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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지방의원 교육이 필요한 이유/박길성 자치경영컨설팅 이사장

    [기고] 지방의원 교육이 필요한 이유/박길성 자치경영컨설팅 이사장

    1980년대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회사 리 아이아코카 회장이 삼성 초대 회장인 고 이병철 회장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전국의 삼성 사업장을 둘러보고 “용인 인재교육원의 시설과 교육 프로그램을 보고 삼성의 미래가 보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날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매출이 국가 예산의 70%를 넘어설 정도로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근간에는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지켜 온 기업 정신인 ‘인재제일주의’가 있다. 처음부터 최고의 인재를 채용하고 철저한 교육과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제일의 삼성맨으로 양성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지방의회 의원 선거는 1991년부터 지난해 6·13선거까지 8번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7번을 지역 주민들의 직접선거로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배출해 왔다. 그동안 뽑은 지방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중에서 상당한 숫자는 민의(民意)의 전당인 여의도 국회에서 나라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렇듯 지방의회는 지방자치제도 도입 이후 대한민국 정치인을 발굴, 육성하는 정치적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8년. 청년이 된 지방자치에 대한 새로운 도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방정치의 중심인 지방의원에게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변화와 역할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지방의원이 지역 리더로서 필요한 제대로 된 교육이나 연수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외유성 논란’에 이어 일부 지방의원들의 일탈로 인해 해외연수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 결과 기초지방자치단체장 226명 중 초선이 146명으로 약 64%를 차지하고,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3750명 중 초선 의원은 2322명으로 약 61%에 달한다. 지방자치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제도로 완착하기 위해서는 폐지보다는 ‘대한민국의 준비된 리더’를 만들기 위한 제대로 된 연수와 교육이 필요하다. 선거 전과 선거 이후에 최소한의 소양과 지식을 담은 사전 교육 및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철저한 관리 과정을 통해 지방의회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신(新)지방자치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지방 리더를 키우는 것이 지방자치를 더욱 성숙시키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 평생 의료계 몸담은 삼성家 맏사위… 조운해 별세

    평생 의료계 몸담은 삼성家 맏사위… 조운해 별세

    삼성그룹 창립자 이병철 선대 회장의 맏사위인 조운해 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이 지난 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한솔그룹 측이 4일 밝혔다. 94세. 고인은 지난 1월 30일 별세한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남편이다. 와병 중인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매형이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고모부이기도 하다.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의 부친인 고인은 대구금융조합연합회장을 지낸 조범석씨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북대 의대(옛 대구의전)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원에서 소아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병원 근무를 시작으로 의료계에 종사했다. 1948년 11월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소개로 이 고문과 결혼해 삼성가의 맏사위가 됐으나 한평생 의료계에서만 활동했다. 결혼 후 고려병원 원장과 이사장을 지냈고, 병원협회장과 아시아병원연맹 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 의료계 발전에 헌신했다. 슬하에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과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조옥형·조자형씨 등 3남 2녀를 뒀다. 장례식장은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6일 오전이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부인과 사별 한달만에”…‘삼성家 맏사위’ 조운해 前이사장 별세

    “부인과 사별 한달만에”…‘삼성家 맏사위’ 조운해 前이사장 별세

    재벌가 맏사위였지만 평생 의료계만 활동삼성그룹 창립자 고(故) 이병철 회장의 맏사위인 조운해 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이 지난 1일 오후 2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한솔그룹 측이 4일 밝혔다. 94세. 고인은 지난 1월 30일 별세한 고(故)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남편이다. 부인과 사별한 지 한달여만에 타계한 것이다. 고인의 재벌가의 맏사위였지만 한평생 의료인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와병 중인 삼성 이병철 회장의 매형이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고모부이다.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의 부친인 고인은 대구금융조합연합회장을 지낸 조범석씨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영남 명문가’로 통하는 한양 조씨 집안으로, 시인 조지훈(본명 조동탁) 선생과도 같은 가문이다. 경북대 의대(옛 대구의전)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東京)대학원에서 소아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병원 근무를 시작으로 의료계에 종사했다. 1948년 11월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소개로 이 고문과 결혼해 삼성가의 맏사위가 됐다. 고인의 경북중 1년 선배인 박 전 의장은 이건희 회장의 모친인 고 박두을 여사의 조카다. 고인은 삼성가의 맏사위가 됐으나 한평생 의료계에서만 활동했다. 결혼 후 고려병원 원장과 이사장을 지냈고, 병원협회장과 아시아병원연맹 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 의료계 발전에 헌신했다. 모교인 경북대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 경북대 총동창회장과 의과대 총동창회장을 맡았고, 은퇴 후에는 자신의 호를 딴 ‘효석(曉石) 장학회’를 설립해 대학 후배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펼쳤다. 슬하에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과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조옥형·조자형씨 등 3남 2녀를 뒀다. 장례식장은 삼성서울병원이며, 발인은 6일 오전 8시30분이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학생·주부·농부로 이어진 외침… 전국 곳곳서 “조선독립만세”

    학생·주부·농부로 이어진 외침… 전국 곳곳서 “조선독립만세”

    “최후의 일각, 최후의 일인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민족대표들의 독립선언서에서 촉발된 불꽃은 민초(民草)들에게 옮겨붙으며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폭탄을 터뜨리고 총을 들어야만 투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민중은 독립선언서를 베껴 써 이웃에 뿌리고 손으로 그린 태극기를 흔들며 목 놓아 만세를 불렀다.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은 민중의 판결문에는 일상에 뿌리내려진 독립운동이 그대로 남아 있다.1919년 3월 1일에는 서울 종로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에서도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일었다. 민족대표 33명을 비롯한 초기 주도자들이 2월 하순부터 전국 곳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조직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거대한 만세운동을 경험한 이들은 저마다 고향으로 흩어져 독립운동의 ‘불씨’를 전파했다.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박충서(당시 22세)는 3월 1일 오후 2~4시 수천명의 군중과 몰려다니며 만세를 부른 뒤 3월 5일 서울역에서 벌어진 학생 시위에도 참여했다. 김포 고향집으로 돌아가서는 이웃들과 만세운동을 기획하고 마을 곳곳에 격문을 붙였다. 3월 19일 시장통에서는 수백명과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체포 당시 그의 가슴엔 태극기가 있었다. 고종 황제 국장을 보기 위해 2월 28일부터 3월 6일까지 서울에 머물렀던 공주 출신 이수욱(30)은 귀향하자마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장날인 13일 오전 9시쯤 태극기 150개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 줬다. 이수욱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공주지방법원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잇따라 선고받았다. 그는 상고심인 고등법원 재판에서 “조선민족이 열성으로 만세를 부른 것은 인정(人情)이 발발한 것으로 부끄러울 게 없는 행동이다. 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월 5일엔 순종의 고종 반우식(신주를 모셔오는 일) 행차를 보기 위해 경기 고양군 청량리에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유림들도 모였다. 유림 유준근(60)은 “유생이 젊은 학생들과 같이 만세를 부를 순 없다”며 동료 6명과 함께 순종에게 상소를 올리기로 했다. 순종의 가마에 접근해 상소문을 전달하려고 할 때 경찰에 체포됐다. 3월 1일 독립선언식에 유림 대표로 참석했던 어대선(59)은 5일 청량리에서 군중에게 독립사상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이후 유생 김백원(60) 등 7명은 3월 12일 서울 종로의 음식점 영흥관에서 만나 조선 13도의 대표자 명의로 “조선의 독립은 2000만 동포의 요구다. 우리는 손병희 등의 후계자로 조선의 독립을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애원서’를 종로 보신각 앞에서 낭독했다. 함경남도 함흥 청년들은 3월 3일 만세운동을 벌이기 위해 5~100원의 운동자금을 모았다. 학생들이 운동에 나서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한 청년들은 함흥고등보통학교 3·4학년 학생들과 함흥 농업학교 기숙학생들에게도 계획을 알렸다. 이근재(27) 등 주도자들은 등사판으로 독립선언서 3000부를 인쇄했고 태극기도 제작했다. 그해 7월 3일 경성복심법원 판사 지토우는 “학생들을 선동해 지방의 치안을 방해한” 행위로 판결문에 기록했다. 태형 90대의 처벌을 받은 학생 도상록(16)은 훗날 월북해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교수를 지내며 ‘북한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린 인물로 추정된다. 뚝섬 공립간이농학교 학생인 손흥복(16)·조병직(21)·김동건(17)은 학생 30명을 규합해 만세운동을 주도해 1심에서 징역 1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3월 중순 경북 영덕에서는 강우근(40) 등의 주도로 읍내 시장에서 예수교 교인 등 주민들이 모여 만세를 외쳤고, 강원 원주에선 이현순(41) 주도로 4월 면사무소와 뒷산에서 주민 40여명이 모여 독립을 염원했다. 만세 운동에는 나이와 직업, 계층, 종교가 따로 없었다. 김유인(28)은 4월 25일 당시 보성고등보통학교 학생이던 장채극·이철 등이 풍선을 사들여 ‘조선독립만세’, ‘공화만세’라고 써서 서울 시내에 띄우려고 하자 100원을 주며 풍선을 사서 모으도록 한 혐의(보안법 위반)로 1920년 10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대규모 군중시위는 줄어들었지만, 외침은 질기게 이어졌다. 서울에서는 특히 종로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낙타산(현재의 대학로 낙산)이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학생 이병철(18)과 공수명(17)은 손병희 선생 등 민족대표들과 3·1운동 초기 주도자들에 대한 고등법원 재판이 열리는 1920년 7월 16일을 앞두고 “요즘 경성부내(서울 시내)는 조용하고 평온하여 조선독립의 시위운동을 하는 자가 없는데 다시 기세를 높이자”고 계획했다. 7월 15일 이들은 큰 종이에 태극기를 그리고 그 위에 ‘대한국독립만세’라고 써 낙타산에서 가장 높은 소나무 꼭대기에 이틀간 매달았다. 조선총독부 순사 아베·사가는 신문 과정에서 “18척이나 되는, 낙타산 가장 높은 곳으로 군중이 바라보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태극기를 발견하고 즉시 내렸으나 일반(민중)이 태극기를 바라보고 다시 어떤 사건이 돌발하지 않을까 암담했다”고 말했다. 이병철·공수명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삼성전자 16조 8200억원 세금으로 낸다

