐기 선언과 국제정세 파장/긴급좌담

    ◎“「핵없는 세계」로의 문이 열렸다”/미,신질서 주도권으로서 위상 제고/다자간 핵무기 협상시대 기틀 마련/평양엔 큰 타격… 남북대화 촉진 기대 지구상에서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을까.미국의 부시대통령은 28일 상오(한국시간) 핵전력감축계획을 발표,그 가능성을 가시화했다.모든 지상발사 전술핵무기를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잠수함및 해상발사 핵무기를 미국본토로 회수하겠다고 발표한 부시대통령의 선언은 한반도를 비롯,전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임에 틀림없다.서울대 이용필교수,외교안보연구원 이서항교수,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이만우소장등 관계전문가 3명의 특별좌담을 통해 이번 선언이 갖는 의미와 향후국제정세변화등을 긴급 진단해 본다. ▲이만우소장=바르샤바조약국과 소련의 공산체제가 모두 붕괴된 시점에서 미국이 계속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은 설득력을 지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소련과 미국이 초강국으로 있으면서 경쟁할때 의미가 있었을 따름입니다. 소련은 이제 더 이상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있지 못합니다. 따라서 미국 부시대통령이 핵폐기선언을 한 것은 냉전을 종식시킴과 동시에 신세계질서를 이끌어 가는 지도국가로서의 도덕적 위상을 높인 조치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말해 미국이 꼭 해야할 「도덕적인 의무」를 완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서항교수=신뢰구축과 군비감축을 포괄하는 미소간의 군축협상은 소련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신사고」로 인해 좋은 계기가 마련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에 비해 미국의 대응자세는 다소 미온적인 느낌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따라서 부시미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고르바초프의 신사고 못잖은 획기적이고 신선한 대응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어쨌든 「무핵세계」를 향해 출발할 수 있는 문이 열렸습니다.또 이번 선언을 쿠데타 발발과 그 실패 이후 붕괴조짐을 보이고 있는 소련의 핵무기 관리체제의 혼란을 진정시키는 방향으로도 작용하리라 봅니다. ▲이용필교수=이번 부시선언은 지난 50년대말 핵무기가 개발된 이후 미소를 주측으로 30여년동안 계속돼온 공포의 핵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할수 있습니다.이는 또 소련의 쿠데타실패이후 국제질서재편과 관련,강화된 미국의 입지를 한층 더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부시대통령이 소련사태이후 팍스 아메리카나 즉 「미국에의 한 패권주의」 추구는 않을것이라고 천명했습니다만 이번 선언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도덕성은 한결 고양됐고 이에따른 영향력 역시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아울러 미국 내부로 국한해 볼때 부시의 미국내 위상도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군비축소라는 인류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부시의 역할,미국의 역할에 대한 미국민의 자긍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이서항=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WTO(바르샤바조약기구)간의 군축협상은 동서양진영간의 군축협상이기도 하지만 크게 보아 23개 국가가 참여한 다자간 군비감축협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과거에는 재래식 무기에만 다자협상이 가능했으나 이제 「부시선언」으로 핵무기분야에도 다자간협상의 기틀이 마련됐습니다.이는 부시선언에 영국과 프랑스가 벌써 좋은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데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이같은 「비핵선언」으로 과거 윌슨 전미국대통령이 주도했던 것처럼 국제정치도 이전보다 더 국제법과 국제기구에 의해 국제간 문제를 해결하는 이상주의적 국제정치구조가 정착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이만우=이번 미국의 핵폐기선언을 계기로 현재 핵을 개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이라크와 북한에 상당히 타격을 줄 것 같습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초강국인 미국이 핵폐기를 선언,도덕적기반을 구축하고 세계의 여론과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이들 나라에 대한 압력이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이러한 여론을 무시한채 독자적으로 핵을 개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북한측이 그동안 고집해온 주한미군의 보유핵(?)철수가 실현되는 마당에 그들도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이서항=그렇습니다.부시의 전술핵 일방폐기선언은 초강대국의 세계전략 변동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반도문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한반도의 「핵문제」는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핵사찰을 받아야 하는 문제와 주한미군 핵철수여부등 한반도 비핵지대화 문제등 2가지 사안이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그동안 주한미군의 핵보유 사실 유무와 관계없이 이번 부시선언이 실현될 경우 북한의 주한미군 핵철수 주장은 자동적으로 효력이 상실되므로 이제 북한이 핵사찰을 안받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고 하겠습니다.왜냐하면 주한미군의 핵철수가 선행돼야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겠다는 북한의 주장은 논리적 근거가 박탈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시선언이 조속히 실천에 옮겨질 경우 북한에 대한 핵사찰 압력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동북아 전체의 안정과 남북대화를 촉진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용필=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볼 때 이번 선언은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긴장완화,더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분위기정착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아울러 핵사찰거부의사를 밝혀온 북한측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입니다.노태우대통령이 북한측이 핵사찰요구를 수용할 경우 한반도내의 핵문제를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번 부시 선언과 맥을 같이한다고 봅니다.여러면에서 심각한 딜레마에 빠진 북한측은 핵사찰요구 등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미국등에 반대급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김일성이 중국을 방문하게 되면 이 문제도 논의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따라서 남북대화가 촉진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고 남북간에 한반도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는 전기를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소양국이 핵폐기를 유도해 나가더라도 하위 국제질서집단간의 마찰에 의한 불안정성이 계속될 경우 그 성과는 기대에 못미칠 수도 있습니다.얼마전 이라크의 핵무기제조등과 관련,유엔이 결의안을 내놓은 것도 이같은 하위 집단의 호전성을 꺾어 세계평화분위기를 유도하자는 것이지요. ▲이만우=미국은 종전에도 그래왔지만 부시대통령의 선언에 맞춰 금명간 『한국에 핵무기가 전혀 배치되어 있지 않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만약 북한이 이를 무시하고 핵개발을 하려든다면 이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와 미국 뿐만 아니라 유엔,나아가 전세계문제로 비화돼 북한은 고립을 면치 못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서항=앞서 얘기한 것처럼 한반도의 핵문제는 두가지 사안이 근간을 이루고 있으나 명확히 얘기하자면 북한의 핵사찰과 주한미군 핵철수여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따라서 NPT(핵확산금지조약)과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의거해 북한은 어떠한 전제조건없이 핵사찰을 받도록 핵개발을 명확히 중지시켜야 합니다. 고르바초프는 미소간 군축주장을 제기해 국제정치의 「획기적 일탈자」로 떠올랐습니다만 이번 선언으로 이제 부시가 이에 상응하는 획기적 일탈자로 부각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확고한 군사적 긴장완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우리 최고지도자의 획기적 발상전환도 긴요하다고 봅니다. ▲이용필=이번 선언을 통해 소련 국내정치 또는 미소관계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확인해 볼수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이번 선언이 세계질서속에 미국의 입지를 강화시켰고 상대적으로 소련의 위상을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소련국내에서 입지를 강화토록 해준 면도 간과해서 안될것입니다.
  • “국민은 시위보다 민생문제 더 걱정”/노 대통령·원로들의 대화내용

    ◎정치불신 심각한 상태… 물가·집값 잡아야/우리나라 장래는 사회개혁 추진에 달려 노태우 대통령은 17일 낮 청와대에서 고재필 전 보사부 장관,현승종 대한교원총연합회 회장,양호민 한국논단발행인,정준 제헌의원,김홍수 대한변협 회장,손인실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등 각계원로 6명과 오찬을 함께하며 현시국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다음은 이날 1시간30분간의 오찬대화가 끝난 뒤 이 자리에 배석했던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이 전한 대화내용의 요지. ▲노 대통령=원로들의 말씀을 자주 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십시오. ▲정준=과거에 비해 사회도 상당히 많이 안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경대군사건이 발생해 유감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시위에 동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상황은 극복될 것으로 봅니다. 일반국민들은 물가 등 민생문제를 더 걱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 대통령=후진국엔 갈등이 적고 국민수준이 높고 급격히 발전하는 나라에는 오히려 갈등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최근 교사나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현승종=4천명의 교사들이 참여했는데 대부분이 젊은 교사들로 교원노조 탈퇴자와 민주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입니다. 민주사회에서 견해를 밝히는 것은 자유이나 제자들에게 영향을 미칠까봐 자중자애하도록 설득하고 있습니다. 40만 교사 중 4천명은 적은 숫자라고 봅니다. ▲노 대통령=소련이나 동구가 버린 낡은 이념에 매달려 목숨을 거는 운동권학생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현상이 빈발하는 특수성이라도 있습니까. ▲양호민=첫째는 절대적 또는 상대적인 빈부의 차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이 달동네의 생활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될 수 있지요. 빈부의 차와 관련,가장 심각한 것은 집문제입니다. 이런 면에서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확실히 추진해야 합니다. 빈부의 차에서 연유된 계급투쟁의식은 북한이라는 존재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됩니다. 요즘 운동권의 경직된 계급투쟁이념에 대해서는 소련사람들도 놀라고 있습니다.우리의 장래는 앞으로 사회개혁을 어떻게 추진해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고재필=문제를 일으키는 범주는 좌익세력,이상주의자,불평을 가진 자 등 3그룹입니다. 이상주의자와 불평하는 사람은 설득을 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나 좌경세력은 법에 의해 척결되어야 합니다. ▲노 대통령=정부도 기업이 기업윤리를 지켜 국민들의 신뢰를 쌓도록 종용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처분도 같은 맥락에서 강력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고재필=토지투기의 원천을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 대통령=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여당이 단독처리한 데 대한 법조계의 여론은 어떻습니까. ▲김홍수=야당과 재야가 법폐지를 주장했으나 우리 현실에 비추어 형법에도 대체로 불가하다고 봅니다. 여당이 일방통과시켰으나 결과적으로 잘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목적범만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법운영이 잘돼야 합니다. ▲노 대통령=북한에서는 체제저항이나 부정은 물론 김일성 비판에 대해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처벌형법조항을 갖고 있습니다. ▲김홍수=국민들의 정치불신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일부 변호사들도 시국선언을 하고 있는데 판사·검사를 안 거친 변호사를 양산하는 현 제도는 검토되어야 합니다. ▲정준=교도소가 실질적으로 교화를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춰야 합니다. ▲손인실=주부들이 장바구니 물가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일부 지도계층의 호화사치나 졸부들의 무절제한 생활도 문제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입시위주의 교육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입시에 매달려 가정교육도,전인교육도 받을 수 없습니다. ▲노 대통령=오늘의 젊은이문제는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무조건 과거를 부정하는 자세를 고치고 이런 면에서 현대사도 재조명되어야 합니다.
