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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듀 지성! 유쾌했던 ‘빗속 이별’

    아듀 지성! 유쾌했던 ‘빗속 이별’

    ‘캡틴’ 박지성(33)의 선수 인생 마지막 경기는 유쾌했다.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 올스타인 ‘팀 K리그’와, 박지성과 인연이 깊은 이들로 구성된 ‘팀 박지성’의 2014 K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다. 박지성은 주장으로 선발 출전해 전반 30분에 교체됐지만 후반 초반 다시 ‘깜짝’ 등장했다. 58분 동안 영광스러운 한국 축구의 산증인들, K리그 스타들과 즐겁게 뛰어다녔다. 경기 시작 전 가장 큰 목소리로 호명된 박지성은 전반전 주인공이었다. 순간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언제까지나 지치지 않을 것 같던 체력은 다소 약해진 듯했다. 그러나 유럽 무대를 매료시켰던 볼터치와 감각적인 패스는 여전했다. 중앙 미드필더로 나선 그는 공이 오면 빠른 판단과 간결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이끌었다. 승부의 균형을 맞추는 골도 넣었고 소원대로 경기 최우수선수에도 뽑혔다. 폭우가 쏟아졌지만 역대 올스타전 5번째인 5만 113명의 팬이 경기장을 찾아 박지성을 연호했다. 두 팀의 지휘봉은 각각 황선홍 포항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잡았다. 양 팀 통틀어 무려 12골이 터졌다. 6-6 무승부. 그러나 승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터진 골만큼 다양하고 유쾌한 세리머니가 더 진한 감동과 추억을 선사했다. 결혼을 이틀 앞둔 박지성을 위해 ‘팀 박지성’ 선수들은 ‘부케 세리머니’를 펼쳤고 브라질월드컵 첫 골의 주인공 이근호(상주)는 러시아전 득점 장면을 재현해 즐거움을 줬다. 정대세(수원)의 골 뒤에는 선수들이 다 같이 하트를 그렸고 강수일(포항)은 다문화 사회에 대한 관심을 당부하는 속옷 세리머니를 펼쳤다. 주심 하석주 감독은 전반 27분 페널티박스 안에서 기다렸다는 듯 박지성에게 옐로카드를 날렸고 ‘팀 K리그’ 골키퍼 김승규(울산)는 키커로 나서 골망을 흔들었다. 김병지(전남)는 왕년의 버릇대로 페널티박스를 뛰쳐나가 드리블을 시도했다. 김병지는 2001년 파라과이와의 A매치에서 페널티 지역을 벗어난 돌출 플레이로 히딩크 당시 대표팀 감독의 눈에서 벗어난 쓰라린 과거가 있다. 히딩크 감독은 경기 뒤 “김병지를 교체하지 않기 위해 참아야 했다”며 능청을 떨었다. 후반 18분에 골을 터뜨린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같이 수건을 뒤집어쓰며 기쁨을 나눴다. 해설위원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이영표는 진지했다. 전반 내내 축제에 어울리지 않게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후반, 기다렸던 박지성의 골이 터지자 현영민(전남)과 함께 특유의 ‘헛다리짚기’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히딩크 감독은 “황선홍, 박지성 등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이들은 높은 수준의 축구가 뭔지 알고 있다”면서 “새로운 한국 축구를 위해 일익을 담당하는 이들을 만나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비가 오는데도 많이 찾아온 팬들을 보면서 큰 책임감을 느꼈다”면서 “후반기에 좋은 축구, 좋은 경기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씨줄날줄] 팽목항 하늘나라 우체통/정기홍 논설위원

    편지의 단상을 논할 때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을 더러 떠올린다. ‘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근자에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이를 기리려고 그가 태어나 수천통의 편지를 보냈다는 통영우체국(현 통영중앙우체국) 이름을 청마우체국으로 바꾸려 했고, 생을 마친 곳인 부산 동구의 산복도로가에는 ‘유치환의 우체통’을 설치하기도 했었다. 편지에 그리움과 애틋함을 담은 작품은 이것 말고도 더 있다. 1990년대 말 고 최진실씨가 주연했던 영화 ‘편지’는 뇌종양을 앓는 남자가 죽은 뒤 홀로 남게 될 아내에게 전할 사랑 이야기를 편지로 담아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약혼자가 있는 한 여성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친구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당시 이 소설을 읽은 독일 청년들이 잇따라 자살해 ‘베르테르 효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굳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베트남에 파병된 외아들이 전사한 소식을 알린 것도, 10대 까까머리 사내와 단발머리 처녀 간 사랑과 이별을 전한 것도 편지였다. 편지가 인터넷에 밀려 존재 가치를 잃은 시대다. 길 모퉁이에 홀로 자리하며 편지를 기다리던 우체통도 하나씩 자리를 내주고 있다. 기다림과 반가움의 정서마저 사라지는가 해서 아쉽다. 우체통은 1993년 5만 7000개를 최고점으로 줄곧 줄면서 지금은 2만개를 밑돌고 있다. 그 자리를 소식을 받는 데 1년쯤 걸린다는 ‘느린 우체통’으로 채워지는 게 다행스럽다. 서울 조계사 옆의 우정총국우체국 입구를 포함해 수십개에 이른다. 전북 군산의 금강철새조망대 ‘철새우체통’은 가창오리가 나타나는 10월 말에 한 번만 편지를 배달한단다. 이색 우체통이 있는 우체국도 있다. 핀란드에는 ‘산타우체국’이,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엔 유리로 만든 ‘수중우체국’이 영업 중이라고 한다. 세월호 사고 100일을 맞아 진도 팽목항에 ‘하늘나라 우체통’이 설치됐다. 유가족이 편지를 넣으면 상담사가 위로의 답장을 보내고 방문객이 쓴 위로 편지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전달된다. 우체통은 이처럼 나를 털어놓으면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꼭 ‘하늘나라 우체통’이 아니라도 우체통에 사연을 넣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답장이 없으면 어떤가. 가슴 답답한 세상에 대수는 아닐 것이다. 어느 미래학자가 우리 생애에 사라질 9가지 중 가장 빠른 것이 우체통이라고 했지만 ‘정(情)의 메신저’를 담은 우체통은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좀 쉬면서 그동안 잘 못했던 엄마 역할 잘 해야죠.”

