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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불안없는 나라 살맛나는 국민(장기표 지음, 구사 펴냄) 지난 50년간 학생운동, 노동운동, 재야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온 저자가 총체적인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나아갈 바를 제시했다. 저자는 “모든 국민이 자아실현을 통해 행복을 누리는 국가 건설”을 대한민국의 청사진으로 꼽는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을 내다보는 대한민국에 돈 없어 공부할 수 없는 학생, 돈 없어 병원 갈 수 없는 환자, 집 없어 고통받는 국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저자는 부정부패 척결과 조세제도의 혁명적 개혁을 통한 ‘국가정상시스템으로의 변혁’만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에게 참다운 행복과 희망의 밝은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310쪽. 1만 5000원.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마지막 수업(앤더슨 쿠퍼·글로리아 밴더빌트 지음, 이경식 옮김, 세종서적 펴냄) CNN 간판 앵커이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꼽히는 앤더슨 쿠퍼가 미국 3대 재벌가의 상속녀로 평생을 유명 인사로 살아온 어머니의 아흔한 번째 생일날부터 1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쓴 회고록. 돈, 명예, 권력을 모두 손에 넣은 이들이지만 먼저 세상을 뜬 남편(아버지)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형)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은 둘 사이를 오랫동안 멀어지게 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 마침내 서로를 용서하기까지 모자가 나눈 진솔한 대화는 행복이 멀리 있지 않고, 거대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380쪽. 1만 6000원. THIS IS FILM POSTER(이관용 지음, 리더스북 펴냄) 영화 ‘명량’, ‘터널’, ‘범죄와의 전쟁’, ‘복수는 나의 것’ 등 19년간 300여편의 포스터를 만든 아트디렉터 이관용 디자이너가 펴낸 국내 최초의 영화포스터 아트북. 저자가 직접 디자인한 베스트 영화 포스터 51컷과 함께 포스터가 만들어진 배경 및 노하우가 수록됐다. 또한 2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해 온 한국 영화의 역사도 담겨 있다. 한국 영화 포스터는 왜 주로 배우의 얼굴만 담아낼까. 저자는 “흥행의 60% 이상을 주연배우에 대한 선호도와 티켓 파워에 의존하기 때문”이라며 “주연배우는 늘 그 배우가 그 배우다 보니 관객이 한국 영화 포스터를 지루해한다”고 지적했다. 280쪽. 2만 8000원. 이즈미 도쿠지, 일본 최고재판소를 말하다(이즈미 도쿠지 지음, 이범준 옮김, 궁리 펴냄) 70년간 유지돼 온 일본 헌법과 사법 체계를 비판적으로 살펴본 책. 저자는 1963년 도쿄 지방재판소 판사보를 시작으로 최고재판소 사무총장, 도쿄 고등재판소 장관 등을 거쳐 2002년 11월부터 6년 3개월간 최고재판소 재판관으로 일한 법조인이다. 정통 법관 출신이면서도 최고재판소 재판관 시절 적극적으로 소수 의견을 낸 것으로 유명하다. 저자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재판소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헌법에 보장된 사회적 소수자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국민주권과 기본권이라는 두 바퀴를 가진 일본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424쪽. 2만 5000원. 자살폭탄테러(탈랄 아사드 지음, 김정아 옮김, 창비 펴냄) 2001년 9·11 테러 이후 자살폭탄 테러는 이슬람교도의 의무인 ‘지하드’(성전)를 실천하려는 이슬람의 독특한 죽음문화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나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뉴욕시립대 인류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문명 대 야만’, ‘기독교 대 이슬람’, ‘정당한 전쟁 대 악마적인 테러’라는 서구의 학자와 언론의 이분법적 사고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테러와 전쟁으로 일상이 된 폭력의 공간을 돌아보면서 윤리적으로 선한 살상과 악한 살상을 구별하는 행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248쪽. 1만 5000원.
  • [오늘의 눈] 모바일 시대, 다시 묻는 데이터 권리/김소라 산업부 기자

    [오늘의 눈] 모바일 시대, 다시 묻는 데이터 권리/김소라 산업부 기자

    지난여름 휴가 기간 동안 내 스마트폰에서는 ‘구글 포토’로부터의 알림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렸다.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할 때마다 “새 라이브러리가 생성됐다”는 알림이 떴고, 구글 포토 애플리케이션으로 들어가 보니 내가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날짜별, 장소별로 구분돼 정리돼 있었다. 일일이 태그를 달지 않아도 나와 가족들의 얼굴을 구분해 제각각 앨범을 만들어 놓는 구글의 ‘머신러닝’(기계학습) 알고리즘에 감탄한 것도 잠시였다. 내 스마트폰 갤러리에서 삭제했던 사진이 앱에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앱을 이리저리 뒤져 보며 구글 포토에 ‘백업’이라는 기능이 있다는 걸 알고 기분이 찜찜해졌다. 내 스마트폰 메모리에만 저장되는 줄 알았던 사진과 동영상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구글의 서버에까지 저장된다는 의미여서다. 물론 내 메모리로는 감당할 수 없는 용량의 사진을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앱에서 사진을 삭제하면 클라우드에서도 삭제된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기록인 스마트폰 속 사진을 구글의 앱이 관리하며 저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모바일 시대에 스마트폰은 ‘제2의 자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종일 내 손에 들린 채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만났는지,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지, 누구에게 어떤 속마음을 털어놓았는지를 스마트폰은 기억한다. 이런 스마트폰 속 데이터가 주인의 손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는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업무와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담긴 스마트폰을 잃어버려 생겨나는 불편은 물론 개인정보가 유출돼 악용될 경우 위험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활용한 위치기반서비스(LBS)와 민감한 금융 정보에 기반한 핀테크, 사물인터넷(IoT), 헬스케어 등 모바일 산업은 점점 더 많은 개인정보를 빨아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모바일 시대에는 과거 PC 시대보다 적극적인 관점에서 이용자 개개인의 데이터 권리를 고민해야 한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들이 ‘테스트 베이스’로 삼고 있는 한국은 지금 시험대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로 우리나라 스마트폰의 80% 이상을 차지한 구글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정밀 지도 데이터의 반출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페이스북이 이용자들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광고에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글에 우리나라의 지도 데이터를 내줄지 여부를 서둘러 결론 내릴 필요는 없다. 다만 전 세계의 ‘빅브러더’나 다름없는 글로벌 IT 공룡들을 상대로 우리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데이터 권리를 요구할 방안이 있을지는 스스로 반문해야 한다. 지난 14일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는 구글코리아 관계자를 상대로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여전히 쟁점은 안보와 산업, 세금 문제 등에서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다. ‘디지털 쇄국’과 ‘디지털 종속’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디지털 통제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sora@seoul.co.kr
  • [한국 ‘저성장 파고’ 이렇게 넘자] 獨기업 제품 연구비 내면 정부도 실탄 지원… ‘기술 신기원’ 합작

