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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노벨위원회가 밝힌 수상 이유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기울인 평생의노력,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이 상을 수상하게됐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한 화해의 절차를 위해 상을 수여하는 것이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습니다.그에 대한 대답으로 김 대통령의 인권을 위한 그 동안의 노력이 최근 남북한 관계의진전과는 별도로 수상후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북한과의 화해를 위한 강력한 김 대통령의 다짐 및 이행,특히 지난 1년 동안 이룩한 업적이 이번 수상에 새롭고 중요한 몫을더한 것도 역시 명백합니다. 평화상은 지금까지 이룩해 온 조처에 대해 수여되는 것입니다.그러나 노벨평화상의 역사에서 자주 보아 온 것처럼 올해도 역시 평화와화해를 위한 머나먼 길에 더욱 진척이 있기를 격려하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는 넓은 범위에서 용기의 문제입니다.김 대통령은 고착화된 50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전선 너머로협조의 손길을 뻗으려는 의지를 지녀왔습니다.그의 의지는 개인적,정치적 용기이며 유감스럽게도 다른 분쟁지역에서는 너무 자주 결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 김대중씨는 민주한국의 대통령입니다.김 대통령의 집권까지의노정은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수십년 동안 그는 권위주의 독재체제와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했습니다. 가혹한 교도소 환경 속에서도 김대중씨는 삶을 바쳐서 해야 할 일을찾아내게 되었습니다. 불굴의 낙관적 태도를 가지고 그는 교도소 안에서 발견한 ‘즐거움’에 대해 썼습니다.동양과 서양의 모든 종류의서적 통독이 그것입니다.신학·정치학·경제학·역사 그리고 문학 서적들입니다.가족과의 짧은 면회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갖가지방해 시도가 있었음에도,그와 가장 가까웠던 인사들로부터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원에서 꽃을 돌보는 일도 허용되었습니다. 김대중씨의 얘기는 몇몇 다른 평화상 수상자,특히 넬슨 만델라와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경험과 공통되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상을 받지는않았지만 수상할 자격이 있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그것과 함께 말입니다.김대중씨가 간직한 불굴의 정신은 국외자들에게 거의 초인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이런 점에서 이번 수상은 보다 진지한 면이 있습니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전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 적극적인 협조관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햇볕’이라는 말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햇볕과 바람이한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한 데서 따온 것입니다.‘햇볕정책’은 바람을 막지 않더라도 남북한이 공동의 이익을 서로 나누고 이를 강화함으로써 최소한 추위를 누그러뜨리자는 것입니다.김대중씨는남한이 북한을 합병하거나 흡수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시간이 걸리고 아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목표는 통일입니다. 김대중씨가 현재 진행 중인 해빙과 화해의 주동자라는 점은 의심할여지가 없습니다.아마 그의 역할은 동서독 간의 관계 정상화에 아주중요한 동방정책 추진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빌리 브란트에 비교될수 있습니다.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시대는 끝났습니다.세계는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오늘 상을 받는 김대중씨 보다더 많은 기여를 한 분은 없습니다.시인의 말처럼 “첫 번째 떨어지는물방울이 가장 용감하노라”. ◆ 김대중대통령 연보. ■1925년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아버지 김운식(金雲植)씨와 어머니장수금(張守錦)여사의 4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1933년 하의도보통학교 입학,목포 북교초등학교로 전학해 수석 졸업■1939년 목포상업학교 입학■1945년 4월 차용애씨와 결혼해 홍일(弘一)·홍업(弘業) 두 아들 둠■1954년 목포에서 민의원선거에 출마해 낙선■1956년 10월 민주당 입당■1959년 6월 강원도 인제 재선거에서 낙선■1961년 5월14일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으나 5·16 쿠데타로 수감■1962년 5월 이희호(李姬鎬)여사와 재혼■1963년 11월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에 당선■1967년 7대 의원 당선■1970년 9월 신민당 대통령후보 당선■1971년 5월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배■1973년 8월 도쿄에서 중앙정보부 공작원에게 피랍■1976년 3월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1980년 5월 내란음모죄로 구속■1981년 1월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돼 사형 확정■1982년 12월 미국 망명■1985년 2월 귀국한 뒤 동교동 자택에 감금■1987년 12월 13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1992년 12월 14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유학차 영국으로 향발■1993년 7월 귀국■1994년 1월 아·태평화재단 설립■1995년 7월 정계 복귀■1997년 12월 15대 대통령 당선■2000년 6월 평양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2000년 12월10일 노벨평화상 수상
  • 金大中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수상 회견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9일 밤(한국시간) 노벨위원회 주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장에는 CNN 등 세계각국 기자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공동 수상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하는가. 같이 받았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위원장을 만나는 것과 노벨 평화상을 받는 두 가지 꿈이 실현됐다.다른 꿈이 더 있나. 노벨평화상은 받고나면 더 큰 사명이 부과된다는 점에서 올림픽 금메달과는 다르다.더욱 열심히 할 생각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 대해 북한에서 인사말을 보내온 게 있는가. 또 통일은 김대통령 생애에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간접적인축하의 말은 들었지만 공식적 축하는 없었다.일생을 통일을 위해 헌신했고 어려운 고비도 넘겼지만 임기 중 통일을 성취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그러나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이산가족 상봉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지난 6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400명이 왕래했다.그러나 이산가족은 2·3세대까지 포함하면모두 1,000만명 가량이 된다고 한다.그래서 먼저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 왕래,면회소 설치 등을 통해 이른 시일 내에 이루어 나갈 생각이다. ■지구상에는 아직도 미얀마나 동티모르 같은 인권 사각지대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로서 인권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 아웅산 수지여사와 미얀마 국민의 민주화 염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되기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동티모르에서는 한국 군인들이 치안유지 등평화유지군의 활동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북한과 종교 교류를 지원할 생각은 있는가. 한국에는 종교들간의관계가 매우 좋다.예를 들어 가톨릭을 포함해 불교·민속종교 등 7대종교가 내가 귀국하면 노벨상 축하 미사를 서울의 대성당에서 드리기로 돼 있다.남북 종교간에는 충분히 교류가 되고 있지는 않으나 북의 종교계와 대화를 하고 있으며,남북한 종교간의 교류가 진전될 것으로 기대한다.중국 문제는 장쩌민(江澤民)주석을 만나 교황청의 관계개선 희망을 전했고,장주석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의사를말했다. 여기에 대해 중국측의 반응이 있었다. 교황청이 대만문제를해결하면 중국과 관계진전이 될 것으로 (나는)느끼고 있다.김정일 위원장에게도 교황의 방북의사를 전했고 의향을 물었다.내년에 오시라고 하라는 답변을 받았다.이런 중국 및 북한과의 접촉결과는 모두 교황청에 전달했다. ■한반도 평화조약을 위한 4자회담을 제의한 것으로 아는데 언제쯤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인지,2002년쯤이면 될 것으로 생각하나. 언제쯤이 될지는 확실히 답하기 어렵다.4자회담 제의에 대해 미·중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답하고 있다.북한에 이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평화상 수상 이후 남북 관계가 어떻게 조정될 것으로 보는가. 이번에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은 인권뿐 아니라 남북정상회담이 가장 큰 이유였다.수상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전세계의)절대적이고 가장 큰이슈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오슬로 오풍연특파원 poongynn@
  • [굄돌] 단순한 기우인가

