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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광복권 발행 외국인 허용/국회 통과 법안 요지

    ◎천연기념물 무단박제 처벌/국제경기 체육복권 정기발행/외국인 정간물 투자 일부 허용/집단에너지 사업 신고제로/예산 절감 공직자 성과급 지급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1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 요지는 다음과 같다. ●관광진흥법(개정) 유원지시설업을 문화관광부장관의 소관으로 이관하고 관광사업으로 규정.관광사업에 대한 사업계획의 승인을 얻은 경우에는 농지전용허가 등 9개의 인허가 등을 받은 것으로 함.외국인이 관광사업에 1억달러 이상을 신규로 직접투자하는 경우 조건부로 카지노업을 허가할 수 있도록 함.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관광복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함. ●문화재보호법(개정) 지방자치단체도 국가지정문화재 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권한의 일부를 부여함.현상변화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천연기념물을 표본 또는 박제로 제작한 자에 대한 벌칙을 신설. ●청소년기본법(개정) 청소년 지도사의 자격 부여와 관련,기존의 양성과정 이수제도가 폐지되고 청소년 관련 분야 근무경력이 있는 자로서 검정에 합격한 자에게 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함.청소년수련시설의 이용료 및 수련 비용을 정하는 경우 시·도지사의 승인제를 폐지.청소년수련시설 운영을 폐지하는 경우 종전의 시·도지사 승인제를 신고제로 완화함. ●에너지이용합리화법(개정) 각 분야의 에너지 절약을 강화하기 위해 이산화탄소의 배출저감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와 협력을 체결한 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자발적 협력제도를 도입. ●광업법(개정) 외국인 및 외국법인에 대해서 광업권의 향유를 허용하고 일반인도 제한없이 석유 우라늄 등 특수광물에 대한 광업권설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함.광물의 기본품과 사업설비에 관한 설계서 제출의무를 폐지함.광업권자 및 조광권자의 사업개시 의무기간을 설정등록 후 1년 이내 및 6개월 이내에서 각각 2년 이내 및 1년 이내로 완화함. ●국민체육진흥법(개정) 국민체육진흥심의위원회를 폐지.2002년 월드컵대회 등 국제경기대회 지원을 위해 체육복권을 정기적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함. ●정기간행물등록법(개정)정기간행물 발행시 체육·교육 등 일부 분야에 대해 문화관광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외국자본의 출연을 받을 수 있던 것을 모든 분야로 확대하고 승인을 신고제로 전환.그동안 전면금지됐던 정기간행물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일정비율 투자로 완화됨.모든 정기간행물에 대해 납본하던 것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기간행물 이외에는 납본을 폐지함.장기 미창간 정기간행물에 대한 직권등록취소기한을 종전 1년에서 6개월로 단축. ●집단에너지사업법(개정) 집단에너지공급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에서 그동안 산업자원부장관이 지정하는 자만이 집단에너지 사업의 허가를 받을 수 있었으나 앞으로 누구나 사업을 허가받을 수 있음.집단에너지사업의 양도나 합병의 경우 기존 인가제를 신고제로 전환함. ●농어촌주택개량촉진법(개정) 이 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지역 중에서 도시계획법에 의하여 지정된 읍·면의 상업·공업지역을 제외한 지역과 광역시·시의 동(洞)지역 중 주거지역·상업지역·공업지역을 제외한 지역을 적용대상에 포함함. ●지방공무원교육훈련법(개정) 5급 이상 지방공무원에 대한 교육훈련을 공무원교육훈련법에 의해 설치되는 통합교육훈련기관에서 실시함.교육훈련시설·교육훈련용역 등을 국가기관·공공단체 또는 민간에 유상으로 제공하고 그에 따른 수익금은 수입대체경비로 계리(計理)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함. ●지방재정법(개정) 예산절약에 기여한 공무원에게 그 절약한 예산의 일부를 성과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함.공유재산의 관리계상과 취득·처분 결과를 시·도지사나 행정자치부장관에게 보고하던 것을 폐지함.잡종재산을 신탁할 수 있도록 하되 탈법적으로 무상대여·교환 또는 양여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신탁과 지방자치단체 이외의 자를 수익자로 하는 신탁은 금지함. ●기타 통과법안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 ▲경륜(競輪)·경정(競艇)법 ▲전통건조물보존법 폐지법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외국간행물 수입배포에 관한 법 ▲출판사 및 인쇄물의 등록에 관한 법 ▲향교재산법 ▲관광숙박시설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 ▲지방문화원진흥법 ▲공업 및 에너지기술 기반조성에 관한 법 ▲상공회의소법 ▲광산보안법 ▲송유관사업법 ▲전기공사업법 ▲오지개발촉진법 ▲공무원연금법 ▲선거관리위원회법 ▲공무원교육훈련법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촉진에 관한 법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 ▲지방공기업법 ▲온천법 ▲재난관리법 ▲대전엑스포기념재단법 폐지법 ▲한국석유개발공사법 ▲사립학교법
  • 또 잠수정 침투라니(사설)

    북한의 반잠수정이 또 남해안에 침투하려다 우리 군에 의해 격침됐다. 잠수복차림의 특수공작요원 시신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간첩을 침투시키거나 호송하기위한 간첩선임이 명백하다. 지난 6월 속초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잡혔던 것을 비롯,지난 달 강화 앞바다 침투 기도에 이은 잇단 도발이다. 우리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 의해 남북간 교류·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은 변함없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야말로 바다위로는 금강산 관광선이 오가고 바다밑으로는 간첩선이 내려오는 상황이라 하겠다. 우리 정부의 일관된 대북포용정책으로 그동안 남북간 교류·협력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금강산관광객을 맞는태도나 교류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등 북한에도 많은 변화가 보이고 있다. 올들어 지난 달말까지 경제 종교 문화예술등 각 분야에서 2,600여명이 방북했다. 지난 89년부터 지난 해까지 9년동안의 방북 인원이 모두 2,400여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라 할 수 있겠다. 제3국에서 북한주민을 만나는경우나 이산가족의 생사확인,상봉등도 크게 늘고있다. 얼마전에는 남한의 이산가족이 민간차원에서 북한에 들어가 가족과 만나기도 했다. 금강산관광도 시작된지 한달만에 5,800여명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북한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金正日 체제출범이후 ‘강성대국’을 부르짖으며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전투력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금창리 핵의혹 지하시설에 대한 사찰문제이후 미국과의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며 연일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어 전쟁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서해에 이어 남해안까지 잠수정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극심한 경제난을 해결하기위해서 외부지원과 협력이 절실한 한편 내부적으로는 체제결속이 필요한 북한의 딱한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을 도발행위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정말 안타깝다. 교류·협력의 확대와 변화만이 북한을 살리는 길이다. 긴장과 불신을 조장하는 도발행위들은 중단해야 한다. 침투하는 경비정을 해안초소에서 재빨리 발견,기민한 입체작전으로 격침한 우리 군이 믿음직스럽다. 잇단 사고로 떨어진 사기를 되찾아 신뢰받는 국민의 군대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대북포용정책은 굳건한 안보태세가 뒷받침돼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美,이라크 전격 공습­국내 경제 영향

