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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교적 혈연주의가 이념 초월할 것

    ◎일 학자의 조망 다케사다 히데시 기고/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남북한 상호불신은 표면적… 내면에선 동포애 흐른다 1990년 6월25일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40년째의 날이다. 일반의 일본인에게 「올해는 한반도에 어떤 의미가 있는 해인가」를 물어보았자 답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40세이하의 일본인에게는 「특유」라는 어휘가 교과서에 실려있다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6ㆍ25에 대해 당사자와 주변제국의 국민들은 무엇을 생각해 낼 수 있는가. 북한에는 「좀더 용의주도하게 준비했던들 이길 수 있는 전쟁」이라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미국은 「다수의 행방불명 미군을 생기게 한 전쟁」이라는 견해가 강하다. 소련에는 최근 「북한에 의해 시작된 전쟁」이라는 비공식 레벨의 발언이 계속되고 있음을 생각할때 지금은 「정책의 오류의 결과 발발되고 확대된 전쟁」이라는 평가일 것이다. 중국에 있어서는 전쟁후 일관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방지를 위해 협조해온 것에 비추어 「어쩔 수 없이 의용군을 보냈으나 코스트가 높아 두번다시 있어서는안되는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한국에는 어떠한가. 6ㆍ25는 일요일 아침의 돌연한 포성,남에의 피란행렬,북한에 살고 있는 「육친」이라는 낱말과 관련되는 이미지다. 한국영화의 라스트신에는 혈연관계가 부자연스럽게 되는 장면이 많다. 그것이 관객의 눈물을 가장 많이 유도하기 때문이지만 그것은 국토분단과 한국전에 의해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혈연관계가 이상하게 되는 상태가 되어 유교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여서 「전쟁=이산가족의 발생」이라는 점에서는 당사자인 남과 북과의 사이에 일치한다. 이처럼 6ㆍ25의 이미지는 당사자와 주변제국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으며 이것은 앞으로의 한반도장래를 생각할때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왜 한반도에는 독일과 같은 통일논의가 떠오르지 않는가. 한반도는 독일과는 달라 전쟁책임을 묻기 위해 분단된 것이 아니라 대국의 정치역학에 의해 분단됐다. 그 점에서는 일응 독일보다도 통일을 위한 조건은 정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독일의 경우만큼은 「통일에 의한 영향」에 관해 주변제국과의 조정은 필요로 하지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통일논의가 일어나고 있지않다. 그것은 북한이 동독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동독에 서독의 정보가 유입되며 동독의 서독에의 인구유출이 멈추지 않았다. 또 동독에는 없었던 지도자의 카리스마성이 북한에는 있다. 동구제국의 민주화에 관련해 말한다면 동구변화의 원인이 되었던 이민족국가라는 조건은 북한에는 없으며 북한은 극히 균질적인 사회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야될 것은 한반도의 내부역학이다. 현해탄 이쪽에서 한반도정세를 보고있으면 남북간에는 낙관론은 있어도 실제로 상호불신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중국 연길의 탈이데올로기,혈연중시의 기질을 생각해 보자. 연길사람들의 한국에의 관심은 강하지만 그들사이에는 북한에 사는 동족의 생활이 고달프다는 것에 대해 걱정은 하고 있어도 북한에의 불신감은 없다. 즉 연길의 한인들은 『북에서 남으로 바꿔탔다』는 것은 아니고 극히 자연스럽게 같은 코리안으로서 한국에 있는 동족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남북한은 어떠한가. 주체사상이라 하더라도,한국근대화의 이데올로기라고 하더라도 불과 30년의 역사이다. 코리안의 유교이데올로기는 1천7백년이상의 역사가 있다. 그렇다면 남북한문화의 저류에는 연길의 코리안이 갖고 있는 탈이데올로기ㆍ혈연주의가 흐르고 있는 셈으로 한반도의 남북불신이라는 말은 피상적이라는 것이 된다. 둘째 남북간의 교섭과정을 살펴보자. 1980년대 북한의 한국에 대한 수해구호물자의 지원이 있었으며 한국내에서 북한무드가 급속히 불타올랐다. 남북사이의 교류 및 대화가 갑자기 시작되고 또 돌연중단 되기도 한다. 이같은 한국의 대북자세 및 여론의 변화,대화의 재개ㆍ중단과정은 배경 및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외국인에게는 어렵다. 이것을 상호불신이라는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북한에 체재했던 영화감독의 수기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간부 연회석상에서 한국의 가요곡이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지도자도 심정적으로는 탈이데올로기로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반도를 말할 때의 「남과 북의 불신감」이라는 틀에 박힌 문구는 재검토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 독일문제는 사실상 동독이 서독에 합류하는 형식으로 통일에의 기운이 가속됐다. 한반도의 경우 일단 북한에서 정책변화가 생겼을 때 남북한 상호의 감정에 비추어,독일형 통일이 아니라 감정적이며 혈연중시의 발상을 갖는 남과 북 사이에 구체적인 통일문제가 부상하면 독일문제와 같은 「통일에 대한 구체적 제문제의 검토」같은 절차는 생략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북한은 독일이상의 템포로 통일의 길을 밟게 되는 것이 아닐까.
  • 분단 45년… 북한의 생활상 어떻게 이질화됐나

