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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이산상봉/ 귀환 방문단 밤새 얘기꽃

    “평생의 소원을 풀었습니다.이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핏줄을 만났다는 기쁨과 흥분을 뒤로 한채 집으로 돌아온 이산가족들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눈에 담으려던 혈육의 모습을 떠올리며 하얗게 밤을 지샜다.상봉 당시를 되새기며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는가 하면,어떤 가족들은 허탈함과 사무쳐오는 그리움을 추스르지 못해 식욕부진,불안,우울증 등 상봉 후유증을 겪고 있다.장엄한한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린 18일 밤은 이산가족들에게 또다른 만남을기약하는 시간이었다. *부모·자식. ■15일 서울에서 형님 이종필씨(69)를 만난 동생 종덕씨(63·충남 아산시 탕정면 명암1구)는 “치매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가형님을 알아보셨다”며 기적같은 상봉 순간을 상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99세로 이산가족 상봉자중 최고령인 조원호 할머니는 20여년간 치매를 앓아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나 상봉 첫날 아들 종필씨를 알아보는 기적과도 같은 상봉을 연출했다. 헤어지면서 “통일의 그날까지 몸 건강히 잘 있으라”는 형님이 말에 눈물만 나오더라는 종덕씨는 “어머니가 헤어지는 순간에도 형님을 알아보시며 손을 놓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북쪽의 아들 강영원씨(66)를 만나고 온 박보배 할머니(90·전주시인후동)는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대학교수로 잘 살고 있어 한시름 덜었다”며 “아들이 며느리가 직접 지은 한복 두벌과 며느리와손주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을 주었는데 평생 제일 맘에 드는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강씨의 남쪽 조카인 강석기씨(39)는 “큰아버지가남쪽 가족들의 사진이 든 앨범을 소중히 가지고 가면서 ‘우리가 죽더라도 너희들은 꼭 통일을 이룩해 서로 왕래하며 지내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산가족 방문단 의료진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한 고 장기려 박사의 아들 장가용(張家鏞·65) 서울대 의대 교수는 “현대적 도시로 변해버린 평양에서 만난 북한사람들로부터 ‘물자는 풍족하지 못해도열심히 사는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장교수는 “회색빛고층아파트가 즐비하고 대규모 지하철이 다니는가 하면 대동강 폭도3배로 넓어지는 등 완전히 현대적인 도시가 돼 옛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고 평양의 오늘을 전했다. *부부. □50년전 소식이 끊긴 남편 이복연씨(73)를 기다리면서 평생 수절하며 살아온 이춘자씨(72·안동시 동부동)는 “떠나는 남편에게 ‘건강하십시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이제는 50이 넘은 아이들에게도아버지가 살아계신 모습을 보여줘 여한이 없고 막상 다시 헤어지자니너무 섭섭했다”고 울먹였다. 심장병과 고혈압으로 고생하고 있는 이씨는 남편과 헤어진 뒤 곧바로 아들 이지걸씨(53)의 경기도 일산집으로 가 안정을 취했다. □상봉을 거부하던 아내와의 극적인 해후로 화제가 됐던 북한의 영화촬영감독 하경씨(74)의 남쪽가족들은 짧은 만남 뒤의 긴 이별을 괴로워했다. 17일 남편 하씨와 만난 아내 김옥진씨(78·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는그날 밤 곧바로 성남으로 내려왔으나 18일에는 애끊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듯 하루종일 집을 비웠다. 장남 문기씨(54)는 “통일되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은 했지만 그 약속을지킬 수 있을지 착잡한 마음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형제·자매. ■서울을 찾은 언니 김옥배씨(62·평양음대 무용과 교수)를 어머니홍길순씨(88)와 함께 상봉했던 숙배씨는 “살아 있는줄 몰랐을땐 가끔 그립기만 했는데 이제 헤어지고 나서 보고 싶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어머니는 가슴이 아프다며 식사도 안하시고 어제는 혼절까지 하셨다”며 “헤어지는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고말했다. 김씨는 이어 “언니는 해방 직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서를 53년째간직하며 힘들 때마다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내용의 아버지 유서를 보고 또 봤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 정창모씨(68)의 여동생 춘희씨(61·경기도군포시 수리동)는 “오빠는 매우 당당하고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었다”며 “가족을 버리고 월북한 이유와 북한에서의 생활,앞으로의 계획등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춘희씨는 북한에서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고 있는 오빠로부터 귀중한그림을 선물받았다. 4점은 북한에서 직접 가져왔고,4점은 약 40분간에 걸쳐 그린 수묵화였으며,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조국 만세’라는글도 선물받았다.“오빠에게 한복 두벌과 양복을 선물했다”고 밝힌춘희씨는 “그러나 시간이 없어 충분히 선물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기타. □남측 이산가족들의 3박4일간 평양방문에 남북적십자 교류전문위원자격으로 동행했다 돌아온 소설가 이호철(李浩哲·68)씨는 50년만의혈육의 상봉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감동이 가시지 않은 듯 흥분을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북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연작이든 단편이든 반드시소설로 작품화하겠다”고 밝혔다. □평양에서 가족을 만나지 못한채 돌아온 이종백씨(69·서울 양천구신정동)는 큰 소리로 엉엉 울면서 김포공항 입국장을 빠져 나와 보는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씨는 “바로 아래 동생 종윤(60)이가 아파서 만나지 못하고 생전 얼굴도 모르던 동생 종덕(53)이만 보고 왔는데 주위 친지들의 소식을 잘 알지 못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통곡했다.그는 또 “종윤이를 못 만나게해 북에 눌러앉으려다 주위의 설득으로 참고 왔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김재순기자 fi
  • 남북이산상봉/ 취재기자 방담

