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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S급 인재’ 스카우트노력 전방위 확산

    삼성의 S급(슈퍼급) 인재 확보 노력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달 김병기 재정경제부 전 기획관리실장을 사장급 연구 위원으로 영입한 데 이어 삼성화재가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의 사위인 이상주(34) 전 검사를 영입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1일 삼성화재에 따르면 이 전 검사는 최근 사장 직속의 법무담당 임원(상무)으로 임명됐다.관계자는 “법무담당 임원이 2년 가까이 공석으로 있는 데다 보험업계의 법률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유능한 법조인 영입이 절실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이 상무는 미국 조지타운대(법학)와 하버드대(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미국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도 감사원 출신의 고위 관리를 각각 감사위원과 감사로 영입했다.삼성생명은 지난 5월 주총에서 최영진(58) 감사원 제1사무차장(1급)을 감사위원으로 임명했다.보통 금융감독원 출신 전직 관리들이 영입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감사 전문성을 중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카드도 노우섭(62) 전 감사원 감사위원(차관급)을 3년 임기의 감사에 선임했다. 삼성중공업은 수원지방검찰청 출신인 이명규 검사를 법무실장(상무)으로 임명했으며,유승엽 서울중앙지검 총무부 검사도 지난 7월 삼성그룹 법무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은 국내 최대 법무법인 ‘김&장’의 간판변호사로 활동했던 이종왕 변호사를 지난 7월 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률실장(사장대우)으로 전격 영입한 바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儒林(179)-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儒林(179)-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사마천의 기록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윤희는 만만하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무위의 도는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노자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놈 말 잘하네.옜다,이거나 가져라.그나마 태워버릴 작정이었지만….’” 사마천의 기록을 보면 노자는 이미 자신이 써 두었던 ‘도덕경’을 윤희에게 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윤희의 부탁을 받자 함곡관의 관사에 머물면서 며칠 만에 ‘도덕경’을 완성하여 윤희에게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런 의미에서 윤희는 노자가 남긴 단 하나의 제자인 셈이었으며,윤희가 없었더라면 인류가 낳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과 또 하나의 롱셀러인 ‘도덕경’이 존재하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동양뿐 아니라 서양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주어 라틴어로 ‘라오시우스’,즉 ‘늙은 자식’으로 불렸던 노자.그가 어쨌든 한마디도 남기지 않은 채 신선이 되지 않고 5000여 자로 짧은 도덕경을 남긴 것은 인류를 위해서도 다행한 일일 것이다.이 극적인 장면을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기록 하고 있다. “노자가 윤희에게 준 그것이 바로 도덕의 깊은 뜻을 5000여 자로 새긴 상하 두 편의 ‘도덕경’이다.” 도덕경. 사마천의 기록처럼 5000여 자로 새긴 상하 두 편의 짧은 책.상편은 주로 도에 대해서 다루고,하권은 주로 덕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 둘을 합쳐 도덕경으로 불리고 있는 노자의 경서.이 5000여 자의 짧은 경서를 통해 무위자연을 꿈꾸는 평화주의의 동양사상은 싹트게 되었다. 노자의 사상은 공자의 표현처럼 용과 같아 정확하게 지적할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무위(無爲)의 사상이다. 여기서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를테면 죽음이나 극단적인 게으름을 연상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런 것을 하겠다는 인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됨을 뜻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무위는 ‘자연’이란 말과 같은 개념이다. 이 우주의 광대무변함,생명들의 신비로운 생성과 죽음,요컨대 일체의 존재들은 의식 없는 작용이며,작용 없는 작용이며,작용하는 주체가 없는 작용인 것이다.그렇다고 그 생성력이 허술한가 하면 정반대로 의식이 없는 작용이므로 최고의 ‘진선미’를 갖춘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노자의 무위는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즉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사실에 있어서는 ‘못하는 일 없이 다하고 있음’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는 높은 자도, 낮은 자도,가진 자도, 못 가진 자도 없는 균분주의(均分主義)인 것이다.노자는 도덕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천도(天道)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높은 자는 누르고,낮은 자는 들며,남는 것은 덜며,모자란 것은 이를 보충한다.천도는 남는 것을 덜고,모자란 것을 보충하지만 인도(人道)는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모자란 데서 덜어내 남는 자를 보태주고 있다.” 노자의 이런 균등사상은 플라톤이 말하였던 이상국가와 아주 가깝다.플라톤은 그의 저서‘법’에서 자신이 꿈꾸던 이상주의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그들은 고립상태에 있으므로 서로 우정이 두텁고 의식주가 모자라지 않았으므로 심한 빈곤에 빠지지 않으며,궁핍 때문에 서로 쟁탈하는 일이 없다.금이니 은이니 하는 것이 없으므로 부라는 것도 없으며,빈부가 없는 사회이기에 횡포나 부정,질투 따위가 발생할 여지 또한 없다.그러기에 그들은 순박하고 선량하다.그들은 무엇에나 숙련해지는 일이 없어서 요즘과 같은 기술이나 예술도 필요치 않았다.따라서 그들은 입법자(立法者:정치가)를 가질 필요가 없었고,모든 것을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습관대로 살았다.”
  • 北작가 최초 만해문학상 수상 홍석중 소설 ‘황진이’

    여성에게 참담한 굴욕을 강요했던 조선시대의 여비적(女卑的) 공간을 가장 자유롭게 누비다 간 여성 황진이.그가 북한 작가의 상상력으로 복원돼 송도가 아닌 서울 장안을 활보하고 있다.우리에게는 ‘임꺽정’으로 유명한 월북작가 벽초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63)씨가 살려낸 ‘황진이’(대훈닷컴 펴냄). 이 작품이 주목받는 것은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한 여성 자유주의자,어쩌면 그런 자유마저도 초탈한 한 도가적 이상주의자의 삶을 당대 문화의 원형질에 부합하는 소설적 서사로 복원시킨 점이다.작가는 당시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사대부였던 화담 서경덕과 천기 황진이의 교유가 상징하는 신분상의 귀천의식,그리고 여기에서 배태되는 신분 파괴의 역설적 통념을 거부하는 대신 사대부에 맞서 당당하게 자신의 성적 담론을 실천하는 계급투쟁적 황진이를 그려내고 있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인하대 교수)은 이를 ‘화담마저 부정되는 절대자유의 경지’로 읽어낸다.체제와 반체제의 경계를 벗어나 그 이상의 자유를 갈구하며,그 이면에 당대의 시대적 한계이기도 했던 ‘신분’과 ‘계급’이 주는 억압과 이에 맞서는 이성의 고뇌를 담아 지금까지도 우리를 억압하는 체제 이상의 세상으로 사유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진단이다. 홍석중이 그려낸 이런 매력은 남한의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북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확인된다.만해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최근 이 작품을 제19회 수상작으로 선정하면서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탁월한 역사적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소설적 서사의 진수를 보여줬으며,사실과 야사,속담과 살아있는 비유,민중적 비속어와 품위있는 시적 표현을 풍성하게 구사하는 가운데 남북한 언어가 자연스럽게 융화함으로써 분단의 벽을 뛰어넘어….’ 이처럼 홍석중의 ‘황진이’는 그간 남한에서 생산한 동류 소설의 상업적 의도에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소설적 상상력을 배제한 채 기존 콘텐츠를 되우리는 식상함과 안일함에 대한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이 작품이 갖는 또다른 매력은 현란하게 구사하는 우리말 어휘.‘개짐’,‘거쿨지다’ ‘나부시’ ‘덴겁’ ‘수삽하다’‘집난이’ 등 지금은 잊혀진 우리의 토속어가 즐비하게 늘어서 가히 어휘의 보물창고라 할 만하다.그렇다고 북한 체제의 교조성을 이겨내지 못한,재미없는 작품이라는 편견은 털어내는 게 옳다.지금까지 북한에서 산출된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노골적 성애장면은 이런 우려를 씻고도 남는다.전 2권 각 95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임기 마치는 美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 스콧 스나이더

    임기 마치는 美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 스콧 스나이더

