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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예가 황종례씨(이세기의 인물탐구:23)

    ◎예술혼 담긴 「귀얄문양」 대가/탁월한 기품·여성스런 섬세함 한획으로 표출/망망대해·일렁이는 갈대숲 등 깊은맛 일품/32세 “늦깎이” 입문… 남을 의식않고 제작에만 몰두 벽제의 하늘은 아름답다.청자의 비색처럼 영롱하다.산자락에 걸친 구름은 분청사기의 문양인듯 엇비슷 비껴있다.이곳이 바로 현대도예에서의 일인자 위치를 지키는 도예가 황종례씨의 작업실이다.절간같은 고요,사람의 기척이라곤 별로 없이 작가 혼자서 흙으로 성형하고 소성한 도예에 그림을 그릴 뿐이다. 그가 벽제에 온것은 72년 초봄이다.그때까지만 해도 진흙구덩이가 푹푹 패이는 삭막한 황무지였으나 도심에서는 가마를 가질수가 없어 일찌감치 이곳 정착을 서둘렀다. 그리고 드넓은 터에 장작을 때는 흙가마와 기름을 때는 현대식 가마를 갖추었다.그로서는 가마를 갖게된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었다.그동안 축적한 것을 이뤄나가면 그만이다. 새벽 6시면 그는 벌써 작업실로 내려온다.직접 흙을 반죽하고 까다로운 여러 공정을 거쳐 유약칠과 채식에 들어가 한 획으로 문양을 넣기 시작한다.물론 널리 알려지다시피 그의 도예에서의 특징은 귀얄문양이다.그는 이 과정에서는 거의 몰아의 경지다.느긋하고 너그러워 호들갑스러운 데가 전혀 없으나 이때만은 비호처럼 날쌘,귀신같은 솜씨를 발휘한다.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그 순간을 포착하기 힘들다.그때도 그의 얼굴표정에는 온화한 여유가 만만하다. 처음에는 힘없는 붓이 자꾸 흙에 달라붙어 기면의 흡수에 비해 둔한 붓놀림이 따르지 못하자 유화붓을 쓰거나 강도가 센 페인트 붓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귀얄만으로 능란하게 그림을 구사하게 되었다. 귀얄문의 특징은 그릇의 표면이나 내면에 속도감있게 붓자국을 내며 돌리지않으면 습기있는 기면이 당장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단숨에 그릴 수 있는 기량과 기술이 필요하다.그릇의 한면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미리 구상해두었던 그림을 일순간에 성립하는 식이다. ○분청사기에서 힌트 옥색하늘이 아득히 푸르르고 망양한 바다와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숲,희미한 새벽 서광과 붉게 타는 낙조등 도예기가 보여주는 회화세계는 화선지에서와는 다른 그나름대로의 참신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다.안료의 농도에 따라 얼마든지 절묘한 표현을 자유자재롭게 만들어 나갈수 있는 것도 한 장점이다. 물론 이런 필력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그는 60년대 초부터 청전 이상범에게 붓놀림과 먹의 농담이용법,옥산 김옥진에게 사군자,오당 안동숙에게 풀 나무 산과 바위를 사사하면서 수년간 자기표현을 위한 기초적 탐색을 감행해 왔다. 그의 귀얄무늬는 물론 분청사기에서 쓴 귀얄문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고려상감(상감)같은 상감을 이용한 화장법을 거쳐 분청사기의 귀얄무늬를 추상적 회화로 모색해 나갔다. 그 시절의 그런 그릇에 왜 귀얄 붓자국을 썼는가,시간틈틈이 골동품가게나 박물관을 기웃거리며 관계서적과 도록을 빌려다가 밤을 지새워 연구하기도 했다. 발이나 호·기에다 투각수법의 무늬로 부분장식을 표현하거나 단일색인 소문백자의 경우엔 부드럽게 흐르는 몸체에서 무한한 품위가 배어나왔다. 더구나 화사기에서 쓰이던 회청·회회청의 코발트색깔은 지금도 창조하기 힘든 기발한 색조임에 스스로 탄복해 마지 않았다.꽃잎흩날리는 비화문이며 풀잎 나뭇잎 얼킨 초엽문의 활달한 율동감,살얼음이 깨어진 듯한 빙렬등은 현대도예에서도 시도해 봄직한 분방한 방법임에 틀림 없었다. 황종례의 그릇의 형태는 비교적 큼직하고 대담한 편이다.쑥쑥 뻗은듯 휘어진 곡선을 지니면서 탁발한 기품과 여성적인 섬세함을 담고 있다.너무 작아 조잡하거나 너무 우람하여 넘치지 않는다.야무진 티나 인위적인 기교는 없다.꾸미지않은 순결함속에 오랜 전통을 바탕에 둔 든든한 경륜의 실력이 이를 보는 사람들에게 안심과 환희를 안겨준다. 도예의 기물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들을 파악하자 이번엔 좀더 새로운 세계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시도에 앞장 섰다.무한한 가능성에 비해 시간이 짧기만 했다. 몇사람 되지않는 창작도예에서 「독자성」을 두루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그는 『도예의 길은 멀고 그리고 어렵다』고 말한다. ○성취가 일생 과제로 고전하여 어렵게 이룬것만큼 높이 평가되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도무지 그런 울결(울결)과 방종에서 벗어나 흔연한 자세다. 남에게 관심을 갖거나 남을 의식하지도 않는다.그런 자자분한 세상사에 눈돌릴 겨를이 없다.예술가의 자세란 작품에 밀착하여 새 세계에 도전하는 일,그리고 성취만이 평생의 과제이며 목적이다. 그는 인건비등으로 다투는등 사람들에게 시달리기도 싫어 인부들과 손을 끊고 몇년전부터는 흙만드는 일을 직접하고 있다. 12번째 개인전을 연후 수많은 해외전시에 참가,틈틈이 86년 13번째의 개인전을 앞두고 준비해온 1천여점의 작품을 하루 아침에 망친 사건이 있었다. 어느때보다 실험작품이 많아 스스로 기대에 부풀었던 그는 눈앞이 캄캄했으나 「허허!」 한바탕 웃는 것으로 이를 단념해 버렸다.이미 끝난것에 집착하는 것은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았다. 원인은 간단하다.필요한 양을 정확하게 혼합하는 과정에서 인부들이 물과 흙의 분량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이를 지켜보지못한 자신의 불찰로 돌렸다.광주나 이천에 나가면 만들어진 흙을 얼마든지 사다 쓸수 있는것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직접만들어 쓰려다가 생긴 이 낭패가 그로서는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그후론 아직 결혼전인 차남(영학씨·조각·상명여대 출강)이 어머니를 돕고 있다.엎친데 덮친격으로 같은 시기에 그의 도예일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주던 부군 이진우박사(전 영동피부과 제일의원)가 몸져 눕는 바람에 한동안 간호에 매달리느라 이럭저럭 작업을 미룰수 밖에 없었다. 황종례씨는 고려청자의 재현이라는 전통도예를 가업으로 가진 황인춘씨를 부친으로 역시 원로 도예가인 황종구씨(전 이대교수)가 그의 오빠다. 어릴때 영등포 대방동에 있던 그의집 과수원속에 부친의 가마가 있었고 그는 그릇을 빚고 건조시키고 조각하고 백토칠에다 다시 이를 벗겨내고 유약등 까다로운 작업을 지켜보는 유년시절에도 하나의 사기나 파와(파와) 한쪽을 어루만지면서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옛 고려왕조·이조왕조의 생활이 따뜻하게 전해졌다고 기억한다. 그후 국민학교 1학년때 조선총독부에 의해 가족이 강제로 개성에 이주,일인들이 선죽교부근에 마련해준 연구소에 살면서 호수돈여고에 다녔다. 미대진학을 꿈꾸며 그림을 그리던 그에게 스승이던 유달영선생의 가르침은 「버려진 제것에 대해 눈뜨라」는 것이었고 특히 졸업을 앞두고 「청년이어 일어나라」는 교훈은 그에게 「나도 무엇인가 나의 일을 하겠다」는 의욕을 심어주었다. 집안형편이 극도로 어려웠으나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에 있는 이대미술학부에 진학,어릴때 손바닥 감촉으로 느꼈던 사기의 온기를 못잊어 대학졸업 9년만인 32살때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도예를 전공했다.그때도 부군이 그의 협력자가 되어주었다. 대학원 졸업전인 61년에 첫 개인전,청자의 태토에 백토로 분장하고 그곳에 단숨에 귀얄문을 그려내는데 매력을 느낀것은 68년 6번째 개인전때부터다. ○“독보적 존재” 평가 「청·백자의 선이 아무리 탁발하다 해도 이를 단순히 재현하는데 그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조작적이고 기교적이 아닌,이른바 이조자기에서 볼수 있는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멋』을 담아 새롭게 선보였다. 실내장식품에 지나지 않던 도예를 널리 일상생활에 참여시킨일종의 도예의 활성화 시도였다. 『몇 안되는 창작도예를 만드는 도예가중에서 독자적인 색유사용으로 새 경지를 개척해 왔다는 점에서 황종례는 현대도예에서 단연 독보적 존재』라는게 미술평론가 박래경씨의 평이다.1천여점 작품실패로 9년간 미뤘던 13번째 개인전은 오는 13일 신세계 미술관에서 열리게 된다. 흰색으로 시작됐던 그의 귀얄문은 더욱 다양한 아름다운 색깔로 변모되었고 매끄러운 표면은 입체감과 함께 품위있는 추상회화로 조형효과를 이뤄내고 있다. 청자빛 하늘과 파도치는 바람,흩날리는 꽃잎등 조선시대의 사람의 감정과 미의식을 담은 그의 현대적도예 세계는 그의 성격처럼 온유하고 따뜻하여 번거로움과 무질서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인정과 사색,그리고 은은한 기쁨을 넉넉하게 뿌려주는 안식의 경지다. □연보 ▲1927.12.9 서울출생 개성호수돈녀고 26회 졸업 ▲1945.∼1950.5 이화여자대학교 예림원 미술학부 서양화과(학사) ▲1959.9∼1962.2 이화녀자대학교 대학원(도예전공·석사) ▲1963∼19 81 이화녀자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출강 ▲1965.3∼1966.2 상명녀자사범대학 미술교육과 조교수 ▲1975.3∼현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예미술학과 교수 ▲1961.12 도예개인전(서울중앙공보관) ▲1963.10 도예개인전(〃) ▲1964.11 도예개인전(신문회관) ▲1966.5 도예개인전(신문회관) ▲1967.8 도예개인전(미팔군전시장) ▲1968.8 도예개인전(일본,경도 조화랑) ▲1971.9 도예개인전(신세계백화점 전시장) ▲1975.4 도예개인전(신세계미술관) ▲1978.9 도예개인전(신세계미술관) ▲1981.1.20 도예개인전(미국 뉴욕) ▲1982.1.29 도예개인전(미국 로스앤젤레스) ▲1984.4.24∼4.29 도예개인전(신세계미술관) ▲1961∼1983 대한민국 미술전 출품 ▲1968.7∼1981 대한산업디자인전 초대작가(디자인 포장센터)심사위원 ▲1973 한국현대도예작가전 초대전(신세계미술관) ▲1975 전국공예가 초대전(미술회관)문예진흥원 주최 ▲1976 여유도예전 초대전(신세계미술관) ▲1977 역대 국전수상작품전(국립현대미술관) ▲1979 한·중·일 국제도예전 초대출품(일본명고옥) ▲1979 한국도예가회 창립전(신세계 미술관) ▲1979 한국미술전람회(뉴질랜드) ▲1980.9.27 한국도예가전 회원전 2회(신세계미술관) ▲1980 국전 초대출품(국립현대미술관) ▲1980.7.10∼7.16 도예2인전 일본 매일신문사 주최(일본 동경도 대환백화점) ▲1981 한국도예가회 회원전 3회(신세계미술관) ▲1982.3.6 도예2인전(일본 구주 복강시) ▲1983 도예2인전(일본 대판시) ▲1984.3.15∼3.20 도림전 출품 ▲1981 서울신문사 도예공모전 초대출품 ▲1981∼1990 현대도예전 일본 순회전(10연간) ▲1982 제1회 대한민국미술제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82 서울신문사도예공모전 초대출품·심사위원,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출품(미국) ▲1982 한국현대도예가 회원전 9회(신세계미술관) ▲1983 한독수교 100주년기념출품(독일) ▲1983 서울신문사 도예공모전 초대출품 ▲1968.8 국제미술교수협회 주최 도예세미나(일본,경도) ▲1975.5 한국도예특강 초대(일본 요업시험소) ▲1980.2 자유중국 교육시찰 ▲1983.8.2∼8.20 한일교류전 출품및참가(일본 구주) 대한산업미술가협회 주최 ▲1983.12 MBC초대전 출품(MBC별관 전시관) ▲1986.9 한국현대도예가회 일본 전시 ▲1987.6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출품 ▲1987.8 대한산업미술가협회 출품및 참가(일본 구주) ▲1987.9 서울신문사주최 도예공모전 심사및 초대출품 ▲1989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및 운영위원장 ▲1988 대한산업미술가 협회 이사장 역임 ▲1990 서울현대도예비엔날례 초대출품 ▲1991 대한민국 미술협회 부이사장 ▲1992 서울 공예대전 출품 ▲1993 벨기에 앤트워프 박물관 주최 ▲1993.3.26 한국도예문화 특별전 출품 ▷작 품 집◁ 황종례 도예작품집(미진사간) ▷수상◁ 국무총리상·국전 초대작가상·대한민국 문화예술상 ▷현재◁ 경희대 수원캠퍼스 출강·대한미술산업가협회 회원·한국도자기문화진흥협회이사
  • 재력가검사장들,재산내역 해명 진땀/고위간부 재산공개… 검찰 표정

