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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탄절과 소망/이재정 성공회 신학대학장(굄돌)

    사람들은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사실은 신이라고 해야 하겠지만)의 탄생과정을 아주 신화적이거나 신비로운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또는 신비성을 강조하는 대신에 일반 대중들이 꿈으로 간직하고 있으며 늘 동경하는 부유하고 축복된 왕가의 가문에서 태어난 사실을 드러내기도 한다.체계화된 고등종교에서 만이 아니라 샤머니즘과 같은 종교에서도 신비성은 신의 체험을 말할 때 으레 그 중심이 된다. 그런데 기독교의 예수탄생 이야기는 다른 종교의 신의 탄생설화와는 상당히 다르다.물론 예수의 가문에 관하여 일찍이 이스라엘을 가장 굳건한 나라로 만들었던 다윗왕가의 출신이라고 길게 그 족보를 설명하는 부분도 있다.그리고 성경은 예수가 어머니인 마리아와 아버지인 요셉의 관계를 통하여 잉태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하여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났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이러한 신비적 요소 뒤의 예수 탄생 이야기는 그 중심이 역사의 한 가운데 그 현장에서 시작되고 있다.어둠과 억압의 역사,좌절과 슬픔의 상황,그리고 민족의 영광스럽던 역사는 사라지고 이방인의 식민통치 아래 무릎을 꿇고 살아가야 하는 그 현실의 묘사가 예수의 탄생 자체보다 훨씬 더 뚜렷하다.그래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카드에 흔하게 나타나는 별을 따라 먼길 가는 동방의 박사들이라던가,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들여다 보는 마리아와 그 주변에 둘러선 말이나 염소 따위의 동물들의 그림에서 그 상황을 엿볼 수도 있다.햇빛도,달빛도 아닌 희미한 별빛에서 새로운 빛의 역사를 내다보는 지혜는 어쩌면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는지 모른다.그리고 인간의 사회 저 밑바닥,가장 낮은 곳에서 진리와 사랑과 평화가 움터오지 않으면 안된다는 간절한 소망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금년 성탄절은 쌀수입 개방,정부의 일대 개각 등에 휘말려 더욱 불안한 느낌이다.그러나 성탄절이 이 불안을 녹여내는 절기가 되려면 진실로 정직한 정치가 이루어지고 바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과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 관광 불편한 「서울」/특허 전문 미국변호사(굄돌)

    최근 국제회의 참석차 홍콩을 방문했다.거의 6∼7년만에 다시 가 본 홍콩은 초현대식 고층 빌딩이 해변을 따라 숲을 이루어 뉴욕의 맨허턴을 방불케했고 거리도 깨끗이 정돈된 모습이었다.산뜻하게 단장돼 있는 공항은 관광객으로 북새통이었다. 협소한 면적에 6백만명이 모여 산다고 하는데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시내의 주요 빌딩들이 실내 통로로 서로 연결돼 있어 보행자들이 통로를 통하여 다니기 때문에 도로가 혼잡하지 않다고 한다.좁은 땅덩이에 내세울 만한 고적도 없는데 관광 코스가 2시간에서 7시간별로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모든 표시판이 영문으로 표기돼 있고 일반 시민들도 영어를 웬만큼 하니 중국어를 몰라도 길을 찾는데 별로 지장이 없다.식당의 메뉴도 영문으로 잘 설명이 돼 있어 우리 입에 맞는 음식을 쉽게 고를 수 있었다.「1994년은 한국 방문의 해」라는 큰 광고를 붙인 버스가 종종 시내를 질주하고 있었다. 국제 회의에 참석한 외국인이 대전 엑스포에 다녀 왔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한국 방문이 어떠했냐고 했더니 서울은 외국인에게는 어려운 도시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우선 도로나 주요 빌딩의 표시판 중 많은 부분이 한글로만 돼 있어 길을 헤매기 십상이고 택시 운전사들이 불친절하다는 것이었다.처음 듣는 바는 아니지만 얼굴이 뜨거웠다. 불편한 것은 공항에서부터 시작된다.통관 지역에 「비신고」통로를 특별히 마련해 놓고도 짐수색은 「신고」통로와 별차이 없다.출국시 공항 입구에서 비행기를 탑승하는데 서너 군데의 검색을 반복해야 한다.교통혼잡은 이미 「세계적」수준이고 외국인이 길을 물으려 해도 간단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더구나 일반시민들은 이방인과 대화하는 것을 꺼린다.식당에서도 우리 말을 모르고 식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세계적」으로 비싼 호텔 식당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국이 고적이라고 할 만큼 관광자원이 풍부하다.1994년 한국 방문의 해에 더욱 많은 외국인을 유치하기 위해서,우리는 그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배우고 즐길수 있는지를 발견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우리의 방대한 관광자원을효율적으로 잘 이용하여 소위 「SEX 관광국」의 오명을 벗어야겠다.
  • 대마도의 오사키항/박성수(일본속의 한국문화:9)

    ◎왜구 본거지… 고려이래 약탈 일삼아/우왕때는 연27회 침범… 논의 벼까지 베어가/진노한 세종은 배 2백20척 동원,정벌 나서 일기도의 가쓰모토(승본)항도 왜구의 소굴이었으나 그보다 더 우리를 괴롭힌 곳은 대마도의 오사키(미기)항이었다.오사키항은 대마도의 윗섬과 아래섬을 갈라 놓고 있는 바다,아사마(천모)만에 있는 아주 작은 어촌이었다.백제산성을 보고 나서 이 모사키마을을 잠깐 둘러보았으나 그 옛날 조선 세종때 우리 정벌군이 이 마을을 공격한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언제 그랬나 할정도로 조용하기만 하다.단 하나 남아 있다는 것이 이곳의 옛 호주 하야타(조전)가에 보존되어 왔다는 조선국고신이라는 문서 한장이었다. 「병조봉교피고이라 위승의부위」운운하는 우리나라 관이임명장이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5백년전인 연산군때(1503년)것이다. ○벼슬 주어 달래고 왜구가 하도 심하니까 창무책의 하나도 대마도 왜인들에게 관직을 주어서 우리나라에 오면 쌀도 주고 장사도 할수 있게 해 준 것인데 이들을 가리켜 수직위인이라 했었다. 유명한 신숙주(1417∼1475)의 「해동제국기」를 보면 대마도의 지도를 그려놓고 모두 82개에 달하는 포구가 있었다고 적어 놓았다.신숙주의 지도에는 대마도가 마치 등을 구부린 송충이처럼 그려져 있는데 보기에도 징그럽다.이 송충이의 털구멍마다 왜구의 소굴이 박혀 있어서 제각기 마음 내키는대로 우리나라 남해안은 물론 동·서해안까지 왕래하면서 약탈하였으니 견딜수가 없는 일이었다.우리나라 연해안을 약탈한 왜구의 소굴은 대마도에만 있지 않았다.멀리 구주땅의 여러 포구에서도 왜구떼가 몰려왔으니 이들 송충이의 공격에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왜구는 고려말에 극성을 이뤄 그때문에 실제로 고려가 망하고 말았다.눈물의 왕 공민왕(1352∼1374)재위 23년동안에 크고 작은 왜구가 1백15회나 들락날락하였고 경상·전라도는 물론 경기·황해·강원·평안·함경도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심지어는 고려의 서울 개경근처까지 쳐들어와 수도 서울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다음 우왕(1375∼1388)때에 이르러서는더욱 심하여 재위 14년동안에 왜구가 3백78회나 쳐들어 와 연평균 27회라는 이분야의 신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이무렵 우리나라 연해안의 여러 고을들은 『황량하게 텅 비었다』고 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불상·범종 훔쳐가 왜구가 어떻게 우리나라 고을들은 습격하였는가 하면 왜구는 처음부터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 낮에는 기분나쁘게 바닷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눈치를 보다가 갑자기 상륙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약탈하였다.말하자면 치고 달리기 작전을 폈던 것이다.마치 서양의 바이킹같은 강도행위를 자행한 것인데 이때문에 영국같은 나라에서도 왕조가 교체되는 정변을 겪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성계가 왜구토벌에 공을 세워 특세하더니 끝내는 정변을 일으켜서 조선왕조를 개창하였다. 그러면 대마도 왜구들은 무엇을 약탈하여 갔는가.주로 곳간에서 먹을 양식을 퍼가거나 곳간에 식량이 없으면 논의 벼를 베어다가 배에 싣고 달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왜구는 식량만 가져가는 예절바른 도적이 아니라 부엌의 그릇은 물론황해도 구월산에 있는 삼성사 제기를 비롯하여 여러 사찰의 불상과 범종까지 들고 달아났다.대마도에 원통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서는 본존이 고려불이라고 버젓이 자랑하고 있다.부처님만 고려제가 아니라 대웅전앞에 걸어놓은 범종까지 우리나라 것이니 기막힌 일이 아닐수 없다. 훔쳐온 것을 훔쳐 왔다고 이실직고할 그들이 아니다.고려왕이 바쳤다느니 조선왕이 하사하였다느니 그럴듯하게 둘러대기 마련이니 도적질당한 놈만 억울할수 밖에 없다. 왜구들은 물건만 훔쳐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까지 납치하여 팔아 먹었다.이런 과거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 오사키 어부들은 우리를 낯선 이방인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누구의 후손들인지를 너무나 잘알고 있다.15세기말 성종때의 학자 성현(성현)이 쓴 유명한 「용재총화」에 보면 왜 세종 원년(1419)에 우리나라가 대마도정벌을 단행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고려말에 특히 왜구가 잦았는데 우리나라 연해에 진(군사기지)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심했다.태조가등극한 이후에는 주요한 포구에 만호를 두어 수군을 상주하게 하였더니 잠시 잠잠해졌었다.그러나 그뒤 다시 왜구가 침노하여 와서 세종이 삼군에 명하여 대마도를 정벌하게 되었다. ○1만7천명 출정 이처럼 세종대왕의 대마도 정벌은 왜구의 발본색원을 노린 일대 영단이었다고 할수 있는데 병력은 총1만7천명,배는 2백20여척이었다.총사령관 이종무가 중군장을 겸임하고 좌우군장이 그를 보좌하였다.공격목표는 바로 이 오사키항이었는데 길잡이가 대마도 사람이었다.우리 함대는 마산포와 거제도를 출발하여 그날로 이곳 오사키에 도착하였는데 처음에는 선발대 10척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이곳 마을 사람들은 도적질 하러 떠난 자기네 배가 돌아오는줄로 알고 술과 떡을 들고 환영하였다. 그러나 배가 가까이 다가오자 탄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르고 헤어 스타일이 전혀 다른 것을 알고 놀랐다.잇따라 수백척의 배가 들어오니 모두 기겁을 하고 산으로 달아났다.바로 그 현장이 오사키항인데 향토사학자 영류씨는 웃으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여유를 보였다.그렇다.지금은 서로 웃으면서 그날을 회상할수 있으나 이곳에서 전사한 좌군장 박실을 생각하면 반드시 웃을 일만은 아니다.박실 장군은 우군장과 중군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적진에 뛰어들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총사령관 이종무의 큰 실수였다.만일 그가 박실의 좌군을 지원했더라면 대승을 거두어 왜구를 발본색원하였을 것인데 우유부단한 그의 성격때문에 그뒤에도 왜구는 끊이지 않다가 마침내는 임진왜란을 당하고 말았다.
  • 팔 난민촌 바카캠프(평화 싹트는 중동:7)