    ◎국제금융시장/長期戰 아니면 ‘찻잔속의 태풍’/환율·금리 소폭 오름세속 비교적 안정/달러화 강세현상 오래가지 않을듯/엔화 약세땐 대외경쟁력 약화 우려 미국의 이라크 공습 소식으로 국제금융시장은 달러당 원화 환율과 국제금리가 소폭 오른 가운데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이다. 이라크 사태가 오래 갈 경우 우리 경제에도 타격이 예상되나 단기적으로는 별 영향이 없을 전망이다. 이라크 공습은 ‘보다 안전한’ 통화의 선호도를 높여 달러강세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엔과 원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데,그 영향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17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달러당 엔화 환율이 전일 115엔에서 117엔으로 올랐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1,211원선에 거래됐다. 우리나라가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가산금리(미국 재무부채권에 얹어주는 금리)는 16일(미 현지시간) 10년짜리 기준 4.6%로 전일 4.47%보다 올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王允鍾 세계경제실장은 “일시적으로 달러 강세와 국제금리 상승이 나타나지만 이라크사태가 장기화되지 않는 한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王실장은 “지금까지의 원화 절상 추세에서 단기적으로 달러당 원화환율이 오르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우경제연구소 韓相春 국제경제팀장은 그러나 “이라크사태가 달러강세를 부추겨 엔화가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일 경우 우리의 대외경쟁력이 약화되는 측면도 있다”고 우려했다. 韓팀장은 “내년의 경우 무엇보다 세계무역 위축이 우려되고 있어 이라크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우리나라의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油價/단기적으론 기름값 상승/이라크産 원유 도입 없어 국내타격 없을듯 국제유가는 전체적인 하향기조는 유지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소폭 상승하리라는 게 정부와 업계의 전망이다. 다만 원유 도입은 이라크로부터 직접 들여오는 물량이 전혀 없어 당장은 직접적 타격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습계획이 알려지기 시작한 16일 국제유가는 배럴당 1달러가 뛰어 11.3달러(두바이산 기준)에 거래됐다. 정부는 미국의 공격 정도와 이라크의 대응 여부에 따라 일시적으로 2∼3달러 정도 인상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국제원유시장에서 이라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물량 기준으로 4%에 불과해 유가의 급등세는 오래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국제유가 상승이 국내 경제에 통상 한달 뒤에 반영되는 만큼 당장 유가완충준비금을 방출해 국내 유가를 안정시키는 등의 특별대책은 필요치 않다는 판단이다. 산업자원부는 한국석유개발공사 및 각 정유회사와 함께 17일 ‘이라크사태대책반’(반장 具本龍 산자부 석유가스심의관)을 구성,안정적인 원유도입을 위한 24시간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추가 공격 등 사태가 악화될 경우 정유 5사와 유개공 등으로 석유수급대책반을 구성,비상사태에 대비한 ‘국제석유위기 대응방안’에 따라 단계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具本龍 석유가스심의관은 “당장 원유도입이 차질을 빚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타누라와 쿠웨이트의 미나사우드 등 걸프지역 선적항이 봉쇄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해양수산부와 협의,원유도입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수출업계/직접피해 없어 ‘일단 관망’/확전땐 對중동수출 다소 차질 올수도 직접수출이 워낙 미미해 별다른 영향이 없지만,제3국을 통한 간접수출은 다소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까지 올해 대(對)이라크 수출은 100만달러 정도에 그치고 있다. 타이어 튜브 의약품 승용차 전지 베어링 등의 품목이다. (주)대우 관계자는 17일 “일부 생필품을 요르단을 통해 이라크에 간접수출해 왔으나 미미한 규모여서 이번 사태에 따른 직접 피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현대종합상사 LG상사 등 다른 종합상사들도 비슷한 상황으로 별도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일단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건설부문 역시 이라크 진출 기업이 전무해 직접 피해의 우려는 없다. 현대건설 요르단사무소 직원 2명이 이라크 수리조선소 건설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외곽에 체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사태가 장기화된다면 대(對)중동 수출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유엔과 이라크 간 양해각서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이라크에 대한 수출을 본격화하려던 일부 수출업체들의 사업계획도 다소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무협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가 아랍에미리트로 수출한 승용차 중 일부가 현지 중개상을 통해 이라크로 재수출되고 있고 건전지도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을 거쳐 이라크에 간접수출되고 있다”며 사태 장기화로 중동지역이 불안정해질 경우 올해 호조를 보인 중동 수출이 일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주)대우도 오는 27일 바그다드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내년 초로 연기했다.
  • 당정,이산가족 지위·상속 특별법 내년초 제정키로

    ◎北에 두고온 아내·재산 통일되면 어떻게 되나… 정부와 국민회의·자민련 등 당정은 이산가족 교류를 촉진하고 통일 이후에 대비,가칭 이산가족 지위 및 재산상속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할 방침인 것으로 16일 밝혀졌다. 이 법안은 장기적 남북분단으로 인해 남북에서 중혼(重婚)하게 된 이산가족의 통일 이후 민법상 지위와 북한에 토지와 주택 등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상속문제 등을 규정하게 된다. 당정은 통일 대비 장기과제로 검토해온 이 법안을 내년 초부터 당정협의와 이북5도민회 등 관련단체 여론수렴 등의 절차를 거친뒤 구체적 입법작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16일 이와 관련,“이산가족문제는 생사확인­편지교환­상봉­재결합이라는 단계적 절차로 해결되어야 한다”면서 “현재 북한의 소극적 태도로 생사확인·편지교환 등도 쉽지 않지만,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가능성에 대비,이산가족문제와 관련한 제도적 장치를 완비해놓는 것이 중요하다”며 입법취지를 밝혔다.
  • 이산가족문제 해결 촉구/국회 결의문 北에 전달

    국회는 14일 오후 판문점 남북적십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남북 이산가족문제 해결 촉구결의문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전달했다. 朴浚圭 국회의장은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金永南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이 결의문을 북측 내각 洪成南 총리에게도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결의문은 “분단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재회가 남북간에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한다”면서 “만일 이것이 당장 어렵다면 우선 생사확인 사업만이라도 추진하도록 쌍방 의회와 해당 적십자사에 권고·촉구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이 결의안을 북측이 연락관 접촉에서 일단 접수함으로써 앞으로 이산가족문제와 관련해 국회 회담이나 적십자사간 접촉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 北·中 폐수 年 1억t 유입/두만강 오염 심각