    ◎용인지역 땅소유자 4명 “투기냄새”/1명이 최고회원권 6개·통장 18개/명화 3점·부인 다이아몬드반지 등 신고 “눈길” ○…27일 검찰은 차관급 공직자중 랭킹 10위내에 검사가 5명이나 포함돼 일반인들로부터 심한 「거부감」을 일으키자 난감한 표정이 역력. 신고가액 평균이 12억5천만원으로 전체 평균보다 2억원 정도가 많게 나타나 『청빈해야할 법 집행자들이 무슨 재산이 그리도 많은가』는 비난이 발표직후 쏟아져 나오면서 대검은 극도의 당혹감 속에 휩싸였다. 발표전날인 26일 자정쯤 거액재산가 검사들에 대해 미리 사전 브리핑까지 하면서 파문을 줄이려던 검찰은 이날까지도 재산형성 과정등을 해명을 하느라 진땀. ○노후 공익사업 희망 ○…검찰인사 뿐만 아니라 차관급 전체 공개자들 가운데 가장 재산이 많은 것으로 판명된 정성진대검중수부장은 여론을 의식했음인지 27일 재산내역에 대해 소상히 설명. 74년 작고한 월파 서민호씨의 사위인 정검사장은 부산 중구 동광동2가 5백69㎡의 토지를 비롯,건물등 부동산을 본인과 배우자명의로다수 소유. 정검사장은 이에대해 『이들 부동산의 대부분은 부산에 살다 87년 작고한 장모가 포목상·임대업 등으로 모아둔 재산』이라고 설명하고 『장모가 물려준 재산은 15∼20년간 처분한 적도 없고 노후에 공익사업을 하려했으며 상속세는 모두 냈다』고 해명. ○84∼87년 집중매입 ○…검찰 「재력가」들 역시 거액 재산의 대부분이 전국 각지의 부동산이어서 『역시 돈 있는 사람은 부동산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또한번 입증. 특히 재력상위랭크자들 가운데서는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일대 땅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투기의혹이 대두.이 일대 땅 소유자들은 변재일부산고검장등 4명. 그런데 이 일대는 80년대 중반부터 개발소문이 나돌아 이들이 84∼87년에 집중 매입한 것은 투기성이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이 제기. ○회원권 단골메뉴 ○…고위층 보유재산 가운데 골프회원권과 헬스클럽회원권등 값비싼 회원권 역시 재산목록에 포함돼 「회원권은 재력가의 단골메뉴」란 사실을 입증. 공개자들 가운데 30여명이 1개에서 많게는 6개까지의 각종 회원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재산이 별로 없어도 회원권은 반드시 보유,『상류사회는 회원권 없이는 못지내느냐』는 반문이 나오기도. 이 가운데 신건법무부차관과 변재일부산고검장·최환대검공안부장등은 모두 6개의 각종 회원권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고 정성진대검중수부장 5개,최명부대구고검장·김현철광주고검장 4개,이건개대전고검장이 3개의 회원권을 소유. ○…공개된 검찰인사의 재산 가운데에서는 귀금속·그림등 동산을 신고한 사람도 있어 눈길. 김유후서울고검장은 변호사였던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조선 숙종때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이 그린 「화조도」1폭과 도상봉의 「정물」,이상범의 「산수」등 3점의 그림을 신고. 김고검장은 또 부인의 1·3캐럿짜리 다이아몬드반지와 비취반지1개를 2천만원 가액으로 신고하기도. 또 김도언대검차장도 부인의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반지를 신고하기도. ○…최영광청주지검장의 경우 본인명의 예금통장 4개를 비롯,부인과 자녀의 것을 합쳐 모두 18개 통장에 8천3백여만원이 입금돼 있는 것으로 신고. 또 서익원 수원지검장은 본인명의 통장 4개를 포함한 가족명의로 된 16개 통장에 1천3백여만원을 입금해 놓았으며 7천만원상당의 주택채권도 보유. 주식의 경우는 박인수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조흥은행 4천7백54주,경기은행 7백70주등 모두 5개 은행의 8천8백3주(시가 1억여원)를 보유하고 김현철광주고검장은 극동전선 3천주등 모두 1만1천5백45주(시가 1억3천9백만원)를 갖고있어 검사들도 주식을 재산형성의 수단으로 삼고 있음을 입증. ○…검찰은 민자당 국회의원들의 재산공개 과정에서 은폐·축소의혹이 주종을 이뤄 물의를 빚었던데 비해 법률을 다루는 공무원답게 재산내역을 정확히 공개했다고 자부.
  • 서예가 김기승씨(이세기의 인물탐구:21)

