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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합창단 함께 내 노래 불렀으면”

    “남북정상이 만나고 클린턴대통령이 연내 방북한다는 소식까지 들리는 걸 보니 통일이 눈앞에 왔나 봅니다.빨리 통일이 돼 ‘우리의 소원’이 잊혀진 옛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동요 ‘우리의 소원’의 작곡가 안병원(74·캐나다 토론토 거주)씨가 한국복지재단 후원회장 자격으로한국복지재단 52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고국을 찾았다. ‘우리의 소원’은 안씨가 서울대 음대 1학생년이던 지난 47년 동요단체 ‘봉선화 동요회’와 함께 3·1절 기념 어린이노래극을 준비하면서 2주만에 작곡했다.노랫말은 방송극작가였던 아버지 안석주(50년 작고)씨가 지었는데 당시 가사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고전했다.그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통일’로 바뀌었다는 것. 26년전 캐나다로 이민,교민 음악회 및 가톨릭 성가대를 지휘하며 음악활동을 계속해온 안씨는 지난 91년 ‘통일교성곡’을 발표하기도했으며 “지금도 통일에 대비해 온 겨레가 함께 부를 수 있는 곡을준비하고 있다”며 노익장을 과시했다.안씨는 “이산가족 상봉차 북에 다녀온 교민들로부터 ‘북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노래를 부르며 등교한다’는 말을 전해듣고 깜짝 놀랐다”면서 “지난 89년 임수경씨가 방북한 이후 북에서도 널리 불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8년과 89년 두차례에 걸쳐 김일성주석으로부터 ‘북에 와 합창을 지휘해달라’는 초청을 받기도 했지만 두고온 가족들과 고향을 그리는 이산가족들을 뒤로 한 채 먼저 북녘 땅을 밟는 것이 미안해 거절하기도 했다. “통일이 되면 남북합창단이 노래하는 ‘우리의 소원’을 지휘해 보는 게 나의 마지막 소원”이라며 그때까지 살기 위해 건강을 지키려노력한다며 활짝 웃었다. 허윤주기자 rara@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시민·시민단체 반응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새천년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자국민들은 “민족의 큰 경사”라며 환호했다.시민들은 노벨평화상 수상이 남북 화해와 통일을 앞당기는 밑거름이 되길 바랐으며,경제가호전되도록 내치에도 더욱 신경써주길 주문했다. 13일 오후 6시 김 대통령의 수상 소식이 TV 속보로 방송되자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등 대합실과 광화문,남대문,강남 네거리 등서울시내 곳곳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TV나 뉴스속보판을 지켜보며 낭보를 반겼다. 한화그룹은 공식 발표가 나온 직후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축하하기 위해 15분여 동안 서울 남산 교육과학연구원(옛 어린이회관) 앞에서 1,000여발의 폭죽을 터뜨려 가을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최근 북한에 있는 오빠의 생존을 확인하고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는서옥희(徐玉熙·57·서울 도봉구 방학동)씨는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을때 만큼 감격적”이라면서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경제가 빨리 호전되도록 내치에도 더욱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 산격초등학교 교사 최석민(崔碩珉·33)씨는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은 물론,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한층 고취시키는 산교육이 됐다”면서 “학생들에게 21세기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더 큰 일꾼이 돼 주도록 당부하겠다”고 말했다. 연세대 식품공학과 3학년 오승현(吳承鉉·25)씨는 “우리나라의 대외 이미지도 평화로운 나라로 바뀌게 돼 경제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 “이번 수상이 다른 분야에서도 노벨상을 받게 되는 계기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시민단체들도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남북 화해와 통일을 향한 밑거름이 되길 바랐다. 경실련 통일협회 차승렬(車承烈) 부장은 “세계가 우리 민족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노력을 인정해 준 것이며 우리나라가 동북아와 세계평화에 일정 부분 책임지는 나라로 거듭 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권운동사랑방,앰네스티 한국본부 등 73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공대위 조영임(趙英壬·여) 간사는 “노벨평화상은 우리의인권이 개선됐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은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인권법 제정,국가보안법 개폐 등 인권문제 해결에 더욱 노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성명을 통해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냉전을 극복하고 평화와 화해,공존의 토대를 마련한 점 등이 감안된 것 같다”면서 “수상이 자연과 인류의 평화 및 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실향민촌인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 주민들은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이산가족 상봉기회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며 환영했다. 전국종합·이창구 이송하 안동환기자 window2@
  •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사선넘어 민족화해의 물꼬 트다