    ◎급식은 유엔·치안은 요르단서 맡아/1.4㎢ 좁은 면적에 12만명 모여살아/“고향 가나” 묻자 초췌한 얼굴에 눈물만 요르단의 수도 암만 북서쪽으로 20여㎞ 떨어진 팔레스타인 난민촌 바카캠프.60년대 우리의 철거민 이주단지를 연상케하는 이 캠프 입구의 두평 남짓한 주민등록사무실은 사람들로 바글거렸으나 평화협정체결로 들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암만서 북서쪽 20㎞ 사무실 칠판에는 『93년 1월1일 현재 ▲인구 7만7천2백1 ▲가구 1만1천3백28 ▲주택 7천6백50 ▲행정요원 5백57』,그리고 건강·교육·위생·급식·복지 순으로 각종 현황수치가 적혀 있었다.그러나 총면적이 1·4㎦에 불과한 곳에 이 정도의 난민들이 살고 있다는 수치는 실상을 보지 않고도 이들의 생활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짐작케 하기에 족했다. 팔레스타인 난민문제 해결을 위해 특별 설치된 유엔구제사업기구(UNRWA)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이 캠프는 1967년 「6일 전쟁」으로 피란 온 난민들을 주로 수용하고 있다.복지분야는 유엔이 책임지고 있으며 치안은 요르단 경찰이 맡고 있다. 유엔깃발이 펄럭이는 등록사무소에서 캠프의 전체 살림을 총괄하는 팔레스타인인 유엔직원 이사 고리브씨(40)는 『실제 거주민은 12만 정도인데 등록을 안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면서 『평화협정 체결후 귀향에 따른 편의와 정착자금지원 등을 생각해선지 지난 9월 이후 등록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 모두가 평화협정과 팔레스타인국가 건설에 찬성하고 있지만 이미 20여년 동안 이곳에서 생활기반을 닦아왔기 때문에 귀향문제에 있어서는 회의적인 사람도 많다』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실제 거주민을 만나게 해줄 것을 요청하는 기자를 그는 캠프 경찰국으로 안내했다. 요르단인 경찰국장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기다리라고 했고 얼마후 비밀경찰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 세사람이 안내하는대로 따라 나섰다.피란민들은 출신지별로 나누어 사는지 그들은 어느 지역에서 온 피란민을 원하느냐며 몇가지 지명을 댔다. ○1가구 30평식 제안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한 캠프 중심가 복잡한 시장골목은 하교시간을 맞은 학생과시민들로 번잡했다.피란민 한 가구당 제한된 땅은 최대 1백㎡(약30평).고만고만하게 죽 늘어서 있는 블록집 골목을 몇개 지나 예리코 출신이라는 압빌 헤디씨(32)의 집에 도착했다.가운데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방이 세개 있었으며 친척 등 3가구 18명의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UNRWA 위생기구에 근무한다는 집주인은 마침 비번이어서 집에 있었다.그는 기자와 동행한 비밀경찰들을 의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현재의 생활에는 아무 불편이 없다면서 『동예루살렘 없는 팔레스타인국 설립은 무의미하다』는 등의 정치적인 얘기만 늘어 놓았다.집을 나오며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냐고 살짝 묻는 기자에게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1948년과 67년의 두차례 중동전쟁에서 정든 고향을 떠나 인접 각국으로 피란을 떠났던 팔레스타인인은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운 2백50만명.그러나 이들 피란민들은 「난민」으로,또 고향을 지킨 사람들은 「피정복민」으로 나름대로 모두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었다.이들중 요르단에는 가장 많은 1백85만명이 와있으며레바논에 35만,시리아에 30만명등 중동 각국에 흩어져 있다. 요르단은 현재 이들 피란민들을 유엔 지원하에 주로 서북부 요르단강 동안 10개의 캠프에 분산 수용하고 있다. 48년에 피란온 피란민들의 캠프는 이르비드·아즈 자르카·자발 후세인·암만 뉴캠프 등 4곳이고 67년 캠프는 후슨·수프·자라시·바카·마르카·탈비에 등 6곳이다. ○난민 모두 2백50만 사실 48년에 이주한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부분 요르단 자국민화되어 이번 협정에서 팔레스타인국 건립후 이주대상은 67년 난민들로 규정하고 있다.이제 더 이상 「난민」이기를 거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향」의 꿈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암만으로 돌아오는 아분세라고개에서 고층으로 지은 요르단 공무원아파트의 긴 그림자가 26년을 이방인으로 살아온 고개밑 바카캠프위로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 중·대만 민속의식 찾기 공동작업

    ◎연구조사단 30명 구성… 3년간 대륙 누벼 중국에서는 요즘 아주 의미있고 소중한 문화유산 발굴작업이 경제붐과 올림픽 열기에 가려진채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다. 전통민속 연구가 30명으로 구성된 한 조사단이 민간의 생활속에 내재돼 있는 각종 민속의식을 찾아 광활한 대륙 곳곳을 누비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 시작된 이 작업은 우선 공산정권의 등장과 함께 소멸의 길을 걷고 있는 전통문화의 발굴·보존이라는 문화적 차원에서 뿐아니라 중국과 대만 양측의 공동노력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뜻깊은 작업으로 평가된다. 조사단은 3년계획으로 진행중인 이 조사작업에 모두 1백20만달러(약9억6천만원)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 비용 전액을 장경국학술교류재단 등 대만측에서 부담한다.대만측은 비용외에도 인적·학술적인 측면에서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조사단 단장을 맡고 있는 북경소재 국립 청화대의 왕추쿠이 교수는 12개 성에서 이뤄진 지금까지의 발굴결과 민속가면극·민속무용·무속 등 여러 분야에서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특히 19세기에 기록된 다양한 무속의식 원전들을 손에 넣게 된 것은 조사단의 큰 행운이었다고 지적했다. 원래 중국에서는 이방인인 프랑스 예수회의 도레신부와 독일의 중국연구가 데 그루트가 약 1백년전 민간의식의 체계적인 연구를 시도한 적이 있지만 중간에 흐지부지된 이후 이 분야의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됐었다.게다가 45년 국민당정부를 축출하고 등장한 공산당정부는 이같은 민속의식을 비과학적이고 낭비적인 것이라며 배척,최근 개방바람이 불기 전까지만 해도 민속의식을 포함한 무형의 전통문화가 중국대륙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따라서 중·대 민간합작의 이번 작업은 근 1세기만이자 중국인의 손으로는 최초의 가장 야심적이고 방대한 전통문화찾기 운동인 셈이다. 왕교수는 조사단의 현지발굴작업이 내년중 완료되면 우선 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총 60권짜리 총서로 엮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방정책의 덕택에 경제적으로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풍요로워져가는 중국의 달라지고 있는 모습을 이 조사단의 작업에서 읽을 수 있다.
  • 미 여름극장가에 어린이영화 붐