    삼성전자 16조 8200억원 세금으로 낸다

    전년比 20.1% 늘어 창사 이후 최대규모 경쟁사 인텔·애플은 세금 줄어 대조적 지난해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둔 삼성전자가 법인세로 총 16조 8200억원을 납부할 예정이다. 14조 100억원을 낸 전년보다 20.1% 늘어난 것으로 법인세 납부액은 창사 이후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는 2018년 연결 재무제표에 법인세 비용으로 16조 8200억원을 잡은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장부상 2014년 4조 4800억원이던 삼성전자의 법인세 비용은 2015년 6조 9000억원, 2016년 7조 9900억원, 2017년 14조 100억원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두 가지 요인이 겹쳐 삼성전자의 법인세액이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 우선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슈퍼 호황’에 힘입어 실적이 계속 좋았다. 법인세 산정 기준인 영업이익은 2014년 25조 300억원에서 2015년 26조 4100억원, 2016년 29조 2400억원, 2017년 53조 6500억원, 지난해 58조 8900억원으로 높아졌다. 두 번째로 지난해 법인세율 인상 여파가 반영됐다. 과세표준 구간 3000억원 이상에 대해 최고세율이 종전 22%에서 25%로 높아지는 정책 결정이 지난해 이뤄진 것. 이에 따라 기업의 세금 부담을 나타내는 법인세 부담률(법인세 비용/법인세 비용 차감 전 순이익)이 삼성전자의 경우 2017년 24.9%에서 지난해 27.5%로 2.6% 포인트 상승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경쟁사인 인텔이나 스마트폰 경쟁사인 애플이 본사를 둔 미국에선 2017년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낮추는 조치가 단행됐다. 이에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국내 수출기업들의 세 부담이 커졌다는 진단도 나온다. 반면 여러 사회적 자원을 활용하는 기업 입장에서 납세는 당연히 이행해야 할 사회적 의무이며 ‘사업보국’이란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경영철학도 이를 지향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이재용 부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빈소 조문

    이재용 부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빈소 조문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31일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30일 별세한 이 고문은 고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장녀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다. 연합뉴스
  • ‘삼성家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별세

    ‘삼성家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별세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장녀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노환으로 30일 별세했다. 90세. 1929년 경남 의령에서 이 선대회장의 4남 6녀 중 장녀로 태어난 이 고문은 1948년 이화여대 가정학과 재학 중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과 결혼해 3남 2녀를 두었다. 1979년 호텔신라 상임이사를 지냈고, 1983년 전주제지 고문을 맡았다.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전주제지는 1992년 사명을 지금의 한솔로 바꿨다. 고인은 1995년 문화·예술계 후원을 위해 한솔문화재단을 설립했다. 2000년엔 모친 박두을씨의 유지를 기려 국내 최초 여성 전문장학재단 ‘두을장학재단’ 설립을 주도했다. 이날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고인의 호를 따 ‘청조(淸照) 이인희 늘 푸른 꽃이 되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범삼성가 등 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고, 고인의 아들인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이 조문객을 맞았다. 유족은 자녀인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조옥형·조자형씨다. 동생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삼성가에서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 4시간가량 머물렀다. 범삼성가인 CJ그룹에서도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함께 박근희 CJ 부회장, 김홍기 CJ주식회사 대표 등이 조문했다.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는 “고모님께서 주무시다가 새벽 1시쯤 편안하게 돌아가셨다”고 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황각규 롯데그룹 부회장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준동 대한상의 부회장도 빈소를 찾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이병철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오늘 별세