    ◎다른 길로 달린 「남과 북」… “한핏줄의 이방인”/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한핏줄의 남북한은 하나의 역사,하나의 언어,그리고 공통된 생활관습 등을 지켜왔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길로 들어선 남과 북은 6ㆍ25전쟁이라는 민족최대의 비극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됐고 이 결과 전쟁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모든면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최근 동서독이 통독의 길로 나아가는등 세계의 냉전구조가 타파되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이 되고만 한반도에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변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 제각기 달려온 남과 북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됐고 이질화됐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언젠가는 맞이할 통일에 대비해 서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문화ㆍ예술/인간개조의 도구화… 순수예술 명맥 끊겨 지난해 우리는 두개의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그 하나는 비록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남북단일팀 구성논의에서 「아리랑」을 단가로 하자는데 양측이 비교적 손쉽게 합의,문화적 민족정서의 공유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다. 또 하나는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무산시킨 이른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공연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실감했던 남과 북의 현저한 문화ㆍ예술관의 차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문화ㆍ예술은 공감대를 같이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분단이후 45년간 서로다른 이념과 사회체제 속에서 이질화의 과정을 밟아옴으로써 오늘의 남과 북사이에는 엄청난 높이의 문화적 장벽이 가로놓이게 됐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구상처럼 『후기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현상을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는데 놓여져 있다면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주체사상과 3대혁명에 입각한 공산주의적 정치사회화의 수단적 목적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초하에 체제보위 및 최고통치자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위한철저한 도구로 기능함으로써 전통적 순수예술의 성격은 물론 대중예술과도 거리가 먼 주체예술ㆍ혁명예술ㆍ이데올로기예술로 변모돼 있다. 가령 북한가요 45년사에서 3대명곡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별」,「김일성장군의 노래」「동지애의 노래」 등이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시작 「묘향산의 가을날에」,80년대 최고의 미술작품이라는 「강선의 저녁노을」 등은 모두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북한의 문화ㆍ예술의 성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상성이 좋고 ▲가사가 좋으며 ▲선율이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후의 「혁명송가」라는 「조선의 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할때 그의 추종자들이 김일성을 흠모해 지었다는 노래이며,「동지애의 노래」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촉구한 노래이다. 「강선의 저녁노을」은 남포시 강선제강소를 소재로 김일성을 찬양한 조선화이며 주체예술의 상징인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을 주제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목적극이다. 특히 6ㆍ25전쟁 전까지 순수예술과 목적예술간의 대립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채 주로 소련에 의존해왔던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전쟁중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쟁영웅 형상화에 몰두,목적예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전후복구와 「주체」의 슬로건 등장등 상황적 요청에 따라 문예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전형을 형상화하는 한편 소련식 문화활동에서 탈피,김일성체제를 뒷받침하는 혁명전통확립과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자연만을 노래하거나 예술지상주의 태도는 반혁명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당성ㆍ계급성ㆍ인민성의 구현이 모든 창작활동중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대두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원칙과 과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작가 미술가 영화인 연극인 무용가 사진가 등 모든 예술인들을 망라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란 조직이 결성돼 있으며 당은 이 조직을 통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작 및 공연활동계획서의 제출을 강요,▲혁명전통(30%) ▲전쟁(30%) ▲사회주의건설(20%) ▲조국통일(20%) 등 4개 주제별로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의식구조/어휘마다 정치색… 전투ㆍ파괴적 성격 강조 『서울말은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오늘 남조선방송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데 쓰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그것마저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다.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오늘 평양말은 서울말보다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김일성이 1969년 평양말을 「문화어」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 교시의 내용으로 북한의 언어정책을 잘 보여준다. 김일성은 또 「표준말」이란 용어 대신 「문화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힘있는 무기」로 보는 언어관을 토대로 일찍부터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언어정책을 펴옴으로써 분단 45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간에 벌어지고 있는 언어의 이질화는 단순한 언어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및 의식구조의 이질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는 언어를 씩씩하고 힘있는 무기로 다듬는다는 명분하에 『미제의 각을 뜨자』『돌탕을 쳐 죽이자』는 등의 살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감안할때,북한의 이같은 극단적인 언어관과 언어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자신을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으로 만드는 잠재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언어이질화에서 빚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1949년에 단행된 한자폐지와 이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서 시작된다. 문맹퇴치와 인민대중의 조속한 사상교육을 목표로 추진된 한자폐지는 결과적으로 한글전용화로 이어졌고 이결과 북한의 각급학교 교과서 문예작품 신문 및 대중매체에서 한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한자교육은 통일후 남한문헌을 읽기 위해 또한 고전연구를 위해 하나의 외국어처럼 전공과목으로서만 남게됐다. 한글전용에 이어 가로쓰기도 시행되었으나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말다듬기운동」이 새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조선어철자법」이 생겨났고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과 함께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어휘까지 등장했다. 문화어의 등장은 남북한간 언어이질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성격은 서울말을 배격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다듬은 그들의 공용어를 표준어로 삼는 데 있다. 한편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말다듬기운동의 결과 새로운 사전의 편찬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1968년 나온 「현대 조선말사전」의 경우 18만어휘가 수록됐던 「조선말사전」(61년)에 비해 어휘가 5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한자가 하나도 없고 옛말 사투리 고유명사 및 이른바 「퇴폐적 사상표현」등을 완전히 제외했기 때문. 또 어휘마다 정치성이 담겨져 있어 김일성의 인용구는 굵은 활자에 별표까지 달아놓았다. 현재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의 차이,리듬의 차이,억양의 차이 등과 같은 음성학적인 차이를 비롯해 어휘ㆍ문법ㆍ의미ㆍ문체 및 맞춤범 등 언어전반에 걸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차이는 어휘부문에서 나타난다. 예를들면 산책길→유보도 채소→남새 화장실→위생실 고기잡이→추어전 개고기→단고기 도시락→곽밥 레코드→소리판 대중가요→군중가요 투피스→동강옷 커튼→창문보 그룹→그루빠 소년단→삐오네르 주제→쩨마 등이다. ◎경제생활/「남농북공」무너져 GNP 남한의 12%/생필품 부족… 암시장 쌀값 배급의 18배 8ㆍ15해방 당시 남북한의 산업배치는 「남농북공」으로 일컬을 만큼 지역적 보완관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남북분단으로 이같은 보완관계는 무너졌으며 설상가상으로 6ㆍ25가 남과 북 모두의 각종 산업시설을 파괴,경제활동의 토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은 40여년간 천연자원 및 산업구조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통합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발전을 계속해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굳어진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경제질서를 형성ㆍ유지하면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왔고 이 결과 88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GNP)의 차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해 8배나 앞서는 비교우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한 이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개발도상국에서 일약 중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1960년 1백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89년말 현재 5천달러에 육박해 있다. 반면 6ㆍ25로 인해 공업생산 수준이 1949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던 북한경제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과 뒤이은 5개년계획(1957∼61년)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했으나 그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70년대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해 부분적인 비교우위내지는 형평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전분야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체제가 다른 북한의 국민총생산액등 각종 경제지표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국토통일원이 북한의 각종 선전자료를 검토ㆍ분석해 추정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국민총생산액은 88년을 기준으로 2백6억달러로 우리의 1천6백92억달러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GNP는 9백80달러(한국 4천40달러),자동차 생산능력은 연간 2만대(한국 1백70만대),TV보유율은 10%(한국 1백%),전화는 7%(한국 67%),냉장고는 6.5%(한국 79%) 등이다. 한편 북한주민의 의ㆍ식ㆍ주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평등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임금과 그 임금에 따른 불균형한 소비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임금은 당간부 및 고위직 군인의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사무직보다는 기술직이 높다. 또 경노동 보다중노동이,중노동 가운데도 위해노동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85년부터는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가 도입돼 동일직종이라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를 달리하는 「차등임금제」가 실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화폐소득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건ㆍ교육분야를 국가예산으로 충당하는 한편 대중소비물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사치품의 가격을 높게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쌀ㆍ채소ㆍ옷감ㆍ비누ㆍ치약 등 생필품의 경우 아주 싼값으로 공급되는데 가족수와 연령,직업에 따라 품목과 수량,종류가 정해진 구입카드에 의해 국영상점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먹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듯이 국가에서 싼 값으로 공급하는 생필품의 배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부족분을 구하기 위해 1㎏당 8전에 불과한 쌀을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암시장에서 이 가격의 18배가 넘는 1㎏당 15원에 구입하려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협동적 소유로 행정당국에 의해 직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배분되며 그 보급율은 70% 안팎. 북한은 주택건축률이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전시적 기능이 크고 남북한 사회비교의 중요한 징표가 된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평양ㆍ남포ㆍ원산ㆍ함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한편 농촌의 문화주택을 2층 3가구용,3층 5가구용으로 다양화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주거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지난 40년간 중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결과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크게 압박을 받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를 「경공업의 해」로 지정하는 등 최근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풍습/“봉건잔재 없앤다” 관혼상제도 통제ㆍ규격화 북한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예의범절에 대해 『봉건지배계급이 착취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예절이나 유교적 도덕관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당의 이익에 맞도록 변형되어 있다. 또 관혼상제를 포함한 전통적인 민속과 세시풍속 등도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변질됐다. 북한에서의 결혼은 『철저히 동지적이고 혁명적인 관계에 의해 이뤄지며 일생을 동지로서 당과 수령께 충성할 수 있는 정신적 풍모가 조건이 된다』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도 노동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 29세 여자 26세로 제한해 놓고 있으나 불만이 많아 80년대 이후에는 조혼추세가 묵인되고 있다. 배우자선택은 중매(60%)와 연애(40%)가 병행되고 있으나 최근 북한의 남녀대학생들은 서로 손을 잡기도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등 연애결혼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만나는 채널은 연애보다는 부모 친척 등을 통한 중매가 지배적이다. 신랑감으로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총각이 최고의 배우자로 꼽히고 있으며 길흉을 가리는 결혼의 택일 풍습은 사라져 대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치러진다. 회갑이나 생일,돌잔치는 5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와 식량절약이라는 명분으로 일체 금지되었으나 60년대 후반기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60청춘 90회갑」이라는 구호아래 공식적인 회갑잔치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고위간부의 경우에만 김일성이 하사하는 일정한 규격의 회갑상을 받는다. 장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을 쓰도록 돼있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는 것이 없고 머리에 건을 쓰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두른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편의협동조합 등이 맡아서 처리해 주며 직계존속이 사망했을 경우 상주에게는 3일간의 공식휴가와 장례보조금 10원,쌀 1말이 배급된다. 제사도 다른 풍습과 같이 6ㆍ25전까지는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으나 휴전후부터 단속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것과 직계존속에 대한 탈상까지의 제사는 묵인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60년대 중반까지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추석등 고유의 세시풍속을 공식명절에서 제외하고 김일성의 생일,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건일,사회주의 헌법제정일 등을 「사회주의 명절」로 지정,공휴일로 해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추석 음력설 단오 한식 등을명절로 부활시켰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복,검은 통치마 차림이었던 주민들의 옷차림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이나 잠바,여자는 양장이나 짧은 치마차림이 보편화됐으며 머리모양이 다양해지고 화장을 한 여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던 주민들의 부분적 여행자유화 조치가 전면 보류됨으로써 일반 주민들의 북한내 여행 및 휴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ㆍ묘향산 등 유명관광지의 이용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며 주민들의 경우 공장ㆍ직장별 단체관광 정도일 뿐 가족단위의 여행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주요한 오락수단은 TV와 라디오이다. 또 최근 바둑협회가 새로 결성되고 실내 골프장이 생기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으나 대중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는 주패놀이로 불리는 서양식 카드놀이와 장기이다. 가정생활은 지난 80년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둘은 많습니다. 하나가 좋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시이후 가족계획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점차 대가족에서 핵가족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는 등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으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자들이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남편들이 봉급을 타서 여자들에게 넘겨 주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언론ㆍ교육/비판기능은 무시… 선전ㆍ선동의 매체로 활용 최근 북한은 소련언론들의 잇따른 대북한 비난보도에 대응,소련의 평양주재 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조치를 취한데 이어 타스통신기자 1명을 추방함으로써 내외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북한은 『우리 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소련언론들은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보도에만 집착할뿐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소련의 언론관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노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비롯해 도단위 일간지 등 모두 30여종. 방송은 TV의 경우 「조선중앙TV」(평양TV)「만수대TV」「개성TV」 등 3개가 있고 라디오는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구국의 소리방송」「평양인민 FM방송」 등이 있다. 북한에 있어 언론이란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정책을 해설ㆍ선전하며 그것을 철저히 비호ㆍ관철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여 인민들을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사전(73년도판)의 규정처럼 정치선전도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아닌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교양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1960년 11월)에 따라 우리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되는 범죄나 비행ㆍ사고 등의 기사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일체 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언론들이 사회의 비리ㆍ부조리 등을 파헤침으로써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긍정적ㆍ모범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를 계도하겠다는 언론관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북한의 언론은 자본주의언론이 중시하는 속보성보다는 매스미디어의 이념적 이용,즉 당의 정책적 선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론성」과 「당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론성이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ㆍ선동ㆍ조직ㆍ교육ㆍ동원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실」을 각색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북한의 방송은 정무원직속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지도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조직ㆍ편제상 정무원에 속해 있지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사실상 2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새 학기는 우리와 달리 9월에 시작된다. 북한은 지난 75년부터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과정으로 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의 취학연령은 만6세. 그러나 만4세부터 시작되는 2년과정의 유치원교육중 「높은반」부터 의무교육기간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은 만5세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11년제 의무교육기간에는 수업료는 물론 면제이며 교과서ㆍ교복ㆍ학용품이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16세부터 시작되는 고등교육단계로는 2∼3년 과정의 고등전문학교와 교원대학(3년),종합ㆍ단과ㆍ사범ㆍ공장대학(4∼6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민학교 5천여개,고등중학교 4천2백여개,전문학교 5백여개,대학 2백7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80년중반부터 낙후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각 시도별로 「제1고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기술계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학생들은 또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예능 또는 실업 등의 실기과목을 배우고 있으며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의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단체활동을 한다. 특히 의무노동이 중시돼 인민학교는 연간 2∼4주,고등중학교는 4∼8주,대학교는 12주정도씩 생산현장노동에 참여한다.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것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주체사상」을 교육이념으로 삼고있다. 또 계급투쟁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적 인간」이,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기술적 인간」이,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튼튼한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상」때문에 정치사상교양 및 과학기술교육,그리고 국방체육이 북한교육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 본사 6ㆍ25 40주맞아 성인남녀 1천명 의식조사

