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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한국당 「공란 21곳」 속사정과 전망

    ◎미정 많은 TK지역 김대표 의견 반영될듯/서울 노원을 박종선·정형진/광진을 양지청·남상태씨 경합/강원 삼척 3파전 치열/인천 계양­강화갑 이승윤씨 추대 움직임 신한국당이 2일 1차공천자를 발표함에 따라 공천 미확정 지역은 21개가 남았다. 이 가운데는 대구 동을,전남 여수등 공천신청자가 없거나 함량미달인 지역이 5곳정도이며 나머지는 영입인사 배려지역 및 경합이 치열해 보류한 곳이다. 신한국당은 계속해서 이들 지역에 대한 정밀조사를 벌여 오는 6일 전당대회 전까지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남은 지역의 공천자를 확정할 방침이다. 보류지역 공천과 관련,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경합지역에 대해서는 김영삼대통령과 김윤환대표위원이 전당대회전까지 협의해서 발표 할 것』이라고 밝혀 상대적으로 미확정지역이 많은 대구·경북지역에 대해서는 김대표의 의견이 반영될 것임을 시사했다. 서울의 미확정지역은 노원을·광진을·성북갑·서대문을 등 4곳.노원을은 박종선사회개발연구소실장이 공천될 것으로 거론됐으나 최근 정형진KIST부원장이 급부상해 우열을 가리지 못해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광진을은 양지청국토개발연구원 연구위원과 지구촌신문창간 준비위원장인 남상태씨가 경합하고 있으나 양씨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성북갑은 심의석국책자문위원과 강종원당중앙상무위원 둘다 인지도가 낮아 공천이 보류됐다. 서대문을은 안성혁장애인고용촉진 공단이사장을 공천하려했으나 본인이 고사해 보류지역으로 남았다.당은 이들 지역에 대해 정밀조사를 거쳐 결론이 좋지 않으면 영입인사들로 채울 가능성도 높다. 대구의 수성갑은 이민헌전국구의원과 이원형전대구시의원이 경합했으나 당에서는 이 지역이 자민련의 박철언전의원과 겨루는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결정을 보류해 놓고 있다. 동을과 북갑은 대구의 반신한국당 정서를 반영하듯 신청자가 없어 비워 놓고 있다.당에서는 이수담전국구의원,이수성총리의 동생인 이수인전의원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인천 계양·강화갑은 지구당원들이 이승윤전부총리를 추대하려하고 있어 이전부총리가 외유에서 돌아오면 출마를권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평택갑은 김영광의원과 민주계에서 지원하고 있는 원유철21세기 황해포럼대표가 팽팽한 접전을 벌여 판단이 보류됐다. 부천오정은 오성계위원장에 대한 여론조사결과가 높지 않게 나와 보류된 지역이나 별달리 대안이 없으면 오위원장이 공천될 것으로 보인다. 강원의 삼척은 김정남의원과 신현선새마을금고이사장,진경탁국회연구실장이 여론조사 결과 팽팽한 접전을 벌여 판단이 보류됐다. 홍천·횡성도 이응선전의원과 이상용전강원지사의 우열을 가리지 못해 역시 보류지역으로 남았다. 이밖에 전북 군산갑,전남 여수등은 마땅한 후보자가 없어 당은 인물 영입에 고심하고 있다. 다른 지역보다 보류지역이 많은 경북은 사정이 복잡하다.경주갑은 김대표등 민정계의 지원을 받는 황윤기의원과 민주계가 미는 정종복전검사가 맞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영주·영풍은 당에서는 장수덕국제화학연구소회장을 공천하려 했으나 지구당위원장인 금진호의원이 미는 김준협전신탁은행장과의 조직분규가 예상돼 보류지역으로 묶여있다.김천은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박정수의원이 윤성태전의료보험조합이사장을 지원하고 있으나 당에서는 정해창전대통령비서실장을 염두에 두고 공천자를 확정하지 않았다.신한국당은 분위기를 보아가며 정전비서실장의 영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울진·영양·봉화는 지역구가 합친 관계로 영양·봉화지역의 강신조의원과 울진의 김광원위원장이 지역대결을 벌이고 있다.경산·청도는 이영창의원과 박영봉씨,박재욱경북여전학장이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의외의 공천자 누구인가/서정호 4선의 신상식의원 눌러/홍준표·강신성일·이방호씨 낙점 눈길 2일 하오 당무회의에서 발표된 신한국당 1차공천자 2백32명의 명단에는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인물이 곳곳에 끼여 있어 막판 경합과 반전이 치열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여권 핵심부에서 「히든 카드」를 내놓기 위해 고심한 흔적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통일민주당 전문위원출신으로 젊은 당료로는 유일하게 공천을 받은 서정호(39)당연수원교수는 4선의 거물 신상식의원(59)을 누르고 경남 밀양의 공천을 따내 이변으로 기록됐다.지역여론이 워낙 좋았다는 후문이다.김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에 민주계 중진 3선인 김봉조의원(58)대신 그동안 끊임없이 설로만 나돌던 김대통령의 핵심측근 김기춘전검찰총장(56)이 낙점된 대목도 눈에 띈다.김전총장은 김대통령 집권 후반기에 요직에 기용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15대 총선부터 선거구가 통합조정된 경북 문경·예천에 서울지역 재입성을 노렸던 황병태전주중대사(61)가 이승무(문경·52)·번형식(예천·62)두 현역의원을 누르고 공천을 따낸 것도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13대 공천에서 탈락,이변을 낳았던 민정당 대표위원출신 권익현전국구의원(62)이 경남 산청·함양에 입성한 부분도 두드러진다.지역 거물로 지지기반이 탄탄해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다. 서울 송파갑에 홍준표변호사(42)가 낙점받은 것도 종전과 달리 개혁성향이 강조된 수도권지역의 공천기준을 입증하고 있다.13대총선에서 강신영이란 이름으로 서울 용산에 출마했다가 탈락한뒤 신한국당의 불모지 대구 동갑에서 이름까지 바꿔가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명문 경북고 출신 강신성일영화배우협회 상임고문(58)의 공천도 이채롭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해 지역구 공천이 의문시됐던 심재철당부대변인(38)도 과거 투쟁경력과 개혁성향이 평가돼 안양 동안갑에서 공천자 대열에 끼였다. 경남 진해에는 지난 지방선거때 무소속후보로 선전한 해군교육사령관 출신 허대범국방대학원군사연구위원(60)이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삼천포 수협조합장 출신으로 수협중앙회 초대 민선회장에 출마해 여러 경합자들을 물리치고 당선,파란을 일으켰던 이방호씨(51)가 경남 사천지역에 발탁된 대목도 특징이다.당시 투표에서 그가 보여줬던 「파괴력」을 당지도부가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 공천탈락자 반응·움직임/7­8명 “무소속 출마” 반발/김동권의원 등 일부는 자민련 입당 시사 신한국당의 1차공천자가 2일 발표되자 공천에서 탈락한 현역의원들과 지구당위원장들을 중심으로 반발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일부는 여의도 당사에 직접 찾아와 격렬한 항의를 하는가 하면 일부는 아예 무소속 출마 채비를 서두르며 분풀이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탈락의원들은 무소속 출마의사를 굳힌 경우가 많고 일부 경북지역출신 탈락자들은 자민련을 기웃거리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이번 공천에서 탈락된 현역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한 16명을 제외하면 모두 18명이다. ○분풀이 출마 별려 서울 마포을을 희망했던 강신옥의원(전국구)은 『공천심사는 형식적이라 아예 공천신청도 하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탈당기자회견을 갖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서초갑에서 최병렬전서울시장에게 밀린 김찬진위원장측은 『모처에서 탈락 연락을 받았다』면서 『어떤 배려가 있을 암시는 있었으나 그게 제대로 안되면 다른 방안도 강구하겠다』며 무소속출마도 고려중임을 시사했다.중랑을에서 탈락한 이연석의원(전국구)은 무소속출마를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신청 안했다” 부산 서구의 곽정출의원은 『이번 공천은 공당의 공천이 아니라 사당의 공천』이라면서 『보름전부터 무소속출마를 결심하고 표밭을 갈고 있다』고 말했다. ○낙하산식 공천 비난 또 강서에서 탈락한 송두호의원은 『아무나 낙하산식으로 오면 당선되겠느냐』면서 『무소속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다짐했다.정상천(중·동),허재홍의원(남갑)등도 『공천에 구애받지 않고 무소속으로 출마,지역구민들의 심판을 받겠다』고 반발했다.구속중인 허삼수의원은 측근들을 통해 옥중출마의사를 전했다. ○금진호의원 불출마 경기 과천·의왕에서 안상수변호사에게 공천을 빼앗긴 박제상의원은 이날 중앙당사를 방문,탈당을 선언하면서 『지역에 한번도 다녀간 적이 없는 이방인 낙하산 공천자가 겪어야 할 정치적 한계를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경북 의성의 김동권의원은 『지역정서상 공천에 떨어진 것이 그리 억울하지도 않다』면서 『조만간 자민련에 입당해 출마하겠다』고 주장했다.이틀전 지구당원들을 동원,한차례 항의시위를 벌였던 번형식의원(문경·예천)은 『성격상 자민련이 맞지 않지만 며칠전 자민련 핵심 당직자를 만났다』고 자민련 입당을 시사했다.그러나 노태우전대통령의 동서인 금진호의원(영주)은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남의 권해옥의원(거창·합천)은 『지역에서 분개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그러나 아직 출마여부에 대해서는 결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신상식의원(밀양)도 측근들이 출마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배명국의원(진해)은 『당을 위해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는데 이런식으로 공천할 수 있느냐』면서 『앞으로 지구당원들과 시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반발했다. 강원의 유종수의원(춘천을)은 『나눠먹기식 공천이 있을 수 있느냐』면서 무소속출마를 시사했다.
  • 6·25와 단동시(압록강 2천리:22)