    올해 초 어느 월간지 신년호에 ‘2020년 특집’이라는 가상의 신문기사를 에세이 형식으로 적은 일이 있었다.앞으로 20년 후 실릴 만한신문 내용을 각 분야별로 세분하고, 그 시기에 현실화되어 있을 미래를 나름대로 엮은 것이었다.언론사 친구들과 시민단체 동료들의 자문을 구한 뒤 작성한 그 원고에는,조금 허황된 것 같아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믿고 싶은 내용들을 담았었다.한국에서 전 분야의 노벨상수상자가 나왔다는 얘기,인터넷 발달에 따라 사용이 격감된 종이 사용을 부활하자는 내용 등이 주를 이루었다. 다만 기사의 끝에는 그 모든 예상들이 20년 후가 아닌 10년 이내에이미 완료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석을 달아놓았다.미래의 발전 속도를 단순한 분석만으로 헤아리기엔 개인적인 한계와 부담감이 적지않았기 때문이다.신석기 혁명 이후 인류의 농경사회 정착까지가 3,000년,산업혁명 이후 근대화까지가 300년,첨단의 정보통신사회가 이룩된 게 30년 남짓.그렇다면 무엇이 3년 안에 우리를 뒤바꿔 놓을 것이며,어떠한 변혁이 밀려와서 인류의 삶자체를 3개월이나 3주일만에뒤흔들어댈 것인가. 처음에 언급했던 월간지 원고에서 나는 경의선이 20년 후에서야 완공될 거라며 겁도 없는 예상을 떠들었다.하지만 그 경의선은 불과 몇달이 지난 후엔 휴전선을 뚫고 달리는 철도로 연결이 된다고 한다.생전에는 상상만으로 그려야 했을 법한 남북 정상이 만난 지도 이미 반년이나 흘러가 버렸다.50년의 한을 간직한 이산가족들이 제한적이 나마 남북을 오가며 만나고 있고,금강산은 어느덧 우리 생활의 체험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게 숨가쁜 우리네 현실이다. 그렇다면 내년 이 시간에는 무슨 신문기사로 인해,어떠한 변화와 진보로 인해 한숨과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될까 궁금해진다.그런데 그런와중에도 한 가지 의문점이라는 게 생활 내내 덧붙여지곤 한다.‘그모든 것이 일말의 불안감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건 무엇 때문일까?’ 단순한 기우일 뿐일까? 글쎄,그랬으면 좋겠는데,왜 마음 한편에선 찜찜한 무엇이 계속 옹알대고 있는 것일까. 채지민 소설가
  •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北 당국·언론들 ‘침묵’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 북한은 지난 10월13일 선정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수상식이 거행된 10일에도 어떠한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 당국이 공개적인 축하인사를 보내지 않은 것은 물론,언론들도평화상 수상 자체를 보도하지 않았다. 북측이 김대통령의 평화상 수상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선 자연스럽다.‘자본주의 진영의 잔치’에 ‘사회주의 북한’이 장단을 맞출 이유가 없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주도로 이뤄진것’이라고 주민들에게 선전해온 북한이고 보면,김대통령의 단독 수상 사실을 반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북측이 평화상 수상을 반가워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같다.김대통령은 지난 9일 밤(한국시간) 오슬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측으로부터 공식적 축하는 없었지만,간접적 축하의 말은 들었다”고밝혔다.북측이 “우리 동족이 받아 기쁘다”는 말을 전해 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언론보도는 없었지만,일부 북한 인사가 김대통령의평화상 수상 사실을 알고 있음이 감지되기도 했다.지난달 30일 2차 이산가족 상봉단의 일원으로 서울에 왔던 북한측 이산가족과 관계자들은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사실을 남측 가족들이 얘기하자 “알고 있다”면서 “우리 장군님은 더 큰 상을 타셨다”고 말했다. 이석우기자 swlee@
  •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연설 전문

