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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5’ 이후의 북한] (3)북한 대학생들

    9월3일.평양에서 맞는 두 번째 일요일이었다.며칠전부터 안내선생들을 졸라오던 대로 대동강 유보도(강변공원)에 나가 소풍나온 시민들을 만나보기로 했다.오전 9시30분 대동강변에 우뚝 서 있는 높이 170m의 주체탑에 올랐다.주체탑 일대는 널찍한 강변공원으로 꾸며져있어 휴일이면 많은 시민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놀러 나온다.주체탑에서 내려다본 대동강에는 양쪽으로 높이 150m의 분수가 치솟고 있었고 보트와 오리배들이 가득 떠다니고 있었다.맞은편의 김일성광장에서는 당창건 55돌 기념 카드섹션 연습이 한창이었다.총지휘자의 목소리가 주체탑 위까지 들려왔다.“다음은 ‘자력 갱생!’ 오자 내지 말아야 겠습니다…”. 어디선가 육중한 종소리가 들려왔다.10시 종이라 했다.카드섹션 연습이 끝나고 시민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유보도로 내려와 강변을 걷는데 통기타 소리가 들려왔다.남녀 대학생들이 여기저기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한 무리의 학생들에게 다가갔다.처음 말을 붙이자 다소 낯설어 하는 표정들이었으나 안내선생들이 기자 일행을“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취재하러 온 남조선 기자들”이라고 소개하자 이내 얼굴이 환해졌다.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4학년 학생들인데 전날밤 당 창건 55돌 횃불행진 야간훈련을 성공리에 마친 기념으로 놀러나왔다고 했다. “정치경제학부에는 어떤 과들이 있습니까?” “정치경제학과,계획경제학과,경제조정학과,재정금융학과,무역경제학과 등 5개 학과가 있고 학생수는 1,000명쯤 됩니다.” 가만 보니 유난히 붙어앉은 남녀 학생이 있었다.남학생에게 물었다. “옆에 앉은 친구와는 특별한 관계입니까?” 폭소가 터졌다.남학생은 얼른 대답했다.“기자선생님이 아주 예리하게 보셨습니다”.그러나 옆의 여학생은 “아닙니다”하면서 연신 손을 내저었다.순간 남학생이 여학생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소리쳤다.“넌 내것이야!” 모두들 웃어대다가 한 남학생이 말했다.“난 없습니다.통일되면 남쪽 처녀에게 장가가겠습니다”.그는 정치경제학과 4학년 한명철(25)이라고 했다. “말나온 김에 하나 물어봅시다.북에서는 여학생들이 남학생들 마실물도 떠다준다는데 사실입니까?” 다시 웃음보가 터졌다.남학생들이 말했다.“그런 거야 여동무들이직접 말해야지 뭐.” 기자옆에 앉은 한 여학생이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는 평범한 일 같은데 선생님이 새삼 물으시니 뭐라고 답해야할지…남동무들이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교실청소 깨끗이 해놓으니까수고했다고 물 떠다주는 건데….” “그럼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위해 하는 일을 한 번 대보세요.” 한 남학생이 호기있게 입을 열었다.“우리 학급에 여자가 6명 되는데 3·8부녀절 때는 꽃다발도 갖다주고 식당 조직도 하고….” 다른 학생들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어댔다. “왜 웃어요?” “저 동무 말하는 거 좀 보라요.아니 부녀절에 처녀들한테 뭘 준다구?” 웃음소리에 인근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구경왔다.김형직사범대학과김책공과대학 학생들이었다.대동강 위를 떠다니던 유람선이 선착장에들어왔다. 모두들 유람선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비용은 1원이었다.이번에는 학생들의 질문공세에 기자가 답변하는 입장이 되었다.경제학부 학생들이어서인지대학등록금,대졸초임,집세,취업문제 등 남한의 경제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남한 대학생들이 ‘북녘산하답사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자 “남녘 학우들이 언제쯤 평양에 오는가”라며 큰 관심을 보였다. “6·15 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명철 학생이답했다.“이번 6월 김대중 대통령께서 평양에 오신 것도 반갑지만 북과 남의 두 수뇌분들이 역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을 채택하신 데 대해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우리 청년학생들도 북남공동선언을 이행하는데 모든 것을 다 바칠 결심으로 있습니다”. 그는 “남의 청년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잊지 않았다. 점심은 염치불구하고 학생들이 저마다 싸온 도시락을 얻어 먹기로했다.김밥,물이 많은 열무김치,계란말이,오리불고기,타조고기,도라지무침,고사리무침,삶은 달걀 등 오랜만에 먹는 가정식 음식들이었다. 타조고기가 이색적이었다.평양에 타조목장이 있는데 타조 한 마리는120㎏,알도 1∼2㎏이나 나가 하나면 한 가족이 먹는다고 했다. 점심이 끝나자 오락회가 벌어졌다.‘콩깍지놀이’였다.양손으로 무릎 치고 손뼉 치고 세 번째 박자에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콩’‘깍’‘지’를 돌아가며 외치는데 굉장히 빠른 속도로 돌려 박자나 가사가 틀리면 걸리는 놀이였다.세 학교 학생이 섞여서 놀다보니 학교마다 특색이 있었다.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은 말이 기본이라,걸려도 말 한마디 하고 노래를 불렀으며 김형직사범대학 학생들은 재기발랄하고 재주가 다양했다.김책공대 학생들은 총명해 보이는 얼굴들이지만다소 순발력이 떨어져 맡아놓고 걸리는 축이었다.그들이 걸려들 때마다 김형직사대 학생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러댔다. “어서어서 나오세요! 안 나오면 졸장부!”.여학생들이 집단으로 나와 “여성은 꽃이라네,나라의 꽃이라네…”라는 노래를 합창하자 남학생들이 슬그머니 나와 백코러스를 넣었다.“할머니는 떼놓고,할머니는 떼놓고…” 한바탕 춤판을 벌인 후 유람선이 선착장에 닿았다.헤어질 시간이었다.학생들은 저마다 술병을 들고 이별주를 권하고 공책을 꺼내 말 한마디 남겨 달라고 했다.배에서 내려 오랫동안 악수를 나누었건만 학생들은 승용차까지 따라와 눈물을 글썽였다.“통일되는 날 꼭 만납시다”를 거듭 외치는 깨끗한 얼굴들을 뒤로 하고 떠나면서 기자는 서울의 얼굴들을 떠올렸다.한번 만났다 하면 1차,2차,3차,4차를 거듭하면서 새벽녘까지 헤어지지 못하고 몰려다니곤 하는 그들.정 많고 흥많은 면에서도 남과 북은 지독하게도 닮아 있었다. 신준영기자 현지르포 junyoung@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소중하고 특별한 만남

