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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LG ‘40년 전쟁’] 이병철 “우리도 전자산업 할라카네”… 이 한마디로 ‘전쟁’ 불붙다

    [삼성·LG ‘40년 전쟁’] 이병철 “우리도 전자산업 할라카네”… 이 한마디로 ‘전쟁’ 불붙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인 삼성과 LG는 전자를 중심으로 통신, 화학, 금융 등 주요 사업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라이벌 구도를 이어 왔다. 두 그룹의 역사는 상대방과의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을 만큼 지난 40여년간 각 분야에서 한 치의 양보 없는 대결을 펼쳐 왔다. ●구인회 회장, 삼성과 동양방송 동업관계도 끊어 그(이병철 회장)는 삼성전자의 설립 구상 단계이던 1968년 봄, 안양골프장(현 안양베네스트GC)에서 구(인회) 회장을 만났다. “구 회장! 우리도 앞으로 전자산업을 할라카네.” 이 회장은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가는 투로 한 마디 던졌으나 구 회장은 벌컥 화부터 내며 쏘아붙였다. “이익이 남으니까 할라 카는 거 아이가. 사돈이 논을 사믄 배가 아프다 카더마는 옛말이 그른기 하나도 없는 기라.” 이 회장의 지나가는 말 한 마디에 속이 뒤집힌 구 회장은 작별인사도 없이 벌떡 일어서 등을 돌렸고 이 회장은 난감한 표정으로 구 회장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서먹서먹하게 돌아선 두 사람은 이후 동양방송(현 KBS2)의 동업관계도 끊고 말았다. -‘삼성가의 사도세자 이맹희’(이용우 저) “그쪽에서 꼭 그리 하겠다면, 서운한 일이지만 우짜겠노? 서로 자식을 주고 있는 처진데 우짜노 말이다. 한 가지 섭한 점이 있다면, 금성사가 지금 어려운 형편에 있는 점을 노려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자고 덤비는 것 같은 기라. 그러나 나는 내 할 일만 할란다. 나도 설탕 사업 할라카면 못 할기 있나. 하지만 나는 안 한다. 사돈이 하는 사업에는 손대지 않을 기다.” -‘한 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구인회)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과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였다. 동양방송을 공동 설립하고, 사돈까지 맺으며 인생의 오랜 시간을 막역한 사이로 지냈다. 하지만 1968년 삼성이 일본 산요와 합작을 통해 삼성전자 설립을 준비하면서 양측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1958년 금성사를 설립해 첫 국산 라디오 ‘A-501’을 히트시키면서 국내 가전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LG로서는 삼성의 도전이 달가울 리 없었다. 당시 LG는 “삼성이 일본 업체를 끌어들여 국내에 막 움트기 시작한 전자산업의 싹을 제거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정부는 “생산물량 전부를 해외에 수출한다.”는 조건으로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을 허가했다. 흑백 TV 시장에서는 LG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하지만 삼성은 1981년 컬러 TV 시대 개막과 함께 절전형 프리볼트 TV인 ‘이코노빅’을 내놓아 승기를 잡는다. 전력난에 시달리던 당시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는 제품을 내놓으며 삼성은 1984년 국내 TV시장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르게 된다. LG는 이때부터 삼성의 신기술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서로 물고 물리는 혈투를 벌인다. 1992년 삼성전자가 위성수신 컬러 TV를 선보이자 며칠 지나지 않아 LG도 똑같은 기능의 제품을 내놓았고, 1993년 삼성이 원적외선 바이오 TV를 출시하자 한 달 뒤 원적외선에 음이온까지 발생시키는 TV로 맞대응하는 식이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대형 TV 수요가 생겨나던 1995년 삼성이 ‘명품’이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내놓자 LG는 ‘아트비전’으로 응수했다. ●반도체·금융 분야에서 양사 명암 엇갈려 흑백 TV에서 시작된 양사의 40년 전쟁은 컬러 TV, 액정표시장치(LCD) TV,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 등을 거치며 지금은 전자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분야로 확대됐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새로운 라이벌전이 시작돼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모두 글로벌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올레드(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분야도 두 업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 이렇듯 두 기업은 많은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며 경쟁하고 있지만, 현재 두 그룹의 매출 규모는 삼성(314조원)이 LG(142조원)를 두 배 이상 앞선다. 2003년 GS, LS, LIG그룹과 분리되고, 외환위기 이후 LG가 반도체 및 금융 사업 분야를 포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삼성전자가 1983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해 반도체 신화를 써 나가자 LG도 곧이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며 삼성 추격에 나섰다. 하지만 LG의 반도체 사업은 적자로 어려움을 겪다 외환위기 당시 ‘빅딜’을 통해 현대에 사업을 넘겨주게 된다. 금융 분야도 마찬가지. LG카드는 ‘위기가 기회’라는 판단에 따라 외환위기 당시 100만명의 신규 회원을 확보하는 등 저돌적인 경영에 나서 1998년 카드업계 1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무리한 확장으로 신용카드 연체가 급증하면서 유동성 위기가 닥쳤다. LG그룹은 이미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마친 뒤여서 LG전자·LG화학 등 계열사의 지원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LG카드 최대 주주인 구본무 회장이 직접 나서 자신이 갖고 있던 LG카드, LG투자증권, ㈜LG의 지분을 담보로 내놓고 나서야 어렵사리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다. LG는 당시 사건을 계기로 금융 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삼성이 치고 나가면 LG가 곧바로 따라붙어 삼성과 LG의 최근 양상을 살펴보면 ‘삼성이 먼저 치고 나가면 LG가 곧바로 따라붙는’ 식의 경쟁 구도를 확인할 수 있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 축구팀(첼시-풀럼) 후원과 프리미엄 브랜드 휴대전화(애니콜-싸이언) 개발, 제품별 개별 브랜드 전략을 통한 가전 마케팅(파브-X캔버스)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 vs LG 그들의 전쟁은 계속된다’의 저자인 박원규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브랜드 전쟁에서는 일단 삼성이 판정승을 거둔 셈”이라면서 “외환위기 이후 삼성과 LG의 실적 차이가 마케팅·브랜드 투자의 차이로 이어지면서 격차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가정이긴 하지만 일부에서는 LG가 외환위기 이후에도 반도체와 금융 분야를 계속 가져가고, 2003년 GS와 LS, LIG 등의 분리를 조금 더 늦췄다면 지금의 삼성과 LG의 구도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인사]

