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별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 포로
    2026-08-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885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대한민국 국회의원 최초 美 카네기홀 공연 김장실 의원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대한민국 국회의원 최초 美 카네기홀 공연 김장실 의원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지난 3일(현지시간) 전 세계 예술가들이 ‘꿈의 무대’로 꼽는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 구슬픈 한국의 대중가요가 울려 퍼졌다. 객석을 가득 메운 60~70대 한국 동포들은 가슴에 맺힌 한을 쏟아내듯 펑펑 울었다. 카네기홀을 ‘눈물바다’로 만든 사람은 바로 김장실 새누리당 의원이다. 전문 아티스트가 아닌 공연자가 120년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카네기홀에서 ‘솔드 아웃’(SOLD OUT·매진) 스티커를 받으며 ‘대박’을 터트린 것 자체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지난 20일 김 의원과 만나 공연 기획 단계부터 성황리에 마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중간중간 부르는 김 의원의 노래와 이야기가 함께 버무려져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했다. 김 의원은 “노래는 귀를 열게 하고 노래에 담긴 의미는 가슴을 적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오래전부터 공직사회와 정계에서 대중가요로 시대를 말하는 노래꾼이자 이야기꾼으로 유명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섰는데. -국내 대중 가수 중 패티김, 조용필 등 최정상 가수들만 무대에 섰다. 전문적인 성악 훈련을 받지 않은 아마추어가 선 것은 처음이다. 전 세계 국회의원 중에 누가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할 수 있겠나. 기록을 찾아봐야겠지만 없을 것 같다. →발상 자체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성사됐나. -우연히 부산의 한 방송국에 출연해 ‘부산과 대중가요’를 주제로 얘기하다가 노래를 했다. 성악을 전공한 방송 진행자가 ‘대중가요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에 대해 해박하고 노래가 직업 가수 뺨친다’며 그 자리에서 뉴욕에 있는 공연 기획자인 박준식 제이삭(JSAC) 대표이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게 지난 7월이었다. 이어 8월 초 한국을 방문한 박 대표와 식사를 같이 하다가 그 자리에서 노래를 3곡 불렀고 박 대표가 이에 만족해 공연이 성사됐다. 한국인의 가슴을 촉촉히 적셨던 히트 가요를 선곡해서 그 노래가 가지는 시대정신이 무엇이고, 당시에 일어났던 정치적 사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얘기했다. 거기에 노래를 만든 가수와 작사가, 작곡가, 음반 제작자와 팬들 사이에 있었던 뒷얘기를 통해 연예사적 재미를 더했다. 재미없는 노래에 재미있는 ‘당의정’을 입혀 관객들 입에 솔솔 녹도록 했다. →(인터뷰 도중 때마침 박 대표가 ‘매진’ 딱지가 붙은 공연 포스터를 들고 오자) 박 대표가 직접 공연 기획 과정을 말씀해 달라. -(박 대표) 제이삭은 뉴욕에 있는 공연 기획사다. 처음에는 카네기홀 공연이 연 2회도 힘들었는데 7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연 26회로 늘었다. 현재 국립무용단, 국립오페라단, KBS 교향악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단의 해외 공연은 대부분 저희가 맡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김 의원과의 미팅에 나가지 않으려 했다. 제가 가장 반대했다. 카네기홀은 1년 전에 미리 대관 신청을 받는데 특히 올해는 개관 125주년이어서 대관 검열이 아주 까다로웠다. 그래서 김 의원을 만나기 전에 어떻게 거절할지부터 고민했다. 식사 자리에서 김 의원이 대뜸 노래의 스토리를 얘기하며 직접 3곡을 불렀다. 주변에 사람들도 많았는데 대놓고 열창을 했다. 특히 ‘동백아가씨’에 대한 사연을 들었는데 음악과 내용의 연결고리가 너무 좋았다. 광복 70주년이기도 해서 ‘이거다’ 싶었다. 미국 이민자 중에는 이산가족이 많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왔는데 영주권도 없고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 한국인이 몇십만명 된다. 이들은 한국에서 부모님이 위독하거나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아도 못간다. 그렇게 이산가족이 된 사람들이 많다. 또 2~3세대 자녀들은 1세대들과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를 알 길이 없다. →카네기홀 측의 승인을 어떻게 받았나. -(박 대표)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도 한국 최고의 공연장이라고 까다로운데 드보르자크, 차이콥스키 같은 음악가들이 초연을 한 125년 역사의 카네기홀이니 얼마나 뻣뻣하겠나. 게다가 아티스트도 아니고 강연을 하겠다고 하는데…. 카네기홀 측에서 ‘이 사람 아티스트냐’고 물어봐서 ‘아티스트는 아닌데 노래를 잘한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 카네기홀 측도 공연이 망해 명예가 실추될까 봐 주시한다. 전문 아티스트 기록이 없으면 무대에 서기 어렵다. 그래서 그냥 대중가요가 아니라 ‘강연과 콘서트’로 콘셉트를 잡았다. 일제시대부터 해방이 되고 전쟁을 거쳐 다시 휴전이 된 모든 과정을 영문으로 번역해 기안을 올렸고 결국 승인받았다. →어떻게 매진이 됐나. -(박 대표) 공연 열흘 전 첫 언론 보도가 나갔는데 사무실 업무가 마비됐다. 이민 1세대, 1.5세대 등의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 우리가 외국계 회사인 줄 알고 ‘아이 니드 코리안 토크쇼 티켓’(I need Korean Talk Show ticket·한국인 토크쇼 티켓이 필요합니다)이라며 간절한 목소리로 안 되는 영어를 더듬더듬 써 가며 전화를 걸어왔다. 돈을 받아선 안 되겠다 싶어서 40달러의 티켓 비용을 무료로 전환했다. 카네기홀 측에서는 공연 일주일 전에 홍보 포스터가 다 나갔는데 어떻게 무료로 하느냐며 반대했다. 우리가 완강하게 밀어붙이자 카네기홀 측에서 ‘공연에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너무 자신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제가 카네기홀에서만 170회 공연을 기획했는데, 매진된 건 처음이다. 아티스트들은 각성해야 한다. 하하. →관객들 반응은 어땠나. -공연 초반부에 관객들이 점잖게 앉아 있길래 다 같이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카네기홀이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한국인이 막걸리 마시며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젓가락을) 두들기는 60~70년대 정감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공연 내용은 어땠나. -해방 이후 70년을 10년 단위로 끊어서 보면 그 시대에 발생한 정치·사회적 사건에 시대정신이 드러난다. 1940년대는 아무래도 해방의 기쁨보다 더 큰 게 없다. 식민 지배가 30년이 넘었고 일본이 아시아를 지배한다고 하니 독립은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해방이 됐다. 얼마나 기뻤겠나. 해방을 기뻐하는 노래가 막 쏟아져 나왔다. ‘사대문을 열어라’ ‘울어라 은방울’ 같은 노래들이다. 가장 상징적인 노래는 ‘귀국선’이다. 일본에 동포 230만명이 살고 있었고 중국에 200만, 기타 수십만명이 외국에 살고 있었는데 귀국선은 귀환 동포들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는 주요한 통로였다. 그 배를 타고 돌아오는 이들에게 좋은 나라를 만들어서 다시는 빼앗기지 말고 잘 살아 보자는 욕구가 있었다. 그런 욕구가 가사에 잘 표현돼 있다. →1950년대에는 어떤 노래가 상징적인가. -한국전쟁보다 더 1950년대를 특정 짓는 사건은 없다. 중공군이 내려왔을 때 유엔군과 국군은 6중, 7중으로 포위당해 독 안에 든 쥐처럼 죽을 지경으로 집중 타격을 받았다. 한국 지형은 동고서저형이어서 육로 철수가 어려웠다. 그래서 흥남부두에서 해상 철수를 했다. 자유를 잠시 맛본 이북 사람 수십만명이 ‘우리도 데려가 달라’고 했다. 대규모 수송선을 수백척 동원해서 무기를 버리고 군인 10만명, 민간인 9만 8000명을 태우고 내려왔다. 그때 많이들 헤어졌다. 부산에 홀몸으로 내려온 여성분에게서 피란 중 가족과 헤어진 구구절절한 사연를 들었다. 손잡고 같이 타자 했는데 서로 타려고 밀치고 당기다가 밀려서 아이 손, 마누라 손 놓고 ‘어디 갔노, 어디 갔노’ 찾다가 어디 가 버렸는지 몰라 펑펑 울고…. 그 감정을 잘 표현한 노래가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다. 또 부산에서 울다가 죽을 순 없으니까 국제시장에서 장사하고 구두도 닦으며 살았다. 오며 가며 눈이 맞았던 경상도 처녀하고 정을 주고 살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이후 헤어졌던 부모, 형제, 처자식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서울로 떠났다. 그러면 경상도 처녀가 가지 말라며 붙들고 늘어진다. 서울 가면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데, 차창 밖으로 보니까 정들었던 경상도 아가씨가 울고 있고…. 그런 사나이의 복잡한 심경을 잘 표현한 노래가 남인수가 부른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다. 이승만 정부가 사사오입, 발췌개헌을 하면서 계속 권위주의 정부로 치달았다. 이승만 대통령을 이길 수 있는 후보로 신익희 선생이 나섰는데 1956년 5월 5일 오후 5시 5분 서울역에서 출발한 호남선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정권 교체의 꿈이 사라지고 허망한 상태가 됐다. 그때 손인호 선생의 ‘비 내리는 호남선’ 노래에 대한 유언비어가 돌았다. 신 선생 부인이 너무 억울해 그 노래를 작사를 한 게 아니냐는 소문이었다. 그런 풍문이 노래 판매를 촉진시켰다. →1960년대의 대표곡은 무엇인가. -경제 개발로 산업화가 본격화돼 촌에서 빈둥빈둥 놀던 사람들이 도시로 와서 출세를 많이 했다. 출세를 사회학에서는 ‘사회적 계층 상승’이라고 한다. 돈을 많이 벌거나 고시에 합격하거나 좋은 집안과 혼인을 맺는 것, 3가지가 전통적인 출세 방식이다. 조선시대 500년간 쌓여 왔던 계층 구조가 일제시대 때 반쯤 파괴됐고 한국전쟁으로 계층구조가 거의 다 파괴됐다. 특히 1960년대에는 남자가 출세를 하면서 그렇지 못한 여인과 간격이 많이 벌어졌다. 출세한 남자는 도시의 좋은 집안에서 얼른 낚아채 가 버린다. 그러면 시골 보리밭에서 사랑을 나누고 백년가약을 맺었던 여인과는 멀어진다. 이런 식의 이별이 워낙 많았다. 1960년대 초·중반의 영화와 소설, 대중가요, 라디오 드라마의 60~70%가 서울로 간 남자는 출세해서 예쁜 집 규수를 얻고 시골에서 사랑했던 여인은 버림받고 그 여인은 사회적 장벽으로 인한 거리감 때문에 남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상황을 다뤘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남진의 ‘가슴 아프게’,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의 전형적인 도식이다. 1964년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와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동백아가씨’가 엄청나게 히트를 했다. 왜색조라며 노래가 나온 지 1년도 안 돼 방송금지가요가 됐는데도 20만장이 팔렸다. 3년 뒤인 1968년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음반 제작 금지를 당했는데도 200만장이 팔렸다. 음반을 낸 지구레코드사 고 임정수 사장의 얘기다. 한국 가요 사상 가장 히트한 노래가 동백아가씨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김장실 의원은 김 의원은 국내 문화·체육계의 대부 격이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과 정치특보 등을 지냈다. 문화관광부 예술국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사무국장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까지 역임했다. 이후 예술의 전당 사장에 임명돼 문화 공연계의 발전에 기여했다. 현재 대한장애인농구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2014년 인천세계휠체어농구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김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준비 중이다.
  • 黃 “나라 위해 헌신한 발자취 국민은 잊지 않을 것” 金 “민주주의·민권 위해 모든 것 바치신 희생의 삶”