    ‘이병철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오늘 별세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녀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오늘(30일) 91세로 별세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한솔그룹은 지난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돼 독립경영을 시작했다. 이 고문이 이끌어온 그룹은 현재 삼남인 조동길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긴 상태다. 이 고문은 1929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이병철 선대회장과 박두을 여사 사이에서 4남 6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대구여중과 경북여고를 졸업한 후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다니던 중 1948년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과 결혼했다.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뛰어든 것은 50세였던 지난 1979년이었다. 당시 호텔신라 상임이사로서 서울신라호텔 전관의 개보수 작업과 제주신라호텔 건립 등을 이끌었다. 이후 1983년부터 현재 한솔제지의 전신인 전주제지 고문으로 취임해 본격적으로 그룹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직함은 고문이었으나 사실상 그룹을 이끌어왔다. 특히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 독립을 추진한 것은 그룹 내에서 제2의 창업으로 평가받는다. 사명을 순우리말인 ‘한솔’로 바꾸고, 인쇄용지·산업용지·특수지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며 종합제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또 한솔홈데코·한솔로지스틱스·한솔테크닉스·한솔EME 등 계열사를 세워 그룹의 기틀을 다졌다. 이 고문은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도 상당했다. 우리나라 전통문화 계승과 문화 예술계 후원을 위해 1995년 한솔문화재단을 설립했고, 2013년에는 뮤지엄 산을 건립했다. 2000년에는 모친인 박두을 여사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국내 최초로 여성 전문 장학재단 두을장학재단 설립을 추진해 여성 인재 발굴에 힘쓰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윤병호(삼성키즈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씨 부친상 김학균(OBS경인TV 미디어전략국장) 씨 장인상 7일 인천 계양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발인 9일 오전 5시 30분 (032)240-8444 ●오정후(서귀포경찰서) 정화 (세종문화회관 홍보마케팅팀장)씨 부친상 김성기(국세청 예산팀장) 이상훈(중앙일보 총무팀장)씨 장인상 7일 국립경찰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2)31-4400 ●이경택(전 보성산업 대표이사)씨 부인상 민재(삼성서울병원 사원)씨 모친상 7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30분 (02)3410-6902 ●이병철(고려대 강사) 병용(회사원) 현주(회사원)씨 부친상 6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923-4442 ●유봉렬(전 옥천군수)씨 별세 재훈(충주 안림동 성당 신부) 현승(대전 중구청 주무관)씨 부친상 김현주(옥천 은행 보건진료소 근무)씨 시부상 7일 옥천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10시 (043)733-0808
  • [인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원 △청정신기술연구소장 한종희△국가기반기술연구본부장 민병권△대외협력본부장 김상경△KIST 스쿨 대표교수(본부장급) 석현광△수소·연료전지연구단장 윤창원△에너지소재연구단장 손지원△에너지저장연구단 정경윤△양자정보연구단장 한상욱△물자원순환연구센터장 홍석원△환경복지연구센터장 김진영△청정에너지연구센터장 이현주△연구개발실장 김영종△경영기획실장 변덕용△문화홍보실장 강구인△인프라운영실장 김정남△청정신기술연구소 운영기획팀장 서보라△구매·자산팀장 정현진 △건설관리팀장 김성영△시설운영팀장 전승현 ◇강릉분원 △천연물소재연구센터장 정상훈△천연물인포매틱스연구센터장 판철호△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장 양중석△중소기업지원센터장 이창근◇전북분원 △연구지원부장 책임관리원 이돈재△중소기업지원센터장 강대신 ■세종시 ◇3급 △보건복지국장 이순근 ◇4급 △시민안전국 민원과장 정희상△자치분권문화국 참여공동체과장 이광태, 교육지원과장 이홍준△보건복지국 노인장애인과장 이한유, 보건정책과장 이상호△경제산업국 경제정책과장 권영석, 로컬푸드과장 이윤호△환경녹지국 환경정책과장 권영윤△의회사무처 의회운영전문위원 김명수, 행정복지전문위원 이익수, 산업건설전문위원 정진기△시설관리사업소장 김재주△산업통상자원부 인사교류 이상훈△행정안전부 인사교류 박형국△국토교통부 인사교류 이칠복 ◇4급 승진 예정 △건설교통국 건축과장 직무대리 권봉기△국토교통부 인사교류 안종수 ◇5급 △연서면장 홍순제△전의면장 이은일 ■한국일보 △편집인 이영성△논설위원 정영오, 박일근△신문부문장 이창선△뉴스2부문장 정진황△뉴스3부문장 이영태△종합편집부장 이직△경제부장 김용식△산업부장 한준규△사회부장 김정곤△정책사회부장 이왕구△문화부장 겸 대중문화팀장 라제기△문화부 순수문화팀장 최문선△디지털콘텐츠부장 정상원△디지털전략팀장 고주희△미디어플랫폼팀장 안경모△AD1팀장 성선경△AD2팀장 박철우△AD3팀장 윤영원△독자마케팅부문장 전승호△ 마케팅2팀장 송진석△대외협력팀장 손점용△문화사업팀 차장 장우식△대구 한국일보 편집국장 전준호 ■하나금융투자 ◇임원 승진 △부사장 경영관리그룹장 이상훈△전무 부동산금융본부장 이상우, 투자금융1본부장 편충현 ◇임원 선임 △전무 IB그룹장 박지환(KEB하나은행 기업영업그룹장 겸직), 자본시장본부장 박의수(KEB하나은행 기업사업본부장 겸직)△상무 WM본부장 김성엽, 남부본부장 조일환 ◇부서장 승진 △커버리지2실장 김형욱△신재생실물투자팀장 이휘승△PE Operation팀장 최호림△FICC Sales실장 김정훈△데이터전략팀장 오인정△롯데월드타워WM센터장 문성준△반포WM센터장 강주호△업무혁신실장 박선영△기업분석실장 김홍식△코스닥벤처팀장 이정기△글로벌리서치팀장 황승택△신촌지점장 이태형△법무팀장 성평기△도곡역WM센터장 최봉수△일산지점장 이충실△은평지점장 전민호△부천지점장 문성득△대전지점장 정봉영△범어동지점장 권용재△천안지점장 남기호△부산지점장 김보경 ◇임원 전보 △상무 중앙본부장 윤병군, 마케팅본부장 하승호 ◇부서장 전보 △서초WM센터장 김대열△미금역지점장 박인규△반포WM센터 부센터장 박상선△강남금융센터 부센터장 김봉재△사무지원실장 김광일△준법감시실장 김도형△압구정금융센터장 진미경△롯데월드타워WM센터 부센터장 박경희△돈암동지점장 김운한△영업부금융센터장 양영섭△명동금융센터장 이병철△도곡지점장 신현△목동지점장 최석훈△한남동지점장 김용수△청주지점장 조창묵△서면지점장 문철현△스마트영업추진실장 설근수△둔산지점장 황영선△대덕테크노밸리지점장 김응선△해운대지점장 임현주△대구금융센터장 윤종혁 ■화성산업 △상무이사(건축본부장) 심명용
  • 삼성 이병철 전 회장 31주기 추모식 참석한 이재현 회장

    삼성 이병철 전 회장 31주기 추모식 참석한 이재현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19일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열린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전 회장의 31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뒤 이동하고 있다. 이날 추모식에는 신종균·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기남·김현석·고동진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대부분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은 지난주 미리 선영을 다녀간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1
  • [인사]

    ■국세청 ◇부이사관 승진△기획재정담당관 김재웅 △감찰담당관 박광수 △강남 세무서장 채정석 ◇서기관 승진△혁신정책담당관실 이슬 △전산운영담당관실 표진숙 △감사담당관실 장권철 △심사2담당관실 류지용 △역외탈세정보담당관실 김정윤 △법무과 김선주 △전자세원과 김진영 △법인세과 정필규 △자본거래관리과 김종성 △세원정보과 이은장 △세원정보과 장태복 △장려세제신청과 심상동 △운영지원과 윤재갑 △서울지방국세청 감사관실 김종복 △서울청 조사3국 조사1과 권영명 △서울청 조사4국 조사1과 김상구 △중부지방국세청 조사1국 조사1과 정경철 △중부청 운영지원과 박영건 △대전지방국세청 조사1국 조사관리과장 이용균 △대구지방국세청 운영지원과장 이상락 △부산지방국세청 조사1국 조사2과장 이종현 △국세공무원교육원 교육기획과 이승래 ■한국국토정보공사 ◇상임이사△지적사업본부장 최규성 △경영지원본부장 김기승 ■부산일보사△편집국장 강윤경 △편집국 선임기자 이병철
  • 이영실 서울시의원, 공공의료기관 의료사회사업 발전방향 토론회 참석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영실 의원(더불어민주당, 중랑1)은 지난 10월 5일 서울시의원회관별관 2층 제2대회의실에서 열린 「의료안전망 강화를 위한 공공의료기관 의료사회사업 발전방향」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번 토론회는 남석인 연세대학교 교수, 김희정 서울의료원 사회복지사, 김민영 세브란스병원 사회복지사가 주제발표를 맡았으며, 이영실 서울시의회 의원, 허현희 공공보건의료재단 부연구위원, 이해우 서울의료원 공공의료사업단장, 이수범 다시서기센터 현장실장, 이병철 시립병원운영팀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이영실 의원은 “그동안 의료사회사업은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분야이며, 그 원인은 국내 의료사회사업이 대부분 병원위주로 운영되어 병원의 행정직과 같은 개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 의원은 공공병원이 나아갈 의료사회사업에 대하여 “사회복지서비스 지원 대상을 건강취약계층으로 넓혀, 공공병원의 역할증진을 통해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임·공헌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사회구조의 변화 등으로 만성질환이 주요 건강위협질환으로 부상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앞으로는 의료사회복지사가 커뮤니티케어라는 중요한 사회적 변화에 큰 축이 될 것”이라며 “의료사회복지사의 전문성과 역할 강화”를 강조했다. 아울러 이영실 의원은 “의료사회복지사가 지금도 의료현장과 지역에서 공공의료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 의원으로서의 또 하나의 숙제”라며 “서울시의회도 함께 오늘의 논의를 공유하여 연구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의견을 피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9) 내실 다지고 성장 추진하는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9) 내실 다지고 성장 추진하는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