    온갖 풍상(風霜)과 비운(悲運),그리고 좌절과 고난….흔히들 다섯번에 걸친 죽을 고비와 6년간의 감옥살이,55차례의 연금,10년의 망명생활로 부른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견디어,‘인동초’로 불리는 섬마을 소년이 한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그것도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자랑스런 평화상을.민주주의와 인권,한반도의 평화를향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긴 여정을 세계가 노벨평화상이라는값진 명예로 보답한 것이다. ◆유년시절과 정치입문 제 79대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인 김 대통령은1925년 12월3일 한반도 서남단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과 어머니 장수금(張守錦) 사이의 네형제중둘째로 태어났다.그는 5년제였던 목포상업학교를 43년 졸업한 뒤 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해운회사에 취직한다.해방되던 45년 해운회사를 차려 불과 4∼5년만에 화물선 15척을 소유하는 상업수완을발휘,목포신문사까지 인수하는 촉망받는 청년실업가로 급성장하게 된다. 학창시절,웅변에 능했던 그는 정치에 뜻을 두고 54년 해운노조의 지지를 받아 3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나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어찌보면 불운으로 점철된 그의 정치역정은 이 때 이미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는 두번의 실패 끝에 61년 5월 강원 인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나,겨우 사흘만에 5·16 쿠데타로 국회가해산되는 바람에 당선 무효,정치규제라는 불운을 맞게된다.박정희(朴正熙)가 대통령에 당선된 63년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그는 고향인 목포로 지역구를 옮겨 6대 의원에 당선,정연한 논리와 합법적인 의정투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그의 정치인생에서 커다란 절정중 하나는 라이벌인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꺾고 40대에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일.끝내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했지만,그의 정치적 위상은 당선에버금갔다. ◆정치적 고난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집권층의 탄압을 받게되는 고난의 신호탄이기도 했다.대통령 후보로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통일정책과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등 한반도외교정책은 뒷날 탄압의 빌미를제공하고,그 때부터 덧칠해진 ‘정치조작’은 그를 평생 괴롭히는 낙인으로 붙어다니게 된다. 국회의원 지원유세 도중,트럭 암살기도로 다리에 고관절 장애를 입었고,유신철폐를 주장하다 73년 여름에는 도쿄 납치사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다.79년 이른바 ‘서울의 봄’에는 민주화를 이루려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군사법정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급기야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당시 수형생활 도중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와 가족들과 2년여동안 나눈 엽서는 뒷날 ‘김대중의 옥중서신’으로 출간돼 수감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국제여론과 미국 정가의 압력으로 특별감형된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망명길에 올라 미국내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개설했고,하버드대 국제문제 연구소 객원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대중참여 경제론’을 완성한다. 85년 2월8일 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길에 오른 그는 미 각계지도자 20여명과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연행돼 가택연금 상태에놓이게 되나 김영삼 전대통령과 민추협 공동의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주도한다.87년 6월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야권후보단일화실패로 대선에서 패했고,5년뒤에는 3당합당으로 여당후보로 출마한김영삼 전대통령에게 패배,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유학길에 오른다. ◆수평적 정권교체와 IMF극복 통일방안 연구를 하다 93년 귀국,아태재단을 설립한 그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하자 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정계에 전격 복귀한다.이후 IMF 파고에서 ‘준비된대통령’이란 구호로 당선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의 위업을달성,3전4기의 신화를 낳는다. 그러나 당선 다음날부터 ‘6·25 이후 최대 국난’인 IMF위기와 싸운다.외자유치를 위해 당선자 시절부터 외국인들을 만났고,취임 이후에도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200만명에 육박한 실업자들이 노숙자로 변했고,경제위기는 계속됐다.하지만 그의 헌신성은 사상 유례없는 ’금모으기 운동’을 이끌어냈고,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 등 4대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했다.또취임사에서 대북 3원칙을 천명하고,북한에 대한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게 폈다. 하지만 소수정권의 한계는 취임초부터 정치불안정이 계속됐고,원내 안정의석 확보의 필요성을 느껴 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원내 제1당이 되지못해 여전히 정치적 어려움에봉착해 있다. 하지만 그의 열성적인 노력은 IMF 구제금융에 들어간 지 1년반만에약속대로 외환위기를 극복했고,현재 외환보유고는 10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또 98년말 무역흑자가 사상 최고액인 400억달러를 돌파했고,국제신용기관의 한국의 신용등급은 상향조정되기에 이른다.실업자수도 80만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남북정상회담 대북 햇볕정책 또한 결실을 맺기 시작해 금강산 관광에 이어 지난 6월에는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공동선언’이라는 남북관계 대장전을 마련했고,남북이산가족 상봉,시드니 올림픽 공동 입장,비전향 장기수의 북송,경의선 복원공사 착수,남북 장관급 및 국방장관 회담으로 발전시켰다.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이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20세기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튼 것이다.그가 평생을 준비해 온 3단계 통일정책의 1단계 완성을 향해 숨가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조명록 특사 만찬답사 요지

    지난 6월의 정상 상봉 이후 북남은 불신을 하나둘 제거하고 있으며이산가족 상봉과 인적 및 물적 교류 확대 등으로 북남 화해와 협력의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조선반도의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조·미관계에서도 동일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올브라이트 장관-백남순 외무상 간의 지난번 방콕 회동과 나의 이번방미 과정을 통해 두 나라의 대화가 더 높은 단계에서 깊어지며 확대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김정일 동지는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과 영토 보전과 안전에 대한 미국의 담보만 확보되면 대립과 적의의 조·미관계를 평화와 친선의 관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중대 결단을 내릴 것이다. 나는 김정일 최고사령관의 특사로 이번에 미국을 방문하여 조·미관계 개선에 대한 김정일 최고사령관의 의사를 클린턴 대통령에게 직접전달했다.
  • “면회소 이산상봉 내년봄 실현”

    면회소를 통한 남북 이산가족상봉이 내년 상반기 중 실현될 전망이다.이르면 올 11월부터 임진강 유역에 대한 공동조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은 11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업무보고에서 “오는 12월 13일로 예정된 제3차 적십자회담에서 북측과 면회소설치에 최종 합의를 이뤄내 내년 상반기 중에는 면회소 상봉이 실현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또 남북공동 임진강 수해방지 계획과 관련,“이르면 금년11월부터 임진강 유역에 대한 공동조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북측과협의할 예정”이라며 “임진강유역 수해방지사업 협의를 위한 실무기구 구성을 북측에 제의하고,실무기구는 ‘임진강유역 남북공동관리단’으로 발전시켜 나갈 방침”이라고 보고했다. 박 장관은 이와 함께 “아웅산 테러와 KAL기 폭파사건 등에 대해 북한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답변했다. 정무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이헌재(李憲宰) 전 재경부장관과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이익치(李益治) 전현대증권 회장 등46명(일부 중복)을 국정감사 증인 및 참고인으로 채택했으나 일부 재벌그룹 총수 및 재벌2세들은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국회는 상임위별로 국감 세부일정을 마무리지은 뒤 12일 운영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열어 오는 19일부터 20일간 실시되는 국감의 대상기관 및 증인과 국감계획서 등을 최종 확정키로 했으며, 예년과 비슷한 300여개 기관이 국감대상기관으로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은 예결특위에서 “검찰이 야당인사 172명과 이종찬(李鍾贊) 전 의원 등 여당 인사 4명에 대해서도계좌추적을 마쳤다”고 주장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독일통일 10주년을 바라보며

