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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소설·알렉산드리아’(이병주 지음, 김윤식·김종회 엮음, 바이북스 펴냄) 지난 1992년 타계한 작가의 데뷔작이다. 필화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른 작가의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작품으로, 사상범 형과 그 동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쥘부채’, ‘박사상회·빈영출’과 함께 문고판 시리즈로 나왔다. 각 8000원, 7000원, 6500원. ●젤리피쉬(해이수 지음, 이룸 펴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전작에서 보여준 이방인의식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을 전한다. 소통 장애 증상을 가진 맹랑한 소녀의 이야기 ‘젤리피쉬’, 에베레스트로 떠나고 싶은 주부를 다룬 ‘고산병 입문’ 등 7편의 작품을 모았다. 1만원.
  • 곳곳서 뛰는 이주 외국인의 삶 소개

    곳곳서 뛰는 이주 외국인의 삶 소개

    이주 외국인 100만 시대, 더 이상 한국에서 이들은 이방인이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에서부터 한 기업의 CEO, 결혼 이주여성, 귀화 예술인까지 다양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자신들의 꿈을 실현해 가고 있다. 21일부터 2주에 걸쳐 방송하는 아리랑TV 4부작 ‘마이 코리아, 마이 코리언(My Korea, My Korean)’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직업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주 외국인 4인방을 소개한다. 21일 오후 8시30분 방송하는 첫 회는 충남교육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필리핀 이주여성 라켈카르비오(39)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1995년 남편을 만나 한국에 삶의 터전을 꾸렸다. 필리핀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영어 원어민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그녀는 이주 외국인이 겪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지역 이주자 상담사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이주민들도 있다. 22일 방송분은 베트남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전후국(37)씨를 소개한다. 최근 베트남에서 가장 성공한 음악인으로 꼽히는 전씨는 러시아 유학시절 한국 여성을 만나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이미 한국으로 귀화하고 서울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악장과 강사를 겸임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매년 베트남에서도 연주회를 가지며 양국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방송은 힘든 업무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현장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의 삶도 소개한다. 28일에는 STX 조선해양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 노동자 함담벡씨를, 29일에는 IT업체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스리랑카 유학생 헤나야카 나디씨의 한국 활약기를 그린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현장 행정] 중구 외국인 한국어강좌 “한글 알고나니 한국이 보여요”

    [현장 행정] 중구 외국인 한국어강좌 “한글 알고나니 한국이 보여요”

    “나마스테(안녕하세요)~!” 지난 8일 오전 중구 인제대 한국어문화교육원. 네팔어로 “나마스테!”라며 인사를 주고받은 10여명이 이내 한국어강좌에 빠져들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엮어 글씨를 비뚤비뚤 쓰더니 다시 글자를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강사 이슬비(25)씨는 “네팔, 베트남, 태국 사람들로 이뤄진 중급반을 가르치는데 대부분이 네팔 출신”이라며 “적극적으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아가려는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중구가 인제대 한국어문화교육원과 손잡고 시작한 한국어강좌가 호평받고 있다. 15일 중구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처음 시작한 1기 한국어강좌가 8일 마지막 수업을 열고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수강생들은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무척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입을 모았다. 중구는 22일 1기 수강생을 대상으로 8주 과정의 2차 심화강좌를 시작한다. ●‘안녕하세요!’도 못했던 사람들 “저는 빔센이고, 네팔 사람입니다. 8주 간 공부했어요. 한국어 말하기와 쓰기는 정말 어려웠어요. 공부해서 지금은 많이 알아요. 요즘에는 한국 친구도 많고 한국어도 많이 알아요. 다른 네팔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싶어요.” 지난 8일 백병원 별관 인당홀에서 열린 수료식에선 네팔인 빔센 카바(21)가 자신이 쓴 편지를 낭독했다. 33명의 수료생 중 일부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네팔 대사관 요리사로 근무하는 카바의 편지가 왜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을까. 인제대 한국어 강사인 조수현(42)씨는 “그들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수년간 살면서도 그들만의 영역을 형성해 살아왔다.”며 “‘안녕하세요’라는 말조차 모른 채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해온 이유는 바빠서라기보다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였다.”고 전했다. 이들은 흔한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이름도 모르고 아는 한국 노래조차 한 곡 없는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조씨는 그들과의 첫 만남 이후 강의계획서와 교재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취업·진학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과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여느 수업과 다름없이 자음과 모음을 기초로 시작한 수업에는 틈틈이 사물놀이 등 문화체험이 곁들여졌다.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학습자들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지더니 학습태도가 능동적으로 변했다. 조씨는 “고립된 한국생활의 원인인 언어의 장벽을 조금씩 넘어서는 그들에게 아침 강의시간은 희망이었다.”며 “외국인들이 더 이상 이방인으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선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역단체와 기초단체의 합작품 이번 프로그램은 서울시가 신소외계층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공모사업에서 시작됐다. 인제대 한국어문화교육원과 중구는 공모사업에 ‘실용 한국어 및 문화교육’을 제출해 당선됐다. 교육원 측은 지난해 11월 개설한 강좌의 내용을 보강해 커리큘럼을 촘촘하게 다시 짰다. 비용은 서울시와 중구가 반반씩 부담한다. 정동일 구청장은 “이번 교육이 외국인 근로자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유대감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2PM 탈퇴한 재범으로 본 한인2세 오해&이해