    역사적인 8·15 이산가족 상봉은 세계적인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감히 연출하지 못할 최고의 ‘휴먼드라마’였다.부둥켜안은 이산가족들은 떨어질 줄 몰랐고 가슴은 뜨겁게 하나가 돼 통일의 길이 멀지 않음을 느끼게 했다.3박4일간의 상봉장면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지켜본 취재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감격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이번 상봉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15일 첫날 단체상봉이었습니다.북측 방문단의 상봉장소인 코엑스 3층 컨벤션홀은 상봉단 100명과 그 가족 500명 등 모두 600명이 쏟아내는 혈육의 정으로 온 국민의 눈물샘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남측 방문단의 고려호텔 단체상봉은 보다 리얼했습니다.일부 이산가족은 실신하기도 했죠.워커힐호텔프레스센터에서 멀티큐브로 이를 지켜본 취재기자들도 연신 눈가를훔쳤습니다. ■이 와중에 간간히 웃음거리도 있었습니다.단체상봉 순간 한 기자가북측에서 온 할머니에게 “어떻게 만났습니까?”라고 묻자 “어떻게만나긴 어떻게 만나. 여기서 만났지”라고 대답,그 기자를 무색케 했죠.순간프레스센터는 웃음바다가 됐습니다.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라고나 할까요. ■얘깃거리는 많습니다.또 다른 기자가 북측 이산가족에게 “만나니기분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저리 좀 비켜.우리끼리 얘기 좀 하게”라며 귀찮다는 표정이었습니다.인터뷰에 응하는 것보다 가족상봉이 더 중요했던 것이죠. ■평양을 방문한 남측 상봉단은 북측 가족들이 정치적인 발언을 적잖게 해 당황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북측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는모습이 역력했습니다.이몽섭씨(75·경기 안산시 초지동)의 딸 도순씨(55)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준비해주신 선물입니다”며 아버지에게선물을 건넸고 최성록씨(79·대구 서구 비산동)의 딸 영자씨(53)는“50년만에 만난 것은 모두 장군님의 덕분입니다.통일되는 그날을 위해서 열심히 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남과 북 두 부인,기구한 운명’의 주인공 이선행씨(81·서울 중랑구 망우동)는 북한 TV가 취재를 하자 아들 형제에게 “아버지없이자식을 훌륭하게 키워준 것은 주석님이다.주석님 만세를 부르고 싶은심정이다. 나는 나대로 남에서 조국에 충성하고 너는 북에서 조국에충성해라”고 당부했습니다.서울에 온 북측 방문단도 예외없이 기자들이 취재를 하면 가만히 있다가도 느닷없이 정치적 발언을 했습니다. ■서울에 온 평양 상봉단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하경씨는 개별상봉때 세 아들이 큰 절을 하려 하자 손을 내저으며 “먼저 장군님께 절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기자들이 앞에 있으니 50년만에소원을 풀겠다”며 ‘김일성 주석님 만세’를 세번이나 외쳐 취재기자들이 쓴웃음을 지었죠. ■그러나 이런 것들은 남과 북의 상이한 체제에서 오는 문화 차이로자주 만나면서 극복되지 않겠느냐는 게 중론입니다. ■서울과 평양 상봉단의 현격한 ‘감성지수’도 화제였습니다.북측방문단 100명은 대부분 북한사회에서 ‘힘깨나 쓰는’ 계층인 반면남측 방문단은 자율추첨에 의한 탓에 그야말로 각계각층에서 골고루구성됐죠.여하튼 북측 방문단의 감정 절제력은 대단했습니다. ■지난 16일에는 박기륜(朴基崙)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이 오전 브리핑에서 “서울 공연을 위해 방한하는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서해상을우회하는 항로가 아닌 휴전선 상공을 통과하는 직항로를 이용한다”는 반가운 오보(?)를 발표한 일도 있었습니다.자세히 알아보니 이 해프닝은 브리핑 직전 박 총장 등 우리측 관계자들이 북측 수행단 창구를 통해 들어온 소식 중 “육로영공(陸路領空)을 통하는 직항로”라는 문구를 잘못 해석하는 바람에 벌어졌다는군요.브리핑 후 북측이“육로영공을 통한다는 것은 휴전선 통과가 아니라 평양과 서울을 ‘〈’자 혹은 ‘ㄷ’자로 잇는 것”이라는 연락을 해와 부랴부랴 브리핑 내용을 취소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북측 상봉단 가족들의 뒷얘기를 알아보겠습니다.이들이머문 서울 올림픽파크텔 객실은 사흘 밤 내내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잠들지 못한 사람들의 심정은 매일 달랐어요.상봉 하루 전인 14일 밤이 특히 길었습니다.“혹시 못 오는 것은 아닐까,얼굴을알아 볼 수 있을까,무슨 말을 먼저 할까…”고민은 꼬리를 물고 계속됐지요.15일 밤은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였습니다.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호텔측에 우황청심환을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밤새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취재가 점점 힘들어 지더군요.“내 마음 잘 알지 않느냐,이제 그만하자”는 등수심이 가득한 노인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렵더군요. ■가족들의 식사량도 분위기에 따라 달랐습니다.만나기 전에는 떨려서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상봉 후에는 “아들 만나느라 힘을 너무 뺐어,역시 시장이 반찬이야”라며 밥그릇을 싹싹 비우더라구요.이별을앞두고서는 제대로 수저를 드는 사람이 없었어요. ■이별을 아쉬워 한 가족들을 아이디어도 많이 짜냈습니다.숫제 휴대전화를 북측 가족에게 건네주기도 했습니다.때문에 공항으로 가면서계속 통화를 할 수 있었죠. ■북측 방문단에 ‘스타’가 많은 점은 향후 남북 교류에 긍정적인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원로 국어학자 류렬씨,계관시인오영재씨, 남북 합작영화를 찍고 싶다는 리래성씨 등은 진한 인상을남긴 만큼 앞으로 남북간 문화교류의 선봉장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외신기자들은 상봉의 드라마를 ‘눈물 전쟁’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냉전이라는 ‘이념 전쟁’의 종말에 따라 그동안 정치적으로 희생되고 붕괴된 가족사,민족사가 복원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필연적 ‘충격’이라는 의미겠지요. ■취재 과정에서 느낀 아쉬움은 남북 상봉단이 최소한의 통제선 안에서만 3박4일의 체류일정을 보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앞으로는 상봉과 상호방문의 취지를 살린다는 측면에서 ‘통제는 최소,자율은 최대’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많은 이산가족들은 “집에 데려와 따뜻한 밥 한그릇 먹이는 것이 소원”이라고 되풀이했습니다.또 북측 방문단은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에 술 한잔 올리지 못하는 불효자를 용서해 달라”면서 슬피 울기도 했습니다.50년만에 만난 부모형제가 한 이불 속에서자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못 나눈다는 것은 정말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대표적인 사례가 18일 새벽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극적으로 이뤄진 량한상씨와 노모 김애란씨의 상봉이죠. ■이산가족 교환방문사업을 계속하려면 비용절감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는 지적입니다.서해 직항로보다는 판문점을 통한 육로를 이용하고 ‘일정은 짧게,만남은 길게’ 방식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1,500여명의 취재진이 북적댄 워커힐호텔은 나름대로 준비를 잘했다는 평가입니다.미비점이 발견되면 지체없이 보완하는 기민성도 갖췄습니다.반면 상봉단 가족들이 머문 올림픽파크텔은 준비상태가 수준 이하여서 상봉가족과 취재진들이 대단한 곤욕을 치렀습니다. ◆방담기자 명단. ◇한종태차장,진경호 오일만 주현진기자(정치팀)◇조현석(경제팀)◇김재천(디지털팀)◇오승호차장,전영우 이창구 안동환 이송하 조태성 윤창수기자(사회팀)◇김용수 심재억(전국팀)◇황수정 이순녀(문화팀)◇장택동(특집기획팀)◇류길상(체육팀)◇박록삼기자(행정뉴스팀)
  • 남북이산상봉/ 서울 상봉 이모저모