    ◎폭격에 끊긴 신의주행 철교는 관광명소로/전쟁발발 2개월 뒤부터 미군기 공습피해/중국지원군으로 참전… 눌러앉은 한인 많아/저목장에 화재잦아 일명 “화도”… 한국전으로 “이름값” 압록강 우안에 자리한 요령성 단동시는 중국에서 제일 큰 인구 70만의 변경도시다.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장장 7백90㎞를 흘러 내려온 압록강을 바라보면서 금강산을 등지고 있다.단동시는 이름 그대로 「붉은 동방」이라는 뜻을 지녔거니와 중국 변경의 사회주의 혁명화를 상징하는 도시이기도 하다.당나라 때 안동도호부관할지역이었다는 점과 연관시켜 1965년까지는 안동으로 불렀다. 단동에서 압록강 건너를 바라보면 북한땅 신의주다.「모진 사람 곁에 있다 벼락 맞는다」는 속담처럼 신의주를 가까이 한 탓에 한국전쟁 당시 피해도 꽤 입었다. 예부터 저목장에 불이 자주 나 「불의 도시」(화도)라고도 했는데 특히 한국전쟁 때 그 이름이 적중한 셈이다.그리고 19 50년이 저물면서 한국전쟁에 참가한 중국의 입장에서는 최전방도시여서 「영웅도시」라는 칭호도 가지고있다. ○30년전 지명은 안동 단동은 어떻든 간에 한국전쟁에 피해를 입어 그 전쟁의 흔적이 아직도 멀리 보였다.당시의 안동∼신의주를 잇는 철교가 신의주쪽으로 절반은 교각만 앙상하게 남게 된 것도 한국전쟁 때문이다.단동시에서 펴낸 「단동시정」을 보면 한국전쟁에서 입은 피해기록이 나온다.「1950년 9월22일 미군 비행기 1백여대가 신의주를 폭격,압록강대교를 끊었으나 안동철도분국에서 그날 밤 10시에 복구했다.그러나 1951년 2월 폭격에 너무 심한 손상을 입어 운수가 중단되었다」는 내용이다. 한국전쟁 때 미군기의 단동시 첫 폭격은 전쟁발발 2개월 뒤인 1950년 8월27일에 있었던 것으로 「단동시정」은 기록했다.이날 하오 4시40분 B­52폭격기 두대가 시내 랑두비행장 상공에 날아와 약 2분여 동안 기총소사 하는 것으로 시작된 첫 공습의 피해는 노동자 3명 사망과 19명 부상,자동차 2대 파손으로 집계되었다.또 같은해 9월22일 두번째 공습에는 B­29 중폭경기 한대가 떠서 12개의 폭탄을 떨어뜨렸다.이 공습으로 2명이 죽고 28채의 집이 무너졌으며 폭음으로 파손된 집도 3백여채를 헤아렸다는 것이다. 오늘 날의 단동은 평화도시다.북한의 국경도시 신의주와는 사뭇 다른 도시인 것이다.그래서 전쟁으로 끊어지고 기관포탄이 무수히 박힌 단동쪽 압록강철교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광명소가 되었다.특히 몰골사납게 교각만 앙상한 신의주쪽의 전흔은 전쟁이 남긴 교훈을 보여준다.10원씩을 주고 절반쯤 건너간 철교 위에서 한국전쟁 당시 중국 지원군 번역관으로 일했다는 김인형(69)선생을 우연히 만났다. ○요양원서 만나 화촉 그는 경북 의성 태생이었는데 전쟁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전쟁이 나면서 인차 남한 전체를 점령하는 줄 알았지.그런데 시월 잡아서 부터 조선 피란민과 군인들이 중국으로 물밀듯 들어오는기라.그해 5월 성간부학교에 들어가 다섯 달을 공부한 나는 지원군 번역관으로 일했지.통화에서 겨우내내 조선인민군과 피란민속에 묻혀 살다 보이 눈코 뜰새가 없데. 중국 변경이 전쟁에 시달리는 판이었으니 강 건너 북한땅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장백·임강·집안·관전·안동(단동)지역 맞은편 북한땅 혜산·중강·만포·삭주는 미군기폭격에 불바다를 면할 날이 없었다.임진왜란 때 의주에 통곡동이라는 동네가 하나 생겼다고 하지만 한국전쟁에서는 압록강유역 북한땅 모두가 통곡동이 되었다. 단동에 살고 있는 윤옥순(65)씨는 전쟁이 나던 해 겨울 안동의 중국지원군병원에 근무했다.함북 무순 태생으로 16살부터 동북해방군에 참전한바도 있는 그녀는 당시의 참상을 몸서리치듯 털어놓았다. 『부상병들이 들것에 실려 매일 쏟아져 들어왔지비.팔다리가 끊어지고 코가 떨어진 사람,사지가 다 날라가 덩그러니 몸뚱이만 남은 부상자들도 있었구마.몸뚱아리나마 남은 부상자들은 애기 눕히듯 보자기에 싸서 한 침대에 넷씩을 눕히기도 했슴매.새파란 나이에 죽기가 원통해 발악하는 걸 보면 불쌍해서 같이 울기도 했지비.공습경보가 울리면 부상병을 업고 방공호로 뛰어가는 일을 얼마나 했는지….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원망스럽더구마』 안동은 한국전쟁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얼떨결에 북으로 올라온 남쪽의 사람들이안동에 들어왔다가 주저앉기도 했다.북으로 가기도 싫고,그렇다고 남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이방인들이었다.단동에 머무는 동안 그런 처지의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경북 영천군 고경면이 고향인 최정순(64)씨도 그런 사람이다.지원군병원 간호원이었던 그녀는 한국군과 미군포로 부상자에게 까지 남다른 애정을 쏟은 것 같았다. 『인민군과 중국지원군 뿐 아니라 국군과 미군 부상병까지 들이닥쳤지예.인민군 부상자들은 포로들을 보면 때려 죽인다고 날뛰어 병동을 구분했십니더.미군에게는 빵과 같은 음식을 주었는데,처음에는 독이 들었는 가봐 안먹데예.그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가 먹어야 그제사 입을 댔십니더.어떤 한국군은 우리 병원에서 다리 절단수술을 했는데 수혈할데가 없다 아닙니꺼.그래서 내가 두 번이나 피를 주고 대소변도 받아내고….업고 다니며 영화도 구경시키곤 했십니더.상처가 아물어 포로수용소로 가는 날 그렇게 울더니…』 단동시 오룡배 영예군인 요양소에서 만년을 보내고 있는 박명심(66)씨도 남한 출신이다.전쟁전까지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살았다.전쟁이 일어나고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군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2학년 때 6·25를 맞았어요.전쟁전에 이미 지하혁명조직에 가담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지요.인민군에 있다가 후에 중국지원군 20병퇀 67군 정치부로 전속되어 전선으로 갔어요.선전방송 임무를 맡고 일하는데 참호에 포탄이 날아들어 그만 허리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었지 뭡니까.53년 7월21일 안동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지금까지 요양원에 살고 있습니다』 ○44년째 이산의 아픔 박씨의 남편도 두 다리를 잃은 불구자다.남편 위덕렴(65)은 한족으로 중국지원군 116사 346퇀 통신병으로 전쟁에 참가해서 큰 부상을 입었다.그가 1954년 안동요양원에 들어와서 서로 만난 이들은 이듬해 10월 결혼했다.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다.박씨는 지난 94년 서울에 편지를 해서 조카들이 다녀갔다고 무척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한국이 놀랍게 발전했다는 사실을 이야기로 들었다면서 날보고 서울에 가보았느냐고 물었다. 단동에서 만난 또 다른 여인 전명옥(67)씨는44년째 가족소식을 모르는 이산의 아픔을 갖고 있었다.당시 북한땅이었던 강원도 화천 태생인 그녀는 집 근처 임시 인민군병원에서 간호일을 돕다가 후퇴명령이 급히 내려 2백m 밖에 안되는 집에도 못 들르고 떠나왔다.이제나 저제나 하다가 화천이 남한땅이 되고,가족소식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것이다.
  • 서울신문 탐사팀 「철새낙원」 철원평야 가다

    ◎“두루미 군무는 한폭의 동양화”/창공엔 기러기떼·물위엔 청둥오리 “유유자적”/이방인 침입에 놀란 귀염둥이 쑥새 갈대숲으로 강원도 철원군 최북단의 사찰인 도피안사에서 민통선으로 접어들면서 펼쳐지는 철원평야는 여느 농가와 다름없는 시골풍경이었다.가을걷이를 끝낸 들판 곳곳에 흩어진 잔설이 겨울 정취를 더했다.평온함만이 가득 넘쳐보였다.북으로 불과 몇분만 더 가면 남북이 총구를 맞댄 철책선이 가로 막혀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뼈대만 남은 노동당사와 일제때 지어진 농산물 검역소만이 6·25당시 화염에 휩싸였던 이들 지역의 아픈 과거를 새삼 떠올리게 했을 뿐이었다. ○폐허곳곳에 「6·25」 상흔 북쪽으로 뻗은 비포장도로를 따라 차량으로 2분여 들어갔을까.도로 양쪽의 들판에는 겨울철새로는 이 지역의 터줏대감인 큰기러기가 「이방인」의 방문을 반겼다.차량의 소음을 듣자 수십∼수백마리씩 떼지어 앉았다 날았다하며 맴돌았다. 이따금 「끄악」 「끄악」하는 합창이 정적을 깼다.출입영농을 하는 농부의 손길이끊긴지 오래인 겨울 들녘은 철새들의 휴식처였다.충분한 낟알 곡식과 마른 풀등은 그들만의 차지였다. 기자가 차에서 내려 다가가자 한창 먹이를 찾느라 논바닥에 고개를 박고 있던 한떼의 기러기들이 고개를 곧추세웠다.새들을 놀래주고 싶은 짓궂은 마음에 한발 한발 더 다가섰다.불과 20여m로 거리가 좁혀졌다.순간 무리중 대장인듯한 한마리가 날개짓으로 신호를 보냈고 이어 나머지 새들이 지면을 박차고 비상했다. 올해는 예년보다 일찌감치 10월 초순부터 시베리아등지에서 2만여마리의 기러기가 이곳으로 날아들어 남방한계선 부근의 동송 저수지등에 자리를 잡았다.수천마리의 새떼들이 한꺼번에 무리를 지을땐 하늘은 일순간 먹구름 자락이 드리운듯 장관을 이뤘다. 기러기들은 저수지에서 농부들의 추수가 끝나기를 한달여 기다리다 12월이 접어들면서 들판 곳곳을 분할 점령했다. 남방한계선을 가리키는 철책이 멀리 바라보이는 쪽으로 1㎞쯤 더 들어갔다.철새도래지로 지정된 샘통지역의 심장부로 접어들었다.길 왼편 들판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루미와 재두루미 수십마리가 불과 20∼30m의 거리를 두고 으젓하게 서있었다. 『이놈들 봐라,나 혼자 왔을 때는 그렇게 거리를 안주더니…』 취재팀과 함께 이곳을 찾은 동서조류연구소 이정우(54·조류연구가)소장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두루미들은 다른 새들 보다 특히 예민해 1백m전방의 사람 움직임에도 여지없이 꽁무니를 빼고 날아가는 습성을 가졌다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길가 양편에 도열하듯 그런 두루미들이 길양편 들판에 도열하듯 서 있는 모습에 30년이상 조류연구를 하고 있는 이소장도 자못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그는 『아예 사파리로군』하며 혀를 내둘렀다. 사진기자가 몰래 모습을 담기위해 카메라를 들이대자 두루미는 마침내 틈입자의 인기척을 발견한듯 성큼성큼 몇걸음 내딛다 눈이 부시도록 흰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았다. 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마치 체조선수의 유연한 도약처럼 사뿐했다. 사진기자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난 양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취재진을 태운 차량은 동쪽으로 난 좁은 농로를 따라 「아이스크림고지」로 방향을 틀었다. 평원 한 가운데에 야트막하게 서 있는 이 고지는 6·25당시 남북의 포격으로 정상부분이 마치 아이스크림이 녹아 내린것 처럼 남아있다.주위를 선회하는 새떼와 겹친 고지 참호의 모습은 을씨년스런 난공불락의 요새를 떠올리게 했다. 고지로 향하는 길가의 갈대수풀은 이 지역텃새로 귀엽기가 으뜸인 쑥새들의 서식처.참새와 크기가 비슷한 이 새들은 수풀더미에 몸을 숨기고 풀씨를 따먹다가 차량이 지날때마다 한꺼번에 날아 도망가는 통에 취재진을 놀라게 하곤 했다.길옆 작은 연못에는 녹색의 비단결같은 고운 빛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한쌍의 청둥오리가 유유히 물위를 노니는 모습이 보였다.이밖에 철원평야의 식구인 찌르래기,황조롱도 취재진을 반기듯 주위를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남가식·북사숙」 생활 이소장은 『여름이면 이곳에 검은댕기 해오라기,후투티,꼬마물떼새,청호반새 등 수십종에 달하는 철새들로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 고지를 둘러본 뒤 취재진은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서쪽 지평선에 해가 걸릴 즈음 남방한계선 철책 턱밑에 위치한 드넓은 동송저수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뚝방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자 웅장한 철원평야의 모습이 시야를 꽉 채웠고 때마침 4마리의 두루미 가족이 노을을 받으며 북녘하늘로 비행하고 있었다. 『두루미는 낮에는 이곳에서 생활을 하다가 밤에는 북한쪽 철원평야에서 지내죠』 이소장의 설명이었다. 「남가식 북가숙」하는 이들 철새들이 남북분단의 비원을 풀어줄 전령처럼 가슴에 와닿았다. ◎미리가 본 본사 탐사 예정 지역/강화 말도 유도일대­물새 10종·해오라기 번식지로 유명/파주군 대성동­겨울철새·독수리떼 등 관찰지구로/고성군 명파리­칠성장어 유일한 서식지로 알려져 서울신문이 올해 「비무장지대 인접지역의 생태계 항구보존 캠페인」을 펼치며 탐사 예정인 지역은 원시림등이 보존된 강원지역에서 서해안의 도서까지 인공의 손길이 닿지 않은 광범위한 지역을 망라할 계획이다. 각종 야생동식물의 서실실태와 생태계변화현황 등과 관련한 정보를 독자들과 나누기위해 한햇동안 본사취재팀이 찾을 주요지역 몇곳을 미리 소개한다. ▲경기 강화군 말도·유도·소송도·대송도 등 지역=이 지역은 민통선의 서쪽 끝지점.말도에선 도요새,노랑부리 백로(여름철새) 등 물새 10여종을 볼 수 있으며 해상 비무장지대인 유도는 해오라기(여름철새)의 최대 번식지로 알려져 있다.소송도와 대송도는 천연기념물인 검은머리물떼새(텃새)와 이곳에서 집단서식하는 흰뺨검둥오리(텃새)의 장관을 관찰할 수 있다. ▲임진강 하류=많은 종류의 여름·겨울철새들이 계절별 이동때 들르는 철새경유지로 잘 알려진 곳.이 곳을 지나는 겨울철새로는 개리,기러기,두루미,재두루미 등이 있으며 여름철새로는 후투티,울새,꼬까참새 등 작은 조류가 주를 이룬다. ▲경기도 파주군 대성리일대=두루미,재두루미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겨울철새 관찰지역.특히 이곳에선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독수리떼를 관찰할 수 있다. ▲자유의 다리 건너 왼편 임진강 넘어 펼쳐진 갈대숲 지역=노루,족제비,너구리 등 포유류가 다수 서식하고 있으며 쇠물딱,개개비등 갈대 습지조류들이 살고 있다. ▲사미천 일대(의정부 지나서 적성부근)=노루,고라니 등 포유류 관찰지역. ▲강원도 고성군 명파리일대=동해안에 위치한 해변지역으로 희귀 물고기 관찰지역.칠성장어의 유일한 서식지로 알려져 있으며 연어의 모습도 볼 수 있다.또 조류로는 세가락갈매기,흰갈매기 등이 있으며 인근 화진포에선 혹고니도 관찰할 수 있다.
  • 파리 파업으로 행사 잇달아 취소/불 「한국문학 포럼」 이모저모