    ‘한국 비하발언’으로 인기그룹 2PM에서 탈퇴한 재범(22·본명 박재범)씨 사건을 계기로 재외동포(한인) 2세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10일 정부는 국내에 체류 중인 재외동포들이 겪는 고충을 살펴 정책에 반영하기로 하고 이달말쯤 ‘외국 국적 동포의 국내 체류실태 조사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로 해 관심을 끈다. 실태 조사 등에 따르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외동포 2세는 속칭 ‘바나나’에 비유된다. 겉모습은 한국인과 똑같지만 10년 이상 외국에서 교육을 받고 생활했기 때문에 사고방식은 서양인에 가깝다. 때문에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를 닮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인 2세들은 한국을 찾아도 낮선 문화에 적응을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00년 이후 한인 2세들 사이에서는 대학에 진학한 뒤 한국에 1~2년 거주하면서 모국을 체험하고 있다. 국내에 영어 원어민 교사 수요가 늘어나고 각 대학이 마련한 서머스쿨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활발해진 덕분이다. 대학들이 앞다퉈 국제학부를 신설하면서 국내 대학으로 진학하는 한인 2세의 숫자도 해마다 늘고 있다. 올해 7월 법무부가 파악한 ‘재외동포 국내 거소신고현황’에 따르면 부모가 한국인이면서 외국국적을 갖고 있는 국내 체류 동포는 4만 5909명에 이른다. 이 중 미국과 캐다다 국적 소유자가 각각 2만 9727명, 7384명으로 전체의 80%에 이른다. 올해 2월 입국해 인천의 영어회화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는 캐나다 동포 정모(21)씨는 “처음 3개월 동안 식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말이 서툴러 힘들었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편하게 대하는 태도가 무례하게 생각돼 혼자 고민한 적도 많다.”고 털어 놨다. 3년 전 서울 A대학 국제학부에 입학한 재미동포 최모(21·여)씨는 “스스로 원해 한국 대학에 진학했지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통일된 기준을 강요하는 한국문화 때문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자라 한글도 배우고, 한국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는 최씨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그는 “재범처럼 한인 집단 거주지가 아닌 곳에서 자란 친구들은 한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재외동포 2세들은 한국인에게 선진적인 미국문화의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라면서 “이들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책꽂이]

    ●이미도의 영어상영관(이미도 지음, 헌즈 그림, 진명출판사 펴냄) 460여편의 영화를 번역한 저자가 로맨틱 코미디, 로맨틱·멜로 드라마, 코미디 등 영화 장르를 10개로 나눠 50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핵심적인 영어표현과 필수단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1만 3500원. ●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줄리언 벨 지음, 신혜연 옮김, 예담 펴냄) 1950년 곰브리치가 저술한 ‘서양미술사’에 필적할 만한 미술사 교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양중심 미술사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일본의 우키요에, 한국의 윤두서 자화상, 인도 세밀화 등 도판 352점을 소개. 21세기 현대미술까지 포괄. 5만 5000원. ●컨트롤 레벌루션(제임스 R 베니거 지음, 윤원화 옮김, 현실문화 펴냄) 정보활동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늘고 관련 제품과 서비스가 증가하며 본질적으로 정보가 부의 원천이 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또 다른 기원’이란 부제에 걸맞게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발생한 정보를 중심으로 한 제어시스템의 혁신적 발전을 소개. 2만 8000원. ●엄마 헌장(권영숙 지음, 이미지박스 펴냄) 사교육의 틀 밖에서 두 딸을 키우는 엄마의 솔직담백한 이야기. 반항하는 사춘기 첫째, 9살에 한글을 익히는 둘째를 보며 머리가 뜨끈해지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 염려하는 한국 엄마의 삶이 공감 100%. 아이를 통제하고 옥죄는 대신 먼저 자유를 주고 배려와 신뢰를 가르치고 싶다면 일단 이 ‘간 큰 엄마’를 엿보자. 1만 2800원. ●공감(이정민 지음, 아름다운사람들 펴냄) 미국 유학생과 새터민 학생은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적응해 가는가. 이 물음을 두고 진행한 심층 인터뷰의 결과를 미국 유학생 루시와 새터민 메리가 주고받은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 미국, 중국, 한국 사회에서 모두 낯선 이방인일 뿐인 루시와 메리의 고백에서 한민족을 부르짖지만 은근히 배타적인 우리 모습이 엿보여 뜨끔하다. 1만 2000원. ●위대한 박물학자(로버트 헉슬리 엮음, 곽명단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최초의 박물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의 질서를 세운 칼 폰 린네, 고생물학 창시자 조르주 퀴비에, 진화론을 정리한 찰스 다윈 등 고대부터 19세기까지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활동한 박물학자 40여명의 삶과 성과를 다양한 삽화와 함께 정리했다. 5만원.
  • “애수의 춤 탱고… 우리 ‘恨’과 통하는게 있죠”

    “애수의 춤 탱고… 우리 ‘恨’과 통하는게 있죠”

    ‘탱고’라는 단어를 들으면 장미를 입에 문 무용수, 그리고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멋진 춤을 춘 알 파치노 등이 연상된다. 어쩌면 개그맨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제는 여기에 이름 석자를 하나 더 추가해 보자. 한국에서 가장 먼 나라이자 탱고의 본고장 아르헨티나에서 탱고의 ‘대가(마에스트로)’로 불리는 공명규(50)이다. 그는 새달 서울 한전아트센터, 고양 아람누리 등에서 공연하는 ‘피버 탱고2:필링스(Feelings)’에서 기획자이자 무용수로 무대에 선다. 공연에 앞서 지난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활짝 펴서인지 ‘딱 무용수’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게 다 ‘카라두라(caradura)’예요. 우리말로 ‘얼굴에 철판 깔았다.’고 하는 거 있죠. 혼자 아르헨티나로 가서 태권도 사범을 하면서 거기 사람들 상대하고 부딪히려면 그런 게 필요하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거죠.” ●태권도 사범하다가 ‘탱고’에 꽂혀 그는 1980년 혈혈단신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대통령 경호실,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다. 이때 탱고와 인연도 시작됐다. 태권도를 가르치고 남은 시간에 사교모임에 참가하면서 탱고와 골프를 배웠다. 프로골퍼로 데뷔해 아르헨티나 PGA 상금랭킹 6위까지 올라갔지만, 그가 진짜로 ‘꽂힌 건’ 탱고였다. “가르친 제자들이 성장할 기회를 열어 주려면 다른 길을 선택할 때가 오잖아요. 남이 한 것을 따라가는 건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대로 할 수도 없고. 그래서 황무지를 개척해 보자 했죠. 탱고는 세계 각국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몰려온 이민자들이 만든 춤이라 우리의 ‘한’과 통하는 점도 많았거든요.” 아르헨티나에서는 어딜 가나 탱고 음악이 들리고, 아르헨티나인만이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여길 정도로 애착이 강하다. 그런데 이방인이 탱고를 좀 배워 보겠다니 고까울 수밖에. “학원에서 파트너 데리고 오지 않으면 안 받겠다고 해요. 학원비를 내 주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여성 파트너를 구했죠. 열심히 해서 무대에 설 기회까지 얻었는데 연락을 끊더라고요.” 그만 두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내와 끈기’를 가르치던 태권도 사범이었기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공원에서 나무를 붙들고, 버스정류장에서 기둥 잡고 혼자 연습했다. 노력 끝에 1996년 동양인으로 유일하게 아르헨티나에서 프로 탱고 댄서 자격증을 따냈다. 이듬해 한국에 탱고를 소개하기 위해 귀국해 교습소를 냈고, 수천명의 제자를 키우며 탱고 붐을 일으켰다. 이 공로로 2003년 주한 아르헨티나 대사관이 그를 탱고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2004년 한국과 아르헨티나 수교 45주년을 기념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세르반테스 국립극장에서 ‘공명규의 아리랑 탱고’를 올리기도 했다. 2007년에 첫 내한공연을 열었다. 당시 좌석점유율 90%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1996년 동양인 첫 프로 자격증 그의 목표는 이제 ‘탱고 전파’에서 조금 더 커져 ‘문화교류’로 옮겨갔다. “처음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일본의 가라테가 판을 치고 있더라고요. 일본의 자동차회사는 아르헨티나 최대 탱고대회의 주요 스폰서를 하고 있고요. 배타적인 아르헨티나도 자기네 문화를 아끼고 사랑해 주니까, 일본에 대해 친근하게 여겨요. 그게 일본 차 구매로 이어지죠. 이게 문화교류의 힘입니다.” 그는 “해외에서 일본, 일본인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이고, 경외감에 가까울 정도인 것은 이렇게 일본이 적극적으로 문화에 투자했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도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작지만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찾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녀가 빠른 음악에 맞춰 얽히고 설키면서 결국은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죠. 다른 사람과 격이 없이 어우러지면서 소통하고 동화되는 지혜가 있습니다. 이런 탱고의 매력을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테마 스토리 서울] (10) 관광특구 이태원