    서울과 평양에서의 3박4일은 반세기 동안의 ‘긴 이별’에 비해 너무나 ‘짧은 만남’이었다.남과 북으로의 출발을 하루 앞둔 17일 이산가족들은 하룻밤만 자고 나면 또 다시 ‘생이별’을 해야하는 기막힌 현실에 울고 또 울었다.남북이 각각 주최한 환송 만찬에 참석했다숙소로 돌아온 이들은 회한과 상념에 젖어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시피 했다. ◆박재규 통일부장관이 17일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마련한 만찬에는 여야 정치인을 포함,300여명이 참석,성황을 이뤘다. 박 장관은 만찬사에서 “짧은 시간이었던 만큼 헤어짐은 더욱 애틋해 잡았던 손을 차마 놓치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접고 다시 만날그 날을 기약하자”며 북측 상봉단과 남측 참석자들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남한의 막내딸 최순애씨(48)씨가 선물한 한복을 입고 나온 류미영북측 단장도 답사에서 “서울에서 보낸 며칠은 격정 속에 흘러간 나날이었다”고 회고한 뒤 “남측의 배려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만찬장에는 정계 뿐 아니라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방북했던강성모 린나이코리아 회장 등 재계 인사와 문화·체육·언론계 대표들이 참석했다.경기대 교수인 전 방송인 차인태씨,전 영화배우 김보애씨,그룹 ‘코리아나’의 여성멤버 홍화자씨 등 낯익은 인사들도 포함됐다. 미국 국적의 인요한(41·본명 존 린튼)연세대 외국인진료소장도 눈길을 끌었다.인씨는 형 세반씨(50·스티브 린튼)와 함께 북한의 결핵 퇴치사업을 펼치고 있는 유진벨 재단 활동으로 북한에도 잘 알려져있다. ◆하얏트호텔측은 북측 상봉단이 고령임을 감안,북어와 더덕구이,갈비와 전복구이,수정과 등 부드러운 음식들로 상을 차렸다. 또 한 테이블에 한명씩 배치하던 서비스 요원을 3명씩 배치해 몸이불편한 상봉단들을 부축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했다. ◆약 2시간 동안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만찬은 북측 상봉단과 남측 참석자들간의 뜨거운 악수와 함께 “또 만납시다”“건강하십시오”라는 등의 덕담으로 끝맺었다. ◆서울 체류 3일째인 이날 남북 이산가족들은 “마지막이라는 말은하지 말자”며 짧은 재회의 아쉬움 속에 다시 만날 희망의 날을 기약했다. 상봉 마지막 날인 탓에 “한 번이라도 더,1분이라도 더 만나게 해 달라” “부모님 산소라도 찾게 해 달라” “어머니와 하룻밤이라도 자게 해 달라”는 안타까운 주문도 잇따랐다. ◆북에서 온 김용호씨(72)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다”면서 “면회소가 생기면 아직 못본 조카들도 만날 것”이라며 다시 만날 날을 확신했다. 김씨를 비롯한 이산가족들은 “연락사무소 설치나 이산가족의 정례적인 만남도 중요하지만 우선 전화 통화와 편지의 상시 교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덕씨(64)는 “형님과 얘기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면서 “하룻밤이라도 같이 자면서 밤 새도록 얘기하고,부모님 묘소에 성묘라도한 번 같이 갔어야 하는데…”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북한 평양무용대학 교수이자 최초의 여성박사 김옥배씨(68·여)는“어머니 품에서 잠들고 싶어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면서 “어머니께 밥을 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북측 이산가족 김인수씨(68)는 이날 대한적십자사측에 요청,6·25때 헤어졌던 선린상업중학교 시절단짝 김학모(70·서울 중랑구 망우동)·이창영씨(70·서울 은평구 응암동)를 50년만에 극적으로 만났다.까까머리 중·고교시절의 삼총사가 허연 백발이 돼 재회한 것이다. 김학모씨는 16일 오후 고교 총동창회로부터 50년 전 행방불명된 뒤로 ‘죽었다’는 소문만 나돌았던 친구 인수가 북에서 내려와 자신을애타게 보고 싶어 한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김학모씨는 중학교 5학년 동안 내내 같은 반이었던 삼총사 중 나머지 한명인 이창영씨에게 연락,이날 오전 김인수씨가 머물고 있는 서울 워커힐호텔을 찾았다. ◆신정현씨(86·서울 은평구 불광동)는 이날 창경궁 관람을 마치고나오던 북한의 ‘계관시인’ 오영재씨(64)에게 북한에서 문인으로 활약했다는 오빠 구현씨(89)의 생사를 물었으나 타계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망연자실,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신씨는 46년 충북으로 시집간 뒤 고교 교사였던 오빠와 소식이 끊겼으며 10년전 우연히 오빠가 김일성대 언어문학연구부 교수 등을 역임한 문인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특별취재단
  • [사설] 눈물을 씻어 주려면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반세기 만에 혈육을 만나는 장면은 슬프다 못해 처절했다.50년 만에 상봉한 남녘의 노모를 등에 업고 애써 미소를짓는 북녘 아들의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을 떠올려 보라.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풀어놓은 애절한 가족사는 분단과 냉전적 이념 대결이 빚어낸 민족 통한의 결정체다.3박4일간의 짧은 상봉이 오늘부터 다시 재회의 기약도 없는 긴 이별로 이어지면서 온겨레는 분단이야말로 민족 최대의 비극임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이산가족들의 감격과 한이 뒤섞인 만남과 헤어짐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남북관계의 최우선 현안임을 재확인한다.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선 일회성이 아닌,일상적인 만남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 이외에는 다른 우회로가 없다.남북교환방문단100명속에 낀 사람들은 그나마 ‘천운’이다. 1,000만이 넘는 이산가족들은 어찌할 것인가.남북 당국은 장관급회담이든 후속 적십자회담이든 하루 속히 만나 이산가족의 제도적 해결방안을 합의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상봉이벤트가 온겨레의 눈물주머니를 터뜨렸듯이 전체이산가족들을 대상으로 상봉의 물꼬를 계속 터야 한다. 일단 정례적인 교환 방문은 9,10월의 2차·3차 상봉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야 하고,방문인원도 대폭 늘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시범사업 성격인 방문단 교환만으로 전체 이산가족의한을 풀기는 어렵다고 본다.남쪽에 사는 이산가족 1세대만 해도 123만명으로 추산되고 있기 때문이다.한달에 100명씩이 만나도 모두 상봉하려면 1,000년이 걸린다.따라서 남북 당국은 궁극적으로 자유로운왕래와 재결합을 목표로 일단 상시 면회소나 우편물교환소 설치 등제도적 해결의 실마리를 하루 속히 풀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제도적 해결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중국과 대만이 이미 87년부터 양안(兩岸)간 이산가족 자유왕래를 실현시킨 마당에 우린들 왜 못하겠는가.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평가했듯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과감한 대북 포용정책이 남북 정상간 역사적 6·15공동선언과 그 첫 실천적 조치인 이번 상봉으로 이어졌다.앞으로 우리의대승적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확대되고,이미 이산가족들의 내년 가정방문 등을 약속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통 큰’ 화답이 이어지면 제도적 해결의 길도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1,000만 이산가족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하는 일은 북한의 사정을 감안하면 당장엔 어려울 것이다.내년에 연결될 경의선의 중간 지점쯤에 상설 면회소를 설치하면 제도적 해결의 첫 단계 대안이 될 수있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 남북이산상봉/ “다시 만날때까지 꼭 살아계셔요”

    상봉 사흘째인 17일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짧은 만남 끝에 또다시 찾아온 이별에 단장(斷腸)의 아픔을 느껴야 했다.마지막으로 상봉한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는 반세기 만에 만난 혈육을 다시 떠나보내야 한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이번 만남이 마지막은 아닌지,또다시 만나기까지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마지막 환송 만찬에 참석한 뒤 떨어지지 않는발걸음을 옮겨 서울 올림픽파크텔과 워커힐호텔로 돌아온 남한의 이산가족과 북한 방문단은 온갖 상념으로 서울의 잠못 이루는 마지막밤을 보냈다. ■모자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다시 만날 때까지 꼭 살아계셔야 해요” 반세기 만에 만난 아들 조진용씨(69)를 떠나 보내는 어머니 정선화씨(94)는 복받쳐 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노환으로 침대에 누워 아들을 맞은 정씨는 떨리는 두 손으로 연신아들의 두 빰을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조씨가 “어머니,떨지 마세요”라며 울먹이자 정씨는 “어지러워서그래”하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써 아들의 얼굴을 외면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조씨는 어머니에게 애끊는 사모의 심정을 담은자작시를 읽어드렸다. “어머니,이 아들 떠나보낼 때 검은 머리의 어머니,주름 깊게 패어아들 맞으니 이것이 어쩐 일입니까…(중략)…부디 백수 천수 하셔서통일의 그날 이 아들을 다시 한번 안아주소서…” 조씨는 “셰익스피어가 살아 있다 해도 조선 민족의 비극적인 삶을제대로 쓰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아들 서기석씨(67)를 떠나보내는 어머니 김금예씨(90)도 “집으로데려가 따뜻한 밥이라도 먹였어야 했는데…”라며 울먹였다.김씨는“어릴적 삼베 옷을 입혀 키운 자식이 이렇게 크다니…”라며 말을잇지 못했다.서씨는 “어머니가 고령이고 나도 나이가 많은데 언제다시 만날 수 있을까”하고 되뇌였다. 조주경씨(68)의 어머니 신재순씨(88)도 아들의 두손을 잡고 “죽는날까지 함께 살자”며 흐느꼈고 조씨는 “꼭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며 어머니의 두손을 꼭 잡았다. ■부부 “만나자 이별이니…” 남쪽의 아내 이춘자씨를 상봉한 이복연씨(73)는 “50년 만에 와 놓고 또 떠나버리면 어떡하느냐…”며 울부짖는 아내의 어깨를 두드리며 “통일이 돼 같이 사는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던 아내 김옥진씨(78)를 끝내 만나지 못한 하경씨(74)는 “아내가 재혼했다는 이유로 상봉장에 나오지 않았는데정말 죽기 전에 마지막 속죄라도 하고 싶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아들 정기씨(54)는 “어머니가 ‘내일 아침 공항에서 먼발치에서나마보겠다’고 말씀하셨다”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전날 호텔앞까지 왔다가 죄책감 등으로 남편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형제 북에서 온 사촌형 김용환씨(70)를 만난 용승씨(68)는 “어제는 웃는 시간이 많았지만 오늘은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자꾸눈물이 흘러나온다”며 기약없는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전날 북에 있는 장조카 이정렬씨(39)가 남한 가족에게 보내온 안부편지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던 종석씨(64)는 형 리종필씨(69)에게 “꼭 다시 만나자”며 굳은 악수를 한 뒤 북한 가족에게 보내는 답장을써 전달했다. 부모님 영정 앞에 잔을 올리며 어머니 추모 자작시 3편을 낭독했던북한의 대표적 서정시인 오영재씨(64)도 “떠난다고 생각하니 섭섭하지만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형제들을 위로했다. 특별취재단
  • 北가족 만난 남측가족 합동 회견

