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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경복궁 옆 대한항공 호텔 건립 안돼”

    서울시 “경복궁 옆 대한항공 호텔 건립 안돼”

    정부와 서울시가 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7성급 한옥호텔 건립 계획을 놓고 제2라운드 공방을 벌일 양상이다. 정부가 학교 옆 호텔 건립 허용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최종 인허가 권한을 갖고 있는 서울시는 여전히 반대 입장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1일 “대한항공이 호텔을 세우려는 종로구 송현동 일대 부지를 공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법 개정과 교육청의 재심사를 거쳐 대한항공이 사업계획 승인을 다시 신청할 경우 주민 의견 청취와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법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게 시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공공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시 관계자는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맞다”며 “하지만 해당 부지는 한양도성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역사문화벨트의 중심이라는 입지 여건도 감안해야 한다. 장기적인 도시 발전을 위해 공익성과 공공성도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학교 옆 호텔 건립에 대해 시민들이 부정적이라며 시민 공감대를 얻지 못해 시기상조라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5일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학습 환경이 저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유해성이 없는 관광호텔이 원활하게 건립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혀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해당 부지는 시장이 재량권을 갖는 북촌지구단위계획으로 묶여 있고, 이 계획을 바꾸지 않는 이상 해당 부지에 숙박 시설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시는 내부적으로 직접 송현동 부지를 사들여 공익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살림살이를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려운 방안이다. 그 때문에 정부 매입을 통한 관광자원 활용이 차선책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은 옛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였던 송현동 일대 3만 7141.6㎡ 부지를 2008년 6월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원을 주고 사들인 뒤 이곳에 호텔 건립을 추진해왔다. 대한항공은 2010년 3월 종로구에 관광호텔 건립 사업계획을 신청했으나 중부교육청은 근처 덕성여중의 학습권이 침해된다며 불허한 바 있다. 이어 대한항공은 행정소송을 냈지만 결국 패소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아빠 지금 화나고 창피하단다” 부모 감정 아이에게 솔직하게

    “아빠 지금 화나고 창피하단다” 부모 감정 아이에게 솔직하게

    누구나 자녀의 감정을 존중하는 현명한 부모가 되고 싶어 한다. 자녀의 행동에 한계를 정해 주고 그 한계 속에서 칭찬하고 꾸중하는 일관된 원칙을 지닌 부모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어린이집에선 친구 물건을 빼앗거나 반대로 일방적으로 빼앗기는 아이 때문에 속이 상하고, 거짓말하는 초등학생 자녀 때문에 걱정하고, 문 닫고 틀어박힌 사춘기 자녀 때문에 화를 낸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서울시교육연수원이 소속 교직원 70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행복한 학부모 감정코칭 과정’은 학부모들이 느끼는 이상과 현실의 격차를 줄여 보기 위해 기획됐다. 강사로 나선 강용 한국심리상담센터장은 30일 “자기 감정에 솔직한 부모가 아이 감정을 잘 알고, 부모와 감정적 소통이 이뤄진 자녀가 피해의식 없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며 ‘감정코칭형 부모’가 될 것을 제안했다. 아이가 감정을 표현할 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아이와의 정서적 교감을 시도하는 이상적인 부모가 ‘감정코칭형 부모’라고 강 센터장은 설명했다. 감정코칭형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역으로 스스로의 양육방식을 점검해야 한다. 최소한 감정코칭형과 대비되는 부정적인 양육방식은 피하자는 얘기다. 강 센터장은 감정코칭형과 다르게 지양해야 할 양육방식으로 축소전환형, 억압형, 방임형 등 3가지를 소개했다. ‘축소전환형’은 자녀가 무조건 밝아야 한다고 생각해 아이의 문제에 무관심하고 회피하는 성향을 말한다. 자녀가 울 때 “뚝 그치면 이거 줄게”라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화제를 전환해 버리는 유형이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 반응에 대한 피드백을 받지 못한 자녀는 스스로의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지나치게 관대해 한계 없이 자녀의 감정을 다 받아 주는 ‘방임형’은 자녀의 대인관계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야기시킨다. 방임형과 반대로 무조건 꾸중하는 ‘억압형’은 자녀의 반항을 부를 수 있다. 강 센터장은 부모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것과 자녀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두 가지 과정을 제안했다. 자녀를 야단치기보다 “엄마가 지금 화가 나고 창피해”라고 솔직하게 말해 자녀가 부모의 감정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터주라는 것이다. 자녀 감정을 들여다보기 위한 손쉬운 감정코칭 습관으로는 자녀가 말할 때 “왜”라고 묻기보다 “어떻게”라고 묻는 방법을 제안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글로벌 네트워크의 중심, 서울숲 SK V1 타워 주목

    글로벌 네트워크의 중심, 서울숲 SK V1 타워 주목

    20층 규모 첨단지식센터빌딩 자랑…‘합리적 분양가’로 사옥마련 지원 서울숲이 국내를 넘어 국제적인 경제협력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시는 22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시 바얀주르크 국립공원 내에 1만 5793㎡ 규모의 서울숲 조성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서울숲 조성을 위해 울란바토르시와 2009년 환경 및 경제협력 강화 협약을 맺고 2010년부터 본격적인 조성사업에 착수, 공사 시작 1년 반 만에 완료돼 지난 10일 준공식을 했다. 이처럼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서울숲은 현재 글로벌 비즈니스센터, 성수 IT ∙BT 산업타운, 뚝섬 지구단위계획 등 굵직한 마스터 플랜과 비전으로 IT 비즈니스의 핵심지구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 성수동 2가 284-55번지 일대에 들어서는 ‘서울숲 SK V1 타워’는 성수동 산업개발진흥지구(성수IT, BT산업타운)가 인접해 있고, 교통이 편리해 주목을 받고 있다. 스마트 빌딩을 자랑하는 서울숲 SK V1 타워는 연면적 38,457.73㎡(11,633.46평)의 대규모 스케일에 20층 높이로 서울숲 IT 비즈니스타운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빌딩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광명 SK 테크노파크, 당산 SK V1 타워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첨단 지식산업센터를 창출해온 SK건설의 브랜드 파워가 함축된 서울숲SK V1 tower는 본관 지하 4층, 지상 20층 및 별동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구성됐다. 하나로 통합된 ‘All in One 지식산업센터’를 지향하는 서울숲SK V1 tower는 뚝섬역, 성수역, 서울숲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트리플 역세권을 자랑한다. 여기에 강변북로 내부순환도로 진입이 수월하고, 성수대교 영동대교 등을 이용해 강남과 바로 연결돼 최상의 교통인프라를 갖췄다. 또한 개방형 설계로 한강과 서울숲은 물론 중랑천까지 한눈에 내려다보는 탁 트인 프리미엄 조망권(상층부에 한함)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17층에는 옥상정원을 마련, 자연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배려했다. 전체 호실에 발코니를 서비스로 제공하여 조망 및 채광, 공간활용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하 1층에 선큰 및 직통계단을 확보하여 쾌적성과 접근성을 더욱 높인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1층은 원스톱 편의시설로 이상적인 업무환경을 지원하고, 지하층 창고와 1층 하역장 설치로 물류이동이 편리하게 설계됐다. 번호판 인식 주차관제시스템으로 보안을 강화했으며, 100% 자주식 주차장으로 입주직원과 방문객의 편의를 도모했다. 특히 빠르고 강력한 인터넷 환경 구축으로 입주기업의 IT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첨단 인텔리전트 시스템을 완비한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또 사옥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합리적 분양가와 세제혜택을 적용한 것도 특징이다. 서울시 및 중소기업진흥공단 관련 자금, 시중은행 시설자금 대출 등 분양가의 최고 70%까지 장기저리 융자를 알선해 준다. 취득세 75% 감면(2013년 말까지 적용), 재산세 5년간 50% 감면 등 세제혜택에다 계약금 10%, 중도금 40%, 잔금 50% 등 합리적 분양가로 입주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했다. 분양 관계자는 “아파트형공장도 이제 소프트웨어의 시대이기 때문에 교통, 비전, 디자인, 브랜드, 경제성 등 인프라 구축이 필수 경쟁력”이라면서 “서울숲SK V1 타워는 최상의 비즈니스 환경을 위한 첨단 시스템과 멀티 편의시설로 도시형 제조업, 연구개발업, 지식산업 등 입주기업의 수요를 동시에 만족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문의: 1566-9113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도로명 주소 전면 시행 D-100] 공공분야 사실상 도로명체계 완료… 택배 등 민간분야 혼선 클 듯

    [도로명 주소 전면 시행 D-100] 공공분야 사실상 도로명체계 완료… 택배 등 민간분야 혼선 클 듯

    도로명주소 전면 시행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땅의 번호’인 지번이 아닌 ‘도로 이름’과 ‘건물 번호’로 구성된 도로명주소만이 법적으로 유일한 주소로 인정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처럼 ‘애버뉴’(Avenue)나 ‘스트리트’(Street) 번호로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전면 시행을 앞둔 정부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민간의 반응은 여전히 반신반의다. 기존 주소 체계의 전면 개편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주소도 바뀌고 우편번호도 바뀐다고 하니 택배기사들이 가장 혼란스럽죠.” 8년째 택배기사로 일한 최민수(가명·34)씨에게는 지번주소가 익숙하다. 택배 상자에 붙어 있는 운송장에도 그동안 지번주소가 적혀 있었고 들고 다니는 지도에도 지번주소가 표시돼 있었기에 도로명주소는 여전히 어색할 따름이다. 이러한 사정이 최씨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실제로 배달 물건이 쏟아지는 추석을 앞두고 취재진이 서울의 한 물류 택배터미널을 찾아 확인해 보니 수많은 택배 상자 중에서 운송장에 도로명주소가 적힌 것은 전혀 없었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구와 동을 중심으로 배달 범위가 분장된 택배기사들에게는 도로명주소 체계가 혼선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2개 이상의 구나 동이 걸쳐 있는 대로변의 경우 배달처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서울 서초구에서 강동구까지 걸친 서초대로에서 우편 배달 구역을 어떻게 분장해야 할지 현재로서는 뾰족한 답이 없다. 최씨는 도로명주소로 주소 체계가 변경됐을 때 택배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에 대한 질문에 “아마도 ‘택배 대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했다. “택배기사들이 담당하는 동네의 지번주소를 외우는 데만도 2~3년이 걸린다. 하루 200여개의 택배 물품을 각 가구에 전달해야 하는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신속한 배달이 필수인데 새 주소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업무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이유다. 심지어 도로명주소 전환에 이어 6자리인 기존 우편번호도 변화를 앞두고 있다. 기초구역번호 체계를 적용하면서 5자리로 바뀐다. 미국의 집(ZIP) 코드와 같은 개념인 기초구역번호는 지형과 인구, 생활권, 도시계획 등에 따라 나눠 전국을 3만 4140개 단위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우정사업본부가 8억 6000만원의 국가기초구역사업 예산을 확보하면 이 같은 전환이 본격화된다. 안전행정부와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우편번호 전환 시기는 2015년 7월 전후다.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집배원 1만 5000여명을 대상으로 새 체계를 교육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도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쉽지 않다. 도로명주소에 적응하면 또다시 기초구역번호를 익혀야 해 일선 택배 대리점 등은 걱정이 앞선다. 물류·유통업계는 최근 정부와의 간담회에서 “도로명주소와 우편번호의 전환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건의하기도 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도로명주소와 우편번호 전환이 함께 이뤄지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지만 도로명주소 사용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기초구역제도까지 동시에 시행되면 혼란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도로명주소 사업 추진에 대한 의지는 강하다. 이미 2011년 전면 시행을 예고했다가 혼선이 우려된다는 국회의 지적에 따라 2년 뒤로 한 차례 연기했기 때문에 더는 미룰 수도 없다. ‘정책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공공 분야는 사실상 100% 도로명주소로 전환이 완료된 상태다. 주민등록이나 사업자등록, 건축물 대장 등 공적장부 1095종 가운데 1093종의 전환을 완료했다. 법인·부동산 등기부는 9월 말 전환을 마무리한다. 현재 정부 부처 업무에서 쓰는 서류나 각종 민원 서류, 지방세 고지서 등은 이미 도로명주소를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공공 분야 전체에서는 보유 주소를 도로명주소로 전환해 활용하는 사례가 85.1% 수준이다. 안행부가 지난 6월 정부 기관과 공사, 공단 등 957개 기관을 전부 조사했을 때 나온 수치다. 민간의 활용은 여전히 미비하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최근 우정사업본부로부터 제출받은 ‘3년간 우편물 도로명주소 사용률 현황’에 따르면 올 7월 말까지 약 4억 7262만건의 우편물 가운데 도로명주소를 썼거나 지번주소와 같이 쓴 우편물은 7652만여건(16.1%)이었다. 기존 주소 체계인 지번주소를 빼고 순수하게 도로명주소만 적은 우편물은 4077만건뿐이었다. 도로명주소로 전환했을 때 실제로 국민들이 느끼는 혼선은 예상보다 적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반 국민들은 지번주소를 일일이 찾고 외우기보다는 인터넷 검색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일반 국민들은 길을 찾을 때 주변 건물이나 사거리 등 도로를 기준으로 하지 지번을 활용하지는 않는다”면서 “도로명주소 전면 시행 초기에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기고] 거점학교의 성공적 운영을 위한 제언/홍원표 연세대 교육학부 교수