    1990년 10월3일 나는 분단국가의 한 학자로서 조국의 현실을 생각하며 독일통일의 선포식을 경외와 부러움,그리고 자괴감 속에서 지켜보았다.공교롭게도 그날은 우리 민족의 하늘이 열린 날이었다.그후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흐른 지금 통일부 장관이 된 나에게 독일통일10주년은 변화된 현실의 무게 만큼이나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은 피안의 세계로만 남아있던 통일이라는 과제를 우리 앞에 성큼 끌어다 놓은 역사적 대사건이었다.과거냉전구조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이산가족이 만나고,장관급 회담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회담이 정례적으로 개최되고 경의선 철도와 도로의 연결공사가시작되고,관광단이 오가고… 바야흐로 평화와 화해·협력 시대로 들어서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실감하고 있다.그러나 이 시점에서 ‘통일’의 함의에 부쳐 정작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막연한 기대와 낙관이 아니라 치밀한 통찰력이다. 토인비는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과거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독일은 실업문제,엄청난 통일비용,사회심리적 갈등 등 통합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남겼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부정적인 면이 독일 국민이 달성한 위대한 업적을 덮을 수는 없다. 지금 독일국민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이전의 냉전적 대결에 의한 적대적 갈등이 아닌,한 민족으로서 하나의 공동체에서 보다 평등하고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분단의 상태가 지속될 경우 전쟁의 위험,사회경제적 불안,이산가족문제 등 그에 수반되는 정신적·물질적 희생과 비용은 통합에 따르는부담보다 훨씬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독일 국민이 민족의 진정한 통합을 향해 걸어온 발자취에서 얻을 수있는 가장 소중한 교훈은 남과 북이 상호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교류·협력을 통해 평화공존을 실현하고,차분히 통일의 기반을 다져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아울러 우리 민족에게 통일은환상이 아닌 현실이며 단기간에 달성될 수 없고 거기에는 많은 고통과 희생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민족사의 중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제 좀 더 크고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너무 서둘러서는 안되며 조급해 할 이유도없다.역사는 과거를 냉정히 성찰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준비하는자의 편에 항상 서게 되는 것이다. 사색의 계절,푸른 조국의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민족의 현실과 앞날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볼 것을 권해본다. 朴在圭 통일부장관
  • 한겨레가족 상봉추진본부 DNA로 이산가족 상봉

    ‘한겨레가족상봉추진본부(이사장 金祥根)’는 9일 오후 서울 중구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전정보(DNA) 분석을 통해 가족을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상봉을 실현하겠다”고 발표했다. 추진본부는 ▲123만명으로 추정되는 실향 이산가족 ▲5만건 이상의국내 미아 ▲14만건에 이르는 해외입양아 등 가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유전정보를 자료로 구축하겠다고 말했다.유전정보 자료화는서울대 법의학과(과장 李正彬)와 기초과학지원연구소(부장 朴永穆)가맡을 예정이며, 1인당 10만원 정도 드는 비용은 국민성금과 기업협찬을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윤창수기자 geo@
  • SBS 8시뉴스’ 평양서 생방송 진행

    SBS가 북한의 평양에서 정규 뉴스 일부를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SBS는 9일 ‘SBS 8시뉴스’에서 평양 김일성광장 주체탑 앞에 세워진 임시 세트를 무궁화 위성으로 연결,노동당 창건일(10)을 맞은 북측의 행사 준비상황과 북한을 방문한 남측 사회단체 대표 30여명의일정을 6분여 동안 방송했다.10일에는 노동당 창건일 기념행사와 평양-남포 고속도로 개통행사를 전달할 예정이다.이어 16∼18일에는 평양을 비롯해 신의주,사리원,개성 등지에 사는 북한 주민의 실생활,북측 경의선 복원구간 주민들의 삶과 도시 모습,북측의 이산가족찾기사업과 남한 정부가 지원한 식량의 분배·전달과정 등을 매일 10여분씩 보도할 계획이다. 전경하기자 lark3@
  • 中교포 32명 62년만에 고향방문 “꿈인지 생시인지…”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 꿈을 꾸기는 했지만 그래도 믿어지지않아요.고향 땅을 밟은 것도,혈육을 만난 것도 모두 꿈만 같습니다” 9일 오전 11시 충북도청 대회의실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 못지않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1938년 일제의 만주 개발정책에 따라 중국 길림성 도문시 정암촌(亭岩村)에 강제 이주된 32명의 중국 교포들이 62년 만에 고향을 찾아온것이다. 이날 7개팀 32명의 충북 옥천,청원,보은 출신 중국 교포 가운데 3개팀은 자매나 오누이 등 가족을 만났고 나머지는 숙부와 조카,사촌 등을 상봉했다. 이번 만남은 청주농악보존회(회장 林東喆·충북대 국문과 교수)와충북도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옥천 출생으로 이번에 5명의 가족과 함께 친누나와 사촌을 찾아온이용안(李龍安·73)씨는 “곱디곱던 누님을 다 늙어 만났지만 이제는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토로했다. 보은 출생의 박복식(朴福植·72),정순(貞順·70)씨 자매는 이주 당시 부모들이 언니 복순(福順·76)씨를 시집 보내고 가는 바람에 생이별한 사연을 거미줄 내듯 풀어놨다.언니 복순씨도 “어린 나이에 출가시켜 놓고 가족들이 나만 놔둔 채 떠나 혼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며 눈물을 삼켰다. 상봉식 도중 일제때의 대표적인 저항시인 윤동주의‘별 헤는 밤’이낭송되고 이어 상봉 가족들이‘고향의 봄’을 합창할 무렵 장내는 또한번 흐느낌이 이어졌다. 한편 이들은 이날 환영 행사를 시작으로 오는 15일까지 고향 방문과농악 협연,산업 시찰 등의 일정을 갖게 된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 [‘6.15’이후의 북한](8)비전향장기수 최하종씨