    ◎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조사방법/현대리서치연구소 최근 6ㆍ25에 대한 다각적인 조명이 활발히 전개되는 가운데 서울신문사는 현대리서치연구소(대표 박종선)와 공동으로 우리 국민들의 6ㆍ25관ㆍ대북관ㆍ통일관 등에 대해 전국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번 조사는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20세이상 성인남녀 1천명을 상대로 지난 현충일 전후 사흘동안 매일 저녁 6시부터 9시반까지 실시되었다. 이번 조사는 조사대상을 시도별 인구비례로 각 시도에 할당한 다음,해당 시도의 전화국번을 일렬로 나열하고 난수표로 할당된 표본수만큼 전화국번을 추출하였다. 이렇게 추출된 전화국번에 대하여 난수표로 네자리 숫자를 부여하여 그것을 전화번호로 삼았다. 그리고 대상 가구에서는 전국인구 구성특성에 따라 남녀ㆍ연령을 할당하여 최종적인 조사대상자를 선정하였다. 이번 조사의 응답자 구성은 지역별로 서울 2백50명,경기ㆍ인천 1백65명,강원 40명,충청ㆍ대전 1백5명,전라ㆍ광주 1백34명,경상ㆍ부산ㆍ대구 3백6명,제주 10명이다. 성별로는 남자 5백3명,여자 4백97명이며 연령별로는 20대 3백48명,30대 2백39명,40대 1백76명,50세이상 2백37명이다. 이번 조사의 표본추출이 완전 무작위 추출이라고 보면 오차는 신뢰수준 95%에서 ±3.1%이내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6ㆍ25에 대해 조금이라도 경험이나 기억이 남아있을 만45세이상을 6ㆍ25세대,만44세이하를 전후세대라고 규정해 분석개념으로 사용하였다. ◎“한반도서 전쟁가능성 점차 줄고 있다” 66%/“그 상흔 아직도 잊을 수 없어” 61%/전쟁발발 책임은 북한ㆍ소ㆍ미ㆍ일 순/6ㆍ25세대 40%만 “북한은 공동번영의 동반자” 간주… 전후세대는 53%가 긍정적/“김일성후 김정일 권력승계” 57%/“통일정책 더 과감히 추진을” 44% ○가슴속에 응어리로 6ㆍ25가 일어난지 올해로 40년이 지났는데 과연 국민들의 마음속에 어떤 상처가 남아 있을까. 우선 6ㆍ25의 상처나 피해가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응답자의 29.3%가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고 31.9%가 「약간 남아 있다」는 반응을 보여 전체적으로 우리 국민의 6할이상(61.2%)이 현재 6ㆍ25의 상처를 간직하고 사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대별로 보면 6ㆍ25세대는 상처가 남아 있다는 응답이 무려 79.3%(많이 50.3%,약간 29%)인데 비해 전후세대는 53%(많이 19.9%,약간 33.2%)에 머물고 있다. 더구나 6ㆍ25세대는 「상처가 많이 남아 있다」는 반응이 월등히 많아 6ㆍ25세대에게 6ㆍ25는 아직도 대단한 상처로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전후세대도 6ㆍ25세대보다는 적지만 전체적으로 두사람 중 한 사람이 6ㆍ25의 상처가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향민 아픔은 계속 6ㆍ25의 상처나 피해가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상처나 피해의 내용을 물은 결과 가족이나 친지의 부상이나 사망이 32.3%,실향이나 이산가족이 21.5%,분단고착이 17.9%,나라발전 저해가 16.4%,재산피해 10.3% 등으로 나타났다. 인명피해나 재산피해 등 좀더 직접적인 요인에 대해서는 6ㆍ25세대의 상처가 더 깊으며,분단고착이나 나라발전 저해 등의 간접적인 상처는 전후세대에 약간 더 많다. 반면실향이나 이산가족이라는 반응이 6ㆍ25세대(14.7%)보다 전후세대(26.1%)에 더 많은 점이 주목된다. 직접적인 상처는 시간과 세대가 경과하면 어느정도 줄어들고 있지만,고향을 잃어버리고 혈육이 나뉘어진 아픔은 세대가 바뀌어도 오히려 증폭되는 경향이 엿보인다. 「남북대화」하면 우선 이산가족이 떠오르는 것도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민족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여진다. ○남침은 엄연한 사실 최근 6ㆍ25 책임론에 대해 여러가지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북침설까지 운위되는 실정이다. 이번 조사에서 6ㆍ25발발에 책임이 무거운 나라를 두나라 지적하게 한 결과 역시 북한이 56.0%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소련(51.9%) 미국(34.1%) 일본(22.3%) 남한(17.1%) 중국(11.9%)이며 「모르겠다」는 응답도 6.7%이다. 이 결과를 보면 최근의 다양한 전쟁책임론이 다투고 있지만 6ㆍ25는 역시 북한과 소련에 의해 야기된 전쟁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이라는 지적도 34.1%에 이르러 최근의 대미감정이 부분적으로반영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반면 6ㆍ25에 직접개입한 중국이 전쟁발발에는 가장 책임이 없는 나라로 인식되는 점도 흥미롭다. 세대간에도 인식의 차이가 있어 6ㆍ25세대는 주로 북한과 소련에 책임을 묻고 있는데 비하여 전후세대는 북한ㆍ소련ㆍ미국ㆍ남한 등에 책임이 상대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전후세대에서는 북한이라는 지적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며 반대로 미국ㆍ남한이라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어 부분적이나마 젊은 세대의 의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북녘 얼음도 녹을 것 최근에 소련이나 동구의 개방화는 우리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크게는 공산세계의 변모를 예고하는 일이고 좀더 직접적으로는 대북관계,나아가 통일문제에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소련이나 동구의 개방화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물어본 결과,「개방화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53.2%에 달하며 「변화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23.7%이다. 반면,「더욱 폐쇄적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은 15.8%에 불과하다(「모르겠다」는 7.3%). 이러한 결과는 북한은 변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인식이 일각에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결국은 북한도 개방화의 물결에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대별로 보면 북한도 개방화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6ㆍ25세대(47.7%)보다는 전후세대(55.7%)에 더 많다. ○동반자 인식이 우세 현재 우리사회에는 북한에 대한 양면적 시각이 갈등을 겪고 있다. 하나는 공동번영의 동반자라는 인식이고 또 하나는 대립적인 적대세력이라는 인식이다. 과연 일반국민들의 인식은 어떠한지 물어본 결과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48.7%이고 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은 32.5%로 나타났으며 『꼭 어느쪽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견도 18.8%였다. 이처럼 북한은 기본적으로 동반자라는 인식이 우세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적이라는 인식도 적지않다. 이러한 결과는 북한을 기본적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우리 사회내에서 당분간 더 논란을 벌일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특히 이러한 인식의 격차는 세대별로 더욱 크다. 6ㆍ25세대는 북한이 적이라는 의견이 47.4%,오히려 동반자라는 인식(40.0%)을 앞서고 있다. 반면 전후세대는 동반자라는 인식(52.6%)이 적이라는 인식(25.8%)을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꼭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견이 6ㆍ25세대(12.6%)보다 전후세대(21.6%)에서 많은 점도 흥미롭다. ○「세습체제」수용 자세 한반도 장래에 관한 문제 중에 「김일성 이후」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김일성 이후 문제의 핵심은 김정일이 권력을 이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견을 물어본 결과,김정일이 권력을 이을 것이라는 전망이 56.6%로,권력을 잇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34.5%)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모르겠다」는 8.9%). 세대별로 보면 권력을 계승하리라는 전망이 6ㆍ25세대에서는 50.0%인데 비해 전후세대에서는 59.6%에 달하고 있다. 한편 권력을 계승한다는 응답자(5백66명)중에서 북한이 앞으로 개방화로 나갈 것이라는 의견이 45.4%인데 비해 권력을 계승하지 못한다는 응답자(3백45명)중에는 개방화 전망이 65.2%이다. 이처럼 우리 국민은 김정일의 권력계승이 북한의 개방화에 약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이는 김정일 체제를 김일성 체제의 연장으로 인식하는 일반적 통념에 근거한다고 보여진다. 이번 조사결과는 그러한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거의 6할이 「김일성이후는 김정일 체제」라는 점을 현실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인다고 해석된다. ○전쟁 재발성은 희박 6ㆍ25와 그 이후의 격렬한 대립의 시대를 지내온 우리 국민들은 최근 급변하는 내외 정세 속에서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물어본 결과 「전쟁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의견이 66.0%로,「전쟁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반응(17.9%)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대로」 6.1%,「모르겠다」 10.0%). 더구나 이러한 의견은 세대간에도 거의 차이가 발견되지 않아 한반도에서 전쟁의 그림자가 걷히고 있다는 인식이 상당히 광범위한 셈이다. 최근 소련과 동구의 개방화로 촉발된 동서 해빙물결이 우리 사회에도 밀려왔고 특히 지난번 한소정상의 만남이 그런 물결을 더욱 가깝게 느끼도록 했다고 보여진다. ○성급한 평화분위기 이처럼 유례가 없는 평화분위기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통일정책의 추진속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물어본 결과,43.7%가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라는 의견인 반면,37.4%는 「지금보다 더 신중하게」라는 주문이다(「지금처럼」8.0%,「모르겠다」10.5%). 이러한 결과는 국제적 해빙물결,북한의 개방기대,한반도의 평화분위기 등에 비추어 보면 의외로 신중론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세대별로 보면 6ㆍ25세대는 적극론(35.6%)보다는 신중론(41.3%)이 오히려 우세하며 전후세대는 적극론(47.4%)이 신중론(35.7%)을 앞서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의 전쟁가능성,북한의 개방 가능성 등 현상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는 어느 정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그를 바탕으로 한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여론이 양분되어 있다. 이런 양분된 의견이 자유롭게 토론되어 하나의 국민적 대안으로 제시되고 추진되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한 과제일 것이다. ◎설문 내용ㆍ응답 ▲올해로 벌써 6ㆍ25가 발발한지 40년이 지났습니다. ○○님께서는 어떤 형태이든지간에 6ㆍ25로 인한 상처나 피해가 현재 ○○님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상처나 피해가 많이 남아 있다(29.3%) ②약간 남아 있다(31.9%) ③상처나 피해가 없다(38.8%) ▲○○님께서는 6ㆍ25발발의 가장 커다란 책임을 져야할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음 중에서 책임이 큰 나라를 두나라만 말씀해 주십시오. ①남한(17.1%) ②북한(56.0%) ③미국(34.1%) ④소련(51.9%) ⑤중국(11.9%) ⑥일본(22.3%) ⑦모르겠다(6.7%) ▲○○님께서는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점차 커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점차 줄어들고 있다(66.0%) ②점차 커지고 있다(17.9%) ③그대로(6.1%) ④모르겠다(10.0%) ▲우리 사회에는 「북한이 적」이라는 주장도 있고 「동반자」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님께서는 북한을 우리의 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아니면 동반자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적으로 보아야 한다(32.5%) ②동반자로 보아야 한다(48.7%) ③꼭 어느 쪽이라고 할 수 없다(18.8%) ▲최근에 소련과 동유럽에서 이른바 개방화 물결이 일고 있는데,○○님께서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반응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①더욱 폐쇄적으로 갈 것이다.(15.8%) ②개방화로 갈 것이다(53.2%) ③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다(23.7%) ▲○○님께서는 만약 김일성이 사망하면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물려받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①물려받을 것이다(56.6%) ②물려받지 못할 것이다(34.5%) ▲○○님께서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통일정책을 어떻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지금보다 더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43.7%) ②지금보다 더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한다(37.4%) ③지금 정도가 알맞다(8.0%) ④모르겠다(10.5%) ◎“6ㆍ25세대­전후세대의 인식차 좁혀야”/조사를 마치고/박종선 현대리서치연 대표 6ㆍ25가 일어난지 거의 한세대가 바뀐점에 비추어 이번 조사는 세대간의 인식차이가 어떠한가에 주목했다. 우선 6ㆍ25로 인한 상처나 피해가 자신에게 남아있는가,6ㆍ25 발발의 책임있는 나라는 어디인가,북한의 본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통일은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6ㆍ25세대와 전후세대 간의 인식의 차이가 크다. 6ㆍ25세대가 6ㆍ25로부터 파생된 피해의식이나,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전후세대보다 강하게 느끼고 있다. 반면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은 어떠한가,북한이 개방할 것인가,김정일이 권력을 계승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세대간의 차이가 비교적 작거나 거의 없다. 이러한 결과는 한반도 현실에 대해서는 피해의식이나 적대감에 연연하지 않고 말 그대로 오늘날의 현실에 근거하여 냉정히 인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런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기성세대는 보수적이고 완고하며 젊은 세대는 진보적이고 유연하다는 식의 단순논리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6ㆍ25의 피해의식,북한에 대한 좀더 적대적인 이해 등에서 6ㆍ25세대는 전후세대보다 완고하지만 한반도의 보다 현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후세대와 별 차이없이 유연하고 실용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또한 전후세대도 6ㆍ25세대보다는 전향적이고 진취적인 자세가 돋보이지만 일반적 통념보다는 훨씬 절제되고 냉정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의 6ㆍ25관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지만 실제 조사결과를 보면 전후세대도 6ㆍ25가 북한과 소련에 의해 도발된 전쟁이라는 인식에는 이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통일정책의 추진방식에 있어서도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라는 의견(43.7%)이 우세한 편이지만 「지금보다 더 신중하게」라는 의견(37.4%)도 결코 적지 않다. 전후세대 역시 6ㆍ25세대와 대립적인 입장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식을 공유하면서 점진적으로 그들 특유의 진취적 가치를 가꾸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번 조사를 통해 세대간의 차이와 일치가 공존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우리 사회는 세대간의 일치만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고 활력있는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세대간의 토론과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넓혀 나가면서 간격을 좁혀 나갈때 우리사회는 좀더 성숙한 사회로 전진할 것이다. 이번 조사결과가 바로 그런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북한의 대화신호(사설)