  • “과감한 개혁정책 추진을”/각계원로,노 대통령에 시국수습책 건의

    노태우 대통령은 17일 낮 청와대에서 각계 원로들과 시국수습에 관한 의견을 나누면서 『과격세력의 시위에 정치권이 편승,한계를 넘게 되면 우리 사회는 해결하기 어려운 혼란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 사회의 화합이 깨지면 우리 내부에 대한 걱정보다도 지금 막 변화를 시작하려는 북한에 대해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정치인은 문제를 만들도록 충동질을 하기보다는 문제해결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고재필 전 보사부 장관·현승종 대한교원총연합회장·양호민 한국논단발행인·정준 제헌의원·김홍수 대한변협회장·손인실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등 원로들은 시국타개책과 관련,절대적 빈부격차는 물론 국민계층간의 위화감을 줄이는 과감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하고 ▲토지공개념의 확대 ▲시장바구니 물가안정 ▲부동산투기 억제 ▲집값안정 ▲입시위주의 교육제도개혁을 적극 추진하라고 건의했다. 특히 고재필 전 보사부 장관은 최근 문제를 일으키는 집단의 범주는 좌익세력·이상주의자·불평불만을 가진 자 등 3그룹이라고 지적,『상주의자와 불평을 가진 자에 대해서는 설득을 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지만 좌익세력은 법에 따라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로들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심각한 상태라고 지적하고 정치권의 자세전환을 촉구하면서 『현시국은 분명 어려운 국면이나 각계가 역량을 발휘하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배석한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 일가 3명 윤화사망

    【영월】 21일 상오 8시30분쯤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외룡2리 앞 상동천(폭 10m 수심 3m)에 일가 친척 3명이 타고 가던 강원1마5949호 프레스토승용차(운전자 이장춘·20·영월군 영월읍 하송5리 6반)가 추락,운전자 이씨와 이씨의 아버지 이상주씨(48),함께 타고 있던 이태화씨(54) 등 3명이 숨져 있는 것을 이 마을 이영호씨(41)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 대담(걸프전후의 새 기류:8·끝)

    ◎아랍 세력균형 이뤄야 중동평화 온다/「팔」문제 해결에 미의 적극적 노력 긴요/아랍권 민주화 부축… 정정불안 막아야/“핵균형속의 국지전 가능성·힘에 의한 모험주의 불용”… 한반도에 양면교훈 걸프전은 끝났지만 그 여파는 세계 및 중동의 질서개편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들의 접촉이 활발하고 아랍국가들도 모임이 빈번하다. 걸프전후 세계 정세는 어떻게 변할 것이며 이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등을 유정렬교수(외국어대·중동문제 전공)와 박경서교수(중앙대·국제정치학)의 대담을 통해 정리해 본다. ▲박경서교수=중동은 지금 심각한 전쟁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예상할 수 있었던 여러가지 시나리오 중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없지 않지요. 미국은 후세인의 전쟁수행능력 파괴를 원하기는 했지만 이라크가 완전히 무력화돼 국가기능을 상실하고 인접 온건 아랍국들마저 위협할 정도로 혼란에 빠지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라크의 레바논화는 미국에 또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죠. 중동에서의 전후처리 문제는 전쟁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사막의 폭풍」 작전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셈입니다. ○이스라엘 편향 탈피/팔문제 관심 가져야 ▲유정렬교수=걸프전쟁은 중동지역에서 세력균형이 깨진데 따른 무질서 상태에서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 지역의 정치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중동국들간의 정치·군사적 세력균형을 어떻게 재형성하느냐 하는 문제가 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 후세인은 축출위기를 맞고 있고 이라크에서는 상당기간 정치혼란이 계속될 전망이며 「제2의 레바논」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내부세력간 갈등 뿐아니라 주변국들간의 해묵은 역사적 이해관계가 어떤 형태로 폭발되느냐도 문제입니다. 내부적으로 이라크내 다수 시아파가 이란과 연계해 어떻게 나올지,쿠르드족이 터키·시리아·이란·소련 등지에 퍼져있는 동족들과 연계해 어떻게 행동할지가 문제이며 외부적으로는 이라크 북부 모슬렘지역이나 남부 시아파 거주지역에 대해 나름대로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할 근거를 갖고있는 시리아나 이란이 어떻게 나올지가 변수입니다. 쿠웨이트 등 페르시아만 연안의 6개 보수 아랍국에서도 앞으로 이라크의 정세변화에 따라 불안이 가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교수=미국은 유엔의 협조를 얻어 이라크의 안정조치를 취해야할 것입니다. 이라크의 레바논화를 방치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중동질서의 구축은 강·온 아랍국간의 조화와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해결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중동에서는 지금 이라크의 패전으로 강경국들의 입지가 약화돼 강·온국들이 함께 참여하는 평화적인 집단안보체제 구축의 최적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미국은 후견국으로서 베이커 국무장관의 계획처럼 지역안보체제 구축과 중동개발은행 설립 등을 통해 포괄적이고도 근본적인 중동분쟁 해결을 추구해야 합니다. 미국은 이스라엘 점령지 문제를 공평하게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미국이 원하는 중동질서 구축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미국이 이스라엘 편향정책을 계속할 경우에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미국의 패권주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해 전후질서 형성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이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강대국간의 분쟁으로 유엔 안보리의 단합과 신평화질서가 깨질 우려마저 없지 않지요. ▲유교수=미국의 중동정책을 되돌아보면 55년 바그다드조약기구에서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항상 소련의 남하정책 저지를 위한 중동국들과의 전략적 합의모색이란 과정이었습니다. 신데탕트시대를 맞아 미소간 경쟁관계가 진정국면에 접어들고는 있으나 앞으로 이해충돌로 이 지역에서 경쟁이 재연될 가능성은 많습니다. 앞으로 미국의 중동정책은 페르시아만안 6개국으로 형성된 경제안보협력기구를 강화시켜 전쟁방지를 도모하는 방향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지원아래 사우디가 중심역할을 맡고 반이라크 전선에 동참한 이집트와 시리아의 참여도 가능하겠죠. 그러나 아랍권은 생리적으로 불안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세력재편은 어디까지나 팔레스타인문제 등 새로운 문제가 터지면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가변적인 것입니다. ○이라크 위기감 고조/중동 정치불안 가중 앞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전에 따라 중동판도와 세력관계의 또다른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프랑스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창설하자는 입장이고 미국 군사전문가들도 웨스트뱅크의 비무장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백악관은 다르지만 미국무성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보는 시각이 건전한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전쟁의 와중에서 복잡하기는 했겠지만 이번 사태는 쿠웨이트 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국적군내 아랍국 뿐만 아니라 서구국들간에도 분열이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죠. ▲박교수=미국의 중동정책의 성사여부는 이스라엘 편향태도를 어떻게 시정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양보가 필요한데 미국 정치지도자들이 정치적 손실을 감수해가며 이스라엘의 양보를 강요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주화입니다. 정치 경제질서가 민주화되지않고서는 제2,제3의 후세인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이는 강경국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온건국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떠한 중동질서도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지요. 미국이 쿠웨이트를 해방시켰고 일단 왕정복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아랍국들의 정치·경제민주화를 추구할 것으로 봅니다. 그럴 경우 중동에서도 동구권에서와 같은 정치개방에 따른 혼란이 되풀이될 것이고 중동질서는 상당기간 유동적일 수밖에 없죠. ▲유교수=걸프전쟁은 한나라가 뚜렷한 명분없이 무력에 의해 침략되는 일이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중동을 포함한 전세계질서의 본질은 힘에 의한 현상타파를 불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기존정부와의 유대를 통해 세력균형 및 안전보장을 유지해왔고 협력대상 제3 세계국들의 정치체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미국의 신세계질서 형성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습니다. 중동국들만 해도 보수왕정 아니면 군사정권이거나 권위주의 독재정권들로서 따지고보면 민주정권이 하나도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죠. 미국은 앞으로 중동판 페레스트로이카를 강조할 것이고 이번 전쟁에서의 승패에 관계없이 아랍국들,나아가 이란·터키에서까지 개혁이 수반될 것이며 이스라엘에서도 우익보수정권과 온건 노동당간의 조화가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안보·경협기구 강화/전쟁 재발 방지해야 ▲박교수=부시 미 대통령이 이번 전쟁에 중요성을 부여한 이유는 선진산업국의 석유안정공급이란 실리차원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몰타정상 회담에서 청산한 얄타체제 이후의 세계평화질서 창출에 중동이 시금석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양국정상이 전쟁보다는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한 지역분쟁 해결과 미소협력을 통한 세계평화 모색을 선언,데탕트시대를 연 이후 처음으로 받는 능력테스트여서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탈냉전시대의 세계질서 창출이란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결국 군사력이란 현실적 수단에 의존하고 말았고 무력행사 과정에서도 강대국 우월주의와 패권주의가 약간씩 나타나 결국 우방간 세력갈등의 또다른 불씨를 남겼습니다. 미국이 승리에 자만해 미국의 시각에 입각한 중동정책을 강요할 경우 미소관계의 악화 내지 정체를 초래하고 주요 우방국들과의 관계가 국가실리면에서 첨예하게 대립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세계정치가 미국일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군사력은 경제력에 기초하며 경제적으로 다극화 지역화되고 있어서 미국을 견제할 세력이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독일중심의 유럽과 일본중심의 동아시아,미국중심의 북미 세력권간의 세력다툼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인 대외정책 개발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전비 전액부담 불능/미의 한계 극명 노출 ▲유교수=아직까지는 세계평화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원칙이 확립됐다기 보다는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소위 팍스 아메리카나의 부활은 미국중심의 질서유지 및 평화회복으로서 어떻게 보면 냉전구조의 연장입니다. 미국이 유엔결의와 소련의 협조를 구하는 체 했지만 이번 전쟁도 사실상 거의 전적으로 미국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고 과거 냉전시대의 분쟁해결 양상과도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나마 미국이 유엔을 동원해 소련의 협조아래 12개 결의안을 이끌어낸 것은 국제협력기구의 존재가치와 평화유지를 거기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죠. 