    북측 방문단을 만난 남한 가족의 합동 기자회견이 17일 오전 10시40분부터 11시20분까지 40분동안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 2층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황기봉씨 등 다섯 가족은 남과 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며 이번 만남이 이산가족 상봉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랐다.기자회견의 내용을 간추린다. ◆황기수씨(70)의 동생 기봉씨(59)와 기순씨(64·여) ▲소감은=만나기 전 절대 울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테이블에 붙은 형의 이름을 보고그냥 울어버렸다. ▲준비한 선물은=형이 북에는 바람이 세게 불어 도수가 없는 안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 오늘 전해주려고 안경을 하나 샀다.▲아쉬운 점은=상봉 인원을 5명으로 제한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다른 가족들도 돌아가면서 만날 수 있게 융통성을 발휘했으면좋겠다.▲하고 싶은 말은=100명에 못낀 이산가족들에게 죄송하다.오늘이 마지막으로 보는 것인데 내일 생각만 하면 마음이 착잡하다.▲느낀 점은=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충성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그러나 그들의 그런 심정도 이제는 이해할 것 같다. ◆려운봉씨(80)의 동생 여운원씨(62)와 운원씨의 아내 이소례씨(60)▲소감은=형에 따르면 북에서는 60살이 되면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줘 사는데 큰 불편이 없단다.다음에 아무런 제한없이 만난다면 가장먼저 고향에 데려가고 싶다.▲바라는 점은=다시 만날 기약이 없을 것같기도 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후속 조치로 형과 편지라도 계속했으면 좋겠다.면회소 설치도 빨리 됐으면 좋겠다. ◆김동진씨(74)의 동생 동만씨(68)와 동순씨(71·여) ▲무슨 말을 했나=형이 북에 가서 동생들 만나고 왔다고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또다 죽은 줄 알았던 동생들이 살았으니 나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소감은=형이 어떻게 살았고 왜 넘어갔는지 등은 묻지 않았다. 형도나름대로 50년을 북에서 살았는데 그런 것을 물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만나고 살아 있으면 된 것을 체제고 이념이 무슨 소용인가. ▲개선해야 할 점은=많은 비용을 들여 이런 행사를 가질 필요가 없다. 면회소 설치해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게 하고 거기서 각자 싸온음식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아쉬운 점은=상봉 시간이 2시간밖에안되고 부모 성묘도 못한 것이다.이산가족들에겐 관광보다 성묘가 중요하다.다음부터는 더 실속있게 만나는 방법을 강구하자.또 저쪽을자꾸 알아야 한다.(동만씨)▲바라는 점은=오빠는 어제 우리의 이별은영영 이별이 아니라고 했다.그말을 믿고 싶다.남북이 이산 가족의 생사를 확인해주고 이번에 만난 사람들이 서로 서신을 교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무엇을 물어봤나=김정일 배지를 왜 달았냐고 물으니배지가 아니라 먹여주고 입혀주는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간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이해가 간다. ◆박상원씨(65)의 조카 경환씨(45)·여동생 상숙씨(56) ▲느낀 점은=북이 생각했던 것보다 폐쇄된 사회는 아닌 것 같았다.작은 아버지는남한이 북한보다 잘 살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자본주의 원리도 잘 알고 긍정적인 측면에 대해 얘기도 많이 했다.세계 질서가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작은 아버지가 한 말은=“북한의 어려움을 너희들도 잘 알 것이다.우리는지금 열심히 일해극복하고 있다.열심히 일해 사로 훌륭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하셨다. ◆김희영씨(72)의 누나 옥동씨(80)와 아내 손영자씨(72) ▲소감은=29살때 남편과 헤어진 뒤 9년동안 수절하다 재혼했다.남편 역시 북에서결혼해 잘 살고 있었다.반갑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할 말이 별로없었다.서로 살아서 만나 기뻤지만 남편이 너무 늙어 보여 서러웠다. (아내)▲소감은=동생과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나는살 만큼 살아 이번 만남이 마지막인 것 같다.할 말을 다 하지도 못하고 눈물만 쏟은게 아쉽다.(옥동씨)이창구기자 window2@
  • 마지막날 아쉬움속 또 이별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나나…”“통일돼서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오빠” “오마니,몸 건강히 오래오래 사시라우요…” 17일 낮 서울과 평양의 이산가족 방문단 오찬장은 사흘 전 첫 상봉때와 같은 오열과 탄식의 바다를 이뤘다.사흘간의 상봉중 마지막인이날 오찬은 50년 전 한맺힌 이산에 이은 또 한번의 눈물어린 생이별의 장이 됐다.너무나 짧은 만남과 감격어린 상봉의 기쁨도 잠시,어머니와 아들,남편과 아내,오빠와 누이는 기약없는 재회를 약속하고 하루 뒤면 남과 북으로 흩어질 혈육의 어깨를 부여잡은 손을 끝내 놓지못했다. 서울에서 북한의 인민화가 정창모씨(68)는 여동생 춘희씨(60·경기군포)를 끌어안고 이별의 슬픔을 달랬다.북한의 수학자 조주경씨(68·김일성대 교수)도 숙소에서 어머니 신재순씨(88)를 만나 생이별의슬픔을 나누며 재회를 약속했다. 평양에서는 북에 각각 처자식과 아들을 두고 내려와 남에서 결혼한이선행(李善行·81·서울 망우동)·이송자(李松子·82) 부부가 이씨의 북쪽 부인 홍경옥씨(76·평북 구장군)와 만났다. 대한적십자사 지원요원으로 방북한 소설가 이호철(李浩哲·68)씨와방북단 의료진인 고 장기려 박사의 차남 가용(家鏞·65·서울의대교수)씨도 북측이 별도로 마련한 장소에서 가족을 비공개리에 만났다. 앞서 류미영(柳美英·78) 북측 단장은 16일 오후 23년만에 서울의 둘째아들 인국씨(53)와 막내딸 순애씨(48),손자 등 가족을 만났다. 남과 북의 방문단 200명은 이날 모든 공식일정을 끝내고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과 평양 고려호텔에서 고향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분단의 아픔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북측 방문단은 전날과 같이 두 팀으로 나뉘어 숙소인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가족들과 개별상봉했으며 창덕궁(비원)을 둘러봤다.남측 방문단도 고려호텔에서 개별상봉한 뒤 북한 가극 춘향전을 관람했다. 남북 방문단은 가족 공동오찬에 이어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 주최 환송만찬,평양 옥류관에서 평양시 인민위원회 주최 환송연회를 끝으로 3박4일의 방문중 공식일정을 모두마쳤다. 18일 오전우리측 대한항공기가 북측 방문단을 태우고 김포공항을출발,남북직항로를 통해 평양 순안공항에 이들을 내려놓은 뒤 남측방문단을 태워 서울로 귀환한다. 한편 15년만에 재개된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남북 각 100명의 인원과짧은 시간으로 제한된 데 대해 남북 당국이 하루빨리 면회소 설치,상봉 정례화 등을 통해 많은 이산가족들이 상봉할 수 있도록 해야 할것으로 지적됐다. 98년 남북 차관급회담 수석대표로 참가했던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전 차관은 “상설 면회소를 만들어 이산가족들에게 많은 상봉기회를줘야 한다”면서 “중간단계인 면회소 상봉을 거쳐 중국·대만,동서독처럼 상대방 지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고 병문·조문의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얼마든지 허용하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인영(全寅永) 서울대교수도 “이산가족문제는 남과 북 어느 당국도 사상과 체제를 초월하는 강력한 이슈임을 이번에 생생히 확인했다”면서 “북한의 경우 절대적 지도자가 마음먹으면 면회소 설치 등은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말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무엇을 남겼나

    ‘8·15 상봉’은 분단의 상처와 냉전의 고통을 일깨웠다. 홍안의 소년은 백발로 돌아왔고 잠시 나갔다 온다던 남편을 기다리다 고희를 훌쩍 지난 새색시들의 모습들은 한반도의 치유안된 상처와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산가족 문제해결 물꼬 남북한은 이번 만남으로 이산가족 문제와인도적 문제의 해결 물꼬를 트게 됐다.9·10월 방문단 후속 교환,면회소 설치시기 및 장소 논의도 이어진다.비전향장기수 송환,조총련고향방문 행사도 열린다. 이번 상봉은 ‘6·15 공동선언’의 첫 구체화 조치란 점에서 무게를갖는다. 경협 및 사회문화 교류 등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변화를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상봉에 대한 북한언론의 신속하고 중립화된 보도,양측의 상호비방자제,관계자들의 유연해진 태도 등 일련의 상봉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은남북 양측의 변화를 실감했다.이같이 달라진 모습과 보다 설득력있게 다가온 남북화해의 당위성은 남북화해 분위기와 교류협력의 추진력을 더할 전망이다.서로를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바꿔 놓을 것으로보이고 동족간의 신뢰와 민족의 정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됐다.냉전시대 쌓아놓았던 마음의 벽과 금기를 헐어내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것이다. ◆남은 과제 그러나 50년 만의 생이별끝에 3박4일간 만남은 이산가족들에겐 너무 짧았다.17일 밤 이산가족들은 평양과 서울에서 잠들 수없었다.“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아직도 이들 냉전의 희생자들에게 어떤 보장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상봉가족 제한으로 가족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했고 고향 집을찾아가거나 성묘를 할 수도 없었다.이산가족 1세대만도 123만명.방문단에 끼지 못한 고희와 팔순을 넘은 수십명의 실향민들은 북한에 있을 가족들에게 알려달라며 가족상황을 적은 대형플래카드를 들고 공항에서 호텔로,음식점에서 비원으로 방문단행렬 주변을 맴돌아 보는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산가족들이 이번 상봉에서 떨군 눈물과 한(恨)은 지구상 유일한 냉전의 희생자로 남아있는 한민족이 왜 과거의 금기와 유산을 넘어서야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이산상봉/ 재상봉 약속들