    북한이 근 반년가까이 외면해오던 남북대화를 다시 하겠다고 나섰다. 우리로서는 그동안 여러차례 그들이 마음을 돌려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해온 터여서 이를 마다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북한측이 대화재개의사와 함께 회담날짜까지 빠듯하게 잡았기 때문에 그 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동안 북한측의 대화거부자세는 매우 지속적이고 완강했다. 지난 13일에도 평양방송은 한소 정상회담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모든 남북대화를 거부한다고 밝혔었다. 그것은 지난해 말 팀스피리트훈련을 핑계로 모든 대화를 거부했던 때보다 더 심한 것이어서 우리는 남북대화의 앞날에 암담함조차 느꼈던 것이다. 이제 대화에 관한한 그들의 태도가 조금 변한 듯해 끊어졌던 대화는 어떤 형태로든 이어질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북한측의 태도변화에는 몇가지 복선이 도사리고 있는 듯 여겨져 개운찮은 감정을 갖게 한다. 첫째 그들은 돌연한 대화재개를 제의하면서 한소 정상회담및 한반도변화의 내용과 관련,신랄한 대남 비방을 서슴지 않았다. 그로 미루어 앞으로 재개되는 대화가 북한측의 일방적인 대남비방 선전장화 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지난해 성사될 뻔했던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뒤로 돌리고 고위급 회담및 국회회담 예비접촉을 먼저 내세웠다. 그 두 회담은 다른 접촉에 비해 비교적 정치성을 띠고 있는 대화이다. 가장 순수하고 인도적인 적십자회담이나 스포츠ㆍ경제회담 등을 배제한 저의로 미루어 회담전망은 별로 밝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셋째 회담재개 의사속에 대화 그 자체를 성사시켜보려는 성실성과 진실이 담겨있지 않다. 항상 강조하는 바이나 무릇 모든 대화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나 비방하고자 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을 때 그 대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설혹 이뤄진다 하더라도 결실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간의 북한의 태도와 자세로 미루어 그들은 재개될 남북대좌에서 한소 정상회담의 비난은 물론 이미 그들이 제기한 바 있는 이른바 범민족대회 개최,대북 관계법안 폐지를 되풀이 주장하는 등 선전공세로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그들의 주장과 공세에 일일이 댓거리할 수도 없고 그러자니 대화는 진전되지 않을 것이며 결국 결실은 커녕 불신만 누적되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북한의 대화자세가 근본적으로 대화와 교류에 목적을 두기보다 전반적인 대남 전략의 일환으로서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불리할 때는 일방적으로 기피ㆍ거부하면서 책임을 전가하다가 필요할 땐 이번처럼 느닷없이 대화를 제기하고 나서곤 하는 것이다. 다른 문제와 달라 남북한간의 대화는 가장 소중하고 본질적인 과제에 속하는 것이다. 민족의 재결합을 모색하고 분단상태를 해소해 보자는 대화에 성실성과 순수성이 결여된다면 그것은 하지 아니함만 못하다. 북한은 안팎의 변화에 눈을 크게 떠야한다. 특히 동구권의 개혁과 우리 북방정책의 성과를 눈여겨보고 새로운 대화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어야할 것이다.
  • 외언내언

    최근들어 부쩍 정말로 낯선 사람들이 서울에 오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어서 세상의 변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북한의 전고위관리,6ㆍ25때의 북한군 장교,소련내의 유력 한국계 인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중에는 남북분단직후의 대남공작총책이 들어 있는가 하면 북한측 정전위대표,한국군과 6ㆍ25때 교전까지 벌인 인민군 고급간부,그런가 하면 소련군 전투조종사까지 끼여 있어 만감이 오고 간다. 재소동포들가운데는 북한에도 여러번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 이들의 방한소감이 무척 기다려진다. 이들 소련거주 전북한의 고위간부들말고도 미국등 다른 나라에 있는 북한군 관계자들의 서울방문도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의 방한목적은 대체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6ㆍ25」와 남북인사들의 근황및 생활상에 대해 증언하고 국내의 산업현장,전방의 격전지를 돌아보는 일. 이들에게서 공통적인 것은 북한의 남침사실을 다시 확인해 주고 한국의 발전상에 놀라고 있다는 것. 북한군의 전장교들은 물론 소련의 관계자,헝가리ㆍ체코와 같은 동구권의 당시 외교관들까지 실례를 들어가며 북한의 남침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한국의 눈부신 발전에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 가운데서 주영복씨(67ㆍ전인민군공병소좌ㆍ미 로스앤젤레스 거주ㆍ호텔경영)의 경우가 무척 인상적이다. 주씨는 6ㆍ25때 춘천전투에 참전했고 서울의 인민군전선사령부공병부에서 소련군의 공병관련 작전서류의 번역및 통역으로 있다가 포로가 된 뒤 제3국을 택함으로써 뉴스의 초점이 됐던 사람. 최근 6ㆍ25발발 40주년을 맞아 마련된 학술회의 참가차 내한했다. 그는 『소련이 6ㆍ25남침을 주도했다』고 당시의 경험과 자료를 들어가며 밝히고 있다. ◆이처럼 자유스런 왕래가 가능하게 됐는데도 못오는 재소한국인들이 많다고 전해진다. 주로 경제적인 이유때문. 보다 왕래가 폭넓게 이뤄질 때 한소교류도 본격화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을 보면서 오가고 싶어도 오갈 수가 없는 1천만 이산가족들의 그 아픔은 언제나 되어야 해결될지 그날이 기다려진다.
  • “북의 재침위험성 높다” 76%/6ㆍ25 40주년… 국민여론 조사