    ◎“힘차고 남성적인 운필” 원곡체 창안/한자명체 두루 통달… 독창적 변형경지 도달/고 최현배박사도 “한글 본연성품 표출” 칭송/성경구절 작품화 유명… 도산선생 묘비문 등 명필남겨 글씨를 이루기전 작업대앞에 선 원곡 김기승씨의 모습은 신을 향한 기도처럼 절실하고 경건하다. 눈부신 백지위에 붓길이 닿는순간 율동처럼 이어지는 묵향,어느때는 일필휘지,어느 때는 점 하나에도 혼신을 다해 멈출듯 흐느끼는 ▦황은 그 자체가 이미 통신의 경지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니라 신에 의해 움직이는것처럼 힘차게 그어내린 획마다에선 맑고도 밝은 상서로운 향기를 뿜어낸다.그리고 그 몇순간의 긴장은 폭풍전야의 정적인듯 은은히 주위를 압도한다. 원곡의 문향실은 그가 38년간 머물렀던 종로구 적선동에서 이곳 워커힐 아파트로 옮긴지 올해로 만 10년이된다. 요즘도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독교 방송을 들으면서 하루일과를 시작하고 근처 아차산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바로 작업에 임한다. 그리고 하루 2시간에서 3시간,전날 독서로 구상해두었던명언·명구를 마음속에 새겨 우러나오는 진한감동을 작품속에 담아낸다. 그는 글씨를 이루는데 있어 아름다움은 언제나 「선」이어야함을 전제하고 있다.이른바 선하지 않은 것은 미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기술이 피부라면 인격은 근골이다.티없이 청정한 피와 살과 뼈대가 합일될때만 비로소 미의 영혼이 글씨와 글속에 첩식된다는 것이다.순수한 서체에서의 체삽이나 시속기는 천착스러움의 극치다.글이 뜻하는 바를 거르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타내기 위해선 심혼의 혈서로 성자에 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씨 내재의미 중시 「초학자시 불가진형세 선상자성의 재필전」­글씨는 처음 대할때 그 형세를 알수없으니 먼저 글씨가 이루어짐을 생각하면 뜻은 쓰기전에 있게 된다,즉 원곡은 서의 진수는 글씨의 모양에 두기보다 그 내부에 내재된 뜻을 소중하게 여기는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해서·행서·초서·전서·예서등 한자체에 두루 통달하여 일가를 이룬동안에도 그는 한때 중국말로 된 성경을 국전에 출품한 적이 있었다.막상 이를 내놓았으나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때부터 그만의 독특한 원곡체를 창안,한문각체의 독창적 변형을 한글에 적용시킨 이 서체는 한자와의 대련 작품을 쓸때도 조화와 균형을 깨지않는것이 특징이다. 옛날 궁중에서 궁녀들이 소설을 베낄때 사용한 궁체가 부드러운 반흘림의 반행초의 실용글씨라면 원곡체는 한문보다 힘차고 남성적인 운필,구슬을 꿴듯한 우아미보다 먹물이 뚝뚝 듣는 힘의 분출이 돋보이는 서체다. 한글학자 고 최현배박사는 원곡의 한글체를 보고 『산같이 망막하고 강같이 줄기차다.우리의 한글이 제본연의 성품으로 온전히 나타났다』고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의 독창성이 지나쳐 그 자신이 스스로 「전위예술」이라 일컬었던 「묵영기법」은 서예계에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묵영기법이란 청묵의 번짐을 사용하거나 먹물의 농담으로 거듭써서 시각효과를 앞세운 일종의 회화적 서예 회화인 셈이었다. 서예계는 『전위예술,즉 묵영은 서예에서는 있을수 없다』고 발칵 뒤집혔고 심지어는 『전통을모르고 전통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난 예술』로 혹평되기도 했다. ○「묵영기법」 논쟁불러 이때도 젊은감각과 시대에 부응하는 예술을 지향해온 원곡으로서는 전통예술을 지키기 위해선 고루하게 전통만을 고집하기 보다 오히려 여러각도의 실험과 시도를 언해 새로운 조형언어를 발굴,전통의 소중함은 물론 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평생동안 그가 써온 작품은 개인전때마다 40점에서 60점씩 32회.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평소에 아끼는 성경구절들은 그때마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담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육당 최남선의 「삼·일독립선언문」을 비롯,제갈량의 「전후출사표」는 3천자이상,아가서8장 4천여자,무위자연의 노자 「도덕경」5천여언,특히 굴원의 「이소경」의 경우는 사적고증,한자구성·암기 등으로 6개월준비,집묵만도 10일이상 걸린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랜 연륜과 우수사려가 없는 마음가짐으로 인해 그의 글씨에는 향기는 물론 불가사의한 힘이 담겨 있다. 올해나이 84세.그러나 그 음성과 행동에서 연노의 기색은 찾아볼수 없다. 또 서예계 최고 원로의 권위의식 같은것도 없다.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격의없이 친절하고 편안하게 대한다. 1909년 충남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김정현씨와 김취옥여사의 2남중 차남으로 출생.5세때부터 조부인 동효공이 설립한 한문서당 삼언재에서 글씨와 천자문을 배웠고 홍산소년백일장에 나가 한시짓기 장원,11세때 보통학교 2학년에 들어가면서 신교육을 받게됐으나 공주고보 2학년때 일인체조교사를 배척하는 맹휴의 주동자로 지목되는 바람에 서울 휘문고보로 전학,그후 만주로 건너가 봉천 문회고급중학과 상해중국공학대학 경제과에 다녔다. 상해유학시절 흥사단 원동위원부에 입단하여 도산 안창호선생을 모신 독립운동에 가담,국내신문의 주요기사를 발췌정리하여 국내정세를 보고하거나 흥사단 행사때마다 글씨를 잘 쓴다고 해서 식순을 쓰는 일 등을 맡아보기도 했다. ○흥사단서 독립운동 그때부터 대학에서 공부한 경제학보다 글씨 쓰는 일에 심취하여 졸업후 고향에 돌아오자 고장의 명필인 산정 신익선선생에게 본격적으로 글씨를 배웠다. 하루종일 쓴 글씨가 집안마당에 흰눈처럼 수북히 쌓였던 기억은 지금도 그에게 불길같은 작업의지를 당겨준다고 한다. 그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소전 손재형선생에게 사사.『재주는 있으나 헛 공부했다』는 혹독한 질책을 받으면서 그는 구양순 안진경 왕희지의 법첩으로 겨울밤이 지새도록 수련을 쌓아갔다. 봉천 문회고급중학교때 남경서 신학대학을 나온 백영엽목사의 영향을 받아 크리스천이 된 그는 조국에 돌아가면 목사가 되려했으나 글자 한자한자의 그 묘한 성자에 빠져 글씨쓰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그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글씨로 전한다는 의도에서 성경구절을 작품에 담게 되었고 성경구절을 쓴 작품만도 6백여점에 이른다. 새문안교회에 다닌지 45년,출중한 건강을 타고난 그는 담배나 커피·술은 입게 대지 않는다. 산부인과 의사인 부인 차인실씨(82)와는 1939년에 결혼,외아들인 명호씨(53·미앨라배마에서 병원)와 4녀가 있다. 원곡은 주변을 조금씩 정리해 본다는 뜻에서 지난83년 그가 아끼던 자작품 2백87점을 골라 국립현대미술관에 보내던날,아들 딸을 결혼시켜 내보낼때보다 더 가슴저미는 허망함과 섭섭함에 그날밤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한적이 있다. 지난 90년에는 그가 한평생동안 소장해왔던 추사 김정희의 「고시행서」위창 오세창·김구선생의 글씨,청전 이상범과 절친했던 운보 김기창,청계 정종여의 금물로 그린 「독수리」등 30억 상당의 골동서화를 아들의 모교인 연대박물관에 기증. 1958년 제1회 개인전을 필두로 신세계미술관이 주관하는 개인전이 끝나면 부인과 자녀들이 권유하는대로 이대와 고려대 중앙대등 각 대학에 작품을 나누어 보낸다. ○33회째 개인전 준비 그가 제정한 원곡서예상은 올해 16회째,오는 10월25일부터 제33회 원곡서예개인전을 역시 신세계미술관에서 갖게된다. 도산 안창호선생의 묘비문을 비롯,수백여개의 비문과 동상문 현판글씨 시비등 전국 방방곡곡에 그의 글씨가 산재해 있으나 단 한글자도 그는 허트로 내놓는 일은 없다. 그의 마음가짐은 「논어」에 나오는­ 「불지명이면 무이위군자야요 불지례면 무이립야요 불지언이면 무이지인야라(천명을 알지못하면 군자가 될수 없고 예를 모르면 세상에 나서 행세할수 없고 말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를 실천하며 앞만보고 살아왔다.분한이 있으면 향기로운 글,빛을 발하는 글에 이를수 없기 때문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대덕약곡」(큰덕은 골짜기 같아야 한다)」에서 따온 그의 아호인 원곡처럼 그래서 나를 낮추고 남을 섬기고 마음을 텅비운 맑고 깊은 골짜기,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포용하면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 정진하는 예인의 자세를 지킬 뿐이다. □연보 ▲1909년 충남 부여 홍산출생 ▲1927년 만주 봉천 문회고급중학졸업 ▲28년 흥사단 원동위원부입단 안창호 김구 이동령선생이 이끄는 한국독립당입당 ▲1932년 중국 상해 중국 공학대학부 경제과 졸업 ▲1936년 소전 손재형선생사사 ▲1939년 조선서도 진흥회 주최 전국서도전 입선 ▲1942년 중국 상해서 전중국서화전 입선 ▲1946년 전국 서화전 이등상 ▲1949년 제1회국전 서예부 특선(문교부장관상) ▲53∼55년 국전 제2·3·4회 특선 ▲〃 대성 서예학원 설립 ▲〃 서울대·숙대·상명여대 출강(15년간) ▲56∼58년 국전 제5·6·7회 추천작가(출품) ▲58년 제1회 원곡 서예전 ▲59·60년 〃 제8·9회 초대작가(출품) ▲61∼82년 국전 제10∼30회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 ▲59∼89년 원곡서예전 제2회∼29회 개최 ▲1976년 미국·유럽 미술여행 ▲78년 제1회 원곡서예상 제정 ▲79년 동아일보 주최 원곡서예 회고전 ▲79년 북유럽및 캐나다 미술여행 ▲〃 제1회 원곡 미술상 제정 시상 ▲79∼92년 제2∼15회 원곡서예상 시상 ▲83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자작 대표작(2백87점 기증) ▲84년 주일 한국 대사관 한국문화원 초대 서예전 ▲87년 봄베이·카이로등 유럽지역 여행 ▲기독교 미술인 협최 회장역임 고왕경·김강경·경천애인·시편23편·이소경·삼일독립선언문·애경·전후출사표·1오일삼성오신·불원천불우인·묵시록등 1천여점 은관문화훈장 한국서예사 원곡서문집
  • 수필가 피천득씨(이세기의 인물탐구:16)