    【베이징 연합】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흐르는 총연장 500여㎞의 두만강이 연간 1억t을 초과하는 대량의 공업폐수와 생활오수의 유입으로 심각한 수질오염을 겪고 있는 것으로 8일 전해졌다. 이날 베이징에 배달된 중국 옌지완바오(延吉晩報)의 2일자에 실린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환경당국의 자료에 따르면,북한 성천강 입구에서 싼허(三合),카이산툰(開山屯)을 거쳐 투먼(圖們)에 이르는 두만강 중류 구간의 연간 폐수배출량은 2,910만t에 이른다.
  • 여성 공무원 채용 30%로 확대

    ◎2000년까지… 위원회 위원수도 같은 비율로/정책평가위,고용평등법 신속 개정 등 건의 정책평가위원회(위원장 李世中 변호사)는 오는 2000년까지 신규채용 공무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을 현재 목표 20%에서 30%로 늘릴 것을 정부에 제안했다. 정책평가위는 또 대기 오염의 주원인인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일 수 있도록 주행세 위주로 자동차 세제를 개편하고,자동차 정기검사 및 매연단속 방법을 개선할 것을 건의했다. 총리 산하의 민간합동 자문기구인 정책평가위는 2일 金鍾泌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여성정책 및 대기오염 개선 대책에 관한 정책 평가보고회’에서 이같이 제안했다. 李世中 위원장은 “정부가 발표한 여성·환경 분야 정책 중 많은 부분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에 따라 여성의 사회참여에 장애요소가 상존하고,대도시의 대기오염도 날로 악화된다”고 지적했다. 정책평가위는 남녀고용평등법을 신속히 개정해 여성에 대한 간접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금지 조항을 신설하고,출산휴가 비용,육아휴직 기간의 임금 등을공공부문에서 분담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을 요청했다. 평가위는 이와 함께 정부 각종 위원회의 여성위원 참여율도 2002년까지 30%로 확대해 줄 것도 건의했다. 또 공기업이 여성채용을 늘릴 수 있도록 일정 규모 이상 여성을 채용하는 공기업은 세금을 감면하거나 장려금을 지급하라고 건의했다. 평가위는 이와 함께 중국에서 넘어오는 공해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동북아 환경기금 조성 및 환경협정 체결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또 기후변화협약의 발효에 대비,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의 보급확대와 에너지 절약 시민운동의 적극적 전개방안을 제시했다. 이밖에도 대규모 건설공사장을 먼지 특별관리대상으로 지정,엄격한 먼지 방지시설을 설치토록 유도해야 한다고 평가위는 밝혔다.
  • 실향민 北서 가족상봉/남북당국 승인… 9월 訪北

    남한에 살고 있는 한 이산가족이 남북 당국의 승인아래 지난 9월 방북,북쪽에 있는 가족을 만난 사실이 1일 뒤늦게 밝혀졌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1일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이름을 밝힐 수는 없으나,실향민 李모씨가 지난 9월 북쪽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낸 북한주민 접촉승인을 허가했었다”면서 “이후 李씨는 북한에서 가족을 상봉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는 이산가족 상봉 목적을 밝힌뒤 남북 당국 양쪽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방북,북한의 이산가족과 상봉에 성공한 첫 사례다.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85년 1차 고향방문단 교환 이후 제3국에서 이뤄지거나,남북경협 등 다른 목적으로 방북했을 때 간헐적으로 이뤄져왔다.
  • “北,금창리 사찰 수용”/통외위 결의안 채택

    국회 통일외교통상위는 30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핵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북한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해 완전한 접근을 수용,관련 의혹이 조속히 해소될 수 있도록 할 것을 촉구하는 ‘북한의 핵의혹 지하시설에 대한 즉각적인 현장사찰 수용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통외위는 이와 함께 남북한 이산가족의 고통해소를 위해 이산가족의 생사확인과 상봉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도록 남북한 적십자사에 권고할 것을 북한 최고인민회의에 제의하는 내용의 ‘남북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상봉촉구 결의안’도 채택했다. 국회는 내달 1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이들 결의안을 채택하고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상봉촉구 결의안을 북한 최고인민회의에 발송할 예정이다.
  • 日 노무라증권 주무른 30代 큰손(뉴스 인사이드)

    ◎부동산증권 개발 4년간 10억弗 수익/금융위기로 가치 급락… 몽땅 날려/퇴직금 432억원만 챙기고 ‘딴살림’ 【도쿄 黃性淇 특파원】 일본 노무라(野村)증권 미국 현지법인의 이산 페너(37).흔해 빠진 경영학 석사학위(MBA)도 없이 벼락출세,수십억달러를 주무르다 노무라증권에 10억달러의 손해를 입히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일본의 주간 아에라 최신호는 노무라증권이 이 겁없는 풍운아 덕분에 웃다가 울게 된 기막힌 사연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뉴욕대학 출신인 무명의 페너가 노무라증권 미국 현지법인에 입사한 것은 93년 4월.입사하자마자 부동산담보증권(CMBS)이라는 신 상품을 개발,4년간 노무라증권에 10억달러의 이익을 안겨줬다. CMBS가 히트를 한 것은 미국 부동산경기가 회복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부동산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자금을 조성한 뒤 운용자금에 목말라하던 부동산업자에게 고금리로 빌려주는 사업은 크게 성공했다.불티나게 CMBS는 팔려나갔고 페너는 435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지난 8월 러시아 금융위기는 페너의 운명을 바꿔놨다.CMBS의 가치가 급락,노무라 미국현지법인은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CMBS에 치중한 게 화근이었다.후발 증권사가 CMBS에 3억달러 가량밖에 투자하지 않은 데 비해 페너는 ‘위험분산의 원칙’을 무시하고 무려 70억달러까지 사업규모를 늘렸다. 노무라증권은 지난달 미국 현지법인 등의 손실로 국내외 직원 2,000명을 정리해고한다고 발표했다. 풍비박산의 와중에 페너는 슬그머니 회사를 그만두고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열어 ‘재기’를 꿈꾸고 있다.무려 3,600만달러(약 432억원)의 퇴직금을 챙긴 채.
  • 친일의 군상:15/조선인 첫 神職 李山衍(정직한 역사 되찾기)