     “차관 자리보다, 정 들었던 직원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네요.”  여성가족부의 산 증인인 이복실 차관이 25일 이임식을 갖고 여가부로 온 지 꼭 20년 만에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별을 서운해 하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이 전 차관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는 94년 7월 당시 정무2장관실로 왔다. 열정적으로 일해 ‘에너자이저’로 불렸다.  행정고시 28회로 85년 당시 총무처 수습에 이어 문교부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지 만 29년 만에 공직을 일단락 했다. 행시 동기인 정현옥 고용노동부 차관과 나란히 차관으로 왔다가 1년 4개월 만에 함께 나가게 돼 덜 외롭다고나 할까. 여가부 총무과장, 기획관리심의관, 보육정책국장, 권익증진국장, 대변인, 청소년가족정책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일에 파묻혀 살아왔으니 이제는 좀 쉬면서 그동안 잘 못했던 엄마, 아내로서 역할을 잘 해야죠.” 딸이 “집에서 주부 역할을 잘 하라는 메시지”라고 위로 전화를 하더란다.  그는 여성이 여성을 잘 섬기지 못할 것이라는 세간의 시선 때문에 그동안 여성 차관으로서 여성 장관을 보좌하느라 사실 무척 신경이 쓰였다고 한다. 조윤선 전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내정되면서 신임 김희정 장관이 인사 청문회를 거쳐 취임할 때까지 한 달여 동안 장관직무대행을 하기도 했다.  보육정책국장 시절 보육시설평가인증제도와 보육교사 국가자격증제를 마련한 것 등이 가장 큰 보람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차관이 될 때나 그만둘 때나 사전 통보 없이 언론을 보고 알게 되는 것은 관례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유채영 경기 서현추모공원 안치 예정...눈감는 순간 김현주 임종 지켜봐

    유채영 경기 서현추모공원 안치 예정...눈감는 순간 김현주 임종 지켜봐

    유채영 서현추모공원 안치...김현주 임종 지켜봐 연기자 겸 가수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24일 오전 8시 위암으로 별세했다. 41세. 유채영 측은 이날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투병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다”며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방송인 박미선과 송은이 씨가 임종 때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이며 발인은 26일 오전 7시40분이며, 유해는 경기도 서현추모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유채영 서현추모공원 안치 소식에 네티즌들은 “유채영 서현추모공원 안치, 마지막길 편히 가시길”, “유채영 서현추모공원 안치, 다시는 그녀를 볼수 없다니” 등 반응을 보였다. 앞서 유채영의 투병 소식은 지난 21일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이후 연예계 안팎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사흘 만에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그동안 유채영의 병실은 남편과 어머니, 시어머니 등의 가족과 배우 김현주가 지켰다. 이 측근은 “유채영 씨가 눈을 한 번씩 뜨고서 가족, 김현주 씨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며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로 체력이 너무 약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채영은 지난해 9월 1990년대 가수들의 합동 공연인 ‘리바이벌(Revival) 1990’s 나이트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달 후 속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암 판정으로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여서 항암 치료에만 전념해왔다. 그는 투병 중에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면서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씩 녹음을 했지만 지난달 하차할 때까지 청취자들은 투병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2009년 싱글 ‘어나더 디케이드’(Another Decade)가 마지막 음반이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힌 그는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파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캐릭터로 사랑받았으며 라디오 DJ로도 활약해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6일 오전 7시 40분이다. 화장 후 유해는 서현추모공원에 안치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채영 위암 원인 도대체 무엇? “항암치료로 체력 고갈돼 세상 떠나”

    유채영 위암 원인 도대체 무엇? “항암치료로 체력 고갈돼 세상 떠나”

    유채영 위암 원인 도대체 무엇? “항암치료로 체력 고갈돼 세상 떠나” 연기자 겸 가수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24일 오전 8시 위암으로 별세했다. 41세. 유채영 측은 이날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투병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다”며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방송인 박미선과 송은이 씨가 임종 때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유채영의 투병 소식은 지난 21일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이후 연예계 안팎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사흘 만에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그동안 유채영의 병실은 남편과 어머니, 시어머니 등의 가족과 배우 김현주가 지켰다. 이 측근은 “유채영 씨가 눈을 한 번씩 뜨고서 가족, 김현주 씨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며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로 체력이 너무 약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채영은 지난해 9월 1990년대 가수들의 합동 공연인 ‘리바이벌(Revival) 1990’s 나이트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달 후 속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암 판정으로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여서 항암 치료에만 전념해왔다. 그는 투병 중에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면서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씩 녹음을 했지만 지난달 하차할 때까지 청취자들은 투병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2009년 싱글 ‘어나더 디케이드’(Another Decade)가 마지막 음반이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힌 그는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파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캐릭터로 사랑받았으며 라디오 DJ로도 활약해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6일 오전 7시 40분이다. 화장 후 유해는 서현추모공원에 안치된다. 네티즌들은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슬프고 우울하다. 오늘 비가 오니 더 슬퍼”,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고인이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않고 즐거운 모습으로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정말 기사 보고 저절로 눈물이 났다. 슬프고 안타깝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마흔하나, 너무 일찍 떠난 해피 바이러스

