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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상봉 감격 지속하도록

    오늘 코흘리개 소년이 백발의 노인으로,갓 시집온 새댁이 허리 휜노부인으로 바뀌어 50년만에 부모형제와 배우자를 만난다.반세기 동안 별리(別離)의 한을 품고 살아온 남북 이산가족이 마침내 서울과평양에서 각기 그리운 가족과 재회한다. 이번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의 첫가시적 성과로,지켜보는 이들도 눈물을 감출 수 없는 대 드라마가 될 것이다.우리는 오랜 세월 생이별의 아픔을 삭여온 이들과 상봉의 감격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통은 나누면 줄어들고 기쁨은 함께하면더욱 커진다지 않던가. 새천년의 첫 광복절을 맞아 이산가족들이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민족의 통일도 멀잖았음을 예감한다.아울러 이번에 상봉을 못하는 이산가족들에게도 순차적으로 상봉의 기회가 꼭 주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그런 점에서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지난 12일 방북 언론사 사장단에게 오는 9월과 10월에도 이산가족교환방문을 계속하고 내년에는 집에도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환영해 마지않는다. 그럼에도 이번 상봉은 전체 이산가족중 남북 각기 100명씩 제한된인원을 선발,3박4일간 진행되는 시범사업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작은 불상사라도 생기지 않아야 후속 방문단 교환으로 순조로이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당사자인 이산가족과 관계당국이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남북 당국은 행정적 지원에 만전을 기해야 하고 언론도 상대체제를 자극하지 않도록 보도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이번 상봉 방식은 지난 85년의 첫 방문단 교환때에 비해 진일보했다.예컨대 불필요한 의전행사를 줄이는 대신 가족간 상봉 횟수와 시간을 늘린 것은 잘한 일이다.그러나 김위원장도 언급했듯이 이산가족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일괄 상봉하는 것보다는 혈육이 사는 가정을 방문해 체온을 나누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본다.남북 당국이 당사자인 이산가족의 입장에 서서 앞으로 방문 방식에 대한 전향적인 개선책을 협의해나가기 바란다.특히 이번에는 방문단이 항공로를 이용하지만 앞으로 2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합의된다면 판문점 등을 통한 육로 이용에 남북 당국이 뜻을 모으기를 당부한다. 비행기로 서울과 평양을 상호 방문하기로 한 것도 남북 직항로를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단의 사슬을 끊는다는 상징성이나 비용과 안전성 등을 감안하면 육로 방문이 더 바람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마침 지난96년 이래 가동하지 않았던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도 14일 정상화되었다.멀게만 보이던 통일이 성큼 다가선듯 하여 광복절 아침에 가슴설렌다.
  • 한민족 하나로 남북離散 상봉/ 선물꾸러미에 절절한 사연 담아

    북의 혈육을 찾아가거나 맞이하게 될 남쪽의 이산가족들은 애끊는사연과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한아름씩 마련했다. 북에 있는 막내아들 김병길씨(54)를 만나러 가는 서순화씨(81·여)는 두꺼운 운동화를 가방 가장 깊은 곳에 챙겼다.살을 에는 듯이 추웠던 50년 겨울 다 해진 나막신에 버선발로 피란 길에 올랐다 헤어진 막내아들 생각에 그동안 밤잠을 제대로 못잔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씨는 “아직도 꽁꽁 언 발로 대동강을 건너면서 발이 시렵다고 칭얼대던 병길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취로사업으로 근근이 혼자 살아가는 이몽섭씨(75·경기도 안산시 반월동)는 북에서 만날 부인,아들,딸을 위해 여자용 속내의와 손목시계 3개를 마련했다.이씨는 “없는 살림에 남들처럼 많은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아쉽지만 취로사업으로 받는 20만원 중에서 담배와 술값을아껴 선물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막내동생 상흔식씨(56)를 만나러 북에 가는 상환식씨(74)는 자신이이제껏 살아온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가족사진,집안 사진,직장시절의 사진 등을 준비했다.상환씨는 “동생을 만나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맨 먼저 물어보고 싶다”면서 “가져 가는 사진이 못난 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북에서 오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 모인 남측 이산가족들의 손에도 선물 꾸러미가 가득했다. 동생 조재린씨(67)를 만나는 조재익(78),재하(74)형제는 용인에서부터 힘겹게 메고 온 짐가방에서 소중한 선물을 하나 꺼냈다.바로 가족들의 사진을 담은 사진첩이다.가족들이 모여 값비싼 선물을 준비하려고도 했지만 살아온 모습을 선물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둘째아들 이춘명씨(70)를 서울에서 만나는 최인자씨(95)는 아들과헤어진 뒤 부터 50년 동안 끼고 있던 은반지를 아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형 심규황씨(65)를 만나는 순황씨(63)는 형의 가족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 손목시계를 8개나 준비하고 고급 라이터도 10개를 마련했다.순황씨는 신발,전자계산기,속옷,화장품,영양제 등이 가득한 선물꾸러미를 풀어 보이면서 “지금까지 모은 전 재산을 다 형에게 주고싶지만 선물과 현금의 액수가 정해져 아쉽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한국통신 徐容熙본부장. “한치의 오차도 없는 만반의 준비로 반세기 만에 성사된 남북 이산가족들의 뜨거운 만남을 돕겠습니다” 8·15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통신망 준비를 총괄하고 있는 한국통신 서용희(徐容熙·54)네트워크본부장은 역사적인 행사를 하루앞둔 14일 통신망 구축 상황을 최종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Y2K기술문제대책반과 4·13총선,남북 정상회담 등 굵직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통신기술 설비를 총괄해온 베테랑이지만 이번 행사만큼 가슴이 설렌 적은 없었다.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 이루어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기 때문이다. 서 본부장이 상봉 준비작업에 들어간 것은 지난달 말.남북 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들의 상봉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통신지원대책반을 구성했다. 연인원 2,000여명을 동원,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달린 끝에 보름 만에모든 준비를 마쳤다. 행사 준비기간 동안 퇴근한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상봉일에 맞춰 통신망을 구축하느라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이산가족들이 한맺힌가슴을 달래줄 수 있다는 기쁨에 피곤함도 잊었다. 서 본부장은 “우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뜻깊은 행사를 준비하게돼 힘들지만 보람을 느낀다”면서 “전 세계에 우리 통신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인 만큼 최선을 다해 행사를 마무리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 본부장은 체신고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나왔다.64년 한국통신에 입사한 뒤 경영기획실 사업대책국장과 경영전략실 사업대책총괄실장,무선사업본부장 등을 지냈다. 김재천기자 patrick@. *자원봉사 日여대생 가네마루씨. “50년이나 가족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마음 아픈 일입니다” 8·15 이산가족 상봉의 남쪽 가족들이 묵게 될 서울 올림픽파크텔에는 일본인 여대생 가네마루 가요(金丸佳大·25·도야마대 언어학과 3년)씨가 안내도우미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가네마루씨는 한국인 도우미 4명과 함께 빨간색 치마에 남색 저고리 차림의 한복을 입고 1층 엘리베이터앞에서 남쪽 이산가족들에 대한 안내를 맡고 있다.지난 4일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은 그는 이호텔에 묵고 있다가 이산가족 상봉 행사 소식을 듣고 자원봉사를 자청했다.처음 계획했던 열흘간의 여행 일정도 1주일 더 늘려 잡았다. 가네마루씨는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은 민족인데 오랫동안 이산의 비극을 겪고 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느냐”고 서툰 우리말로말했다. 지난 97년 9월 한·일 대학생 친선 소프트볼대회에 출전,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준 데 감격해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했다”면서 “평생 이렇게 좋은 삶의 경험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가네마루씨는“생이별한 가족들의 뼈아픈 만남이기에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나를 외국인으로 보지 않고 한국인처럼 대해 줘 고맙게 생각하지만 한국말이 서툴러 안내를 제대로 못하는 게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그는“앞으로 한국에서 공부도 계속하고,한국 사람과 결혼할 생각도 갖고 있다”면서“오는 18일까지 이산가족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봉사활동을 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경운기자 kkwoon@
  • 8·15 이산가족 교환방문 D-3/ 미리본 서울 단체상봉