    우리는 끊임없는 만남 속에 살아가고 있다.우리는 만남을 통해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되며 어떤 특별한 만남에 의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지난 6월 13일 평양에서는 우리 민족에게 소중하고도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분단 55년 사상 처음으로 남북 정상간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정상간의 첫 만남으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열기 시작하였으며 역사의 물줄기를 불신과 대결에서 평화와 화해로 돌려놓는 민족사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였다. 불교의 팔고(八苦)중에는 애별리고(哀別離苦)가 있다.부모와 형제,부부 등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을 말한다.우리 민족은 지난반세기 동안 이러한 아픔과 한을 간직한 채 살아왔다. 두 정상간의만남을 계기로 온 겨레의 심금을 울린 이산가족들간의 해후,전 세계인을 감동시킨 시드니 올림픽 동시입장 등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위한 만남들이 이어지고 있다. 제3차 남북장관급 회담이 내일 제주에서 열린다.남북의 대표들은 지난 1,2차 회담에서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향한 진전을이루기 위해머리를 맞대고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만남이 소중하고 값진 것은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다.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장기적인 구상과 먼 안목으로 결코 서두르지 않고 내실있는 실사구시적 협의를 통해 한반도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위한 틀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둘 것이다. 또한 상호 양보와 협력의 정신에입각하여 상대방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 실질적인 이익이 되는 생산적이며 상생(相生)의 만남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남과 북의 만남은 분단 55년이라는 틈을 가진 ‘현실과 현실’의 만남이다.더욱이 통일에 대한 일시적인 감상과 열정만으로는 서로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따라서 우리 대표들은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과 현실을 직시하는 차가운 머리’를 가지고 신중하게 협상에 임할 것이다. 남북 정상간의 만남으로 조성된 화해와 협력의 흐름이 한반도 평화와 도약의 창조적 만남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온 겨레의 지혜와 의지를 결집해 나가야 한다.서로 힘을 합할 때 한반도는 냉전의 외로운 섬이 아닌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가교,그리고 새천년 세계 평화와 번영의 시발지(始發地)가 되는 희망의 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올해는 대희년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우리 민족에게 기쁨과 희망으로 넘친 ‘만남’의 한 해인 것 같다.남과 북은 만남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공통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내일의 만남이 자꾸 기다려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朴在圭 통일부장관
  • 우주과학자 황보 한 박사 6·25체험 離散소설 펴내

    우주과학자 황보 한(皇甫 漢,한국통신 위성운용단장) 박사가 과학자로서의 직관과 자신의 인생경험 및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바탕으로소설 ‘별들의 만남’을 출간했다. 황보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위성 무궁화위성 1호에서부터 3호에 이르기까지 발사의 실무사령탑을 맡았던 우리나라 위성산업의 선구자.‘별들의 만남’은 어릴 때 겪은 한국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남북 분단시대에 이별의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산가족의 한많은삶을 그리고 있다. 특히 우주과학자로서 소설속에서 최근 북한에서 대포동 로켓이 발사한 광명성1호의 실체를 분석,궤도를 벗어난 인공위성임이 확실하다는 점도 밝히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보이스사 간행,345쪽. 김태균기자 windsea@
  • 장용호 “할머니 저 금메달 땄어요”

    “할머니에게 금메달을 바칩니다” 개인전 랭킹라운드 1위를 기록했으나 지난 20일 16강전에서 탈락한장용호는 고향 전남 고흥의 할머니(박갑덕·80)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걱정마세요.단체전에선 꼭 금메달을 따낼께요”.겨우 마음이 놓였다.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다. 엄마 아빠 없는 하늘 아래 할머니는 늘 든든한 지주였다.곤궁한 살림에 고사리를 캐고 우렁을 잡아가며 손자의 활솜씨를 대견해하며 뒷바라지 해온 할머니.4년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따낸 단체 은메달에도대견해하며 ‘우리 용호 장하다’고 껴앉아주시던 할머니. 95년 돌아가신 할아버지 산소에 금메달을 바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가슴이 허전한 장용호.활을 잡기 2년전인 과역초등학교 2년때 찌든 생활고로 집을 나간 어머니.그리고 아버지마저 돈벌어 오겠다고 멀리 떠나 버린 뒤 어린 용호는 결심했다. 성공하면 부모님도 나를 찾으시겠지….4년전 “금메달을 따내 태극기를 휘날리면 엄마도 보시겠지…”하며 올림픽에 출정했다.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눈물과 회한에 얼룩진 세월을 되돌아보며 아버지를용서했지만 곁에 있지는 못했다. 또 이별이었다.연락처도 모른다.원망어린 방황의 시간 끝에는 오로지할머니와 두 살 터울의 형(국태씨)만이 있었다.하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연락이 없다. 마침내 금메달을 따냈으니 한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아,어머니.목놓아 불러보고 싶지만 할머니의 얼굴만 떠오른다. 김한석기자 hans@sportsseoul.com
  • 레이건 부인 낸시여사 남편 연애편지 책으로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를 앓고 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가 결혼 48주년을 맞아 남편이 보낸 연애편지들을 모아 ‘로니,사랑해요’(랜덤 하우스간)라는 책을 7일 펴냈다. 52년 결혼하기 전 헐리우드 배우 시절부터 레이건 전대통령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공표한 1994년까지 레이건이 낸시 여사에게 보낸 편지와 장난기어린 낙서들이 포함돼 있다.편지들에는 세월의 무게에도변함없는 두 사람의 강한 사랑이 그대로 배어난다.특히 레이건 전대통령이 낸시 여사에 대한 사랑을 웬만한 문인들보다 다양하게 표현해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낸시 여사는 이 책에서 치매를 “참으로 길고 긴 이별”이라는 말로괴로운 심정을 털어놓았다.그는 치매는 “점점 더 악화되는 질병이며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낸시 여사는 레이건 전대통령이 치매 판정을 받은 이후의 삶을 묘사한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남다른 삶을 살았다…그러나 동전의 다른 한쪽 면은 생활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적었다. 김균미기자 kmkim@
  • 새 비디오/ ‘허공에의 질주’