    국왕 폐하,왕세자와 공주 등 왕실가족 여러분,노르웨이 노벨위원회위원 여러분,그리고 내외 귀빈과 신사 숙녀 여러분. 노르웨이는 인권과 평화의 성지입니다.노벨평화상은 세계 모든 인류에게 평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숭고한 메시지입니다.저에게 오늘 내려주신 영예에 대해서 다시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를 드립니다.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 많은 동지들과 국민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영광은 제가 차지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에게 바쳐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세계의 모든 나라와 벗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노벨평화상을 저에게 주신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6월에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전개되고 있는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 대한 평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노벨위원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해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저는 지난 6월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북한에 갈 때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지만 오직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출발했던 것입니다. 회담이 잘 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남북은 반세기 동안 분단된 가운데 3년에 걸친 전쟁을 치렀으며 휴전선의 철책을 사이에 놓고 불신과 증오로 50년을 살아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관계를 평화와 협력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저는 98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그것은 첫째, 북에 의한 적화통일을 용납하지 않는다.둘째,남에 의한 북한의 흡수통일도 결코 기도하지 않는다. 셋째, 남북은 오로지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완전한 통일에 이르기까지는 얼마가 걸리더라도 서로 안심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북한은 처음에는 우리 햇볕정책을 북한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로 여기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일관되고 성의있는 자세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전세계 모든 나라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는 마침내 북한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참으로 힘든 협상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안전과 화해·협력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결국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룩하자,또 통일을 서두르지 말고 우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 협력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둘째,종래 남북 간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던 통일방안에 대해서도 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북한은 우리가 주장한 통일의 전 단계인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대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형태로 접근해 왔습니다.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통일에의 제도적 접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셋째,한반도에 미군이 계속 주둔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50년 동안 남한에서의 미군 철수를 최대 쟁점으로 주장했습니다.저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강조했습니다.“미·일·중·러의 4강에 둘러싸여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특수한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필수불가결하다.미군은 현재뿐 아니라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유럽을 보라.당초 ‘나토’의 창설과 미군의 주둔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침략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그러나 공산권이 멸망한 지금도 ‘나토’와 미군이 있지 않느냐.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그 존재가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은 뜻밖에도 종래의 주장을 접고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나타냈는데,이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뜻 깊은 결단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이산가족이 만나는 데 합의했으며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원만하게 실천에 옮겨지고 있습니다.경제협력에 대해서도 합의를 했습니다.이미 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4개의 협정을체결하는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우리는 그 동안 북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비료 30만t과 식량 50만t을 지원했습니다.그리고 사회·문화 교류에 대해서도 합의해 스포츠,문화예술,관광 교류 등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려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데 합의했습니다.남북간의 분단된 철도와 도로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양쪽 군이 협력하는 데에도 합의했습니다. 한편 저는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협력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북한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나아가 일본과 다른 서방국가들과도 관계를 개선할 것을 적극 권유했습니다.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대통령,‘모리’총리등 미·일 양국의 정상에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권고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10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제3차 ASEM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우방국가들에게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북·미 관계와 유럽·북한 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러한 일들은 한반도의 평화에 결정적인 영향과 진전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제가 민주화를 위해서 수십 년 동안 투쟁할 때 언제나 부딪힌 반론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아시아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으며 그러한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아시아에는 오히려 서구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인권사상이 있었고,민주주의와 상통한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백성을 하늘로 삼는다.’‘사람이 즉 하늘이다.’‘사람 섬기는 것을 하늘 섬기듯 하라. ’이런 것은 중국이나 한국 등지에서 근 3,000년 전부터 정치의 가장 근본요체로 주장되어 온 원리였습니다. 또한 2,5000년 전에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 자신의 인권이 제일 중요하다’는 교리가 강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사상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상통되는 사상과 제도도 많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후계자인 맹자는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다.하늘이 백성에게 선정을 펴도록 그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다.그런데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억압한다면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들고일어나 임금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존 로크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한 국민주권사상보다 2,000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이미 기원 전에 봉건제도가 타파되고 군현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공무원을 시험에 의해서 뽑는 제도는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와 병행해서 임금을 포함한 고관들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강력한 사정제도도 존재했습니다.이와 같이 민주주의에 대한 풍부한 사상과 제도의 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다만 아시아에서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기구는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그것은 서구사회의 독창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역사에 크게 기여한 훌륭한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서구의 민주제도는 민주적 뿌리가 있는 아시아에서 이를 채택할 때 아시아에서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한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태국·인도·방글라데시·네팔·스리랑카 등 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동티모르에서 주민들이 민병대의 혹독한 학살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독립을 지지하는 투표에 참가했습니다.지금 미얀마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고난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국민과 민심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저는 언젠가 미얀마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회복되고 국민에 의한 대의정치가 다시 부활하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절대적인 가치인 동시에 경제발전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민주주의가 없는 곳에 올바른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또한 시장경제가 없으면 경쟁력 있는 경제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민주주의적 기반이 없는 국가경제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확신했습니다.그래서 98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과 함께 ‘생산적 복지’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 2년 반 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병행 실천이라는 국정철학 아래 국민의 민주적 권리를 적극 보장하고 있습니다.금융·기업·공공·노동 부문의 4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복지의 중점을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인력 개발에 둠으로써 이제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개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이러한 개혁을 조속히 마무리함으로써 전통산업과 정보산업,생물산업을 삼위일체로 발전시켜 세계 일류경제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시대로서 부(富)가 급속히 성장하는 시대입니다.동시에 정보화시대는 부의 편차가 심화되어 빈부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국내 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빈부격차도 커져 갑니다.이것은 인권과 평화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심각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우리는 21세기에 있어서도 계속해서 인권의 탄압과 무력의 사용을 적극 반대해야 합니다.아울러 정보화에서 오는 새로운 현상인 소외계층과 개발도상국의 정보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인권과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왕 폐하,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마지막으로 제 개인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릴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독재자들에 의해서 일생에 다섯 번에 걸쳐서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습니다.6년의 감옥살이를 했고,40년을 연금과 망명과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이러한 시련을 이겨내는 데에는 우리 국민과 세계의 민주인사들의 성원의 힘이 컸다는 것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동시에 제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저는 하느님이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 속에 살아 오고 있으며,저는 이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1973년 8월 일본 동경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저는 한국 군사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전 세계가 이 긴급뉴스에 경악했었습니다.한국의 정보기관원들은 저를 일본 해안에 정박해 있던 그들의 공작선으로 끌고 가서 전신을 결박하고 눈과 입을 막았습니다.그리고 저를 바다에 던져 수장하려 했던 것입니다.그때 저의 머리 속에 예수님이 선명하게 나타나셨습니다.저는 예수님을 붙잡고 살려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바로 그 순간 저를 구원하는 비행기가 와서 저는 죽음의 찰나에서 구출되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저는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의 위협을 이겨 왔습니다.1980년 군사정권에 의해서 사형 언도를 받고 감옥에서 6개월 동안 그집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저는 죽음의 공포에 떨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는 ‘정의필승’이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이 크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국민과 세상을 위해 정의롭게 살고 헌신한 사람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저는 수 많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보았습니다.그러나 불의한 승자들은 비록 당대에는 성공을 하더라도 후세 역사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 부끄러운 패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거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국왕 폐하,그리고 귀빈 여러분. 노벨상은 영광인 동시에무한한 책임의 시작입니다. 저는 역사상의 위대한 승자들이 가르치고 알프레도 노벨 경(卿)이 우리에게 바라는대로 나머지 인생을 바쳐 한국과 세계의 인권과 평화,그리고 우리 민족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맹세합니다.여러분과 세계 모든 민주인사들의 성원과 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망신고 北가족 호적정정 인정