아직까지는 힘의 정치가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상호의존도가 강해짐에 따라 국제협력의 가치도 더해지고 있어서 앞으로 국제질서 원칙이 어느쪽으로 결정될지 기로에 서있는 셈입니다. ▲박교수=중동전쟁은 미국에 의해 주도되기는 했지만 미국의 한계도 노출시켰습니다. 전비를 자체부담하지 못하는 양상으로 전개된 것이죠. 뒤에서 재정지원을 했던 독일이나 일본이 당장은 전쟁분위기에 휩싸여 목소리를 내지않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지분을 요구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미국만이 신세계질서를 주도할 수는 없는 형국입니다. 신세계질서는 대외적으로 미국 주도하에 놓여있는 것같지만 지역세력간의공동관리체제로 넘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북미 유럽 동아시아권간의 지분찾기 경쟁은 동서블록간 대립이란 단순양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전개될 것입니다. 한국도 홀로 서서는 목소리가 약하기 때문에 아태협력체제를 구축해 지역적으로 대응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새 세계질서 구축엔/지역 안보체제 중요 ▲유교수=최근 중국의 훈춘에서 남북한 중국 소련 일본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경제협력 세미나가 열려 만주남부와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경제협력을 모색했었죠. 아시아지역의 협력관계를 확대해나가고 단계적으로 미국도 참여시켜 환태평양기구로의 발전도 가능합니다. ▲박교수=아태협력체제는 크게 2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연변과 두만강유역을 중심으로 자유경제 지대화해 중국 소련 남북한 일본이 상호보완 및 협력관계를 증진시키는 동북아 경제권과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국들의 경제이익을 도모하는 동남아 경제권으로 이 두가지 블록을 합해 동아시아 경제협력체제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도 선도적역할을 통해이 지역 협력체제내에서 위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삼분체제의 국제정세속에서 동아시아 경제협력체제의 본격화는 90년대 대외정책의 큰 과제이며 앞으로 한국의 좌표를 설정할 국가전략이기도 합니다. ▲유교수=걸프전이 다국적군의 완승으로 끝난 것은 남북한관계의 발전과 전환에도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흔히들 후세인과 김일성 카스트로 카다피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고 사실 공통점도 많습니다. 앞으로 세계가 무모한 정치·군사적 모험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훈은 북한에 교시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개방·민주화 추세가 지배적인 현실이고 보면 북한도 걸프전 종결과 함께 자성하는 면이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우리도 남북한간의 협력관계와 군비통제 및 정치관계 발전을 위한 좋은 기회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북측이 팀스피리트훈련을 구실로 총리회담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기는 했지만 축구와 탁구의 단일팀을 이룩하는 성과를 얻어낸 것도 사실입니다. 비정치적인 면에서 좀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미,90년대 세계 주도/우방국 갈등 심할듯 ▲박교수=이라크가 다국적군에게 무참히 패배해 지역적인 모험주의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김일성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베트남전 이후 핵공포와 핵균형하에서 강대국은 전쟁을 할 수없는 시대로 접어들었고 전쟁에 의한 문제해결은 불가능한 것으로들 생각했지만 이번에 모험주의가 있을 수 있고 강대국도 이상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워 무력사용이 가능함이 입증됐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도 오판에 의한 모험주의,즉 전쟁발발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교훈도 함께 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수=그렇기 때문에 전쟁 억제장치를 자꾸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세계추세는 과거보다 전쟁 가능성이 줄어들지 확대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박교수=강경아랍국들의 입지가 약화되고 소련국내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당분간은 미국의 일국대권주의가 90년대를 이끌어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방간 관계에서 볼때오히려 적신호이며 90년대는 우방간 갈등이 오히려 심화될 것입니다. 우리도 여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모스크바·겨울·노태우 대통령/이재근 본사 논설위원(서울칼럼)

    일반적으로 미국인은 실용주의적이고 소련인은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보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개인생활이나 정치면에서도 미국에는 이상주의자,도덕주의자가 훨씬 더 많고 소련에는 냉소적인 현실주의자,실용주의자가 더 많다는게 소련 연구가들의 분석이다. 소련정치도 겉으로는 이데올로기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산주의 이상에 따라 움직여 왔으며 대부분의 경우 현실적인 국가주의의 이해와 여러 사회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영돼온 것이다. 도의적인 이상이나 이데올로기에 좌우되는 현상은 소련보다는 미국의 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국민성도 그러하다. 소련 연구가들의 관찰이나 많은 여행기들을 살피면 소련 국민들,특히 러시아 국민들처럼 솔직하고 개방적인 생활태도를 갖고 있는 민족도 드물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서민의 생활과 대인관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들은 대개 자연스런 감정으로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되고 있다. 스탈린시대의 거칠고 얽매인 통제사회를 거치면서도 사람들의 행동은 거기에 물들지 않았고구김살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전후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던 한 일본인 작가는 그 저서에서 러시아인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러시아인은 밖에서 세사람만 모이면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부르는 합창소리가 바람에 실려 내가 있는 곳까지 들린다. 정말 소비에트식의 밝고 낙천적인 풍경이다. 소비에트권력의 침울한 어둠과 민중의 밝고 낙천적인 감성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볼가의 단가」에서 느껴지는 애조띤 감성은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그렇게 볼때 오늘날 저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공개)는 이 러시아적 소련 민족성의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라는 한 탁월한 지도자에 의해 그것이 시대적으로 표출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노선을 천명한 최대의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면 소련적 사회주의가 막다른 곳에 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페레스트로이카의 기둥은 당연히 경제개혁이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고르바초프의 모든 개혁정책은 결국은 경제활성화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60년대의 전반까지도 대부분의 소련국민은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인류보편의 가치를 갖는다고 믿고 있었다. 60년대 중반이후 일부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들이 체제비판의 소리를 높인바 있었으나 극히 한정된 소수였다. 특히 경제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미 50년대 후반부터 경제개혁의 문제가 제기되어 60년대초에는 「이윤의 도입」을 둘러싼 경제논쟁도 빚어졌다. 65년에는 이른바 「코시긴 개혁」이 실시되는등 스탈린체제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각되고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60년대까지는 사회주의와 그 이데올로기의 신앙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70년대가 되자 소련체제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이제 누구의 눈에도 분명해졌다. 60년경 허풍쟁이 흐루시초프는 『70년에는 미국을 따라잡는다. 80년대에는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취하는 풍요한 공산주의 낙원이 도래한다』고 세계에 선언했다. 당강령에도 그렇게 기록하게 했다. 그런데 70년대가 되어도 소련에서는 고기나 소시지,기타 기본 필수품을 입수하기 위해 서민은 뛰어다니고 긴 줄을 서고 악전고투 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경제상태가 나빠졌다. 지방에서는 육류가 몇년씩 상점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사태로까지 되었다. 사람들은 드디어 큰 환멸을 느꼈다. 70년대에 이르러 공산주의는 급속히 퇴색하고 풍화되어 버렸다. 당의 지도자가 아무리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설득해도 매일처럼 생필품을 사는 행렬꽁무니에 몇시간씩 서있어야 하는 서민들은 냉소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독주 보드카에 탐닉하며 울분을 풀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신할 가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소련을 우리는 어느만큼 아는가. 어느 사람의 표현대로 「무서운 속도」로 북방으로 달려간 우리에게 있어 소련은 정말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 그들에게 느끼는 우려,당혹,두려움은 어디에 기인하는 가도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상대를 너무 모른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구한말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직접 그들과 교류한 역사가 없고 특히 냉전체제하에서는 원천적으로 접촉이 불가능했다. 더구나 고르바초프 정권하에서는 최근 몇년동안 그들 자신이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중이어서 마치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는 것 같은 어려움도 있다. 그들이 대국이라는 콤플렉스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진짜 크렘린」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소 수교가 이뤄졌다. 거기에다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한다. 전후 처음으로 아니 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국가원수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입성」하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회담할 것이고 붉은 광장을 거닐 것이며 크렘레프스카야 제방도로를 달려 톨스토이가를 지나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붕괴된 대제국 오늘의 소련 대통령과 한 소간 정치·경제·문화협력을 논의하다가 때로는 과거를 바탕으로 역사도 얘기할 것이다. 바로 그 대목이 중요하다. 그럴적에 대통령은 반드시 다음과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조용히 얘기해야 할 것이다. 즉 멀리는 노일전쟁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제에 의한 한반도흥정,구러시아제국과 구한말의 관계에 이르러야 한다. 이어볼셰비키혁명을 전후한 한반도의 소용돌이에도 언급될 것이고 그 완전한 식민지화도 회상돼야 할 것이다. 전후 해방·독립·분단에 언급한데 이어 드디어 6·25 동족전쟁에서의 소련의 책임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82년의 무자비한 대한항공(KAL)여객기 격추사건은 또 어떻게 언급될 것인가. 나흘간의 짧은 일정속에 이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소 관계의 진정한 개선과 앞으로의 전개를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이 역사와 우호협력의 이름으로 반드시 여과돼야 한다. 그것이 한 소 관계의 진전과 노대통령의 모스크바 입성을 지켜보는 국민의 눈초리인 것이다.
