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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이 사람 모르시나요… 아빠 찾던 엄마의 절규

    누가 이 사람 모르시나요… 아빠 찾던 엄마의 절규

    ‘오빠 오승한을 찾습니다.’ ‘이찬(45) 50년경 10월 서울 신당동 중앙시장에서 헤어짐.’ 1983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이산가족상봉’이 영화 ‘국제시장’에 이어 뮤지컬로도 제작됐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창작뮤지컬 ‘서울 1983’이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 흥행을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로 자리매김할지 주목된다. ‘서울 1983’은 6·25 전쟁으로 분단의 고통과 이산의 아픔을 안고 한 시대를 억척스럽게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희곡작가 김태수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원작이다. 1983년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모티브로 했다. 연출을 맡은 김덕남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은 “음악보다 연극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으로, 서서히 잊혀져가는 분단의 고통을 일깨워주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산의 고통과 아픔을 오롯이 전할 남녀 주연은 배우 나문희와 박인환이 맡았다. 나문희는 남편과 이별 후 홀로 네 명의 자식을 키우는 강인한 어머니 ‘돌산댁’ 역을, 박인환은 전쟁포로로 북한으로 끌려가며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양백천 역을 열연한다. 돌산댁과 양백천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자 퇴각하던 북한군이 양민들을 포로로 잡아갈 때 헤어지게 된다. 두 사람은 그동안 영화 ‘수상한 그녀’ ‘조용한 가족’, 드라마 ‘몽실언니’ ‘아들 녀석들’ 등 여러 작품에서 사위와 장모, 어머니와 아들, 부부로 호흡을 맞춰왔지만 무대에 함께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둘은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건 다하려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1983’은 다큐멘터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 드라마 등에서 보여줬던 연기의 감정보다 더 살아 있는 걸 표현하려 해요. 마지막 장면에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 나오면 감정을 억지로 쥐어짜지 않아도 슬픈 감정이 가슴을 꽉 채워요. 관객들도 저와 같은 느낌을 받을 거예요. 뮤지컬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지 미처 몰랐어요.”(나문희) “수십 년 연기 생활을 했지만 작품마다 새롭습니다. 이번에도 설레고 공연이 기다려져요. 무엇보다 이번엔 작품이 너무 좋아요. 무대는 저희들이 책임집니다. 썩은 물건을 내놓고 팔 순 없으니까요.”(박인환) 싱어송라이터에서 뮤지컬 작곡가로 변신한 송시현이 작곡을 담당했다. 그는 “기존 곡과 창작곡이 섞여 있다”며 “가수 시절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할 때 ‘가야 할 나라’ ‘그리운 나라’ ‘평화의 나라’ 등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를 시리즈로 만들었는데, 한동안 앨범 활동을 못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을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충분히 해소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노래로 재탄생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상록수’ ‘꽃마차’ ‘안개’ ‘라밤바’ ‘빗물’ ‘아침이슬’ 등 1950~80년대를 대표하는 25곡이 옛 추억을 되살리며 관객들의 심금을 적신다. 김 단장은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이번 작품도 뮤지컬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관심 없는 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확신도 든다”고 말했다. 오는 3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만~11만원. (02)399-100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열린세상] 다가올 통일 준비, 북한 산림녹화가 먼저/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 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다가올 통일 준비, 북한 산림녹화가 먼저/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 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식량난 해소를 위해서 다락밭(계단밭)을 만들었고, 땔감용으로 나무를 모조리 베어내 산이 헐벗어졌으며, 심지어 중국 접경 지역의 울창했던 산림도 식량과 교환하기 위해 마구 베어내 없어졌습니다. 