    한솔그룹 삼성분가후 IMF 외환위기때 여려움 겪어조동길 회장, 15년만에 매출 2조에서 5조로 키워 어머니 이인희 전 고문은 ‘범 삼성가’의 큰 어른 조동길(63) 한솔그룹의 회장의 어머니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장녀인 이인희(91) 전 한솔그룹 고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외사촌간이다. 조 회장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항상 이 전 고문과 상의하며 집안에서도 ‘어머니’ 대신 ‘고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조 회장의 아버지는 조운해(93) 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이다. 큰 형은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 둘째 형은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다. 조 회장이 막내인 셋째다.조 회장은 미국 보스턴의 앤도버고를 졸업한 뒤 귀국해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삼성물산과 JP모건을 거쳐 전주제지에 입사해 이사대우로 일했다. 한솔제지 기획조정실담당 부사장과 부회장을 거쳐 입사한 지 13년 만인 2002년 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한솔그룹은 계열분리 후 공격적인 사업확장으로 2000년 자산 기준 11위를 차지한 대기업집단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한솔제지 등이 경영 위기에 처하면서 상당수 계열사 및 자산을 매각하거나 축소했다. 2009년에는 공정위가 자산 5조 원이 넘는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한솔그룹은 최근 10여년간 내실을 다지면서도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리며 올해 대규모 기업집단 57위에 올랐다. 조 회장은 2012년부터 구조조정을 통해 한솔그룹의 외형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2년 회장 취임 때 2조 원대이던 그룹 연매출을 지난해 5조 원대까지 키웠다. 한솔그룹의 핵심인 한솔제지를 비롯해 친환경 건축자재 기업인 한솔홈데코, 정밀화학소재 업체인 한솔케미칼, IT부품 및 소재 기업인 한솔테크닉스로 이루어진 제조 사업군이 축을 이루고 있다. 또한 플랜트 전문 기업인 한솔EME, 제3자 물류 전문 기업 한솔로지스틱스, 선진형 리조트인 오크밸리를 운영하는 한솔개발, 종이유통 및 ITS 사업을 영위하는 한솔PNS와 콜센터 시스템구축 전문기업인 한솔인티큐브, 모바일 보안사업을 영위하는 한솔시큐어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조 회장은 지난 2015년 그룹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정비해 투명한 경영구조를 확립하고 순환출자구조 해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2015년에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50년을 넘어 100년 이상 지속 가능한 초일류 장수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세계적인 선진기업들처럼 체계화된 경영시스템을 도입했다. 최고 경영진에서부터 현장 일선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공감하고 실천해야 할 경영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한솔경영체계(HMS)를 수립한 것이다. 그는 기업 문화도 글로벌 기업처럼 바꾸고 있다. 최근에는 대기업 특유의 경직되고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혁신해 벤처나 스타트업 수준의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탈바꿈하는 것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사회변화를 반영해 배우자 출산 휴가를 확대하고 난임휴가제도를 적극 도입하는 한편 복장 규정과 직급 호칭 폐기 등 직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조직문화를 혁신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테니스는 대한테니스협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준프로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조 회장은 테니스와 경영의 공통점으로 강인한 기초체력, 요행수가 통하지 않는 실력주의, 상대에 대한 배려 등을 꼽는다. 조 회장은 같은 삼성가인 이재용 부회장, CJ 이재현 회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등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는 30년 지기로 돈독한 우정을 자랑하며, 롯데 신동빈 회장, 풍산 류진 회장, 코오롱 이웅렬 회장 등 동년배 총수들과 자주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 회장은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의 딸인 안영주(60)씨와 결혼, 장녀인 조나영(35)씨와 아들 조성민(30)씨를 두고 있다. 나영씨는 미국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삼성미술관에서 플라토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다 2012년 현재의 남편인 한경록(39)씨를 만나 2013년에 딸을 출산했다. 조 회장의 사위인 한경록씨는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한국투자공사를 거쳐 현재 한솔제지 미국 법인장(상무)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상호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와 조효숙 가천대학교 부총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아들인 조성민씨는 미국 프린스턴 대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자산운용사인 키니코스 어소시에이츠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면서 재무 지식과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한솔제지에서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씨줄날줄] 달라지는 기업 인재상/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달라지는 기업 인재상/이순녀 논설위원