    ◎본지서 최초로 발굴·소개/神社 근무하며 민족혼 말살 선봉에/22세때 청주신사 祭官으로 취직/“신사갹출비 내라” 체납자 닥달/가족에게도 일본식 생활양식 강권 흔히 대표적‘친일파’라고 하면 한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나 일제강점기에 고관대작을 지낸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다.그들 외에 일제의 침략정책에 협조한 관료·지식인이나 민족진영에서 변절한 인사들도 빼놓을 수 없는 친일파들이다.그러나 그들만이 친일파는 아니다.35년간에 걸친 일제 통치기간 동안에는 실로 다양한 형태의 친일파들이 준동했었다.배운 자는 지식을 팔아 출세길에 나섰고 부자는 돈을 바쳐 재산을 보전하였다.그도 저도 없는 자들은 매신(賣身)을 통해 일제의 식민정책에 부화뇌동했었다.그런 자 중에서 더러는 일본인으로 행세하면서 조상까지도 아예 일본인 조상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했다.이번에 본지가 발굴,최초로 소개하는 친일파 李山衍 이 바로 그런 부류중의 한 사람이다. 李山衍(1917∼?).친일파로선 생소한 이름이다.해방후 반민특위 시절 잠시 그의이름이 거론된 이후로는 단한번도 친일파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린 적이 없다.이유는 그가 특수한 분야에서 활동한 ‘숨은’ 친일파이기 때문이다.그는 일제하에서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신직(神職)을 지낸 사람이다.신직이란 일본인들의 조상을 모신 신사(神社)에 근무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사찰로 치면 스님에 해당하는,일종의 종교인인 셈이다. 반민특위가 한창 활동을 벌이고 있던 1949년 5월22일 오전 10시 40분.반민특위 충청북도 조사부 소속 金相喆 조사관은 청주부(현 청주시) 석교동 50번지 자택에서 이산연을 체포,당일로 청주형무소에 수감했다.죄명은 반민법 제4조 11항 위반(종교·사회·문화·경제 부문의 친일행위자).6월1일 반민특위 충북 조사부에서 첫 신문이 시작된 후 그는 두 차례 구속기간 연장 끝에 7월8일 불기소로 풀려났다.죄상은 인정되나 ‘악질성’은 없다는 것이 특별검찰부의 석방이유였다.이로써 그에 대한 사법적인 판단은 끝났는지 모른다.그러나 ‘역사의 법정’은 아직 그에 대한 심판을 내린 적이 없다.반민특위와 특별검찰부가 피의자 신문과정에서 밝혀낸 사실을 토대로 그의 죄상을 살펴보자. 이산연은 1917년 서울 사간동에서 태어났다.그의 부친 李洹雨(70년 사망)는 법전(法專) 졸업후 경부(警部)로 특채돼 충북 경찰부를 비롯해 청주·충주 등지의 경찰서에서 20여 년간 사법주임 등을 역임한 친일경찰 출신이었다.그가 신직이 된 배경에는 이같은 집안의 친일적 분위기가 작용했다고 주위 사람들이 증언한 바 있다. ○신사참배 대열에 동포 내몰아 1937년 청주고보를 졸업한 후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몇 군데 시험을 보았으나 모두 실패하였다.집에서 놀고있던 중 신문에서 조선황전강습소(朝鮮皇典講習所,신직 양성기관)에서 강습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서울로 올라가 조선신궁(朝鮮神宮)부설,조선황전강습소에 지원하였다.당시 조선황전강습소는 관할 도지사의 추천이 있어야 입소할 수 있는 곳이었다.그는 부친을 통해 당시 충북 도지사 金東勳의 소개장을 가지고 이듬해 5월 입소하였다.입소생은 그를 포함해 조선인이 3명,일본인 4명 등 총7명이었다.입소해서는 일본역사를 비롯해 제관(祭官)으로서의 기본교육에 해당하는 축문(祝文),제차(祭次,제사 관련 절차) 등을 교육받고 그 이듬해(1939년) 3월 졸업하였다.당장 자리가 나지않아 잠시 청주군 사회계 고원(雇員)으로 있다가 2개월 후 청주신사(淸州神社) 출사(出仕)로 첫 발령을 받았다.한국인인 그가 일본인들의 조상을 모신 신사의 제관(祭官)으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가 신직을 자원한 동기중의 하나는 당시 일제가 신직에 한해 ●봉급외 6할 가봉(加俸)지급 ●일본인과의 동등한 대우 보장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조건 때문이었다.당시 일제는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꺼리는 신직에 조선인을 채용하기 위해 이같은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것으로 보인다.이무렵 일제는 중일전쟁(1937년 7월7일) 발발을 계기로 대륙침략을 본격 추진하면서 조선 전역에서 황민화 정책을 전개하고 있었다.일제는 황민화 정책의 슬로건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동조동근(同祖同根) 등을 내걸고 조선인과 일본인은 같은 뿌리라고 선전하며 조선인의 일본인화(化)를 강요했다.창씨개명,일본어사용,내선통혼(內鮮通婚),신사참배 등이 이 때 추진된 황민화 정책의 구체적인 사례들이다.이 가운데 신사참배는 창씨개명과 함께 조선인의 혼을 빼려는 조선민족 말살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그는 바로 이 대열의 선봉에서 활동한 친일파였다. ○조선인의 일본인화 강요 청주신사 출사로 근무한지 2년만에 조선인 최초로 정식 신직으로 승진한 그는 해방때까지 5년간 일본신(神)을 모시는 일에 종사했었다.매일 평균 1∼2회씩 신사내의 대소 제사를 집행하였으며 틈틈이 일본가정을 순회하며 집안의 제사를 지내주었다. 또 전쟁기간 중에는 황군(皇軍,일본군)의 무운장구를 비는 기원제를 주관하였으며 충북지역내 각 군(郡)의 신사 낙성식 때마다 진좌제(鎭座祭)를 주관하기도 했다.그는 신사거출비를 징수하면서 “신사거출비는 다른 세금과 달라서 제일 먼저 내지않으면 비(非)국민이 될 것”이라며 체납자들을 혹독하게 다뤄 조선인들로부터 비난을 사기도 했다. 1943년 겨울 그는 조선총독부 주최 소위 ‘미소기연성(鍊成)대회’에 신직의 대표로 참가했다.‘미소기’란 겨울에 얼음을 깨고 찬물에 들어가 축문(祝文)을 외면 신(神)과 통할 수 있다는 일본의 전통적인 신도식(神道式) 수양법이다.이같은 행사는 종교차원을 넘어 일반인들의 생활속으로까지 파고들어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촉진시켰다.친일파 가운데 더러는 ‘미소기’를 생활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일본인화를 공공연히 과시하기도 했다. 이무렵 그는 주위의 조선인들과는 교류를 끊은 채 언어·의복은 물론 모든 생활양식을 일본식화하고는 가족들에게도 이를 강요했었다.주위에서는 그를 두고 ‘일본인 이상의 조선인’이라는 말이 자자할 정도로 완전한 ‘황국신민’으로 지내고 있었다.일제 당국은 황민화 정책의 최일선에서 혼신을 다한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통해 보상해 주었다.그는 일제말기 일본인과 동등한 ‘앵급(櫻級)’의 배급을 받으며 조선인이라는 호칭을 면하게 되었다.당시 일제는 물자배급의 등급을 앵(櫻)­송(松)­죽(竹)­매(梅)의 4단계로 나눠놓고 이중 일본인에게는 앵급을,조선인은 사회적 지위와 생활정도에 따라 송­죽­매 3단계로 차등 지급했다.조선인으로서 앵급 배급을 받은 자는 도지사급에 드는 수 명에 불과했다.당시 그가 일제로부터 받은 대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는 일제의 협박이나 고문에 못이겨 친일로 전향한 인사들과는 분명히 구분된다.친일가문에서 태어나 일제통치의 특혜를 온몸으로 누린 사람이 바로 그다.특별검찰부는 그가 악질적인 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키 어렵다며 ‘면죄부’를 주었지만 ‘역사의 법정’은 그의 죄상을 기억하고 있다. 일제하 조선인으로 태어나 항일운동은 커녕 일본조상을 제 조상인양 떠받들면서 일신의 안위를 누린 그는 해방후 청주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다가 1950년대 중반에 행방불명된 것으로 호적에 나와 있다.그는 3남을 두었는데 막내아들도 그와 같은날 행방불명된 것으로 호적에 나와 있다.청주지법은 1968년 그에 대해 최종 실종선고를 내렸다.비참한 말로는 ‘역사의 업보’인가? ◎‘神職’이란 무엇인가/神社에서 제사·기도 집행/日帝땐 정식관리로 대우 ‘신직(神職)’이란 글자그대로 ‘신성스런 직업’또는 ‘신을 모시는 직업’이란 뜻이다.구체적으로는 일본의 신사(神社)에 근무하면서 제사와 기도 등 신사(神事)를 집행하는 사람을 통칭한 용어다.다른 용어로는 신주(神主),신관(神官),사사(社司),궁사(宮司) 등으로도 불렸다. 일제당시 각 지역의 신사는 도(道) 지방과에서 관리하였는데 출사(出仕)는 고원(雇員)에 해당하는 낮은 직급이었으나 신직부터는 정식 관리로 임명돼 판임관 대우를 받았다.신직은 신사에서 행하는 각종 제사(祭祀)를 주관하는 자로 일제당국으로부터 물자배급과 신분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신직 가운데 궁사(宮司)는 메이지신궁(明治神宮)이나 남산중턱에 있었던 조선신궁(朝鮮神宮)과 같은 대형 신사에 근무한 신직의 장(長)으로 일황이 직접 임명하는 친임관급이었다.
  • 비로봉(시조시인 李根培씨 답사기:5·끝)