    지난 9월2일 평양은 들끓고 있었다.64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송환되는 이 날을 북측은 임시휴식일(공휴일)로 정했다.아침 10시 판문점을 통해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이 평양시 초입인 통일거리 환영행사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35분.고층아파트촌인 통일거리는 환영인파로 발디딜 틈도 없었다. 이날 북으로 돌아간 비전향 장기수중 한 사람인 최하종씨(73).그의개인사는 우리 현대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면에서 특기할 만하다. 최씨가 남으로 내려온 것은 62년 3월.‘5·16혁명’ 주체중 한 사람이었던 삼촌 최주종(작고·주택공사 사장 역임)장군을 만나러 내려왔다.최장군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 후배 출신. 최씨는 함경북도 성진(현 김책시)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 하얼빈공대와 김책공대를 나와 당시 국가계획위원회에 근무중이던,북의 청년 엘리트였다.남으로 내려온 이유를 그는 “삼촌과 통일문제를협의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삼촌에게 연락하자마자 그는 바로 체포됐다.삼촌은 “그것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다”면서 “재판정에서 ‘강제로 내려왔다’고 진술해라.그러면 내가 빼내 주겠다”고 했다.그러나 최씨는 끝내 “자진해서 내려왔다”고 진술했고 결국 무기형을 받았다. 최씨가 감옥문을 나선 것은 36년 만인 1998년.당시 그는 만70세였다.이북에서 태어나 생의 절반 이상을 이남에서 보내야 했던 그에게는남쪽과는 또 하나의 큰 인연이 있다.바로 북에 두고 온 부인이 서울출신이었던 것이다.부인의 이름은 김재숙(70).대한매일에서 출판한‘북한인명사전’에는 상업성 국장을 지내고 은퇴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씨는 일제하 신간회 서기장을 지낸 독립지사 김항규 선생(93년 건국포장 추서)의 딸이다.김선생은 해방후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면서 이승만 정부에 참여를 끝내 거부했다.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선생,허헌 변호사와는 일제하 결의형제를 한 사이였지만 김병로 선생이 단독정부에 참여한 후로 그와 결별했다.48년 김선생이 서울의 한달동네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을 때 김병로 대법원장이 경찰 사이드카를 앞세우고 달동네 상가를 찾아오는 바람에 동네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여사는 48년 월북해 허헌 집안에서 기거했고,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나와 상업성에 근무하던 55년,최씨와 결혼했다.그러나 부부는 결혼한 지 6년 만에 헤어져야 했다. 9월2일 오후 7시 평양시민들의 열광적인 환영 속에 환영행사를 마친 비전향 장기수들은 고려호텔 식당에서 가족들과 둘러앉았다.마침내마주앉은 최하종·김재숙 부부.최씨에게 감회를 물었다.“우선 기쁘고요,우리는 다른 이산가족들처럼 헤어지지는 않아도 되니 울 일은없겠구나 했는데 판문점에서 아내의 얼굴을 본 순간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들을 돌봐준 남쪽 사람들의 고마운 사연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신준영기자 현지르포 junyoung@
  • 김수철씨, 남북화해 노래 보급

    가수 겸 작곡가 김수철씨(43)가 남북화해를 노래한 ‘우리는 하나’(One Korea)를 만들어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www.kimsoochul.com)를통해 MP3 무료다운 서비스를 시작했다. 김씨가 직접 작사·작곡한 이 노래는 신승훈,김건모,김종서,이광조,김현정,박미경,이적,장혜진,이소라 등 9명의 후배가수들이 코러스를해주었다. 김씨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면서 젊은 세대가 남북은 하나라는 사실을 차츰 잊어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곡을 만들게 됐다”고말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현장] 시한부 탈북자 위한‘사랑의 노래’

    4일 낮 12시 종로1가 제일은행 앞에서는 탈북자들이 직접 부르는 북한의 인기가요 ‘휘파람’이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탈북 여배우 김혜영씨(25),김만철씨의 막내딸 김광숙씨(28),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공동각색에 참여한 정성산씨(31)등이 ‘길거리공연’ 을 시작한 것은 폐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안선국씨(51·서울 중랑구 신내동)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안씨는 97년 5월 노모를 등에 업은 채 6명의 가족과 함께 어선을 타고 월남해 화제를 모았다.98년 중랑구에 문을 연 ‘압록강 2천리 식당’은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은 뒤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1년 4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현재 부인이 중학교 급식반에서일하며 버는 돈과 교회에 받는 후원금은 1남 2녀의 뒷바라지에도 모자라 암치료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병원에 입원해야 하지만 가끔 약물주사나 맞고 있으며 그나마 돈이 없어 거르기 일쑤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가 쑥스러웠다는 정성산씨는 “첫날에30여만원 정도의 돈이 모였다”면서“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돕고 있는데 아직은 남한 사회가 따뜻한 것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인물이 훤했는데 지금은 살이 쫙 빠지고 머리카락도 하나 없어 형편이없디…” 방 2개짜리 18평 아파트에서 식구들과 복작대며 사는 노모 김몽선씨(73)는 중풍으로 쓰러져 걸음도 제대로 못 옮기면서도 아들 걱정이태산 같았다. 길거리 공연에 참석한 한 탈북자는 “남북 화해의 물결 속에 이산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연일 매스컴을 타고,남북교류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많은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며 따뜻한 관심을 부탁했다. 안씨를 위한 사랑의 노래공연은 오는 15일까지 날마다 낮 12시부터1시간 동안,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계속된다.후원금은 농협 37402-036513(예금주 안선국)윤창수 사회팀기자 geo@
  • [‘6.15’이후의 북한] (6)인민예술가 정창모씨