    [부고] 마흔하나, 너무 일찍 떠난 해피 바이러스

    연기자 겸 가수 유채영(본명 김수진)씨가 24일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41세. 유씨 측은 이날 “유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한 뒤 투병했으나 최근 상태가 갑자기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유씨의 임종은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 방송인 박미선과 송은이 등이 지켰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씨는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2009년의 싱글 ‘어나더 디케이드’가 마지막 음반이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힌 그는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 ‘색즉시공 2’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 등에 출연하며 개성파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면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아 지난달 프로그램을 중단할 때까지 청취자들은 그의 투병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이며 발인은 26일 오전이다. (02) 2227-7580.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베네수엘라 ‘세계 최고층’ “다비드타워” 빈민가 정리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빈민가’에 살던 거주민들이 모두 쫓겨나게 됐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2일(현지시간) 무장 경찰을 동원, 짓다가 만 45층 높이의 건물에 살던 무단 거주민 수천 명 가운데 일부를 카라카스 남쪽 외곽의 정부 소유 아파트로 이주시켰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다비드 타워’로 불리는 이 건물은 골조와 외벽 공사가 끝난 뒤 1990년대 닥친 금융위기 때 건축이 중단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 무단 거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점차 늘어나면서 지하 주차장부터 옥상까지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전기를 끌어들이고 미용실 등 가게를 여는가 하면 자체적인 건물 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등 공동체를 형성했다. 다비드 타워는 그동안 베네수엘라에서 실패한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미국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이 건물을 살인 등의 폭력이 난무하는 무정부주의 지역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에르네스토 비예가스 베네수엘라 재개발 장관은 도심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건물이 위험 요소를 안고 있어 거주민들의 이주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어린이들이 추락사하는가 하면 낡은 외벽이 부서지거나 창문이 떨어지는 사고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버스에 옮겨타고 떠나는 거주민들은 ‘정든 집’과 이웃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이들은 외곽으로 이사 가게 되면 일자리를 잃을 뿐 아니라 대중교통이나 편의시설을 쉽게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과 부닥치게 된다. 그러나 다비드 타워 주변 주택가 주민들은 이 건물이 그동안 성폭력이나 강도 등 범죄의 온상이 됐기 때문에 무단 거주민들을 내보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채영 임종 김현주 지켜봐 “항암치료로 체력 고갈돼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을 것” 팬·네티즌 응원 목소리 이어졌지만 끝내 세상 떠나

    유채영 임종 김현주 지켜봐 “항암치료로 체력 고갈돼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을 것” 팬·네티즌 응원 목소리 이어졌지만 끝내 세상 떠나

    유채영 임종 김현주 지켜봐 “항암치료로 체력 고갈돼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을 것” 팬·네티즌 응원 목소리 이어졌지만 끝내 세상 떠나 연기자 겸 가수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24일 오전 8시 위암으로 별세했다. 41세. 유채영 측은 이날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투병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다”며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방송인 박미선과 송은이 씨가 임종 때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유채영의 투병 소식은 지난 21일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이후 연예계 안팎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사흘 만에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그동안 유채영의 병실은 남편과 어머니, 시어머니 등의 가족과 배우 김현주가 지켰다. 이 측근은 “유채영 씨가 눈을 한 번씩 뜨고서 가족, 김현주 씨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며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로 체력이 너무 약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채영은 지난해 9월 1990년대 가수들의 합동 공연인 ‘리바이벌(Revival) 1990’s 나이트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달 후 속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암 판정으로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여서 항암 치료에만 전념해왔다. 그는 투병 중에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면서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씩 녹음을 했지만 지난달 하차할 때까지 청취자들은 투병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2009년 싱글 ‘어나더 디케이드’(Another Decade)가 마지막 음반이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힌 그는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파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캐릭터로 사랑받았으며 라디오 DJ로도 활약해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6일 오전 7시 40분이다. 화장 후 유해는 서현추모공원에 안치된다. 네티즌들은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슬프고 우울하다. 오늘 비가 오니 더 슬퍼”,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고인이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않고 즐거운 모습으로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정말 기사 보고 저절로 눈물이 났다. 슬프고 안타깝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채영 임종 김현주 지켜봐 “눈 뜨고 가족 바라보기도…항암치료로 체력 고갈돼” 팬·네티즌 함께 울었다

    유채영 임종 김현주 지켜봐 “눈 뜨고 가족 바라보기도…항암치료로 체력 고갈돼” 팬·네티즌 함께 울었다

    유채영 임종 김현주 지켜봐 “눈 뜨고 가족 바라보기도…항암치료로 체력 고갈돼” 팬·네티즌 함께 울었다 연기자 겸 가수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24일 오전 8시 위암으로 별세했다. 41세. 유채영 측은 이날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투병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다”며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방송인 박미선과 송은이 씨가 임종 때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유채영의 투병 소식은 지난 21일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이후 연예계 안팎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사흘 만에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그동안 유채영의 병실은 남편과 어머니, 시어머니 등의 가족과 배우 김현주가 지켰다. 이 측근은 “유채영 씨가 눈을 한 번씩 뜨고서 가족, 김현주 씨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며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로 체력이 너무 약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채영은 지난해 9월 1990년대 가수들의 합동 공연인 ‘리바이벌(Revival) 1990’s 나이트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달 후 속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암 판정으로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여서 항암 치료에만 전념해왔다. 그는 투병 중에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면서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씩 녹음을 했지만 지난달 하차할 때까지 청취자들은 투병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2009년 싱글 ‘어나더 디케이드’(Another Decade)가 마지막 음반이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힌 그는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파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캐릭터로 사랑받았으며 라디오 DJ로도 활약해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6일 오전 7시 40분이다. 화장 후 유해는 서현추모공원에 안치된다. 네티즌들은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너무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이제 편안한 세상으로 가게 됐네요”,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가족들의 마음이 너무 슬플 것 같다. 오늘 비도 오고 정말 우울하네”,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고인이 하늘 나라에서 지켜보고 있을 듯. 더 이상 아프지 않는 좋은 세상으로 가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채영 경기 서현추모공원 안치...마지막 순간에 가족, 김현주와 눈길 마주치며...