    영화 ‘아이다호’에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를 갈구하던 젊은이,리버 피닉스.‘허공에의 질주’(원제 RunningOn Empty)에서는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고 23세로 요절한 성격파 배우 리버 피닉스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부초처럼 떠돌아다녀야 하는 도피자 가족의 아픔을 그린 이 영화는흔히 접하는 미국산 영화들과는 다른 미덕을 갖추고 있다.무엇보다사회운동 자체를 여과없이 소재로 끌어들였다는 점이 그렇고,이를 액션도 아닌 가족드라마로 만들었다는 점이 또 그렇다. 네이팜탄 사용을 반대해 군사실험실을 폭파한 아더와 애니 부부는 두아들과 함께 FBI에 쫓기며 숨어산다.6개월에 한번씩 이름과 머리색깔,눈동자 색깔까지 바꾸며 미래없이 도피생활을 하던 이들 가족에게더 큰 시련이 닥친다.고교생인 큰 아들 대니(리버 피닉스)의 피아노재능을 발견한 음악교사 필립스는 줄리어드 진학을 권하고, 갈등하던아더 가족은 아들의 장래를 위해 독립을 허락한다.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갈까봐 소리나지 않는 건반을 두드리는 대니,다시 만날 기약없이 끝내 이별하는 가족이야기가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가족애 속에 얼핏얼핏 묻어나는 사회성 짙은 메시지는 80년대쯤국내 개봉됐더라면 주목받았을 듯하다.‘오리엔탈 특급작전’을 연출한 시드니 루멧 감독의 88년작.워너홈 비디오 출시. 황수정기자
  • [기고] 북한에 바란다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오늘 북송된다.우리말사전에는 ‘비전향(非轉向)이란 말이 없다.‘전향’만 있다.‘전향’은 ‘현실사회와 배치되는 자기의 사상을 그 사회와 맞게 바꿈’으로 설명되고 있다.‘비전향’은 ‘전향’의 반대말,따라서 뜻을 풀이하면 ‘현실사회와 배치되는 자기의 사상을 그 사회와 맞게 바꾸기를 거부함’이 된다.결과적으로 이번에 북송되는 63명은 현실사회(한국)와 배치되는 자기의사상(공산주의)을 우리 사회와 맞게 바꾸기를 거부한 장기수들인 셈이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을 ‘미전향 장기수’로 불렀다.아직까지 전향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전향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북한에서는 시종일관 ‘비전향자’로 호칭했다.그러므로 63명은 마지막까지 전향을 거부,‘신념의 강자’로서 북한의 기대를 충족시켜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북송자 63명 가운데 14명은 빨치산 출신이고 나머지 49명은 남파간첩이다.빨치산이나 남파간첩 모두 우리체제의 전복을 꾀했던 사람들이란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정부가 아무 조건도 달지 않고 이들을북한으로 돌려보내기로 한 것은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이기도 하지만어디까지나 인도주의에 입각한 것이다.대부분이 고령인데다 죽기 전에 가족을 만나게 하는 것이 인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온갖 부담’을 무릅쓰고 이들의 북송 결정을 내린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북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배려와 대다수 우리 국민들의 묵시적 동의에 따른 것이지 결코 사상범으로서의권리에 의해서가 아니다.체제와 이념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한 채 살아야 하는 고통과 슬픔을 해소하는 것이 진정한 동포애이자 인도주의정신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장기수 북송과 관련,북에 당부하고자 한다.절대 ‘이인모 노인의 경우’처럼 하지 말라는 것이다.지난 93년 3월19일 당시 정부는 ‘민족이 이념보다 우선한다’면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을 북송했다. 북한은 이씨의 송환 직후인 3월27일 조평통 부위원장 전금철(현재 남북장관급회담 북측대표 전금진)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이 성명은이씨를 보살펴준 남한의 각계 인사들에 대해 깊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그러나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북한은 오히려 이씨의 건강진단 결과를 갖고 우리 정부가 가혹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심지어 “문둥병 환자가 덮던 피고름 묻은 이불을 제공했다”고까지 주장했다.그뿐 아니다.북한은 이 노인을 ‘사회주의 승리의 화신’으로 치켜세우고 대남 비난의 전도사로 활용했다. 한 마디로 우리 정부의 선의(善意)를 악의(惡意)로 갚은 것이다. 최근 북한언론은 대대적인 장기수 환영준비가 진행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그것은 평양당국의 자유다.그러나 우리의 선의를 욕보이고‘무고한 양민을 장기수로 몰았다’는 식의 중상·비난을 해선 안된다.왜.그같은 대응이야말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천명된 화해정신을깔아 뭉갤 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대북 신뢰를 허무는 결정적인 원인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아울러 북한당국도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한 남북공동선언 취지에 입각,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런 성의 표시가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동인(動因)이 되고 그런동인이 축척되어야 통일의 길이 앞당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남북 화해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면 우리 노력에 북한의 성의가 보태져야한다.이 점 유념해주기를 바란다. 장수근 자유총연맹 연구실장
  • 93세 노모·北送아들 애끊는 이별

    “꾹 참고 안 울어.내가 눈물 보이면 아들이 맘 편히 못가잖아.아들하고 훈련했어” 먹장구름이 낮게 드리워진 1일 낮 서울 종로구 계동의 한 음식점 앞.북송을 하루 앞둔 신인영(辛仁永·71)씨의 노모 고봉희(高鳳喜·93)씨는 주름진 손으로 연방 눈자위를 부비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집을 나오기 전 “골수암으로 투병 중인 아들에게 내 손으로 지은따뜻한 밥을 먹이며 함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다”면서 “한번도 못본 며느리와 손주들 얼굴을 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하며 정갈하게 다린 와이셔츠를 챙기던 고씨였지만 막상 헤어질 때가되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며느리에게 보내는 한복과 40년 동안 간직한 금브로치 등 선물, 아들의 짐꾸러미를 챙기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없었다.지난 밤에는 아들과 마지막으로 한 잠자리에 들어 손을 잡고밤을 새다시피 했다. 전북 부안이 고향인 신씨는 서울대 상대 재학 중 6·25때 인민군에징집돼 월북,김일성대를 졸업한 뒤 지난 67년 공작원으로 남파,검거됐다.3남5녀의 장남인신씨가 98년 3월까지 30여년 동안 옥살이를 하는 동안 노모는 옥바라지를 하면서 아들과 함께 살 날만을 기다려 왔다. 다른 장기수들과 함께 식사를 마친 뒤 통일부가 지정한 장소로 떠날 때가 되자 신씨는 “어머니,이렇게 헤어지지만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예요”라면서 “내년 봄 북으로 초대할 때까지 건강하세요”라고어머니를 위로했다. 고씨는 “그래,그래 나는 서운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니 나는 괜찮아” 하면서도 아들 신씨가 얼마 전 선물한 금반지를 낀 손으로 계속 눈자위를 훔쳤다.신씨가 “제 생각이 나시면 이 반지를 보세요”라면서 ‘만수무강 신인영’이라는 글자를 새겨 선물한 두 돈짜리 금반지다. 신씨는 배웅나온 형제와 친지들에게 “다시 만날 때까지 어머니를잘 모셔달라”고 신신당부한 뒤 뒤돌아섰다.아들의 뒷모습을 힘 없이바라보는 구순 노모의 눈가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안동환 홍원상기자 sunstory@. *비전향장기수 北送 의미. 북송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2일 송환되는 것은 반세기동안 우리 민족을 옥죄고 있던 냉전구조의 해체를 본격 촉진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북송자 63명은 해방 전후 빨치산으로 활동했거나 60년대 남파된 간첩들이 대부분이다.이러한 인물들을 기꺼이 보내주기로 한 것은 우리사회의 자신감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반증으로 여겨진다. 정부는 체제 선전에 집착하는 북측의 오랜 숙원을 ‘화끈하게’ 풀어줌으로써 앞으로 국군포로,납북자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영행사 할까 93년 3월 이인모(李仁模·현재 83세)씨 송환때 북측은 판문점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벌여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정부는 최근의 남북 화해 분위기를 감안,이번엔 자극적인 행사를 자제토록 북측에 당부했다는 후문이다.그러나 평양으로 향하는 연도변이나 평양 시내에서는 대대적인 행사가 상당 기간 잇따를 전망이다.63명이 무더기로 ‘이념의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북측으로서는주민들을 사상적으로 결속시킬 최대의 호재랄 수 있다. ■어떤 대우 받을까이인모씨의 전례에 비춰 보면 63명은 북한에서최상의 대우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북한은 이씨에게 ‘김일성훈장’과 ‘국가훈장 1급’을 주고 ‘공화국 영웅’ 칭호를 부여했다.그가다녔던 양강도 파발인민학교를 ‘이인모학교’로 개칭했으며,이 학교에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친필 비석과 이씨의 반신상을 세우기도 했다.병 치료를 위해 96년 그를 미국에 보내기도 했다. 이씨는 현재 부총리급 간부들에게 제공되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 40대 공무원 ‘어머니’ 사랑 詩에 담아