    ◎「동심에 교화되는 어른」 주제 작품 쏟아져/“온가족이 함께…” 관객 밀물 폭력과 상궤에 벗어난 남녀관계 등 결코 칭찬거리가 못되는 어른들의 세계를 단골로 그려왔던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이번 여름에는 개과천선이나 한듯이 백합처럼 깨끗한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수북이 스크린에 담아내고 있다. 영화시장의 큰 대목인 여름 개봉철을 맞아 미국내 극장들을 완전히 독점하다시피 하는 이 어린이 신작영화들은 아이들 뿐아니라 그들의 성인 보호자와 가족들을 관객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어린이용 영화와 구별된다.극장입장권의 수요층을 아동과 성인 양쪽 모두에 맞춘 만큼 내용도 기존의 어린이영화와는 다르다.어른들이 아예 배제되거나 잘해야 이방인에 지나지 않은 아이들만의 「동심」 세계에서 뱅뱅도는 대신 어른에게도 아이 못지 않은 몫과 역할이 주어진 가운데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이처럼 외양으론 어린이권을 탈피한 이 영화들은 그러나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는 원칙 아래 이야기를전개해간다.때묻지 않은 아이들이 주인인 이들 스크린의 세계는 현실보다 훨씬 깨끗하고 착하며 항상 흐뭇하고 희망적으로 끝난다.때묻고 이지러진 어른들이 아이들의 순결한 영혼에 교화돼 온화하고 긍정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내용이 「마이키와 함께」「뜬눈으로 지샌 시애틀」「무시무시한 데니스」「보비 피셔를 찾아」「비밀의 정원」「얼굴없는 사나이」「아기고래 윌리」「미국산」「올해의 신인」「부성애」등 이들 신작영화에 지칠줄 모르고 되풀이된다. 어린이영화인가 싶다가도 전개와 구성에 꼭 필요한 어른들의 세계와 역할을 보면 그도 아니고,그렇다고 보통 성인영화하고는 분명 다른 이런 영화들이 양산되는 것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선호하게 된 시류의 변화 때문이다.어떤 내용의 영화라도 만들 수는 있으나 대사와 장면을 꼼꼼이 따져 각 작품에 대한 입장가능 연령층이 엄격히 제한되는 미국에서는 동일한 내용을 어떤 등급에 맞게 제작,배포하느냐에 흥행성적이 크게 달라진다.흥행에 유리한 등급은 약간씩 변해왔는데 90년대들어 갑자기 「13세미만 보호자동반입장 가」(PG­13)등급에 메가톤급 최대관객이 몰려 들었다. 17세가 돼야 입장할 수 있는 (13∼16세는 보호자동반)R등급이 히트를 보장하는 보물단지였던 지난 80년대와는 사정이 판이해진 것이다.90년부터 3년동안 관객동원 최고 10대 영화(미국내 한정) 가운데 보호자동반의 PG등급이나 어린이입장가의 G등급 영화가 무려 8편이나 랭크된 반면 그 기세좋던 R등급은 단 2편에 그쳤다.국내에도 소개된 「나홀로 집에 1,2」「사랑과 영혼」「늑대와 함께 춤을」「로빈후드」「돌아온 배트맨」 등이 PG등급 영화바람을 일으킨 히트작이다. 현재 인기절정 속에 상영중인 「주라기공원」도 최근의 PG열풍을 감안,R등급 판정을 피하기 위해 원작과는 상관없는 아동풍취를 대폭 가미,제작자의 기대대로 PG등급을 따낸 바 있다.입장객이 두배 이상으로 불어나 영화사에 좋고,선한 사람들로 가득차 관객들 또한 마음 편한 이런 PG영화 열기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알 수 없다.현실을 가벼운 농담인양 왜곡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들리고 있기에.
  • 소 공동체 운동/안경렬 역촌동성당 주임신부(굄돌)

    요즈음 천주교에선 소공동체운동에 관심이 높다.오늘의 시대가 요청하는 일일 것이다.한교회에 속하는 신도가 많아지고 목자는 적다.서울의 경우 한 교회에 신자가 7천명 꼴이다.교회는 대형화되지만 신자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인격적 돌봄과 만남은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따라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도들이 그 한몸의 지체가 되어 성령안에 한몸을 이룩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사귐과 나눔의 형제애적 공동체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다. 이제야말로 참으로 서로를 알고 받아들이고 나누고 위해줄 수 있는 적은 수의 작은 공동체안에 우리모두 저마다 속해야한다.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실현되어야 한다.『서로 사랑하는 너희를 보고 이방인들도 너희가 내 제자들임을 알게 되리라』 비단 교회뿐만 아니라 이렇게 많이,이다지도 빽빽이 모여살면서도 모래알같이 소외되고 더욱 미움과 시기로 엉켜사는 우리 모두에게 가정과 혈연을 조금은 뛰어넘는 이웃사랑의 공동체의식이 되살아 나야한다.어렵사리 시작한 내고장 지방자치활동에적극 동참함도 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지나친 지역이기심은 빼고 말이다.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을 새삼 음미한다.『마치 몸은 하나이지만 여러 지체를 가지고 있으며,그 몸의 지체는 여럿이지만 모두 한몸이듯이 그리스도도 그렇습니다.머리도 발더러 너희는 나에게 소용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아니 몸의 지체중에 허약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일수록 오히려 훨씬 더 요긴한 것입니다.또 우리가 몸에서 천하다고 생각하는 지체일수록 우리는 그것을 그만큼 더 품위있게 꾸미며 그래서 더 고운 꾸밈새를 지니게 마련입니다.그러나 볼품있는 우리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하느님께서는 모자라는 지체일수록 그에게 명예를 더 주셨습니다.그리하여 몸안에 분열이 없게하고 오히려 지체들이 서로를 위하여 같이 걱정하도록 하셨습니다.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 골프와 「윗물」의식(김호준/정치평론)

    골프치는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총리실·민자당 사이의 3각 혼선은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도대체 골프가 뭐길래 국가 지도부가 「쳐도 되나 안되나」를 놓고 그 법석을 떨어야 했는지 얼른 이해가 안갔다.골프장 내장객이 연5백만명을 돌파한 소득 7천달러 시대에도 골프에 대해 여전히 보릿고개 시대의 위화감을 나타내야 하는 것인지.90년 여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전운이 고조된 열사의 중동에 미군이 속속 파병되고 있는데도 25일간 장기휴가를 떠나 골프를 즐겼던 부시미대통령의 여유를 우리는 영원한 이방인의 행태로 치부해야 되는 건지.이번 골프파동을 지켜 보면서 가진 의문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예사로 넘겨선 곤란 신문을 보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이 취임초 『재임중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이것이 공직자와 기업인들의 골프장 출입자제를 넘어선 사정한파로 확산되자 청와대측이 『골프금지령을 내린 적은 없다』고 해명한 일을 기억할 것이다.그런데 이 유권해석을 받아 총리가 『기업인들은 필요할때 골프를쳐도 좋다』고 말하고 다음날 집권당 대표가 시범이라도 보이듯 당직자를 이끌고 필드에 나가자 대통령으로부터 『당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고 불호령이 떨어졌으니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관전자들도 헷갈릴수 밖에 없었다. 총리는 국무회의다,고위대책회의다 하여 대통령과 수시로 접촉하고 집권당 대표도 주례회동이라는 이름으로 1주일에 최소한 한번은 대통령과 「독대」한다.그럼에도 총리와 집권당 대표가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했다면 이는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새 정부에선 국정운영의 핵심 주체인 대통령·총리·집권당 대표가 주요 국사를 놓고 서로 교감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닌가.당정이 이렇게 손발이 맞지 않는다면 그 어려운 개혁작업의 성공을 어떻게 기대할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올만 하다.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필하는 청와대 비서실로 눈을 돌려 보자.그들도 총리나 집권당 대표처럼 대통령의 의중을 잘못 헤아렸던 것같다.그렇지 않고서야 대통령의 의중과 동떨어진 「골프해금」시사가 어떻게 그들 입에서 나올수있었단 말인가. 이번 골프파동은 대통령의 개혁의지가 당정의 최고지도부와 청와대 비서실조차 오판할 정도로 강력한 것임을 보여주었다.그 강도만 정확히 헤아렸던들 총리와 집권당 대표가 머쓱해지는 해프닝은 피할수 있었을 것이다. 왜 그런 오판과 혼선이 생겼을까. 이런 저런 이유가 많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윗물의식」의 박약일 것이다. ○“나도 윗물” 자각 절실 대통령만을 윗물로 생각하고 자신은 윗물로 여기지 않은 비주체성이 골프파동의 주범이라는 얘기다.위를 쳐다보지 않고 자기자신이 바로 맨 윗물이라고 생각했다면 개혁의 고삐를 더욱 죄어야할 시점에 골프를 칠 엄두는 감히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주 민자당의원 모임에서 구여권출신들은 술이 얼큰해지자 『왜 우리만 당하냐』고 재산공개파동에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개혁이 며칠 가겠느냐』며 자위(?)했다고 한다. 과거 총칼이 번득이는 계엄령 아래서도 용두사미로 끝난 개혁작업을 맨손의 문민정부가 무슨 수로 지속할수 있겠느냐고 이들은 회의했던 모양이다.그러나 대통령의 질타가 있자 이들은 다시 긴장했다고 한다. 공직사회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위층의 「감」을 잡으려고 급급하는 구태는 더욱 그렇다.그건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문민시대의 모습이 아니다.그렇다고 하여 공직자들이 대통령의 의지도 헤아리지 못한채 헤맨다면 그처럼 우스꽝스런 일도 없을 것이다.지금 개혁의 주체로서 정부와 여당에 가장 요구되고 있는건 그 구성원 스스로가 모두 윗물이라고 생각하는 자각이요,그에 따른 개혁 열기다. ○개혁의지 헤아려야 사실 골프를 치느냐,마느냐는 개인의 문제다.골프를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면 언제든지 칠수 있다고 본다.대통령이 제동을 건건 운동으로서의 골프가 아니라 로비수단으로 이용되는 골프,민폐를 끼치는 골프일 것이다.부정과 비리를 척결한다면서 그 온상으로 이용될 소지가 많은 골프를 관대하게 놔둔다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만일 조깅이 로비수단으로 이용되거나 민폐를 끼치는 것이었다면 대통령은 『재임중 조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것이다.
  • 「행복한 이방인」(화제의 책)