학교에서는 나무를 심고 길러야 가뭄과 홍수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당장 급한 현실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북한 양강도 혜산 출신 새터민 방송인 김은아씨의 증언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보아온 고향의 산림이 하루아침에 황폐해진 이유를 생생하게 설명해주었다. 사실 혜산시는 말 그대로 ‘산의 혜택을 받은 곳’인데 이제는 그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 되었다. 북한 산림의 황폐화는 그녀의 증언뿐 아니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98년부터 위성영상을 통하여 모니터링한 결과로도 증명되었다. 2008년 기준 북한의 전체 산림면적은 899만㏊로, 그중 황폐 산지가 전체 산림의 32%인 284만㏊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지난 5년 동안 평양, 개성, 혜산, 봉산, 고성 등 5개 지역 산림을 정밀 관찰한 결과 개간 산지가 무입목지(無立木地·나무가 서 있지 않은 땅)나 나지(地·나무나 풀이 전혀 없는 땅)로 전환되는 등 황폐의 정도가 심각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전 세계 산림 황폐화 순위 3위를 차지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앞으로 복구사업을 실행할 때 일반 조림이 아닌 사방(砂防) 복구가 필요한 면적이 확대되는 것임을 의미하는 동시에, 복구 비용 또한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북한의 산림녹화사업을 통일 전에 해야 하는 이유이다. 얼마 전 북한 내각 부총리 최영건이 산림녹화 관련 지시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며 불만을 나타내다 총살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앞서 지난 1월에도 북한 산림녹화를 담당하고 있는 임업성 부상이 녹화사업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실과 동떨어진 지시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평양 중앙양묘장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산림이 황폐화된 것을 지적하고, 군인들에게 나무를 심어 조기에 복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는 북한도 과거 잘못된 다락밭 조성정책을 인정하면서 10년 안에 벌거숭이산을 모조리 수림화(녹화의 북한식 표현)한다는 것으로, 황폐된 산지 168만㏊에 65억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연평균 6억 5000만 그루에 해당하는 것으로, 올해 우리나라가 심은 5000만 그루의 13배다. 현재 북한은 현실과 동떨어진 거창한 녹화 계획만 내놓고 해마다 봄, 가을철만 되면 군인과 인민들을 동원해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어쩌면 구호로만, 숫자로만 심는 것이지 실제로 산에 묘목이 심어지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북한 산림 황폐화를 우리 민족이 그저 보고만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사단법인 한반도녹색평화운동(KGPM)은 함경북도 두만강 인근 지역에서 ‘광복 70주년, 분단 70년, 통일화합 나무심기 발대식’을 가졌고 이에 필요한 묘목과 씨앗을 보낸다고 한다. 또한 재미교포 기독교인들이 주축이 된 원그린코리아운동(OGKM)이라는 단체도 북한의 산림복구를 위해 그동안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앞으로도 더 심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민간단체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산림청에서도 북한 측의 요청을 받아 우리 전문가들이 금강산 병해충 피해 현장을 방문하여 소나무 숲 피해를 조사하였고, 지난 9월 중순 방제 약제와 기자재 지원과 함께 우리 전문가들의 기술 지원으로 시범 방제작업을 하였다. 아울러 지난 10월 초 남북강원도협회 관계자들도 북한을 방문하여 병해충 방제용 분무기, 방제복, 마스크 등의 물품을 전달하고 공동 시범사업도 하였다. 이 가을, 모처럼 찾아온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남북 교류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아시아녹화기구(Green Asia Organization) 등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조림과 혼농임업(混農林業·농업과 임업을 겸하는 형태) 시범사업뿐만 아니라 올가을 조림부터 북한 산림복구 지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를 기대해 본다.
  • ‘아버지, 울지마세요’

