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권의 책] 격변의 역사뒤 엘니뇨가 있었다
1912년 4월14일 새벽,2228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세계 최대의 여객선 타이태닉 호가 북대서양 해상에서 빙산과 충돌,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523명이 숨진 타이태닉 호의 비극이 일어난 이곳은 보통 때는 빙산이 거의 내려오지 않는 지역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해, 남극점 첫 도달이라는 기록을 간발의 차로 아문센에게 빼앗긴 뒤 실의 속에 귀로에 오른 스콧 일행은 예기치 못한 악천후를 만나 탐험대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다. 이 두 사건은 얼핏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두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의 비밀스러운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죽음의 사신’ 엘니뇨다. 엘니뇨는 그 해 전 세계의 기후를 뒤흔들며 재앙의 씨앗을 뿌렸다.
오늘날 엘니뇨라는 말은 초등학생조차 익히 들어 알 정도로 친숙한 단어가 됐다. 하지만 1912년 타이태닉 호가 처녀항해를 떠날 때만 해도 엘니뇨는 페루의 어부들 사이에서나 겨우 그 존재를 알았을 뿐, 엘니뇨라는 용어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다. 엘니뇨가 빙산의 정상적인 이동경로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타이태닉 호의 스미스 선장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엘니뇨:역사와 기후의 충돌’(로스 쿠퍼-존스턴 지음, 김경렬 옮김, 새물결 펴냄)은 이처럼 엘니뇨가 인류 역사의 고빗사위마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를 실감나게 소개한다. 나아가 지금까지 거의 탐구되지 않은 기후의 역사를 통해 기존의 ‘불완전한’ 역사 해석을 비판하고 바로잡는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이 그의 저서 ‘지중해’에서 기후사를 내보인 적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날학파에 고유한 종합사의 일부였을 뿐, 이 책에서처럼 기후의 역사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살핀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전혀 새로운 종류의 역사서라 할 만하다. 자연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20여년간 엘니뇨를 연구한 저자는 “기후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는 인류 역사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엘니뇨’란 무엇인가. 페루 북부 연안에서는 보통 때는 차가운 훔볼트 해류가 남에서 북으로 흐르지만 몇 년에 한 번씩 따뜻한 해류가 북쪽에서 밀려와 훔볼트 해류를 밀어낸다. 엘니뇨란 원래 이같은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주로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곳 어부들은 엘니뇨, 즉 아기 예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엘니뇨란 이런 해양상의 변화가 아니라 해양과 대기의 변동이 결합돼 나타나는 현상, 즉 엘니뇨 남방진동(Southern Oscillation)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영향은 페루 연안만이 아니라 전 지구에 미친다. 평소 매우 평온하던 지역이 열대성 사이클론으로 쑥대밭이 되고, 사막에 갑자기 비가 퍼부어 꽃이 피고, 열대우림이 가뭄으로 시들어가는 이변이 모두 다 엘니뇨 탓이다.
‘꼬마 거인’ 엘니뇨는 종종 역사의 방향까지 틀어놓는다. 명나라는 1640∼1641년 엘니뇨에 의한 가뭄으로 대기근이 발생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됐고, 청 말인 1877∼1878년에 일어난 강력한 엘니뇨는 청 제국을 거의 마비상태에 빠뜨렸다. 때아닌 혹독한 추위에 결정타를 입고 러시아에서 물러나야 했던 1812년의 나폴레옹군과 1941년 히틀러 군대. 그들의 패퇴 뒤에도 역시 엘니뇨가 자리잡고 있었다. 엘니뇨는 이처럼 거의 모든 대륙에서 전쟁과 혁명, 정복, 대이주의 원인으로 작용하며 역사의 물길을 돌려놨다. 유엔 세계기상기구(WMO)는 올 초 엘니뇨의 ‘누이동생’격인 라니냐의 징후가 보인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어 발표한 보고서는 올 연말 엘니뇨 발생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면 ‘엘니뇨 앞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는 뜻이다. 요컨대 자연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에 대비하는 것이 상책이다. 엘니뇨의 역사가 일깨워주는 교훈이 사뭇 무겁게 다가온다.1만 79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