    전북도 자치행정과 양해완씨(44·행정 7급)가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집을 최근 펴냈다. 130여쪽의 이 시집에는 문학을 좋아하는 그가 평소 바쁜 생활 속에서 틈틈히 써온 69편의 시가 실려 있다.1부 ‘어느 가을날의 여유’에서는 일상에서의 사랑과 이별을 다루고 있고,2부 ‘어머니’에서는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팔순이 넘은 어머니에 대한 소중함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3부 ‘덧없는 세월’에서는 평소 겪는 정겹고 애틋한 삶의 단상들을 써내려가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문학도를 꿈꿔온 그는 시작(詩作)에 대한 열정이 지금도 식지 않아 밤마다 틈틈히 습작을 통해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있다.불우 어린이에 대한 후원 등 평소 그의 선행을 잘 아는 출판사측에서 시집 인쇄비용도 절반으로 깍아줬다.이에 대한 보답으로 시집 판매대금은 모두 불우이웃 돕기에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주 조승진기자 redtrain@
  • 시드니 8강 ‘新 삼각편대’에 맡겨라

    올림픽축구대표팀의 ‘신 삼각편대’가 96애틀랜타올림픽 축구 우승국인 나이지리아 격파의 선봉에 선다. 김도훈-이천수-최철우로 새로 짜인 공격진이 29일과 새달 1일 오후7시 성남종합운동장과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잇따라 열릴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을 통해 실전테스트를 받는 것.이들은 취약점으로 지적된 한국팀 공격라인의 새 희망으로서 시드니올림픽 8강의 기대주들이다. 이들 신 삼각편대의 등장은 가뜩이나 불안한 공격라인에 잇따라 균열이 일어난데 따른 것.설기현은 허리를 다쳐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하고 한방이 기대된 이동국마저 오른쪽 무릎부상에서 회복되지 못해나이지리아전 출전이 어려워졌다.특히 설기현은 올림픽 개막 직전까지 교체가 가능한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따라서 이들은 설기현 이동국이 컨디션 회복에 실패할 경우 올림픽본선에 그대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 가운데 김도훈은 올림픽대표로서 첫 출전인데다 최전방 골잡이라는 중차대한 임무까지 맡게 돼 부담이 가장 크다.지난달 중국과의A매치에서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점도 부담스럽다.이번에도 활약하지 못하면 어린 선수들과의 호흡에 문제가 있다는 평가 속에 국제대회와는 영영 이별을 고할 지도 모른다. 게임메이커였던 이천수 역시 이번에 본격적인 골잡이 대열에 합류한다.지난주 올림픽 엔트리 구성 이후 허정무 감독으로부터 골잡이 조련을 받은 이천수는 김도훈 최철우의 한발 뒤에서 개인돌파에 의한슈팅과 미드필드 전방에서의 기습적인 슈팅을 전담할 전망이다.상황변화에 따라 김도훈과 투톱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 최철우는 김도훈과 짝을 이뤄 투톱으로 나설 예정이다.삼각편대 가운데 최장신(184㎝)인 만큼 제공권 장악 임무를 도맡게 된다.또 공격수 3명 가운데 올림픽대표로서의 출장 횟수와 득점기록(21회 7골)이가장 많아 득점에 대한 기대를 모은다. 허감독은 나이지리아전에서 이들 삼각편대와 좌우 윙백을 맡을 송종국 박진섭,게임메이커 고종수간의 호흡일치에 주안점을 둘 예정이다. 왼쪽 윙백이었던 이영표는 턱뼈 부상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출장이 어려운 형편이다. 한편 나이지리아는 와일드카드 전원을 포함한 주전 6명이 유럽 프로리그에 묶이는 바람에 16명만이 28일 입국,이날 저녁 성남종합운동장에서 몸을 풀었다. 박해옥기자 hop@
  • [사설] 문화교류 흠집내기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뒤 남북 문화교류가 활기를 띠더니 올들어서는 매우 활발해졌다.최근 나온 문화관광부 자료를 보면 공연·전시·영화·방송 등 문화의 영역에서 이미 10건이 넘는 교류가 이루어졌다.국민 관심이 컸던 것만을 꼽아도 북한국립교향악단 공연,평양교예단 재공연,영화 ‘불가사리’개봉 등이 바로 머리에 떠오른다. 그런데 이같은 교류가 모두 북한 작품의 남쪽 나들이라는 사실을 놓고 일부에서는 ‘북한문화의 일방적인 남한 유입’이라고 지적하고있다.아울러 “문화교류에서도 남북은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 주장은 마치 ‘북한문화를 접하는 만큼 우리가 그쪽 이념에 물들 수 있으니 우리도 같은 정도로 북한에 이쪽 문화를 전해야 한다’는 논리처럼 들린다.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국립교향악단이나 평양교예단의 공연을 보고 그 뛰어난 기량에 찬사를 보낼지언정 그 이유만으로 북쪽 체제에 기울어지는 사람은 이 사회에 없을 것이다.요즈음 ‘반갑습네다’‘휘파람’같은 북한가요가 유행하지만 우리유행곡인 ‘이별’‘내 마음은 당신 곁으로’ 등이 북한에서 진즉에 큰인기를 끈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적인 여건도 고려해야 한다.우리가 북한 국립교향악단을 초청할 수 있었던 것은 제반 경비를 부담할 만한 경제력을 갖고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불가사리’를 수입해 상영한 것은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체제와 경제사정이 다른 북한에 대해 ‘상호주의’를 앞세워 상응하는 조처를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가령 ‘상호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북한 작품을 하나도만나지 못했을지 모른다.‘북한이 거부하니까 손해보지 않기 위해’북한 작품 감상을 포기하는 일이 옳은가,아니면 우리라도 먼저 북의문화를 접하는 게 나은가는 깊이 생각해 볼 것도 없는 사안이다.북한과의 교류에서는 계량적인 등가성(等價性)만을 고집하며 그에 따라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냉전적 사고방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다른 분야에서 그랬듯이 문화예술 교류에서도 우리는 북한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 문화를 북한에 소개하는 데 조급할 이유는 없다.문화는 물과같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남북간에 인적·물적 교류가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문화는 서로 넘나들게 마련이다.그때 양쪽은 전파력이 강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융합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문화교류가 민족의 동질성을 되살리고 정서의 통합에 가장 유효한 수단임을 잊지 않는 일이다.그리고 우리는 이제서야그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윤영자 할머니 “비전향 장기수도 고향 간다는데…”