    ‘아버지, 울지마세요’

    22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작별상봉에서 남측 딸 이정숙씨가 북측 아버지 리흥종씨와 작별을 아쉬워하며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한 컷 포토영상] 이 손, 언제 다시 잡을 수 있을까…

    [한 컷 포토영상] 이 손, 언제 다시 잡을 수 있을까…

    제20차 이산가족 1회차 단체상봉 마지막 날인 22일 오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작별 상봉을 마친 후 버스에 오른 북측 가족과 차창 밖 남측 가족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눈물의 배웅을 했습니다. 손끝을 맞잡은 그들의 손에서 이별의 아픔이 절절하게 전해집니다. 사진=금강산 사진공동취재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포토] ‘우리 꼭 다시 만나요’

    [포토] ‘우리 꼭 다시 만나요’

    22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작별상봉을 마친후 북측 가족들이 버스에 탑승한 가운데 남측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손을 잡으며 눈물로 배웅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생뚱 맞은 김정일·김정은 자랑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는 남북의 가족이 모인 가운데 ‘분단의 틈’이 드러나며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경우도 포착됐다. 특히 상봉의 감격에 젖은 남측 가족 면전에서 북측 가족들이 ‘노동당’과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언급, 남측 가족들을 당황케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1일 개별상봉에서 북측 원규상(82)씨는 여동생 원화자(74)씨 등 남측 가족들에게 “김정은 동지도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남한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씨의 한 남측 가족은 “당 간부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높은 편이었고 미국을 빨리 물리쳐야 된다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지난 20일 단체상봉에서 아들 채희양(66)씨를 만난 북측 아버지 채훈식(88)씨는 60여년 만에 만난 아들에게 ‘김일성 표창장’을 자랑하듯 꺼내 보였다. 북측 동생 홍대균(83)씨와 남측 누나 홍복자(89)씨가 상봉한 테이블에서는 남측 동반가족이 ‘노동대회 참가장’을 슬쩍 덮자 북측 가족이 이를 다시 내보이는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측 가족들의 이 같은 행동은 자신이 ‘북한에서 잘 살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는 북한의 사전 ‘사상교육’ 효과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산 상봉에서 북측 가족이 ‘자본주의’에 물들 수 있다는 이유로 사전 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육에서 북한은 대상자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드레스 코드’를 정해 옷까지 맞춰 준다고 한다. 실제 이번 행사에 참석한 북측 가족들은 남자는 검정 중절모와 회색 정장, 카키색 코트를, 여자는 무채색 한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상봉 행사 이후에도 사상 교육은 이어진다고 한다. 서울의 한 탈북자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북측 가족들은 상봉 후에 ‘남한 물’을 빼기 위해 사상교육을 다시 받고 상봉 중 있었던 일도 보고해야 한다”며 “표창장을 자랑하고 당을 언급하는 건 자기 사상이 투철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남측 시사에 밝은 北 기자들 질문공세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는 북한 기자 10여명도 취재차 참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북측 기자들은 우리 취재진 등을 대상으로 남한의 주요 현안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다. 북한 매체들은 21일 상봉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우리 측 상봉자들은 남녘의 가족, 친척들과 집체 상봉을 했다”며 “우리 측 상봉자들은 자신과 가족들이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에서 행복하고 보람찬 삶을 누리고 있는 데 대해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도 사실 전달 위주로 짧게 상봉 소식을 보도했다. 이런 보도 양상과 달리 현장에 나온 북측 기자들의 관심사는 다양했다. 지난 20일 만찬에서 우리 취재진을 만난 북측 기자는 “내년에 남측에 총선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될 것 같으냐”며 “여당이랑 야당 중 어디가 더 우세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우리 측 기자가 “우리 상황을 잘 아는 거 아니냐”며 반문하자 북측 기자는 “관심은 많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고 답했다. 또 “(남측에서는) 인터넷으로 아무나 기사를 쓸 수 있느냐”며 남한 언론 환경에도 관심을 보였다. 단체상봉 중 북한 ‘민주조선’ 소속 기자는 “최근 국정화 얘기가 나오던데 그게 뭐냐. 역사학자들은 왜 반대하느냐”며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남측 소식을 담당한다는 한 북측 기자는 남측 기자에게 “최근에 본 남측발(發) 뉴스 중 병사들이 전역 연기를 신청했다는 뉴스가 가장 놀라웠다”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남북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8월 남측 군인들이 잇따라 전역을 연기하겠다고 신청한 뉴스를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금강산 공동취재단·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점심 행사 준비하는 북측 접대원

    점심 행사 준비하는 북측 접대원

    한복 차림의 북측 접대원이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 날인 21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공동중식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금강산 연합뉴스
  • [이산가족 상봉 첫날] 부모·부부 상봉 5가족뿐… 작년보다 절반 이상 줄어