    ■보건복지부 ◇3급 승진△감사담당관 이상인<과장>△인사 김헌주△의료자원정책 고득영△응급의료 정은경△구강생활건강 신승일△노인지원 최영호◇4급 승진△기획조정담당관실 조신행△보건의료정책과 김연숙△복지정책과 조충현△장애인정책과 이행철△고령사회정책과 임은정△국민연금정책과 유보영△식품정책과 권기철△보건복지부 정통령 이능교△복지정보과 홍영숙 ■통계청 ◇국장급 승진△경제통계국장 박성동◇부이사관 승진△통계대행과장 윤석은△경제통계기획〃 최성욱 ■광주광역시 △생태하천수질과장 김승현 ■충남도 ◇서기관 전보△총무과 김영범 ■대한전기협회 ◇신규△전력기술교육원 교학처장 김동현◇보직△KEPIC처 인증심사실장 이동제 ■한국수력원자력 ◇실장△감사 손태경△홍보 김용집△품질보증 이상돈△정보시스템 최승경△발전운영 이재동△정비전략 손도희△설비개선 신선동△신재생사업 전병기◇처장△지역상생협력 심재훈△인사노무 박동원△자재 김기홍△발전 이강덕△설비기술 송호분△건설 봉기형△건설기술 조태형△양수 서영찬◇고리본부△본부장(직무대행) 배한경△경영지원처장(〃) 황현△제1발전소장 전휘수△신고리제2발전〃 석기영△신고리제2건설〃 문진영◇월성본부△경영지원처장 강영모△대외협력실장 김관열△신월성건설소장 이용희◇울진본부△대외협력실장 김재혁△제1발전소장 반재하△제3발전〃 윤청로△신울진건설〃 양승현◇소장△예천양수발전 박경수◇한수원중앙연구원△연구지원실장 설동욱 ■건국대 <서울캠퍼스>△부총장 최규하△학생복지처장 이승호△총무〃 유정세△국제협력〃 정의철△입학홍보처장 염지숙 ■관동대 △산학연구처장 김규한△학생상담센터장 이희현 ■서강대 △사회과학부학장(공공정책대학원장 겸임) 김무경 ■동덕여대 △학생처장 김명애 ■한림대의료원 ◇동탄성심병원 <센터장 겸 과장>△소화기센터 겸 내과 이진△근골격센터 겸 정형외과 장호근△응급의료센터 겸 응급의학과 왕순주△뇌신경센터 겸 신경과 권기한△건강증진센터 겸 가정의학과 김미영<센터장 겸 분과장>△호흡기센터 겸 호흡기내과 현인규△심장·혈관센터 겸 순환기내과 유규형△내분비갑상선센터 겸 내분비내과 홍은경<센터장>△인공관절센터 장준동<과장>△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욱△외과 박성길△안과 한재룡△재활의학과 전아영△마취통증의학과 강진구△진단검사의학과 김현수△병리과 최영희△소아청소년과 김성구△피부과 권인호△흉부외과 이희성△산부인과 장봉림△방사선종양학과 김해영△신경외과 김창현△이비인후과 박일석△비뇨기과 이성호△치과 신미란△영상의학과 황대현<분과장>△소화기내과 계세협△혈액종양내과 정주영△신장내과 구자룡△감염내과 우흥정◇한강성심병원 <과장>△화상외과 허준△내과 한성우(제1과) 박태진(제2과)△소아청소년과 유기양△정신건강의학과 이병철△응급의학과 유기철△진단검사의학과 이규만△산부인과 이용우△영상의학과 이일성 ■스포츠월드 △편집부장 장진찬 ■제주일보 △논설위원(국장대우) 오택진<편집국>△국장대우 김승종△부국장대우 박상섭△편집부장 조문욱△미디어〃 부남철<서울지사>△정치부 국장대우 강영진<영업본부>△판매국장대우 이정유△광고국장대우 진대종△디자인부장 양정열<제작국>△국장대우 김대용△CTP개발실장(부장) 문성철△윤전부장대우 송봉언<총무국>△총무부장 고창현△경리〃 강경돈 ■수출입은행 ◇부행장 승진△자금본부장 최성환 ■미래에셋증권 ◇부장 승진△상계지점 조윤수△미금역지점 황선영△여수지점 홍성원△WM강남파이낸스센터 배준영△구조화상품팀 장성욱△상품운용팀 김태영△자금팀 박인찬△투자심사팀 조홍래
  • [인사]

    ■특허청 ◇과장급 직위승진 △특허심판원 심판관 성백문△국제지식재산연수원 지식재산교육과장 전승철◇과장급 전보△기획조정관실 행정관리담당관 정인식△고객협력국 국제출원과장 정용익△상표디자인심사국 국제상표심사팀장 나찬희△정보통신심사국 컴퓨터심사과장 박제현◇서기관 전보△인사과 정경훈△고객협력국 고객협력정책과 신순호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재경영실장 백정선 ■한림대의료원 ◇동탄성심병원 △병원장 장호근△진료부원장 이진△행정〃 장기억△기획실장 강희준△수련교육부장 이성호△간호〃 김정미◇한강성심병원△병원장 전욱△진료부원장 이종욱△행정〃 이규홍△기획실장 이병철△수련교육부장 김도헌△간호〃 이경숙 ■KDB산업은행 △윤리준법본부장 신종신◇부장△여수신기획 지광남△성장금융 김재일△기술금융 이기복◇지점장△성동 오진교△여의도 양문석△원주 임현승
  • “美, 12·12쿠데타 6년前부터 전두환 군지도자로 주목”

    “美, 12·12쿠데타 6년前부터 전두환 군지도자로 주목”