    [한국 ‘저성장 파고’ 이렇게 넘자] 獨기업 제품 연구비 내면 정부도 실탄 지원… ‘기술 신기원’ 합작

    獨 프라운호퍼硏, 기업 위탁받아 연구스마트 아이스박스 등 실용 제품 두각 국책硏, 기업 기술적 한계 극복 뒷받침 2년 전 독일 드레스덴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국책 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연구소를 찾아 산·학·연 협력 전략 간담회를 열었다. 첨단 세라믹 소재를 연구하는 드레스덴의 프라운호퍼 IKTS 연구소에서 박 대통령이 시찰한 기술은 태양광 등을 활용해 자립적 에너지 생산·소비 시스템을 구축한 ‘제로 에너지 빌딩’이나 ‘매트형 의료기기’였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이미 시중에서 팔고 있는 제품들이다. 지난 5월 중소·중견 기업 기술사업화·상호기술협력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을 위해 독일 뮌헨 프라운호퍼 재단본부를 찾은 중소기업청 관계자들도 시제품을 보며 실용적인 프라운호퍼연구소의 연구 풍토를 감지할 수 있었다. 중기청 관계자는 16일 “아이스박스에 센서를 달아 내용물의 부패·냉장 상태를 알아보는 기술을 참관했다”면서 “여러 곳에서의 쓰임이 단숨에 떠오를 만큼 실용적인 기술이었다”고 평가했다. 프라운호퍼연구소가 온도 센서와 온도 유지 기술을 활용해 기존 제품을 혁신한 사례는 최근 몇 년 동안 사례만 따져도 대여섯 건에 이른다. 맥주회사 사부밀러와 프라운호퍼연구소가 지난 5월 공동 개발한 ‘스마트 아이스박스’가 대표적인 예인데, 이 휴대용 아이스박스는 센서와 냉각장치를 통해 맥주가 가장 맛있는 온도인 4도를 유지시킨다. 프라운호퍼연구소의 연구가 일상 소비재를 개선하는 데 국한됐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오히려 독일 전역의 67개 연구소에서 2만 4000여명의 연구원이 근무하는 프라운호퍼에서 연간 수행하는 9000여개의 연구 과제 중엔 헬스·영양·소비재뿐 아니라 환경·안전·보안·정보기술(IT)·에너지·공장자동화·비파괴검사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산업에 특화된 연구가 많다. 또한 프라운호퍼의 연구는 기존에 있던 제품을 개량·혁신하는 수준을 넘어 세상에 없던 제품을 새롭게 만드는 차원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1992년 개발돼 지금까지 매년 1000억원 이상의 라이선스 수입을 연구소에 제공하는 MP3 압축 알고리즘이 프라운호퍼연구소의 대표적인 개발품이다. 흰색 LED, 고해상도 열감지 카메라 등도 프라운호퍼의 주요 개발품으로 꼽힌다. 의료용 카메라로 잠재력이 높은 1㎜ 미만 크기의 초소형 카메라, 가상현실(VR) 핵심 기술인 사운드캡처링(소리 제어) 기술, 증강현실(AR)용 ‘스마트 안경’의 핵심 기술인 눈동자 추적 기술, 수중 AR 기술 등 미래 기술의 최전선에서도 프라운호퍼의 활약이 활발하다. 프라운호퍼가 일상 소비재부터 최첨단 미래 기술까지, 기존 제품을 개량하는 단계에서부터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기술까지의 역량을 모두 보유할 수 있었던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정부와 국내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들은 이 연구소의 예산 시스템에 주목했다. 프라운호퍼연구소는 독일 지방정부로부터 전체 예산의 30%를 지원받는데, 일부 원천기술 관련 연구를 제외하고는 기업으로부터 연구개발(R&D) 요청과 연구비를 받은 뒤에야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A기업이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R&D를 프라운호퍼에 돈을 주고 맡기면, A기업이 낸 돈만큼의 예산을 정부가 추가로 지원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R&D 과제를 기업이 정하고, 프라운호퍼연구소별 책임자들은 기업이 비용을 들여서라도 갖추고 싶어 하는 기술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프라운호퍼에 연구를 위탁할 때 기업은 스스로도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덕적 해이가 방지되는 구조다. 프라운호퍼가 만일 R&D 과제를 성공해 내지 못한다면 기업들이 더이상 제 돈을 들여 가며 이 연구소에 일감을 줄 리 없다. 실제 독일 베를린에 있던 프라운호퍼 컴퓨터 아키텍처 연구소(FIRST)의 민간 수탁이 전체 예산의 25%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몇 년간 이어지자 이 연구소를 공중분해해 다른 연구소에 분산, 흡수시킨 적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3년 프라운호퍼의 예산 구성은 출연금이 31%, 정부 수탁이 18%, 민간 수탁이 32%, 해외 수탁이 19%로 구성됐다. 같은 해 정부 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의 예산 구성을 보면 출연금이 41%, 정부 수탁이 45%로 86%를 차지했다. 프라운호퍼와 다르게 한국 출연연 중에는 정부 재원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거대 과학 관련 기관 등이 포함되긴 했지만, 출연금과 정부 수탁 비중이 37% 포인트의 격차를 보인 셈이다. 재원 출처에 따라 연구 과제가 달라진 이후의 결과는 성과 지표의 격차로 이어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결과 1인당 등록 특허 건수는 프라운호퍼가 0.21건(2011년), 국내 출연연이 0.22건(2012년)으로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2011년 특허 건당 기술료를 비교해 보면 국내 출연연이 400만원 선인데 비해 프라운호퍼는 5800만원으로 격차가 컸다. 프라운호퍼의 기술은 제품화·상용화가 빠르게 이뤄진다는 뜻인 동시에 국내 출연연의 특허가 실적 쌓기식 ‘장롱특허’란 징후가 뚜렷한 셈이다. 최근 프라운호퍼연구소 분원이 국내 포항, 송도, 울산 등지에 설립되고 국내 출연연 일부를 프라운호퍼 방식으로 재편하는 등 ‘프라운호퍼 배우기’가 확산 중이다. 그러나 ‘팔리는 상품을 만드는 R&D’로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고민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주한 프라운호퍼 한국사무소 대표는 “프라운호퍼는 기술을 연구한 뒤 이를 상용화하는 단계를 고민하는 조직이 아니라 상용기술 개발 요청을 받고 고급 연구 인력들이 R&D를 대신 해 주는 곳”이라며 프라운호퍼를 일종의 R&D 아웃소싱 기관으로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기업은 상용화 직전 R&D를 전담하고 학교·출연연은 이론적인 R&D에 치중하는 이분법적 역할 구분이 뚜렷해 ‘R&D 아웃소싱 시장’이란 중간 지대를 키우지 않은 국내에서 프라운호퍼 모델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지난 몇 년 동안 프라운호퍼 모델을 국내에 도입하려는 시도는 가용 R&D 예산을 둔 대기업만 활용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모델의 핵심 요인인 민간 수탁 비용에 부담을 느낀 중소·중견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해서다. R&D에 기반한 혁신기술이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기술력이 단단한 기업일수록 성장 가능성이 높아지는 체계가 한국에서의 프라운호퍼식 응용연구 성공 열쇠로 꼽힌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데스크 시각] 페미니즘 권하는 사회/이순녀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페미니즘 권하는 사회/이순녀 문화부장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난 주말 공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의 음담패설 녹음 파일의 수위는 가히 핵폭탄급이었다. 트럼프의 막말에 어지간히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기혼 여성을 유혹하려다 실패한 얘기를 온갖 육두문자를 섞어 상스럽게 떠벌리는 내용을 듣자니 남의 나라 대선 후보인데도 울화통이 터졌다. 추가로 폭로된 다른 파일에선 딸 이방카까지 성적 농담의 대상으로 삼았다니, 이처럼 저속하고 파렴치한 성 인식을 지닌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갖게 된 미국민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우리 시간으로 어제 오전 중계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간 2차 TV 토론은 점입가경이었다. 트럼프는 “개인적 농담이며 가족을 비롯해 미국인들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몸을 낮췄지만 토론에 앞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 4명을 데리고 기자회견을 열어 토론을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갔다. CNN 등 미 언론들은 “미 대선 역사상 가장 추잡한 싸움이 벌어졌다”고 비꼬았다. 여성 비하를 넘어 성범죄에 가까운 발언을 하고서도 자진 사퇴할 생각은 ‘제로’라고 당당히 말하는 트럼프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부동층이 많다는 점이다. 공화당의 유력 지도자들은 앞다퉈 지지 의사를 철회하고 있지만 폴리티코의 조사에서 트럼프가 대선 행보를 중단해야 한다고 응답한 공화당 지지자는 12%에 불과했다니 이제는 한물간 유행어가 된 ‘뭣이 중헌디!’가 절로 떠오른다. 페미니즘의 역사가 100년을 넘은 미국에서도 아직 여성에 대한 차별과 비하, 혐오가 이 정도일진대 그 절반도 안 되는 우리나라는 말해 무엇할까 싶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사례만 봐도 어느 대학 교수는 “여자는 28살에 결혼하는 게 금메달이다. 누가 서른 살 먹은 여자와 결혼하겠나? 그건 동메달이다”라고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언행을 일삼고, 다른 대학 교수는 여제자들에게 “네가 내 은교다”라며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성주군수는 지난달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여성들에게 “술집하고 다방 하는 것들”이라고 혐오성 발언을 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공적 영역과 민간 부문에서 여성들의 진출이 늘어나고, 적어도 객관적인 경쟁이 보장된 분야에선 성차별이 완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는 여성에게 특정 역할을 요구하고, 그것에서 벗어날 경우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여성 혐오’ 논란과 페미니즘의 재부상은 이 같은 사회 현상에 대한 저항의 표출이다. 메갈리아, 워마드 같은 급진적 단체들이 구사한 미러링, 일명 되받아치기 전략이 불러온 ‘충격요법’에 힘입은 바 크지만 현재 페미니즘은 1980~90년대 이후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당장 서점가에 관련 서가 쏟아지고 있다. 10일 교보문고의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나쁜 페미니스트’(5위),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8위) 등 2권의 페미니즘 서적이 10위권 안에 들어 있다. 대학생 때 학회에서 여성학 교재 삼아 몇 권 읽은 이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도 얼마 전 정희진씨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사서 틈틈이 읽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페미니즘은 투쟁과 쟁취가 아닌 협상과 사유, 공존과 상생의 길이라고.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 새로운 목소리로 소통과 공존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지금, 이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권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coral@seoul.co.kr
  • “정권교체 넘어 경제교체… ‘국민 돈 버는 시대’ 열어야”

    “정권교체 넘어 경제교체… ‘국민 돈 버는 시대’ 열어야”

    700여명 참석… 대선출정식 방불 김종인 “文, 경제민주화 잘못 이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6일 “대한민국의 대전환, 국가 대개조가 필요하다”면서 “정권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확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해보고 싶다”며 강력한 집권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국가와 기업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을 개인과 가계로 옮겨 ‘국민이 돈 버는 시대’로 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준비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밝히고 “반칙과 특권, 부패에 대해선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되지 않는 ‘대청소’를 꼭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소장을 맡은 ‘정책공간 국민성장’은 발기인으로 500여명의 대학교수가 참여할 만큼 ‘매머드급’으로 야권 인재풀을 상당수 선점했다. 다른 야권잠룡들이 문 전 대표의 싱크탱크 출범에 촉각을 곤두세운 까닭이다. 실제 이날 행사에는 300여명의 발기인을 비롯해 600~700여명의 정계·학계 인사들이 몰려 대선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연설 도중 “문재인! 문재인!”이라는 연호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걸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참석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문 전 대표는 성장·분배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국민성장’을 앞세워 정권교체 의지를 드러냈다. 어젠다 경쟁에서 성장담론을 선점해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연설의 대부분을 경제비전 제시에 할애한 문 전 대표는 ‘정권 교체를 넘어선 경제 교체’를 강조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은 실패”했고 “대한민국 굴욕의 10년으로 기억될” 만큼 비관적이라는 게 그의 현실인식이다. ‘경제 교체’와 ‘국민이 돈 버는 성장’을 위해 시장에서의 공정 원칙과 정의, 일자리 창출을 제안하는 한편 재벌 개혁을 다짐했다. 이와 관련, 더민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는 라디오에서 “(문 전 대표의 싱크탱크는) 말은 거창하게 성장과 경제민주화를 동시에 추구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질적으로 경제민주화는 성장에 별로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닌데 이해가 잘못돼 있다”고 비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문재인 기조연설 “수권능력 자신감” 출마선언문 뺨쳐

