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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상봉 11·12월 성사 유력

    남북 적십자회담 대표단은 22일 이산가족 후속방문단 교환시기와 생사확인 방법을 놓고 절충을 벌였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일정을하루 연장했다.이날 북측지역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대표 접촉에서 남측은 이산가족 방문단의 10·11월 교환을 주장했으나북측은 11·12월 교환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괄적인 생사확인’ 제의에 대해 북측은 단계적인 확인 실시를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당초 23일 귀환예정이던 남측 대표단은 일정을 하루 연장,23일 밤 장전항을 출발,24일 동해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대표 접촉은 남측의 고경빈(高景彬),북측의 리금철 대표간에 이뤄졌다.고대표는 접촉 직후 “양측이 서로의 입장을 재확인,큰 합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회담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일괄적인 생사확인을 통해 가족의 생사를 알려주는 것이며 방문단 교환시기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말해 ‘북측의 11·12월 방문단 교환안’을 수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면회소와 관련,양측은 판문점과 금강산 설치를 놓고이견을 좁히지못했다. 앞서 남북은 전날 경의선 복원 공사가 내년에 끝나면 중간지점에 항구적인 면회소를 설치한다는 데 원칙적인 의견접근을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 2차 이산상봉 신청 11만여명 접수

    2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신청이 7일 마감됐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이날까지 상봉신청을 한 이산가족은 11만여명으로 8·15 상봉 이후 3만400여명이 늘었다.이에 따라 이번의 상봉 경쟁률은 1차 상봉 때의 770대 1보다 높아진 1,100대 1로 예상된다. 적십자사 남북교류팀 박정규(朴井圭·49) 팀장은 “8·15상봉 이후매일 400여건의 신청이 쇄도했고 문의전화도 하루 평균 500통 이상걸려왔다”면서 “최근에는 신청이 제대로 됐는지를 확인하는 이산가족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이산상봉 10·11월 될 전망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10·11월에 각각 한 차례씩 이루어질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6일 “북한 적십자회가 이날까지 회담개최 의사를 표시해 오지 않아 회담은 추석후로 미뤄지게 됐으며 2차 상봉은 10월중순쯤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상봉자들이 고령임을 고려,3차 상봉은 11월 중순 이전에 이뤄지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2·3차 상봉과 관련,정부는 방문단 규모를 150∼200명으로 늘리고 다른 행사를 줄이는 대신 상봉 횟수도 2∼3차례 늘리는 방안을 북측에 제의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북한은 전날 ‘경의선 복원 및 문산∼개성 도로개설 협의를 위한 실무접촉을 7일 갖자’는 정부의 제의에 대해 아직 아무런 답변도주지 않아 관련 실무접촉이 추석 이후로 연기되게 됐다. 북한은 이날 오후 판문점 연락관 전화접촉에서 적십자회담 및 경의선 실무 접촉 제의에 대해 “오늘 전달할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이석우 김상연기자 swlee@
  • 北 金正日통치 2년…‘은둔’서 점진적 개방으로 물꼬 돌려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체제가 5일로 공식 출범 2주년을 맞았다.지난94년 김일성 사후 극심한 경제난과 과도기적 체제불안을 보이던 북한은 마이너스 성장이 둔화되는 등 정치·경제적 안정을 되찾고 있다. 김정일 자신도 최고지도자로서 명실상부한 실권을 장악하고 체제강화와 실리추구를 위해 점진적이지만 구체적인 대외개방을 선택해 나가고 있다. ■대내적 체제안정 선군(先軍)정치를 축으로 체제안정과 경제회복을시도하고 있다.군을 사회질서 유지에서 경제회복에 이르기까지 모든활동의 전면에 내세우고 실권을 부여한 군부중시정책이다.98년 9월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10기 1차)에서 국방위원장을 국가최고직책으로격상시키고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재추대했다.헌법을 개정하고 주석제를 폐지,40년간 지속되어온 ‘김일성 체제’를 마감한 것. 앞서 97년 10월 총비서에 취임한 김정일은 국가와 당·군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다. ■강성대국 김정일 체제의 국가적 목표다.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 위에서 변화된 현실을 수용한 실리추구의 생존전략이다.경제번영과 군사력 강화,사상적 안정 확보를 위한 것이다.대남정책의 획기적인 수정과 대외개방 등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생존을 위해 대남관계의개선과 대외개방의 확대가 합리화되면서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향후 과제 대외개방과 체제유지란 두 가지 명제의 조화가 과제다. 대외개방에 소극적일 경우 경제회복이 어렵고 반면 개방은 체제안정성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이 점에서 제한적이고 단계적인 개방과인적교류의 확대보다는 경제적 실리추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당대회를 통한 북한내 체제정비와 중국·러시아 등 전통적 우방과의 관계강화도 전망된다. 이석우기자 swlee@. 북한 김정일(金正日) 체제가 5일로 공식 출범 2주년을 맞았다.북한최고인민회의(10기 1차)에서 국방위원장을 국가최고직책으로 격상시키고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에 재추대한 것이 98년 9월5일.94년 김일성(金日成) 주석 사후 극심한 경제난과 과도기적 체제불안을 보이던 북한은 마이너스 성장이 둔화되는 등 정치·경제적 안정을 되찾고있다. ■대내적 체제안정 김정일 자신도 최고지도자로서 명실상부한 실권을장악하고 체제강화와 실리추구를 위해 점진적이지만 구체적인 대외개방을 선택해 나가고 있다.선군(先軍)정치를 축으로 체제안정과 경제회복을 시도하고 있다.선군 정치란 군을 사회질서 유지에서 경제회복에 이르기까지 모든 활동의 전면에 내세우고 실권을 부여한 군부중시정책이다.북한은 98년 주석제를 폐지하는 헌법개정을 단행, 40년간지속되어온 ‘김일성 체제’를 마감했다.김정일은 97년 10월 당 총비서에 취임,국가와 당·군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다. ■강성대국 김정일 체제의 국가적 목표다.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 위에서 변화된 현실을 수용한 실리추구의 생존전략이다.경제번영과 군사력 강화,사상적 안정 확보를 위한 것이다.대남정책의 획기적인 수정과 대외개방 등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생존을 위해 대남관계의개선과 대외개방의 확대가 합리화되면서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향후 과제 대외개방과 체제유지란 두가지 명제의 조화가 과제다.대외개방에 소극적일 경우 경제회복이 어려운 반면 개방은 체제안정성을 흔들수 있기 때문이다.이 점에서 제한적이고 단계적인 개방과 인적교류의 확대보다는 경제적 실리추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당 대회를 통한 체제정비와 중국·러시아 등 전통적 우방과의 관계강화도전망된다. 이석우기자 swlee@. *남북간 4대 분야별 점검. ■이산상봉 확대. 이산가족 문제는 우리측이 워낙 공을 들이는 부분이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으로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63명의 비전향장기수를 우리측이 기꺼이 송환한 데 대해 어떻게든 성의를 보여야 할입장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재결합이나 이주 등 완전한 해결책까지 염두에둔 것 같지는 않다.사실상 체제 붕괴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김 위원장이 면회소를 통한 상봉 등 제도화에 대해적극적인 것 같지도 않다.남쪽 가족과 접촉하는 주민들이 갈수록 많아지면 ‘사상 오염’이 커져 상당한 부담이 된다. 따라서 당분간은 이산가족 교환방문과 같이 홍보효과는 크면서도 단발성인 행사에 주력할 것 같다.최근 남북이 합의한 연내 2차례 추가교환방문이 김 위원장의 제안에 따른 것에서도 짐작이 간다.서신교환도 여러 사람을 만족시키면서도 가족들이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교적 안전한 방법일 수 있다. 면회소 설치는 최대한 늦출 것으로 보인다.통일연구원 임순희(林順姬)박사는 “면회소가 설치되더라도 북측은 가급적 적은 규모로 상봉을 주선하는 등 소극적 자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경제난 해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과연 ‘정치는 틀어쥐고 경제는 푸는’중국식 경제 개혁·개방 모델을 구상하고 있는 것일까. 장기적으론 몰라도,당장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경제분야의 완전 개방이 체제 전체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물론 북측이 개성이나 금강산 등 특정 지역만을 개방하는 것은 중국의 초기 경제개방 방식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그러나 운용 방법면에선 사유재산 제도를 불허하고 강력한 사상통제를 실시하는 등확연히 다른 모습을 띨 것으로 예상된다.사상무장이 잘 돼있는 극히일부 인사만 남쪽 사람과 접촉하고 기술을 전수받으면 사상적인 ‘오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이렇게 해서 일부 특구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대다수 ‘인민’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 경협 분야에서의 북측의 적극성이 치밀한 시나리오에 의한 것 같지는 않다.생존을 위해 일단 ‘빗장’을 열고 보자는 식이란견해가 지배적이다. 통일연구원 임강택(林崗澤)연구위원은 “대외 경제교류가 가속화할경우 북측의 의도대로 사상적 통제가 완벽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군사적 긴장완화. 가장 가늠키 힘든 분야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뚜렷한 입장표명이 없기 때문이다. 군사적 긴장완화 분야에 있어 북측은 남북정상회담 이전까지는 줄곧미국과의 대화만을 고집했다. 53년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닌 남한은미국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논리에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 왔다. 우리측은 급속한 남북화해 물결 속에서 북측이 과거와 같이 우리를노골적으로 따돌리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그렇지만 북측이 과거의 입장을 쉽게 바꾸리란 보장도 없다. 최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2+2(평화체제 남북 합의+미·중 보증)’시스템을 역설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따라서 김정일위원장이김 대통령의 평화구축안을 받아들일지가 최대 관심사인데, 이는 미국의 대북경제제재 해제 조치 등에 따라 유동적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신지호(申志鎬)박사는 “김 위원장은 군사 직통전화설치와 국방장관 회담은 우리측과 직접 타결하고,군축, 평화협정 체결 등 핵심적 문제는 미국의 참여를 구상하고 있을 것”이라며 “북측은 타협 속도를 가급적 늦추면서 남한과 미국으로부터 실리를 최대한 얻어낼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상연기자. ■대외 개방정책. 북한은 미·일·중·러 등 한반도 4강 외교를 축으로 전세계의 문을두드리는 전방위(全方位)외교에 나서고 있다. ‘은둔 외교’에서 적극 개방쪽으로 돌고 있는 셈이다. 경제적 실리와 체제보장 확보를 위한 관건인 대미 외교 등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전망이다.오히려 미국 내 사정이 대북 관계개선을 지연시키는 상황이다. 정상회담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강화도 시도될 전망.김 위원장은 지난 5월29일부터 시작된2박 3일간의 중국 비공식 방문을 시작으로 6월의 평양 남북정상회담,7월 평양 북·러 정상회담 등 연이은 정상외교를 통해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한국과의 수교 이후 소원하던 중국,러시아와의 우호관계 복원이 이뤄졌고 북한의 외교 발언권도 정상회담을 통해 한층강화시켰다. 북한의 최대 외교과제는 미·일과의 관계정상화.워싱턴과의 정상화가 우선이지만 함께 병행하며 양자를 경쟁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나고있다.각종 국제경제기구에 가입,지원을 얻어내기 위해서도 미국과의관계정상화가 필수다.김 위원장이 대미 관계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것도 이 때문이다. 이석우기자
  • 이산상봉 가족 추석 준비 “북쪽형제 사진들고 성묘”