    서울가정법원(원장 李隆雄)은 8일 “북에 있는 동생을 직접 만난만큼 사망 신고된 동생을 다시 호적에 등재시켜달라”며 이산가족 김재환(金在煥·70)씨가 낸 호적정정 허가신청에 대해 “이유있다”며인용 결정을 내렸다.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의 호적을 남한에서 처음으로 되살린 것이어서 앞으로 비슷한 신청이 잇따를 전망이다. 김씨의 신청을 심사한 이 원장은 “북에 있는 김씨의 동생 재호(在鎬·65)씨가 호적에서 빠진 이유는 사망신고 때문”이라면서 “지난2차 이산가족 상봉 때 김씨 형제가 직접 만나 생존을 확인한 만큼 당연히 원래 호적을 되살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북한은 우리 영토의 일부로 규정돼 있어 북한에 있는 가족의 생존사실이 확인되기만 하면 남한의 호적에 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
  • 金대통령·金正日위원장‘NGO 평화상’공동 수상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한반도 평화를 증진한 공로로 비정부기구(NGO)가 주는 국제평화상을 공동 수상한다. 세계 최대의 국제분쟁 NGO인 ‘서치 포 커먼 그라운드(Search for Common Ground)’는 7일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과 남북이산가족 상봉등으로 반세기 동안의 냉전을 종식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에 돌파구를마련한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을 올해의 국제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기구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던 계기도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의 노력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위원장이 그동안 주로 동구권 국가 등에서 명예교수나 명예박사등을 받은 적은 있으나 서방 진영에서 처음으로 상을 받는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시상식은 오는 14일 워싱턴 주재 핀란드 대사관에서 열리며,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을 대신해 양성철(梁性喆) 주미 한국 대사와 이형철(李亨哲)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가 수상한다. 지난 1982년 설립된 이 기구는 현재 175명의 직원과 수천명의 회원이 9개 국가에 지부를 두고 국가 및 민족간 분쟁 예방과 화합을 추구하고 있다.
  • MBC 편성시간 차질 예상…박찬호 경기 모두 생중계

    내년부터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중계하는 MBC는 박찬호(LA 다저스)의 선발등판 경기를 모두 생중계하기로 결정했다.곽성문 MBC 스포츠국장은 7일 “대형재난 사고나 이산가족 상봉 등의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박찬호의 경기를 모두 생중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뉴스 프로그램을 포함,오전 시간대에 방영되는 프로그램들의 편성에 차질이 예상된다. *iTV NBA중계권 독점계약. 최근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권을 MBC에 빼앗긴 iTV(경인방송)는 NBA엔터테인먼트와 향후 2년간 미국프로농구(NBA)경기의 독점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고 7일 밝혔다.이에 따라 iTV는 오는 17일부터 내년 6월초까지 매주 일·월요일 오전10시30분(재방 오후11시20분)NBA 정규시즌 48경기를 생중계하는 한편 올스타경기 챔피언결정전 등을 방영한다.또 내년에는 정규시즌 60경기와 챔피언 결정전 등을 방영할 예정이다.
  • 국군포로·납북자 송환 촉구 통외통위 결의 본회의 상정