    [테마 스토리 서울] (10) 관광특구 이태원

    서울 최초의 국제적 관광특구이자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찾고 싶어하는 곳. 행인의 70%가 외국인인 데다 한국인이 들어갈 수 없는 외국인 전용 바도 30여곳이나 되는 곳. 우리가 되레 이방인이 되는 이태원(梨泰院)은 슬프고도 다양한 역사를 지녔다. 이태원은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외국군의 주둔지 역할을 했다. 한양의 중심인 사대문 밖에 위치하고 있어 외국 군대가 조선의 왕과 종묘사직을 압박하는데 좋은 ‘길목’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임오군란때 청나라 부대 주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주둔하며 한양 전역에 대한 약탈과 노략질을 일삼았다.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귀화한 왜인들과 조선인 부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자 ‘태(배)가 다른 곳’이라는 이름의 ‘異胎院’으로 부르기도 했다. 1882년 조선의 구식 군대가 처우에 불만을 품고 폭동을 일으킨 임오군란 때도 이를 진압하러 조선에 온 청나라 부대가 주둔한 곳이 바로 여기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의 식민 지배를 시작하자 이곳에 일본군 조선사령부를 세웠고, 1945년 해방 후에는 미8군이 사령부를 설립,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미군 주둔지라는 배경 덕분에 오히려 반세기 넘게 우리에게 문화적 개방성을 불어 넣어 준 ‘개항지’ 역할을 해 왔다. 6·25전쟁 직후부터 2000여개가 넘는 외국인 관련 시설이 자리잡으면서 외국인에게 서울에 오면 가장 먼저 찾고 싶은 명소로 자리잡았다. 조용필, 신중현 등 한국 대중가요의 개척자라 할 수 있는 이들 대부분이 이곳의 외국인 전용 클럽에서 일한 덕분에 서양의 대중음악을 접목시킨 독창적 음악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 특유의 배타적 정서 속에서도 국내 유일의 이슬람 사원이 이곳에 터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곳만의 독특한 개방성을 잘 말해 준다. 지금 이태원은 반포 서래마을, 동부이촌동 등과 함께 ‘서울 속 외국인 거리’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연간 170만명의 외국인이 찾는 한국의 대표 관광코스이자, 최근에는 내국인들도 즐겨 찾는 맛집거리로 재탄생하고 있다. ●500여곳 맛집거리 성업 특히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어 ‘각국 레스토랑의 경연장’으로도 불리는 해밀턴호텔 뒷골목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층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500여개로 추정되는 이런 맛집들은 육군 중앙경리단 골목과 해방촌 쪽으로 점차 넓어지고 있다. 100여개의 고가구 판매점이 즐비한 이태원 가구거리도 유럽식 가구를 사려는 이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가을마다 ‘지구촌축제’가 열리는 등 이태원은 서울 속 ‘코스모폴리탄’ 문화지대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충격적 사건들의 근원은 고대에 있다

    오늘날 일어나는 굵직한 사건들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에서 뿌리를 찾는 9·11테러를 비롯해 각국의 민주화 운동의 원인을 찾아가면 수천년 전의 고대사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이중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심지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15건의 사건을 추려낸 책이 ‘현대사를 바꾼 고대사 15장면’(플루타르코스 외 지음, 로시터 존슨 엮음, 정명진 옮김, 부글 펴냄)이다. 미국의 편집자 로시터 존슨은 헤로도토스·타키투스·함무라비·가스통 마스페로·바르톨트 게오르크 니부어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학자나 정치가, 고고학자 등의 글을 엮고 글마다 ‘엮은이 서문’으로 간략한 설명을 보탰다. 프랑스의 이집트 전문 고고학자 마스페로는 문명의 동이 튼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소개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는 아테네를 하나의 도시이자 왕국으로 만든 테세우스를 이야기한다. 그리스 아테네를 건설한 사람을 보통 이집트 출신의 사이스로 지목하지만, 아테네의 진정한 창설자는 테세우스였다.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조망한다. 계층제도는 다른 나라에도 존재하지만 힌두인들에게 카스트 제도는 단순히 계층 구분의 의미를 넘어선다. 유일한 사회적 끈이며 국적 구분보다도 더 뿌리가 깊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당시 2억 5000만명에 이르는 인도인이 6000여명의 이방인(영국)에게 불평 한마디 없이 복종했던 현상도 카스트 제도로 이해된다. 이 밖에 영국 역사학자 헨리 하트 밀먼은 예루살렘 신전을 건설한 솔로몬을, 영국 신학자 프레드릭 윌리엄 파라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소개한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게서 문명의 중심이 서구로 옮겨가게 된 계기를 제공한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을, 소설가 에드워드 불워 리튼에게서는 화산재에 뒤덮인 폼페이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유물 중 가장 중요한 랜드마크의 하나로 통하는 ‘함무라비 법전’은 조항을 통으로 옮겼다. 기원전부터 바빌로니아 제국의 몰락까지 인간의 삶을 세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이거나 충격적이었던 고대 사건을 알고 싶다면, 그 정수가 여기 망라돼 있다. 1만 3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귀화 한국인 이참 관광公 사장 내정