    “한국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그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2002년 6월 월드컵 당시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던 광화문과 시청광장의 광경은 잊지 못할 겁니다.” 2000년 1월부터 4년 8개월 동안 미국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로 활동해온 스콧 스나이더(39)가 이달말 임기를 마치고 서울을 떠난다.1987년 연세대에서 1년 공부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뒤 한반도 문제를 줄곧 연구해온 그에게 북핵 문제와 한·미관계,한국 사회의 변화 등 현안들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한국여성과 내달 결혼 한반도 전문가 무엇보다 그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라이스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하면서 기독교가 유독 한국에서 급성장한 이유가 궁금해진 그는 이를 연구주제로 왓슨재단의 펠로십프로그램에 지원,선발됐다.대학가에서 민주화 열기가 뜨거웠던 1987년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한국의 정치·사회 시스템으로 관심의 영역이 확대됐다. 한국전문가로서 한국 사회가 어떻게 움직인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학연·지연 등 끈끈한 개인적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사회”라고 정의했다.일본,중국,미국에서도 네트워크는 중요하지 않으냐는 반문에 “정도의 차이다.한국은 법보다 개인간 충성심(로열티)을 더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구분지었다. 자신도 ‘386세대’라는 그는 “한국 사회의 주도 세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386세대는 자신들이 젊은 시절 추구했던 이상주의를 저버리지 않고 유지하면서 이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평했다.하지만 행동보다 말이 앞서거나,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은 맹점이라고 일침을 놓았다.특히 최근의 세대·이념갈등의 골에 대해서는 “한국의 성장잠재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강남보다는 삼청동과 인사동,대학로 등 강북을 선호한다는 그는 거리를 질주하는 오토바이에는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며 웃었다.그는 미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다음달 서울의 한 교회에서 3년전부터 사귀어온 30대 중반의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다.17년전 우연히 맺은 한국과의 인연이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게 됐다. ●강남보단 인사동·대학로 등 강북 선호 화제를 ‘껄끄러워진’ 한·미관계로 돌리자 그는 양국 관계는 다시 돈독해질 것으로 확신하지만,그 선행조건으로 미국은 물론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외교적 창의성’을 누차 강조했다.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나이더 대표는 올해에는 미국 정부가 이라크에 집중했지만 내년에는 북한 핵 문제가 최우선 현안이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이럴 경우 6자회담만으로는 문제해결에 한계가 있어 다른 전략과 수단이 필요하다.”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경제교류 확대가 그중 하나가 될 수 있고,또다른 방안은 보다 신중한 입장으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11월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항간의 분석에 대해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다면 조지 W 부시 대통령보다는 북핵을 포함해 한국 문제를 훨씬 중요한 현안으로 다룰 것이라고 했다. ●북핵위기 美 독자적 해결 시도가능성 “한국과의 외교적 협력에 있어서도 다른 태도를 취할 것이다.그러나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실패한다면,보다 강력한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케리가 당선돼도 그렇게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도 물어봤다.“국무·국방장관 등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라인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대북정책 방향을 전망하긴 쉽지 않다.”고 전제한 뒤 “현재로서는 실용적인 주장을 펴는 쪽으로 추가 쏠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년 일은 미뤄두고 당장 다음달로 예정된 4차 베이징 6자회담을 전망해달라고 했다.“매우 천천히,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그는 “미·북 양측이 서로에 대한 불신이 워낙 커 어떤 형태의 급진전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기 때문에 양측간 신뢰회복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이어 “이번 협상이 성공하려면 북한을 제외한 회담 참가국들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지난 3차회담에서 한·미·일 3국이 공동의 협상안을 도출했지만,무엇보다 중국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핵 위기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결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매우 신중하게 답변했다.지금까지 북한의 태도로 볼 때 미국이 원하는 리비아식 해법보다는 파키스탄식 내지 독자적 방식으로 핵문제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이 때문에 회담 참가국간의 공조가 절실하며,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한·미 양국 정부와 특히 전문가들간의 극심한 견해 차를 조정하는 게 최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對美 현안 처리 ‘외교적 창의력’ 발휘를 그는 일부 한국 국민들이 최근 한·미관계가 악화된 것의 주 원인으로 부시 대통령 내지 부시 행정부를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부시 행정부는 매우 실용적”이라며 그 예로 9·11테러를 계기로 주요 경쟁국에서 동반자 관계로 변한 미·중관계를 들었다.미국은 한국 등 주요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 시급하고,“한국도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부담을 덜 수 있는 쪽으로 미국과의 민감한 현안들을 처리하는데 외교적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향후 한·미관계에 있어 걱정스러운 점은 한국내 반미정서가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미 행정부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기류 변화”라고 내다봤다. ■스콧 스나이더는 누구 미국 라이스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미국평화재단,아시아소사이어티 연구원 등을 지냈다.91·92·96년과 2000∼2002년(6차례) 모두 9차례 북한을 방문했다.귀국 후 아시아재단 동북아 담당국장으로 일할 예정이다.북한의 협상전술을 연구한 책 ‘벼랑끝 협상’(99년,2003년 번역)을 펴냈고 ‘북한에서의 NGO활동’을 지난해 공동 편저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이상주의 개혁 반드시 실패”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이 한국경제의 평등주의를 정면으로 공박한 뒤 사회에 기여한 부자들에 대한 혜택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그는 지난달 15일 열린 한경연 포럼에서는 “한국사회가 마치 개혁 조급증·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넘쳐나는 개혁주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며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었다. 좌 원장은 1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열린 ‘최근 한국경제 이슈’ 주제의 국제회의에서 “한국은 지금 기본적인 경제원리가 결여된 채로 평등주의라는 주술에 걸려 정체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연 한국의 민주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바람직했는가.”라고 자문한 뒤 “한국적 민주주의는 평등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해왔으며 이런 맥락에서 정부 정책이 경제활동의 성과를 획일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도는 좋지만 내용이 없는 경제정책은 모든 국민을 궁지로 몰아갈 수 있다.”며 “한국경제는 이제 위급한 현실상황에 대해 염려할 때”라고 진단했다. 좌 원장은 이른바 ‘사다리론’을 들어 부자들이 혜택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도 폈다. 그는 “경제발전은 정치·경제 체제속에 수직적 사다리가 안정되게 놓였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며 “사다리 위쪽에 있는 이들이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으면 더 많이 혜택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또 “사다리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소득의 불균형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등주의가 점점 더 부각되는 한국사회에서 일반 대중으로부터 튀는 사람은 의심과 배척의 대상이 된다.”며 “그러나 모든 정력을 성장보다 재분배에만 쏟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좌 원장은 “시장경제가 우리 인류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반해 민주주의는 그 역사가 200년됐을 뿐이고 아직도 많은 시험을 거쳐야 할 시스템”이라며 획일적 평등을 강조하는 정치체제에 대한 경계를 주문했다. 그는 “세상이치(차별화)에 맞지 않고 비현실적 이상(평등사상)에 기초한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경고한 뒤 “실패하는 국민을 양산하는 평등지향 정치가 한국 경제발전의 장애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박건승기자 ksp@seoul.co.kr
  • 儒林(145)-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올바른 정치를 하는 방법에 대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대답한 공자의 정치관은 한마디로 공자의 정치철학의 핵심이다.이 대답 역시 매우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논리처럼 느껴지지만 시대를 초월한 금과옥조인 것이다. 임금답지 않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고,신하답지 않은 신하가 정치를 하고,아버지답지 않은 아버지가 가정을 이끌면 그 나라와 가정은 한마디로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공자의 정명주의(正名主義)에서 비롯된 말인데,정명이란 ‘명분을 올바르게 한다.’ 또는 ‘명칭(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이지만 단순하면서도 실행하기 어려운 공자의 핵심적인 정치사상인 것이다. 한마디로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政者正也)’라는 말로 이를 함축시키고 있는데,이는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명칭이나 명분과 꼭 맞는 올바른 상태에 있다는 것은 질서의 극치’를 뜻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의 자로(子路)편에는 이러한 공자의 사상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로가 공자에게 여쭈었다. ‘위나라의 임금이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부탁드린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명분부터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 이 말을 들은 자로는 너무나 단순한 스승의 말에 실망하여 다음과 같이 반문하였다. ‘그런 게 있습니까? 