    “이번 추석에는 더욱 정성스럽게 차례상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달 50년 동안 헤어졌던 혈육과 감격적으로 만났던 이산가족들에게 올 추석은 더없이 특별하다. 그동안 반신반의하며 부모님 제사를 미뤄왔던 사람들은 북쪽 형제들로부터 부모님의 사망 사실과 제삿날을 전해듣고 늦게나마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 북에서 내려온 형제들을 만났던 이들은 부모님 묘소에 북쪽 형제들의 사진을 들고가 성묘를 하기로 하는 등 ‘특별한’ 추석을 준비하고 있다. 방북단에 포함돼 평양에서 동생 4명을 만나고 온 장두현(張斗顯·74·경기 화성군 장안면)씨는 동생들로부터 부모님의 기일이 각각 7월19일과 12월11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부모님의 생전 사진도 받아왔다.명절만 되면 차례상을 차려야 할지 고민했던 장씨는 “이번 추석에는 부모님의 사진까지 모시고 정성스럽게 차례를 지낼 수 있게됐다”면서 “못난 장남의 제사상을 받는 부모님들도 하늘에서 기뻐하실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북에서 만난 누나에게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한 김상현씨(66·서울 송파구 마천동)는 올 추석에 어머니에게 첫 제사를 드릴 예정이다. 김씨는 “아직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지만정성껏 제사상을 차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허탈해했다. 북에서 온 형 김동진(金東眞·74)씨를 만났던 동만(東滿·68·서울은평구 갈현동)씨는 추석때 형의 사진을 들고 부모님의 묘소에 갈 생각이다.동만씨는 92년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부모님 묘소옆에 형의 가묘까지 만들었다. 죽은 줄만 알고 사망신고까지 했던 형 김덕호(金德鎬·74)씨를 만난 기호(圻鎬·65·서울 은평구 녹번동)씨는 부모님 비석에 새긴 자손명단에 형과 조카들의 이름도 추가할 예정이다. 이창구 윤창수 조태성기자 window2@
  • 남북장관급회담 후속조치 어떻게