    엊그제 20주기를 맞은 최종현 SK 회장은 생전에 “내 일생을 통해서 80% 정도는 인재를 모으고, 육성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나무는 50년을 보고 심고, 인재는 100년을 내다보고 키운다’는 의미의 ‘수인백년(樹人百年), 수목오십년(樹木五十年)’을 강조하며 평생 ‘인재의 숲’ 조성에 매진했다. 사람을 귀히 여긴 건 다른 창업주들도 마찬가지였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자택 거실에 신입사원 교육 일정을 걸어 놓을 정도로 인재 양성에 애착이 깊었다고 한다. 고 구인회 LG 창업주도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한 LG연암문화재단 설립을 비롯해 각종 장학사업에 힘썼다. 기업이 어떤 인재를 원하는가는 예비 취업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관심사다. 기업의 인재상은 해당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 외에 사회 변화와 미래 예측, 시대정신 등을 두루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 창업주인 고 스티브 잡스는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항상 갈망하고, 바보짓을 두려워 말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명언으로 애플이 원하는 인재상을 에둘러 드러냈다. 잡스의 뒤를 이은 팀 쿡 최고경영자는 2년 전 어느 강연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애플의 인재상을 언급한 바 있다. 그가 꼽은 덕목은 명석함, 결단력, 호기심, 협동심, 도전정신 등 5가지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데 열정적인 인물’이 애플에 최적화된 인재다. 국내 100대 기업의 인재상이 5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흥미로운 조사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 홈페이지에 공개된 인재상을 분석한 결과 올해 기업이 원하는 인재의 첫 번째 덕목은 소통과 협력이었다. 이어 전문성, 원칙과 신뢰, 도전정신, 주인의식이 차례로 5위에 들었다. 2013년에는 딴판이었다. 도전정신이 1위였고, 소통과 협력은 7번째에 불과했다. 그보다 앞서 2008년 조사에선 창의성이 1위였다. 도전정신은 3위, 소통과 협력은 5위에 머물렀다. 이런 결과에 대해 대한상의는 “직원은 상사를 ‘꼰대’로 인식하고, 상사는 직원을 자기 것만 챙기는 ‘요즘 애들’로 치부하는 경향이 심해지는 등 기업 내 소통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는 현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위에 열거한 인재상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도전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전문성이 떨어지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원칙과 신뢰는 사회인의 기본이기도 하다.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취업문을 통과해야 할 예비 취업자들의 어깨가 이래저래 더 무거워질 듯싶다. 이순녀 논설위원 coral@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7) 유통의 역사를 이끄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7) 유통의 역사를 이끄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이병철 회장의 막내 이명희 회장, 신세계를 재계 11위 그룹으로 정용진 이마트-스타필드, 정유경 백화점-면세점 ‘분리경영’ 골목상권 침해논란, 지역상인 반발무마가 해결과제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3남 5녀중 막내로 태어난 이명희(75) 신세계그룹 회장은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애지중지한 딸이었다. 이화여고와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정재은(79) 신세계그룹 명예회장과 결혼한 뒤 줄곧 집에서 살림만 하던 전업주부였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1979년 ㈜신세계 영업사업본부 이사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신세계그룹을 물려받았다. 1991년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선언할 당시만 해도 신세계는 백화점 2개점(본점·영등포점)과 조선호텔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회장은 신세계그룹을 26년만인 지난해에 39개 계열사, 총자산 약 32조원, 매출 약 24조원의 재계 11위 그룹으로 키웠다. 아버지의 경영 DNA를 그대로 이어 받은 이 회장은 국내를 대표하는 여성기업인이 되었고 신세계그룹을 ‘대한민국 유통의 역사’로 키워냈다. 이 회장은 평소 “다소 빠르다 싶더라도 우리가 먼저 차별화 해야 한다”, “모험도 좋고, 흉내도 내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앞서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내 최초의 대형마트 이마트의 탄생과 성공신화는 이렇게 시작됐고 2006년에는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월마트코리아 16개 점포를 전격 인수해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현재 이마트는 국내 157개 점포(트레이더스 14개점 포함)와 8개 물류센터를 갖춘 대한민국 1등 할인점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연결 기준 약 15조 8700억원 규모다. 2009년에는 세계 최대 백화점인 신세계 센텀시티점을 성공적으로 오픈해 대한민국 백화점의 역사를 새로 썼다. 국내 프리미엄 아울렛 역사를 연 것도 신세계였다. 지난 2007년 사이먼그룹과 손잡고 국내 최초의 프리미엄 아울렛인 여주 프리미엄아울렛을 열었다. 현재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은 여주점을 비롯해 파주점, 부산점, 시흥점까지 4개점을 운영중이다. 2016년에는 지친 도시인들이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인 신개념 쇼핑 테마파크 ‘스타필드’를 탄생시켰다. 이후 스타필드 고양, 스타필드 코엑스까지 선보였고 안성, 청라, 창원 등에도 스타필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신세계그룹은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신세계그룹 임직원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7시간씩 근무한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더라도 기존 임금을 그대로 유지한다.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해온 임금인상 역시 그대로 진행한다. 유연근무제도 시행한다. 업무특성에 따라 오전 8시와 10시에 출근해 각각 오후 4시, 6시에 퇴근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재작년부터 주식 맞교환 등 지분정리를 통해 아들 정용진(50) 신세계그룹 부회장에게 이마트와 스타필드를, 딸 정유경(46)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에게 백화점과 면세점 사업을 맡겨 분리경영을 본격화했다. 2018년 8월 현재 이 회장은 신세계 18.2%, 이마트 18.2%, 정 부회장은 이마트 9.8%, 광주신세계 52.1%,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 9.8%, 신세계인터내셔날 19.3%를 소유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1995년 신세계 전략기획실 입사한 후 15년 간 경영수업을 받은 후 2009년 12월 신세계그룹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경복고를 나온 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니다 유학을 떠나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외사촌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경복고 동기동창이다. 정 부회장은 2003년 배우 고현정씨와 이혼한 뒤 2011년 플루티스트 한지희(38)씨와 재혼했다. 부인 한 씨는 2013년 이란성 쌍둥이를 낳아 정 부회장은 2남 2녀를 둔 다둥이 아빠다. 정 부회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소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경영스타일을 지녔다. 유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유통업계에서 개성있는 트렌드세터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코엑스몰에 오픈한 만물 잡화점 ‘삐에로쑈핑’이 트렌드를 반영한 잡화점으로 손꼽힌다. ‘삐에로 쑈핑’은 ‘FUN&CRAZY 를 콘셉트로, ‘재밌는 상품’과 ‘미친 가격’을 표방하는 만물상 잡화점이다. 4만여가지 다양한 상품을 빈틈 없이 진열해 보물찾기하듯 소비자가 매장 곳곳을 구석구석 탐험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삐에로 쑈핑은 일본의 잡화점 ‘돈키호테’를 그대로 모방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지난해 5월에는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열린 문화 공간인 ‘별마당 도서관’을 새롭게 선보이며 침체된 코엑스몰을 획기적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또 온라인사업 1조원 이상 투자 유치를 통해 온라인사업 혁신에도 앞장서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1월, 외국계 투자운용사 2곳과 향후 e커머스 사업 성장을 위한 1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 유치를 추진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정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은 서울예술고를 졸업한 뒤 이화여대 비주얼디자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1년반만에 미국으로 건너 가 1995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 그래픽디자인과를 졸업했다. 배우자는 문성욱(46)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으로 두 사람은 경기초등학교 동창 사이다. 2001년 결혼한 뒤 두 딸을 뒀다. 정 총괄사장은 오빠와 달리 공식석상에 선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본인의 색깔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명희 회장 옆을 조용히 지키며 해외 출장길도 수시로 동행하는 등 어머니 곁에서 경영수업을 착실하게 받아왔다. 1996년 신세계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상무보로 입사해 그룹경영에 뛰어 든 뒤 2009년 신세계백화점으로 옮겼다. 정 총괄사장은 지난 2016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증축과 부산 센텀시티몰의 신축을 끝냈고, 본점에 서울시내 면세점 명동점을 품는 등 백화점의 외형 확장·내적 성장을 위한 6대 핵심 프로젝트를 주도해 연착륙시켰다. 신세계면세점도 지난해 매출 1조를 돌파하며 흑자 전환시켰다. 특히 정 총괄사장은 지난 6월 인천공항 제 1터미널의 DF1과 DF5구역 면세사업권 입찰경쟁에서 고종사촌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꺾고 연간 8000억원 수준의 대규모 매장을 확보했다. ‘유통 공룡’으로 큰 신세계 그룹은 노브랜드 전문매장, 헬스뷰티(H&B) 숍, 편의점 등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업종들이 모두 소규모 점포인 만큼 골목상권 침해논란이 거세다. 복합쇼핑몰 건립을 두고 지역상인들도 반발하고 있어 이를 해소시킬 방안을 찾는 게 과제로 떠올랐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5) ‘삼성가 장손’ CJ그룹 이재현 회장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5) ‘삼성가 장손’ CJ그룹 이재현 회장