    유채영 경기 서현추모공원 안치...마지막 순간에 가족, 김현주와 눈길 마주치며...

    유채영 경기 서현추모공원 안치...”위암 투병 알려진지 고작 3일만에...” 연기자 겸 가수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24일 오전 8시 위암으로 별세했다. 41세. 유채영 측은 이날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투병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다”며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방송인 박미선과 송은이 씨가 임종 때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유채영의 투병 소식은 지난 21일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이후 연예계 안팎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사흘 만에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그동안 유채영의 병실은 남편과 어머니, 시어머니 등의 가족과 배우 김현주가 지켰다. 이 측근은 “유채영 씨가 눈을 한 번씩 뜨고서 가족, 김현주 씨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며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로 체력이 너무 약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이며 발인은 26일 오전 7시40분이며, 유해는 경기도 서현추모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유채영 서현추모공원 안치 소식에 네티즌들은 “유채영 서현추모공원 안치, 마지막길 편히 가시길”, “유채영 서현추모공원 안치, 위암 투병 알려진지 고작 3일만에...” 등 반응을 보였다. 유채영은 지난해 9월 1990년대 가수들의 합동 공연인 ‘리바이벌(Revival) 1990’s 나이트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달 후 속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암 판정으로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여서 항암 치료에만 전념해왔다. 그는 투병 중에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면서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씩 녹음을 했지만 지난달 하차할 때까지 청취자들은 투병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2009년 싱글 ‘어나더 디케이드’(Another Decade)가 마지막 음반이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힌 그는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파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캐릭터로 사랑받았으며 라디오 DJ로도 활약해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6일 오전 7시 40분이다. 화장 후 유해는 서현추모공원에 안치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병언 메모, 김기춘·박근혜 대통령 언급한 듯한 내용 “가녀리고 가냘픈 大가…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유병언 메모, 김기춘·박근혜 대통령 언급한 듯한 내용 “가녀리고 가냘픈 大가…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유병언 메모’ ‘유병언 김기춘’ 유병언 메모가 법원 증거물로 제출된 가운데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을 언급한 듯한 부분이 있어 그 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병언 메모는 유병언 전 회장의 개인 비서인 신모씨가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유병언 전 회장이 전남 순천 등지를 떠돌던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유병언 메모는 A4 용지 총 31쪽 분량으로 도피 중인 유병언 전 회장의 심경과 함께 유년 시절의 회고 등이 적혀 있으며, 특히 자신이 음모에 빠졌다는 생각과 언론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유병언 메모는 독특하게도 거울을 보고 읽어야 해석이 가능하도록 거꾸로 쓰여 있었다. 이는 유병언 전 회장이 오대양 사건에 연루돼 4년간 옥살이를 한 뒤 고수하고 있는 스타일로 알려졌다. 유병언 메모에는 “가녀리고 가냘픈 大(대)가 太(태)풍을 남자처럼 일으키지는 않았을 거야.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인 남자들이 저지른 바람일 거야. 과잉 충성스런 보필 방식일 거야” “아무리 생각을 좋게 가지려 해도 뭔가 미심쩍은 크고 작은 의문들이 긴 꼬리 작은 꼬리에 여운이…”라고 적었다. 유병언 전 회장은 대통령을 ‘大(대)’로 자주 이야기했으며,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을 가리킨 것이라고 구원파 신도들은 설명했다. 또한 “하도 많은 거짓말들을 위시해서 미쳐 날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설쳐대는 거짓소리들을 내고, (…) 사나이와 여성 중간자쯤 보이는 방송 진행자의 의도적인 행태에 거짓소리 증인의 작태를 보고 시선과 청신경을 닫아버렸다. 모든 방송에서 이별을 해버렸다”라거나 “연일 터져대는 방송들은 마녀사냥의 도를 넘어 구시대 인민재판의 영상매체로 진화되어 떠들어대는 민족 전체와 동포들 머문 세상의 큰 이간질을 해대는 악의적인 소리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며 언론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유병언 전 회장은 자신의 도피 생활과 관련해 “눈 감고 팔 벌려 요리조리 찾는다. 나 여기 선 줄 모르고 요리조리 찾는다. 기나긴 여름 향한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정말 마음에 없는 잡기 놀이에 내가 나를 숨기는 비겁자같이 되었네”라며 자신을 찾지 못하는 검찰을 비웃는 듯한 내용을 적었다. 공개된 유병언 전 회장의 자필 문서의 끝엔 “내 노년의 비상하는 각오와 회복되는 건강을 경축하며…”라는 문장이 적혀있어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 부분을 두고 유병언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심리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채영 사망 “애끓는 심정에도 희망 잃지 않았지만 항암치료로 체력 소진” 김현주 임종 지켜 ‘감동’

    유채영 사망 “애끓는 심정에도 희망 잃지 않았지만 항암치료로 체력 소진” 김현주 임종 지켜 ‘감동’