    부모 형제를 두고 월남한 할머니가 남쪽에서 얻은 아들마저 납북돼‘이중(二重)이산’의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기간 내내 TV를 아예 끄고 살았어.북에 두고온가족과 북에 끌려간 큰아들 생각에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윤영자(尹英子·69·대구시 동구 백안동)할머니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누구보다 소중한 피붙이와 두번이나 찢어지는 생이별을 겪었다. 윤 할머니는 해방되던 해인 45년 14살때 홀몸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며 북의 부모·여동생과 헤어졌고,남쪽에서 얻은 큰아들은 그가 15살무렵인 68년 오징어배를 탔다가 북한에 피랍돼 30년이 넘도록 소식이끊겼다. 일제의 압제,그리고 해방,남북분단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의 고난은할머니의 삶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황해도 평산군이 고향인 할머니는 지난 45년 봄 일제의 ‘근로정신대’징용을 피해 아버지 고향인 전라도 쪽으로 도망갔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가는 우여곡절을 겪던 끝에 6·25전쟁에 휘말렸다. 할머니는 “해방되는 해 집을 떠날때 ‘언니,언니’하며 울던 하나뿐인 여동생만 생각하면 지금도 밥술을 뜨다가도 목이 멘다”고 회고한다. 혈혈단신으로 월남,부산항 도착후 육군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만난 남편과 결혼,두 아들을 낳았지만 할머니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불행했던 결혼생활 끝에 남편과 별거,혼자 서울로 올라와 온갖 궂은 일을 하던중 68년 7월10일 큰아들의 납북은 청천벽력이었다. 술주정으로 뱃일을 자주 못나가는 아버지 대신 당시 열다섯 어린나이로 부산에서 오징어배 ‘가나다호’를 타야했던 큰아들 박종업씨(47)는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북한에 피랍됐다. 지난 82년 남편과 사별하고,작은 아들도 몇년전 결혼시켜 홀로 사는할머니는 “비전향 장기수들도 고향을 찾아간다는데 먹고 살려다 일이 잘못돼 납북된 아들놈은 왜 내려오질 못하는 거여…”라며 울먹였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새달 北送 비전향 장기수들이 남긴 바람들

    “이념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도와준 여러분들의 깊은 동포애를품고 갑니다” “남쪽 사람들의 통일 염원을 북녘에 알리는 디딤돌이돼 다시 이 땅을 밟아야지요” 다음달 2일 북송될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 20명이 송환을 앞두고 이달 초 장기수 홈페이지(nadrk.org/long/)를 통해 남쪽에 남을 동포들에게 ‘통일 염원’을 담은 글을 올렸다.이 가운데 7명의 글을 요약한다(괄호 안은 나이·체포 당시의 본적 또는 주소). ●김석형씨(86·평양시 보통강구역)통일 염원으로 분투하고 있는 사회·종교단체를 비롯한 여러분에게 사랑을 보냅니다.모두 건강하고애국애족의 기치를 높이 들 것을 확신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갑니다. ●김종호씨(87·평양시 모란봉구역)비록 여러분 곁을 떠나지만 대구도 조국 땅이요,평양도 조국 땅인데 돌아간다고 변할 것이 있겠습니까?화해와 같은 은혜를 잊을 수가 없지요.곧 통일의 그날이 오리라믿으며,다시 돌아와 못다한 인사를 하겠습니다. ●손성모씨(70·전북 부안군)통일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오늘은 비록 떠나는심장과 보내는 심장이 이별 앞에서 통곡하지만 이것은 내일 영광의 통일광장에서 얼싸안고 만나기 위한 시작이며 첫 걸음입니다. ●안영기씨(71·평양시 동대원구역)가까운 날에 얼싸안고 춤추며 노래 부르는 상봉의 날이 오기를 빕니다.통일을 위해 마지막 정열을 바쳐 나갑시다.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하나가 된다는 것은 더욱커지는 것을 뜻합니다. ●오형식씨(68·강원도 원산시)남쪽은 ‘친북’으로,북쪽 사람들은‘친남’으로 통일을 향해 매진합시다.북남 서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꿔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실정을 정확히 알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리경구씨(70·충남 공주군)우리 서로 지난날의 잘못을 탓하지 맙시다.6·15 남북 공동선언의 옥동자를 정성껏 키워 나갑시다.65세 때첫 배우자로 맞이한 아내와 동행하지 못하게 돼 마음은 무겁지만 뜻있는 분들의 성원으로 조속한 재결합이 있기를 바라면서…. ●홍경선씨(75·충남 천안시)최근 인터넷을 시작했는데 ‘진작부터이런 게 있는 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습니다.북쪽으로 돌아가 계속 컴퓨터를 하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갑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이산 상봉 후유증’ 시달린다

