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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 선거판에 ‘허경영 신드롬’

    ‘결혼하면 1억원, 출산하면 3000만원,60세 이상이면 월 70만원’새마을운동 주제곡인 ‘새나라노래’에 맞춘 공약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8번 찍으면 팔자 핀다.’는 기호 8번 경제공화당 허경영 후보의 이른바 ‘대표공약’들이다.‘BBK공방’에 파묻힌 올 대선정국에서 그는 파격적이어서 황당하기까지 한 공약들을 잇달아 내놓아 적잖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허 후보 마니아들은 ‘허 후보의 지지율이 민주당 이인제 후보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큰소리 친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인기는 ‘허경영 신드롬’ 수준이다.“각종 개그프로 섭외 일순위”라는 댓글도 있지만 “어쨌든 웃겼으니 한 표 준다.”는 등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IQ 430의 ‘천재 대통령’을 외치는 허 후보는 ‘UN본부의 판문점 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허 후보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이미 ‘담판’ 지은 사안이라고 한다.‘정당제도 폐지, 국회의원 자격시험 도입’ 등 ‘혁명’에 가까운 제안도 했다. 이력은 공약만큼이나 화려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밀 정책특보’로서 새마을운동을 최초로 제안하고 방송통신대학 설립을 건의했다고 주장한다. 고(故) 이병철 삼성 전 회장의 양아들로서 삼성의 경영 방향을 자신이 제시했다고도 한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이명박 특검법 통과] 선거판 ‘허경영 신드롬’

    [이명박 특검법 통과] 선거판 ‘허경영 신드롬’

    ‘결혼하면 1억원, 출산하면 3000만원,60세 이상이면 월 70만원’ 새마을운동 주제곡인 ‘새나라노래’에 맞춘 공약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8번 찍으면 팔자 핀다.’는 기호 8번 경제공화당 허경영 후보의 이른바 ‘대표공약’들이다.‘BBK공방’에 파묻힌 올 대선정국에서 그는 파격적이어서 황당하기까지 한 공약들을 잇달아 내놓아 적잖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허 후보 마니아들은 ‘허 후보의 지지율이 민주당 이인제 후보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큰소리 친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인기는 ‘허경영 신드롬’ 수준이다.“각종 개그프로 섭외 일순위”라는 댓글도 있지만 “어쨌든 웃겼으니 한 표 준다.”는 등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IQ 430의 ‘천재 대통령’을 외치는 허 후보는 ‘UN본부의 판문점 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허 후보가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이미 ‘담판’ 지은 사안이라고 한다.‘정당제도 폐지, 국회의원 자격시험 도입’ 등 ‘혁명’에 가까운 제안도 했다. 이력은 공약만큼이나 화려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밀 정책특보’로서 새마을운동을 최초로 제안하고 방송통신대학 설립을 건의했다고 주장한다. 고(故) 이병철 삼성 전 회장의 양아들로서 삼성의 경영 방향을 자신이 제시했다고도 한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인사]

    ■ 산업자원부 ◇서기관 △국무조정실 기후변화대응 기획단 파견 黃炳紹△기술표준정책팀 金洪■ 국세청 ◇서기관 승진 △혁신기획관실 尹永錫△서울지방국세청 감사관실 崔煐寬■ 특허청 △특허심판원 심판장 姜完植△정보기획본부 정보관리팀장 玄性勳■ 한국도로공사 ◇2급갑 전보 △기획팀장 고채석△조사〃 최윤택△자금〃 김경희△용지관리〃 김영섭△휴게시설운영실장 배종엽△노사협력팀장 김경수△고객지원실장 손정표△방재총괄팀장 오승탁△ITS사업실장 김재현△건설계획팀장 허인△환경관리실장 김유식△사업계획팀장 박상욱△인니파견〃 김재영△기술심사실장 박권제△대전당진건설사업단장 정진민△남부건설사업단장 신재상△중부건설〃 안종갑△진주마산건설〃 배기양△수도권건설〃 김종흔△남원광양건설〃 이정근△인천김포건설〃 류환봉△평택시흥건설〃 김기철(경기지역본부)△관리처장 전영렬△인천지사장 장정식△시흥〃 강한욱△화성〃 이병철△경안〃 오득환(강원지역본부)△관리처장 황요성△기술〃 신원건△원주지사장 손해수△대관령〃 이상용△홍천〃 이상준(충청지역본부)△관리처장 이광호△기술〃 강형식△천안지사장 강석부△대전〃 이충구△진천〃 김영태△영동〃 전덕수△무주〃 김병회(호남지역본부)△관리처장 신재선△기술〃 김덕용△광주지사장 김경중△순천〃 백해흠△남원〃 김영성(경북지역본부)△관리처장 전강열△기술〃 최원곤△대구지사장 김성희(경남지역본부)△관리처장 이춘희△창녕지사장 여운상△산청〃 강중원△서울대 교육 배순건 이철우△KDI 〃 최광호◇2급갑 승진△서서울영업소장 이상열△동서울〃 심재춘△강릉지사장 배흥준△당진〃 변상훈△보령〃 조등용△보은〃 유재호△서해대교관리소장 권재봉△전주지사장 정대형△진안〃 노재두△구미〃 현병업△군위〃 박명득△상주〃 김수철△성주〃 기남석△경남지역본부 기술처장 김경일△울산지사장 이동준△양산〃 이이환△창원〃 김광수△진주〃 유병호△서울대 교육 최기배■ 한국서부발전 △본사이전 실장 이상만△발전처장 김덕진△태안발전본부장 조창주△태안발전본부 제1발전처장 박승연△〃 제2발전처장 최해준△청송발전처장 윤상철△군산건설처장 석성원△한국발전교육원장 민종선△삼랑진발전처장 김종도△발전처 부처장 김동섭△태안발전본부 부처장 김상태 유춘희 이한희△평택발전본부 부처장 원종열■ 우리은행 ◇단장 △글로벌사업단 황록 △PB사업단 구철모 △e-비즈니스사업단 이승서 △신탁사업단 조진형 △외환사업단 전규환 ◇영업본부장 △서초영업본부 정화영 △강남1영업본부 김하중 △충청영업본부 조성길 △서대문영업본부 김경자 △경기서부영업본부 박이수 △중부영업본부 유중근 △종로영업본부 김은호 △경기남부영업본부 강원복 △부산경남서부영업본부 백재승 △관악동작영업본부 금기조 △경기북부영업본부 윤여일 △영등포영업본부 이홍선 △인천영업본부 소홍석 △강서양천영업본부 오순명 △구로금천영업본부 이성훈 △경기중부영업본부 이성진 △강북영업본부 김정한 △용산영업본부 김종천 △경기동부영업본부 김두년 △인천국제공항영업본부 김국서 △본점기업영업본부 김시병 △남대문기업영업본부 고시묵 △중앙기업영업본부 김양진 △트윈타워기업영업본부 강원 △강남중앙기업영업본부 장영수 △강남기업영업본부 임창순 △경수기업영업본부 정경섭 △경인기업영업본부 임동호 △부산경남기업영업본부 전인섭 △전략영업본부 조용흥
  •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으로 나타났다. 현존 기업인 중에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위로 뽑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일반국민 300명, 경영학과 교수 100명, 현직 최고경영자(CEO) 100명 등 총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13일 발표한 결과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CEO와 교수층은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각각 고 정 회장을 꼽은 반면, 일반국민은 이 회장을 뽑았다.3개 응답층의 점수를 모두 합한 종합평점에서는 고 정 회장이 34.1%를 얻어 이 회장(29.3%)을 앞섰다. 그 뒤는 고 유일한 유한양행 회장(10.5%),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9.5%),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3.2%), 이구택 포스코 회장(1.8%), 구본무 LG그룹 회장(1.6%)이 이었다. 고인을 제외하고 현존 기업인만 놓고 다시 물었을 때는, 이건희 회장이 압도적 지지(69.8%)로 1위를 차지했다.2위는 구본무 회장(6.8%)이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4.2%),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3.9%), 이구택 회장(2.6%)은 각각 3∼5위를 차지했다. 고 정 회장과 이 회장은 현대와 삼성의 경쟁사를 반영하듯 주요 항목에서 엎치락뒤치락 경합을 벌였다.‘한국 경제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기업인’에서는 고 정 회장(45.0%)이,‘가장 리더십 있는 기업인’에서는 이 회장(42.1%)이 각각 상대방을 2위로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인재 육성에 힘쓴 기업인’ 5위에 올라 SK의 인재 양성 노력을 인정받았다.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의장은 비(非) 재벌총수로는 유일하게 ‘미래 예측력이 탁월한 기업인’ 부문 2위에 올랐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취임 20년 맞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위업-시련