    黃 “나라 위해 헌신한 발자취 국민은 잊지 않을 것” 金 “민주주의·민권 위해 모든 것 바치신 희생의 삶”

    황교안 국무총리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葬) 영결식 조사(弔辭)에서 “김 전 대통령은 평생 동안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대도무문의 정치철학과 민주주의의 확고한 신념으로 민주화의 길을 연 의회민주주의의 산증인”이라며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이날 장례위원장을 맡은 황 총리는 “우리는 오늘 우리나라 민주화의 큰 산이신 김 전 대통령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있다”면서 “오랜 세월 국민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한 김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황망한 마음 가눌 길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황 총리는 “금융실명제 도입과 군 사조직 개혁, 공직자 재산공개 등 국가개혁은 깨끗하고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면서 “세계화와 개방화라는 국제적 추세에 맞춰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추진하는 데도 많은 힘을 기울이셨다”고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열거했다. 이어 “대통령님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등 역사 바로 세우기에도 노력하셨다”면서 “이처럼 나라를 위해 헌신해 오신 대통령님의 발자취를 우리 국민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울먹이며 추도사를 낭독했다. 김 전 의장은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민주주의와 민권을 위해 모든 것을 남김 없이 바치신,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셨다”면서 “대통령님의 생애는 시련과 극복, 도전과 성취의 대한민국 민주헌정사 그 자체였다”고 평가했다. 김 전 의장은 이어 “자유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오시는 동안 초산테러, 가택연금, 국회의원직 제명 등의 혹독한 탄압이 간단 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업적에 대해서는 “군사독재체제의 누적된 폐해를 혁파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공고히 한 역사적 결단”이었다고 추어올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영삼 대통령님 참으로 참으로 수고 많으셨다”면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사모하던 하나님의 품 안에서 부디 안식하소서”라며 끝을 맺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그가 떠나는 날, 눈이 내렸습니다