    20일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1년 8개월 전인 2014년 2월 19차 상봉 행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측 참가자들이 고령화되면서 부부나 직계 자녀보다는 형제나 친척들의 상봉 비중이 높아졌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북측에서 찾는 가족은 형제자매가 80명(82.5%)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3촌 이상(12명, 12.4%), 부자(3명, 3.1%), 부부(2명, 2%) 순이다. 특히 아들딸이 부모를 만나는 가족과 부부 상봉에 부모를 모시고 함께 나가는 경우를 포함해 직계는 총 5가족뿐이다. 대신 형제자매 상봉은 80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 형제자매가 죽어 조카들이 나오거나, 다른 가족 없이 5촌 조카, 7·8촌 등 친척만 나오는 사례도 있다. 2014년 1차 때와 비교하면 부모·자식 간이나 부부 상봉은 12명에서 5명으로 반 이상 줄었고 형제나 친척 간 상봉 비율은 비슷하다. 당시 남측 상봉 대상자 82명 가운데 90세 이상은 25명, 80대 41명, 70대 9명, 69세 이하는 7명이었다. 앞서 2010년 18차 때에는 남측 방문단 100명 가운데 90세 이상이 21명, 80대가 52명, 70대가 27명이었다. 다만 이때는 부모나 자식 간 또는 부부 상봉은 22명으로 현재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는 이산가족들이 고령화되면서 사망하거나 거동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남북관계 위기 속에서도 이산가족 상봉이 열리는 것이 19차 때와 같은 점이다. 2014년 당시는 한·미 합동 ‘키리졸브’ 군사훈련이 예정돼 있던 시기였음에도 이산가족 상봉이 열렸다. 이번에도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2015 북한에 관한 한·미 공동성명’을 냈지만 이날 이산상봉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이런 태도는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사안을 정치적·군사적 이유로 중단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광범히 제기되는 인권문제와 직결돼 자신들의 입지가 축소될 것을 우려한 조치란 평가도 나온다. 한편 2014년 때와 다른 면은 당시 추운 겨울이어서 계절 때문에 고령자들에 대한 건강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는 날씨가 사계절 중에서도 가장 선선한 가을인 점에서 이산가족 상봉 가족들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그때보다 줄었다. 또 지난번 1차 상봉 행사에서는 남북자·국군포로 가족들이 만났지만 이번 1차 때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남북이산가족상봉 선물이 한가득’

    ‘남북이산가족상봉 선물이 한가득’

    21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개별상봉에 앞서 북측 호텔종사자들이 선물을 방으로 옮기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60년 만에 부른다… “오빠가 옳은가”

    60년 만에 부른다… “오빠가 옳은가”

    잘 다린 셔츠와 베레모, 한껏 멋을 내고 ‘7번 테이블’에 정좌한 김남규(96)씨는 교통사고로 귀가 어두워져 함께 온 남쪽 가족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종이에 손바닥만 하게 쓴 글씨만 알아볼 정도로 시력도 쇠약했다. 그러나 반세기가 훌쩍 지나 다시 만난 여동생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은 것 같았다. 주름진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오빠의 두 손을 잡은 북측 여동생 김남동(83)씨의 어깨를 김씨는 묵묵히 토닥거렸다. 그렇지만 김씨는 남동씨가 “오빠가 옳은가?(맞나?)”라고 울먹이는 소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세월의 틈은 김씨 남매의 극적인 재회에도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건 허락하지 않았다. 20일 금강산에서 시작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지난해 2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재개된 것이다. 하지만 이날 만난 가족들 입장에서는 60여년 만에 이뤄진 재회다. 이날 남북 96가족이 상봉한 이산가족면회소에는 “오빠”, “아버지”, “살았구나, 살았어”라며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아버지가 집을 떠난 뒤 태어난 남측 오장균(65)씨는 이날 처음 북에 사는 아버지 오인세(83)씨를 만나 오랜 한을 풀었다. 2살 때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남측 이정숙(여·68)씨도 북측에 있는 아버지 리흥종(88)씨와 재회했다. 눈물 젖은 대화라도 가능한 가족들은 다행스러웠다. 이미 초고령자가 많은 만큼 상봉장 여기저기서 휠체어를 탄 모습의 가족들이 적지 않았다. 이날 첫 상봉에는 남측 가족 389명이 북측 가족 141명을 만났다. 가족들은 각 2시간인 단체 상봉과 환영 만찬에서 만남의 기쁨을 누린 뒤 첫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둘째 날인 21일에는 개별 상봉, 공동 중식, 단체 상봉이 진행된다. 1회차 상봉행사는 22일까지 진행되며 이 기간 동안 가족들은 총 6차례, 12시간 동안 만난다. 24~26일 진행되는 2회차 상봉에서는 남측 가족 255명과 북측 가족 188명이 상봉한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이산가족 상봉 첫날] “매번 기대했다가 실망 나에겐 고문… 가슴 미어져 요즘엔 TV도 안 틀어”