    취임 20년 맞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위업-시련

    오는 1일은 이건희(65) 삼성그룹 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한 지 꼭 20년 되는 날이다. 그러나 떠들썩한 잔치도, 기념식도 없다.‘비자금 조성’ 등 최근 잇따라 터져나온 의혹으로 빛이 바랬기 때문이다. 반(反) 삼성 기류도 여느 때보다 강해 오히려 시련의 나날이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 같던 일본 소니를 따라잡는 등 삼성을 세계 21위의 브랜드 가치(169억달러)를 지닌 그룹으로 키워낸 공(功)은 평가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987년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뜨자 셋째아들인 이 회장이 45세의 나이에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고(故)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망설일 때 아버지를 강력히 설득해 관철시켰던 이가 바로 이건희 당시 부회장이었다. 훗날 삼성전자가 4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위로 쌓는’(스택) 방식과 ‘파내는’(트렌치) 방식 사이에서 고민할 때,“복잡할수록 단순한 게 좋다.”며 쌓는 방식을 과감히 지시한 이도 이 회장이었다. 당시 트렌치 방식을 선택한 도시바는 생산성 저하로 쓴맛을 봐야 했다. 그룹의 규모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 취임 당시 17조원이던 그룹 매출액은 지난해 152조원으로 9배 가까이 불었다.2700억원에 불과하던 세전(稅前) 이익은 14조원으로 무려 53배 늘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21%는 삼성(668억달러)에서 나온다. 여기에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1993년),“한 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경영,“물건만 잘 만들어서는 1등이 될 수 없다.”는 창조경영(2006년) 등이 자리한다. 신경영 선언 당시, 변화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이 회장이 1년간 하루에 밥을 한 끼만 먹고 6개월 동안 왼손으로만 생활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병철 회장이 잘못을 짚는데(신상필벌) 엄격했다면, 이 회장은 칭찬(신상필상)을 중시한다. 선친과의 큰 차이점이다. 올 들어 “5년후,10년후 먹을거리를 고민해야 한다.”며 샌드위치 위기론을 설파했던 그는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이 ‘샌드위치 위기’에 빠졌다. 그룹의 미래 먹을거리를 찾아야 함과 동시에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삼성 사태’를 풀어야 한다. 이 회장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전이 시작된 이래 일절 바깥 나들이를 하지 않고 있다.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칩거 중이다. 이학수 전략기획실장 등 핵심측근들과 대책을 숙의 중이지만 현재로서는 ‘비상구’가 안보이는 실정이다.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이 크다 크다 하지만 외국의 초일류 기업과 1대1로 부딪치려면 아직 10배,20배는 더 커야 한다.”던 이 회장이 이번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이건희 회장, 선친 추모제 불참

    이건희 회장, 선친 추모제 불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다. 그러나 ‘마음의 독감’이 더 지독한 듯하다. 이 회장은 19일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내 호암묘역에서 열린 선친 이병철 회장의 20주기 추모제에 불참했다. 이 회장이 해외에 머무를 때를 제외하고는 선친 제사에 빠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룹측 “감기 몸살로 불참” 그룹측은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 탓에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다.”고 불참 사유를 대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과거 폐암 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어 실제로 건강이 나빠진 게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룹측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래도 선친 제사에는 참석하지 않으시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내다봤었다. 그룹은 함구하지만 이 회장이 불참을 결심한 것은 삼성 관련 폭로전이 정점으로 치닫는 와중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이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비공개 행사임에도 이날 추모제에는 언론이 몰렸다. 삼성측은 입구에서부터 초청장을 확인한 뒤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했다.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추모제에 참석했지만 최근 사태와 관련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솔·CJ·신세계 등 범(汎) 삼성가와 강영훈(추모위원장) 전 국무총리,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등 250여명이 지켜본 가운데 영하의 추위 속에 치러진 추모제도 “분위기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경남 의령에서 열린 고(故) 이병철 회장 생가 개방식에 참석한 이중구 삼성테크윈 사장 등 삼성 계열사 사장단도 입을 굳게 다물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음달 5일로 예정됐던 이 회장의 취임 20주년 행사도 결국 취소됐다. 이 역시 공개석상인 데다 선친 제사상 앞에는 안 나온 채 자신의 잔칫상을 차린다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아서다. 갑자기 닥친 외환위기로 1997년 취임 10주년 행사를 생략해야 했던 이 회장은 20주년 행사도 건너뛰어 ‘10년 주기 징크스’를 재확인했다. ●‘삼성 비자금´ 폭로 이후 두문불출 그룹의 한 임원은 “20주년 행사에 맞춰 치르려던 신경영 특별공로상과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은 무기 연기됐다.”면서 “예년대로 이 회장 생일(내년 1월9일)에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장단 인사도 이때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김용철 전 법무팀장의 폭로전이 시작된 이후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당분간은 해외출국 계획도 없다.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 등 핵심측근들에게 사태 추이를 시시각각 보고받고 있지만 반응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룹측은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애써 강조한다. 삼성전자의 사상 첫 매출 1000억달러 돌파를 계기로 창조경영을 설파하려던 이 회장의 연말연시 청사진은 ‘시계(視界) 제로’로 변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金風’ 맞은 삼성 분위기 쇄신 ‘삐걱’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신경영 3기’ 출범식이 삐걱대고 있다. 신성장산업 발굴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까지 꾸려가며 전열 정비에 나서는 듯 했던 삼성그룹은 ‘김풍’(김용철 전 법무팀장의 비자금 의혹 폭로사건) 진화에 그룹의 촉각이 온통 맞춰져 있어 어수선한 모습이다. ●‘이건희 20년´ 잔치 분위기 쏙 들어가 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고(故) 이병철 창업주 20주기(11월 19일)→이건희 회장 취임 20주년(12월 1일)→신사옥 본격 입주(내년 5월) 등을 앞두고 대대적인 분위기 쇄신에 나선다는 구상이었다. 이에 맞춰 해마다 이 회장 생일(1월 9일)에 해오던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과 이 시상식 직후 단행해온 사장단 인사도 12월로 각각 앞당겼다.‘신경영 특별공로상’도 신설해 다음달 5일 이 회장 취임 20주년 기념식때 삼성인상과 함께 시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오는 19일 추도식을 빼고는 모든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이 회장이 신경영을 공식 선언한 것은 1993년이지만 삼성은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을 신경영 1기,93년을 2기 시작으로 본다. 당초 삼성은 “외환위기 때문에 이 회장 취임 10주년(1997년)도 그냥 넘겼는데 20주년까지 그냥 넘길 수는 없다.”며 취임 및 신경영 20주년 행사를 준비해 왔었다. ●내년 투자전략 검토서는 손에 안잡히고 무엇보다 걱정은 ‘전력 분산’에 있다. 삼성은 이 회장이 ‘샌드위치 위기론’을 설파한 뒤 대대적인 경쟁력 강화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위기론’의 톤을 한결 누그러뜨렸지만 내부적으로는 비상경영 체제를 이어왔다. 그룹의 한 임원은 “계열사별로 마련한 경쟁력 강화방안과 더불어 이달 말까지 내년 사업계획 시안이 들어오면 그룹 차원에서 전체 투자규모와 대상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솔직히 여기에 전력을 쏟을 처지가 못된다.”고 털어놓았다. 해외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더 크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로이터, 일본 니혼게이자이, 중국 시나닷컴 등 외신들이 이번 김 변호사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때문이다. 박인섭 삼성전자 중국 상하이반도체판매법인장(상무보)은 “요즘 거래선들을 만나면 첫 마디가 ‘괜찮은 거냐.’라는 질문”이라며 글로벌 사업 차질을 우려했다. 삼성전자는 주요 주주인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으로부터 면담을 거절당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예고됐던 인사태풍 규모두고 설왕설래 이번 일로 인사 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부 계열사 실적 부진과 분위기 쇄신 필요성에서 비롯된 인사 태풍설은 일찌감치 예고돼 왔다. 김 변호사 사건에 연루된 임원들 등으로 그 수위가 더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래에셋건으로 구설수에 오른 모 부사장도 인사대상에 올랐다는 얘기가 들린다. 오히려 이번 일로 당초 계획보다 인사 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정반대의 해석도 나온다. 바깥의 적을 꺾기 위해서는 내부 결속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2선으로 퇴진했거나 퇴진이 거론됐던 인물들의 입지 강화설이 나도는 이유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105세 시어머니·정신지체 시누이 보살펴