    ◎베트남 감독 이문열씨 작품 영화화 제의 ○…우리 작가들이 참여해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펼치고 있는 「레 벨 제트랑제」(아름다운 이방인들)행사가 중반을 넘어섰다. 지난주부터 파리를 덮친 파업태풍은 이 행사 최대의 악재로 작용,대중교통수단·전기·통신·가스·우편을 비롯해 파리의 공공부문 전체가 마비된 가운데 예정된 행사가 잇따라 취소돼 우리측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이날코」(INALCO·국립동양어대학)에서 계획됐던 행사가 이 학교 학생들의 동맹휴업으로 돌연 취소된데 이어 1일 지중해 연안도시 몽펠리에에서 갖기로 했던 작가와의 만남도 무산. 이는 이날 하오 1시에 출발하려던 파리발 비행기편이 공항관제탑 파업으로 예정보다 늦게 뜨는 바람에 신경림·이균영씨 등 참가작가들이 행사시간인 하오 6시30분에 댈 수 없었기 때문. 이에 따라 행사장인 시립도서관 앞에서 기다리던 수십명이 발길을 돌렸고 작가들은 행사를 주관한 이곳 문인협회 사람들과 예정보다 두어시간 늦은 저녁을 하며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프랑스 TV 독서프로그램 진행자로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미셀 폴락은 우리 문학의 특성을 『한국인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밀착된 시각』이라고 정의. 지난 30일 퐁피두센터 행사에 사회자로 나선 그는 한·중·일 등 아시아 3국 문학을 비교하는 가운데 『중국문학은 작가 스스로의 검열,당국의 삭제등으로 현실을 가리고 있고 일본문학은 지나치게 개인의 내면문제에 집착하는데 반해 한국문학의 사실성은 힘과 자유를 느끼게 한다』고 평가. ○…작가 이문열씨가 칸느 영화제 대상을 받은 베트남의 티엔 반 룽 감독으로부터 자신의 작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영화화 제의를 받아 화제. 이씨는 『티엔 반 룽 감독이 나의 작품을 인상깊게 읽고 있다며 스스로의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제의해 왔다』고 소개. 이씨의 작품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비롯,「시인」「금시조」등 7편이 이곳 악트 쉬드 출판사에서 불역돼 나와있다.
  • 한국 문학 알리기와 번역/손정숙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지하철 버스를 비롯한 대중교통수단 파업이 시민들의 발을 꽁꽁 묶어 놓고 있는 프랑스 파리.이곳 퐁피두 센터에서는 지난달 30일 하오 「이방인」소설가 세명이 파리지앵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작가 오정희,이문열,최인호씨가 「레 벨제트랑제(아름다운 이방인.이곳 정부의 외국인 작가 소개 프로그램이름)」의 하나인 「작가와의 만남」에 초빙되어 이곳을 찾은것. 문화를 사랑하는 파리지앵들은 진지한 눈빛으로 작가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고 1백석 남짓한 조촐한 행사장엔 때때로 웃음이 터졌다.같은날 이날코(INALCO·국립동양어대학)에서 먼저 열리기로 했던 작가와의 만남이 파업으로 취소된 터라 시운을 탓하고 있던 우리측은 길게 한숨을 돌렸다.호의섞인 문답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한 현지인이 손을 들었다.이곳에서 번역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읽었으며 한국문학에 관심깊다는 그가 제기한 것은 번역문제.『한국문학 불역이 특정인에게만 지나치게 치중돼 있다,번역도 독창적인 해석행위인데 한사람에게 너무 기대면 균형잡힌 소개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였다. 프랑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동양어를 집중 교육하는 앞서의 이날코를 비롯,파리 7대학,보르도,르아브르,리옹대학등 몇군데가 있다.하지만 한국어 하나만으론 밥벌이가 되지 않아 학생들은 보통 두세가지를 복수전공한다.모랑주,비셰,기유모트등 이곳의 권위있는 한국어 학자들은 대개 고전이나 어학쪽에 편중해 있어 미묘한 뉘앙스를 전하는 현대문학 번역이 쉽질않다. 한국문학을 다른 문화권에 소개하는 번역 작업에는 한국인이 나서기 보다는 그 문화를 잘 아는 현지인이 훨씬 적격이다. 좋은 문학은 곧 좋은 문체로 된 문학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대통령조차 시를 왼다는 프랑스에 소개될때 문학의 문체를 결정하는 것은 원작이 아니라 번역이다. 그러나 우리 말을 외국어로 옮겨 전달해줄 번역자 양성은 제쳐둔채 노벨문학상을 말해온 게 우리의 현실이다.모처럼 소중한 한국문학행사가 펼쳐진 타국땅에서 제대로 된 번역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왔다.
  • 해외여행 태국 치앙마이/코끼리타고 「원시 정글탐사」 짜릿

    ◎메이핑강 뗏목에 몸 싣고 자연 풍관 즐겨/북부 고산지대… 미인 많은 곳으로 소문나/10월∼1월 관광적기… 하루 코스 2만6천원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는 방콕과 달리 소란스럽지 않고 상쾌하다.특히 10월부터 1월까지가 관광하기에 알맞은 날씨다.해발 4백20m의 고산지대라 공기가 맑다. 치앙마이는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새로운 도시」라는 뜻의 치앙마이는 13세기 말 멩라이 대왕이 도읍을 정해 태국 북부지방의 중심도시 역할을 해왔지만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현대식 건물 공사가 아직도 한창이다. 그러나 태국에서도 으뜸가는 미인이 많이 나기로 이름난 곳 답게 수줍음과 상냥한 태도가 이방인을 즐겁게 한다. 방콕의 로즈가든에서 민속쇼와 함께 코끼리쇼를 즐길수 있다면 치앙마이는 코끼리를 직접 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치앙마이의 여행사는 미니버스로 북쪽으로 1시간(60㎞)거리에 있는 치앙다오의 한 코끼리 훈련장으로 안내한다.이곳에서 태국인의 생활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코끼리를 능수능란하게 부리는 모습을 구경한 뒤 코끼리 등에 올려놓은 나무의자에 몸을 싣고 정글여행을 떠난다.사람의 보통 걸음 보다 느린 속도로 좁은 산길을 또는 개울물을 거슬러 깊은 산속을 돌아 다니다 보면 옛날 사냥길에 오른 태국 왕족이나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다는 한니발 장군의 행렬을 연상케 한다.나무의자에 등이 결리는 불편을 빼면 코끼리 걸음에 따라 흔들리며 주는 자극이 짜릿하다. 1시간여의 코끼리여행이 끝나면 다시 산길을 20분 정도 걸어 「리수」족 부락을 찾아보게 된다.부족사람들의 생김새만 빼면 마을 입구에서 노니는 닭들과 초가지붕,우리없이 키우는 돼지와 개가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자는 모습이 한국의 어느 산골 마을과 다를게 없을 정도로 눈에 익다. 이어 미얀마에서 발원하여 방콕까지 흐른다는 메이핑강을 따라 뗏목여행도 즐길 수 있다.어른 종아리 굵기의 대나무 15개를 엮어 만든 길이 18m의 뗏목은 앞뒤에서 사공 2명이 삿대를 저어 약 5㎞(40분)를 흘러내려온다.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강 양쪽에 펼쳐지는 풍광을 한가롭게 즐길수 있는 여유를갖게 된다. 도착지점에서 기다린 여행사버스가 호텔까지 데려다주는 길에 화원과 나비농장에 들러 구경과 함께 수제품 구입을 권유한다. 치앙마이에 들를 기회가 있다면 직접 현지 여행사를 통해 자기 시간에 알맞는 코스를 선택,국적이 서로 다른 외국인 대여섯명을 벗삼아 하루를 즐기는 것도 재미있다.하루코스 여행요금은 8백50바트(2만6천원).
  • 「아마조네스의 꿈」 주인공 에테역 김수기씨

    ◎“「페미니즘 연극」 자리 잡았죠”/현대사회 찾은 원시여인의 자아회복 그려 『여성을 주요 관객층으로 한 페미니즘 연극은 이제 엄연한 연극장르의 하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동안 페미니즘 연극은 남녀간의 적대적 대결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도식화된 스토리에 집착하는 등 지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온 인상이 짙어요.그런만큼 페미니즘 혹은 여성주의 자체를 제3의 시각에서 엄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은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자기만의 방」「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이어 세번째로 선보이는 페미니즘 극「아마조네스의 꿈」(14일부터 대학로 인간소극장서 공연)의 주인공 에테 역을 맡은 김수기씨(32·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여성에 대한 억압과 편견이 알게 모르게 구조화돼 어느 새 무신경해져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고 진단한 그는 『이같은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의 모순을 낮설게 볼 수 있는 이방인의 시선』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미국 작가 바바라 워커의 원작소설을 토대로 한 「아마조네스…」는 시공의 블랙홀에 빠져 1995년 서울 근교에 불시착한 원시모계사회의 수나안족 여인(에테)이 생소한 지구문명과 만나면서 진정한 자아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남성중심 사회에 도전하는 여성인류학자,오로지 가족안에서만 자기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전업주부,신분상승을 위해 자신의 성까지 상품화하는 방송리포터 등 다양한 극중인물의 성격대비를 통해 우리 사회가 여성에 가하는 억압과 모순을 형상화한다. 『그동안 여성들은 왜곡된 성문화 속에서 스스로에 내재된 건강한 힘을 거세당한채 움츠러들어만 왔습니다.극중 에테로 상징되는 여성의 원시적인 에너지,그 분노할 수 있는 용기를 자각할때 우리 여성들에겐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연극이론 석사 및 MFA(연기학 예술전문사)과정을 마친뒤 인도로 건너가 「칼라리파이야투」란 고유무술을 연마한 그는 연기이론과 실제를 함께 아우르고 있는 드문 연극인.지난 91년 「한여름밤의 꿈」 미국공연에선 극중극속의 티스비 역을 열연,영화「햄릿」의 멜 깁슨 보다 탁월한 「죽음연기」를 보여줬다는 현지언론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 재일동포의 명암(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