    지난 1일 평양에서 끝난 2차 장관급회담의 성과로 이산상봉,군사부문에서부터 식량지원·경협·관광 등 남북관계에서 전방위 후속조치가기대된다.후속조치 등 관련사항을 살펴본다. *서신교환. 이달 초 2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이산가족 연내 추가 교환방문,서신교환,면회소 설치 등과 관련한 내용이 집중 논의된다.비전향 장기수 63명 송환 직후의 회담이라는 점에서 북측의 전향적인 자세가 기대된다. 추가 교환방문 연내 2차례 교환방문의 시기와 방문단 규모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이르면 9월 말로 예상되는 1차 추가 방문단에는 지난 8·15 때 생사확인을 했으나 방문단에서 제외됐던 122명(남측 26명,북측 96명)이 우선적으로 포함될 전망이다. ◆서신교환= 이미 생사확인된 사람부터 서신교환을 시작하는 방향이될 것같다.8·15 때 생사확인된 322명(남측 126명,북측 196명)이 우선 대상자가 될 것으로 보이며,85년 교환방문 때 생사확인된 사람들도 포함될 전망이다.새롭게 생사확인하는 규모와 시기 등도 논의될것으로 보인다. ◆면회소 설치=6월 말 1차적십자회담에서 남북은 ‘비전향장기수 송환 즉시 적십자회담을 열어 면회소 설치를 논의한다’고 합의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설치 시기와 장소가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연내에 당장 추가 교환방문과 서신교환 등 일거리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설치 시기가 상당기간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적십자 회담 장소 및 시기=우리측은 일단 5일로 제안해놓고 있지만 북측에서 회신이 없다.북측이 1차회담 합의를 존중한다면 금주 안에는 열릴 것으로 보인다.다음주는 추석연휴가 끼어있어 힘들다.회담장은 우리측이 판문점을 제안했으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설악산이 거론되기도 한다. 김상연기자 carlos@. *제주회담. 남북 교류 및 회담에 있어 ‘장소’ 문제가 갈수록 비중있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단순히 ‘어디에서…’에 그치지 않고 뭔가 배경이 깔려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특히 이달 말 열릴 3차 남북장관급회담 장소로 한라산이 정해짐으로써 장소 문제는 더욱 관심을 끌게 됐다. 과거엔 판문점을 접촉경로로 이용하는 데 남북간 이견이 거의 없었다.양측의 ‘신경전’은 북측이 지난 6월 중순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판문점을 기피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촉발됐다. 북측은 정상회담 때 왕복 교통편을 판문점을 통한 육로가 아닌 항공편을 제의했었다.6월 말 남북적십자회담 역시 금강산에서 갖자고 주장했다.이달 초 열릴 2차 남북적십자회담도 우리측은 판문점을 제안해놓고 있지만 북측이 받아들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북측의 판문점 기피 배경에 대해 일각에서는 ‘외세’가 관할하는지역이기 때문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그러나 북측은 지난 2일 비전향장기수 송환 경로로 판문점을 수용,이같은 해석도 근거가 약해졌다.따라서 지금으로선 북측이 향후 이산가족 면회소를 자기측 지역인금강산에 설치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란 해석이 유력하다. 사실 3차 장관급회담 장소 역시 북측은 당초 금강산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한편에선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남한 답방 장소를 제주도로 하기 위한 사전 분위기 조성 작업이란 분석도 있다.서울답방은 보수세력의반대 시위 등 경호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김상연기자. *쌀 차관. 북측이 평양 장관급회담을 통해 남측에 식량 지원을 공식요청함에따라 정부는 통일부와 농림부를 중심으로 대북 지원에 관한 구체적인 대책마련에 착수했다.어느 규모로 어떻게 언제 지원할지가 관심거리다. ◆지원 규모 및 시기=북측이 요구한 식량(쌀) 지원 규모는 알려지지않고 있으나 대략 한해 20만t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남측의 대북 쌀지원 최대규모는 95년의 15만t(1,850억원)이었다.지원규모는 국민 여론을 봐가며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방침인데 북한 요구를 가급적 수용하되,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옥수수도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차관공여 형태는 국제기구나 일본 정부가 대북 쌀 지원 때 쓰는 ‘10년 거치·30년 상환’ 방식이 참고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북측은 올해분을 10월 말까지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절차상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안으로는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쌀로 지원할까=농림부가 보유한 쌀 재고량은 740만섬(106만t).우리 국민들의 3개월 소비량인 600만섬의 전략 분량을 제외하면 빠듯하다.올해 쌀 수확 목표량 3,530만섬을 무난히 달성하면 1년 쌀 소비량인 3,300만섬을 제외하고 250만섬(36만t) 정도는 대북 지원에 투입할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농림부는 국내 생산물보다는 수입해서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외화가 부족한 북한을 대신해우리가 쌀을 사서 북한에 차관지원하는 방식이다. 김성수기자 skim@. *기타 3개분야. 제2차 장관급회담 후 남북간 경협제도화,군당국간 회담,임진강 수방대책 등의 후속조치도 활발히 진행될 예정이다. ◆경협 제도화=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분쟁해결 절차·청산결제 등 4대 과제의 문서화 방안 논의가 주 의제로 논의된다.‘쌍방 전문가들의 9월 중 실무접촉’을 명시,대표단은 정부와 국책연구소,민간대표 등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정부는 경제부처의 차관급을 수석대표로 협의에 힘을 실어보겠다는 생각이지만 북측의 대응은 보다 실무적인 차원에서 머물 것으로 보인다. 경의선 복원과 문산∼개성 사이의 도로개설을 위한 9월 중 실무접촉도 명문화돼 있다.건설교통부·통일부 국·실장급 등이 대표로 참여,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문제를 협의할 예정.내부적으론 경제부처와 통일부 등 관련부처 장관급 협의체인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추진방향과 입장에 대한 조율을 벌이고 있다. ◆군 당국자간 회담=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실제적인 조치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김종환(金鍾煥)국방부 정책보좌관이 장관급 회담대표로 참가한 만큼 김보좌관을 대표로 한 장성급 회담으로 출발할가능성도 높다.당초 정부는 국방장관급 회담을 갖자는 입장이었다.남북관계의 진전과 발맞춰 회담의 급을 높여 나간다는 방침. 회담에선 군당국간 직통전화 설치가 우선 논의된다.신뢰회복과 군사부문의 투명성·예측성 제고를 위해 군사훈련 및 군병력 이동에 대한 사전통보 및 참관,군사회담의 정례화 등도 추진해 나간다는 입장. ◆임진강 수해방지 공동추진=임진강의 공동 개발과 활용을 전제로 하는 사업이다.용수,전력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해 나가겠다는 것이 정부 복안.임진강 지역은 남북한의 군사력이 첨예하게대치하고 있는 등 군당국간의 협의도 필요하다.건설교통부,통일부,국방부간의 협의가 진행돼 왔다.남북간 구체적인 협의 시기를 못박지않았기 때문에 우선 실무 전문가들의 접촉이 있은 뒤 남북한이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해 나가는 방향을 협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석우기자 swlee@
  • 국정홍보처 국민 여론조사…”이산상봉 北 개방에 영향” 82%

    국민들은 8 ·15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 이후 가장 시급히 취해야할 조치로 자유왕래,상설 면회소 설치 등을 꼽았다. 국정홍보처는 지난 18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해 가장 시급히 취해야 할 조치로 응답자의 26.5%가 자유왕래,26.0%가 면회소 설치를 꼽았다고 21일 밝혔다.이어 우편·통신 허용(19.0%),생사 확인(18.2%),상봉 정례화 및 대상자 확대(10.2%) 등이 뒤를 따랐다. 이와 함께 국민 10명 중 8명은 8·15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의 개혁과 개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응답자의 32.1%는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의 개혁과 개방에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고 50.4%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응답,전체의 82.5%가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북한이 이에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14.9%에 그쳤다. 특히 91.8%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여는 데기여할 것이라고 답했다.이산가족 상봉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응답도 93.6%에 이르렀다. 92.3%는 남북정상회담,이산가족 상봉 과정 등을 통해 북한의 태도변화를 느꼈다고 응답,북한의 태도변화 인지율이 지난 5월 조사때의 61.7%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도도 5월의 82.5%에서 88.3%로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오일만기자 oi
  • 8·15후 이산상봉 신청 폭주

