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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 영화

    ■독수리 착륙하다(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2차 대전 말기 히틀러는 무솔리니 구출 작전 성공에 고무돼 독일군 특수부대의 리들 대령에게 영국 총리 처칠을 납치해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마침 처칠이 수행원도 없이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 묵게 될 것이라는 첩보가 들어오고, 리들은 전쟁 영웅인 폴란드 출신 공수부대장 스타이너를 대장으로 특공대를 조직해 영국으로 보낸다. 여기에 베를린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아일랜드인 데블린도 함께 참여한다. 이들은 영국 노퍽 해변에 도착해 그곳에서 주말을 보내는 처칠 납치 작전을 벌인다. 데블린은 영국의 시골 마을에서 나이 어린 처녀 몰리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슬픈 사랑을 나누고, 특공대는 결국 물에 빠진 소녀를 구하던 중 정체가 탄로난다. ■독립영화관-여덟 번의 감정(KBS1 토요일 밤 1시 5분) 시내 유명 갤러리의 큐레이터인 종훈은 유명 화가 전화백의 전시를 준비하고자 부산을 방문했다. 그런 차에 오래전 알고 지냈던 은주에게 연락하게 되고 새하얀 간호복을 입고 청순한 미소로 반겨 주는 그녀에게 반하게 된다. 서울로 돌아온 종훈은 연락이 뜸해진 연인 선영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은주와의 사랑을 키워 나간다. 은주와의 사랑은 나날이 무르익고 종훈의 부모조차 의심하는 가운데 종훈은 은주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막상 결혼이 현실로 다가올 즈음 그는 걷잡을 수 없이 심드렁해진다. 은주에 대한 종훈의 감정은 매번 달라진다. 거기에 종훈의 옛 여자 친구 선영과 새로 마주친 매력적인 여자 선희가 종훈의 감정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 ‘가비엔제이’ 노시현 옷 훔치다 잡혀

    서울 강남경찰서는 절도 혐의로 3인조 여성그룹 가비엔제이 멤버 노시현(25)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노씨는 이날 오후 3시쯤 강남구 신사동의 한 의류매장에서 30만원 상당의 옷을 계산하지 않은 채 들고 나온 혐의를 받고 있다. 노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 내용을 모두 시인했으며 범행 이유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씨의 소속사 관계자는 “노씨는 최근 활동 관련 수익을 모두 정산받아 돈이 없는 상황도 아니었다”라면서 “노씨가 생리 전 증후군 때문에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더라. 현재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속사 측은 “의류매장과는 이미 합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노씨는 가비엔제이 멤버로 2005년 데뷔했으며 지난 4월 디지털 싱글 ‘이별극장’을 내고 활동했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죽기전에 꼭… 다시 만나게 해달라”

    “죽기전에 꼭… 다시 만나게 해달라”

    우여곡절 끝에 9일 남북 대화가 재개되자 그동안 막혔던 상봉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산가족들의 표정은 한껏 들떠 있었다. 이산가족 2만 1000여명이 그동안 18차례에 걸쳐 만남의 기쁨을 가졌지만 2008년 ‘박왕자씨 피살 사건’ 이후 남북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이산가족 상봉도 중단돼 왔다. 60여년 세월에 주름이 깊게 팬 이들은 “이산가족 상봉이 꼭 재개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나 혼자 잘 살겠다고 딸을 버린 저는 죄투성이입니다. 애가 타게 60년을 이 가슴속에, 머릿속에 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혜숙이 한번 보고 죽는 게 그저 욕심일 뿐입니다.” 김복녀(90) 할머니의 한(恨) 많은 작은 외침이었다. 그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9살 난 딸을 두고 피란길에 올랐다. 60여년 이별의 시작이었다. 김 할머니는 “두 달 만 피란을 다녀오면 된다고 하길래 언니네 집에 맡긴 딸을 찾아오지 못했다”면서 “이제 일흔이 된 딸이 내 얼굴을 알아보기는 할까 걱정이다. 꼭 만나게 해 달라”고 울먹였다. 피란 당시 29살이었던 김 할머니의 얼굴엔 깊은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했다. 이산가족 상봉 첫해인 1985년 혹시라도 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맞춘 진달래 빛 저고리도 30년 가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참 곱지요. 참말로 누구를 주기 아까워서…. 그래도 언젠가는 우리 딸 만나겠지 하는 마음에 여태 이걸 못 버렸어요. 그래도 내가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는 갖고 있어야지 싶어요. 우리 딸 좀 꼭 만나게 해주세요.” 김 할머니는 연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이승의 마지막 인연을 거듭 기대했다. 올해 여든다섯인 김영옥 할머니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1968년 7월 납북된 아들을 이제는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46년이 지났지만 김 할머니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아들 생각에 가슴을 태운다고 했다. 그는 기자를 붙잡고 다시 한번 “우리 흥식이 좀 보게 해주세요. 제발 좀 보내주세요.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라고 울먹였다. 당시 19살이었던 아들은 “오징어 잡아 부자 만들어 드리겠다”며 만복호의 선원이 됐다. 김 할머니는 “그때 기술을 배운다는 걸 왜 못 배우게 했는지, 그때 배 탄다는 걸 왜 말리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면서 “길을 가다가도 미역을 볼 적에도 가슴에서 아들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고 서러워했다. 김 할머니는 아들 생일인 음력 7월 초닷새만 되면 절에 올라 “아들 좀 돌려보내 달라”며 빈다. “올해는 만날 수 있을까요. 살아 있다면 이제는 예순이 넘은 아들이지만 제겐 씩씩하고 잘 웃던 열아홉 소년, 내 아들 흥식이 그대로 입니다.” 형제자매를 그리는 이들도 간절히 상봉 재개를 기원했다. 전쟁 당시 스무살이었던 김희숙(82) 할머니는 좁쌀자루 하나를 허리에 매고 피란길에 올랐다고 했다. 강원 고성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북에 남긴 당시 10살, 7살, 3살이었던 남동생 셋의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다. 너무나 보고 싶다”며 마른 울음을 터뜨렸다. 김 할머니는 “매년 명절마다 통일전망대에 올라 들여다보고 했는데 이제는 걸어 올라가기가 힘들어 지난해 가을에 찾고는 가지를 못하고 있다”면서 “어떻게 살아왔느냐, 얼마나 고생했느냐 묻고 싶다. 얼른 좀 만나고 싶다”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고하자(81) 할머니는 18살 때 가족과 피란 올 당시 강화도로 시집 간 언니 고춘자(당시 20세)씨를 애타게 그렸다. “큰언니가 즐겨 불렀던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를 기억하고 있어요. ‘저 산 너머 새파란 하늘 아래는 그리운 내 고향이 있으련만은…천리만리 못 가게 떠난 이몸은 고향 생각 그리워 눈물집니다’”고 할머니는 울음이 목에 걸리는 듯 목소리가 갈라졌다. 사흘만 피란을 다녀오면 될 줄 알았다는 고 할머니는 곧 통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60여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언니가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돌아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생일이 12월 27일인데 맛있는 음식이라도 대접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언니를 만나게 된다면 그동안 잘 살아계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박태환, 첫사랑 고백… “대학시절 2년간…”