    ◎모순 가득찬 세상을 그린 풍자소설 모순에 가득 찬 세상살이를 스케치한 세태 풍자소설.대학을 중퇴하고 의정부에서 안주장사를 하는 현대판 방물장수인 주인공의 눈에 비친 세상 풍경을 현미경으로 확대시켜 놓은 듯 세세하게 묘사,풍자하고 있다. 우리사회 졸부의 전형으로 군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와 부동산 투기에 열올리는 어머니,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눈뜨기 시작한 동생,그리고 죽음의 그림자를 씻고 현실에 뛰어드는 여자 혜주등이 이야기를 끌고나간다.「소설로서의 사회학개론」을 쓰고자 했다는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수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현상학적으로 분석해놓고 있다. 임동헌지음 문이당 5천원.
  • 난지도/세계의 민족/특집 다큐물 연속 방영

    ◎MBC­TV,봄철프로개편 맞춰 새달초에/난지도/쓰레기로 인한 환경파괴 조명/세계의…/세계 원주민들의 생활상 소개 MBC­TV는 봄철 프로개편에 맞춰 특집다큐멘터리 2편을 연속 방영한다.오는 4월초 선보일 작품은 쓰레기로 인한 국토의 파괴상을 집중 조명한 다큐 2부작 「난지도」(연출 곽동국)와 세계 각 민족의 생활과 문화를 생생히 기록한 현지다큐멘터리 「세계의 민족」등. 이 가운데 「난지도」는 15년동안 서울시민의 쓰레기를 받아오다 지난해 말 폐쇄된 난지도의 실태와 새모습으로 거듭 태어날 미래상등을 심층적으로 다룬 기획다큐멘터리로 인간의 의지가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인간에 의해 악취와 환경오염의 대명사가 돼버린 난지도.지난 7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아름다운 샛강을 끼고 포플러숲과 갈대밭으로 우거진 서울시민들의 나들이공간이기도 했던 이곳이 「전율의 현장」으로 변모하기까지의 과정을 면밀히 추적,기록화한다는 계획이다. 제1부 「버려진 땅의 이방인들」에서는 해발 90ⓜ의 쓰레기산 뒤에 세워진 조립식주택 주민들의 구체적 삶을 소개한다.난지도의 폐쇄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78년부터 이곳에 흘러 들어온 이래 「앞벌이」「뒷벌이」등으로 불리는 쓰레기 뒤지기로 생계를 이어온 대표적 소외계층.문명과 절연된 현지 주민들의 「이방의 삶」을 대를 이어 난지도 땅을 지켜온 상암동 원주민들의 입을 통해 들어본다.제2부 「꿈의 땅,미래의 땅」에서는 가스와 침출수,먼지와 악취등으로 서울지역의 「골칫거리」가 돼온 난지도 오염의 실상을 조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또한 「미래의 땅으로 2천년대의 최첨단 정보문화센터가 될것」이라는 난지도의 향후 활용계획 및 이에 따르는 문제점 분석과 아울러 도시공학 또는 환경공학적인 관점에서 난지도의 오늘과 내일도 그려본다. 한편 일본 NTV(일본 영상기록센터)에서 66년부터 장장 25년동안 「훌륭한 세계기행」이란 제목으로 방송돼 인기를 모았던 다큐멘터리 「세계의 민족」은 MBC­TV가 유엔이 정한 「세계 원주민의 해」를 맞아 고정 편성한 프로.MBC는 일본측이 소장하고 있는 1천2백편 가운데 지역등을 고려,4백편을 정선해 방영할 예정이다.이 프로는 세계 각국 원주민들의 생활을 카메라로 추적,그들의 일상생활·관혼상제·제의·관습·유적등을 포착해 방영 당시 「세계 TV민속지」「영상민속지」란 평판을 얻기도 했던 작품.이번에 방영될 「세계의 민족」은 중국·대만·일본등 동아시아지역을 다룬 54편과 태국·베트남·필리핀등 동남아시아지역 34편을 비롯,남태평양·아프리카·유럽등 세계 각국의 원주민들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소개된다.미국등 서구문명에 편중되기 쉬운 일반 시청자들에게 세계의 다양한 민족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그들의 정신세계와 물질문명 소개에 동등한 비중을 둔다는 방침이다. 이 프로를 맡고있는 영화부 김태현PD는 『영상에 의한 민족지는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생생한 정보를 비롯,분석이나 해석이 미칠 수 없는 인간행동의 영역과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만큼 영상커뮤니케이션의 특징을 충분히 살려낼 수 있다』고 지적하고 『「TV1회용」이 아닌 인류문화재로서의 의의도 매우 크다』고 말했다.
  • 「어린왕자」,63개 출판사서 발행/출협,중복출판 현황 조사

    ◎「논어」「데미안」도 40종이상 유통/자율적 규제 방안 마련 시급 출판계의 가장 심각한 폐해인 중복출판물의 현황이 처음으로 밝혀졌다.출판문화협회가 교보,종로서적등 대형서점을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2월말 현재 시중에서 유통중인 책가운데 20권이상 중복출판된 책만해도 「어린왕자」등 17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어린왕자」의 경우 무려 63종이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으로 출판된 사실이 확인됐다.다음으로 「논어」가 50종에 달했으며 「데미안」은 41종,「명심보감」37종,「좁은문」28종,「삼국지」27종,「독일인의 사랑」과 「님의 침묵」이 각26종이었다. 또 「노인과 바다」「이방인」이 각24종,「사랑의 기술」「삼국유사」는 각 23종,「여자의 일생」22종,「채근담」「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각21종,「나의 라임오렌지나무」20종등 순으로 나타났다.10종이상 중복출판물로는 「소공녀」「세종대왕」「링컨」이 각19종으로 집계됐으며 「파브르곤충기」「이솝우화」「예언자」는 각18종,「백설공주」「대지」「피노키오」「팡세」「키다리아저씨」는 각 17종에 달했다.이밖에 동·서양의 고전에 속하거나 비교적 잘알려진 책은 대부분 5종이상의 중복출판물이 나와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는 현재 유통중인 중복출판물만을 대상으로 했기때문에 출판사가 없어지는등의 이유로 절판된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 발행된 중복출판물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출판계는 예상하고 있다. 출협은 이번 조사결과 중복출판물의 범람현상이 중복출판을 규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제재장치가 미흡하기 때문인 것으로 결론짓고 자율적인 중복출판규제방안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했다.
  • 흑인엘리트/남아공 취업 러시(세계의 사회면)