    ◎조기통일 가능성엔 59%가 부정적/“2∼3년새 대북관념 좋아졌다” 47%/“우리 체제 우월… 북과 논쟁에 자신” 71% 우리 국민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지난 2∼3년전에 비해 좋아지고 있으며 남한체제의 우월성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보처가 6ㆍ25 40주년을 계기로 대륙연구소(이사장 장덕진)에 의뢰,지난달 18일부터 28일까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만 20세 이상 남녀 2천3백명을 대상으로 한 개별 면접형식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47.3%가 지난 2∼3년동안 북한에 대한 느낌이 좋아졌다고 응답한 반면 나빠졌다는 사람은 3.2%에 불과했다. 북한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고 한 의견도 44.6%나 돼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사람을 만나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자신있게 논쟁할 수 있다는 응답자는 71.5%로 나타났으며 28.2%는 자신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를 응답자 배경별로 보면 전쟁 비경험세대(58.8%)에 비해 경험세대(76.9%)에서,그리고 경영ㆍ관리ㆍ전문직(84.1%)에서 자신있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반면 20대 연령층과 학생층에서 자신이 없다는 응답이 많았다(만 20∼24세 38.1%,만 25∼29세 36%,대학생 39.7%). 또 남북한 통일가능성과 관련,응답자의 59.9%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통일의 가장 큰 장애로는 남북한간의 사상대립(34%),북한의 적화야욕(31.1%),남북한의 이질화(19.7%),국제적 이해대립(12.2%)등을 들었다. 통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정(34.3%)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정치적 민주화(29%)와 경제적 발전(21.9%)도 필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때 우리 자체의 현재 방위능력에 대해 41.6%가 믿을 수 없다고 응답한 반면 33.3%가 믿을 수 있다고 응답했다. 주한미군의 철수 시기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내의 철수 15.9% ▲우리의 자주국방능력이 완전해질 때까지 계속 주둔 63.6% ▲통일될 때가지 주둔 20.3%의 반응을 보였다. ▷통일◁ 남북한의 통일 후 체제에 대해서는 자본주의(59%),혼합절충 사회(32%),사회주의(8.3%) 순으로 희망했는데 전쟁경험세대와 나이가 많을수록 자본주의를 선호하고 있으며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혼합절충사회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가능성에 대해서는 높다가 22%,낮다가 59.9%,모르겠다가 18%로 나타나 남북통일의 가능성은 높지않게 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통일이 가능하다는 사람일 경우 그 시기에 대해서는 10년이내로 보는 사람이 42.2%로 가장 많았고 20년이내가 23.1%,알 수 없다가 15.8%,20년이후가 10.1%를 차지했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는가에는 필요하다가 62%로 나타났으며 도움이 필요할 경우 바람직한 중재자로는 미국(38.8%),유엔(38%),소련(14.8%)등을 꼽았다. ▷안보◁ 팀스피리트 훈련은 남북대화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중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3.1%가 찬성한 반면 66%는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또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데에는 찬성과 반대가 각각 62.8%와 36.7%를 차지했다. 이와함께 북한의 남침가능성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쪽이 23.4%,그렇지 않다는 쪽이 76.2%로 나타나 북한의 남침가능성을 우려하는 응답자가 훨씬 많았다. 특히 분단상황보다는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더라도 통일이 되는 것이 낫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찬성 17.3%,반대 81.7%를 보여 통일지상주의에 대한 경계의 시각이 우세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남북관계◁ 남북관계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는 이산가족찾기ㆍ서신왕래 45.7%,남북지도자의 대화 18.7%,문화예술ㆍ스포츠교류 16.2%,경제교류 13.3%를 보였으나 군축ㆍ군사활동 상호감시는 5.8%에 지나지 않았다.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에 대해서는 찬성 87.4%,반대 12%였으며 북한이 동시가입을 방해할 경우 남한만이라도 단독가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87.9%였다. 또 남북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는 책임에 대해서는 52.6%가 북한단독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남북한 모두에게 있다는 주장도 44.3%나 됐다. 북한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는 견해는 응답자의 51.7%였다. ▷6ㆍ25 인식◁ 6ㆍ25로 인한 분단에 가장 책임이 있는 나라로 북한이 가장 많이 지적됐으며 (44.2%) 소련(26.6%) 미국(17.6%)남한(4.7%) 순으로 나타났다. 한편 대륙연구소측은 이번 조사결과는 95% 신뢰수준이며 추정치의 최대표본오차 허용한계는 ±2.04%라고 밝혔다.
  • 환경문제 대처 원칙(사설)

    환경처 승격 첫해에 맞는 환경의 날을 보내면서,그리고 자못 번잡하게 제기되는 환경오염 사안들에 당면하면서 과연 우리의 환경문제에 대한 기본태도는 무엇인가에 새삼스럽게 회의를 갖게 된다. 이 근자의 사례중 무엇보다 팔당호 골재재채작업이 이 회의의 본질을 보여준다. 환경처는 수질오염과 정수기능의 장애를 우려,대책선행을 요구했고,이 사업의 해당부서는 우선 자신의 일정에 따라 지시를 강행했다. 펌프식 준설이냐 바켓식 준설이냐의 한걸음 물러선 방법적 선택의 요구마저 단순한 편의주의에 의해 선택되었다. 우리는 물론 건자재 부족이라는 또하나의 정책과제를 알고 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바로 환경에 대처하는 기본원칙의 문제가 아직도 우리에게서는 전혀 정리돼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환경처를 행정부서로 갖게 된 것은 하나의 모양내기 연습이 아니다. 너무나 구체적으로 오염의 현상이 체감되는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도 이쯤에서는 이 문제를 제껴놓고 발전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환경처는 환경처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해야하고,이는 곧 포괄적인 정책운영에 영향력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직 명백한 환경처의 업무사항마저 15개 부처에 분산돼 있다. 뿐만 아니라 환경처에 주었어야 할 일들을 시행하면서 각 부처는 또 환경처의 시각마저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차한 채로 현상황에서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업무는 주지 않았더라도 그 시각과 문제인식만은 같이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각 부처라는 것이 한 행정부의 업무분담을 뜻하는 것이지 독립적인 업적이나 명예를 위해서 개별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환경문제에 접근하는 현단계를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인가를 행정부 전체가 함께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개선영역에도 이익 대 비용의 이론은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더욱 악화된 환경오염 상황에서는 이익 대 비용의 관점이야말로 가장 공해유발을 촉진시킨다는 주장이 또 나와있다. 따라서 확인되는 현실에 그 나름대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선택하는 길만이 조금이나마 환경개선을 도울 수 있다는 견해들이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보지 않고 현상의 외곽 표피만 규제하는 것도 더 큰 혼란만을 일으킨다는 견해도 우세하다. 예컨대 회색도시의 불만스런 시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이산화황의 미립자 수준만을 낮출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이것이 결과적으로 살인스모그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도 분명해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행정부처간만이라도 각자의 이익 대 비용의 관점을 넘어서는 환경오염의 문제인식 수준을 통일해야 할 것임을 요구한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어느 범위까지를 목표로 할 것인가도 세분해놔야 한다. 쓰레기만해도 국민들의 분리수거만으로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결국 어디다 어떻게 폐기하느냐의 방법과 구조가 더 문제이고,쓰레기 내용의 어느 성분이 어떤 생산체계와 연계돼 있느냐를 분별하여 생산단계로부터 접근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우리의 환경문제에 대한 혼란은 우선 일하는 방법과 원칙의 혼란이다.
  • 강택민,대만경제인 첫 접견/양측 적십자사는 새달 회담

    【홍콩 연합】 중공 당총서기 강택민은 이등휘 대만총통(대통령)이 대륙과의 직접 접촉을 가능하도록 3불정책의 폐기 용의를 밝힌지 1주일만인 27일 대만경제계의 지도적 인물이며 해협 양안 상무협조회 대만측 회장인 장평소씨 일행을 접견,해협 쌍방간의 경제무역 확대와 투자증대를 촉구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강택민 당총서기가 대만을 대표하는 경제인들을 공식회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장평소 대만측 해협양안 상무협조회 회장 일행은 89년 12월 홍콩에서 중국의 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와 해협양안 상무협조회를 설립한 후 처음으로 정홍업 CCPIT회장의 초청으로 대륙방문길에 나섰다. 한편 중국적십자사와 대만적십자사 대표들도 6월중순 광주에서 회합을 갖고 지금까지 추진해온 이산가족찾기운동을 비롯,해협 쌍방간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평화통일에 앞장서기로 했다.
  • 김일성의 착시와 무감각(사설)

    북한의 김일성이 평양당국의 「국가주석」으로 「재추대」됐고 아들 김정일이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섰으며 권력서열에 변동이 있었다고 해서 우리는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한반도문제와 남북한대화및 교류에 관한 한 우리의 관심은 항상 본질문제 해결에 있기 때문이다. 작금 평양쪽에서 전개되고 있는 그들의 당직내각 개편은 솔직히 그들끼리의 권력놀음에 불과할 뿐 민족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번 평양당국의 권력체제 개편은 첫째 김일성 절대유일체제의 계속유지와 둘째 부자세습체제의 강화,셋째 대남ㆍ대외정책면에서의 비평화적 접근이라는 종래의 그들 정책방향과 당면 노선을 다시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그보다 우리는 그들이 지난 23일과 24일 이틀에 걸쳐 개최한 전원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일성이 제시한 이른바 시정연설내용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김일성은 먼저 그 자신이 40여년간에 걸쳐 강압적으로 견지해온 사회주의 이념및 독재권력체제와 관련해 『불치의 중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제국주의』라고 했고 『사회주의는 역사의 요청이며 인류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진 낡고 비인간적인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이르러 우리는 김일성의 무디기 짝이 없는 국제적 현실감각과 한반도문제 인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다른 말로 정치적 단견이며 착시라고 해서 틀리지 않는다. 세계는 지금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거듭하고 있는 변신(개혁과 개방의 물결)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분쟁의 해소와 분단국가들의 통일로까지 줄달음치고 있는 것이다. 동서독과 남북예멘이 그러하다. 중국과 대만도 본질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남북예멘은 역사적 전통적으로 가장 어려운 종교적 장애를 헐고 국가연합을 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김일성이 그런 세상움직임을 모를리 없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 고수는 시대착오적이다. 매우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자세이기도 하다. 국제적 현실이나 역사의 추세를 외면하고 스스로의 체제와 이념에 안주하겠다는 것은 다시말해 상대의 체제와 이념을 차단하고 적대시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반도문제에 적용될 때 반통일,비평화,폭력문제 해결자세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경계하고자 한다. 그는 대남정책에 있어서는 항상 구두선처럼 내세우는 자유왕래를,대유엔정책과 관련해서는 단일국호하의 유엔가입을 내세웠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 내용의 비현실성과 허구성이 발견된다. 남북한 자유왕래의 전단계과정은 무엇인가.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와 교류이다. 그것이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군축으로까지 간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지금 아예 대화와 교류조차 차단,거부하고 있다. 얼마전에 비록 민간차원이긴하나 계약서명까지 한 금강산공동개발등 경제협력을 전면 취소하고 나섰다. 바로 며칠전에 적십자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회담 재개도 거부했다. 게다가 존재하지도 않는 콘크리트장벽의 철거를 내세우고 이쪽의 기존법령의 폐기를 요구했다. 문제를 풀려는 자세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거부의 몸짓과 다를 바 없다. 대 유엔문제도 그러하다. 단일국호아래 한자리로 가입한다는 내용은 결국 종래의 그들 주장인 고려연방제의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북한 자신도 유엔가입문제에 성의를 보이고 있지만 「분단을 고정화」하려는 남한측의 반대로 타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대외선전적인 차원의 선동과 다르지 않다. 한국이 현재 북방외교정책의 결실에 힘입어 추진하고 있는 유에단독가입에 제동을 걸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아직 북한으로부터는 아무런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는 위협등으로 고립정책을 강화하는 듯하다. 북한은 그렇다고 해서 변화의 필연성마저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관심과 주목의 대상인 것이다.
  • 비운동권 「한대련」 출범/19개대학생회 참여