    105세 시어머니·정신지체 시누이 보살펴

    100살이 넘은 시어머니와 정신지체 장애인인 시누이를 30년 넘게 보살펴온 70대 할머니가 올해의 ‘삼성 효행 대상’을 받았다. 삼성복지재단은 올해로 32회째를 맞은 삼성효행상 대상 수상자로 김찬임(73)씨를 선정했다고 25일 발표했다. 삼성효행상은 1975년 이병철 당시 삼성 회장(1987년 별세)이 제정했다. 효행, 경로, 특별, 청소년 4개 부문으로 나눠 포상한다. 대상 수상자는 올해부터 3000만원의 상금을 받는다. 김씨는 전남 완도군 약산면에서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산다. 시어머니는 올해 105세로 완도군 최장수 노인이다. 하지만 중풍으로 6년 전부터 거동을 못한다. 올해 57세인 손아래 시누이는 정신지체 장애인이다.40대에 남편을 잃은 김씨는 그때부터 굴과 미역을 채취하거나 허드렛일 등을 하며 시모·시누이를 보살피는 한편 5남매를 키웠다. 효행상은 김순복(여·46), 김진원(남·59)씨, 경로상은 구도회(단체·회장 최병욱)와 제주시 구좌읍(단체·읍장 이순배), 특별상은 박진석(남·69세) 등에게 각각 돌아갔다. 시상식은 고(故) 이 회장의 20주기인 다음달 20일 서울 서소문 호암아트홀에서 이 회장 추모행사를 겸해 열린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한국의 대표기업] (1) 삼성전자