    “뉴스만 봐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서 요즘은 TV도 안 틀어요.” 남과 북 이산가족이 만난 20일, 금강산으로 향하는 상봉단 행렬 뒤에는 명단에서 빠진 수많은 실향민이 있었다. 그들은 또 한번 눈물을 삼키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언니 둘을 북에 두고 월남한 조장금(83)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매번 기대했다가 다시 실망하는 일은 너무도 고문 같다”며 흐느꼈다. 조씨는 지난달 7일 대한적십자사를 찾아가 이번에도 상봉자 대상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며칠을 몸져누웠다. 2000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 이후 15년을 피 마르는 심정으로 살아 왔다는 조씨는 “올해가 내게 남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그 기대가 무너졌다. 아마 이번 생엔 다시 못 볼 것 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6·25전쟁 중에 언니와 두 남동생과 생이별한 조강황(85)씨도 “나는 왜 저 사람들(상봉단) 속에 낄 수 없는지 하늘이 야속했다”고 했다. 조씨는 “또 다음이 있겠거니 하고 기다려야지 별 수 있나”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제대로 먹고사는지가 제일 걱정이라는 조씨는 “형제들을 만나 삼계탕을 실컷 먹게 해 주는 게 소원”이라며 만남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에서 만난 실향민 이용수(80)씨는 “너무 늦기 전에 유일한 피붙이인 다섯 살 위 누나를 만나 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당시 수원 피란길에 만난 동향 사람에게서 북에 남은 누나 소식을 들었다는 이씨는 누나가 매일같이 동생 걱정에 운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찢어졌다고 했다. 누나와는 그 후로 소식이 끊겼다. 이씨는 그때만 해도 이별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네요. 몇 년 안에는 성사가 돼야 건강한 몸으로 만나러 갈 텐데 말이에요.” 지친 이씨가 메마른 한숨을 쏟아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맛있게 드시길’…남북이산가족상봉 점심 준비하는 북쪽 여성들

    ‘맛있게 드시길’…남북이산가족상봉 점심 준비하는 북쪽 여성들

    21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점심 준비하는 북쪽 여성들.사진공동취재단
  • ‘애타는 마음’…북측 가족들 금강산호텔 앞 집결

    ‘애타는 마음’…북측 가족들 금강산호텔 앞 집결

    21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개별상봉을 위해 북측 가족들이 금강산호텔앞에 집결해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국제시장’ 뮤지컬판... 가슴 적시는 ‘서울 1983’

    ‘국제시장’ 뮤지컬판... 가슴 적시는 ‘서울 1983’