    그가 떠나는 날, 눈이 내렸습니다

    그가 그토록 뜯어고치고 싶어 했던, 그럼에도 여전히 고칠 게 많은 이 세상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원히 작별했다. 지난 22일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裝) 영결식이 26일 국회 본청 앞에서 거행됐다. 오후 2시부터 1시간 20분간 눈이 내리는 가운데 거행된 영결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나란히 ‘통합’과 ‘화합’을 유언으로 남긴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헌화했다. 영결식에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와 차남 현철씨 등 유가족은 물론 헌법기관장,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7000여명이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감기 증세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영결식 전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고인의 영정을 배웅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건강 문제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는 조사를 통해 “우리는 오늘 민주화의 큰 산이었던 김 전 대통령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있다”며 “대통령님이 염원한 평화롭고 자유롭게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혹독한 탄압이 간단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영결식 후 운구 행렬은 고인이 46년간 살았던 동작구 상도동 사저에 들른 뒤 그곳에서 2㎞ 떨어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종착(終着)했다. 김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든 이날 서울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고, 시민들은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종종걸음을 쳤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 - ‘묏버들 시인’ 홍랑의 사랑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 - ‘묏버들 시인’ 홍랑의 사랑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위의 시는 우리의 가난한 시인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의 첫 연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때, 위의 시처럼 ‘서러운 사랑’ 이야기 하나를 따라가보기로 하자. 하지만 마냥 서럽기만 한 사랑은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조선조 500년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역사상 가장 긴 배웅길 주인공은 좀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벼슬아치와 기생이다. 선조 6년(1573년) 가을 어느 날, 저 함경도 땅 홍원에서 처음 만난 순간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엮여지게 되었는데, 남자는 문관 출신 시인인 최경창(崔慶昌), 여자는 홍원 관아 기생인 홍랑(洪娘)이다. 그때 홍랑은 나이 열 예닐곱의 갓 피어나는 처녀 몸이었지만, 고죽(孤竹) 최경창은 그보다 17, 8살이나 많은 34살의 중년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나이차를 가볍게 뛰어넘게 해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詩)와 음악이었다. 29살인 선조 원년(1568년)에 문과에 급제한 최경창은 당대의 문인 이율곡, 정철, 이산해, 양사언 등과 어깨를 나란히 교유하며 시와 문장으로 문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의 청절하고 담백한 시풍은 멀리 중국에까지 알려졌을 정도였다. 또 고죽은 피리의 고수였고, 홍랑 또한 거문고 연주가 최고수준의 기량이어서, 둘이 음률을 즐기며 시와 술잔을 주거니받거니 하다 보니, 고죽은 이래저래 홍랑에게 대책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그럼 과연 홍랑은 어떤 기녀였던가, 그 내력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자. 야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홍랑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열두어 살 무렵에 잃었다. 말하자면 고아가 된 것이다. 그녀를 거두어준 것은 어머니의 병을 돌봐준 마을의 의원으로, 홍랑은 그로부터 글을 배웠다. 나이가 들면서 홍랑은 시와 음률을 가까이하게 되었고, 타고난 미모와 영특함으로 꽃다운 규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가난을 떨칠 수가 없어 기적에 몸을 올리고 홍원 관아에서 지냈다. 최경창이 홍랑을 만난 곳은 임지인 경성으로 가던 중 하룻밤 묵었던 함경도 홍원 관아였다. 당시 경성은 함경도 북부에 웅거하던 여진족들이 자주 출몰하던 곳으로, 말하자면 최전방 지역이었다. 병마절도사가 주재하는 경성도호부에 고죽 같은 문신을 북평사(北評事)로 보내는 것은 무관 출신인 병마절도사를 보좌하기 위함이었다. 홍원 객사에서 하룻밤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은 고죽과 홍랑은 경성으로 가는 길에는 동행하지 못한다. 부임지에 가면서 댓바람에 관기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후 두 사람은 경성의 군막에서 다시 만난다. 우리는 여기서 홍랑의 다릿심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홍원과 경성은 굽이굽이 험한 산길로 이어지는 천릿길이다. 서울-부산 간 거리와 맞먹는 셈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낭군을 만나기 위해 홍랑은 남장을 한 몸으로 이 멀고도 험한 길을 주파했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막중(幕中)에서 두 사람이 마주 섰을 때, 그 감동과 애틋함이 어땠을 것인가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 꿈은 반년을 넘기지 못했다. 선조 7년(1574년)인 이듬해 봄, 고죽이 경성에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조정의 부름을 받아 한양으로 돌아가야 했다. 경성에서 한양까지는 경흥대로를 따라가는 2천릿길이다. 홍랑은 차마 헤어지기 싫어서 배웅을 나선다. 문 밖 배웅 정도가 아니라,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고 따라 나선 길이 천릿길 홍원을 지나고, 함관령(함흥-홍원 간 고개) 넘어 쌍성(영흥)에까지 이르렀는데, 출발지인 경성에서 무려 1,300리 길이었다. 역사상 최장의 배웅길이 아닐까 싶다. (기네스북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다릿심 좋은 홍랑도 여기서는 더이상 갈 수가 없다.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해놓은 것이다. 이른바 양계(兩界/평안도·함경도)의 금(禁)으로, 두 도의 백성들은 도계를 넘어 남쪽으로 올 수 없었다. 오랑캐의 침입이 잦아 빠져나가는 인구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관북이 무인지경이 될 것을 염려한 때문이다. 최고의 걸작 시조 ‘묏버들’ 두 사람은 쌍성 고갯마루에서 작별을 고했다. 때는 봄절이어서 골짜기마다 빛 고운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이 길은 한 40년 후 백사 이항복이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를 읊으며 귀양간 길이기도 하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하염없이 걷다 보니 함관령 고갯마루다. 날이 저물고 차가운 빗발까지 뿌린다. 홍랑은 발길을 멈추고 길가의 산버들을 몇 가지 꺾었다. 그리고 지필묵을 펼쳐 시조 한 수를 적어내려갔다. 고죽은 자신의 일기에다 함관령의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나와 이별한 뒤, 홍랑이 함관령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고 비가 내렸다. 이곳에서 홍랑이 내게 시를 한 수 지어 보냈다”. 이 시조가 바로 유명한 ‘묏버들’ 시조다. 한국문학사상 이보다 아름다운 연시는 없을 것이다. 묏버들 갈해^ 꺾어 보내노라 님의손대^자시는 창 밖에 심거두고 보소서밤비에 새잎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갈해/가려 ^님의손대/님에게로) 예전엔 이 시조 역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는 이 시조를 두고 우리 시조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했고, 작가 이태준은 “그 뜻의 그윽함과 소리의 매끄럽고도 사각거림이 묘미”라고 극찬했다. 여기에 ‘사각거림’이라고 표현한 것은 시 전편에 ‘ㄱ‘ 음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읽는 맛을 더해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버들가지는 옛사람들이 친구나 정인과 이별할 때 꺾어주던 정표이다. 봄에 가장 잎이 빨리 피는 버들가지처럼 빨리 돌아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홍랑은 묏버들 몇 가지와 이 시조를 보자기에 정성껏 여며 인편으로 고죽에게 보냈다. 고죽은 이것을 받아들고 위와 같은 일기 기록을 남긴 외에도 이 시조의 한역가 ‘번방곡(飜方曲)’을 지었는데, ‘번방’이란 즉석 번역이란 뜻이다. 가람 이병기 시인은 두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이는 그 원가(原歌)가 ‘번방곡’이란 한시보다도 낫게 되었다. 간곡하고 심절한 그 석별의 뜻이 언사에 넘친다. 종래 시가에도 증절류(贈折柳)와 같은 것이 없지 않으나, 이것은 그런 걸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고, 새로운 한 작품이다. 우수한 것이다. 한 보배이다.” 두 사람은 그후 한 3년간은 서로 만나지 못한 듯하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그건 요샛말이고, 당시에는 국법으로 도계(道界)도 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홍랑의 사랑은 그것마저 넘었다. 한성으로 간 뒤 시름시름 앓던 고죽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홍랑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길을 나섰다. 홍원에서 한성까지는 함관령을 넘고 나서도 천릿길이다. 이 먼 길을 홍랑은 놀라운 다릿심으로 이레 동안 밤낮으로 걸어 마침내 한양에 들어왔다(이것도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감이다). 그리고 그리운 고죽을 만났다. 실로 3년 만의 재회였다. 그러나 뼈밖에 남지 않은 고죽은 홍랑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때부터 홍랑의 눈물겨운 병수발이 시작되었다.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자지 않는 필사의 간병이었다. 옆에서 보는 고죽의 본부인도 그 부모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눈물겨운 정성이었다. 그 정성이 통했는지 고죽은 이윽고 건강을 회복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나 최경창이 건강을 되찾은 기쁨도 오래 가지 못했다. 선조 9년 봄, 사헌부는 최경창의 파직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홍랑이 관기의 신분으로 지역을 이탈하여 양계의 금을 어겼다는 것이다. 더욱이 홍랑이 최경창을 찾아온 때는 명종의 비 인순왕후가 죽은 지 1년이 안된 국상기간이었다. 선조는 사실 고죽의 팬이었다. 그의 시를 무척 사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명분을 버리면서 고죽을 감쌀 수는 없었다. 결국 최경창은 파직을 당했고, 홍랑도 다시 고죽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홍랑이 떠나던 날 고죽은 이별의 시 두 편과 ’번방곡‘을 홍랑 손에 건네주었다. 시로 맺어졌던 두 사람이 아니었던가. 고죽이 이별 선물로 건넨 ’송별‘이란 제목의 칠언절구는 다음과 같다. 고운 두 뺨에 눈물지으며 봉성을 나서네새벽 꾀꼬리도 이별이 서러워 그리 우는가비단옷에 말 타고 강 건너 떠나갈 제풀빛만 아득히 외로운 나그네 전송하리  홍랑의 ’묏버들‘ 시조 육필 서첩 발견​ 최경창은 파직당한 얼마 후 복직되어 함경도 종성 부사 등 변방의 한직으로 오래 떠돌았다. 홍랑을 한성으로 불러들일 수 없는 고죽으로서 외직을 자청한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둘 사이에는 그 동안 연면한 교류가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선조 16년(1583년) 봄, 고죽은 경성절도사로 근무하다가 성균관 직강으로 발령받아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지금의 왕십리 부근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그때 나이 겨우 마흔 다섯이었다. 멀리 함경도 홍원 땅에서 고죽의 부음을 들은 홍랑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다시 길을 나섰다. 객사를 한 만큼 무덤 돌볼 사람이 마땅히 없어 고죽이 홀로 외로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잠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래 시묘살이는 움집에서 생활하며 조석으로 상식 올리기를 3년 동안 하는 것이지만, 너무나 힘들어 기한을 지키는 예가 많지 않았다. 대개는 석 달 정도 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파주 한강 옆 고죽의 무덤 곁에 움집을 짓고 시작한 홍랑의 시묘살이는 한강의 매운 바람 속에서 장장 9년이나 계속되었다. 그것은 시묘살이라기보다 숫제 고인과의 동거였다. 세상 무엇으로부터도,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홍랑은 시묘살이를 하는 중에 혹시 불측한 일이 일어날까 하여 스스로 ’용모를 흐트렸다‘고 한다. 어떤 자료에는 인두로 얼굴을 지졌다고도 하는데, 실상은 잘 알 수 없다. 기나긴 홍랑의 시묘살이를 마감시킨 것은 다름아닌 임진왜란이었다. 최경창이 남긴 시 원고와 유품을 챙겨든 홍랑은 다시 함경도 홍원 땅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전쟁이 끝나기까지의 7년 동안 그녀의 행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고죽의 시와 문장이 담긴 '고죽집'(孤竹集)이 전해지게 된 것은 오로지 남편의 유고를 생명처럼 아낀 홍랑 덕분인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홍랑은 해주 최씨 문중을 찾아와 최경창의 유작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듯, 고죽의 무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멀고 먼 고행으로 이어졌던 고단한 삶을 마감했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은 자기를 남편 곁에다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이 1598년 11월에 끝났으니, 홍랑의 기질로 보아 아마 그 이듬해 봄을 맞아 고죽에게로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때 홍랑의 나이 마흔 두셋 정도로, 고죽이 떠난 지 16년째의 봄이다. 자신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고난과 고행으로 점철되었던 홍랑의 삶은 그렇게 마침표가 찍어졌으리라. 홍랑이 죽자 해주 최씨 문중은 그녀를 집안 사람으로 받아들여 장례를 지냈다. 최씨 문중에서는 홍랑을 작은마님이라고 불렀다 한다. 홍랑의 무덤은 최경창 부부의 합장묘 바로 아래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해주 최씨의 문중 산에 고죽의 묘소와 홍랑의 무덤이 있다. 홍랑과 고죽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어 그 후손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음이 얼마 전에 밝혀졌다. 그리고 또 지난 2000년에는 홍랑과 고죽의 연시가 수록된 11쪽짜리 서첩이 발견됐다. 이 서첩엔 홍랑의 ‘묏버들’ 원본과, 고죽이 홍랑과 헤어지면서 써준 고죽 육필의 ‘송별’ 등 한시 두 편이 실려 있다. 단아한 글씨의 ‘묏버들’은 홍랑의 친필로 밝혀졌다. 이 서첩을 보고 가람 이병기 시인이 감상기를 적어넣은 발문도 함께 공개됐다. 그 멀고 먼 길을 걸었던 홍랑의 고단한 여정은 그녀가 10년 세월을 보냈던 파주 다율리 산자락에서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녀의 무덤자리를 찾는 후세인들의 발걸음은 아직까지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모양이다. 홍랑시비도 지난 1981년 무덤을 찾아온 시인들의 손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어느 해 여름이던가, 홍랑 묘를 찾았을 때, 보라색 무릇꽃으로 둘러싸인 그녀의 무덤 앞에 ‘시인 홍랑지묘’라고 새겨진 오석 빗돌이 서 있고, 앞쪽의 아담한 시비에는 홍랑의 ‘묏버들’과 고죽의 번방곡’이 앞뒤로 새겨져 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400년도 더 지난 지금에까지, 묏버들 피는 봄을 지나 무릇꽃 흔들리는 산자락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완결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지니, 11월 3주차 실시간 누적차트 ‘감성 저격 이별 노래 강세’