    9월 7일 평양 국제문화회관 2층에서는 ‘인민예술가 정창모 그림전람회’가 개막됐다.주최는 조선미술가협회. 정창모 선생(68)은 지난 8월 15일 이산가족 북측 방문단의 일원으로서울을 방문했던 인물이다.전주북중 재학중 19세의 나이로 월북한 한의용군 소년이 북의 화가중 최고봉인 ‘인민예술가’가 되어 돌아옴으로써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개막식은 오후 4시였다.전람회장 앞홀에는 200∼300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정 선생과 가족들,조선미술가협회 관계자들,북의 대표적 전문미술창작단인 만수대창작사 관계자들,학생들,그리고 일반 관람객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개막식에선 문화성 부상(차관)의 축사가 있었는데 “장군님께서 정창모 선생의 ‘비봉폭포의 가을’(김주석의 집무실이었던 금수산의사당에 전시되어 기념촬영 배경으로 사용되던 작품)을 높이 평가하셨다”는 언급에서도 북 화단에서 그의 위치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개막식이 끝나자 이날 행사의 주인공인 그와 문화성 부상을 선두로 전시회장에 입장했다.서울에서 온 취재기자임을 밝히고 그 옆에 따라붙었다. 문화성 부상은 전시된 그림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돌아보았다.황량한군사분계선 위를 철새 떼가 날아가는 그림(‘장벽을 넘는 철새들’)앞에서 그가 물었다. “이 그림은 무슨 생각하면서 그렸소?” “분단의 아픔을 안고… 빨리 통일이 돼야 되겠다는 염원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개성,금강산,임진강 등 군사분계선 일대를 그린 것이많았다.수없이 현지를 답사했다고 했다.설악산을 그린 ‘설악만봉’(1998년)도 있었다.부상은 “고향을 그리는 심경과 통일의 염원이 절절히 묻어나는 그림들이구만”하고 감탄했다.백두산,묘향산,압록강등 국내는 물론 일본,폴란드 등을 현지 답사해 그린 작품도 눈에 띄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은 생명’이라는 서예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낙관의 날짜는 2000년 8월 18일.서울에서 돌아오자마자 쓴 것이었다. “모처럼의 전시회에 그림만 있으면 관람객들이 심심할까봐 써봤다”는 말이었으나 독특하고 힘있는 필치였다.화풍이 조금 다른 그림도보였다.대학생 시절의 습작품이라고옆에 있던 해설강사가 설명했다. ‘분계선의 옛 집터’란 작품 앞에서 모두들 멈춰섰다.대단한 그림이었다.군사분계선이 가로질러 폐허가 된 집안풍경을 그린 것이었다. 돌담은 다 무너지고 우물가에 깨진 장독들이 구르고 있었다.우물은메워져 그 안에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자랐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복숭아나무의 열매가 땅에 떨어지고 또 떨어져 바닥에는 씨가 수북이쌓여 있었다.그가 설명했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깨진 독들이 나무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단말입니다. 바닥에 구르던 독들이 나무가지가 자라면서 거기에 걸려나무가지에 열린 거지요.너무 가슴아프고 비참해서 이 모습은 뺐습니다” 그가 기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남에 살건 북에 살건 이제는 이런가슴아픈 분단의 상처를 걷어내고 조국을 빨리 통일해야 한다는 뜻을담고자 했습니다. 신 선생,이 그림 좀 남쪽에 많이 소개해 주십시오” 전시된 그림을 돌아본 후 그와 회견할 기회를 얻었다. “이번 전람회는 어떻게 마련되었습니까?” “나는 전라북도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9세때 의용군으로 북에 들어왔습니다.이번 전람회는 내가 북에 들어온지 50년이 된것을 기념해서 마련되었습니다” “남쪽에 계실 때부터 그림에 뜻을 두셨습니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고,북에 들어와 군사하면서 취미로 그림도 그리고 서클활동이 있을 때면 무대배경도 그렸습니다.그때 제 재능을 인정해주셨는지 57년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게 됐습니다.그 어려운 시기에 귀한 외화를 들여 화구와 종이,지우개까지 우방국가에서 사다 공급해주셨습니다.대학을 졸업한 후 40년간 만수대창작사에서활동해 왔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에서 전통적인 동양화와 일치하면서도 뭔가 다른 점을 느끼게 되는데 그 점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우리 화가들에게는 조선화의 전통적 기법을 더 풍부히 발전시켜서 새로운 세대들에게 넘겨줄 의무가 있습니다.옛날 것 그대로 모방해서 후대들에게 넘겨준다면 예술가로서의 내 몫은 없다고 생각해요.제 나름대로 한 평생을 바쳐서 조선화의 몰골(沒骨)기법을 더욱 현대화하고 화법에서 필치,색깔 문제들을 늙은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시대젊은 사람들의 감정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제 그림은 전통의 바탕에 서 있으면서도 선은 예리하고 질감이나 색채감각이 좀더 부드럽고 선명해서 어딘지 모르게 시적 감흥을 자아내는 면에서 남다른 개성이 있다고들 합니다.물론 모두가 대중이 평가할 문제입니다” “서울에 계신 동생들이 와서 보면 무척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다른 이들에게 너무 미안하지요.아직 한번도 만나지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선생님의 이번 서울방문을 기해서 전람회가 준비됐다가 취소됐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서울의 경인미술관에서 화첩도 출판하고 준비를 다 했는데 중간에 선 중국미술상이 협잡을 했는지 내가 가서 보니 54점중 대여섯개만내 그림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어요.섭섭하지만 잘되든 못되든 진짜 내 얼굴을 가지고 해야 하니까 전람회를 열 수가 없었지요.마음같아서는 이 그림들 그대로 다 가져가서 서울에 가서 했으면 싶어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있어서 인터뷰는 여기서 마쳤다. 전람회장을 나서면서 기자는 산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군사분계선 위를 줄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의 그림을 다시 한번 보았다.‘새들은 날아가건만’ 남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50년간 찾지 못했던 화가의 아픔이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신준영기자 junyoung@
  • [‘6.15’이후의 북한](4)북한의 패션유행