    ◎반한반일… 「뿌리」와 「생활」사이 고민/이지메식 차별 극복 각 분야서 두각 광복 50년.한국과 일본은 5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과거문제를 안은 채 「가깝고도 먼」관계를 유지하고 있다.현재의 한·일관계는 과연 어떤 상황이며 바람직한 미래는 어떠해야 할까.광복50주년,광복의 달을 맞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양국관계를 총점검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해보는 「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을 연재한다. 재일동포 신인하씨는 도쿄에 있는 어느 신문사 운동부(체육부)에서 일하고 있다.그녀는 지난 91년 요코하마시립대학을 졸업한후 신문사에 들어갔다.그녀는 다른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장을 누비며 기사를 쓰고 있다. 그러나 신씨는 정식 기자가 아니다.그것은 그녀가 일본인이 아니라 재일동포라는 이유 때문이다.그녀는 단지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정식 사원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임시채용에 머물수 밖에 없는 신씨는 보험·후생연금·보너스 등의 혜택을 받지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신씨와 같이 민족차별을 받고 있는 재일동포는 그 탄생의 기원부터가 비극적이다.일제 식민통치의 불행한 부산물인 그들의 원초적 비극은 일본 특유의 「이지메」라는 단어속에 증폭되었으며 광복 50년이 된 오늘도 끝나지 않고 있다. 약자를 괴롭힌다는 의미의 이지메 현상은 재일동포들에게는 민족차별로 나타났다.재일동포들은 여러가지 제도적·인습적 차별과 압박·멸시속에 민족차별의 한을 품고 고난의 어두운 세월을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재일동포들은 그러한 차별로 삶의 터전인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그들은 이때문에 자유업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많은 재일동포들이 야키니쿠(불고기·갈비)음식점이나 소매상을 하고 「빠찡꼬」업에 진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빠찡꼬는 일본거리에서 가장 화려한 간판으로 빛나고 있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재일동포들의 어두운 민족차별의 역사가 배어 있다. 재일동포들은 민족차별을 없애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해왔다.민족차별 문제는 2세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60년대부터 일본사회의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차별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재일동포 1세와는 달리 2세들은 지문제도등 민족차별에 대한 강한 저항을 나타냈다. 지문날인철폐 운동은 대표적인 민족차별 반대운동이었다.오랜 투쟁의 결과 재일동포들의 지문날인제도는 1993년 1월 외국인등록법이 개정되며 없어졌다.그것은 대단한 변화였다.가난과 심한 차별속에 살았던 과거와 비교해 볼때 제도적·법적 지위가 많이 개선됐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은 사회 각 부문에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재일동포들은 삶의 기본이 되는 취직이 어려우며 취직이 되더라도 컴퓨터등 전문기술을 갖고 있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정식사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정식사원이 되더라도 진급에 한계가 있다.그들은 진급을 미끼로 귀화를 요구받기도 한다.재일동포들은 또 세금을 내면서도 지방자치 차원에서 조차 참정권이 없다. 일본사회의 많은 차별로 2세,3세로 내려갈수록 일본이름을 사용하고 일본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그들에게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민족의식 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활이 더욱 절박한 과제이다.그러면서도 그들은 민족차별과 장래에 대한 불안등으로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러한 갈등을 감수하기 보다는 차라리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거나 일본인과의 결혼 등으로 귀화하는 재일동포도 늘어나고 있다.최근에는 매년 7천∼8천명이 귀화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총귀화자수는 거의 20만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고난과 차별의 어둡고 긴 터널을 자신의 실력으로 빠져나와 일본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않다.그러한 젊은 세대중 한사람이 유미리(27·여)씨다.재일동포 2세인 그녀는 일본의 대표적인 희곡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연극을 하다가 17세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지난 93년 최연소로 일본 희곡계 최고의 기시다상을 받았다. 유씨는 지금도 정열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녀의 작품 「풀 하우스」는 일본 문학계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 예비심사를 통과하기도 했다.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제1백13회(1995년)아쿠타가와상 예비심사를 통과한 6개 작품중 그녀의 작품이 선정되자 그녀의 문학적 위치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그밖에도 김경득 변호사,여배우 김구미자,오페라가수 전월선,화가 최광자,이진희·강재언 교수등 적지않은 사람들이 일본 속에서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다.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며 사무직종사자는 전체에 26.9%(92년말 현재 일본법무성 통계)나 된다. 보통의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도 과거보다는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도쿄 우에노에서 제일물산이라는 한국식품점을 경영하는 강은순씨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후에는 일본인들의 멸시도 많이 줄었다』고 말한다.그녀는 『무엇보다도 한국의 국력이 강해지고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본인들이 재일동포를 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국력신장과 일본사회의 국제화로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유형·무형의 각종 민족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일본의 민족차별과 조국으로부터도 따뜻한 환영을 받지못하는 재일동포들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반쪽 한국인,반쪽 일본인」의 어정쩡한 지위가 되고 있다.더욱이 뿌리의식이 강한 1세가 68만여명의 동포중 5∼7% 정도 밖에 남지않아 멀지않아 1세가 없는 재일동포사회로 바뀔 것이다. 그러한 재일동포들은 세월의 흐름과 언어의 단절등으로 조국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이 있었던 1세와는 달리 2세이후 세대들은 일본에서의 정착을 당연시하고 있다.그렇다고 배타적인 일본사회속에 완전 동화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탄생부터가 비극적이었던 그들은 귀화를 하든가 아니면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 피고인석의 재벌인사/박은호 사회부 기자(현장)

    ◎재판부 뇌물공여 추궁에 연신 땀만… 28일 하오2시 서울지법 311호 중법정.수의차림에 다소 초췌한 이형구 전노동부장관과 재판부에 의해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넘겨진 10개 회사 회장 및 대표도 피고인석에 함께 앉아 있었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전봉진 부장판사)는 이 때문인지 처음부터 재판을 의미심장하게 진행해나갔다. 이 재판이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예상을 입증하듯 변호인의 신문도중 갑자기 재판장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법정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1백여명의 방청객도 깜짝 놀랐다. 『변호인의 질문취지는 무슨 이유로 돈을 주었느냐는 겁니다.그걸 이해 못하겠어요?』 『……』 재판장인 전부장판사의 추궁은 계속 이어졌다. 『피고인은 돈을 건네준 행위가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습니까.마치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저… 법에 저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변호인의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자 답변을 거부한 홍성산업사장 박성철 피고인이 불만스러운 몸짓으로 「무언의 항변」을 하다 끝내재판장의 엄한 추궁을 듣고 말았다.그는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훔쳐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범법사실」을 시인했다. 이처럼 재판장이 엄하게 꾸짖자 국내 재계의 내로라하는 인사 10명도 피고인석에서 한결같이 고개를 떨구었다.당초 재판이 시작되기 전 팔짱을 끼고 방청석에 앉아 서로 담소를 나누며 웃음조차 흘리던 여유로운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공판에서는 검찰의 구형을 두고 담당검사와 법원 사이에 신경전도 빚어졌다. 이 사건 주임검사인 김성호 대검중수2과장은 당초 약식기소한대로 벌금 1백만원을 구형했다. 재판장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검찰의 약식기소를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고 정식재판에 회부했는데 달리 의견을 내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었지만 답변은 『구형을 그대로 유지하겠습니다』였다. 이날 공판에서는 재벌과 검찰·변호인이 뜻을 같이 한 반면 재판부는 왠지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어린왕자」 75종으로 최다/교보문고,중복출판실태 조사

    ◎인기편승해 마구출판… 독자들 혼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서점에 75가지나 꽂혀 있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48종,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44종이 나와 있어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하나의 책을 여러 출판사에서 내는 중복출판의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밝혀졌다.교보문고가 최근 매장에 진열한 국내서적 18만여종을 조사,발표한 「중복출판 실태」에 따르면 중복도서는 모두 6백종이나 됐다. 이 가운데 문학작품이 83%로 대부분이었고,이어 인문과학 6.6%,기술과학 5.3%,자연과학 2% 순이었다.경제·경영서나 정치·사회서적,종교 및 예술도서는 각각 10종에 못미쳤다. 가지 수로는 3∼5종이 나온 경우가 37.3%로 가장 많았고 2종이 28.1%,6∼10종이 18%,11∼20종이 11.3%였다.20종 넘게 중복출판된 도서도 5.1%(31가지)에 이르렀다. 도서별로는 「어린 왕자」­「데미안」­「좁은 문」이 1∼3위를 차지한 데 이어 「제인에어」 「이솝이야기」 「갈매기의 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죄와 벌」 「지와 사랑」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방인」 등이 각각 30종이상 출판됐다. 중복도서 중에서는 출판사들이 멋대로 제목을 붙여 독자들을 혼란케 한 경우도 11건이나 됐다.가령 무라야마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상실의 시대」로 둔갑했으며 시드니 셀던의 「유산 상속인」은 「추적」이란 제목으로 3군데에서 내기도 했다. 셀던의 추리소설 가운데 「신들의 풍차」와 「천사의 분노」들도 다른 이름으로 2∼3군데에서 나와 독자들이 주의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이처럼 중복출판이 성행하는 이유는 출판사들이 책 인기에 편승해 나눠먹기 식으로 끼어들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 교보문고는 중복출판이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며 ▲재고도서의 발생으로 출판 경영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분석하고 이를 막기 위해 중복출판을 일삼는 출판사 명단을 공개하는 등의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국제 차세대지도자 포럼」 참관기/윤청석 국제2부차장

    ◎해외에 우리문화 새롭게 각인 시킬때/각종 무역장벽 철폐 등 세계화 전략에 큰 관심/“지방선거운동 인상적… 활기찬 민주화” 입모아 『한국은 외국에 물건을 팔기만 하는가요』 『서울시내에는 왜 교회가 많습니까』 『대통령 임기가 단임 5년인 이유가 뭐지요』­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롯데호텔에서 세계경제연구원과 한국 국제교류재단의 공동주최로 열린 국제 차세대지도자 포럼 현장에는 「한국의 참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중견 엘리트들의 토론 열기로 가득했다.차세대 포럼은 40대 전후의 각국 정부 의회 재계 언론 및 학계등 차세대 엘리트들이 모여 세계의 주요 공통관심사를 논의하는 자리로 이번 포럼에서는 「세계화와 한국경제」등 3개 주제가 논의됐다. 참석자 전원은 이번 행사기간중 포럼과 병행해 판문점을 둘러보고 포항제철과 경주를 방문하기도 했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중국·일본·호주·러시아등 주요 11개국에서 기업인 공무원 변호사 교수 언론인등 19명,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숫자의 각계 전문가들이참석했다. 이들 외국인들은 「한국의 실상」에 대해 성가실 정도로 꼬치꼬치 캐물었다.한국은 이미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것으로 보며 국제무대에서의 경쟁상대국으로 경계하기도 했다. 당연히 한국의 세계화전략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개방화·국제화 질문내용을 요약하면 『30여년간 정부중심의 수출주도형 경제체제로 급성장한 한국이 어떻게 단기간에 각종 무역장벽과 규제를 철폐할 수 있는가』에 모아졌다.이를테면 서울시내에 국산차만 굴러다니는게 시장개방에 소극적인 좋은 실례라는 것이다.문민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해서도 이들 외국인들은 궁금해 했다. 그런가하면 프랑스인 필리페 시트로엥씨는 『현재의 당신 수입만으로 여름휴가때 하와이나 방콕·싱가포르등 동남아국가에 여행할 수 있느냐』며 넌지시 우리의 생활수준을 떠보았다.파리 교통관리청 국제담당이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북경∼상해(7백㎞) TGV프로젝트를 따내기위해 금년들어 중국을 3차례나 찾아갔다고 귀띔했다. 국제협력증진 방안과 관련,경제분야 분임토론장에선 중국언론인이『최근들어 중국은 3년연속 10%이상 고속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중국의 장래는 무척 밝다』며 『60년대 이후 대약진운동·문화혁명으로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중국은 지금쯤 한국을 따라잡았을 것』이라고 한국경제성장 과정과 중국의 실정을 비교하기도 했다. 판문점 시찰때는 한반도 주변정세,쌀원조,핵문제등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다.경제적 어려움을 겪고있는 북한에 쌀을 보내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우리 참석자들의 의견에 대부분 공감했다.반면 미국인 카렌 슈터씨(여·미국대서양협의회 태평양담당)등 일부 외국인들이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미국과 북한의 외교관계진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한국 보수층그룹이 외교정책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지적한데 대해 우리 참석자들이 『예측불허의 북한이 핵무기 야심을 버리고 「의미있는」 변화를 보일때까지 미국측이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논란을 빚었다. 판문점에서 돌아오면서 들른 경기도 벽제의 한 음식점에서는 마음을 터놓은 대화가 오갔다.우리 참석자들은 『한국이 아직 신기술에서는 뒤떨어지지만 정보·통신분야 기술에는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했으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가입한 직후 캐나다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었으나 요즘은 늘어나고 있다』고 캐나다 공무원이 전했다.WTO,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이 NAFTA만큼 구심점과 단결력을 보일지 의문스럽다는 대화도 있었고 『한국기업 입장에서는 태국·말레이시아등 동남아지역의 인건비가 요즘 너무 올라 공장을 유럽으로 이전하는 추세』(고영열 대우중공업 종합기획실 차장)라는 말에 유럽출신들의 귀가 솔깃하기도 했다. 서툰 젓가락질을 연신 해대던 독일 참석자가 『차창 밖에 비친 피켓을 흔드는 지방선거 입후보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자 벽안의 이방인들은 입을 모아 활기찬 한국의 민주화과정에 관심을 보였다. 이번 차세대지도자 포럼에선 「비즈니스」는 국경을 초월한 총성없는 전쟁이란 말을 실감케 했다.특히 포항제철 홍보센터에서는 한꺼번에 4∼5명의 질문이 꼬리를 물어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독일인은 포철과 광양제철소의 조강능력과 관련,포철관계자가 밝힌 수치를 구체적으로 밝혀 달라고 요구했고 호주산업노조 부장은 포철의 호주 원자재 수입량이 자신의 자료와 다르다며 덤빌듯 따졌다.참석자들은 해가 저물 무렵까지 열연공장의 자동화시설 전공정과 용광로에서 쏟아지는 시뻘건 쇳물을 살펴보며 최근의 엔고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경주 유적 방문길엔 우리나라가 앞으로 초일류국가로 발돋움하려면 국제사회에 우리 문화와 역사를 심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다가왔다.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해외소비자들에게 우리 문화를 인식시키지 않고는 결국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 장편소설/길이가 짧아진다