  • “미국은 십자군이 될 필요없다”/미 보수파,페만개입에“볼멘소리”

    ◎“국익이 우선… 이상주의적 모험은 곤란/분쟁해결에 전세계의 공동대응 마땅” 미국내에서 수주전 거의 만장일치의 지지도를 나타냈던 부시 대통령의 중동정책에 대해 불평의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특히 과거 미국의 외국사태 개입에 대해 새삼 혐오감을 나타내고 있는 보수파들이 이러한 불평에 앞장서고 있어 시선을 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보도했다. 현재 부시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사람은 좌우 양파에서 다같이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의원들의 경우는 보수파라도 위기의 시기엔 대통령 비난을 자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전 미유엔대사 커크 패트릭이나 컬럼니스트 패트릭 부캐넌과 같이 보수파 견해를 선도해온 정책연구가와 논평가들은 거리낌없이 의문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미국의 대 중동 군사개입이 장기화되면 부시 대통령도 결국 그의 전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에서 거센 비판에 부딪칠 것이라는 점이다. 좌파들의 비판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전 법무장관 렘지 클라크를 비롯한 소수의 재향군인들은 「중동개입정책 반대연합」을 결성했다. 중도좌파의 생각을 대변하는 잡지인 「네이션」은 24일자 사설에서 부시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잡지는 부시의 대응책을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개입」이라고 지칭하면서 「시작은 요란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는 헐리우드의 대작 영화」에 비유했다. 미국의 개입정책에 대해 전통적으로 비판해온 일부 의원들은 『왜 미국은 항상 그런 일을 저질러야 하느냐』고 못마땅해 하면서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근년의 미국 정치에서 대외개입에 대한 좌파의 비난은 단골 메뉴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지금까지 좌파가 중동사태에 대해 비교적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파가 부시의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청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시 정책에 대한 보수파들의 볼멘소리는 소련의 위협이 감소된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한 대토론회에서 나왔다. 이 보수파 토론회의 근저에 깔려 있던것은 「보수파들은 소극적인 국제주의자」라는 사실이라고 헤리티지 재다의 버튼 파인스 부소장은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우파들은 진보주의자들과 더불어 미국의 세계문제 개입과 군비증강 비판에 앞장섰다. 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의 세계적 역할을 받아들인 것은 미국이 공산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진 이후부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반공의 임무가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사정이 달라졌다. 공산주의가 죽자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새로운 세계적 역할은 실제적인 국가이익에 바탕을 두어야지 대외 재난을 초래할지 모르는 고상한 이상주의에 바탕을 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우파에 대한 비판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인 고립주의,즉 반개입주의로 회귀한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레이건 백악관에 재직했던 컬럼니스트 부캐넌은 『말과 공약이 너무 앞서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라크로 하여금 쿠웨이트를 토해 내게 하는 것이 미 지상군의 사용을 고려할 만큼 미국의 중요한 이해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보수적인 CSIS(전략국제연구센터)의 대외정책 전문가 에드워드 러트와크의 비판은 강도가 더하다. 그는 『미국인들이 그곳에 가서 목숨을 바쳐야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오일 때문이라면 유럽 일본 동아시아 사람들이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알바니아를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반동적이며 절대군주 정권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켜야할 정치적 이유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잡지 「아메리칸 스펙테이터」의 편집자인 보수주의자 톰 베텔은 『쿠웨이트의 오일이 아랍 전통의상을 걸친 몇몇 토후가 아니라 군복을 입은 독재자의 장악 아래 들어갔다고 해서 왜 미국인들이 분노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시 정책에 비판적인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또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 아랍 세계와의 돈독한 우호관계를 지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대외개입에 통상적으로 반대해온 진보파들은 대부분 강력한 친이스라엘주의자들이어서 이스라엘의 가장 위험한 적인 이라크에 타격을 주는정책을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친이스라엘파 가운데도 커크패트릭 여사 같은 사람은 부시의 개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녀는 페르시아만에서 갖고 있는 미국의 이해가 단독적인 것이 아니며 다른 나라들과 광범위하게 나눠 갖고 있는 국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미국은 이들 나라들로부터 실질적인 기여를 끌어내 사태해결의 부담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컬럼니스트 폴 지고트는 보수주의자들이 부시의 페르시아만 사태 개입 명분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보수주의자로서의 부시에 대한 회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만일 레이건이 이번과 같은 개입정책을 단행했다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한가지 분명한 것은 보수주의자들이 부시를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 이라크 강경정책의 열렬한 지지자인 잡지 내셔날 리뷰의 편집자 존설리반은 『앞으로 부시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가 대외 개입문제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진로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며 『이번페르시아만 사태가 서방측의 승리로 끝날 경우 신고립주의 성향은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분단 45년… 북한의 생활상 어떻게 이질화됐나

    ◎다른 길로 달린 「남과 북」… “한핏줄의 이방인”/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한핏줄의 남북한은 하나의 역사,하나의 언어,그리고 공통된 생활관습 등을 지켜왔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길로 들어선 남과 북은 6ㆍ25전쟁이라는 민족최대의 비극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됐고 이 결과 전쟁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모든면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최근 동서독이 통독의 길로 나아가는등 세계의 냉전구조가 타파되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이 되고만 한반도에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변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 제각기 달려온 남과 북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됐고 이질화됐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언젠가는 맞이할 통일에 대비해 서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문화ㆍ예술/인간개조의 도구화… 순수예술 명맥 끊겨 지난해 우리는 두개의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그 하나는 비록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남북단일팀 구성논의에서 「아리랑」을 단가로 하자는데 양측이 비교적 손쉽게 합의,문화적 민족정서의 공유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다. 또 하나는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무산시킨 이른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공연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실감했던 남과 북의 현저한 문화ㆍ예술관의 차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문화ㆍ예술은 공감대를 같이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분단이후 45년간 서로다른 이념과 사회체제 속에서 이질화의 과정을 밟아옴으로써 오늘의 남과 북사이에는 엄청난 높이의 문화적 장벽이 가로놓이게 됐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구상처럼 『후기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현상을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는데 놓여져 있다면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주체사상과 3대혁명에 입각한 공산주의적 정치사회화의 수단적 목적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초하에 체제보위 및 최고통치자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위한철저한 도구로 기능함으로써 전통적 순수예술의 성격은 물론 대중예술과도 거리가 먼 주체예술ㆍ혁명예술ㆍ이데올로기예술로 변모돼 있다. 가령 북한가요 45년사에서 3대명곡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별」,「김일성장군의 노래」「동지애의 노래」 등이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시작 「묘향산의 가을날에」,80년대 최고의 미술작품이라는 「강선의 저녁노을」 등은 모두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북한의 문화ㆍ예술의 성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상성이 좋고 ▲가사가 좋으며 ▲선율이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후의 「혁명송가」라는 「조선의 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할때 그의 추종자들이 김일성을 흠모해 지었다는 노래이며,「동지애의 노래」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촉구한 노래이다. 「강선의 저녁노을」은 남포시 강선제강소를 소재로 김일성을 찬양한 조선화이며 주체예술의 상징인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을 주제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목적극이다. 특히 6ㆍ25전쟁 전까지 순수예술과 목적예술간의 대립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채 주로 소련에 의존해왔던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전쟁중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쟁영웅 형상화에 몰두,목적예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전후복구와 「주체」의 슬로건 등장등 상황적 요청에 따라 문예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전형을 형상화하는 한편 소련식 문화활동에서 탈피,김일성체제를 뒷받침하는 혁명전통확립과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자연만을 노래하거나 예술지상주의 태도는 반혁명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당성ㆍ계급성ㆍ인민성의 구현이 모든 창작활동중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대두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원칙과 과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작가 미술가 영화인 연극인 무용가 사진가 등 모든 예술인들을 망라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란 조직이 결성돼 있으며 당은 이 조직을 통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작 및 공연활동계획서의 제출을 강요,▲혁명전통(30%) ▲전쟁(30%) ▲사회주의건설(20%) ▲조국통일(20%) 등 4개 주제별로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의식구조/어휘마다 정치색… 전투ㆍ파괴적 성격 강조 『서울말은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오늘 남조선방송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데 쓰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그것마저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다.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오늘 평양말은 서울말보다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김일성이 1969년 평양말을 「문화어」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 교시의 내용으로 북한의 언어정책을 잘 보여준다. 김일성은 또 「표준말」이란 용어 대신 「문화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힘있는 무기」로 보는 언어관을 토대로 일찍부터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언어정책을 펴옴으로써 분단 45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간에 벌어지고 있는 언어의 이질화는 단순한 언어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및 의식구조의 이질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는 언어를 씩씩하고 힘있는 무기로 다듬는다는 명분하에 『미제의 각을 뜨자』『돌탕을 쳐 죽이자』는 등의 살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감안할때,북한의 이같은 극단적인 언어관과 언어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자신을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으로 만드는 잠재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언어이질화에서 빚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1949년에 단행된 한자폐지와 이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서 시작된다. 