    국회는 7일 예결위와 법사위,재경위,문화관광위 등 9개 위원회별로전체회의와 법안심사소위 등을 열어 새해 예산안과 관련 법안을 심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관치금융 청산 임시조치법 등 일부 법안과 예산안 처리를 연계시킬 방침을 밝힌 데다 임시국회 회기와 일정을 놓고여야간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앞으로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진통이 예상된다. 통일외교통상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국군 포로 및 납북자 송환 촉구 결의안’을 여야 합의로 채택,본회의에 넘겼다.결의안은 ▲정부가 국군 포로와 납북자문제를 일반적인 이산가족문제와 달리 인식,조속한 송환대책을 수립·실천할 것 ▲북한 당국은 전향적인 자세로 우리측 요구를 수용할 것 등 5개 항으로 이루어졌다. 박찬구기자 ckpark@
  • 납북자문제 北과 인내심 갖고 대화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2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납북자의 가족상봉이 처음으로 성사되면서 이들의 본격적인가족상봉과 해결 가능성이 기대되고 있다.냉전시대의 산물로 남북관계 진전 속에서도 여전히 한반도의 상처를 상징하고 있는 이들 납북자와 국군포로의 해법을 살펴본다. 2차 이산가족 방문(11월30일∼12월2일) 때 납북어부 강희근씨 모자의 상봉이 이뤄짐으로써 남북의 납북자 문제 해법에 관심이 쏠리고있다. 납북어부 상봉은 북한을 꾸준히 설득,납북자를 이산가족의 틀에 넣어 상봉부터 시키자는 우리 정부의 신중한 접근법이 주효했기 때문에가능했다. 그러나 ‘납북’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과 ‘비전향장기수북송’과 맞먹는 피랍자 송환을 요구하는 납북자 가족의 틈바구니에서 정부의 고민도 크다. 정부는 납북자 문제는 다른 남북 현안들처럼 한걸음씩 천천히 풀어나가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는 인식 아래 인내심을 갖고 북한과 대화를 해나간다는 전략이다.특히 이 문제가 향후 남북관계 진전을 가늠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서 해결의 우선순위도 높게 잡고 있다. 납북자란 넓은 의미에서 분단 이후 한국국민으로써 북한에 억류돼사망했거나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입북 당시의 신분,납북지역,시기,상황 등에 따라 세분되며 이를 유형별로 보면 ▲국군포로 ▲한국전쟁 중 납북된 민간인 ▲납북어부 ▲외국에서 강제납치된 민간인 ▲항공기 피랍자 ▲북송 재일교포 ▲북파공작원 등으로 나뉜다. 납북자에 대한 정의는 관계기관마다 다르다.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국군포로의 경우 별개의 사안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국방부가 공식확인한 국군포로는 351명에 불과하다.북파공작원은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관련 정보수집의 어려움과 납북자에 대한 정부의 입장차이때문에 전체규모에 대한 파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통일부는 국회에 제출한 납북억류자 현황자료에서 정전협정 이후 납북자는 모두 3,790명이며 이 중 13%인 487명이 북한에 억류돼있다고 밝히고 있다.여기에는 어부(3,692명),69년 KAL기 피랍에 따른승무원과 승객(51명),함정 피랍군인 및 경찰관(22명)등이 포함돼있다. 북한은 납북자의 북한거주사실은 인정하고 있다.하지만 ‘납북자가아니라 공화국을 동경해 자진 월북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다.북한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에겐 공식적으로 ‘의거입북자’‘의용군’‘통일의 역군’‘통일용사’ 등으로 호칭한다.납북자들은 대부분 대남선전에 활용된다.납북자를 회유,협박해 자진월북했다는 기자회견을 시키고 월북자들의 생활상을 TV를 통해 내보내기도 했다.그러나 체제에저항하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납·월북자 22명 수용확인)하거나 처형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북한의 국군포로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다.정전협정체결 이후 포로교환을 통해 남으로 갈 사람은 다 갔으므로 법적으로 국군포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주석기자 joo@. *“납북자 가족도 상봉신청하면 만남 기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주관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은 6일 “납북자 가족들도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하면 규정된절차에 따라 상봉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서 북측과 납북자의 상봉확대를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납북자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으로 풀어나간다는 게 한적과정부의 기본 원칙입니다.별도 생사확인과 면회소를 통한 상봉기회가있을 때에도 포함시키는 등 납북자 가족 상봉을 활성화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납북자 상봉을 이산가족 해법과 별도 의제로 풀어나가자’는 일부주장에 대해 박총장은 명분론적인 접근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올수 있는 방안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납북자들이 ‘왜 북한땅에 있느냐’는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가족과 인도적 차원에서 우선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세다. 2차 상봉에서 납북자 가족상봉은 북측의 태도 변화를 의미하느냐는질문에 박총장은 ‘북에 납북자는 없다’는 북측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북측도 인도적인 문제에 유연성을 보인 것이라며 앞으로 보다 전향적인 조치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적이 북측과 이 문제를 다뤄온 것은 지난 6월 말 1차 적십자회담때.비공식적인 입장 전달 수준에 그쳤지만 북측은이 문제를 제기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그뒤 9월 2차 적십자회담에서 다시 정식으로 제기했을 때는 북측 반응이 많이 누그러지는 등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국군포로의 상봉문제에 대해선 “국군포로의 가족상봉 문제도일단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적십사회담을 통해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군포로 문제는 국방장관급 회담 등 다른 정부채널에서 해결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석우기자 swlee@. * “정전협정후 끌려간 사람들 이산과 별개”. “납북자 문제를 이산가족 문제와 같이 취급해선 안됩니다” 87년 백령도 해상에서 납북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씨(55)의 딸이자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인 최우영(崔祐英·30·여)씨는 “납북자 문제해결의 첫 걸음은 납북자를 정확히 인식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납북자도 포괄적인 이산가족 범위에 포함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최씨는 “이산가족들 중에는 6·25 때 자진 월북한경우도 있지만 납북자는 모두 정전 이후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북에끌려간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따라서 “납북자가 이산가족과 같이다뤄지면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처럼 가족간에 일회성 만남은 가능하겠지만 남쪽으로의 송환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납북자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최씨는 “지금까지 남북간에 있었던 300회 이상의 협상에서 북한은 끊임없이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을 주장해왔다”면서 “하지만 우리 정부는 92년에는 이인모씨,올해는 비전향 장기수 모두를 북으로 보내 주면서도 남측의 납북자 생환에 대해선 아무런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며 정부 정책을 못마땅해 했다. 최씨는 또 납북자 문제를 전담하는 정책기구나 전담부서의 필요성을강조했다. “우리 정부에는 납북자 문제 담당직원이 통일부 인도지원국 사무관 한명이 고작”이라면서 “지원정책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정부는 지난 9월 납북자로서는 최초로 생환한 이재근씨에게 탈북자에 준한 대우를 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최씨는 “통일이란 두 체제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인데 여기에는 먼저 사람의 통합이 필요하다”면서 “근래 남북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기 때문에 납북자 문제도 더 잘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며 빠른 시일 내에 납북자들이 고향에 있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희망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여성 선언] 가족이란 무엇일까