    “마지막 만남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되자” 17일 서울 워커힐호텔 상봉장에서 마지막 개별 상봉을 마친 이산가족들은 서로의 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적어주며 만남을 이어갈 것을굳게 약속했다.비록 몸은 다시 떨어지지만 이제 다시 ‘영원한 이별’은 없다는 약속이 꼬리를 물었다. 남북한 이산가족들은 “조만간 꼭 통일이 될 것”이라면서 “통일이될 때까지 서로 안부 편지라도 주고 받자”고 다짐했다. 북에서 온 오빠 김호근씨(70)와 여동생 김영님씨(56·강원도 강릉시)는 상봉장에서 서로의 주소를 교환했다.영님씨는 “경의선만 복원되면 편지정도야 왕래할 수 있지 않느냐”며 오빠가 써준 주소를 보며앞으로 희망에 부풀었다. 인민화가 정창모씨(68)는 여동생 춘희(60)·남희씨(53)에게 “언젠가는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며 “그때 다시만나자”고 약속했다. 동생 춘희씨의 남편 김병태씨(72)는 “극동문제연구소 경협아카데미 3기생 출신으로 남북경협 북쪽사업단에 들어가려고 신청을 할 것”이라면서 “그러면 쉽게 처남을 만나고 그림이남쪽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북한의 극작가인 이래성씨도 여동생 이지연씨에게 “한라산과 부산에서 찍은 영화를 만들 날이 올 것”이라며 “그때 함께 다시보자”고 약속했다. 함종태씨(66)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편지교환과 면회소 설치는 물론 자유왕래까지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아쉬웠던 점들

    지난 16일 정오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숙소인 서울 워커힐 호텔입구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눈물겨운 상봉노력 북측 방문단 오경수씨(70)의 남측 가족·친지 50여명이 몰려와 오씨를 만나기 위해 호텔 진입을 시도하다가,제지하는 행사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오씨 동생들인 길수(65),덕림씨(60·여) 등 5형제와 조카,손자·손녀들로 구성된 이들은 ‘할아버지,우리도 들어가고 싶어요’라고 쓴팻말을 들고 있었다.결국 “약속된 장소와 시간 이외의 상봉은 규정에 어긋난다”는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궁리끝에 오찬장으로 가던 오씨를 중간지점에서 잠시 만나 ‘회포’를 푸는 데 만족해야 했다. 북한 인민예술가 정창모씨(68)와 상봉하려는 남측 가족·친지들의노력도 눈물겹다.정씨의 조카 진양씨(28·여) 등 가족·친지들은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 숙소인 워커힐 호텔 입구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이날까지 상봉 기회를 잡지 못한 이들은 오찬장으로 가던 정씨를 만나,큰 절을 올리고 사진을 찍는 등 혈육의 정을 나눴다. 이처럼 워커힐 호텔과식당 주변은 상봉 인원제한(5명)에 묶여 ‘편법 상봉’을 시도하는 남측 가족들이 진을 쳐 종종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시행착오도 남겨 역사적인 8·15 이산가족 상봉은 50년의 한을 풀어주고 7,000만 겨레가 ‘한 민족 한 핏줄’임을 새롭게 각인시키는계기가 됐지만 일부 이산가족들을 울리는 아픔도 남겼다. ‘상봉 장소 제한’도 50년 이산의 상처를 덧나게 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50년 전 헤어진 어머니 김애란씨(87)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온 량한상씨(69)는 “50년을 건너 왔는데…”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거동이 불편해 상봉장소에 나오지 못한 어머니를 만나는 유일한 길은 어머니가 계신 서교동 동생집으로 가는 것.그러나 ‘장소 제한’에 묶여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이산가족들의 생사 확인 오류도 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남측 김희조씨는 북한의 유일한 생존자인 남동생 기조씨(67)와의 상봉을 위해 평양에 갔지만 2년전 사망했다는 통지를 받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김금자씨(69·서울 강동구 둔촌동)도 북측 오빠 어후씨(73)가 2년전사망했다는 소식을 평양에서야 듣고는 “50년 기다림이 헛되이 됐다”고 허탈해 했다.김씨는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더욱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평양 출발직전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통보받은 장이윤씨(72)도 생사확인이 잘못돼 이산가족들을 ‘두번 죽이는’ 아픈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상봉자료에 딸을 만나기로 돼있던 강기주씨(91·도봉구 도봉6동)는“원래 아들만 둘이고 딸은 낳아 본적이 없다”면서 “이산가족 방문조회시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당국을 원망했다. ◆고향방문과 성묘는 언제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많은 이산가족들은 고향방문과 성묘에 대한 강한 애착도 보였다.일부 남측 가족들은 부모나 형제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도 내비쳤다. 17일 창덕궁을 관람한 북측 홍두혁씨는 “저 담장만 넘으면 고향집인데…”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북측 아버지 이복연씨(73)를 만난 호걸씨는 “시간만 더 있으면 아버지를 할아버지 산소로 모실텐데…”라고 아쉬워했다.이씨는 “아들집에 하루만 묵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내달 7일 구순 생일을 맞는 남쪽의 김금녀씨(90) 가족들은 “어머니90회 생일을 함께 모여서 치르자”며 재회를 약속하는 등 짧은 만남과 기약없는 이별을 아쉬워했다. 오일만 박록삼기자 oilman@
  • 恨은 풀고… 情은 잇고…

    “하루 빨리 통일의 그 날이 와서 서로 이웃집 다니듯 다니며 정을나누도록 하자”(북측 방문단 류열씨) “우리 오래오래 살아 꼭 다시만나자우요”(남측 방문단 최성록씨). 정든 고향 땅에서 뜬 눈으로 설레는 밤을 보낸 남북 이산가족들은 16일 서울과 평양에서 다시 만나 2시간여에 걸쳐 못 다한 얘기를 주고받았다.분단 50년 만에 이뤄진 전날 상봉의 흥분과 감격,맺힌 한이채 가시지 않은 듯 숙소 곳곳에서 오열의 소리도 들렸으나 첫날의 단체상봉 때보다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남과 북은 이날 가족단위의 개별상봉에서 안내원을 배석시키지 않아이산가족들이 반세기 동안 쌓이고 쌓인 얘기를 거침없이 털어놓으며오붓하고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또 각자 준비해 온 때묻은 사진과앨범을 꺼내 놓고 지난 시간을 되새기는가 하면 정성껏 마련한 선물도 주고받았다. 류미영(柳美英)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측 방문단 100명은 두 팀으로 나눠 이날 오전 10시,오후 3시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남측 가족들과 이틀째 상봉했다. 이들은 워커힐 호텔과 잠실 롯데호텔에서 남측 가족들과 50년만에처음으로 한자리에 앉아 점심식사를 했으며 식사도중 웃고 울기를 되풀이하며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묻어둔 한을 풀고 얘기꽃을 피웠다.방문단은 상봉이 없는 시간에는 롯데월드 민속관을 둘러봤다. 류 단장은 이날 오후 서울에 살고 있는 차남 인국(53)·맏딸 근애(62)·막내딸 순애(48)씨와 비공개리에 상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단장으로 한 남측 방문단도 두팀으로 나눠 오전과 오후 번갈아 호텔에서 북측 가족들과 개별상봉을 갖거나 대동강 유람선 관광 및 단군릉 참관 행사를 가졌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북한 원로 국어학자 류열씨(82)는 전날에 이어여동생 인자씨(59·부산) 등 4명과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만나 남쪽가족들의 안부를 일일이 물으며 지난 세월을 되새겼다. 1·4 후퇴 때 생이별한 아내를 50년 만에 만난 남측 방문단 최성록(崔成祿·79)씨는 이날 평양 고려호텔 숙소로 찾아온 아내 유봉녀씨(75)의 손가락에 금가락지를끼워 주며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한편 전날 밤 단체상봉에서 과도한 감격과 흥분 때문에 이근하씨(71·경기 시흥시 신천동)가 급성폐렴증세를 보여 16일 아침 병원치료를받고 오후 일정에 참가했으며,정명희씨(71·강원 동해시)는 발목을삐기도 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북에서 오신 동포 여러분,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16일 북측 상봉단이 묵고 있는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는 북에 있는 가족을 찾는 이산가족들이 몰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들은 가족의 이름을 쓴 피켓을 들고 북측 방문단이 볼 수 있도록호텔앞을 서성거렸다. 방북을 신청했으나 이번 방북단에 끼지 못한 김상일씨(71·경기 부천시 오정구 원미동)는 이날 오전 10시쯤 몸에 가족들 이름이 적힌피켓을 두른 채 호텔을 찾았다. 피켓에는 ‘평양에서 오신 동포 여러분,기자 여러분.평남 남포시 하대두리 제현소 공사사택 7호에 살던 이 사람들을 모르시나요’라는글과 함께 북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형제,누이 동생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었다. 김씨는 “평양 동포와 기자들이 묵고 있는 이곳에 오면 내 소식이나마 가족들에게 전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면서 “죽기 전에 꼭 만나 가족들에게 사죄해야 하는데 소식조차 모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지난 48년 집을 떠나 혼자 공부하러 서울에 내려왔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가족들과생이별을 하게 됐다. 북에 오빠를 둔 어머니를 대신,이곳을 찾은 이완재씨(46·충북 충주시 문화동)도 ‘생사를 알려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호텔 현관문을오갔다. 이씨는 “어머니가 이산가족 상봉 방송을 보며 눈물로 지새우고 계시다”면서 “어머니께 고향 사람들 소식이라도 전해주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또 남측 상봉단이 머무는 서울 올림픽파크텔에도 이산가족들이 찾아와 북측 상봉단에 가족의 소식을 대신 물어봐 줄 것을부탁했다. 6·25전쟁으로 헤어진 남편을 기다리며 평생을 살아온 권오중씨(68·여·서울 노원구 월계동)는 이날 서울 올림픽파크텔을 서성이며 “북측 상봉단에 서울공대를 다니던 남편 이동현씨(71)를 아는지 물어봐 주세요”라며 애원했다. 권씨는 18세인 50년 1월 서울 공대에 갓 입학한 경북 문경의 이씨와결혼,닷새를 함께 보내다 이씨가 공부하러 서울로 올라간 뒤 전쟁이터지면서 소식이 끊겼다. 조현석기자 hyun68@
  • 옛 詩心과 새로운 詩心을 만난다