    미국은 12·12 군사쿠데타 발생 6년 전인 1973년에 이미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군부의 잠재적 지도자로 주목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당시 31세였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차세대 지도자로 지목했다. 이 같은 내용은 1972년 12월 18일 미 국무부의 지시에 따라 1973년 3월 30일 당시 필립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가 작성, 보고한 8쪽 분량의 비밀전문에 기재돼 있으며, 재미 블로거 안치용씨가 최근 전문 사본을 공개했다. 2일(현지시간) 확인한 이 비밀전문의 제목은 ‘한국의 잠재적 지도자 리스트’로 정·관계, 언론계, 학계, 군부 등 분야에서 모두 84명을 망라하고 있다. 명단에는 정인영 당시 현대건설 사장과 함께 이건희 ‘중앙일보 이사’가 포함돼 있다. 이 회장은 잠재적 지도자로 거론된 84명 중 최연소였으며, 이맹희씨 등 형들을 제치고 이병철 회장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미국이 예견한 셈이다. 하비브는 서종철(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대장, 강창성 육군 보안사령관, 진종채 수도경비사령관 등 고위 장성과 함께 준장급인 전두환 제1공수여단장과 김복동(노태우 전 대통령 처남) 준장을 차기 군부 지도자로 평가했다. 전문이 작성된 시점은 이른바 ‘윤필용 사건’으로 인해 군부 내 비밀조직인 ‘하나회’의 실체가 드러나 전 전 대통령 등 회원들의 운명이 풍전등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은 이미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 등 하나회 핵심멤버들을 비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지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인으로는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철승·김용태·박준규·조윤형 의원 등이, 관계에서는 노신영·함병춘·최광수·박종규·김만재·이건개·강인덕씨 등이 포함돼 있다. 언론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총애가 두터웠던 신범식 서울신문 사장, 박권상 동아일보 편집국장, 김상만 동아일보 발행인, 신상초 중앙일보 논설위원, 장기영 한국일보 발행인, 남재희 서울신문 편집국장 등이 명단에 올랐다. 학계에서는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 이한빈 숭전대 총장 등이, 종교계에서는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등이 꼽혔다. 한편 1963년 5월 7일 당시 새뮤얼 버거 주한 미국대사가 작성해 국무부에 보고한 외교전문에 따르면 김현철 내각수반이 버거 대사에게 박정희 의장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방미를 주선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에 따르면 김 수반은 버거 대사를 만나 육 여사와 자신의 아내가 사적으로 미국을 방문한다면 한국 여성단체들의 활동을 미국에 알리고 미국의 유사활동을 살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버거 대사는 “이 방문이 순수한 시찰인지 진정성에 의심이 들며 부분적으로 한국의 고위공직자 아내들도 외국의 고위공직자 아내처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박 의장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보고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인사]

    ■경북도 ◇4급 △고령부군수 김상운△자치행정과 권영동 ■전남도 ◇4급 승진·전보 △녹색에너지담당관 김태환△투자개발과장 김범수△신성장동력〃 윤순선△F1대회조직위원회 기획공보부장 윤진호△행정안전부 파견 차주경△문화예술재단 〃 김명원△지식경제부 〃 유현호△식품안전과장 장문성△해양수산과학원장 최연수△산림자원연구소장 윤병선△농업기술원 축산연구소장 김원호△보건환경연구원 연구지원담당관 양수인△서울투자유치사무소장 박은호△국제협력과장 고영윤△세정〃 배유례△회계〃 방옥길△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조직위 파견 손영호△토지관리과장 민상기△국회사무처 파견 정찬균△국외훈련 소영호△스포츠산업과장 정형철△목포시 국장요원 홍성일△농업식품정책과장 서은수 ■경북과학대 △기획조정처장 김찬곤△입학홍보〃 이종춘△행정지원〃 성태명△산학협력단장 제경성△학술정보센터소장 추흥엽△중소기업산학협력센터〃 이유순△포장기술연구〃 김종현 ■동의대 △관리처장 김승규 ■한림대의료원 ◇한림대의료원 △의료원장 이혜란△부의료원장 이근영 이병철◇성심병원△병원장 정기석△진료부원장 김이수△행정〃 이원섭△기획실장 조진선△수련교육부장 김성균△간호〃 김종란◇강남성심병원△병원장 이열△진료부원장 유재명△행정〃 윤성대△기획실장 노용균△수련교육부장 김진배△간호〃 임은주◇강동성심병원△병원장 송경원△진료부원장 이삼열△행정〃 곽철원△기획실장 엄중식△수련교육부장 박대균△간호〃 박인옥◇한강성심병원△병원장 장호근△진료부원장 윤종률△행정〃 이규홍△기획실장 이진△수련교육부장 김종현△간호〃 이경숙◇춘천성심병원△병원장 조용준△진료부원장 윤종우△행정〃 박태식△기획실장 이상규△수련교육부장 최휘철△간호〃 오영숙◇재단본부△감사실장 김상기<국장>△경영지원 유병승△인사 김관식△관리 최훈철△건설팀담당 김극수△대외협력 윤희성△정보전략 주상훈 ■한국원자력의학원 △방사선의학정책개발센터장 김미숙<원자력병원>△진료부장 양성현△의료기획조정실장 한철주△종합암검진센터장 남현석 ■IBK캐피탈 ◇부사장 선임 △기업금융본부장 전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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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신문 <편집국>△편집2부 선임기자 최홍재△문화부 전문기자 손원천△정치부 차장 오일만△경제부 〃 전경하 ■교육과학기술부 ◇고위공무원 승진 △대변인 김문희 ■행정안전부 △중앙공무원교육원 기획부장 이재영△국가기록원 기록정책부장 권영수△개인정보보호위원회 사무국장 김혜순△국립방재연구원 연구기획과장 이병철◇과장△행정제도 박덕수△연금복지 하태욱△정보문화 구만섭△재난대책 임상규△자치행정 김장회△주민 김명선△자치제도 박성호△지역녹색성장 고광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국 예술정책관 김재원 ■농림수산식품부 △축산물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원장 조규담 ■인천시 ◇승진 <3급>△항만공항해양국장 김광석△인재개발원장 한길자△도시철도건설본부장 박만희<4급>△경제자유구역청 정연용 정영종△아시아경기대회지원본부 대회지원과장 조형도△〃 시설계획과장 홍순호△여성복지관장 박윤숙△교통관리과장 임승문△버스정책〃 최강환△개발계획〃 안갑석◇전보△의회사무처장 홍준호△보건복지국장 이웅수△상수도사업본부장 김기형△경제자유구역청 도시개발본부장 정대유△사회복지봉사과장 조현석△도시디자인추진단장 김동빈△경제자유구역청 구남회△종합건설본부 총무부장 김형수△대중교통과장 이덕구△법무담당관 이의석△시민봉사과장 김종한△인재양성〃 장성욱△자치행정〃 강신원△환경정책〃 김상섭△아시아경기대회지원본부 대회지원과 김만기△장애인복지과장 김옥순△하수과장 지창열△종합건설본부 토목부장 이종성△상수도사업본부 급수부장 김동호△도시재생과장 남문희△종합건설본부 도로관리부장 신재호△항만공항시설과장 정창식△상수도사업본부 수도시설관리소장 이민구◇전입△문화관광체육국장 전상주△시립박물관장 나봉훈△도시계획국 지역개발과장 이경석◇전출△서구 부구청장 박성만△동구 〃 강상석△남동구 〃 박준식◇파견△인천유나이티드FC 파견 조동암◇구간교류△중구 부구청장 곽하영△계양구 〃 권오준△강화군 부군수 한영란 ■한국가스공사 △상임감사위원 이성호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김세영(단국대 교수) ■국민일보 △이사대우 수석논설위원 김윤호△편집국장 김경호△광고마케팅〃 이용웅△비서실장 정병덕 ■KBS <콘텐츠본부>△다큐멘터리국장 김규효△콘텐츠기획부장 김영두△다큐멘터리국 EP 장영주 한창록 ■한국전력기술 △원자력본부장 윤순철
  • 법원 ‘삼성특검 자료’ 공식요청… 이맹희·건희 상속소송 증거로