    “오마니…”“여보…”“오빠…” 오는 15일 오후 4시쯤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1,900평 규모의 컨벤션홀은600여명이 한꺼번에 터뜨리는 울부짖음과 함께 감격의 ‘눈물 바다’를 이루게 된다.북에서 온 8·15 서울 방문 이산가족 100명과 그들의 남쪽 가족 500명은 단체상봉 장소인 이곳에서 반세기 만에 처음 그리운 얼굴을 서로 어루만질 수 있다. 가로·세로 각 81m의 바닥 넓이에 높이 17.5m의 장대한 컨벤션홀은 가족들600여명 외에도 상봉보조 요원 100명과 취재진,정부지원 요원 등 모두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장관을 연출하게 된다. 정부는 컨벤션홀 중앙을 십자가 모양으로 갈라 포토라인을 설치하기 때문에상봉 구역은 대충 4개 구역으로 나뉘어진다.구역마다 테이블이 25개씩 총 100개가 설치된다.방문단 1명당 테이블 1개와 의자 6개가 배치된다. 방문단을 만날 남쪽 가족 500명은 상봉 시각 전까지 컨벤션홀에 미리 들어와 방문단의 입장을 기다리게 된다.테이블당 남쪽 가족 5명이 기다리는 셈이다. 상봉 시각이 되면 사방에 설치된 6개의 문에서 동시에 방문단이 입장한다. 전부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기 때문에 상봉 보조요원이 1명씩 따라붙어 지정된 테이블로 방문 이산가족을 데려간다. 상봉 과정에서 노인들이 충격으로 실신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컨벤션홀 안팎에는 의료진과 구급차가 대기하게 된다. 김상연기자 carlos@. *민간지원요원으로 평양行 이호철씨. “비록 정식 상봉단 일원은 아니지만 이번 방북길에 50년 전에 헤어졌던 누이동생과 남동생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남북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의 민간지원 요원으로 뽑혀 평양에 가게 된 함남원산 출신의 소설가 이호철씨(68)는 가족상봉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조금의외다 싶을 정도로 ‘자신에 찬’ 답변을 한다.사연을 듣고 보니 그럴 만하다 싶으면서도 그의 확신에는 객관적이기 앞서 50년 동안의 기대가 잔뜩 묻어 있다. 6·25가 터진 해 17살의 몸으로 가족없이 단 혼자 남으로 내려왔던 이씨는지난 98년 모 언론사 취재주선으로 방북,평양과 백두산을 둘러보았다.고향원산에는 가보지 못했는데 당시방북직전 중국 옌볜(延邊)을 통해 네 살 아래 남동생,열 살 아래의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소식만을 전해 받았다.“평양에 갔을 때 그쪽 적십자 요원 등 여러 사람들과 친해 놓았다.이번에 그들이내 사정을 모른 체할 리 없을 것”이란 것이 소설가 이씨의 ‘확신’의 근거다. 원산고급중학(고교) 3학년때 내려온 이씨는 월남민을 다룬 수많은 소설을썼고 민주화투쟁에 나섰던 70년대 유신시절에는 당국의 조작으로 문인간첩단사건에 얽혀 수형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김재영기자 kjykjy@. *의료지원요원 故 장기려박사 아들 가용씨. ‘한국의 슈바이처’ 고 장기려(張起呂) 박사의 뒤를 이어 ‘참 의료’를실현하고 있는 아들 장가용 박사(서울대 의과대학 해부학과)가 꿈에 그리던어머니 김봉숙(金鳳淑) 여사를 만나기 위해 8·15때 평양으로 떠난다. 남측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100명의 의료지원요원으로 포함돼 방북하는 그는선친이 녹음한 어머니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꺼내 듣는 게 일과 가운데 하나가 돼 버렸다. 미국에 사는 친척을 통해 북한의 가족과 편지를 교환하면서 이산가족 상봉의 날을 고대하던 부친은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여보,통일될 때까지죽지말고 살아 주오”라고 되뇌면서 95년 86세로 눈을 감았다. 6·25전쟁은 그의 가족을 졸지에 이산가족으로 만들었다.아버지 장박사는어머니와 5남매를 평양에 둔 채 차남인 자신만을 데리고 잠시 남하했다가 생이별 했다.아버지는 영세민을 위한 무료진료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독신으로 살았다. 평북 용천 출신인 아버지는 경성의전(현 서울대의대)을 졸업하고 당시 최고의 명의로 일컬어졌던 백인제(白麟濟) 교수의 수제자로 외과의사의 길을 걸었다.40년부터 5년간 평양에서 기홀병원,김일성대학병원의 외과과장을 지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외언내언] 이산의 恨

    이산가족 8·15방문단 교환 날짜가 다가오면서 맨 먼저 떠오르는 삽화가 있다.지난 85년 9월 첫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교환 때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있었던 일이다.지금은 빛바랜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지만 남녘 아버지와 북녘 아들간 3박4일간의 만남이 긴 이별로 이어지던 순간이었다. 짧은 재회가 못내 아쉬워 북으로 떠나는 초로의 아들과 남쪽에 남는 황혼의 아버지는 버스 차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친 손바닥을 오랫동안 떼지 못했다. 아마 그들은 이승에선 다시 만나기 어려우리라는 불길한 예감으로 온몸을 떨었을 것이다. 이렇듯 분단으로 빚어진 이산가족들의 아픔은 언제나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한다.이번 8·15방문단 명단 교환과정에서 파생되고 있는 애절한 사연들도마찬가지다.109세 노모와 상봉할 희망에 부풀어 있던 부산의 장이윤(張二允·71)씨가 그 대표적 사례다.그는 노모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듣고 통곡하다가 급기야 실신했다고 한다.이번에 상봉의 행운을 안은 사람이건,최종 명단에서 탈락한 사람이건 간에 가슴한편에 공통적 정서를안고 있다.이산의 한(恨)이 바로 그것이다.상봉의 기쁨으로 인한 것이든,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지새워야 한다는 절망 때문이든 그들의 눈물은 한이 농축된 결과다. 얼마 전 서울 주재 일본의 한 특파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화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그는 남북문제를 보도하면서 가장 어려운 대목이 ‘이산의 한’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한에 해당하는 일본말로 ‘우라미’(ぅらみ)가 있지만 상당히 다르게 새겨진다는 것이다.예컨대 ‘분단 반세기의 한(ぅらみ)을 풀었다’고 하면 독자들이 “이산가족들이 분단을 가져온 체제 등에 대한 증오심을 해소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라는 설명이었다.사실 ‘한’이나 ‘신바람’과 같은 낱말에는 외국어로 옮기기 어려운 한국적정서가 담겨 있다.‘민중의 좌절된 소망’ 정도로 풀어쓸 수 있는 한국적 ‘한’은 어디까지나 이를 이루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미움이나 복수심을 외부로 투사하는 일본의 ‘우라미’와는 뉘앙스가 전혀 다른 셈이다. 광복절이면 이산가족들의 만남으로 다시 한반도는 ‘눈물바다’가 될 것이다.그러나 한차례 눈물잔치로 이산의 한을 송두리째 ‘카타르시스’하기란어렵다.남북 당국이 한시 바삐 상봉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이산가족의 한을 근본적으로 풀어주고 또 다른 민족정서인 ‘신바람’을 분출시켜야 할 때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
  • [사설]’상봉’ 제도화 시급하다