    “가족은 살아있다면 반드시 만나야 한다” 8·15 이산가족 상봉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2,3차 상봉을 위한신청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산가족들이 15∼18일의 1차 상봉을 지켜보면서 남북 이산가족의만남이 더 이상 꿈이 아니라는 점을 뼈저리게 느낀 데다 추석을 전후한 2차 상봉과 면회소 설치,편지교환 등도 곧 성사될 것으로 굳게 믿기 때문이다. 21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2층 이산가족 상봉신청 접수창구는 신청자들이 복도에서 신청서를 작성할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오전에만 200여명이 찾아 신청서를 작성했으며,신청 방법 및신청 확인 등을 묻는 전화도 300여통이 걸려왔다.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오는 9월 상봉단에는 내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제대로 신청이 됐느냐” 등의 질문에 답을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아침 일찍 적십자사를 찾은 평북 영변 출신 문광희(文光熙·78·서울 동작구 상도동)씨는 “8·15상봉 때는 1회성 만남으로 끝날 것 같아 신청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북에 두고온 어머니와 아내,자식들을 꼭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면서 “직계 가족인 만큼9월 상봉단에는 내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함남 함주가 고향인 이을녀(李乙女·76·여·부천시 원미구 중동)씨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북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쉬쉬했었다”면서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돼 조카들을 찾기로 했다”며 신청서를 꼼꼼히 작성했다. 적십자사에 따르면 8·15상봉이 있기 이전까지는 하루 평균 상봉 신청건수가 200여건에 불과했다.하지만 지난 16일에는 360건,17일 445건,18일 580건 등으로 급증 추세다. 이북5도청이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 역시 지난 15일을 기점으로 하루 30여건이었던 신청 건수가 50건 이상으로 늘었다.이 센터의 주업무는 이북5도민의 동향 파악이었으나 상봉신청이 폭주하자 상봉신청 접수 및 관리도 맡는다. 이북5도청의 상봉신청 담당인 김대열(金大烈·39) 계장은 “직접 방문하는 것 말고도 우편이나 인터넷 신청도 가능하며,구청에서도 신청을 받는다”면서 “2차 상봉단 선정과 생사 확인,면회,편지 교환 등도 상봉 신청자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신청을 해놓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이창구 이동미기
  • 金대통령, 집단이기에 굴복 안돼… 이산상봉 조기 제도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1일 의료계 폐업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거나 집단이기주의를 강압으로 관철시키려는것에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조속한 해결노력을 하되 안될경우에 대비해 확고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집단이기주의나강압에 굴복하면 나라의 경영이 어렵다”고 강조했다.특히 “의약분업은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의·약·시민단체 합의로 이뤄졌고 최근 의·약계의 의견을 받아 약사법을 개정했으며 의료수가를 높이고 전공의 처우도 개선하기로 했다”면서 “정부는 할 만큼의 성의를 다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절대 다수가 의료계의 집단이기주의에찬성하지 않고 있다”며 “이 문제는 투명하게 모든 것을 공개하면서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그러나 “법과 원칙을 충실히 하는동시에 설득과 대화를 병행해 조속히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의사들을 적대시하거나 해쳐서도 안된다”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남북 이산가족간 서신왕래,생사확인,면회소 설치가 가능한 한 짧은 시간내에 이뤄지도록 중점을 두고 노력하라”고 말했다.이어 “이번에 겨우 200명만 왕래하고 1,000명의 가족들이 만났지만 상봉을 신청한 7만명과 전체 이산가족 1,000만명이라는 숫자를 고려할 때 이런 (일회성)방식으로는 안된다”면서 이산가족 상봉의 조기제도화를 지시했다고 박준영(朴晙瑩)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이산상봉 문제점 분석 횟수·규모 단계적 개선”

    정부는 8·15 남북이산가족 상봉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이산가족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개선안을 마련,북측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어디까지나 시작이기 때문에 1차상봉 결과의 긍정·부정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상봉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이산가족 상봉은 너무 성급한 기대를 갖거나 우리측의 일방적 희망을 관철시키려는 것보다 남북이 서로 감내할 수 있는범위 내에서 차분하게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면서 “가능하면 이산가족의 아픔을 해소하고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개선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현기자
  • 남북이산상봉/ 北량한상씨 뒤늦은 老母상봉

    혈육의 정이란 이토록 끈질긴 것인가-.북측 방문단의 아들 량한상씨(69)와 어머니 김애란씨(87)의 심야의 병실상봉은 평양으로 떠나기불과 6시간 전이어서 분단의 아픔을 더욱 깊게 했다. “어머니…”“아야,이게 누구냐! 한상이 아니냐,왜 이리 늦었냐” 18일 새벽 4시쯤 신촌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센터 특실 1252호실.50년 만에 만난 아들을 향해 던지는 어머니의 일성은 기다리다 지쳐서인지 감격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외출에서 늦은 아들을 맞는 듯했다. 그러나 모자의 상봉은 약 40분에 그쳤다. 어머니 김씨는 노환에 심한 빈혈과 어지럼증으로 ‘절대 움직이면안된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져 서울 서교동 자택에서 꼼짝도 할수 없는 상태였다.량씨는 17일 오후 어머니의 자택을 방문할 수 있도록 남북 적십자사에 호소했으나,‘지정장소 내 상봉 원칙’ 때문에눈물만 흘려야 했다.결국 두 모자를 상봉시켜야 한다는 여론에 밀린남북 양측은 비로소 병원에서 만나도록 하는 타협안을 이끌어 냈다. 병상에서 아들을 맞은 어머니 김씨는 “이게 누구냐,왜 이리 늦었냐”며 50년간 참았던 눈물을 폭포수처럼 터뜨리며 통곡했다.량씨도 복받치는 설움에 목이 메어 겨우 “저,한상입니다”라면서 큰절을 한뒤 모친을 부둥켜안고 반세기 동안 참았던 울음보를 터뜨렸다. 통곡과 대화를 반복하던 김씨는 두 눈을 감은 채 “애기(며느리) 갖다주라”고 말하며 손에서 반지를 빼 아들에게 건넸다. 상봉을 마치고 량씨가 숙소로 떠나려 하자 김씨는 “가지 마라 얘야,날 두고 어디 가느냐”며 다시 통곡했다.한상씨는 “빨리 돌아오겠습니다,어머니.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라면서 “모진 맘 먹고 북쪽의 한상이 보겠다는 마음 먹고 버티셔야 합니다”라고 울먹였다.상봉장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래,바로 와라” 돌아서는 아들과 손가락조차 움직일 힘도 없는 여든일곱 늙은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50년을 기다린 40분의 만남은 기약없는 이별로 막을 내렸다. 전영우기자 ywchun@
  • 남북이산상봉/ 새달 2일 북송 앞둔 비전향장기수들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어디 그들만의 기쁨이겠습니까? 나머지 이산가족들은 물론,갈라져 살아 한(恨) 품은 이들도 모두모여 살아야죠.” 나흘 동안 남북 이산가족들의 눈물의 상봉을 지켜본 북송 비전향장기수들의 감회는 남달랐다.평생을 바쳐 통일을 원했던 그들이었고 북송 날짜도 다음달 2일로 확정됐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우리탕제원 조창손(曺昌孫·72)씨는 “얼싸안고 눈물을 뿌리는 이산가족들을 보면서 북에 두고온 처자식 생각이 더욱 간절히 들었다”면서 “어렸을 때 헤어진 사람을 이념과 체제가다른 탓으로 백발이 성성해서야 만나게 됐으니 이보다 더한 비극이어디 있겠느냐”고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이 때문에 황해도가 고향인 조씨는 개인적인 기대감과 흥분을 애써감추며 혼자만 가게 됐다는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조씨는 “하루에 십수 곳씩 인사를 다녀도 미안하고 신세진 사람들이 많다”면서 다시 옷을 추슬러 입고 바쁜 발걸음을 나섰다. 북송 장기수들은 정부의 북송 계획이 사실상 확정된 뒤부터 여기 저기 인사하러 다니고아쉬움을 표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하지만 이들의 요구 사항도 많다. 윤용기(尹龍基·75)씨는 “남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과 북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어느 한 쪽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하다”면서 “나뉘어 사는 모든 이들의 자유로운 왕래는 체제 선택의 문제에앞서는 문제”라고 자유왕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남북이산상봉/ 귀환 방문단 밤새 얘기꽃