    유채영 사망 “애끓는 심정에도 희망 잃지 않았지만 항암치료로 체력 소진” 김현주 임종 지켜 ‘감동’ 연기자 겸 가수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24일 오전 8시 위암으로 별세했다. 41세. 유채영 측은 이날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투병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다”며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방송인 박미선과 송은이 씨가 임종 때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유채영의 투병 소식은 지난 21일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이후 연예계 안팎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사흘 만에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그동안 유채영의 병실은 남편과 어머니, 시어머니 등의 가족과 배우 김현주가 지켰다. 이 측근은 “유채영 씨가 눈을 한 번씩 뜨고서 가족, 김현주 씨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며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로 체력이 너무 약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채영은 지난해 9월 1990년대 가수들의 합동 공연인 ‘리바이벌(Revival) 1990’s 나이트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달 후 속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암 판정으로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여서 항암 치료에만 전념해왔다. 그는 투병 중에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면서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씩 녹음을 했지만 지난달 하차할 때까지 청취자들은 투병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2009년 싱글 ‘어나더 디케이드’(Another Decade)가 마지막 음반이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힌 그는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파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캐릭터로 사랑받았으며 라디오 DJ로도 활약해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다. 네티즌들은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항암치료 받으면서 살도 많이 빠지고 고생 많이 한 듯. 하늘나라에서는 편히 쉬세요”,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많은 팬들이 기도했는데 너무나 슬픈 일이 벌어졌다”,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남편이 너무 슬플 듯. 그래도 힘내세요. 모든 것이 너무 안타깝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라디, 6년 공들인 새 앨범 ‘사운즈’ 공개.. 타이틀곡 ‘그렇게’ 뮤비 눈길

    라디, 6년 공들인 새 앨범 ‘사운즈’ 공개.. 타이틀곡 ‘그렇게’ 뮤비 눈길

    라디(Ra.D)가 세 번째 정규 앨범 ‘사운즈(Soudnz)’를 공개했다. 24일 정오 공개된 이번 앨범은 라디(Ra.D)가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완성한 작품으로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로 추구해 온 라디(Ra.D)의 ‘사운드’를 메인 테마로 한다. 각 트랙마다 라디(Ra.D)의 음악 여정에 있어 의미를 가진 삶의 소리, 자연의 소리들이 들어가 있으며, 이를 멜로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 참신한 사운드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공개된 타이틀 곡 ‘그렇게’ 뮤직비디오는 정기고, 드렁큰타이거, 조용필, 이효리와 작업한 뮤직비디오 감독이자 비주얼 아티스트 룸펜스가 메가폰을 잡았다. 라디(Ra.D)가 직접 출연해 특별한 의미를 불어 넣었으며, 공간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통해 연인과 사랑했던 기억을 회상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는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만나고 이별하는 연인의 모습을 담은 곡으로, 기타 연주와 퍼커션 사운드 위에 라디(Ra.D) 특유의 감성적인 보컬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뤘다는 평이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그렇게’를 포함해, 지난 1일 발표해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선공개곡 ‘플라이 어웨이(Fly Away)’, ‘봐줘’, ‘포 미(For Me)’, ‘쇼티(Shawty)’, ‘드라이브 어웨이(Drive Away)’, ‘하와이(Hawaii)’, ‘굿 걸(Good Girl)’, ‘자장가’, ‘아직도’, ‘1998’ 등 총 12개의 트랙이 실렸다. 대형 가수들의 컴백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요계에서 흥행 보증수표 라디(Ra.D)가 어떤 성적표를 거둘지 기대를 모으는 상황. 걸스데이, 씨스타, 인피니트, 블락비 등 강한 팬덤을 소유한 아이돌 그룹을 비롯해, 태양, 스윙스, 산이 등 힙합 뮤지션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음원차트에서 어떤 행보를 그릴지도 궁금증을 자극한다. 한편 라디(Ra.D)는 지난 2002년부터 오는 24일 발표하는 ‘사운즈(Soundz)’까지 모든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해 온 실력파 뮤지션이자,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나르샤가 불러 선풍적 인기를 모았던 ‘아임 인 러브(I’m In Love)’의 원곡자이기도 하다. 동시에 다이나믹듀오의 ‘아버지’, 아이유의 ‘티처(Teacher)’, 이승기의 ‘연애시대’ 등의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채영 사망 “20일 상태 갑자기 악화…항암 치료로 체력 너무 약해져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

    유채영 사망 “20일 상태 갑자기 악화…항암 치료로 체력 너무 약해져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

    유채영 사망 “20일 상태 갑자기 악화…항암 치료로 체력 너무 약해져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 연기자 겸 가수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24일 오전 8시 위암으로 별세했다. 41세. 유채영 측은 이날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투병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다”며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방송인 박미선과 송은이 씨가 임종 때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유채영의 투병 소식은 지난 21일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이후 연예계 안팎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사흘 만에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그동안 유채영의 병실은 남편과 어머니, 시어머니 등의 가족과 배우 김현주가 지켰다. 이 측근은 “유채영 씨가 눈을 한 번씩 뜨고서 가족, 김현주 씨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며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로 체력이 너무 약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채영은 지난해 9월 1990년대 가수들의 합동 공연인 ‘리바이벌(Revival) 1990’s 나이트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달 후 속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암 판정으로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여서 항암 치료에만 전념해왔다. 그는 투병 중에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면서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씩 녹음을 했지만 지난달 하차할 때까지 청취자들은 투병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2009년 싱글 ‘어나더 디케이드’(Another Decade)가 마지막 음반이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힌 그는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파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캐릭터로 사랑받았으며 라디오 DJ로도 활약해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6일 오전 7시 40분이다. 화장 후 유해는 서현추모공원에 안치된다. 네티즌들은 “유채영 사망, 안타깝고 너무 슬퍼요”, “유채영 사망, 남편과 가족이 제일 힘들 듯. 힘내시고 이제 좋은 곳으로 보내드려야 할 듯”, “유채영 사망, 하늘나라에서는 못다한 연기 하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세상으로 가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채영 사망 “눈 한번씩 뜨고 가족·김현주 씨와 눈 마주쳐…애끓는 심정”