    법원이 삼성가(家)의 상속재산인 차명주식을 둘러싼 소송에 증거로 사용될 지난 2008년 삼성 특검 수사자료를 검찰에 공식 요청했다. 이에 따라 당시 수사자료가 재판에서 얼마나 공개될지 주목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부장 서창원)는 삼성 특검 관련 수사자료의 요청서(문서송부촉탁서)를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검에 발송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달 25일 열린 3차 변론기일에서 수사자료를 증거로 채택했다. 법원이 채택한 증거는 크게 5가지다. 이병철 회장 생전에 차명상태로 관리되다가 상속된 삼성생명·삼성전자 현황자료(차명인 목록·소유주식·거래내역), 차명주식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이익배당금을 수령했는지 등에 대한 수사자료다. 또 차명주식 존재와 실소유주를 확인하기 위한해 특검팀의 계좌 추적에 의해 확인된 금융자료, 이건희 회장 등 관련인 진술조서, 증거목록과 공판조서도 포함됐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맹희씨 등이 상속 주식을 달라며 삼성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낸 소송의 4차 변론기일은 29일 열린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삼성그룹은 지금 ‘고전 읽기 삼매경’

    ‘논어, 도덕경, 손자병법, 사기….’ 삼성전자 등 첨단업종을 거느려 ‘모던 이미지’가 강한 삼성그룹에 고전 열풍이 불고 있다. ●마이싱글 ‘금요고전’ 코너도 개설 경영진은 물론 임직원에까지 이어지는 삼성의 고전 탐독 주문은 끝이 안 보이는 경기불황과 글로벌 정보기술(IT) 전쟁의 파고를 넘는 데에는 선인들의 지혜가 농축된 고전만 한 게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최근 20만 임직원들이 거의 매일 들여다보는 사내 인트라넷 ‘마이싱글’의 로그인 화면과 ‘미디어 삼성’의 전문가 칼럼, 마이싱글 블로그 등을 통해 임직원에게 고전 읽기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 마이싱글 로그인 화면에 고전 내용이나 추천도서 등을 띄워 자연스럽게 고전에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금요고전’이라는 고정 코너도 개설했다. 이 코너는 외부 명사들의 관련 칼럼이나 고전에 대한 임직원 설문조사, 임직원의 고전 추천 등을 통해 관련 콘텐츠에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논어·손자병법·죄와 벌 등 추천 임직원이 추천한 도서는 논어와 삼국지, 손자병법, 사기, 맹자, 도덕경 등이 주를 이뤘고, 조지 오웰의 1984, 단테의 신곡,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 등도 포함됐다. 최고경영자(CEO)들도 노자를 주제로 고전 특강을 받는 등 고전 읽기는 모든 임직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삼성이 고전을 적극 장려하는 것은 교양과 취미활동을 돕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고전을 통해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포석도 엿보인다. 하드웨이적인 기술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디자인이 강조되는 요즘 인문학적 소양과 통찰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중요성이 커진 것도 고전을 강조하는 배경이 됐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의 저자인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는 미디어 삼성에 기고한 글에서 “고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이 문제를 푸는 데에 수많은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 있는 책”이라며 “변화와 창조를 외치는 오늘날 상황에도 고전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말까지 칼럼읽기 등 이벤트 지속 앞서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호암자전’에서 “가장 감명받은 책을 들라면 서슴지 않고 ‘논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논어에는 내적 규범이 담겨 있다. 간결한 말 속에 사상과 체험이 응축되어 있어, 인간이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마음가짐을 알려 준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삼성은 연말까지 CEO 추천 고전 소개, 임직원 고전 증정 이벤트, 고전을 영화와 사랑, 명화, 여행, 건축 등 다양한 주제와 연결시킨 기사와 칼럼 읽기 등 장려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삼성가 유산소송 상속재산분할협의서 공방

    삼성가(家)의 상속재산인 차명주식을 둘러싼 소송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측이 제출한 ‘상속 재산 분할 협의서’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쟁점은 형제들 사이에서 재산 분할을 둘러싸고 협의를 했는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부장 서창원)는 25일 고 이병철 전 회장의 장남 맹희, 차녀 숙희, 삼남 창희씨의 며느리 최선희씨 등이 이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재산 반환 청구 소송 3차 변론을 진행했다. 이맹희씨 측 변호인들은 “대(大)삼성그룹에서 그렇게 할 리가 없다.”, 이 회장 측은 “소설에 가까운 부당한 주장”이라며 서로 공격했다. 이 회장 측은 재판에 앞서 이병철 전 회장 타계 2년 뒤인 1989년에 작성된 ‘상속 재산 분할 협의서’를 법정에 제출했다. 협의서에는 ‘제일합섬 주식 7만 5000주는 창희씨, 10만주는 건희씨, 전주제지 주식 7만 4000주는 인희씨가 갖는다.’는 등 주식 분배 내용에 대해 형제들이 동의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맹희씨 측은 “삼성생명·전자 등이 빠져 있고 ‘나머지 재산에 대해 이건희 회장에게 귀속한다’는 문구가 없다.”면서 “차명주식에 대한 상속재산 분할 협의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회장 측은 또 ‘선대 회장의 유언장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전제한 뒤 “재산 상속은 선대 회장 생전에 이뤄졌다.”면서 “협의서는 재산 분할을 확인하고 등기하기 위한 형식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미 기명·차명재산을 나눠 줬고 남은 것은 분할한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고려병원·전주제지·호텔신라는 이인희, 제일합섬은 이창희, 조선호텔·신세계 주식은 이명희씨에게 갔다는 것이다. 이어 “이맹희, 이숙희는 상속을 포기했으며 합의서는 나머지 형제들에게 일일이 찾아다니며 날인을 받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장은 “동산(動産)의 상속회복 청구권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없어 매우 특이한 사건”이라면서 “가장 큰 특징은 ‘차명주식’과 ‘25년 경과’ 문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 삼성 특검 기록 중 ▲선대 회장 생전 차명 상태로 관리된 주식 현황 자료 ▲특검팀 계좌 추적에 의해 확인된 금융 자료 ▲이건희 회장 진술서 ▲공판 조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다음 재판은 8월 29일에 열린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밥상 108년 5대 변천사] ‘이탈리아 맛과 멋’으로 서울 한복판서 40년…추억을 먹는다

