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산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부정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574
  • 이산문학상 소설부문 수상/홍성원씨(인터뷰)

    ◎“역사속에 묻힌 개개인의 진실 부각” 중견작가 홍성원씨와 시인 정현종씨가 92년도 이산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이산문학상은 고 김광헙시인을 기리기 위해 문학과지성사에서 제정한 상으로 올해로 4회째.두 수상자의 인터뷰를 싣는다. 『제 나름으로는 역사소설로는 첫 이산문학상을 탄게 기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씨는 수상작인 「먼동」이 자신의 첫 역사소설임을 밝히고 이로써 역사소설을 쓰는데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87∼91년 동아일보에 연재된뒤 전5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먼동」은 구한말부터 3·1운동에 이르는 시기를 배경으로 세 가족사의 얘기를 다룬 역사대하소설.최근 현실도피적이고 가벼운 읽을거리로서의 역사소설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먼동」은 그와는 다른 변별점을 갖는다.철저한 고증에 따른 사실적인 사건전개와 주제에의 집요한 천착,이와 더불어 「먼동」의 남다른 의의는 역사에 대한 논의를 사실적 수준으로 형상화했다는데 있다. 일제의 침탈이 가속화되는 시기에 양반·중인·천민 세가문의 일제의 친밀도에 따른 부심을 묘사하고 있는 이 소설은 「결과만이 남아 중요시되는 역사란 무엇이가」라고 묻는다. 결국 대답없는 메아리나 냉소주의로 기울어지기 쉬운 이 질문에 대해 작가는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개인들의 노력을 부각시킴으로써 역사허무주의의 극복을 꾀하고 있다. 『역사가 제아무리 잘못된 것이라 해도 역사기록의 행간에는 이를 바로 잡으려는 개인들의 노력이 숨어있음에 주목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먼동」은 역사라는 거대담론 속에 파묻혀 버렸던 개인의 진실을 복원시킴과 함께 기존 식민사관에 물든 역사허무주의의 전복을 시도한 뜻있는 작업성과로 관심을 모은다. 6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남과북」 「D데이의 병촌」등으로 큰 역량을 드러냈던 작가는 현재 본지에 또다른 역사소설 「수적」을 연재중이다. ○이산문학상 시부문 수상 정현종씨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시로 노래” 『나무는 광합성으로 생태계에 산소를 공급하고 시는 인류에게 「정신적 초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나 나무나 하는 일은 비슷하지요』 제4회 이산문학상 시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시인 정현종씨(53·연세대교수)는 자신의 시쓰는 작업을 「정신적 초록」을 제공하는 일로 간단히 요약했다. 이번에 이산문학상 수상작으로뽑힌 그의 시집 「꽃 한송이」는 올 상반기에 간행된 가장 우수한 시집중의 하나로서 이같은 그의 시세계를 충실히 담고 있다.형이상학적인 다소 난해한 시를 써오다 80년대 후반부터 생태계의 위기를 시로 형상화해온 시인은 이번 시집으로 그동안의 시작업을 정리한 셈이다. 『자연과 인간간의 관계에 새롭게 주목하게 되었지요.이는 미생물이나 고등생물이나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섬세한 생명감각과 우주적 상상력으로 생동하는 생물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그러나 그 노래는 결코 밝고 명랑한 노래는 못된다.파괴되어 가는 자연 한가운데에 선 시인의 노래는 다소 허허롭게 들린다.그 허허로움은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주며 그 어떤 정신적 예지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생태계의 위기감을 시인으로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정씨는 자신은 생태계 보존을 위해 운동대신 시를 택했노라고 말했다.자연은 시쓰기의 「샘」이며 자신은 시의 힘을 믿는다고 정씨는 덧붙인다.그런 맥락에서 볼 때 지금도 생태계의 파괴가 지속되는 현실에서 시로써 「정신적 초록」을 제공하는 시인의 작업은 당분간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이산가족 원하는 곳서 살게하자”/정 총리,대북제의

    ◎입북인사·이인모씨 교환 용의/고향방문단 정례화·면회소 설치도 정부는 7일 고령 이산가족중 희망자에 대해 부양자 또는 배우자가 있는 쪽에 귀환·정착토록 하는 문제를 남북이 우선적으로 협의,합의가 이뤄지는대로 즉각 실천에 옮기자고 북측에 공식 제의했다. 정부는 이날 「7·7선언」4주년을 맞아 북한의 연형묵정무원총리에게 보낸 정원식국무총리명의의 대북서한에서 이같이 제의했다. 정부는 또 이 서한에서 『불행했던 과거의 남북관계로 인해 타의에 의해 상대측 지역에서 발이 묶여있는 이산가족들에 대한 생사확인과 상봉,그리고 이들 본인의 희망에 따른 귀환·정착사업도 함께 전개하자』고 제의하고 북측이 원한다면 이를 위한 별도의 남북접촉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특히 『이 사업대상에 북측이 강력히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미전향장기수출신 이인모노인(75)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대신 남측은 ▲6·25전란시의 납북인사 ▲납북어부 ▲69년 피랍된 KAL기승무원 ▲70년 납치된 해군함정승무원등 납북인사 2백78명과 ▲51년 월남한 장기려박사의 부인과 자녀등(북한생존)을 이 사업에 포함시키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사업을 정례화하고 판문점에 면회소를 설치,운영하는등 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과 왕래를 허용하기 위한 조치들이 즉시 취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산가족문제해결을 위한 사업시행시에는 인도주의원칙과 상호주의원칙,그리고 엄정중립이 보장되는 자유의사확인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영철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7일 『현재 남쪽에서 빨치산 또는 남파간첩으로 활동하다 사법처리를 받고 형기를 마친 사람은 60명 안팎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히고 『이들이 귀환·정착을 희망할 경우 타의에 의한 이산가족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상호주의따라 오고 가게 하자(사설)