    문재인 기조연설 “수권능력 자신감” 출마선언문 뺨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 심포지엄에서 대선을 향한 포부를 드러냈다. 6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은 600∼700명의 정계·학계 인사가 몰려 그야말로 대선 후보의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싱크탱크 창립을 두고 사실상 문 전 대표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정책경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문 전 대표도 이를 의식한 듯 이례적으로 “세상이 바뀔 거라는 희망을 드려야 한다. 제가 반드시 그렇게 해내겠다”고 강조하는 등 대권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면서 ‘달라진 문재인’의 모습을 노출, 이후 행보에 더 고삐를 죌 것을 예고했다. 행사장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홍걸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 달라진 文 “수권능력 자신감…기적의 역사 이제 시작” = 문 전 대표는 이날 과거와 같은 성장-분배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국민성장’을 앞세워 정권교체 의지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날 문 전 대표의 A4 용지 14장, 1만자가 넘는 기조연설문에는 출마선언문을 떠올리게 할 만큼 비전과 각오가 고스란히 담겼다. 문 전 대표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48회로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 ‘경제’라는 단어도 38회, ‘기업’이라는 단어도 37회를 사용했다. ‘성장’ 이라는 단어도 36회나 등장해 눈에 띄었다. 대선 어젠다 경쟁에서 성장담론을 선점해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셈이다. 특히 이전과는 달리 내년 대권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직접적으로 노출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의 수권능력에 대해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며 “경제를 살릴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또 “‘국민이 돈버는 성장’ 시대로 가기 위한 저의 구상을 말하겠다”, “비정규직 문제는 중차대한 문제로 민주정부도 해결못했다는 반성을 한다.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하는 등 자신이 직접 최전선에 나서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 영광의 시대는 이제 시작”이라고도 해 큰 박수를 받았다. 기조 연설 직전에는 “제주와 울산 등에서 태풍 피해가 심하다. 그런 가운데 행사를 하게 돼 마음이 무겁다”며 “행사를 마치는 대로 수재 현장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 문전성시 행사장…“정권교체” 한목소리 = 행사장은 문전성시를 이루며 주최 측이 미리 준비한 300여석의 의자가 꽉 찬 것은 물론 300~400명은 선 채로 연설을 들었다. 국정감사 기간인 만큼 현역 국회의원은 김경수 김병기 의원 등 두명만 참석했지만, 김홍걸 더민주 국민통합위원장이나 노건호씨에 이어 국민의 정부에서 문화부장관을 지낸 정동채 전 장관 등도 참석했다. 노씨는 참석자들과 사진을 함께 찍으면서도 “문 전 대표를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냐” 등의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연설과 토론에 나선 인사들은 하나같이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장을 맡은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여기 모인 이유는 같을 것이다. 시대적 과제가 엄중하다”며 “국가의 대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변화와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며 “문 전 대표는 참여정부에서부터 지켜본 분으로 능히 새로운 길을 개척할 짐을 질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자문위원장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은 중도 실용노선으로 가되, 국민성장이 변화를 이끌어내고 국력재생의 기관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권교체 넘어 경제교체… ‘국민 돈 버는 시대’ 열어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6일 “대한민국의 대전환, 국가 대개조가 필요하다”면서 “정권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확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해보고 싶다”며 강력한 집권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국가와 기업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을 개인과 가계로 옮겨 ‘국민이 돈 버는 시대’로 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준비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밝히고 “반칙과 특권, 부패에 대해선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되지 않는 ‘대청소’를 꼭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소장을 맡은 ‘정책공간 국민성장’은 발기인으로 500여명의 대학교수가 참여할 만큼 ‘매머드급’으로 야권 인재풀을 상당수 선점했다. 다른 야권잠룡들이 문 전 대표의 싱크탱크 출범에 촉각을 곤두세운 까닭이다. 실제 이날 행사에는 300여명의 발기인을 비롯해 600~700여명의 정계·학계 인사들이 몰려 대선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연설 도중 “문재인! 문재인!”이라는 연호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홍걸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참석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문 전 대표는 성장·분배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국민성장’을 앞세워 정권교체 의지를 드러냈다. 어젠다 경쟁에서 성장담론을 선점해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연설의 대부분을 경제비전 제시에 할애한 문 전 대표는 ‘정권 교체를 넘어선 경제 교체’를 강조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은 실패”했고 “대한민국 굴욕의 10년으로 기억될” 만큼 비관적이라는 게 그의 현실인식이다. ‘경제 교체’와 ‘국민이 돈 버는 성장’을 위해 시장에서의 공정 원칙과 정의, 일자리 창출을 제안하는 한편 재벌 개혁을 다짐했다. 그는 “전경련의 최근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행위는 반칙과 특권의 상징과도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더민주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는 라디오에서 “(문 전 대표의 싱크탱크는) 말은 거창하게 성장과 경제민주화를 동시에 추구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질적으로 경제민주화는 성장에 별로 지장을 주는 것이 아닌데 이해가 잘못돼 있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김성원 대변인은 논평에서 “실패한 참여정부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 할 소리가 아니다”라면서 “대청소의 대상은 바로 문 전 대표의 구태정치”라고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국민들 온통 먹고사는 걱정뿐… 북핵·지진에 추석 민심 불안”

    “국민들 온통 먹고사는 걱정뿐… 북핵·지진에 추석 민심 불안”

    여야 의원들이 18일 전한 추석 민심의 공통된 키워드는 ‘불안감’이었다. 연휴에 앞서 발생한 북한의 5차 핵실험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에 이어 연휴 기간 광주와 호남 지역을 강타한 폭우 피해 등으로 의원들이 전한 민심은 추석 내내 뒤숭숭했다. 조원진(대구 달서병) 새누리당 의원은 “추석 전에 큰 지진이 발생하는 바람에 지진이 또 일어날까 걱정하는 지역 주민이 많았다”면서 “국내에 내진 설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건물이 적지 않을 텐데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해영(부산 연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부산 기장 고리원전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면서 “부산은 몇 년째 경기가 안 좋은 데다 지진까지 나면서 민심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정부에 대한 실망감도 적잖게 표출됐다. 한정애(서울 강서병) 더민주 의원은 “정부에 실망했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면서 “정부가 못하니 국회가 제대로 하라는 질책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의 핵실험 탓인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민심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옮겨가는 기류도 일부 감지됐다. 김명연(경기 안산단원갑) 새누리당 의원은 “북한 핵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오고 갔고 사드 배치를 해야 한다는 주민들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면서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면서 이런 입장을 당론으로 정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는 야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컸다”고 말했다. 김관영(전북 군산) 국민의당 의원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북한 핵실험 이후 사드 배치에 대한 국민 여론이 찬성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게 사실인 것 같다”면서 “안보 문제에 있어 국론이 분열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어 국민의당도 한 번 더 논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런 배경에서인지 추미애(서울 광진을) 더민주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적으로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지만 국익 차원에서 단순히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법적 접근이 아닌 의원과 전문가 등의 모든 논의를 거쳐 당론을 결정하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민심의 집합소인 재래시장의 민심은 특히나 팍팍했다. 지상욱(서울 중·성동을) 새누리당 의원은 “지역 재래시장을 돌아봤는데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넘쳐났다”면서 “이제 제발 여야가 그만 싸우고 서민들이 잘살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전했다. 같은 당 박찬우(충남 천안갑) 의원도 “이번 추석 때 천안역 1일 명예역장으로 근무하고, 천안 전통시장을 찾으며 민심을 들어봤는데, 온통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뿐이었다”고 말했다. 나라 경제를 걱정하며 한숨짓는 국민들도 상당수였다. 최인호(부산 사하갑) 더민주 의원은 “조선업 구조조정과 한진해운 법정 관리 문제에 원전 안전 문제까지 겹쳐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라고 호소하는 부산시민들이 적지 않았다”면서 “불안과 절망으로 추석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고 전했다. 김관영 의원은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심각한 절망감을 토로하는 자영업자, 소상공인도 부지기수였다”고 말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도 입방아에 올랐다. 변재일(충북 청주 청원) 더민주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박 대통령이 각종 의혹을 받고 있는 우 수석을 왜 계속 유임시키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며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내년 대선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출마할지 궁금증도 컸다. 박명재(경북 포항남·울릉) 새누리당 의원은 “반 총장이 기정사실처럼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는 지역민이 많았는데, 확답을 주진 못했다”고 했다. 변재일 의원은 “보수 세력에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반 총장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게 다수의 충청 민심이었다”면서 “다만 외교와 안보 분야는 반 총장이 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먹고사는 문제와 내치 측면에서 검증된 인물인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전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사설] 박 대통령·여야 대표, 북핵 초당 대처 뜻 모아야