    유채영 사망 “눈 한번씩 뜨고 가족·김현주 씨와 눈 마주쳐…애끓는 심정”

    유채영 사망 “눈 한번씩 뜨고 가족·김현주 씨와 눈 마주쳐…애끓는 심정” 연기자 겸 가수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24일 오전 8시 위암으로 별세했다. 41세. 유채영 측은 이날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투병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다”며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방송인 박미선과 송은이 씨가 임종 때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유채영의 투병 소식은 지난 21일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이후 연예계 안팎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사흘 만에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그동안 유채영의 병실은 남편과 어머니, 시어머니 등의 가족과 배우 김현주가 지켰다. 이 측근은 “유채영 씨가 눈을 한 번씩 뜨고서 가족, 김현주 씨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며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로 체력이 너무 약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채영은 지난해 9월 1990년대 가수들의 합동 공연인 ‘리바이벌(Revival) 1990’s 나이트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달 후 속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암 판정으로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여서 항암 치료에만 전념해왔다. 그는 투병 중에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면서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씩 녹음을 했지만 지난달 하차할 때까지 청취자들은 투병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2009년 싱글 ‘어나더 디케이드’(Another Decade)가 마지막 음반이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힌 그는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파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캐릭터로 사랑받았으며 라디오 DJ로도 활약해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다. 네티즌들은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이렇게 훌륭한 배우를 하늘나라로 데려가다니 안타깝다”,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너무 슬프고 안타깝네요. 명복을 빕니다”,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암 투병 기간 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고통 잊고 이제 편안한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현주, 유채영 임종 지켜보며 고인과 작별…“유채영, 마지막 순간 한명씩 눈 마주치며 인사”

    김현주, 유채영 임종 지켜보며 고인과 작별…“유채영, 마지막 순간 한명씩 눈 마주치며 인사”

    ‘김현주 유채영’ ‘유채영 사망’ 김현주 ‘유채영 애도’ 소식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가수 겸 배우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41세. 유채영 측은 이날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투병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다”며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방송인 박미선과 송은이 씨가 임종 때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측근은 “유채영씨가 눈을 한번씩 뜨고서 가족, 배우 김현주씨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면서 “가족들의 애끊는 심정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로 체력이 너무 약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유채영의 투병 소식은 지난 21일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이후 연예계 안팎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사흘 만에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유채영은 지난해 9월 1990년대 가수들의 합동 공연인 ‘리바이벌(Revival) 1990’s 나이트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달 후 속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암 판정으로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여서 항암 치료에만 전념해왔다. 그는 투병 중에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면서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씩 녹음을 했지만 지난달 하차할 때까지 청취자들은 투병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2009년 싱글 ‘어나더 디케이드’(Another Decade)가 마지막 음반이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힌 그는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파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캐릭터로 사랑받았으며 라디오 DJ로도 활약해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다. 빈소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채영 위암 사망, 유채영 누구? ‘쿨 출신 만능엔터테이너’ [전문]

    유채영 위암 사망, 유채영 누구? ‘쿨 출신 만능엔터테이너’ [전문]

    ’유채영 사망’ 암 투병중이던 가수 유채영(41·본명 김수진)이 끝내 사망했다. 24일 유채영 소속사는 “이날 오전 8시 유채영이 위암 투병 끝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소속사는 “남편과 가족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면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그녀의 생전 밝았던 모습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유채영은 지난 1989년 안양예술고등학교 재학 당시였던 17세에 그룹 ‘푼수들’ 멤버로 데뷔했고, 1994년 혼성그룹 쿨 1집 앨범 ‘너 이길 원했던 이유’로 활동하다 1995년 탈퇴했다. 이후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다시 무대에 올라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를 발표했으며 가수뿐 아니라 연기와 예능을 넘나들며 활약했다. 생전에 유채영은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 ‘색즉시공’, ‘패션왕’,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등에 출연했다. 또 투병 중이던 지난 6월까지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 DJ로 활동하며 밝은 웃음을 선사했다. 한편 2008년 한 살 연상의 사업가와 결혼한 유채영은 지난 해 10월 말 건강검진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암 세포 제거 수술, 항암 치료를 받았으나 암세포가 기타 장기로 전이되면서 결국 생을 마감했다. 유채영(본명 김수진)의 빈소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유채영 사망 소식에 네티즌은 “유채영 사망,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채영 사망, 안타깝다”, “유채영 사망, 밝은 모습 오래도록 기억할게요”, “유채영 사망..기적을 바랬는데”, “유채영 사망..눈물이 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소속사 공식입장 전문 안녕하세요. 150엔터테인먼트 입니다. 가수 겸 배우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향년 41세(만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선고 받아 투병 중이던 유채영이 24일 오전 8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남편과 가족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습니다. 빈소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으며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습니다. 위암 투병 끝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그녀의 생전 밝았던 모습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시길 바라며 故 유채영 님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 서울신문DB (유채영 사망)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현주, 유채영 ‘택시’서 절친 인증했는데…임종 직전 곁에서 지키며 눈물로 보내