문맹퇴치와 인민대중의 조속한 사상교육을 목표로 추진된 한자폐지는 결과적으로 한글전용화로 이어졌고 이결과 북한의 각급학교 교과서 문예작품 신문 및 대중매체에서 한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한자교육은 통일후 남한문헌을 읽기 위해 또한 고전연구를 위해 하나의 외국어처럼 전공과목으로서만 남게됐다. 한글전용에 이어 가로쓰기도 시행되었으나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말다듬기운동」이 새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조선어철자법」이 생겨났고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과 함께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어휘까지 등장했다. 문화어의 등장은 남북한간 언어이질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성격은 서울말을 배격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다듬은 그들의 공용어를 표준어로 삼는 데 있다. 한편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말다듬기운동의 결과 새로운 사전의 편찬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1968년 나온 「현대 조선말사전」의 경우 18만어휘가 수록됐던 「조선말사전」(61년)에 비해 어휘가 5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한자가 하나도 없고 옛말 사투리 고유명사 및 이른바 「퇴폐적 사상표현」등을 완전히 제외했기 때문. 또 어휘마다 정치성이 담겨져 있어 김일성의 인용구는 굵은 활자에 별표까지 달아놓았다. 현재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의 차이,리듬의 차이,억양의 차이 등과 같은 음성학적인 차이를 비롯해 어휘ㆍ문법ㆍ의미ㆍ문체 및 맞춤범 등 언어전반에 걸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차이는 어휘부문에서 나타난다. 예를들면 산책길→유보도 채소→남새 화장실→위생실 고기잡이→추어전 개고기→단고기 도시락→곽밥 레코드→소리판 대중가요→군중가요 투피스→동강옷 커튼→창문보 그룹→그루빠 소년단→삐오네르 주제→쩨마 등이다. ◎경제생활/「남농북공」무너져 GNP 남한의 12%/생필품 부족… 암시장 쌀값 배급의 18배 8ㆍ15해방 당시 남북한의 산업배치는 「남농북공」으로 일컬을 만큼 지역적 보완관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남북분단으로 이같은 보완관계는 무너졌으며 설상가상으로 6ㆍ25가 남과 북 모두의 각종 산업시설을 파괴,경제활동의 토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은 40여년간 천연자원 및 산업구조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통합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발전을 계속해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굳어진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경제질서를 형성ㆍ유지하면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왔고 이 결과 88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GNP)의 차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해 8배나 앞서는 비교우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한 이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개발도상국에서 일약 중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1960년 1백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89년말 현재 5천달러에 육박해 있다. 반면 6ㆍ25로 인해 공업생산 수준이 1949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던 북한경제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과 뒤이은 5개년계획(1957∼61년)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했으나 그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70년대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해 부분적인 비교우위내지는 형평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전분야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체제가 다른 북한의 국민총생산액등 각종 경제지표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국토통일원이 북한의 각종 선전자료를 검토ㆍ분석해 추정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국민총생산액은 88년을 기준으로 2백6억달러로 우리의 1천6백92억달러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GNP는 9백80달러(한국 4천40달러),자동차 생산능력은 연간 2만대(한국 1백70만대),TV보유율은 10%(한국 1백%),전화는 7%(한국 67%),냉장고는 6.5%(한국 79%) 등이다. 한편 북한주민의 의ㆍ식ㆍ주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평등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임금과 그 임금에 따른 불균형한 소비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임금은 당간부 및 고위직 군인의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사무직보다는 기술직이 높다. 또 경노동 보다중노동이,중노동 가운데도 위해노동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85년부터는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가 도입돼 동일직종이라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를 달리하는 「차등임금제」가 실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화폐소득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건ㆍ교육분야를 국가예산으로 충당하는 한편 대중소비물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사치품의 가격을 높게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쌀ㆍ채소ㆍ옷감ㆍ비누ㆍ치약 등 생필품의 경우 아주 싼값으로 공급되는데 가족수와 연령,직업에 따라 품목과 수량,종류가 정해진 구입카드에 의해 국영상점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먹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듯이 국가에서 싼 값으로 공급하는 생필품의 배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부족분을 구하기 위해 1㎏당 8전에 불과한 쌀을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암시장에서 이 가격의 18배가 넘는 1㎏당 15원에 구입하려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협동적 소유로 행정당국에 의해 직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배분되며 그 보급율은 70% 안팎. 북한은 주택건축률이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전시적 기능이 크고 남북한 사회비교의 중요한 징표가 된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평양ㆍ남포ㆍ원산ㆍ함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한편 농촌의 문화주택을 2층 3가구용,3층 5가구용으로 다양화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주거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지난 40년간 중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결과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크게 압박을 받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를 「경공업의 해」로 지정하는 등 최근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풍습/“봉건잔재 없앤다” 관혼상제도 통제ㆍ규격화 북한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예의범절에 대해 『봉건지배계급이 착취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예절이나 유교적 도덕관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당의 이익에 맞도록 변형되어 있다. 또 관혼상제를 포함한 전통적인 민속과 세시풍속 등도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변질됐다. 북한에서의 결혼은 『철저히 동지적이고 혁명적인 관계에 의해 이뤄지며 일생을 동지로서 당과 수령께 충성할 수 있는 정신적 풍모가 조건이 된다』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도 노동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 29세 여자 26세로 제한해 놓고 있으나 불만이 많아 80년대 이후에는 조혼추세가 묵인되고 있다. 배우자선택은 중매(60%)와 연애(40%)가 병행되고 있으나 최근 북한의 남녀대학생들은 서로 손을 잡기도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등 연애결혼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만나는 채널은 연애보다는 부모 친척 등을 통한 중매가 지배적이다. 신랑감으로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총각이 최고의 배우자로 꼽히고 있으며 길흉을 가리는 결혼의 택일 풍습은 사라져 대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치러진다. 회갑이나 생일,돌잔치는 5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와 식량절약이라는 명분으로 일체 금지되었으나 60년대 후반기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60청춘 90회갑」이라는 구호아래 공식적인 회갑잔치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고위간부의 경우에만 김일성이 하사하는 일정한 규격의 회갑상을 받는다. 장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을 쓰도록 돼있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는 것이 없고 머리에 건을 쓰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두른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편의협동조합 등이 맡아서 처리해 주며 직계존속이 사망했을 경우 상주에게는 3일간의 공식휴가와 장례보조금 10원,쌀 1말이 배급된다. 제사도 다른 풍습과 같이 6ㆍ25전까지는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으나 휴전후부터 단속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것과 직계존속에 대한 탈상까지의 제사는 묵인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60년대 중반까지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추석등 고유의 세시풍속을 공식명절에서 제외하고 김일성의 생일,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건일,사회주의 헌법제정일 등을 「사회주의 명절」로 지정,공휴일로 해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추석 음력설 단오 한식 등을명절로 부활시켰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복,검은 통치마 차림이었던 주민들의 옷차림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이나 잠바,여자는 양장이나 짧은 치마차림이 보편화됐으며 머리모양이 다양해지고 화장을 한 여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던 주민들의 부분적 여행자유화 조치가 전면 보류됨으로써 일반 주민들의 북한내 여행 및 휴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ㆍ묘향산 등 유명관광지의 이용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며 주민들의 경우 공장ㆍ직장별 단체관광 정도일 뿐 가족단위의 여행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주요한 오락수단은 TV와 라디오이다. 또 최근 바둑협회가 새로 결성되고 실내 골프장이 생기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으나 대중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는 주패놀이로 불리는 서양식 카드놀이와 장기이다. 가정생활은 지난 80년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둘은 많습니다. 하나가 좋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시이후 가족계획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점차 대가족에서 핵가족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는 등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으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자들이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남편들이 봉급을 타서 여자들에게 넘겨 주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언론ㆍ교육/비판기능은 무시… 선전ㆍ선동의 매체로 활용 최근 북한은 소련언론들의 잇따른 대북한 비난보도에 대응,소련의 평양주재 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조치를 취한데 이어 타스통신기자 1명을 추방함으로써 내외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북한은 『우리 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소련언론들은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보도에만 집착할뿐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소련의 언론관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노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비롯해 도단위 일간지 등 모두 30여종. 방송은 TV의 경우 「조선중앙TV」(평양TV)「만수대TV」「개성TV」 등 3개가 있고 라디오는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구국의 소리방송」「평양인민 FM방송」 등이 있다. 