선생님은 우원(迂遠)하십니다.어째서 그것을(그처럼 무의미한 것을) 바로잡으시겠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구나,너는.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법이다.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고,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고,형벌이 적중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고 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물에 이름을 붙일 때에는 반드시 말로써 전달될 수 있어야 하며,말로써 전달되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군자는 말에 있어 구차스러운 바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공자의 정명론 역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가슴 속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공자는 정치가들에게 있어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정치를 바로잡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자의 이러한 정치사상은 중국 역사상 전제군주들의 사상적 근거로 이용되어 왔다.세계의 질서를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대일통(大一統) 속에 유지하는 것을 이상주의로 본 공자의 사상은 한(漢)대 이후 계속 봉건체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정치철학 역시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안영의 눈으로 보면 공허하고 관념적인 아마추어리즘에 불과한 것이었다. 공자가 돌아간 후 경공과 안영이 공자에 대해 나눈 대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예언자들은 당대의 권력자와 지식인들로부터 배척받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예수가 ‘여우도 굴이 있고,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예수 자신)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한탄하였던 것처럼 공자 역시 안영으로부터 모욕적인 멸시를 받게 되는 것이다.
  • 儒林(145)-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45)-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올바른 정치를 하는 방법에 대해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대답한 공자의 정치관은 한마디로 공자의 정치철학의 핵심이다.이 대답 역시 매우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논리처럼 느껴지지만 시대를 초월한 금과옥조인 것이다. 임금답지 않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고,신하답지 않은 신하가 정치를 하고,아버지답지 않은 아버지가 가정을 이끌면 그 나라와 가정은 한마디로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공자의 정명주의(正名主義)에서 비롯된 말인데,정명이란 ‘명분을 올바르게 한다.’ 또는 ‘명칭(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이지만 단순하면서도 실행하기 어려운 공자의 핵심적인 정치사상인 것이다. 한마디로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政者正也)’라는 말로 이를 함축시키고 있는데,이는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명칭이나 명분과 꼭 맞는 올바른 상태에 있다는 것은 질서의 극치’를 뜻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의 자로(子路)편에는 이러한 공자의 사상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로가 공자에게 여쭈었다. ‘위나라의 임금이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치를 부탁드린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 명분부터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 이 말을 들은 자로는 너무나 단순한 스승의 말에 실망하여 다음과 같이 반문하였다. ‘그런 게 있습니까? 선생님은 우원(迂遠)하십니다.어째서 그것을(그처럼 무의미한 것을) 바로잡으시겠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구나,너는.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법이다.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고,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고,형벌이 적중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고 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물에 이름을 붙일 때에는 반드시 말로써 전달될 수 있어야 하며,말로써 전달되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군자는 말에 있어 구차스러운 바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공자의 정명론 역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가슴 속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공자는 정치가들에게 있어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정치를 바로잡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자의 이러한 정치사상은 중국 역사상 전제군주들의 사상적 근거로 이용되어 왔다.세계의 질서를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대일통(大一統) 속에 유지하는 것을 이상주의로 본 공자의 사상은 한(漢)대 이후 계속 봉건체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발전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정치철학 역시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안영의 눈으로 보면 공허하고 관념적인 아마추어리즘에 불과한 것이었다. 공자가 돌아간 후 경공과 안영이 공자에 대해 나눈 대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예언자들은 당대의 권력자와 지식인들로부터 배척받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예수가 ‘여우도 굴이 있고,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예수 자신)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한탄하였던 것처럼 공자 역시 안영으로부터 모욕적인 멸시를 받게 되는 것이다.
  • 儒林(144)-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공손접과 전개강은 자신들의 공로로 보아 죽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이 됨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을 하였다.이에 고야자도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복숭아를 차지하는 것이 무사로서 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뒤를 이어 자살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안영은 복숭아 두 개로 세 사람의 무사를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여기에서 ‘복숭아 두 개로 세 명의 무사를 죽였다.’고 하여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란 고사성어가 비롯되었으며,이 말은 ‘교묘한 음모를 꾸며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의미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안영의 이 유명한 정치술에 대해서 공자는 다만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안자는 남의 칼을 빌려 복숭아로 차도살인(借刀殺人)하였으나 어쨌든 이는 의로운 일은 아니다.” 차도살인. 문자 그대로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제거한다.’는 공자의 말은 비록 안영이 직접 칼을 들어 적을 제거하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간접 살인의 불의는 저질렀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안영의 정치술 역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냉정하게 음미해볼 가치 있는 교훈인 것이다.오만한 힘을 가진 세 무사는 어쩌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언론일 수도 있고,막강한 힘을 가진 압력단체일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결국 복숭아는 복숭아인 것이다.복숭아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세 어리석은 무사들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어리석은 공명심을 이용한 뛰어난 계책으로 손끝하나 대지 않고 화근거리를 제거한 안영.그 목적이 비록 옳다고 하더라도 그 수단에 대해서는 공자는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현실주의적 정치가인 안영과 이상주의적 사상가인 공자의 근본적인 차이인 것이다.그러나 이런 점 때문에 안영은 공자를 ‘말만 그럴듯한 유자’로 평가하고 있음이니,이는 공자와 경공의 두 번째 만남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제나라로 망명 온 지 거의 일년 만에 경공을 두 번째로 알현하게 된 공자에게 경공은 ‘정치하는 방법’에 대해서 묻는다.논어의 ‘안연(顔淵)’편에 그 대화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하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을 때 공자께서는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이 말을 들은 경공이 말하였다. ‘정말 좋은 말이다.정말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다 한들 내가 어찌 먹을 수 있겠소.(善哉 信如 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이 무렵 권신인 진씨의 세력은 임금을 넘겨볼 만큼 강해지고 있었으며,실제로 얼마 뒤엔 진씨의 후손인 전화(田和)가 제후가 되었고,이로 인해 제나라는 진씨의 나라로 변할 만큼 혼란기였으므로,공자의 대답을 들은 경공의 마음은 착잡하였던 것이다.그러나 한편 궁궐 안에 살아 있는 첩자인 생간(生間)을 두어 경공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던 진씨들은 이 말을 전해 듣고 공자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되는데,심지어는 공자를 살해할 계획까지 세우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제나라 제후들의 반발이 심해 심지어 공자를 살해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을 정도였다.”