    지니, 11월 3주차 실시간 누적차트 ‘감성 저격 이별 노래 강세’

    감성을 저격하는 이별 노래가 음원차트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일 음원서비스 지니에 따르면 11월 3주차(11월 12일~11월 18일) 집계 결과, 애절한 보컬과 쓸쓸한 가사로 늦가을 감성을 적시는 이별 노래가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11월 3주차 지니 실시간 누적차트 1위는 윤하의 ‘널 생각해’가 올랐다. 이 곡은 이별 후 연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감성적인 노랫말과 윤하 특유의 음색이 어우러져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이별의 아픔을 표현해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1. 윤하 ‘널 생각해’ 16일 자정 공개된 아이콘(iKON)의 ‘지못미’는 2위에 새롭게 진입했다. ‘지못미’는 이별한 남자의 쓸쓸하고 복잡한 심정을 담은 알앤비 슬로우 곡으로 가사 작업에 아이콘 멤버가 직접 참여해 화제가 됐다. 2. 아이콘(iKON) ‘지못미’ 3위는 이엑스아이디(EXID)의 ‘핫핑크(HOT PINK)’가 차지했다. 4위에는 다이나믹듀오의 ‘꿀잼’이 올랐으며 시적인 가사와 감성 보컬이 돋보이는 임창정의 ‘또 다시 사랑’은 5위에 올랐다. 3.이엑스아이디(EXID) ‘핫핑크(HOT PINK)’ 4.다이나믹듀오 ‘꿀잼’ 5.임창정 ‘또 다시 사랑’ KT뮤직 지니 관계자는 “‘널 생각해’를 비롯해 ‘지못미’ 등 감성 음원들이 차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며 “최근 가수들의 컴백 러시가 이어지면서 신곡들이 네티즌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영상=지니, 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이하늬 같은 생각, 윤계상 “축하해” 럽스타그램 대박

    이하늬 같은 생각, 윤계상 “축하해” 럽스타그램 대박

    이하늬 같은 생각, 윤계상 “축하해” 럽스타그램이하늬 같은 생각, 이하늬 윤계상이하늬가 가야금 협주곡 ‘같은 생각’ 음원을 발표한 가운데, 연인 윤계상의 응원이 눈길을 끈다.최근 윤계상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음원축하”라는 짧은 메시지와 이하늬의 ‘같은 생각’ 앨범 커버 사진을 게재했다.이하늬가 발표한 ‘같은 생각’은 ‘보컬’과 ‘가야금’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서정적인 멜로디에 가야금 가락이 어우러진 독특한 음색의 발라드 곡으로 오랜 만남으로 인해 반복되는 다툼에 지쳐 이별하는 두 남녀의 속마음을 담아냈다. 윤계상과 이하늬는 연예계 공식커플로 2년째 예쁜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서로를 언급하며 애정표현을 아끼지 않아 팬들 사이에서 ‘럽스타그램’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만원에 연인과 대신 헤어져 드립니다”…加 이색 사이트 화제