북한에 있어 언론이란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정책을 해설ㆍ선전하며 그것을 철저히 비호ㆍ관철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여 인민들을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사전(73년도판)의 규정처럼 정치선전도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아닌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교양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1960년 11월)에 따라 우리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되는 범죄나 비행ㆍ사고 등의 기사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일체 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언론들이 사회의 비리ㆍ부조리 등을 파헤침으로써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긍정적ㆍ모범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를 계도하겠다는 언론관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북한의 언론은 자본주의언론이 중시하는 속보성보다는 매스미디어의 이념적 이용,즉 당의 정책적 선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론성」과 「당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론성이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ㆍ선동ㆍ조직ㆍ교육ㆍ동원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실」을 각색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북한의 방송은 정무원직속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지도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조직ㆍ편제상 정무원에 속해 있지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사실상 2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새 학기는 우리와 달리 9월에 시작된다. 북한은 지난 75년부터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과정으로 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의 취학연령은 만6세. 그러나 만4세부터 시작되는 2년과정의 유치원교육중 「높은반」부터 의무교육기간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은 만5세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11년제 의무교육기간에는 수업료는 물론 면제이며 교과서ㆍ교복ㆍ학용품이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16세부터 시작되는 고등교육단계로는 2∼3년 과정의 고등전문학교와 교원대학(3년),종합ㆍ단과ㆍ사범ㆍ공장대학(4∼6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민학교 5천여개,고등중학교 4천2백여개,전문학교 5백여개,대학 2백7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80년중반부터 낙후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각 시도별로 「제1고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기술계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학생들은 또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예능 또는 실업 등의 실기과목을 배우고 있으며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의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단체활동을 한다. 특히 의무노동이 중시돼 인민학교는 연간 2∼4주,고등중학교는 4∼8주,대학교는 12주정도씩 생산현장노동에 참여한다.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것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주체사상」을 교육이념으로 삼고있다. 또 계급투쟁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적 인간」이,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기술적 인간」이,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튼튼한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상」때문에 정치사상교양 및 과학기술교육,그리고 국방체육이 북한교육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 대입제도 이상ㆍ현실 조화이뤄야/김종철 덕성여대 대우교수(세평)

    94년도부터 대학입학시험제도가 다시 바뀌게 될 전망이다. 지난 4월28일 중교심고등교육분과위에서 심의 통과된 대입제도 개혁안이 확정 공포되면 8·15이후 크게 8번째의 개혁이 될 것이며 그것은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정책과 제도의 무정견과 표류를 나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제의 심각성과 여론의 민감성을 반영하는 것이며 정책대응의 어려움을 반증하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지난 반세기에 걸쳐서 대입제도 개혁의 역사가 이를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는 셈이다. ○내신성적등 비중높여 새 대입제도는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고교내신성적,대학교육적성시험ㆍ대학별 전공기초시험ㆍ실기시험,면접 등 3가지 기본구조를 가지고 있다. 내신성적은 종래의 30% 이상에서 40% 이상으로 그 비중이 높아졌고 적성시험은 종래의 학력고사를 대체할 뿐만 아니라 그 개념이 바뀌고 9개 과목에 걸친 객관식 출제를 언어ㆍ수리및 탐구ㆍ외국어(영어) 등 영역에 걸쳐 특정교과에 국한되지 않는 진학적성 내지 고차적인 사고력을 측정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시험으로 구상되었다. 주관식 출제를 포함하여 그 비중은 30%이상(예체능계는 20%)이다. 대학별로 시행되는 전공시험은 2과목이내에서 그 과목이나 출제방식은 대학의 자율에 맡기되 실기등과 합해서 40% 이내의 비중을 갖게 되어 있다. 그리고 내신성적은 종래에 교과성적 90%,출석성적 10%의 비중이던 것이 교과성적 80%,출석성적 10%를 포함하는 학교생활성적 20%로써 그 비중이 상향 조정되고 있다. 새 대입제도는 대학입시에 관한 우리들의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찾고자 한 것이며 지난 반세기에 걸친 시행착오의 반복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경험의 논리를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대학입시에 관한 어떤 이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구상도 담겨져 있다. 그러나 다른 개혁정책이 그렇듯이 일부 사람들에게는 혁신에 따른 불안이 있을 수 있고 이상주의자나 현실론자의 어느 편에서도 불만스러운 것으로 비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 제도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대학의 완전한 자율과 국가의 완전한 통제의 양극 사이에서 갖가지 형태를 시행하면서 되풀이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대학의 단독출제와 선발에 내맡겨지기도 했고 국가의 획일적 자격고사의 성적에 의해서 입학 선발이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국가적인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가 혼합되어 시행되기도 하였다. 거의 모든 방식이 시행되었으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모든 지원자를 다 수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학과 학과에 따라서 선호의 차이가 존재하는 이상 그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자율과 통제를 되풀이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속에서 우리들이 도달한 결론은 분명한 것 같다. 대입제도는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적성과 능력을 고려함은 물론,고교이하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대학의 자율성은 물론 대학교육의 공공성과 입시제도의 공정성이 함께 유지될 수 있도록 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지난날 대입제도의 운영에 있어서 시행착오가 되풀이되고 대입정책이 조령모개식 문교정책의 대명사처럼논란의 표적이 되어 왔음은 우리의 대입제도가 대학의 자율과 국가의 통제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쳤던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는 대학의 본질과 학문의 자유를 내세운 대학의 이념에 대해서 대학의 자유와 자율을 대학교육의 이상으로 삼아 왔다. 우리의 역사적 현실이 때로는 이와같은 이상을 추구하기 힘들게 만들었으며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상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가운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이상을 추구하며 동경하게 된다. 대입제도에 있어서 적어도 대학 자체에 관한한 대학의 자율을 그리워하고 동경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인 것 같다. 그것은 대학의 이상이요,대학인의 동경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나 대학입시가 대학의 완저한 자율에 맡겨졌을 때 우리는 고교교육의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고 교육의 공공성도 입시의 공정성도 보장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수없이 보아 왔다. 그와 같은 현실이 정책의 개입을 불가피하게 만들었으며 대학의 자치와 자율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사태의 진전을 가져 왔음을 보았다. 그것이 우리의 역사적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새 대입제도는 대학교육에 대한 세가지 관련집단사이에서 균형을 얻고자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즉,학생을 받아서 교육하여야 할 대학과,대학에 학생을 송출하며 대입제도에 의하여 교육운영상 지대한 영향을 받게되는 고교와,입시운영에 있어서 공공성과 공정성을 보장하여야 할 책임을 지닌 국가ㆍ사회의 3자 사이에서 균형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전공기초시험과 실기ㆍ면접등 대학별 고사는 대학당국의 입장에서의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고 고교내신제는 하급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며 중앙교육평가원이 주관하게 되는 대학교육적성시험은 국가ㆍ사회의 입장에서 대입제도의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한 또 하나의 지주라 할 수 있다. ○공공성 유지위한 지주 세부적으로는 여러가지 논쟁점이 있을 수 있으나 기본논리는 명백하다. 적어도 오늘의 현실에서 본다면 새 제도는 대학입시에 관한 우리의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키고자 한 것이며 우선은 그 정착에 힘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다 긴 안목에서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지면서도 고교교육의 정상화와 입시운영의 공공성ㆍ공정성이 함께 보장될 수 있는 보다 이상적인 상황이 조성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요원한 장래일 수밖에 없으며 지금은 우리의 역사적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 흉악범의 사형집행(사설)

    흉악범 9명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 충격을 주는 일이다. 아직 살 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대부분인데 법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우울하고 처절한 느낌을 주어 일손을 멈추게 한다. 그렇다고 이상주의적인 온정을 촉구하기에는 그들의 죄질은 너무 극악했다. 거의가 강도 강간의 범죄를 몇번씩 거듭한 흉악범들이다. 아무 인과관계도 없는,죄없은 부녀자를,단돈 몇푼을 강도하기 위해 예사로 윤간을 하고 어린 자녀가 보는 앞에서 추행을 한 범인들이다. 데이트중인 남녀를 납치하여 윤간하고 살해한 뒤 도피중에도 강ㆍ절도를 한 범인도 있고,부녀자만을 골라 수도 없이 강도강간한 범인도 있다. 강도하러 들어가서 모녀를 추행하고 살해한 범인,비행을 들키자 보복하기 위해 동료의 부인을 강간살인하고 그 어린아들 형제까지 죽인 범인도 있다. 부모에 준하는 가까운 인척에게 앙심풀이로 살인을 자행하기도 하고,사기친 상대가 고발을 못하게 살해하여 묻은 범인도 있다. 이런 흉악범들을 일컬어 흔히 「가정파괴범」이라고 말한다. 부녀자폭행은 그 영향이 당사자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을 결딴나게 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피해자는 정신착란에 빠지거나 자살을 하고 연쇄적으로 가정은 파괴되어 버린 경우가 거의 다였다. 그들은 이렇게 상해의 범위를 크게 하는 것으로도 흉악하지만,피해자에게 주는 상처의 깊이는 죽음보다 깊다. 남의 인생을 이렇게 파괴하는 일을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의 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범죄행위는 꼭 괴질의 바이러스 같아서 우리 삶의 터전에 범죄의 균을 확산시켜 폭력이 우글거리는 오염된 땅을 만들어 버렸다. 가정파괴균이 창궐하여 대낮에도 거리를 마음놓고 나다닐 수 없게 만들어가고 있다. 사람의 탈을 쓰고라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짓을 그들은 했다. 그들에게 사형의 벌을 매기면서 한 법관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악범죄를 저질러놓고도 반성하는 빛도 보이지 않는 범인은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되어야 마땅하다』고 논고했다. 충격적으로 서둘러 처형된 극악범의 최후를 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기는 하지만,사회에서의 격리가 불가피하다는 논지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집단의 반론에도 명분은 충분히 있고, 마침내는 우리의 행형주의도 거기까진 이르러야 하리라는 공감도 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심각한 상황에서는 「아름다운 말」에만 매달려 유장하게 대응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 현실다. 다만,이상을 추구하며 이성적 대응을 촉구하는 세력 또한 사회를 바로잡아가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는 뜻에서 사형폐지 운동을 주동하는 세력의 움직임이나 논거도 뜻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죄를 저지르면 꼭 잡힌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든가 교화사업,사회의 순화등으로 범죄를 예방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것은 더말할 것도 없다. 죄를 등에 지고 마침내 연옥으로 떨어지듯 형장의 이슬이 된 범인이야말로 가장 저주받은 생을 살다간 사람들이다. 이런 삶만은 되지 않도록 각성하는 일이,이 참담한 사태가 던지는 교훈일 듯하다.