    ◎가나·우간다 등 학자·의사·교사 이민행렬/인종차별·텃세 감수… 높은 보수 선택/유럽국 외인유입 규제로 방향전환/“조국 배신” 자책감·현지인 모멸 등 정신고통도 아프리카각국의 우수한 두뇌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몰려들고 있다.이들은 주로 의사 교수 교사등 사회적 지위가 있는 전문직업인들로 조국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인종차별정책이 폐지되긴 했지만 여전히 흑백간의 치열한 인종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남아공에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것은 다분히 의외라 할수 있다. 그러나 가난과 내전으로 찌든 생활고를 이겨내지 못한 이웃 나라들로서는 이곳이 선망의 대상이 된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생활환경이나 정치적인 안정면에 있어서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보다는 양호할 뿐 아니라 엘리트들에 대한 대우와 보수가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실적인 이유외에도 그동안 이민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던 유럽각국이 최근들어 외국인들의 유입을 꺼려 이민정책을 통제한 것도 남아공으로 발길을 돌리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1년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에서 빠져나가는 해외노동인력가운데 약 30%가 일자리를 찾아 유럽으로 빠져나갔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특히 이들 전문직업인들외에도 노동자와 비숙련공들의 이민도 급격히 늘어나 남아공으로 이민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남아공으로 이민 러시를 이루는 또다른 요인은 남아공이 1∼2년안에 흑백간의 분쟁이 종식되고 흑인들이 투표권을 얻게 되면 뒤떨어진 지역과 상대적으로 차별받아온 흑인들의 교육과 복지문제해결을 위해서라도 의사 교수 교사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되고 있다. 남아공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는 해외두뇌들은 대부분이 인접국인 나미비아 모잠비크 짐바브웨이와 정정이 불안하고 높은 인플레로 살아가기 힘든 자이르 우간다 가나 소말리아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꿈에 부풀어 남아공으로 이민은 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떠나버린 조국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우간다에서 남아공에 온 한교수는 『지식인들이 떠나버린 우간다는 어쩌면 교사없는 나라로 전락해 버릴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이밖에 남아공에 이민온 대다수의 사람들은 밀려드는 이민의 홍수로 인해 남아공이 자국민들의 직장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외국인에 대한 입국금지를 내리지나 않을까 또다른 걱정을 하고있다. 이들의 우려는 벌써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으로 백인이 흑인에 대해 숱한 모멸과 차별을 했듯이 이제는 남아공의 백인과 흑인들이 이들에게 차별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아공으로 이민온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 거주지역에서 집을 전세얻을때 적어도 이웃의 6가구에서 추천서를 받아야 하는 번거러움을 겪고 있는가 하면 흑인들에게도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는등 이방인으로서의 지역텃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가난과 내전을 벗어나기 위해 조국을 떠난 이들은 비록 이국땅에서 경제적인 혜택은 누리고 있지만 이에 상응하는 또다른 정신적인 고통도 함께 받고 있는 것이다.
  • “즉흥표현 선구” 미 현대무용가 내한

    ◎사라 피얼슨·패트릭 위드리그 공동무대/「향수」 「침묵의 역사」 선보여 즉흥표현 워크숍과 공연을 활발히 해오고 있는 미국의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인 사라 피얼슨과 패트릭 위드리그가 20∼21일 하오7시30분 서울 포스트극장(337­5961)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지난 86년부터 공동작업을 해오고 있는 이들이 이번 서울무대에 선보이는 작품은 「향수」와 「친밀한 이방인」「침묵의 역사」등 모두 세편.특히 이번 공연에는 지난 1일부터 18일까지 창무 인스티튜트에서 이들이 실시하고 있는 즉흥신체표현 워크숍 수강자들이 찬조 출연한다. 「향수」는 89년에 안무한 작품으로 다이내믹한 구성으로 격정과 고요함을 함께 보여주는 작품이다.인간의 근원적인 안식처를 찾으려는 본능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2인무로 공연시간은 25분.「친밀한 이방인」은 두 문화와 언어,춤과 공연예술,침묵과 말등 서로 상이한 개념들사이의 연결과 분리의 역동성에 관한 것. 92년 최신작인 「침묵의 역사」는 인간관계에 있어 여러가지 다양한 침묵의 단면들을 묘사한 작품이다.순수하고 열정적인 독무와 듀엣이 인상적이며 예기치못한 비극적인 장면들과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어우러져 있다. 10년 이상 신체작업 테크닉을 구사해온 사라 피얼슨은 89년 미국 안무가상을 수상했으며 같은해 예술안무가를 위한 뉴욕재단의 수상자로 선정되는등 미국의 최정상급의 무용가이자 안무가이다.위드리그는 스위스 출신으로 84년 미국으로 전문적인 무용공부를 하러 오기전에는 국민학교 선생님을 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이다.
  • 유대인의 새해 기원/현용수교수 미주 기독교교육 연구원장(특별기고)

    인간의 우수성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눈에 안보이는 마음이 타락하면 눈에 보이는 물질과 생활이 타락한다.로마가 망한 것은 외침에 의해서가 아니고 로마의 황제를 비롯한 집권층의 부패에 그 원인이 있었다.그렇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지키는 자가 참 지혜자인 것이다. 유대인의 신년절기를 로시하샤나(RoshHashana)라고 한다.그들의 달력으로 티시리 달의 첫째 혹은 둘째날에 시작된다.금년은 첫째날이 안식일이어서 둘째날인 양력 9월28일부터 시작되었다.그들의 신년절기는 10일간 중요하고 거룩한 날들로 지켜진다.이 날들은 「두려움의 날」,「심판의 날」이라고도 하며 특별히 마지막날을 「대속죄일」로 지킨다. 유대인의 신년절기는 그들이 지키고 있는 여러 역사적 기념절기들 즉 유월절이나 장막절 등과는 다르다.일종의 영일이다.첫째는 그동안 지었던 죄를 회개하는 일이고 둘째는 1년간 원수진 사람이 있으면 서로 찾아가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이다.즉 맺혔던 모든 미움의 사슬을 끊는 절기인 것이다. 그들이 첫째날 읽는 성경은 미가서 7장19절이다.『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이는 마음주머니에 있는 모든 죄를 꺼내어 깊은 바다에 즉 죄악세상에 던져버린다는 뜻이다.히브리말로 회개라는 말은 「teshuvah」로 「돌려주다,계산해주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지난 1년간의 잘못을 회개로 청산하고 다시 되풀이 않게 하기위하여 철저한 자기점검을 한다. 이때 유대인들은 죄를 고백하면서 자신의 죄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민족전체의 죄까지 회개한다.그러므로 그들은 회개할때 『내(I)가 죄를 졌다』의 단수로 시작하여 복수인 『우리(We)가 죄를 졌다』로 끝난다.이것은 유대인의 산 신앙공동체 개념을 의미한다.그들의 신앙공동체의식은 모든 국민의식수준의 평균치를 크게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불순종의 요나가 죄를 회개했을때 사랑의 하나님이 그를 용서해주셨다.그리고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니느웨성에 선포했다.그 말씀을 들은 니느웨사람들이 회개했을때 하나님은 그들도 용서해주셨다.이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뜻한다. 유대인은 왜 우수한가.그들의 마음이 부패하지 않게 하는 철저한 성서적 종교교육이 있기 때문이다.송구영신을 타락한 물질문화의 와중에서 지내는 이방인의 방법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인간의 질적 자질을 높이기 위하여는 자신의 마음을 늘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 사상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그리고 위로부터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한다.그래야 세상의 악과 대결하여 이길 수 있다.
  • 연극배우 전무송씨(이세기의 인물탐구)