    88년 7월이었으니 만4년전이다.노태우대통령이 내외에 천명한 7·7특별선언은 당시로서 충격적이었다.그때까지의 남북한 관계를 대결과 적대에서 대화와 협력과 공존의 관계로 바꾸는 일대 획기적인 조치였다. 이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으로써 북한은 이제 더 이상 적대자가 아니었다.민족통일을 향한 동반자관계정신아래 우선 양쪽의 인적·물적 왕래를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여 평화공존을 이룩한다는 것이다.그 바탕위에서 민주공동체를 회복발전시켜 궁극적인 통일을 성취하겠다는 구상이다.따라서 이 7·7선언의 정신과 내용은 오늘날 남북한 사이에 역사적으로 합의되고 발효된 기본합의서의 모든 것을 원초적으로 포괄하고 있다고 할수 있다. 이렇게 볼때 정부가 7·7선언 4주년을 맞아 그 정신을 되살리면서 현재 남북 양쪽의 고령 이산가족중 희망자들이 부양자 또는 배우자가 있는 쪽에 정착시키도록 하는 문제를 협의 실천할 것을 북측에 제의한 것도 크게 보아 민족공동체 회복 노력의 구체화단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한번 한민족공동체가 갖는 역사적 의미와 통일의 당위를 언급하고자 한다.통일은 왜 해야 하는가.본래 한 민족이 둘로 갈라졌고 조상이 물려준 한반도 한개의 땅 덩어리도 둘로 나뉘었기 때문이다.그것이 약소민족으로서 타의에 의해서였건,사회주의혁명 광신자가 저지른 전쟁에 의해서였건 분단은 분단이었고 이산은 이산이었다.그 분단과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인가.남북한 통틀어 1천만이 넘는 이산가족들이다.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과 상봉및 왕래를 허용하는데 필요한 조치가 즉각 취해져야 하는 일 즉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는 일이야말로 현재의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작업의 첫번째 일일 것이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사람이 머리로써 생각하고 발로써 움직이는 것은 천부의 권리이다.사상과 언론과 집회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됨으로써 민주정치와 자유정의 사회로 확인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분단된 한쪽에서 그것이 보장되는데 다른 한쪽에서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통일이전 민족공동체 회복은 불가능하다.연목구어격이며 시간이 갈수록,세대가 지날수록 불가능의 심도는 깊어질 뿐이다. 물론 이산가족의 귀환 정착사업은 인도주의,상호주의 자유의사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살고 싶은 곳에 가족과 함께하는 천부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인도주의라면 올 사람 오게하고 갈 사람 가게하는 것은 상호주의이다.저쪽을 증오하여 가기 싫은 사람을 강제하지않는 것은 자유의사 확인의 원칙이다.때늦은 감 없지 않으나 남북한은 이제 이산문제해결을 이렇게 시작하자는 것이다.
  • 「이인모 송환」 북의 정치악용에 쐐기/정총리 「7·7대북제의」안팎

    ◎“이산가족 만남” 평양의 변화유도 포석/교착상태의 남북대화 진전여부 관심 정원식국무총리의 「7·7 대북제의」는 크게 두갈래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통칭 「이산가족문제」해결의 시급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고령이산가족들의 귀환 정착문제를 먼저 해결하자고 제의한 것이 그 하나이고 이인모노인(75)문제와 관련한 남측 당국의 공식적인 대안제시가 또 다른 하나다. 그러나 전자의 제의가 비록 과거의 다른 제의에 비해 부분적으로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북측의 전향적인 대응을 유도,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낼 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그동안 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북측에 이산가족문제의 해결을 촉구해왔고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서도 당면과제로 제시한바 있다.그러나 북측의 회피적인 자세로 적십자회담이 시작된지 만 21년이 되는 오늘날까지도 이렇다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 따라서 이번 제의 역시 90년의 「7·20민족대교류」,91년의 「8·15국토대행진」제의등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해결해야할목표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환 「1회성 제의」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이번 대북제의의 초점은 후자에 맞춰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이인모노인문제와 관련한 남측의 이같은 「해법」제시는 북한측이 최근 군중집회,사회단체성명발표,국제기구단체에의 편지발송,언론보도등을 통해 이노인이 이산가족의 상징적인 인물인 것처럼 대대적으로 부각시키는 등 그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남북관계개선에 장애를 조성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취해진 맞대응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7·7 제의는 그 내용의 순수성과 정당성에 관계없이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되기보다는 남북간 또 다른 공방의 빌미가 될 소지가 많은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가 이날 제시한 대안의 골자는 ▲6·25당시의 납북인사 ▲납북어민 ▲69년 납북된 KAL기승무원 ▲이노인과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는 장기려박사의 가족 등 재북인사 2백80여명과 이노인을 비롯,빨치산및 남파간첩 중에서 형기를 마친 60명 안팎의 남한거주 미전향장기수들의 송환을 연계시켜 논의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측이 종군기자,전쟁포로라고 주장하며 무조건적인 송환을 요구하는 이노인의 개별처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명백히 밝힌 셈이다. 더욱이 북측이 「수령과 당을 위해 혁명투쟁한 영웅」으로 미화하고 있는 이노인의 송환을 그들 스스로 행위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는 피랍KAL기 승무원 및 납북어부들의 송환과 연계시켰는데 북측이 이 제의를 액면 그대로 수용할 지에 대한 대답은 불문가지. 다만 정부는 이번 제의를 통해 분과위구성·운영합의서 마련을 위한 대표접촉을 비롯해 남북회담석상에서 기회있을 때마다,그리고 「8·25이산가족노부모방문단」교환사업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실무접촉에서까지 이노인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남북대화에 「장애」를 인위적으로 조성해온 북측의 행위에 쐐기를 박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7·7제의」가 최근 핵문제로 인해 빚어진 남북대화의 교착상태를 타개할수 있는 돌파구의 역할까지 할 것으로는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정부의 이날 제의는 「핵문제해결없이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은 없다」고 해온 최근 일련의 대북 강경드라이브정책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우리 당국이 이번처럼 단호한 대북정책을 추진할때 북측도 결국 따라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리 정책결정권자들의 굳은 신념이 과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는 두고볼 일이다.
  • 정 총리 대북서한 요지

    이산의 고통과 아픔을 안고 있는 1천만 이산가족들은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친척들간에 자유로운 왕래와 상봉,그리고 재결합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학수고대해 왔으며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된 지금에 와서 그 심정은 더욱 절실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과 같은 견지에서 특히 나는 여생이 얼마 남지않은 고령이산가족중 희망자에 대하여 부양자 또는 배우자가 있는 쪽에 귀환,정착토록 하는 문제를 우선적으로 협의하여 합의가 이루어지는대로 즉각 실천에 옮길 것을 귀측에 정중히 제의하는 바입니다. 또한 나는 이 기회에 불행했던 과거의 남북관계로 인해 타의에 의해 상대측 지역에서 발이 묶여 있는 이산가족들에 대한 생사확인과 상봉,그리고 이들 본인의 희망에 따른 귀환 정착사업도 함께 전개할 것을 아울러 제의합니다. 우리는 이 사업의 대상에 귀측 지역에 있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포함시키기를 희망합니다. ▲6·25 전란의 와중에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납북된 인사 ▲55년5월∼87년10월간 납북된 미귀환 어부 ▲69년12월11일 강릉비행장을 출발,김포로 가던중 대관령상공에서 납북된 KAL기 승무원 성경희(46) 정경숙(46) 등 2명과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10명 ▲70년6월5일 연평도 해상에서 어선 보호업무를 수행하던 중 귀측 경비정(4척)으로부터 기습사격을 받고 납치된 해군함정 I­2정(200t) 승무원 문석영(46)과 장병 19명 ▲19 51년 월남한 장기려박사의 부인과 2남3녀 및 그들과 유사한 환경에 처해있는 이산가족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사업과 아울러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사업을 정례화하고 판문점에 면회소를 설치·운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귀측에서는 이유와 경위가 어떻든간에 본래 귀측 지역 출신으로 우리측 지역에서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사업대상으로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록 성격은 다르지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귀측이 희망한다면 이인모노인도 이같은 사업대상에 포함시킬수 있음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만약 귀측이 이 사업 실시에 동의한다면 이들의 귀환·정착을 가능케 하는 방향으로 남북쌍방의 관련법령들이 정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 남북적 오늘 접촉/이산방문 실무 협의