    지난달 30일 두번째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추락하는 각종경제지표 때문에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신문지상에서 그리 큰지면을 차지하지 못했다.그들의 눈물이 우리를 감동시키기에는 주변상황도 마음도 얼어붙은 탓일까. 그럼에도 눈물을 쏟게 만드는 사연이 있었다.두 동생을 남겨두고 부모와 함께 월남한 맏형이 50년 만에 따온‘알밤’때문이다.사연인즉슨 맏형은 월남할 때 외가에 맡긴 동생들이 따라나서겠다고 조르자“뒷산으로 알밤 따러 간다”고 속여 떼어놓아야 했던 것이다. 동생들을 속이고 부모와 월남한 맏이,뒷산에 간 부모와 형을 기다리며 50년 세월을 보내야 한,이제는 늙어버린 동생들.그 동생들을 생각하며 평생‘알밤’을 가지고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형.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면‘가족’이란 무엇일까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반세기 동안 타의에 의해 가족을 만나보지 못한 이산가족들,그 켜켜이 쌓인 한으로 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야 했던 사람들.그들에게 가족은 가장 돌아가고 싶은,가장따뜻하고 근본적인 어떤 곳이다. 그러나 한 집안에 같이 살아도 늘 헤어지기만을 꿈꾸는 가족도 사실은 얼마나 많은가. 지난 1일에는 부모를 토막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은석씨가 사형을 선고받았다.얼마 전엔 잔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를 때려죽인 며느리의 이야기가 보도됐고, 딸을 매매춘에 나서게 한 어머니의 이야기도 있었다.어린 아이를 폭행한 부모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지난 80년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른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감격적으로상봉한 가족들이 서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재산상의 문제 때문에 또한번의 상처를 입고 헤어져야 했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유비통신을타고 있다. ‘혈육의 본능적인 정’‘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논리가무력해지는 사례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것도 가족이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영혼에 상처줄 수 있는 것도 가족이다.가정은 사회의온갖 스트레스를 떠안은 구성원들이 정신과 몸을 무장해제하고 속내를 드러낼 수있는 곳이기에 가장 편안한 곳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곳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양면성을 외면한 채 가정의 행복한 측면만 자꾸 부각하다 보면그 울타리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의 체감온도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이젠‘가족은 모름지기 이러이러하다’고 단순화시킬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가족들이 생겨난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들도 우리 사회 구성원이다. 우선 이산가족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달라졌으면 좋겠다.그들의 아픔을 단지‘본능적인 혈육의 정’을 끊어놓은 것으로만 설명하려는 감정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맞서는 분단 국가에서 이산가족으로 살면서 겪어야 한 고통,사회가 만들어준 다른 체제에 대한 미움과 적의,국가 복지시스템으로 메워주지 못한 고난에찬 삶 등도 그들의 설움에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이 기회에 재조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앞으로 대량 해고사태가 또 살벌하게 벌어질 판이다.그렇게되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노숙자와 그를 기다리는 가족이 적지 않을것이다.그들에게 보내는시선이‘깨진 가족’에 대한 동정심만으로일관할 때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난다.‘경제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사회 구성원’이라는 상처 위에‘동정이나 받아야 할 불행한 가족’이라는 상처를 덧입게 되는 것이다.게다가 개인의 고통과 생계 부양자인 부모의 책임만 남고 사회구조적인 책임,국가의 극빈자에 대한노력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이 가족 때문에 느낄 결핍감을 최소화하는 것은 언론과 국가 복지정책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 박미라 페미니즘잡지 IF 편집위원
  • 張忠植총재 “北서 내 거취 결정하는것 아니다”

    2차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일본으로 떠났던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4일 오후 귀국했다.모 월간지 인터뷰에서 북한 비하발언을 해 북측과 갈등을 빚었던 장총재는 거취문제에 대해 “지금입장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라며 “북측이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두고,있으라고 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북한이 문제 삼을 걸 예상했나. 북한이 방송에서 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보니 하루이틀에 없어질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내가현장에 있어서 그 사람들이 행사장에 들어오지 않거나 돌아가거나 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했다.자리를 피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자의로나갔다. ■북한이 남측 인사권까지 관여한다는 여론도 있는데. 상대방 문제를가지고 진퇴를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과거 회담에서 북측에 누가 있다고 우리가 회담을 안하거나 하지 않았다.말은 조심해야겠지만 이런문제로 진퇴를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의 폭언은 아는가. 그냥 웃고 넘어갈 거다.잡지 인터뷰가 비위를 거슬려서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이산가족 상봉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런 심한 이야기도 수용하고 싶다. 나 한사람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 ■이번 파동으로 끝난 것으로 보나. 두고 봐야 알겠다.2차 상봉이 이뤄진 것을 보면 더이상 심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 같다. 전경하기자 lark3@
  • 서울시, 남북교류 전담부서 만든다

    서울시는 남북교류 등 통일관련 업무를 전담할 부서 설치를 추진할계획이다. 고건(高建) 서울시장은 4일 시의회에서 열린 시정질문에서 민주당김성호(金成浩·은평구) 의원이 “통일운동 관련 사업을 수행할 시장 직속의 통일사업 전담부서를 설치할 용의가 있는가”라고 묻자 “현재는 납북교류업무를 기획예산실에서 총괄하고 있지만 교류사업의 진행상황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전담조직 설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답변했다. 고 시장은 또 “통일 관련 사업의 예산도 필요할 경우에는 추경예산이나 예비비 등을 활용할 계획”이라며 “통일로 입구에 통일문이나통일관 등을 건립하는 등 서울·평양간 교류사업의 방안도 필요한 시기가 되면 검토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고 시장은 이어 평양방문,평양과의 정기적인 친선축구대회 등과 관련,“향후 남북장관급 회담 결과에 따라 관계부처와 협의해 추진할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평양간 남북교류는 지난 7월30일 고 시장이 주최한 남북장관급회담 대표 초청 만찬석상에서 북측대표단장과 서울∼평양간 교류,특히 서울·평양축구대회 부활을 비롯해 비정치적인 분야에서 다방면에 걸친 교류를 추진하자는 데 합의를 본 바 있다. 또 8월17일 평양에서 열린 이산가족방문단 환송만찬에서 량만길 평양시 인민위원장이 “서울시장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고말했으며 최근 제주에서 열린 제3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서울과 평양을 왕래하며 정기적으로 친선축구대회를 개최하는 문제”를 제4차남북장관급회의에서 협의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김용수기자
  • [사설] 국방백서와 미래의 안보