    귀화 한국인 이참 관광公 사장 내정

    독일 출신의 귀화 한국인인 이참(55)씨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9일 이씨의 사장 내정을 공식 발표한다. 지난 1986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이씨는 최근 KBS TV ‘이참의 업그레이드 코리아’에서 관광 발전과 한식의 세계화 등의 아이템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TV 드라마와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이씨는 지난 대선기간 이명박 대통령 캠프에서 선거대책위원회 한반도대운하 특별위원회 특보로도 활동했다. 이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첫 번째 한국 이름이었던 ‘이한우‘는 ‘한국을 돕는다.’는 의미였다.”면서 “귀화인으로서 공적인 자리에서 돕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도 백인이 아닌 비주류가 고위직에 들어갈 때까지 200년이 걸렸는데 61년 역사의 대한민국이 이방인을 나라의 얼굴 역할을 해야 하는 관광산업의 책임자로 세운다는 것은 대단한 발상”이라고 덧붙였다. 이종락기자 ckpark@seoul.co.kr
  • [정책진단] ‘목숨 걸고 두만강 건널 때 각오로’ 2인의 성공담

    [정책진단] ‘목숨 걸고 두만강 건널 때 각오로’ 2인의 성공담

    소수의 탈북자들만이 남쪽 사회에서 적응하는 데 성공한다. 이들은 ‘남조선 드림’을 일궈낸 사람들이다. ‘성공한 탈북자’인 탈북자 출신 한의사 1호 석영환씨와 영화 크로싱의 조감독 김철영씨를 만나 그들의 정착 이야기를 들어봤다. ■ “北한의학 인정 받으려 각고 노력” 탈북 한의사 1호 석영환씨 석영환(44)씨는 북한 최고의 의학교육기관인 평양의학대학 동의학과(한의학)를 졸업한 뒤 조선인민경비대 1224 부대 군의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김일성 장수연구소라 불리는 청암산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6개월 근무하다 지난 1998년 10월 두만강을 건너 북한 탈출에 성공했다.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온 뒤 북한에서의 한의학 교육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보건복지가족부와의 긴 줄다리기 끝에 한의사 국가고시 응시 자격을 얻었다. 2차례 낙방의 쓴맛을 봤으나 2002년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현재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다. 탈북의료인협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석씨는 1998년 남한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늘 되새긴다. 그는 “처음 남한에 왔을 때에는 ‘이방인’이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인맥이 중요한 사회인데 그 벽을 넘는 게 초기에는 무척 힘들었다.”면서 “남한 사회에서의 정착을 위해 교회나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인맥을 넓히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주위에 절친한 사람들이 생기기까지에는 4~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는 “처음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관계 당국에서 나의 한의학 교육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해 설움과 눈물의 시간이 길었지만 악착같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탈북자들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정착금 등을 바탕으로 목표를 갖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남쪽으로 오지 않았나. 당시의 각오를 잊지 말라. 자신감을 갖고 자립에 성공해야 한다.”면서 “북한에서 자신이 익힌 전문 기술을 최대한 남한 사회에서 활용하는 것이 정착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 “대학 진학해 인맥 넓혀 꿈 실현” 탈북 영화인 1호 김철영씨 탈북 영화인 1호 김철영(35)씨는 2001년 남한으로 왔다. 그는 하나원 수료 6개월 만에 한양대 연극영학과에 입학, 영화인의 꿈을 키웠다. 탈북자를 소재로 한 영화 ‘국경의 남쪽’에 연출부로 영화를 시작, 이후 영화 ‘크로싱’에선 조감독으로 활약했다. 김씨는 남한사회에서 하루 빨리 적응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김씨는 “한국 사회는 인맥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때문에 대학 진학은 내 꿈을 실현시키는 것은 물론, 인맥을 넓히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김씨는 “한번은 첫 강의 시간에 동기들이 너무 떠들어 흥분을 참지 못해 교수님 앞에서 같은 학번 친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친 뒤 한 학기 내내 왕따가 무엇인지 확실히 체험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동기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지려 노력했고 결국 정성이 통했는지 더욱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남한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고, 먼저 다가서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한국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탈북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널 때의 그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한국 사회에서의 삶은 전혀 어렵지 않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안정된 삶을 얻겠다는 허황된 꿈이 탈북자들에겐 가장 큰 어려움이자 난관이다. 이를 버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한국 예식문화 예전처럼 정겹게 바꾸고 싶어”

    “한국 예식문화 예전처럼 정겹게 바꾸고 싶어”