  • 儒林(144)-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44)-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공손접과 전개강은 자신들의 공로로 보아 죽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이 됨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을 하였다.이에 고야자도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복숭아를 차지하는 것이 무사로서 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뒤를 이어 자살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안영은 복숭아 두 개로 세 사람의 무사를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여기에서 ‘복숭아 두 개로 세 명의 무사를 죽였다.’고 하여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란 고사성어가 비롯되었으며,이 말은 ‘교묘한 음모를 꾸며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의미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안영의 이 유명한 정치술에 대해서 공자는 다만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안자는 남의 칼을 빌려 복숭아로 차도살인(借刀殺人)하였으나 어쨌든 이는 의로운 일은 아니다.” 차도살인. 문자 그대로 ‘남의 칼을 빌려 적을 제거한다.’는 공자의 말은 비록 안영이 직접 칼을 들어 적을 제거하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간접 살인의 불의는 저질렀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안영의 정치술 역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냉정하게 음미해볼 가치 있는 교훈인 것이다.오만한 힘을 가진 세 무사는 어쩌면 막강한 권력을 가진 언론일 수도 있고,막강한 힘을 가진 압력단체일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결국 복숭아는 복숭아인 것이다.복숭아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세 어리석은 무사들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어리석은 공명심을 이용한 뛰어난 계책으로 손끝하나 대지 않고 화근거리를 제거한 안영.그 목적이 비록 옳다고 하더라도 그 수단에 대해서는 공자는 실망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현실주의적 정치가인 안영과 이상주의적 사상가인 공자의 근본적인 차이인 것이다.그러나 이런 점 때문에 안영은 공자를 ‘말만 그럴듯한 유자’로 평가하고 있음이니,이는 공자와 경공의 두 번째 만남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제나라로 망명 온 지 거의 일년 만에 경공을 두 번째로 알현하게 된 공자에게 경공은 ‘정치하는 방법’에 대해서 묻는다.논어의 ‘안연(顔淵)’편에 그 대화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하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을 때 공자께서는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이 말을 들은 경공이 말하였다. ‘정말 좋은 말이다.정말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다 한들 내가 어찌 먹을 수 있겠소.(善哉 信如 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이 무렵 권신인 진씨의 세력은 임금을 넘겨볼 만큼 강해지고 있었으며,실제로 얼마 뒤엔 진씨의 후손인 전화(田和)가 제후가 되었고,이로 인해 제나라는 진씨의 나라로 변할 만큼 혼란기였으므로,공자의 대답을 들은 경공의 마음은 착잡하였던 것이다.그러나 한편 궁궐 안에 살아 있는 첩자인 생간(生間)을 두어 경공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던 진씨들은 이 말을 전해 듣고 공자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되는데,심지어는 공자를 살해할 계획까지 세우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제나라 제후들의 반발이 심해 심지어 공자를 살해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을 정도였다.”
  • 儒林(140)-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간언술(諫言術). 군왕의 비위만을 맞춰 아첨하는 예스맨에서 벗어나 시시비비를 엄격히 가려 올바로 간언하였던 명재상 안영.그러나 안영의 뛰어난 점은 임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가 우회적인 방법으로 임금이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간언술로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훗날 궁녀들에게 남장을 시키는 경공의 엽기적인 취미를 참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이는 마치 문에다 소머리를 걸어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명비유로 간언하여 이를 바로잡은 안영을 두고 공자는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안자는 표리(表裏)가 같은 사람이다.” 원래 표리는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옷의 겉감과 안감을 가리키는 것으로 겉감과 안감이 같다는 것은 밖으로 나타내 보이는 행동과 속마음이 일치되는 진심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이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안영을 칭찬한 구절이 딱 한번 나오고 있지만 안영의 언행을 모아 놓은 ‘안자춘추’에는 이처럼 공자가 안영을 칭찬한 구절이 여러 번 나오고 있다. 이는 당연한 일로 사기에서 사마천은 공자의 ‘제자열전’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자가 존경한 인물로는 주(周)의 노자(老子),위(衛)의 거백옥(伯玉),제의 안평중(晏平仲:안영),초(楚)의 노래자(老來子) 등이다.” 실제로 공자는 안영의 뛰어난 간언술에 대해서 감탄하는 장면이 ‘안자춘추’에 여러 번 나오고 있는데 그 일화들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경공의 애마가 갑자기 죽어 버렸다.경공은 몹시 화가 나 마굿간지기를 당장 사형에 처하라고 하였다.안영에게 의견을 묻자 안영은 대답하였다. “요순 임금이 사람을 죽인다면 누구부터 죽일 것이라고 보십니까.” “그거야 과인부터 죽이겠지.” 요순이 사람을 죽일 리가 없었으므로 경공은 당황한 마음에 그렇게 얼버무린 것이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경공은 마굿간지기를 사형 대신 하옥시키라고 고쳐 명령했다.이에 안영은 다시 말하였다. “이대로 하옥시키면 죄인은 자신의 죄를 모를 터이니 신이 그 죄목을 알게 해주겠습니다.” 경공의 허락을 받은 안영은 이렇게 말하였다. “듣거라,너는 죽을 죄를 세 가지나 범했다.첫째로는 말을 잘 돌볼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고,둘째로 임금이 사랑하는 말을 죽게 했고,셋째로 말 한마리 때문에 임금으로 하여금 사람을 하나 죽이게 하였다.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임금님을 비난할 것이고,또 제후들이 알게 되면 우리나라를 멸시할 것이다.이와 같은 죄 때문에 너는 하옥되는 것이다.” 안영의 간언술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경공은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용서하라.나의 덕을 해치지 말라.” 결국 뛰어난 간언술로 마굿간지기의 하옥은 보류되었는데,이 말을 들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안자는 마굿간지기의 생명을 살렸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은 임금으로 하여금 덕을 잃지 않게 한 것이었다.” 공자의 이러한 찬탄은 자신의 사상과도 일치되는 것이었다.평소에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이상주의로 삼고 있던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덕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은 일정한 자리에 있으되 여러 별들이 모두 돌며 떠받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 실제로 훗날 노나라의 권신 계강자가 공자에게 ‘만약 정치를 하는 데 있어 무도(無道)한 자를 죽이어 유도(有道)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하고 묻자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내린다.