    ◎「매디슨 카운티…」·「느림」 등 짧은 외국작품 인기 영향/2백자 원고지 5백∼6백매 분량/민음사·문학과 지성사,장편 단행본 준비/적당한 긴장감 유지… 읽기에 편안 「두껍기만 하고 읽고 나도 무엇을 읽었는지 분명하지 않은 책들을 읽다가 맛좋은 짧은 책들을 발견하면 기쁘다」(김현·문학평론가)요즘 장편소설 한권은 3백∼4백쪽에 이르는게 보통이다.원고지로는 1천1백∼1천2백장에 이르는 분량이다.그나마 한권에 담지 못할 사연은 2권,3권짜리로 나온다. 이처럼 글이 길고 보면 작가는 속내를 실컷 털어놓으면서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끌고 나갈 요량이 훨씬 많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오히려 짧게 지나쳐도 그만일 것을 엿가락처럼 늘여 긴장감만 떨어뜨릴 수도 있다. 장편소설이 너무 길어지면서 이런 부작용이 눈에 띄자 여러 출판사들이 잇달아 소설 출판행태를 바꿔 놓을 짧은 장편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민음사가 원고지 5백∼6백장 가량의 중견작가 신작 단행본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문학동네도 5백장안팎의 소설만 모아 시리즈로 내놓을 채비를 하고 있다.문학과 지성사에서도 부실시공된 3백쪽짜리 장편소설보다 알찬 2백쪽(원고지 6백장내외)을 내는 쪽으로 단행본 출판의 흐름을 잡아갈 예정이다.짧더라도 단행본 가치가 있는 책은 발간을 하겠다는 취지다. 이처럼 짧은 장편이 별안간 출판가의 인기 공략대상으로 떠오른 데는 최근들어 일기 시작한 짧은 외국소설 붐의 영향이 컸다.올 상반기 출판가의 불황을 너끈히 이겨낸 로맨스 그레이 류의 소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7백장 분량이고 최근 매장에 불이 붙은 밀란 쿤데라의 「느림」이 4백장 정도다.소설은 아니지만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잠언집 「세상을 보는 지혜」(5백장)는 1백만부를 넘기는 어려운 실적을 올렸고 미셀 푸코의 미술평론집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3백장)도 학술서적으로는 뜻밖의 우수한 판매성적을 올렸다.한마디로 짧은 책이 팔리는 쪽으로 감각이 바뀌고 있는 것. 소설이 무작정 길어진 저간에는 원고지 장수당 고료를 지급하는 문단관행과 출판사의 상업성이 맞물려 있다.원고지 장수가늘어날수록 작가의 고료는 많아지고 소설 한편을 두권,세권씩 나눠 출판하면 출판사로서도 두편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창작과 비평사에서는 이런 폐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계간지 원고에 관한한 고료를 편당으로 지급하는 방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경우 5백∼6백장에 불과한 작품도 엄연한 단행본으로 출판돼 왔다.이 때문인지 프랑스권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전락」처럼 모국어를 풍요롭게 한 빼어난 짧은 장편이 많다.따라서 우리 문단 한켠에서는 두께가 얇은 소설책을 준비하는 최근의 조짐을 반기는 시각이 크다.짧지만 팽팽하고 맛있는 소설이 느슨하고 덤덤하면서 길기만 한 책보다 우리 문학의 토양을 일구는데 훨씬 보탬이 된다는 의견이다.
  • 서울신문 새 연재소설 「파도여,파도여」 집필 김민숙씨(인터뷰)

    ◎“모국 떠난 교포들이 소외된 삶 조명”/파리체재 경험 바탕 다양한 유형인물 돌출 『제가 워낙 게으른 데다 허약체질이거든요.신문연재 같은 장기 레이스를 잘 뛸 수 있을지 두려움부터 앞서네요』새달 1일부터 실리는 서울신문의 새 연재소설 「파도여,파도여」의 작가 김민숙(47)씨.대뜸 엄살섞인 첫마디를 꺼내놓지만 이 작가의 첫인상은 말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자그마하지만 다부진 체구에 목이 훤히 드러나도록 짧은 커트머리,가무잡잡한 피부와 초롱초롱한 눈빛….마치 자신의 인기소설 「내 이름은 마야」의 주인공처럼 아직도 짓궂은 호기심이 철철 넘치는 소녀 같은 모습이다. 『지난 84년 13년간 다니던 잡지사에 사표를 던지고 파리로 1년 휴가여행을 떠났었지요.그 이후에도 긴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번 작품은 그 때의 체험에서 우러난 것입니다』 소설은 파리에 유학온 한국 여학생 명화의 눈을 빌려 진행된다.여행사 가이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보태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회의와 다투는 명화는 파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외국학생 중의 하나.그러나 그녀는 이곳에 건너와 있는 여러 한국인과의 만남을 통해 해외 한국인의 처지를 차츰 인식하게 된다.모처럼 한국을 벗어나 어떻게든 사랑이건 섹스건 「한건」해보려고 덤비는 염치없는 여행객에서부터 유학온 남편을 따라왔다 우울증에 빠져버린 아내,유학생과 사랑에 빠진 상사 주재원까지 모두 한국과 프랑스라는 이중구조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특히 모순되는 요구 사이에서 부대끼는 이같은 이방인의 괴로움은 에쓰코라는 재일교포 3세가 등장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험난한 여정으로 연결된다. 『소설속에는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이곳으로 건너온 뒤 한국인만 만나면 허겁지겁 매달리는 여자 얘기가 나와요.이것은 실제로 파리 전철에서 저를 붙든 어떤 한국여자의 이야깁니다.모국의 품을 떠나 뿌리뽑히고 소외된 교포들에 대해 빚을 갚는 마음으로 쓰는 소설이 될겁니다』 지난 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지은이는 6.25가 가족사에 남긴 상흔을 다룬 「봉숭아꽃물」「시간을 위한 진혼곡」등을 발표,녹원문학상을 타면서 「여성이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눈부신 감수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그가 쓴 청소년 소설 「내 이름은 마야」는 30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모아 영화와 TV드라마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장편소설 「사막의 달」「그림자 밟기」「눈 내리는 아침의 잠」과 꽁트집 「담배 피우는 여자」등을 발간했다. 지은이가 좋아하는 작가는 솔 벨로와 밀란쿤데라.심각한 문제조차 희화화하는 시니컬한 문체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삶의 쓰라린 부분을 날카롭게 집어내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거대한 사회문제에 달려들기보다 한 개인의 상처와 방황을 진지하고 꼼꼼하게 묘사하는 과정에서 큰 얘기를 절로 따라오도록 하는 지은이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답이다.
  • 「세계화」 주창(민주화에서 세계화로:4)

    ◎“지구촌 중심국가로” 한민족비전 제시/21세기초 통일·G7수준의 국부 목표/개혁성과 바탕,국가경쟁력 강화 박차/“「개화 실패」 반복 않는다” 의지… 국민 실천력 뒷받침돼야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해 11월17일 호주의 시드니에서 「세계화 구상」을 밝혔다.이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물론 공직자나 정치지도자들까지 「세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그러나 김 대통령이 귀국한 뒤 「세계화」는 곧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김 대통령은 「세계화」를 『세계의 변화에 적응하고 나아가 세계를 경영해 나가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김대통령의 「세계화 구상」은 하루 아침에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지난날에 대한 예리한 통찰에서 나온 사려 깊은 결론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김대통령은 11월22일 확대국무회의에서 국정지표로 「세계화」를 제시하면서 뼈아픈 우리의 역사를 되새겼다.『지난 19세기말 우리민족은 그때 가장 큰 시대적 과제이자 도전이었던 개화에 실패하여 그뒤 수십년을 가난하고 낙후된 약소국의 고통 속에서 보낸 역사적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운다.잘못은 두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지금 우리가 바로 그 한세기 전과 마찬가지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판단으로 여겨진다.세계화를 천명하면서 굳이 아팠던 역사를 되새긴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는 경제대국의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는 일본에도 뼈아픈 역사는 있다.1853년 개방을 거부하던 일본을 미국의 페리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포격했다.일본의 사무라이들은 혼비백산했다.그러나 이들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고 곧 이어 1868년 메이지(명치)유신을 단행했다.서구처럼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가의 모든 체제와 국민의식을 개혁한 것이다.심지어는 서양인과 같은 체격을 갖추기 위해 국민들의 식생활까지 개조하는 노력을 기울였다.「천황폐하 우유를 드시다」라는 신문의 머리기사도 이러한 분위기를 잘 나타낸 것이었다. 일본은 17세기에도 그때 세계를 주름잡던 네덜란드의 해군력과 진취적인 경제활동을 배우자는 「난학」(네덜란드를 배우자)이란 움직임이 있었다.그때만 해도 파격적인 서양인과의 결혼을 장려하자는 주장도 나올 정도였다. 일본은 1945년 전쟁으로 패망한 뒤 또 한번 난관을 극복했다.한국의 6·25사변을 틈타 경제를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일본경제는 세계수준으로 떠오른다.엑스포를 비롯해 각종 세계대회를 유치해 국민의식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영국도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경제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때가 있다.19세기의 독일은 영국의 경제적 성공을 모방하는데 바빴다.그러나 역사는 반전했고 그 주역은 노력하는 자의 몫이 됐다. 「세계화」를 향한 우리의 여건은 성숙해 가고 있다.박정희정권이 심혈을 기울인 고도의 경제성장과 서울올림픽으로 드높아진 우리국민들의 자신감은 이땅에 민주주의의 터전을 다진 문민정부 2년동안의 개혁작업으로 가속도를 더하고 있다.대통령도 직접 대규모의 경제인들을 이끌고 동남아로,유럽으로 국가 차원의 세일즈에 나선다.김대통령의 3월초 유럽순방에는 경제인이 60여명이나 수행한다.경제인 가운데는 대기업의 총수를 비롯,금융계 중소기업 패션계 인사까지 망라돼 있다.의류업체 대표인 프랑수아즈의 진태옥사장과 사라의 안희정 사장이 수행하는 것은 파리의 패션업계를 겨냥한 것이다.대통령을 수행하는 경제인은 청와대에서 선정한 것이 아니라 통상산업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희망기업을 신청받아 선정했다는 점도 지난날과는 다른 변화다. 유엔 안보리의 이사국 진출노력,월드컵축구대회의 서울 유치운동,김철수대사의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출마등 세계의 중심에 한발 더 다가서려는 밖으로 향한 노력도 숨가쁘다.정부가 마련한 「세계화 지표」에 따르면 우리는 오는 2000년까지 동북아의 중심국가가 된다.2010년이면 환태평양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2020년이 되면 통일공화국으로 선진 7개국 수준에 진입한다.참으로 가슴 뿌듯한 세계화의 설계도가 아닐 수 없다. 바깥에서도 한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세계적으로 정평있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 펴낸 「21세기 미래예측」이라는 책에는 싱가포르의 이광요전총리,홍콩의 크리스토프 패튼총독,하버드대학의 헨리 루이스 게이츠교수등이 미래전망을 제시하고 있다.이들은 대부분 한국을 언급했고 한국의 미래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워싱턴DC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인 프레드 벅스틴은 22세기의 승자들이 될 가능성이 큰 여덟개 지역들 가운데 하나로 「독일의 선례를 통해 단숨이 아닌,20년이상 비용을 절약하는 방식으로 통일을 이룬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를 꼽았다.이광요전총리도 한반도에 대해 『김정일정권은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붕괴되고 남한이 북한을 관리하게 된다.통일된 한국은 2025년 중간규모의 강대국이 된다』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인 전망도 국민들의 의식개혁과 실천이 없이는 장미빛 청사진에 불과하다.정부나 기업이 혼자서만 세계화를 이끌수는 없다.대통령 정부 기업인 국민 모두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회사의 한국지점에 근무하는 프레데릭 메이어씨(30)는 지난해 한국여인과 결혼했다.이들 부부는 『파리에서는 모두 자유로움을 느꼈으나 서울에서는 이방인을 대하는심상치 않은 눈길이 섭섭하다』고 말한다.전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들이 제일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곳도 우리나라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해외에 나가기만 하면 현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한국은 4천년이 넘는 역사의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배타성이 강하고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한 외국특파원의 지적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이제 「세계화」의 과제는 작은 일부터라도 세계일류가 되겠다는 온 국민의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 5개월 옥살이 김순희씨 사연/중국교포의 억울한 도둑누명