    ◎긴 갱도 헤치듯 살아온 무대인생 30년/파란·곡절·절망속에서 뼈깎는 변신 시도/몸에 밴 「햄릿형」서 탈출… 본능적 연기 발산/“인생은 걷고 있는 그림자… 주어진 시간·무대서 서성일 뿐” 하나의 공연에서 성공적인 연기자를 발견하면 뉴욕타임스의 공연평론가 잭 앤더슨은 『어둡고 탁한 브로드웨이 하늘에 오늘밤 별이 떴다』고 말하고 브룩스 애트킨즈는 『폭죽을 터뜨린듯 눈부시다』는 표현을 즐겨 쓴다. 60년초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학생들의 「햄릿」공연을 본 극작가 차범석씨는 『드라마센터 무대는 괜찮은 배우를 품고 있다.이제 곧 연극계에 새로운 별이 탄생될 것 같다』고 예고했다. 그후 20년이 지난 82년 극단 산울림이 연극 「쥬라기의 사람들」을 대한민국연극제 무대에 올렸을때 연극평론가 정진수씨는 『신연극 70년을 통틀어 걸출한 수작』임을 못박고 『주인공 「만석」은 인간의 표리부동과 배반,진실의 모순 속에서 정의가 얼마나 외로운가를 피가 뚝뚝 흐르는 절규로 보여주었다.그의 연기는 범용한 우리 연극계에 폭죽처럼 찬란하게 피어올랐다』고 호평했다. 드라마센터 무대가 품고 있는 「별」과 「쥬라기의 사람들」의 「만석」은 바로 연극배우 전무송이다. ○데뷔때부터 능력 인정 그리고 전무송은 드라마센터가 배출한 수많은 연기자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로 부상되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밤하늘의 폭죽처럼 찬연하기까지는 순풍에 돛단듯 그렇게 순조로운 항해를 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파란과 곡절,절망의 나락을 수없이 넘나들었으나 지난 세월을 망각한채 성공한 오늘에 안주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전무송은 그렇지 않다. 이미 60년대부터 연극무대의 주역으로 각광받아 그는 우울한 햄릿과 세일즈맨인 윌리 로먼의 연기로 각박한 현실에서 무기력하게 파멸되고 함몰되는 패배주의자,음습한 도시 뒷골목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이방인의 모습속에 노스탤지어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단지 새뮤얼 베케트의 블라디미르나 헤롤드 핀터의 스탠리,테네시 윌리엄즈의 브리크를 분장하지만 그는 언제나 햄릿형 배우를 면치못하는듯 했다. 그는 배우의 생명인 혁신적인 연기변신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벽에 부딪쳐 자질부족이라는 자책을 스스로에게 제기했고 햄릿과 윌리로부터 도망치려고 때때로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줄도 모르고 사람들은 그의 연기를 「끌과 망치로 다듬어진 대리석」이라 평했다.그만큼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리듬이 배어있지 않다는 의미도 될것이다. 결코 오지않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처럼,그리고 블라디미르가 기다림을 멈추지않듯 그의 연기세계의 앞날은 농무속의 안개꽃처럼 불투명하기만 했다. 그는 대사 한마디짜리 역할로 첫 무대에 올랐다. 재학생 발표무대에 올린 유치진작·오사양 연출의 「소」가 그것이다. 『우리집 타작은 낼 모레니까 그때 들러 술이나 한잔 하세』 무대를 가로질러 이 한마디를 하고 들어오는데 연출자가 다짜고짜 따귀를 올려붙였다. 그건 술취한 걸음걸이가 아니라 깡패의 건들거림이라 했다.그날 진눈개비가 내렸다.인천행 기차를 타기위해 서울역까지 걸어내려오면서 그는 허공에 대고 『오사량,두고보자』고 소리쳤다.두빰위로 눈물과 진눈개비가 범벅이 되어 흘러내렸다고 그는 곧잘 그날을 회상하곤한다. ○대사 한마디에 뺨맞고 전무송은 인천에서 가난한 어부 집안의 7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천공고 3학년때 대학진학을 포기하면서 신포동 동방극장에 들락거렸고 서울에 왔다가 우연히 관람한 김동원의 「햄릿」을 보고 막연히 햄릿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모의 도움으로 서울예전 전신인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에 입학,유치진 오사양 이해랑 이진순 이원경씨등 기라성같은 연극대가들의 연기지도를 받았으나 기본단계인 대사외우기와 작품몰입 템포부터가 너무 어눌하고 뒤늦다는 것이 교수들의 지적이었다. 어둠속에 잠긴 원형무대를 응시하면서 그는 인생의 진로를 잘못 선택했다는 참담한 후회에 허우적거렸다. 이후 그는 동랑레파토리극단창단과 함께 드라마센터내의 골방에 기숙하면서 자신의 약점들을 하나하나 극복해나갔다. 「마의태자」「춘향전」「나운규」와 「햄릿」으로서 전무송이 등장한 무대는 살아있다,무한한 가능성이 보이는연기자 등의 평을 받아냈고 그의 앞길에 청신호가 반짝거리는듯 했으나 인생역전은 예측 불허였다. 극단창단 6년만인 70년 유치진 2세이며 미트린티대·예일대에서 교육을 받은 유덕형이 새로운 연출자로 부임하게 된다는 뉴스였다. 모름지기 동낭의 간판배우로서 당대 대연출가들의 인정을 받고있는 전무송으로서는 자만심과 야심,오만이 넘쳐있었는지도 모른다. 연극 본고장인 뉴욕에서 본격적인 연극체험을 했다는 이 촉망받는 신성에게 그는 자신을 과시하고 싶기도 했다. 유덕형의 귀국기념 무대는 헤롤드 핀터의 「생일파티」였다. 대본을 읽는 과정에서 연출자는 「느낌이 없다」「사극조(사극조)다」하는 식으로 그에게 주역을 주지 않았다.「언더스터디」를 하라고 했다. 「언더스터디」가 무슨 소린지 몰랐던 전무송은 주인공인 스탠리의 상대역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한낱 「대역」에 불과했다. 동낭의 간판배우에게 대역이라니­.「연기에 대한 접근방법이 너무 경직되어 작품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연극을 전체적으로 보지않고 자기역에만 깊이 빠지는데다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든다」「다른 등장인물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무대의 조화를 깬다」는 것이 연출자가 배역을 정한 이유였다. 전무송은 고요하고 다감하고 부드러운 반면 술만 마시면 그의 주사는 소위 「울분」을 터뜨리는 식이었다. 더구나 갓 결혼한 부인 이기순씨는 남대문시장에서 옷장사,아기의 우유 살 돈,쌀 살 돈이 없어 그는 갓난아기를 연습장에 데리고 다니는 형편이었다. ○혹독한 가난에 시달려 그는 눈에 보이는 것 없이 날뛰었다. 유치진씨가 그를 불렀다. 『연기자는 취한 모습으로 연기할 수 없다.정결한 생활없이는 연기를 위한 시선과 접촉·언어·동작을 무대에서 구사할 수 없다』고 엄히 나무랐다. 다음해 앙코르 공연에서 신구의 TV출연으로 주인공 스탠리가 돌아왔으나 처음엔 「사극조」라고 못박아 사기를 죽이더니 유덕형이 이번엔 「리처드 버튼을 흉내내지 말라」고 힐난했다. 『넌 백날 해도 리처드 버튼은 쫓아가지 못한다.네속에 있는 네것을 끄집어내라.연기생활 10년이면 제대로 무대에 설수 있는데 왜 남의 것을 쫓는데 급급하고 있는가』 유덕형의 이 말한마디가 그에게 잠재돼 있던 영감과 본능의 연기를 끌어낸듯 그는 비로소 눈앞을 가리웠던 두꺼운 커튼이 활짝 열리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곤두박질치며 그는 이렇게 성장했다. 「생일파티」는 템포빠른 극진행과 눈부시게 현란한 조명,록뮤직 불꽃튀는 화합의 무대로 번역극일망정 『우리 연극사에 전례없는 자극제가 되었다』는 평과 함께 연극계의 화제가 됐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혹독한 가난 속에서 그의 부인은 회사의 경리일,그때도 6개월에 한번씩 삭월세 방을 찾아 창동에서 쌍문동 문래동 다시 인천에 내려갔다가 서울로 올라와 개봉동에서만 여섯차례나 이사를 다녔다. 그때까지 그는 극단 성좌,국립극단,동랑레파토리 극단에서 여전히 세일즈맨 윌리역을 해냈고 그는 인생의 비바람에 시달릴대로 시달린,피로하고 허약한 윌리 로먼이 영락없이 자신의 모습처럼 착각되었다. 그런 그에게 윌리를 벗어날 수 있는 운명적인 기회가 다가왔다.영화 「만다라」출연이었다. 어지러운 속세를 등진 채 인간적 욕망과 갈등과 싸우는 젊은 지산의 영혼은 방황하는 윌리라는 다른 또하나의 자신의 분신이었다. 짐짓 불경스러운 몸짓과 땡추임을 자초하는 그 찐득하고도 냉소적인 체취는 이제까지 맛보지 못했던 연기의 환희이기도 했다. ○만다라서 연기폭 넓혀 그는 「생일파티」에서 튼 본능의 연기를 이 작품에서 마음껏 펼쳐 나갔다.그가 설 무대는 광활하고 그의 역할은 얼마든지 다양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수 있었다. 그는 결국 「쥬라기의 사람들」의 「만석」처럼 좁고 길고 어두운 갱도를 나와 그때부터 눈부신 햇살속에 서있게 되었다. 아기를 맡길데가 없어 연습장에 안고 다니던 딸아이 현아는 동대 연극과에 재학중이고 아들 진우(고2)도 연극을 하고싶어 한다. 그는 무기력하고 무능한 윌리 로먼도,오지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도 더이상은 아니다. 아침햇살에 사라지는 별빛,밤하늘의 폭죽같은 순간적인 아름다움도 아닐 것이다. ­인생은 다만 걷고있는 그림자,주어진 시간과 무대에 서성이다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초라한 배우에 불과할뿐­. 다만 예술세계에서는 어떤 우둔도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그는 책임질 줄 아는 위치인 것이다. □연보 ▲1941년 인천 출생.전경식씨와 원복희씨의 3남4녀중 장남 축현국민교­인천중­인천공고졸업 ▲64년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현서울예전)졸업 ▲64∼74년 동랑 레파토리극단 단원 ▲75∼79년 국립극단 단원 ▲83년 극단 집현 창단 ▲현재 극단 ‘산울림’ 단원 ·64년 데뷔무대 유치진작,연출 「춘향전」을 비롯,「나운규」「마의태자」「햄릿」「수치」「태」「하멸태자」「대이인」「생일파티」「잉여부부」「돈주앙」「베케트」「쇠뜨기놀이」「초분」「고도를 기다리며」「세일즈맨의 죽음」「루브(Luv)」「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쥬라기의 사람들」「징비록」「손탁호텔」「뜨거운바다」(일본스가고헤이작 연출)「시즈위벤지는 죽었다」 「맨발로 공원을」「파우스트」등 1백여편. ·영화 「만다라」 대종상,백상연극상,대한민국연극제 남자연기상,연극평론가협회상등 수상
  • 제16회 서울연극제 29일 개막