    박태환, 첫사랑 고백… “대학시절 2년간…”

    ‘마린보이’ 박태환(24·인천시청)이 첫사랑에 대해 입을 열었다. 박태환은 3일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연애를 딱 한 번 해봤다”면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박태환은 “대학교 때 2년간 만났는데, 외국 전지훈련에서 느낀 외로움과 고된 훈련에 어두워져만 갔던 나를 밝게 해준 사람”이라면서 “훈련을 다 못한 날은 우울했는데 그때 ‘오늘 하루 못했다고 경기력이 나빠지는 건 아니야’라고 위로해준 고마운 친구”라고 말했다. 이어 “전지훈련 때문에 외국에서 생활 하다 보니 자연스레 헤어지게 됐다”면서 “전지훈련을 떠나면 3개월간 해외에 체류하는데 한국에 돌아온다고 해도 고작 일주일 밖에 머물지 못해 한 두 번 밖에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박태환은 “(여자친구와) 2010년 아시안 게임 후 헤어졌다.”면서 “이별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매달리기도 했는데 마음을 돌리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따뜻·유쾌… 웰다잉, 이런 게 아닐까

    따뜻·유쾌… 웰다잉, 이런 게 아닐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욱하는 성질 때문에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아이돌 가수 충의(이홍기). 그는 결국 폭행 사건에 휘말려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명령을 받는다. 언론의 관심 속에 내키지 않는 봉사활동을 시작한 충의는 시한부 환자들과 티격태격 신경전을 벌이기 일쑤다. 그러다 봉사시간을 두 배로 쳐준다는 제의에 솔깃해져 환자들과 록 밴드 오디션 참가 준비를 하게 되고, 그러는 사이 그들과 점점 가까워진다. 죽음을 앞두고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호스피스 병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뜨거운 안녕’은 누가 봐도 ‘착한 영화’다. 방송 PD 출신인 남택수 감독이 직접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환자들 이야기를 담은 덕분에 캐릭터의 질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전직 조폭으로 자신의 몸을 정성껏 닦아주는 자원봉사자들의 극진한 대접에 눈물짓는 무성(마동석), 남겨질 가족의 생계를 걱정해 밤에 나이트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간암 말기 환자 봉식(임원희), 홀로 남아 슬퍼할 아들 힘찬이를 위해 매일 밤 동화책을 쓰는 엄마(심이영) 등의 사연이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그려진다. 그렇다고 우울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다소 역설적인 제목처럼 이 작품은 생의 마지막을 불꽃처럼 보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그리는 데 힘을 썼다. 충의, 무성, 봉식에 위암 환자 안나(백진희)와 꼬마 백혈병 환자 하은(전민서)이 합세해 결성한 불사조 밴드는 돈줄이 막혀 폐쇄 위기에 몰린 병동을 회생시키려고 오디션에 출전한다. 망설이던 충의도 자신의 소중한 꿈을 잠시 뒤로 접고 이들의 마지막 꿈을 함께한다. 영화는 웰빙만큼이나 화두로 떠오른 ‘웰다잉’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의 끝자락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려는 호스피스 환자들과 매년 기수별로 불사조 밴드를 만들어 그들의 뜻을 이어가는 충의는 관객의 가슴을 훈훈하게 덥힌다. 반면 메시지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성글게 전개되는 드라마가 허술해 보이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다. 특히 지금껏 개성 강한 역할을 주로 했던 마동석이 호스피스 환자로 변신해 극의 중심을 잘 잡아줬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맨발의 친구들(SBS 일요일 오후 4시 55분) ‘맨발의 친구들’이 부모님께 친구들을 소개한다. 누구 집이든 기습 방문하는 이들에게 당황하지만, 곧 훈훈한 분위기에서 웃음꽃을 피운다. 즐거운 시간도 잠시, 이들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조금 엽기적인 게임을 시작한다. 한편 게스트로 함께한 이효리의 온갖 구박에 괴로워하는 강호동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다큐극장(KBS1 토요일 밤 8시) 생산 세계 5위, 매출 세계 9위. 2013년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성적표다. 선진국들이 100년에 걸쳐 이룬 것을 단 반세기 만에 따라잡았다.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우리나라가 어떻게 세계 자동차 시장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까. 그 시작에는 자동차 ‘포니’가 있었다. ■최고다 이순신(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준호는 미령의 숨겨진 딸이 순신임을 알고 기자회견을 미루려고 하지만 미령은 강경하고, 정애 역시 미령에게 순신이를 생각한다면 …그만두라며 미령을 찾아가지만 거절당한다. 한편 유신은 정애가 길자네서 일하는 문제로 찬우와 다투다 홧김에 헤어지잔 말을 해 버린다. ■금 나와라 뚝딱(MBC 토요일 밤 8시 45분) 몽희는 보석학원 내 공모전을 보고 이에 응모할 결심을 한다. 하지만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 아이디어 때문에 괴로워하고, 현수는 몽희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한편 현태에게 일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는 현준. 이에 덕희는 영애를 완전히 떼내어버릴 기회로 생각하며 영애에게 두 가지 선택안을 제시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15분) 2007년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에서 벌어진 흥암석재 사장 배진석씨 실종 사건. 용의자였던 동네주민 김모씨는 진술을 계속해서 번복하고 현장에 같이 있었던 서모씨는 동거녀를 살해하고 자살했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미스터리에는 과연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을까. ■진짜 사나이(MBC 일요일 오후 6시 25분) 포병전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 시작된다. 그동안의 연습은 잊어라, 이제는 실제 포탄사격이다. 한편 어김없이 찾아온 마지막 날 밤, 모두가 이별 앞에 참아왔던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강인했던 분대장 역시 눈물을 보이며 화룡대대에서의 마지막밤을 보내는데…. ■명불허전(OBS 일요일 밤 8시 15분) 한국 서양화의 거장 오승우가 함께한다. 한국의 사찰, 동양의 건축물, 한국의 명산, 십장생도를 주된 소재로 삼으며 우리 문화의 뿌리와 정신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그의 예술철학을 들어본다. 한편 갑작스레 닥친 실명 위기에 화가로서 사형선고와도 같았을 절망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이야기도 들어본다.
  • [김문이 만난 사람] 가출 소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꿈 전도사로 거듭난 32세 스타 강사 김수영