    [밥상 108년 5대 변천사] ‘이탈리아 맛과 멋’으로 서울 한복판서 40년…추억을 먹는다

    서울 중구 을지로1가 삼성화재빌딩 지하에 있는 이탈리아 식당 ‘라 칸티나’는 지난 5월 초 내부 재단장을 마쳤다. 1967년에 문을 연 이 오래된 식당에서는 30, 40대도 젊은 손님으로 통한다. 지난해 8월부터 내부 수리에 들어가자 60, 70대 단골손님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 “라 칸티나는 한 개인만의 장소가 아니라 많은 사람의 추억과 향수가 있는 곳이니 예전 모습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식당을 운영하는 이태훈(47)씨는 말했다. 라 칸티나란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지하에 있는 포도주 저장고 또는 레스토랑을 뜻한다. 지하에 있는 식당은 붉은 벽돌과 아치형의 창문 장식 등으로 이탈리아 정원 느낌을 냈다. 1년여간 내부 수리를 통해 주방시설과 천장, 바닥, 냉난방시설 등을 새롭게 교체했지만 타일은 고풍스러운 것을 선택하는 등 옛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다. 단골손님 가운데 “공사했다더니 뭐 했어?”라고 되묻는 이가 있을 정도다. 라 칸티나의 가장 유명한 단골손님은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였다. 삼성화재 건물에 집무실이 있었던 까닭에 생전의 이 회장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라 칸티나에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삼성의 전·현직 임직원 가운데 이 회장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라 칸티나를 찾는 단골이 아직도 있다. 삼성 사람들이 외부 손님을 접대하거나 회의가 끝난 뒤 식사를 하는 장소로 이곳을 자주 찾다 보니 ‘삼성’ 메뉴도 생겼다. 메뉴판에 정식으로 올라 있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이 주문하면 만들어준다. 삼성 메뉴가 생긴 것은 채 10년이 안 됐다. 링귀니 파스타-양파 수프-샐러드-갈릭 스테이크가 나오는 코스 요리가 삼성 메뉴다. 새우살과 조개를 다져 넣은 링귀니 파스타는 뿌연 색의 국물이 자작하게 함께 나와 술 먹은 다음 날 해장 음식으로도 인기다. 1970년대에는 라 칸티나에서 피아노와 함께 라이브 음악도 즐길 수 있었다. ‘그때 그 사람’으로 유명한 가수 심수봉은 1973년 여고를 졸업하고 라 칸티나에서 아르바이트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하얀색 그랜드 피아노를 치며 라틴 계열의 외국곡을 불러 인기를 끌었다. ‘향수’로 유명한 가수 이동원도 라 칸티나에서 노래를 불렀다. 라 칸티나의 스파게티 가격은 1만 3000~1만 4000원. 안심 스테이크는 3만 4000원이다. 여기에 세금이 20% 붙으니 싼 값은 아니지만 서울 도심에 있는 유명 식당치고는 예전 가격대를 유지하는 편이다. 지배인 임승환(52)씨는 “우리 식당은 ‘모던’과는 거리가 멀지만 투박하지만 실용적인 멋과 깊이 있는 맛이 있다.”고 강조했다. 라 칸티나가 처음 생겼을 때는 웨이터에 웨이터 보조까지 두고 호텔식 서비스를 선보였다. 당시에는 젊은이들이 쉽게 주머니를 열 수 있는 가격대가 아니어서 사회 초년병들은 직장 상사를 따라오거나 부모님과 함께 라 칸티나를 찾았다. 정장 차림이 아니면 입장이 되지 않아 재킷을 빌려 주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지배인 임씨는 전했다. 고급 양식당이었던 라 칸티나가 정통 이탈리아 음식을 선보이게 된 것은 1982년 주방을 맡은 이탈리아계 미국인 벨라르디의 영향이 컸다. 벨라르디가 라 칸티나 음식의 틀을 잡기 전에도 피자, 스파게티 등을 선보였지만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아니었다. 홍콩과 싱가포르에 사업체를 둔 벨라르디는 한국에 올 때마다 들러 유행을 반영한 요리법을 만들어 냈다. 라 칸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파게티는 국물이 듬뿍 있는 ‘스파게티 봉골레’와 해산물 파스타인 ‘딸리아뗄레 페스카토레’다. 임씨는 40여년간 라 칸티나가 시청 옆 도심 한복판에서 명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탈리아 요리는 한식처럼 마늘, 매운 고추를 많이 쓴다.”며 “프랑스 음식은 향신료를 많이 쓰고 코스로 짜여 있어 서민이 접근하기 어렵지만 파스타는 틀이 없고 스테이크보다 싸서 쉽게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모두가 포기했던 난치병 소년 한국이 내민 손 잡고 기적을 만나다