    삼성그룹에서 분리 뒤 22년만에 CJ 20배 괄목성장선진적 기업문화로 취준생 ‘입사하고 싶은 기업1위’ 삼성가 장손인 이재현(58) 회장은 설탕과 밀가루 제조기업에 불과한 제일제당을 199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한 이후 적극적인 사업다각화에 나서 오늘날 CJ그룹으로 일군 ‘제2의 창업자’로 평가받는다. 분리 당시 1조 730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지난해 약 35조원을 기록하는 등 22년만에 CJ그룹을 엔터테인먼트, 홈쇼핑, 물류 등을 아우르는 종합생활문화그룹으로 키웠다. 이 회장은 어릴 때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체격 등 외모, 사고나 행동방식까지 조부와 비슷해 ‘리틀 이병철’이라고도 불린다. 이 회장은 김만조 전 연세대 교수의 딸 김희재(58)씨와 결혼한 후에도 독립하지 않고 할머니 박두을씨가 2001년 1월 별세할 때까지 서울 장충동 집에서 모셨다. 지금도 모친 손복남(85) 고문을 모시고 산다. 경복고,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1983년 씨티은행에 취직, ‘탈 삼성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이 “장손인 재현이에게 왜 남의 집살이를 시키냐”는 불호령을 내려 1985년 제일제당 경리부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기획관리부장,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대우, 제일제당 부사장, 부회장을 거쳐 2002년 마침내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 회장은 남들이 제조업과 수출에만 매달려 있던 20여년 전에 이미 문화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에 나섰다. 단기 적자에 연연하지 않고 큰 그림의 사업방향을 제시하며 그룹의 도약을 이끌었다. 1995년 미국 신생 영화제작사 드림웍스에 3억 달러(약 3000억원) 투자를 결정하고,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영화사업에서 철수할 때 문화사업을 뚝심있게 밀어부쳤다. 이 회장이 CJ그룹을 키운 데에는 시련도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만성신부전증과 삼성가의 유전병으로 알려진 CMT(샤르코-마리-투스)를 앓고 있는 등 몸이 편치 않다. 2013년에는 배임·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되면서 그룹이 총수 부재의 위기상황을 맞기도 했다. 2017년 5월 경영일선에 복귀한 이 회장은 ‘그레이트 CJ’와 ‘월드베스트 CJ’를 경영 비전으로 제시했다. 그레이트 CJ는 2020년까지 매출 100조원을 실현하겠다는 것이고, 월드베스트 CJ는 2030년까지 3개 이상 사업에서 세계 1등이 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지난해 그룹 지배구조를 CJ,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으로 단순화했다. 인수합병과 매각 등을 통해 주요 계열사들을 정비하고 있다. 2011년 대한통운을 인수한 이후로 해외시장에 눈을 돌렸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브라질 셀렉타, 러시아 라비올리, 베트남 민닷푸드 등을 인수했다. CJCGV는 러시아에 진출한 데 이어 호주, 말레이시아, 인도 등에 4D플렉스 상영관을 열었다. CJ대한통운도 2017년 아랍에미레이트 이브라콤, 인도 다슬로지스틱스를 사들인 데 이어 베트남 제마뎁과 지분 인수 계약을 맺었다. 올 들어 대대적인 내부 사업 재편에도 나서 지난 7월 CJ 오쇼핑과 CJ E&M의 합병 법인 ‘CJ ENM’을 출범시켜 국내 최초의 융복합 콘텐츠 커머스 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기업문화도 선진적으로 바꿨다. 2000년부터 말단직원에서부터 CEO에 이르기까지 직급에 관계없이 이름 석자에 ‘님’자만 붙여 부르는 호칭파괴와 복장자율화, 플렉서블 출퇴근제 등을 단행했다.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한달 동안 ‘자녀입학 돌봄휴가’를 낼 수 있다. ‘긴급 자녀 돌봄 근로시간 단축’도 신설해 일시적으로 긴급하게 자녀를 돌봐야 할 상황이 생기면 하루에 2시간 단축 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 남성의 출산휴가(배우자 출산)를 2주 유급으로 늘리는 등 임신과 출산 지원 역시 법정기준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이뤄진다. 이런 기업문화로 잡코리아에 따르면 CJ그룹은 2018년 취업준비생들이 상반기에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로 꼽혔다. 2016년부터 3년 내리 취업준비생들이 꼽은 ‘직원 복지문화’가 제일 좋은 기업이기도 하다.이 회장은 부인 김희재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녀 이경후(33) 상무는 미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조직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2011년 7월 CJ주식회사 사업팀 대리로 입사했다. 지난해 11월 CJ 미국지역본부 상무로 승진한 뒤 지난 7월부터 CJ ENM의 브랜드전략담당으로 근무중이다. 남편 정종환(39) 상무는 CJ미국지역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아 미국 사업을 관할하고 있다. 아들 이선호(28)씨는 미 컬럼비아대 금융경제학을 전공한뒤 2013년 CJ그룹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에서 대리점 영업, 마케팅 등 현장경험을 쌓은 뒤 제일제당 BIO사업관리팀에서 일하고 있다.이 회장의 외삼촌인 손경식(79) 회장은 1995년 제일제당 회장에 취임한 이후 20년 넘게 이재현 회장과 함께 CJ그룹의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경기도지사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손영기씨가 부친이다. 이 회장의 어머니 손복남 고문이 친누이다. 손 회장은 경기고 2학년 재학 중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한 수재다. 안국화재 사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치며 삼성그룹에서의 분리독립 등 위기때마다 이 회장을 도왔다. 손 회장은 대한상의회장을 거쳐 경영자총협회장을 맡고 있는등 경제계를 대표하는 원로 경영인이다.이 회장의 누이인 이미경(60) CJ그룹 부회장은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힌다.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미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지역연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푸단(復旦)대 대학원에서 역사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늘날 CJ 그룹이 글로벌 문화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동생인 이재현 회장을 도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개척해왔다. 지난해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신규회원으로 위촉됐다. 진보적인 영화를 제작·지원한다는 이유 등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영일선 퇴진을 압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년간 미국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둘째 남동생은 이재환(56) CJ파워캐스트 대표다. 이 대표는 최근 요트를 개인 용도로 구입해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있는 중이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4) 삼성전자 비계열사 CEO의 면모는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 (4) 삼성전자 비계열사 CEO의 면모는

    지난해 전자·금융·물산 축으로 자율경영시작기존 우려와 달리 전자 의존도 점차 낮아져비전자 계열사도 50대 사장들로 대거 교체지난해 2월 28일 삼성그룹은 충격적인 그룹쇄신안을 내놨다.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1959년부터 매주 수요일 실시해온 사장단 회의를 58년 만에 끝내고, 이 선대회장의 비서실에서 출발한 미래전략실 또한 60여년 만에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3대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을 중심축으로 관련 계열사들이 함께 주요 사안을 조정하는 방식의 자율경영이 이뤄졌다. 삼성그룹은 10여년전부터 삼성전자 중심의 전자 계열사와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 계열사, 삼성물산 등 3대 축을 기반으로 하는 수직계열화를 설계했다. 이를 위해 정리할 기업은 정리하고 키울 곳은 키우는 과감한 사업재편이 수년 간 진행돼 왔다. 전자, 금융, 물산에 각각 지주사를 세워 사실상 그룹을 분할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의 지주회사 전환이 무산되자 계열사들이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서는 방식으로 그룹운영이 이뤄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렇게 시작된 변화는 여러 계열사들이 고르게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그룹 전체 이익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1∼6월) 실적을 발표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12곳의 영업이익 총합계는 32조 620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30조 5112억원(93.5%),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12개 계열사들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2조 192억원(6.5%)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23조 9649억원(94.8%), 나머지 계열사들의 영업이익 1조 3225억원(5.2%)을 비교하면 계열사들의 비중이 올라간 셈이다. 삼성전자 이외의 계열사 사장단도 올해초 세대교체 차원에서 50대 사장들로 대거 중용됐다. 삼성물산 이영호(59) 건설부문장 사장은 숭문고를 졸업한 뒤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삼성에 입사했다. 삼성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과 삼성물산 최고재무책임자(CFO), 건설부문 경영지원실장을 겸할 정도로 재무 전문가다. 고정석(56) 상사부문장 사장은 용문고와 연세대(화학공학)와 한국과학기술원(경영학 석사)에서 수학한 뒤 화학팀장, 화학·소재사업부장 등을 역임했다. 서대전고와 충남대 법학과를 졸업한 정금용(56) 리조트부문장 부사장은 삼성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장 등을 역임한 인사전문가다. 지난해부터 웰스토리 사업총괄을 맡았다.삼성중공업 남준우(60) 사장은 현장 전문가다. 부산 혜광고를 거쳐 울산대 조선공학과에 진학할 정도로 조선업에 매진했다.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지난해 49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삼성중공업의 자구책을 마련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 최성안(58) 사장은 마산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화공사업본부장과 플랜트사업1본부장을 거쳐 올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의 바이오 사업은 이재용 부회장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로 세계 1등 기업을 만든 것처럼 바이오 사업을 통해 ‘이재용의 새로운 삼성’을 만들고 싶어 한다. 이미 삼성바오로직스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런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김태한(60) 사장이 이끌고 있다. 김 사장은 대구 계성고와 경북대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화학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부사장을 역임한 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출범과 함께 사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2015년 회계처리와 관련해 최근 금융위원회로부터 고의 공시 누락 결정을 받고 검찰에 고발된 상태라 조심스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윤태(58) 삼성전기 사장은 포항고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기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사장은 삼성전자 LSI개발실장, DS사업부 개발실장을 거쳐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과 사장을 역임했다. 삼성전자 부품공급에 크게 의존해 삼성 ‘후자’로 불리던 삼성전기의 사업체질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SDI 전영현(58) 사장은 배재고와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자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D램 등 메모리반도체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기술 전문가로 삼성전자의 급성장을 이끈 ‘반도체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세계 반도체산업계와 학계에서도 손꼽히는 기술 전문가로 꼽힌다. D램 개발실에서 플래시개발실장, 메모리 전략마케팅팀장, 메모리사업부장을 거쳤다. 전 사장 취임 첫 해인 지난해 삼성SDI는 3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삼성SDS 홍원표(58) 사장은 광주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시간대에서 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딴뒤 미국 벨 통신연구소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다 KT를 거쳐 삼성전자에 영입됐다. 미디어 솔루션센터장과 글로벌마케팅실장을 거쳐 삼성SDS 솔루션사업부문장과 사장에 올랐다.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우신고와 고려대 영문과를 나왔다. 삼성전관과 삼성SDI를 거쳐 삼성디스플레이 전략마케팅실장 등을 역임한 디스플레이 영업마케팅 전문가다. 삼성생명 현성철(58) 사장은 대구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삼성생명 기획관리실 상무, 삼성SDI 전지사업부 마케팅팀장, 삼성카드 경영지원실장, 삼성화재 전략영업본부장(부사장) 등 여러 계열사를 거치며 요직을 두루 맡았다. 삼성화재 출신으로 삼성생명 CEO를 맡았다는 점에서 금융계열사내 달라진 위상을 선보였다. 삼성화재 최영무(55) 사장은 충암고와 고려대 식물보호학과를 졸업하고 삼성화재 인사팀장(상무)과 전략영업본부장(전무), 자동차보험본부장(부사장)을 지내는 등 손해보험 영업에서 최고 실력자로 꼽힌다. 자산운용을 제외하고 안 해 본 업무가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삼성카드 원기찬(58) 사장은 대신고와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삼성전자에 입사해 경영지원실 인사팀장 등을 거친 뒤 2013년부터 삼성카드 사장으로 5년째 재직중이다. 삼성증권 장석훈(55) 대표이사 부사장은 홍대부고와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삼성증권에서 요직을 거친 뒤 삼성화재 인사팀 담당임원과 삼성증권 경영지원실 부사장으로 있다가 올해 삼성증권 배당사고 이후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맡았다. 삼성자산운용 전영묵(54) 사장은 원주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했다. 삼성생명 자산운용본부장(전무)과 삼성증권 경영지원실장(부사장)을 거쳐 올해 2월부터 삼성자산운용 사장에 부임했다. 제일기획 유정근(55) 사장은 대전 대신고와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제일기획에서 광고기획, 영업, 제작 등을 두루 경험한 광고 전문가다. 에스원 육현표(59) 사장은 대전고-충남대 법학과-고려대 경영학 석사-성균관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기획홍보팀 상무, 삼성물산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 삼성미래전략실 기획팀장 부사장, 삼성경제연구소 전략지원총괄 사장을 거쳐 2014년부터 에스원 대표로 재직중이다. 그룹내 대표적인 ‘기획통’으로 통한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김동연 “일자리 20만개 넘으면 광화문서 춤추겠다”