     ‘오빠 오승한을 찾습니다.’ ‘이찬(45) 50년경 10월 서울 신당동 중앙시장에서 헤어짐.’  1983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이산가족상봉’이 영화 ‘국제시장’에 이어 뮤지컬로도 제작됐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창작뮤지컬 ‘서울 1983’이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 흥행을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컬로 자리매김할지 주목된다.  ‘서울 1983’은 6·25 전쟁으로 분단의 고통과 이산의 아픔을 안고 한 시대를 억척스럽게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희곡작가 김태수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원작이다. 1983년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모티브로 했다. 연출을 맡은 김덕남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은 “음악보다 연극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으로, 서서히 잊혀져가는 분단의 고통을 일깨워주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산의 고통과 아픔을 오롯이 전할 남녀 주연은 배우 나문희와 박인환이 맡았다. 나문희는 남편과 이별 후 홀로 네 명의 자식을 키우는 강인한 어머니 ‘돌산댁’ 역을, 박인환은 전쟁포로로 북한으로 끌려가며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양백천 역을 열연한다. 돌산댁과 양백천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국군이 서울을 탈환하자 퇴각하던 북한군이 양민들을 포로로 잡아갈 때 헤어지게 된다. 두 사람은 그동안 영화 ‘수상한 그녀’ ‘조용한 가족’, 드라마 ‘몽실언니’ ‘아들 녀석들’ 등 여러 작품에서 사위와 장모, 어머니와 아들, 부부로 호흡을 맞춰왔지만 무대에 함께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둘은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건 다하려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1983’은 다큐멘터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 드라마 등에서 보여줬던 연기의 감정보다 더 살아 있는 걸 표현하려 해요. 마지막 장면에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 나오면 감정을 억지로 쥐어짜지 않아도 슬픈 감정이 가슴을 꽉 채워요. 관객들도 저와 같은 느낌을 받을 거예요. 뮤지컬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지 미처 몰랐어요.”(나문희) “수십 년 연기 생활을 했지만 작품마다 새롭습니다. 이번에도 설레고 공연이 기다려져요. 무엇보다 이번엔 작품이 너무 좋아요. 무대는 저희들이 책임집니다. 썩은 물건을 내놓고 팔 순 없으니까요.”(박인환)  싱어송라이터에서 뮤지컬 작곡가로 변신한 송시현이 작곡을 담당했다. 그는 “기존 곡과 창작곡이 섞여 있다”며 “가수 시절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할 때 ‘가야 할 나라’ ‘그리운 나라’ ‘평화의 나라’ 등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를 시리즈로 만들었는데, 한동안 앨범 활동을 못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을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충분히 해소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노래로 재탄생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상록수’ ‘꽃마차’ ‘안개’ ‘라밤바’ ‘빗물’ ‘아침이슬’ 등 50~80년대를 대표하는 25곡이 옛 추억을 되살리며 관객들의 심금을 적신다. 김 단장은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이번 작품도 뮤지컬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관심 없는 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확신도 든다”고 말했다. 오는 3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만~11만원. (02)399-100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이산가족 상봉 첫날] “이게 꿈은 아니지”… 60년 만에 딸 본 아버지 입술을 떨었다

    [이산가족 상봉 첫날] “이게 꿈은 아니지”… 60년 만에 딸 본 아버지 입술을 떨었다

    “총각으로 돌아가신 줄 알고 20년 동안 제사를 지내드렸는데….” 2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쪽에 있는 시아주버니 김주성(85)씨를 만난 조정숙(79)씨는 이 같은 소회를 밝히며 울먹였다. 남다른 사연을 가진 이산가족 남측 상봉단 389명은 이날 오후 3시 30분(서울시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96가족 141명과 60여년 만에 재회했다. 헤어졌던 시간만큼 사연 많고 회한이 가득한 면회소는 가족들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반가움과 울음의 도가니가 됐다. 오후 2시 50분쯤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먼저 착석해 기다리는 남측 가족들 사이로 북측 리흥종(88)씨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서자 동생 흥옥(80)씨는 “오빠” 하며 매달렸다. 흥옥씨가 남측에 남겨졌던 흥종씨의 딸인 이정숙(68)씨를 오빠에게 “딸이야 딸”이라고 소개하자 흥종씨는 눈시울을 붉혔고 입술을 떨었다.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돼 이별한 오인세(83)씨의 부인 이순규(85)씨는 눈물도 나질 않는다며 야속한 인생을 탓했다. 이씨는 오씨를 본 뒤 “이젠 눈물도 안 나온다. 평생을 떨어져 살았으니 할 얘기는 많지만 어떻게 (3일 만에) 다 얘기하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이씨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손목시계를 꺼냈다.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 함께 보낼 시간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시계 뒷면에 본인과 남편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북측 대상자 명단에는 북한 최고 수학자였던 고 조주경(1931∼2002년)씨의 아내 림리규(85)씨가 포함됐다. 림씨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인 금강산호텔에서 남한에 사는 동생 임학규(80), 조카 임현근(77), 시동생 조주찬(83)씨 등을 만났다. 학규씨는 누나인 리규씨에게 “지금 누이가 몇이우?”라며 묻자 리규씨는 “나 여든여섯이야. 근데 등본엔 여든다섯이야”라고 답했다. 리규씨의 남편 조씨도 서울대 재학 중 인민군에 의해 북한으로 끌려갔다. 조씨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이자 북한에서 최고의 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인민과학자’ 칭호를 받은 유명 과학자다. 상상하기 어려운 오랜 시간의 이별 뒤 첫 상봉이 2시간 만에 끝나자 상봉장은 금세 서로를 부둥켜안은 가족들의 눈물로 가득 찼다. 짧지만 강한 첫 대면을 이어 간 남북 상봉단은 저녁 남측 주최 ‘환영 만찬’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한 차례 더 혈육의 정을 나눴다. 1차 상봉단장으로 방북한 김성주 대한적십자(한적) 총재는 환영사에서 “이산가족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편지도 교환하고 자유롭게 상시 상봉하는 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이렇게 하는 것만이 고령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교전 직전까지 치달은 직후 가까스로 열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여서 그런지 북측 기자들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북측 기자들은 또 남측 취재진이나 한적 관계자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며 친근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앞서 북측 출입사무소(CIQ) 수속 절차 과정에서 북측이 남측 기자단 노트북에 대한 전수 검사를 요구하면서 일정이 지연되는 해프닝이 빚어졌다. 애초 북측은 노트북을 걷어 검사한 뒤 오후에 숙소로 가져다주겠다고 통보했으나, 기자단의 거부로 현장에서 검사가 진행됐다. 금강산 공동취재단·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꽃보다 예쁜 그녀들’…금강산 호텔서 만찬 준비하는 북측 여성들