    시집을 열 권이상씩 낸 중견시인들의 새 시집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도서출판 세계사는 정진규,이승훈,최승호 시인의 신작시집을 각각발간했다. 중견시인들의 이삼년 간 시작들을 한데 묶은 시집은 눈에 띄지 않는옹달샘 가에서 때때로 피어나는 단순한 야생화들을 차곡차곡 채집한것과 같다. 시의 은근한 수원이 괄괄한 목소리의 계곡으로 변전하는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언제까지 마르지 않고 혼탁해지지 않는 시심과 만날 수 있다.첫눈에는 신기하달 것이 없는 자연의 풀꽃들이 오래 눈에 남듯 이들 중견시인들의 새 시집들은 예전과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향기와 달라졌는가 싶으면 여일한 뿌리를 떠올리게한다. 정진규의 11번째 시집 ‘도둑이 다녀가셨다’는 연작시 형태로 작품을 써나가는 방법을 거두어버렸기 때문에 시적 대상을 선택하고 내용을 표현하는 손길이 보다 유연해진 느낌을 받게 된다.그만큼 시세계의 질감도 다양하고 풍요로워 보인다.정진규 시인은 ‘몸 시’ 이래로 생명현상의 경이로움을 육체와 정신의 충만한 교감으로 표현하여왔다.그러한 교감의 자세는 이번시집에서도 중요한 삶의 원동력으로,또한 시적 상상력의 촉매제로 원숙하게 발휘되고 있다.몸짓의 교감을통해 대상과 더불어 생명현상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절실하게 만끽하는 일,이러한 일의 가치를 시인은 이번 시집 속에서 밝혀낸다. 잘되어 있는 이별 하나를 보았다 이별은 이별이 아니었다 멀리 몸을 마주대고 있었다(…)벌판이 한도 끝도 없기에,산들이 저 멀리 밀려나 있기에,아무래도 궁금해서 먼저 산들이 있는 그곳까지 가보았다들판이 산들을 그렇게 멀리 밀어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산들이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들판의 끝자락을 맞이하고 있었다 거기강물 하나 놓아 흐르게 하면서 들판의 흙 묻은 맨발들을 씻어주고 있었다(‘영산포 가는 길’) 이승훈의 11번째 시집 ‘너라는 햇빛’은 몇 가지 두드러진 변화된특징을 노출한다.무엇보다 ‘너’로 지칭되는 시적 대상들이 이전의시집에 비해 보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현실의 모습을 갖춤으로써 시의 내용에 사실적인 질감이 강화되고 있다.또 패러디와 인용과같은표현기법을 고의로 자주 활용하고 있는데 시인의 주체적 입장과 경계를 지워버리려는 방법론적 시도로 평가받을 수 있다. 나는 네 속에 사라지고 싶었다 바람부는 세상 너라는 꽃잎 속에 활활 불타고 싶었다 비 오는 세상 너라는 햇빛 속에 너라는 제비 속에너라는 물결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너라는 감옥에 갇히고 싶었다네가 피안이었으므로(…)(‘너라는 햇빛’) 최승호의 10번째 시집 ‘모래인간’은 드물게 주제와 표현 형식을먼저 결정한 뒤 집중적으로 쓴 미발표 시들을 묶었다.주어진 형상과기능을 잃어버리고 소멸의 과정을 겪어내는 사물들의 자취를 탐색하고 있다.모래와 재의 흔적으로 남은 사물들의 존재 의의를 탐색함으로써 인간의 근원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성찰한다. 어느 백제왕의 혁대는 비단벌레 껍질로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방황하는 모래들, 표류하는 모래들,폭풍에 들려 빈 하늘에서 빈하늘로 떼지어 날아가는 모래들, 누구의 것도 아닌,그 누구의 뼈도,그 누구의 살도 아닌, 남은 것은 혁대와 비단벌레 껍질에 흐르는 은하수, 4월의 황사는 고비사막에서 날라와 비단벌레 껍질과 속삭인다.(‘모래인간’)김재영기자 kjykjy@
  • MBC’이산,두여자 이야기’상봉의 날 희비 엇갈린 두 할머니

    50년만에 헤어진 가족을 만나는 심정은 어떨까.간절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막상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TV에서 다른 이산가족의 상봉장면을 지켜보는 이산가족의 심정은 또 어떨까. MBC는 18일 ‘이산,두 여자 이야기’(밤10시5분)에서 각각 아들과남편을 잃고,생이별의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두 할머니의 최근 행적을 따라간다.지난달 16일 발표된 북측 이산가족방문 후보명단을 보면서 시작된 가슴 떨리는 기다림,그리고 만남,마지막으로 기약없는헤어짐까지를 빼곡히 담았다. 이덕만 할머니(87)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큰아들을 잃었다. 큰 아들이 태어난 그 집에서 50년간 떠나지 않고 기다려온 이덕만 할머니는 위암 말기의 환자다.병원에서 혈액주사를 맞으면서 숨지기 전에 큰아들 얼굴 보기만을 기다려왔다. 유순이 할머니(71)는 한국전쟁 당시 결혼 6개월만에 남편이 의용군으로 떠났다.당시 임신 3개월이었다.이산가족방문 후보명단에서 남편이 찾는 가족 중에 자신의 이름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기뻤다.시댁인청주에내려가 남편에게 보여줄 가족사진을 찍는 등 하염없이 만날날만을 기다렸다.지난 8일 최종명단이 발표되던 날 이덕만 할머니는아들 안순환의 이름을 확인했지만 유순이 할머니는 남편 김중현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좁은 집에 할머니의 일상을 찍으러온 제작진으로 북적대는 가운데 TV화면을 아들과 함께 보던 유순이 할머니는 ‘오래 사시면 만나 보실수 있을 거예요’라고 제작진이 건넨 위로의 말에 끝내 눈물을 흘렸다.취재진이 모두 철수한 뒤 할머니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허한 마음은 여전하다. 이덕만 할머니는 꿈에도 그리던 아들 안순환씨를 지난 15일 코엑스에서 만나 품에 앉았다.상봉 마지막 날인 18일은 아들의 생일날.50년만에 생일상을 차려줄 마음에 들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
  • 남북이산상봉/ 상봉 이틀째 쏟아진 말 말 말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와 워커힐 호텔,평양 고려호텔 등 이산가족 상봉장은 50여년간 쌓인 가슴속의 한을 토해 내는 이산가족들의 절규가 이어졌다. ●어머니는 15년전 돌아가셨어.늘 네 얘기만 하시곤 했는데.아마 하늘나라에서도 기뻐하실 것이다. 남측 임창혁씨가 북측 동생 재혁씨가어머니 소식을 묻자. ●아버지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한 장밖에남지 않은 사진을 보고 또 봤어요. 남측 유인자씨가 북한의 국어학자인 부친 류렬씨와의 상봉에서. ●어머니가 이 자식을 보려고 여지껏 살아 계셨구나. 북측 리종필씨가 어머니 조원호씨의 생존에 감격해. ●제가 불효한 것 같지만 아버지 어머니 뜻을 받들어 교수,박사까지됐으니 효녀로 생각해주세요. 북측 김옥배씨가 어머니 홍길순씨에게불효를 빌면서. ●니 어쩌다 손이 이리 쭈글쭈글 됐나. 남측 최성록씨가 북측 아내유봉녀씨에게 금가락지를 끼워주며. ●니가 있어 내가 올 수 있었어. 북측 리복연씨가 남측 아내 이춘자씨에게 50년만의 만남을 속죄하며. ●여보 그동안 속절없이 살았시오.우린 이제 어찌합니까. 북측 아내오상현씨가 남측 남편 김일선씨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1·4후퇴 때 일주일만 백리 밖에 피난가 있으면 무사하다고 해서떠났는데 이제야 돌아 왔습니다. 남측 김상현씨가 북측 누나 상원씨와 만나 생이별에 오열하며. ●아버님 어머님.아들 장수가 왔어요.제가 죽지 않고 돌아 왔어요.광산 김씨 문중의 대를 끊지 않았으니 이제는 걱정말고 편히 눈을 감으세요. 5대 독자인 남측 김장수씨가 북측 누이 봉래씨와 만나 부모님사망에 절규하며.
  • 남북이산상봉/ 평양방문단 개별상봉 백태