    반세기 동안 수절하며 유복자를 혼자 키운 고희의 노부인이 끝내 북녘 남편과 만나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은 분단으로 인한 가족의 생이별이야말로 민족최대의 비극임을 새삼 일깨운다.서울에 올 북측 8·15방문단 명단에서 결국남편의 이름이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유순이(柳順伊·70)씨가 오열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함께 울었다. 남북 적십자사가 8일 8·15 이산가족 방문단 최종 명단을 교환했다.남북에서 각기 100명씩으로 방문단이 압축되면서 안타까운 사연들도 속출하고 있다.3박4일 동안 가족과 재회하는 쌍방 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의 가슴 벅찬 희열뒤켠에는 생존을 확인하고도 명단에서 빠진 사람들의 아픔이 있다. “꿈인듯생시인듯 좋더니만 이제는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라는 그들을 도대체 얼마나 더 긴 세월 기다리게 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그들의 애절한 사연들을 접하면서 이산가족 문제는 일회성 이벤트가아니라 정례화·제도화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재확인한다.이산가족 문제는 생사·주소 확인-서신교환-상봉 및 방문-재결합이라는 단계를 밟아 본원적으로해결할 수 있다.따라서 남북에서 각기 100명씩으로 한정된 이번 방문단 교환은 다분히 이산가족 문제의 포괄적 해결에 앞선 초기 시범사업 성격을 띠고있다. 전체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한 제도적 해결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이산 1세대들이 상당수 세상을 하직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러한 제도적 해결의 발판은 하루 속히 마련돼야 한다.부산에 사는 장이윤(張二允·71)씨의 109세 노모가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북측의 당초 발표가 착오였음이 밝혀지면서 더욱 실감하게 되는 사실이다.때문에 오는 29일 평양에서 열릴 2차장관급회담이나 이후 열릴 적십자회담에서 양측은 적어도 이산가족 문제를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첫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할 것이다.특히 9월초순쯤 비전향장기수 송환이 이뤄진 뒤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적십자회담에서최소한 상시 면회소 설치에 합의하기를 기대한다. 물론 아직도 단층이 큰 남북한 사회의 이질성,특히 체제안정을 우선시하는북한의 입장을 감안하면 당장의 전면적 이산가족 교류가 무리임을 안다.그러나 그같은 그쪽 현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다.정례적 고향 방문과 상봉단 교환이 가장바람직하겠지만 면회소 운영을 통한 지속적 상봉이나 우편물 교환 등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정상이 6·15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이산가족 문제는 이념과 체제를떠나 인도적으로 해결돼야 할 최우선 과제임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 월남후 재혼 李善行·李松子부부 방북길에

    “여보,나는 괜찮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북에 두고온 부인과 자식들을 만나요” “고맙구려,당신도 그렇게 그리워하던 의식이를 만날 수 있다니 잘됐구먼” 북한에 가족들을 남겨놓고 각각 월남한 이선행(李善行·80·서울 중랑구 망우2동),이송자(李松子·81)씨 부부가 이산가족 방문단에 모두 포함돼 오는 15일 나란히 방북길에 길에 오르게 됐다. 4일 대한적십자사가 확정한 방북 이산가족 인선 최우선 기준인 ‘부모,배우자,자녀가 생존해 있는 사람’에 이씨 부부가 모두 해당되기 때문이다. 평안북도 영변이 고향인 이선행씨는 지난달 27일 북에서 보내온 가족 생사확인 명단에서 아내 홍경옥씨(78)와 아들 진일(58),진걸씨(55)가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함경남도 문천이 고향인 이송자씨는 아들 박의식씨(60)의 생존을확인하고 방북단에 포함되기를 손꼽아 기다려 왔다. 이선행씨는 “전쟁 당시 청천강 이북에서 중공군이 밀려온다는 소문에 모든 가족이 피란길에 나섰다가 대동강 철교가 끊기면서 생이별을 하게 됐다”면서 “당시 처는 임신중이었다”고 회상했다. 부인 이씨는 1947년 아들 형제를 북에 두고 서울에 있던 남편을 찾아 내려왔다가 38선이 막히면서 자녀들을 볼 수 없는 신세가 됐다. 남편의 아내를만나면 ‘살아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이송자씨는 “이번 방문에서 두 가족이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남편 이씨는 “아내를 두고 옛 아내를 만나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지만 아내가 이해해주니 고마울 뿐”이라면서 “명절과 어버이날이 찾아오는 것이 가장 두려웠을 만큼 외롭던 우리 부부에게 갑자기 너무 많은 자식이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손자,손녀는 몇이나 될까,혹시 증손자가 있을지도 몰라…아들에게는 돋보기,손자에게는 양복,증손자에게는 장남감이 어울릴까” 이선행씨는 벌써 후손들의 선물 챙기기에 바빴다. 이송자씨도 “우리 아들들도 백발이 성성하겠구려,손주들에게는 탐스럽게익은 앞 마당의 복숭아를 따다 주는게 어때요”라며 화답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여름하늘 수놓는 무지개빛 ‘록’ 선율