    “평생의 소원을 풀었습니다.이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핏줄을 만났다는 기쁨과 흥분을 뒤로 한채 집으로 돌아온 이산가족들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눈에 담으려던 혈육의 모습을 떠올리며 하얗게 밤을 지샜다.상봉 당시를 되새기며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하면,어떤 가족들은 허탈함과 사무쳐오는 그리움을 추스르지 못해 식욕부진,불안,우울증 등 상봉 후유증을 겪고 있다.장엄한한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린 18일 밤은 이산가족들에게 또다른 만남을기약하는 시간이었다. *부모·자식. ■15일 서울에서 형님 이종필씨(69)를 만난 동생 종덕씨(63·충남 아산시 탕정면 명암1구)는 “치매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가형님을 알아보셨다”며 기적같은 상봉 순간을 상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99세로 이산가족 상봉자중 최고령인 조원호 할머니는 20여년간 치매를 앓아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나 상봉 첫날 아들 종필씨를 알아보는 기적과도 같은 상봉을 연출했다. 헤어지면서 “통일의 그날까지 몸 건강히 잘 있으라”는 형님이 말에 눈물만 나오더라는 종덕씨는 “어머니가 헤어지는 순간에도 형님을 알아보시며 손을 놓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북쪽의 아들 강영원씨(66)를 만나고 온 박보배 할머니(90·전주시인후동)는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대학교수로 잘 살고 있어 한시름 덜었다”며 “아들이 며느리가 직접 지은 한복 두벌과 며느리와손주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을 주었는데 평생 제일 맘에 드는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강씨의 남쪽 조카인 강석기씨(39)는 “큰아버지가남쪽 가족들의 사진이 든 앨범을 소중히 가지고 가면서 ‘우리가 죽더라도 너희들은 꼭 통일을 이룩해 서로 왕래하며 지내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산가족 방문단 의료진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고 장기려 박사의 아들 장가용(張家鏞·65) 서울대 의대 교수는 “현대적 도시로 변해버린 평양에서 만난 북한사람들로부터 ‘물자는 풍족하지 못해도열심히 사는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장교수는 “회색빛고층아파트가 즐비하고 대규모 지하철이 다니는가 하면 대동강 폭도3배로 넓어지는 등 완전히 현대적인 도시가 돼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고 평양의 오늘을 전했다. *부부. □50년전 소식이 끊긴 남편 이복연씨(73)를 기다리면서 평생 수절하며 살아온 이춘자씨(72·안동시 동부동)는 “떠나는 남편에게 ‘건강하십시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이제는 50이 넘은 아이들에게도아버지가 살아계신 모습을 보여줘 여한이 없고 막상 다시 헤어지자니너무 섭섭했다”고 울먹였다. 심장병과 고혈압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씨는 남편과 헤어진 뒤 곧바로 아들 이지걸씨(53)의 경기도 일산집으로 가 안정을 취했다. □상봉을 거부하던 아내와의 극적인 해후로 화제가 됐던 북한의 영화촬영감독 하경씨(74)의 남쪽가족들은 짧은 만남 뒤의 긴 이별을 괴로워했다. 17일 남편 하씨와 만난 아내 김옥진씨(78·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는그날 밤 곧바로 성남으로 내려왔으나 18일에는 애끊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듯 하루종일 집을 비웠다. 장남 문기씨(54)는 “통일되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은 했지만 그 약속을지킬 수 있을지 착잡한 마음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형제·자매. ■서울을 찾은 언니 김옥배씨(62·평양음대 무용과 교수)를 어머니홍길순씨(88)와 함께 상봉했던 숙배씨는 “살아 있는줄 몰랐을땐 가끔 그립기만 했는데 이제 헤어지고 나서 보고 싶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어머니는 가슴이 아프다며 식사도 안하시고 어제는 혼절까지 하셨다”며 “헤어지는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고말했다. 김씨는 이어 “언니는 해방 직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서를 53년째간직하며 힘들 때마다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내용의 아버지 유서를 보고 또 봤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 정창모씨(68)의 여동생 춘희씨(61·경기도군포시 수리동)는 “오빠는 매우 당당하고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었다”며 “가족을 버리고 월북한 이유와 북한에서의 생활,앞으로의 계획등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춘희씨는 북한에서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고 있는 오빠로부터 귀중한그림을 선물받았다. 4점은 북한에서 직접 가져왔고,4점은 약 40분간에 걸쳐 그린 수묵화였으며,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조국 만세’라는글도 선물받았다.“오빠에게 한복 두벌과 양복을 선물했다”고 밝힌춘희씨는 “그러나 시간이 없어 충분히 선물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기타. □남측 이산가족들의 3박4일간 평양방문에 남북적십자 교류전문위원자격으로 동행했다 돌아온 소설가 이호철(李浩哲·68)씨는 50년만의혈육의 상봉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감동이 가시지 않은 듯 흥분을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북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연작이든 단편이든 반드시소설로 작품화하겠다”고 밝혔다. □평양에서 가족을 만나지 못한채 돌아온 이종백씨(69·서울 양천구신정동)는 큰 소리로 엉엉 울면서 김포공항 입국장을 빠져 나와 보는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씨는 “바로 아래 동생 종윤(60)이가 아파서 만나지 못하고 생전 얼굴도 모르던 동생 종덕(53)이만 보고 왔는데 주위 친지들의 소식을 잘 알지 못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통곡했다.그는 또 “종윤이를 못 만나게해 북에 눌러앉으려다 주위의 설득으로 참고 왔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김재순기자 fi
  • 남북이산상봉/ 이산가족이 남긴 말 말 말