    20년간 살아온 패션 디자이너의 삶이 서서히 지겨워졌다. 하던 사업을 접고 집에 들어앉았다. 어느 날 찾아온 지인이 집안 식탁의 의자 커버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이런 것은 처음 봤다.”면서 “결혼할 때 쓰면 좋겠다.”고 지나가듯 말했다. 즉각 전화번호부를 뒤졌고 웨딩 이벤트 업체를 찾아가 “내가 만든 것을 빌려줄 수 있다.”며 큰소리를 쳤다. 얼마 뒤 리츠 칼튼호텔에서 젊은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모임이 있는데 파티장 연출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전화가 왔다. 미국의 파티 문화를 바꿨다는 칭송을 듣는 한국인 여성 영송 마틴(Youngsong Martin·51)은 이렇게 해서 3개월 만에 다시 앞치마를 벗어던지게 됐다. ●엘튼 존·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고객 많아 옷을 만들던 솜씨와 눈썰미, 하루 스케줄이 꽉 차야 마음이 놓이는 열정과 음식 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는 남편 덕에 미국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훤히 꿰찰 수 있었으니 그의 성공은 이제와 돌이켜보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21살에 미국으로 이민 가 패션을 공부하고 한때 잘나가는 디자이너로 살았지만 한국인이 미국의 파티 문화를 바꿨다는 평을 듣는다는 것은 놀랍다. “미국에서 식탁보나 의자 커버에 쓰이는 소재나 색상에 대해 고정관념이 많았어요. 저는 이방인이라 그런지 그런 게 없었나봐요. 가령 파티의 주제가 공주풍이면 공주들이 입는 드레스를 만드는 고급 천을 사용하고, 드레스를 응용한 의자 커버를 만들었죠. 그걸 보고 사람들이 즐거워했고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게 좋았어요. 그렇게 행복하게 일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죠.” 2001년 모두가 말리는 가운데 혼자서 설립한 파티 장식물 대여업체 ‘와일드플라워 리넨’은 현재 직원 45명에 연 매출 1억달러(1300억원)를 올리는 탄탄한 업체로 성장했다. LA, 뉴욕 등지의 쇼룸에 바이어들이 밀려들고, 캘리포니아 공장은 전세계에서 쏟아지는 주문을 대기 바쁘다. 팝스타 어셔와 엘튼 존,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 토크쇼 사회자 오프라 윈프리 등이 고객 명단에 올라 있으며 제니퍼 로페즈의 생일 파티 의뢰도 받아놓은 상태다. 해마다 1~3월은 눈코 뜰 새 없는데 그래미, 오스카 등 유명 시상식의 애프터 파티가 줄줄이 그의 손길을 타기 때문이다. ●하객 처음 맞는 곳에 신랑·신부 옛 사진 독일, 프랑스 등 전세계로 사업이 확장돼 가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그의 솜씨를 볼 기회가 생겼다. 롯데호텔서울과 손을 잡고 기존 결혼식의 틀을 깨보이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 “사실 한국을 떠난 지 너무 오래돼서 처음엔 겁먹었죠. 반신반의한 상태에서 목격한 한국의 예식문화가 너무 의무적인 거예요. 하객들은 의무적으로 돈을 내고, 돈 낸 만큼 의무적으로 밥을 먹고. 그걸 보면서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이 막 불타올랐어요. 예전 결혼식에 있던 따뜻함과 정을 살리는 방향으로요.” 1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그는 우선 하객들을 처음 맞는 장소를 돈 내는 곳이 아닌 신랑, 신부 본인은 물론 가족의 옛 사진으로 장식해 훈훈한 얘깃거리가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영송 마틴이 연출하는 결혼식의 첫 주인공은 오는 19일 롯데호텔에서 예식을 치르는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와 그의 신부다. 글ㆍ사진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천성관 후보자 “자녀 교육위해 위장 전입” 석달새 네차례 高峰 등정… 기록경쟁이 ‘무리’ 불렀다 스타강사라도 궁합 맞아야 비만은 부전자전?
  • 연출·연기 직접하며 이방인 설움 훌훌~

    연출·연기 직접하며 이방인 설움 훌훌~

    지난 6일 오전 서울 구로아트밸리 소강당. 여성 10여명이 아이처럼 이리저리 오가며 소리쳤다. 신나게 게임을 즐기는가 싶더니 어느새 서너명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들은 최근 수년간 한국으로 이주해온 외국인 여성들. 20, 30대의 가정주부들로 낯선 한국에서 겪어온 마음의 상처를 눈물로 털어냈다. 중국출신 이수화(36)씨는 “낯선 곳에 처음 와 남편과 시장을 나갔다가 언어 때문에 큰 불편을 겪었다.”면서 “이후 두달 동안 집 밖에 나가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주변에 머물며 언제나 이방인 취급을 받아왔던 이주여성들이 작은 반란을 꿈꾼다. 연극공연을 통해 각박한 한국생활의 상처를 털어내고 삶의 모습을 스스로 바꾸겠다는 다짐이다. ●올해 2회째… 12일 구로아트밸리서 구로구와 구로문화재단, 극단 마실은 이주여성을 위한 연극 ‘내마음에 물주기’를 12일 오후 6시 구로아트밸리 소강당 무대에 올린다. 이주여성들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으며 연기까지 하는 일종의 역할극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연극의 배역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주여성 8명이 나눠 맡았다. 한국인 주부 서너명도 자원봉사 차원에서 동참했다. 연극 내마음에 물주기의 부제는 ‘까오싱위의 비밀상자’. 2년 전 중국에서 시집온 까오싱위가 한국에서 살아가며 겪는 팍팍한 삶을 다뤘다. 까오싱위는 남편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고민하면서도 회사에 취직해 삶을 꾸리려는 진취적 여성이다. 그녀의 비밀상자에는 눈물 어린 어머니의 약값, 자전거 여행의 추억, 고향의 울창한 숲 등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연극에 참여한 한 여성은 명절 때 만두 속에 동전을 넣어먹는 중국 풍속을 얘기하다 “가족들이 부르는 것 같다.”며 흐느껴 울기도 했다. 중국인 귀화여성의 얘기를 다룬 만큼 올해 연극은 모두 중국 출신 여성들로 채워졌다. 지난해 말 다른 주제로 올려진 첫 공연에는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여성들이 참여했다. ●마음의 상처 치유해 주인공을 맡은 이영월(33·서울 서초구 방배동)씨는 “어학교실에 다니다 극단측이 연극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권유해 함께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5년 전 중국 톈진에서 회사 친구 소개로 만난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이주해 왔다. 그녀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돈 많이 벌었냐.’고 냉소적으로 바라볼 때 가끔 속이 상한다.”며 “5살된 딸 아이는 한국어가 다소 서툴지만 잘 적응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진행되는 연극연습을 거르지 않아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애초 함께 시작했던 이주여성 중 일부는 남편과 시댁 등의 반대 등으로 꿈을 접어야했다. 이들 이주여성들은 공연 당일에도 마지막 연습을 위해 구슬땀을 쏟는다. 공연은 오후 6시부터 한시간 가량 진행된다. 연극을 기획한 손혜정(35) 극단 마실 대표는 “공부방 봉사를 해오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접하면서 이주여성을 위한 연극을 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며 “내용들은 모두 이주여성들이 직접 겪은 얘기”라고 소개했다. 또 “어떤 분은 귀가 잘 안들려 병원에 갔다가 마음의 병이란 진단을 받았는데 연극을 통해 조금씩 치유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길섶에서] 회한/김성호 논설위원