    김동연 “일자리 20만개 넘으면 광화문서 춤추겠다”

    金 “폭우 뚫고 왔다” 李 “좋은 징조 같다” 구내식당 식판 배식에 톨스토이 책 선물 “비가 억수로 와가지구요.”(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폭염에) 좋은 징조 같습니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6일 경기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이뤄진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처음이다. 이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국내 공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처음이다. 김 부총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정문 앞에서 기다렸던 이 부회장은 김 부총리를 맞으며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이어 김 부총리가 방명록에 “우리 경제 발전의 礎石(초석) 역할을 하며 앞으로 더 큰 발전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써내려 갈 때도 이 부회장은 두 손을 앞에 모은 채로 기다렸다. 다만 이 부회장은 공개 석상에서 언급을 극도로 자제했다. 재판 중이라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간담회에서도 이 부회장이 아닌 윤부근 부회장이 대표로 나섰다. 윤 부회장은 “옆에 이재용 부회장입니다”고 소개해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은 구내식당에서 점심도 함께했다. 두 사람 모두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았고 삼성 직원들이 이 모습을 보고 환호성도 질렀다. 이 부회장은 간담회 전에 촬영한 기념사진을 액자에 넣어 김 부총리에게 선물했다. 김 부총리는 저서 ‘있는 자리 흩트리기’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선 등 책 2권을 전달했다. 김 부총리는 “창업 회장인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 ‘호암자전’을 봤는데 톨스토이의 책을 읽었던 덕에 노비 30여명을 해방해 준 일을 사업 전에 한 가장 보람 있던 일이라고 적었다”고 설명했다. 김 부총리는 행사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일자리가 20만개 이상 나오면 광화문광장에서 춤이라도 추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김 부총리를 배웅하면서 “어렵게 와 주셨는데 저희가 너무 불평, 불만만 늘어놓은 게 아닌가 싶다”는 말도 남겼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수천번의 붓질로 탄생한 초상화, 사진과 비교할 수 없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수천번의 붓질로 탄생한 초상화, 사진과 비교할 수 없죠”