    [김문이 만난 사람] 가출 소녀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꿈 전도사로 거듭난 32세 스타 강사 김수영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그렇게 자랐나 보다. 어린 시절 무척 가난했다. 사람들은 철부지, 말썽쟁이라고 했지만 나름대로 세상을 알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 또 너무나 외로워 가출을 했다. 싸움도 하고 죽도록 매를 맞아 깊은 상처도 입었다. 우여곡절 끝에 암울했던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꿈 많은 소녀로 변신해 보란 듯이 당당하게 살아갔다. 인생의 먹구름을 스스로 걷어내고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적었다. 그러다 보니 83개가 됐다. 그중 48개는 이미 이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작가, 배우, 요가 강사, 블로거, 기업인, 꿈쟁이 등이다. 올해 나이 32살의 김수영씨. 스타 강사로도 소문나 있다. 지난해 6월 이후 200여 차례의 강연에서 10만명을 만났다.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라는 책으로 30만명의 독자들과 만났고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책으로 20만명을 만났다. 그의 블로거에 찾아온 손님은 무려 150만명이다. 가출소녀였지만 지금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꿈 멘토’, ‘꿈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길지 않은 인생에, 남달랐던 그의 인생 이력을 간단히 짚어보자. 중학교를 중퇴한 가출 소녀였다. 집은 가난했다. 폭주족과 어울렸고, 싸움에 휘말려 칼을 맞기도 했다. 그러다 ‘아직 우린 젊기에, 미래가 있기에’라는 서태지의 노래 ‘컴백홈’을 듣고 ‘나도 열심히 살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갔다. 검정고시로 친구들보다 1년 늦게 여수정보과학고에 입학했다. 1999년 학교에서 진행된 ‘도전 골든벨’ 방송 프로그램에서 골든벨을 울렸고 2000년 연세대에 합격했다. 졸업 후 골드만삭스에 입사했지만 8개월 만에 암세포가 발견돼 회사를 그만뒀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어내려 갔다. 73개의 꿈 리스트. 첫 출발은 한국을 떠나는 것이었다. 2005년 무작정 영국으로 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런던대에서 석사를 마쳤다. 2007년 로열더치셸에 입사해 연 800만 달러의 매출을 책임지는 카테고리 매니저로 일했다. 2010년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를 냈다. 30만부가 팔렸다. ‘사람들에게 영감 주기’도 73개 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 사이 암이 완치됐다. 2011년 6월부터 1년 동안 휴가를 내고 유럽·아시아 여행길에 올랐다. 지구 반 바퀴를 돌며 365명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를 펴냈다. 20만부나 팔렸다. ‘드림 파노라마’라는 회사를 만들어 꿈과 관련된 각종 이벤트를 열었다. 지난 2월엔 꿈을 이루도록 돕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버키 노트’도 출시했다. 오는 9월 다시 지구의 나머지 반 바퀴를 돌기 위해 떠난다. 이번엔 335명을 만나 꿈에 관해 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지난해 인터뷰한 이들까지 합하면 700명이 된다. 70억 지구의 0.0000001%다. 나름의 인류학적 보고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짧은 인생에서 이러한 이력들이 정말 가능했을까. 궁금해진다. 지난 27일 저녁 서울 홍대 앞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이 회관에서 젊은이들을 상대로 ‘미친(me-親) 꿈에 도전하라’는 주제로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강연 내용이 뭔지 먼저 물어봤다. “오늘날 청년들, 대학생들은 너무 따지다 보니 결론을 잘 못내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 모든 일을 엄마가 결정해 주다 보니 대학생이 되고 나면 멘토를 찾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저는 멘토링 자체를 반대합니다. 멘토링 또한 그 연장선상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젊은 친구들을 상대로 강연할 때는 소크라테스적인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그는 강연할 때 가끔 인도춤과 요가를 선보이기도 한다. 하여, 요가강사라는 이름이 따라다닌다. 여러 가지 수식어 중 어느 것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즉각 ‘꿈쟁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른 것은 세월이 지나면 변하겠지만 꿈쟁이만큼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게 이유다. 스타강사가 된 까닭을 물었다. “저는 연구를 많이 한 학자도 아닙니다. 더군다가 자기계발을 말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로지 제가 걸어왔던 ‘실천’만을 얘기할 뿐이지요. 다른 분들은 강의할 때 훌륭한 사람들을 예로 들지만 저는 제가 직접 겪은 얘기만 합니다. 거기에서 다들 진정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꿈에다 영감과 씨앗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차별성도 있고요.” 그가 꿈쟁이, 꿈 전도사로 나선 계기는 무엇일까. 2005년 입사를 앞두고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암세포가 발견됐다. 평생 건강하게 살 것만 같았던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큰 충격에 빠졌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정신적 후유증이 너무 컸다. 방황했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이젠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앞으로 새로운 인생을 펼쳐야겠다고 다짐했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적어 보았더니 73가지(지금은 83개)였다. 중매쟁이 같은 엉뚱한 꿈도 있었지만 모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73가지 목표 중 중요도와 긴급한 정도를 점수로 매겼고 이 두 가지 조건을 기준으로 정렬을 했다. 목록의 첫 번째는 한국을 떠나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한번뿐인 인생,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살아야만 할까. 인생의 3분의1 가까이를 한국에서 살았으니 다음 3분의1은 세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3분의1은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살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꿈쟁이’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돌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꿈에 관해 인터뷰를 했던 얘기는 그때부터 이어진다. “이스라엘에서 63세 할머니를 만났어요. 네 살 때부터 노래를 했는데 10년 전 후두암 판정을 받았대요. 그래도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꿈이란 그런 것이구나 새삼 느꼈지요.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한 독립운동가는 ‘그동안 죽을 고비를 일곱 번이나 넘겼다. 독립이 되고 나면 반드시 의사의 꿈을 이룰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70여개국을 다녀 보니 우리나라처럼 꿈을 꾸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 좋은 나라는 별로 없었어요.” 그는 탈레반 사람들과도 꿈을 주제로 인터뷰했고 레바논에 가서는 TV에 출연해 아랍어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꿈 리스트 가운데 48개를 이뤄냈다. 여자의 몸으로 혼자 20㎏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기가 불안하지 않으냐고 했더니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사고가 나려면 우리 집 앞에서도 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그걸 탓하지 말고 해결하려고 생각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는 광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직업을 따라 여수에서 10세 때부터 지냈다. 초등학교 5학년 소풍 가는 날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당시 TV에서 유행하던 ‘민지의 일기’를 패러디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 때 덩치 큰 학생한테 ‘잘난 척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후 그는 ‘왕따’를 당했다. 학교생활이 싫어졌다. 때마침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마저 매일 술을 마시고 툭하면 신경질을 부렸다. 학교와 가정,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자살할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렇게 외롭고 괴롭던 시절, 그나마 위안을 준 것은 바스콘셀레스가 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였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세상의 시선은 더욱 따가웠다. 소풍날 장기자랑 시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불렀지만 ‘까진 아이’라는 말만 들었다. 성질이 나서 담배도 피워 보고 술도 마시며 어설프게 호기를 부렸다. 선생님한테 찍혔다. 그래서 맞섰고, 돌아온 것은 매뿐이었다. 주먹으로, 발길질로, 몽둥이로 만신창이가 됐다. 학교 다니는 것이 점점 싫어졌다. 결국 가출을 하고 말았다. 친구집, 주유소 등을 전전했다. 패싸움을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도 넘겼다. 중학교를 자퇴한 지 1년 반 만에 검정고시를 거쳐 여수정보과학고에 진학했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수능을 며칠 앞두고 ‘KBS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등학생 최초로 골든벨을 울리면서부터였다. 얼마 뒤 여수 진입 도로에 ‘여수정보과학고 골든벨 김수영, 연세대 인문계열 합격’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미운 오리새끼가 어느 날 갑자기 백조로 둔갑한 느낌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50여개 회사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세계 최고 기업 중 하나인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그가 적어놓은 꿈 중에 부모에게 집을 사주고 해외여행을 시켜 준다는 약속도 지켰다. 가출 당시 함께 지냈던 친구들도 지금은 장사를 하면서 잘 살고 있단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어떤 모습이고 싶냐고 물었다. “지금은 개인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고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보람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뭔가 나눠 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또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소설도 쓰고 싶다며 웃는다. 앞으로 1년간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로 떠나 또 다른 꿈의 여정을 펼칠 예정이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꿈쟁이’ 김수영은 광주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자랐다. 여수정보과학고 3학년 때 KBS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교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골든벨을 울렸다. 연세대에 진학해 영어영문학과 경영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2005~2006년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교(SOAS) 중국국제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로열더치셸 카테고리 매니저, 골드만 삭스 애널리스트 등을 거쳤다. 현재는 여행가, 작가, 사업가, 마케터, 강연가, 블로거, 번역가, 사진작가, 다큐멘터리 제작자, 요가 강사, 인도 발리우드 영화배우, 예술가, 기획자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꿈의 파노라마’ 대표 꿈쟁이다. 위촉사항으로는 여수시 명예홍보대사, 서울시 드림멘토, 한국장학재단&어린이재단 명예홍보대사 등이 있다. 저서로는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2010년),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2012년), ‘드림레시피’(2013년 6월 예정) 등이다.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인도, 싱가포르, 네팔, 레바논, 중국, 타이완 등 25개국 해외 매체에서 그의 활약상이 보도됐다.
  • 문주란 “조용필 성공에 용기… 내 목소리로 최선 다해 노래”