    【청주=한만교기자】 전국19개 대학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주축이 된 한민족대학생연합(한대련ㆍ회장 하상규ㆍ대구대)이 25일 하오4시 청주대학교 민주광장에서 제1기 출범식을 갖고 결성됐다. 지난10일 청주대 서원대 광운대 인천대 수원대 대구대 등 비운동권 19개대 총학생회장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반도유스호스텔에 모여 결성선언식을 갖고 이날 결성된 「한대련」은 성명서를 통해 『남북 학생교류ㆍ1천만 이산가족 상호방문ㆍ재일교포 법적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결의하고 『재일교포 법적지위 향상을 위한 남북대학생 공동대책을 위한 1차회담을 오는 6월10일 판문점 북쪽지역에서 갖자』고 제의했다.
  • 이상기상에 대한 관심(사설)

    특별한 관심 없이도 누구나 느낄 수 있을만한 일기불순이 계속되고 있는중에 중앙기상대의 장기전망마저 결국은 어둡게 내려졌다. 올 여름만해도 예년보다 낮은 저온현상이 나타나고 장마기간이 길어지며 집중호우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우려의 범위도 넓어진다. 수해만이 아니라 일조량의 변화도 문제가 되고 이에 따른 농작물의 피해만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영역들,예컨대 항공기운항에까지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미 지난 4월까지의 불순기상으로 국내ㆍ국제선 결항지연율은 작년대비 각각 20%,38%포인트까지 높아져 있다. 그리고 살인돌풍에서 보았듯이 인명피해도 더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기상에 대한 관심은 좀더 정면적으로 정리될 단계에 온 것 같다. 온실효과나 돌연변이의 기류들에 대해 마치 흥미로운 공상과학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그냥 지내기에는 이제 적절치 않다. 이것은 지구차원에서 실제상황임을 인정하고 얼마쯤이나마 긴장해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미 세계는 그렇게 변해 있다. 지난해 7월 서방 7개국 정상회담에서도 공동성명의 3분의 1이 기상의 문제였다. 「우리는 지구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 및 기타 온실효과 기체의 방출을 제한하기 위해 공동노력할 것을 촉구한다」는 문구까지 마련했었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 88년 11월에는 세계기상기구(WMO)의 주관하에 30개국이 모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회의」도 결성돼 있다. 이 위원회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라마다 각기 탄소방출량을 얼마나 억지해야 하느냐를 설정하고 이를 협약문으로 만드는 것이다. 올해안에 이협약 초안을 끝내기로 되어 있다. 현재 나와 있는 추정수치의 자료로 보면 미국ㆍ소련ㆍ호주 등 선진국은 매년 3%씩 줄여나가야 하고 중국이나 필리핀은 1%이상 늘어서는 안되며 한국은 다행히 아직 현수준만 변화시키지 않으면 되는 나라로 분류돼 있다. 그러나 우리도 실은 87년기준으로 인구 1인당 연간 1t이상의 탄소량을 방출하는 10여개국 중의 하나이다. 이상기후에의 대처는 물론 탄소량 억지에만 있지 않다. 현재 수준에서 이미 기후에는 너무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만해도 유럽의 강풍은 5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낼만큼 막강한 것이었고 이달 인도남부에 온 사이클론은 1백50명의 인명을 앗아간 어느때보다 극심한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1992년까지 지구에 1억그루의 나무를 심자는 「지구녹화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1억그루의 나무가 연간 흡수해 줄 수 있는 탄소량이 5백만t은 된다고 보는 것이다. 기후문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그 결과가 지역단위로 되돌려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올해는 이미 악화된 온실상황에서 태양흑점 대폭발 11년주기에 해당하고 적도의 엘니뇨현상도 급격히 고온화되고 있는 중이다. 우선은 재해방지의 준비를 면밀히 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이상기상에 대한 인식을 지구의 시야에서 과학화 해야만 할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와 이를 위한 예산이 또 얼마나 있는지 염려해 두지 않을 수 없다.
  • 북한,남북적대화ㆍ금강산개발 거부 안팎

    ◎“개방바람 문단속”… 체제유지 고육책/인적ㆍ물적교류 상당기간 단절될 듯/남북직접대화 기피,대미접촉은 계속 전망 북한이 16일 현대그룹측과의 금강산공동개발계획을 무효화한 데 이어 17일 우리측이 제의한 제1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의 재개마저 거부함으로써 앞으로 상당기간 남북대화는 물론 남북간 인적ㆍ물적 교류협상이 깊은 동안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 7일 안병수 조평통서기국장이 콘크리트장벽 철거와 남북정치협상회의개최 등을 요구하면서 홍성철통일원장관 앞으로 보낸 대남전화통지문에서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또 지난 14일에는 남북고위급예비회담 북한측단장인 백남준이 역시 전통문을 통해 우리측이 오는 22일 재개하자고 제의한 제7차예비회담과 관련,『가급적 빨리 결정해 날짜를 통보하겠다』는 명분은 내세웠지만 대화재개 거부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특히 최근 북측이 보낸 서한이나 전통문은 대부분 우리측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등 남북간의 실질적인 관계진전을 바라는우리측 요구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당초 팀스피리트훈련이 끝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대화를 재개하던 과거의 관행으로 볼 때 북측의 이같은 태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 남북관계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만큼 북측은 우리측이 예상치 못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또 지난달 22일 제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대대적으로 치른 북한이 『우리식대로 살아가자』는 입장을 더욱 확고히 하면서 내부체제를 일단 공고히 다지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북한은 초보적인 경제교류와 인도적인 이산가족 상호방문사업마저도 남쪽의 「개방바람」이 몰고올 체제위기를 깊이 인식,당분간 접촉과 교류를 중단하면서 집안단속을 철저히 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금강산공동개발은 관광자원개발로 북한의 바닥난 달러수요를 충족시키는 데다 개발지역이 금강산 일대로 제한돼 주민들과의 접촉을 피할 수 있어 북측으로서도 간절히 원하던 사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이같은 경제적 실익보다는 체제안정이 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아래 금강산개발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이날 전통문에서 적십자 본회담재개에 대해서도 「선고향방문단교환 후본회담재개」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으나 고향방문단 논의를 위한 실무접촉도 이른바 혁명가극인 「꽃파는 처녀」「피바다」등의 남한내 공연을 수용할 때만 응하겠다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이는 남북간에 실무접촉을 갖고 여기서 혁명가극공연등 제반문제를 논의하자는 종전 입장에서 크게 후퇴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적십자본회담개최의 전제조건으로 우리측의 거부가 분명한 혁명가극 공연을 천명한 셈이다. 통일원의 한 당국자는 이에대해 『우리측이 꽃파는 처녀 등의 공연을 허용할 수 없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는만큼 이같은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 북한이 계속 이를 고집한다면 남북대화는 상당기간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더욱이 북한은 『남북한 사이에는 자유왕래와 전면개방을 실현하는 데는 많은 난제가 있다』고 거듭 밝힘으로써 설령 우리측이 혁명가극 공연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들이 주장하는 콘크리트장벽철거와 국가보안법철폐 등을 들고나와 남북대화의 또 다른 장벽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에 이같이 경색된 자세를 보이고 있는 북한이 유독 대미유화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앞으로 남북간의 직접대화는 기피하면서 휴전 당사자인 미국과의 접촉은 계속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남북고위급예비회담ㆍ적십자본회담ㆍ국회회담 준비접촉 등 기존 남북대화의 재개는 북측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상당히 늦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갑작스런 평양의 경직화 전문가들의 진단/공개ㆍ공식교류땐 체제 허구성 노출 우려/한국정세 오판,반정부세력 선동 목적도 북한이 지난 16일 현대그룹과 체결했던 금강산공동개발 합작계약의무효화를 선언한 것은 당분간 대남관계를 진전시킬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폴이된다. 특히 이번 조치는 한필성씨에 대한 입북거부와 북한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병수 서기국장의 남북대화중단선언 등 일련의 움직임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국제적인 개혁ㆍ개방화의 추세 앞에 체제유지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북한이 남북교류의 물꼬가 터질 경우 초래될 수 있는 「부작용」을 신중하게 고려,남북관계 개선의 속도와 그 형태를 북한의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조절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분석된다. 또 북한은 외국 언론에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공개적인 남북경제교류가 결과적으로 개방물결의 유입을 가져올 뿐 아니라 이제까지 선전해 온 북한체제 우월성의 허구를 만천하에 입증할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합작계약의 무효화 선언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북한문제전문가들은 특히 한국의 최근 정세와 관련,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남조선혁명」의 분위기가 성숙해 가고 있다는 섣부른 판단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번 조치는 한국의 국내정치적 불안에 호응,한국사회내의 반체제세력을 선동해 한국사회의 붕괴를 꾀하려는 대남전략의 하나로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흥렬교수(충북대)는 『북한은 한국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을 경우 대화에 응하다가도 정세가 조금만 불안해지면 어느때건 중단시켜 왔음을 상기할 때 이 시점에서 한국내의 반체제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 같다』며 북한은 앞으로도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경제교류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창순씨(북한문제연구소이사장)는 북한이 남북간의 긴장완화를 요구하는 국제적인 압력에 밀려 금강산의 공동개발을 약속했으나 최근 한국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하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분석에 따라 경제교류 등 모든 남북교류를 중단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현대의 대북접촉이 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식적인 북방정책의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의 북방정책에 맞장구 칠 수 없다는 것도 북한이 이번 조치를 취하게 된 사정이라고 설명했다. 유석렬교수(외교안보연구원)는 『최근 한국내에서 표적이 되고 있는 재벌그룹,특히잦은 노사분규를 겪고 있는 현대그룹과의 합작이나 대내외에 공개된 건설장비의 무상공여 등은 북한이 내외적인 명분상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은 남북간의 긴장고조를 통해 한국내에 불안을 조성하고 동시에 급진전되고 있는 한소관계 개선에 불만을 표시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정용석교수(단국대)는 『북한이 지난 4월 있었던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계기로 외부의 개혁ㆍ개방압력에 대응해 미국등 서방과의 관계를 표면적으로 개선하는 듯한 조치를 취하면서도 한국과의 관계는 강경노선으로 선회한다는 방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이번 조치 역시 김일성 유일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적화통일전선이라는 기존의 대남전략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국내외에 재확인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대북 직교역 추진/통일원 밝혀