    8·15이산가족 상봉자들이 ‘짧은 만남,기약없는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식욕부진,불면증에 시달리거나 탈진해 병원에 입원하는 사례도 있다. 일부 상봉자들은 친목계를 만들거나 편지 왕래,면회소 설치에 대한희망 등으로 후유증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다. 오빠 리돈씨(71)를 서울에서 만난 이숙례씨(69·서울 강남구 청담동)는 “너무 긴장하고 울어서 그런지 목이 쉬고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큰형 박섭(朴燮·74)씨를 다시 북으로 떠나 보낸 동생 병연(炳軟·63·양천구 목동)씨도 “기다린 시간에 비해 만난 시간이 너무 짧았다”면서 “아쉬움이 너무 커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평양에서 아내 송옥순씨(75)를 만나고 돌아온 최경길(崔京吉·78·경기도 평택시 팽성읍)는 지난 18일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지독한 몸살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큰형 전덕찬씨(72)를 서울에서 만난 동생 영찬(永燦·55·성북구 장위동)씨는 “친구들과 바둑을 두거나 등산을 가는 등 일부러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빠른 시일 안에 면회소가 설치될 것이라는 얘기를 위안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평양에서 5명의 동생들을 만났던 장두현(張斗現·74·경기도 화성군 장안면)씨는 “혹시나 해서 북에서 동생들 주소를 적어 왔는데 편지 왕래라도 된다면 후유증도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정희(張貞姬·71·여·양천구 신월동)씨도 “방북 할머니들끼리 친목계를 만들어 서로를 위로하고 적십자회비도 꼬박꼬박 내며 통일을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상일(李相壹·41)박사는 “상봉자들이 대형사고 등으로 생존의 위협을 겪은 뒤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증후군’을 겪고 있다”면서 “충격 뒤 3일∼6주 동안 가족들이 보살피고 스스로 봉사활동 등을 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권유했다. 노인성 치매전문의 이강희 박사(42·강북신경외과)도 “후유증을 극복하는 방법은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충고했다. 안동환 윤창수 홍원상기자 sunstory@
  • ‘北送 장기수’ 남한에서의 마지막 여행

    “예정된 이별이 아쉽고 슬프지만 하나된 조국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9월2일 북송될 장기수들이 19∼20일 이틀동안 남한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했다.이들을 후원해온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및 양심수후원회가 마련한 이번 나들이에는 북송 장기수 22명,남한에 남을장기수 9명과 민가협 회원 등 100여명이 동행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 20일 충주시 안송면 ‘좋은 사람들의 모꼬지 분교터’에 모인 북송 장기수들의 얼굴에는 꿈에 그리던 고향에 간다는설렘과 남쪽의 지인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이 교차했다. 5년 동안 장기수를 보살펴온 김은하(金恩河·29·여·교사)씨는 노인들을 끌어 안으며 “아버지,정말 다시 볼 수 있을까요.건강하세요”라며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19일 오후 9시 분교 대강당에서 열린 환송식 송사에서 민가협 임가란 상임의장(71·여)은 “비전향 장기수는 아픈 우리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왔다”면서 “북에 가서도 못다한 통일운동을 계속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답사를 한 비전향 장기수 우용각(禹用珏·72)씨는 “6·15선언은 면면히 이어져 오던 통일운동이 활화산처럼 터져나온 것”이라면서 “통일의 그날까지 계속 전진하자”고 힘차게 외쳤다. 민가협 회원들은 북에 가서도 통일을 위해 일해 달라는 뜻으로 자신들의 목요집회때 항상 쓰던 보라색 수건을 장기수들의 목에 걸어주었다.이날 밤 11시쯤 열린 캠프파이어에서 참가자들은 각자의 소원을종이에 적어 불에 태웠다.‘조국통일’이라고 쓴 종이에 불이 붙자‘우리의 소원’을 합창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북에 있는 가족들이 과연 잘 살고 있을까.나를 기억이나 할까…”두런두란 나누는이야기 소리는 밤이 깊도록 끊이지 않았다. 30년을 복역하고 출소해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장기수 7명과 함께 ‘우리탕제원’을 운영하는 조창손(曺昌孫·70)씨는 “북에서 떠날때 젖먹이였던 딸과 아들이 지금은 마흔 셋,마흔 둘이 됐을 것”이라면서 “아비 노릇 못한게 한스럽지만 손자와 손녀를 꼭 안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양심수후원회 권오헌(權五憲·63) 상임의장은 “할아버지들이 떠나면 쓸쓸하겠지만 30∼40년 가까이 온갖 유혹에도 자신의 소신을 지킨분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충주 이창구 조태성기자 cho1904@
  • 생이별의 恨 다시 가슴에 묻고…

    “꼭 다시 와 언니,살아 꼭 만나자”“부디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오마니…”“아버지…” 분단 반세기 만에 감격의 재회를 나눈 남북의 혈육은 너무나도 짧은3박4일을 보낸 18일 생이별의 한을 가슴에 묻고 다시 북으로 남으로헤어졌다. 50년을 고대해 온 만남의 기쁨도 잠시,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 기약없는 이별 앞에 오열하고 통곡했다.양측 방문단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이들을 보내는 가족들은 붙잡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복받쳐 오르는 설움에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다.서울과 평양이 다시함께 운 하루였다. 류미영(柳美英)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 등 북측 방문단은 이날오전 대한항공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갔으며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남측 방문단도 이 비행기를 타고 오후 서울로 귀환했다.남측 민항기가 서행직항로를 통해 서울∼평양을 오간 것은 분단이후 처음이다. 남북은 이날 오전 서울 쉐라톤워커힐 호텔과 평양 고려호텔,김포공항 등에서 방문단과 가족들이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눌수 있도록 배려했다. 장단장은 서울 도착 직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는 비용이 덜 드는방향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측 방문단 중 어머니 생존을 확인하고도 만나지 못했던 량한상씨(69)는 이날 새벽 4시쯤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어머니 김애란씨(87)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특별취재단
  • 北 국립교향악단의 특징

    20∼22일 남한서 역사적인 데뷔무대를 갖는 북한국립교향악단은 어떤 음악을 하고 있으며 연주 수준은 어느정도일까. 분단 50년의 벽은 클래식음악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는지 북한관현악단의 편성이나 연주 레퍼토리는 우리의 ‘정통 클래식’기준으로 보면 생소한 점이 많다. 북한 국립교향악단의 편성은 장새납,젓대,개량대금 등 개량민속악기와 양악기를 적절히 조화시킨 ‘배합 관현악단’으로 이번에 서울에온 상임지휘자 김병화가 개발에 공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의 개량 민속악기들은 탁하고 흐린 '쐐소리'를 없애 청아하고고운 음색을 내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인민대중이 좋아하고 잘아는 곡을 교향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라 선율이 쉬우면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연주하는데 주력한다.국내창작곡과 서양작품을 7대3정도로 섞는 것이 관례다. 이번 공연도 창작곡 위주로 짜여있다.바이올린 협주곡 ‘사향가’는 정사인 작곡의 노래 ‘내 고향을 이별하고’주제에 의한 협주곡.관현악곡으로는 ‘아리랑’(최성환작곡),‘그리운 강남’(안기영 작곡)‘그네뛰는 처녀’(김윤붕 작곡)를 연주한다.‘그리운 강남’은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라네,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으로 시작하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노래가 바탕이다. 북한은 성악의 발성법도 우리와는 다르다.지난 70년 “깊은 정서없이 소리를 힘주어 내지르기만 한다”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비판에따라 ‘목소리를 인위적으로 과장하지 말고 쉽게,유순하고 곱게’내는 새로운 발성법을 채택하고 있다. 재일동포 출신으로 지난 87∼90년 평양음악무용대학서 유학했던 박태영씨(서울시청소년교향악단 단장 겸 지휘자)는 북한국립교향악단의 연주실력이 상당하다고 귀띔한다.‘50년대 거장 므라빈스키가 지휘하던 시절의 레닌그라드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 또한 지난 4월 평양의 봄 축전에 초청돼 협연하고 돌아온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에 따르면 연습량도 엄청나 북한 창작곡은 악보를 거의 외우다시피 연주할 정도라고 한다.창작음악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않는 남쪽 오케스트라와 크게 다른 점이다. 허윤주기자 **
  • 남북이산상봉/ 이산가족이 남긴 말 말 말