    ◎티없이 순수한 글에 고결한 기품 가득/자연·인간심리의 섬세한 현상들 묘사 주력/황홀·찬란하지 않은 언어로 인생향취 음미/부모 일찍 여의고 도산·춘원 등에 문학·인생의 멋 배워 『난영이 잘 있나요?』하자 『그럼 잘있구 말구.세영이 엄마,난영이 데려와요』한다. 금예 피천득씨가 사는 구반포아파트에는 노부부와 난영이가 있다.어린 난영을 위해 그는 지금도 날마다 낯을 씻기고 머리에 빗질을 해주고 1주일에 한번씩 목욕을 시킨다.난영은 요즘 엷은 청회색 봄쉐터에 멜방이 달린 남색바지,그보다 더짙은 감색 양말을 신고 있다. 난영은 피천득씨의 또하나의 딸이다.그의 「새털같은 머리칼을 적시며」의 주인공인 딸 서영이 미국으로 가버리자 마음을 달랠 수 없던 그는 대신 난영을 돌보게 되었다. 난영은 지금부터 40년전,그가 하버드대 연구교수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없는 서영을 위해 사온 서양인형이다.이제 금빛 머리칼은 퇴색한 브론드지만 천진하고 밝은 얼굴,푸르고 맑은 눈동자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부모의 정성과 손길이 그만큼 자상했던 탓이리라.난영의 봄쉐터와 바지 골무만한 털 양말은 부인 임진호여사(78)가 부군이 시키는대로 손수 떠서 입힌 것이다. 우리는 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금예의 「인연」이란 수필을 잊지 못한다. 10대와 20대 40대에 걸쳐 세번 만나게된 한 소녀와의 운명적 인연을 짤막한 글속에서 산호와 진주처럼 표현하여 어른이 된 지금도 사춘기의 애잔한 추억으로 남게하고 있다. 그는 어느 글에서나 사람의 도리와 경우,삶의 기쁨과 행복을 전하면서 이른바 「동천년로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을 추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의 절개와 기품을 꼿꼿이 지키고 있다. ○삶의 행복 글속에 담아 그의 시의 소재는 언제나 자연과 인간 심리의 섬세한 현상을 교차시키는 것이 특징이다.설움과 심사가 「구름같이」피어나고 「물결같이」일어난다.그리고 「저 바다 소리칠때마다」그의 가슴이 뛰고 「저 파도 들이칠때마다」그의 피는 끓으며 그의 마음은 바다로 하늘로 달음질친다. 그의 글들은 티없는 옥천이다.그는 정수만을 쓰기위해 혼신을 다하고 온오을 드러내는데 전력하며 그의 처신은 언제 어디에서나 경홀(경홀)과 당혹함이 없다.작은것을 말하면서 큰 것을 암시하고 비탄에 앞서 비장미의 감동을 담고 있다. 그가 「수필」에서 쓴 것처럼 그의 「수필은 청자연적이다.수필은 난이요,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서른여섯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그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고」「황홀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않고」「언제나 온아우미」하다. 금예는 서울사람이다.종로 화신 건너편에서 신전을 열어 가죽신장사로 부자가 된 피원근씨와 김수성여사의 독자로 태어났다.그러나 7세때 부친을 잃은 그는 서화와 거문고에 뛰어난 어머니로부터 예능과 문장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름이면 모시,겨울이면 옥양목」,모시처럼 섬세하고 깔끔하고 옥양목처럼 깨끗하고 차가운 「엄마」가 그에게 있었던 것은 「타고난 영광」이라고 표현한다.「엄마같은 애인」「엄마같은 아내」를 갖고싶어했고 또하나 간절한 소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는 어느 글에서나 그의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그가 10세때 30세의 나이로 어머니마저 타계하자 어머니에 대한 한과 그리움이 시와 수필속에서 절절히 사무치게 된것같다.그래서 딸 서영을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서영의 일거 일동을 섬세하게 지키는건 물론 유치원서 국민학교를 졸업할때까지 거의 매일이다시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곤 했다.딸도 아빠를 따르고 섬기고 아빠가 원치않는 것은 어기지 않는다.그런 서영이 서울대 화학과 졸업후 미국으로 가버렸을때의 허전함과 허탈은 누구도 쉽게 짐작할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딸과 어머니외에 그의 구원의 여상은 성모마리아와 단테의 베아트리체,헤나의 파비올라,「둘이서 걸어가기엔 좀 좁은 길이라고 여겨지는 알리사」,그리고 「자존심이 강하여 싱싱하면서도 수줍어할때가 있는 푸른나무와 같은 여성」「마음을 허공에 둘지언정 아무것으로나 채우지 않으며」신의 존재·영혼의 존엄성·진리와 사랑의 기도를 열심히 믿으려고 애쓰는 여성이다. 또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하고 동정을 주는데 인색치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여기는 미소같은 유머를 지닌 사람들에게 그는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1926년 춘원의 권유로 상해유학을 결심한것은 공부도 공부지만 도산 안창호선생을 만날수 있다는 호기심과 기대도 그 하나의 이유가 된다. 큰 기대에는 환멸이나 실망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도산을 처음본 순간의 기쁨은 마치 김강산을 처음 봤을때의 감격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우렁차면서도 날카롭지않고 청아하면서도 부드럽고 위엄이 있으나 상대방을 억압하지 않는」용모와 풍채와 음성이 그랬다. ○16세때 상해로 유학 병들어 누웠을때 그를 상해요양소에 입원시켰고 겨울 아침마다 문병하는등 끔찍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32년 6월 도산이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고국으로 압송되고 그가 순국했을때도 일경의 감시가 두려워 장례식에 참석치 못한것은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 보다더 부끄러운 일」로 자책하고 있다. 춘원 이광수역시 도산못지않게 그의 인생과 문학에 커다란 획을 그어준 잊을수없는 인물의 하나다. 상해에서 돌아와 3년간 춘원댁에 기거하고 있을때 춘원을 그에게 「금아」란 호를 지어 주었다.워즈워스,도연명을 읽게 했으며 마음가짐이 항상 밝고 맑은 「광풍명월」,어떤 경우에도 구애없이 순응하는 「행운류수」의 행동을 깨우쳐준 장본인이다.상해 호강대(호강=후장)선배인 용예(주요한) 여심(주요섭) 소년시대때부터의 치옹 윤오영과의 청담·청교도 빼놓을 수 없지만 이제 시간이 지나 그들은 먼길을 먼저 떠나버렸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소팽을 듣고 아파트 주변을 산책한다.전에는 곧잘 비원에 가곤 안내원의 인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싫어서 시내에 나오면 덕수궁에나 들르고 있다. 담배·커피는 물론 술은 입에 대지못한다.체질상 마시지는 못해도 「거품이 풍기는 맥주·빨간 포도주·환희소리를 내며 터지는 샴페인」등 술에 관한 이야기라면 수주의 「명정사십년」못지 않게 쓸 수 있을 것같다. 그의 생활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자·문필가로서의 청빈을 면치않는다.39년 신혼초에는 성균관동재에 방한칸을 빌려 살았고 어느해엔 1년에 여섯번이나 이사,방둘짜리 영단주택,이 아파트로 이사오기 12년전까지만해도 버스가 15분마다 한번씩 오는 하남시 망월동 9평짜리 집에 살면서 강아지를 키우고 꽃과 나무도 심었다. 3남매가 결혼후 모두 미국으로 떠나자 집을 지닐수 없어 아파트생활을 하게 됐고 「학문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비록 오막살이라도 누추하지 않다」는 옛글과 맞지않아 『늙은 아내탓을 하지만 기름때는 아파트로 온것은 분에 넘치는 노릇』이라고 얼굴을 붉힌다. 현관에 들어서면 휑덩그런 거실,커튼도 소파하나도 없다.그 흔한 붙박이 장식장도 없이 밥상겸 집필상으로 쓰는 오래된 교자상 하나,서재에도 옛날 딸이 쓰던 책상과 제자들이 돈을 모아 사다준 책상위에 캐나다에서 치과기공소를 경영하는 장남(세영씨·52·전연극인)미네소타의 소아과의사인 차남(수영씨·50)이제 MIT교수인 독일인 남편과 함께 세계적 물리학자이며 보스턴대 교수가된 딸 서영씨(48)가족사진들을 나란히 늘어놓고 도산과 아인슈타인,잉그리드 버그먼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사진,르노아르 세잔의 프린트 그림뿐.표구된 그림이 벽에 기댄채로 서있기에 『왜 그림을 걸지 않으시냐?』고 물으니 『벽에 못을 박기가 싫어서』라고 대답한다. ○작은 기쁨에도 만족 그는 언제나 필요한것만큼만 소유하며 작은 기쁨 작은 아름다움에 만족하고 있다.일찍이 그런 그를 가리켜 월탄이 『개결이 지나치다』고 한것은 그를 꿰뚫어 아는 명언에 틀림없다. 비오는 날이면 미술전시와 음악회 프로그램,묶어두었던 편지와 사진을 풀어보면서 『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며 사십까지도 아니다.어느나이나 다 살만하다』고 확인한다. 이제 기쁨과 슬픔을 다 겪은후 맑고 침착한 눈으로 인생을 관조하려는 그는 여전히 『사랑과 슬픔은 남에게 보이지 않을것』을 원칙으로 지키려 한다. 요즘은 수필보다 시에 집착하여 최근에는 「아침이슬 같은/무지개 같은/그 순간이 있었으니/비바람 같은/파도 같은/그 순간이 있었으니…」지난 시간을 돌아본 시를 발표했다.밤에는 그의 곁에 난영을 재우고 새근새근 잠든 난영의 평화로운 숨결속에 그의 모든 그리움과 외로움과 시름을 묻는다.그리고 그는 이런 만년의 기쁨과 여유와 평화를 혼자 누리는것이 다른이들에게 송구스럽다면서 소년처럼 조용히 웃어보인다. □연보 ▲1910년 5월29일(음 4월21일) 서울 종로출생 ▲1932년 서울 제일고보 부속국민학교 졸업 ▲1923년 〃 제일고보 입학 ▲1926년 제일고보 4년 재학시 중국 상해로 유학.상해 공부국 Thomas Hanbury public school에서 수학. ▲1929년 상해 호강 대학교(University of shanghai)예과 수학.도산 안창호선생에 사사 ▲1931년 호강대학교 영문과 진학 ▲1933년 신동아에 「기다리는 편지」「나의 파일」 등 발표로 문필 생활시작 ▲1934년 재학중 수차 구국하여 춘원 이광수택 유숙 청교.(이무렵 현진건·이상범·이은상·인촌·고하교류) 금강산서 1년체류(시작 「단풍」외) ▲1937년 상해 오강대학교 영문과 볼업.서울 중앙고등학원 교원 ▲1945년 경성대학교 예과교수 ▲1951년 서울대 사대교수 ▲1954년 미 하버드대에서 연구 ▲1959년 「금아시문선」(경우사간) ▲1967년 서울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주임교수 ▲1969년 미 하버드대 등 여러대학에서 한국문와강의 British Council초청으로 영국방문.시집 「산호와 진주」(일조각간) 영문판 「A Flute Player」 출간 ▲1974년 서울대 퇴직후 미국여행 ▲1976년 수필집 「수필」(범우문고간) 세익스피어 「소네트시집」(정음문고간) ▲1980년 「금아문선」「금아시선」(일조각간) ▲1987년 「피천득시집」(범우문고간) 이후 시작 「새」 「너」 「기억만이」 「만남」 「그뒷 이야기」 「저 안개속에」 등 계속 발표중.
  • 극단창단/체질개선/침체연극계 활로찾기 모색