    [한국의 대표기업] (1)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올해 매출 1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이다. 전 세계 기업을 통틀어서도 미국 월마트, 일본 도요타자동차 등 서른 개밖에 없다. 매출액 기준으로 업종별 한국 대표기업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도전과제를 시리즈로 짚어본다. 국경없는 치열한 경제전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표기업들의 모습을 주 1회 전달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최초로 터트린 대박상품은 ‘이코노 TV’였다.1975년의 일이다. 이코노 TV는 전원을 켬과 동시에 화면이 나왔다. 지금에야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시절 TV는 한참 예열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예열이 필요없으니 전기료도 훨씬 절약됐다. 석유 파동 직후라 이코노 TV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청산해도 좋다.”고까지 했던 삼성의 전자사업이 지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던 순간이었다. 1973년부터 20년 가까이 삼성전자를 이끌었던 강진구(80) 당시 사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후발기업이라 온통 불리한 조건 투성이었다. 오로지 수출만 해야 했고 일본과의 합작 계약도 불공평해 만성 적자였다. 그런 회사를 내게 맡기며 이병철 회장(1987년 별세)께서는 ‘한번 해보고 안 되면 청산해도 좋다.’고 하셨다.” 이코노 TV로 회생 발판을 마련한 삼성전자는 1978년 세계 1위의 흑백TV 생산업체로 올라섰다. 이렇게 얻은 첫 세계 1위 타이틀은 이후 D램, 낸드플래시, 비(非)메모리, 액정화면(LCD패널),TV, 모니터 등으로 급속히 세포 분열해 나갔다. ●황량한 수원벌서 가전사업 시작 고(故) 이병철 회장은 1968년 2월 삼성물산에 개발부를 설치한 뒤 신규사업 검토를 시켰다. 두달 뒤 올라온 보고서에는 전자산업이 적혀 있었다. 곧바로 부지 확보에 들어갔다. 풍수를 중시했던 이 회장은 직접 땅을 보러 다녔다. 삼성이 부동산 투기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 산요전기(당시 합작선)의 도쿄 단지(40만평)보다 한 평이라도 더 커야 한다.”며 수원 땅 45만평을 사들였다.1969년 1월13일 드디어 삼성전자공업주식회사가 설립됐다. 1983년 이 회장은 또 한번의 대모험을 감행했다. 바로 메모리 반도체산업 진출 선언이었다. 여론의 반대가 들끓었다. 곁에서 이 회장을 끝까지 설득한 이는 다름아닌 아들 이건희 당시 부회장이었다. 비서실에서도 “사업성이 없다.”며 손사래쳤던 한국반도체를 1974년 기어코 인수 성사시켰던 이도 그였다. 삼성이 반도체사업을 이병철 회장의 마지막 작품이자 이건희 현 회장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반도체·애니콜로 세계 석권 1987년 12월1일 이건희 회장이 취임했다. 이 회장은 이듬해 11월1일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통신을 합병시키는 대수술을 단행했다. 반도체, 정보통신,LCD, 디지털미디어(DM) 크게 네 축으로 하는 오늘날의 사업부제 조직도 이 때 유래됐다. 1970∼80년대의 가전 신화는 90년대 반도체,2000년대 애니콜(휴대전화) 신화로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1997년 1월부터 삼성전자 지휘봉을 잡은 윤종용(63) 부회장이 있었다. 이 때의 이윤우(메모리 반도체, 현 대외협력 담당 부회장)-진대제(비메모리 반도체,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기태(휴대전화, 현 기술총괄 부회장) 라인은 지금의 황창규(54)-권오현(55)-최지성(56) 라인으로 이어졌다. 이상완(57·LCD)·박종우(55·DM)라는 블루오션 개척자와 최도석(58·경영지원)이라는 안살림꾼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진 전 장관(현 광운대 교수)과 이윤우 부회장을 빼고는 현재 모두 ‘포스트 윤종용’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손에 안잡히는 미래, 꿈쩍않는 주가…고민도 깊다 삼성전자는 올해도 한국 기업사에 큰 획을 그을 ‘사건’을 앞두고 있다. 바로 매출 1000억달러 돌파다. 정보기술(IT) 업체로는 독일 지멘스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민도 적지 않다. 그룹 차원의 비상 경영진단까지 받았지만 미래 먹거리가 확실치 않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반도체와 휴대전화는 경쟁 심화로 이미 성장 한계에 봉착했고 차세대 8대 성장엔진의 하나인 와이브로(무선 휴대 인터넷)는 여전히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말로 삼성의 고민을 대신했다. 윤 부회장은 일단 프린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토너 등 소모품까지 합치면 프린터(지난해 1310억달러)가 메모리반도체(600억달러)보다 훨씬 더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잠재역량은 확인했다. 지난해 1분기 세계 7위(시장점유율 4.7%)였던 프린터 사업은 불과 1년새 2위(12.7%)로 껑충 뛰었다.1위인 휼렛패커드(49.2%)와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하드 디스크를 급속히 대체하면서 큰 장(場)이 설 것으로 기대되는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2011년 시장규모 약 13조원 추산), 하나의 칩에 여러 기능을 얹은 퓨전반도체 등에도 기대감이 작지 않다. 에너지 등 신규사업도 적극 검토 중이다. 하지만 주가는 몇 년째 50만원대를 맴돈다. 순이익률도 두 자릿수 밑(지난해말 기준 9.5%)으로 떨어졌다. 주우식 부사장은 “순자산 대비 주가 배율(PBR)이 올 상반기 기준 1.53으로 인텔(3.48)은 물론 하이닉스(1.67)에도 미치지 않는다.”며 “비메모리와 프린터 등 신성장 엔진이 본격 가동되면 극심한 주가 저평가 현상이 해소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보폭 넓히는 이재용CCO

    ‘똑똑하다.´,‘예의바르다.´,‘유머러스 하다.´ 이재용(39) 삼성전자 고객총괄책임자(CCO)를 직·간접적으로 대하는 이들에게 그에 대한 평가를 물어보면 공통적으로 돌아오는 대답들이다. 지난해 삼성에 합류한 한 임원은 “(이 전무에게)보고를 해보면 이해가 아주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고 전했다. 또 다른 임원은 “할아버지(고 이병철 회장)에게 워낙 엄하게 교육을 받아서인지 생각과 행동이 아주 바르다.”고 평했다. 기자들에게 휴대전화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딸 예쁘죠.”라고 할 때는 영락없는 ‘평범한 젊은 아빠’의 모습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가 아버지(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끌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는 없다. 이 전무는 밑바닥에서부터 기업 일을 배웠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반 시절인 1991년 12월, 평사원(공채 32기)으로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학교(경복고)때부터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경기 부천 반도체 공장이며 제일제당(현 CJ) 공장을 누비고 다녔다. 입사해서는 곧바로 일본 게이오 대학(경영관리연구 석사)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뒤 2001년 3월 상무보(경영기획팀)로 복귀했다. 그의 보폭이 눈에 띄게 커진 것은 올 1월 말 CCO로 승진하고부터다.CCO 자격으로 지금까지 여덟 차례 해외출장을 다녀왔다. 거의 한 달에 한번 꼴이다. 거쳐간 나라만도 미국, 중국, 베트남, 독일 등 15개국. 해마다 브라질, 두바이 등 이른바 ‘오지(사업장) 탐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어와 일어가 유창한 그는 해외 주요 고객선을 직접 만나고 업계 흐름을 살핀다.‘나홀로 조직’이라 윤종용 부회장의 지시 외에는 그 어떤 간섭도 받지 않는다. 과거 이건희 회장이 경영수업을 받던 시절, 혼자 세계를 여행하며 주요 인사를 만나고 자료를 수집하던 것과 비슷하다. 이 회장은 서른여섯에 부회장, 마흔다섯에 그룹 회장이 됐다. 이 전무는 내년에 마흔이 된다. 더욱이 내년은 삼성그룹 창립 70주년(3월22일)이 되는 해다. 주요 계열사들이 서울 강남의 신사옥으로 옮겨 ‘삼성타운 시대’도 열린다. 이 전무에게도 쓰린 기억은 있다.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와 함께 맛본 벤처기업(e-삼성)의 실패다. 소니와의 합작사인 S-LCD를 지난해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경영 능력 시비는 어느 정도 불식됐다. 그는 이 회사의 등기이사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日 세지마 류조 前 이토추상사 회장 별세

    日 세지마 류조 前 이토추상사 회장 별세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이토추 종합상사를 성장시킨 세지마 류조 전 회장이 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95세.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동군 직속상관이었던 것을 비롯,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군부출신 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류조 회장은 이날 오전 0시55분 도쿄 자택에서 숨졌다.1938년 육군대학 졸업 후 일본군 대본영 참모로서 활동했다. 종전 뒤에는 옛 소련군의 포로로 잡혀 11년동안 시베리아에서 억류생활을 했다. 1956년 귀국,1958년 이토추에 입사해 주로 항공기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전무, 부사장을 거쳐 부회장, 회장을 지내다 2006년 퇴임했다. 치열한 항공기 판매전을 그린 소설 ‘불모지대’의 주인공 모델로 화제를 낳기도 했다. 고 이병철 삼성 초대 회장, 박태준 전 회장과도 오랜 친분을 쌓았고 포항제철(현 포스코) 설립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인 83년에는 안보협력 차관 40억달러(약3조 7500억원) 제공을 내세우며 당시 나카소네 총리의 첫 공식 방한을 성사시켰다. 81년 3월 나카소네 내각의 임시행정조사위 위원에 취임해 일본 내에서 반발이 많았던 국철, 전매공사 민영화 작업에 나서 노동계, 정계의 반발을 무마시켰다. 오부치 게이조, 다케시다 노보루, 미야자와 기이치,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 등 정계 요인들과 교분이 두터웠다. 전성기 때 정·재계 직함만 100여개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 전쟁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로 전후 정치 막후에서 활동한 것에 대한 비판도 따랐다. 생전 자서전에서 ‘대동아전쟁’을 자위전쟁이라고 규정하며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극우파란 평가를 받아왔다. hkpark@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KPGA 50년 개근’ 뒤 아름다운 은퇴 한장상 고문