    [기고] 거점학교의 성공적 운영을 위한 제언/홍원표 연세대 교육학부 교수

    지금 일반고는 상당히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이전 정권의 고교 다양화 정책이 다소 인위적으로 추진되면서, 상대적으로 여건이 불리한 일반고의 교육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올해 초부터 일반고의 슬럼화 현상에 대한 언론 보도가 줄을 잇게 되었고, 정책 당국자들은 고교 교육의 거의 70%를 차지하는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고심해 왔다. 얼마 전에 서울시교육청은 그동안의 고심을 종합해 ‘일반고 점프 업(Jump Up)’ 방안을 발표했다. 일반고 교육과정의 다양화, 직업교육 기회의 확대, 학교생활 부적응 학생 지원 등을 통해 일반고를 살리자는 것이다. 특히 교육과정 거점학교는 음악, 미술, 체육 등 일반고 학생들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한 교육과정 다양화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 나가는 경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 일반고 교육과정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 개인에 따라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신발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교들은 오로지 문과와 이과라는 획일적인 신발만을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들이 자신의 발을 신발에 맞추다 보니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거나 자신의 진로를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각 학교의 교육과정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학생들의 다양한 수준과 관심, 진로 계획 등을 담아낼 수 있도록 단위학교의 교육과정을 충분히 다양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그리 녹록한 과제가 아니다. 현 대입 제도 하에서 문과·이과의 구분을 벗어나는 것은 상당한 모험일 뿐만 아니라 필요한 시설이나 교원, 기자재를 확보하는 것도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거점학교는 일반 고등학교들이 역할 분담을 통해 이러한 한계를 함께 극복해 나가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직업교육이나 예·체능교육을 받고 싶거나 제2외국어, 과학 등에 관심이 있는 (대개 소수의) 학생들을 학교 내에서 모두 수용하는 것이 어렵다면, 영역별로 거점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 내 교육과정을 다양화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 간 역할 분담을 통해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려주자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거점학교는 특혜를 받는다기보다는 희생을 감내한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할 것이다. 어느 학교나 다른 학교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거점학교의 혜택이 개별 학교나 학생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거점학교는 본교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 학교는 물론이고 서울시 전 지역에서 학생이 희망하면 다닐 수 있다. 따라서, 거점학교는 가급적 많은 학교의, 많은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운영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또한 거점학교가 학생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양질의 시설과 교육과정, 강사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 [데스크 시각] 首長의 ‘구멍’ 티내지 마라/송한수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首長의 ‘구멍’ 티내지 마라/송한수 사회2부 차장

    “도통 지혜롭지 않은 지도자라면, 부지런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야.” N은 이런 말을 불쑥 내뱉었다. 코레일이 사장 자리가 빌 때마다 굵직한 사고를 냈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다. 아흐레 전 터진 대구역 열차 사고와 맞닿았다. 휴일 나라를 뒤흔든 일이다. 최고경영자(CEO) 공백을 틈타 큰 혼란을 빚었다. 철도청이 공사로 바뀐 2005년 5월과 2007년 6월, 2011년 12월에 이어 이번도 마찬가지다. 독립해 견제를 덜 받으면서 더 곪아 공기업으로선 역주행한 꼴이다. 그만큼 수장(首長)의 일거수일투족이 중요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조직을 이끄는 철학에 있어서는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당사자들은 맞받아칠지 모른다. 잇단 사고와 CEO 공백이 딱 맞아떨어지느냐고. 두 가지가 어떤 인과관계라도 있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코레일 사람들 역시 입을 모은다. 곳곳에서 이구동성으로 “꽤 어수선한 무렵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보도를 놓고 지도자 자질론까지 얘기가 커졌다. 수장이 공백이어도 잘 돌아가게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해야 제대로 된 조직, 제대로 된 수장이기 때문이다. 세상엔 네 가지 유형의 지도자가 있다고 한다. 머리가 좋고 부지런한 사람, 머리가 좋고 게으른 사람, 머리가 나쁘고 부지런한 사람, 머리가 나쁘고 게으른 사람이다. 머리가 좋고 게으른 사람이 최고란다. 머리가 나쁘고 부지런하면 최악이다. 머리가 좋고 나쁨은 모두를 위해 지혜를 발휘하느냐 아니냐를 가리킨다. 작든 크든 조직의 지도자에겐 통하는 잣대다. M은 더욱 비장했다. 한 사람을 정점에 둔 조직이 때론 높은 효율을 자랑한다고 꼬집었다. 민주주의에 담긴 작은 비효율을 욕하는 부류들의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나 금세 “세상은 우수한 한 사람보다 평범한 다수의 합심일체 노력으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위안했다. 하지만 99%가 조직을 이끈다 해도 수장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수장 공백 때 동티가 난다는 얘기는 이를 뒷받침하고 남는다. P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지도자가 정말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되뇌었다. S는 “지도자를 굳이 기다리지 않고 구성원 모두 자기 책무를 다한다면 최상의 사회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가능하다면 가장 이상적인 유형이다. “수장이 해외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우면 생산성은 20~30%씩 떨어진다.” 이처럼 얘기하는 출입처 수장도 더러 봤다. 따지고 보면 참 가당찮다. 자신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인가. 넌지시 자존감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코 자랑일 수 없다. 그런 자세가 일을 그르친다. 더구나 공직자라면 더하다. 국민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코레일에 얽힌 뉴스가 심상찮은 까닭이다. 공기업의 경우 보은(報恩) 차원에서 찍어 내려보낸 낙하산 수장이 많은 것도 기강 해이에 한몫을 거든다. 선거 출마 등 개인적인 욕심을 겨냥해 경력을 쌓을 요량으로 꿰찬 자리이니 나그네일 뿐이다. 마음가짐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탓이다. 어느 어르신은 줄곧 말했다.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단다. 나 혼자만 편안하면 주변을 죄다 불편하게 만들고, 내 한몸만 불편하면 주변을 모두 편안하게 해준다. 명언 아닌 명언이다. 이것 또한 수장들에겐 더욱 들어맞는다. 탈권위를 앞세운 지도자를 사랑하는 이유다. onekor@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방랑식객’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김문이 만난사람] ‘방랑식객’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여름의 끝자락, 그 언덕에 섰다. 눈앞에는 마지막 뜨거운 정열을 품은 푸른 산들이 여전히 힘차게 펼쳐진다. 서울 도심을 벗어났다. 강가에 이르자 바람은 벌써 선선해진다.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강물이 어느 지점에선가 서로 만나듯 계절의 교차 또한 역동적이되 소리없이 움직인다. 그렇게 자동차로 40여분,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의 한 숲속에 도착했다. 새들이 조잘거리며 낯선 손님을 맞이한다. ‘산당’(山堂)이라는 아주 작은 간판이 나무 사이로 살짝 눈에 들어온다. ‘방랑식객’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산당’은 그의 아호이자 방랑식객이 머물면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정성껏 음식으로 맞이하는 공간이다. 마당 앞에는 크고 작은 장독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얼핏 봐도 지극한 정성의 세월이 켜켜이 담겨진 장독대임을 알 수 있다.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을 때 방랑식객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그러고는 슬쩍 미소를 짓는다. ‘방랑식객’으로 유명한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58)씨. 지난달 28일 오후 산당의 뒤뜰에 있는 평상에서 방랑식객과 마주 앉았다. 수양버들처럼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가 그늘을 만들어 시원했다.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 물에 기대어 창포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숨쉬는 자연의 놀이터였다. 산당 주변 공간에 대해 물었다. 6600㎡(2000평) 정도이며 15년 전에 임대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어떤 일로 바쁘냐고 했더니 “요리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림? 한 번 더 물었다. 어떤 그림일까. 다음 달에 미국 뉴욕 첼시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있다고 했다. 해외 개인전은 세 번째이고 뉴욕 전시는 올 2월에 이어 두 번째라고 했다. 알고 보니 10년 전 싱가포르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지금까지 개인전만 7차례나 했다. 이 정도면 중견급 화가? 어쨌거나 방랑식객으로 알려진 그가 언제부터 그림에 심취했을까. “스승도 없고 같이 공부하는 동료도 없으니 제게 단체전이란 없습니다. 음식이나 그림이 별로 다를 게 없지요. 음식으로 보면 음식이고 그림으로 보면 그림인 것입니다. 그저 자연이고 자유입니다. 자연에 맡겨 발효된 이상적인 상태를 갖고 행하는 자유로움이라고나 할까요.”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이렇다. 리콴유 총리 재임 시절 만찬 요리 담당으로 싱가포르에 갔을 때 밤거리를 밝힌 ‘루미나리에’에서 발산하는 빛을 보고 문득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작을 열어젖히듯 세상에서 궁금한 것을 그렸다. 또한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있으면 죄다 그렸다. 나뭇잎은 자유로웠고 편하게 흐드러져 있음을 알게 됐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희로애락을 그렸다. 최근에는 그런 완성품만 35점이나 된다. 뉴욕 전시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제목은 ‘미국의 미래’이다. 구상은 이미 다 돼 있고 현지에서 직접 그린다. 배운 사람은 배운 틀로 가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어느 대학, 누구의 제자를 따지지만 미국은 결과를 중요시 여긴다는 말도 곁들인다. 그는 자신의 자유분방한 철학을 계속 읊조린다. “육체란 시공의 한계가 있지만 영혼은 그런 한계가 없습니다. 영혼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공간이 캔버스이며 영혼의 쉼터입니다.” 얘기가 조금 무르익었다. 방랑식객은 절에서 대중공양, 노인들을 위한 밥보시를 많이 했다.그래서 문득 선문답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에 시비(?)를 걸었다. “요새는 화가인가요, 요리사인가요?” “요리사입니다.” “그림이 있으니 요리 예술가라고 표현해도 됩니까?” “접시에 올려 놓으면 음식예술이고 캔버스에 올려 놓으면 그림 예술입니다.” “행복하신지요?”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는데 요새 가끔 그냥 칩니다. 그게 저만의 창작이지요. 악보도 없습니다. 행복하고 더 행복합니다. 숨쉬고 있는 것처럼 감사합니다. 행복은 자기가 디자인하는 대로 되는 것입니다.” “시인이신가요?” “일부러 시를 쓸 일은 없지요. 음식에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저기(평상 옆 작은 연못) 보세요. 물박하, 창포, 각자의 DNA가 있지만 땅의 소식을 하늘에 똑같이 전하고 있잖아요. 땅은 어머니의 살이요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뿌리는 땅에 있고 머리는 하늘로 향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가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다시 물었다. “음식에는 어떤 철학이 있습니까?” “복잡할 거 없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자연과 자유이지요.” 방랑식객은 잠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선생님이 진정 추구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굳이 장르별로 나눈다 해도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제 스스로가 자연이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작가는 그런 생각으로 작품을 하겠지만 보는 시각은 다를 것입니다. 그림이나 음식은 영혼의 쉼터입니다.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먹는 것이지요, 민족의 철학 말입니다.” “자연요리연구가이신데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 “아무거나 즐겨 먹지요. 주어진 대로 맛있게….” 이어 민족철학으로 넘어간다. “우리 민족은 창의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개성이 독특하지요. 서슴없이 비난하는가 하면 또 칭찬도 많이 하잖아요. 음식을 먹을 때도 우리 민족의 철학을 먹는다고 생각해야 돼요. 우리가 맛있게 먹고 사는 것은 조상님들이 희생하신 결과거든요.” 잠시 장독대 얘기를 한다. 장독대는 반찬의 중요한 창고이고 손수 담근 된장, 고추장, 간장, 매실 장아찌까지 맛의 뿌리는 민족에 있단다. 잘 익고 있는지 자주 들여다본다. 그때마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도 있지만 이 땅을 딛고 살면서 자신들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식재료를 골라줬던 조상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긴다. 지금이야 옻을 먹으면 옻이 오르고 버섯색이 고우면 독이 있다고 알고 있지만 조상들은 그것을 먹고 심하게 고생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만들고 또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음식은 심장의 울림이고 손의 기운이 담겨진 정성이라고 했다. 가을철에는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물었다. “버섯 종류를 즐겁게 먹으면 됩니다. 싸리버섯은 우리 몸의 혈관과 비슷하고, 송이버섯은 정력제이고, 표고버섯은 검은 빛 도는 갈색을 골라야 합니다. 잘 말린 표고버섯은 비타민D가 풍부하지요. 능이버섯은 강력한 소화제이고 표고버섯은 향기가 기가 막힙니다. 어떤 음식 재료도 다 향기가 있습니다. 사람도 각자 모양이 다르게 살아가듯이 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에 뿌리 내린 풀과 나무들은 모양과 성질, 맛, 향기가 전부 다르지만 하늘로 땅의 소식을 전하는 것은 똑같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수많은 풀들이 이름 없이 살아도, 각자의 DNA가 있어도 자기 죽음에 대해 원한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해서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란다. 자연에 순종하고 따르는 자세가 인간보다 훨씬 낫지 않으냐는 뜻으로 해석된다. “새싹은 인간으로 치면 어린아이들입니다. 독기가 없지요.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여기저기 나무들 보세요. 섹스 없어도 서로 마주 보고 사랑하고 후손을 번식시킵니다. 인간은 진화를 멈췄어요. 자연의 진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200년 후면 인간은 멸종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은 진화하는데 인간의 저항력은 약해지고, 바이러스의 변종이 생겨나고 그러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결과는 우리가 만든 재앙이며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들은 진화하는 자연 앞에서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2년 뒤에 강원도 화천에 힐링요리, 미술전시 등을 할 수 있는 자연요리학교가 세워진다고 했다. 외국인 학생을 많이 받아들여 우리 민족의 음식철학을 다른 나라에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단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차원이 아니라 비록 나라는 다르더라도 음식끼리 서로 친구가 되자는 점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우리 민족이 빚어낸 음식의 전설을 잘 담아내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받는 밥상은 어머니의 품입니다. 그 밥상은 참으로 따뜻합니다. 그런 전설, 그런 뿌리 깊은 철학을 버리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임지호씨는 11살 때부터 전국 돌며 요리 배워… 2006년 ‘경기 으뜸이’ 선정 1955년 안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의사였다. 그의 생모는 결혼 전 아버지를 사랑한 처자였다. 생모는 그를 임신한 채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갔다. 나중에 이런 사실이 알려져 독자를 잃을까 봐 아버지가 아이(임지호)를 데려와 키웠다. 11세 때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하려고 부산과 목포, 제주 등을 다니며 춥고 배고픈 시절을 보냈다. 요리를 배운 것도 이때였다. 시골 중국집 주방장에서 유명 호텔까지 두루 섭렵했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자연의 요리를 연구했다. 해외에서도 그의 명성이 높아 2003년 유엔 한국음식 축제, 2004년 미 캘리포니아 사찰음식 퍼포먼스, 200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식 시연회, 아르헨티나 수교 기념 한국 음식전, 베네수엘라 수교 40주년 한국 음식전 등에 참가했다. 미국의 대표적 고급 요리 잡지인 ‘푸드아트’의 커버스토리와 표지모델이 되기도 했다. 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경기 으뜸이’로 선정됐다. 현재는 경기 양평에서 ‘산당’이라는 한정식 전문 식당을 운영하면서 자연요리를 연구하고 있다.
  • 진도-해海 그리고 서화가무書畵歌舞