    국내 하드코어 그룹의 자존심 ‘노바소닉’과 최근 3집 ‘노 피어’를 들고나온 ‘미스미스터’가 한날 한무대를 꾸민다.30일 오후4시와 7시 세종대 대양홀.(02)3673-2086 또는 www.Z-RAM.co.kr노바소닉의 무대는 한창 작업중인 2집 앨범 수록곡들을 미리 팬들에게 선보이는 성격이어서 더욱 관심을 끈다.무대에서 각기 독특한 카리스마를 풍기는‘넥스트’출신의 김영석, 이수용,김세황과 래퍼 김진표가 펼치는 강렬한 무대가 기대된다. 역시 김영석이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미스미스터는 박경서,김민정외에 새로영입된 베이시스트 이혜민의 역량을 검증하는,첫무대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영국의 테크노팝과 메탈의 접목을 무대에서 얼마만큼 해낼 수 있을 지궁금하다. 또 홍익대 앞 언더클럽에서 300회 이상 라이브 경험을 쌓은 실력파 밴드 ‘체리필터’가 29일(오후7시)과 30일(오후6시),이틀동안 서울 정동 A&C홀에서무대를 연다. 하드코어,펑크,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상큼하면서도 강력한 사운드와 솔직한가사로 풀어내 보인다. ‘크랜베리스’와 앨라니스모리셋을 연상시키는 홍일점 보컬 조유진을 중심으로 구성된 4인조. ‘노바소닉’의 김영석이 프로듀스했다 해서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체리필터는 1집 앨범 타이틀곡 ‘헤드 업’ 등을 들려준다. 이 그룹은 8월16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 라이브극장에서 한번 더 무대를 가진 뒤 일본에 건너가 이즈무 프로덕션에서 음반을 내고 6개월동안 활동할 예정이어서 이들의 첫무대가 이별파티가 될 것으로 보인다.(080)538-3200임병선기자 bsnim@
  • 코끼리 조련 자원봉사 미군장교 ‘아쉬운 이별’

    2년 남짓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사육사들에게 코끼리 조련방법을 가르쳐왔던한 주한미군 장교가 30일 본국 귀환을 앞두고 고건(高建)시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아 화제다. 주인공은 포병대 존 리건(47)중령. 군 입대전 미 플로리다주의 한 동물원에서 코끼리 사육사로 근무했던 리건중령은 한국에 부임한 지난 98년 10월 재미교포인 부인 문덕순씨(미국명 덕순 리건·53)와 서울대공원을 관광하던중 우연히 코끼리 가족을 보고 젊은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곧바로 관리사무소에 자원봉사를 신청,코끼리와 이국에서의 인연을 맺게 됐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원숭이나 돌고래 등 일부 동물들에 대해서만 훈련을 해왔지만 리건씨가 코끼리를 조련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당시 서울대공원내에서는 조련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재신 사육팀장은 “그동안 수컷 ‘칸토’와 암컷 ‘키마’를 자식처럼 돌보는 리건씨를 보면서 동물사랑의 참모습을 보았다”면서 “먹이만 주었던우리 동물원 사육사들은 코끼리를 조련하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리건씨는 동물원 사육사들에게 틈틈이 코끼리 조련방법을 가르쳐왔다.이 덕택에 이제 우리 사육사들도 코끼리를 능숙하게 조련할 수 있게 됐다고 대공원 관계자는 귀뜀했다.현재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는 리건씨는 “이제 우리가족이 돼버린 코끼리와 숨박꼭질을 하거나 공차기를 하던 추억을 간직한 채본국으로 돌아가게 돼 무척 마음아프다”면서 아쉬워했다. 문창동기자 moon@
  • [네티즌 칼럼] 춘향이 변학도 싫어한 이유

    요즘처럼 먹고 살기 바쁜 때에 세상을 제대로 살펴보기란 무척 힘들다.예전에 편지를 쓰면서 잊고 지냈던 부모님이나 선후배,친구들한테 할 말,안 할말을 쓰고 했는데,지금은 이메일 하나로 “야,잘 지내냐?” 뭐 이런 식의 몇줄 글이 전부이니 말이다.가볍고 빠른 것이 최상인 시대가 됐다.하기야 글이란 세상과 인간을 무척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인지 모르겠다.나역시도 생각없이 산지 오래돼 할 말을 글로 쓴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 됐다.세상사보다는 돈 버는 일에 급급한지 오래돼 무슨 이야기를 누구에게 어떻게 첫 운을 떼야 할 지도 헷갈리는 판이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으로 세상소식을 접한다.인터넷에서 본 미국 LA타임스19일자 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조급성과 요행심리도 속도와 위험부담이 요구되는 정보시대와 잘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그리고 한국의 인터넷열기가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만남에서부터 심지어 잠자리에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지는 최근의 연애풍속도도 시발점이 ‘인터넷’이다.채팅에서 “너 나올래?”,“거기서 만나자”가 돼서 소위 ‘번개’를 하는 남녀들을 자주 목격한다.서울도심 한복판의카페에서 네티즌들의 모임이나 만남을 볼 때마다 예전 연애에서 보는 풋풋함이나 부끄러움,수줍음 따위의 ‘느림’의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가 없다.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서로 ‘반말’하고 담배도 나눠 피고 술잔을 부딪치는 문화는 21세기 인터넷이 만든 또다른 ‘빠름’의 문화가 아닐까.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연애관의 변모에 따라 새로운 풍속도나 인식이 자리잡히고 있다.가령 “변학도가 아저씨가 아니었다”면의 이어지는 말은 “춘향이가 그리 버티지는 않았을 거”라는 신세대의 인식을 기성세대는 알까? 오늘날의 춘향,그러니까 신여성들은 그렇다.아무리 놀라운 일도 이미 인터넷에서 알아차리고 더 빠르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인간관계도 즉흥적으로 성립되거나 끊는 경우가 잦다.가벼운 만남,빠른 이별,성과 결혼에 대한 이중성이 기성세대의 그것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이것은 남자,여자 모두 해당하는말이다. 춘향이가변학도가 싫은 것은 춘향에게 이도령 하나뿐인 ‘일부종사’ 때문이 아니라 변학도가 아저씨이기 때문이다.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요즘여성들의 가치관이다.즉 자신이 싫어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아저씨’라는단어를 ‘나이가 많은 남성’을 가리키는 인칭 정도로 이해하는 ‘리얼 아저씨’가 있다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상당히 힘들게 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세대 여성에게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은 곧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아무런매력이 없는 남성을 가리키는 단어다.그 반대인 아줌마도 마찬가지다. 초고속 스피드의 인터넷은 춘향이나 이도령의 “내 사랑은 오직 너밖에”를 날려버린 셈이다. 조무형 클럽69 대표 rainboat@chollian.net
  • [사설] 이산가족 상봉 차질없게