  • 북한주민 접촉/정부,6건 승인

    정부는 19일 홍승직고려대아세아문제연구소장과 신일철 고려대문과대학장이 오는 27일 미국 하와이에서 개최되는 국제학술회의에서 황장엽북한사회과학자회장등 북한학자와 접촉하기 위해 신청한 북한주민접촉을 승인한 것을 비롯,6건의 북한주민 접촉을 승인했다. 이날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은 신청인은 다음과 같다. ▲김철범한국전쟁연구회장 ▲박일재한국학술진흥재단이사장 ▲권이혁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황의각 미브루킹스연구소초빙교수 ▲이상주울산대총장
  • 「인기영합」경제정책 지양해야/차동세 럭키금성경제연 소장(세평)

    지난해부터 급격한 성장둔화를 겪고 있는 우리경제가 올해 들어서도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회복기미는 고사하고 수출ㆍ국제수지ㆍ물가등 제반 지표상으로는 오히려 더욱 나빠지고 있는 느낌이다. 1∼2월중 수출은 지난해의 같은 기간보다 1.2%가 감소한데 비해 수입은 전년동기 보다 14.2%가 증가해 2개월간 통관기준 무역수지는 13억6백만달러 적자로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외수지등을 포함한 경상수지도 1월 한달동안만 4억2천3백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2월에도 비슷한 규모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흑자 기조가 얼마나 취약한 것이었나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성장 잠재력마저 잠식 국민총생산의 40% 가까이를 차지하는 수출이 안되는 가운데 수입은 왕성해서 내수를 잠식하고 있으니 산업생산도 부진할 수 밖에 없다.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88년 4월이후 하강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경기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서도 기업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각종의 규제ㆍ제도개혁이더욱 강하게 추진되고 있으니 기업투자가 왕성해질리가 없다. 87년에 25%를 웃돌던 제조업 설비투자 증가율이 88년에 15%,89년에 9%이하로 하락한데 이어 금년에는 다시 6%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한은의 전망이 다소 낙관적인게 아니냐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대로 가면 기술혁신ㆍ산업구조 조정을 통한 경쟁력 제고는 고사하고 기존의 성장잠재력 마저 크게 침식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생산이 잘 안되고 투자가 늘지 않으니 고용사정이 좋을 수가 없다. 실업률 통계로만 볼때 위기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 내용이 문제다. 미숙련 저급 노동은 공급 부족인 반면에 고학력 실업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많은 비용을 들여 양성한 고급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물가도 2월까지 이미 2% 가까이 올라 연율로 두자리 숫자의 인플레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경기침체속의 물가상승,스태그플레이션의 수렁으로 한발짝 더 다가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우리 경제가 이처럼 부진을 면치못하게 된 원인은 역시 수출과 기업투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몇년째 계속되고 있는 생산성을 뛰어넘는 과도한 임금인상과 전반적 근로의욕 저하에 기인한 국제경쟁력 약화,이러한 경쟁력 상태와 괴리된 채 절상을 지속해온 원화환율,지나치게 과격했던 노사분규와 근로자의 근로의욕 저하,그리고 이상주의와 인기주의의 결합으로 치밀한 사후대책 없이 성급하게 추진되고 있는 제반 경제개혁 조치들과 그로인한 기업의욕 저하 등을 가장 큰 요인으로 들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 경제에 희망의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선 그동안 우리 경제에 가장 큰 족쇄를 채우고 있던 정치사회 환경이 다소나마 안정되어가고 있으며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차츰 노사문제도 진정될 것 같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고 환율ㆍ금리 등의 변수들이 적어도 경제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땜질식 개혁조치 일관 이와같이 현 시점에서의 우리 경제는 밝은 측면과 어두운 측면들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어 향후의 전개방향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경제가 아직 전환기적 위기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90년대의 우리 경제는 바로 지금 정부ㆍ기업ㆍ근로자 그리고 소비자가 얼마나 슬기롭게 이 위기를 극복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경제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가장 절실히 요망되는 것은 근로자와 기업인의 생산성을 다같이 진작시킴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제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일부에서는 수출보다는 내수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국내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제경쟁력이 떨어져서 수출이 안되고 있고 그래서 경기가 위축되고 있을때 내수 확대로 경기를 활성화 시킬 수 있다는 발상은 경제 전체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경쟁력이 취약한 가운데 내수를 확대하는 것은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입을 확대시켜 국제수지 기반을 약화시키고 소비수요를 촉발시켜 물가불안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성장의궁극적인 목적은 국민복지의 증대다. 그러나 복지정책의 기조는 성장을 통한 좋은 일자리의 창출로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것이어야할 것이다. 7차경제개발 5개년계획에서도 복지나 형평에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정부는 한국경제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첫번째 요인이 정부와 정치권의 인기주의라는 하버드대 제프리 삭스 교수의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일줄 알아야 하겠다. 정부의 복지비 지출 증대를 통해 복지를 향상시키려는 것은 우선 지출의 효율성이 적을 뿐아니라 이것이 자원의 배분을 왜곡시켜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고 정부기능만 비대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대기업 여신규제ㆍ금융실명제ㆍ토지공개념 등 제반 제도개혁 정책들은 그 장단기 효과를 면밀히 검토하여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그 자체가 목표가 될수는 없으며 우리 경제의 장기적 안정성장,사회전체의 복지증대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들이라는 평범한 논리를 명심하여 핵심적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신축적으로,그리고 용의주도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임대차보호법이 전세가격 상승을 유발하여 서민생활을 오히려 위협하게되고 금융실명제가 주식시장의 침체와 자금의 해외유출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점이나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대기업 규제가 제조업 투자부진과 수출저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음은 경제정책이 정책자체의 순수한 동기에만 집착하는 이상주의에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교훈이라 하겠다. ○정책,동기집착은 곤란 우리나라가 현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기업들이 세계수준의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의 자성과 새로운 각오도 절실히 요망된다. 정부가 경제정의실현을 위해 여러가지 제도개혁을 추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우리사회의 불안요인이 팽배하게된 데에는 기업인의 책임도 적지않음을 깨달아야 하겠다. 그래서 기업인 스스로도 시장경제체제가 보다 원활히 움직여갈 수 있도록 광범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근로자들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와 행동,눈앞의 현실보다 10년앞을 내다볼 줄아는 슬기,그리고 소비자들의 절제하는 마음가짐도 우리 경제의 위기극복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요인들이다.