    ◎대리모요청 거절에 “패물훔쳤다”보복/10개월 법정공방끝 무죄판결 얻어내 『조국이 너무나 매정스러웠어요.지난 2년은 긴 악몽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찾은 고국에서 애꿎은 절도혐의로 기소돼 5개월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중국 여성교포가 끈질긴 송사끝에 마침내 누명을 벗었다. 친척의 초청비자로 한국에 와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해온 김순희(31·중국 길림성)씨는 8일 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은 뒤 『진실이 밝혀져 홀가분하다』며 상처뿐인 고국생활을 털어놨다. 김씨가 「돈벌어 보겠다」고 한국에 온 것은 93년 2월. 서울 서초구 C레스토랑 종업원으로 하루 15시간씩 일 했지만 차곡차곡 모아둔 월급을 중국에 있는 남편(34)과 아들(8)에게 부치는 즐거움에 피곤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악몽」같은 고국생활이 시작됐다. 아이를 못낳는 주인부부와 「대리모」계약을 맺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곧 이를 취소하자 월급을 미루는 등 주인부부의 구박이 심해졌던 것. 『불법체류 사실을 알려 중국으로 쫓아버리겠다』며 협박하던 주인 K모씨(여)는 급기야 지난해 5월 『밍크코트와 다이아반지 등 패물 7점을 훔쳤다』며 김씨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김씨는 『털옷(밍크코트)은 체불한 임금을 갚는 조건으로 주인이 맡긴 것이고 패물은 본 적도 없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했지만 경찰·검찰은 불법체류자인 「이방인」의 호소를 묵살했다.심지어 경찰은 자백을 강요하며 손찌검까지 했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밍크코트·패물이라는 단어가 뭘 뜻하는 것인지조차 몰랐어요.또 한국에서는 경찰이 때릴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같은해 10월 보석으로 풀려날 때까지 꼬박 5개월을 옥살이한 김씨는 「죄인」으로 몰린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중국에 있는 남편과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겠다』고 결심,수십차례 법정을 오가며 억울함을 호소했다.서울변협의 당직변호사인 임영화 변호사의 무료변론도 큰 힘이 됐다. 서울형사지법 3단독 최철 판사는 이날 『피해자인 식당주인도 김씨가 패물 등을 훔친 것을 보지 못한채 강한 의심이 든다고만 진술하는 등 절도혐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결,10개월동안 계속된 사건에 종지부를 찍었다. 불법체류한 사실이 적발돼 곧 중국으로 송환될 김씨는 『무거운 짐을 벗었지만 가슴에 든 「멍」은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연극배우 이호재(이세기의 인물탐구:64)

    ◎혼신 연기… 무대 오를 때마다 “천의 얼굴”/자연스런 동작­낭랑한 목소리로 객석 사로잡아/지독한 「연습벌레」… 극중인물 영혼까지 파고들어/고교 졸업후 드라마센터 1기생으로… “한국의 데이비드 개릭” 평가 연극계는 원로배우 김동원을 한국의 로렌스 올리비에경에 비유하곤 한다.그러나 그 외에도 아테네극장에서 숨진 루이 주베나 영국 드루어리 레인디어터의 에드몬드 킨,랄프 리처드슨같은 명우들이 있다고 거론되어지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다만 별빛처럼 빛나던 함현진 추송웅을 잃고 드라마센터가 배출한 이호재를 우리 연극무대의 주역으로 손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없다. 이호재의 연기는 어느 역을 만나도 자유자재로운 것이 두드러진다.물 흐르듯 동작이 유연하고 그의 발성은 객석에 진동하면서 관객의 가슴속에 반향같은 메아리로 잦아든다. 연출가 김우옥은 이호재의 목소리의 특질은 풍부한 볼륨과 감정의 뉘앙스가 담긴 음조의 변화에 있다고 말한다.「그의 대사는 또렷하고 낭랑하다.따라서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중후한 음의 압력을 느끼게 한다」.그러나 지나치게 매끄러운 나머지 대사의 맺고 끊고 힘주는 대목이 청산유수에 묻혀 희석되지나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긴 대사 숨막힐듯 소화 지난 88년 호암아트홀에 올렸던 정복근 원작의 「덫에 걸린 집」에서 누구도 흉내 낼수 없이 격렬하고 빠르고 긴 대사를 숨막힐 듯이 소화 해내는 그의 연기를 지켜보다가 상대역인 이호성이 막상 자신의 대사를 놓친 에피소드가 이를 증명한다. 「생일파티」에서의 질서정연하고 조직적인 골드버그,「오델로」의 간교한 이아고,고민하는 세조에서 소년과 노인으로 분장하는 「페르긴트」에 이르기까지 이호재는 역할에 맞는 독창적인 인물을 그때마다 탄생시킨다.그의 연기는 어느 때는 악랄하고 어느 때는 결곡하다.어느 때는 관객을 선동하거나 뜨거운 감명에 몰아넣고 혼자서 무대를 누비는 모노드라마에선 예측불허의 즉흥연기를 종횡무진으로 표출해낸다. 통상 그의 겉모습만으로는 구수하고 텁텁한 친근한 이웃처럼 보이기 십상이다.그래서 대사가 튀는 번역극보다는 창작극이 어울리고 창작극중에서도 진짜 장터에서 입심 좋게 떠드는 약장수가 제격인 듯도 하다.이른바 「언제 봐도 친숙하고 구수한 이미지」로 병신춤에서 봉사흉내,넉두리와 너스레로 연극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명료하게 제시해준다.리듬감이 흥청거리는 요설조의 「약장수」를 보고 연극평론가 김방옥은 『사투리 민요 재담 판소리 사설 속어 유행어등 우리말이 갖는 청각적 묘미를 이호재 특유의 연기스타일로 장구치고 북치듯 순발력 있게 둘러대고 알록달록 짜섞어 작품으로서의 품격과 독자적 가치를 갖추게했다』고 평한다. 이런 흥미와 재미와 작품성을 염두에 둔 연기력 덕분에 언제부턴가 관객은 이호재라는 배우의 연기를 보러 극장에 오게 된다.배우가 한낱 대사를 외울 뿐이라면 그 연극은 죽은 무대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한데 어떤 경우에서도 관객을 실망시키거나 역할에서 실패한적이 없는 배우가 이호재라고 감히 단언 할 수 있다. 특히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는 정력과 생명력이 넘치는 부리부리한 두눈에 쏠듯한 푸른 광채를 번뜩이며 집요한 유혹과 차가운 결단력으로 파우스트 몰락을 휘몰아치듯 전도시키고 있다.「맥베드」의 경우도 그렇다.지난 봄 핀란드의 저명한 크리츠토프 바비츠키가 연출한 「맥베드」에서 던컨왕과 벵코장군을 죽이고 던컨의 장자에게 맥베드가 살해당하는 마지막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시정과 비창미를 극도로 미화시킨 「비극적 감각의 압권」으로 호평된바 있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죽음을 향해 가는구나.오늘 그리고 내일 또 내일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이렇게 다가가는구나」­ 실생활을 깊이 있게 성찰하면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지극히 꺼리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만사에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연극을 위해 헌신노력하거나 연극 때문에 목숨을 내걸만큼 비장한 각오를 내색하지도 않는다.오래 연극을 해왔고 술잘마시고 호방해 보이는 탓에 주변에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연극이 끝나면 또 다음 연극을 위해 미련없이 떠날 뿐이다.그의 그런 일면은 공연이 끝나고 단원들끼리 술한잔 마시는 쫑파티에도 얼굴을 내밀지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릴때 꿈은 외교관 이호재는 다른 예인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연극배우를 꿈꾸거나 그래서 그 꿈을 이룬 형은 아니다.어릴 때는 정치가나 외교관이 되고 싶었고 우연찮게 들어선 연극의 길에서 의외로 「타고난 배우」소리를 듣게 되었다. 지금의 종로 3가인 종로구 비파동에서 교동국민학교를 다녔고 휘문고 시절에는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다.부친(이병진)의 날염공장이 망하자 본래의 희망인 정외과 지망을 포기하고 드라마센터 연극 아카데미에 들어간 것이 연극배우가 된 동기다.그때까지는 연극의 「연」자도 몰랐고 단 한번도 연극구경을 가본적도 없다.멋모르고 연극을 시작했으나 유덕형을 만나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비로소 연극의 재미에 빠져들어 무대와 객석이 일체감을 이루는 전율을 경험했다. 그때부터 연극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연극적 재능을 승화시키기 위해 셰익스피어전집과 명배우 연기론을 탐독하는가 하면 시적인 영감과 진지한 사색끝에 자신의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성립해 나갔다.그때 만난 것이 전무송이다. 이호재가 씩씩하고 터프하고 선이 굵다면 전무송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다.그래서 언제부턴가 한 사람이 악이면 다른 한쪽은 선이고 한 사람이 약하면 다른 한쪽은 강하게 무대에서의 불꽃 튀기는 연기의 앙상블을 펼칠수 있었다. ○2시간전 공연장 나와 그는 하나의 역할을 맡으면 전의 역할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새로운 인물과의 조우를 위해 몸에서 대본을 떼어놓지 않는다.수십번씩 대본을 읽고 역할을 분석하는 그의 연습태도는 그래서 곧잘 「고시공부」에 비유된다.공연날은 남보다 두 시간전에 나와 공연장 분위기를 몸속에 익히고 막이 오르기 전에는 종교는 없지만 반드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미 전제하다시피 그는 극중 인물의 사상과 성격을 도식적으로 그리기보다 영혼의 밑바닥에까지 파고들어 내부에 도사린 모순과 갈등을 끄집어 내고야 만다.그리하여 박력이 넘치는 생동감과 맥박이 충만된 현장감이 그가 이루는 무대의 특징일 것이다. 「입가에 잔혹한 냉소를 새긴 험상궂은 얼굴이며 살기 가득찬야멸찬 언어,사정없이 상대방을 꼬집고 할퀴거나 능청스럽게 수작을 부리다가도 어느 틈엔가 달착지근한 가락을 띤 간사한 어조」로 관객의 등덜미를 찔러대는 섬뜩함은 그만의 노련한 연희라고 할수있다.따라서 낭창조형의 그의 연기는 지적인 관찰에 바탕을 둔 「자연」의 연기라는 점에서는 그 옛날 영국이 낳은 데이비드 개릭을 연상시킨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것 같다.또 극중의 특정한 한 인물은 자신의 어떤 일면과 비슷할수 있으며 모든 스토리 조차도 그의 인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사람에겐 이런 요소도 있고 저런 요소도 있다.교활하거나 거룩하거나 둥글수도,모날수도 있다.그런 중에도 호불호를 선명하게 가리는 탓에 연극계 일각에선 그의 오만을 문제 삼기도 하지만 연기를 딱부러지게 해내는 이상 모든 잡음은 무의미 할 수밖에 없다. 연극초기에는 분장도구가 없어 장판니스를 얼굴에 칠하고 휘발유로 분장을 지운적도 있고 술값이 없어 개런티 대신 받은 반돈짜리 금반지를 술집에 맡기고 가난에 대한 울분을 풀기도 했다.그러나 이제모든 고생은 옛날이야기처럼 돼버렸다.그동안 많은 상을 타고 텔레비전등에 얼굴을 비치면서 두 아들(종화 군입대,창익 고2)을 교육시키고 수십차례의 전월세 전전끝에 올해초에는 생전 처음 종로구 명륜동에 다세대 주택이지만 집도 마련했다.부인 최정자씨(46)는 보험회사(국민보험 잠실소장)에 나간다. 요즘은 지난달 호암아트홀에서 막을 내린 여인극장의 「아내란 직업의 여인」이후 4일부터는 동숭동 학전소극장의 뮤지컬 「별들은 세상에 하나씩 의미를 두어 사랑한다는데」에 출연하는등 내년 가을까지 공연 스케줄이 꽉잡혀 있다.언젠가 한 신문에 그는 배우로서의 고뇌를 쓴적이 있다. 「예술가를 지망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결단은 엄숙한 일임에 틀림없다.순진하게 잠든 아이들,그리고 아내를 보고있노라면 나는 지금 겁도 없이 너무나 엄청난 일을 혼자서 저지르고 있는 것같아 두렵기만 하다」고. 그러나 「막이 내릴때마다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는 관객이 있는 한 무대를 떠날수 없으며」 연극을 끝내고 텅빈 객석을 뒤로하고 극장문을 나서면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사라져 갈 때의 소리」라는 루이주베의 말은 연극배우만의 최상의 행복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연보◁ ▲1944년 서울출생 ▲1961년 휘문고 졸업 ▲1963년 데뷔무대 존 스타인벡 작 「생쥐와 인간」(드라마센터) ▲1964년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현 서울예전)제1회졸업,극단 동랑레퍼토리 창립기념공연 유치진 작 연출「마의태자」,해럴드 핀터「생일파티」 ▲1966∼69년 군입대 월남근무 ▲1973년 오태석작「약장수」(카페 데아트르공연 이후 장기공연) ▲1974년 대구효성여대 불문과 불어극「맹진사댁 경사」연출 ▲1975∼80년 국립극단 단원 ▲1977·80년 국제극예술협회및 록펠러재단초청 극단 동랑레퍼토리 해외공연 ▲1991년 여인극장 25주년기념 셰익스피어 작「맥베드」 ▲1993년 극단 실험극장의 「에쿠우스」1백편째(2개월) 「돼지와 오토바이」(3개월) 폴란드의 크리츠토프 바비츠키 연출 「맥베드」 ▲1994년 서머싯 몸 작「아내란 직업의 여인」,김정일 작 송미숙 연출 뮤지컬「별들은 세상에하나씩 의미를 두어 사랑한다는데」(학전 소극장서 공연중) 동아연극상,백상예술대상,한국연극영화예술대상,서울연극제 연기자상,연극의 해 남자연기상,이해랑연극상 「생명」「태」「하멸태자」「초분」「리어왕」「햄릿」「오텔로」「말괄량이 길들이기」「쇠뚝이놀이」「베케트」「뜻대로 하세요」「고도를 기다리며」「뻔데기전」「물보라」「시즈위벤지는 죽었다」「수족관」「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밤주막」「피가로의 결혼」「파우스트」「요나답」「이방인들」 「화엄경」「태백산맥」
  • 파리/아름다운 도시(아랍서 지중해까지:24·끝)