  • 儒林(140)-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40)-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간언술(諫言術). 군왕의 비위만을 맞춰 아첨하는 예스맨에서 벗어나 시시비비를 엄격히 가려 올바로 간언하였던 명재상 안영.그러나 안영의 뛰어난 점은 임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가 우회적인 방법으로 임금이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간언술로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훗날 궁녀들에게 남장을 시키는 경공의 엽기적인 취미를 참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이는 마치 문에다 소머리를 걸어놓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명비유로 간언하여 이를 바로잡은 안영을 두고 공자는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안자는 표리(表裏)가 같은 사람이다.” 원래 표리는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옷의 겉감과 안감을 가리키는 것으로 겉감과 안감이 같다는 것은 밖으로 나타내 보이는 행동과 속마음이 일치되는 진심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이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안영을 칭찬한 구절이 딱 한번 나오고 있지만 안영의 언행을 모아 놓은 ‘안자춘추’에는 이처럼 공자가 안영을 칭찬한 구절이 여러 번 나오고 있다. 이는 당연한 일로 사기에서 사마천은 공자의 ‘제자열전’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자가 존경한 인물로는 주(周)의 노자(老子),위(衛)의 거백옥(伯玉),제의 안평중(晏平仲:안영),초(楚)의 노래자(老來子) 등이다.” 실제로 공자는 안영의 뛰어난 간언술에 대해서 감탄하는 장면이 ‘안자춘추’에 여러 번 나오고 있는데 그 일화들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경공의 애마가 갑자기 죽어 버렸다.경공은 몹시 화가 나 마굿간지기를 당장 사형에 처하라고 하였다.안영에게 의견을 묻자 안영은 대답하였다. “요순 임금이 사람을 죽인다면 누구부터 죽일 것이라고 보십니까.” “그거야 과인부터 죽이겠지.” 요순이 사람을 죽일 리가 없었으므로 경공은 당황한 마음에 그렇게 얼버무린 것이다.그렇게 말하고 나서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경공은 마굿간지기를 사형 대신 하옥시키라고 고쳐 명령했다.이에 안영은 다시 말하였다. “이대로 하옥시키면 죄인은 자신의 죄를 모를 터이니 신이 그 죄목을 알게 해주겠습니다.” 경공의 허락을 받은 안영은 이렇게 말하였다. “듣거라,너는 죽을 죄를 세 가지나 범했다.첫째로는 말을 잘 돌볼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고,둘째로 임금이 사랑하는 말을 죽게 했고,셋째로 말 한마리 때문에 임금으로 하여금 사람을 하나 죽이게 하였다.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임금님을 비난할 것이고,또 제후들이 알게 되면 우리나라를 멸시할 것이다.이와 같은 죄 때문에 너는 하옥되는 것이다.” 안영의 간언술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경공은 손을 내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용서하라.나의 덕을 해치지 말라.” 결국 뛰어난 간언술로 마굿간지기의 하옥은 보류되었는데,이 말을 들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안자는 마굿간지기의 생명을 살렸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은 임금으로 하여금 덕을 잃지 않게 한 것이었다.” 공자의 이러한 찬탄은 자신의 사상과도 일치되는 것이었다.평소에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이상주의로 삼고 있던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덕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은 일정한 자리에 있으되 여러 별들이 모두 돌며 떠받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 실제로 훗날 노나라의 권신 계강자가 공자에게 ‘만약 정치를 하는 데 있어 무도(無道)한 자를 죽이어 유도(有道)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하고 묻자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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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蘇台奎(㈜신한내산 대표이사)씨 별세 鎭昊(〃 부사장)鎭鶴(시카고 남부지역 한인회 회장)鎭樂(시카고 거주)鎭德(Bluenet 대표)延伊(소소패션 〃)씨 부친상 文世浩(〃)씨 빙부상 23일 오전 5시 40분 서울대병원,발인 25일 오전 6시 (02)760-2011 ●宋英燮(LG전자 IR팀 부장)씨 별세 洪燮(LG투자증권 상무)씨 형제상 23일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 (02)392-3299 ●任具彬(경기도 청소년수련원장·전 동아일보 기자)씨 별세 大爀(베어링포인트 과장)씨 부친상 23일 오전 1시20분 수원시연화장,발인 25일 오전 8시 (031)217-2950 ●廉鎬(대우증권 PF부 부장)씨 빙모상 23일 오전 3시50분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30분 (02)392-3499 ●黃淳宰(고려대병원 이비인후과장)淳哲(LG전선 상무)淳榮(투에스테크놀로지 사장)淳澤(외교통상부 심의관)씨 부친상 張秀榮(포항공대 교수)씨 빙부상 23일 오전 8시40분 고대안암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2)921-5099 ●金澤春(김택춘 내과원장)씨 별세 林炯奎(안양과학대 건축과 교수)吳鍾仁(SK텔레텍 과장)씨 빙부상 22일 0시50분 안양한림대성심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31)384-2464 ●徐丙均(전 국회의원)씨 상배 在弘(중국 거주)在允(자영업)씨 모친상 23일 오전 9시 대구수성성당,발인 25일 오전 7시30분 (053)751-5365 ●丁圭豊(수원삼성블루윙즈축구단 스카우트)씨 빙모상 23일 오전 9시 조선대부속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62)231-8903 ●田仙喆(한양데코 대표)成福(협성화학 〃)善我(벨웨이브 연구소장)善泰(자영업)씨 모친상 윤길(서윤산업 대표)씨 빙모상 22일 경희의료원,발인 24일 오전 8시 (02)958-9549 ●金秀謙(한국IDC 이사)尙謙(동국제강 대리)씨 모친상 洪鍾慶(뉴욕총영사관 영사)이상주(대법원 부장판사)씨 빙모상 23일 오전 5시20분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 (02)392-0499 ●宋美淑(동아일보 울산양정독자센터 사장)씨 부친상 23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2리 자택,발인 25일 오전 7시 (054)672-4017 ●崔聖均(월드비전 경기지부장)씨 모친상 23일 오전 8시 강남성모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 (02)590-2540 ●尹建燮(시온성교회 장로)씨 별세 載信(전 기독교케이블TV 대표이사)載延(㈜SK 부장)씨 부친상 22일 오후 7시55분 일산병원,발인 26일 오전 5시30분 (031)902-5499˝
  • [부고]

    ●蘇台奎(㈜신한내산 대표이사)씨 별세 鎭昊(〃 부사장)鎭鶴(시카고 남부지역 한인회 회장)鎭樂(시카고 거주)鎭德(Bluenet 대표)延伊(소소패션 〃)씨 부친상 文世浩(〃)씨 빙부상 23일 오전 5시 40분 서울대병원,발인 25일 오전 6시 (02)760-2011 ●宋英燮(LG전자 IR팀 부장)씨 별세 洪燮(LG투자증권 상무)씨 형제상 23일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 (02)392-3299 ●任具彬(경기도 청소년수련원장·전 동아일보 기자)씨 별세 大爀(베어링포인트 과장)씨 부친상 23일 오전 1시20분 수원시연화장,발인 25일 오전 8시 (031)217-2950 ●廉鎬(대우증권 PF부 부장)씨 빙모상 23일 오전 3시50분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30분 (02)392-3499 ●黃淳宰(고려대병원 이비인후과장)淳哲(LG전선 상무)淳榮(투에스테크놀로지 사장)淳澤(외교통상부 심의관)씨 부친상 張秀榮(포항공대 교수)씨 빙부상 23일 오전 8시40분 고대안암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2)921-5099 ●金澤春(김택춘 내과원장)씨 별세 林炯奎(안양과학대 건축과 교수)吳鍾仁(SK텔레텍 과장)씨 빙부상 22일 0시50분 안양한림대성심병원,발인 24일 오전 8시 (031)384-2464 ●徐丙均(전 국회의원)씨 상배 在弘(중국 거주)在允(자영업)씨 모친상 23일 오전 9시 대구수성성당,발인 25일 오전 7시30분 (053)751-5365 ●丁圭豊(수원삼성블루윙즈축구단 스카우트)씨 빙모상 23일 오전 9시 조선대부속병원,발인 25일 오전 9시 (062)231-8903 ●田仙喆(한양데코 대표)成福(협성화학 〃)善我(벨웨이브 연구소장)善泰(자영업)씨 모친상 윤길(서윤산업 대표)씨 빙모상 22일 경희의료원,발인 24일 오전 8시 (02)958-9549 ●金秀謙(한국IDC 이사)尙謙(동국제강 대리)씨 모친상 洪鍾慶(뉴욕총영사관 영사)이상주(대법원 부장판사)씨 빙모상 23일 오전 5시20분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 (02)392-0499 ●宋美淑(동아일보 울산양정독자센터 사장)씨 부친상 23일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2리 자택,발인 25일 오전 7시 (054)672-4017 ●崔聖均(월드비전 경기지부장)씨 모친상 23일 오전 8시 강남성모병원,발인 25일 오전 8시 (02)590-2540 ●尹建燮(시온성교회 장로)씨 별세 載信(전 기독교케이블TV 대표이사)載延(㈜SK 부장)씨 부친상 22일 오후 7시55분 일산병원,발인 26일 오전 5시30분 (031)902-5499