    ◎극단 무천… 프러덕션제 내걸고 출범/한양레퍼토리,대학생 인턴십제 도입/연우무대… 창작연구발표 부활로 활기 침체국면에 빠져있는 연극계가 야심적인 극단들의 잇단 창단과 체질개선을 통해 변신을 꾀하려는 기존 극단들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지난 5월 프로덕션제를 내걸고 극단 무천(예술감독 김아라)이 창단된데 이어 최형인 한양대교수가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극단 한양레퍼토리를 창단,오는 30일 호암아트홀에서 창단공연을 갖는다.극단 한양레퍼토리는 국내 극단으로는 드물게 레퍼토리 시스템과 대학 재학생 인턴쉽제도를 도입,연극의 대중화와 연극인의 전문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레퍼토리 시스템은 극단 자체 내의 장기적인 계획아래 여러 작품을 계절별 혹은 비슷한 기간동안 여러작품을 동시에 무대에 올리는 방식이다. 이제도는 연극인에게는 올바른 전문직업의식과 재충전의 기회를,관객에게는 기호에 따라 작품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어 구미에서는 이미 일반화돼있다.이와함께 단기공연을 전제한 대중스타등 외부인사의 영입체제에서 벗어나 연극계 자체 역량을 계발해 능력있는 작가,연기자,무대미술가들의 양성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고있다. 6개월여에 걸친 창단준비끝에 오는 11월8일까지 무대에 올리는 작품은 영국 극작가 윌리 러셀원작의 뮤지컬 「핏줄」로 국내 초연이다.이작품을 직접 번역,연출,출연까지 하는 최형인교수는 『관객과 배우를 위한 극단을 만들고 싶었다』고 창단이유를 소개한다.그러면서 『뮤지컬이 우리 관객들에게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어 창단작품으로 정했지만 좋은 창작뮤지컬이 없어 부득이하게 외국작품을 고르게 됐다.그러나 이작품은 오락성에 치중했던 기존의 뮤지컬과는 달리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해 중장년층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권한다. 뮤지컬 「핏줄」은 운명적으로 헤어져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 형제의 변모과정과 린다를 가운데 두고 두 형제가 벌이는 삼각관계,가난과 무지로 남에게 자식을 준 한 여인의 시련등으로 엮어져있다.원작 손상없이 우리 정서에 맞는 어휘를 골라 대사전달에 각별히 신경을 써 대사위주의 노래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문성근,최형인,박승태,박용수,류태호,임유영등이 출연한다.극단 한양레퍼토리는 매년 봄·여름·가을 세차례 정기공연을 예정하고 있으며 내년치 공연작품도 이미 확정해놓고있다. 한편 극단해체라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나돌던 극단 연우무대는 지난 78년 창단 당시 대표를 지낸 정한용씨가 다시 대표를 맡고 김광림씨를 예술감독으로 위촉하면서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연우무대가 극단운영에 변화를 모색하고 나선 것은 무엇보다도 지난 10여년동안 연극계 대표적인 위치를 차지해오다 「해체론」이 거론될 정도로 최근들어 그 활동이 유야무야됐기 때문.극단측은 시대적·문화적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레퍼토리개발의 소홀과 80년대의 주역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신진양성의 실패에서 그 원인을 찾고 새로운 지표를 설정하기에 이르렀다.극단 연우무대가 표방하고 나선 새 지표는 연극성과 표현영역의 확대,극적 완성도의 제고등 세가지.변화의 첫단계로 창단때 실험적인작업으로 극단에 활기를 불어놓었던 창작연구발표를 부활시켰다.열한번째 창작연구발표무대가 되는 이번공연에는 윤정선작「해질녘」(21∼22일)과 이상범작「마술가게」(24∼25일)등 두편이 선보인다.한편 「마술가게」는 오는 12월1∼14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다시 공연될 예정이다. 극단 연우무대는 전속 단원없이 공연작품에 따라 연기자들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기획팀만을 운영하되 좋은 연극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숙련된 연기자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젊은 연기자들의 훈련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소더비/한국미술품 연2회 단독경매

    ◎올부터 뉴욕본사서 6월·12월에 정기개최/16세기 족자등 고미술품위주로 선정/고 김환기화백등 현대작품 8점 첫선/마이클 에인슬리회장 내한… 내일 공식발표계획 지난해 10월22일 한국고미술품 단독경매를 최초로 실시한 소더비사가 올해부터 연2회 한국미술품단독경매를 뉴욕본사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시기는 6월과 12월초로 정해졌고 고미술품뿐 아니라 근·현대미술품도 함께 취급할 예정이다.또 생존작가를 포함시킨다는 원칙아래 생존작가선정 문제에 대해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첫 한국미술품단독경매는 오는 6월5일 뉴욕 소더비경매장에서 이뤄진다. 고미술위주로 80여점이 출품되며 이번 경매에는 특히 병풍 족자에 훌륭한 작품이 많고 16세기것으로 추정되는 한 족자는 그 예술성과 상품성이 매우 뛰어나 지난해 사상최고가(13억원)로 낙찰된 「수월관음도」의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 경매는 소더비사상 최초로 한국 근·현대미술품 8∼9점이 출품될 예정으로 재불 물방울작가 김창렬씨 작품1점,청전 이상범의 작품1점,고 김환기화백의 과슈 5∼6점의 출품이 확정돼 있고,김환기화백의 63연작 유화1점의 출품여부가 곧 확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올상반기에 생존작가를 포함한 한국현대미술작가 30명정도의 작품을 대규모로 경매한다는 소식이 올초 뉴욕 본사로부터 흘러나왔으나 이 경매는 후반기 12월경매때로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매에는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생존작가 20여명의 이름이 거론돼 국내화단에서도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소더비측은 시장성과 작업성취도를 감안하여 작가선정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작고작가이며 국내 최고가(호당1억원수준)를 호가하고있는 박수근의 작품은 국제미술시장 가격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분간 취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올해로 한국진출 4년을 맞는 소더비사는 한국미술시장에의 본격침투를 서두르지않고 세계미술시장에 한국미술을 적극소개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이미지정립을 앞세우고 있다. 이를테면 한국에 서울연락사무소란 지점형태를 두고있는데 이에따라한국내에서의 소더비경매는 불가능한 상태이며 경매가 가능한 지사로서 법인등록도 현재로서는 서두르지 않고있다. 그러나 소더비의 최고사령관인 마이클 에인슬리(52·MichaelAinslie)회장이 4일밤 내한하고 6일 공식기자회견을 통해 소더비사의 한국미술품 취급문제등을 상세히 밝힐만큼 미술품수입개방 2년을 맞은 한국시장에 대한 관심을 퍽 지대한 편이다. 한국내에서의 소더비행사는 오는 가을쯤 뉴욕에서 가장 현대적이며 인기를 끌고있는 판화40여종을 가져와 전시를 한다는 것과 아직은 구상단계이지만 연말쯤 TV와의 협조로 실시하는 자선경매를 타진중이다. 한편 소더비에 한국진출의 우선권을 놓친 크리스티는 지난해 10월24일 한국현대미술가 김흥수씨의 작품 6점을 경매에 내놓아 한국미술품에의 관심도를 보였는데,4월중순쯤 크리스티회장이 내한하여 한국진출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크리스티의 한국진출은 소더비와는 달리 국내화상과의 합작형태가 고려중이어서 한국미술시장 공략이 처음부터 노골화될 전망이다.
  • 주은파 지하조직 「해돋이」적발/3명 구속

    ◎현대자 불법 노사분규 배후조정/다른 좌익조직 4∼5개 회사내 활동 확인 【창원】 국가안전기획부 경남지부는 21일 현대자동차 노사분규와 관련,배후에서 분규를 조종해온 「주사파」지하조직인 「해돋이」조직원 김진규(28·현대자동차노조 정책연구부차장)김병우(26·〃부원)김재권씨(26·〃)등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또 노사분규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입원치료중인 서영호씨(30·현대노조 정책연구부 부장)는 불구속 입건하고 가담정도가 경미한 김태홍씨(28·현대자동차노조원)는 훈방조치했다. 서씨등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학습해오면서 주사파의 하부조직 「해돋이」의 핵심조직원으로 활동,현대자동차노조 전임 이상범위원장을 반민주세력으로 몰아 퇴진시키고 이헌구위원장을 당선시켜 지난달 1월 현대자동차노조의 불법파업을 배후에서 조종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안기부 경남지부는 이번 수사를 통해 현대자동차노조 내부에 아직 4∼5개의 지하 좌익조직이 활동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정모씨등 6명에 대한 신원과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 통합시조시인협 새 회장/정완영씨(인터뷰)

    ◎“분열청간,한국문학의 종가위상 높이겠다” 『나뉘어 있던 협회가 한데 합친데 무엇보다 기쁩니다』 19일 상오11시 한글회관에서 있었던 한국시조시인협회 통합총회에서 새 회장에 추대된 정완영씨(72).그는 자신이 회장이 된 것보다 분열을 겪었던 협회가 통합된데 대해 더욱 의미를 두었다. 『그간 협회의 분열로 신인이나 지방시인들이 특히 설 자리를 몰라 애를 태웠지요.그러나 이제 깨끗이 화합을 이루었습니다』 회원 5백여 명중 1백70명 가량이 참석한 이날 총회에서 정씨는 통합을 전제로 새 회장직을 받아들였다.『조직관리엔 문외한이지만 분열을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였다』고 정씨는 덧붙였다.이로써 지난해초 선거인단 선거에서 이상범씨가 회장으로 선출된 뒤 도덕성 시비 끝에 이상범·이태극씨를 중심으로 하는 두 집행부로 갈리었던 한국시조시인협회가 1년간의 파행과 난항을 겪은 후 통합문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제까지 내부에서 소모시켜왔던 역량을 대외적으로 발산,한국문학의 종가인 시조의 위상을 높이고 회원들의 권익을되찾겠습니다』 이밖에도 정회장은 협회기관지와 협회상을 계속 유지하고 1년에 두번의 세미나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시조시인협회는 19일 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이우종 이근배 이은방 서벌 김준 등 5명을 뽑았다.
  • 삼성,2백17명 승진