    일방적 요구, 당리당략 버리고 상생·협치 정치 반드시 실현을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등 여야 대표들과 회동을 갖는다. 이번 회담은 박 대통령이 북한의 5차 핵실험 등 국가 안보 위기 상황을 맞아 여야 3당 대표에게 회담을 전격 제안했고, 여야 대표들이 이를 수용하면서 성사된 것이다.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가 만나는 것은 20대 국회 출범 이후 처음이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회담은 5차 핵실험 직후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노골적으로 요구할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열리는 만큼 박 대통령은 여야 3당 대표에게 북한의 핵 위협과 관련해 여야의 초당적인 대응과 정치권의 내부 단합을 요청할 예정이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최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국 정상과의 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국제사회의 ‘북핵 불용’ 공조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한 야당 측 협조를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핵실험은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지형 자체를 바꿔 놓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의 일치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경제 병진 정책이란 무모한 전략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다. 5차 핵실험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핵전력화를 달성했고 실전 배치가 임박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면서 핵위협은 더욱 가중되는 상황이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핵실험 직후 “핵보유국의 지위에 맞게 대외 관계를 확대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를 향해 노골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달라는 위협과 다름없는 것이다. 국제 공조를 통해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북한의 의지를 꺾고 북핵 불용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치권은 국론 분열로 이어지는 당리 당략적 시각을 버리고 안보 불안감을 해소할 책임이 있다.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는 북한의 핵 위협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20대 국회 출범 이후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크다. 정치공학적 프레임과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국익을 위한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이 돼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귀담아야 한다.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 주지 못하고 과거처럼 서로 일방적인 요구만 해서는 안 된다. 4·13 총선 이후 여야는 수없이 협치와 상생, 민생의 정치를 약속했지만 20대 정기국회 개막 이후 서별관 청문회 등의 정치 현안과 맞물려 극심한 정쟁에 다시 휩싸이는 분위기다. 최악의 무능 국회로 평가받는 19대 국회를 재연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기싸움이 더이상 지속돼선 안 된다. 이번 여야 회담을 계기로 협치 정치를 복원해 민생 국회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 [김욱동 창문을 열며] 농장과 공장사이

    [김욱동 창문을 열며] 농장과 공장사이

    우리말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낱말은 모음 하나 차이로 뜻이 크게 달라진다. 자음도 마찬가지다. 가령 ‘농장’과 ‘공장’은 자음 ‘ㄱ’과 ‘ㄴ’밖에 다르지 않은데도 의미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사전에서는 농장을 농사지을 땅과 농기구·가축·노동력 따위를 갖추고 농업을 경영하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밀 농장, 돼지 농장이니 하는 곳이 바로 그것이다. 공장은 원료나 재료를 가공해 물건을 만들어 내는 설비를 갖춘 곳이다. 한마디로 농장이 살아 있는 식물이나 동물을 기르는 곳이라면 공장은 생명이 없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최근 애완용 강아지를 대량 공급하는 이른바 ‘강아지 공장’에 대해 정부가 전수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강아지 공장의 동물 학대 문제가 논란이 되자 실태를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얼마 전 농림축산식품부는 20마리 이상을 키우는 전국의 개 번식장 4천여 곳에 대해 석 달 동안 실태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조사에서 미신고 영업 같은 위법 행위가 발견되면 계도를 거쳐 벌금이나 과태료 부과 등 행정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한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얼마 전 방영된 한 공중파 TV 프로그램이 계기가 됐다. 전남의 한 개 번식장에서 개를 강제로 임신시키고, 수의사도 아닌 농장주가 마구잡이로 제왕절개를 하는 장면이 방송된 것이다. 이후 동물보호단체 등이 ‘강아지 공장 철폐 서명 운동’을 주도했고 무려 30만명 이상이 동참했다. 사정이 이 정도라면 강아지를 사육하는 ‘농장’이 아니라 차라리 만들어내는 ‘공장’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도대체 왜 강아지 공장이 생겨났을까. 두말할 나위 없이 소비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인형이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라면 강아지는 이제 어른들에게 반려동물로 사랑을 받는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면서 길거리나 공원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반려동물 인구가 무려 1천만명에 이른다. 한때는 보신탕용으로 개를 사육하더니 이제는 반려동물로 개를 사육하는 것이다. 반려용 개를 기르는 사람이 많다 보니 공급이 달리고, 공급이 달리다 보니 무리하게 공장에서 강아지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이왕 ‘강아지 공장’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서양에서 개를 비롯한 동물을 생명체가 아닌 기계로 처음 간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였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는 소나 개 같은 동물한테는 인간과는 달리 영혼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분법적 논리에 따르면 영혼이 없는 동물은 기계와 다름없다. 소는 우유를 만드는 기계일 뿐이고, 소가 ‘음매’ 하고 소리 내어 우는 것은 기계가 기능 장애를 일으켜 ‘끼익’ 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논리대로 한다면 개는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의 친구가 되어 주는 인형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그의 관점에서 보면 강아지를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만약 데카르트가 지금 문제가 된 ‘강아지 공장’ 이야기를 듣는다면, 기계를 공장에서 생산하지 그러면 농장에서 생산하느냐고 되레 따져 물을지도 모른다. 데카르트의 반대편에는 “신은 죽었다”고 부르짖은 19세기의 이단아 니체가 서 있다. 니체가 이탈리아 투린 지방을 여행할 때다. 호텔 문을 막 나선 니체는 마부가 채찍으로 말을 때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아무 말 없이 말에게 다가가 목덜미를 잡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더니 갑자기 땅바닥에 나뒹군다. 니체의 전기 작가들은 이 순간부터 니체가 정신착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마 마부한테 채찍을 맞는 말을 보고 눈물을 흘릴 리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제 데카르트 편에, 아니면 니체 편에 설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하루가 다르게 지구상에서 생물이 사라지는 지금 답은 명약관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생물 다양성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20대 국회의원들이 동물 보호를 넘어 동물 복지를 내세운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 [카드뉴스] 설리의 ‘로리타’ 논란, 자유일까 방종일까?

    [카드뉴스] 설리의 ‘로리타’ 논란, 자유일까 방종일까?

    최근 인스타그램 등 SNS와 인터넷을 달궜던 배우 설리의 ‘로리타’ 논란. 누군가는 “사진 작품일 뿐”이라며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반면, 누군가는 “금기를 넘은 상업 사진” 또는 “그저 관심 받기 위한 철없는 행동”이라며 그녀를 비난합니다. ‘로리타’ 코드를 둘러싼 논란은 비단 설리만의 문제는 아닌데요, 예술과 외설의 경계만큼이나 애매한 표현의 자유와 도덕적 가치. 그런데 우리 사회는 ‘다름’에 대한 인정과 포용이 아닌, ‘옳고 틀림’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요?
  • 송강호 “혼돈의 시대 경계인 연기 무게감 달랐다”

    송강호 “혼돈의 시대 경계인 연기 무게감 달랐다”

    中 로케이션 첫날 임시정부 청사 찾아“누 되지 않겠다” 대표 방명록에 처음엔 겁나“부끄럽지 않은 결과물 나온 것 같아 뿌듯”항일·친일 오간 조선인 日경찰의 고뇌 초점“매번 한계를 넘는 배우” 찬사에 손사래“진심 다한 연기 조금이라도 전하려 노력”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은 지난해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로케이션 첫날. 배우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너나 할 것 없이 각개전투식으로 임시정부 청사에 다녀왔다. 주연인 송강호(49)는 친구인 최재원 대표(워너브라더스코리아), 후배 연기자 엄태구와 함께했다. 3층짜리 단독건물. 좁디 좁은 이곳에서 나라의 독립을 꿈꾸던 분들의 모습이 떠올라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최 대표가 방명록에 대표로 적었다. “어깨너머로 보니 ‘여러분께 누가 되지 않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다’고 적는 거예요. 처음엔 겁이 덜컥 났어요.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를 적을 만큼 우리 스스로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나 스스로 자신은 있는지 되돌아보게 됐죠.” ●누구나 밀정 될 수 있던 시대… 이분법적 접근 지양 새달 7일 ‘밀정’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송강호는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밀정’은 1920년대 항일 무력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이 경성으로 잠입해 조선총독부 등 일제 거점을 파괴하려는 과정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독립 투사들과 일제 앞잡이들이 물고 물리는 다툼을 벌인다. 송강호가 연기한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은 그런데, 경계에 있는 인물이다. 누구나 밀정이 될 수 있었던 시대의 아픔을 상징한다.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으로는 설명이 쉽지 않은 캐릭터다. 송강호는 “그 시대를 살아가려면 모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는 누가 밀정인지 쫓으며 서스펜스를 주지는 않는다. 항일과 친일을 오가야 했던 개인의 고뇌에 초점을 맞춘다. 관객들은 그저 송강호의 어깨에 올라 시대의 줄타기에 흔들흔들 몸을 맡기게 된다. 송강호로서는 ‘YMCA야구단’(2002),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 이어 세 번째 맞닥뜨린 일제강점기. “혼란과 혼돈의 시대죠. 좌절의 시간이기도 하고요. 그런 시대를 연기한다는 자체가 마음에서 차지하는 무게감이 다른 작품과는 달라요. 결코 가볍지 않은 시대가 주는 무게감과 경외감이 부담되기도 하지만 부족해도 도전해 보고 싶은 건 어떤 배우라도 똑같을 거예요. 세 작품 중 이번 작품이 그 시대를 가장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이정출이 서대문형무소를 나서다 여성 의열단원 염계순(한지민)의 시신을 목도하는 장면을 꼽았다. “부끄럽게도, 촬영하면서 서대문형무소를 처음 가 봤어요. 매우 추운 날이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는데 그보다 세 배, 네 배, 열 배나 춥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하니 정말 울컥했습니다. 감독님이 촬영 며칠 전 카메라가 염계순의 시신 전체가 아니라 손만 잡을 거라고,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컷이 될 거라고 귀띔했어요. 그 작고 힘없고 가냘픈 손조차 우리 민족은 지켜주지 못했다, 그게 이 영화가 추구하는 가장 아픈 메시지라고 제 스스로 해석했죠. 노골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회화적으로 연출되어 더 멋지고 좋았던 장면 같아요.” ●숨진 ‘女의열단의 손’ 아픈 메시지 담은 가장 멋진 장면 과거와 달리 일제강점기 배경의 작품들이 잇따라 흥행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 영화의 성장에서 원인을 찾기도 했다. “아무래도 산업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시대를 제대로 복원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없지 않았다고 봐요. 세트와 의상에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죠. 이야기에 한계도 있다 보니 지엽적인 걸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는 상업적으로 더 과감하게 투자하고 시도해 볼 만큼 한국 영화가 질적·양적으로 성장해서 보다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매번 한계를 뛰어넘는 배우라는 찬사가 쏟아지지만 늘 한계를 느낀다며 손사래 치는 송강호다. “배우에겐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배우도 사람인데 어떻게 한계를 뛰어넘겠어요. 각각의 작품이 원하는 인물과 감정을, 진심을 담아 연기하는 게 정답이 아닌가 싶어요. 그 진심이 조금이라도 통했을 때 격려 차원에서 한계를 뛰어넘었다고들 하죠. 능력의 한도 내에서 최대한 가깝게 캐릭터에 접근하느냐, 또 그렇게 하기 위해 나태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배우가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시대가 주는 무게감 남달라… 서대문형무소 촬영때는 울컥 ”