    문주란 “조용필 성공에 용기… 내 목소리로 최선 다해 노래”

    “조용필의 대중적 성공은 제게도 의미가 컸습니다. 이번 공연을 개최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으니까요. 이번 기회에 나를 다시 한번 점검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가수 문주란(64·본명 문필연)이 다음 달 15일 예정된 데뷔 45주년 기념콘서트 ‘문주란 끝이 없는 길’을 앞두고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조용필의 성공 덕분에 데뷔 이후 처음으로 대형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여는 용기를 내게 됐다”면서 “(나는) 악기를 다루거나 그룹사운드를 갖고 있진 않지만, 내가 가진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러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덧붙였다. 새달 15일 오후 7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무대는 그가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단독 대형 콘서트. 그는 “무대 타이틀은 지금까지 가수로서 걸어온 길과 앞으로 끝없이 걸어가야 할 길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문주란은 16세이던 1966년 ‘동숙의 노래’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후 ‘공항의 이별’, ‘백치 아다다’,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등 다양한 히트곡을 남겼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사진가가 찍고 시인이 숨결을 불어넣다

    탁기형은 사진가다. 정확히는 보도사진가다. 몇몇 신문사 사진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겨레21 사진 부문 선임기자로 뛰고 있다. 그가 시인 전영관과 함께 포토에세이집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푸른영토 펴냄)를 냈다. 시인은 웅숭깊은 문장으로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고, 사진가는 감성 넘치는 사진으로 문장을 빛낸다. 흔하지는 않지만, 요즘 간간이 시도되는 형태의 책이다. 탁기형의 사진은 절묘한 압축미를 구사한다. 사진을 흘낏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혹은 사진 속 인물들이 무얼 드러내고 싶어 하는지를 단박에 알게 된다. 그가 오랫동안 보도사진 분야에 천착해 온 덕분일 것이다. 학부에서 예술사진을 전공한 그는, 그보다 몇 곱절 긴 시간을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보냈다. 여러 함의와 다양한 복선으로 가득 찬 역사의 한 순간을 함축적이되 명료한 사진에 담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직업 정신’이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에 주목했다. 그렇다고 숱한 연애지침서들처럼 사랑앓이에 대한 위로나 연애 방정식을 알려주는 법은 없다. 사랑과 이별에 공식이 없는데, 따로 해답이 있을 리 없잖은가. 어느 시인이 말했듯 “상처와 치유를 반복하며 견디라”는 게 충고라면 충고겠다. 사진가가 보여 주는 “깊고 넓고 여러 겹”인 세상 풍경도 결국엔 ‘상처와 똑바로 마주하기’에 맥이 닿는다. 1만 4800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손호영은 누구?…2000년대 최고 그룹 멤버로 ‘전성기’

    손호영은 누구?…2000년대 최고 그룹 멤버로 ‘전성기’

    24일 오전 가수 손호영(33)이 자신의 차량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손호영은 2000년대 최고 그룹인 ‘g.o.d’의 멤버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미소천사’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밝은 모습만 보여주었던 손호영의 자살 시도 소식에 더욱 놀라움을 주고 있다. 손호영은 지난 1999년 그룹 g.o.d의 멤버로 데뷔했다. ‘어머님께’라는 노래로 데비한 뒤 ‘거짓말’, ‘길’,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촛불하나’ 등 매 앨범마다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2005년 방송 3사의 가요대상을 수상하는 등 전성기를 보냈다. 데뷔 당시 5인조였던 g.o.d는 2004년 윤계상의 탈퇴로 4인조로 활동하다가 2005년 7집 ‘하늘 속으로’를 마지막으로 현재는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손호영은 이후 2006년부터 솔로 활동을 시작해 ‘운다’, ‘YES’, ‘사랑은 이별을 데리고 오다’, ‘그려본다’ 등의 곡을 발표하며 열심히 활동해 왔다. 최근에는 KBS 일일드라마인 ‘일말의 순정’에 출연해 배우로까지 영역을 넓혔고 MBC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에서 임시로 DJ도 맡았다. 다음 달 새 앨범 출시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지난 21일 손호영의 여자친구가 차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뒤 충격에 빠졌고 소속사 CJ E&M은 “손호영이 방송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이별/진경호 논설위원