    삼성그룹은 26일 제일제당 윤재우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총 2백17명에 달하는 창업이래 최대규모의 임원승진 및 전보인사를 단행했다. ◇전무→부사장=△제일제당 윤재우·박영구 △제일모직 유현식 △삼성전자 정담·이윤우 △삼성코닝 홍석현 △삼성중공업 이수증·김무 △삼성종합건설 박창선 ◇상무→전무=△삼성물산 이진우·조정헌·최성래 △제일제당 남창현·박영화△제일합섬 김영기·김순택 △삼성전자 문병대·서재설·이승규 △삼성항공 서요원 △삼성종합건설 천영신 △삼성엔지니어링 이부민 △삼성생명 황규헌·이대희 △제일기획 송철호 ◇이사→상무=△삼성물산 이송환 김영휘 박순정 조용상 정우택 △제일제당 백승래 천영희 △제일합섬 고홍식 △삼성전자 정준명 한정낙 김종기 김진기 박앙서 한용외 배병관 최진호 이충전 신창대 △미주전자 송보순 △삼성시계 강윤구 △삼성종합화학 손태영△삼성중공업 손영일 이상범 정희섭 전재각 △삼성종합건설 최락민 노명일 △삼성생명 유태전 △안국화재 박준배 △중앙개발 김성재 △호텔신라 배동만 ◇대우이사→이사=△삼성물산 정태범 이용호 문대윤 김용주 이수철 지승림 △제일제당 김주형 김종원 △제일모직 제진훈 김희준 △삼성전자 최병호 황선우 김영기 이원향 조성림 강호문 한영철 이홍원 김철동 김경수 이길동 유석렬 △미주전자 홍명수 △삼성전관 이인철 정희범 원인기 이동걸 이 실 △삼성전기 이상순 박건양 △삼성코닝 김주만 박규환 이하준 △삼성항공 변동선 △석유화학 공영건 △종합화학 박응대 송년달 남상일 △삼성중공업 조광제 이수창 서종일 구회득 나창근 김학순 권순광 △삼성종합건설 배기명 조원효 이홍재 △삼성엔지니어링 장극두 장중영 △삼성생명 홍석원 문광수 백재기 김순환 이종근 △안국화재 장용익 △호텔신라 백운태 △삼성데이타시스템 김종환 박량규△경제연구소 김형동 ◇관계사 전출 △삼성물산 부사장 김재우 전무 이중구 〃김헌출 이사 윤석하 △삼성항공 부사장 노석호 △삼성생명 부사장 윤재우 △미주전자 부사장 정담 △제일제당 전무 지창렬 이사 원근명 △삼성종합건설 전무 한행수 △석유화학 전무 이연 상무 성홍제 △삼성전자 상무 이상현 이사 김우희 △신용카드상무 서청원 △제일기획 상무 강윤구 △삼성전관 상무 최락민 이사 안기성 △제일합섬 상무 김성재 이사대우 구회득 △삼성데이타시스템 이사 임인혁 △삼성전기 이사 성영석 △삼성엔지니어링 이사 김강동
  • 지하철취객 대상/6천여만원 훔쳐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24일 지하철역 및 전동차 안에서 귀가길의 취객을 상대로 6천여만원어치의 금품을 털어온 이상범씨(25·전과7범·중구 만리동 194) 등 소매치기 4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강모씨(30)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하오11시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역부근 지하철 2호선 전동차 안에서 술에 취해 졸고 있던 정모씨(52·사업·용산구 한남동)의 양복안주머니를 뒤져 현금과 수표 등 3백50만원이든 지갑을 훔친 것을 비롯,지난해 8월부터 모두 1백여 차례에 걸쳐 6천여만원어치를 털어 왔다는 것이다.
  • 노 대통령 주재 청와대토론… 각계발언 요약

    ◎“수출만이 살길…일관정책 추진을”/“세계잉여의 10% 기술연구 투입을”/학계/“불로소득 근절로 「박탈감」 해소해야”/노조/노대통령/“「보고 위한 보고」 말고 소신행정 펴라” 노태우대통령 주재로 14일 상오 청와대 영빈관에서 2시간35분간 열린 「제조업경쟁력 강화대책 보고회의」는 관련부처 장관들의 보고가 끝난 뒤 이봉서 상공부장관의 사회로 자유토론을 벌였다. 다음은 1시간에 걸쳐 진행된 자유토론내용이 요지. ○기능인 우대책 없나 ▲조완규 서울대총장=근래들어와서 임금상승,근로의욕감퇴,선진국의 기술장벽,자체기술혁신의 한계 등으로 인해 제조업의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앞으로 생산성향상,기술개발촉진,효율성제고,양질의 기술,기능인력확보로 경쟁력 후퇴를 막아야 한다. 학계 등에서는 2조∼3조원 세계잉여금 가운데 10% 정도를 할애해 기술개발에 투자하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기술개발투자는 우리가 GNP(국민총생산)의 2% 선이나 선진국은 3%이며 전체규모를 따지면 선진국의 30분의 1∼50분의 1에 그치고 있다. 경쟁력강화를 위한 각 부처대책 추진에 따른 재원은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그 배분방향은 무엇이냐. 연구인력의 효율화를 위한 관련부처의 협조체제는 어떻게 되나. 기능인력이 긍지를 갖고 평생동안 거기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우대방안은 없느냐. ▲이경훈 한국공작기계협회장(대우중공업 사장)=고금리하에서 기업자금 조달사정이 어려워 자동화·투자확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국산공작기계가 외국산에 비해 손색이 없는데 조건이 좋은 외화자금사용을 위해 외국산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 자금을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해달라. ▲최각규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현재 기술개발투자가 GNP의 2%이나 오는 96년까지는 4%선으로 끌어 올려나갈 것이다. 앞으로 정부예산편성시 이 부분이 결코 소홀히 취급되지 않도록 하겠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민간기업도 기술투자를 함께 늘려나가야 한다. 정부내 과학기술심의회의 기능을 강화하여 종합적인 체제하에서 상호연관성을 유지,최대의 효율성을 기하겠다. ○대출상환 피하기도 ▲정영의재무부장관=금리문제는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 경우 금리의 제조업원가 구성비가 5%인데 비해 경쟁국인 일본이나 대만은 2% 전후인 점도 잘 알고 있다.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물가수준·통화사정·금융발전정도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통화를 늘리면서 금리를 낮추면 물가가 어려워진다. 기업의 협조를 얻고 금융시장의 깊이와 폭을 심화하여 금리수준의 안정화를 꾀해 나가겠다. 재정에서 설비지원자금 등을 통해 이차를 보전해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기업측에서도 돈을 빌려갔다가 여유자금이 있어도 다시 빌리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상환하지 않는 사례가 많은데 이런 점도 지양해 나가야 한다. ▲최종태 서울대 경영대교수=학교중심의 기술기능교육을 현장에 적합한 기술인력 배출방향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현장의 기술인력이 계속하여 제조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라. ○밀어주면 세계 2위 ▲구자학 전자공업진흥협회장=전자공업의 3대요소는 고급인렵공급·자금지원·과학발전이다. 90년도 반도체생산을 위한전자업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35.9%에 불과하다.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는 50% 수준을 넘는다. 만약 정부가 선진국 수준의 지원을 해준다면 오는 2000년까지는 미국을 앞질러 전세계 반도체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이 품목에서 1백50억달러어치를 수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직한 사회 이뤄야 ▲이상범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근로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부동산투기 등 불로소득을 근절시켜야 한다. 그리고 사회지도층이 각성하여 깨끗한 정치,정직한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 만약 기업이나 정부가 근로자의 내집마련의 꿈 실현 등 복지후생 향상을 기해준다면 임금의 한자리수 동결에 동의할 수 있다. 고정봉급을 받는 근로자의 세금이 몇억짜리 부동산의 재산세보다 더 무겁다. 불로소득에 대한 세제강화를 통해 근로자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한다. ▲윤형섭 교육부장관=교육과 산업현장의 연계를 위해 교육내용·교과과정·교육방법을 개선해 나가겠다. 이런 문제는 범정부적·범국가적 차원에서 산업계와 공동으로 노력해 나가야 한다.▲최부총리=반도체개발에 대한 정부지원도 이제 40%선에 육박했다. 좀더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규모가 더 커져야 한다. 근로의욕고취를 위해 정부로서는 무엇보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부동산투기 등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막겠다. 근로자주택건설도 2백만호 주택건설계획의 하나로 앞당겨 추진하고 있다. ○산학연계교육 강화 ▲최병렬 노동부장관=지금 정부내에서 산업평화와 이를 통한 근로의욕고취를 위해 종합적이고 다양한 방안을 강구중에 있다. 곧 국민들에게 보고드릴 예정이다. ▲노대통령=지난번에 정부·정계지도층이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일을 저질러 매우 송구하다고 말씀드렸다. 각계 원로들과 만나 자문을 받았는데 어느 한분이 「이런 풍토를 고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혁명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든 지도층이 다썩었다. 이들을 모두 혁명적으로 잘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만약 민주주의를 안해도 좋다면 한달안에 이들을 다스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6·29 선언에서 밝혔듯이 내 목숨을 걸어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했다. 민주주의원칙을 지키면서 한꺼번에 이를 달성할 수는 없다. 독재방법은 순간적인 효과는 있으나 오래 지속은 못간다. 민주주의 기본틀을 조금이라도 손상시켜서는 안된다』고 말했지요. 사회지도층의 정직성 회복얘기가 나와 먼저 이 말씀을 드렸다. ○세계제일 의지 중요 경영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세계 제1의 기업이 되겠다고 의지를 보일때 어느 근로자인들 따라오지 않겠는가. 그동안 제조업대책을 위시하여 많은 보고를 장관들로부터 받았지만 그중에는 상당부분이 보고를 위한 보고가 많았다. 앞으로 장관들은 실천·실행이 어려운 것은 아예 보고도 하지말라. 정책추진에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 옳다고 판단되면 소신있게 추진하라. 지금 우리는 계속 좋은 물건을 만들어 세계에 파는 길만이 살길이다. 그리고 어떤 부처는 국가이익보다 부처별 할거주의로 개벌부처이익을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앞으로 부처이익만 주장하는 공무원은 사표를 쓰라. 앞으로 분기별로 내가 직접 이 회의를 주재하겠다. 정부·기업·근로자가 다시 한번 힘을 합쳐 일어서자.
  • 유명 화가 가짜그림 15억대 팔아/2개파 4명 구속