    김현주, 유채영 ‘택시’서 절친 인증했는데…임종 직전 곁에서 지키며 눈물로 보내

    ‘김현주 유채영’ ‘유채영 사망’ ‘유채영 빈소’ 김현주 ‘유채영 애도’ 소식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연기자 겸 가수 유채영이 24일 오전 8시 위암으로 별세했다. 41세. 유채영 측은 이날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투병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이후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파 조연으로 활약했다. 투병 중이던 지난 달까지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의 DJ로 활동했지만 상태가 악화하며 최근 하차했다. 남편과 가족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유채영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빈소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으며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씨가 있다. 소속사 150엔터테인먼트는 “위암 투병 끝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유채영씨의 생전 밝았던 모습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시길 바라며 고 유채영씨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측근은 “유채영씨가 눈을 한번씩 뜨고서 가족, 배우 김현주씨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면서 “가족들의 애끊는 심정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로 체력이 너무 약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채영의 임종에는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 방송인 박미선, 송은이가 곁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로슈진단 안은억 대표 ‘마이스터 정신’ 한국에 심다

    로슈진단 안은억 대표 ‘마이스터 정신’ 한국에 심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CEO로 꼽힌다.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던 ‘치료’의 자리에 ‘진단’의 가치를 새롭게 이식하는가 하면, 대졸 고학력자가 홍수를 이루는 한국 사회에다 유럽의 융성을 이끌었던 전문직업인 제도인 ‘마이스터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땀을 쏟고 있다. 단순하게 마이스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목청만 높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 마이스터 육성프로그램을 도입해 미래형 인재를 키우고 있다. ‘입신양명(立身揚名)’ 의식이 강해 ‘대학은 나와야 사람 노릇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우리의 묵은 의식에 과감하게 혁신의 메스를 들이대는 사람. 바로 한국로슈진단(주) 안은억 대표다. 그를 이해하려면 그의 개인사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배를 곯지 않기 위해 스위스로 떠난 소년  그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궁핍 속에서 활로를 모색하던 1978년에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스위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 시절에 ‘돈으로 다리를 놓는’ 귀족성 조기유학이 아니라 스위스의 페스탈로치 장학재단이 빈곤국의 고아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유학프로그램에 선발된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 후 이미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아버지는 우리 4남매를 부천의 한 보육원에 맡겼다. 여섯살 나던 해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뒤라 막막하기만 했다”면서 “그런 가운데 먹여주고, 공부까지 시켜 준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의 삶은 이렇게 반전을 이뤘다.  안은억 대표의 아버지는 해방공간을 살았던 여느 지식인들처럼 열렬한 좌파였다. 좌파에 대한 해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데, 당시의 좌파 경향은 독립운동사에서도 나타나듯 현실 속 지식인의 뇌리 속에 박힌 뿌리 깊은 항일의식의 발현이기도 했다. 경기도 수원의 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일제 치하에서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좌파적 성향에 빠져들었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에 자원입대했다. 당시 작은 아버지는 국군으로 싸우다 전사했으니, 불행한 역사가 만든 슬픈 가족사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비극이었다. ■비극적 역사가 투영된 가족사  그러나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이명훈이 그랬듯 그도 인민군 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탈출했다가 종전 후에 그런 사실이 밝혀져 옥살이를 해야 했다. 연좌의 악폐가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옥살이를 마친 뒤에도 그런 사상범이 겪을 수밖에 없는 ‘배제’와 ‘억압’의 굴레를 견디지 못해 술에 빠져들었다. 그 무렵 어머니를 만나 누이 셋 등 4남매를 두었으나 어머니는 안 대표가 여섯 살 나던 해에 돌아가셨고, 현실에 절망해 술에 빠져 사는 아버지에게는 자식들을 돌볼 여력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여덟살 나던 해에 보육원에 맡겨져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아야 했고, 그의 스위스행은 이렇게 이뤄졌다.  그는 “그 때 내가 스위스행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마 동네 불량배쯤 되지 않았을까”라며 웃었다. 혈혈단신 스위스로 향한 그가 정착한 곳은 취리히에서 북동쪽으로 100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샹트 갈렌(St.Gallen)이라는 도시였다. 섬유산업으로 기반을 닦아 스위스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도시였다.  스위스에서 그는 새로운 세계와 만났다. 물론 페스탈로치 장학생들이 모두 순탄하게 자신의 삶을 열어간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이 프로그램으로 유학길에 오른 50여명 중 더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고, 더러는 마약에 빠져 스스로를 무너뜨린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신산의 역경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생의 초반을 산 그에게 스위스는 기회의 땅이었다. ■한 세대의 종언 그리고 또다른 시작  그에게 가족, 특히 아버지와의 재회는 삶의 이유였으나, 비운의 역사에 온몸으로 맞섰던 아버지는 그가 스위스로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시고 말았다. 누나들은 어린 동생에게 이런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고, 그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열여덟 살 때에야 뒤늦게 아버지의 운명을 알았다. 그로서는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온 희망의 축 하나가 사라져버린 셈이었다. 이 때 그가 받았을 충격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가난한 나라, 불행한 아이’로 살면서도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지 하나로 버틴 그에게 비록 힘에 부치게 살았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곧 희망의 소실 아니었을까.  그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버지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아버지와의 이별을 안 그는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귀국했다. 그러나 그런 귀국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좌절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 고등학교와 상트 갈렌대를 마쳤으며,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딴 뒤 스위스 회사의 한국지사에 지원해 마침내 금의환향 길에 올랐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또다른 시작이었다. 학연과 지연이 지배하는 고국에서, 가족이라고는 세 누이 뿐이고, 지연은 이미 의미가 없었으며, 학연조차 없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은 능력 뿐이었다. 글로벌 기업에서 힘을 기른 그는 2009년 로슈진단에 터를 닦아 생명과학 분야 본부장을 거친 뒤 2012년 드디어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그는 “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다”면서 “그래서 몸담은 조직에서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나의 유일한 빽그라운드는 내 회사의 직원들 뿐”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가 겪은 성공 체험을 한국에 이식하다  그의 경영철학은 철저하게 소통 지향적이고, 상향식이다. 그것이 조직의 힘이라고 믿고 거기에서 새로운 발상과 에너지를 얻는다. 그런 그가 한국의 변혁을 기대하며 주창한 것이 바로 ‘마이스터 시스템’이었다. 의료 진단 분야에서 진단기기를 보급하는 회사의 목표와 함께 추구하는 그의 마이스터 정신은 많은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착을 시작했고, 그런 이상의 현실화를 목도하면서 그는 고국에서 색다르지만 의미 있는 씨앗 하나를 발아시켜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안은억 대표는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동행했다. 마이스터 정신의 실천자 자격으로였다. 그가 로슈진단의 수장이 된 이래 경영 측면에서의 성과가 눈부신 것이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마이스터 정신을 보급하면서 얻는 보람도 컸다. “학력 과잉의 한국사회에서 국가적 경쟁력을 기르는 일이 마이스터 정신에 있다”는 믿음을 그는 지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최근 세브란스병원에 아시아 최초로 조직검사용 첨단 샘플트렉킹 시스템인 ‘밴티지’를 설치해 병리 진단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그로서는 경영상의 수익이라는 기업적 지향과 다른 측면에서 한국 사회를 바꾸는 일에 스스로를 던진 셈이다. ■가장 자유롭고 가장 엄격하게  로슈는 현재 연간 매출액이 70조에 이르며, 특히 진단과 바이오의약 분야에서 공고하게 세계 1위를 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매출 규모가 1700억원을 넘어서 진단 분야에서 단연 톱의 자리에 올라있다. 어느 분야에서든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 1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도 역시 신뢰 기반을 존중한다. 그가 더욱 특별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인민군의 아들로 태어나 먼 이국에서 고아로 살아야 했으며, 그래서 고국이 더없이 값지고 귀한 그에게 역사는 그를 살아 숨쉬게 하는 자양분이며, 현실은 반드시 바꾸고 바뤄야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에도 그렇게 살았고, 지금도 그런 눈으로 세상을 주시하며, 앞으로도 그런 지향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런 그의 진정성은 그를 만나봐야 아는 것이기는 하지만, 만나지 않아도 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신에게 엄격하고 투철한 ‘열린 사람’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인 것은 가장 한국적인 그의 정신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확인할 수 있어서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유채영 사망 “투병 중 라디오 진행할 때도 밝은 모습 잃지 않아” 김현주 임종 지켜 ‘감동’