    진도-해海 그리고 서화가무書畵歌舞

    진도에선 알게 된다. 왜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왜 소리꾼이 창을 하고, 왜 시인이 시를 쓰는지를. 씹어도 삼켜도 내려가지 않는 응어리를 진도 사람들은 ‘예술’이라 했다. 바다도 울고 칼도 울고 해海 용산역에서 KTX로 3시간을 달려 목포에 내렸다. 호남선의 시작과 끝을 찍는 목포역은 개청 100주년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1913년 태어난 목포역은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겪으며 1세기를 무던히 견뎌냈다. 목포에서 다리 하나만 넘으면 진도다. 진도대교를 넘는 순간, 바다가 흐느껴 울었다. 생명줄을 잡고 있는 존재만이 운다. 그래서 진도대교가 길게 누워 있는 ‘울돌목’은 그냥 바다가 아니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낀 울돌목의 파도는 제 존재를 증명하고자 부지런히 온몸을 비틀고 꼬았다. 바다의 연주에 맞춰 칼의 노래가 들렸다. 충무공 이순신이 울돌목을 굽어봤다. 순우리말 울돌목을 한자로 대치하면 ‘명량鳴梁’이 된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명량을 이용해 이순신은 왜구의 배 330척을 물리쳤다. 그가 거느린 배는 고작 13척뿐이었다. 영웅담은 과대 포장되기 마련이지만, 이순신의 이야기에선 왠지 모를 진정성이 느껴졌다. 허깨비를 좇는 정치에 죽을 뻔하고, 백의종군하던 중 모친상을 당하고, 전쟁 도중 아들을 잃었다. 그건 할리우드 영화 속에 나오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로 피눈물을 흘린 인간의 이야기였다. 매년 울돌목에선 명량대첩일인 음력 9월16일을 기점으로 ‘명량대첩축제’가 열린다. 올해 9월27일부터 9월29일까지 울돌목에선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마음으로 싸운 이순신을 만날 수 있다. 진도의 바다는 우는 것도 모자라 시커먼 제 속을 드러냈다. 검게 타들어 간 진도의 가슴은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를 잇는 바닷길이다. 길이 2.8km, 폭 40m의 이 길을 멀리서 바라보면 푸른 바다 위에 갈색 뱀이 구불구불 기어가는 것만 같다. 뱀의 비늘이 알록달록해 보이는 건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 때문이다. 진도군은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35번이나 치렀다. 지난 4월 나흘간 개최된 올해 축제에는 무려 51만명이 다녀갔다. 매년 4~5월경 잠깐 열렸다가 닫히는 ‘찰나의 길’인지라 여름에 찾은 바닷길은 행방불명이었다. 바닷길을 지켜본 동상 두 개가 ‘기적을 믿어라’고 했다. 목격자는 멀리서 바닷길을 지켜보는 피에르 랑디 동상과 다른 하나는 축제 현장을 지키고 선 뽕할머니 동상이다.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였던 피에르 랑디는 진도의 바닷길을 보고서 ‘모세의 기적’이라 프랑스에 전했고, 그 덕분에 프랑스 신문에 진도가 소개될 수 있었다. 피에르 랑디는 실존 인물이지만 뽕할머니는 전설 속 인물이다.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빈 마을에 혼자 남겨진 뽕할머니가 이웃 섬으로 도망간 가족을 그리워하자 용왕이 ‘길’을 내주었다는 전설은 신비의 바닷길의 모태가 됐다. 신비의 바닷길┃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신비의 바닷길 74 홈페이지 miraclesea.jindo.go.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풍경 앞에선 붓이 춤춘다 서화書畵 진도의 바다 옆에는 늘 논이 따라다녔다. 바다 너머 논, 논 너머 바다…. 물과 흙이 진도 사람을 빚어냈을 것이다. 진도에선 보이는 대로 툭 찍어내는 사진이 아니라 뭉툭한 연필로 쓱쓱 그리고 고운 물감으로 덧칠한 풍경화가 갖고 싶었다. 사물 하나 제대로 스케치하지 못하는 아둔한 손을 원망했다. 재주 없는 외지인의 마음이 이러한데, 진도에 살았던 사람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진도의 미술관은 진도 출신의 작가와 진도의 풍경이 담긴 그림 위주로 전시를 꾸리고 있었다.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사비를 들여 만든 남진미술관은 아늑하고 소담했다. 미술관 정원에는 색이 고운 토기와 조각품이 가득 메워져 있고 별관에는 분청사기, 백자, 청자 등이 높은 몸값을 자랑하고 있었다. 미술관 본관으로 들어가면 책에서 봤던 역사 속 인물들이 걸어 다닌다. 이름만으로 무게가 느껴지는 추사 김정희와 한호 한석봉의 글씨를 알현하고, 대원군 이하응의 박력이 느껴지는 글씨도 볼 수 있다.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 무정 정만조, 고균 김옥균, 계정 민영환 등의 작품도 미술관 곳곳에 촘촘하게 박혀 있다. 미술관의 벽면 한쪽을 크게 메운 그림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다. 다산 정약용의 ‘홍매도’다. 다산의 유배지는 진도가 아니라 강진이건만 정약용이 그린 매화 그림은 진도에까지 진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진도의 그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 허련의 흔적을 밟아야 한다. 운림산방은 진도 출신의 허련이 여생의 끝자락을 보내던 화실이다. 이곳을 지키는 건 연꽃이 동동 떠 있는 호수와 의젓한 소나무, 하늘거리는 배롱나무 등이다. 운림산방은 배우 배용준과 전도연 주연의 영화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허련은 평생 한 스승를 우러러봤다. 허련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 준 추사 김정희 말이다. 추사는 중국 원나라의 4대 화가로 손꼽힌 ‘대치’ 황공망과 견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린다 하여 제자의 호를 ‘소치’라 지어 주었다. 소치 허련이 운림산방에 기거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추사의 죽음 때문이었다. 허련은 스승을 만나러 제주도까지 찾아가곤 했다는데, 스승을 향한 사랑은 운림산방에서도 느껴진다. 심지어 운림산방은 뜻밖의 선물을 내어 놓았다.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인 세한도를 본 것이다. 메마른 소나무와 잣나무가 마주 보고 꼿꼿하게 선 세한도에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는 글씨가 숨어 있었다. ‘서로 오래 잊지 말자’는 이 말은 귀양살이 중이던 추사가 중국에서 책을 구해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띄우는 감사의 인사다. ‘예술 혼’은 세월의 바람 앞에서도 쉽게 꺼지지 않는다. 소치 허련에 이어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임인 허림, 임전 허문, 허진 등 소치의 집안은 5대에 걸쳐 화가를 배출했다. 호수 오른편에 보이는 소치 기념관에선 소치 집안의 가계도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피는 같을지언정, 각자 그려낸 그림의 느낌은 천차만별이었다. 한집안에서 태어난 작가들의 그림을 한자리에서 비교해 보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남진미술관┃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하미길 39 문의 061-543-0777 운림산방┃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문의 061-543-0088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진도 Q&A Q.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 갤러리가 있다? 그림을 전시하고 커피와 케이크를 파는 갤러리형 카페는 봤어도 그림을 전시하며 막걸리와 파전을 파는 곳은 생전 처음 봤다. 진도니까 가능한 일이다. 우초 박병락 선생이 운영하는 ‘작은 갤러리’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이자 음식점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수제비와 파전. 진도의 바다를 표류하던 각종 해산물이 수제비와 파전에 들어 있다. 노란 색감이 퍼지는 막걸리도 진도의 특산품인 ‘울금’으로 만들어져 독특하다. 울금은 생강과 식물로 울금의 주성분인 커큐민은 카레의 주원료가 된다. 우초 선생의 그림은 진도스럽다. 진한 먹으로 그려낸 작품에선 검정빛 개펄이 살아 있다. 소나무 너머의 바다, 갯벌의 변화, 낙조 등 작품의 주제는 진도를 비켜가지 않는다. 작은 갤러리┃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 300 문의 061-544-0071 Q. 진도개? 진돗개? ‘진도개’는 진도를 알리는 일등공신이다. 1993년 5살짜리 진도개 백구가 대전으로 팔려갔으나 주인을 잊지 못하고 7개월간 팔백리길을 달려 옛 주인에게 돌아갔다는 얘기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진도개 테마파크에서는 똑똑한 진도개의 공연을 볼 수 있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명연기부터 조련사의 어깨 위에 올라가는 고난이도 묘기도 부린다. 여기서 잠깐! 진돗개와 진도개 중 어느 것이 맞을까? 사이시옷 맞춤법을 따르자면 ‘진돗개’가 맞지만 진도 사람들은 진돗개를 ‘진도개’라 부른다. 1963년 진도개가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될 당시 진돗개가 아니라 진도개로 등재됐기 때문이란다. 진도개라는 단어에는 ‘진도개’를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진도 군민의 자부심이 배어 있는 셈이다. 진도개 테마파크┃주소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홈페이지 dog.jindo.go.kr Q. 홍주는 섞어야 맛있다? 진도의 특산품은 헤아리기 어렵다. 꼬들꼬들하고 튼실한 돌미역,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불리는 구기자, 한겨울에도 잘 자라는 대파 등…. 수많은 특산품을 비집고 진도 토속주인 ‘홍주’가 무형문화재 26호로 지정됐다. ‘지초’라는 약초를 가미해 색을 낸 홍주는 이름 그대로 새빨갛다. 도수가 무려 40도를 웃돌기 때문에 주당이 아니라면 그냥 마시기 쉽지 않다. 맥주잔에 맥주를 70% 가량 채운 뒤 홍주를 약간 부으면 마치 맥주 위에 해가 뜬 것 같은 ‘일출주’가 된다. 맥주가 든 맥주잔 안에 홍주가 든 소주잔을 넣으면 ‘일몰주’. 또한 투명한 사이다와 홍주를 섞으면 접점 부분이 분홍빛으로 바뀌어 상당히 곱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핏방울 터트리듯 노래하더라 가무歌舞 “진도 앞에선 서화가무를 자랑하지 마시오”라는 충고는 허풍이 아니었다. 예술이라는 향수를 얼마나 뿌린 것인지, 나중에는 예술이라는 말만 들어도 특유의 진도 내음이 풍겨 왔다. 아리랑마을 관광지 내 아리랑체험관에서 아리랑은 물론이고 사물놀이, 진도씻김굿 등을 간접 체험했다. ‘지잉’ 징이 울면 바람이 불고, ‘둥둥’ 북이 울면 구름이 따라왔다. ‘꾕꾕’ 꾕과리가 소리치면 천둥이 밀려왔고, ‘덩기덕’ 장구가 움직이면 비가 쏟아졌다. 논밭을 일궈 살기 위해 그들은 악기를 쳤다. 자연을 ‘적’이 아닌 ‘동지’로 만드는 우리 민족의 지혜다.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서 전승된 ‘남도 들노래’는 아예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남도 들노래 하면 지산면 인지리의 조공례 할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소리에 미친 조공례 할머니의 윗입술은 “노래하지 말라”는 남편의 돌팔매에 찢겼다. 책 <곽재구의 포구기행>에서 곽 시인은 입술이 찢기던 순간을 “그날 흘린 피가 꼭 매화꽃잎처럼 송이송이 서럽고 고왔는디”라 묘사한다. 윗입술이 찢기고도 ‘핏방울 터트리듯’ 노래한 그녀는 남도들노래 창 기능 보유자중요무형문화재 51호가 됐다. 농사지으랴, 밥하랴, 아이 키우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진도의 부녀자들은 때론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남도들노래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강술래의 탄생기다. 이곳저곳 정처 없이 진도를 염탐하다 보니, 해日와 이별할 시간이 오고 있었다. 해와 만나고 헤어지는 건, 먹고 자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이 아니던가. 그러나 진도에선 해조차 특별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듯 진도의 해는 애잔하게 바다의 품에 안긴다. 떠나가는 해를 보려 세방낙조 전망대로 달렸다. 일몰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 공백기를 달래 준 건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의 공연이었다. 중중모리 가락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관람객의 몸 사위를 따라 흘렀다. “고초장, 된장, 간장, 뗏장, 아이고 아니로구나. 초장화, 초장화, 초장화, 장화초, 장화초 아이고 이것도 아니로구나….” <흥부가> 중 화초장 대목. 부자가 된 동생 흥부에게서 ‘화초장’을 빼앗아 온 놀부가 화초장을 ‘고초장’이라고 했다가 ‘초장화’라고도 했다가 정신없이 소리 질렀다. 흥부가가 끝나기 무섭게 북을 맨 세 사람이 등장했다. 양손에 북채를 쥐고 북을 장구처럼 양쪽으로 치는 ‘진도북놀이’는 잔가락이 많기로 유명하다. 두 손에 북채를 들고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심장도 북의 장단에 맞춰 쿵쿵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쩌렁쩌렁 울리던 소리가 자취를 감출 무렵, 해가 서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숨을 멎을 듯 말듯 해가 어느 순간 바다에 스며들었다. 아리랑마을 관광지┃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아리랑길 95-5 문의 061-544-8839 세방낙조┃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세방낙조로 문의 061-544-0151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진도군청 www.jindo.go.kr 한국관광공사www.visitkorea.or.kr
  •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9·끝) 좋은 일자리 어떻게 만드나 - 스웨덴의 시간제 일자리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9·끝) 좋은 일자리 어떻게 만드나 - 스웨덴의 시간제 일자리