    [스포츠 라운지] ‘KPGA 50년 개근’ 뒤 아름다운 은퇴 한장상 고문

    ‘한국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한국의 아널드 파머’ 등 화려한 수식어를 단 한장상(69)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고문. 이제 더이상 정규대회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지난 21일 경기 용인 코리아골프장(파72·6440m)에서 개막한 제50회 KPGA선수권대회를 끝으로 50년의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감했기 때문.1958년 이 대회가 시작된 이후 50회를 맞는 동안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출전했던 대회였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더욱이 68년부터 71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포함해 모두 7차례나 우승컵을 들어올려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한 그다. 지난 22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장현그린골프클럽’에서 만난 한 고문은 여전히 후배들을 지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팔로스윙에서도 힘이 남아 있잖아. 팔로에선 힘이 완전히 빠져 있어야 돼. 클럽을 그냥 들었다 놓는 기분으로 치란 말야.” 칠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기력이 왕성했다.“몸은 필드를 떠나지만 마음은 죽는 날까지 필드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좀 쉴 때도 됐지만 골프 발전과 후진 양성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란다. 한 고문은 1954년 집 근처 군자리골프장 (현 서울컨트리클럽)을 드나들다 캐디가 되면서 골프와 연을 맺었다. 이듬해 골프장을 자주 찾던 손님으로부터 낡은 아이언 두개(5번과 7번)를 얻어 골프를 시작했다. 한 고문은 “그 손님이 준 채를 들고 남들 흉내를 내가면서 열심히 연습했던 게 뒷날 ‘아이언 샷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1958년 프로에 입문한 그는 통산 22승을 쌓아올렸다. 시니어투어까지 포함하면 통산 25승.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골프장이 생긴 게 1900년쯤이었으니 골프사의 절반은 그와 함께했던 셈. 프로골프 1세대로서 한국프로골프협회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를 출범시킨 산파이기도 하다. 그는 50년 선수생활 동안 잊을 수 없는 장면을 회상했다.“66년 일본 도쿄 요미우리CC에서 열린 월드컵 18번홀(파4·420야드)에서 친 세번째 샷은 잊을 수 없어. 비바람이 몰아치는 탓에 핀에 붙인다는 생각으로 쳤어. 그런데 벙커샷이 핀을 지나 3m 지점에 떨어지더니 백스핀을 먹고 그대로 홀컵에 들어간 거야. 내 인생 최고의 샷이었지.”1972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했을 때와 같은 해 한국오픈에서 65타를 쳐 코스레코드를 경신했을 때, 그리고 73년 마스터스대회에 출전했을 때도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마스터스 출전은 한국인 최초였다. 그는 아널드 파머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아널드 파머와는 마스터스대회 때 처음 만났고,82년 서울컨트리클럽에서 라운딩을 함께 했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었다.”고 말한다. 한 고문에게 레슨을 받은 사람 가운데 거물도 적지 않다. 특히 육군 이등병 시절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르쳤고, 프로 입문 후에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스승’도 했다.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 회장, 두산그룹 박두병 회장 등 정·재계의 유력자들이 그의 제자들이다. 일본에서 활약 중인 장익제·구옥희 프로를 수제자로 둔 한 고문은 후배들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기량이야 좋아졌지만 근성이 부족해.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야. 스스로 정신과 육체를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데 잘 쳤다고 우쭐대고, 못 쳤다고 주눅들어서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없지.”라고 강조했다. 한장상, 그도 세월의 무게에 겨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겠지만 ‘한국 골프의 자양분’인 그의 열정과 근성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글 남양주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한장상 프로필●출생 1938년 3월28일 서울생 ●체격 167㎝,67㎏ ●학교 경동초-피란으로 천막학교에서 중학과정 이수-한영고 중퇴 ●가족 부인 박의순(67)씨와 사이에 아들 성욱(40)씨, 딸 지수(38)씨와 지희(35)씨 ●취미 바둑 ●경력 개인통산 25승(국내 정규대회 19승, 해외 3승, 시니어 투어 3승).1968∼71년 KPGA선수권 4연패 등 대회 통산 7승.1965∼67년 한국 오픈 3연패 등 대회 통산 7승 .72년 일본 오픈 우승.73 년 한국인 첫 PGA 투어 마스터스대회 출전.2007년 8 월21일 KPGA선수권대회 5 0번째 출전. 초대 한국여자프로 골프협회(KLPGA) 회장. 제 6대 한국프로골프협회 회장, 현 한국프로골프협회고문
  • [종교플러스] 전북 장수서 ‘여름생명평화학교’

    생명평화결사(운영위원장 이병철)는 ‘2007 여름생명평화학교’를 10일까지 전북 장수 논실학교에서 연다. 올해 학교는 ‘개발과 성장의 환상에서 탈출하기’ 주제아래 전문가 강연, 숲과 하나되기 체험, 걷기 명상,108배 서원, 생명평화노래부르기, 참가자 토론회로 진행된다. 홈페이지(http://lifepeace.org) 참조.
  • 종교계 “생명·평화운동 자성”

    종교계 “생명·평화운동 자성”

    ‘지금 종교계의 큰 화두는 생명.’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종교계에서 ‘생명’과 ‘평화’라는 쉽지 않은 화두를 풀어내려는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생명평화결사가 10일 오후 3시 거창 수승대 거북극장에서 마련하는 공개토론회와, 다음달 2일 오후 7시 서울 명동성당서 천주교가 주관하는 ‘천주교 생명수호대회’. 모두 주제 자체가 첨예한데다 참석인사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거창 토론회가 확산되는 생명·평화운동의 현주소를 평가, 반성하는 공개토론장이라면 천주교계의 생명수호대회는 생명 평화운동을 범국민적으로 확산시키려는 적극적인 실천 다짐으로 눈길을 끈다. ●생명·평화 운동의 개인 역량 되찾기-거창 토론회 전국을 돌며 생명, 평화 인식을 세상에 심는 탁발순례 중인 ‘생명평화결사’회원들이 자신들의 위상과 행동을 되돌아보기 위한 반성의 자리. 세상에 생명과 평화를 강조하는 다양한 목소리와 행동이 많지만 아프간 피랍사태를 계기로 과연 이같은 것들이 사회 전체와 개인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 일반인 앞에서 냉철하게 심판받자는 뜻에서 마련, 입소문이 번지고 있다. 가장 큰 관심부분은 진보적 논조로 주목받고 있는 김규항(‘고래가 그랬어’발행인)씨가 이 생명평화결사 실행위원 9명에게 비판의 화살을 거침없이 쏜다는 점이다. 도법(탁발순례단장) 스님을 비롯해 황대권(작가·생태운동가), 이병철(시인·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정해숙(초대 전교조 위원장), 김경일(성공회 신부), 박두규(시인·교사), 김민해(목사·월간 ‘풍경소리’발행인), 박소정(순천YMCA이사장), 김귀옥(교사)씨 등 9명이 김씨의 질문과 비판을 받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명평화결사의 탁발순례를 비롯해 여러 생명 평화운동의 허와 실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최병진 목사(광주 미래에서온교회 담임·생명평화결사 문화홍보위원장)는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의 생명평화운동은 개인을 종교권력·정치권력·시민권력 앞에서 자유롭도록 도와야 하는데 거꾸로 이같은 권력들에 함몰되어가고 있다.”며 “개인이 슬로건식 생명 평화의 기치아래 끌려가는 게 아니라 개인이 주체가 되는 생명 평화운동의 방향을 찾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토론회에서는 당연히 아프간 피랍사태도 빠지지 않을 전망.‘한국 개신교 교회들의 배타적 선교가 오히려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생존권 침입의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해 첨예한 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생명문화 건설에 동참을” 천주교 생명수호대회 천주교계가 작심하고 준비한 대규모 생명 수호대회. 주교회의가 주최하고, 주교회의 생명31운동본부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공동주관,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주교단·사제단과 신자 국회의원,7대 종단 대표, 정부 관계자, 일반신자 등 6000여명이 참석한다. 외부인들은 주최측이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권고(회칙‘생명의 복음’)를 따라 ‘생명을 사랑하는 선의의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다. 행사는 핵심사안인 ‘배아도 인간’임을 천명하면서 생명경시 풍조에 정면 대응한다는데 초점을 맞췄다.‘낙태를 합법화한 것’으로 받아들여 모자보건법 제14조의 개정을 거듭 촉구한다. 정진석 추기경과 주교단이 공동 집전하는 생명수호 미사를 시작으로 퍼포먼스, 촛불행렬과 묵주기도가 이어진다.24일부터 9월1일까지 전국 본당에서는 미사마다 ‘생명수호대회 9일 기도’를 봉헌, 관심과 참여를 늘려간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부고]