    방북 이틀째인 16일 남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오전 10시20분부터 각자의 호텔 방에서 비공개로 아무런 방해 없이 북측 가족들과 오붓한시간을 갖고 혈육의 정을 나눴다. ■개별상봉에서 남측 가족들은 나름대로 정성스럽게 준비한 편지와녹음 내용들을 소개해 북측 가족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뜻하지 않은 동생까지 만나 상봉의 기쁨이 더한 김준섭씨(67·서울강동구)는 두 딸인 성희씨와 인숙씨가 북에 있는 삼촌과 고모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개했다.동생 경숙씨는 ‘태어나 한번도 본적이 없는삼촌과 고모,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의 친형제가 살아 있다는 게 정말실감나지 않습니다. 부디 통일이 되어 다시 만나는 날까지 몸 건강히잘 계십시오’라는 내용의 조카들의 편지를 떨리는 목소리로 읽다가끝내 목이 메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라며 흐느꼈다.김씨는 동생 창섭(62),경숙씨(54)를 만나러 왔는데 예정에 없던여동생 영숙씨(41)까지 만났다. 채성신씨(73·경기 하남시 덕풍동)도 9세때 헤어진 여동생 정열씨(62)를 만나 자신의 아내가 ‘아가씨,남편으로부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고향생각에 슬퍼할 때마다 아가씨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통일이되면 만날 수 있길 바래요’라는 내용의 육성 녹음과 함께 다른 가족들이 전하는 안부 녹음도 함께 들려주기도 했다. ■개별상봉에서는 뜻밖의 만남도 있었다.경기 개풍군이 고향인 상환식씨(74·경기 부천시 원미구)는 지난번 북측으로부터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은 동생 복식씨(60)를 만나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척추질환 때문에 의사의 여행금지 권고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오빠와 사촌동생을 만나러 먼길을 온 김금자씨(69·여·서울 강동구 둔촌동)는 첫날 오빠는 못만나고 사촌언니들만 만난뒤 이날 언니들로부터 “어젯밤 고향 친지들을 수소문해보니 오빠는2년 전 고혈압으로 사망했다더라”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들었다. 김씨는 “오빠가 죽은 줄 진작 알았더라면 이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오지 않았을 걸…”이라며 통곡했다. ■가족 상봉의 충격 때문에 첫날밤 심한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는 등폐렴 증세를 보인 이근하씨(71·경기 시흥시 신천동)는 이날 아침 팔에 링거주사를 꽂은 채 식당에 등장,식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평양친선병원으로 실려가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기도.이씨는 그러나치료를 받은 뒤 오전 10시30분쯤 숙소에 돌아와 가족들을 만난 뒤 대동강을 유람하는 등 건강을 회복했다. ■이번 상봉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을 한꺼번에 만난 이환일씨(82·경기 안산시 선부3동)는 남한에 있는 현재의 아내가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금목걸이를 녹여 만든 금반지 세 개를 북측 가족들에게 일일이 끼워주고 난 뒤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가족사진을 찍어보는 감격의 순간을 맛보았다. 아들 응섭씨는 “반갑기도 하지만 다 늙어서 이렇게 만나게 되니 서럽고 안타까운 점도 많다”면서 “한 조국인 우리가 이제는 통일의염원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저는 농사꾼이므로 이제 나라의 쌀독을채우는 조국 통일의 역군이 되갔습니다”고 말했다. ■평양이 고향인 강성덕씨(72·여·대구 달서구 진천동)는 언니를 만나 남측에서 준비해간 금목걸이 금반지 시계 밍크목도리등과 함께조카사위들에게 줄 와이셔츠 넥타이 속옷 등을 아예 여행가방째 건넸다. 강씨는 “어머니는 1·4후퇴때 9남매 중 유일하게 언니만 평양에 남겨두고 내려와 평생을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다”며 어머니의 유품인털옷을 전해줘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1951년 인민군 입대 통지서를 받고 이별한 아내 박택용씨(71)를 만난 최태헌씨(69)는 “내가 (가족들을) 다 버리고 남으로 갔지만 혼자살며 애들 잘 키웠소. 내가 못한 짓 조금이라도 보답될까 해서 준비했소”라며 서돈짜리 금가락지 2개를 아내 손에 끼워줬지만 박씨는아무 말도 없었다.최씨는 헤어질 때 겨우 네살이던 아들 희영씨(53)와 남동생 태화씨(67)에게도 반지와 시계를 끼워주며 “나를 용서하라”는 말을 계속했다. 아내에게서 스무살의 꽃다운 얼굴을 찾아볼 수 없다는 최씨는 “그때는 밭일도 같이 하고 일하다 새참도 함께 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말도 잘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오후 8시30분쯤 고려호텔‘매대’(매점)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서울에서 북측 방문단이 남측 가족들을 상봉하는 장면이 방영되자 순식간에 판매 여직원 10여명이 몰려들어 큰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가족들이 얼싸안고 통곡하는 장면이 이어지자 너나 할 것없이 눈물을 훔쳤다. 평양 공동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朴鍾九씨의 北큰형 ‘상봉일기’

    15일 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집단 상봉을 마치고 숙소인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로 돌아온 이산 가족들은 좀처럼 흥분을가라앉히지 못하고 가족, 친지들과 이야기 꽃을 피웠다.그 순간만은그간 겪은 이산의 아픔도 봄눈 녹듯 사라지는듯 했다.1950년 8월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큰 형 박종석(朴鍾錫·68)씨를 꼭 50년만에 만난종구(鍾九·54·충북 청주시 사직동)씨가 상봉의 기쁨과 그간의 아픈사연, 이별의 두려움 등을 적은 일기를 소개한다. 상봉장에 앉아서 4살 때 헤어진 형을 기다리면서도 형의 얼굴을 모르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초조해 하는 나에게 둘째 형님과 누님은 자신들이 형을 알아볼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반가운 북쪽의 손님들이 하나 둘 상봉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반백의 노인이 우리 테이블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아!종석 형님이구나.핏줄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구나.큰형의 얼굴은아버님의 얼굴이기도 했고,둘째 형의 얼굴이기도 했고 바로 내 얼굴이기도 했다.형과 얼싸안는 순간 어릴적 코트 속에 묻어 있던 형의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둘째 형이 “형과 함께 끌려갔던 사람들이 ‘종석이는 사리원에서총에 맞아 죽었다’고 해 우리 가족들은 형이 죽은 줄만 알고 사망신고까지 냈어요”라며 흐느꼈다. 큰형은 둘째형에게 “죽은 줄 알았던 우리가 살아서 만나니 오래 살겠구나”며 웃으셨다. 누님은 형의 품에 안겨 “오빠는 나쁜 사람이야,이제서야 가족이 보고 싶어서 내려오다니 너무 야속해”라며 투정을 부렸다. 형은 흐느끼며 “네 말이 맞다.미안하다”며 누님의 등을 두드렸다. 북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해 딸 셋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있다는 형의 말이 그저 반가웠다. 밤이 깊어 간다.조금전 헤어진 형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몇시간만지나면 형을 다시 만나는데 시간이 너무 더디다. 3일 뒤면 형과 또기약없는 이별을 해야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선다.짧지만함께 하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16일 아침 종석씨와의 개별 상봉을 위해 워커힐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종구씨 형제들의 손에는 선물꾸러미가 가득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남북이산상봉/ 새달 北송환 앞두고 급부상