    ◎내금강에 우뚝 솟은 봉우리 내년 봄 오를 날 왔으면… ●왜 터져나오는 울음인가 정말 금강산을 본 것일까.내금강은 처음부터 예정에 없었으니 먼 눈으로 비로봉의 눈덮인 봉우리를 올려다보는 것으로 끝내야 했지만 외금강도 사흘가지고는 주마간산이 아니었던가.그러나 금강산 가는 길이 열리자마자 첫 산행에 나선 이들은 금강산의 장엄과 신비를 발로 딛고 눈으로 받아들이는 일보다는 반세기 넘게 바라만 보고 살아온 그 분단의 벽을 넘어서는 데에 더 큰 의미를 가슴에 담고 있었다. 금강산이라는 병풍 속에 담긴 단 하나의 그림 국토,민족,역사,동족상쟁,부모형제,이산가족,고향의 낱말이 그것이다.고향이 해주인 원창성씨(70·남)는 산길에서 만난 북측의 젊은 미화원이 꼭 조카만 같아 껴안고 눈물을 흘리자 그 젊은이도 따라서 눈물을 흘리더라며 무언가 손에 쥐어주고 싶었지만 젊은이가 한사코 뿌리쳐서 그냥 돌아왔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뜻을 알겠노라고 했다. 장전항이 고향인 한일환씨(63·남)에게 “이제 고향땅을 밟으셨으니 통일을 만난거나 다름없네요”했더니 “그렇지요.내게는 통일이 반은 된 셈이지요”한다.금강산 관광 안내에서 이미 북한 주민과의 접촉을 삼가달라는 부탁을 받았음에도 산행에서 겨우 한 두번쯤 만나게 되는 북측 미화원(신분과 직함을 확인할 수 없지만 손에 대로 만든 빗자루를 들고 있었으므로)을 붙잡고 피란 오기 전의 주소와 가족 이름들이 적힌 종이를 손에 쥐어주며 “내년 봄에 꼭 올 테니 그때까지 안부를 알아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모습을 보는 일행들은 손수건을 꺼내야 했다. 만물상에서,구룡폭포에서 과일 몇개에 술잔을 올리거나 아니면 얼음 박힌 땅에 엎드려 통곡하는 이들에게 저렇게 울 수 있는 자리라도 마련해준 세월이 한편으로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원창성씨는 “내가 금강산을 본 것이 아니지요.꿈을 꾼 것이지요”했고 97세의 심재린 할아버지는 “피눈물로 금강산을 올랐다”고 했다. ●비로봉 오를 날을 기약하며 밀리고 밀리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곧 다시 돌아올거라고,전쟁은 그리 길지 않을 거라고 이웃집 마실이라도 가듯 어머니와아들,아버지와 딸,아내와 남편,형과 아우가 그렇게 헤어졌다가 반세기를 넘긴 사람들.사람이 백발이나 200살쯤 살 수 있다면 모르거니와 생사를 확인할 것도 없이 이미 수명을 다했을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심경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다 안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겨울 개골산(皆骨山)에 왔던 이들은 다시 봄에 오겠다는 말을 한다.적어도 봄,여름,가을,겨울 산의 이름이 바뀌듯이 그 다른 산을 보겠다는 욕심도 들어있지만 더욱 고향이 금강산 가까운 곳이거나 북녘인 사람들은 이제 내디딘 발걸음이니 한 번이라도 더 그리던 땅을 밟아보겠다는 생각에서이리라. 내금강 비로봉구역은 비로봉 정상에 올라 구름의 바다,돌의 바다,물의 바다를 굽어보며 동해 일출을 보는 일말고도 월출봉 일출봉 영랑봉들의 절경을 놓칠 수 없고,만폭동구역에서는 청록감 백록담 흑록담 비파담 진주담 등 폭포와 팬 돌에 솟구치는 물보라와 바위들을 봐야겠고,백운대구역 명경대구역 구성동구역의 장관인들 어찌 빼놓을 것이냐. 내 봄이 오면 다시 가서 비로봉에 오르리라.돌 하나물 하나,나무 하나,흙하나 다시 와서 그 낱낱의 얼굴에 볼 부비고 감추고 있는 말들을 꺼내서 시로 쓰리라.노래부르리라.
  • 금강산에 가는 뜻(張潤煥 칼럼)