    ‘남들보다 출근은 한두 시간 늦지만 반대로 퇴근은 한두 시간 빨라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거나 집에 데려올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연금이나 승진, 휴가 등에서 차별받지 않는 직장이 있다면.’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아야 하는 대한민국 워킹맘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일자리다. ‘G20(선진 20개국) 국가’를 자처하는 우리지만 여전히 여성 상당수는 임신하면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없어 회사나 아기 가운데 하나를 포기한다. 이 때문에 1990년대부터 여성 일자리 정책을 중시해 온 스웨덴의 사례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고용률 70%를 달성하고 1.26명에 불과한 합계출산율을 높이려는 우리 정부에 많은 교훈을 준다. “인구가 1000만명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 국립 직업소개소 인력이 1만명이나 돼요. 이것만 봐도 이 나라가 얼마나 ‘고용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아시겠죠.” 스톡홀름에 위치한 스웨덴 국립 직업소개소에서 만난 노동시장 분석가 에릭 훌트 박사는 스웨덴의 일자리 정책을 이렇게 자평했다. 우리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는 직업소개소가 불법의 온상으로 그려지지만 스웨덴에서는 전체 공무원 조직 가운데 직원 수가 가장 많은 핵심 부처다. 질 좋은 일자리에 대한 스웨덴 정부의 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홀트 박사는 생애주기에 맞춘 ‘스웨덴식 시간제 일자리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스웨덴에서는 부부가 아기를 낳으면 각자 13개월씩 유급 휴가를 줍니다. 이 기간에는 임금이 100% 지급되죠. 아이에게 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한두 살 시기에 부부가 번갈아가며 2년 이상 쉴 수 있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육아에 전념할 수 있어요. 아이가 서너 살이 돼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 육아 책임은 국가로 넘어가고, 이때부터는 부부 모두 근무 시간의 75%(하루 6시간)만 일해도 됩니다. 아이가 8살(공무원은 12살)이 될 때까지 아빠는 정상 출근보다 2시간 늦게 출근하고 엄마는 2시간 일찍 퇴근하는 식으로 부부가 돌아가며 자녀를 유치원이나 학교에 데려다 주거나 집으로 데려올 수 있어요. 이 제도를 쓴다고 해서 인사상 불이익이 있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죠.” 그는 특히 스웨덴 시간제 일자리가 육아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성에게 ‘50%짜리 일자리’를 몰아주지 않고 남녀에게 각각 ‘75%짜리 일자리’를 주는 것도 ‘육아는 남녀 공동 책임’이라는 국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만약 여성에게만 4시간짜리 일자리를 강요하게 되면 여성과 남성 간 평균 임금이나 연금 등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승진 등 여성들의 사회적 성취 기회도 줄게 돼 남녀평등을 해친다는 게 스웨덴 정부의 생각이다. 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은 “한국의 여성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택하면 급여, 복지, 고용조건 등에서 오히려 불평등을 받게 된다”면서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에 대한 급여와 고용조건을 전일제 노동자와 동일하게 적용하는 법을 제정하지 않는 한 노조를 통한 처우 개선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아쉬워했다. 자리를 옮겨 만난 국민당 경제고문 카타리나 베리크리스트도 스웨덴의 시간제 일자리 정책은 여성들이 육아에 전념하면서도 노동 시장을 떠나지 않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이들은 ‘그냥 부부 중 남성이나 여성 한 사람이 몰아서 2~3년을 쉬거나 반나절 근무를 해도 되는데 왜 이리 제도를 복잡하게 만들었냐’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누구든 몇 년씩 경력 단절 상태가 되면 자신의 일에서 경쟁력을 갖기가 대단히 어려워져요. 10년 가까이 반나절만 일하던 사람도 갑자기 전일제로 바꾸게 되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잖아요. 스웨덴 시스템이 이렇게 복잡한 것은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B급 인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100%의 능력치로 현업에 복귀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육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고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합계출산율(15~49세 여성이 평생 낳는 아기 수)이 1.94명이었던 스웨덴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1999년 출산율이 1.5명까지 줄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스웨덴 정부는 이때부터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 이상을 보육시설 확대에 투자했고, 육아휴직으로 인한 소득보장 등 보육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그 결과 스웨덴의 출산율은 10년 만에 다시 높아져 2010년 기준 1.98명까지 회복됐다. 막대한 재원 마련이나 사회 시스템 정비 등에 어려움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기독교민주당 소속 데시리 페트루스 의원은 “뭐든지 위기가 닥쳐서 고치려 하면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면서 “사회 전체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제도에 적응할 수 있도록 80년대부터 준비해 온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스톡홀름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2013 공직열전] 안전행정부 (상)1차관 산하 실·국장급 간부들

    [2013 공직열전] 안전행정부 (상)1차관 산하 실·국장급 간부들

    안전행정부는 박근혜 정부 들어 행정안전부에서 이름을 바꾸었다. 태생은 내무부와 총무처의 결합이다. 1995년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지방자치제도 지원 역할을 맡아 1998년에는 행정자치부로 불리기도 했다. 내무부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고건(고등고시 행정과 13회) 전 총리다. 고 전 총리가 내무부를 지원하면서 꾼 꿈은 군수였다. 직선 지방자치가 자리 잡은 지금도 17개 광역 지자체장 가운데 5명이 안행부 출신이다. 안행부 체제의 첫 수장이 된 유정복 장관 역시 내무부 출신이다. 유 장관의 인사 특징은 ‘일을 제대로 하자’며 지역에 가 있던 인재를 불러모았다는 것이다. 우선 자신의 뿌리인 경기도에서 부지사 두 명을 데려와 국정과제 수행의 핵심 역할을 맡겼다. 이전에 맡았던 일을 다시 하는 ‘업무 재수’도 많다. 김성렬(55) 창조정부전략실장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인사다. 김 실장은 행안부 조직실장, 경기도 행정1부지사를 거쳐 현 자리에 앉았다. 조직실이 창조정부전략실로 이름을 바꾸면서 ‘정부3.0’ 업무를 하고 있다. ‘정부3.0’은 대통령이 던진 화두에서 새로운 정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일이다. 옛 총무처 출신으로 업무추진력이 뛰어나 정부3.0 업무의 적임자란 평을 듣는다. ‘정부3.0 전도사’로 불리는 박찬우(54) 1차관 산하의 실, 국장은 모두 지자체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정부3.0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안행부 기조실장은 다른 부처 기조실장과 다르다.’ 중앙부처 기획조정실장 회의에서 역대 안행부 실장들이 듣던 평이다. 각 중앙 부처들이 고유 업무에 따라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는 것에 비해 안행부 기조실장은 국정 전반을 아우른다는 점을 의미한다. 강원도 부지사로 있다가 안행부 기조실장을 맡은 최두영(53) 실장은 내무부 출신으로 합리적이고 소탈하며 지방 사정에 밝아 유 장관이 발탁했다. 지방자치뿐 아니라 국정 전반을 통솔한다는 안행부의 자부심은 기조실장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 장관은 간부회의에서 “안행부는 단지 17개 부처 중 하나가 아니다. 전 직원이 청와대적 시각을 가지고 정부 전체 운영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배경이다. 안행부 인사실장은 전체 공무원 인사정책의 방향을 세운다. 정부 전체 인사를 담당했던 옛 중앙인사위원회 기능을 맡고 있다. 고졸 공무원 양성 정책 등을 뒷받침하는 김승호(50) 인사실장은 최고의 인사 전문가다. 김 실장은 이상적인 공무원상을 ‘자기 혼자 일을 잘하는 것보다는 부처 간의 협조와 협력에 뛰어나며 적재적소에 능력을 표출할 줄 아는 역량을 갖춘 공무원’이라고 제시했다. 안행부에서 가장 해외 출장이 많은 사람은 전자정부 수출로 바쁜 심덕섭(50) 전자정부국장이다. 이미 정보화기획관을 지낸 적이 있어 전자정부 업무에 밝다. 심 국장은 영국 버밍험대에서 3년 만에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국, 주캐나다대사관 등 해외 근무 경험이 많아 국제 감각이 빼어나다. 전자정부 수출업무를 맡은 행정 한류의 책임자로 적임이다. 정부3.0 업무의 주무국장인 조욱형(46) 전략기획관은 대인관계에 적극적인 마당발이자 퀴즈왕이다. 고시에 합격했을 때 일주일 만에 동기 200여명과 모두 인사를 나눴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모든 공무원이 정부3.0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데 그 친화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10년 전 방송사의 퀴즈 프로그램에서 연말 왕중왕을 차지해 받은 상금 6300만원을 모두 기부한 것은 그의 또 다른 됨됨이를 보여준다. 공무원 전체의 조직과 인사 업무를 맡은 안행부 직원들은 공무원이지만, 다른 공무원들로부터 각종 민원에 시달린다. 업무가 거친 만큼 내무부가 생긴 이래 여성 공무원이 거의 없었는데, 김혜순(52) 노사협력관은 기록을 깬 안행부 최초의 여성 국장이다. 공무원 노조를 상대해야 하는 노사협력관은 공무원을 상대로 협상을 벌여야 하는 대표적인 직책이다. 공무원 노조원들로부터 ‘소통이 된다’라는 긍정적인 평을 듣고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글로벌 시대] 망언과 망국/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망언과 망국/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말은 의식과 교양의 정도에 따라 구조와 품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착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최근 일본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몇몇 정치인들의 말은 착하기는커녕 악하다 못해 심히 망령되다 하여 양식 있는 일본인을 포함, 국제사회까지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사리에 맞지도 않고 떳떳하지도 않은 말을 해 대는 일본인들의 망언(妄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는 ‘일본서기’와 같은 역사서와 ‘메이지유신’ 그리고 ‘정한론’이 망언을 담고 있으며, 가깝게는 나카소네 내각에서 문부성 장관을 지낸 후지오는 ‘한·일 병합은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했고, 방위청 장관을 지낸 오쿠노는 ‘일본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싸웠고, 일본의 이상적 목표는 각국의 독립이었다’고 했다. 최근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과 같다”고 했고, 아소 다로 부총리는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어느새 바뀌었다. … 그 수법을 배우면 어떻겠는가”라고 하면서 개헌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일본 지도층은 어찌하여 이런 망언을 아무런 역사의식이나 죄책감도 없이 내뱉고 있는 것일까. 그들에겐 쉽게 치유되지 않는 고질이 있어서 그렇다. 그 고질은 일본인의 합리적 사고와 객관적 판단 능력을 앗아 간 정신질환을 말한다. 일찍이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문화에 대해 ‘국화’와 ‘칼’처럼 두 개의 극단적 형태를 구성 요소로 한 문화 패턴이 특징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역사상 일본인들은 이웃 나라를 수없이 노략하고 침탈한 민족이었고, 진주만 기습과도 같은 국제전까지 자행한 민족이기도 하다. 특히 그들의 병사들은 칼이 잘 드는가를 실험하기 위해 포로들의 목을 쳤고,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어린 여성들까지 강제 동원,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성적 노리개로 삼음은 물론 학대까지 자행했다. 어디 그뿐인가. ‘난징 대학살’과 ‘731부대 생체실험’이라는 반문명적 잔혹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범죄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온갖 억지와 부회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특유의 문화적 배리와 도덕적 불감증에 연유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같은 문화적 배리와 도덕적 불감증이 망언을 낳고, 망언은 힘에 대한 과신으로 이어지며, 과신은 힘의 오용을 불러오는 데 있다. 힘의 오용은 또 다른 힘의 응징으로 마침내 자멸을 초래하고 만다(亡國)는 역사적 사실은 인류가 체험한 힘의 논리며 결과였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세기 일본인 모두가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그 경험을 까맣게 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도 안타까운 나머지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전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 일본 정치인들은 역사를 직시하고 이웃 민족에게 입힌,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리더십을 보이라고 촉구했다. 몇 년 전 폴란드에 갔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서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마련이다”라는 경구를 보았다. 이 말이 자꾸 뇌리를 스치는 건 요즘 망언을 일삼고 있는 일본 지도층에게 들려주고 싶어서일까. 비록 일본은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지만 이웃 나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 가석방 앞둔 모범수 교도소 밖 시설 생활 제조업체로 출퇴근