    국방부는 4일 ‘국방백서 2000’을 통해 남북 긴장완화정책을 추진하되 대북한 주적(主敵)개념은 북한의 현실적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또 국방전략을 수립할 때 상대방이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더라도 실질적인 군사력의 감축이나 배치 변경 등을 통해 그 선언이 입증되지 않는 한 완벽한 대비태세를유지할 것이라고 아울러 밝히고 있다. 이번 백서는 지난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지난 9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1차 남북 국방장관회담 이후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발간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우리 국방비는 1990년대 이후국가경제나 정부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떨어지고 있지만 전력(戰力)은 꾸준히 증강되고 있다.북한도 올들어 육군 4개 사단을 늘렸고야포 500문,전투기 20대를 각각 늘렸으며 주요 전력의 55% 이상,전투기 790여대중 약 40%를 전방지역에 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남북 군사력의 대치는 계속되고 있지만 양측은 국방장관회담에서 다짐한 대로 군사적 긴장 완화와 항구적 평화 보장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이번 백서에도 비록 ‘북한 주적 개념’은 유지하고 있지만 작년의 국방백서에 비하면 ‘군사적 위협’의 대상이 매우 넓어졌다.작년엔 “우리의 주적인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위협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라고 적시하고 있지만 이번엔 ‘국방목표’에서 “주적인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뿐만 아니라 우리의생존권을 위협하는 모든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라고 밝히고있다.이는 우리 국방 발전의 기본개념을 북한의 위협에 중점 대비하는 기존의 정책에서 북한뿐만 아니라 동북아 정세변화와 지역패권 주의의 대두 가능성 등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도 동시 대비하겠다는뜻으로 확대한 것이다.올바른 정책방향의 전환이라 하겠다. 최근 이산가족 상봉과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사업 착수 등 일련의남북화해협력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한반도 냉전체제가 완전히해소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무엇보다 먼저 남북한간에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통하여 전쟁의 위험을 확실히 제거하는 것이다.한편으로는 남북관계가 진전될수록 튼튼한 안보의 뒷받침 없이는불가능하다는 것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국가 안보는 단순히 군사적인 전쟁수행능력만을 강화한다고되는 것은 아니다.군사력은 물론 외교력,경제력과 지식 정보,과학기술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질 때 그 역량이 배가된다.이를 위한총체적인 국가안보 확충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 ‘달라진 경찰’ 만화로 본다

    서울경찰청(청장 尹雄燮)은 4일 ‘진짜 우리 경찰 맞아?’라는 제목의 홍보 만화책 2만부를 발간,각 경찰서 민원실과 시민들에게 무료배포했다.만화가 이남수씨가 그린 만화책은 가로 15㎝,세로 21㎝크기의32쪽 컬러인쇄 책자다. 책자내용은 만화 주인공인 포돌이 경찰관이 범죄예측시스템(COMPSAT)을 이용,폭력 조직배들의 범행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허리케인’기동수사대가 멋지게 폭력배를 일망타진하는 것을 담고 있다.또 ‘교통번개팀’이 꽉 막힌 시내 교통을 슬기롭게 풀어주고 ‘헤어진 가족을 찾아주기 운동’을 통해 이산가족이 만나는 모습 등을 재미있게그리고 있다. 이송하기자 songha@
  • 4차 장관급 회담 올 남북교류 ‘총결산’

    오는 12일부터 15일까지 평양서 열리는 4차 장관급 회담은 숨가쁘게진행됐던 올해 남북관계 전체를 점검하고 새해 이행 사항을 협의하는‘총결산’의 자리다. 이산가족,경협,사회문화 분야의 교류협력,긴장완화를 위한 실천방안등 남북 합의 사항들이 얼마나 이행됐는지를 결산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리한다. 특히 합의사항 중 면회소 설치 같은 미실천 사항을 실천하도록 북측에 적극 요구한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또 따질 것은 꼭 따지고 넘어가겠다는 태도다. 김형기(金炯基) 통일부 정책실장은 4일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일부 나타났던 국민의 자존심을 거스르는 북측의 태도에 대해선 4차회담에서 짚고 넘어가겠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기자의 억류사건등을 의식한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북측이 급격한 남북관계의 발전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점을 고려,조급한 시행을 재촉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회담에선 연내에 불가능하게 된 3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적십자회담 개최 일정을 재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올해 실천키로 합의됐던 생사확인·서신교환과 면회소 설치 등의실천 방안도 중점 협의사항이다. 서울·평양 교환축구대회와 교수·대학생·문화계 인사의 상호교환방문의 구체적인 일정과 시행 방법도 가시화한다. 9월말 제주도 3차 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은 이 문제들을 긍정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남북 경협 추진위’의 설치문제도 구체화될 전망이다.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한 문제도 주요 의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에 앞선 사전답사 방문성격을갖는 김 위원장의 방문은 당초 올해 안 실현이 기대됐으나 남북관계일정의 전반적인 지연으로 내년 연기가 불가피하게 됐다.어떤 식으로든 김 위원장의 방문연기에 대해서는 북측의 반응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석우기자 swlee@
  • 이산가족 상봉 후유증 근본적 대책만이 해결책