    북한 적십자회가 보내온 8·15 이산가족 상봉단 후보 200명 명단에 포함된남쪽 가족들의 생사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는 소식이다.그 과정에서 생이별반세기를 살아온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애절하고도 기구한 사연들이 단편적으로나마 소개되고 있다.분단이야말로 엄청난 민족적 비극임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정상간에 모처럼 합의된 8·15 이산가족교환 방문은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성사돼야 한다. 남북 적십자는 상대방이 통보해온 명단 가운데 각각 100명씩을 대상자로 압축해 오는 26일 최종 상봉자 명단을 확정한다.북측이 보내 온 이산가족 상봉후보 명단을 정부가 공개한 것은 상봉단 선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남쪽 가족을 찾아내는 데 효율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언론의협조로 남쪽에 사는 이산가족들을 공개리에 신속하게 찾아낼 수 있게 됐기때문이다.국민들도 남쪽 가족을 찾는 당국의 확인작업에 적극 협력해야 하는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양쪽이 통보한 명단중 생존이 확인된 사람이 17일100명을 이미 넘어섰다.따라서 탈락자에 대한 배려를 위해 남북이 전향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물론 이번 광복절 상봉단은 규모면에서 숫자가 적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분단을 직접 경험한 이산 1세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마당이다.남쪽에 사는 60대 이상 고령자만 해도 69만여명에 이르고 있는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가족 상봉의 시간이 촉박하다는 뜻이다.또 국군포로나납북자 귀환 등 비전향 장기수 송환에 상응하는 북한의 성의 표시를 촉구하는 등 이런저런 훈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르랴’는 말과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다.비록이번 방문단 교환은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한 ‘시범적 차원’이지만 머지않아 모든 실향민을 위한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의 ‘제도적 해결’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특히 15년간의 단절 끝에 이어질 이산가족 재회는 그 규모를 떠나 평화공존, 나아가 평화통일로 가는 노둣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새긴다면 정치권을 포함한 모든 관련 당사자들은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이산가족 문제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처럼 조심스럽고 치밀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6일 북측 명단이 공개돼 이산가족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치는데도 통일부 이산가족상담창구 등에는 충분한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관련자들의각성이 크게 요구된다.
  • 이산가족들 눈물겨운 사연

    북한적십자사가 16일 우리측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전달해온 8·15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명단이 공개되자 6·25 때 의용군으로 끌려간 형제와 조카의이름을 발견한 남한의 형과 동생,그리고 삼촌 등 가족들은 감격에 겨워 만날날을 기다리며 밤새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대한적십자사 당직실로 전화를 걸어 맏형 전덕찬(全悳燦·72)씨의 이름을확인한 영찬(永燦·55·서울 성북구 장위1동·동양고속 전무)씨는 50년 전코흘리개 시절에 봤던 큰 형님의 어렴풋한 얼굴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못했다. 영찬씨는 7남매 중 유독 큰 형님만 소식이 끊긴 것에 애를 태우다 돌아가신부모님이 평소에 “맏이 얼굴을 봐야만 두 눈을 고이 감을 수 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6·25 발발 직후인 50년 7월 의용군으로 끌려간 동생 주영훈씨(69)가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확인한 주영관씨(71·전 대한매일 논설워원·서울 마포구도화동)는 “죽기 전에 만나고 싶었는데 감개무량하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영관씨는 “아버지는 한국전쟁 발발 다음해인 51년 지병으로 돌아가셨지만,어머니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동생을 그리다 93년 9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면서 “다행히 형제 4명은 모두 서울에 살고 있어 동생이 서울에 오기만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 의용군으로 징집됐던 동생 임재혁씨(66)의 이름을 발견한 형 창혁씨(71·서울 양천구 목동)도 “동생이 죽은 줄만 알았는데 다시 만나게 되다니 꿈만 같다”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창혁씨는 “인민군이 서울에 진입한 바로 그날 이웃들로부터 ‘중학생이던 재혁이가 의용군으로 끌려갔다’는 말을 듣고 의용군이 모여 있다는 회화국민학교로 찾아갔지만 끝내 동생을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면서 7남매 중 셋째였던 동생과 생이별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창혁씨는 “전쟁이 끝난 뒤 동생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정부의 호적 정리방침에 따라 아버지께서 동사무소에 사망신고를 냈다”면서 “병상에 계신 91세의 노부(老父)께서도 죽은 줄 알고 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사실을아신다면 당장에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생 구재협씨(70)를 8·15 때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한 형 재락씨(충남서천군 시초면 초현리)는 “6·25 이듬해 여름 20살이었던 재협이가 동네에들어온 인민군으로부터 의용군 입대를 강요받아 전쟁터에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면서 “10여년 전 사망신고를 했으며, 이번에도 동생이 죽은 줄 알고상봉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재락씨는 “재협이와 헤어질 당시 부모님과 5남2녀가 모두 생존해 있었으나,지금은 차남인 나와 큰누나(85),막내(58)만 서울에 살고 있다”고 밝혔다. 의용군으로 징집됐던 박종섭씨(68)의 동생 종열씨(충북 청원군 강외면 서평리)는 “전쟁이 터지던 해 인민군들이 들이닥쳐 형님을 포함한 동네 청년 7명을 끌고 갔다”면서 “꿈을 꾸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종열씨는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전쟁터로 끌려가는 아들에게 저녁도지어 주지 못했다’며 평생 한을 품고 사셨다”면서 “어머니가 조금만 더사셨으면…”하며 눈물을 쏟았다. 김경운 송한수기자 kkwoon@. *북녘남편 5명의 애타는‘望婦歌’. 50여년 전헤어진 남쪽의 아내를 찾는 북쪽의 남편도 5명이나 됐다. 경기도 안양공업학교에서 음악교사를 지낸 신용대씨(81)는 서울 종로거리의여자옷 상점에서 일했던 아내 리숙인씨(79)와 아들 문제씨(50)를 찾고 있다. 전북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출신의 신씨는 헤어질 당시의 주소를 경기도 안양으로 써냈다.옛 지명으로 강원 울진군 원남면 매화리 661번지가 출생지이자 본적지인 최필순씨(77)는 아내 주정연씨(76)와 이름을 모르는 53세의 맏아들을 찾고 있다.아내와 헤어질 당시 최씨는 동국대에 다녔다. 전북 장수군 변암면 국포리 출생으로 전북 전주시 완산동이 본적지인 조용관씨(78)도 전주시 병원 간호사였던 아내 김부선씨(74)와 52살된 맏아들 경제씨를 찾고 있다.조씨는 헤어질 당시 전북 임실군 섬진강발전소 건설사업소노동자였다. 경북 안동군 풍산면 매곡동 미길리 출신의 리복연씨(일명 리승철·73)도 인천시 부평동에서 헤어진 아내 리춘자씨(72)와 장남 지걸(53)·차남 호걸씨(50)를 찾고 있다. 충북 중원군 양성면 능암리 출신 김희영(72)씨는 서울동대문구 이천상사에서 일하다 헤어진 아내 정춘자씨(72)와 아들 상교씨(53)를 애타게 찾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 경제사범 줄고 가정해체 가속

    지난해 경기불황이 진정국면으로 돌아서면서 국민경제 생활과 직결되는 민사,부동산경매,도산사건과 형사사건중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사범 등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지난해 전국 법원에는 98년보다 5.3% 늘어난 4만1,055건의 이혼소송이 접수돼 경제회복 이후에도 ‘가정해체’ 현상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법원행정처가 11일 펴낸 2000년판 ‘사법연감’에서 밝혀졌다. [경제회복 상황]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98년에 비해 0.8% 감소한 1,612만9,861건.이중 소송사건은 37.4%인 603만582건이었다. 특히 소송사건중 민사사건은 전년보다 16.4% 감소,346만7,710건이었으며 경매사건도 13.5% 줄어 경기불황으로 인한 가계파산 등이 현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IMF 사태가 엄습한 98년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사범은 전체 형사공판 피고인의 6.2%로 5대 형사사범중 4위에 올랐으나 지난해에는 점유율이 4.6%로 떨어지면서 주요 순위권 밖(7위)으로 밀려났다. [가속화되는 가정해체]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이혼소송은98년보다 5.3% 증가한 4만1,055건으로 하루평균 113건이었다. 쌍방이 합의,재판없이 하는 협의이혼 확인 사건은 12만6,500건으로 98년보다 2.4%나 증가했고 10년전에 비해서는 무려 159.8%나 폭증,가정해체 현상이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혼소송 쌍방의 나이별 분포는 30대(42.4%),20대(31.5%),40대(19.0%),50대(4.6%) 순으로 많았고 ‘황혼이혼’(60대 이상)이 0.6%에 달해 최근의 황혼이혼 증가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
  • [마음은 북녘 고향에](6)평남 성천 출신 이태흥 할아버지