    정부는 이산가족의 고향방문등 인도적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통일정책에 대한 도덕적 현실적 지지기반을 확충해 나가기로 했다. 통일원은 15일 대언론 통일정책보고회에서 『북한은 현상황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을 위한 남북총리의 서울과 평양방문을 실현시킬 여건이 적합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며 이같이 밝혔다. 통일원은 이와함께 현행 남북간 간접교역을 직교역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 “남북적 11차 본회담 6월중순 평양서”/한적,북적에 제의

    대한적십자사 김상협총재는 7일 하오 북한적십자중앙위원회 이성호위원장대리에게 서한을 보내 『제11차 남북적십자 본회담을 오는 6월 중순경 평양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김총재는 이 서한에서 『적십자본회담이 중단된 지 4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재개되지 못한 채 이산가족문제 해결이 지연된다면 이는 적십자 본연의 사명과 임무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면서 이같이 제의했다. 남북적십자회담은 지난 85년 12월 서울에서 제10차 본회담이 개최된 이래 아직까지 열리지 못하고 있다.
  • 「하늘만큼 먼 나라」/임춘웅 국제부장(서울칼럼)

    수년전 「하늘만큼 먼나라」라는 한편의 연극이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극단 「산울림」이 대한민국연극제에 내놓았던 이 창작극은 그 예술성 이상의 감동을 남겼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 연극에는 백성희 조명남 전무송 박정자 이주실 등 우리 연극계의 뛰어난 배우들이 열연했고 임영웅씨의 연출솜씨 또한 훌륭했다. 그러나 불과 11명의 배우들이 비좁은 무대에서 엮어내는 연기력만으로 그 큰 감동을 자아낼 수 있을까. 「하늘만큼…」은 그런 연극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늘만큼 큰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했다. 이 극의 성공은 이산의 비극성이 갖는 극적 진실때문이었다. 분단과 이산은 40년,50년이 지나도 계기만 되면 한동안 잊고 살던 우리앞에 태연히 나타나곤 한다. 그리고는 그 처절한 생채기를 다시 드러내 놓는다. 최근 일본 삿포로에서 만난 한필성남매의 상봉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 오누이의 오열은 이산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분단과 이산의 문제는 어찌보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흐른다고 소멸하거나,더구나 없었던거로 해둘 성질의 것은 더욱 아니다. 이 극에서 황사장의 비극이 바로 그런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조강지처이고 나는 어머니의 외아들이었는데 이제와서 정숙하기만한 어머니가 재혼을 한 여자로,얼토당토 않게 내게는 웬 아버지 다른 형이 있어야 하느냐고 발버둥을 치지만 진실은 진실대로 남는다. 이산은 목이메어 헤어지던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덧 2세,3세들의 문제가 돼 있는 것이다. 이 연극이 공연될 때는 남북의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각기 「먼 나라」를 상호방문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이 극은 더 큰 아픔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사는 일중에 만나고 헤어지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나는 마음에 가식이 있으면 이 극에서처럼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한 어머니의 자식들이면서 어머니의 장례식에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두 줄로 나란히 갈라서 있는 그런 모습으로는 재회의 뜻이 없다. 그것은 이산보다 더 큰 비극일지 모른다. 이 극이 공연된 것은 1985년의 일이다. 5년전이다. 5년전과 지금 우리에겐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동안 세계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은 벌써 옛날의 얘기가 돼 버렸다. 두달도 채 남지 않은 오는 7월2일까지 동서간에는 경제통합이 이루어지고 통일작업이 내년안에 마무리되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지난해 1년동안 대만에서 본토를 다녀온 사람은 무려 37여만명에 이른다. 89년 대만과 중국의 교역량이 37억달러. 작년 천안문사태이후 중국은 대외개방을 억제하면서 다른 외국의 투자를 막으면서도 대만의 대본토 투자에는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89년 대만의 중국투자액이 10억달러 수준. 지난달 24일 대만의 대기업 포모사는 7백억달러 규모의 석유화학 단지를 본토에 건설키로 했다. 같은날 대만은 본토와 민간대표부 상호교환을 제의했다. 통일이 무엇인가. 사람이 오가고 물자가 유통되면 통일이 아닌가. 대통령이 한사람이고 정부가 하나돼야만 통일 되는게 아니다. 그렇게 보면 통일 안된 나라는 우리 뿐인 셈이다. 1978년 초쯤으로 기억된다.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중국 통일문제에 관한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UC버클리대의 스칼라피노교수,당시 미 CIA국장 터너,그밖에 중국계의 미국학자들이 대거 참가한 호화토론회였다. 이 토론회의 주제는 중국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스칼라피노 등 미국사람들은 한결같이 「무력통일」 뿐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중국계의 많은 학자들은 무력이 아닌 방법으로 통일이 가능하다고 반론을 펴고 있었다. 그들의 논거는 중국에는 「중화」라는 문화적 응집력이 있기 때문에 평화적 통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에게는 그들의 주장이 생경하기만 했다. 지나치게 낭만적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중국의 「중화」는 지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왜 안되는가」라는 얘기를 해보면 「6ㆍ25」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고 만다. 정말 그럴까. 중국은 우리보다 더 오랫동안 내전을 겪었고 대만정부는 나라의 반쪽도 안되는 조그만 섬에 쫓겨가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김일성이 변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만 변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과연 그래야 할까. 동독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던때 서독은 오래전 동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분단과 이산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요며칠 사이 『한반도분단의 책임이 있는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통일을 위해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들이 워싱턴과 모스크바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뒤이어 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에게 문제는 없는가도 살펴볼 일이다. 우리의 마음은 과연 열려있는가 말이다. 우리의 「하늘만큼…」은 의외로 가까울 수도 있다.
  • 이산가족 방북절차 간소화/정부,「자유왕래 특별지침」마련중

    ◎혈연초청장 오면 적극 승인/남북 군비통제 전향적 검토 정부는 남북간 이산가족들의 자유왕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가칭 「이산가족 자유왕래에 관한 특별지침」을 마련중인 것으로 3일 알려졌다. 정부의 이같은 지침마련은 오는 15일쯤 판문점을 경유해 북한을 방문하는 한필성씨부부의 경우가 이산가족 남북 자유왕래의 중요한 선례가 된다고 판단,앞으로 예상되는 1천만 이산가족들의 활발한 자유왕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이와함께 노태우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북한측에 제의한 60세이상 이산가족들의 남북교환방문을 우선적으로 북한측에 제의하는 한편 남북고위급 예비회담을 통해 통행ㆍ통신협정체결을 또다시 촉구할 방침이다. 이 특별지침은 북한거주 이산가족들이 보낸 초청장만 제시할 경우 방북을 적극적으로 승인하는등 방북절차을 대폭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고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날 삼청동에서 강영훈국무총리주재로 안응모내무,이종남법무,이상훈국방,최병렬공보처,홍성철통일원등 관계부처장관과 서동권안기부장,노재봉 청와대비서실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관계대책회의를 열고 통일원이 마련한 특별지침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특히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남북간 인적ㆍ물적교류 못지않게 남북간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인식아래 남북간 군비통제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 한필성씨 방북과 남북교류(사설)

    지난 3월초 일본 삿포로에서 40년만에 그 누이와 극적으로 상봉했던 한필성씨가 이번엔 평양에서 몽매에도 그리던 노모를 만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엊그제 한씨를 포함한 한국국적 이산가족들의 방북을 승인했지만 아직도 그 실현을 놓고는 기대와 의구심이 엇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들의 입북실현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측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고장난명이란 말이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이치를 가르치는 얘기다. 우리쪽이 아무리 인도와 인권을 들어 승인했더라도 북으로 가는 길엔 적잖은 난관이 따르는 것이다. 우선 북한당국은 한씨 가족이나 재미 교역자 가족들의 입북절차와 과정에서 자유와 인도주의원칙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의 신변을 보장해야 하고 자유의사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해야하며 이윽고는 무사하게 귀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밝혀진 바로는 북한의 한필화씨는 남쪽 오빠에게 보낸 편지에서 평양에 와서는 다시 돌아가지 말고 노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녀는 또 최근 그곳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오빠 한씨와 삿포로에서 만났을 때의 실정을 과장하여 거짓 증언을 했다. 한씨와 나눈 얘기가 모두 도청 녹음됐고 모든 행동이 부자유스러웠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실을 왜곡한 그런 터무니없는 선전선동을 아예 시비코자 아니하나 다만 그 일련의 저의를 경계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측이 한씨 등의 방북을 정치적 선전자료로 이용하려거나 혹시 본인들을 강압하여 이른바 「위장귀순」등을 획책하려 한다면 중대한 사태가 야기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한씨등의 신변을 보장하겠다는 북한 적십자측의 통지를 신뢰하고자 한다. 남북한은 지난해말 적십자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의 교환문제에 큰 진전을 이뤘다가 결국 성사 직전에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구태여 지금 와서 그 책임을 따지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당시 북한측은 이산가족재회라는 본질문제 보다 예술공연단등 부속문제를 내세워 결국 이를 트집잡아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남북한 이산가족들은 그때의 한과 아쉬움을 아직도 삭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번 삿포로에서의 감격적인 한씨 오누이 상봉을 지켜보며 이산가족들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이 환호했던 것도 그 까닭이다. 지금은 비록 분단된 국토위에서 남북으로 나뉘어 있으나 피를 나눈 가족이나 친척의 상봉은 어디까지나 인도와 인륜의 문제이다. 그들의 재회에서 이념이나 체제는 비켜서야 한다. 또 어떠한 경우에도 선동이나 홍보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된다. 지금 우리쪽에서는 이산가족재회 뿐만 아니라 종교ㆍ문화ㆍ학술ㆍ스포츠ㆍ언론 등 모든 분야의 북한접촉 요청을 승인하고 있다. 북한측은 그러나 어느 한 분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호응을 않고 있다. 그쪽의 호응만 있다면 이런 분야의 교류와 접촉은 남북한간 기존의 공식대화채널을 통하지 않더라도 당장 실현될 수 있다. 한씨 등의 방북이 이산가족 상호방문 상봉사업에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북한측의 호응과 성의를 거듭 촉구하고자 한다.
  • 한필성씨ㆍ재미교역자등 방북 허용