    가석방을 앞둔 모범수들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훈련시설이 교도소 담장 밖에 생긴다. 법무부 교정본부는 다음 달 중순쯤 경남 밀양시에 있는 한 제조업체에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밀양희망센터’를 연다고 18일 밝혔다. 희망센터에는 3~6개월 안에 가석방될 가능성이 있는 수형자 중에서도 모범적인 생활을 해 온 재소자 10여명이 지내게 된다. 이들은 생활관에서 제조업체로 출퇴근하면서 사회 적응 훈련을 한다. 야간에는 기숙사 사감 성격의 교도관 2명이 생활관에 상주하면서 재소자들을 관리하게 된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센터에서 가족을 만나거나 교도관의 허가를 받아 외출도 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하프웨이 하우스’나 영국의 ‘가석방 호스텔’과 유사한 형태로, 국내 도입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재소자들이 사회로 복귀하는 이상적인 모델로 ‘수용시설-사회적응 훈련원-지역사회 내 생활’이라는 3단계 과정을 꼽지만 이전에는 사회적응 훈련원까지만 운영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가석방과 동시에 취업을 지원해 재소자들의 사회 자립을 돕는 정책”이라며 “재범을 예방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법무부는 이달 안에 대상자를 선발하고 다음 달 시설을 개관해 시범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고 미국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읊었지만, 서울은 600년 고도의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신흥도시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 도읍에 대한 자취는 강제적으로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경성시청-남산 조선 신궁을 상징 축선으로 하는 식민 도시로 치장됐다. 한국 전쟁통에 그나마 남은 것 대부분이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 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새로 건설된 신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문 안에는 표지석만 어지럽게 남았을 뿐이다. 전쟁과 대사건은 도시를 재건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폭격을 앞둔 맥아더는 “원래 도시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곱절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된다. 미국이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실제 1644년 대화재로 도시의 80%가 타 버린 영국 런던은 옥스퍼드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교수에 의해 오늘의 런던으로 재건됐다. 일본 도쿄도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됐지만 탁월한 도시계획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도쿄시장의 주도로 세계 도시계획 사상 유례가 없는 시가지 개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런던과 도쿄는 세계대전으로 또 한 번 타격을 입었지만, 옛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재건은 성공작일까? 서울을 역동적인 현대 도시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역사 도시로 평가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서울은 네 번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16세기 일본과 중국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근대 일제강점기엔 성곽을 허물고, 상징 축을 강제로 바꾸는 방법으로 도시 형태가 조작됐다. 한국전쟁기 유엔군과 한국군의 청야(淸野)작전(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통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1960~70년대 우리 손으로 남은 문화재를 헐어서 치워 버렸다. 맥아더의 말처럼 기회는 있었다. 1952년 전후 복구 차원의 첫 도시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세종로 등 39개의 큰길을 확장하거나 신설하고, 광화문광장·서울시청광장·남대문광장 등 19개의 광장을 만드는 과감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재정부족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구도심(사대문 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대문 밖이나 강남 신시가지를 개발하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서울 집중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집중을 막으려고 온갖 정책을 동원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았다. 해방 전후 100만명대였던 서울 인구는 1966년 380만명, 1970년 540만명을 넘어서더니 1990년 1000만명을 돌파해 버렸다. 수도 서울 행정은 집 지을 땅을 확보하고, 도로를 넓히고, 교통수단을 늘리고, 수돗물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매달렸다. 만약 그때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서울은 한가롭게 전차가 다니며,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정겨운 기와집이 빼곡한 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한강과 북한산이 주는 자연의 세례를 맘껏 누리는, 풍광이 뛰어난 성곽 도시로 유지됐을 것이다. 1950년대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를 기본으로 사대문 밖 풍경을 상상해 보자. 동쪽으로 동대문을 나서면 신설동 큰 길가까지 집이 들어 차 있지만, 바깥은 논밭 천지다. 신당동에 집이 드문드문했을 뿐 금호동·옥수동 일대는 산이었다.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일대는 미나리꽝이었고 성동교의 나무다리가 삐꺽거렸다. 남쪽 한강대교에 이르는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주민은 1000명 안팎이었고, 원효로 일대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노량진, 상도동, 대방동, 영등포는 큰 길가조차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했다. 서쪽으로 신촌을 지나 마포 전차 종점을 벗어나면 벌거숭이 산과 논밭이 펼쳐졌다. 동북쪽은 미아리고개, 서북쪽은 독립문과 현저동이 경계였다. 지금의 강남·서초·송파·강동·강서·관악·구로·금천·도봉·노원·은평구 등은 모두 경기도였다. 서울의 고층 건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최고층 건물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8층짜리 반도호텔이었다. 이웃 조선호텔과 한국은행 모두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다. 1955년에 종로 사거리에 2층짜리 신신백화점이 신축됐고, 1957년 광화문 사거리와 을지로 1가에 3층짜리 국제극장과 5층짜리 개풍빌딩이 각각 들어섰다.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문을 열자 구경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도심부의 평균 층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다. 도심부를 고층화하려고 주요 간선도로변의 건물 높이를 3~5층 이상으로 정할 정도였다. ‘한강의 기적’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20년간의 고도성장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 서울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는다. 서울의 공간 변화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5년간 거의 이뤄졌다. 주택지·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현대 서울의 하부구조가 이때 거의 갖춰졌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의 ‘분부’를 이행한 김현옥·양택식·구자춘이라는 3명의 ‘충복’ 서울시장이 재직한 기간과 일치한다. 서울의 얼개는 박 대통령의 구상과 지시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이 세워졌다. 서울의 균형 발전을 꾀하려고 사대문 안에 집중된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입법부는 남서울(강남·서초구), 사법부는 영등포, 행정부는 용산 일대, 세종로 지역은 대통령 관저 및 직속기관 배치 지역으로 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입지가 맞교환됐고, 서울시청이 용산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교통계획을 보면 서울역~청량리(1호선), 서소문~을지로~성동(2호선), 갈현동~종로2가~을지로2가~퇴계로~천호동(3호선), 우이동~종로4가~퇴계로~말죽거리(4호선) 등의 지하철 4개 노선 건설계획이 잡혀 있다. 10년 뒤 구자춘 시장에 의해 2호선이 을지로와 영등포~영동을 잇는 순환선으로 변경되는 등 엄청난 노선 변화가 일어났지만, 지하철 4개 노선에 대한 기본 구상이었다. 이 밖에 4개 순환선과 14개 방사선을 간선도로망으로 7개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과 노면 전차는 철거하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에는 지하차도를 만들고, 시청 앞 광장 지하는 지하도시화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도심 재개발과 강남·송파 등 남서울개발, 뚝섬·창동·망우 등 동서울개발, 불광·성산·김포·시흥지구의 서서울개발 등 신시가지개발 계획이 들어 있다. 1년 예산이 170억원에 불과한 서울시가 20년 앞을 내다보고 인구 500만명을 예상해 3235억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언론으로부터 ‘즉흥계획’ ‘실현성 없는 독단’ ‘재무계획 없는 무지개’ 등등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러나 격변의 15년 중 7년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내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손정목 전 교수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도심부 재개발이니 고도지구, 미관지구 개념이 도입돼 일반에 공개됐다는 점, 70~80년대 전국 모든 도시가 수립한 도시계획의 모델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불완전하나마 서울시 장기계획의 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1937년 중·일 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져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고, 한국전쟁이 이어지면서 건축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건물이 목조건물 수명 30년을 다한 상태였다. 장충동, 신당동 일대와 남대문로, 충무로, 을지로 등 일본인 주거지에 정원이 딸린 일본식 저택과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가회동·명륜동·동숭동·북아현동 일대에는 한옥촌이 빼곡하게 형성돼 있었다. 마포, 왕십리, 동대문을 벗어난 지역은 논밭이었다. 사대문 안과 독립문, 신촌, 신설동, 돈암동, 신당동, 용산이 서울의 전부였다. 노면 전차 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동쪽으로 청량리·왕십리, 남쪽으로 노량진·신길동·영등포, 서쪽으로 마포·신촌, 서북쪽으로 독립문, 동북쪽으로 돈암동 전차 종점까지가 서울이었다.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주거인 무허가 판잣집이 도심에서 가까운 하천변이나 산비탈을 차지했다. 1966년 당시 13만여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은 개발행 특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였다. joo@seoul.co.kr
  • 스위스 알프스 그 너른 품에 안기다