    “시대가 주는 무게감 남달라… 서대문형무소 촬영때는 울컥 ”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은 지난해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로케이션 첫날. 배우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너나 할 것 없이 각개전투식으로 임시정부 청사에 다녀왔다. 주연인 송강호(49)는 친구인 최재원 대표(워너브라더스코리아), 후배 연기자 엄태구와 함께했다. 3층짜리 단독건물. 좁디 좁은 이곳에서 나라의 독립을 꿈꾸던 분들의 모습이 떠올라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최 대표가 방명록에 대표로 적었다. “어깨너머로 보니 ‘여러분께 누가 되지 않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다’고 적는 거예요. 처음엔 겁이 덜컥 났어요.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를 적을 만큼 우리 스스로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나 스스로 자신은 있는지 되돌아보게 됐죠.”  새달 7일 ‘밀정’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송강호는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밀정’은 1920년대 항일 무력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이 경성으로 잠입해 조선총독부 등 일제 거점을 파괴하려는 과정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독립 투사들과 일제 앞잡이들이 물고 물리는 다툼을 벌인다. 송강호가 연기한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은 그런데, 경계에 있는 인물이다. 누구나 밀정이 될 수 있었던 시대의 아픔을 상징한다.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으로는 설명이 쉽지 않은 캐릭터다. 송강호는 “그 시대를 살아가려면 모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는 누가 밀정인지 쫓으며 서스펜스를 주지는 않는다. 항일과 친일을 오가야 했던 개인의 고뇌에 초점을 맞춘다. 관객들은 그저 송강호의 어깨에 올라 시대의 줄타기에 흔들흔들 몸을 맡기게 된다. 송강호로서는 ‘YMCA야구단’(2002),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 이어 세 번째 맞닥뜨린 일제강점기.  “혼란과 혼돈의 시대죠. 좌절의 시간이기도 하고요. 그런 시대를 연기한다는 자체가 마음에서 차지하는 무게감이 다른 작품과는 달라요. 결코 가볍지 않은 시대가 주는 무게감과 경외감이 부담되기도 하지만 부족해도 도전해 보고 싶은 건 어떤 배우라도 똑같을 거예요. 세 작품 중 이번 작품이 그 시대를 가장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이정출이 서대문형무소를 나서다 여성 의열단원 염계순(한지민)의 시신을 목도하는 장면을 꼽았다. “부끄럽게도, 촬영하면서 서대문형무소를 처음 가 봤어요. 매우 추운 날이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는데 그보다 세 배, 네 배, 열 배나 춥고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하니 정말 울컥했습니다. 감독님이 촬영 며칠 전 카메라가 염계순의 시신 전체가 아니라 손만 잡을 거라고,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컷이 될 거라고 귀띔했어요. 그 작고 힘없고 가냘픈 손조차 우리 민족은 지켜주지 못했다, 그게 이 영화가 추구하는 가장 아픈 메시지라고 제 스스로 해석했죠. 노골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회화적으로 연출되어 더 멋지고 좋았던 장면 같아요.”  과거와 달리 일제강점기 배경의 작품들이 잇따라 흥행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 영화의 성장에서 원인을 찾기도 했다. “아무래도 산업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시대를 제대로 복원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없지 않았다고 봐요. 세트와 의상에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죠. 이야기에 한계도 있다 보니 지엽적인 걸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는 상업적으로 더 과감하게 투자하고 시도해 볼 만큼 한국 영화가 질적·양적으로 성장해서 보다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매번 한계를 뛰어넘는 배우라는 찬사가 쏟아지지만 늘 한계를 느낀다며 손사래 치는 송강호다. “배우에겐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배우도 사람인데 어떻게 한계를 뛰어넘겠어요. 각각의 작품이 원하는 인물과 감정을, 진심을 담아 연기하는 게 정답이 아닌가 싶어요. 그 진심이 조금이라도 통했을 때 격려 차원에서 한계를 뛰어넘었다고들 하죠. 능력의 한도 내에서 얼마나 최대한 가깝게 캐릭터에 접근하느냐, 또 그렇게 하기 위해 나태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배우가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젠트리피케이션 갈등, 답은 없나…일상서 찾는 공존

    젠트리피케이션 갈등, 답은 없나…일상서 찾는 공존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신현준, 이기웅 지음/푸른숲/504쪽/2만 5000원 이른바 ‘뜨는’ 동네가 있다. 서울의 경우 서촌, 종로3가, 홍대, 가로수길과 사이길, 한남동, 구로공단, 창신동, 해방촌 등이 꼽힌다. 영어로 표현하면 ‘핫 플레이스’쯤 될까. 한데 뜨거운 곳에서 뜻밖에 차가운 일들이 빚어지는 현상을 종종 본다. 임대료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홍대 초기 예술가들이 성수동이나 문래동 쪽으로 옮겨가고, 가로수길의 소상인들이 세로수길로 밀려나기도 한다. 이처럼 임대료가 상승해 원주민들이 바깥으로 밀려나는 상황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부른다. 예전엔 낙후된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오면서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부정적인 의미로 더 잘 쓰인다. 새 책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이른바 ‘뜨는 동네의 딜레마’인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담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서울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한데 단순히 들어온 자와 내쫓긴 자 간의 갈등이란 이분법적 프레임으로만 보면 ‘답이 없는’ 상황이 곧잘 연출된다. 경리단길, 연남동과 함께 서울의 ‘핫 스리’ 중 하나라는 서촌을 예로 들자. 새 주민과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맺는 토박이가 있는가 하면 이들을 배척하는 이도 있다. 뒤늦게 서촌에 들어왔지만 ‘주민이 되려고’ 애쓰는 사회운동가도 있고, 카페 등을 운영하는 창의적 자영업자도 있다. 이들은 모두 ‘동네 보존’ 어젠다에는 동의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제각각이다. 한데 이들을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있을까. 모두가 젠트리피케이션을 겪는 장본인인데 말이다. 책은 이처럼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상이 되고 삶이 된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책은 3부로 구성됐다. 1부 ‘오래된 서울의 새로운 변화’에서는 ‘핫 플레이스’ 서촌과 ‘낙후된 곳’ 종로3가를 중심으로 서울 구도심의 변화를 다룬다. 2부 ‘세 개의 핫 플레이스, 서로 다른 궤적’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 장소로 꼽히는 홍대, 가로수길과 사이길, 한남동의 변화를 추적한다. 3부 ‘정책 없는 재생에서 재생 없는 정책으로?’에서는 구로공단 뒷골목의 봉제업 종사자들의 삶을 다룬다. 어디 꼭 내국인 간의 문제뿐이랴. 중국 자본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제주에 이어 서울에서도 부동산을 삼키고 있으니 말이다. 책이 가까운 미래에 대한 데자뷔란 생각을 갖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경희대 특집] 폴 케네디, 미래 위한 대학 역할 강조