    유채영 사망 “투병 중 라디오 진행할 때도 밝은 모습 잃지 않아” 김현주 임종 지켜 ‘감동’

    유채영 사망 “투병 중 라디오 진행할 때도 밝은 모습 잃지 않아” 김현주 임종 지켜 ‘감동’ 연기자 겸 가수 유채영(본명 김수진)이 24일 오전 8시 위암으로 별세했다. 41세. 유채영 측은 이날 “유채영 씨가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같은 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서 투병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일 상태가 갑자기 악화했다”며 “남편과 가족, 배우 김현주·방송인 박미선과 송은이 씨가 임종 때 그녀의 곁을 지켰으며 아쉽게도 유언은 없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인의 생전 밝았던 모습을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유채영의 투병 소식은 지난 21일 세상에 알려졌다. 이날 이후 연예계 안팎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사흘 만에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그동안 유채영의 병실은 남편과 어머니, 시어머니 등의 가족과 배우 김현주가 지켰다. 이 측근은 “유채영 씨가 눈을 한 번씩 뜨고서 가족, 김현주 씨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며 “가족들의 애끓는 심정에도 불구하고 항암 치료로 체력이 너무 약해져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채영은 지난해 9월 1990년대 가수들의 합동 공연인 ‘리바이벌(Revival) 1990’s 나이트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달 후 속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고 위암 판정으로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여서 항암 치료에만 전념해왔다. 그는 투병 중에도 MBC 라디오 ‘좋은 주말’을 진행하면서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1주일에 한번씩 녹음을 했지만 지난달 하차할 때까지 청취자들은 투병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1994년 혼성그룹 쿨로 데뷔해 혼성듀오 ‘어스’로도 활동한 유채영은 1999년 솔로 가수로 나서 대표곡 ‘이모션’(Emotion), ‘이별유애’ 등으로 사랑받았다. 2009년 싱글 ‘어나더 디케이드’(Another Decade)가 마지막 음반이다. 연기로도 영역을 넓힌 그는 영화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색즉시공 2’(2007)를 비롯해 드라마 ‘패션왕’(2012), ‘천명:조선판 도망자 이야기’(2013)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개성파 조연으로 주목받았다. 또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재치있는 입담과 코믹한 캐릭터로 사랑받았으며 라디오 DJ로도 활약해 지난해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주환 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6일 오전 7시 40분이다. 화장 후 유해는 서현추모공원에 안치된다. 네티즌들은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정말 오늘은 너무 슬픈 날이다”,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어떻게 가족들을 위로해야 할 지. 정말 안타깝고 슬픕니다”, “유채영 사망, 임종 지킨 김현주,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너무 슬프고 우울하네요. 가족분들 힘내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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