    지난 8월 15일 서울에 온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여러가지 기록을남겼다.그 중 여성방문자들의 뛰어난 한복맵시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지난 7월 조선중앙TV는 내각 경공업성이 10여가지의 새로운 올여름조선옷을 발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기자는 이번 방북취재 중 평양의 ‘올여름 유행 조선옷’에 대한 취재를 요청했다. 그 결과 7일 평양 보통강변에 위치한 수예연구소에서 경공업성 피복연구소 김홍옥 조선옷연구실장과 만날 수 있었다.김실장은 올 여름발표된 10여벌의 조선옷을 가지고 나와 그 특성들을 일일이 설명해주었다.이 자리에는 조선옷연구실의 홍애련연구원(디자이너)이 함께 했는데 그녀는 양장을 전공했다고 했다.조선옷 디자이너와 양장 디자이너가 함께 작업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올 여름에 발표된 조선옷의 특징은?” “우선 깃을 더 얇게 뽑고 저고리 길이를 짧게 해서 늘씬하면서 매력있게 보이게 했다.치마폭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부챗살처럼 퍼지게해 걸어갈 때마다 부드럽게 물결치도록 만들었다.아울러 무늬기법들을 새롭게 했다.입체적 꽃 장식들을 치마폭에 달아 부각적인 효과를줘 현대적 미감을 살렸다” 전시된 조선옷 중에는 부드러운 플라스틱 재질 같은 것으로 치마폭에 화려한 글자 무늬를 장식한 것도 있었다.그에 대해 물었다.“영어로 립그레스라고 하는 수법인데 새로 도입한 무늬장식이다.이 옷도많이들 좋아 한다” “활옷도 보이는데?” “우리 연구소 조선옷 창작가의 작품이다. 활옷은 현재 일상적으로입는 옷은 아니지만 우리 조상들이 입었던 민족의상을 후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준히 제작,발표하고 있다” 이번 취재 중 평양시내에서 속살이 아련하게 비치는 조선옷을 입은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양장을 입을 때 치마길이가 절대 무릎 위로 올라가지 않는 북의 정서를 감안할 때 기자의 눈에는 다소 의외로 보였다.이 점에 대해 물었다. “살핏하게 비치면서도 하늘하늘한 것이 매력 있지 않은가.전통적인조선옷 재질인 갑사나 은초사를 새로운 방법으로 직조해서 현대화한것이다” “어떤 색깔이 인기 있는가?” “평상복으로는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제일 좋아한다. 거리에서대학생들이 입은 것을 많이 봤을 것이다.평소 조선옷을 많이 입게 하기 위해서 여자대학생들에게는 국가에서 양복과 조선옷 두 벌의 교복을 지급한다.명절옷은 전통적으로는 다홍치마에 노랑저고리인데 이것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요즘은 여기에 거의 구애되지 않는다.젊은층은아래 위를 같은 색으로 입고 가정부인들은 아래 위를 다르게 입는 경우가 많다.우리 사람들은 대체로 붉은 색을 많이 좋아하는데 특히 젊은층은 꽃분홍이나 빨간색이 아니면 입으려 하지 않는다. 신부옷도이같은 색이다” 이번 여름에 발표된 조선옷 중에는 두겹 치마인데 겉 치마를 사선으로 돌린 파격적인 것도 있었다.홍애련 연구원은 “꼬리치마를 응용한것”이라며 “민족적 형식을 살리면서 현대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는데 아직 미흡하다”고 했다.홍연구원에게 물었다. “남쪽에서도 전통한복을 고쳐서 생활 속에서 편하게 입게 하려는시도가 많은데 알고 있는가” “남쪽에서 오는 대표단들이 조선옷을 구조 변경시켜 입고 온 것을여러차례 보았다.조선옷을 현대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우리도 인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조선옷을 입기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조선옷을 구조변경할 때 어떤 것은 고치고 어떤 것은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많다.북에서는 어떤 원칙으로 조선옷을구조변경 하는가” “아무리 현대적 장식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깃과 동정,고름,도련선과 배래선을 없애면 그것은 조선옷이 아니다.우리도 조선옷을 고치는시도에서 고유의 미감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토론도 많고 생각도 많이 한다.(전시된 두루마기를 가리키며)전통적으로 조선옷은 어깨선을직선으로 재단하기 때문에 입었을 때 어깨선에 주름이 생긴다. 이 두루마기는 어깨선을 양복 셔츠 식으로 처리해서 주름을 없앴는데 어깨주름이 없다고 조선옷 고유 특성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어깨에 바탕(심)을 약간 넣어 현대적 맛이 강한데 젊은이들이 많이 입었으면 하는 기대에서 이같은 시도를 해봤다”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서울을 방문한 여성들의 조선옷 맵시가 고와눈길을 끌었다.조선옷을 맵시 있게 입는 비결은?” 김홍옥 연구실장이 답했다. “뭐니 뭐니해도 조선옷을 항상 즐겨 입어야 한다.우리 여성들은 명절 때나 기쁜 자리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으레 조선옷을 입기 때문에 옷이 몸에 붙는 것이다.가끔 외국인들이 우리 연구소에 와서 조선옷이 아름답다며 옷을 해달라고 해서 해주기도 하는데 막상 입으면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옷이 몸에 붙지 않기 때문이다.또 조선옷은우리 여성들의 몸매 특성에 가장 알맞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여성들은 조선옷을 입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조상들의 슬기와 재능은세계에 널리 자랑할 만하다” 북측은 조선옷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1994년에는 전국의 조선옷 전문가나 애호가들이 참여한 ‘조선옷 품평회’를 열었다.이 행사는 조선중앙TV로 중계방송되었다.그 녹화 테이프를 봤는데 모델들이 저마다 조선옷을 입고 나와 맵시를 뽑내는‘조선옷 패션쇼’였다.그후 해마다 한번씩 조선옷,양복 합동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했다. 홍애련 연구원은 기자에게 피복연구소가 발간한 ‘조선민족옷’ ‘어린이옷’이란 두 권의 책을 선물했다.그 중 ‘어린이옷’ 첫 10페이지 정도는 어린이 조선옷들이 나와 있었다.양복 옷본에도 첫 부분에는 조선옷을 넣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양복 조선옷을막론하고 피복전문가(디자이너)들은 한덕수경공업대학과 평양강철구상업대학에서 양성된다고 한다.김실장은 남녘의 조선옷 전문가들에게“우리 조상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조선 민족옷을 더욱 훌륭한 옷으로 만들어 세상에 이름을 떨치도록 북남이 힘을 합치자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신준영기자 junyoung@
  • 北 노동당행사 訪北 승인할까