    ◎문예회관 대·소극장서 10월10일까지 열려/공식·자유 2개부문 21개 작품 출품/「선녀는…」·「이방인」 등 다양한 소재 눈길 연극계 최대 행사인 서울연극제가 오는 29일부터 10월10일까지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열린다. 올해로 16회를 맞는 서울연극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공식 참가부문과 자유 참가부문으로 나눠 실시되며 모두 21개 작품이 참가한다. 이번 서울연극제에는 극단과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관극지원제도인 「서울티켓」을 2만장 발행,관객들에게 「연극 서비스」를 하게 된다. 이번 서울연극제 공식참가부문에 참가하는 작품들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모두 8편으로 이 가운데 실연심사를 거친 작품은 지난해 3편보다 훨씬 적은 극단 가교의 「트로이의 여인들」(에우리피데스원작·김창화연출)1편에 불과하다. 이는 작품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실연심사 작품비중을 점차 늘려나가야 한다는 연극계 안팎의 지적과 배치되는 것으로 지난해 「연극의 해」이후 침체국면에 빠져있는 상반기 연극계 현실을 단적으로반영하고 있는 것이어서 우려를 자아낸다. 한편 공식 참가부문에 오른 희곡들 가운데 올초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당선한 신예 극작가 박평목씨의 처녀 장막극 「누군들 광대가 아니랴!」가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밖에 참가작품중에는 신화에서 소재를 따온 것(극단 대하의 「선녀는 땅위에 산다」)에서부터 한국전쟁이후 남한이나 북한이 아닌 제3국을 선택해 떠난 무국적자의 문제(극단 부활의 「이방인들」),인간의 선악등을 다룬 존재극(민중극단의 「영자와 진택」)등 다양한 면모를 갖추고 있어 희곡의 다양성 못지 않게 얼마나 다양한 무대로 형상화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쏠린다. 그리고 제10회 전국 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해 초청공연을 갖는 청주극단 상당극회의 「사로잡힌 영혼」 역시 서울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 공연. 이는 지난해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던 김아라씨 연출의 국립극단 무대와 비교감상할 수 있는데다 이 작품의 연출자가 올초 대학을 갓졸업한 햇병아리로 장래가 촉망된다는 평가를 받아 이목을 끌었던 위선일씨(21·여)의 서울데뷔무대라는 점에서 더욱 화제가 되고있다.
  • 통일전망대/금강산절경 손에 잡힐듯

    ◎강원도고성 소재… 6·25 격전지/옥녀봉·해금강선 “어서오라” 손짓/실향민·이방인등 하루 1만여명 줄이어 철책선 너머 금강산이 보고파 목을 늘이고 말없이 서있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역사의 현장 통일전망대­.6·25를 앞두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다. 원호의 달을 맞아 먼발치로나마 고향을 보기위해 찾아온 실향민이 있는가 하면 대치현장의 긴박감을 확인하려는 이방인 관광객들도 적지않다.안내자의 설명으로는 요즘 통일전망대를 찾아오는 내방객은 1만여명에 이르고 있다.현충일인 지난 6일에는 1만6천여명이나 되었다. 통일전망대가 세워진 명호리는 6·25전쟁때 3천여명의 고귀한 목숨을 대가로 되찾은 격전의 현장이기도 하다.속초시에서는 50㎞쯤 떨어져 있고 고성에서도 28㎞나 올라가 있다. 민통선 검문소를 거쳐 통일전망대에 올라보면 우선 절경과 함께 저들의 허구성을 실감하게 된다.아름다운 자연에 요란한 선전구호를 내걸어 놓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실망도 잠시,눈앞에 다가오는 비경이 잡친 기분을 깔끔하게 씻어준다.북쪽으로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마지막 봉우리라는 구선봉(높이 1백85m·일명 낙타봉)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와 보이고 그 오른켠에는 현종암·복선암·부처바위·사공바위·외측도의 해금강이 표주박처럼 두둥실 떠있다. 또 서쪽에는 금강산의 둘째봉인 옥녀봉(1천6백10m)을 비롯 세존봉 육선봉 집선봉 등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어서 오라」는듯 손짓하고 있다.『구선봉은 전망대에서 2.9㎞의 거리(직선)에 있고 신선대도 16㎞만 더 가면 닿을수 있으며 통일전망대에서 원산은 1백18㎞로 강릉보다(1백30㎞)더 가깝다』는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면 가슴이 더욱 뭉클해 진다. 더욱이 금강산 전망대가 지난5월 완공되어 금년말이나 내년초쯤이면 금강산을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금강산전망대는 통일전망대보다 2㎞쯤 올라간 곳에 세워져 있다.일반공개를 앞두고 현재 도로정비등 기반작업이 한창이다. 통일전망대 관광에서 또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민통선안 마을인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명파마을의 토속음식을 즐기는 일이다.1백50여가구가 모여사는 이 마을에는 토속음식점이 즐비하다.그중에서도 통일식당(전화 682­0723)의 막국수와 감자부침,토속주는 그야말로 일미다. 통일전망대 관광은 연중무휴이며 아침9시부터 하오4시40분까지 입장이 가능하다.관광객은 민통선 검문소에서 내려 사전교육을 이수해야 들어갈 수 있다.서울에서는 속초→전망대를 거쳐 고성→진부령과 속초→한계령,속초→강릉→영동고속도로등 3가지 귀로를 택 할수 있다.
  • 재일한인 차별 형식적 해소/「지문날인제」 철폐의 허실

    ◎“외국인 범죄시” 등록증 상시휴대 시행/「공무원채용 국적조항」등 불평등 여전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의 한이 서려있는 지문날인제도.인종차별의 상징인 일본의 지문날인제도가 마침내 폐지된다.그러나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일본사회 곳곳에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다. 일본 참의원은 20일 재일한국인 영주권자의 지문날인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외국인등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일본정부는 개정안통과에 따라 내년 1월부터 한국인 영주권자에 대한 지문날인을 폐지할 예정이다.지문날인 철폐대상자는 재일 한국인 대만인 영주권자등 64만여명. 한국인 영주권자들은 지문날인대신 자신의 사진·서명·가족관계등을 등록하게 된다.일본은 지난해 1월 가이후 전총리가 한국을 방문했을때 2년이내에 지문날인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일본의 외국인 지문날인제도는 지난 55년부터 시작됐다.주요 대상은 한국인들이었다.그러나 한국인들은 대부분 강제연행되어온 사람들이다.많은 한국인들은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의 방패막이로 희생되기도 했다.일본은 재일한국인사회가 형성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인종차별의 대명사인 지문날인제도를 실시해왔다.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을 중심으로한 한국인들은 이같은 지문날인제도의 폐지를 위해 처절한 투쟁을 벌여왔다.지금까지 7백60여명이 지문찍기를 거부,이중 24명이 재판에 회부되며 법정투쟁이 계속돼왔으며 지난 85년부터는 지문제도 철폐를 위한 전국적인 서명운동이 실시되었다. 일본은 한국과 대만인들에 대한 지문제도는 폐지하지만 그밖의 영주권자와 1년이상 거주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지문채취는 계속한다.일본정부내에서는 공평의 원칙에 따라 모든 영주권자의 지문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그러나 치안유지와 범죄방지를 위해 지문제도가 필요하다는 경찰측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부분적인 제도폐지로 결정되었다.일본의 이같은 결정배경에는 외국인들을 「범죄자」로 보는 배타적인 외국관이 내재되어 있다.때문에 한국인들에 대한 지문제도 폐지는 한일관계와 재일동포사회에 있어서 의미있는 큰 진전임에는 틀림없으나 일본인들의 외국인 차별의식 자체가 변했다고는 할 수 없다. 거류민단 중앙본부의 손정인국제국장은 『지문제도 폐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일본은 또하나의 「악법」인 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제도」도 폐지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일본에는 또 공무원채용에 있어서 「국적조항」이라는 외국인 차별제도가 있다. 외국인들은 국적조항 때문에 공무원이 될 수 없다.극히 일부 지방공무원 채용에서 국적조항을 삭제하기도 했으나 국적조항은 일반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쳐 대부분의 기업들이 한국인등 외국인들의 고용을 꺼리고 있다.더욱이 재일동포들은 납세의무등 일본인들과 똑같은 의무는 있어도 선거권·피선거권등 권리는 없다. 재일동포들은 이같이 많은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탄생부터가 비극적이었던 재일동포사회는 수많은 설움과 불이익을 당하며 살아왔다.그러나 지문날인제도가 폐지된다고 해서 그들의 「비극」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일본인들의 의식전환이 없는한 한국인들은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보인다.
  • 북송동포 수탈의 「인질굴레」 벗을까(오늘의 북한)