    ◎이중섭 작품등 모작,가짜 낙관 찍어/5백여점 유통… 1점에 수억대 홋가 서울지검 특수2부(김영철부장검사 김성준검사)는 2일 단원 김홍도,겸재 정선 등 옛 화가와 김환기·이중섭·남관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모방해 그린 가짜 그림 15억원대를 팔아온 그림 위작조직 2개파를 적발,이태희씨(45·용산구 후암동 장우오피스텔 201호) 등 화가 2명과 김윤조씨(45·예일화랑 대표·종로구 낙원동 59의10) 등 판매책 2명 등 모두 4명을 저작권법 위반 및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화가 권춘식씨(44·종로구 옥인동 66)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이들이 모작한 남관의 1백호짜리 추상화와 정선의 10호짜리 신선도 등 가짜 그림 15점과 가짜 그림을 만드는데 사용한 추사 김정희,이당 김은호,오원 장승업 등의 가짜 낙관 1백12개 및 「겸재도록」 등 화첩,유명그림 슬라이드,유명 화가 사인첩 등 5백여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현대화가와 옛 화가의 화풍을 모방하고 가짜 낙관과 사인을 사용해 가짜그림을 만들어 팔아온 사람을 저작권법 위반혐의로 처벌한 것은 처음이다. 구속된 이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집 화실에서 고 김환기화백의 6호짜리 여인상을 위작해 구속된 김씨를 통해 2천만원에 팔아넘기는 등 지난 87년 1월부터 3년간 김환기,남관,박수근화백 등 유명 현대화가의 작품 2백여점(진품가격 2백억원)을 위작해 종로구 낙원동 화랑가에 모두 10여억원을 받고 팔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함께 구속된 화가 이석근씨(60)는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낙원동 K여관에서 겸재 정선의 10호짜리 산수화를 위작해 모회사 회장에게 2백40만원을 받고 팔아 넘기는 등 지난 81년부터 모방한 그림에 가짜 낙관을 찍어 만든 가짜 고화 3백여점(진품가격 1백억원)을 5억원에 종로구 인사동 화랑 등에다 판 혐의를 받고있다. 검찰 수사결과 구속된 이씨 등 화가들은 유명 화가의 화풍을 연구해 이를 아예 본뜨거나 모방한 새로운 작품을 그린뒤 유명화가의 작품이 새로 발견된 것처럼 속여 팔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또 겸재·추사 등 옛 화가나 이중섭·김환기·오지호 등 고인이 된 현대 화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천경자씨 등 활동중인 유명 화가의 대표작까지 위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이 만든 가짜 그림이 한국고미술협회와 한국화랑협회 등 미술품 전문감정기관도 진품으로 속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특히 구속된 화가 이씨는 경북 모예술고를 졸업한 무명 화가이나 원작을 찍은 슬라이드 등을 이용,모작을 하고 유명 화가의 사인을 연구,똑같이 써 넣은뒤 진품으로 속여 파는 등 수법이 치밀해 이씨가 만들어 2천만원에 판 한 작품은 현재 1억2천만원이 거래될 정도라고 검찰은 말했다. 검찰은 더 많은 가짜 그림이 시중에 나돌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앞으로 한국고미술협회 등에서 위작으로 감정된 작품들의 감정의뢰서 및 감정결과서를 넘겨받아 제작자·판매자를 색출키로 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고미술협회와 한국화랑협회에서 위작으로 감정한 작품은 청전 이상범작품 23점,심향 박승무작품 15점,추사 김정희작품 25점,단원 김홍도작품 28점,천경자씨 작품 28점,이중섭씨 작품 5점 등4백여점이다.
  • 통일축구 열리는 평양의 표정

    ◎서커스장에 입장하자 관객ㆍ출연자 기립박수/체육기자연,북측에 이길용씨 생존확인 요청 ○널뛰기 전회비행 선봬 ○…한국축구선수단과 기자단은 10일 하오 4시부터 평양 광복거리에 있는 평양교예(서커스)극장에서 열린 평양교예단 공연을 관람. 평양교예단은 세계대회에서 몇차례 1위를 한 요술(마술) 널뛰기 전회비행(공중트라피스)팀 등이 소속된 북한의 가장 뛰어난 교예단. 북한에서는 서커스의 인기가 대단해 함흥ㆍ청진에도 교예단이 있으며 평양교예단은 평일에는 매일밤 한차례,명절에는 낮과 밤 두차례 공연을 하며 좌석 3천5백석이 빌 때가 드물다고 안내원은 설명. 정동성 체육부 장관 등 한국선수단 일행이 교예극장에 들어서자 출연자들은 문앞까지 나와 반갑다고 인사했고 극장 안에 미리 입장했던 관람객들은 기립박수로 환영. 이날 공연에서 계란재주란 코미디를 한 공훈배우 윤광섭 씨(63)는 자신이 배우경력 33년의 원로급이라며 자동차 운전사로 일하다 지난 58년부터 배우생활을 했고 한국 원로가수 김정구 씨를 어릴 때부터 알고 있다며『하루빨리 남북의 희극인들도 교류를 해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측 보도태도에 촉각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이 10일 하오 7시쯤 판문점을 통해 행낭편으로 처음 이곳 한국선수단이 묵고 있는 고려호텔에 도착하자 북측 기자들은 『우리도 1면에 대서특필됐는데 서울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들도 크게 다뤘구먼』이라고 말하고 『이번에 온 기자들은 매우 사실에 근거하여 보도했구먼』이라고 첨언. ○해설없이 사실만 보도 ○…북한 노동당기관지 로동신문은 7일 조간에서 한국선수단과 기자단이 평양에 도착한 사실을 7면과 8면(모두 8면 발행)에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북남 통일축구경기에 참가한 남측 선수단 평양에 도착 수많은 군중들 거리에 떨쳐나가 열렬히 환영」제하로 3단으로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한편 북한 중앙TV는 10일 하오 7시 저녁 뉴스시간에 남북 축구경기를 위해 9일 평양에 도착한 한국선수단의 방북소식을 화면이나 해설없이 사실보도만 했다. ○…한국체육기자연맹은 남북 통일축구를 위한 한국선수단의 평양방문 기간 동안 일제 때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당시 체육기자 이길용 선생(74)의 생존여부를 확인해 주도록 10일 북한올림픽위원회 김형진 부위원장에게 요청. 이길용 선생은 1936년 손기정 씨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청전 이상범 화백과 함께 손씨 가슴의 일장기 사진을 지운 후 신문에 게재,일제에 의해 투옥됐었다. 이 선생 가족들은 6ㆍ25 때 남북으로 갈렸는데 이 선생의 장남 이태영 씨(49)도 체육기자로 활약,현재 중앙경제신문 체육부장(국장대우)으로 재직중이다. ○…이날밤 김일성광장에서는 로동당창당 45주년기념 경축무도회가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을 비롯한 1백25개국 경축사절단과 북한의 고위급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펼쳐진 경축무도회에는 원색차림의 남녀 5천여쌍이 참가,휘파람 등 댄스뮤직에 맞춰 군무를 펼쳤다. 북한 중앙TV는 이날밤 7시30분부터 1시간30분 동안 경축무도회 행사를 생중계했으나 한국 축구선수단과 기자단은 초청대상에서 제외됐다.
  • 이상범 위원장 재신임

    【울산=이용호기자】 울산 현대자동차노조는 30일 상오 올 단체협상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직권으로 노사합의서에 서명한 현 이상범 노조위원장의 재신임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불신임표가 65.7%인 1만6천7백31표로 총투표자의 3분의2를 넘지 못해 재신임됐다.
  • 현대자분규 최종타결/28일 정상조업

    【울산=이용호기자】 파국으로 치닫던 현대자동차 사태는 24일 노사양측이 협상을 재개,고소ㆍ고발취하와 제수당 일부 상향조정등 임금인상안에 최종합의함으로써 극적으로 타결됐다. 현대자동차노사는 23일 하오부터 24일 상오2시까지 철야협상을 벌여 단체협약안 1백28개항과 ▲기본급 3만9천원(7.6%) ▲제수당 1만1천9백원(8백원인상) ▲생산장려수당 3천원등 모두 5만3천9백원(7차협상시 5만1백원)을 인상키로 합의,합의서에 서명하고 24일부터 26일까지 유급휴가를 실시한뒤 오는 28일부터 정상조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상범노조위원장은 이날 협상이 끝난뒤 근로자들에게 나누어준 유인물을 통해 『노사합의된 사항은 노조규약상 조합원총회에서 추인키로 되어있으나 총회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아 생략한다』면서 『파업장기화로 회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협력업체는 물론 국가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우리의 이익만을 앞세워 파업을 계속할 수 없어 정상조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합의된 단체협약안및 임금인상안을 조합원총회에서 추인받지 않아 노조내 민실노등 강성노조원들이 반발하고 있어 정상조업까지는 다소의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 현대자 파업 장기화될듯/노사 잠정합의안 조합원 투표서 부결

    ◎노조집행부,“전원사퇴”표명 【울산=이용호기자】 현대자동차 노사가 합의한 올 단체협약과 임금인상안이 22일 실시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돼 파업이 장기화 될 전망이다.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이상범ㆍ비상대책위 의장겸임)는 22일 그동안 회사측과 잠정합의한 단체협약및 임금인상안에 대한 전체조합원의 찬반을 묻기 위해 이날 상오9시부터 전체노조원 2만6천5백66명중 92.5%인 2만4천5백76명이 참가한 가운데 투표를 실시한 결과 과반수를 훨씬 넘는 1만6천9백55명(69%)이 반대를 함으로써 분규를 매듭짓지 못했다. 이날 노사함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되자 이위원장등 현 노조집행부는 이를 조합원들의 불신임으로 보고 집단사퇴할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앞서 이 회사노사는 지난21일 하오 늦게까지 이위원장 등 노조대표 15명과 전성원사장등 회사대표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올 단체협약안 가운데 미타결된 임금부분에 대한 마지막 협상을 벌여 잠정합의된 사항을 22일 열리는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추인키로 했었다. 이날 열린 임금협상에서는 ▲기본급의 7.6%인 3만9천원인상 ▲생산장려금 수당ㆍ근속수당 등 각종 수당 1만1천1백원지급 등이 잠정합의됐었다. 한편 노조측은 이날 노사합의안이 부결됨에 따라 대책회의를 갖고 ▲현집행부(비대위)의 총사퇴 ▲파업을 계속하면서 단체협상및 임금협상 재개 ▲선조업ㆍ후협상 ▲파업지도부 재구성 등을 논의했다. 회사측은 새파업지도부가 구성될 경우 지금까지의 협상결과를 전면 백지화하고 구속근로자 석방,파업기간중 임금지급등 종전의 강경투쟁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노조측의 방향설정에 따라 대처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 집행부 불신으로 「원점회귀」/현대자 「협상안」 부결의 저변