    남북한은 8일 상오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남북적십자 제4차실무대표접촉을 갖고 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 교환에 따른 실무문제를 협의한다.
  • 정 총리,오늘 중대 대북제의/이인모씨 송환 입북자와 연계 포함

    ◎「7·7선언」 4주년맞아 연 총리에 정부는 북한이 강력하게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미전향 장기수출신 이인모씨(75)문제와 관련,북측이 오는 8월25일 서울에 올 「이산가족 노부모 북측방문단」에 이씨의 재북가족을 포함시킬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의 상봉을 허용할 방침인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정부는 그러나 이씨 개인의 송환문제는 남북상호주의 원칙에 입각,처리되어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한편 정부는 북측이 이씨의 송환을 고집할 경우 60년대에 강제로 납북된 KAL기 승무원을 비롯,북한에 억류돼 있는 납북어부 등 6·25전쟁 이산가족을 제외한 납북인사들과 남북한에 있는 미전향 장기수들과의 일괄 교환을 목표로 한 별도의 남북회담 개최를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7일「7·7선언」4주년을 맞아 연형묵 북한정무원총리에게 보낼 정원식국무총리 명의의 대북서한에서 이같은 뜻을 북측에 전달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밖에 이 서한에서 「8·25 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및 예술단」교환을 비롯한 이산가족문제,남북경제교류협력문제 등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 신청 1만8천명중 컴퓨터 추첨/방문단 선정기준 문답풀이

    ◎서울 39명등 각 시·도 고르게 선정 오는 8월25일부터 28일까지 평양을 방문하게 될 이산가족방문단 1백명의 인원선정기준 등에 대해 문답풀이로 알아본다. ­방문단 1백명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부모 또는 자식을 상봉코자 하는 70세이상 신청인 54명과 배우자를 만나려는 70세이상 4명,부모를 상봉하려는 50세이상 69세이하 42명으로 구성된다. ­1백명을 연령별·성별·출신지역별·거주지별로 구분하면. ▲연령상으로 다시 구분하면 70세이상이 58명이며 50세이상 69세이하가 42명이다.이 가운데 남자가 82명이며 여자는 18명이다. 출신지역별로는 황해도가 25명으로 가장 많고 평남 20명,함남·평북 17명,함북 10명,경기 7명,강원 4명 등이다. 또 신청인의 거주지는 서울이 39명,경기 18명,인천 9명,부산 7명,강원 6명,충남 3명,대구·대전·광주·충북·경남·경북·전남·전북·제주가 각 2명씩이다. ­선정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먼저 그동안 대한적십자사·통일원·1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등에 신청한 4만8천2백87명 가운데 이번 선정기준(70세이상자로서 부모 또는 자식,배우자 상봉희망자및 50세이상 69세이하자로서 부모 상봉희망자)에 맞지 않는 2만9천9백49명의 비자격자를 제외한 1만8천3백38명을 대상으로 한다. 인원선정은 단계별로 나눠 컴퓨터로 추첨한다. 1단계로 혈연관계·연령별·성별·출신지역별·거주지별 항목 선정인원수의 분포에 따라 방문단 인원의 3배수인 3백명을 선정한다. 2단계는 3백명중 해외여행결격자(신원조회담당기관 판정)를 제외하고 1단계의 항목별 선정인원수의 분포와 직업별·종교별 선정인원수의 분포를 추가,2백명을 뽑는다. 3단계로 2백명을 대상으로 신체검사를 실시,부적격자를 빼고 2단계 항목별 선정인원수의 분포에 따라 상봉대상자의 소재확인을 의뢰한 인원을 선정하고 나머지 인원은 예비후보로 한다. ­최종 방문단인원 1백명은 어떻게 뽑는가. ▲상봉대상자의 소재가 확인된 신청인 가운데 상봉대상자의 혈연관계를 고려한 일정순위에 따라 선정될 예정이다.세부사항은 현재 논의중이다.
  • 이산가족방문 70대 58명/한적,선정기준 확정

    ◎부모상봉 50∼69세 42명/오늘 1차후보 3백명 추첨 대한적십자사(총재 강영훈)는 3일 오는 8월25일부터 28일까지 평양을 방문할 이산가족방문단 1백명의 선정기준을 확정,발표했다. 이산가족방문단 인원실무위원회(위원장 이재운변호사)가 세차례 실무회의를 거쳐 확정한 선정기준에 따르면 최종적으로 ▲부모나 자식을 상봉하려는 70세이상 54명 ▲배우자를 만나려는 70세이상 4명 ▲부모와의 상봉을 희망하는 50∼69세 42명등을 선정하기로 했는데 신청자의 성별·출신지 및 거주지역·직업·종교별 분포도 함께 고려하기로 했다. 방문단 1백명중 남자는 82명이며 여자는 18명이다. 이산가족방문단 신청인은 모두 4만8천2백87명이었으나 이가운데 선정기준에 맞는 사람은 1만8천3백38명이다. 한편 적십자서는 4일 상오9시30분 정부종합청사 총무처 전자계산소에서 1차후보 3백명을 컴퓨터로 추첨키로 했다.
  • “생필품공장 연20∼30일 가동”/귀순 김영성씨 일문일답