    50년만에 혈육을 만난 2차 상봉가족들은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떠나보낸 부모형제가 눈앞에 아른거려 일손이 잡히지 않는 등 심한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이산가족들과 전문가들은 1차 상봉때에도 나타났던 이같은 후유증을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단발적인 만남이 아닌 면회소 설치, 서신교류등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북녘의 오빠 권태성씨(88)를 만난 남녘의 누이 태운씨(85·여)는 “오빠를 본 것만으로도 여한이 없으나 막상 만나고 나니 모든 사람이다 오빠 얼굴로 보인다”고 말했다.태운씨는 오빠를 만난 뒤 중풍이더 심해졌다. 북녘의 조카 조성명씨(65)를 만난 고모 조상교씨(86·여)는 “언제다시 볼지 기약도 없이 떠나보내고 나니 가슴이 울렁거리고 걱정만앞선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카의 북쪽 주소를 적어놓긴 했지만 편지를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석씨(78)는 북녘의 동생 득씨(69)를 만난 뒤 “마치 꿈속에서 죽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자주 소식이라도전할 수 있으면 더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하소연했다. 동생 성두원씨(70)를 만난 남녘의 누나 금원씨(76·여)는 “무사히잘 갔는지,고생스럽지는 않을지,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돼 시간이갈수록 심란하기만 하다”고 털어놓았다. 신경과전문의 김정일씨(43)는 “50년 동안 기다리며 가슴속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던 대상을 막상 만나게 되자 삶을 지탱해주던 힘을잃게 되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산가족들은 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만남과 교류의폭을 넓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은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면서동시에 면회소 설치와 편지교환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밝혀 1,000만 이산가족들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박록삼 이송하기자 youngtan@
  • 2차 남북이산상봉/ 張忠植 한적총재 거취 주목

    2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자리를 피한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총재가 4일 일본에서 돌아온다.상봉이 시작되기 전날인 29일 급하게떠난 장총재의 공식 일본방문 이유는 ‘일본 적십자측과 사할린 동포문제 협의’였다.그러나 일적측은 협의된 바 없다고 밝혔고 일본에서의 활동도 드 러나지 않고있어 장 총재의 거취가 주목된다. 상봉기간 동안 북측은 장총재가 없음에도 끊임없이 장총재를 비난했다. 장 총재의 거취문제와 관련,한 고위 관계자는 “적십자 총재 선출은 총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빨리 이뤄지지 않는다”며 교체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 총재가 남북간 적십자회담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찬반 여론이 일고 있다.남북관계의 물꼬가 트이는 조심스런시기에 장 총재가 ‘상대를 자극하는’ 북한 비하발언을 했다는 것이장 총재의 사퇴를 바라는 측의 주장이다.반면 남북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측의 요구나 주장에 대해 너무 저자세라는 지적도 있다. 전경하기자
  • 2차 남북이산상봉/ 방북단 귀환 왜 늦어졌나

    북한이 남한의 일부 언론보도를 문제삼아 2차 이산가족 상봉일정을늦추는 등 ‘언론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일 2차 남북 이산가족의 귀환이 약 3시간 정도 지연됐다.이유는 북측이 1일자 조선일보 인터넷 신문의 ‘김일성 장군 호칭 잦아남측 가족 머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북측은 1일 밤 11시40분쯤 공동취재단으로 평양에 가 있던 조선일보사진기자를 남북연락관 접촉실로 데려가 3시간 정도 억류했다. 이 때우연히 연락관실에 들른 남측 연락관이 “감금이 아니냐”며 항의하자 이들은 사진기자가 평양 현지에서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며 추궁했다는 것. 북측은 남북 연락관 협의에서 사진기자의 노트북과 카메라 2대를 직접 검사해 보기로 하고 새벽 3시쯤에야 사진기자를 방으로 돌려보냈다.북측은 “전체 분위기나 정서에 안 맞지만 딱히 문제삼을 것은 없다”면서 사진기자 카메라에 파일로 저장됐던 북한 시내 스케치 사진등을 다 지우고 돌려줬다. 북측은 ‘1.조선일보는 사죄하라.2.아니면 연락관이라도 사죄하라.3.앞으로 계속 이럴 경우 교환방문 할 수 없다’는 세가지 조건을 내세웠다.이 요구에 남측이 반대,귀환 출발이 지연됐다.남측이 화해협력 정신에 맞춰 일을 진행하자고 설득,2일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상황이 종료됐다.이에 따라 평양에서 2일 오전 9시부터 30분간 예정됐던 환송상봉은 낮 12시10분부터 시작돼 20여분에 그쳤고 서울 북측방문단의 평양귀환도 늦춰졌다. 전경하기자 lark3@
  • 이산상봉 대상자에 납북자 포함

    제3차 이산가족 방문단에는 일정 비율의 납북자 가족이 포함될 전망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3일 “납북자를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으로 규정,3차 방문단을 구성할 때도 전체 대상자 100명 가운데 5∼10% 이상을납북자 가족들에게 할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2차 이산가족 방문에서 김삼례씨(73·여)가 지난 87년 1월 납북된 동진27호의 갑판장이었던 아들 강희근씨(49)를 만나게 됨으로써앞으로 납북자 가족들도 상봉의 길이 열리게 됐다. 한편 제3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적십자회담은 내년으로 연기될것으로 보인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이날 “이달중으로 예정됐던 3차 남북 적십자회담과 방문단 교환이 내년으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에 서울에 온 북측 관계자들이 이러한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3차 적십자회담은 내년초에,3차 방문단의 교환 방문은 내년 2월말 또는 3월초로 연기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남북한 2차 이산가족 상봉단은 2일 2박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고려항공편으로 서해 직항로를 통해 서울과 평양으로 각각 귀환했다. 이석우 전경하기자 s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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