    모두가 포기했던 난치병 소년 한국이 내민 손 잡고 기적을 만나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우리들병원 회의실, 화상 콘퍼런스를 위해 모인 이상호 이사장 등 의료진은 화면을 통해 보이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화면 속 소년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살고 있는 빈탕(7). 허리뼈와 목뼈가 심하게 휘어져 있었고 안면비대칭으로 왼쪽 얼굴은 흉하게 부풀어 있었다. 걷지를 못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빈탕은 숨쉬기마저 힘겨워 보였다. 빈탕을 괴롭힌 것은 신경계의 유전적 장애로, 뇌와 척수·신경·피부 등에 이상이 나타나는 ‘신경섬유종증’이었다. 몸 안의 종양이 척수를 압박해 목뼈가 심하게 휘는 경추 후만증이 생겼으며, 두개골과 얼굴, 가슴에도 심각한 변형이 진행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호흡장애와 폐렴, 폐부종 등 합병증까지 겹쳐 빈탕은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고난도 수술에 따른 위험 부담이 큰 데다 고도의 의술과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치료라고 해봐야 한 살 때 경추 척추궁절제술과 종양제거술을 받은 게 전부였다. 이런 상황이니 신경섬유종을 치료한다는 건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의사인 빈탕의 부모는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해 수소문한 끝에 미국의 한 어린이병원을 추천받았다. 하지만 치료비만 7억원이 넘어 포기해야 했다. 부부가 의사이면서도 아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모의 속은 타들어갔다. 그런 빈탕에게 실낱 같은 희망이 다가왔다. 자카르타의 우리들척추센터를 찾은 빈탕에게 척추센터의 와완 박사가 “한국의 우리들병원이라면 수술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운을 뗀 것. 우리들척추센터는 서울의 우리들병원으로 빈탕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냈다. 사망률이 10%를 넘는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빈탕의 동영상을 본 의료진은 도전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상호 우리들병원 이사장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찾아온 빈탕과 부모의 마음을 잘 알기에 모든 의료진이 의기투합해 치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빈탕을 위해 청담우리들병원 장지수 원장을 비롯해 신경외과·마취과·흉부외과·내과 소속 의료진 이병철 원자력병원 교수까지 가세한 의료팀이 꾸려졌다. 빈탕은 다니던 학교를 휴학한 채 지난 5월 9일 한국땅을 밟아 정밀검사를 받았다. 수차례의 회의를 거쳐 마침내 수술이 결정됐고, 같은 달 22일 수술이 진행됐다. 경추체 제거술, 후두부~흉추부 고정술 등 18시간 동안 고난도 수술이 이어졌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사지를 움직이지 못해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던 빈탕은 수술 후 2주가 지나자 의료진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가 하면 걸음도 걷기 시작했다. 폐렴과 폐부종 등의 증상도 호전됐다. 빈탕은 빠르게 회복해 지난달 15일 고국으로 돌아갔다. 빈탕의 부모는 현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삶을 포기했던 아이의 병을 고쳐 다시 희망을 가지게 된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한국과 한국의 의사들을 평생 기억할 것”이라고 적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한옥 짓는 비법 큰 맘 먹고 공개”

    “한옥 짓는 비법 큰 맘 먹고 공개”

    “짚신 삼는 기술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나누지 못하지만, 나는 내 새끼들(제자)한테나 잘 알려 줘야 할 한옥 짓는 비법을 큰 맘 먹고 공개하는 겁니다.” 숭례문 복구 목공사를 맡았던 신응수(70) 대목장은 28일 서울 낙원동에서 ‘신응수의 목조 건축 기법’(눌와 펴냄) 출판기념간담회를 열고 이렇게 말하면서 슬쩍 눈가를 닦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준비해 12~13년 만에 책이 나오니 마음이 풀어져 저절로 그리 된 것이다. 조선시대 궁궐은 당대 최고의 목재로, 최고의 기술로 지었다. 최고의 목수가 지은 창덕궁·경복궁 등 궁궐을 보수·복원했던 과정에서 얻은 기술과 자신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적어 놓았다. “좋은 기술을 본받아서 표준화할 필요를 한옥 건축물을 보면 느끼게 된다. 지은 집이 오래도록 살아남아야 목수의 이름이 오래가지 않겠나. ‘책에 기술한 내 기술이 최고다, 내가 표준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전통 건축에 종사하거나 한옥을 짓고 싶은 사람들이 쉽게 읽고 취사선택하길 바라면서 썼다.”고 했다. 목수들끼리는 건축물을 보면 누가 지었는지 금방 알 수 있다고 했다. 현재는 신 대목장 외에 최기영·전흥수 대목장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전통 건축물을 짓고 있다. 이 책에서 주목할 대목은 ‘신응수의 처마 작도법’이다. 한옥은 지붕의 미학이라고 할 만큼 지붕이 중요하다. 그 비법을 몽땅 공개했다. 신 대목장은 “1980년대 삼성 이병철 회장의 승지원을 지을 때다. 일반 한옥의 큰 결함은 30년에 한 번은 지붕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사실을 이 회장이 알고는 그렇게 자주 보수해야 한다면 짓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당시 일본 기와집은 150~200년에 한 번씩 지붕 공사를 하더라. 한옥에는 기와를 올리기 전에 ‘적심’(톱밭이나 흙, 강회)을 넣는데, 이것을 빼면 지붕이 훨씬 오래간다. 그래서 승지원은 적심을 빼고 공사를 했다. 근정전 복구 공사를 할 때도 보니 적심 탓에 지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대들보가 부러져 있더라. 적심을 빼지 않으면 자주 보수해야 한다는 강한 발언으로 근정전도 적심을 빼고 공사했다.”고 말했다. 숭례문은 전통 방식의 복구를 원칙으로 해 적심이 들어갔으나, 화재에 취약한 문제 해결책을 찾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기록 열어본다

    삼성가(家) 상속재산 재판에서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당시 수사기록이 공개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부장 서창원)는 27일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 맹희씨, 차녀 숙희씨, 차남 창희씨의 며느리 최선희씨 등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재산 반환 청구 소송 2차 변론기일에서 “특검 수사기록의 확인이 일부 필요한 것 같다.”고 밝혔다. 원고 측이 증거로 신청한 특검 수사기록에 대한 재판부의 입장이다. 서 부장판사는 “삼성전자의 차명주식에 대해 1987·1998·2008년 시점의 보유현황이 입증돼야 하지만 특검도 2002년 이전 주식을 밝혀내지 못했다.”면서 “추적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특검 기록이라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기일(7월 25일) 전까지 피고 측의 답변을 보고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하겠다.”면서 “원고와 피고 합의하에 합리적 범위 내에서 복사하면 될 것이고, 이견이 있는 부분은 재판부가 판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삼성 측의 조사 결과 1987년 당시 삼성생명의 차명주식은 4만 1000주(28%)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사생활 침해 문제 때문에 특검 기록 열람을 반대했던 것”이라면서 “필요한 범위만 본다면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국세청,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관련 자료에 대한 증거 채택은 자료 보유 여부를 확인한 뒤 결정하기로 했다.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진행된 변론에서 원고와 피고 측은 민법상 침해가 발생한 때로부터 ‘10년인 제척기간(시효)’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이맹희씨 측은 “2011년 6월 세무 문제 때문에 동의서를 작성할 때 침해행위를 알았다.”, 이 회장 측은 “2008년 삼성 특검 발표 당시 (침해행위를) 알았으므로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논리를 폈다. 재판부는 양측에 제척기간을 정리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다음 재판은 7월 25일에 열린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부고]