    북한이 던진 ‘뜨거운 감자’가 결국 우리 손에 전달됐다.정부는 애써 “뜨겁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곤혹스런 기색이 역력하다. 북측의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 초청 서한을 받아든 3일 정부 당국자들은 극도로 말을 아끼며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웠다.초청 단체들에방북 승인을 해 줄 것이냐는 질문에 “여러가지 사항을 종합적으로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정부로서는 방북을 승인할 경우 쏟아질지 모르는 보수세력의 비난과 거부할경우 경색될 수도 있는 대북관계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모양새다. 지금으로선 정부가 북측의 요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반반인 것 같다.달리 표현하자면,결국 여론의 향배에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다.한당국자는 “언론이 방향을 잡아달라”는 말까지 할 정도다. ■북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이 경우는 북측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유지하면서 남북관계를 가속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향후 우리측행사에도 초청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다분히 ‘공격적’인대응이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여론을 헤쳐나가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산가족문제 등에서 성의를 보이지 않는 북한이 이념 선전에만 몰두하고 있으며,정부가 이에 휘둘린다는 비난이 쏟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3일 여당인 민주당이 ‘시간상의 이유’를 들어 불참 입장을 표명한 것도 민감한 국민여론을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의 요청을 거부한다? 양측의 관계 개선 가속화를 보류하는 결정인 셈이다.그렇다고 북한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될 것으론 보이지않는다. 현재의 우호적인 관계에서 정부가 “아직은 시기상조”라는이유로 북측에 완곡하게 사정을 설명한다면 북측도 험악하게 나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3일 재야 시민단체들이 즉각 환영의사를 밝힌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진보 진영의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 적십자사, 할일은 많고 회비는 줄고

    남북이산가족 교환방문,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동포 고향방문 등어느 때보다 할 일이 많은 대한적십자사가 고민에 빠졌다.회비가 잘걷히지 않기 때문이다. 적십자사는 사업의 90% 이상을 국민이 자발적으로 내는 회비에 의존한다.이산가족 추가 상봉,생사 확인작업,면회소 설치 등 산적한 현안에 드는 자금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적십자사는 특히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8·15 이산가족 상봉이끝난 뒤부터는 격려보다는 예산을 낭비했다는 항의 전화가 많이 걸려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1차 이산상봉 비용으로 30억원이 들었다는 발표가 나오자 “이산가족 100명씩 오가는데 어떻게 30억원을 쓸 수가 있느냐.몇명을 위해세금과도 같은 적십자사회비를 흥청망청 써도 되는냐”는 등의 전화가 빗발쳤다.적십자사 직원들은 “상봉 비용이 적십자사 예산이 아닌정부의 남북협력기금에서 나갔다”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올해부터 적십자사는 통·반장을 통해 모금하던 회비를 자발적인 은행지로 납부 방식으로 바꿨다.시에 거주하는 세대주에게는 1만원,군단위 세대주에게는 2,500원을 납부해 달라는 지로용지를 보내고 적극홍보도 했으나 지난달까지의 모금액은 360여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슷한 수준에 그쳤다. 적십자사는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후원회원을모집,매월 1,000원 이상의 후원회비 자동이체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실적이 저조해 애를 태우고 있다.올해에만 10만명의 후원 회원을 모집할 계획이었지만 지난해부터 올해 9월까지 5만7,000여명이가입해 4억원을 모으는데 그쳤다. 적십자사 회원팀 김영철(金榮喆·48)씨는 “후원 회원 대부분이 기존의 적십자사 자원봉사자들인 점을 감안하면 자발적으로 후원회에참여한 인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 놓았다. 적십자사는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것을 계기로 후원 회원이급증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가입자 수는 되레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정상회담 이후 겨우 3,000여명이 새로 가입했다.그나마 이 가운데 2,000여명은 장충식(張忠植·68) 신임 총재가 지인 등을 통해 모집한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회비 모금실적을 토대로 이듬해 예산을 짜야 하는데 올해처럼 부진하면 앞으로 있을 남북 교류사업을 추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 진다”고 걱정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세계의 눈·귀 또 한반도로… ASEM SEOUL 2000

    아시아·유럽의 협력을 논의할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오는 20∼21일 서울에서 개최됨으로써 세계의 눈과 귀가 한반도에 쏠리게 됐다.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의 후속조치인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반도가 다시 뉴스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아시아와 유럽의 협력’이라는 ASEM이 추구하는 본래 목표 외에도26개국 정상들의 관심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냉전의 땅, 한반도의남북 문제에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남북 화해,평화공존,통일의염원을 담은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서울 선언’을 제안한다.또 아시아·유럽 정상들도 남북 관계 진전과 평화를 지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모색하는 출발점에서 중국,일본을 포함한 25개국 정상들의 지지는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대치상태를 풀고통일로 향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다자(多者)정상회의를 개최하기는 48년 정부 수립후 처음이다.66년 아스팍 총회는 외무장관급 회의였으며90년의 APEC 각료회의도 장관급에 불과했다.김 대통령은 의장국 수반으로서 정상회의만 세차례 주재한다. 서울 회의에서는 아시아·유럽 협력체제 강화를 위한 심도있는 대화와 함께 지난해 합의도출에 실패한 뉴라운드 무역협상에 대한 논의도하게 된다. 우리측은 유라시아 초고속 정보통신망 사업,회원국간 정보격차 해소사업,2,500만달러 규모의 ASEM 장학사업 등을 회원국에 제의한다.회의는 ‘2000 아시아·유럽협력체제’와 의장 성명서를 채택하고 21일폐막한다. 오는 17일 주룽지 중국 총리 입국을 시작으로 회원국 정상들이 19일까지는 모두 서울에 들어온다. 대표단 1,200명,기자단 1,500명을 비롯,3,000명의 참가자와 우리측경호요원 2만여명 등 연인원 3만여명이 ASEM회의에 직·간접으로 참가한다. 정부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최종 점검 작업에 들어갔다.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오는 18,19일 계도기간을 거쳐 20,21일 서울시 등록자가용 차량을 대상으로 2부제 운행을 실시한다. 황성기기자 marry01@
  • 南혈육 찾는 北가족 명단공개 이모저모