  • 니카라과 좌익정권의 붕괴(사설)

    중미 니카라과의 대통령선거 결과가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좌익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오르테가 현직 대통령의 패배가 갖는 의미 때문이다. 그것은 우선 소련과 동유럽을 휩쓸고 있는 공산권 개혁바람의 중미 상륙을 의미하며 79년 집권후 오르테가대통령이 추구해온 사회주의 혁명노선의 패배를 뜻한다. 그것은 또 오르테가가 지향해온 반미ㆍ친소노선의 패배 내지는 미국의 승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르테가는 79년 소모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좌익정권을 세우면서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통한 평등사회의 건설을 공약하고 그러한 목적의 달성을 위한 미국의 영향력 배제 곧 반미를 내세웠었다. 독재정권하의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고 전통적 반미감정에 젖어있던 국민의 환영을 그때는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을 외면한 지나친 이상주의로 판명되었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평등사회의 건설은 성장을 통한 부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를 통한 가난의 평등이란 사실은 사회주의 혁명의 종주국인 소련에서이미 증명이 되었으며 뒤늦게 개혁이 서둘러지고 있다. 오르테가의 퇴장을 재촉한 또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미국이라는 현실의 외면이었다. 이번 오르테가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는 모든 문제의 배후는 미국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천7백%에 달한 89년의 인플레율을 비롯,25%에 달한 실업률,산디니스타정권지배 11년동안의 국민소득 90% 감소등의 경제침체는 주로 미국의 경제봉쇄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6만의 희생자를 낸 10년 내전의 배후에도 미국의 그림자가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오르테가는 그동안 소련및 쿠바의 정치ㆍ경제적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미국의 압력에 저항해왔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소련의 쿠바ㆍ니카라과에 대한 지원은 약화되었으며 작년의 몰타 미소 정상회담에선 소련의 중남미 불개입원칙이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원색적 반미주의의 오르테가도 대미 타협의 자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인 참관단이 대거 감시하는 공정선거의 실시를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의외의 참패로 나타났으며 미국은 파나마에 이은 또하나의 뒤뜰 정리에 성공을 거둔 것이다. 결국 오르테가의 몰락도 동유럽제국의 공산당 몰락을 가져온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의 결과인 셈이다. 그것은 개혁바람의 또 한차례 세계적 확산이며 지금부터 오는 6월에 걸쳐 실시되는 소련의 각 공화국과 동유럽제국의 첫 자유선거의 결과가 어떤 것이 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이로써 쿠바의 카스트로는 더욱 고립되고 어려운 궁지에 몰리게 되었으며 이미 소ㆍ동유럽으로부터의 식량ㆍ석유공급 감소로 경제파탄 상태에 이른 쿠바가 「굶어 죽을지언정 사회주의는 지킨다」는 자세를 언제까지 고집할 수 있을지도 지켜보고 싶다. 쿠바의 개혁은 외고집의 북한에 대한 또한차례의 중요한 개혁촉진 요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90년대 개혁바람」 어떻게 불까(해외특별기고)

    ◎“동구국,새 사회주의 모델 개발 박차”/“「과거체제」에 실망”… 재생가능성에 회의적/다당제ㆍ개방화등 「새질서」형성기 될듯/안정확보ㆍ갈등해소위해 대통령중심제 채택 예상 지금 동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는 혁명이라는 말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89년초까지 헝가리ㆍ폴란드ㆍ유고ㆍ중국은 지금까지 지켜온 체제의 근본원리 즉 당의 지도적 역할이나 재산의 국가소유,마르크시즘 등을 유지한 채 부분적인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개혁으로는 사태를 호전시킬 수가 없었고 오히려 더 악화시켜 놓은 결과가 되었다. 과거의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갖추어지지 않고 있었다. 사회주의하에서의 개혁과 사회주의의 재생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었다. 기존의 지배계층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은 급격히 떨어졌고 동독ㆍ체코ㆍ불가리아ㆍ루마니아에서도 폭발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질적변화 추구 시급 89년 가을 동독에서 터져나온 시민운동은 마침내 체코ㆍ불가리아ㆍ루마니아에 잇따라 변화의 불을 댕겼다. 헝가리ㆍ폴란드에서 수개월,혹은 몇년에 걸쳐 일어난 변화들이 불과 몇주만에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질적인 변화없이 부분적인 개혁만으로는 구체제를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질적변화란 진정한 사회경제적 발전을 보장해줄 완전히 새로운 성격의 사회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것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로부터 인간을 진정으로 해방시키고 자유로운 개인의 발전이 보장되는 가운데 경제ㆍ학문ㆍ문화등 전체의 발전이 추구되는 사회의 실현을 의미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명령식 행정통제 체제의 해체와 함께 정치와 이념에서 교조주의와 이상주의를 몰아내야 한다. 경제와 정치분야 모두에서 이러한 질적변화가 요구된다. 중국의 경우는 경제와 이념분야에서의 개혁이 서로 보조를 맞추지 못할 때의 위험을 잘 보여주었다. 그것은 개혁과정 전체를 복잡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그것을 역류시킬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때 민주제도는 시장의 형성과정에 그 바탕을 두어왔음을알 수 있다. 반면에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권력자체의 변화가 다른 분야의 변화를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시장경제로 나가기 위해서도 권력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여러가지 점에서 90년대는 동유럽에서 새로운 사회질서의 형성기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다양한 소유형태와 자유경쟁에 바탕을 둔 시장,그리고 다당제와 의회주의를 포함한 정치적 복수주의,광범위한 민주주의와 개방화,이념의 다양성,자유와 휴머니즘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이 회복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헝가리,동독,체코 같이 비교적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겪지 않고 있는 국가들은 이러한 새로운 사회체제의 토대를 이미 마련해 가고 있다. 반면에 유고,폴란드,불가리아,루마니아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속에 첨예한 대결상황에 놓여있는 다민족국가들은 보다 오랜 기간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변혁의 와중에 들어있는 국가들은 모두 의회민주주의를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진정한 의회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에 달려 있다. 명실상부한 자유선거에 의거한 공권력의 형성,대의원들의 완전한 활동보장,그리고 3권분립이 완전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들중 많은 나라들이 정권이양기에 안정을 확보하고 갈등을 해결키 위해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할 것이다. 헝가리와 폴란드에서는 권력의 의회로의 이양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적시한 헌법조항이 폐기되는가 하면 복수권력체제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동독,체코,불가리아,그리고 유고의 일부 공화국들도 뒤이어 이같은 작업에 들어갔다. ○공당,권력독점 포기 이러한 변화의 과정들을 우연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은 오히려 일반적인 발전단계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로 간주되어야 한다. 앞으로 헝가리,동독,체코에서 자유선거가 실시될 경우 폴란드에서와 같이 공산당이 패배를 당할 수도 있다. 공산당은 이제 사회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과감한 개혁과 함께 권력독점을 포기해야만 한다. 공산당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냐는 아직 분명치 않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공산당에 대한 일반국민들이 갖고 있는 실망감을 고려해 볼때 「헝가리식 개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공산당과는 결별하되 마르크스주의 및 사회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이데올로기적인 대결상태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단기적으로는 민족주의적인 애국주의와 서구지향적인 실무형 인사들,다시 말하면 급진파와 진보주의자들 사이의 이념적 갈등이 전개될 것이다. 새로운 복수정당체제가 만들어지고 의회ㆍ국가기구에서 함께 실질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들은 시급히 경제개혁을 시도할 것이고 이는 불가피하게 사회적동요를 야기케 될 것이다. 이러한 개혁과정의 성공여부는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적절한 정치적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느냐에 상당부분 달려있다. 여기서 사회주의 세계는 사회변혁을 위한 독자적인 길을 찾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서구식 변화모델은 이 경우에 적합치가 않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가치들을 유지하면서상품경제체제로 점진적인 전환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많은 경우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동시에 통화나 가격,국내시장의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정부는 인기없는 조치들을 함께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이러한 조치들을 참아내 줄 것이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러한 조치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빌미로 다시 독재정권을 수립하려는 기도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과도기 단계에서의 이러한 우여곡절이 현재 동유럽에서 전개되고 있는 시장 민주주의에로의 일반적인 흐름자체를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동유럽이 서방의 발전모델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몇나라에서 비공산세력이 지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그 나라가 자본주의국가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 사회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사회주의와 집단주의,그리고 국가의 「보호우산」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일반국민들의 욕구를 잊어서는 안된다. 국가재산제를 다른 소유 형태로 바꾸기는 극히어려운 일이다. ○국제관계 호전될 것 이런 점을 무시하면 엄청난 사회혼란만 야기하게 된다. 현재 동유럽에 있는 많은 반대 세력들도 인식상의 차이가 있을뿐 사실은 사회주의 이상의 영향권 내에 있다. 현재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의 성격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2분법적 사고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이 새로운 사회는 보다 다른 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 민주적 사회주의,아니면 인간적 사회주의라고나 할까. 이 새로운 사회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평등주의에 입각해 자유시장에 대해서도 어떤 제약을 가해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변화들이 일어난다면 국제관계는 어떻게 될까. 동유럽에서의 변화로 보다 안전하고 안정된 세계가 이루어질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긍정적이다. 「유럽공동의 집」이 이에 대해 밝은 전망을 약속한다. 소련과 동유럽국가들간의 경제 정치적 관계도 변화될 것이다. 양측의 협력관계는 완전한 평등과 시장관계를 통한 상호이해,그리고 지속적이고 안정된 동반관계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올레그 보고믈로프 △1927 모스크바생 △1949 모스크바 무역연구소 졸업 △1967 모스크바대 교수 △1980 사회과학아카데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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