    빵집. 약속장소가 하필 빵집이람. 독일로 건너가 산 지 오래됐다지만…. 50줄의 이방인(?)에겐 영 어색한 자리. 약속시간도 한참 지났는데, 친구는 나타나지 않고. 사방엔 10대들의 재잘대는 소리만 그득하다. 여기저기서 흘깃흘깃 겨눠오는 눈길들. 피곤하다. “냠냠.” “냄냄.” 시선들을 피하다가 만난 앞자리의 대화. 20대 중반 엄마와 2∼3살쯤의 어린 딸. 빵을 먹이며 “냠냠.”을 강요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번번이 “냄냄.”으로 응수한다. 발음탓이려니 했는데 아니다. 생글생글 웃어가며 엄마를 놀린다. 엄마가 소리를 지른다. 벼락처럼 터진 울음. 울릴 것까지야. 아이 엄마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다가 떠올린 선친. 사춘기에 나도 “냄냄.”이었지. 귀찮은 잔소리로만 여겨 굳이 청개구리가 되곤 했으니까. 카투사 복무시절 미군 룸메이트도 그랬지. 한국말 발음을 교정시킨다며 정색하고 다투던 미군 친구. 다 하릴없는 고집뿐인 것을. “냄냄.” 헐레벌떡 들어선 친구에게 장난삼아 건넨 인사말. 오랜만의 대면인데 좀 심했나?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파렴치한 이남자 그래도 아빠잖아

    파렴치한 이남자 그래도 아빠잖아

    ‘남미’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체 게바라의 청년시절 여행을 그린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쿠바 음악의 흥겨운 향연을 담은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다. 이들 대열에 어깨를 견줄 또 한편의 수작이 등장했으니 바로 ‘아빠의 화장실’이다. ‘아빠의 화장실’은 따뜻한 가족영화의 외피 속에 묵직한 사회 비판을 숨겨둔 독특한 영화다. 게다가 시종 한폭의 유화 같은 남미 풍광을 배경으로 하는 점 등 음미할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남미 영화로서의 매력 충만 브라질 국경 옆에 위치한 우루과이의 작은 마을 ‘멜로’. 조용하던 마을이 언젠가부터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남미 최초로 교황이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마을 사람들은 목돈을 벌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다. 너도나도 내다팔기 위한 물건과 음식을 만들며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언론도 가세해 수년 만에 호경기가 도래할 것이라며 연일 호들갑을 떤다. 주인공 비토(세자르 트론코소)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본디 그는 브라질 국경을 넘나들며 생필품을 조달해오는 밀수꾼이다. 하지만 걸핏하면 군인이나 기동순찰대에 물건을 뺏기는 통에 견디기가 어렵다. 교황 방문은 그에게도 희망이다.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이방인을 위한 유료화장실. 이 사업만 성공하면 아내 카르멘(버지니아 멘데즈)에게 밀린 전기세도 주고, 딸 실비아(버지니아 루이즈)에게 새 라디오도 사줄 수 있다. 곧 화장실 신축에 착수하는 비토. 하지만 예기치 않은 우여곡절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빠의 화장실’은 1988년 교황의 멜로 방문이란 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원제 ‘El bano del Papa’에서 ‘Papa’는 스페인어로 ‘아빠’, ‘교황’이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이는 아빠의 동선을 충실히 따라가는 영화가 교황 방문이란 사회적 차원에서 해석될 수도 있음을 넌지시 시사한다. ●가족영화이자 사회풍자영화 먼저 영화는 ‘아빠’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시대 고단한 아빠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읽힌다. 물론 그렇다고 이상적으로 그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빠 비토는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아내에게 폭언을 퍼붓는가 하면 돈이 없다는 이유로 딸의 꿈을 무작정 반대하는 등 독불장군이 따로 없다. 심지어 생계를 명목 삼아 비열한 권력자에게 빌붙는 변절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비토가 끝까지 관객들의 공감대를 벗어나지 않는 건, 순수한 가족 사랑에는 손끝만치도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회 부조리를 꼬집는다는 점에서 풍자극의 면모를 띠기도 한다. 교황 방문은 짧은 해프닝에 그치고 외지인들은 주머니를 여는 데 인색하다. 대통령이 직접 교황을 환대하고 나서지만 열악한 지역경제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진실해야 할 매스컴조차도 과장 보도로 현실을 왜곡하기만 한다. 멜로 사람들이 분노를 터뜨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 하지만 영화는 결코 심각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딸의 시점에서 바라본 일련의 현상들은 일상의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담담히 깨닫게 한다. ●비전문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엔리케 페르난데스와 공동연출을 맡은 세자르 샬론 감독은 ‘시티 오브 갓’,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촬영감독을 담당했던 이력의 소유자다. 이 때문인지 ‘아빠의 화장실’은 천연색 화보를 떠올릴 만큼 영상미가 뛰어나다. ‘시티 오브 갓’, ‘눈먼 자들의 도시’의 페르난데스 메이렐레스 감독이 “시나리오에 매료됐다.”며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후문도 작품에 대한 신뢰를 두텁게 한다. 비전문 배우들의 대거 기용은 작품의 사실감을 더욱 높였다. 비토와 그의 아내 등 일부만 전문 배우일 뿐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딸 실비아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 모두는 실제로 멜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다. 25일 개봉한 ‘아빠의 화장실’은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된다. 12세 이상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기고] 6월, 애국으로의 회귀를 바라며/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기고] 6월, 애국으로의 회귀를 바라며/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오늘 나는 빛나는 햇살과 자유, 그리고 스피드를 즐겼다!” 이것은 어느 화가의 즐거운 비명만은 아닐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오늘날 즐기는 일상입니다. 이 일상에 함몰돼 자칫 빛바래져서는 아니될 6월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있어 이를 기려보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9년 전 우리는 6·25전쟁을 치렀습니다. 국방부 전사편찬 자료에 의하면 이때 희생된 사람이 무려 185만명이 넘습니다. 모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초개같이 던졌던 것이지요. 그 가운데 우리 은평구에 비석 하나를 남기고 스물아홉의 꽃다운 나이에 떠난 벽안의 젊은이를 필자는 이렇게 소개하곤 합니다. “세계적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안다면, 우리의 윌리엄 쇼도 알아야 한다.” 윌리엄 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동족은 아닙니다. 그는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서위렴 1세(William E Shaw)의 아들로 1922년 6월5일 태어나 평양에서 고교까지 마친 후 해군에 입대하여 2차 세계대전과 1945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에서 활약하고 해군 중위로 제대한 미국인이었습니다. 제대 후 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수학하던 중 윌리엄 쇼는 제2의 조국이라고 생각하던 한국에서의 전쟁발발 소식을 듣고 심각한 번민을 합니다. 결국 그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는 성경에 따라 한국전 참전 뜻을 굳히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1950년 9월15일 전개되는 인천상륙작전 맥아더사령관 부관으로 참가합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서울탈환작전에도 자원하여 9월22일 녹번리전투 중 중무장한 공산군에 저격당하여 장렬하게 산화합니다. 그의 나이 29세, 서울탈환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지요. 지금 그는 부모와 함께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외국인 묘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런 그를 필자가 호국보훈의 표상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그가 녹번리전투에서 전사했음은 물론 1956년 9월 그의 공적을 아는 독지가들이 뜻을 모아 그가 전사한 녹번리 기슭에 세웠던 작은 기념비가 오늘까지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를 기억하는 이들도 사라져 갔고, 비마저도 도시계획에 밀려 응암동 85의41 응암어린이공원 한 귀퉁이를 지키는 신세로 전락했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지난해 필자는 이방인으로서 우리나라를 위해 몸 바친 윌리엄 쇼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윌리엄 쇼 추모공원’을 건립하기로 계획하고 박세직 재향군인회장, 이성호 제5대 해군참모총장과 공동으로 발기인대회를 가졌습니다. 때맞춰 우리 구가 역촌역 부근 5700㎡ 부지에 녹번천광장 조성을 계획하고 있어서 이곳에 윌리엄 쇼의 비를 이전설치하고 충혼탑을 함께 세우기로 했습니다. 광장은 추모공간 및 녹색쉼터, 부대시설, 지하주차장 등과 함께 1년여 공사를 거쳐 내년 6월 현충일에 맞춰 개장할 것입니다. 공원에서 윌리엄 쇼가 어떤 사람인가를 잠깐이라도 생각할 수 있다면 그의 죽음은 더욱 값질 것이며, 녹번천광장 또한 훌륭한 애국의 장이 될 것입니다. 이런 공간이 있음으로써 우리나라가 자유수호와 평화애호국으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주체로 위상을 다져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남의 탓만 하고 갈등의 골을 표출하기에만 급급한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나를 조금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앞설 때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모쪼록 호국영령들이 남기고 간 구국정신을 본받아 갈등의 골이 화합의 한마당으로 승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 축구·음악으로 ‘이방인 시름’ 달래다