    아내가 차를 떠나 보냈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태우고 간 큰아이가 어엿한 대학생이 됐으니 10년 넘게 아내와 함께했던 녀석이다. 그 차로 아내는 회사를 다녔고, 두 아이를 학교로, 학원으로 실어날랐다. 집이 서너 번 바뀌는 동안에도 녀석은 아내 곁을 떠날 줄 몰랐다. 아내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랜 세월을 달리면서도 큰 사고 한번 내지 않았던 ‘충신’이기도 했다. 몸집이 커진 아이들의 성화와 점점 기름을 더 먹는 것 같다는 아내의 푸념이 부쩍 잦아졌다 싶던 어느날 아내는 돌연 녀석과의 결별을 선언했고, 둘의 이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인의 손에 끌려 녀석이 집을 떠나던 날, 아내는 훌쩍였다. “이상하지. 꼭 무슨 사람 떠나보내는 것 같아….” 한데 이런 아내의 감상도 잠시, 녀석은 그냥 떠나지 않았다. 지인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그동안 깜빡했던 속도위반, 주차위반 과태료가 무더기로 나왔다. “아니, 이놈은 무슨 딱지를 이렇게도 많이 뗐대?” 아내는 남 얘기하듯 목청을 높였다. 아내의 ‘일방적 퇴출’을 녀석은 그렇게 복수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총 맞은 것처럼’ 듣는 당신 방금 애인과 결별했군요

    ‘총 맞은 것처럼’ 듣는 당신 방금 애인과 결별했군요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와 이별을 했다. 사람들은 어떤 음악을 고를까. 흔히 우울하거나 슬플 때는 기분 전환을 위해 ‘밝고 경쾌한 음악’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람들은 실제 감정과 비슷한 슬픈 음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별한 뒤에는 싸이의 ‘젠틀맨’을 듣는 것보다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을 듣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학원 이찬진 교수는 20일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은 원인이 다른 실망이나 슬픔, 분노와 다른 양상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소비자 연구’ 최신호에 실렸다. 이 교수는 사람들이 음악, 영화, 그림, 소설 등 감정적인 부분이 작용하는 문화적 결과물을 선택하게 되는 방식에 대한 마케팅 연구를 진행했다. 우선 배우자의 사망, 애인과의 이별, 승진 누락, 물건 분실, 스포츠 경기 패배 등 12가지 상황으로 우울해하거나 슬퍼하는 사람 233명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에는 ‘유쾌한 친구와 자신의 상황에 공감해 주는 친구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고 물었고, 다른 그룹에는 ‘현재 기분에서 어떤 음악을 고르겠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배우자의 사망이나 애인과의 이별 등 인관관계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 공감해 주는 친구’와 ‘슬픈 음악’을 골랐다. 반면 인관관계가 아닌 스포츠 패배나 물건 분실 등의 좌절을 겪은 사람들은 일반적인 상식과 마찬가지로 기분 전환을 위해 ‘유쾌한 친구’와 ‘밝고 시끄러운 음악’을 고르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 11명에게 각기 처한 상황에 맞춰 ‘상실’에 대해 글을 작성하도록 한 뒤 10가지 음악을 제시하자 인관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만 슬픈 음악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직장 생활이나 친구, 가족과의 관계에서 ‘분노’한 사람 76명에게 음악을 고르도록 하자 대부분 ‘앵그리 뮤직’으로 불리는 ‘록’이나 ‘메탈’을 골랐다. 이 교수는 “사람의 문화적 소비가 같은 감정이라고 해서 모두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용준형 구하라 언급 “헤어졌지만 할 일은…” 그럼 구하라는?

    용준형 구하라 언급 “헤어졌지만 할 일은…” 그럼 구하라는?

    비스트의 용준형이 헤어진 연인 구하라에 대해 언급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tvN 뮤직드라마 ‘몬스타’ 제작발표회에서 주연배우로 나선 용준형은 구하라와의 결별에 대해 언급하며 “큰 영향을 미친 건 없는 것 같다”면서 “할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구하라를 언급하며 “친한 동료 사이로 남기로 했다. 많은 분들이 내가 힘들 거라 생각 안 했으면 좋겠다”면서 “사실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안부도 묻고 잘 지내고 있다”면서 이별에 대해 의연한 모습을 드러냈다. 용준형의 구하라 언급을 접한 네티즌들은 “용준형 구하라 언급하는 것 보니 정말 쿨하다”, “용준형 구하라 언급 안 하는 게 상대를 위해 더 낫지 않았을까”, “용준형 구하라 언급했어도 친구 사이로 돌아갔다니 다행” 등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다. 용준형과 구하라는 2011년 6월 열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교제를 해오다 최근 이별을 알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책꽂이]

    마흔, 고전에게 인생을 묻다(이경주·우경임 지음, 글담 펴냄) 기자로 바쁜 삶을 꾸리다 훌쩍 해외 연수를 떠난 부부가 있다. 마흔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성찰의 결과물은 의외로 단순하다. 마흔 즈음의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고전 스물네 편을 엄선했다. 삶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건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한 마음의 중심찾기라고 고백한다. 고전을 통해 삶의 본질과 마주할 용기를 얻었고, 고전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문구들은 삶의 훌륭한 길잡이가 됐다고 말한다. 1만 3800원. 모든 순간의 인문학(한귀은 지음, 한빛비즈 펴냄) 경상대 국어교육과 교수인 저자가 ‘여인의 향기’ ‘홍당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등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인문학적 감성을 길어올려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인 사랑, 이별, 관계, 상처 등 소소하고 사적이지만 중요한 삶의 순간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1만 4000원. 빌딩블로그(제프 마노 지음, 김아연·이혜인·허대영 옮김, 나무도시 펴냄) 미국 인기 온라인 사이트의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건물’ 자체보다 ‘짓기’에 주목한다. 사람은 늘 무언가 만들고 환경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건축적 상상, 지하 세계, 날씨와 기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다든다. 그래서 건물뿐 아니라 심지어 가상의 온라인 세계에 지어지는 모든 곳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2만 2000원.
  • [DB를 열다] 1969년 12월 새 단장 후의 김포가도