    스위스 알프스 그 너른 품에 안기다

    그곳에 산이 있었기에 오르다가 놀고 먹고 쉬었다. 닮은 듯 다른 산들의 풍경을 만끽하면서 치즈도 만들어 보고, 3,100m 산꼭대기에 자리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어 보기도 했다. 알프스가 줄 수 있는 모든 선물을 받아 누린 시간이었다. 도전자유여행 38탄 유기웅(29세·건설사 근무) 오직 여행을 위해 2주 연속 휴가를 쓸 수 있는 직장을 구했으며, 남미의 파타고니아부터 북극권의 아이슬란드까지 여행하며 사진을 찍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여행 중증 환자(?)다. 그의 여권에는 이미 스위스 도장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스치듯 배낭여행으로 들른 스위스 여행에는 여전한 갈증이 남아 있었고, 세계 5대 미봉 중 하나인 마테호른을 가까이서 보고픈 욕망은 가시질 않았다. 열차시간표를 일일이 출력해 올 정도로 이번 여행에 열정을 보인 그는 올 여름 2주 휴가를 싹둑 잘라 스위스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여행지 스위스 여행기간 2013년 5월23~27일(4박6일) 항공편 터키항공(이스탄불 경유) 여행조건 당첨자는 내일투어 ‘스위스 금까기’ 상품으로 여행을 떠났으며, <트래비> 기자가 직접 동행 취재했다. 금까기 상품 내역에 해당하는 왕복항공권 및 호텔 숙박비 등을 제외한 개인 지출 비용은 독자가 개별 부담했으며, 일부는 스위스관광청의 협조를 받아 진행됐다. 스위스 금까기 상품가 129만원부터 포함내역 유럽 왕복항공권, 투어리스트급 호텔 및 조식, 스위스 플렉시 패스 3일 2등석 세이버, <스위스로 가출하기>, 1억원 여행자 보험, 기내용 슬리퍼, 네임태그·여권커버, 각종 면세점 할인쿠폰, ‘융프라요흐/티틀리스’ 할인 쿠폰 불포함내역 현지생활비, 유류할증료 및 세금 예약 및 문의 02-6262-5353 www.naeiltour.co.kr 가장 쉬운 알프스 공략법 Luzern루체른 취리히공항에 착륙하자마자 기차를 타고 루체른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알프스 산악 체험’. 이번 여행의 주제는 ‘산’이었기에 필라투스, 리기, 티틀리스 등 유명한 산들이 기다리고 있는 스위스 중부 지역으로 가기 위한 거점으로 루체른이 제격인 까닭이었다. Rigi리기 메인코스만큼 배부른 애피타이저 “루체른은 한국인 여행객들에겐 필수 코스 같은 데죠. 대학 시절, 배낭여행을 왔을 때도 카펠교, 무제크 성벽, 빈사의 사자상 등을 둘러봤던 기억이 납니다.” 루체른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특히 구시가지는 중세시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1,300년에 세워졌다는 카펠교도 튼튼하게 루체른 호수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가벼운 도시 산책을 하던 기웅은 몸이 근질근질했다. 3,000m가 넘는 산들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모든 신경이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추웠던 날씨에 옷을 너무 얇게 가져온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루체른 구시가지의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기웅은 “사실 전 도시형 여행자는 아니에요”라고 커밍아웃을 했고, “시간이 충분할 것 같은데 리기Rigi 산을 다녀오면 어떨까요?”라며 태블릿PC에 담아 온 시간표를 내밀었다. 리기는 루체른에서 유람선과 산악열차를 타고 1,800m 산 정상까지 왕복 3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산으로 필라투스와의 경쟁에서 우리의 간택(?)을 받은 것이다. 기차역 바로 선착장에서 배에 올라탔다. 루체른이 스위스의 모든 매력을 응축하고 있는 도시라는 사실은 유람선에 올라 호수 위를 가르면서 더 명징하게 확인됐다. 갈색 지붕의 중세 건물들이 시선에서 점점 멀어져 가면서 만년설에 뒤덮인 산들과 짙푸른 루체른 호수 위를 유유히 가르는 배는 사람들을 낙원으로 인도했다. 산과 호수를 타고 온 시원한 바람으로 장시간 비행의 피로가 한순간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기웅은 일일이 지도를 확인해가며 “저기 도시 뒤편에 보이는 바위산이 ‘악마의 산’이라 불리는 필라투스고, 남쪽에 좌우로 길게 뻗은 설산이 티틀리스에요. 리기는 작은 언덕을 돌아가야 보일 것 같아요”라고 루체른을 둘러싼 산들에 대해 브리핑을 해줬다. 그리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으니 맑을 때 최대한 사진을 찍어둬야 한다며,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루체른 호수를 유유히 흐르던 배가 40분만에 비츠나우Vitznau에 정박하자 대부분의 여행객은 하선했다. 해발 1,800m, 리기산 꼭대기로 가는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산악열차를 타기 위함이었다. 14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열차는 가파른 산길을 천천히 그러나 능숙하게 타고 올라갔다. 종착역인 리기 쿨름Rigi Kulm에 이를 때 즈음, 모든 계절을 품고 있는 산의 위용이 드러났다. 아직도 남아 있는 눈의 흔적과 노란 야생화, 그리고 산 아래 너른 호수와 마을들의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그러나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연신 탄성을 내지르던 기웅은 “리기가 산들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겠어요. 빨리 꼭대기로 올라가시죠”라며 서둘렀다. 눈이 얕게 쌓인 리기산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평야지대와 남쪽의 3,000m급 고봉들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었다. 오히려 높은 산, 안쪽으로 들어간 풍경보다 스위스다운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더 훌륭하게 느껴지는 경관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칼트바트Kaltbad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웨지스Weggis에 내렸다. 기차, 케이블카, 유람선까지 1분 1초도 어긋남이 없는 스위스의 다양한 교통수단에 감탄하며 루체른행 배편에서 스치듯 지나간 감동을 돌이켰다. 1,800m라는 높이 때문에 앞으로 볼 산들의 애피타이저 정도로 생각했는데, 메인코스를 소화시킬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충분히 배부른 풍경이었다. 리기산 가는 법 리기산의 가장 큰 매력은 스위스패스만 있으면 무료로 유람선, 산악열차, 케이블카 등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해 여행할 수 있다는 점. 산악열차와 케이블카 티켓을 별도로 구매하면 왕복 30CHF이다. www.rigi.ch ▶travie info 스위스패스 스위스 내의 열차, 버스, 유람선 등을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만능열쇠로 2인 이상, 5인 이하에게 할인해 주는 세이버 패스, 1달 이내에 날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플렉시패스 등이 있다. 470개 박물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주요 관광열차와 케이블카를 무료 혹은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이등석 4일권은 272CHF(스위스프랑), 일등석 4일권은 435CHF이다. 한국에서는 가까운 여행사에서 구매할 수 있다. www.swisstravelsystem.com Titlis티틀리스 뜻밖의 눈 천지를 마주하다 낌새가 좋지 않았다. 루체른에서부터 가는 빗발이 날리더니 티틀리스Titlis산의 베이스캠프인 엥겔베르그Engelberg에 도착할 저녁 무렵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엥겔베르그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다는 테라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날 맑게 갠 하늘을 간절히 바라며 스위스에서의 첫날밤을 마무리했다. 이른 아침, 티틀리스 산이 손에 잡힐 듯한 풍경을 기대하며 창을 열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새하얀 눈 천지였다. 기웅은 티틀리스 꼭대기에서는 아무것도 못 보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스위스가 다섯 번째인 기자는 처음으로 내리는 눈, 그러니까 산꼭대기 만년설이 아닌 동화 같은 주택 지붕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눈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었고 엥겔베르그에서야 그 풍경을 맞딱드리게 된 것이다. 늦봄, ‘천사의 마을’이란 뜻의 엥겔베르그에 비로소 날개 단 천사가 강림할 것만 같았다. 호텔에서 약 15분을 걸어 케이블카 탑승역으로 향했다. 6명까지 탈 수 있는 소형 케이블카를 타고, 트뤼브제Trubsee에서 회전식 곤돌라로 갈아타자 어느새 산 정상에 다다랐다. 갈수록 굵어지는 눈발 때문에 장엄한 풍경은 포기해야 했지만 여름을 코앞에 둔 계절에 눈천지를 볼 수 있는 우연이야말로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냐며 이 순간을 만끽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5월 말 이 정도의 폭설은 스위스에서도 25년 만이었다고 한다. 산 정상에는 즐길거리가 많았다. 스위스 중부 최대의 스키 목적지답게 매년 10월부터 5월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빙하공원에서는 눈썰매 등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고 얼음동굴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올해는 티틀리스 케이블카 100주년을 맞아 흔들다리 클리프워크Cliff Walk가 선을 보여 다리 위에서 아찔한 절벽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곧잘 티틀리스와 융프라우를 비교하곤 하는데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회전식 곤돌라를 타고 순식간에 3,000m급 산 정상에 올라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티틀리스의 매력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애초 목표로 했던 산 중턱에서의 야생화길 산책이나 트뤼브제 호수에서의 조각배 노 젓기 체험 등을 못한 아쉬움은 다시 티틀리스를 찾아와야 할 명분으로 남겨두었다. 티틀리스 로테어 엥겔베르그에서 티틀리스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로 트뤼브제에서 회전식 곤돌라로 갈아탄다. 왕복 케이블카 요금은 86CHF, 스위스패스 소지시 50% 할인된다. 엥겔베르그에 위치한 테라스 호텔은 티틀리스 케이블카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다. www.titlis.ch ▶travie info 패스트 배기지Fast Baggage 여행 중 이동이 많은 여행객은 짐 걱정을 내려놓아도 된다. 패스트 배기지Fast Baggage 서비스를 이용하면 46개 역에서 짐을 따로 부치고 24시간 내에, 이르면 오전 9시 전에 부쳐 오후 6시 전에 받을 수도 있다. 요금은 짐 한 개당 22CHF. 철도청 사이트에서 배송 가능한 역을 확인할 수 있다. www.sbb.ch 스위스의 진짜 시골 Emmental에멘탈 우리는 에멘탈Emmental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치즈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스위스인들과 가장 보통의 스위스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여운은 스펙터클한 알프스의 풍경보다 깊고 진했다. Cheese치즈 스위스 명품 치즈를 만들어 보다 엥겔베르그에서 열차를 타고 부르크도르프Burgdorf 역에 도착해 471번 버스를 타고 에멘탈 치즈공장으로 향했다. 엠메Emme 계곡 일대를 일컫는 에멘탈 지역에는 약 150개의 소규모 치즈공방에서 치즈를 생산한다고 하는데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융단 같은 구릉지대에 치즈의 공급원(?)인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뤼에르 치즈와 함께 스위스를 대표하는 에멘탈 치즈는 엄격하게 품질이 관리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신선한 풀과 건초만을 먹은 건강한 소들이 명품 치즈의 근간이 된다고 한다. 물론 치즈 제조과정에서 어떠한 인공적인 요소도 가미하지 않는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치즈 공방은 크게 두 개의 관람장소로 나뉘어 있는데 전통방식의 제조소는 1750년부터 이어져 온 제작방식을 재현한다. 커다란 냄비에 우유를 담고 장작불을 지펴 32도로 가열해 박테리아를 제거하고, 다시 45도의 열로 40분간 가열하면 우유는 뿌연 물 같은 유장과 반고체 형태로 응고된 치즈로 분리된다. 커드Curd라 불리는 이 반고체의 치즈를 틀에 넣어 36시간 동안 소금물에 담갔다가 다시 물에 담근 후, 최소한 4달 이상 숙성시키면 고소한 치즈로 완성되는 것이다. 에멘탈 치즈는 최소 4달 숙성을 기본으로, 1년에서 최대 3년까지 숙성시키며 맛을 다양화하고 있다. 물론 3년 동안 치즈 덩어리를 방치하는 건 아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키우듯 이틀에 한 번씩 뒤집어 주며 골고루 건조되고 그 안에서 영양분이 자라나도록 관리를 해줘야만 한다. 현대식 제조공장에서는 다양한 치즈를 맛보며 숙성과정도 볼 수 있었다. 현대식은 보다 많은 양의 치즈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방편일 뿐 제조방식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에멘탈 치즈는 온도를 계속 바꿔주며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기포가 발생해 구멍이 뽕뽕 뚫려 있다. 치즈 덩어리를 위에서 아래로 잘랐을 때 5개 정도의 구멍이 있어야 이상적이라고 한다. 바로 이 숙성 방식이 일정한 저온으로 숙성시키는 그뤼에르 치즈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으로, 에멘탈은 그뤼에르 치즈에 비해 덜 짜고 고소한 맛으로 대중적인 명품 치즈로 꼽힌다. 치즈 제조공장 스위스의 대표적인 명품 치즈인 에멘탈 치즈의 제작과정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판매도 하며, 레스토랑에서는 치즈요리를 즐길 수도 있다. 베이커리 벡Beck에서는 다채로운 빵, 제과류를 구입할 수 있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가이드 투어는 최대 30명까지 130CHF에 이용할 수 있다. www.showdairy.ch 에멘탈 치즈공방에서는 18세기식 전통 치즈 제조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에멘탈 치즈는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 온도를 바꿔주는 건조법으로 기포가 발생하는 까닭이다 Farm House팜하우스소 젖짜고 말 밥 주고 ‘리얼’ 농촌체험 에멘탈에서 치즈공장만 구경하고 떠나기는 뭔가 허전해 가장 평범한 스위스 시골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는 팜하우스Farm House를 찾아갔다. 부르크도르프Burgdorf 기차역에서 468번 버스를 타고 치에켈레이Zielgelei 정거장에 내려 야트막한 언덕길을 따라 15분쯤 걸어갔더니 가축 냄새가 물씬 풍기는 농장, 발음도 어려운 배트빌Battwil이 나타났다. 기웅은 조금은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정말 여기가 맞아요? 여기서 뭘 하라는 거죠?” 농장 안 쪽, 몇 채의 농가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더니 수줍은 미소를 띈 주인 아주머니가 손을 흔들며 반겨 주었다. 영낙 없는 시골 큰엄마의 행색 그대로였다. “찾아오느라 고생했지? 자, 농장에 왔으니 무얼 하고 싶은지 말해 봐. 아, 먼저 잠자리를 봐야겠구나.” (그녀는 아들뻘 되는 동양 청년들을 ‘아들처럼’ 편하고 정겹게 대했다) 외양간과 바로 연결된 침실은 한국의 시골 헛간과 다르지 않았고, 서울서 나고 자란 기웅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런데 날씨가 우릴 구해(?) 주었다. “지금은 너무 추워서 여기서 자는 건 곤란할 것 같은데 조금 더 편안한 숙소가 있으니 거기서 자는 게 어때?” 그렇게 기웅과 기자는 다행히도 웬만한 게스트하우스보다 깔끔한 숙소에 묵게 됐다. 아줌마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농장 주변을 산책했다. 푸른 밀밭과 소 떼들을 위한 목초지, 그리고 멀리 부르크도르프 성과 교회가 어우러진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집으로 돌아와 부엌을 ‘기습’했다. 스위스의 가정집에서 밥 짓는 풍경이 궁금했던 까닭이다. 라클렛 치즈와 감자 요리, 화이트와인 소스를 곁들인 돼지고기까지. 성찬이 준비되고 있었다. 스위스 전통 빵인 초프Zopf와 통밀빵까지. 입이 쩍 벌어진 우리를 본 엘리자베스는 “아이고, 나는 요리를 잘 못하는 편이야”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날 밤 우리는 여정 중 최고의 만찬을 즐겼고, 진한 치즈향에 적응한 기웅은 라클렛을 쉼없이 흡입했다. 식사를 하면서 아줌마의 수다를 듣는 것도 남다른 재미였다. 한국에 짧게나마 유학을 했던 딸 이야기부터 왜 에멘탈 지역 유제품의 질이 훌륭한지까지. 자식 자랑, 동물 자랑이 멈추지 않았다. 5성급 호텔, 미슐랭스타 식당에서도 누릴 수 없는 흥미롭고 배부른 밤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농장에서는 알람이 필요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아침에 소 젖을 짜보고 싶으면 7시에는 일어나야 해”라고 했는데 그보다 일찍 닭이 울어 주었다. 외양간에는 건장한 체격의 아들이 열심히 소 젖을 짜고 있었고, 아버지는 퇴비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소 20마리로부터 매일 아침 채취한 500~700리터의 우유는 바로바로 낙농회사에 납품된다고 한다. 관광객을 위해 볼거리로 소를 키우고 젖 짜기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은 없었으나 신선한 우유가 생산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설마 이렇게 짠 젖을 바로 마시는 건 아니죠?” 기웅의 질문에 엘리자베스는 “물론 바로 마시지. 5도로 저온 보관을 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가공과정도 필요가 없는 건 그만큼 우유가 신선하고 품질이 좋기 때문이지”라고 설명을 하더니 스위스의 우유회사 에미Emmi로부터 받은 품질 평가서, 우유 판매 내역서 등을 직접 보여줬다. 엘리자베스의 설명은 이어졌다. 스위스의 유제품이 훌륭한 건 소규모 농장들이 소를 약 20마리씩 정성 들여 키우고, 신선한 풀만 먹이기 때문이고, 수천마리 소를 한번에 키우는 미국이나 뉴질랜드에서는 절대 우유를 바로 마실 수 없다며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냈다. 어쨌든 그렇게 한 마리, 한 마리 이름 붙여가며 정성 들여 돌본 소들이 공급해 준 그날 아침의 우유는 단연 최고였다. 소 젖 짜기를 구경한 뒤, 동물농장을 차례로 돌아봤다. 말들에게는 건초더미를 아침식사로 챙겨 주었고, 새끼 염소들에게는 사료를 직접 먹여 줬다. 간단한 아침 노동(?)을 마친 뒤 고대하던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메뉴는 간단했다. 삶은 달걀, 커피, 우유, 어젯밤에 구운 빵, 햄, 치즈. 어떤 호텔이나 가정집에서도 맛볼 수 있는 평범한 아침식사였지만 재료의 질과 신선도는 비교할 수 없었다. 사소한 잼과 사과주스까지 모두 농장에서 나온 재료로 엘리자베스가 손수 만든 음식들은 이른 아침부터 두 남정네의 혀끝을 황홀경으로 몰아넣었다. “자, 이제 아침을 먹었으니 소화를 좀 시켜야겠지?” 또 어떤 일감이 기다리나 했더니만 나귀를 태워 주겠단다. 마침 주말을 맞아 큰딸과 친구들이 나귀를 타기 위해 놀러왔는데 우리도 끼워주겠다는 것이었다. 나귀의 털을 골라 주며 정겹게 대화를 나누던 그녀들은 익숙하게 나귀를 몰았다. 말에 비해 온순한 나귀의 승차감은 페라리가 부럽지 않았고, 조금 더 높은 눈으로 굽어본 에멘탈의 아침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미녀들이 나귀를 몰아 준 탓일까? 서울 총각 기웅의 입은 귀에 걸려 내려오지 않았고, 그는 여행을 마칠 때까지 에멘탈에서의 경험을 되새김질하며 행복해했다. 팜하우스Farmhouse 에멘탈, 부르크도르프 지역에는 잠자리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약 10개의 팜하우스가 있다. 이번에 독자가 머문 베트빌Battwil 농장은 특별히 당나귀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신선한 목장 우유와 식사도 일품이다. 헛간에서의 1박은 25CHF이다. www.bauernhof-baettwil.ch 에멘탈 지역의 한 농가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젖소, 염소, 양, 당나귀, 말, 돼지, 닭, 오리 등등 농장 주인은 일일이 손을 꼽아가며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있는지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말그대로 동물농장이었다. 농장에서 맛본 스위스 가정의 가장 평범한 두끼 식사는 이번 여정 중 단연 최고였다. 모든 재료는 농장에서 바로 공수했으니 그 신선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travie info 스위스 여행의 필수 어플┃SBB 스위스철도청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1분 1초도 어긋남이 없는 스위스의 모든 교통 정보를 담고 있다. 환승 시간, 도보 이동시간까지 정확하게 계산해 준다. 네트워크 되는 곳에서만 검색이 된다. 웹사이트 www.sbb.ch도 유용하다. Swiss Hike 스위스의 주요 하이킹 코스를 상세히 안내해 주는 앱으로, 한번 다운 받아놓으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번에 여행한 대부분의 하이킹 코스도 포함돼 있다. 거친 산 속 호젓한 휴식 Valais발레 다음 목적지는 스위스 남부에 위치한 산악지역 발레주Valis. 마테호른의 관문도시인 체르마트Zermatt로 가기 전, 온천마을 로이커바트Leukerbad에 서 몸을 녹였다. Leukerbad로이커바트 스트레스가 금지된 물의 나라 굽이굽이 거친 바위산을 버스를 타고 오르면서 마주한 풍광은 이전의 산들과는 또 달랐다. 스위스 최대의 와인 생산지인 발레에는 계단식 포도농장이 가파른 비탈을 덮고 있었다. 로이커바트에 도착하자 뾰족뾰족한 형상이 거칠어 보이는 바위산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기웅은 역시나 산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며 가이드에게 “케이블카를 타면 저 봉우리까지 갈 수 있는 거죠? 어서 구름이 걷혀야 기막힌 풍경을 볼 수 있을 텐데”라고 묻자 가이드는 “너무 서두르지 마. 로이커바트에서 스트레스는 금지돼 있거든”이라고 눙을 쳤다. 로마시대부터 온천 휴양지로 명성을 떨친 로이커바트에서 제대로 온천을 만끽하려면 몸을 조금 피곤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하여 우리는 가벼운 하이킹에 도전하기로 했다. 소담스러운 샬레식 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마을을 지나 온천물이 솟아나는 온천협곡Thermal Canyon을 걸었다. 이곳에서 하루에만 3,900만 리터의 온천물이 솟아난다고 하니 예로부터 괴테, 마크 트웨인, 레닌 등등 유명인들이 이곳에서 뜨끈한 온천수에 몸을 녹였다 갔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음엔 겜미패스Gemmi Pass로 향했다. 그런데 옅은 구름과 눈발 때문에 스위스에서도 가장 험하다는 트레킹 코스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곳은 스위스가 아니었던가. 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2,350m에 달하는 전망대로 순간이동을 감행했다. 1200년경에 개통된 겜미패스는 발레주와 베른Bern주를 연결하는 통상의 길로 모파상과 셜록 홈즈의 작품 속에도 등장할 정도로 악명이 높다. 수직에 가까운 암벽에 지그재그로 난 길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이 길은 하이킹 마니아라면 도전해 볼 만한 코스다. 40년 전 눈으로 온천욕을 즐기다 이제 온천을 즐길 시간. 부르거바트Burgerbad와 알펜테름Alpentherme이 양대 온천으로 꼽히는데 부르거바트는 워터파크 형태로 가족여행객들이 즐기기 좋고, 알펜테름은 사우나, 스파 등이 있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성격이 달랐다. 알펜테름은 실내와 노천 풀장으로 크게 나뉘어 있었다. 기웅은 웅장한 산세를 감상하며 온천을 즐기기 좋은 노천 풀장으로 바로 향했다. 궂은 날씨는 온천에서는 색다른 재미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머리 위에는 눈에 소복이 쌓이고 물에 담긴 몸은 뜨끈뜨끈 녹아내리는 기분이 오묘했다. 온천수는 40년 전에 내린 눈이 지하 500m까지 스며들어가 다시 끓어오른 물이라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70년대에 로이커바트를 적신 눈으로 목욕을 한 것이었다. 온천에는 발레식 사우나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전라’로 입장해야 하는 사우나였다. 기웅은 사우나 입구에서 “진짜 다 벗어야 하는 거에요?”라고 쭈뼛거리고 있는데 웬걸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는 안도하며 어색하게 사우나와 냉탕을 오갔다. 분명 한국의 온천에 비하면 자극적이지는 않았으나 칼슘, 나트륨, 철분 등 130가지 성분이 담겨 있는 로이커바트의 온천수와 충격적인 사우나는 그날 밤 우리에게 가장 달고 깊은 잠을 허락했다. 로이커바트 추천 온천┃부르거바트Burgerbad 온도별로 10개의 풀장으로 이뤄진 가족형 온천시설이다. 미끄럼틀, 마사지풀 등이 다양하게 구비돼 있으며 사우나와 수영장도 있다. 3시간 이용권은 23CHF, 하루 이용권은 29CHF. www.burgerbad.ch 알펜테름Alpentherme 부르거바트에 비해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랑한다. 사우나는 전라로 입장하며, 로만-아이리시 스파와 테라피 시설도 있다. 사우나까지 이용할 수 있는 5시간 이용권은 39CHF. 하루 이용권은 53CHF. www.alpentherme.ch 겜미 케이블카 로이커바트와 겜미패스를 연결하는 케이블카로,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 왕복 32CHF, 스위스패스 소지시 50% 할인된다. www.gemmi.ch Zermatt체르마트 스위스 산악 체험의 클라이맥스 로이커바트에서 체르마트로 가는 아침, 날이 맑게 갰다. 온천으로 재충전을 한 탓일까, 기다리던 마테호른을 만날 순간이 다가와서일까. 기웅은 어느 때보다 들떠 있었고 열차가 체르마트에 접근할수록 바쁘게 차창을 좌우로 오가며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체르마트 역에서 내려 마을 안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갔을 때 북쪽으로 마테호른이 그 환한 얼굴을 드러냈다. 완벽하게 푸른 하늘, 초록색 옷을 갈아입고 있는 산과 오래된 샬레식 주택들이 조화를 이룬 풍경에 화룡점정으로 뾰족한 마테호른이 더해지니 완벽한 한 폭의 그림이 만들어졌고 기웅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먹먹한 표정을 띄고 있었다. “저 봉우리 하나를 보려고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알겠어요.” 며칠 전 내린 눈 때문에 산 중턱의 트레킹 코스는 폐쇄돼 있었다. 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퓨리Furi역에서 다시 체르마트로 내려오는 길을 걷기로 했다. 체르마트 관광청 직원이 추천한 레스토랑 레마모트Les Marmottes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만끽하며 퐁뒤와 스위스 전통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웠다. 다양한 스위스 치즈와 화이트와인을 팔팔 끓여 빵을 찍어 먹는 스위스 전통식을 이처럼 찬란한 풍경 아래서 즐길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체르마트로 향하는 내리막길에는 오래된 목조 건물들과 양떼들, 야생화가 만발해 있었다. 마테호른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고르너그라트Gonergrat 열차에 올라탔다. 스위스 최초의 톱니바퀴식 산악열차는 느긋하게 산을 밟아 올라갔다. 기차가 방향을 꺾을 때마다 다른 각도의 마테호른이 보였고, 수목한계선을 넘어선 뒤로는 순백의 눈천지가 펼쳐졌고, 눈 위에는 동물 발자국만이 희미했다. 마침내 고르너그라트 정상에 위치한 정거장에 도착했다. 막차여서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굳이 막차를 탄 까닭은 산 정상에 있는 고르너그라트 3100 쿨름 호텔Kulm Hotel에 묵기 위함이었다. 해발 3,100m. 스위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호텔은 지어진 지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사위가 어둑해진 밤, 식당에 모인 여행객들은 마치 성지순례자처럼 창밖 풍경을 조용히 감상하며 경건하게 저녁식사를 즐겼다. 객실에 침을 풀고 창을 열었다. 마테호른 봉우리가 정면으로 한눈에 들어왔다. 저녁과 아침, 두 차례의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기웅은 넋을 놓고 봉우리를 바라다봤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뜨면서 달라지는 그 기묘한 색을 보면서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온 풍경을 가슴 속에 깊이깊이 새겼다. 3100 쿨름호텔 고르너그라트 1907년에 개장한 호텔로 스위스에서 최고 높이에 위치한 숙소다. 호텔이 위치한 전망대에서는 29개의 4,000m급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이 봉우리들의 높이로 객실 번호를 매겼다. 풍광만큼 수준 높은 식사를 제공한다. 건물 위쪽의 돔은 천문 관측을 위한 용도로 쓰인다. www.gornergrat-kulm.ch 고르너그라트열차Gornergratbahn 해발 1,620m의 마을 체르마트에서 해발 3,089m의 고르너그라트까지 운행하는 톱니바퀴 산악열차다. 중간에 리펠알프Riffelalp, 리펠베르그Riffelberg 등의 역에서 하차하면 다양한 하이킹 코스를 소화할 수 있다. 체르마트 기차역 바로 앞에 탑승장이 있다. 왕복 요금은 82CHF, 스위스패스 소지시 50% 할인된다. www.gornergratbahn.ch 해발 3,100m에 위치한 고르너그라트 쿨름호텔의 창밖 풍경.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과 마테호른의 기막힌 장관을 넋 놓고 바라봤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내일투어 02-6262-5353 www.naeiltour.co.kr, 스위스관광청 www.Myswitzerland.com ●Swiss Review 풍경에 취하고 맛에 홀린 시간 5월의 스위스를, 그것도 ‘공짜로’ 다녀올 수 있다는 전화를 받고부터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특히 ‘알프스의 산 속 체험’을 테마로 했던 만큼 더욱 들뜨고 설레었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와 토블론Toblerone 초콜릿의 상징인 마테호른을 마주하던 순간은 감탄의 연속이었다. 특히 고르너그라트의 정상에 자리한 ‘3100 호텔’에서의 밤은 영영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침대에 누워 고개만 돌리면 손에 잡힐 듯 마테호른이 보였고, 주변은 온통 만년설로 뒤덮여 있어 마치 우주의 어딘가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마테호른에 비하면 초라할지 몰라도 도착하는 순간 힐링을 느끼게 해준 리기산은 왜 ‘산의 여왕’이라 불리는지 알 만한 풍경을 선사해 주었다. 한국 여행자들에게 생소한 로이커바트에서 노천 온천을 즐기고, 예상치 못한 남녀 혼욕을 해본 것도 민망하면서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나를 연상시키는 에멘탈 지역은 압도적인 위용은 없었지만 잔상이 오래 남는 곳이었다. 특히 팜하우스는 지금껏 수많은 나라를 여행해본 경험 중 가장 이색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라클렛을 비롯한 전통 스위스 식사와 신선한 치즈와 빵 등은 단연코 ‘생애 최고의 한 끼’였다고 할 것이다. 여행 기회를 선물해 준 내일투어와 <트래비>, 갑작스런 휴가를 허락해 주신 회사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 도전자유여행 38탄 참가자 유기웅
  • [저자와의 차 한잔] ‘군주의 조건’ 펴낸 스피치 라이터 김준태