    ‘꽃보다 예쁜 그녀들’…금강산 호텔서 만찬 준비하는 북측 여성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날인 21일 오전 공동중식만찬이 열리는 금강산호텔 연회장에서 북측 여성들이 만찬을 준비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서울광장] 이산가족 해법 이젠 바뀌어야 한다/진경호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이산가족 해법 이젠 바뀌어야 한다/진경호 편집국 부국장

    금강산이 또 한번 눈물로 적셔졌다. 1953년 6·25 전쟁의 포성이 멈춘 날부터만 따져도 무려 62년 넘게 응어리진 한(限)들이 어제 또 한번 눈물로 뿌려졌다. 그 모진 세월을 깊은 주름으로 새겨 넣은 얼굴에서 네 살배기 코흘리개 남동생을 찾아낸 기쁨에 울었고, 오늘이 지나면 다신 이승에서 만나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또 울었다. 금강산으로 떠나기 전날 편숙자씨는 북의 사촌 언니를 만날 생각에 “반가워서 살점이 벌벌 떨린다”고 했다. 일흔여덟의 나이에 새삼 살 떨리는 설렘이라는 것이 남아 있을까 싶다면 그건 아마도 뼛속 깊이 사무친 이산의 정신적 궁핍과 허기를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금강산은 이렇게 26일 2차 상봉단이 만남을 마칠 때까지 세월을 이겨 낸 재회의 기쁨과 통절한 석별의 아쉬움으로 흥건하게 적셔질 것이다. 마땅히 들뜨고 설레고 기뻐야 할 이 아침, 그러나 그런 흥분 뒤로 우리가 시선을 던져야 할 곳이 있다. 고령자 위주의 컴퓨터 추첨으로 행운을 부여잡은 이들을 마냥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고만 있을 남은 이산가족들이다. 1985년 북한에 수해 물자를 제공해 주는 대가로 첫 상봉이 이뤄진 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본격화한 이산가족 상봉은 이번 20차 상봉까지 고작 2000명이 채 안 되는 가족들의 만남을 이뤄 내는 데 그쳤다. 상봉을 신청한 12만 9698명 가운데 1986명만 가족을 만났다. 0.15%다. 지금처럼 한 해에 200명 남짓 만나는 식이라면 생존해 있는 상봉 신청자 6만 6292명이 모두 가족들을 만나는 데 300년도 더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해에 4200여명, 하루 평균 12명의 상봉 신청자가 사망하고 있을 만큼 상봉 신청자 대부분이 70세를 훌쩍 넘긴 고령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15년 정도 뒤엔 그나마 상봉을 기다릴 신청자조차 남지 않을 상황이다. 지금대로라면 고작해야 3000명 정도만이 상봉의 기쁨을 맛볼 뿐 나머지 6만 3000여명은 저승에 가서나 헤어진 가족을 만나야 한다. 살 떨리는 설렘으로 재회의 기쁨을 맛본 이산가족들의 ‘달라진 일상’도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지난해 2월 19차 상봉을 통해 북측 가족을 만나고 돌아온 이산가족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극심한 허탈감과 무기력, 불면과 같은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대한적십자사 조사에 따르면 남측 이산가족 10명 가운데 3명이 ‘상봉 후 생활에 불편이 있다’고 답했다. ‘북한에 있는 가족 걱정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거나 ‘다시 보고 싶어 잠을 못 잔다’, ‘허탈감 때문에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들다’고 했다. 심지어 ‘생각과 이념이 달라 실망했다’거나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는 사람도 10명 중 1명꼴로 나왔다.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우리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다짐다짐하며 돌아섰지만 열에 아홉은 다신 이승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지 않았다. 이번 20차 상봉이 당장의 경제적 대가 없이 이뤄진 점만 두고 박수칠 일이 아니다. 북한 지도부의 ‘통 큰 결단’에 매여 있다는 점에서 예나 다를 바 없다. 