    금강산 관광 제1진이 ‘무사히’ 귀환한 데 이어 제2진도 제대로 관광을 마치고 돌아왔다.특히 제2진에는 여야 국회의원들도 들어있었다.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 金日成 주석을 만나 금강산 개발에 합의하고 돌아온 게 盧泰愚 대통령 정부 때인 89년 2월의 일이니,실로 9년만에 뱃길로나마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89년 2월로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9년동안 남북관계는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었다.金泳三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한반도에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94년 7월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뻔 했으나 金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되었고,그해 10월 가까스로 제네바 핵합의가 이뤄져 전쟁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상황을 넘긴채 오늘에 이르렀다. ○관광선 보냈더니 간첩선 보내고 올 2월 金大中 대통령 정부가 들어섰고,북쪽에서는 金正日 위원장이 ‘유훈통치’를 내세워 권력을 승계했다.金대통령은 대북정책의 기조로 무력도발 불용(不容)과 화해와 협력을 제시했다.정부의 정경분리 원칙에 힘입어 鄭명예회장은 다시 두번씩이나 소떼를 몰고 방북했다.그리고는 마침내 금강산개발 합의와 함께 관광선을 띄우게 된 것이다.드디어 한반도에 해빙의 조짐이 보이는가 했더니,금창리 핵의혹 지하시설 문제로 다시 한파(寒波)가 일고 있다.한랭전선(寒冷前線)과 온난전선(溫暖前線)의 혼재 상태다. 그래서 금강산 관광대열을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은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다.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북한은 금강산 관광 제1진이 북한에 가 있는 동안 우리 서해안으로 간첩선을 침투시켰다.그러자 극우세력들은 金大中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의 발목을 잡고 나왔다.“북한의 대남전력은 적화통일이다.햇볕론을 거둬들이라”는 것이다.북한의 대남전략이 적화통일이라는 주장은 맞다.그러나 적화통일이 현실태(現實態)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따라서 그들은 “햇볕론을 펴려거든 안보태세를 더욱 튼튼히 하라”고 주장했어야 옳다.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철저한 안보태세를 대전제로 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통일의 씨앗 뿌리는 정부 그러나 대북 포용정책마저 거둬들이라는 주장은 너무나 근시안적이다.전세계적으로 냉전이 의미를 잃어버린 마당에 계속 대북 대결정책을 밀고 나가란 말인가. 그래서 국경조차 의미가 없게된 이 지구촌시대에 남북이 다 함께 주저앉자는 말인가.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대화와 침투’라는 대남 이중전술을 가까운 시일에 포기할 것으로 믿어서가 아니다.‘햇볕’이 지닌 속성과 위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북한도 어쩔수 없이 변화하지 않을 수 없고,미미하게나마 이미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평화와 통일의 씨를 뿌릴 때다.금강산 관광도 통일을 향한 하나의 작은 씨앗이다.금강산가는 길이 예사 관광길인가.이산가족의 한(恨)과 눈물,통일의 열망이 서린 길이다.그래서 금강산에 가는 깊은 뜻은 그한과 열망을 묶어 남북분단의 벽을 허무는 작업이라는 데 있다.극우세력은 관광선을 타지 않아도 좋다.그러나 통일의 씨앗을 뿌리는 정부의노력을 방해하지는 말라.씨앗은 언 땅을 뚫고도 끝내 싹을 틔우게 마련이니.
  • 국군포로 송환 즉각 추진하라(사설)

    국방부가 23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136명으로 추산되며 미전향 장기수들과 교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6·25 전쟁이 끝난지 45년만에 정부가 생존 국군포로의 숫자를 처음 밝히고 송환방안까지 언급한 것은 뒤늦긴했지만 환영할 일이다. 이제 숫자와 명단까지 파악된 이상 한시도 머뭇거리지 말고 즉각 송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그들을 45년동안 생지옥속에 방치해두었던 잘못을 바로하고 그들의 고생에 대해 최소한의 보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싸우다 전사하거나 포로가 된 사람을 기리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국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미국은 지금도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6·25때 북한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를 찾아오고 있다.부끄럽게도 우리 정부는 휴전이후 지금까지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이나 송환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94년 趙昌浩씨에 이어 梁珣容·張茂煥씨 등이 탈북,귀환함으로써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명단파악에 나선 것이다. 명단이 파악된 136명보다 생존 포로는 더 많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6·25 당시 실종된 국군 가운데 3만여명이 포로로 끌려갔고 이중 상당수가 아직도 살아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그럼에도 북한은 지금까지 국군포로가 한명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본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모두 ‘해방전사’로 둔갑시켜 탄광 등에서 중노동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국군 포로들의 말 못할 온갖 고생도 모자라 그들의 2세까지 학대받고 있다는 귀환자들의 증언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국군포로 송환은 이제 더이상 늦출 수 없다.우선 명단이 파악된 사람들 부터라도 당장 구체적인 송환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해방전사’가 아닌 국군포로의 실재(實在)를 북한이 인정토록하는 것이 첫번째 과제라고 본다.북한이 국군 포로는 없다고 주장하는한 송환은 어려울 것이다.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해 송환 대상자들의 자유의사를 확인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북한이 일단 국군 포로의 존재를 인정하면 송환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미전향 장기수와의 교환이나 4자회담 등 남북대화창구를 통한 교섭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군포로 송환이 남북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남북화해의 첫 결실이 되기를 바란다.
  • 목마른 경제에 ‘단비’/국제유가 하락

    ◎무역수지 48억불 플러스 효과/무역흑자 15% 저유가 덕분/제조업체 7억불 원가절감 국제 원유가가 하락행진을 이어가면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우리 경제에 단비를 내리고 있다. 저(低)유가 행진은 지금의 공급과잉상황을 감안할 때 적어도 2000∼2002년까지 계속되리라는 관측이어서 우리 경제회복에 더없이 호재(好材)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제유가 동향과 국내경제 효과 올해 평균 국제 원유가는 두바이산 기준으로 배럴당 12.78달러. 지난해 평균 18.17달러보다 무려 5.5달러가 내렸다.85년 배럴당 28달러의 절반에도 못미친다.특히 이달 들어서는 배럴당 12달러로 낙폭이 더욱 커졌다. 기름 값이 하락세를 이어감에 따라 연간 9억배럴 가까이 원유를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적지 않은 국제수지 개선효과를 거두게 됐다. 산업자원부는 원유가가 배럴당 1달러 내리면 연간 8억7,300만달러의 무역수지 개선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분석한다. 올해 유가가 지난해보다 5.5달러 내린 만큼 최소한 48억달러의 흑자를 보게 된 셈이다.지난달까지의 무역흑자 319억달러 가운데 15%는 순전히 원유가 하락 덕인 셈이다. 유가하락은 국내 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1달러만 내려도 석유제품 가격은 2.75% 인하된다.도매물가는 0.45%포인트,소비자물가는 0.16%포인트를 각각 끌어 내린다.올들어 도매물가 2.47%포인트,소비자물가 0.8%포인트의 인상요인을 저유가가 붙잡았다고 할 수 있다. ●업종별 영향 유가하락으로 올들어 국내 제조업체는 발전부문을 제외하고도 대략 7억달러 가까이 원가절감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석유소비량이 많은 석유화학과 발전 기계금속 섬유 철강 등의 업종이 유가하락 효과를 톡톡히 봤다. 환율변동을 감안하더라도 석유화학업계는 2,554억원,기계금속은 900억원,섬유는 696억원의 원가를 절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요업(610억원) 제지(558억원) 철강(373억원)도 원가가 적지않이 절감됐다.
  • 금강호 오늘 아침 귀환/관광객 1명 이산가족 생사 첫 확인