    ◎젊은세대 정치에 무관심… 50대이상 “함구”/월남자가족 출간추방… 「이산재회」 걸림돌 ­귀순동기는. 『58년 맏형이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당했고 1·4후퇴때 두 형이 월남했다는 사실이 70년대초 밝혀져 그때부터 불이익을 받아왔다.그후 체코유학동기생들의 도움으로 재기,89년 55세에 후보당원이 되기는 했으나 크게 나아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중 동독파견근무이후 동구권몰락의 엄청난 변혁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개방밖에 살길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해왔는데 이로인해 베를린 대표단장으로 부터 질책과 감시를 받아왔다.귀국하면 큰형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을 두려워하게됐고 이때문에 탈출을 결심했다』 ­북한의 건축기술수준과 평양과 지방의 차이는. 『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괜찮았으나 65년이후 설계전문교수들이 성분불량으로 숙청된 이후부터 설계원 처우가 낮아 인재고갈상태에 있다. 만수대혁명박물관등 기념비적인 건물과 살림집들과 건축설비나 자재등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만 그나마 거의 모든 건설이 평양에 집중되고 있다.때문에 남포·원산 등 일부 지방도시를 제외하고는 지방의 건축물들은 60년대 지어진 「성냥곽같은」조립식 주택들이 고작이다』 ­김정일비서도 50년대말 동독 항공군관학교에 유학했다고 하는데. 『김정일이 한때 모스크바대학으로부터 유학제의를 받았으나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서만 공부하겠소」라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그가 외국유학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북한주민들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새세대들은 아예 정치에 무관심하다.이론과 실제의 괴리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반면 50세이상의 나이많은 사람들은 최근 상황이 나빠지고 있음을 의식해 아예 의사표시를 하지않는다』 ­월남가족이 있는 북한주민에 대한 대우와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월남자의 가족으로 자기 고향에 사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그들은 모두 산간오지로 추방당했다.때문에 이산가족의 명단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월남자의 가족은 최저생활계층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최근 일본이나 미국에 가족을 둔 사람은 이들의 방문을 「구원의 천사처럼」기대하고 있다.단번에 집이 새로 생기고 잘하면 평양으로 이주시켜 주기 때문이다』 ­북한의 현경제실상은. 『현재 완전 가동중인 공장은 금광이나 시멘트공장 군수공장등 외화벌이용 공장에 불과하다고 보면 된다. 청진의 경우 ▲청진제강소 5∼6년전부터 가동완전중지 ▲김책제철소 4개 대형용광로중 1개만 가동 ▲청진화학섬유공장 20% 가동 ▲생필품공장 김부자생일선물공급시 20∼30일정도 가동등이 최근 나타난 엄연한 현실이다.
  • 사찰·고향방문 등 대화4원칙 제시/남북교류분과위

    【판문점=공동취재단】 남북한은 26일 상오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회담 교류협력분과위 제5차회의를 열어 부속합의서채택문제를 논의하려했으나 남북핵상호사찰문제를 둘러싸고 양측 입장이 맞서 실질토의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에따라 양측은 오는 7월28일 제6차회의를 열어 절충을 계속키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 임동원 남측위원장은 『핵문제의 진전이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면서 「핵문제의 해결없이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남측의 기본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북측에 통보했다. 이에대해 북측은 상호사찰지연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면서 『남측이 상호사찰문제로 「남북기본합의서」이행을 가로 막아 남북관계가 악화될 경우 「이산가족노부모방문단및 예술단」교환사업이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남측은 이날 핵문제및 남북대화와 관련,▲「남북합의서」·비핵선언의 이행및 준수 ▲부속합의서의 조속한 작성과 상호핵사찰실시 ▲핵문제진전에 따른 남북관계의 진전 ▲이산가족상봉의 무조건추진등 4대방침이 남측정부의 공식기본입장이라고 밝혔다.
  • “남북 상호핵사찰 조기실현”/최영철 새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포부

    ◎“통일정책 국민적 합의 도출에 최선/「이산가족재회」등 현안 착실히 수행” 『통일정책추진에 있어서는 정부당국의 일관된 방안을 밀고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임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에 임명된 최영철청와대 정치특보는 26일 하오 개각이 발표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으로 재임하는동안 청와대 안기부등 관계부처및 여야는 물론 국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이를 조정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다짐했다. 최특보는 이어 『「남북합의서」의 이행과 「비핵화공동선언」에 따른 상호사찰의 조기실시,「이산가족재회」실현 등이 남북간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특히 남북상호핵사찰의 조기실시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되 서두르지않고 하나씩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소감은. 『6공의 국정지표 4가지중 하나인 통일번영은 7천만겨레의 지상 지고의 목표이다.이를 실현키위해 비재이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부총리임명의 배경은. 『6공의 지난 공적을 마무리 보완하고 14대국회개원에 대비한 개각으로 파악하고 있다.또다른 측면에서는 호남배려도 있는 것 같다』 ­청와대 특보시절의 애환은. 『청와대시절은 아주 값진 시간이었다.지난 3공비서관으로 약1년간 실무에 관계한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보람이 있었으며 좋은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은.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단번에 큰 것을 얻으려는 것보다는 조금씩 발전해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또한 국민적 공감대형성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통일원장관으로서 대북정책수립에 있어 제몫찾기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대외적으로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한 부처가 결정하는 것이 아닌 종합이다.특히 통일은 거국적인 정책이기 때문에 부처뿐아니라 여야까지도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통일정책이 국민의 합의에 의한 「작품」이 되도록 하겠다』
  • 「8·15범민족대회」 봉쇄 비상/범민련 남측준비위

    ◎서울서 또 불법정치행사 계획/친북한성향 해외교포 참가 추진/“남한에 거점” 북 전략에 이용우려/시민들,“고향방문 무산될라”개탄 재야의 이른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위원장직대 강희남)가 오는 8월15일 서울에서 남·북한 및 해외인사가 참가하는 「제3차 범민족대회」를 갖겠다고 발표,정부당국을 긴장시키고 국민들에게 깊은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있다. 공안분야 전문가들은 「범민련」이 25일 발표한 이같은 일방적 계획은 남북한 당국이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합의서를 채택하고 오는 8월 「8·15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 및 예술단교환사업」의 협의를 계속하고 있는 마당에 통일논의분위기를 오히려 혼란에 빠뜨릴 위험마저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전문가들은 『친북성향의 해외동포등이 참가하는 「범민족대회」는 북한에서 김정일체제를 확립하고 남한에는 「범민련본부」를 결성하려는 「조총련」의 올해 2대사업목표와도 일치해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에 남한의 재야·운동권인사들이 놀아나는 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계획대로 남한에 「범민련본부」가 결성되면 일본의 「조총련」을 중심으로 한 「일본본부」와 독일의 「베를린본부」「미주본부」등을 잇는 대남적화 연계망을 구축,안팎에서 우리정부를 곤혹스럽게 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범민련」남측본부 준비위원회는 이번 서울대회의 개최와 함께 이른바 「남북합의서의 조속한 이행을 위한 대중운동」을 전개하고 이를위해 2단계 활동계획을 세워 「반전·반핵·미군철수운동」과 「연방제통일」을 위한 이른바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의 소집까지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있어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범민련」측은 또 오는 7월7일 국가보안법의 철폐와 「장기수」의 석방을 위한 단식투쟁을 벌이고 남쪽과 북쪽에서 「국토순례대행진기행」도 추진,우리사회에 또 한차례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 당국에서는 이에대해 『「범민련」측의 이같은 행위는 북한의 사탕발림에 현혹된 일부 재야운동권의 무분별한 통일운동이기 때문에 결코허용할수 없으며 통일문제의 창구는 정부당국으로 일원화돼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합의』임을 거듭 분명히 하고있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상태에서 북한이 아직도 남한사회를 교란할 목적으로 이같은 불법정치행사를 기도하고 일부 국내재야단체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밝히고 『정부는 이미 두차례나 「범민족대회」의 개최를 중지하도록 엄중경고한 바 있듯이 이 행사를 원천봉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관련 조영황변호사(53)는 『남북한 당국 실무자들 사이에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국가보안법철폐」·「미군철수」운운하며 「범민족대회」를 개최하려는 것은 실정법차원에서도 문제가 있을 뿐아니라 대화진행에도 방해만 될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하나 남북한간의 상호이해와 관계발전에 역행하는 이같은 주장과 행사는 역효과만 초래하므로 국민들의 정서에 혼란을 일으킬 주장과 행동은 지양돼야한다』고 말했다. 황용주중앙대 건설대학원장(62)은 『북한의 통일정책인 「연방제통일」을 위한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를 소집하겠다는등 「범민련」측의 주장은 우리 정부의 통일정책과 어긋날 뿐아니라 북측에 이용당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실향민인 김진철씨(57·상업)는 『「범민련」의 서울집회결정이 모처럼 활기를 띠고있는 남북교류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이들이 정치성 집회를 끝내 고집해 8·15 이산가족교류를 무산시킨다면 1천만 이산가족의 지탄을 면치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42년이 지난 「그날」아침에/이형근