    “1만원에 연인과 대신 헤어져 드립니다”…加 이색 사이트 화제

    설령 상대에 대한 마음이 떠났다고 해도, 연인관계 청산을 단호하게 선언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단돈(?) 1만 원에 대신 해주겠다는 미국 온라인 서비스가 있어 화제다. ‘이별 상점’ 이라는 의미의 직설적인 이름을 가진 웹사이트 ‘브레이크업 샵’(Breakup Shop)은 원치 않는 관계를 다양한 방법으로 대신 끝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주 문을 연 이 사이트는 캐나다인 형제 맥켄지와 에반이 함께 만든 것이다. 이들은 ‘틴더’(Tinder)와 같이 두 사람을 연인 관계로 이어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그 반대 역할을 해주는 서비스 또한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처음 이 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형제 중 한 사람이 과거 여자친구의 이별 방식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성은 이별의 의사를 확실히 밝히는 대신 연락을 끊고 ‘잠수’한 채 상대가 이별을 받아들이길 기다렸던 것. 형제는 브레이크업 샵의 경우 이런 방식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대신 확실한 ‘끝맺음’을 해줄 것이라고 전했다. 브레이크업 샵에서 제공하는 ‘이별 상품’은 그 안에 담긴 ‘정성’에 따라 가격이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10달러(약 1만1000원)를 지불할 경우 이들은 상대방에게 이메일이나 문자를 통해 이별을 알린다. 20달러를 내면 편지를 보내 이별의 의사를 전달하며 29달러(약 3만4000원)에는 전화를 걸어 관계를 청산해준다. 80달러(약 9만 3000원) 이상을 내면 금액에 맞춰 ‘이별 선물 패키지’를 만들어 전달한다. 이 패키지 안에는 속상한 마음을 달래면서 먹을 고급 과자, 드라마·영화 시청 사이트 ‘넷플릭스’(Netflix)의 상품권, 몰입도 높은 최신 비디오 게임, 슬프기로 유명한 영화 블루레이 등을 포함시킬 수 있다. 더 나아가 형제는 ‘이별 선물 패키지’에 대해, “패키지 상자는 연인과의 추억이 담긴 물품들을 넣고 불태우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다”며 농담조의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사업의 성과는 아직 소소한 수준이다. 형제는 지난 약 1주일 동안 3통의 이별 전화와 6건의 이별문자를 판매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형제는 자신들의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들은 “우리 서비스는 고객에게 마음의 평안을 선사하며, 상대방과 장기적인 친구 관계로 남을 가능성을 극대화 해준다”고 전했다. 사진=ⓒ브레이크업 샵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 책] 학교가 없어진대요… 산꽃분교 아이들의 ‘즐거운 이별’

    [이주일의 어린이 책] 학교가 없어진대요… 산꽃분교 아이들의 ‘즐거운 이별’

    학교야, 울지마!/오채 지음/김영미 그림/문학과지성사/196쪽/1만원 산꽃분교 전교생은 2학년 정미와 다솔이, 6학년 정희와 다은이, 강산이, 다섯 명뿐이지만 전혀 부족함이 없다.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는 데다 마을을 둘러싼 자연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돼 주기 때문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농사일을 돕는 것도 재밌고, 전교생이 어울려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는 것도 즐겁다. 이런 아이들에게 슬픈 소식이 날아든다. 교육청으로부터 6학년이 졸업하고 나면 학교를 폐교하기로 결정했다는 통보를 받은 것. 재밌게 잘 다니던 학교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아이들은 똘똘 뭉쳐 폐교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다. 학교는 없어지지만 그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나가기로 한다. 학교에서 야영도 하고, 고구마를 심어 번 돈으로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여행도 간다. 10년 후 자신들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생각하며 타임캡슐도 묻는다. 그동안 넉넉한 품으로 자신들을 맞이해 준 학교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는다. 산꽃분교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이들이 절망적인 환경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 꿈을 갖는 아이로 커나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다섯 아이들의 생생한 캐릭터, 산골 마을의 포근한 풍경, 어른들과 아이들의 따뜻한 교감이 읽는 내내 감동을 자아낸다. 아이들에게 잠시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따뜻한 장도 마련해 준다. 작가는 작품마다 순하고 진실한 것에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으며, ‘날마다 뽀끄땡스’로 제4회 마해송문학상을 받았다. 초등 고학년.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씨줄날줄]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동구 논설위원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 ABC뉴스 등은 최근 93세의 미국 남성과 88세 영국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실어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영국 런던의 템스 강둑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웠지만 부대의 미국 본토 복귀로 둘은 서로 다른 배우자와 가정을 꾸렸다. 71년 동안 둘은 서로 먼저 세상을 등진 것으로 알고 추억만 간직한 채 지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과거의 연인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양쪽의 자녀들이 부모의 옛 연인을 찾아 나섰고, 인터넷 등의 도움으로 결국 성공했다. 미국과 호주에서 서로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태평양과 71년이란 세월을 넘어 옛사랑을 다시 만나는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전쟁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애틋한 사연들은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에게서도 흔하다. 지난달 금강산에서 이뤄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도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던 만남이 여럿 있었다. 그 가운데 65년 만에 만난 부부의 사연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리게 하고 있다. “살아 있어 고마워.”, “미안하고 고맙소.”, “오래 사슈.”, “잘 가시게…, 여보….” 뱃속에 잉태되었던 아기가 60세가 넘은 노인이 되고서야 다시 만난 부부였지만 또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생이별 장면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애틋함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다를 게 없을 게다. 체코 프라하의 카를교 다리 밑이나 서울 남산공원 등지에 수없이 걸려 있는 ‘사랑의 자물쇠’는 이별의 아픔보다 결혼이라는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애절함 때문일 것이다. 초원의 빛, 위대한 캐츠비 등의 할리우드 영화와 피천득의 인연을 비롯한 수많은 문학작품 등을 통해 못다 이룬 사랑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함께 공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반면에 젊은 날 사랑을 이루는 데 성공한 부부가 세월을 거듭할수록 미움을 쌓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전쟁과 평화 등 위대한 작품들을 남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82세의 나이에 아내와의 가정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눈 내리는 날 집을 나섰다가 얼어 죽은 채 발견됐다고 한다. 최근엔 나이 지긋한 노부부들의 이혼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황혼 이혼이다. 법원 행정처가 최근 발간한 201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해오다 지난해 이혼한 황혼 이혼 건수는 3만 3140건에 이른다. 전체 이혼 건수의 28%를 넘는다고 한다. 신혼 때가 아니라 오래 살면 살수록 이혼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지는 세태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격 차이, 남편의 외도가 황혼 이혼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니 젊음이 오래 유지되는 장수시대의 새로운 그늘이 아닌가 싶다. 이동구 논설위원 yidonggu@seoul.co.kr
  • 통금 걸린 ‘0시의 이별’…36년이나 했네