  • 儒林(114)-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아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면서 생각하였다.공자는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공자는 부활하여 이 시대에 다시 살아나 그 유명한 춘추필법으로 역사를 비판하고 이 전국시대를 주유하면서 왕도를 설파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조광조의 시대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조광조도 자신이 살았던 당대를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으로 난세 중의 난세로 보았을 것이며,따라서 공자가 다시 살아나 재림(再臨)하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어쩌면 조광조는 자신을 공자의 현신(顯身)이라고 생각하였을지도 모른다. 순간 내 머릿속으로 조광조의 무덤 입구에 서 있는 안내문의 내용이 떠올랐다.비교적 조광조의 업적을 정확하게 압축해 놓은 안내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중종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조광조는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면서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그의 개혁중심에는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낡은 조선시대 풍습과 사상을 유교적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왕도정치’란 공자가 그토록 열국을 주유하면서 구현하기를 염원하였던 정치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왕도정치란 ‘인과 덕을 바탕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정치사상’을 말함인데,맹자는 ‘왕도’에 대비되는 정치사상으로 ‘패도(覇道)’를 엄격히 구별하고 있다. 서양철학에 있어 소크라테스가 공자라면 플라톤과 같은 존재는 맹자로서,맹자는 공자의 유가사상을 한층 더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한데,맹자는 ‘왕도’와 ‘패도’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무력으로 인을 대신하는 것이 패도이고,덕으로 인을 행하는 것은 왕도이다.무력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으로 복종케 하는 것이 아니며,힘이 모자라 그렇게 되는 것이며,덕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진심으로 복종케 하는 것이다.” 왕도를 유가정치의 이상으로 삼았던 공자와는 달리 힘으로 백성을 지배하는 패도 역시 중요한 정치수단으로 보았던 맹자는 그러므로 이상주의적인 공자와는 달리 현실적 정치관을 가졌던 사상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광조는 안내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던 공자의 화신(化神)이었다. 조광조는 자신을 공자와 동일시함으로써 1515년 중종이 직접 출제한 알성시의 문제에서 ‘공자께서 만약 내가 등용이 된다면 적어도 3년 이내에 정치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하고,‘오늘날과 같은 어지러운 시대를 당하여 이 난세를 극복하고 옛 성인의 이상적 정치를 오늘에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이에 대한 대책을 논하라.’는 시험 문제를 통해 공자의 왕도사상이야말로 난세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설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광조의 왕도정치는 안내문에 나와 있는 대로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조선시대의 낡은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공자의 사상은 시황제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정책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한나라의 무제(기원전 140~87년 재위) 때에 오경박사가 갖추어지면서 유학으로 정립되어 2000년의 중국 역사를 통해서 중국 정치의 기본원리와 사회윤리의 발판을 이루는 학문으로 발전되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후 수나라와 당나라를 거칠 때에는 불교의 융성으로 유학은 자연 쇠퇴하고 있었는데,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삼국시대와 신라통일시대,그리고 고려시대 때까지 우리나라에서도 계속되었던 것이었다. 유교가 다시 부흥하기 시작한 것은 주자(朱子·1130~1200)에 의해서인데,그런 의미에서 주자는 유교의 중시조라고 불릴 만할 것이다.후대의 평가와는 달리 당대에는 위학(僞學)이라 하여서 크게 박해를 받았던 주자의 성리학은 송나라 멸망 후 원대에 이르러 관학으로 채택되고 과거의 교재로 사용되면서 크게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 儒林(114)-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14)-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아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면서 생각하였다.공자는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공자는 부활하여 이 시대에 다시 살아나 그 유명한 춘추필법으로 역사를 비판하고 이 전국시대를 주유하면서 왕도를 설파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조광조의 시대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조광조도 자신이 살았던 당대를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으로 난세 중의 난세로 보았을 것이며,따라서 공자가 다시 살아나 재림(再臨)하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어쩌면 조광조는 자신을 공자의 현신(顯身)이라고 생각하였을지도 모른다. 순간 내 머릿속으로 조광조의 무덤 입구에 서 있는 안내문의 내용이 떠올랐다.비교적 조광조의 업적을 정확하게 압축해 놓은 안내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중종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조광조는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면서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그의 개혁중심에는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낡은 조선시대 풍습과 사상을 유교적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왕도정치’란 공자가 그토록 열국을 주유하면서 구현하기를 염원하였던 정치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왕도정치란 ‘인과 덕을 바탕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정치사상’을 말함인데,맹자는 ‘왕도’에 대비되는 정치사상으로 ‘패도(覇道)’를 엄격히 구별하고 있다. 서양철학에 있어 소크라테스가 공자라면 플라톤과 같은 존재는 맹자로서,맹자는 공자의 유가사상을 한층 더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한데,맹자는 ‘왕도’와 ‘패도’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무력으로 인을 대신하는 것이 패도이고,덕으로 인을 행하는 것은 왕도이다.무력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으로 복종케 하는 것이 아니며,힘이 모자라 그렇게 되는 것이며,덕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진심으로 복종케 하는 것이다.” 왕도를 유가정치의 이상으로 삼았던 공자와는 달리 힘으로 백성을 지배하는 패도 역시 중요한 정치수단으로 보았던 맹자는 그러므로 이상주의적인 공자와는 달리 현실적 정치관을 가졌던 사상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광조는 안내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였던 공자의 화신(化神)이었다. 조광조는 자신을 공자와 동일시함으로써 1515년 중종이 직접 출제한 알성시의 문제에서 ‘공자께서 만약 내가 등용이 된다면 적어도 3년 이내에 정치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하고,‘오늘날과 같은 어지러운 시대를 당하여 이 난세를 극복하고 옛 성인의 이상적 정치를 오늘에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이에 대한 대책을 논하라.’는 시험 문제를 통해 공자의 왕도사상이야말로 난세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설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광조의 왕도정치는 안내문에 나와 있는 대로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조선시대의 낡은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공자의 사상은 시황제의 ‘분서갱유(焚書坑儒)’ 정책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한나라의 무제(기원전 140~87년 재위) 때에 오경박사가 갖추어지면서 유학으로 정립되어 2000년의 중국 역사를 통해서 중국 정치의 기본원리와 사회윤리의 발판을 이루는 학문으로 발전되어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후 수나라와 당나라를 거칠 때에는 불교의 융성으로 유학은 자연 쇠퇴하고 있었는데,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삼국시대와 신라통일시대,그리고 고려시대 때까지 우리나라에서도 계속되었던 것이었다. 유교가 다시 부흥하기 시작한 것은 주자(朱子·1130~1200)에 의해서인데,그런 의미에서 주자는 유교의 중시조라고 불릴 만할 것이다.후대의 평가와는 달리 당대에는 위학(僞學)이라 하여서 크게 박해를 받았던 주자의 성리학은 송나라 멸망 후 원대에 이르러 관학으로 채택되고 과거의 교재로 사용되면서 크게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 [책꽂이]