    “별명은 ‘돌배’,야무졌던 북녘의 동생이 살아 있는지…” 이태흥(李泰興·70·인천시 부평구 산곡1동)씨는 4일 “평남 성천군 대곡면 대곡리 추피마을에 두고 온 막내 동생 태용(泰龍·62)이는 어릴 적 별명을부르면 나를 곧바로 알아볼 것”이라며 신음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님 보비(75)와 보옥씨(73),누이동생 보화(68)·보여씨(65)도 고향에 남았지만 나이가 많은 누님 둘은 살아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난다.하지만 어릴 적부터 똑똑했던 ‘돌배’가 누이동생 둘은 잘 보살피고있을 것이라고 되뇌인다. 이씨는 1946년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었다.일제 치하에서 대장장이 일로 어머니를 비롯,8남매를 부양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아버지가 44년부터 강원도이천군 음탄면 건자리 두메산골에 숨어 지내다 광복 이듬해에 어머니와 함께 장티푸스로 숨진 것이다. 이씨는 부모님을 여읜 슬픔이 채 가시기 전인 그해 2월 식솔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당장 생계가 걱정인데다 이불 보따리 등 이삿짐도 많아 ‘돌배’만은 두 매형에게 맡기고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며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고향 길은 험난했다.원산에 이르자 눈이 어른의 가슴 높이까지 쌓여 사경을 헤메다 간신히 트럭을 얻어탈 수 있었다.하지만 고향에 돌아온지 얼마 안돼 태용은 10세의 나이로 수백리 길을 찾아와 ‘과연 돌배’라는 소리를 들었다. 고향에 돌아온 형제는 돈을 벌기 위해 1년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48년 11월 흩어졌다.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곧 전쟁이 터져 50여년 동안 생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1·4후퇴 때 동생과 누이들의 얼굴도 못본 채 혼자 남으로 내려와 1남 4녀를 둔 이씨는 “고향 앞을 흐르는 대동강의 물결치는 모습이 아련하다”면서 “죽기 전에 동생과 누이,친척 어르신들이 어떻게 됐는지 소식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 송한수기자 onekor@
  • SBS 새 아침드라마 ‘사랑과 이별’ 수정役 김미희

    “처음 주연을 맡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감독님이 농담하시는 줄 알았어요.사실 지금도 실감이 안 나구요” 지난 3일부터 시작된 SBS 새 아침드라마 ‘사랑과 이별’(연출 손홍조,월∼금 오전 8시30분)의 주인공 ‘수정’ 역을 맡은 김미희(22)는 요즘 마냥 즐겁다.일주일에 사나흘씩 촬영이 있기 때문에 몸은 지치지만 데뷔 3년 만에맡은 첫 주연이라 마음은 날아간다. 98년 SBS 공채 8기로 출발해 ‘포옹’,‘왕룽의 대지’,‘사랑의 전설’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왕룽의 대지’에서 소지섭의 상대역으로 20회 가량 출연한 것이 가장 큰 역이었다.오히려 김미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존슨&존슨’ 광고에서 ‘깨끗해요’라며 방긋 웃던 애띤 얼굴로 기억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수정은 맑고 청순한 대학 4학년생으로 방학을 맞아 고모의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7살짜리 딸을 둔 유부남 최재성을 점점 사랑하게 된다.“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아버지를 새장가 보내려 애쓰는 엉뚱한 측면도 있다”고 김미희는 덧붙였다. “아직 연기는 멀었는데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된 것 같아요”라고김미희는 겸손하게 말한다.극중 수정의 성격과 달리 ‘조용하고 낯을 많이가리는 성격’ 때문에 말수는 적지만 연기 욕심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자연스러운 연기가 되지 않아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면서 “몇 년 뒤에는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고 웃으며 뒤돌아볼 수 있도록 연기에 매달릴생각”이라고 야무지게 말했다. 당분간은 지금처럼 맑고 순수한 이미지를 고수할 생각이다.차차 악역이건,바보역이건 개성이 뚜렷한 역을 맡아봤으면 하는 것이 김미희의 바람이다.“영화에 출연할 수 있다면 ‘텔 미 썸씽’의 심은하 선배처럼 묘한 매력을 풍기는 역을 해보고 싶다”고 욕심을 보이기도 했다. 스물 두 해를 살면서 아직 제대로 연애 한번 못해봤다는 김미희.능력있고자상하고 자기만 좋아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사랑에 빠져보고 싶단다.그렇지만 “결혼은 ‘연기 잘하는 탤런트’라는 평가를 받고 난 뒤에나 고려해보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장택동기자 taecks@
  • 남북 적십자회담/ 대상 선정 어떻게

    8·15 이산가족 선정방법 및 규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선정방법/ 지난달 28일 대한적십자사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접수를 마감한 결과 지난해 9월 이후 2만5,000여명이 신청했다.대한적십자사는 7월3일 컴퓨터 추첨을 통해 대상자를 선정한다. 적십자사는 이 가운데 북한에 직계가족이 있는 70세 이상의 고령 1세대에게우선권을 준다.이어 나이와 출신지역,이산가족의 촌수,방북신청서 제출 횟수등을 종합해 선정한다. 80세 이상,70∼79세,60∼69세 등 나이에 따라 가중치가 부과되며,실향민의출신지역 인구비율도 고려된다.부부와 부모,자녀 등 직계가족을 찾는 사람에게도 우선권이 돌아간다. 88년 남북이산가족찾기,90년 민족대교류,92년 고령자 이산가족 고향방문,98년 이후 이산가족 정보통합센터 신청자를 대상으로 신청 횟수와 대기기간에따라 가중치를 준다. 적십자사는 일단 방문단 인원의 2배수인 200명을 선정,북측에 통보할 예정이다. 북한 인민보안성이 통보받은 남측 이산가족의 북측 상봉대상자의 생사 여부와 상봉 가능성을 확인한 뒤우리측에 결과를 통보하면 적십자사가 방북단을최종 선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는 데 7월 한달이 꼬박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산가족은 몇명/ 현재 정부가 추정하고 있는 남한 거주 이산가족은 이산 2~3세대를 포함해 766만7,000여명. 출신도별로는 황해도가 191만6,000여명으로 가장 많다. 이중 52세 이상의 이산가족 1세대는 123만여명으로 추정된다. 60세 이상을 나이별로 보면 ●80세 이상 6만3,000여명 ●75~79세 7만9,000여명 ●70~74세 12만 1,000여명 ●65~69세 17만 6,000여명 ●60~64세 24만8,000여명이다. 이도운기자 dawn@
  • 올 수영복 ‘하이레그 비키니’ 열풍