    현대금강호를 타고 금강산 관광에 나섰던 관광객들이 4박5일 일정을 마치고 22일 아침 동해항으로 귀항한다.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객 937명(관광조장 등 포함)이 21일 마지막 날 관광을 끝내고 오후 9시10분쯤 장전항을 출발,22일 오전 6시쯤 도착한다고 밝혔다. 이번 금강산 관광에서 朴淳瑢씨(77)가 북한당국을 통해 48년만에 어머니의 사망을 확인했다.이산가족 생사확인은 민간교류 차원에서 처음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에 앞서 봉래호와 금강호가 장전항에서 만났다.두 유람선의 관광객들은 마주보며 손을 흔들거나 큰소리로 안부를 물었으며 산행코스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한편 북한의 입국거부로 이틀 동안 관광길에 오르지 못했던 조선일보와 KBS 기자 및 통일부 직원 등 20명 전원의 금강산 관광이 마지막 날인 21일 이뤄졌다.
  • 만물상 雲霧는 이산가족 한숨인듯/금강산 기행 一報

    ◎꼬불꼬불 1만2천봉 단풍옷 벗고 비경 뽐내/60대 실향민들 “고향이 저긴데” 눈물의 산행/北 안내원 붙임성 있게 인사… 사진찍기는 거부 19일 미명의 금강산 유람선 위에서 첫 대면한 북한 장전항은 온통 무채색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등진 작은 포구는 정적 속에 누워 있었다. 나지막한 건물들이 해안을 따라 단조롭게 들어선 수채화의 풍경은 울긋불긋한 지붕들이 꼬리를 무는 남한의 여느 작은 항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하선 절차를 밟으면서 북한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정작 무거운 기분이 얼마간 풀렸다. 감시병의 앳된 얼굴 때문인지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하는 안도감조차 들었다. 현대그룹의 유람선 관광에 동참한 기자의 금강산 기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외금강 초입에 들어서자 온갖 상념도 이내 천하절경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금강산은 어느새 초겨울이었다. 산봉우리들은 나신을 뽐내고 있었다. 가을의 풍악산에서 이름표를 바꿔 단 개골산의 미학은 기막힌 조화 그 자체였다. 만물상 코스는 유람선 관광일정 중 첫산행길이었다. 금강산의 주요 22개 관광코스 중에서도 손꼽히는 산행로였다. 꼬불꼬불 이어진 106굽이는 줄곧 감탄을 자아내는 비경들이었다. 장전항에서 온정리∼관음폭포∼육화암∼만상정을 잇는 21㎞ 구간은 관광버스로 달렸다. 현대측이 새로 닦은 도로 양옆에는 철조망이 쳐져있었다. 철조망 울타리는 금강산 일원이 군사요새임을 말해줬다. 남쪽사람과 북한주민의 접촉을 막으려는 북한당국의 의지가 읽혀졌다. 마침내 재래식 화장실 하나만 덩그러니 기다리는 만상정 주차장에 다다랐다. 여기서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비경인 만물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천선대까지는 도보였다. 1.5㎞에 이르는 등산로는 60대 이상의 관광객들에겐 힘든 길이었다. 나이든 실향민 다수는 먼발치에서 세명의 신선을 닮았다는 삼선암과 귀신 형상의 귀면암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현대측 관광가이드들은 천선대에서 채 3분의 1도 못미친 지점에서 고령자들을 돌려세워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건강을 걱정하는 딸들의 만류를 “이번이 아니면 생전에 고향 가까이갈 수 없다”며 뿌리쳤던 朴유희 할머니(77)도 마침내 눈물을 머금었다. 만물상은 오를수록 장관이었다. 하지만 앞자락의 연봉들과 숨바꼭질하듯 좀처럼 온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때마침 내리는 싸락눈 속에 남녀 순찰대원들이 굽이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전직 금강산 안내원들이었다. 남쪽에서 온 가이드들에게 자리를 내 준 사람들이었다. 구룡폭포로 통하는 길목의 앙지대에서 만난 금강산 관리원 張英愛씨(28·여)는 붙임성있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한사코 사진찍기를 거부하기에 결혼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금강산을 버리고는 시집 못갑니다. 죽어도 금강산을 베고 죽을 겁니다”라고 억센 북한 사투리로 답했다. 남쪽 기자들의 농을 떨쳐내려는 듯 “저 위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으니 어서 가보시지요”라고 발길을 재촉해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천선대 문턱에서 만난 한 북한 처녀는 길을 묻자 얼굴부터 빨갛게 물들였다. 몇 발자국 더 걷다 문득 張씨의 설명이 떠오르며 천선대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놀던 곳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말안장 같은 안심대를 지나 쇠사다리를 곧장 오르니 커다란 바위구멍이 나타났다. 금강산의 여덟 돌문 중 하나인 하늘문이었다. 그제서야 천하절승 만물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천선대에 섰음을 깨달았다. 멀리 옥녀봉과 세존봉,비로봉 등 준봉들이 시립하고 있었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첫 출항 르포