    남북한 이산가족들이 상봉기간중 쏟아낸 말의 순위를 꼽자면 ‘어머니’‘아버지’‘오빠’‘형님’ 등 반세기 만에 불러보는 혈육의 호칭이었다.‘통일’‘민족’‘장군님’ 등 분단의 아픔이 담긴 말들도 이들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았다. 3박4일 동안 심금을 울렸던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말을 정리한다. ◆“아버지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보고 싶을 때면 한장밖에 남지 않은 사진을 보고 또 봤어요”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15일 코엑스 집단상봉장에서 류렬씨(82)의 딸 인자씨(59)가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며. ◆“한달만 빨리 만났어도 어머니를 뵐 수 있었는데…” 문병칠씨(68)의 동생 병호씨(64)가 어머니 황봉순씨(90)가 형의 생존소식을 들은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2일 돌아가셨다고 통곡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살아있었어도 조선민족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글은 쓰지 못했을 겁니다” 17일 마지막 개별상봉에서 북한 극작가인 조진용씨(69)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어머니 정선화씨(94)의 손을 잡고 눈물을 쏟아내면서. ◆“만나서 좋으면 뭘해,만나자 이별인데” 북의 남편 리복연씨(73)와 만난 이춘자씨(70)가 마지막 상봉을 못내 아쉬워하며. ◆“나도 김대중 대통령께 감사한다” 개별 상봉장에서 북한의 형이‘우리를 만나게 해준 장군님의 은덕에 감사한다’는 말을 수차례 되뇌자 동생이 남한 사람으로서 응수. ◆“오마니,통일되면 맨먼저 달려오갔시요” 18일 평양으로 떠나는리영수씨(66)가 워커힐호텔 앞에서 어머니 김봉자씨(87)에게 큰절을올리며. 조현석기자 hyun68@
  • 남북이산상봉/ 이호철·장가용씨 소망

    ◆ 동생 만난 이호철씨. “이산의 아픔을 담은 소설을 쓰겠습니다” 8·15 남북이산가족 교환 방문단 민간 지원 요원으로 북한에 다녀온소설가 이호철(李浩哲·68)씨는 18일 오후 김포공항에서 북한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절절한 심정을 소설로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를 위해 이씨는 조만간 북한 방문 일정과 메모를 정리, 집필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분량이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씨의 소설은 여동생과 만난 이씨의 경험과 다른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한,북한의 변화한 모습,분단 반세기만의 소회,통일의 바람 등을포함한 ‘통일 소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산이 고향인 이씨는 6·25당시 혈혈단신으로 남으로 내려왔다.이번 상봉에서는 일정에도 없던 열 살 아래의 여동생 영덕씨(58)를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남동생 호열씨(64)는 중풍으로 쓰러져 만나지 못했다. ◆ 어머니 만난 장가용 박사 . “돌아가신 아버지 장기려(張起呂)박사는 ‘모든 이산가족들이 가족을 만나기 전에는 나도 만날수 없다’며방북신청을 거부했지만 저는 어머니(김복숙·90)를 보고싶은 마음을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방북 일정을 마치고 18일 돌아온 장가용(65) 서울의대 교수는 꿈에도 그리던 어머님을 만났다는 기쁨과 이제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까하는 안타까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방북신청에서 400명에 들지 못했을 때 얼마나 속이 상하고 화가나던지.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다른 이산가족들도 다 마찬가지더라구. 아버님도 이런 뜻에서 끝까지 방북을 거부하셨구나 싶더라구요” 다행히 대한적십자사의 배려로 방북단의 의료책임자로 평양에 간 장교수는 “미국에 사는 교포를 통해 어머니 사진을 보긴 했지만 50년만에 직접 뵌 어머니는 생각보다 훨씬 고운 모습이었다”며 “구순의나이치고는 몸 건강도 괜찮아 보여 한시름 놓았다”고 말했다. 그리던 어머니였지만 어머니는 말수가 적었다. “이게 꿈이에요,생시에요” “어머니,이놈아 하고 나무라셔야지 왜 존대를 하십니까” 평소 아랫사람에게도 철저히 존대를 했던 어머니였기에 오랜만에 만난 장교수에게도 무심결에 존대를 했다. 18일아침 평양을 떠나기 전 30분동안 가족을 만났을 때 어머니는말문이 트였다. 어머니는 30분내내 “이제 가면 언제오냐”며 손을 놓지 못하셨고장교수는 “1∼2년내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테니 그때까지 몸 건강히 살아계세요”라며 기약없는 약속을 했다.갑자기 전쟁전 열식구 수발하시느라 고생만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겹쳤다.평양 최고의 명문이던 서문고녀를 나오고도 꼿꼿한 남편을 만나 갖은 고생 다하신 어머니.어린시절 뛰어놀던 대동강은 강폭이 3배나 넓어졌고 평양 시내도옛모습은 간데 없었지만 어머니는 그대로 남아있었다.동생들은 오빠가 어머니를 빼닮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번에 100명씩 만나면 앞으로 700번을 만나야 이번에 신청한 사람들이 다 만날 수 있어요.그분들 언제 돌아가실줄도 모르는데 하루빨리 ‘만남의 광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장교수는 국에 든 고기가 가로 세로 1∼2㎝크기로 반듯하게 썰려 있는걸 보고 북한의 ‘힘’을 느꼈다고 전했다.온갖 재료를 듬뿍 넣은남한 음식에 비하면 소꿉장난 같았지만 부족한 물자로 최선을 다하는모습에서 자신감을 엿보았다. 장교수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평생을 인술을 펴는데 보낸아버지의 뜻을 이어 북한에서 자신의 의료기술을 베풀 기회를 갖길원했다. 김재천 류길상기자 patrick@
  • 남북이산상봉/ 취재기자 방담