    ●오기식(한라산업개발 부회장)긍식(사업)주식(〃)씨 모친상 7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590-2352●박종환(유피판넬공업·기성산업개발 대표)종욱(대불대 교수)씨 모친상 김선오(유피판넬공업 부사장)최동현(숭덕고 교감)정일문(한국투자증권 상무)씨 빙모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5시 (02)3410-6917●신흥철(전 쌍용양회 부사장)씨 별세 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세인트로즈 도미니칸병원, 빈소 강남성모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2)590-2660●안성수(KBS 원주방송국 기자)씨 별세 7일 원주기독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33)741-1994●김순기(전 강동통상 대표·전 재경동해시민회 회장)씨 별세 남형(충북대 교수)남곤(천진 관성건재 대표)씨 부친상 송유옥(동아산업 대표)양재웅(대진대 교수)씨 빙부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3410-6916●오영재(미국 거주)영진(청와대 홍보수석실 해외언론비서관)씨 부친상 7일 서울 하계동 을지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972-1099●정우진(미래에셋생명 천안지점장)혜정(대한생명 가양지점장)지혜(세광 쉽핑)씨 부친상 심민섭(현대H&S 상무)이종승(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병철(서광 부장)씨 빙부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3010-2265●정국주(전 농협중앙회 강남지점장)용규(전북 임실 현수초등학교 교사)민주(금융감독원 뉴욕사무소장)씨 모친상 8일 전북대병원, 발인 11일 오전 10시 (063)250-2441●이신(전 한국장로회 총연합회 대표회장)씨 별세 성일(이성일치과의원 원장)성수(캐나다 거주)성중(엑스큐어넷 부사장)씨 부친상 8일 서울대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2072-2011●강진석(뉴펙 실장)씨 모친상 이종진(미국 가주전자 대표)채교형(한국씨티은행 부장)정하성(미국 가주전자 부사장)노운용(보르네오 차장)씨 빙모상 8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0일 오전 6시30분 (02)2650-2752●이일신(안산 동산고 교장)씨 별세 8일 고대안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30분 (031)418-7783
  • [新 라이벌전] (1) 한국 연예·영화계 이끄는 여성 CEO ‘맞수’

    경쟁사회에는 항상 ‘맞수’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선두를 향한 치열한 다툼 속에서 기업들은 변화와 혁신으로 스스로 경쟁력을 다져나갈 수 있다. 사람·기업·브랜드·제품 등 국내 재계를 대표하며 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라이벌들을 분석해 본다. 이미경(49) CJ E&M 부회장과 이화경(51) 미디어플렉스 사장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각각 CJ그룹과 오리온그룹을 대표하는 창업주의 딸이란 점도 그렇지만 최일선 현장에서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전문경영인’형 오너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특히 두 사람 모두 국내 엔터테인먼트 전문 기업을 대표하는 최고경영자(CEO)라는 사실은 결정적인 유사점이다. 영화, 극장, 케이블방송 등 국내 연예·영화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재계의 대표적인 여성 CEO 맞수로 자리매김했다. ●이미경 부회장 영화사업 올해도 선두될까 올 상반기 영화사업 실적에서는 CJ가 앞선다. 올 들어 5월까지 각사 집계를 보면 CJ는 한국영화 8편과 외화 5편 등 13편을 배급해 전국 관객 1304만명을 모았다. 오리온은 같은 기간 한국영화 8편과 외화 2편으로 1008만명을 유치했다. 그러나 CJ가 안심하기는 이르다. 미디어플렉스는 한국 영화가 대부분임에도 CJ와의 전체 영화관객 점유율 격차는 매해 1∼3%포인트 정도만 낮을 만큼 바짝 추격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속 면에서는 미디어플렉스 쪽이 우세하다. 지난해 매출은 CJ엔터테인먼트 1184억원, 미디어플렉스 885억원으로 CJ가 앞섰다. 하지만 미디어플렉스가 38억원의 순이익을 낸 반면 CJ엔터테인먼트는 265억원의 적자를 냈다. CGV, 메가박스 등 극장사업을 보면 미디어플렉스의 ‘실속’이 더 확연하다.CGV를 운영하는 CJ는 47개 영화관에 378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반면 메가박스를 운영하는 미디어플렉스는 CJ의 절반도 안 되는 19개 영화관,155개 스크린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주식 재산은 이화경 사장 압승 성장 과정과 업무 스타일, 보유재산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난다. 이미경 부회장은 고(故) 이병철 회장의 장손녀로 서울대, 하버드대, 푸단대 등 명문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유학시절 쌓은 네트워크를 토대로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드림웍스 설립을 주도했고 홍콩 골든하베스트, 호주 빌리지로드쇼 등과 손잡고 CGV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등 끊임없는 성과와 이벤트를 통해 능력을 드러내 왔다.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지난해 말 ‘세계여성상 경영부문상’을 받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성격도 외향적인 편이다. 그러나 보유주식은 CJ미디어 1.32%가 전부다. 비상장 주식이어서 장외거래가(9000원대)로 평가할 때 22억원 수준에 그친다. 이 부회장이 본인 스스로에 대해 “(동생인)이재현 CJ그룹 회장에게 보고하고 평가받는 종업원”이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화경 사장은 오리온 주식 14.62%를 보유한 주식 재벌이다.21일 종가 기준으로 주식 평가액이 무려 2600억원대에 달한다.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의 딸인 이 사장은 1975년 이화여대 사회학과 입학과 동시에 동양제과 구매부에 입사해 밑바닥부터 다졌다. 입사 25년 만인 2000년에야 사장 자리에 올랐다. 2001년부터는 오리온그룹 외식·엔터테인먼트 담당 대표가 되면서 그룹 핵심사업인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발전시켰다. 케이블TV 온미디어도 업계 1위로 만들었다.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형에서는 CJ가 더 화려하지만 실속은 미디어플렉스 쪽이 더 강하다.”면서 “두 여성 CEO의 경쟁 관계를 통해 영화·연예 등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한층 더 빠르게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이미경 CJ E&M 부회장 -1958년생 -1981년 서울대 가정교육학과 졸업 -1989년 하버드대 석사 -1994년 중국 푸단대 박사 과정 -2000∼2004년 CJ엔터테인먼트 상무 -2004년 12월 CJ그룹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총괄부회장 ■ 이화경 미디어플렉스 사장 -1956년생 -1975년 이화여대 사회학과 입학 -1975년 동양제과 구매부 입사 -1984년 동양제과 마케팅부 이사 -2000년 동양제과 사장 -2001년 오리온그룹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담당 CEO
  • “삼성과의 결별은 현명한 결단이었다”