    을지로입구 지하서 40년 외길 김진삼 작가가 말하는 ‘초상화’누구나 카메라를 가진 ‘1인 1카메라’ 시대다. 뭔가 색다르거나 의미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되면 스마트폰 카메라가 수시로 “찰칵”한다. 특히 자신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이를 공유하는 SNS시대가 된 요즘 ‘셀카’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 어찌보면 자기 도취에 빠진 나르시스가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 그것도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인물 사진이 넘쳐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40년째 초상화를 그리는 작가 김진삼(71)씨는 “스마트폰 사진은 순간적이지만, 초상화는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까지 담는다”고 말한다. 3일 오후 서울시청 바로 앞 지하도에 있는 그의 화실 ‘후암 초상화 연구소’를 찾았다. 화실 밖 유리창에는 이승만, 세종대왕, 제임스 딘 등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 찾기는 쉽다. 지하도를 오가는 이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잠깐씩 초상화를 구경하곤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액자를 박차고 나올 듯한 초상화 주인공들··한 자리서 40년된 화실 화실에 걸린 견본 초상화들이 액자를 박차고 나올 듯 살아 꿈틀거린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김수환 추기경이 “괜찮아”라며 위로하고, 맥아더 장군은 앞을 쏘아보는 눈길에서 불굴의 의지가 엿보인다. 혜민 스님은 금방이라도 말을 붙여올 것같고, 처칠에게서 단호한 대응을 천명하는 연설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세밀화를 그리는 초상화 작가의 눈매는 뭔가를 꿰뚫어보고 얼굴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생겼을 것이라는 기자의 선입견과는 달리 김진삼씨는 잘 늙어가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여기서 작업한지 40년이 넘었어요. 별의별 사람을 다 겪었으니, ‘에라, 모르겠다’하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습관이 됐지요. 허허.”그에게 “마음 편하게 산다”는 게 뭔지 묻자 “초상화를 의뢰하러 들어오는 사람은 굉장히 반갑지만, 나중에 찾으러 오는 손님이 두렵고 무섭다”는 답이 돌아온다. “간혹 ‘얼굴이 다르다’며 안 찾아가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손님을 만나면 젊은 시절엔 의뢰한 사진을 보여주며 따졌지만 지금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가져가지 마세요’라고 하지요.” 40년째 하다보니 요즘은 손님에게서 타박 맞는 일은 없지만 “손님이 반가우면서 무서운 우리네 마음이 양복쟁이 마음과 같지 않겠느냐”고 한다. 수입을 묻자 그는 “노령 연금으로 화실 임대료를 낸 적도 많다”며 웃어 넘겼다. ●“빛 바랜 사진에는 의뢰자의 추억이 담겨···그 마음까지 담아야” ‘초상화에서 얼굴이 다르면 문제가 아니냐’고 따지자 그는 “의뢰자가 빛 바래고 작은 부모님 사진 한 장을 갖고 오지만 사실은 자신의 기억 속의 이미지를 그려주기를 바란다”며 “우리가 무슨 수로 그런 추억을 알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의뢰자의 눈매나 입술 등을 자세히 관찰하고, 사진 속의 인물과의 관계와 닮은 점 등을 묻고 참고해 초상화에 담기도 한다. 낡은 사진이라도 한 장 있으면 다행이다. 사진도 없는데 의뢰자가 말해주는 대로 몽타주 그리듯 한 적도 많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경찰서에 가서 몽타주를 그려주기도 했다.“모 문중에서 조상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거예요. 후손들은 아무도 본 적이 없고, 행장과 같은 문중 기록에 남아있는 ‘기골이 장대하고, 눈빛이 형형하고’ 이런 것을 근거로 해서 상상화를 그려야 했지요. 너무 막연해서 그래서 항렬이 높은 후손들 몇분의 사진과 기록을 근거로 그려드렸더니 만족하더라구요.” 김씨는 “후손들이 초상화 대상인 조상을 잘 알거나 전혀 모르면 (그리기) 편한데 어설프게 알면 “이게 아닌데”, “저게 아닌데···” 하면서 까다로워집니다”고 말했다. ●“정주영 회장, 사진 한 장 없는 선친 의뢰···새벽마다 청운동서 설명” 심지어는 사진도 없이 의뢰하는 손님도 있단다. “우리 아버지가 최불암씨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눈매만 이렇게 고쳐주세요’ 하더라구요. 사진 한 장 없는 아버지, 그 기억은 자식들 마음 속에 있는 것이든요.” 1948년 황해도 개풍군에서 태어난 그는 6·25 한국전쟁이 터진 3살때 남쪽으로 피난 내려왔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북에 두고 내려왔기에 사진 한 장 없는 후손들의 애틋한 심정을 제가 좀 잘 알지요.” “한번은 정주영 회장님이 아버지를 그려달라고 했어요. 남긴 사진 한 장도 없는데. 그래서 사흘에 한번씩 새벽 5시에 정 회장의 청운동 자택에 찾아가 설명을 듣고 그림을 그려 가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눈매가 달라’라고 했어요. 그러면 수정해서 다시 보여드리면 ‘아까 그게 더 비슷해’라고 해서 다시 원래 그림으로 바꿔드리면 ‘아냐, 아냐’라며 퇴짜를 놓아지요. 그래서 ‘가족 중에 누가 가장 비슷하게 닮았느냐’고 묻자 정몽준 회장이라고 하더라구요. 나중에 허바허바 사진관에서 정몽준 회장님 사진을 찍어서 보내 주기도 하더라구요. 그걸 참고해서 그린 스케치도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왕 회장’에게 아버님은 회장님 마음 속에 있으니 굳이 그리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지요. 결국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고, 스케치북을 드렸지요.”“이런 일도 있었지요. 1991년인가 어떤 사람이 와서 ‘밖에 세워둔 6호 크기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얼마냐’고 묻기에 ‘40만원’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다음날 가져온 사진을 보니 김영삼 당시 총재였어요. 이런 유명 정치인은 40만원에 안된다고 했더니 ‘이미 40만원으로 보고해서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결국 했는데 나중에 보니 내 초상화가 대선 공보물로 들어가 있더라구요. 대통령에 당선됐지요. 하하.” ●“평범한 사람들, 초상권 문제로 피해···젊은 연예인은 잘 안 와” 그가 가장 비싸게 판 초상화는 내로라하는 재벌이 아니었다. 경북 포항의 한 기업인이었는데 40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도 모 기업 문화원에 걸려있다고 한다. “어느날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사람이 와서 초상화에 대해 정말 꼼꼼하게 묻고 가더라구요. 그리고 가격을 묻기에 평범한 사람인줄 알고 200만원이라고 했더니 다음날 가져온 사진이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님이었던거죠. 재벌에겐 이런 가격에 안된다고 했더니 비서실인데 그렇게 상부에 보고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해요. 나중에 초상화를 가져가면서 100만원을 더 주더라구요.” 화실에 전시된 그림 가운데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의 모습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씨는 “일반인은 ‘왜 함부로 내 얼굴을 그려놨느냐’며 초상권 시비가 나오면 골치 아프니, 그래서 잘 안하지요. 그리고 외국인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해 오히려 그리기가, 성격을 표현하기가 더 쉬워요”라고 말한다. “지나가던 연예인들이 한번씩 들어와서 슥~ 훑어봐요. 과거엔 많이들 왔지요. 자신의 초상화가 없으면 ‘하나 그려서 전시해 놓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한 점 주문하셔야 합니다’고 답하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연예인도 있었지요.” 요즘 젊은 연예인들은 “지하로 다니지 않아서인지” 찾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정치인 초상화는 어떠냐고 묻자 호불호가 선명하게 엇갈려서 밖에 내놓기가 애매하다고 답한다. “지난번 촛불 시위대가 이승만 전 대통령 초상화를 보더니 “당장 치워라”며 유리창을 발로 차고 그래서 저와 한바탕했지요.” 이 화실에서 그림이 아닌 사진도 한 점 있단다. “저기 백범은 사진입니다. 초상화 원본은 김구재단에 걸려있고, 그 재단에서 제가 그린 초상화를 사진 찍어 보내준 겁니다.” ●“영정 초상화 분위기 많이 바꿔···웃으며 차 한잔 권하는 모습도”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후 늦어 문을 닫으려는데 어떤 사람이 급하게 사진 한 장 들고 달려왔습니다. ‘우리 아버지인데, 병원에서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고 합니다. 영정 초상화로 내일 아침에 쓸 수 있게 완성해달라’고 합디다. 그래서 밤을 새워 그렸죠. 그런데 다음날 사진을 찾으러 오지 않는 거예요. 오후에 전화가 와서는 ‘고비를 넘겨 건강이 회복됐습니다. 영정 초상화가 당장 쓸모 없게 됐으니···다음에 찾으러 가겠습니다’고 해요.” 이런 상황을 많이 경험한 듯 그는 영정을 미리 그려두면 수의를 준비했을 때처럼 “오래 산다”고 말해준단다. 그는 요즘 영정 초상화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귀띔했다. “예전엔 무게 잡고, 경직된 모습이었는데 요즘엔 ‘내 상가에 오신 조문객들에게 감사하다’는 듯 웃으면서 술 한 잔, 차 한 잔 권하는 모습이 많지요.”그가 초상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박봉’ 때문이다. 그림 솜씨를 타고난 그는 20대 시절엔 문화공보부 미술실 소속 공무원이었다. “그 당시 포스터 그리고, 글씨 쓰고···박정희 대통령의 선전기관이었죠. 그런데 당시 월급이 겨우 쌀 반가마였죠. 초상화를 그리면 돈을 잘 벌 수 있겠다 싶어서, 1978년에 여기에 화실을 연 거죠. 처음 한 10년동안에는 그림 퇴짜도 많이 받고, 공무원 그만둔 것 후회도 하고, 갈등이 정말 많았죠.” 자영업자의 간판이 2년을 넘기기 어려운 요즘 그는 한 곳에서 40년동안 화실을 운영했다. 그의 실력을 짐작케 한다. “초상화 공부는 처음에 사사를 받았죠. 한 10년 그리니깐 초상화를 알겠더라구요. 경지에 도달하려면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해야 돼요. 지금까지 하루 10시간씩 40년은 그렸다고 봅니다. 집안에 그림 그리는 DNA도 물려받고, 두 딸도 유화를 좋아하더라구요.” ●오른손에는 잔 근육들이 발달···손가락 끝엔 굳은 살 허락을 받아 오른손잡이인 그의 손을 만져봤다. 손 등은 두툼했고, 손바닥은 부드러웠다. 손에는 세밀한 근육들이 발달해 있었다. 하지만 5개 손가락 끝에는 굳은 살이 박혀 있었다. “인물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눈과 입이죠. 코는 크기와 중심을 잡아주는 반면 눈과 입은 분위기와 표정을 살려주지요.” 사진은 변하지만 초상화는 변하지 않는다. “실크 재질에 아교칠을 한 물감으로 수천번의 붓질로 탄생한 초상화는 생명력이 있어요.” 사진과 비교할 수 없는 질감이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초상화를 의뢰할 때 인물 사진이 많으면 좋단다. 그리고 인물의 성격이나 분위기, 특성 등을 설명해주면 초상화를 그릴 때 엄청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가족들 초상화는 부모님만 그렸죠. 그동안 제자들 가르치느라 또 작품하느라 시간이 안 나서 못했는데 이젠 제 초상화, 자화상도 한번 그려봐야죠.” 그러나 눈이 침침해 더 이상 그릴 수 없을 때 이 곳이 문을 닫는 게 아닐까하는 것이 그의 걱정이다. 점점 초상화 화실이 줄어드는 탓이다. “철공소가 대형화되어 하나가 살아남듯, 초상화도 수요는 적어지겠지만 살아남을 겁니다. 이곳을 제자가 넘겨받아 이어갔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사진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글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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