    역사적인 8·15 이산가족 상봉은 세계적인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감히 연출하지 못할 최고의 ‘휴먼드라마’였다.부둥켜안은 이산가족들은 떨어질 줄 몰랐고 가슴은 뜨겁게 하나가 돼 통일의 길이 멀지 않음을 느끼게 했다.3박4일간의 상봉장면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지켜본 취재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감격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이번 상봉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15일 첫날 단체상봉이었습니다.북측 방문단의 상봉장소인 코엑스 3층 컨벤션홀은 상봉단 100명과 그 가족 500명 등 모두 600명이 쏟아내는 혈육의 정으로 온 국민의 눈물샘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남측 방문단의 고려호텔 단체상봉은 보다 리얼했습니다.일부 이산가족은 실신하기도 했죠.워커힐호텔프레스센터에서 멀티큐브로 이를 지켜본 취재기자들도 연신 눈가를훔쳤습니다. ■이 와중에 간간히 웃음거리도 있었습니다.단체상봉 순간 한 기자가북측에서 온 할머니에게 “어떻게 만났습니까?”라고 묻자 “어떻게만나긴 어떻게 만나. 여기서 만났지”라고 대답,그 기자를 무색케 했죠.순간프레스센터는 웃음바다가 됐습니다.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라고나 할까요. ■얘깃거리는 많습니다.또 다른 기자가 북측 이산가족에게 “만나니기분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저리 좀 비켜.우리끼리 얘기 좀 하게”라며 귀찮다는 표정이었습니다.인터뷰에 응하는 것보다 가족상봉이 더 중요했던 것이죠. ■평양을 방문한 남측 상봉단은 북측 가족들이 정치적인 발언을 적잖게 해 당황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북측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는모습이 역력했습니다.이몽섭씨(75·경기 안산시 초지동)의 딸 도순씨(55)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준비해주신 선물입니다”며 아버지에게선물을 건넸고 최성록씨(79·대구 서구 비산동)의 딸 영자씨(53)는“50년만에 만난 것은 모두 장군님의 덕분입니다.통일되는 그날을 위해서 열심히 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남과 북 두 부인,기구한 운명’의 주인공 이선행씨(81·서울 중랑구 망우동)는 북한 TV가 취재를 하자 아들 형제에게 “아버지없이자식을 훌륭하게 키워준 것은 주석님이다.주석님 만세를 부르고 싶은심정이다. 나는 나대로 남에서 조국에 충성하고 너는 북에서 조국에충성해라”고 당부했습니다.서울에 온 북측 방문단도 예외없이 기자들이 취재를 하면 가만히 있다가도 느닷없이 정치적 발언을 했습니다. ■서울에 온 평양 상봉단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하경씨는 개별상봉때 세 아들이 큰 절을 하려 하자 손을 내저으며 “먼저 장군님께 절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기자들이 앞에 있으니 50년만에소원을 풀겠다”며 ‘김일성 주석님 만세’를 세번이나 외쳐 취재기자들이 쓴웃음을 지었죠. ■그러나 이런 것들은 남과 북의 상이한 체제에서 오는 문화 차이로자주 만나면서 극복되지 않겠느냐는 게 중론입니다. ■서울과 평양 상봉단의 현격한 ‘감성지수’도 화제였습니다.북측방문단 100명은 대부분 북한사회에서 ‘힘깨나 쓰는’ 계층인 반면남측 방문단은 자율추첨에 의한 탓에 그야말로 각계각층에서 골고루구성됐죠.여하튼 북측 방문단의 감정 절제력은 대단했습니다. ■지난 16일에는 박기륜(朴基崙)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이 오전 브리핑에서 “서울 공연을 위해 방한하는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서해상을우회하는 항로가 아닌 휴전선 상공을 통과하는 직항로를 이용한다”는 반가운 오보(?)를 발표한 일도 있었습니다.자세히 알아보니 이 해프닝은 브리핑 직전 박 총장 등 우리측 관계자들이 북측 수행단 창구를 통해 들어온 소식 중 “육로영공(陸路領空)을 통하는 직항로”라는 문구를 잘못 해석하는 바람에 벌어졌다는군요.브리핑 후 북측이“육로영공을 통한다는 것은 휴전선 통과가 아니라 평양과 서울을 ‘〈’자 혹은 ‘ㄷ’자로 잇는 것”이라는 연락을 해와 부랴부랴 브리핑 내용을 취소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북측 상봉단 가족들의 뒷얘기를 알아보겠습니다.이들이머문 서울 올림픽파크텔 객실은 사흘 밤 내내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잠들지 못한 사람들의 심정은 매일 달랐어요.상봉 하루 전인 14일 밤이 특히 길었습니다.“혹시 못 오는 것은 아닐까,얼굴을알아 볼 수 있을까,무슨 말을 먼저 할까…”고민은 꼬리를 물고 계속됐지요.15일 밤은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였습니다.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호텔측에 우황청심환을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밤새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취재가 점점 힘들어 지더군요.“내 마음 잘 알지 않느냐,이제 그만하자”는 등수심이 가득한 노인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렵더군요. ■가족들의 식사량도 분위기에 따라 달랐습니다.만나기 전에는 떨려서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상봉 후에는 “아들 만나느라 힘을 너무 뺐어,역시 시장이 반찬이야”라며 밥그릇을 싹싹 비우더라구요.이별을앞두고서는 제대로 수저를 드는 사람이 없었어요. ■이별을 아쉬워 한 가족들을 아이디어도 많이 짜냈습니다.숫제 휴대전화를 북측 가족에게 건네주기도 했습니다.때문에 공항으로 가면서계속 통화를 할 수 있었죠. ■북측 방문단에 ‘스타’가 많은 점은 향후 남북 교류에 긍정적인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원로 국어학자 류렬씨,계관시인오영재씨, 남북 합작영화를 찍고 싶다는 리래성씨 등은 진한 인상을남긴 만큼 앞으로 남북간 문화교류의 선봉장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외신기자들은 상봉의 드라마를 ‘눈물 전쟁’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냉전이라는 ‘이념 전쟁’의 종말에 따라 그동안 정치적으로 희생되고 붕괴된 가족사,민족사가 복원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필연적 ‘충격’이라는 의미겠지요. ■취재 과정에서 느낀 아쉬움은 남북 상봉단이 최소한의 통제선 안에서만 3박4일의 체류일정을 보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앞으로는 상봉과 상호방문의 취지를 살린다는 측면에서 ‘통제는 최소,자율은 최대’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많은 이산가족들은 “집에 데려와 따뜻한 밥 한그릇 먹이는 것이 소원”이라고 되풀이했습니다.또 북측 방문단은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에 술 한잔 올리지 못하는 불효자를 용서해 달라”면서 슬피 울기도 했습니다.50년만에 만난 부모형제가 한 이불 속에서자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못 나눈다는 것은 정말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대표적인 사례가 18일 새벽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극적으로 이뤄진 량한상씨와 노모 김애란씨의 상봉이죠. ■이산가족 교환방문사업을 계속하려면 비용절감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는 지적입니다.서해 직항로보다는 판문점을 통한 육로를 이용하고 ‘일정은 짧게,만남은 길게’ 방식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1,500여명의 취재진이 북적댄 워커힐호텔은 나름대로 준비를 잘했다는 평가입니다.미비점이 발견되면 지체없이 보완하는 기민성도 갖췄습니다.반면 상봉단 가족들이 머문 올림픽파크텔은 준비상태가 수준 이하여서 상봉가족과 취재진들이 대단한 곤욕을 치렀습니다. ◆방담기자 명단. ◇한종태차장,진경호 오일만 주현진기자(정치팀)◇조현석(경제팀)◇김재천(디지털팀)◇오승호차장,전영우 이창구 안동환 이송하 조태성 윤창수기자(사회팀)◇김용수 심재억(전국팀)◇황수정 이순녀(문화팀)◇장택동(특집기획팀)◇류길상(체육팀)◇박록삼기자(행정뉴스팀)
  • 남북이산상봉/ 새 선례와 전망