    통금 걸린 ‘0시의 이별’…36년이나 했네

    ‘네온 불이 쓸쓸하게/꺼져 가는 삼거리/이별 앞에 너와 나는/한없이 울었다/추억만 남겨놓은 젊은 날의 불장난/ 원점으로 돌아가는 0시처럼/사랑아 안녕.’ 1971년에 나온 노래 ‘0시의 이별’ 1절 끝자락이다. 아쉽게도 한참이나 금지곡으로 남았다. 당시엔 자정(0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을 금지했는데 0시에 이별한다는 것은 정책을 대놓고 위반하라는 선동이라는 게 이유였다. 자정이면 어김없이 ‘애앵’ 사이렌 소리와 함께 거리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2인 1조 방범대원들이 호각을 불며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오후 10시만 되면 라디오와 TV에선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상가나 술집은 늦어도 오후 11시 30분쯤이면 문을 닫아야만 했다. 행여나 0시를 넘기면 아예 손님들은 갇혀서 밤새 술을 마시곤 했다. 1945년 9월 8일 미군정 포고령 1호에 따라 치안 및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실시된 야간 통금은 1982년 10월 5일 폐지될 때까지 36년 4개월이나 이어졌다. 국민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옥죈 대표적인 사례다. 철폐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유치에 따른 국제적 체면 때문이었다. 이후 자유를 만끽하려는 ‘올빼미족’의 급증으로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봤지만 조직폭력배, 청소년 범죄도 덩달아 늘어났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사회 정화를 빌미로 한 군사정권의 인권 탄압에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국가기록원은 이처럼 광복 이후 70년에 걸쳐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주제들을 옴니버스 형태로 구성해 12일 홈페이지(www.archives.go.kr)에 공개한다. 8개 분야(국가상징, 사회, 교육, 생활, 과학·기술, 경제산업, 체육, 외교·통일) 70개 주제에 얽힌 자료다. 사진, 문서, 간행물, 동영상 등 자료 2348건과 관련 국가정책 등 연계 정보 520건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기고] 한국전쟁의 역설, 이분들을 아시나요/유호근 청주대 정치학과 교수

    [기고] 한국전쟁의 역설, 이분들을 아시나요/유호근 청주대 정치학과 교수

    “조지프 던퍼드, 윌리엄 고트니, 해리 해리스, 피터 로스컴, 마이크 코프먼, 브라이언 싱어 등 이분들을 아십니까?” “금시초문인가요?” 조지프 던퍼드는 미국의 합참의장이고, 윌리엄 고트니는 미 북부군 및 북미 항공우주군 사령관이며, 해리 해리스는 미 태평양군 사령관이다. 또한 피터 로스컴은 공화당 소속, 마이크 코프먼은 민주당 소속의 미 연방 하원의원이다. 브라이언 싱어는 ‘엑스맨’을 감독한 미국의 영화감독이다. 즉 미군의 핵심 지휘부 인사, 미 연방하원의 중진 의원, 할리우드 영화계의 거장 등이 이들의 화려한 면면이다. 이 인물들의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들의 부친이 모두 한국전쟁 참전 용사라는 점이다. 아마도 이분들은 6·25 때 전투요원으로 참가했던 아버지로부터 전쟁 무용담을 비롯해 생사를 넘나드는 우여곡절의 한국에 관한 수많은 스토리를 성장 과정에서 접했을 터이다.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들의 가슴속에 자연스럽게 체화됐을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던 전쟁으로 얼룩진 변방의 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환골탈태한 새로운 나라로 등장했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분들의 마음속에 일찌감치 자리 잡았던 한국에 대한 측은지심이 또 다른 친근감으로, 매력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과 미국은 60여년의 동맹관계를 이어오면서 이제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질적 전환을 이뤘다. 그 저변에는 인간적 유대와 교감이 동맹의 튼튼한 바탕이 됐다. 과거 북·중 동맹의 굳건함은 소위 ‘혁명 1세대’로서 한국전쟁을 같이했던 김일성, 마오쩌둥(毛澤東), 펑더화이(彭德懷) 등 북·중 수뇌부 간의 인간적 결속도 중요한 토대가 됐다. 오늘날 북·중 관계가 소원한 이유가 양측 엘리트 간의 인적 유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냉철한 국익의 관점에서만 외교정책을 판단하고 결정하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국익에 따른 외교의 냉혹함만이 존재하고 북·중 집권층 간의 교류와 소통이 별무하다면 북한이 배제된 21세기 버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중국이 미국과 혹은 한국과 맺을 수도 있다는 점을 북한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전쟁은 세계적인 냉전 체제를 강화시켰고, 한반도 분단 체제를 고착화시켰다. 가족 간 생이별의 뼈아픈 고통을 강요했다. 아직도 한국전쟁의 상흔은 한국인들의 몸과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나듯 한국전쟁의 고통과 상처가 우리의 새살로 환생하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의 서울 특파원이었던 앤드루 새먼은 과거 신문 기고를 통해 6·25를 ‘한국의 보물’로 평가한 적이 있다. 그의 말대로 프랑스 ‘노르망디’의 상징성을 후세의 중요한 유산으로 기렸던 것처럼 한국전쟁을 새로운 창조의 시작으로 승화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한국을 도와 전쟁을 함께했던 전우의 나라에 ‘결초보은의 외교’를 더욱 적극적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진심 어린 마음을 담은 보훈을 통한 공공외교를 수행하는 것이다. 어제 한국전쟁의 고통이 오늘 감사의 진심을 담은 ‘마음의 보훈외교’를 펼칠 수 있게 해 주는 터전이 된다면 한국의 또 다른 보물이다.
  • 이별로 물드는 ‘황혼’

    이별로 물드는 ‘황혼’

    # 공무원 A(60)씨와 아내 B(54)씨는 지난 6월 32년간의 부부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A씨는 집안에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고 외도를 일삼았다. 올 초 퇴직했지만 보증을 잘못 서 거액의 빚까지 떠안았다. 자녀들을 생각해 30년 넘게 견뎌왔던 B씨는 결국 이혼소송을 냈고, 법원은 B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모든 소송비용을 A씨가 내도록 판결했다. 20년 넘게 혼인 생활을 유지한 부부가 갈라서는 ‘황혼이혼’이 우리나라 이혼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그 비율이 역대 최고 수준에 다다른 것으로 집계됐다. 3일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4년 혼인 건수는 30만 7489건, 이혼 건수는 11만 5889건이었다. 혼인은 2011년 33만 1543건을 기록한 이후 해마다 줄고 있지만, 이혼은 11만 4707건에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동거기간에 따른 이혼 사례를 분석한 결과 황혼이혼이 전체의 28.7%(3만 3140건)로 가장 많았다. 2010년 전체 이혼의 23.8%를 차지했던 황혼이혼은 2012년 26.4%로 증가하며 신혼 이혼을 넘어섰고 2013년 28.1%에 이어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혼인 건수 줄자 신혼 이혼은 급감 황혼이혼은 남편의 외도나 가정 불화 등에도 참고 살던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는 유형이 아직까지는 일반적이다. 하지만 60대 이상 남성이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접수된 60대 이상 남성의 이혼 상담 건수는 2004년 45건에서 지난해 373건으로 10년 새 8.3배가 됐다. 늘어나는 황혼이혼과 달리 신혼이혼은 2010년 27.0%에서 지난해 23.5%까지 줄었다. 이는 전체 혼인 건수가 줄어든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혼인 신고는 30만 7489건으로 최근 10년래 가장 적었다. 2007년 34만 8229건에 비하면 11.7%나 감소한 수치다. 미성년 자녀 수가 적은 부부일수록 이혼율이 높았다. 지난해의 경우 무자녀 부부의 이혼율이 전체 이혼사건 중 처음으로 절반(50.4%)을 넘었다. 1자녀 부부 이혼율은 26.0%, 2자녀는 20.3%였다. 3자녀 이상 부부의 이혼율은 3.3%에 그쳤다. ●자녀 적은 부부들, 이혼율도 높아 이혼 사유로는 ‘성격 차이’가 5만 1538건(45.8%)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경제문제’ 11.6%, ‘배우자 부정’ 7.6% 순이었다. 이혼소송 전문 양소영 변호사는 “법원이 부부가 이혼할 때 아내에 대한 재산분할권을 확대해 주면서 이혼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혼 때 배우자가 미래에 받게 될 퇴직금과 퇴직연금 등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조보아와 창문 넘어 재회… ‘애틋하네’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조보아와 창문 넘어 재회… ‘애틋하네’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조보아와 창문 넘어 재회… ‘애틋하네’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과 조보아가 극적으로 재회하는 모습이 그려져 화제다. 1일 방송된 KBS 2TV ‘부탁해요 엄마’에서는 집안 차이를 이유로 강제로 이별한 이형순(최태준 분)이 장채리(조보아 분)가 보고싶어 장채리의 집 앞에 서성였다 다시 만나는 장면이 그려졌다. 마침 장철웅(송승환 분)이 출근하고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형순이 잠입에 성공했다. 채리는 “어떻게 들어왔어?”라며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오빠 괜찮아? 문이 안으로 잠겨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오빠 너무 보고싶다”고 말해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형순은 “너 저번에 탈출한 거 때문에 그러는구나”라면서 “그런데 왜 그렇게 야위었어? 밥 안 먹어? 저번처럼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라며 채리를 걱정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선 훈재(이상우 분)의 도움으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며 파란을 예고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조보아, 창문 넘어로 재회 ‘애틋해’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조보아, 창문 넘어로 재회 ‘애틋해’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조보아, 창문 넘어로 재회 ‘애틋해’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과 조보아가 극적으로 재회하는 모습이 그려져 화제다. 1일 방송된 KBS 2TV ‘부탁해요 엄마’에서는 집안 차이를 이유로 강제로 이별한 이형순(최태준 분)이 장채리(조보아 분)가 보고싶어 장채리의 집 앞에 서성였다 다시 만나는 장면이 그려졌다. 마침 장철웅(송승환 분)이 출근하고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형순이 잠입에 성공했다. 채리는 “어떻게 들어왔어?”라며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오빠 괜찮아? 문이 안으로 잠겨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오빠 너무 보고싶다”고 말해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형순은 “너 저번에 탈출한 거 때문에 그러는구나”라면서 “그런데 왜 그렇게 야위었어? 밥 안 먹어? 저번처럼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라며 채리를 걱정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선 훈재(이상우 분)의 도움으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며 파란을 예고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조보아, 창문 넘어로 재회 ‘애틋’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조보아, 창문 넘어로 재회 ‘애틋’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조보아, 창문 넘어로 재회 ‘애틋’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 ‘부탁해요 엄마’ 최태준과 조보아가 극적으로 재회하는 모습이 그려져 화제다. 1일 방송된 KBS 2TV ‘부탁해요 엄마’에서는 집안 차이를 이유로 강제로 이별한 이형순(최태준 분)이 장채리(조보아 분)가 보고싶어 장채리의 집 앞에 서성였다 다시 만나는 장면이 그려졌다. 마침 장철웅(송승환 분)이 출근하고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형순이 잠입에 성공했다. 채리는 “어떻게 들어왔어?”라며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오빠 괜찮아? 문이 안으로 잠겨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오빠 너무 보고싶다”고 말해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형순은 “너 저번에 탈출한 거 때문에 그러는구나”라면서 “그런데 왜 그렇게 야위었어? 밥 안 먹어? 저번처럼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라며 채리를 걱정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선 훈재(이상우 분)의 도움으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려지며 파란을 예고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9년만에 정규앨범 낸 신승훈 “음악 인생 시즌2”