    ◎물고기 노니는 센강… 곳곳 공원·분수/거리엔 샹송 대신 팝송물결… 값싼 관광상품 판쳐 아쉬움 파리라는 도시의 패션을 말할때 내게는 우선 창이 떠오른다.파리의 창은 참 아름답다.「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에 사는 것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그 낡은 세계에 질린다」라고 시인 아폴리네르가 말했다고 하던가.거리도 다리도 건물도 모두 돌로 된 파리에 철제로 된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을때 파리 시민들의 놀라움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에펠탑은 센강과 함께 파리의 영원한 상징이리라. 파리 어느 곳에서도 그 에펠탑과 센강을 창을 통해 내다 볼 수 있을 것 같다.그것은 에펠탑이나 센강이 그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영원 불변함에 대한 희구가 의식화 된 것으로,파리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여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마치 사물을 슬쩍 바라보고 그리는 인상주의 화법으로서가 아니라 사물의 더 영원한 측면을 그리려는 입체주의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본다고 할까. 여하튼 모든 창 위로 센강이 흐르고 에펠탑이 서있는 영상을 이방인인 나는 수없이 보았다. ○채석장 자리 공원조성 창이 면적으로 뚫려있지 않고 어떤 심성으로 혹은 인생에 대한 체험으로 뚫려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그렇게 느끼게하는 이 도시에 대해 나는 여러번 감사하였다. 공원 또한 몹시 아름답다. 파리는 무엇이든 없어지는 장소는 공원으로 만든다고 한다.시테 기숙사 앞에 있는 몽수리공원은 채석장이 폐쇄될때 만들어졌다고 한다.공원에는 훌륭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동상이 서있고,나무와 잔디,꽃밭,호수,호수위에 백조나 물오리 그리고 공원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거리 곳곳에는 회전목마와 조각공원과 광장이 있다. 라데팡스 광장에는 미로의 대형조각을 위시하여 40여개의 조각이 놓여있고,풍피두센터앞 스트라빈스키의 조각분수 광장에는 고철이나 페품등을 이용해서 전기로 움직이게 해놓은 조각물이 매우 원색적으로 천진함과 환상적인 감을 자아내며 놓여있다. 지하철을 잘못 탄 탓으로 헤매여 겨우 찾아간 퐁피두 센터에서,이미 지쳐버려 그림을 볼 힘은 없을것 같기에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중 발견한 이 조각 분수가 얼마나 기쁨을 주고 유년의 기억 속으로 끌어들이던지. 이런 도시 곳곳에 있는 창,공원,조각분수,회전목마 같은 것들이 도시생활의 질과 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는것 같다. ○상하수도 시설 완벽 파리는 달걀모양의 형태를 하고있고 서울의 반밖에 안되는 크기이며 동과 서,양쪽에 커다란 불로뉴 숲과 벵센느 숲이 있어 도시의 공기를 그런대로 신선하게 유지시켜주고 있다고 한다.또 「장발장」이라는 영화에서 보았듯이 상하수도 시설이 아주 잘되어 있는 것도 파리의 도시패션에 든든한 밑받침을 하고 있는것 같다. 겉으로 보아서는 물이 맑아 보이지 않는 센강에도 그 속에 커다란 고기들이 싱싱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백년이 넘은 지하철은 굳건하고,지하철의 질서 역시 잘 지켜지고 있다.에스커레이터를 탈 때 사람들은 오른 쪽으로 붙어 서는데 그것은 빨리 걸어서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질서라고 한다.버스표와 지하철 표가 같은 것도 시민들에 대한 정부의 세심한 배려로 느껴진다. 밤이 깊을수록 불야성인 거리에 여자 혼자 다녀도 안전하다고 하며 실제로 한번도 위협을 느껴보지 못했다.지하철 앞에 젊은 순경이 서있다가 기타를 들고 나가려는 거리의 악사를 제지하는 모습을 꼭 한번 보았다. 또한 시각환경을 지배하는 광고들을 지하철이나 공고판에서 볼 수 있는데 여행사 광고가 가장 눈에 뜨이고 백화점 광고도 많이 붙어있다.다양한 문화프로그램도 여기저기 붙어있다.그러나 무수한 그것들이 시끄럽지 않게 보여지는 것은 그 내용이 고도의 미감과 어떤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밤부터 시작하여 새벽까지 세계각국의 광고만을 상영해주는 장소도 있다고 한다.밤새워 그런 필름을 돌릴때 파리란 정말 재미있는 곳이었다. 파리시민들은 TV로 많이 배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TV에 문화,사회 관련 프로가 많고 최고 인기장수 프로가 문학,출판 관련의 대담프로라는 것 또한 파리라는 도시패션에 집어넣고 싶다. 패션이라 하면 우리는 흔히 사람들의 옷차림을 떠올릴 것이다.그리고 옷차림에는 유행이 있고 그 유행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것을 입는 일반 시민들이 있을 것이다. ○서양문화 깊게 물들어 크리스티앙 디오르,이브 생 로랑,샤넬등의 그 세계적인 상표가 다 파리의 것이기에 아주 화려하고 앞서가는 어떤 분위기를 기대할 것이다.그러나 내가 본 파리에는 그런 것들이 있는 곳은 어느 다른 동네인가 싶게 특기할만하게 없었다.상점의 진열이나 사람들의 옷차림,표정이 세련되었다는 정도 밖에는­. 아주 개성있는 문턱을 넘어설때 소름이 돋으며 이 안에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하는 상점을 의외에도 파리에서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내 눈이 발견 못해서인가,어디서나 관광객을 의식하여 만들어 내놓은 상품들과 마주 대하게 되었고,그런 물건들에서는 진정한 무엇과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일었다. 샹젤리제거리나 생 미셀거리,오페라거리,또 새로운 상점가로 등장했다는 퐁피두 센터 근처 포럼 레알지구의 거대한 쇼핑센터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백화점 역시 그러했다. ○이젠 뉴욕패션에 밀려 포럼 레알지구의 쇼핑센터에서는 스피커를 통해「스위트 캐롤라인」이 은은히 들려왔다. 베르사유의 한 카페 앞에 있는 회전목마에서는 「우든 핫」에 맞추어 목마가 돌아갔다.맥도널드에서도 팝송이 흘렀고 몽마르트르 카페의 피아니스트도 팝송을 연주했다.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샹송은 그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었다.그러고 보면 파리에도 알게 모르게 아메리카의 문화가 깊이 스며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 일행이 마지막으로 올라간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거리의 화가들이 그림을 팔고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몇번 보는 사이 그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삶을 잠깐 엿본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그곳에서 그림을 그려서 팔고 관광객들에게 초상화 그리기를 권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뭐 어떤가,누구의 삶인들 별다른가하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겠으나 왠지 그 느낌이 조금 서글펐다.한 일행은 그들의 그런 모습이 삶에 대해 까탈을 부리지 않고 수용하는 너그러운 자세라고 말하였지만.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찰스 드골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확 트인 하늘 위에 커다란 포물선으로 무기재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비행기의 내 옆 좌석에 앉은 여학생은 2년간 파리에서 패션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나는 그 여학생에게서 몇가지 얻어들을 수 있었다. 패션도 이미 그중심이 뉴욕으로 넘어가 있다,우리나라의 디자이너는 이신우와 이영희 등이 파리에 알려져 있으며 그녀가 보기에 이영희씨쪽이 밀고 나아갈 옷의 방향이 더 열려있는것 같다,같이 공부한 파리장들은 주로 옷을 벼룩시장에서 아주 싼값에 사입는데 무슨 옷이든 잘 소화하여 개성있게 입는다. 그녀는 또 말했다.자신은 돌아가면 이영희씨 밑에서 공부해보고 싶은데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고. 공항으로 오는 길에 무지개를 보았느냐고 나는 물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 밑에서 꼭 공부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해보라고,될꺼라고,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무지개도 보지 않았느냐고. 이렇게 말하며 나는 낡은 것들에 질린다는 아폴리네르의 말을 떠올렸고,이제 오고있는 새로운 것들의 방향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파리/한국 화가들(아랍서 지중해까지:22)