    ‘8·15 방문단 교환’은 이산가족 상봉의 물꼬와 교류협력 및 인도적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푼 ‘시건’이었다.남북간에 9·10월 후속방문단의 교환과 면회소 설치에 관한 구체적 논의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이산가족 상봉의 제도화·정례화의 물꼬를 연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새 선례 남긴 상봉] 소수 인원의 제한된 장소에서의 만남이었지만이번 상봉은 남북이 안고 있던 각종 금기의 틀을 허물면서 새로운 선례를 남기는 데 기여했다. 어머니의 생존을 알면서도 상봉장소 제한 때문에 만나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북측 상봉단 량한상씨(69)의 ‘병원상봉’은 큰 변화의 단초를 예감케 한다.량씨는 당초 남북이 합의한 장소가 아닌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어머니를 상봉할 수 있었다. 남북의 두 당국은 과거처럼 원칙을 고수하며 상봉을 막지는 않았다. 파격과 예외도 인정됐다.지척에 있는 가족들의 집이나 부모친지 묘소에 대한 성묘,고향방문 등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병원 상봉’은 큰변화를 향한 작은 발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지난 12일 언론사사장단접견에서 “내년에는 고향도 방문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이산가족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활발해질 후속조치] 비전향장기수의 북한송환도 남북화해 분위기 조성과 함께 인도적 현안의 하나를 해결했다는 의의를 갖는다.면회소설치도 9월초 열릴 적십자회담에서 구체화된다.정부는 매달 한번이상씩100명이상의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면회소 설치를 제안할 방침이다. 또 면회소를 통해 상봉자를 비롯해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서신과 물품을 전달하고 생사확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가겠다는 생각이다. 남북한에서 서로 ‘기피 대상’이던 월북자와 월남자들이 떳떳하게자신이 떠났던 고향을 찾았고 서울과 평양은 이들을 환영으로 끌어안았다. 이번 상봉은 남북에 흩어져 살던 이산가족 700여명의 만남이었지만7,000만 온 겨레에게 남북화해와 협력의 진전 필요성을 알렸다. 일회성아닌 지속적인 조치로서의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현안들의 해결이 더욱 당위성과 힘을 얻게 됐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이산상봉/ 남북민항기 서해상 조우 인사

    18일 오전 10시49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영공.“JS814,해브어 굿 데이(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대한항공 특별기(KE815)김홍순(金鴻順·51) 기장은 북측 고려항공 특별기(IL-62)에 제1신을날렸다. “로저,댕큐. 해브 어 굿 데이(알았습니다.좋은 하루 되십시오)”. 북측 IL-62 특별기 박승남(46) 기장은 대한항공기 김 기장의 인사에이렇게 화답했다.남북 민항기끼리 같은 공역에서 사상 처음으로 교차비행하며 교신을 주고 받은 것이다. 이날 평양으로 가는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을 태운 KE815편과 서울로 오는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을 태운 JS814편은 북위 38도,동경 124도20분 지점의 NLL 영공을 10시49분 통과했다.북측 민항기가 서해 영공을 ‘ㄷ’자로 돌아 비행하는 직항로를 이용하기는 지난 15일 이후 두번째다.또 평양 항로교통관제소(ACC)와 대구 ACC가 동일 시간대에 항속,고도,예정 항로 등 정보를 교환하고 관제를 맡은 것도 두번째다. KE815와 JS814는 NLL을 통과하면서 각각 “컨택,평양 ACC”,“컨텍,대구 ACC”를 타전하며 비행관제를 이양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남북이산상봉/ 北큰아들 떠나보낸 아버지

    “오늘따라 이 못난 아비에게 회초리를 맞고 울먹이던 현석이 얼굴이 자꾸 떠올라…” 18일 오전 50년 만에 만난 큰아들 현석(顯碩·65)씨를 북으로 떠나보낸 김남식(金南植·85·서울 성북구 종암동)씨는 집으로 돌아와 허깨비같이 안방에 쓰러졌다. 감긴 눈에서는 조금씩 눈물이 흘러나왔다.간간이 긴 한숨도 이어졌다. “이렇게 허탈할 줄은 몰랐어…아무래도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현석이와 나누었던 말들이 유언 같기도 하고…” 김씨는 지난 17일 오후 현석씨와 마지막 개별상봉을 하고 숙소로 돌아온 뒤 저녁부터 밥을 먹지 못했다. 둘째아들 현기씨(顯機·61)는 “아버지가 ‘나흘 동안 아들 밥 한끼 제대로 지어주지 못했다’는 말을 되뇌셨다”면서 “이러다 몸져 누우시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이 떠나는 18일 새벽까지 잠이 들지 못했다.새벽 안개가 옅게 낀 올림픽공원을 바라보며 이제 헤어질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아침 7시.울음바다가 된 워커힐호텔 광장에 서 있는 김씨 앞으로 현석씨가 뚜벅뚜벅 걸어왔다.아무 말 없이 아들을 안은 아버지는 아들의 체온을 오래도록 간직하려는 듯 좀처럼 깍지 낀 손을 풀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출출할까봐 사왔다.체하지 않게 꼭꼭 씹어 먹거라” 김씨는 빵 하나를 현석씨의 호주머니에 넣었다.아버지를 뒤로 한 현석씨의 호주머니가 불룩했다. “이제 다 끝났구나,빨리 집으로 가자”며 두 아들을 재촉했다. 집에 돌아온 김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20년 동안 살아온 이 집이 왠지 낯설어,현석이도 데려올걸 그랬어”라며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현기씨는 “아버지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걱정했다. 정신과 전문의 이상일씨(41)는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면 괴리감으로 정신적 공백 상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서는 유사 환경에 있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거나,더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활동을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남북이산상봉/ 외국언론들 연일 ‘特報’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영국 BBC 등 세계 언론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감동적인 모습을 기사와 사설을 통해 연일 속보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언제라도 접근 가능한 인터넷 홈페이지에 쉴새없이 업데이트 시킨 ‘따끈 따끈한’기사들로 전세계 네티즌들에게 한반도의 가슴벅찬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15일 상봉에 앞서 실시간 리얼타임으로 인터넷 생중계한다는 안내코너까지 개설하는 등의 관심을 보여온 영국의 BBC는 사진 갤러리 코너까지 개설했다.17일엔 ‘이산상봉의 기쁨과 슬픔’이란 기사에서 상봉의 기쁨뒤에 숨겨진 애틋한 사연과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는 분단현실을 지적했다. 미국의 CNN은 ‘한국특파원이 보여주는 감동의 장면’을 동영상으로제공하고 있다. 또 17일엔 속보기사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Blood is thicker than water)는 한국적 표현을 소제목으로 뽑아 한반도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 방송은 특히 수백명 상봉 가족들의 가슴에는 서로가 서로를 돌보지 못했던 ‘죄의식’으로 가득하다고 전했다. 아사히와 요미우리 등 일본 신문들도 상봉 사흘째 모습을 전했다.특히 일본 신문들은 북한의 류미영 단장이 자녀들을 상봉한 사실에 특히 주목,눈길을 끌었다.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은 16일 “눈물의 상봉으로 한국에서 외국 투자가들의 모험은 감소되기 시작했다.더 많은가족 재회는 외국 투자가들의 감정을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경제적 시각에서 접근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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