    [DB를 열다] 1969년 12월 새 단장 후의 김포가도

    1954년 여의도비행장이 국제공항으로서 서울의 관문이 되었다가 김포공항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 때는 1958년이었다. 공항에서 서울까지 드나드는 도로가 반드시 필요한데 처음에는 영등포와 김포 사이에 국도가 있었다. 이 도로를 확장하고 포장하는 공사를 1961년 8월 1일 시작해 1963년 10월 31일 준공을 보게 되었다. 양화대교에서 등촌동을 지나 강서구청 입구 사거리를 거쳐 김포공항 입구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지금은 공항대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총 공사비는 당시 돈으로 2억여원이 들었는데 1960년 3·15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당선된 이기붕씨의 부정축재 환수금이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당시에는 주변이 개발되지 않았고 초가집이나 양철집 등 불량주택들이 있어서 당국은 미화 작업과 확장 공사를 계속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김포가도는 대중가요 소재로도 애용되었다. 1974년 남진의 ‘김포가도’라는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렇게도 떠나기를 아쉬워한 사람을 보내고 돌아오는 김포가도/ 창밖을 스쳐가는 싸늘한 바람 /쌓이고 쌓였던 지난 사연 구름 속에 사라졌네/ 수많은 별 같은 추억을 안고 쓸쓸하게 돌아오는 밤 깊은 김포가도’ 같은 해에 문주란의 ‘공항의 이별’이라는 노래도 나왔다. ‘하고 싶은 말들이 쌓였는데도 한마디 말 못하고 헤어지는 당신이/ 이제 와서 붙잡아도 소용없는 일인데/ 구름 저 멀리 사라져 간 당신을 못 잊어 애태우며/ 허전한 발길 돌리면서 그리움 달랠 길 없어 나는 걸었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야구장서 여친 키스 3번 거절한 남성, 결국…

    야구장서 여친 키스 3번 거절한 남성, 결국…

    야구장을 찾는 커플이 키스타임에 당첨되길 바라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의 한 남성은 키스캠에 찍혔다는 여자 친구의 말을 무시하다 결국 음료수 세례를 받고 차이는 망신을 당했다. 7일 미국 프로야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트리플 A 프레스노 그리즐리스팀의 공식 유튜브 계정에는 ‘키스캠 이별’이란 제목의 동영상이 공개돼 해외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열린 한 시합의 일부 장면인 이 영상에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한 남자 친구(이하 남친)와 그의 화가 난 여자 친구(이하 여친)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을 보면 키스캠에 잡힌 한 커플의 모습이 보인다. 우측 여친이 남친에게 전광판을 보라고 손짓하며 말을 건네지만 남친은 지금 통화 중이라며 이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어 키스캠은 다른 커플들을 향해 넘어간다. 이후 화면에 잡힌 커플들은 화면에 잡힐 때마다 연령대에 상관없이 입술이나 이마에 키스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이 키스캠은 또 다시 좀 전 키스에 실패한 커플을 화면에 담았다. 그러자 여친이 다시 남친에게 말을 걸어 보지만 이번에도 무시당한다. 이윽코 세 번째 키스타임이 되자 여친은 다그치듯 다시 한 번 남친에게 전광판에 자신들이 찍혔다고 말하지만 역시나 무시당한다. 그러자 화가 난 여친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의 얼굴에 음료수를 부어버리고 그 자리를 떠나 버린다. 남겨진 남친은 음료수 범벅이 된 자신의 모습과 여친의 행동에 어의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화면은 넘어간다. 관중석을 벗어나는 여친의 옆에는 야구팀 마스코트가 위로하는지 에스코트하는 모습을 끝으로 영상은 종료된다. 한편 이 동영상은 지금까지 54만 명이 넘는 네티즌이 감상했으며 해외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됐다. 사진=유튜브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토깽아” 부르면 달려와 품에 안겼던 할아버지와 단짝 토끼 10년 이야기… 작가 가족의 실제 모습 예쁘게 담아

    “토깽아” 부르면 달려와 품에 안겼던 할아버지와 단짝 토끼 10년 이야기… 작가 가족의 실제 모습 예쁘게 담아

    목련 꽃이 활짝 핀 어느 봄날, 조용하고 소소한 일상을 보내던 할아버지에게 낯선 토끼 한 마리가 찾아온다. 주택가에서 아파트로 이사 가는 할아버지의 친구가 하얀 토끼 한 마리를 선물로 주고 간 것이다. 낯선 토끼와의 동거는 할아버지에게 달가운 일은 아니다. 한 번도 토끼를 길러 본 적 없는 할아버지는 난감하기만 하다. 토끼도 사정은 마찬가지. 할아버지는 거실 한편에 토끼장을 설치하고, 상추를 건넨다. 토끼는 상추를 먹기는커녕 토끼장 구석에 웅크리고 눈치만 본다. 할아버지의 친구가 토끼를 건네며 “약으로 달여 먹으라”던 말을 알아들었던 것일까. 할아버지는 토끼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토끼를 위해 뚝딱뚝딱 멋진 집도 만들어주고, 달달한 당근도 챙겨 준다. 매일매일 새로운 일을 하나씩 꾸민다. 어느 날 문득 토끼 이름을 지어주기로 한다. 눈을 끔뻑이는 토끼에게 이렇게 ‘토깽이’란 이름이 붙는다. 어느새 한 식구가 된 것이다. ‘최고 멋진 날’(고정순 지음, 해그림 펴냄)은 할아버지와 ‘토깽이’의 ‘최고 멋진 날’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며 함께하는 모든 시간들이라고 속삭인다. “토깽아”하고 할아버지가 부르면, 토끼는 귀를 쫑긋, 코를 벌름거리며 뒷발을 힘차게 굴러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긴다. 할아버지는 더욱 바빠졌다. 옥상에는 토끼를 위한 예쁜 텃밭이 들어서고 상추, 가지와 호박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난다. 할아버지는 때론 ‘토깽이’와 바둑을 두고 강아지처럼 함께 산책한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아는 단짝 친구다. 그렇게 아홉 해가 훌쩍 흘렀다. ‘토깽이’도 하나둘 이가 빠지고 힘껏 뛰어오르지 못한다. 기운 없이 온종일 잠만 자는 날이 늘어간다. 어느 날 ‘토깽이’는 할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도 일어나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토깽이’와의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관계 맺기의 소중함과 함께 이별의 아픔을 가르쳐 준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고정순 작가는 따뜻한 글에 스스로 삽화를 입혔다. 작가는 “30여년 전 유치원에 다닐 무렵, 친할아버지의 실제 모습을 담은 그림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 가까이 애완견처럼 할아버지를 따르던 토끼가 늙어 죽자 할아버지도 5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면서 “어릴 적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기 위해 2년여간 작업했다”고 말했다. 1만원.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소리인생 50년…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이춘희 명창