    6·25전쟁 3년1개월은 평생을 군인으로 일관한 나에게는 한마디로 치욕적인 전쟁이었다. 군인이 싸우면 이기든지 지든지 둘중에 승부를 내야 하는데 4백만명의 동족이 숨지고 1천만명의 이산가족을 만든 전쟁이 휴전으로 끝이 나고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것은 수치스러운일이 아닐 수 없다.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39년이 지난 지금에도 휴전선일대에는 남·북한 1백여만명의 장병들이 대치하고 있다. 1백55마일 휴전선에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긴 휴전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장병과 무기가 집결되어 있다. 소련이 와해되고 동유럽권이 붕괴되는 등 세계사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있으나 한반도 안보상황만은 변화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은 아직도 계속중이며 진행중이다. 통일을 하는데는 반드시 상대방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의 김일성이 진정으로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은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핵개발과 무력증강을 계속하고 있다.북한은 외교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려 하지 않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됐는데도 지난 5월22일에는 북한의 무장침투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침투해 왔으며 북한은 유엔군측의 군사정전위원회 개최제의도 묵살하고 있다. 휴전협정에 명시되어 있는 군사정전위원회 기능이 1년이상이나 정지되어 있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데도 북한 위정자들의 대남적화통일전략은 변하지 않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의 성급한 통일논의와 함께 과격한 시위에서 인공기가 등장하는 사실을 보고 전쟁을 지휘한 군인의 입장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6·25 전쟁기간동안에 학생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군번도 없이 종군,7만여명이 죽어갔다. 42년전 낙동강 전선에서 이름없이 숨져간 수많은 학도병들의 애국심이나 현재의 대학생들의 애국심이나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를 위해 숨져간 학생들과 적화통일도 좋다는식의 감상주의적인 통일론을 펴는 학생들과의 의식의 차이는 대단한 것이다.통일은 반드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 되어야 한다. 적화통일도 좋다는 식의 성급한 생각은 필경 우리 모두를 공산주의의 노예로 만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소련과 동유럽국가들도 버린 사회주의·공산주의 체제는 북한에서도 멀지않아 붕괴될 운명에 처해 있다. 6·25당시 우리 국군의 병력은 9만5천명밖에 안되는데다 소총과 수류탄도 별로 없었다. 북한은 만주와 소련에서 전투경험을 한 직업군인들을 중심으로한 병력 20만명과 전차 2백42대,포 7백28문,전투기 2백11대로 국군과는 비교도 되지않는 우세였다. 당시 북한이 보유한 소련제 T34탱크는 공산권이 가진 가장 우수한 탱크였다. 장갑능력도 뛰어나고 기동력도 우수하며 소형이어서 좁은 길이나 험준한 산악지역에서도 훌륭히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가진 중기라고는 고작 M8장갑차 27대뿐이었다. 6·25 발발당시 대전의 2사단장이었던 나는 이날 상오 육군본부의 김백일참모차장으로부터 북한이 38선을 돌파,남침했으니 부대를 의정부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2사단은 사단본부만 대전에 있고 청주·천안·온양에 1개연대씩 주둔하고 있는 향토사단이었다. 사단본부 병력을 인솔하고 노량진을 거쳐 용산에 도착해보니 국군은 이미 패주중이고 북한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남진하는 상황이었다. 부대를 잃은 패잔병과 지휘소를 잃은 부대장,고향을 잃은 실향민,부모와 자식을 잃은 고아와 가장들의 비참한 행렬이 이어졌다. 전선이 무너진 상황에서 후방의 병력을 전선에 투입한다면 계속해서 먹힐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육본에서는 무기도 장비도 없이 후방의 병력동원에만 열중했다. 전선에 병력이 투입되면 궤멸되어 없어지고 다시 병력을 모으고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사이 대전·대구까지 밀리게 됐다. 50년 9월은 내 생애에서 가장 비참한 달이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전쟁중 영양실조로 숨지고 막내동생인 이상근준장이 청송전투에서 전사해 집안이 풍비박산이 됐다. 50년 10월에 초대 3군단장에 취임해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에 이어 38선을 돌파,북진대열에 참가하게 됐다. 3년전쟁의 결과는 국토의 초토화와 폐허뿐이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방력과 경제력 두 가지 힘을 길러야한다.
  • 6·25를 다시 생각해 본다(사설)