    축구·음악으로 ‘이방인 시름’ 달래다

    계속되는 경제난으로 중소기업들과 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내로 일자리를 찾아온 이주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이주노동자에게 숙박과 하루 두끼 식사를 제공하면 최저임금의 20%를 삭감토록 하는 ‘이주노동자 숙식비 부담기준’을 회원업체들에 보낸 것도 이들의 생활고를 말해준다. 그런 이주노동자들이 21일 하루는 맘껏 웃었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안산월드컵’에 나선 이들과 인천의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밴드 ‘비노이드’가 그들이다. ●안산월드컵 16개국 화합 한마당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경기 안산 원곡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중국, 베트남 등 16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와 지역주민 등이 몰려들었다. 10시를 조금 넘기니 300명을 넘어섰다. 올해 8회째 맞는 ‘이주노동자 안산월드컵’에 출전하려는 사람들이다. 안산이주민센터와 안산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가 공동 주최한 안산월드컵은 이주노동자들의 힘든 삶을 위로하고 지역 주민과 친교를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축구, 물풍선 피구, 400m 계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지만 메인은 축구경기였다. 최대 관심사는 2년째 우승을 거머쥔 ‘토네이도 FC(태국 축구팀)’가 올해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느냐였다. 하지만 태국팀은 스리랑카팀에 2대0으로 졌다. 태국 출신 촉타위(38)는 “3개월간 주말마다 모여서 연습을 했다. 비록 졌지만 오늘만큼은 친구들과 함께 웃을 수 있어서 좋다.”며 서툰 한국말로 말했다. ●인니밴드 ‘비노이드’ 열정의 무대 같은 날 오후 6시쯤 인천시 중구 학생교육문화회관은 록 음악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밴드 ‘비노이드’가 첫 콘서트를 가진 현장이었다.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뽐낸 밴드는 마지막 곡으로 가수 안치환씨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하며 관객과 하나가 됐다. 비노이드는 지난 1월 결성됐다. 보컬 밤빙(29), 드럼 와완(29), 리듬기타 스테판(25), 기타 도요(26), 베이스 다니(31)는 인천 서부공단에서 일하며 알게 됐다. 짧게는 5개월부터 길게는 6년 전 한국에 왔다. 인도네시아에서 각자 밴드활동을 했던 이들은 노래방을 찾다가 직접 밴드를 만들기로 한 뒤 ‘Band no ID’(등록증 없는 밴드)를 결성했다. 밤빙은 “모두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지만 이주노동자의 갑갑한 현실을 빗댄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비노이드의 첫 콘서트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공연 수익금 전액을 인천 서구의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이하 센터)’에 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비노이드의 꿈은 자작곡을 담은 앨범을 발매하고 한국에서 계속 공연활동을 하는 것이다. 글 사진 김민희 오달란기자 haru@seoul.co.kr
  • [부고] ‘민통선 사람들’ 작가 임동헌씨

    ‘민통선 사람들’로 잘 알려진 소설가 임동헌이 8일 오전 폐암으로 별세했다. 51세.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강원도 철원에서 성장한 고인은 1985년 ‘월간문학’에 소설 ‘묘약을 지으며’가 당선돼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내외경제신문과 세계일보 기자, ‘출판저널’ 주간, 한양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를 지냈다.민통선 지역 철원군 사람들 이야기를 그린 연작소설 ‘민통선~’을 비롯해 ‘행복한 이방인’, ‘섬강에 그대가 있다’, ‘숨 쉬는 사랑’, ‘앨범’ 등 소설작품 외에 각종 문학기행서, 산문집, 동화책 등을 남겼다. 유족은 아들 현구(대학생)씨. 빈소는 한양대병원, 발인 10일 오전 5시30분. (02)2290-9442.
  • 앵무새 지키려 6년을 싸웠다, 그러나…