    [김문이 만난 사람] 소리인생 50년… 경기민요 무형문화재 이춘희 명창

    맑고 투명하다.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함이 있다. 하여 경쾌함이 그지없다. 편하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듣기는 좋지만 제대로 부르기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가 흔히 듣는 ‘아리랑’도 그렇다. ‘아리랑’을 제대로 부르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된장국이라도 다 똑같은 된장국이 아니듯 말이다. 그래서 경기민요는 부르기가 무척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 회의장에서 우리의 ‘아리랑’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키로 하는 순간이었다. 즉석에서 이춘희 명창에 의해 아리랑 열창이 이루어졌다. 심금을 울리는 명창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엄숙했던 회의장 분위기는 어느새 편하고 부드러워졌다. 많은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한국의 ‘아리랑’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다들 ‘역시 세계 문화유산이여~’ 하는 것 같았다. 무형문화재57호(경기민요) 이춘희 명창은 50년 소리인생을 맞이하고 있다. 전통민요협회 이사장, 한국전통예술학교 교장 등의 직함 외에도 대학 강의와 공연 등으로 여전히 분주하다. 5월 한 달만 해도 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가정의 달 명품 콘서트-행복’에 출연한다. 국악오케스트라와 함께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타지’로 시작해 ‘이별가’ ‘한오백년’ 등 애조띤 노래 위주로 부른다. 8일 어버이날을 맞아 부산국립국악원에서 ‘회심곡’ 등 평소 즐겨 부르는 경기민요를 열창한다. 그러면서 ‘아리랑’을 들고 서울, 부산, 대구 등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공연을 한다. 아리랑의 세계 인류무형문화재 등재를 기념하기 위한 무대이기도 하다. 그는 무대에 설 때마다 빼놓지 않을 만큼 ‘아리랑’을 각별하게 여긴다. 우리 민족의 한을 늘 가슴에 품는 까닭이다. 지난 22일 낮 한양대 캠퍼스 음악관에서 이 명창을 만났다. 매주 월요일에 한양대 강의가 있기 때문이다. 봄날 햇볕이 따사로운 음악관 앞에서 잠시 사진 촬영을 한 뒤 안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요즘 근황에 대해 물었더니 “얼마 전까지 맡고 있던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은 임기가 다 돼 그만두었고, 보다시피 대학과 한국전통예술학교 등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통예술학교에서는 1년 전부터 학교장을 맡고 있단다. 경기민요 등 전통예술을 배우려는 40여 명의 학생이 현재 공부 중이며 생긴 지가 얼마 안 돼 졸업생은 아직 4명 정도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다음 달에 있을 공연 준비는 잘 돼 가느냐는 질문에 “늘 하는 공연이기도 하지만 소리 인생 50년이기도 하고 특히 유네스코 등재를 기념해 아리랑 전국 순회공연을 하게 돼 의미가 있는 것 같다”는 소감으로 대신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지난 12월 유네스코본부 회의장에서 ‘아리랑’을 부를 때의 느낌이 어떠했는지 다시 물었다. “그날 오전부터 한복을 입고 11시간을 꼬박 기다렸습니다. 장소가 무대도 아닌 썰렁한 회의장이고 그쪽 분들의 귀를 깜짝 놀라게 해야 하는데 걱정이 됐죠. ‘아리랑’이 문화유산으로 확정됐다는 발표가 있자마자 객석에 앉아 있다가 바로 ‘아리랑~’ 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앞쪽으로 치고 나갔지요. 분위기가 확 달라졌고 표정을 보니 아주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정말 아름다운 소리다’ ‘같이 사진 찍자’고 하면서 인터뷰하자는 사람이 많더군요. 지금도 그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제 자신도 정말 감동적이고 역사적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아리랑을 늘 부르고 사랑했지만, 앞으로도 더욱 좋아하게 된 운명이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2년 전 독일 단독 공연무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감동을 하였다고 회고한다. “반주 4명과 함께 아리랑, 회심곡 등을 불렀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감상하던 독일인들이 공연이 끝날 때 많은 박수와 함께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독일인들이 진중하게 한국의 민요를 감상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외국에서의 반응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매우 좋습니다. 우리 민요를 들고 해외로 자주 나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경기민요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진짜 수도 서울의 민요이며 경쾌하고 투명하면서 야질야질하다. 그러나 밝음과 섬세함 등 전체를 넘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부르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대답이 얼른 돌아온다. 이어 “경기민요에는 옛날 역사나 변화의 과정이 없다. 그래서 15년 전부터 희로애락이 담긴 실험적인 소리극을 통해서 많은 성과도 거두었고 진화를 거듭해 오고 있다”고 부연했다. 소리극은 그가 매년 공연 때마다 시도하는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경기민요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그는 서울 토박이다. 집안 대대로 용산구 한남동에 살았다. 그 때문에 어릴 적 친척집에 가느라 기차를 탈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라디오 등을 통해 흘러나오는 경기민요를 대중가요처럼 듣는 것이었다. 특히 14살 때 라디오 드라마 ‘장희빈’의 주제곡에 홀딱 반했다. ‘구중궁궐 긴 마루에 하염없이 눈물짓는 장희빈~’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당시 우상으로 여겼던 황금심씨가 불렀으니 더욱 그랬다. 무조건 가수가 되고 싶었다. 소녀의 이런 열망이 깊고 깊어져 어느 날 위경련이 생겼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일주일째 입원하던 날 주위에서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라’고 권유했고 부모는 딸을 살리고 싶은 심정으로 노래를 허락했다. 결국, 가수가 되려고 대중가요 학원에서 3년 가까이 최숙자의 ‘백령도 처녀’ 등 당시 유행하던 여러 대중가요를 배웠다. 그러던 16살 때 우연히 친구 따라 종로3가에 있는 민요 학원을 가게 됐다. 그곳에서 경기민요 명창 이창배(1983년 작고) 선생을 만나면서 민요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이창배 선생은 당시 ‘선소리타령’의 명인이었다. 혹독한 가르침을 받던 어느 날 이창배 선생한테 ‘너한테 노래가 도대체 뭐냐?’라는 질문을 받게 되고 그 답을 구하려고 죽기 살기로 소리 연습을 했다. 지금처럼 녹음기나 캠코더가 없어 항상 귀로 듣고 연습을 했다. 밥을 먹을 때나 길을 걸을 때에도 늘 소리를 질러댔다. 길을 걷다가 전봇대나 담벼락에 부딪힌 경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후회도 적지 않았다.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레슨비에 교통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여러 번 그만둘까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이창배 선생한테 소리 배운 지 10년이 흘렀다. 이후 명창 안비취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시련이 있었다. 다름 아닌 무대 공포증이었다.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무대는 엄청 무서웠습니다. 벌벌 떨리고 숨이 차고 중환자처럼 공포증이 심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받고 약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극복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운동을 하면서 극복했지요. 그러면서 노래 연습 또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했습니다.” 방음장치를 한 골방에서 하루는 ‘유생가’만 30회, 또 하루는 ‘제비가’만 30회 등 매일 다섯 시간씩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소리를 했다. 뿐만 아니다. 한동안 두문불출하고 산을 찾아 판소리의 득음 과정처럼 소리를 내고 또 소리를 내는 혹독한 고행을 해서야 비로소 스스로 창법을 터득했다. 그래서 1985년 첫 개인 발표회 무대를 무난하게 끝냈다. 자신의 소리인생에서 가장 자신감을 준 무대였다. 이를 두고 “아마 실패했으면 어디에 가서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무대에 서면서 그의 진가를 발휘해 나갔다. 1997년 나이 50에 스승 안비취의 계보를 이어 경기민요 문화재 보유자가 되면서 명창이라는 수식을 얻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무대는 그때도 무서웠지만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무섭다”며 웃는다. 소리는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란다. 그에게 꿈을 물었다. “우리나라에는 국악 중·고등학교는 있으나 초등학교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기초가 튼튼해지고 명창과 대가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여력이 되는 대로 제자를 양성하는 일에 온 힘을 쏟을 것이며 그 제자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어렵게 소리인생을 살아온 만큼 후학들에게는 좀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겠다고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이춘희 명창은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와 경기민요에 심취했다. 14살 때 대중가요 학원에서 노래공부를 하다가 16살 때 경기민요 학원에서 이창배 선생을 만나 민요의 길로 들어섰다. 10년 동안 경기민요를 배운 뒤 안비취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서면서 이름을 알린다. 1985년 첫 개인 발표무대를 시작으로 매년 국내외 공연을 가졌다. 1997년 나이 50에 안비취 선생의 계보를 잇는 무형문화재 57호에 지정되면서 명창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2012년 12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 회의장에서 ‘아리랑’이 인류무형문화재로 등재되는 순간 ‘아리랑’을 불러 역사적 순간을 연출했다. 현재 한국전통민요협회 이사장, 한국전통예술학교 교장 외에 여러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제23회 한국방송대상 국악인부문 대상(1996년), 제32회 대한민국 문화예술대상(2000년), 국민훈장 화관문화훈장(2004년) 등을 수상했다.
  •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현대중공업, 1조원대 교육장학 사업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현대중공업, 1조원대 교육장학 사업