    무기를 들고서는 절대로 평화를 얘기하지 못한다.무기로써는 전쟁만을 얘기할수 있을 뿐이다.42년전 6·25 동족전쟁의 배경이 그러했는데 전쟁책임자는 아직 살아있으면서 여전히 무기를 놓지 못하고 있다. 「6·25」는 명백하게도 김일성이 지령한 「반타격 전투명령」에 의한 기습공격의 남침전쟁이었다.오늘에 와서 그것은 확실하게 검증된 움직일수 없는 과거의 사실이었으며 그 침략전쟁의 비극적 교훈은 오늘도 생생히 살아있다.즉 동족전쟁을 일으켜 수없이 귀중한 인명을 희생시켰고 국토와 겨레의 재산을 파괴한 전쟁책임자와는 그의 사과와 반성과 자성이 전제되지않고는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사실이 교훈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김일성의 「반타격 전투명령은 어떤 것이었는가.그에 따르면 「해방되지 않은 남반부」를 무력으로 적화통일하려 했으되 남측에서 선제북침을 해왔기 때문에 이를 반격하고 타격해서 통일을 성취한다는 것이었다.이제 이 전쟁범죄들을 공개적으로 뒷받침하고 검증하는 공식 비공식의 극비문서들이 지금 러시아로 부터 산더미처럼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스탈린으로부터 남침허가를 받는 김일성의 모습과 적화통일을 목전에 둔듯이 작전명령서를 내리고 작전회의를 주재하는 그와 그 하수인들의 모습이 천하에 공개되고 있다.전쟁수행을 잘못해 동족들을 덜 죽인다고 해서 책임추궁을 받은 하수인들 가운데 대부분이 독재 철권을 피해 러시아로 망명해 살다가 이제 죽기전에 진상을 털어놓고 전쟁범죄자를 고발하고 있다.모택동이 스탈린에 보낸 지원서한이 공개됐고 소련군의 참전·항공지원·대북한군사훈련지원 장황등 당시 동족살상을 전후한 전쟁범죄의 증거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는 이 작업을 지원해야 한다.더 나아가 오는 9월께 방한하기로 돼있는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가능하다면 이 북한의 전쟁범죄 증거들을 공식화해야 한다.83년의 KAL기 격추진상과 함께 42년전 한국전쟁의 발발진상을 완전무결하게 밝혀야할 책임을 오늘의 러시아는 지고 있는 것이다. 42년전 동족전쟁의 당사자들이었던 남북한은 지금 대화를 하고 있다.기본합의서로서 평화통일의 길을 다지고 비핵화선언으로서 전쟁을 하지말고 화해하자고 해서 그것을 공식문서로써 약속한바 있다.그런데 지금 그 정신과 내용들이 무엇하나 뭉뚱그려지지 않고 있다.이 모두가 아직도 무기를 버리지 못하고 전쟁을 생각하며 대화하고 교류하자면서 무장침투를 서슴지않는 42년전 전쟁범죄자가 살아있는 탓이다.전쟁을 사과하지않고 그 목숨을 걸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지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제와서 북쪽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핵포기 압력과 이산가족방문사업을 연계하겠다고 나섰다.또 엉뚱하게도 을사·정미조약의 불법성을 공동대응하자고도 한다.과거 한일관계 조약들의 불법 부당함이야 세상이 다 아는 마당에 북한이 새삼 이를 들고 나서는 저의를 우리는 불을 보듯 드려다 보고 있다.6·25날 아침에 동포들 대하기 낯뜨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듭 지적하고자 한다.6·25에 관한한 이제 해방전쟁이니 북침이니 하는 공허한 논의는 그만 그쳐야 한다.지금 곧 무기를 버리고 핵을 포기하며 전쟁범죄를 자백하고 사과해야한다.그토대와 전제위에서 이제 모든 대화와 교류를 민주지상의 과업으로 전개해 나가자는 것이다.
  • 남침에서 「합의서」 채택까지… 그 교훈과 통일 전망 대담