    ●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여성공간(태혜숙 등 지음,여이연 펴냄) 한국의 식민지 근대는 주로 제국주의나 민족,식민성 등을 중심으로 경제·사회·역사·문화적 시각에서 조명돼 왔다.이런 관점의 거대담론들은 종종 일상생활의 구체적 경험들을 소홀히 함으로써 관념적인 역사분석의 잘못을 범하곤 했다.이같은 관념론의 덫은 대개 남성을 역사의 주체로 가정하는 ‘젠더 맹목성’에서 기인한다.우리의 경우 식민지 근대는,여성이 가문이나 신분보다는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비로소 눈뜨기 시작한 시기라 할 수 있다.이 책은 여성을 식민지 근대 논의의 키워드로 끌어올린다.1만 5000원. ●원숭이는 적을 만들지 않는다(사쿠라이 히데노리 지음,김현희 옮김,씨앗을 뿌리는 사람 펴냄) 평민 출신에 ‘원숭이’라 불릴 정도로 초라한 외모를 지녔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그러나 그는 주인인 오다 노부나가의 짚신 담당으로 출발해 전국시대 최고의 권력자가 됐다.히데요시는 이 세상이 온통 ‘관계’로 성립돼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을 통해 보여준 진정한 리더였다.그의 인간경영 기술은 경영컨설턴트 피터 드러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이제는 지위로 군림하는 시대는 지났다.인간적인 매력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추종자를 만들어내야 한다.” 히데요시의 철학을 살펴본다.1만원. ●행복을 찾아가는 나만의 삶,웰빙(맹한승 지음,행복한 마음 펴냄) 휴(休)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저자가 펼치는 체험적 웰빙론.저자는 웰빙은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아날로그적 삶의 태도이며 자유로움이며 개성이라고 말한다.왜곡된 웰빙 열풍에 대한 비판도 곁들인다.예컨대 몸짱 아줌마 신드롬 같은 것은 상업적 마케팅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는 것이다.1만원. ●달리,나는 천재다!(살바도르 달리 지음,최지영 옮김,다빈치 펴냄) 스페인의 천재화가 달리의 일상과 생각을 엿보게 하는 일기집.냄새를 줄이기 위해 귀에 재스민꽃을 꽂고 변기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나 정어리 기름을 머리에 뒤집어쓴 채 파리떼가 자신을 뒤덮기를 기다리는 모습 등을 보면 그가 천재인지 광인인지 구별할 수 없다.달리는 여전히 오만방자하고 자아도취적이다.진정한 초현실주의자는 자신밖에 없으며 ‘살바도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현대예술의 ‘구원자’로서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단언한다.1만 5000원. ●경영자 간디(요르크 치들라우 지음,한경희 옮김,21세기북스 펴냄) 평화와 비폭력의 상징 마하트마 간디.그는 날마다 물레를 돌리며 명상을 하고 걷기를 즐기며 맨발에 샌들을 신고 다닌 ‘몽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했다.“나는 몽상가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상주의자다.” 간디의 리더십의 비결은 무엇일까.지독한 현실주의자 간디의 지배하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인간경영 지혜를 소개한다.1만 2000원.˝
  • [이런 책 어때요]

    ●세계의 종교/니니안 스마트 지음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세계의 종교를 폭넓게 다뤘다.종교는 지구촌 사회의 다양한 문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다.영국 종교학회의 주축인 랭커스트학파를 이끈 저자는 ‘종교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그는 종교를 인류 문화사의 맥락에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세계관으로 간주한다.책은 한국 종교에 관해서도 언급한다.저자는 “한국의 종교는 일찍부터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며 “신라 때 가장 중요한 불교사상가론 원효와 의상이 있고,한국 종교사상에서 가장 독창적인 것은 지눌이 화엄불교와 선불교를 연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4만 2000원. ●에도의 패스트푸드/오쿠보 히로코 지음 1657년 일본에서는 에도 시내의 3분의2를 태워버린 ‘메이레키 대화재’가 일어났다.그 이후에도 에도엔 잦은 화재로 복구공사가 끊이지 않았다.때문에 이곳엔 쇼쿠닌(職人,목수·미장이·노무자)이라 불린 장인들이 몰렸다.이들에게 손쉽고 값싸게 먹을 수 있는 포장마차의 먹거리는 안성맞춤.이 책은 음식으로 보는 에도의 문화사다.당시 바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에도풍 패스트푸드인 덴푸라와 소바,그리고 스시는 인구 100만의 대도시 에도의 포장마차에서 시작됐다.쇼군은 꼬치에 꽂은 덴푸라는 물론 기름진 음식도 먹어선 안됐다.1만 2000원. ●콜럼버스 항해록/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지음 이탈리아 항해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유럽인에겐 위대한 역사적 발견이지만,아메리카 대륙에서 평화롭게 살던 인디오들의 입장에서 보면 재앙의 시작이었다.인디오들은 처음엔 콜럼버스 일행을 경계했지만 이내 의심을 걷어내고 그들을 환대했다.심지어 ‘하늘에서 온 사람’이라고까지 여겼다.이에 반해 콜럼버스는 인디오들을 영리해 노예로 쓰기에 적절한 인종으로밖에 보지 않았다.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까지 200여일간의 항해일지인 이 책은 유럽과 아메리카의 만남의 역사를 보여준다.‘인간’ 콜럼버스도 발견할 수 있다.1만 1900원. ●소나무와 나비/임태승 지음 공자는 괴력난신을 이야기하지 않은 완고한 현실주의자이자,누구보다 큰 이상을 품은 이상주의자였다.그러나 공자는 현실 안에서만 발버둥쳐선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고 봤다.‘참여 속의 초월’이 전제된 이상만이 참다운 이상임을 갈파했다.공자가 예술행위와 예술적 인생을 강조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반면 장자가 나비를 꿈꿨다는 것은 허무적 종말을 지향한다는 의미가 아니다.구원의 가능성이 희박한 세계에 대한 정신적 곤경의 활로가 바로 나비이고 꿈이다.동아시아 미학의 두 흐름인 유가미학과 도가미학의 특징을 공자와 장자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2만원. ●제발 까불지마, 이게 중국이다/이상재 지음 중국에선 숫자도 서열이 있다.가장 높은 숫자가 9다.9자는 황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황제는 항상 9룡포를 입고 9999간 궁궐에 산다.궁궐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문의 위 아래와 옆이 모두 9줄로 장식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9자의 발음은 ‘주’.구(久)자와 발음이 같아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영영무궁토록 지속되고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겼다.대한상공회의소 베이징사무소장을 지낸 저자는 중국의 사회 시스템과 중국인의 관습,사고방식 등을 현지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준다.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성공과 실패요인도 소상히 살폈다.1만원.˝