    ●이병철(전 한국도로공사 부처장)씨 별세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5시 30분 (02)3010-2251 ●이영호(서울시청 유통관리팀장)은호(삼성전자 메모리전략마케팅 부장)씨 부친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9시 30분 (02)3010-2265 ●김형호(전 고덕초 교장)씨 부인상 선규(외환은행 압구정중앙지점장)민규(사업)씨 모친상 하진영(강원대 컴퓨터학과 교수)장경일(부가가치경영컨설팅 대표)씨 장모상 백종화(이화여대 아동학과 겸임교수)씨 시모상 19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02)2227-7500 ●김정혁(고려대 의과대학 영상의학과 교수)수혁(비쥬얼아트센터 보다 대표이사)씨 부친상 19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02)923-4442 ●최현수(강남성모병원 의사)씨 부친상 강신호(한국무역보험공사 워크아웃팀장)오종인(티엠에스 파트장)씨 장인상 19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30분 (02)2258-5940 ●유동배(삼성물산 차장)씨 별세 김세라(건강심사평가원 통계정보센터장)씨 남편상 6일 페루, 빈소 삼성서울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30분 (02)3410-3151 ●윤중열(전 일간스포츠 대표이사)씨 별세 병준(미국 텍사스 A&M대학 교수)씨 부친상 남기현(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마케팅 차장)씨 장인상 19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02)2227-7580
  • 삼성家 이건희 회장·장남 이맹희씨 ‘1조원대 상속분쟁’ 첫 공판

    삼성家 이건희 회장·장남 이맹희씨 ‘1조원대 상속분쟁’ 첫 공판

    삼성가(家)의 차명 주식을 둘러싼 2세들의 법정 싸움은 처음부터 치열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부장 서창원)는 30일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씨가 삼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재산 반환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었다. 차녀 이숙희씨, 차남 이창희씨의 며느리 최선희씨가 제기한 소송도 병합, 한꺼번에 심리했다. 재판에는 당사자들 대신 대리인인 변호사들만 출석했다. 변호인만 원고측 9명, 피고측 6명이 출석했으며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듯 삼성·CJ 측 관계자를 비롯, 100명이 넘는 방청객이 발 디딜 틈 없이 자리를 채웠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재판은 앞으로 벌어질 법정 다툼을 예고하듯 법리적 쟁점과 사실관계를 두고 변호인들의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재판장도 절제된 단어를 사용하면서 조심스럽게 사건에 접근했다. ‘제척기간(除斥期間·법률상으로 정하여진 존속기간)이 지났다.’는 이건희 회장 측 주장에 대해 원고 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가 먼저 공격했다. 원고 변호인은 “민법에 따르면 상속권이 침해된 것을 안 날로부터 3년, 행위로부터 10년이 지나야 상속권 회복 청구권이 소멸된다.”면서 “2011년 6월 세무 문제 때문에 동의서를 작성할 때 알았으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건희 회장은 차명주식을 관리하면서 상속 명의를 변경한 적이 없어 상속권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없다.”면서 “차명주식에 대해 원고는 상속권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유권도 갖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소유권을 갖고 있다는 원고 측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민법상 소멸시효는 문제 되지 않는다. 이건희 회장 측은 ‘소유권을 갖고 있다.’는 원고 측의 주장을 곧바로 되받아쳤다. 피고 변호인은 “원고의 논리는 매우 부적합하고 일방적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상속권을 침해할 ‘참칭(僭稱) 상속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상속권이 있는 상황에서 소유권을 갖고 있다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각하·기각해 달라.”고 주장했다. 참칭상속인은 법률상 재산상속권이 없으면서 사실상 재산상속인으로 지위를 보유한 사람을 일컫는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에 대한 도덕성 공방도 만만찮았다. 이건희 회장 측은 “이병철 선대 회장은 생전에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삼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다른 상속인에게 계열사 주식이나 다른 재산을 분배해 줬다.”면서 “만약 차명주식이 이건희 회장에게 갔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선대 회장 타계한 지 25년 지나는 동안 어떻게 분쟁이 없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제 새삼 다투는 것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 후계자라는 것을 부인하는 행위이며 선대 회장의 유지를 부인하는 행위”라면서 “이건희 회장이 위험을 감수하며 혼신을 다해 일궈낸 세계적인 그룹을 다시 나눠 갖자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상속 개시부터 지금까지 주가가 40배나 상승한 점을 볼 때 정당성도 없다.”고 말했다. 원고 측은 반박했다. 원고 변호인은 “마치 알고 있었으면서 가만히 있다가 뺏으려는 등 부도덕한 사람인 것처럼 보는데 당시 이건희 회장이 기명주식을 상속받았다고 알고 있었을 뿐이고 차명주식은 몰랐다.”고 맞받아쳤다. 이어 “이숙희씨는 받은 재산이 없고, 이건희는 다른 공동상속인에게 차명주식 여부를 철저히 숨겨 왔다.”면서 “원고들은 부당하게 침해된 권리를 찾길 바랄 뿐 재산이 탐나서 벌이는 소송이 아니라는 점을 소송 첫머리에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병철 선대 회장이 타계한 1987년의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주식 발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법인등기부와 주권발행명부 등 자료를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27일 열린다. 류지영·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인사]