    ◎“「실리」 너무양보” 강성조합원들 제동/장기파업땐 공권력투입 배제못해 현대자동차노조 총회가 찬반투표를 통해 단체협약안을 부결시킴으로써 진정기미를 보이던 현대사태는 다시 악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사실 21일밤 잠정합의한 협약안이 마련돼 22일 노조원 찬반투표에 들어갈때까지만해도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23일부터 정상조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투표결과는 이같은 예상을 뒤엎고 강성기류가 지배,부결 쪽으로 급선회했다. 이번 투표는 현대중공업 공권력투입에 항의한 연대파업 때 적극성을 보이지 못한 현 집행부와 강경일변도인 민실노(민주노조실천노동자협의회)의 한판승부로 보는 측이 많다. 그러나 그 결과는 현 집행부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으며 결국 사태를 악화시켰다. 따라서 현대자동차 파업사태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의장 이상범노조위원장)측은 투표에 앞서 배포한 유인물을 통해 『집행부의 운명과 직결된 중대한 사안이므로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판단해 달라』고 호소하고 반대표를 줄이기 위해 집회조차 생략했었다. 이날 의외로 반대표가 많이 나오게 된것은 98일동안 끌어온 단체협상에서 쟁점이 됐던 ▲쟁의기간중 임금지급 ▲징계위 노사동수참석 ▲퇴직금 누진세 등 4∼5개항을 노조측이 일방적으로 양보한데다 나머지 항목에서도 대부분 회사측 의도대로 수정통과돼 실익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생존권투쟁에서 시작된 이번 파업사태가 당초 우려했던 노­노분쟁으로 발전되자 집행부나 회사측은 대안마련을 위해 골몰하고 있으나 현상황에서 극한적인 대처 방안외에 뚜렷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선 집행부가 퇴진하고 사태수습을 위해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협상을 재개하거나 공권력을 투입,물리력에 의한 해결방법이 강구될 전망이다. 그러나 새집행부구성은 1개월이상 기간이 소요돼 채택되기 어렵고 공권력투입에 의한 해결도 회사내에 수십t의 인화성물질이 있어 가능성이 희박하다. 다만 집행부가 조업재개를 시켜놓고 전원사퇴,선조업 후협상방안을 실현시키는 길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현대자노조,파업 돌입/오늘 노사협상 재개… 타결모색

    ◎“파업주동자 고소땐 구속”/경찰 【울산=이용호ㆍ이정규기자】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이상범ㆍ34ㆍ비상대책위의장겸임)가 15일 상오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함으로써 현대그룹이 현대중공업에 이어 또다시 노사분규의 회오리에 휩싸이게 됐다. 현대자동차노조원 2만여명은 이날 상오8시를 기해 11개사업부 15개단위공장 별로 일제히 작업을 거부하고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노조의 이같은 파업에도 노사 양측은 이날 하오3시부터 본관 대회의실에서 전성원사장등 회사측 대표 11명과 이상범 비대위원장등 노조측 대표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단체협상을 재개,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의 길을 모색했다. 이날 협상에서 노사 양측은 협상을 원활히 하기 위해 노사 4명씩 실무위원회를 구성,실무위원회에서 협의된 안을 협상대표들이 추인하는 형식으로 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16일 단체협상,17일 임금협상을 하기로 협상일정을 짜놓고 있어 이번 파업사태는 이번주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는 근로자 2만7천여명은 이날 정상출근,상오10시본관앞 잔디광장에서 파업결의대회를 갖고 부서별로 모여 ▲우리는 왜 투쟁을 해야 하는가 ▲공권력 투입시 대응방안 ▲불참 조합원 동참유도 방안 등 3가지 과제를 놓고 토론회를 한 후 하오5시쯤 귀가했다. 노조측이 전면파업에 돌입하자 회사측은 이날 상오8시30분 본관2층 회의실에서 정세영현대그룹회장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고 직장폐쇄ㆍ조업중단ㆍ공권력요청등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노조측은 이날 상오 노조사무실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16일은 전원 출근하되 조업은 전면 거부하며 17일부터는 장기화에 대비해 부서별로 주ㆍ야간 근무조가 교대로 출근,1개조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한편 경찰은 회사측이 파업주동자를 업무방해등 혐의로 고소해 올 경우 강경근로자 10여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 강경대응이 「매파」 자극/현대자 전면파업 배경과 전망

    ◎경찰투입ㆍ소환장 발부등에 감정 악화/강ㆍ온파도 대립… 노ㆍ노분쟁 가능성도 현대중공업이 노조측의 조업참여 결정으로 정상화되고 있는 가운데 현대자동차노조(위원장 이상범ㆍ34)가 15일 전면파업에 돌입함으로써 현대사태가 「제2그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이번 현대자동차의 파업사태는 현대자동차가 그룹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볼때 그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국내자동차생산업체들의 단체협상과 임금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단행된 이번 현대자동차의 파업은 같은 업계의 협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노조측의 이번 파업결정은 지난달 28일 쟁의발생신고,현대중공업 공권력개입에 항의한 시한부파업,중앙노동위원회의 쟁의발생신고 반려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예상됐었다. 회사측과 당국은 노조측의 이러한 파업 움직임을 단체협상과 임금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위한 전략적 측면으로만 생각해온게 사실이었다. 회사측과 당국은 노조의파업결정 찬반투표 자체를 불법으로 단정,파업하면 즉각 공권력을 투입한다는 정부의 강경의지만을 등에 업고 파업돌입자제를 설득해 왔다. 그러나 지난 12일 하오 사복경찰이 회사내에 들어와 수배근로자 연행을 기도하고 다음날인 13일 노조간부 8명에 대한 소환장발부 등으로 상황을 악화시켜 이번의 파업사태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이런점에서 이번 파업은 강성근로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회사 노사양측은 지난 2월13일부터 4월20일까지 1백28개 항목에 달하는 올해 단체협약안을 놓고 22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주 42시간 근무제 ▲쟁의중 임금지급문제 ▲퇴직금 누진제 ▲상여금 6백50%지급등 35개 항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하고 협상이 결렬됐다. 이 결과 파업이라는 최악의 사태로까지 발전,회사측은 하루 승용차 2천2백대와 상용차 4백26대 등을 생산하지 못해 하루 1백75억원의 매출손실을 입고 있으며 근로자들 또한 「무노동 무임금」원칙에 따라 1인당 하루 4만1천5백여원씩 임금손실을 보게됐다. 특히 파업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4백50여개에 이르는 1차 협력업체를 비롯,자동차 관련 기계ㆍ장비ㆍ부품업체등 2천여개 업체의 근로자 15만여명과 가족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게되며 포항제철등 철강업계의 재고누증으로 국가기간산업에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이번 파업사태는 현대중공업파업이 구속근로자 석방을 명분으로 내걸었던 반면 현대자동차노조는 생존권 투쟁으로 보고 있어 장기화 되지는 않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노조집행부도 현 상황이 장기화 되거나 과격한 행동은 양측에 희생만 뒤따를 뿐 얻을 것이 없다는 데는 회사측과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상여금 투쟁에서 일방적인 패배를 당해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집행부가 입지확보를 위해서는 앞으로의 상황전개에 따라서는 보다 강경하게 나올 수도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상여금투쟁을 주도했던 민실노(민주노조실천협의회)의 강성근로자들이 지난해 연대파업 당시 김강희씨(29ㆍ민실노의장) 등 4명이 구속된 상황에서 집행부가 파업을 철회한 것은 투쟁을 포기한 처사라며 이번 만큼은 강경하게 투쟁할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칫 잘못하면 사태는 노ㆍ노분쟁으로 발전돼 더욱 어렵게 될 소지도 있다는 것이다.
  • 현대자 오늘 전면파업/비대위,“8시부터 강행”결의

    ◎중공업은 내일부터 정상조업키로 【울산=이용호기자】 파업국면으로 치닫던 현대중공업노조가 16일부터 정상조업에 들어가기로 결의한 반면,현대그룹의 주력업체인 현대자동차노조가 15일 상오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키로 함으로써 현대사태가 또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게됐다. 현대자동차노조는 14일 상ㆍ하오 대의원대회와 비상대책위원회를 잇따라 열고 지난 12일 조합원 투표에서 결정한 「쟁의행위돌입」을 재확인하고 파업일시를 15일 상오8시부터로 정했다. 이로써 현대자동차노사는 지난 2월13일 올 단체협상에 들어간 이후 최악의 사태를 맞게됐다. 이 회사노조는 14일 하오 전체대의원 2백59명중 2백28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고 강경대의원들의 「파업돌입안」을 1백32대 96으로 가결,파업시기ㆍ파업방향 등을 이날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에 위임한 결과 「15일 상오 파업」쪽으로 급선회했다. 이날 비대위 의장으로 선임된 이상범 노조위원장은 현대자동차노조가 파업쪽으로 급선회한 이유를 『현대중공업사태 이후 구속자와 수배자가 발생한데다 경찰이 회사안에까지 들어와 수배자 색출에 나서는 등 대의원을 자극시킨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앞서 이 회사노조는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강경파대의원의 파업돌입안과 이위원장이 이끄는 현 집행부가 제시한 단계적 단체행동돌입안(선조업 후협상안)을 놓고 격론을 벌인끝에 찬ㆍ반투표에 부쳤으나 단계적 단체행동돌입안은 부결됐었다. 노사는 올 단체협상에서 전체 1백28개 항목중 ▲주42시간 근무 ▲퇴직금 누진제 실시 ▲상여금 6백50%지급 ▲주택건립비 5백억원 지원등 35개항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었다. 한편 노동부는 노조측의 이같은 결정을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회사측도 『이번파업 결정이 지난4일 쟁의발생신고가 절차상의 하자로 반려된 상황에서 이루어진것으로 불법이며 앞으로 파업에 가담한 근로자에게는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적용하고 노조간부는 고소ㆍ고발로 사법처리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울산경찰서는 이날 현대자동차노조위원장 이상범씨(34)등 노조간부 8명에 대해 2차 소환장을 발부하고 이들이 출두치않을 경우 강제연행키로 했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이날 전체근로자의 67.9%인 1만4천4백47명(기능직 9천5백40명 58.9%)이 출근 부분조업만이 이뤄졌으나 지난 13일 하오 대의원 2백9명중 1백28명이 모임을 갖고 오는 16일부터 정상조업에 들어가기로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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