    [경희대 특집] 폴 케네디, 미래 위한 대학 역할 강조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경고한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파국의 징후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인구 증가, 산업화, 환경 파괴, 천연자원 고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민족 분쟁, 군비 경쟁, 실업, 빈부 격차가 고착화된 지 오래다.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현대 문명의 위기는 만성질환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인류가 사라지지 않고서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질병처럼. 하지만 인류가 처한 문제는 만성질환이 아니라 급성질환일 수도 있다. 공멸을 가져올지도 모를 유례없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1972년 출간된 ‘성장의 한계’는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을 100년으로 보았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100년 안에 암울한 미래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50년 남짓이다. 50년 안에 현재의 문명을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함께 사라질지도 모른다. ●보코바 “인간의 삶엔 평화가 기초해야” 지난 세기 중반부터 고등교육기관의 사회적·지구적 책임을 강조해 온 경희대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도서를 잇달아 발행하며 문명 전환을 시대의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미원렉처’ 시리즈와 ‘문명 전환’ 시리즈를 기획해 지구적 차원의 복합 위기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미원렉처는 경희대학교 설립자 고 조영식 박사의 호를 따서 만든 특별 강연이다. 국내외 석학과 실천인을 연사로 초빙해 인간, 세계, 문명의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고 있다. 이 특강 시리즈를 경희대 출판문화원에서 책으로 엮은 게 미원렉처 시리즈다. 지금까지 7차례 개최됐으며 그중 5개 강연이 책으로 발행됐다. 경제, 정치, 역사 등 여러 분야 석학들과 국제기구 전문가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문명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고 있다. ‘강대국의 흥망’이란 저서로 유명한 폴 케네디 교수는 ‘교육과 인류의 미래’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대학의 역할은 복잡다단한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스스로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완전히 다른 사유 방식이다. 사유 방식이 변해야만 더 높은 수준의 교육과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케네디 교수는 대학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인류와 문명’은 고이치로 마쓰우라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강연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속 불가능한 현재의 삶을 지속 가능한 삶으로 바꿔야 하는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강조한다. 지구 자원의 과잉 개발을 멈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구적 문명을 창조해 지구적 방식으로 행동하는 길밖에 없다고 논한다. 저명한 사회학자 프레드 불럭 교수는 ‘지구적 근대성, 그 위기의 근원’에서 경제 위기를 넘어 근대성 자체까지 위협을 받게 된 원인을 먼저 분석한다.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분법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것을 문제라고 했다. 이분법 구조를 벗어나 위축된 집단적 상상력을 다시 활성화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유네스코와 21세기 고등교육’에서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인간의 존엄과 삶의 능력에 평화가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평화의 또 다른 기반으로 문화적 다양성의 존중을 제시한다. 인간의 선천적 존엄을 보호하고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21세기 평화의 토대이자 새로운 휴머니즘의 뿌리다. 피터 카젠스타인 교수는 ‘세계 정치와 문명: 동서양을 넘어서’에서 정치와 문명의 문제를 다원주의 시각에서 풀어낸다. 그는 문명 간의 차이가 충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문명의 본질을 이용하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서로 교류하고 진화하면서 공존하는 문명의 본질은 다원주의적 경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미지의 세계로 향해야 한다. 미원렉처 시리즈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논제를 보다 쉽게 풀이한다면, 문명 전환 시리즈는 전문적으로 새로운 문명을 논하는 총서 성격의 시리즈다. 경희대 출판문화원은 그 첫 번째 책으로 어빈 라슬로 교수의 ‘의식 혁명’(가제)을 준비 중이다. 헝가리 태생의 과학철학자이며 시스템이론가인 라슬로 교수는 과학과 영성을 결합한 새로운 과학을 기반으로 인간과 우주의 연관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일체성을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벨 “존중하고 차이 인정해야 공존가능” 의식 혁명에서 라슬로 교수는 다른 두 전문가와 대담을 나누며 우리가 처한 위기와 전환을 진단하고 예술, 과학, 교육, 목표와 가치, 세계관, 종교, 영성의 역할을 숙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식의 역할을 중시한다. 현재 우리 의식의 상태가 다른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핵심 사안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은 9월 21일 개최되는 경희대 Peace BAR Festival ‘지구 문명의 미래: 실존 혁명을 향하여’에 맞춰 발간될 예정이다. 경희대 출판문화원은 문명 전환 시리즈를 통해 문명 전환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 도서를 발행할 계획이다. 한편 경희대 출판문화원은 지난 5월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연설문집인 ‘불가능의 예술’을 발간하기도 했다.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모색하는 경희대학교의 교육철학과 하벨의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벨은 지구 문명을 위해 실천 도덕으로서의 정치를 추구했다. 다문화적 공존의 정신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지구촌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도덕의 핵심인 책임감은 우리의 삶을 넘어 자연, 지구, 심지어 우주까지 이어진다. 하벨은 인간, 자연, 지구, 우주가 신비롭게 연결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인류 문명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문명 전환의 시대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현대의 위기는 우리 인류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공멸이냐, 공생이냐.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면서 미래를 창출하는 데 있다. 폴 케네디의 말처럼 대학이 대학 본연의 역할과 책임을 재확인하고 대학의 공공성을 실천해야 할 때다. ‘대학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강조하는 경희대가 출판하는 책들을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가톨릭·이슬람 화합행사 vs IS “십자가 파괴” 지령

    가톨릭·이슬람 화합행사 vs IS “십자가 파괴” 지령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잇단 테러에 맞서 유럽 곳곳에서 가톨릭과 이슬람이 “종교 전쟁은 없다”며 화합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IS는 또다시 “십자가를 파괴하라”는 지령을 내리고 교황까지 테러 표적으로 삼으면서 ‘이슬람 대 서방종교’의 종교전쟁을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오전 독일 뮌헨의 상징적 건물인 성모교회(Frauenkirche)에서는 요하임 가우크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22일 이란계 독일인의 총격으로 숨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에는 기독교도뿐만 아니라 유대교·이슬람 교도도 함께해 화합을 강조했다. 리하르트 막스 추기경은 “불신과 공포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지역 무슬림을 이끄는 다리 하제르는 “2주 동안 잇따라 테러를 당한 독일이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 속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프랑스 루앙 대성당에서는 가톨릭 신자 2천명과 무슬림 100여명이 함께 미사에 참여했다. 루앙 대성당은 26일 IS를 추종하는 아델 케르미슈와 압델 말리크 나빌 프티장이 자크 아멜 신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생테티엔 뒤 루브래 성당에서 몇 ㎞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미사를 집전한 도미니크 레브런 대주교는 “오늘 아침 우리는 무슬림 친구들에게 특별한 환영인사를 전한다”며 “이들이 미사에 참석한 것만으로 신의 이름으로 죽음과 폭력을 거부한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모든 가톨릭 신자의 이름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미사가 열린 루앙대성당에는 경찰과 군인이 배치됐지만 검문은 하지 않았다. 로마 산타마리아 트라스테베레 성당에서도 이날 무슬림들이 미사에 참석했다. 밀라노와 시칠리아, 팔레르모, 나폴리 등에서도 가톨릭과 무슬림의 합동 미사가 열렸다. IS가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자행해 서구의 일반 시민들을 무차별 살상한 데 이어 성당에서 미사 중인 가톨릭 신부까지 살해하면서 ‘무슬림 대 기독교인’, ‘이슬람교 대 서방 기독교’의 종교전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숨진 자크 아멜(86) 신부를 순교자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한쪽에서 일었고 그러면 IS가 바라는 종교전쟁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반대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성당 테러 직후 “세계는 전쟁 상태지만, 이는 돈과 자원을 두고 벌어진 전쟁이다. 종교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종교전쟁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IS는 종교 대립으로 세계를 분열시키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달 31일 온라인으로 유포한 영문 선전잡지 다비크 15호에서 IS는 “서방에 숨은 전사들은 지체 없이 기독교인을 공격하라”면서 IS를 추종하는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의 테러를 주문했다. 이 잡지 표지엔 IS의 깃발을 배경으로 한 조직원이 교회로 보이는 건물의 지붕에서 십자가를 떼어버리는 사진과 함께 ‘십자가를 파괴하라’(Break the cross‘라는 제목이 실렸다. 이는 최근 독일, 프랑스에서 IS 추종자의 테러가 빈발한 점을 부각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벌인 유혈사태를 ’이슬람 대 서방 종교(기독교·천주교)‘라는 종교전쟁 구도로 몰고 가려는 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분법적인 사상전으로 서방을 이슬람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자신을 이에 맞선 이슬람의 보호자로 전선을 전환하려는 것으로. 이런 구도라면 서방에서 IS가 벌이는 테러와 잔인한 인명 살상을 종교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 이들은 이어 다비크에서 “서방의 기독교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이단자들은 서방인에 대한 무슬림의 증오와 적대감 뒤에 깔린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며 “기독교를 버리고 이슬람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를 회개하라”고 주장했다. 다비크는 또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슬림에 대한 적의를 선의의 베일로 감춰 속인다면서 교황 역시 테러의 표적이라고 협박했다. 연합뉴스
  • [특파원 블로그] 덩샤오핑, “농촌에서 사회주의 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 우리가 몰랐던 남순강화

    [특파원 블로그] 덩샤오핑, “농촌에서 사회주의 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 우리가 몰랐던 남순강화