  • 儒林(109)-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09)-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훗날 이율곡으로부터 ‘진귀한 새,괴이한 돌,이상한 풀’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기인.이지함처럼 이산해도 괴팍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평생 조광조를 사숙하여 신도비도 함께 쓴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다. 이산해는 묘표에서 다음과 같이 조광조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오호라, 묘비로도 진실로 선생의 경중을 나타내기에 부족한데 하물며 다시 여기에 무엇을 기대할 것이 있겠는가.” 조광조의 무덤은 두 개의 석인과 한 쌍의 망주석(望柱石)이 보호하고 있었다.봉분은 잘 보존되어 있었고,무덤 위에 자란 풀들도 가지런히 깎여 있다.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풀 사이에 피어 있었고,한 떼의 나비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들고 온 비닐봉지 속에서 소주병과 건어물을 꺼내어 상석 위에 내려놓았다.마개를 따고 종이컵에 술을 한 잔 부은 다음 무릎을 꿇고 조광조의 무덤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상석 위에는 누군가 꺾어 묶은 한 다발의 들꽃이 놓여 있었다.배를 올리고 나서 나는 종이컵에 든 술을 봉분 주위를 돌아가며 무덤 위에 뿌리기 시작하였다. 생전에 조광조는 주색에 엄격하여 절제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20세도 되지 않았던 젊은 시절,한 여인이 추파를 보내어 머리 비녀를 보내오자 이를 여인숙의 벽에 걸어 놓고 온 것은 유명한 일화였지만,실제로도 조광조는 평생 첩을 두지 않고 일부일처로만 지냈다.이는 당시로서는 드문 예에 속하고 있다.관직을 가지지 않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사람이라도 양반이면 첩 하나쯤 두는 것이 예사였고,사회적으로도 허용되던 때였음에도 조광조는 정실부인 하나만을 고집하였다. 이율곡도 첩이 둘이나 있었고,심지어 최고의 성리학자인 이퇴계도 축첩하고 있었는데,조광조의 이러한 처사는 시대를 초월한 도덕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그러나 그렇다고 무조건 여자를 멀리하던 율법주의자는 아니었다.기록에 의하면 중종 13년 5월,왕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남녀가 적합하게 서로 만나서 정도를 잃지 않는다면 이는 도심(道心)이지,사사로운 욕정이 아니며,또한 도에 지나치게 거절한다면 이 또한 사람의 정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술을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술로 인한 동료들의 실수를 자주 보고는 철저하게 절주를 실천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조광조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도학의 정신을 철저히 지켜나간 이상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광조도. 나는 술을 무덤의 주위에 뿌리면서 생각하였다. 막상 의금부에 의해서 한밤중에 체포되자 엉망으로 만취하였던 것이다.자신을 심문하던 이장곤에게 ‘이 못난 놈아,이 용가(龍哥)야.’하고 술주정하였으며,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이 답변한 공초에 서명하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아마도 그 날이 조광조가 일생일대에 만취한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으니. 나는 한잔 가득 따른 술을 무덤에 남김없이 뿌리며 중얼거렸다. “조광조여,무덤 속에 들어 있는 조광조의 영령이여, 술을 권하노니 사양하지 말고 내 노래 한 곡에 귀기울여 보시오.금도 옥도 비단도 귀한 것이 못된다.다만 길게 취하여 깨어나지 않는 것이 원이로다.” 나는 술을 뿌리며 이백이 지은 장진주(將進酒)의 한 구절을 권주가로 중얼거려 말하였다. “옛적에 성현도 다 흔적이 없고 오직 마시는 자만이 이름이 남더라.주인이 어찌 술이 적다고 하느냐.즉시 많은 술을 사올 것이다.오화마(五花馬)와 천금구(千金)를 꺼내어 좋은 술로 바꾸어 그대와 더불어 만고의 시름을 덜고 싶다.” 나는 빈 잔에 술을 따라 혼자서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하였다.
  • 儒林(109)-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훗날 이율곡으로부터 ‘진귀한 새,괴이한 돌,이상한 풀’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기인.이지함처럼 이산해도 괴팍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평생 조광조를 사숙하여 신도비도 함께 쓴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다. 이산해는 묘표에서 다음과 같이 조광조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오호라, 묘비로도 진실로 선생의 경중을 나타내기에 부족한데 하물며 다시 여기에 무엇을 기대할 것이 있겠는가.” 조광조의 무덤은 두 개의 석인과 한 쌍의 망주석(望柱石)이 보호하고 있었다.봉분은 잘 보존되어 있었고,무덤 위에 자란 풀들도 가지런히 깎여 있다.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풀 사이에 피어 있었고,한 떼의 나비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들고 온 비닐봉지 속에서 소주병과 건어물을 꺼내어 상석 위에 내려놓았다.마개를 따고 종이컵에 술을 한 잔 부은 다음 무릎을 꿇고 조광조의 무덤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상석 위에는 누군가 꺾어 묶은 한 다발의 들꽃이 놓여 있었다.배를 올리고 나서 나는 종이컵에 든 술을 봉분 주위를 돌아가며 무덤 위에 뿌리기 시작하였다. 생전에 조광조는 주색에 엄격하여 절제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20세도 되지 않았던 젊은 시절,한 여인이 추파를 보내어 머리 비녀를 보내오자 이를 여인숙의 벽에 걸어 놓고 온 것은 유명한 일화였지만,실제로도 조광조는 평생 첩을 두지 않고 일부일처로만 지냈다.이는 당시로서는 드문 예에 속하고 있다.관직을 가지지 않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사람이라도 양반이면 첩 하나쯤 두는 것이 예사였고,사회적으로도 허용되던 때였음에도 조광조는 정실부인 하나만을 고집하였다. 이율곡도 첩이 둘이나 있었고,심지어 최고의 성리학자인 이퇴계도 축첩하고 있었는데,조광조의 이러한 처사는 시대를 초월한 도덕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그러나 그렇다고 무조건 여자를 멀리하던 율법주의자는 아니었다.기록에 의하면 중종 13년 5월,왕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남녀가 적합하게 서로 만나서 정도를 잃지 않는다면 이는 도심(道心)이지,사사로운 욕정이 아니며,또한 도에 지나치게 거절한다면 이 또한 사람의 정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술을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술로 인한 동료들의 실수를 자주 보고는 철저하게 절주를 실천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조광조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도학의 정신을 철저히 지켜나간 이상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광조도. 나는 술을 무덤의 주위에 뿌리면서 생각하였다. 막상 의금부에 의해서 한밤중에 체포되자 엉망으로 만취하였던 것이다.자신을 심문하던 이장곤에게 ‘이 못난 놈아,이 용가(龍哥)야.’하고 술주정하였으며,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이 답변한 공초에 서명하기를 거부하였던 것이다.아마도 그 날이 조광조가 일생일대에 만취한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었으니. 나는 한잔 가득 따른 술을 무덤에 남김없이 뿌리며 중얼거렸다. “조광조여,무덤 속에 들어 있는 조광조의 영령이여, 술을 권하노니 사양하지 말고 내 노래 한 곡에 귀기울여 보시오.금도 옥도 비단도 귀한 것이 못된다.다만 길게 취하여 깨어나지 않는 것이 원이로다.” 나는 술을 뿌리며 이백이 지은 장진주(將進酒)의 한 구절을 권주가로 중얼거려 말하였다. “옛적에 성현도 다 흔적이 없고 오직 마시는 자만이 이름이 남더라.주인이 어찌 술이 적다고 하느냐.즉시 많은 술을 사올 것이다.오화마(五花馬)와 천금구(千金)를 꺼내어 좋은 술로 바꾸어 그대와 더불어 만고의 시름을 덜고 싶다.” 나는 빈 잔에 술을 따라 혼자서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하였다.˝
  • DJ 유럽순방 출국

    김대중(DJ) 전 대통령 내외가 10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9일간의 유럽 3개국 순방길에 올랐다.전직 대통령이 정부 예산지원을 받아 순방외교에 나서기는 처음이다.DJ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OECD 포럼 2004’ 개회식에 참석해 ‘21세기와 동아시아’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이어 노르웨이 오슬로를 방문,마그네 본데빅 총리를 예방한 뒤 노벨연구소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 자격으로 ‘햇볕정책-과거·현재·미래’를 주제로 연설한다.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제57차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개막식에 참석한다. DJ는 공항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과 지지를 요청하고 개발도상국 어린이의 빈곤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나도 국회의원에 3번,대통령에 3번 떨어져 봤다.”며 총선 낙선자들을 위로했다.이상주·진념 전 부총리와 민주당 추미애·정균환 의원,열린우리당 김명자·염동연 당선자 등이 나와 환송했다. 한편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이날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4박5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했다.YS는 와세다대학에서 특강을 하고 히라누마 다케오 전 경제산업상 등을 만난다. 박정경기자 o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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