    [저자와의 차 한잔] ‘군주의 조건’ 펴낸 스피치 라이터 김준태

    “리더로서 최고의 덕목은 수신(修身)입니다.” 조선 왕들의 결단과 행적을 추적해 ‘군주의 조건’을 낸 스피치 라이터 김준태씨는 이렇게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천착해 온 그는 조선 군주들의 리더십을 수신, 의리(義利·명분과 실리), 용현(用賢·용인술), 공효(功效·공을 들인 성과), 건저(建儲·후계) 등 다섯 개로 압축했다. “리더는 장점과 강점, 약점과 단점 등 자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된다”고 배경설명을 한다. 이익집단 간의 갈등 조정 등이 날로 어려워지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도덕적·인격적 완성체로서의 이상적 군주론은 공허해 보인다고 하자 “그래도 리더가 어떤 마음을 먹고 결정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여전히 도덕성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이상론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올바름의 이치를 뜻하는 ‘의리’(義理)가 아니고 올바름과 이로움이 결합된 ‘의리’(義利)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 ‘의’(義)와 ‘리’(利)는 명분과 실리, 이상과 현실, 동기와 결과를 가리키는 다소 대립적이고 상충되는 개념이어서 하나로 묶기가 쉽지 않다. 그는 “명분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가 있기 마련”이라며 “그럴 때는 명분과 현실을 조율하여 지금 바로 이 상황에 알맞은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명분을 선택하더라도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준비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명분과 의욕만 앞세워 청과 승산 없는 전쟁을 한 인조는 무모했다고 지적한다. 현실에서는 올바름과 이로움이 충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숙종 때 흉년이 계속되자 조정에서는 청으로부터의 식량 도입을 논의한다. 그러나 아직도 삼전도의 굴욕이 생생한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반대의견이 높다. 하지만 숙종은 황제에게 감사인사만 표시하면 양식을 공급하겠다는 청의 제의를 받아들여 구호양식인 ‘서곡’(西穀)을 들여온다. 비록 원수의 나라라 하더라도 백성의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이로움이 우선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조선 중기 이후 사림파는 지나치게 교조적으로 흘러 현실을 도외시했다며 비판한다. “국가의 가장 큰 명분은 국가의 자존심이 아니라 구성원 자체입니다. 구성원들을 지켜내기 위해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군주의 도리이고 바로 진정한 명분을 따르는 일입니다.” 국가는 법(제도)과 사람(인사)의 양축으로 통치되고 법을 운영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흔히들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세종의 통 큰 용인술은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울림이 크다. 집현전의 초대 책임자로 자신의 장인인 심온을 죽이는 데 앞장선 박은을 임명하고 사사건건 반대하는 허조에게 이조판서, 영의정을 맡기며 함께 간다. 세종이 고집불통이라고 불평하면서도 허조를 계속 요직에 중용한 것은 그의 반대를 통해 발생 가능한 문제들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정책이 더욱 튼튼해지며, 정치가 더욱 건전해지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포용력 있는 인사는 수신이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공(功)을 들여 효험(效驗)을 내는 공효는 개혁과 연관된다. 그는 “리더는 시대상황에 맞게 제도를 적절하게 변화시켜야 하며 공은 나누고 책임은 짊어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창조경제의 첨병은 기업이다] GS칼텍스

    [창조경제의 첨병은 기업이다] GS칼텍스

    GS칼텍스는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과 차세대 연료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3월 제4 고도화시설인, 하루 5만 3000배럴 처리 규모의 ‘감압 가스오일 유동상 촉매분해 시설’(VGOFCC)을 100% 가동하기 시작했다. 2011년 3월 착공에 들어간 지 24개월 만이다. GS칼텍스는 총 1조 3000억원을 들인 이 VGOFCC의 완벽한 상업가동을 통해 고도화시설의 처리 용량을 하루 26만 8000배럴, 고도화 비율을 34.6% 달성했다. 고도화 능력에서 국내 정유업계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이전까지 고도화 비율은 27.7%였다. 이로써 2004년 제2 HOU(HCR·수첨탈황분해시설)를 시작으로 제3 HOU(VRHCR·감압잔사유 수첨탈황분해시설)에 이어 이번 제4 HOU(VGOFCC)까지 중질유분해시설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여수공장은 원유를 정제해 생산하는 거의 대부분의 제품을 경질유만으로 구성했다. 정유공장의 이상적인 모델인 세계적 수준으로 거듭난 것이다. GS칼텍스는 이 시설에서 생산하는 고부가가치의 경질유 제품 전량을 수출함으로써 수출 증대를 통해 무역수지 개선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무역의 날에서는 ‘250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아울러 GS칼텍스는 2015년 완료를 목표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비롯해 전남대, 인하대, 중소기업 등 7곳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2011년 9월부터 ‘석유잔사물을 활용한 탄소섬유 및 자동차부품 응용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 호주 퀸스랜드 주 재무장관 방한 “에너지 및 인프라스트럭처 사업 교류 확대”

    호주 퀸스랜드 주 재무장관 방한 “에너지 및 인프라스트럭처 사업 교류 확대”

    호주 퀸스랜드 주는 한국과 사업 기회를 최대한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팀 니콜스 재무통상 장관이 20~24일 방한할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팀 니콜스 장관은 이번 방한을 통해 퀸스랜드 주의 교역과 투자 기회를 촉진하기 위해 퀸스랜드 비즈니스 사절단을 이끌고 한국 주요 기업과 정부 관계자를 만난다. 특히 호주 퀸스랜드 주와 한국과의 투자 협력 증진을 위해 호주 퀸스랜드 주의 에너지 및 인프라스트럭처 프로젝트 및 투자 기회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아울러 수출입은행과 MOU를 체결한다. 니콜스 장관은 “퀸스랜드는 다양한 분야에서 선두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상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라면서 “이번 세미나는 한국의 주요 건설사 및 금융기관에 호주 퀸스랜드의 에너지 및 인프라스트럭처 관련 프로젝트 및 투자 기회에 대해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통해 퀸스랜드에 대한 관심과 투자하는 한국기업이 늘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수출입과 해외투자, 해외자원개발 등 대외경제 협력에 필요한 금융을 지원하는 수출입은행과의 MOU를 체결할 예정”이라면서 “퀸스랜드 천연자원, 에너지, 인프라스트럭처 프로젝트에 진출하려는 한국기업의 투자 환경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이를 통해 한국 기업들이 호주 퀸스랜드 주로 사업 진출을 확대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니콜스 장관은 지난해 4월 퀸스랜드 주에 새롭게 들어선 자유당 내각 정부를 대표해 재무통상장관으로서 한국을 처음 방문한다. 그는 투자협력 증진 이외에도 천연자원 및 에너지, 건설, 금융, 농식품, 교육, 말 산업, 관광, ICT 및 문화산업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양 지역 간 비즈니스 협력 관계도 재확인할 예정이다. 에너지 및 인프라스트럭처 프로젝트 및 투자 기회 세미나는 오는 22일 오후 4시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굿모닝 닥터] 수영·자전거 허리에 좋아