    1972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울산 동구에는 바닷가에 몽돌과 돌미역밖에 없었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미포만의 모래밭 사진 한 장과 5만분의1 지도 한 장, 영국에서 빌린 유조선 도면 한 장만 들고 조선소의 꿈을 안고 뛰어다닐 때다. 정 회장은 배를 건조할 설비도 없이 기어코 그리스로부터 26만t급 초대형 원유운반선 2척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고, 또 불과 10년 만에 세계 1위의 조선업체를 탄생시키는 기적을 낳았다. 동구 미포만에 대규모 조선소가 들어섰으나, 직원들은 울산에서 자녀를 교육시킬 수 없어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1978년 3월 현대중학교와 현대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현대그룹(현대중공업그룹)이 처음 교육지원 사업을 하게 된 계기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지금까지 학생들 장학사업에 쏟아붓고 있는 지원금은 ‘조’ 단위다. 우선 운영하고 있는 학교만 해도 울산공업학원의 종합대와 과학대, 현대학원의 중학교 2곳, 고등학교 3곳이 있고 유치원도 2곳이 있다. 이 학교법인 2곳에 지난해 160억원 등 총 4200억원이 들어갔다. 학교 지원금 외에도 장학금이 140억원에 이른다. 장학금은 처음에 재학생들에게만 지급하다가 지금은 동구지역의 다른 공립고 학생들에게도 혜택을 나눠 주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주요 계열사별로 지원하는 장학금도 많다. 현대중공업은 입사를 희망하는 대학생(원생) 가운데 우수 학생을 선발, 등록금 전액과 학비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 수혜 인원이 524명에 이른다. 현대오일뱅크는 ‘오일뱅크 장학재단’과 ‘1% 나눔재단’을 통해 초·중·고생들에게 9억원에 가까운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 대상 중에는 저소득층으로서 화물 운전자의 자녀, 해양경찰관의 자녀, 산업재해근로자의 자녀 등도 있다. 1991년 울산 북구 당사동에 문을 연 어린이 자연학습원에는 3만 4000㎡ 부지에 농장과 수목원, 관찰학습장, 장미원, 생태습지 등이 조성돼 있다. 이곳은 울산지역 유치원과 초등학교 어린이 50만여명에게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6개 계열사가 총 6000억원을 출연한 ‘아산나눔재단’은 청년 및 청소년 인재들이 해외에서 소중한 체험을 하면서 자신과 나라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고 깨달아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시아, 중동, 유럽, 미주에 나가 있는 각 계열사 현지법인에서 실습 근무를 하는 ‘글로벌인턴’과 해외봉사단 과정의 경우 저소득층 자녀의 비중을 50%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2만 5000여명 근로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박을 만들면서 우리나라를 세계 1등 조선대국으로 키운 힘에는 인재를 키우고 아끼는 창업 정신이 담겼다”고 말했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 팝스타 리한나 무대 뒤 ‘아찔’ 토플리스 사진 공개

    팝스타 리한나 무대 뒤 ‘아찔’ 토플리스 사진 공개

    미국의 유명 팝스타 리한나(25)가 지난 23일 사진 공유 애플리케이션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토플리스 사진을 공개해 눈길을 끌고있다. 이날 “쇼 타임!” 이라는 글과 함께 공개된 사진에는 노란색 팬티 만을 입은 리한나가 수건으로 가슴을 가린 채 다소곳이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팬들의 마음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이 사진은 이날 애틀랜타에서 열린 자신의 콘서트 무대 뒤의 모습으로 알려졌다. 공연을 위해 의상을 갈아입고 헤어스타일을 손보는 과정의 일부를 사진으로 공개한 것. 공연 전날에도 리한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 흑인 아이와 함께 찍은 아찔한 비키니 수영복 사진을 공개해 눈길을 끈 바 있다. 한편 지난달부터 ‘다이아몬드 월드 투어’를 시작한 리한나는 지난 2009년 남자친구인 래퍼 크리스 브라운의 폭행으로 한 차례 결별 후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있다.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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