    9년만에 정규앨범 낸 신승훈 “음악 인생 시즌2”

    “제 음악 인생 시즌2의 시작입니다.” ‘발라드 황제’ 신승훈(47)은 2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엠큐브에서 열린 정규 11집 ‘아이엠 앤드 아이엠’ 발매 음악감상회에서 이번 앨범을 다시 쓰기 1집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데뷔 25주년을 맞아 기념 앨범을 내놓기보다 정규 앨범을 만든 까닭에 대해 “과거의 영광에 머물기보다 앞으로의 20년을 위해 꾸준히 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정규 앨범은 2006년 10집 이후 9년 만이다. 11집은 6곡씩 담은 두 장의 미니앨범으로 나눴다. 파트1 ‘아이 엠’은 29일, 파트2 ‘앤드 아이엠’은 다음달 초 발매 예정이다. 신승훈은 “파트1은 제 음악을 사랑해 준 팬들을 향한 11번째 답장”이라며 “파트2는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할지 방향성을 보여 주는 음악”이라고 말했다. 이별 노래인 타이틀곡 ‘이게 나예요’는 트레이드마크인 애절한 발라드다. 억지로 쓰는 게 싫어 한동안 작곡만 했었다는데 이 곡을 통해 13년 만에 가사 작업을 했다고 한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곡으로는 사회 생활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했으면 한다며 ‘아이 윌’을 꼽았다. ‘우드 유 메리 미’는 미래의 신부를 위한 프러포즈 송. 자연스럽게 연애 경험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신승훈은 크게 웃었다. “음악도 한 신승훈이 아니라 음악만 했던 신승훈이에요. 최근 4년간은 아무도 없었어요. 4년 전에는 ‘썸’이 있었던 것 같고요. 12월에는 공연을 하고 내년 2~3월에는 일본 투어도 하는데 언제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취재 현장에서] 탈북 기자가 본 이산가족 상봉

    [취재 현장에서] 탈북 기자가 본 이산가족 상봉

    북한을 떠난 지도 어느덧 10여년의 세월이 흘쩍 넘었다. 2003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던 때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입국 당시 떠오르던 첫 생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10년 내 통일되면 고향으로 되돌아갈 것’이란 기대가 앞섰다. 그땐 ‘김정일 정권이 가 봤자 10년이나 가겠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세습을 거쳐 김정은 정권이 안정화 단계로 진입한다는 내외의 평가가 나온다. 누구랄 것 없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상봉 ‘로또’… 가족들은 애간장 이산가족 상봉 기간(20~26일) 내내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 앉아 금강산에서 오는 이산가족 상봉 기사들을 팩스로 받아 봤다. 기사 속 사연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울컥했다. 헤어졌던 가족과의 만남이 훗날의 내 모습과 겹쳐지며 북한에 남겨진 친척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제는 잔영밖에 남지 않았지만 친구들의 얼굴도 스치듯 지나갔다. 그들과도 볼 날이 있겠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30년 뒤에도 이산 상봉을 하려나?’ 끔찍하다. 지금부터 30년 뒤면 2045년, 한반도 분단 한 세기가 된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65년 만의 재회로 여한(餘恨)을 풀기도 했지만 ‘만나자 이별이니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장탄식도 숨기지 않았다. 한 할아버지는 작별 상봉을 앞두고 “이럴 거면 왜 보느냐”고 한탄했다. 실제로 이산 상봉 뒤 가족들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대부분이 고령이기 때문인지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북한에서도 가족들과 상봉을 마친 노인들이 미련 없이 하늘나라로 가는 모습을 종종 봤다. 독재 체제의 핍박에서도 질긴 목숨 이어 온 이유가 가족과의 마지막 대면이었다는 듯…. 이산가족 상봉이 또 다른 고통을 수반하는 것에는 남북 모두의 책임이 있다. 역대 정부에서 이산가족 상시 상봉, 고향 방문, 서신 거래, 화상통화 등을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다. 세월은 빠르게 흐르는데 상봉 행사는 띄엄띄엄 열리고 상봉 기회도 ‘로또’에 가까운 탓에 가족들의 애간장만 녹는다. 아직도 상봉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수만명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도 초기 ‘통일대박’을 통해 국민들에게 기대감을 줬다. 이젠 기대감으로 머물지 말고 결과로 보여줄 때다. 이산 상봉 정례화를 실현시켜라. ●잇속만 챙기는 北… 변화 기대 북한도 이산 상봉을 선심 쓰듯 내놓으며 ‘상봉의 장’을 김정은 ‘찬양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심하다. 더이상 이산가족의 아픔을 볼모로 잇속을 챙기는 짓은 중단해야 한다. 그것이 바람직한 남북 관계로 나아가는 길이다. 북한의 변화된 자세를 기대해 본다.
  •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날] 다시 아들 알아본 치매 노모 “이 반지라도 가져가라” 오열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날] 다시 아들 알아본 치매 노모 “이 반지라도 가져가라” 오열