    “내가 70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수많은 결단 중에 가장 현명한 결단이었다.‘때로는 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요, 버리지 않는 것이 곧 잃는 것이다.’라는 역설적인 교훈은 내 후배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효성이 최근 창립 4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펴낸 사사(社史)에 창업주인 고(故) 만우 조홍제 회장의 글을 옮겨실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글은 지난해 발간된 고인의 일화집 ‘늦되고 어리석을지라도’에서 따왔다. 사사의 뒷얘기 코너인 ‘효성, 길라잡이를 만나다’에 실린 이 글은 고인이 고 이병철 삼성 회장과 결별한 사연을 담고 있다. 결별 사연은 이렇다. 조 회장은 1948년 이 회장과 의기투합해 자본금 1000만원으로 삼성물산공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 사업이 번창하자 이 회장이 조 회장에게 동업 청산을 요구하면서 지분 정리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게 됐다. 결국 조 회장은 당시 부실기업으로 은행관리를 받던 한국타이어와 한국나일론에 삼성이 갖고 있던 주식 3분의1가량을 받고 결별했다. 사사는 “삼성 역시 동업자와의 의리를 배신한 아픈 과거가 있다. 이병철 선대 회장과 조홍제 회장과의 만남과 이별이다.”라는 내용의 1999년 10월 모 주간지 기사도 옮겨놓았다. 효성측은 “회사 역사를 쓰다 보니 관련 자료들을 수록하는 차원에서 삼성 관련 얘기가 들어갔다.”면서 “조석래 현 회장이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현재 삼성에 대해 서운한 감정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부고] 요정정치 원조 ‘장원’ 창업주 주정순씨

    [부고] 요정정치 원조 ‘장원’ 창업주 주정순씨

    한국 현대 정계의 유명 인물들이 드나들면서 ‘막후정치’,‘밀실정치’라는 말을 탄생시켰던 고급 한정식집의 본산 ‘장원(莊園)’의 창업주인 주정순 여사가 12일 저녁 9시 종로구 내수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86세. 고인은 지난 1958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장원을 개업한 뒤 신문로 ‘향원’과 현재의 필운동 ‘장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영업을 해왔다. 지난 2004년 큰딸인 문수정씨에게 물려주고 은퇴할 때까지 반세기 가까이 고급 한정식집의 전통을 이어온 업계의 ‘대모’였다. 고인은 광주 출신으로 한번 잔치가 벌어지면 보통 열흘 이상 가는 목포의 만석꾼 집안에 시집을 가 부엌일을 맡으면서 호남 전통음식을 익혔다. 장원을 개업한 뒤 특유의 손맛과 친절함에 반한 당대의 정·관계 실력자들을 단골손님으로 유치해 장안 최고의 한정식집으로 자리매김됐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들도 찾았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까지 거물들이 단골로 드나들면서 한때 ‘한국 정·재계의 중요한 일은 장원에서 결정된다.’는 말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고인은 음식 맛과 고객관리, 종업원 관리에 엄격해 장원은 ‘한정식집의 사관학교’로도 불렸다. 유명 한정식집인 ‘미당’,‘늘만나’,‘수정’ 등의 주인들은 주 여사 문하에서 음식을 배워 독립했다. 큰딸 문씨는 “어머니는 식사 자리에서 보고 들은 얘기는 절대로 바깥으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가르쳤다.”며 “최근에도 옛날 거물들의 뒷얘기를 들려 달라고 하면 조용히 가슴에 묻고 가겠다는 말씀만 하셨다.”고 회고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고인은 숨지기 전 ‘화장’을 당부, 유해는 평소 고인이 다녔던 교회의 납골당에 안장된다. 빈소는 서울대 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10시.(02)2072-2012.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청자의 거장’ 도예가 혁산 방철주 옹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청자의 거장’ 도예가 혁산 방철주 옹