통곡의 포옹을 지켜보며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엔 세월이 많이 흘렀고, 남은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다. 가뭄에 콩 나는 식의 이런 이산가족 상봉은 이제 틀을 바꿔야 한다. 이산상봉 행사에 매달리기보다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에 보다 힘을 쏟아야 한다. 정부가 2011년 이산가족 1만 605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가장 많은 응답자(40.4%)들이 북에 남은 가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부터 정부가 확인해 주기를 희망했다. 대면 상봉 확대는 그다음(35.9%)이었다.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서병덕(84)씨는 지난해 평화문제연구소 발간 ‘통일한국’과의 인터뷰에서 북의 사촌 누이와의 만남을 거절한 심경을 토로했다. 19차 상봉을 앞두고 “북의 사촌 누이와 만나겠느냐”는 연락을 받아들고는 왜 북에 남은 어머니와 동생들로부터는 연락이 없는지, 사촌 누이를 만나면 어머니는 영영 못 보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고 했다. 어머니의 생사를 알고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다. 북의 행정 체계도 이젠 이산가족의 생사를 즉각 확인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상황이다. 정부는 다음 상봉 행사를 논하는 것과 더불어 1000만 이산가족의 전면적 생사 확인을 최우선 과제로 다뤄야 한다. 통일의 기운은 거기서 싹튼다. jade@seoul.co.kr
  •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날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날

    21일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날. 사진공동취재단
  • 이산가족 상봉단, 속초 떠나 금강산行… “상봉 행사 어떻게 진행되나?”

    이산가족 상봉단, 속초 떠나 금강산行… “상봉 행사 어떻게 진행되나?”

    이산가족 상봉단, 속초 떠나 금강산行… “상봉 행사 어떻게 진행되나?” 이산가족 상봉단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여한 남측 상봉단이 꿈에만 그리던 가족과의 극적인 만남을 위해 강원도 속초에서 버스를 타고 금강산으로 출발했다. 96가족, 389명의 상봉단은 이날 오전 8시 37분쯤 강원도 속초를 떠나 금강산으로 향했다. 이들과 만나는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은 방문단과 동반 가족을 포함해 모두 141명이다. 상봉단은 강원 고성의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현대아산이 운영하는 버스로 갈아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오후 12시 40분쯤 금강산 온정각 서관에 도착한다. 온정각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오후 3시 30분부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60여년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난다. 이어 오후 7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리는 환영만찬에 참여해 함께 식사를 하며 혈육의 정을 나눈다. 이후 이산가족 상봉은 둘째날 오전과 오후, 저녁에 각각 한 차례씩 개별상봉과 공동 중식, 단체 상봉 행사를 통해 이뤄진다. 마지막날인 22일에는 오전 9시 30분부터 2시간 동안 작별상봉을 갖는다. 지금까지 남북 이산가족 행사에서는 작별상봉 시간이 1시간이었으나 이번에는 북측이 남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작별상봉 행사도 2시간 동안 진행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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