    북한이 비전향장기수들의 9월 송환 때 남한의 가족을 데려와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그러나 실현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정부에서 신중하지만,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기때문이다.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활발한 의견조율이 진행될것으로 전망된다. ●북측 입장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은 광복절인 15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 인터뷰에서 “일부 비전향장기수들이 가능하면 가족을 데리고 북한에 갈 것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들이 가족들을 데리고 오든,혼자서 오든 다 뜨겁게 맞이할 것”이라고말했다고 평양방송이 전했다.북한이 비전향장기수의 가족까지 수용할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대변인은 이어 “인생의 거의 전부를 감옥에서 보낸 고령의 비전향장기수들이 가족과 함께 여생이나마 행복하게 보내려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소망이자 온 겨레의 환영을 받을 만한 일”이라면서 “과거가 어떻든 관계없이 공화국으로 올 것을 희망하는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을 다 받을 것이며 진심으로 열렬히 환영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평양방송은 대변인의 말을 인용,“비전향장기수들이 가족과 함께 북한에 가겠다는 뜻을 표시한 것은 부모 처자를 가진 인간의 초보적인예의 도덕으로 너무도 응당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부 입장 부정도 긍정도 아니지만 아직은 부정쪽에 가깝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금강산에서 열린 적십자 회담에서 비전향 장기수의 9월초 북송을 약속한 만큼 약속은 지키겠다”면서도 “그밖의 문제(비전향 장기수 가족 북송 등)는 다시 협상을 할 문제”라고 원론적인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비전향 장기수 가족의 북송문제를 이산가족문제의 범주에서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북송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재결합문제가 추진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하지는 않았다.더구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이산가족문제 해법이궁극적으로 모든 이산가족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재결합하는 방향이어서 시기가 문제이지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북송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남북간에 이산가족 재결합문제가 추진될 경우 우선적으로 비전향장기수 가족들의 북송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비전향장기수 북송추진위원회(공동대표 권오헌)에 따르면 북한으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는 60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이들 가운데 가족과 함께 북송을 원하는 사람은 신인영씨(72)와이경구씨(71) 등 모두 1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형기자 yunbin@. *9월초 北송환 金東起씨. “북에 가면 이산가족들의 한을 알리고 이를 치유하는데 조금이나마보탬이 되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9월초 북으로 송환될 비전향 장기수 김동기(金東起·68)씨는 요즘TV를 통해 방영되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애써 외면하고있다. 20여일 후면 자신도 똑같이 겪어야 할 일이기에 가슴이 저며오고 그만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핏얼핏 비춰지는 상봉장면을 보면 깊은 회한에 휩싸인다고 한다.“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아들이 만나는 것을 보고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는 그는 “혈육을 갈라놓은 채 50여년동안남남으로살게 한 정치인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만남 그 자체에는 ‘통일’‘민족화합’등의 어휘가 구차하게 느껴질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요즘 며칠후면 그리운 가족품으로 돌아간다는 희망과 함께 그동안 정들었던 남쪽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느라 하루해가 짧기만하다. 옥중생활 등을 담은 ‘새는 앉는 곳마다 깃을 남긴다’는 제목의 수필집을 펴내 유명인사가 된 그에게 이산가족들이 북한 가족들에게 전해달라며 편지와 전화안부를 보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거주하는 광주시 북구 두암동 ‘통일의 집’에는 최근 하루 3∼4통의 편지가답지하고 전화벨이 쉴새없이 울린다. 여류시인 서영숙씨(58)는 자신의 시집을 6·25때 월북한 아버지에게 전달해 달라며 보내왔고,인천에 사는 권영숙씨(78·여)의 딸은 ‘암투병중인 어머니가 북에 있는 오빠를 너무나 보고 싶어한다’는 편지를 오빠에게 전해달라며 보내오기도 했다. 김씨는 “제2의 고향인 광주에서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기도 가슴아픈데 이들의 한맺힌 사연을 접할 때마다 인간적인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이 보내온 편지들을 일일이 챙기고 전화로 전해오는 이산가족의 사연을 낱낱이 메모해 북한의 가족들에게 이를 꼭 전하겠다고다짐했다. 김씨는 66년 대남공작 요원으로 남파돼 검거된 뒤 33년동안 옥중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2월 석방됐으며,현재 다른 비전향 장기수 3명과함께 통일의 집에 살고 있다. 가족으로는 108살 동갑의 부모와 부인(64),돌을 갓 지난 뒤 헤어졌던 아들(36),누나 3명 등이 있으며 현재 평양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한민족 하나로 남북이산상봉/ 평양서 여동생 만난 呂寅烈씨

    “여동생을 만나면 제일 먼저 눈물로 사죄할 겁니다” 황해도 은율에 두고온 막내여동생 여정숙씨(60)를 만나기 위해 15일방북 버스에 오르는 여인열(呂寅烈·81)씨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1·4 후퇴때 “같이 가겠다”며 매달리는 여동생을 떼어놓고 내려와평생을 죄책감으로 살아왔다는 여씨.그는 “내 옆구리를 붙잡고 ‘데려가달라’며 눈물을 쏟던 9살짜리 막내에게 총알 탄피로 만든 연필칼을 쥐어주며 억지로 떼어놓고 왔다”면서 “가족을 대표해 여동생에게 사죄하러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당시 여씨 가족은 인민군들이 마을의 남자들을 의용군으로 차출하면서 가족들을 다 죽인다는 소문에 허겁지겁 인근 ‘초도’란 섬으로피했다.하지만 급하게 떠나느라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막내여동생은 그대로 남겨두었다.당시에는 ‘1주일이면 다시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애써 위로했지만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면서 “2남2녀중 유일하게 북에 떼어놓은여동생이 굶어죽지 않고 살아만 있어도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여씨는 “내가 최종 방북자 100명 안에 들자 온 집안이 기적이라며 부둥켜안고 울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심봉사가 딸을 만나러 가는 심정’이라는 여씨는 “아직 부친(여석준·100·전북 군산시나운동)이 생존해 계시는데 아버님도 같이 동생을 상봉할 수 있게 된다면 더이상 소원이 없겠다”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는 집안의 막내로 ‘이쁜이’라고 불리며 집안의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하자 “집안의 보물이니 꼭 데려와야 한다”며 눈물을 쏟아냈다고 여씨는 전했다. 특별취재반
  • 남북이산상봉/ 北 최고 인민화가 鄭昶謨씨

    “춘희야,남희야.이게 얼마 만이냐.정녕 50년 만이냐” 북한 최고의 인민화가로 활동중인 정창모(鄭昶謨·68·만수대창작사인민예술가)씨는 15일 여동생 춘희(61)·남희(53)씨를 만나는 순간두 동생의 이름을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오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감싸 안고다시는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듯 비벼댔다.50년전 다정했던 오누이로돌아간 것처럼. 정씨는 여동생 춘희씨가 “어머니는 오빠를 잃은 고통에 하루도 마음 편히 사신 날이 없었다”며 부모님의 손때가 묻어있는 문갑과 화분을 건네자 얼굴을 감싸쥐며 오열했다. 정씨는 “50년 세월이….50년 세월이….원망스럽다”면서 반세기의생이별을 한탄하면서 “어머님은 언제 돌아가셨더란 말이냐.아들이이렇게 왔는데”라며 눈물을 감출 줄 몰랐다. 정씨는 6·25전쟁 당시 전주북중(현 전주고) 5학년때 의용군에 입대,월북했으며 평양미술대학 졸업후 공훈예술가를 거쳐 89년 인민예술가 반열에 올랐다.정씨는 현재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과 국가작품심의위원 등을 맡고있다.정씨의 76년 작품 ‘비봉폭포의 가을’은김일성 주석의 집무실인 금수산의사당에 걸려있다. 정씨의 작품은 북한작가로는 처음으로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전시된다. 황수정기자 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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