    비키니가 안되면 ‘탱키니’라도… 장마가 끝나면 본격 피서철이 시작된다.피서철 패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수영복.올해는 유난히 ‘탱키니’(탱크탑+비키니)나 랩스커트가 많이 나와여성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한다. 유명수영복을 단돈 10원에 파는 등 업체와 백화점들의 발빠른 수영복 특별행사도 일제히 시작됐다. ◆올 여름 유행경향은/ 여성적인 라인을 강조하되,발랄함을 곁들인 스타일이강세라고 ‘발렌시아가’ 한희주 디자인실장은 소개한다.하와이풍의 큰 꽃무늬나 동물무늬,큐빅이나 비즈로 장식한 대담한 스타일이 많이 나와 있다.유행 색상은 파스텔계열.펄을 가미한 사이버풍 수영복도 인기다. ◆비키니가 부담스럽다면 탱키니로/ 탱키니는 일단 비키니보다 ‘가려지는’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한결 경쾌하고 젊은 분위기를연출한다.랩스커트를 겹쳐 입으면 로맨틱한 글래머룩이나 히피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몸매에 자신있는 것도 좋지만 실내수영장에서의 비키니는 궁합이별로라고 패션전문가들은 말한다. ◆체형에 맞는 수영복 고르는 법/ 키가 작고 뚱뚱한 사람은 찬색 계열이나 장식이 많이 달린 스타일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키가 작고 마른 사람은파스텔 계열의 색상이나 줄무늬,혹은 잔무늬가 들어간 스타일이 어울린다.허벅지 끝부분까지 대담하게 파인 하이레그 스타일도 키를 커보이게 한다.키가크고 뚱뚱한 사람도 장식이 많거나 두꺼운 원단은 피하는 것이 낫다.목선이파인 V형 스타일이 좋다.키가 크고 마른 사람은 따뜻한 색상이나 가로무늬,밝은 꽃무늬를 선택하는 것이 풍성해 보인다.비키니에 랩스커트를 걸치기에좋은 체형이다. ◆유명수영복을 10원에/ 뉴코아백화점은 24일까지 여름정기세일에 들어가면서니나리찌 등 유명수영복을 30% 할인 판매한다.5일에는 6층 스포츠매장에서수영복 100매를 10원에 판매하는 ‘땡그랑 한푼’ 행사를 갖는다.킴스클럽은이사도라던컨 수영복을 9,000원에(아동복은 5,000원),수경을 3,800원에 판다. 신세계백화점은 본점 2층에 수영복 전문매장을 오픈했다.8월31일까지 한시운영되며 아레나 레노마 닥스 발렌시아가 오쪼 로베르타등 8개 유명수영복을 할인 판매한다.경방필백화점은 1일과 2일 오후 1시부터 4층 수영복 특설매장에서 ‘사이버 인간 마네킹쇼’를 개최한다.인간 마네킹들이 나와 다양한 수영복을 선보인다. 갤러리아도 패션관 5층에 수영복 특설매장을 설치,이월상품은 물론 신상품을 모아서 ‘수영복 페스티벌’을 갖고 있다.특히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백화점들의 정기세일 행사에는 ‘수영복 특별행사’가 감초처럼 끼어있다. ◆수영복 보관법/ 선탠오일은 수영복의 고무실을 상하게 하므로 직접 닿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젖은 수영복을 비닐봉지에 담을 경우 열이 나서 변색되기 쉬우므로 타월에 싸는게 좋다. 그늘에서 말리는 것은 기본.바닷물에 오래 있었다면 물에 식초를 두세방울넣고 헹궈야 소금기를 뺄수 있다.비틀어 짜지 말고 타월로 감싸 두드리는게변형을 막는다. 안미현기자 hyun@
  • 콩쉬엘로의 회고록 ‘장미의 기억’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나는 내 장미에게 책임이 있다’생 텍쥐페리의 대표작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다.장미는 작가의 부인 콩쉬엘로를 형상화한 것. 생텍쥐페리 탄생 100주년(6월29일)에 맞춰 콩쉬엘로의 회고록 ‘장미의 기억’(창해)이 나왔다.지난 79년 사망한 그녀의 가방에 들어 있던 자필원고가 20년만에 빛을 봐 지난 4월 프랑스에서 첫 출간된 지 2개월 만이다.생텍쥐페리가 조종사로 2차대전에 참전해 44년 실종될 때까지 13년 동안 그와 함께한 애절한 사랑의 기억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콩쉬엘로가 30살의 미망인이던 193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파티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장문의 러브레터와 달콤한 행복.그러나 그들의 삶은 이별과 재회의 연속이었다.잦은 야간비행과 사고,간호하며 가슴 졸이던 시간들,그의 배신,그녀의 방황,그리고 화해. 생텍쥐페리는 자유롭게 살려는 욕망이 강했다.그러나 타인에게 의지하려는또 다른 욕망과 충돌할 때면 “활짝 핀 당신을 보고 싶소”라며 그녀에게 돌아왔다.콩쉬엘로는 “당신과 같이 있을 수도 없고,당신 없이는 살 수 없는”,별들 사이에 사는 이 남자를 어느 누구도 붙잡을 수 없음을 깨달으며 포용력으로 감싼다.김선겸 옮김.값 9,000원. 김주혁기자 jhkm@
  • [50돌에 되돌아 본 6.25](5.끝)큰변화 겪은 대중가요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저 하늘 저산 아래 아득한 천리…생시에 가지못할 한많은 운명이라면/꿈에라도 보내다오’(꿈에 본 내고향)‘목을 놓아 불러봤다/찾어를 봤다/금순아 어데로 가고/길을 잃고 헤매었드냐’(굳세어라 금순아) 전쟁으로 인해 우리 대중가요는 정서적 자양분이 풍족해지는 역설을 경험했다.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가거라 삼팔선)이라고 분단현실을 ‘저주’하고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단장의 미아리고개) ‘님’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두고온 산천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이 풀어헤친 ‘꿈에 본 대동강’‘한많은대동강’ 등이 많은 실향민의 가슴을 적셨고 전란을 피해 궁핍한 삶을 연명하던 피난지 부산과 기차를 통해 민족의 삶을 연결하던 대전을 주제로 한 노래들도 많이 불려졌다.‘경상도 아가씨’‘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물론 이 와중에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아내의 노래)이고 ‘장부의 꿈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전우야 잘 있거라)라고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눌 것을 강요하기도 했지만 70년대 냉전체제가 와해되자 잊혀졌다. 이 시기에 형식미를 굳힌 트로트가 50년이 지난 지금 테크노와 힙합·댄스가 범람하는 가운데도 ‘끄떡’없이 불려지고 있는 점은 그만큼 분단의 상처가 깊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외세를 불러들인 전쟁은 트로트 일색의 우리 가요에 팝송과 재즈·솔·로큰롤을 접목시키는 역할을 했다. 껌과 초콜릿·코카콜라로 상징되는 기지촌 문화는 당시 보급되기 시작한 라디오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우리 사회에 다층적인 영향을 끼쳤다.흰저고리에 검정고무신이 미니 스커트와 원피스로 바뀌었고 ‘살롱’에서 로큰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대단한 문화적 소양으로 취급하던 때이기도 했다. 핍진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갈망을 담은 ‘아리조나 카우보이’가 유행하고‘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차차차)라고 부추기던 시절도 있었다. 양쪽 모두 전쟁세대가 인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한 80년대 전쟁은이제분단의 극복이란 과제로 심화됐다.‘서울에서 평양까지’가 대학가를중심으로 불려지고 실향민 2세의 통일에 대한 정서적 감응을 담은 강산에의‘라구요’가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진전이라 할 만하다.‘주먹밥’ 등 전쟁때의 궁핍한 생활단면이 ‘이벤트’로,‘상품’으로 팔리기도 한다. 영화도 ‘돌아오지 않는 해병’류의 반공선전에서 탈피,분단의 의미를 되새기는 ‘남부군’류를 거쳐 구체적으로 남과 북이 만나는 상황을 상정하는 ‘쉬리’‘공동경비구역’으로 발전해 왔다. 전쟁은 분명 화약냄새에 대한 ‘경계의식’으로 존재하지만 이제 훈풍은 불고 있다.북한에서 유행하는 ‘휘파람’‘반갑습니다’를 국내 가수들이 취입하기도 한다.통일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화두가 되는 시대를 우리는맞고 있는 셈이다. 임병선기자 bsnim@
  • [50돌에 되돌아 본 6.25](4)실향민의 밝아지는 북한觀