    ◎현실 무시한 감상적 통일론 경계할때/평양,체제유지 하려 대화채널 이용/상호사찰수용등 「합의서」 이행 급선무/남북신뢰 구축의 지름길은 북의 적화야욕 포기/마찰작은 문화­경제교류 힘써 북의 변화 유도해야 「과거는 지나간 현재이며 미래는 다가올 현재」라는 말이 있다.역사는 항상 연속선상에서 진행된다는 말인 것같다.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지 어언 42년이 흘렀다.최근의 남북관계진전은 우리 민족 모두에게 통일에의 꿈을 부풀게 하고 있다.하지만 핵사찰문제에서 알수 있듯이 남북관계는 현실을 무시한채 성급한 결론을 유도하기 힘든 난제가 아닐 수 없다.국군사의 산 증인 채명신 전주월한국군사령관과 북한문제전문가 유석렬외교안보연구원교수의 대담을 통해 「6·25에서 남북합의서 채택」까지의 역사적 교훈과 통일의 전망등을 들어 본다. ▷채명신◁ ▲육본 작전참모부장 ▲주월한국군 총사령관 ▲주 스웨덴·그리스·브라질 대사 ▷유석열◁ ▲미 미주리주립대 정치학박사 ▲미 북 아이오와대 조교수▲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유석렬외교안보연구원교수=올해로 6·25전쟁 42주년을 맞았습니다. 이 시점에서 6·25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최근의 남북관계와 연결시켜 조망해보는 것이 올바른 남북관계를 펼쳐나가고 이해할 수 있는 기틀이 된다고 봅니다. 6·25는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것이지만 어찌보면 남한이 너무 무방비상태였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군사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혼란한 상황이어서 우리에게도 책임은 있다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채명신 전주월한국군사령관=저는 6·25가 발발하기 전에 북한에 거주하다 47년에 월남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해방직후 북한사정은 잘 알고 있지요.좌경화된 일부 세력은 6·25가 남침이 아니라 북침이라고 주장하는데 터무니없는 얘기입니다.6·25는 소련군부가 북한 공산군을 육성,치밀한 계획아래 준비한 끝에 일으킨 것입니다.시초단계에서는 소련군이 주도했고 김일성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진후 남침계획에 참여했다고 보여집니다.46년 2월 본인이 진남포근처 보통학교에서교편을 잡고 있을때 공산당간부훈련기관인 평양학원설립식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그 설립식에서 축사를 한 소련군 사령관과 북한주재대사가 「내년에는 여기에 탱크·공군기가 참여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지요.이것은 6·25를 스탈린이 주도했고 김일성이 그 꼭두각시 노릇을 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유교수=말씀 중에 북침얘기가 나왔는데 요즘은 많이 들어갔지만 한때 일부 좌경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많이 주장됐었죠. 분명한 것은 3일만에 서울이 함락당한 것이나 전쟁 발발당시 전군의 3분의 1만이 근무중이었던 점만을 봐도 북침은 전혀 근거없는 주장으로 생각되는데 채선생님께서 좀더 설득력있게 설명해주시죠. ○수차례 예비도발 ▲채전사령관=소련과 김일성은 6·25 남침을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저는 장교임관 후 48년 송악산전투 등 인민군과 치열한 정기전을 여러차례 치렀는데 우리쪽 전투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예비도발이었어요.또 2천5백명에서 3천명에 달하는 게릴라부대를 태백산 등지에 남파시켜 후방을 괴롭혔는데 이것도 우리의 군전투능력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게다가 50년 6월25일은 일요일이었으며 3분의 1 이상의 병력이 외출을 나간 상태였지요.농촌출신 군인들은 농번기휴가를 내보냈었습니다.그것도 새벽 4시의 기습남침이었으니 첫날부터 우리의 군전력이 궤멸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요.이때 두가지 미스터리가 아직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첫째는 군비상경계가 6·25전쟁발발 하루전에 해제된 이유와 둘째는 그해 6월10일 전후 대대적 군인사가 단행돼 6·25당시에는 자기 부대순시도 채 못한 전방 연대장·사단장이 많았었다는 점이지요. ○두가지 미스터리 ▲유교수=이제 최근의 남북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90년대 들어 남북한 관계가 어쨌든 호전된 양상을 보여 7차에 걸친 고위급회담이 열렸습니다. 3차회담까지는 기본관계합의서를 먼저 체결하자는 남측과 불가침선언을 먼저 해야한다는 북측의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4차회담에 이르러서 남북 쌍방은 단일안건을 채택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5차회담에서 화해불가침교류협력이라는 단일안건을 채택,처음으로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7차회담에서는 북측이 놀랄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와 평양에서 모종의 특명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이처럼 남북대화에 적극성을 띠게 된 것은 대충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먼저 체제의 위협을 느낀 것 같습니다.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막기 위해 제도적 장치로 합의서를 만들자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죠. 또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 및 수교문제가 있습니다.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침체와 국제적인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김정일에게 권력을 승계하기 위한 사전조정작업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남북합의서 채택을 「역사적 사변」으로 선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김일성도 공개적으로 크게 만족을 표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합의서채택이 김정일의 주도로 이루어진 업적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죠. 또다른 측면에서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축제분위기 속에서 맞자는 뜻도 포함돼 있습니다. 축제분위기를 만드는데는 남북합의서가 최상의 선물이고 이를 이용,김일성의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부각시키자는 것이죠. 이밖에 남한 주민들의 대북 경계심을 이완시켜 친북세력을 조성하려는 숨은 뜻도 보입니다. 북한은 남한사회를 불안하고 불투명한 사회로 규정하고 대남혁명의 기대를 결코 버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올해 대통령선거와 총선등 2차례의 큰 선거를 치르고 경제가 침체되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국민과 정부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혼란을 일으켜 보자는 거죠. ▲채전사령관=이북 공산주의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북한측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릴수도 있습니다.하지만 그들이 통일을 외치고 있는 것은 미·일의 경제적 지원을 바라는 절박한 필요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진심으로 평화구축을 바라기 때문이 아닙니다.7·4공동성명에 서명하면서 땅굴을 팠다든지 얼마전 3인조 무장간첩침투사건등 그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바라지않는 예는 많습니다.KAL기 폭파범인 김현희씨가 엄연히 서울에 살고 있는데도 아직 우리측 조작이라고 우기고 있지 않습니까.그들은 거짓말도 공산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유교수=현재 남북관계에서는 핵문제의 해결이 선결과제로 등장했습니다. 6·25전쟁으로 얻은 교훈 하나가 북한을 실뢰할 수 없다는 것인데 북한의 핵개발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임시사찰 결과를 검토해보면 영변에 위치한 의문의 건물은 핵재처리시설일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는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남북간의 비핵화공동선언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입니다. 북한은 IAEA의 사찰만으로 핵의혹을 해소하려 하지만 우리로서는 상호사찰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핵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정치군사·교류협력분과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없게됩니다. 북한이 진실로 남북간에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원한다면 상호사찰에 응해 핵의혹을 깨끗이 풀어야 합니다. ▲채 전사령관=유교수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상호주의 원칙에 의해 의심스러운 곳은 어디든지 개방되어야 합니다.우리가 이제까지 얼마나 북한에 속았습니까.국제적 압력을 총동원,핵문제 만큼은 털끝만한 의심도 남겨서는 안됩니다.작은 땅덩어리,높은 인구밀도의 상황에서 핵무기를 쓰려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북한은 또 핵운반수단을 완벽하게 개발해놓았습니다.핵폭탄만 만들면 일본 일부까지 목표물이 됩니다.따라서 사찰대상에는 핵운반수단과 핵폭탄 못지않은 피해를 줄수 있는 화학무기까지 넣어야 된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유교수=이러한 상황인식 아래 앞으로의 통일정책 방향과 추진과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남북이 불신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통일정책은 쉬운 것부터,상호마찰이 적은 것부터 해결해나가자는 것입니다. 정치·군사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하자는 북한의 주장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지 않습니까. 남북이 먹고 먹히는 통일이 아니고 한민족이 함께 사는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점진적인 노력을 통해 남북의 합의 사항을 성실히 수행해 나간다면 통일은 반드시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채전사령관=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추구에는 위험이 많습니다.북한이 도저히 들어줄수 없는 주장을 할때는 받아들이지 않는 원칙론적 자세가 필요합니다.실천가능한 교류문제는 덮어둔채 정치·군사문제부터 해결하자는 것은 억지입니다.특히 남북한이 당장 몇십만명을 감군하자는 주장같은 것은 합의가 무척 어려운 난제인데 이런 주장을 전제로 내세운 대화는 무의미합니다.그것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과거 감정을 들추어내어 앞으로의 대화분위기를 깨서도 안되지요.말장난으로 시간을 끌때는 단호조치를 취해야겠지만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놓아야 합니다.이번 여름 남북이산가족 상호방문도 인원이 너무 적어 답답하긴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남북왕래를 해서 서로를 알겠다는 끈기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공존노력 중요해 ▲유교수=그러한 바탕에서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전망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남북간에는 핵통제공동위를 포함 모두 4개의분과위원회가 설치됐는데 남북합의서에 따른 부속합의서의 채택이 당면과제가 될 것입니다. 정치·군사분과위원회는 국가보안법 폐지 미군철수등을 주장하는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교류분과위는 북한이 경제교류를 원하고 있어 낙관되지만 결국 핵문제의 해결이 선행돼야만 본격적인 교류가 성사되겠죠. 통일의 시기를 말하기는 매우 조심스럽지만 김일성은 최근 한 연설에서 『95년을 통일의 해로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물론 완벽한 통일이 아니고 연방제 등 공존적인 의미죠. 우리도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69%의 국민이 10년 안에 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천년까지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결정적인 기회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해야겠죠. ▲채 전사령관=통일의 기본개념에 있어 우리와 북한이 다릅니다.북한은 공존·공영에 바탕한 평화통일이라기보다는 아직도 적화통일이 우선입니다.국제적 압력이 너무 거세니까 할 수 없이 시늉만 내는 것이지 속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그러니까 큰 줄거리는 합의해놓고 세부실천과정에서 계속 트집을 잡아 남북관계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 아닙니까.저들이 95년 통일을 얘기하고 있는 것도 그때가서는 적화 통일준비가 완성될 수 있다는 생각아래 나온 발언일 가능성도 있지요.핵무기개발뿐 아니라 김일성나이도 생각할때 그때쯤을 적화통일의 호기로 여길 수 있습니다.특히 북한은 남쪽의 혼란을 기대하는 눈치입니다.최근 주체사상·인공기 등이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겁니다.자기들은 무력강화를 늦추지 않으면서 남쪽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지요.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실각하는 북한내부변란이 없는한 통일에 대한 북한의 자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봅니다.일본도 통일한국등장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에 나설 수도 있어 통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독일의 경우도 엄청난 통일비용을 치르지 않았습니까.우리도 공산당의 실체를 직시하면서 초연한 자세로 통일의 기회가 성숙될때까지 실력을 쌓아야겠습니다. ○국민합의에 최선 ▲유교수=42년이 지난 뒤에도 6·25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북한의 행태로 볼 때 적대감과 불신이 없을 수 없지만 우선 점진적인 신뢰회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독일이나 예멘에서와 같이 금방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감상적인 생각은 한반도의 상황여건을 도외시한 것입니다. 대내적으로는 정치의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북은 우리사회가 어지러울 때마다 갖가지 제안을 내 혼란을 일으키려 합니다. 국민의 합의와 노력을 통해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북한이 동경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그것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 이산가족 재회에 조건도 많다(사설)