    ◎일인처 방일허용설 계기,그 가능성과 실상 점검 김일성의 80회 생일행사(4·15)가 끝난 직후인 지난 17일 로이터등 외신들은 일본사회당의 다나베 마코토(전변성)위원장의 말을 인용,『북한이 북송일본인처들의 고향방문을 허용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고 보도.그 실현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그들과 함께 북한으로 들어간 북송재일동포들의 실상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세계 여론은 한때 북한에 의해 「인도주의의 승리」로 선전돼온 재일동포북송사업은 재일동포들을 「배반의 낙원」으로 끌어들여 외화획득의 도구로 삼은 「인질극」에 다름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북송 일본인처의 방일 허용설을 계기로 북한당국의 냉대와 수탈에 시달리고 있는 북송재일동포들의 참상을 알아본다. ◎“외화벌이”… 59∼84년 10만명 유인/대부분 「동요계급」 분류… 감시에 시달려/“편한직장 보장”… 재일가족에 헌금 협박/“참상 알려지면 체제손상” 불허할듯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의 귀국 사업」이라고 불리는 재일동포북송은 지난 59년 「캘커타협정」에 의거,시작된 비극적인 「민족의 대이동」이었다. 캘커타협정이란 일·북한이 인도 캘커타에서 맺은 「재일조선인의 귀국에 관한 협정」. 이 협정에 따라 59년 12월14일 1차로 9백75명의 재일동포들이 일본 니가타(신석)항을 출발,청진항에 도착한 것을 시발로 84년까지 1백87회에 걸쳐 북송된 재일동포는 모두 9만3천3백39명(일본적십자사 조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북송 교포의 숫자는 62년을 고비로 크게 줄어들기 시작,71년부터는 연1백∼4백여명에 지나지않다 84년 30명이 북송선을 탄 이후엔 거의 끊어진 상태인데 이는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고 북송동포들의 비참한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재일동포 북송사업은 북한이 이들 동포들을 통해 그들의 공장기재자와 자금을 확보하려했던 「경제적 목적」과 북한을 「지상의 낙원」으로 선전하려했던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해 손 댄것이라는게 당시 북송실무를 담당했던 조총련 간부들의 증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북한으로 건너간 동포들의 「비참한 실상」이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인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건너간 이후 한번도 일본땅을 밟아보지 못한 일본인처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편지를 일본의 친지들에게 보내오기 시작한 74년쯤부터였다. 특히 지난 84년 북한을 방문,북송동포들의 눈물겨운 생활현장을 목격한 조총련 「조국방문단」의 증언담이 일본의 주간 아사히(조일)에 게재되면서부터 북송에 장래를 맡길수 없다는 불신분위기가 교포사회에 팽배하게 되었다.그후 90년에 들어서는 장명수씨(전조총련니가타현본부 부위원장)등 조총련간부로 북송사업에 앞장섰던 「일꾼」들의 실상고발과 「공화국 귀국자문제대책협의회」결성 등을 통한 일본내 반금일성운동전개로 양상이 뒤바뀌고 있다. 장명수씨는 15년간 자신이 부추겨 「만경봉」호에 태워 북으로 보냈던 많은 동포들이 행방불명된 사실을 알고 직접 북한을 방문,이를 확인한 뒤 「배반당한 낙토」란 책을 펴냈다. 장씨는 대부분의 북송동포들이 「동요계급」으로 분류돼 감시를 받고있으며 특히 학자·의사·조총련 활동가등 엘리트층의 동포들은 끊임없이 스파이 의심을 받은 뒤 연행돼 소식이 끊긴 예가 많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증언했다. 그는 또 북송동포들이 일반주민들로부터는 「귀포」(귀국동포)라는 경멸적인 별명으로 불리며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있는 참상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장씨의 부모형제와 함께 62년 북송선을 탄 조호평이란 동지대 생리학도가 그의 부친 조화평씨에게 보내온 편지 내용의 변화는 큰 기대를 걸고 북한땅에 들어갔던 그가 점차 궁지로 몰려가고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곳은 경공업제품이 부족하다는 점 말고는 모두 만족한 수준입니다.쓸데없는 고생하시면서 흰머리 늘리지 마시고 어서 이곳으로 오세요』(62년7월 조호평).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부탁드립니다.모포 30장,시계 10개,아이들 옷감,못쓰는 헌옷(뭐든 좋습니다.아이들 옷으로 쓰거나 뒤집어서 쓸 수 있으니까요)』(65년 히데코·조씨의 일본인 아내). 『처자식들이 낡은 옷차림에 변변치 않은 음식을 먹어도 나라와 혁명,노동자계급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버티어 왔습니다.지금 나오는 것은 쓴 웃음과 한숨뿐입니다』(67년9월 조호평) 니가타현의 부모가 자식에게서 받은 편지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그뒤 편지가 없었던 것은 조호평씨가 북한에서 하루 아침에 행방불명이 됐기 때문이었다. 재일 조선인 오사카부(대판부)교육회 회장을 지낸 한학수씨는 세 아이들을 먼저 북한에 보내고 62년 조총련의 지시에 따라 아내 이명자씨를 남겨두고 단신 입북했다.한때 중립적 상공인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았다가 「기회주의자」 「타협주의자」로 지탄을 받은 적이 있는 한씨는 입북후 1∼2년간 신의주시에서 교육부장을 맡아 일하다 지방으로 배치된 뒤 82년쯤 형무소로 끌려간 뒤부터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또 B라는 친구의 동생은 귀국한 뒤 항일빨치산 영화를 보고나서 『그 시대상황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장씨는 또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른 북한당국은 「귀국동포」를 인질로 엔화를 수탈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굶주림과 열악한생활환경에 견디다 못한 북송동포들은 자신들이 일본에서 가져간 가재도구등을 식량과 바꾸어 근근히 살아가다 이마저 떨어지면 일본에 있는 친지들에게 식료품과 바꿀 수 있는 물건이나 엔화를 요구하고 있는게 요즘의 실정.북한은 평양의 「낙원상점」처럼 외화만 취급하는 백화점이나 식당을 만들어 놓고 합법적으로 북송동포들의 엔화를 긁어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있는 북송동포의 친지가 북한당국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 줄 경우 그 귀국동포는 좋은 직장에 배치되고 편리한 생활을 보장받는다는 것은 북송동포들과 일본의 그들 친지·가족에게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재일 조선인 상공회 부회장인 이삼규씨는 입북한 자신의 두 아들을 위해 1인당 1억5천만엔씩 3억엔을 할 수없이 기부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최근들어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 의사표명,핵사찰 수용과 관련한 긍정적 자세등 대서방유화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은 사실.그러나 북송 일본인처의 일본방문은 어떤 형태로든 그들 체제에 심각한 대미지를 줄 것이 불을 보듯 뻔해이를 허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경주 보문단지/천년고풍 어우러진 현대휴양촌

    ◎보문호 유람선속 벚꽃구경 장관/외국인관광객 연25만명… 온천개발 한창 명경같이 맑은 호수를 가르며 미끄러져 가는 호화스런 유람선과 요트.백화만발한 호반의 한식골기와집과 웅장한 현대식 고층건물들이 한데 어울려 무릉도원을 그려내고 있다.신라 천년 고도의 풍경을 되살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조감할수 있게 꾸민 경주보문관광단지­.최근 온천수가 개발되면서 내외국인에게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보문골프장의 2번째홀 지하에서 터져나온 이 온천수는 수질검사결과 약알칼리성으로 류머티스 관절염 피부병 위장질환 고혈압 등에 효험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지하 7백m 아래서 솟아오르는 이 온천수는 수온이 35∼40도로 뜨거워서 데울 필요가 없으며 수량도 1일 1천5백t을 퍼올릴 수 있어 하루 4천∼5천명씩 연간 1천만명의 이용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경주관광개발공사는 늦어도 오는 겨울까지 보문단지안의 모든 숙박업소가 이 온천수를 이용할 수 있도록 현재 공급계획을 마련중이다. 총면적 3백21만평규모의 보문단지가 문을 연지도 4월로 만13년.쓸데없이 버려졌던 야산이 이제 「달러박스」로 탈바꿈한 것이다.지난해의 경우 25만4천명의 외국인이 이곳을 다녀갔다.벚꽃제가 열리고 있는 요즘에는 하루 평균 1천명의 이방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5개국어를 동시통역하고 9백여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관광센터 「육부촌」을 비롯,2천명의 동시수용이 가능한 대중온천 사우나시설,3백실 규모의 호화특급호텔,18홀을 갖춘 골프장,코트10면의 테니스장등 관광위락시설은 외국인 관광객의 눈길을 끌고도 남는다. 그중에서도 60여만평의 부지에 40동의 캠프장과 수영장 운동경기장을 갖춘 도투락월드는 비룡열차 바이킹 슈퍼스윙 후룸라이드 스페이스2000등 신기종 놀이시설을 완비,어린이들의 인기가 대단하다. 또 한식기와를 얹은 15동(1천6백11평)의 종합상가에는 인삼차,약과,각종 토산품을 파는 점포들이 들어차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종합상가안에 세워진 22m 높이의 5층 6각형 상징탑도 명물중의 명물로 꼽힌다. 48만평에 이르는 인공호수 보문호에는 호화유람선과 요트,그리고 보트가 탑승객을 기다리며 선착장엔 고급식당과 휴게실을 겸한 호반장이 길손의 발목을 붙잡는다.요즘에는 벚꽃 개나리 목련 매화등이 흐드러지게 피어 호반에서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수상스키를 보노라면 한폭의 명화를 감상하는 느낌이다. 교통편은 서울∼경주,부산∼경주,대구∼경주 등 주요도시에서 고속 또는 직행버스가 수시로 다니며 서울∼경주간에 새마을호열차가 하루 2회 왕복운행중이다.비행기는 포항이나 울산공항을 다 이용할 수 있지만 울산쪽의 교통혼잡이 덜한 편이다. 김기원 경주관광개발공사 사장은 『앞으로 보문단지를 종합휴양관광지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히고 『현재 계획중인 감포관광단지 조성이 실현되면 보문단지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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