    “여보,왜 그래”“배가 너무 아파서…” 1950년 12월5일 1·4후퇴 당시 가족들과 정신없이 피란 길에 올랐던 당시 28세의 배준양(裵俊陽)은 만삭의 아내가 산기(産氣)에 고통스러워하자 하는수 없이 황해도 운율군 집으로 발걸음을 되돌렸다. 아내는 다행히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하지만 갓난아기를 안고 3·8선을 넘는 건 무리였다.눈물을 머금고 낳은 지 사흘된 아들과 아내를 남겨둔 채혼자서라도 남행길에 올라야 했다.공산당이 너무 싫어 구월산 유격대에 들어가 인민군과 싸운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50년 세월.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줄은 몰랐다.그때는 금세라도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올해로 78세인 배준양 할아버지는 요즘 잠을제대로 못이룬다.북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을 죽기 전에 볼지도 모른다는 설렘과 흥분 때문이다. 배할아버지의 매년 6월은 사실 그리움과 회한,그런가 하면 분노의 계절이었다.북한 공산당의 전쟁 도발로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했다는 생각에 6·25기념일이 가까이 오면 화병까지 도질 정도였다. 그러나 6·15남북공동선언으로 이산가족 상봉의 길이 열린 올 6월은 월남이후 가장 꿈에 부푼 시간인 것 같다.광복절 1차 상봉자가 100여명밖에 안돼 대상자에 포함될 확률은 크지 않지만,그래도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배할아버지는 지난 22일 서울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본사에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접수했다. 골수 반공주의자였던 배할아버지의 최근 대북관이 궁금했다.“솔직히 나쁜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그렇지만 통일을 위해선 참아야죠.북한이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준다는데 이젠 마음을 열어야죠” 북한의 약속이 미덥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이번엔 예전에 비해 신뢰가간다”고 말한다. 6·25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 가운데 한명이자 반공주의자인 배할아버지의이같은 시각 전환은 남북 화해에 밝은 햇살을 드리우기에 충분하다.실제 이날 적십자사를 찾은 실향민들 대부분이 북한의 태도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실향민들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TV를 통해 남한 실향민들이 우는 것을 봤다”고 말한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원충택(元忠澤·69) 할아버지는 김국방위원장의 말을 듣고 ‘아 저 사람이 나름대로 이산가족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구나.남북 관계를 연구 분석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했던 김민하(金玟河)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최근 한 토론회에서 말한 내용도 실향민들의 우호적인 정서를 반영한다.“두 사람이 싸웠다고 합시다.화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과거의일은 다 잊고 서로 이해하고 새 출발하자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옛날에 누가 잘했느니,못했느니를 따지고 들면 화해가 되겠습니까” 물론 실향민들이 무작정 과거를 덮어버리자는 것은 아니다.그러기엔 상처가 너무 크다.실향민들은 용서하고 화해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또언젠가는 과거사를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한 60대 실향민은 정부와 정치권에 이렇게 뼈 있는 소리를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남북관계를 끌고 가는지 궁금합니다.우선 화해하고교류하는 게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훗날을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언젠가 서로의 신뢰가 쌓이고 통일 분위기가 높아지면 과거 6·25전쟁으로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 대한 배상 문제를 거론해야 합니다.그래야 실향민들의 응어리가 풀릴 것입니다.국민들의 피해사실을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병행돼야 합니다.정부가든든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줘야 실향민들은 정부를 전폭적으로 믿고 따를 것입니다”김상연기자 carlos@
  • ‘또다른 생이별’韓·美 이산가족

    영주권을 신청한 한국인에 대한 부당한 방문비자 거부 행태가 워싱턴의 한인연합회에 의해 지적됐다.워싱턴 한인연합회(회장 송호경)는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주한 미대사관이 영주권 신청자들에 부당하게 미국 방문비자를 ‘거의 자동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며 미 의회 차원의 대응책을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미 정부에 영주권을 신청한 사람은 10∼15년이 걸리는 발급시까지 ‘특수하거나 긴급한 사유’가 아닌 한 미국 방문비자가 발급되지 않고 있다.영주권발급 이전에 방문비자를 받아 미국에 입국하면 그대로 불법체류할 가능성이크다는 주한 미대사관의 자의적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 미국 입국을 위해서 갖가지 편법을 동원하거나 거짓 이유를붙여 방문비자를 받고 있다. A씨는 97년 취업차 미국에 입국해 일하다 미국에 살 결심으로 지난해 부모이름과 함께 영주권을 신청했다.그런데 올초 한국에 있던 부모가 A씨를 만나려 방문비자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이들이 다시 결합하려면 영주권 발급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또 B씨는 취업차 89년 미국에 온 부모를 따라와 살다92년 영주권을 신청했다.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한국에 취업길이 열려94년 귀국했지만 다시는 미국에 입국하지 못하고 있다.아무리 직장일로 한국에 돌아오겠다는 소명자료를 제출해도 거들떠 보지조차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 영주권 신청자들은 영주권 신청시에는 방문비자가 안나오는 것이 법규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그러나 미 이민법에는 직업,재산,학력,가족관계 등 관련자료를 첨부,미국에 불법체류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방문비자를 내주도록 돼 있으며 실제로 이웃 일본이나 유럽국가에서는적법하게 적용돼 문제가 없다. 그러나 주한 미대사관만 유독 영주권 신청자에 대한 방문비자 ‘자동거부’관행을 계속하고 있으며,비자거부율 8% 가운데 대부분이 이런 사유라고 워싱턴 한인회는 주장한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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