    남측 가족을 찾는 북측 이산가족 명단 100명의 명단을 공개한 2일대한적십자사에는 하루종일 문의전화가 빗발쳤다.북쪽의 김책공대 교수 백영철씨(77)의 동생 백영제씨(72)를 포함,수백통의 전화가 걸려와 33가족의 생사가 전화로 확인됐으며 직접 찾아와 확인한 사람도 7명에 이르는 등 이날 오후 4시 현재 40명의 생사가 확인됐다.적십자사는 내일이면 생사 확인작업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남쪽 형제들의 생사 확인 요청을 한 박상옥씨(67)는 동생들뿐만 아니라 어머니까지 살아 있는 것으로 밝혀져 경사가 겹쳤다. 상옥씨의 둘째동생 상범(常範·57·서울 도봉구 창동)씨는 이날 북에 의용군으로 끌려간 형의 생존을 확인하고는 “형님을 빨리 뵙고싶다”며 만세를 불렀다. 상범씨는 또 “늙으신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고 형이 동생들만 생사 확인 요청을 한 것 같다”며 “형이 어머니가 살아계신 줄 알면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형 백영철씨가 북의 김책공대 교수로 재직 중인 것을 확인한 동생영제씨는 “북한 인명사전을 보고 형의 이름을 확인했으나 형이 월북,드러내놓고 찾지 못했다”며 “형이 북에서 잘살고 계셔 너무 기쁘고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6·25때 행방불명된 형 김덕주(金德柱·73)씨가 북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병원 검진을 받으러 서울에 왔다 휴대전화로 알게 돼 직접적십자사를 찾은 김덕칠(金德七·61·경남 남해군 남해읍)씨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며 감격을 가누지 못했다. 전영우 윤창수기자 ywchun@
  • 北 생사확인 의뢰 100명 공개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지난달 30일 북한 적십자회에서 남측에 전달해온 생사확인 의뢰자 100명의 명단을 2일 공개하는 등 가족의 생존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한적의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이들 생사확인 의뢰자 명단이 공개된지 하룻만에 대상자 100명 중 절반 이상의 남측 가족 생존이 확인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에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이산가족은 다음달중 이뤄질 서신교환 대상자 300명에 포함된다.그러나 11,12월로 예정된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으로는 선정될 수 없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생사확인자들은 향후 면회소 설치시 가족을만날 수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 명단을 확인한 남쪽 가족은 대한적십자사(02-3705-3705)나 통일부 이산가족과(02-732-5437)로 연락하면 된다. 김상연기자 carlos@
  • 北 생사확인 의뢰자 통보 안팎

    2일 공개된 북측 생사확인 의뢰자 100명 명단은 지난 8·15이산가족 상봉단 명단처럼 60,70대의 비교적 젊은 연령층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8·15때 고학력 인텔리 출신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던 데 반해,이번엔 농민과 노동자 등 ‘장삼이사(張三李四)’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북한에서 활동중인 유명인사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이와 관련,북측이 ‘생사확인’의뢰자와 ‘상봉’대상에 차이를두고 있다는 관측이 그럴 법하다.직접 남한을 방문하는 교환방문단은 북한에서 성공해 체제 우월성을 선전할 수 있는 인사로 구성하는 반면,단순 생사확인 의뢰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깔려있다는분석이다. ◆젊은 연령층 북측 생사확인 의뢰자 명단에 80대이상은 한명도 없다.70대 39명,60대 61명이다.해방 직후 10,20대 혈기 왕성한 나이에 사상적 신념을 좇아 월북한 사람들 위주로 구성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농민·노동자 출신 8·15때 생사확인 의뢰자 200명 가운데이산당시 학생출신은 80여명에 달했다.그러나 이번엔 100명 가운데초등학생까지 포함해 학생 출신이 모두 22명이다.대학생은 모두 4명이며,그중 서울대 재학생이던 사람은 리일걸씨(71·법대) 등 2명이다.교사 및 교수출신은 3명인데,그중 이산당시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원(교수)이던 백영철씨(77)는 현재 북한에서도 김책공업대학 강좌장(교수)으로 재직하고 있다.이와함께 경기여중 출신인 구재희씨(65) 등몇몇 ‘신(新)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나머지 대부분은 농민(45명)과 노동자(18명) 출신.이중엔 헤어질 당시 직업을 ‘머슴살이’로 기재한 최모씨(67)도 있었는데,현재는 평양시에 살고 있어 성공한 케이스로 추정된다.또 현모씨(67·여)는 직업을 ‘남의 집 아이보개’라고 썼는데 유모(乳母)를 뜻하는 것 같다. ◆아내 찾는 사람 6명 북측 명단의 ‘찾는 대상’난에 부모를 기재한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그것은 부모의 이름을 적는 난을 별도로 마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부모외에는 형제·자매를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다.처자식을 찾는 사람이 3명,처만 찾는 경우가 3명 있으며,아들만을 찾는 사람은 1명이다. 김상연기자 car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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