    198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은 위기에 놓였다. 개혁·개방의 부작용은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고 정치·사회적 불안은 1989년 톈안먼 사태로 분출됐다. 톈안먼 광장을 탱크로 쓸어버린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다.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자금성 옆에 있는 당·정 최고지도부 집단 거주지)에서는 연일 정통 사회주의 길로 회귀하려는 좌파와 자본주의로 밀고 나가려는 우파 간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남순강화’(南巡講話)는 바로 이때 나왔다. 당시 88살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1992년 1월18일부터 2월21일까지 노구를 이끌고 우한, 선전, 주하이, 상하이를 차례로 시찰하며 강화(담화)를 이어갔다.  중국 인문연구소인 중산국학당은 지난 22일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원본을 공개했다. 단순히 덩샤오핑의 말만 공개한 게 아니라 담화가 나온 장소와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전했다.  시찰 첫날 후베이성 우한 한커우 기차역 귀빈실에 도착한 덩샤오핑은 작심한 듯 후베이성 서기 관광푸에게 “내 말을 똑바로 적어 베이징에 전하라”고 지시했다.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은 반(反)자유주의 투쟁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개혁·개방에는 큰 업적을 남겼다. 약간의 과오로 그들의 성과를 완전히 부정하지 마라” 남순강화의 일성이었다.  덩은 톈안먼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을 총서기직에서 잇따라 끌어내렸지만 개혁·개방을 밀어붙이기 위해 두 총서기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차단한 것이다. 덩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덩은 “자본주의·사회주의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농촌에서 사회주의 철학을 가르치는 일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까지 했다.  좌파에 대한 공격도 거칠었다. “좌파는 우리 당 역사에서 늘 두려운 존재였다. 혁명을 전유물로 생각하는 좌파는 이분법으로 우리를 겁박했다. 하지만, 똑바로 직시하라. 지금은 개혁·개방이 살 길이다.” 덩샤오핑의 첫날 담화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개혁·개방을 하지 않겠다는 자는 모두 직을 내놓아라”  둘째 날 덩샤오핑은 장시성 서기 마오즈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보고 중간에 “나는 퇴직한 늙은이다. 귀가 안 들린다. 그런 보고를 할 거면 그만두라”라고 호통쳤다. 장밋빛 보고에 대한 분노 폭발이었다. “내가 장시를 떠난 지 20년이 됐는데도 변화가 없다. 정치 투쟁만 일삼는 베이징을 쳐다보지 말고 광둥에서 배우라”고 했다. 덩의 훈계는 서릿발 같았다.  셋째 날 강화는 선전에서 이뤄졌다. 영빈관의 붉은 등이 덩샤오핑을 비추고 있었다. “내가 왜 남방을 찾아왔는지 아는가. 소련 때문이다. 자원과 생산력, 사회발전에서 모두 우리보다 앞선 소련 공산당이 집권 70년 만에 무너졌다. 사회주의 이론을 만들고 핵무기를 만드는 사이 백성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이게 말이 되는가”  덩샤오핑은 소련의 붕괴로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우리 백성도 여전히 식량, 옷감, 담배, 술 교환권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소련의 오늘이 중국의 내일이 될 수 있다. 개혁·개방 노선이 100년 동안 흔들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순시 마지막 날 찾은 상하이는 비가 왔다. “마오쩌둥 주석이 이론만 중시한 소련파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실사구시 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오 주석도 말년에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와 일체화하려고 했다. 나와 마오 주석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다. 누가 마르크스주의를 더 잘 알겠는가. 누가 자본주의를 더 잘 알겠는가. 정확히 알지도 모르는데 논쟁은 왜 필요한가”  덩샤오핑 강화는 아시아 ‘네 마리 용’(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을 언급하면서 끝났다. “20세기 경제 현상 중 가장 괄목할 만한 게 바로 네 마리 용의 굴기다. 중국은 영국, 미국, 일본을 따를 게 아니라 네 마리 용에게서 배워야 한다. 반드시 20년 내에 따라잡아야 한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있은지 24년이 지났다. 중국은 네 마리 용을 넘어 미국과 어깨를 겨누는 G2의 반열에 올랐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새누리 계파 ‘핵분열중’] 미래권력 불투명 ‘갈박’ 급증… 전대 후 세력재편 급물살 탈 듯

    [새누리 계파 ‘핵분열중’] 미래권력 불투명 ‘갈박’ 급증… 전대 후 세력재편 급물살 탈 듯

    새누리당 내 계파의 분화 현상은 ‘8·9 전당대회’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세력 재편을 위한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이을 확실한 정치적 구심점이 없다 보니 일시적으로는 ‘각자도생’의 길로 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계파 구도를 놓고 보면 이른바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셈이다. 하지만 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평가된다. 우선 8·9 전대에서 누가 당권을 쥐느냐에 따라 ‘1차 재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차기 당권주자들이 일제히 ‘조기 대선 레이스’를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 유력 대권주자를 중심으로 한 ‘2차 재편’도 조만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현역 친박 60~70명·비박 40~50명 새누리당 현역 의원 129명의 계파 성향은 친박(친박근혜)계가 60~70명, 비박계 40~50명, 중립·쇄신 그룹 10~20명으로 분류된다. 이 중 친박계는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이른바 ‘친박 학살 공천’ 이후 생환한 의원들,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공천을 받아 19대 국회에 입성한 의원, 박근혜 정부의 ‘개국 공신’을 비롯해 지난 20대 공천에서 친박계의 지원으로 당선된 의원 등이 주축을 이룬다. 비박계는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탈박’(탈박근혜) 의원들과 정병국 의원 등 옛 친이(친이명박)계 의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분류 방식은 최근 들어 와해되기 시작했다. 특히 친박계의 분화가 두드러진다. ‘현재 권력’인 박 대통령의 당내 영향력이 줄어든 데다 친박계의 양대 축으로 평가받는 서청원·최경환 의원이 전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구심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친박계 당권주자의 결핍으로 소계파로 나뉘어지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또 현 정부 공직을 발판 삼아 대거 입성한 ‘박근혜 직계’가 기존 친박계와 결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점도 친박계 분화를 더욱 선명하게 하고 있다. 탈당파 일괄 복당 파동 당시 최경환계 의원들은 거세게 항의했지만, ‘박근혜 직계’ 의원들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일정한 거리를 뒀다. 그런가 하면 현 정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면서 ‘범친박’ 혹은 ‘신박’으로 분류됐던 이주영 의원은 이번 당 대표 출마 선언 과정에서 ‘친박계 총선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친박계로부터 멀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박계 역시 이른바 ‘K·Y(김무성·유승민) 라인’의 연결고리가 약화된 게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김무성계는 김 전 대표가 원내대표와 당 대표 임기 동안 호흡을 맞췄던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19대 국회에서 세력화가 이뤄진 유승민계는 지난 4·13 총선 과정에서 벌어진 ‘공천 파동’으로 뜻을 같이해 온 의원 대부분이 원내 재입성에 실패하면서 세력이 대폭 축소됐다. 지금은 김세연·이혜훈 의원 정도가 유승민계로 남아 있다. ●친박·비박, 8·9전대가 세력화 갈림길 여기에 출신은 친박계이지만 지금은 비박계에 몸담고 있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비박계로 분류되지만 마음은 친박계로 향해 있는 ‘몸 따로 마음 따로’인 의원도 적지 않다. 그만큼 현재 당권 경쟁 구도의 판세가 안갯속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들은 ‘친박 성향의 중립’ 혹은 ‘비박 성향의 중립’으로 분류된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갈박’(갈대 같은 친박,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친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친박·비박 모두에게 이번 전대가 세력화의 갈림길로 인식되는 이유다. 당권을 차지한다면 주류로 거듭나면서 확실한 ‘세력 교체’에 성공할 수 있지만, 패배할 경우 비주류로 밀려나는 것은 물론 차기 대선에서도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 친박계가 ‘대표 당권주자’를 누구로 내세울지를 놓고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김 전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가 비박계 당권주자인 정병국·주호영·김용태 의원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채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지 후보가 당권 경쟁에서 밀려날 경우 계파 전체가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계파별 대표 인물들 간 관계도 흥미롭다. 서 의원과 최 의원은 ‘협조 관계’에 있다. 최 의원이 당 대표 도전을 고사하자 최경환계 의원들이 일제히 서 의원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며 출마를 요청하고 나섰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홍문종 의원도 친박계 핵심이라는 점에서 이들과 궤를 같이한다. 여권 관계자는 24일 “박 대통령은 최 의원과 홍 의원을 한 묶음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4선인 최·홍 의원은 정치 상황에 따라 서로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친박, 당권 쥐면 오세훈과 손잡을 수도 김 전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는 당내 문제를 놓고는 적어도 ‘암묵적 협조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친박계와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대권을 놓고 보면 두 사람의 관계는 한 배를 탈 수 없는 ‘경쟁 관계’로 돌변한다. 서로 비박계를 대표하는 대권주자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당 대표 선출 이후 대선 정국에서는 비박계의 분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 외에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나경원 의원 등이 비박계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친박계로까지 세력 확장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현재 당권 도전에 나선 비박계 후보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도 명실상부한 대권주자로 발돋움하는 것이 친박계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친박계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지만 손에 잡힐지는 아직 묘연한 상황이다. 때문에 친박계가 당권을 쥐게 될 경우 오 전 시장을 친박계 주자로 영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46] 우유는 정말 몸에 좋은 식품일까 (상)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46] 우유는 정말 몸에 좋은 식품일까 (상)