    ■특임장관실 ◇승진 △특임1과장 김희순◇전출△행정안전부 이병철 ■부산시 △북구 부구청장요원 박중문△투자유치과장(관광단지추진단장 겸임) 신창호 ■국민건강보험공단 △정보관리실장 정성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 신영석 ■새누리당 △대표 최고위원실 부실장 계민석△대표 최고위원 보좌역 고제영
  • 삼성가 유산상속 소송 30일 첫 변론기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형제들 간의 유산 상속 소송에 대한 첫 변론기일이 오는 30일로 잡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부장 서창원)는 30일 오후 4시 이맹희, 이숙희, 고 이병철 회장의 차남 창희씨의 며느리 최선희씨 등이 제기한 3건의 소송에 대해 변론기일을 연다. 세 사건은 아직 병합되지 않았지만 이날 병행심리로 동시에 진행된다. 민사 소송이므로 재판 당사자는 출석하지 않고 대리인인 변호인들만 출석한다. 이 회장은 지난달 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삼성전자 주식은 한 주도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8년 특검으로 밝혀진 차명주식 225만여주는 상속받은 재산이 아니라 이 회장 자신이 별도로 사둔 주식이라는 것이다. 또 상속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다는 점도 주장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이병철·구인회 美 ‘CEA 명예의 전당’에

    이병철·구인회 美 ‘CEA 명예의 전당’에

    고 이병철(왼쪽) 삼성그룹 창업회장과 구인회(오른쪽) LG그룹 창업회장이 미국 소비자가전협회(CEA)가 선정하는 올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일 재계에 따르면 CEA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2012 CE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인물로 이 창업회장과 구 창업회장 등 12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이 회장은 1969년 삼성전자공업과 삼성-산요전기 등을 설립하며 전자업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이듬해에는 삼성NEC(옛 삼성전관)를 설립하며 브라운관 시대를 열었다. 또 1977년에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산업을 시작했고, 같은해 4월에는 컬러TV를 수출하는 등 현재 세계 최대 전자·IT 업체인 삼성전자의 기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회장은 6·25전쟁 후 산업 불모지에서 창조력, 결단력 등으로 한국의 전자산업을 개척한 선구자로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공헌한 점이 평가를 받았다. 구 회장은 1958년 금성사를 설립하고, 1959년 국내 최초의 국산 라디오를 비롯해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전자제품을 국내 처음 개발·생산했다. 1960년대에는 전력 및 통신용 케이블, 전화기 및 교환기 등을 개발해 보급하며 우리나라의 정보기술(IT)과 통신의 대중화에도 기여했다. 한편 지난해까지는 소니, 파나소닉, 제니스, RCA, 필립스 등의 창업자가 ‘C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이건희 “상속받은 삼성전자株 안 남았다”

    삼성가의 상속 재산을 둘러싼 형제 간 소송전이 새 국면을 맞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맹희씨와 이숙희씨의 삼성전자 주식 각각 20주 반환 소송에 대해 당시 실명 전환된 주식은 상속받은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해 이번 사태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이 회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형제들이 반환 요청한 주식은 상속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소송 대상이 될 수 없다. 30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 회장 측은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통해 “선대 회장인 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삼성전자 주식은 현재 단 한주도 남아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 회장 측은 지난 27일 법원에 이맹희씨와의 소송에 대한 준비서면을 제출하면서 상속 소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회장 측은 준비서면에서 선대 회장이 물려준 삼성전자 주식은 이미 처분했으며 차명으로 보유하던 225만여 주는 이 회장이 별도로 사뒀던 주식이라고 전했다. 형 이맹희씨와 누나 이숙희씨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실명 전환된 삼성전자 주식의 정확한 규모가 파악되지 않는다며 20주씩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향후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대로 주식의 양을 확대해 반환을 요구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회장 측의 주장이 맞을 경우에도 의문은 남는다. 이 회장이 상속받은 주식을 굳이 처분하고 다시 주식을 사들이면서 차명으로 관리한 이유와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조목조목 재반박한 이건희 회장… 삼성家 재산분쟁 격화

    조목조목 재반박한 이건희 회장… 삼성家 재산분쟁 격화

    이건희(70) 삼성전자 회장이 자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전 제일비료 회장 이자 큰형인 이맹희(81)씨에 대해 ‘퇴출당한 양반’이라며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등 삼성가(家) 재산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이 회장은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으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을 만나 이맹희씨에 대해 “우리 집에서는 퇴출당한 양반”이라고 말했다. 이맹희씨가 지난 23일 소송 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를 통해 “건희의 어린애 같은 발언을 듣고 몹시 당황했다. 건희는 현재까지 형제지간에 불화만 가중시켜 왔다.”고 비난한 데 이어 나온 반응이다. 그러자 이 회장은 “그 양반은 30년 전에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당시 청와대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한테 고발을 했던 양반”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자기 입으로는 장손이다, 장남이다 이러지만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둘째 누나인 이숙희(77)씨에 대해서도 “결혼 전에는 아주 애녀(愛女)였다. 근데 (럭키)금성으로 시집을 가더니 같은 전자 동업을 한다고 시집에서 구박을 많이 받았다. 집에 와서 떼를 쓰고 이런, 보통 정신 가지고 떠드는 정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 때문에 고 이병철 회장이 맹희씨와 숙희씨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며 “‘맹희는 완전히 내 자식 아니다’라고 하고 내친 자식이고, 숙희에 대해서는 ‘내 딸이 이럴 수 있느냐, 니가 그렇게 계속 한다면 삼성 주식은 한 장도 줄 수 없다’고 20여년 전에 이야기를 하셨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그걸로 끝난 거다.”라며 “(맹희씨는) 날 쳐다보지도, 바로 내 얼굴을 못 보던 양반이고 지금도 아마 그럴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월 14일 이맹희씨가 재산반환 소송을 제기한 이후 이건희 회장의 발언으로는 가장 수위가 높은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전날 이맹희씨의 발언에 즉각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경영권 문제와 경영능력을 거론한 데 따른 반작용으로 분석한다. 평소 이 회장은 1987년 이병철 선대 회장의 타계 이후 삼성그룹을 맡아 25년 동안 오늘날 세계 일류기업으로 키운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그에게 “삼성을 누가 끌고 나갈 건지 걱정된다.”는 이맹희씨의 발언을 접하고 평소 담아 뒀던 얘기를 쏟아냈다는 분석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를 삼성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태생적 문제가 드러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맹희씨의 경우도 “삼성을 노리고 한 소송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 배경에는 과거 삼성가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데 대한 감정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송이 재산반환 소송에서 시작됐지만, 감정싸움으로 번진 만큼 타협의 여지는 희박해 보인다. 삼성은 자칫 이를 합의로 마무리지을 경우 다른 형제들의 줄 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어 합의는 배제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10년 가까이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두 기업의 이미지 손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승자 없는 재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성곤·류지영기자 sunggon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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