    총알에 날개를 달았다. 날카로운 부리도 있다. 어떤 계략이나 은폐·엄폐가 필요없다. 잔잔한 호숫가를 그저 바라보는가 싶더니 ‘쉬익∼’ 하고 날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물고기를 낚아챈다. 하늘로 치솟는 모습이 예술이다. 햇빛에 반사되는 파문과 현란한 날갯짓에서 펼쳐지는 청록색 향연은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이 광경을 보고 아마 ‘비(翡)’라고 했을 터.0.002초의 승부사 물총새, 바로 그 색깔(翡)에 우리 조상들은 넋을 놓았을 것이다. 천년 세월을 이어온 ‘고려청자’가 세계의 으뜸인 까닭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형언할 수 없는 천하제일의 비색(翡色)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보석의 비취색보다 더 고운, 태고의 신비감이 자랑이다. 그 비색을 좇아 살아온 40년 세월이다. 고려인의 비색청자를 가장 가깝게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생동감 있는 문양창조로 청자의 품격을 한층 세련되게 끌어올려 한국을 방문하는 각국의 정상들로부터 ‘보물급’이라는 찬사를 듣는다.‘청자의 거장’이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美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작품 영구전시 혁산(赫山) 방철주(85)옹. 경기도 이천의 ‘동국요’에서 나이를 잊은 채 여전히 ‘작업중’이다. 선생은 요즘 어느 때보다 ‘청자인생’에 보람을 느낀다. 다름 아닌 다음달 7일 선생의 작품 ‘지구무늬 항아리(Global Jar)’가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영구 전시(등록번호 2043527)된다. 1998년 제작된 이 ‘지구무늬 항아리’ 표면에는 물방울 모양이 점점 확대되거나 축소되면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듯한 현대적인 문양이 그려져 있다. 스미스소니언 측은 고려청자의 고전적인 아름다운 비색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디자인을 표현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선생은 2000년 일본 도자기상이 연출한 희대의 고려청자 사기극을 밝혀내 국내외 언론에 대서특필이 된 바 있다. 지난 9일 도자기 축제가 벌어지는 경기도 이천시내를 거쳐 신둔면 수하리에 위치한 ‘동국요’를 찾았다. 마당 한가운데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지금까지 선생과 동고동락을 같이해 온 세월의 버팀목인 듯했다. 그 주위로 전시장, 작업실, 사무실 등이 그림처럼 이어진다. 낯선 기척에, 수제자이자 딸인 방문숙(43)씨가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이어 선생이 “멀리서 왔다.”며 손을 내밀었다.85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얼굴피부가 무척 젊고 고왔다. 아름다운 비색과 함께 살아서 그럴까. ●수제자인 딸과 함께 작업 작업실에 들어섰더니 마침 딸과 함께 작업중인 ‘지구무늬 항아리’가 있었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보관될 작품과 똑같은 크기로 전체 작업단계 중 약 80%라고 선생은 설명했다. 이어 전시실로 들어섰다.40평 남짓한 공간에는 온통 비색으로 가득찼다. 가장 아낀다는 ‘벚꽃무늬 항아리’를 비롯한 각종 꽃들이 비색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간이다. 또 주병(酒甁), 장경병(長頸甁) 등 여러 가지 병류와 매병(梅甁), 각종 주전자 등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진열대 중간 중간에 찰스 영국 왕세자, 미테랑 전 프랑스대통령,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일본의 나카소네·후쿠다·호소가와, 고이즈미 전 총리 등 혁산의 비색청자를 선물받은 각국 정상 12명의 사진과 관련 기사들이 액자로 쭉 놓여져 있었다. 그의 작품이 세계 정상들의 안방에 놓여져 있다는 생각에 경외스럽게 느껴진다. 잠시 그의 도록집을 살폈다. 도자사학가 강경숙씨는 “선생의 작품세계는 절정기의 비색청자의 모방과 재현에서 출발했으나 현대의 미감이 충분히 발현돼 있다.”면서 “기형은 전통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무늬는 젊고 생동감이 넘치며,4월의 등나무 꽃을 연상시키는 연이은 구슬무늬 등 현대인의 감각에 잘 와닿는다.”고 평가했다. 또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은 “비색을 빚어내는 오묘한 기술은 단절되고 그 영롱한 아름다움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운데 지금 같은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의미부여를 했다. 기법 또한 상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문숙씨는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에 주로 사용된 박지기법(백토를 문양 위에 바른 후 다시 얇게 벗겨내는 것)이 상감과 어우러지며 진사채(辰砂彩)와 함께 고고(孤高)하면서도 화사하게 아롱진다.”고 설명했다. ●계룡산 점술가 “평생 깨지는 물건 취급할 팔자” 선생의 도예인생은 어쩌면 숙명적이었다. 충남 논산 출생인 그는 27세때 우연히 계룡산 근처의 노(老) 점술가를 만난다. 이때 점술가한테 “자네는 평생 깨지는 물건을 취급할 팔자야.”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안 돼 정말로 우연하게 유리사업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다. 같이 일하던 중 1954년 서울 을지로2가에 ‘유리상회’를 차렸다. 이어 대전에 3000평 규모의 유리가공 공장을 설립했다. 일본을 오가며 기술개발도 하며 나름대로 번창했다. 그러던 어느날 건강이 악화되자 문득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다 때려치우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옹기그릇을 잔뜩 이고 있던 할머니 모습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 할머니는 우리 집에 와서 그릇을 다 줄 테니 곡식과 바꿔달라고 했거든요. 그 모습이 얼마나 애절하던지….” 1967년,45세 나이에 유리사업가에서 도예의 길로 뛰어든 계기가 됐다. 일본에서 4년 동안 유약과 흙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1971년 귀국해 현재의 ‘동국요’를 만들었다. 이후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청자재현에 매진했다.1973년, 일본에 사는 지인이 가끔 왔다 가곤 하더니 하루는 5만달러를 불쑥 보내왔다.“부담없이 받고, 혹 (도자기)구워지는 거 있거든 하나 둘 보내달라.”는 짤막한 서신도 동봉했다. 빚 아닌 빚이 된 셈. 이후 일본으로 완성품 청자를 몇번 보냈다. ●1974년 고 이병철 회장과의 만남 1974년 봄이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갑자기 사람을 보내 잠시 만나자고 해 이 회장 집무실로 찾아갔다. 셋째 아들 이건희씨와 그의 장인이자 당시 중앙일보 사장인 홍진기씨 등도 함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지금 국내 어디에서 도자기를 팔고 있느냐.”고 물었고, 혁산은 단 한점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어 이 회장은 “도자기는 여러 사람한테 보여주는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에 장소를 내줄 터이니 그곳에 전시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극구 사양하고 돌아왔지만 며칠 동안 사람이 찾아와 설득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신세계에 직매장을 설치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일본의 지인에게 보냈던 작품이 도쿄시내에 전시됐고 이 회장이 이를 우연히 보고 혁산을 부르게 됐다. 선생은 평소 ‘도자기의 생명은 흙이라는 단미(單味)에 있다.’는 말을 항상 가슴에 품었다.1975년 전남 강진군 일대를 샅샅이 답사하던 중 또 한번 숙명적으로 고려시대의 ‘태토’와 만났다. 고려청자에 가장 근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미 800년의 긴 세월 동안 단절돼 버린 그 전통기법의 맥은 과연 무엇이며, 과연 이를 살려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 저를 괴롭힌 숙명적 화두였지요.”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2년 논산 출생 ▲65∼70년 일본의 세토(瀨戶), 교토(京都), 마쓰자카(松阪) 등지에서 도예 수학 ▲71년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수하리 현 위치에 ‘동국요’ 설립 ▲73∼2007년 일본에서 개인전 80여회 ▲73년∼현재 12개국 정상들에게 해외 수교예술품으로 증정 ▲75년 전남 강진에서 최고의 청자용 태토 발견, 채취에 성공 ▲76∼79년 신세계백화점 내 미술관에서 개인전(4회) ▲84∼88년 미국, 남미 등지 순회그룹전 ▲85년 한국의 전승공예도예 5대 작가 초대기획전 ▲97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 주최 한국 전승 도자전(한국학과 설립 100주년 기념) ▲97∼2002년 한국 이천 도자기 축제에서 한·중·일 작가 특별전 ▲02년 프랑스 파리 한국도자전 ▲05년 청자 초대전(롯데 에비뉴엘 갤러리) ▲06년 한국도자기 런던 특별전 ▲07년 6월 ‘지구무늬 항아리’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영구전시
  • 복지비 부담 때문에…지자체 90% “신규사업 포기 경험”

    기초자치단체 10곳 가운데 9곳은 복지비 부담 때문에 신규사업에 대한 투자를 포기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25일 서울 노원구가 전국 100개 지자체에 대한 사회보장비 비율 등 11개 항목을 설문조사한 결과 나타났다. 설문은 경기대학교 경영학부 이병철 교수가 분석했다. 설문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복지의무부담금으로 신규사업을 포기 또는 축소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90개 지자체가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사업 포기 경험이 있는 자치구 가운데 55%는 해마다 곤란을 겪었고,35%는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해 복지비 부담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줬다. 특히 오는 2010년까지 복지비를 매년 15∼19% 증액하는 계획에 대해 92%는 ‘감당하기 어렵다.’거나 ‘감당 능력이 없다.’고 답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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