    동족상잔의 비극때문에 남북으로 헤어진 가족들이 다시 만나는일이야 말로 이땅에 화해의 물결을 넘치게 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과제이다. 이 과제는 누구도 거스를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며 민족의 염원이다.그런데도 북한은 제7차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8·15이산가족교환방문사업을 핵문제와 연계시키면서 거부태도를 표명해 성사여부가 불투명해졌다.북한은 22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적십자실무대표접촉에서 「상호핵사찰없이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우리정부의 방침에 반발,『이같은 방침이 남측당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면 노부모방문단교환사업은 성사될수가 없다』고 위협했다.이 때문에 이날 접촉에서는 이산가족재회를 위한 실무적인 논의조차 없었고 다음 접촉일자도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의 가당찮은 위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지난4일 연형묵정무원총리가 같은 이유를 내세워 「이산가족재회사업의 전도를 흐리게 할수도 있다」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온바 있다.그러나 바로 다음날 열린 제2차 실무접촉에서 남북양측은 「이산가족재회는 어떤 전제조건도 없이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데 다시 합의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합의된 인도적인 사업을 핵문제와 연계시켜 거부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호도될 수 없는 파렴치한 작태이다. 북한의 이같은 자세는 남북상호핵사찰을 촉구하고 있는 우리정부에 대한 전략적인 대응일뿐 이산가족재회자체를 무산시킬 의도는 아닌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그러나 이것이 성사되기까지는 불안감을 떨칠수가 없다.북한은 대남정책에 관한한 이중적인 전략을 구사해왔기 때문이다.한편으로는 대화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발을 감행해온 북한당국의 대남전략은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발효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무장병력을 남쪽에 침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우리사회의 혼란을 부채질하기 위해 이른바 「범민주대회」의 서울개최를 획책하고 있다.이같은 도발행위는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들이다. 우리가 앞에서도 지적한바 있지만 이산가족의 슬픔을 덜어주려는 인도적인 사업은 민족의 염원이다.그런데도 북한이 이것을 대남전략의 한 고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올해안에 10만명의 외국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한다.외국인관광객에는 이처럼 문을 열면서 같은 동포,더구나 이산가족들에게는 문을 닫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은 반민족적이며 반인륜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8·15이산가족재회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남북양측에서 고작 2백명이 오갈뿐이고 방문지도 서울과 평양으로 국한돼 있다. 외국인들보다는 같은 동포에게 먼저 문을 활짝 열어야 하고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오가면서 만날수 있게 해야 한다.북한당국은 이것이 핵무기개발보다 급선무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이땅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며 또 북한이 선의의 동반자가 될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극히 일부 이산가족의 상봉에도 무슨 큰 생색이나 내듯 술수를 계속 부린다면 남북관계의 전망은 결코 순탄할 수 없음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 화학무기금지초안 첫 채택/제네바군축위,24년만에

    ◎생산·사용 전면 통제 【제네바 AP AFP 연합】 유엔 안보이산하 39개국 제네바군축위원회가 22일 화학무기의 사용은 물론 생산과 보유를 전면 금지키로 하는 협정 초안을 사상 최초로 채택했다고 외교소식통들이 밝혔다. 제네바군축위원회는 지난 68년 화학무기 금지협상이 처음 시작된 이래 24년만에 마련된 이번 협정 초안을 이번 주말까지 이 위원회소속 39개국 정부에 발송하고 내달 20일 재개되는 회의에서 초안상의 미해결 쟁점들을 타결할 계획이라고 이들 소식통은 전했다. 『군축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의견수렴이 잘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 협정안은 미해결쟁점들의 타결후 금년 가을 유엔총회에 넘겨져 국제협정으로 최종채택돼 금년말이나 내년초 파리에서 가입국들의 서명을 받게된다. 소식통들은 이번에 마련된 협정안에는 화학무기를 제조하거나 저장하는 곳으로 의심되는 공장이나 장소에 대해서는 5일간의 사전예고를 한뒤 현지 사찰을 할수 있도록한 내용도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 8·15고향방문 불투명/남측 상호사찰촉구에 북서 트집

    ◎남북적 3차접촉 【판문점=김인철기자】 남북한은 22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이산가족 교환사업의 실무문제 협의를 위한 제3차 적십자 실무접촉을 가졌으나 북측이 핵문제와 관련한 남측당국의 대화자세를 문제삼아 방문사업문제는 협의조차 못하는 등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사업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이날 접촉에서 북측은 남측당국이 최근 『상호사찰 없이는 실질적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뤄질 수 없다』는 입장을 잇따라 표명한 점을 지적,『그같은 방침이 남측당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면 노부모 방문단 교환사업이 성사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북측의 이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우리측은 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 교환사업은 인도주의에 입각해 어떠한 전제조건도 없이 추진하기로 한 남북간 합의사항이므로 이의 성사에 장애요인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실무협의에 들어갈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당정회의:20일

    ◎“상호사찰 반드시 실현을”/김 대표/“핵해결없인 남북교류 유보”/공 위원장 정부와 민자당은 20일 상오 여의도 당사에서 김영삼대표와 공로명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한 핵문제에 관한 당정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공위원장은 북한의 핵개발 현황과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시설 사찰결과를 설명했으며 김대표는 남북 상호핵사찰을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강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정부측에서는 공위원장을 비롯,번기문 남북핵통제공동위 부위원장,정태익외무부 미주국장,정대규남북핵통제공동위간사가 참석했으며 당측에서는 김대표와 황인성정책위원장 강용식제1정책조정실장등이 참석했다. ▲공로명위원장=남북한 핵문제에 대한 우리측의 기본적인 입장은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없이는 정부나 민간차원의 남북교류를 유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화의 계속성과 인도적 교류의 중요성을 감안해 오는 8월로 예정된 이산가족의 고향방문과 예술단상호방문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 남북의 핵문제는 당사자가 해결한다는 원칙아래 핵심우방국들과 계속 협력하겠다. 최근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이 만나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협의했는데 주목할 사항은 러시아가 이 문제를 먼저 제기했다는 점이다. 핵문제가 여야를 막론한 거국적인 사안인 만큼 빠르면 내주초쯤 야당에도 북한의 핵상황을 보고할 계획이다. ▲김영삼대표=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은 시작에 불과하고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남북이 상호 핵사찰을 반드시 실현,민족생존의 차원에서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북한도 상호사찰에 응해서 의혹을 풀어야 한다. 남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등 우방국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적극 저지할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7월초에 열리는 선진 7개국 정상회담과 유엔등 국제기구를 적극활용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 일본도 핵을 갖게 되고 중국도 긴장하게 돼 동북아는 물론 세계평화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 최근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에서도 남북상호핵사찰 문제가 의제로 다루어질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당도 대국민 홍보와 국제협력을 얻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