    남북한 이산가족들이 상봉기간중 쏟아낸 말의 순위를 꼽자면 ‘어머니’‘아버지’‘오빠’‘형님’ 등 반세기 만에 불러보는 혈육의 호칭이었다.‘통일’‘민족’‘장군님’ 등 분단의 아픔이 담긴 말들도 이들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았다. 3박4일 동안 심금을 울렸던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말을 정리한다. ◆“아버지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보고 싶을 때면 한장밖에 남지 않은 사진을 보고 또 봤어요”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15일 코엑스 집단상봉장에서 류렬씨(82)의 딸 인자씨(59)가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며. ◆“한달만 빨리 만났어도 어머니를 뵐 수 있었는데…” 문병칠씨(68)의 동생 병호씨(64)가 어머니 황봉순씨(90)가 형의 생존소식을 들은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2일 돌아가셨다고 통곡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살아있었어도 조선민족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글은 쓰지 못했을 겁니다” 17일 마지막 개별상봉에서 북한 극작가인 조진용씨(69)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어머니 정선화씨(94)의 손을 잡고 눈물을 쏟아내면서. ◆“만나서 좋으면 뭘해,만나자 이별인데” 북의 남편 리복연씨(73)와 만난 이춘자씨(70)가 마지막 상봉을 못내 아쉬워하며. ◆“나도 김대중 대통령께 감사한다” 개별 상봉장에서 북한의 형이‘우리를 만나게 해준 장군님의 은덕에 감사한다’는 말을 수차례 되뇌자 동생이 남한 사람으로서 응수. ◆“오마니,통일되면 맨먼저 달려오갔시요” 18일 평양으로 떠나는리영수씨(66)가 워커힐호텔 앞에서 어머니 김봉자씨(87)에게 큰절을올리며. 조현석기자 hyun68@
  • 남북이산상봉/ 취재기자 방담