    허리 건강에는 운동이 최고의 약이다. 하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잘 모르고 하는 무리한 운동은 독이 될 수 있다. 허리에 좋은 운동으로는 걷기, 등산, 수영, 자전거 타기, 가벼운 에어로빅과 스키, 스케이팅, 요가 등이 꼽힌다. 수영의 경우 물속에서는 체중 부담이 줄어 허리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도 비교적 안전하다. 특히 배영·횡영·자유형은 허리 유연성을 기르는 데 좋으나, 평형은 허리에 충격을, 접영은 허리를 심하게 젖히므로 척추분리증 환자나 척추 후관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삼가야 한다. 자전거 타기도 허리에 좋다. 페달을 밟을 때 이상적인 척추 굽이로 골반이 들리기 때문이다. 자전거의 안장 높이는 페달을 딛고 발을 뻗었을 때 약간 무릎이 굽어지는 정도가 좋다. 에어로빅의 경우 천천히 시작하고, 끝난 뒤 반드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는 게 좋다. 또 척추 충격을 줄여주는 쿠션 운동화를 신는 것도 중요하다. 반면 농구, 축구, 테니스, 승마, 배드민턴 등은 주의해야 한다. 테니스는 라켓을 사용하는 스포츠 중 비교적 스피드가 낮지만 척추관협착증이나 관절에 문제가 있다면 강하게 서브를 넣을 때 병증이 악화될 수 있다. 승마는 숙련된 사람에게는 좋지만 초보자라면 점프할 때 허리 관절이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달리기나 골프, 볼링, 야구, 기계체조, 윈드서핑, 역도 역시 허리 위험도가 높은 운동이다. 특히 요통 환자에게 달리기는 매우 위험하다. 허리가 건강하더라도 1분에 120m 정도로 하루 20분가량 달리는 게 좋다. 골프의 경우 스윙 동작 때 허리가 뒤틀려 척추 디스크나 관절에 큰 부담이 가해지는데, 실제로 골퍼의 80%가 요통을 느낄 정도다. 따라서 만성 요통이나 척추 관절에 문제가 있다면 무리한 골프 스윙을 삼가야 한다. 볼링의 경우 볼의 무게가 한쪽에만 작용해 반대편 허리와 관절에 무리가 오기 쉽다. 안용 서울우리들병원장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⑤광화문광장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⑤광화문광장

    >>광화문의 어제:육조거리의 부활을 기다리며 조선시대 국가의례·행사 열린 정치·행정·문화의 중심광장 세종로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에 해당하는 국가 중심도로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사료에는 육조대로, 주작대로라는 이름이 기록돼 있다. 주요 행정관청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6개 관청이 있는 거리라는 뜻에서 육조(六曹)거리라고 불린 듯하다. 흔히 어가(御街)라고 지칭됐으며 일반인들은 육조거리, 육조 앞, 해태 앞이라는 지명을 주로 썼다. 관청가인 육조대로가 세종로의 본디 이름인 셈이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중심으로 의정부와 삼군부, 육조, 한성부, 사헌부 등 주요 관청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육조거리에는 광장의 개념까지 포함됐다. 국가의례나 문화행사가 열리는 정치·행정·문화의 중심 광장이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보기 어려운 폭 58m, 길이 200m의 큰길이었다. 노면이 고르고 배수가 잘 됐으며 바람이 불어도 먼지가 날리지 않는 멋진 길이었다. 중국, 일본의 사신이나 개항 이후 방문한 백인 외교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수선전도, 조선경성도 등을 보면 육조거리의 관아는 위계에 따라 배치됐다. 의정부가 광화문 왼쪽 맨 앞자리인 현재의 광화문 열린 광장 자리에 있었고 이조, 한성부, 호조가 뒤를 이었다. 반대쪽 정부서울청사 쪽에는 삼군부, 예조,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가 차례로 터를 잡았다. 서울역사문화연구소 이상협 소장의 논문 ‘조선시대 육조거리에 대한 고찰’을 보면 의정부와 예조 등 모든 관아가 육조거리에 직각 방향으로 있으며 육조거리의 공간 구성과 관아 배치는 경복궁에서 임금과 신하가 한자리에 있는 공간 구성의 틀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건물 조성 당시의 배치 구조와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건물이 한 채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다만 1900년대 전후에 촬영한 사진과 관아 그림 등으로 유추해 볼 때 양쪽의 긴 담장이 도로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긴 행랑 때문에 육조를 흔히 육조장랑(六曹長廊)이라고도 지칭할 정도였다. 일제는 조선의 행정관청인 육조라는 명칭을 소멸시킬 목적으로 거리 이름을 광화문통으로 바꿨다. 육조장랑은 뜯겨 나갔고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1926년 경복궁 근정전 앞에 총독부 신청사를 짓자마자 앞을 가리는 광화문을 해체해 건춘문 옆으로 옮겨 버리고 나서는 총독부 광장이라고 호칭했다. 어용 군중집회가 주로 이곳에서 열렸다. 미 군정기에는 군정청이 입주하면서 군정청 광장이라고 불렸다. 정부 수립 기념식이 개최됐다. 해방을 맞았지만, 육조거리로 복권되지 못하고 세종로라는 이름이 붙여져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이 거리를 광화문이나 광화문광장이라고 즐겨 부른다. 세종로라는 작위적 지명보다 현존 구조물인 광화문이 더 친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세 번이나 옮겨지고, 두 번이나 불탄 광화문 수난사가 마음속에 새겨진 탓인지도 모른다. 이름 하나가 역사적 사고를 지배하기도 한다. 1946년 해방 직후 구성된 지명위원회는 국가 중심가로의 역사성을 간과했다. 일제가 붙인 광화문통을 세종로로 바꾸는 데 급급했다. 육조대로라는 지명을 원상회복할 기회를 놓쳤다. 세종로가 100m의 도로폭을 갖게 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맥아더의 호언장담처럼 종전 후 서울도 이상적인 도시계획의 기회를 잡았다. 1945년부터 1956년까지 11년 동안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을 맡은 한국인 1호 도시계획가 장훈씨가 1952년 고시된 최초의 서울 도시계획에서 광화문사거리~중앙청까지 500m 길이 도로의 폭을 기존 53m에서 100m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폭 12m에 길이 2750m이던 청계천을 폭 50m의 도로 부지로 확장해 오늘의 청계천을 있게 했다. 광화문광장, 시청 앞 광장, 숭례문광장 등 주요 광장 부지도 확보했다. 대담한 도시계획에 맞춰 건물과 토지를 매수하고 수용해야 했지만 서울시의 재정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내버려둘 수도 없고 매수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민원이 빗발치자 가건축 허가를 내줘 가건물을 짓도록 했다. 도로 확장은 1966~1979년 계획대로 실행했지만, 광장 부지는 확보하지 못했다.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세종로사거리를 기점으로 반지름 150m의 광장이 계획대로 실현됐다면 현재의 동아일보 사옥과 광화문 우체국, 교보빌딩과 KT빌딩은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2년 건설부고시에 따라 광화문광장계획선은 반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세종로와 태평로를 연결하는 광장계획선 안에 일부 건물이 건재하다. >>광화문의 오늘:주요 건물의 부침사 정부서울청사 옛 삼군부·예조 자리에… 개인건물은 4채뿐 광화문을 중심으로 왼쪽에 광화문시민열린마당·대한민국역사박물관·주한미국대사관·KT빌딩·교보빌딩·비각이 차례로 서 있다. 오른쪽으로는 정부서울청사와 별관·세종로공원·세종문화회관·삼보빌딩·현대해상화재·세광빌딩 등이 자리 잡았다. 폭 100m, 길이 500m의 광장구조 거리에 공공건물 5채와 대기업 건물 3채, 개인건물 4채, 문화재 1개, 공원 2곳뿐인 쾌적한 구조다. 해방 이후 육조거리를 복원하지 않은 탓에 건물들의 격렬한 부침(浮沈)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세종로를 폭 100m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건물이 헐렸다. 먼저 1967년 의정부 자리를 꿰차고 있던 경기도청과 국제전신전화국 일부가 철거됐다. ‘서울 한복판에 웬 경기도청’이냐고 하겠지만, 옛 경기도청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경성부(서울)를 경기도의 일개 지방도시화한 일제가 의정부를 헐어 내고 지은 건물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기억에서 지우기 위한 식민통치의 음모였다. 한 때 치안본부 등으로 쓰였다. 정부는 이 자리에 정부 제2종합청사를 지으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에 고무된 이원종 당시 서울시장이 ‘국가 중심가로 구상안’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백지화됐다. 서울시는 이 부지를 정부로부터 매입해 광화문 시민열린 마당을 조성했다. 부지를 지킨 것은 잘한 일이지만 명칭을 의정부 광장이나 육조마당, 육조광장으로 붙이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질책받을 일이다. 서울의 면모를 일신한다는 방침에 따라 대대적인 도시 개조 사업이 벌어졌다. 이른바 ‘서울재건’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가 외국 원조 자본을 끌어들이거나 민간 자본이 속속 건물을 지었다. 1961년 10월 완공된 현재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주한 미국대사관은 쌍둥이 건물이다. 역사박물관은 이조, 미국대사관은 한성부 터다. 이 건물은 미국대외경제원조처(USOM)가 500만 달러의 원조자금을 대고 필리핀에 건축을 의뢰해 지어졌다. 정부청사용 건물을 짓고도 280만 달러가 남자 건물을 한 채 더 지었는데 여기에 대사관이 입주한 것이다. 역사박물관 건물은 5·16 이후 국가재건최고위원회 건물로 사용됐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청사로 쓰이다가 문화공보부, 문화체육부, 문화체육관광부를 거쳐 지난해 448억원의 예산을 들여 역사박물관으로 리모델링했다. 전시 내용과 건물의 구조 등이 박물관으로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KT 광화문 빌딩은 1981년 국제전신전화국 자리에 세워졌고 체신부와 함께 입주했다. 이후 잦은 정부 조직 개편으로 소관 부처가 체신부,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로 바뀔 때마다 간판을 변경했다. 1998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체신청으로부터 분리, 공사가 된 이후 2002년 민영화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관 당시 체신부가 갖고 있던 이 건물의 12~14층까지 3개 층의 소유권도 방통위에서 기획재정부로 넘어갔다. 교보빌딩은 호불호가 엇갈리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건축가 등 전문가 그룹은 ‘짝퉁’ 건물이라고 깎아내리고, 일반인들은 건물 외관의 대형 걸개 글판과 시내 한복판 책방인 교보문고의 존재를 달가워한다. 왜 그렇까? 이 건물의 정체성 때문이다. 일본 도쿄 주일미국대사관 건물의 디자인을 빼닮았다는 이유다. 미국 건축가 시저 펠리에게 같은 건물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고 이 디자인을 교보의 전국 지사 건물로 복제했다. 최근 한 건축 잡지는 해방 이후 최악의 건물 리스트에 올렸다. 층수와 용도를 둘러싸고 뒤탈도 많았다. 설계 당시 40층을 계획했지만 23층에 그쳤다. 완공 단계에서 정부청사보다 낮은 17층 이하로 지으라고 행정 당국이 종용하자 당시 신용호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완공 단계의 건물을 자르라면…. 내가 광화문 복판에서 배를 자르겠다”는 격한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또 용도를 호텔로 변경하라고 권하자 “정부청사 앞에 술과 밥을 파는 숙박업소를 짓는다는 것은 나라 체면을 먹칠하는 것”이라고 거절한 사연도 자서전에 남아 있다. 교보빌딩은 2009년부터 2년 동안 건물의 뼈대만 남겨 두고 건물 옆면 일본식 다다미 모양을 유리로 교체하는 등 리모델링했다. 짝퉁 논란에서 벗어날지 두고 볼 일이다. 정부서울청사는 1970년 옛 삼군부와 예조 자리에 들어섰고, 별관인 외교부청사는 2002년 옛 교통방송국 터에 자리 잡았다. 1966년에 정부서울청사 자리에 있던 서울전신저금보험관리국, 경찰기동대 순찰반이 헐렸고,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인 시민회관 자리에 있던 종로보건소와 광화문전화국이 철거됐다. 시민회관은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회관으로 지어졌지만 4·19혁명 이후 시민회관으로 이름을 바꿔 1961년 개관했다. 1972년 불타 버리는 바람에 1978년 현재의 모습으로 신축했다. 세종문화회관 옆 17층짜리 현대해상화재빌딩은 현대그룹의 성장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1976년 현대건설 본사로 지어져 1983년 현대건설이 계동으로 옮겨 가기 전까지 현대그룹 본사 건물이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중동특수를 누린 이 건물에 애착이 강했다. 199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국민당 당사로 썼다. 현대해상은 그룹 계열에서 분리되기 직전인 1999년 이 건물을 현대건설로부터 인수했고, 2004년 대대적으로 개보수했다. 대한민국 심장부에 빌딩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KT와 교보, 현대해상화재뿐이다. 그보다 엄청난 격랑을 헤치고 최고의 요지에 끝까지 살아남은 개인 빌딩 4채의 존재감이 더 빛난다. joo@seoul.co.kr
  • “휴대전화 배터리, 이상적인 충전은 40~80%”

    “휴대전화 배터리, 이상적인 충전은 40~80%”

    휴대전화 배터리를 오래 쓰기 위해서 100% 충전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 같다. 최근 미국의 IT전문가 에릭 리머는 IT블로그 기즈모도(Gizmodo)에 “휴대전화 배터리는 100% 충전하지 않는 것이 좋다” 면서 “충전 이후에도 플러그를 뽑아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밝혔다. 리머는 가장 이상적인 배터리 충전량으로 40~80%, 1달에 한번 정도는 완전 방전, 32도 이상의 환경에 배터리를 두지 말 것을 충고했다. 리머의 이같은 주장은 현재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완전 충전 후 완전 방전 방식보다 틈날 때 마다 적당히 충전해주는 것이 오히려 좋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리마는 “완전 충전 후 완전 방전이 좋다는 인식은 과거 사용된 니켈카드뮴 배터리 때문” 이라면서 “지금은 적절한 충전량과 서늘한 온도에 휴대전화 배터리를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균 25도 상태에 둔 리튬이온 배터리는 매년 20% 정도 능력이 떨어지지만 40도에서는 35%까지 치솟는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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