    ◎금강산에 瑞雪… 민족화합 소망 싣고/수백개 오색풍선 띄워/한·사연 안은채 승선/제수용품 들고 가기도 18일 오후 5시44분쯤 강원도 동해시 동해항. 부둣가에 정박해 있던 현대금강호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부웅’하는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려나오자 수백개의 오색풍선이 날아오르고 수십발의 폭죽이 터지며 동해항의 하늘을 밝혔다. 부둣가에 나와 있던 3,000여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금강호의 불 켜진 창마다,갑판 층층마다에서 탑승자들은 손을 흔들며 환송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어 황혼의 어스름을 뚫고 2만8,000여t의 육중한 선체는 미끄러지듯 동해항을 빠져나갔다. 시민들은 금강호가 바다 저편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금강호는 그렇게 떠나갔다. 배 안에는 승객만 탄 것이 아니었다. 금강호의 첫 출항으로 민족 화합의 다리가 놓이길 바라는 이산가족의 꿈과 온 국민의 소망이 실려 있었다. 관광객들에게는 이날 하루는 너무도 길었다. 부둣가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서성대는 노인들을 쉽게 볼수 있었다. 이들은 난생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전날밤 금강산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에 “서설(瑞雪)이 아니겠느냐”며 좋아했다. 설레임이 가득한 눈들. 하지만 모두들 나름대로의 한(恨)과 사연을 담고 있었다. 황해도 신천이 고향인 金昇龍할아버지(70)는 “금강산에 올라 고향을 향해 절을 하겠다. 그리고 못난 불효자를 용서해달라고 부모님께 사죄하겠다”며 눈물을 떨궜다. 이어 “5남매의 장남으로 홀로 월남한 뒤 50년을 하루같이 남몰래 눈물을 흘려왔다”면서 “이 한을 품고 그냥 죽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토록 고향을 그리다 숨진 남편과 함께 갈 수 있었더라면…”. 평북 희천에서 남편과 함께 월남한 金華洽할머니(71)는 “외아들과 함께 고향땅을 밟게 돼 기쁘다”면서도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權萬希씨(70)는 과일과 술을 마련하고 제수용품을 준비했다. 지방도 정성스레 써놓았다. 생가가 강원도 고성군 해금강리에 있어 고향을 바라보며 제사를 지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부인 魚善龍씨(65)는“남편이 관광 신청을 한 뒤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 같았다”고 전했다. 금강호가 떠난 뒤에도 삼삼오오 터미널안 TV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방송사 헬기가 보내오는 금강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 금강산관광선/張淸洙 논설위원(外言內言)

    꿈에도 그리던 민족의 명산인 금강산 관광 뱃길이 마침내 열렸다.금강산관광1호선인 ‘현대 금강호’가 18일의 공식 첫 출항을 앞두고 14일 2박3일간의 시험운항에 나섰다. 현대그룹 최고경영진을 포함한 임직원과 여행사 대표 등 관련인사 440여명을 태우고 동해항을 출발해 공해항로를 따라 199마일을 항해한 끝에 장전항에 도착,금강산 관광에 들어갔다.관광객들은 구룡폭포 코스와 만물상 코스를 따라 금강산 1일 관광을 마치고 16일 동해에 도착한다. 이번 금강산 뱃길 처녀 항해에 나선 현대 금강호는 바다에 떠있는,꿈의 궁전으로 불리는 호화 유람선이다.유람선의 규모가 워낙 큰데다가 시설도 고루 갖춰 이용방법을 잘 활용하면 즐거움을 한껏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안락한 객실에다 한·중·일·양식이 골고루 제공되며 공연장에서는 다양한 볼거리가 선보이기 때문에 식사후에 생음악을 들으며 밤바다 경치를 즐길 수 있다.헬스클럽과 수영장은 물론 디스코텍과 노래방까지 설치돼 금강산관광기분을 노래로 한곡조 뽑을 수도 있다.더욱이 선상 전망대 라운지에서 일몰과 일출의 장관을 맛보는 것은 유람선 관광의 하이라이트다. 이같은 유람선 시설로 낮에는 금강산 구경,밤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명산(名山)과 호화 유람선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금강산 관광의 묘미를 한껏 더해 줄 것 같다. 그래서 금강산 관광비용이 비싸게 책정됐는지 모르겠다.아무튼 세계 명산중에 으뜸이며 민족의 정기가 서린 금강산을 관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슴뿌듯한 기쁨으로 다가온다.분단상황에서 금강산을 갈수 있다는 것은 민족화합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주는 인도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금강산 관광을 시발로 남북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남북 모두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줄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통일사업으로 평가된다. 그런 맥락에서 18일 첫 출항하는 금강산 관광선은 민족분단의 비극을 청산하고 민족의 화해와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는 역사적 이정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미 예일대 조너선 D 스펜서 교수 ‘현대중국을 찾아서’ 1,2권

    ◎탈아시아적 시각서 바라본 중국/명말기∼89년 천안문사태까지/국가 통치행태·교육·대외관계 기술/세계사 범주서 이해 가능토록 구성 중국을 다시 알자. 김대중 대통령의 중국방문과 때맞춰 새롭게 중국 읽기 붐이 일고 있는 때에 객관적 시각에서 현대 중국을 기술한 책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일본 등 중국의 이웃 나라들이 중국을 객관적으로 조망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중국은 자체가 하나의 세계일 정도로 그 거대함이 우리를 가위눌리게 하기 때문이다. 또 주변국들은 역사적으로 중국을 정점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와 그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현대중국을 찾아서’라는 방대한 중국 역사서가 도서출판 이산에서 나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중국사 학자인 예일대학의 조너선 D.스펜스 교수가 쓴 이 책은 탈아시아적 시각에서 중국을 바라본다. 1,100여쪽에 1,2권으로 된 이 책은 여타의 중국 근현대사 책들이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중국 근대를 풀어가는 것과는 달리 명나라 말기부터 지난 89년 4월의 천안문 사태까지 4세기에 걸친 역사를 꿰뚫고 있다. 저자는 1600년경부터 중국을 봐야지만 현재 중국의 문제들이 어떻게 발생했으며,또 어떤 지적,경제적,정서적 자원을 이용해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는지를 최대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혁명의 공로를 주장하지만 관료조직을 통해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데 그 조직은 17세기 후반의 명나라나 청나라 초기에도 존재해왔다. 조상숭배를 위한 교육제도,가문의 권력에 대한 인정 등의 사회·문화적 전통도 이 시기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국은 일찍부터 자신이 중심에 있다는 중화사상에 입각,주변국들과 국제관계를 형성해오면서 풍부한 외교경험을 쌓아왔다. 중국 대외관계의 특징은 직접 화법보다는 넌지시 뜻을 던지는 것. 그러나 미국은 지난 72년 중국과 국교를 수립할 때 중국의 은밀한 추파를 읽지 못했다. 당시 중국은 건국기념일에 ‘중국의 붉은 별’을 쓴 미국 작가 에드가 스노우를 초청,모택동 옆에 앉혔다. 중국으로선 국교재개의 희망을 암시한 셈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뜻을 읽지 못하다가 중국이 여자탁구팀을 초청하자 그제서야 중국과 협상에 나섰다. 중국이 1930년대 독일과 손을 잡으려 했던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도 담겨 있다. 당시 공산주의자와 싸우고 있던 장개석은 반공주의자인 히틀러와 교류를 희망했으나 독일이 이미 일본과 관계를 맺고 있어 장개석의 희망은 무산된다. 이처럼 이 책은 중국사를 세계사적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또 모택동이나 공자를 몰라도 방대한 중국 근현대사를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평이하게 쓰여졌다. 그 힘은 제도·사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이야기 흐름 속에서 역사현상을 이해할수 있도록 한 것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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