    ◎한필성일가 부부함께 5월 노모상봉/재미교역자 백41명 판문점경유 추진 한국국적 내국인의 북한방문이 사상 처음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3일 홍성철 통일원장관 주재로 제8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고 북한측으로부터 방북초청장을 입수한 이산가족 김현영씨(57),장논복씨(여ㆍ81),그리고 한필성(58)ㆍ홍애자씨(48) 부부등 4명이 제출한 방북신청을 심의한 끝에 이들의 방북을 승인했다. 이에따라 김씨는 북한의 누이 진숙씨(58ㆍ함남거주)와 상봉하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소지한 딸 경애씨와 함께 5월20일부터 6월10일까지 20일동안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고 장씨는 방일묵씨(58ㆍ개성거주)를 만나기 위해 역시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딸 곽옥자씨와 함께 5월중 10일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다. 또 한씨부부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무사귀환에 대한 보장을 받는다면 노모 최원화씨(85ㆍ평양거주)와 상봉하기 위해 판문점을 경유,5월초순쯤 7일동안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 외언내언

    공해와 환경오염을 말하지만 아직 이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방법은 부족하다. 그저 이런 식으로 말할 뿐이다. 「아테네 경우 대기오염이 심한 날 사망자수는 맑은 날에 비해 6배에 이른다」「멕시코시티 주재 외교관 부인들은 체류기간중 임신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받고 있다. 신생아 10명중 7명이 WHO(세계보건기구)기준치를 초과하는 양의 납을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례속에 이제는 우리도 끼어들고 있는 게 있다. 「봄베이에서 숨을 쉰다는 것은 하루에 담배 10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로 표현하는 아황산가스 영역에서 서울은 더 높은 초과치의 도시로 구분된다. 유엔의 환경조사 자료에 도시별 아황산가스 초과일수표를 보면 테헤란 다음이 서울이고 그 뒤에 밀라노ㆍ북경ㆍ파리ㆍ마드리드 들이 나타난다. ◆산업화이전에 비해 지구 대기에는 이산화탄소 25%,이산화질소 19%,메탄 1백%가 증가하여 지난 1백년간 지구평균기온이 섭씨 0.6도 상승됐다는 것이 오늘날 공인하는 환경변화의 한 기준이다. 그리고 이것이 21세기 말에는 5.5도까지 상승된다고 추정한다. 문제는 2도가 높아지기 전에 강수량이 지역적으로 대폭 변하고 감소되어 관계용수만해도 15%가 증가되어야 한다는데 있다. 이런게 다 공상과학소설 이야기 같지만 실은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오늘이 「1990 지구의 날」이다. 20년전 미국시민 2천만명이 모여 시위를 했던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 날은 이제 세계 1백30개국이 국제적 연대행사를 벌이는 날로까지 발전되었다. 우리도 올해에는 50여개 단체가 동참하여 인간과 자연의 생태적 공동체의 조화로운 삶의 개혁을 생각한다. 그러나 좀처럼 희망적이진 않다. 이 날의 행사가 커지고 있는 것이 바로 그만큼 지구환경이 악화됐음을 실증할 뿐이다. ◆지난 3월만해도 환경처는 공해배출 2백46개 업체를 적발하여 2곳 폐쇄,54곳 조업정지,63곳 고발 조치를 했다. 이 수준으로 되는 일인지 알 수 없다.
  • 「불신의 벽」교류확대로 허문다/남북협력사업의 의미와 내용

    ◎통일원서 종합처리… 동질성회복 주력/접촉창구단일화·관계법 뒷받침 시급 정부가 20일 확정,발표한 「90년도 남북교류협력 중점추진대책」은 앞으로 예상되는 북한의 개방과 이에따른 한반도의 긴장완화라는 대명제를 위해 경제·문화·체육 등 비정치분야부터 실질적인 교류협력을 이루어나가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비정치분야의 교류협력은 정치·군사 분야보다 비교적 쉽게 물꼬를 틀 수 있기 때문에 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남북쌍방간의 깊게 팬 불신의 골도 허물어뜨릴 수 있는 결정적 동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같은 예는 지금 한창 통독열기로 들끓고 있는 동서독의 경우에서도 잘 설명되고 있다. 비정치적분야의 교류협력확대는 또 실천가능성이 보다 커진다는 측면에서 북한주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남북한간의 동질성회복에도 한몫을 톡톡히 할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우리정부는 지난 88년 7·7선언 이래 「선 교류협력확대 후 정치·군사적문제논의」라는 기능주의적 통일접근방식을 줄곧 유지해 왔다. 결국 정부의 이번 남북교류협력종합대책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번 남북교류종합대책의 또다른 특징은 통일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도록 창구를 단일화 한다는 차원에서 통일원을 중심으로 대북한정책의 관계부처간 업무협조체제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남북교류협력은 실적도 미미했지만 각 부처별로 다양한 대북접근정책을 시도,「중구난방식」이었다는 비판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 통일원을 주축으로 확실한 기본틀을 잡았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관계의 올바른 방향정립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통일원의 역할강화는 결과적으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일원장관의 부총리급 격상」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조만간 통일원장관이 부총리급으로 격상되고 통일원조직이 확대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고위당국자가 이와 관련,『서독도 통독문제에 관한 전권을 내독성에 위임했고 이에따라 내독성이 동서독의 교류협력확대및 군사적 신뢰구축방안마련 등에 있어서 타부처에 비해 월등한 권한을 가져왔다』고 밝힌 대목은 우리현실과 비교해 볼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에 발표된 남북교류협력중점추진대책은 대부분 각 부처가 지난 1월 대통령 연두업무보고나 국회보고 등을 통해 이미 알려졌기 때문에 그다지 새로운 사안은 없다. 문교부의 남북간 교수·대학생 교류계획은 그동안 수차례 언론에 보도되었고 문화부의 종교인·문화예술인교류 등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이번 대책중에서 굳이 새로운 것을 꼽을 수 있다면 동자부의 대륙붕공동개발이나 상공부의 북한상품반입확대 및 연계무역활성화정도라고 여겨진다. 그렇더라도 가장 피부에 와 닿으면서도 실현되기 쉬운 이들 사업의 중요도는 한층 높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같은 교류협력을 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관련법규의 정비 및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남북교류협력의 근간이 되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특별법」과 「남북협력기금법」등이 조속히 입법,시행되지 못하고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중인 현실은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마련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럴 경우에만 전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북한의 실질적인 호응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탈이데올로기화 및 민주화·자유화바람이 강하게 불어닥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볼 때 궁극적으로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한반도의 평화정착분위기조성을 위해 마련한 정부의 남북교류협력추진대책은 앞으로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날 보고된 관계부처의 남북교류협력중점사업은 다음과 같다. ▷통일원◁ ▲통일여건성숙을 위한 남북정상회담실현의 지속적 추진 ▲이산가족등 인도적 문제해결및 경제분야 교류협력 중점 추진 ▷문교부◁ ▲남북대학생의 조국순례대행진·고적답사·유학생 교류 등에 대한 북한의 호응촉구 ▲체육대학교류와 한의학 학술교류 등 이념적 갈등 요소가 적은 분야부터 단계적 추진 ▷문화부◁ ▲통일민족잔치 세시풍속놀이에 북한참여 유도 ▲문화재공동보존과조사연구 ▲국어문법과 표기법 통일 ▲종교인·문화예술인 교류 추진 ▷체육부◁ ▲실현용이한 쌍방개최 체육행사에 상호초청방문 추진 ▲남북체육분야의 협력분위기 조성을 위해 축구·아이스하키종목의 경평전을 부활하고 상호 전지훈련을 실시 ▷상공부◁ ▲북한으로부터 반입이 제한되었던 1차산품 반입을 늘리기 위해 총수입 실적의 일정 범위내에서 북한상품반입확대 ▲연계무역의 활성화 ▲중장기 연불반출제도 개선 ▲궁극적으로 현재의 간접교역 중심에서 직교역으로 전환노력 ▷동자부◁ ▲북한의 전력난및 계절적 수급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남북전력계통 연결방안 구상 ▲대륙붕 유전등 부존자원의 남북공동개발방안검토 ▷교통부◁ ▲남북간 교통망 연결과 대륙연계수송망확보 ▲경의선·경원선철도복원을 위해 준비중이며 이미 부분적으로 실시설계 완료 ▲금강산 공동개발에 참여해 북한의 주요외화 획득원인 관광자원의 개발을 적극 지원 ▲남북한관광교류방안 추진 ▷과기처◁ ▲민간차원의 남북과학기술교류추진협의회를 구성,운영 ▲국내개최국제학술행사에 북한과학기술자 초청 ▲유엔개발계획(UNDP)등 국제 기구를 통한 협력 적극 추진 ▲남북간 과학기술분야 교류협력여건조성 ▷환경처◁ ▲남북에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환경보전문제를 중심으로 학술교류·생태계공동조사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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