    “코트 주고 싶어.” 아흔여덟의 아버지는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하는 아들에게 코트도, 목도리도 다 내줬다. 다행히도 아버지와 키가 비슷한 아들에게 검은색 코트는 꼭 맞았다.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인 26일 오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 상봉에서 이석주(98) 할아버지는 60여년 만에 만난 아들 리동욱(70)씨에게 따뜻한 옷을 주면서도 더 줄 것이 없는지 찾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에 “아버지 130세까지 살아야지. 나는 100살까지 살게. 자식들이 봉양 잘하면 130세까지 충분히 살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 할아버지는 “말은 고맙지만 그렇게까지 될지 모르겠다”면서도 아들과 다시 함께하고픈 마음에 “오래오래 살아야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지 가져가라. 갖다 버리더라도 가져가라.” 치매로 앞에 앉은 아들조차 인식하지 못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던 김월순(93) 할머니는 작별 상봉에서 다시 아들을 알아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김 할머니는 오랜 시간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북측에 두고 온 장남 주재은(72)씨에게 건넸다. 재은씨는 한사코 사양했으나 김 할머니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일 수도 있는 반지를 아들의 손에 꼭 쥐여 줬다. 김 할머니는 상봉 첫날인 지난 24일 재은씨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다 25일 개별 상봉 때 잠시 알아보기도 했지만 이후 열린 공동 중식과 단체 상봉에서는 “이이는 누구야?”라며 다시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상봉 마지막 날인 이날 아들과 기나긴 이별을 준비하려는 듯 다시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살아 있는 거 알았으니 원 없어. 생일날 미역국 계속 떠 놓을게. 걱정 말고 잘 가슈.” 65년 만에 만난 남편과의 작별 상봉에서 한음전(87) 할머니가 눈물을 보이며 한 말이다. 만남 내내 담담해 보였던 남편 전규명(86) 할아버지도 끝내 무너졌다. 황해북도 개풍군이 고향인 전 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끌려갔다가 남쪽에서 포로로 붙잡혔다. 결혼한 지 2년 된 곱디고운 아내와 뱃속의 아들을 북에 두고 온 채였다. 어느덧 주름이 깊게 팬 아내가 “나 시집올 때 기억나?” 하고 묻자 남편은 “예뻤지. 그러니까 결혼했지”라며 꿈같은 과거를 회상했다. 하지만 전 할아버지도 이내 회한에 찬 목소리로 읊조렸다.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더 좋았던 게 아닌가 싶어. 만나질 않았으면 이렇게 금방 헤어지지 않는 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최형진(95) 할아버지도 북측의 딸에게 주려고 메모지에 짧은 글을 쓰다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양강도 혜산이 고향인 최 할아버지는 1·4 후퇴 때 피난을 오면서 어쩔 수 없이 딸과 헤어졌다. 최 할아버지는 옛날 생각에 ‘어머니한테 내가 왔다가 가구(가고), 또 미안하다고 꼭’이라고 쓰려다 ‘꼭’이라고 마무리하지 못하고 ‘꼬’라고만 쓴 채 이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오대양호’ 납북 어부인 아들 정건목(64)씨와 기약 없는 이별을 앞둔 이복순(88) 할머니 역시 계속 눈물을 흘렸다. 대기 중이던 의료진이 걱정돼 다가가 상태를 살펴보기도 했다. 남측 배순옥(55)씨는 북측의 조카 배은희(32)씨에게 “고모가 선물 줄게. 우리는 많아”라며 금반지를 끼워 주고 목걸이도 걸어 줬다. 이때 지켜보던 순옥씨의 남측 오빠 상석(60)씨가 “만나게 해 주세요. 서로 편지 주고받게 해 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자 북측 행사지원 요원들이 몰려들어 “그만하시라”며 만류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2시간에 불과한 상봉이 “작별 상봉을 끝마치겠습니다”라는 북측의 안내방송과 함께 끝나자 울음은 결국 오열로 변했다. 특히 북측 가족들을 남겨 둔 채 버스에 오르는 남쪽 가족들은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이번 상봉단의 남측 최고령자인 이석주(98) 할아버지를 태운 구급차가 출발하자 북측 가족 한 명은 창문에 붙은 채 울기도 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사설] 이산가족 상시 접촉 北 언급 주목한다

    제20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어제 2차 상봉단의 작별상봉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20일부터 두 차례에 걸쳐 970명 남짓한 이산가족이 반세기가 훨씬 넘게 헤어져 살아온 아픔을 잠시나마 달랬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시 만날 아무런 기약 없이 남북으로 다시 각자의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남측 최고령자인 구상연 할아버지가 65년 동안 그리던 북측의 두 딸 송옥씨와 선옥씨에게 신겨 준 빨간 꽃신도 재회의 선물에서 불과 사흘 만에 이별의 선물로 바뀌었다. 헤어지면서 “이제는 죽어서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던 어느 할머니의 냉정한 현실 인식은 더욱 가슴을 저미게 한다. 실제로 그동안 상봉에 성공한 이산가족들은 상봉 이전보다 반갑게 해후한 이후가 더욱 고통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니 아직도 헤어진 가족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오죽할지는 짐작조차 어렵다. 8·25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 당시 합의한 이산가족 상봉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시선을 불식시키고 성사됐다. 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 북측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거나,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강경대응 방침이 나오면 상봉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남북이 갖가지 난관을 뚫고 성공적으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마무리지은 것의 의미는 작지 않다. 특히 지난 24일에는 북측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 고속정이 경고사격하는 돌발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산 상봉에 아무런 부정적 영향이 없었던 것은 관계 개선의 돌파구로 이번 행사를 활용하겠다는 남북의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북측 단장인 리충복 북한 적십자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어느 때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나선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주목해도 좋을 것이다. 리 위원장은 “이번 상봉 행사가 끝나면 상시 접촉과 편지 교환 등 이산가족 관련 문제들을 협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 24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 주최 환영 만찬 직후 취재단과 만난 자리였으니 우리 정부에 제안을 한 것과 다름없다. 일각에서는 북측이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인 데는 또 다른 속내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매우 클 것이다. 하지만 북측의 속내가 금강산 관광 재개에 있다면 우리가 주저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더욱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것도 협상이다. 남북은 하루빨리 마주 앉아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남북은 8·25 접촉에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 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한다’고 합의했다. 이산가족 상봉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지금이 당국 회담의 적기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제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 주는 데 필요하다면 북측에 과감한 물질적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의 해결은 독일 분단 시절 서독이 정치범을 송환받는 대가로 동독에 현금과 현물을 제공한 ‘프라이카우프’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통일 대박’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해소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TV 하이라이트]

    ■MBC 다큐스페셜(MBC 밤 11시 10분) 국민 중 98%가 마시는 물에 돈을 쓰는 나라 대한민국. 과연 우리 국민들은 무슨 기준으로 물을 고르고 있을까. 깨끗한 물로만 만족하던 시대는 갔다. 지금은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이 필수가 된 100세 시대. 물에 대한 기준도 깨끗한 물을 넘어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이에 우리는 직접 ‘어떤 물이 좋은 물인지’에 대해서 알아본다. ■풍선껌(tvN 밤 11시) 라디오 생방송 도중 올라온 자살 사연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행아(정려원)는 온 세상에 자신의 이별 사실을 고백하고 만다. 그런 행아의 친구 리환(이동욱)은 자신에게 이별을 숨긴 행아에게 화가 나면서도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한다. 한편 행아 몰래 행아의 전 애인 석준(이종혁)의 집에 찾아간 리환은 석준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크로싱 라인 3(AXN 밤 10시 50분) 특수범죄수사대 이야기. 콘스탄테는 1년 전 줄리언 리더호프라는 폭파범을 끝내 잡지 못하고 놓친 뼈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재판에서 리더호프가 무죄로 풀려나고 곧이어 같은 수법의 폭파 사건이 발생한다. 콘스탄테는 리더호프가 범인임을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돈과 카린은 정식 수사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콘스탄테를 말린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