    역사적인 8·15 이산가족 상봉은 세계적인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감히 연출하지 못할 최고의 ‘휴먼드라마’였다.부둥켜안은 이산가족들은 떨어질 줄 몰랐고 가슴은 뜨겁게 하나가 돼 통일의 길이 멀지 않음을 느끼게 했다.3박4일간의 상봉장면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지켜본 취재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감격의 순간을 되짚어본다. ■이번 상봉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15일 첫날 단체상봉이었습니다.북측 방문단의 상봉장소인 코엑스 3층 컨벤션홀은 상봉단 100명과 그 가족 500명 등 모두 600명이 쏟아내는 혈육의 정으로 온 국민의 눈물샘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남측 방문단의 고려호텔 단체상봉은 보다 리얼했습니다.일부 이산가족은 실신하기도 했죠.워커힐호텔프레스센터에서 멀티큐브로 이를 지켜본 취재기자들도 연신 눈가를훔쳤습니다. ■이 와중에 간간히 웃음거리도 있었습니다.단체상봉 순간 한 기자가북측에서 온 할머니에게 “어떻게 만났습니까?”라고 묻자 “어떻게만나긴 어떻게 만나. 여기서 만났지”라고 대답,그 기자를 무색케 했죠.순간프레스센터는 웃음바다가 됐습니다.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라고나 할까요. ■얘깃거리는 많습니다.또 다른 기자가 북측 이산가족에게 “만나니기분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저리 좀 비켜.우리끼리 얘기 좀 하게”라며 귀찮다는 표정이었습니다.인터뷰에 응하는 것보다 가족상봉이 더 중요했던 것이죠. ■평양을 방문한 남측 상봉단은 북측 가족들이 정치적인 발언을 적잖게 해 당황하기도 했습니다.하지만 북측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는모습이 역력했습니다.이몽섭씨(75·경기 안산시 초지동)의 딸 도순씨(55)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준비해주신 선물입니다”며 아버지에게선물을 건넸고 최성록씨(79·대구 서구 비산동)의 딸 영자씨(53)는“50년만에 만난 것은 모두 장군님의 덕분입니다.통일되는 그날을 위해서 열심히 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남과 북 두 부인,기구한 운명’의 주인공 이선행씨(81·서울 중랑구 망우동)는 북한 TV가 취재를 하자 아들 형제에게 “아버지없이자식을 훌륭하게 키워준 것은 주석님이다.주석님 만세를 부르고 싶은심정이다. 나는 나대로 남에서 조국에 충성하고 너는 북에서 조국에충성해라”고 당부했습니다.서울에 온 북측 방문단도 예외없이 기자들이 취재를 하면 가만히 있다가도 느닷없이 정치적 발언을 했습니다. ■서울에 온 평양 상봉단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하경씨는 개별상봉때 세 아들이 큰 절을 하려 하자 손을 내저으며 “먼저 장군님께 절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기자들이 앞에 있으니 50년만에소원을 풀겠다”며 ‘김일성 주석님 만세’를 세번이나 외쳐 취재기자들이 쓴웃음을 지었죠. ■그러나 이런 것들은 남과 북의 상이한 체제에서 오는 문화 차이로자주 만나면서 극복되지 않겠느냐는 게 중론입니다. ■서울과 평양 상봉단의 현격한 ‘감성지수’도 화제였습니다.북측방문단 100명은 대부분 북한사회에서 ‘힘깨나 쓰는’ 계층인 반면남측 방문단은 자율추첨에 의한 탓에 그야말로 각계각층에서 골고루구성됐죠.여하튼 북측 방문단의 감정 절제력은 대단했습니다. ■지난 16일에는 박기륜(朴基崙)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이 오전 브리핑에서 “서울 공연을 위해 방한하는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서해상을우회하는 항로가 아닌 휴전선 상공을 통과하는 직항로를 이용한다”는 반가운 오보(?)를 발표한 일도 있었습니다.자세히 알아보니 이 해프닝은 브리핑 직전 박 총장 등 우리측 관계자들이 북측 수행단 창구를 통해 들어온 소식 중 “육로영공(陸路領空)을 통하는 직항로”라는 문구를 잘못 해석하는 바람에 벌어졌다는군요.브리핑 후 북측이“육로영공을 통한다는 것은 휴전선 통과가 아니라 평양과 서울을 ‘〈’자 혹은 ‘ㄷ’자로 잇는 것”이라는 연락을 해와 부랴부랴 브리핑 내용을 취소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북측 상봉단 가족들의 뒷얘기를 알아보겠습니다.이들이머문 서울 올림픽파크텔 객실은 사흘 밤 내내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잠들지 못한 사람들의 심정은 매일 달랐어요.상봉 하루 전인 14일 밤이 특히 길었습니다.“혹시 못 오는 것은 아닐까,얼굴을알아 볼 수 있을까,무슨 말을 먼저 할까…”고민은 꼬리를 물고 계속됐지요.15일 밤은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였습니다.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호텔측에 우황청심환을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밤새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취재가 점점 힘들어 지더군요.“내 마음 잘 알지 않느냐,이제 그만하자”는 등수심이 가득한 노인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렵더군요. ■가족들의 식사량도 분위기에 따라 달랐습니다.만나기 전에는 떨려서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상봉 후에는 “아들 만나느라 힘을 너무 뺐어,역시 시장이 반찬이야”라며 밥그릇을 싹싹 비우더라구요.이별을앞두고서는 제대로 수저를 드는 사람이 없었어요. ■이별을 아쉬워 한 가족들을 아이디어도 많이 짜냈습니다.숫제 휴대전화를 북측 가족에게 건네주기도 했습니다.때문에 공항으로 가면서계속 통화를 할 수 있었죠. ■북측 방문단에 ‘스타’가 많은 점은 향후 남북 교류에 긍정적인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원로 국어학자 류렬씨,계관시인오영재씨, 남북 합작영화를 찍고 싶다는 리래성씨 등은 진한 인상을남긴 만큼 앞으로 남북간 문화교류의 선봉장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외신기자들은 상봉의 드라마를 ‘눈물 전쟁’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냉전이라는 ‘이념 전쟁’의 종말에 따라 그동안 정치적으로 희생되고 붕괴된 가족사,민족사가 복원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필연적 ‘충격’이라는 의미겠지요. ■취재 과정에서 느낀 아쉬움은 남북 상봉단이 최소한의 통제선 안에서만 3박4일의 체류일정을 보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앞으로는 상봉과 상호방문의 취지를 살린다는 측면에서 ‘통제는 최소,자율은 최대’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많은 이산가족들은 “집에 데려와 따뜻한 밥 한그릇 먹이는 것이 소원”이라고 되풀이했습니다.또 북측 방문단은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에 술 한잔 올리지 못하는 불효자를 용서해 달라”면서 슬피 울기도 했습니다.50년만에 만난 부모형제가 한 이불 속에서자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못 나눈다는 것은 정말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대표적인 사례가 18일 새벽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극적으로 이뤄진 량한상씨와 노모 김애란씨의 상봉이죠. ■이산가족 교환방문사업을 계속하려면 비용절감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는 지적입니다.서해 직항로보다는 판문점을 통한 육로를 이용하고 ‘일정은 짧게,만남은 길게’ 방식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1,500여명의 취재진이 북적댄 워커힐호텔은 나름대로 준비를 잘했다는 평가입니다.미비점이 발견되면 지체없이 보완하는 기민성도 갖췄습니다.반면 상봉단 가족들이 머문 올림픽파크텔은 준비상태가 수준 이하여서 상봉가족과 취재진들이 대단한 곤욕을 치렀습니다. ◆방담기자 명단. ◇한종태차장,진경호 오일만 주현진기자(정치팀)◇조현석(경제팀)◇김재천(디지털팀)◇오승호차장,전영우 이창구 안동환 이송하 조태성 윤창수기자(사회팀)◇김용수 심재억(전국팀)◇황수정 이순녀(문화팀)◇장택동(특집기획팀)◇류길상(체육팀)◇박록삼기자(행정뉴스팀)
  • 남북이산상봉/ 北량한상씨 뒤늦은 老母상봉

    혈육의 정이란 이토록 끈질긴 것인가-.북측 방문단의 아들 량한상씨(69)와 어머니 김애란씨(87)의 심야의 병실상봉은 평양으로 떠나기불과 6시간 전이어서 분단의 아픔을 더욱 깊게 했다. “어머니…”“아야,이게 누구냐! 한상이 아니냐,왜 이리 늦었냐” 18일 새벽 4시쯤 신촌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센터 특실 1252호실.50년 만에 만난 아들을 향해 던지는 어머니의 일성은 기다리다 지쳐서인지 감격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외출에서 늦은 아들을 맞는 듯했다. 그러나 모자의 상봉은 약 40분에 그쳤다. 어머니 김씨는 노환에 심한 빈혈과 어지럼증으로 ‘절대 움직이면안된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져 서울 서교동 자택에서 꼼짝도 할수 없는 상태였다.량씨는 17일 오후 어머니의 자택을 방문할 수 있도록 남북 적십자사에 호소했으나,‘지정장소 내 상봉 원칙’ 때문에눈물만 흘려야 했다.결국 두 모자를 상봉시켜야 한다는 여론에 밀린남북 양측은 비로소 병원에서 만나도록 하는 타협안을 이끌어 냈다. 병상에서 아들을 맞은 어머니 김씨는 “이게 누구냐,왜 이리 늦었냐”며 50년간 참았던 눈물을 폭포수처럼 터뜨리며 통곡했다.량씨도 복받치는 설움에 목이 메어 겨우 “저,한상입니다”라면서 큰절을 한뒤 모친을 부둥켜안고 반세기 동안 참았던 울음보를 터뜨렸다. 통곡과 대화를 반복하던 김씨는 두 눈을 감은 채 “애기(며느리) 갖다주라”고 말하며 손에서 반지를 빼 아들에게 건넸다. 상봉을 마치고 량씨가 숙소로 떠나려 하자 김씨는 “가지 마라 얘야,날 두고 어디 가느냐”며 다시 통곡했다.한상씨는 “빨리 돌아오겠습니다,어머니.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라면서 “모진 맘 먹고 북쪽의 한상이 보겠다는 마음 먹고 버티셔야 합니다”라고 울먹였다.상봉장은 또다시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래,바로 와라” 돌아서는 아들과 손가락조차 움직일 힘도 없는 여든일곱 늙은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50년을 기다린 40분의 만남은 기약없는 이별로 막을 내렸다. 전영우기자 ywc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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