    ◎허름한 탱크창고 자리에 화실이…/「소나무회」 조직… 배우·음악인 함께 모여 고국 향수 달래 우리가 소나무회라는 한국 화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것은 비오는 날 하오였다.해외동표예술상을 탄 한묵선생의 특집프로에서 그 소나무회를 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건물도 사람도 어쩐지 낯이 익었다. 파리 시 20구에 있는 허름한 그 건물은 원래 국방부 관할의 탱크창고 였다고 한다.프랑스 영화사에서 2억원에 사겠다고 하는데도 화가라는 이유 하나로 국적을 불문하고 한국인의 작업실로 내놓은 것은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미묘한 문제도 개입되어 있을지 모르나 그러나 오직 프랑스이기에 가능하다고 그곳 사람들은 말했다. 일행의 친구이기도 한 소나무회원 박동일은 파리에 온지 벌써 13년째로 그 세월이 바로 엊그제인 것 같다고 말하며 이웃 작업실의 젊은 화가들을 불러모았다. 우리는 지붕위로 떨어지는 비를 느끼며 뜨거운 차와 포도주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벌써 20여년전 내가 그들의 나이 만할때 파리를 지나가던 교수나 화가 작가들을 보면서 어쩐지 생소하게 느끼던 그 느낌이 되살아나 조금 쓸쓸해졌다.그들도 지금의 우리를 그렇게 생소하게 볼 것이 분명했다. 그 당시 나는 이응로선생의 화실에서 선생의 일을 거들었다. 선생은 동양미술학교(1964년 개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고 따로 개인 작업실을 시외에 갖고 있었다.동양미술학교는 대부분 프랑스인들이고 독일 사람과 일본 사람도 있었다.한국인도 몇 있었는데 화가 방혜자,배우 윤정희,연극 박사논문을 쓰던 이숙희등이다.선생댁 거실에서 커다란 책상을 몇개 붙여놓고 열서너명 정도가 화선지에 먹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오직 사람은 그림그려라 선생은 누구에게나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하였다.그것이 선생의 독특한 인생관이 아니었나 지금 생각된다.즉 선생은 예술에 대한 재능같은 것은 무시하고 오직 사람이면 그림을 그려야한다,그림을 그려서 자신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던것 같다.그런가하면 또 「세계무대로 나가는 길이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예술로 세상을 제패하는 일에 대해서 누누이 얘기하셨다. 선생이한창 작업을 할때 동백림 사건으로 감옥을 살고 돌아와보니 자신의 자리가 없어져 있더라고,파리라는 무대가 한달이면 벌써 새사람이 떠오르는데 3년이란 공백기간이 자신에게 있어 치명적이었노라는 한탄도 하셨다.「예부터 나라이름을 빛낸 사람에게는 그 죄를 묻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 도 하셨다. 나는 선생의 일을 거들며 그분이 열과 성을 다하여 작업하는 나날을 보아왔으며 늘 고국에 대해 절절이 가슴 아파하던 일들을 잊을 수 없다.선생의 화실은 우리나라의 저 깊은 산골 장작불 타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 무렵 일어난 어떤 사건으로 선생의 화실에 가는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는데 간혹 선생이 떠오를 때면 사건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그분이 지녔던 진실이 장작불에 달궈진 쇠붙이처럼 되어 무엇인가를 뚫어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한사람의 어떤 진실이란 그것이 진실이기만하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아니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고야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관선생은 그 시절 혼자 파리에 잠시 머물고 계셨던걸로 기억된다.어느 저녁 시테 기숙사 친구 방에 가서 차를 마시는데 남관선생이 무슨 일로인가 거기에 오셔서 처음 뵈었다.남관선생 역시 큰 분이라는 무게를 그날 밤 느낄 수 있었다. 시테 기숙사 속에 있는 숲,그곳에 떨어져 있던 낙엽의 음영,짙은 안가,그리고 거대한 홀인 기숙사 식당에서의 식사시간,그곳 기숙사에 살던 화가 심경자·최수화,파리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병주,한국인 유학생들,교수,그때의 생활들을 추억이라는 이름하에 떠올릴 수 있다.지하철에서 듣던 아코디온 소리 「장미빛 인생」과 함께. 특히 식사시간 티켓을 들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 쟁반에 음식을 분배 받을때 매일 새로운 메뉴에 대한 기대같은 것들은 그 당시 몰랐던 고마움으로 이제 다가든다.누군가가 수고를 하여 그 많은 학생에게 맛있게 영양가도 골고루,그러나 그렇게 저렴한 값으로 먹게 해주던 것에 대해. 그 당시 백건우 윤정희 부부도 떠올릴 수 있다. ○한국인유학생 7천여명 날이 어두워서 그림수업이 끝나는 날은 백건우가 윤정희를 데리러왔다.그들이 서로 사랑하며 앞날을 향해 살아가던 모습을,그것 역시 그 당시는 잘 몰랐으나 이제와서 되돌아다볼 수 있다. 「보자르(국립미술학교) 학비가 한달에 3백프랑으로 보험료 정도인데 재료는 공짜로 나온다.그러나 사립학교인 요리나 보석학교는 석달에 1천만원이 넘는다.미술학교에서 석고데생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선생이 가르치고 학생이 배운다는 개념이 아니다.일년동안 다녀도 선생에게 무슨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한국인 유학생은 약 7천명이고 제일 싼 지붕밑 다락방값은 30만원 정도다」 이런 얘기들을 그날 소나무회원들에게서 들었다. 마침 한국문화원에서 한인전시회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여 그들과 함께 가보기로 했다. 나오다가 현관에 놓여 있는 한인회보를 보니 대사관을 비롯해 파리 한글학교,한인들의 천주교회당,외환은행 소식 등이 있었다. 한국문화원 전시실에는 여러 형태이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한쪽에 따로 있는 비디오아트실에서 한 작가의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우리는 어둠 속에 선채 잠시 영상을 보았다. 프랑스에서도 이미 순수미술은 사그라지고 있으며 팝아트라든가 TV·비디오아트쪽이 성행하고 이미지만으로 새로운 소통을 하는 방송채널도 새로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세계는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급속도로 변하고 있었다.그곳에서 후배들을 보러온 김창렬·오천석선생들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 신부관에 있는 김인중신부는 뉴욕전시회에서 며칠전에 돌아왔으며 다음날 다시 전시회일로 로마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 외인부대에 한국인이 몇명 있다는 소식에 우리 일행은 놀라워했다. 외인부대를 제대한 한국인이 의류를 가지고 지방으로 다니며 보따리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불 외인부대에 한국인도 우리가 영화로 보아서 친숙히 알고 있듯 범법자들,삶의 맨 밑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이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에 목숨을 내놓고 택하는 그곳에 한국인도 있다니,그리고 제대를 하여 지방으로 다니며 보따리장사를 한다니 그들의 삶이 몹시 흥미로웠다.프랑스 혁명기념일 입장식에 나온 외인부대가 T셔츠바람에 머리를 기르고 몸에는 문신을 새긴 제멋대로의 모습인 것을 친구는 TV로 보았다고했다.소르본대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있는 유학생도 경험삼아 외인부대에 신청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그들을 꼭 만나보고 싶었으나 노출되기를 꺼려하여 수소문 끝에 전화로 통화만 할 수 있었다.제대후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는 목소리에 힘이 있고 단정하였으며 절대로 외인부대나 자신의 사적인 얘기를 할 수 없노라고 만나기를 거절했다. 파리에서 오직 하나뿐인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 물랭의 여주인은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는 그곳에서의 노후를 계획하다가 양로원에서 호박나물이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하나에 생각이 미치자 고국으로 돌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 했다.그렇다,바로 이 부분인 것 같다.이국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볼때마다 더구나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같이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곳,자유로운 곳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꼭 들던 것이­. 2,000년을 바라보는 이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국경 같은 것은 점점 의미 없이 무너지고 전인류가 하나인 국제화시대가 도래한다고는 하지만 물랭호텔 여주인의 말에서 과연 하는공감을 받은 것은 오직 나 개인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이 고국이든 이국이든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 같기만 하고 진정한 따스함?진정한 소통이 되어지기 힘들게 살고 있다고는 해도 멀리멀리 두루 돌아다녀볼수록 그 반대편 저곳에 있는 집이라는 이미지,가장 자기를 붙들어주는 그것은 고국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 상 파울루 비엔날레/정준모 미술 큐레이터(굄돌)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의 정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의 상 파울루를 다녀올 기회가 얼마전 있었다.정확하게 12시간의 시차가 있어 시계를 고치지 않아도 된다는 편함 외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는 여행이었다.이번 여행은 브라질,아니 남미최대의 상공업 도시인 상 파울루에서 열리는 상 파울루 비엔날레를 참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올해로 22번째,행사가 시작된지 44년을 맞는 상 파울루 비엔날레는 주제를 「지지체의 변이」로 잡아 미술사조의 한 경향성에 편승을 했다.그러나 그 내면에는 브라질적인 것,남미적인 것을 내세우는 한편 제3세계 종주국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가 이방인의 눈에도 노골적으로 비쳤다.가장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한 브라질의 작가들,1층 현관에서 첫번째로 마주치는 남미작가들의 전시장,그리고 동구와 공산국가들에 대한 배려등 고도의 문화전략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경제적으로는 우리의 60년대 수준을 결코 넘지 못할 것 같은 도심의 판자촌,거리 곳곳의 우중충한 건물들 속에서도 매회 36억원 이상의 돈을투자하여 이 비엔날레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이미 코앞에 닥친 문화전쟁의 시대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이 떠 올랐다. 백년대계는 커녕 15년 대계도 못보고 「우선 먹기 좋은 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현실,문화와는 거리가 먼 경제논리,정치논리에 소일하고 있는 사회 지도층,우리의 자랑이라고 치켜 세우던 정명훈의 수모 등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하는 상황을 예를 들라치면 한이 없는 노릇이지만 문화가 없는 빵은 남의 빵이지,나의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하루빨리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일까.브라질이 당장의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저축하듯이 꾸려오고 있는 상 파울루 비엔날레를 보면서 삶의 빈한함을 이기고 있는 문화적 사고가 내심 부럽기만 했다. 문화가 없으면 자존심도 없어지며 민족혼 또한 남의 것이 될 수 밖에 없다.하루빨리 이 시대 문화적 전통의 확립에 눈을 돌려야 한다.5000년의 문화역량은 선조들의 것이지 우리의 것은 아니다.5000년이후의 문화와 역사를 공백으로 남겨둔채 우리는후손들에게 이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 미국인의 질서의식/문정희 시인(굄돌)

    깨끗하고 빠른 우리의 지하철을 탈 때마다 나는 문득 힘겨웠던 뉴욕시절의 지하철을 떠올리며 홀로 쓸쓸한 미소를 짓곤 한다.나는 뉴욕에 체제한 2년동안 매일처럼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녔었다.뉴욕의 지하철은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편리하게 잘 짜여져 있고 그 역사도 거의 백년에 가깝다.그러나 뉴욕 지하철은 범죄의 온상일 뿐만 아니라 노후되어서 툭하면 고장이 나곤 했다.한마디로 더럽고 무서운 것이 뉴욕의 지하철이라고도 한다. 온통 꾸불텅한 낙서에 뒤덮인 것도 있고 마약 복용자가 내뿜는 마리화나 연기가 매캐할 때도 많다.오줌을 내갈겨놓은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세계각지에서 몰려든 흑인 백인 황인으로 뉴욕 지하철 안은 언제나 인종전시장을 연상케한다.비라도 내리는 날 지하철을 타면 각종 이방인이 내뿜는 역한 체취에 숨이 막혀서 더욱더 우리나라가 그리워지곤 했었다. 『빨리 내나라로 돌아가야지.여기가 어떻게 선진국이며 사람 살곳인가』 그러나 한가지 부러운 것은 그런 최악의 상황과 숨막히는 혼잡속에서도 끝없이 서로에게 『익스큐즈미(실례합니다)』『땡큐(감사합니다)』『쏘리(미안합니다)』를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나는 진실로 이것이 바로 선진국의 저력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지하철이 마침 터널 한가운데서 고장을 일으켜서 거의 40여분간을 캄캄한 터널속에 그대로 서있게 된 날이었다.정말이지 아무도 아우성을 치거나 몸부림을 치지않고 물을 끼얹은듯 질서있게 지하철이 다시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겉으로 보기엔 온통 제멋대로이던 사람들의 어디에 이러한 무서운 질서의식이 있었던 것일까.기막힌 감동이었다. 지하철은 한낱 기계에 불과하다.고장이 없도록 최선의 관리를 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고장이 나서 제시간에 안왔다고 해서 공공재산인 유리창을 깨고 난리를 피우는 것은 마치 제 발등을 제가 차는 것과 같은 유아적인 행위이다. 백년동안 수리를 해가며 써왔기 때문에 툭하면 고장이 나던 뉴욕의 더러운 지하철과 그안에서 언제나 참고 질서를 지키던 그 다양한 얼굴들을 떠올려 보며,나는 이제 우리의 지하철 안에서 홀로 쓴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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