    흔히 우유는 ‘완전식품’으로 불린다. 그만큼 성장과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예전에 이런 신문 광고 카피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는 것은 미래를 위해 가장 값진 투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우유의 폐해를 지적하는 가설과 지론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유는 생각처럼 정말 몸에 좋을까, 혹시 다른 부작용은 없을까, 오히려 건강을 해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적극적인 대답인 셈이다. ‘완전식품’이라는 과장된 용어(엄밀하게 말해 지상에 완전식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용어는 미국 낙농협회가 소비 촉진을 위해 지어낸 광고 카피였는데, 여기에 미국 농무부가 가세하면서 한 순간에 정설로 포장됐다.)에서 보듯이 우리는 지금 우유에 대한 상반된 견해의 중간에서 다소 어정쩡하게 우유를 대하고 있다. ‘어쩌면 완전식품이 아니라 독을 먹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가진 부류가 있는가 하면 ‘우유만한 게 어딨어?’라거나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 낫겠지.’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엄존한다. 이런 논란은 의료계에서도 진행형이다. 한 쪽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우유를 섭취할 경우 유방암 등 특정 암에 노출될 수 있다”고 하는가 하면 “우리가 아는 우유의 효능은 과장됐다.”는 지견이 있는 반면 “그래도 마셔서 얻는 건강상의 이점이 마시지 않아서 잃을 수 있는 문제를 상쇄하므로 마시는 게 이득이다”고 주장한다. ●우유에 대한 기억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계 질서는 이전의 서유럽 중심에서 미국과 소련(러시아)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이른바 냉전시대의 시작이다. 이런 냉전 실서는 세계의 각국을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으로 이해했고, 미국과 소련은 적극적으로 내 편 만들기에 나섰다. 이 와중에 미국이 우리에게 베푼 시혜 중에 ‘탈지분유 무상지원’이라는 게 있었다. 자기 편 우방국을 위해 자국에서 다 소비하지 못하는 가공 우유를 나눠주는 일종의 빈곤퇴치 프로그램이었다. 탈지분유란 우유의 지방 성분을 상당량 제거한 뒤 가루 형태로 가공한 우유를 말한다. 초등학교 시절,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과제를 내주셨다. “내일부터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등교할 때 개인 컵과 소금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엄명이었다. 그 날부터 내 책보자기에는 낡은 양철 필통과 함께 소금 봉지를 넣은 양철컵이 같이 싸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전교생이 반별로 줄을 지어 소사(小使) 아저씨가 운동장 한 켠에 큰 가마솥을 걸고 끓여낸 우유를 한 컵씩 받아들고는 삼삼오오 흩어져 후후 거리며 마셨다. 닝닝해 시쳇말로 ‘엣지’가 없는 맛이니 가져온 소금으로 간을 맞춰서 마셨다. 선생님들도 함께 마셨다. 첫 날 오후, 몸에 좋다는 우유를 받아마셨는데, 교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낯빛이 노랗게 떠서 배가 아프다며 뒹구는 놈, 참다 못해 화장실로 달려가 물찌똥을 쏟아내는 놈, “뱃속에서 ‘구라파전쟁’이 벌어진 것 같다”며 연신 방귀를 뀌어대고 트림을 해대는 놈 등등 한 마디로 희한한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한 시간 45분 수업에 담임 선생님도 너 댓 번을 들락거렸는데, 모르긴 해도 변소행이었을 것이다. 다음날도 학교에서는 끓인 분유를 학생들에게 나눠줬으나 대부분이 마시는 척 하고는 돌아서서 땅바닥에 쏟아버렸다. 선생님이 “우유 안마시고 버리는 놈은 다 가려내 청소 시킨다”고 엄포를 놨지만, 아이들은 배앓이에 설사 벼락을 맞는 것보다 청소가 낫다고 여겨 굳이 그걸 마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이 어림잡아 열에 여덞, 아홉이었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본 어른들은 우유에 쇠기름이 많아 그렇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유병’의 원인은 ‘락타제 결핍’ 우유에는 쇠기름이 많아서 설사를 한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정설로 통했다. 우유에서 기름을 뺀 탈지분유도 그래서 만들어졌다. 이런 생각은 1965년 미국의 존스 홉킨스병원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는 그랬다. 사실, 존스 홉킨스병원에서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미국의 원조 담당자들의 불평이 적지 않았다. 우방국을 굶주림과 집단 영양실조 상태에서 구제하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배정해 우유를 원조하는데, 설사니 배앓이니 하며 불평한다고 못마땅해 한 것이다. 미국 관리들은 ‘우유가 기아나 영양실조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알았어도 ‘인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우유를 소화 흡수하지 못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런 마당에 ‘우유를 마시면 나타나는 설사나 복통 등 특이한 장애는 우유에 포함된 당분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는 존스 홉킨스의 연구 결과는 많은 것을 설명해 주기에 충분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락토우즈’라고 불리는 이 다당류는 거의 모든 포유동물의 젖 속에 들어있는데, 분자 구조가 너무 복합적이어서 소장에서 흡수rk 안 된다. 소장에서 정상적으로 혈관에 흡수되어 대사 과정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체내에서 분비하는 소화효소에 반응해 단당류인 ‘글루코즈’와 ‘갈락토즈’로 분해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 작용하는 젖당 분해효소인 ‘락타제’가 부족하거나 분비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백인은 전체의 20% 가량이 락타제 결핍이고, 흑인은 무려 75%가 부족하다. 한국인의 경우 우유를 소화시키는 락타제 효소가 충분하게 분비되는 사람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며, 충분하지는 않지만 우유 한, 두 잔 정도 감당할 수 있는 락타제를 가진 사람은 20%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보다 먼저 미제 분유가 공급된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에서도 예외 없이 말썽이 생겨 ‘우유병’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이보다 앞서 미국 정부가 제공한 우유와 분유를 섭취한 인디언보호구역의 인디언들도 설사와 복통에 시달렸으나 정부 관리들은 “우유는 문제가 없다. 아마도 그들이 우유를 섞어 마신 물이 문제였을 것이다.”며 딴전을 부렸으나, 그 관리들이 악의를 가졌다고 볼 수도 없다. 원인을 모르기는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가공된 신화 ‘완전식품’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류학자인 미국 컬럼비아대 마빈 헤리스 교수는 그의 저서 ‘음식문화의 수수께끼’(한길사)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미국의 낙농업자와 농무부, 미국의사협회가 ‘우유는 완전식품’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과정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하루에 1쿼트(약 1.14ℓ)의 우유를 마셔라. 모든 학교의 점심 급식에 우유를 넣어라. 식사 전에, 식사를 하면서, 식간에, 그리고 밤참으로 우유를 마셔라. 우유를 살 때는 마개가 달린 플라스틱 용기에 든 것을 갤런 단위로 사라.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우유를 마셔라. 위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종기를 치료하기 위해, 설사를 그치게 하기 위해, 신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리고 불면증을 완화하기 위해 우유를 먹어라. 우유는 절대로 해롭지 않다.’ 이 같은 우유에로의 유인 정책이 범사회적으로 이뤄졌고, 당연히 다른 나라에도 전파됐다. 다른 나라 전파는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흉내내기를 해대는 후진국의 정책 관계자와 미국 유학생들이 주도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숙면을 위해 자기 전에 적당량의 따뜻한 우유를 마시라고 권하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아무리 우유의 효능과 순기능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하더라도 근거를 밝히지도 않고 정부부처나 의사단체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의아하기도 하다. 미국 사례의 데자뷰 같은 의아함이라고 해두자. 이렇게 해서 우유는 ‘영양상의 이점이 많은 식품’에서 졸지에 ‘완전식품’으로 둔갑했다. 프랑스의 대중적인 저널리스트인 티에라 수카르는 그의 저서 ‘우유의 역습’에서 이런 맹목을 신랄하게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과학적인 증거와 신뢰할 수 있는 연구들을 통해 보건 당국에서 권장하는 대로 유제품을 섭취할 경우 오히려 만성 질환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우리 식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우유가 골다공증을 예방하기는커녕 되레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암과 당뇨병, 심근경색 등을 유발한다. 물론, 이런 논의는 다양한 시각의 한 가지이고, 많은 주의·주장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점검은 해봐야 한다. 식탁과 먹거리에 대한 우유의 지배력이 말 한, 두 마디로 정리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 ‘우유는 정말 좋은 식품일까-2’가 이어집니다.] jeshim@seoul.co.kr
  • “통일의 문 열자” 진보·보수 대화의 문 활짝

    “통일의 문 열자” 진보·보수 대화의 문 활짝

    통일·외교·안보 문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을 줄이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 상호 이해와 공감을 넓혀 나가기 위한 ‘남남대화’ 창구가 마련됐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2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통일공감포럼 발족식 및 통일공감대화’를 열었다. 민화협은 통일공감포럼을 통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집단이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포럼의 공동대표로 위촉된 차경애 전 한국YWCA연합회 회장은 “역사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좋은 조건과 환경에 있다고 하더라도 내부의 갈등으로는 공동체의 발전과 번영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시 공동대표를 맡은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러 의견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가끔 북한·통일 문제에 관해 나와 다른 의견을 적대시하고 배척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진보와 보수 정권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류길재 전 장관이 대화하는 장을 상징적으로 마련해 ‘소통’의 의미를 더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이었던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무엇보다도 통일 논의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상식과 합리적 판단에 기초해서 통일 문제를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정치와 사상, 외교와 안보 등과 같이 국가이익을 위한 차별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적어도 역사, 사회, 문화 영역에서는 공감대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치열하게 전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공감포럼 행사에는 여야 정치권은 물론 통일·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인사들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홍사덕 민화협 상임의장을 비롯해 홍용표 통일부 장관,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윤석 새누리당 의원, 김영만 서울신문 사장,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 등 100여명의 내빈이 참석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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