    앵무새 지키려 6년을 싸웠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너희가 댐을 건설하고, 산을 뭉개 도로를 깔고, 숲을 대단위 농지로 개간한다면 부자가 되리라.’고 부자 나라나 또는 다국적 기업들이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포장된 보고서를 들고 와서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십중팔구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보고서대로 해보겠다고 나설 것이다. 가난은 도스토옙스키가 표현한 것처럼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까지 좀먹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고서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부자 나라와 다국적 기업들의 압력이나 로비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된 것으로, 그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함정이라고 해도,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감히 그런 음모를 알 수도 없을 것이다. ‘주홍 마코앵무새의 마지막 비상’(브루스 바콧 지음, 이진 옮김, 살림 펴냄)은 중남미의 아주 작은 나라 벨리즈에서 일어난 환경의 가치와 개발의 가치가 격렬하게 갈등한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생태주의자로 벨리즈에서 야생동물원을 운영하는 미국인 여성 샤론 마톨라가 부패한 정부와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6년간 벌여온 힘겨운 싸움을 지켜보는 독자는, ‘도대체 개발은, 무엇을 위한 개발이냐.’를 반문하게 한다. 멕시코 아래에 위치한 이름도 생소한 벨리즈는 1981년에서야 비로소 영연방의 타이틀을 떼고 독립한 신생국가로 인구가 30만도 안 된다. 마야 문명의 숨결이 살아 있고, 열대우림의 아름다운 풍광과 넉넉한 강, 그곳을 보금자리 삼아 뛰노는 야생동물들이 있는 곳이란다. 때문에 문명에 지친 서양인들은 이곳을 찾아, 마톨라의 야생 동물원을 찾아 쉬었다 가곤 했다. 1999년 벨리즈 정부는 다국적 기업과 손을 잡고 주홍 마코앵무새를 비롯해 희귀동물들의 서식지인 마칼 강 유역에 6㎿ 전력을 생산하는 댐(차릴로 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렇게 되면 주홍 마코앵무새는 물론, 재규어, 맥의 서식지는 완전히 물에 잠기게 된다. 특히 마칼 강 유역의 나무에만 둥지를 트는 주홍 마코앵무새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마톨라는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고, 언론에 댐 건설 반대 기사를 투고하며, 댐 건설을 주관하는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정부와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소송도 불사한다. 이방인 마톨라의 이같은 격렬한 저항은 그러나 ‘공공의 적’으로, 또는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현대판 식민주의자’ ‘미국인 마녀’로 지목되면서 비방과 욕설, 모욕을 당하게 된다. 마톨라를 지지하지 않고 비난했던 벨리즈 국민들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아니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벨리즈 정부와 캐나다의 전력 개발회사인 포티스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와 지질탐사 보고서는 조작된 것이었다. 또한 2007년 현재 벨리즈의 전력수요 증가율은 정부와 전력회사가 예상했던 것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물어보자,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마침 벨리즈 정부가 마칼 강 유역에 1990년대 지은 몰레존댐 건설 때 맺었던 이면계약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정부는 ‘몰레존댐에서 생산한 전력을 무조건 전부 구매해야 한다.’는 이면계약에 서명했다. 이것은 벨리즈 국민들이 전기를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그 비용을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부당한 것이었다. 이같은 전력회사에 부여한 특혜에 대해 벨리즈 정부는 “국제 투자사를 유치하기 위해서 이런 특혜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난 수년간 민간자본을 유치해 고속도로 등을 닦은 뒤에 예상했던 것보다 교통량이 적을 경우, 그 차이를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정부나 지방정부에서 이같은 민간투자를 유치했을 때는 성과만 강조하지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의 부작용, 납세자들의 부담에 대해서는 함구하기 때문에 늘 손해는 국민들이 보게 된다. 4대강 유역 개발과 관련해 민간자본 유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마칼 강 유역에 차릴로 댐의 건설시기는 2005년 11월에 결정됐다. 마톨라가 6년간의 긴 법정투쟁에서 정부와 다국적 기업의 로비와 금권에 패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가난에 시달리더라도 환경을 보호하자는 것이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도 모르냐고. 이 사건을 취재하고 책으로 펴낸 환경 저널리스트 브루스 바콧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진국은 환경을 파괴해 안락한 삶을 이루어 놓았지만, 대신 환경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개발도상국들이 지상 통신선 시대를 뛰어넘고 곧바로 무선통신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같은 개념이 환경계에도 적용되야 한다. 가파른 산길 대신 넓고 편안하고 좋은 길을 택해서 가라.”고. 개발과 환경, 또는 문화에 대한 가치는 어느 시대에도 늘 상충돼 왔다. 우리는 1960~70년대 개발을 선택했다. 환경도 뒷전이고, 문화재도 뒷전이었다. 그래서 21세기에 들어와 동대문운동장을 허물거나, 청계천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문화재들이 우수수 발견되는 것이다. 1962년 1인당 국민소득은 87달러로 100달러도 안 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애써 자위할 수 있다. 그런데 2만달러가 넘은 상황에서, 여전히 개발에 문화와 환경이 터무니없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면, 그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다국적 기업의 탐욕 때문인가, 숫자로 치적을 자랑해야 할 정부의 성과주의 탓인가, 아니면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성과주의의 부작용을 모른 척하는 헝그리 정신만 가득한 미개한 국민의 탓인가. 1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우리 동네 이야기] 다 같이 돌자 차 동네 한 바퀴!

    [우리 동네 이야기] 다 같이 돌자 차 동네 한 바퀴!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김용택, <섬진강> 중에서 지리산 뭉툭한 산허리를 휘감고 도는 섬진강, 씽씽 달리는 승용차보다 털털거리는 경운기 소리가 더 어울리는 고샅길, 숨 한 번 고르고 잠시 쉬었다 가는 깔끄막, 그 언저리에 차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다. 문득 흘러들어온 이방인에게도 따뜻한 차 한 잔 우려 건네는 마음 좋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집집마다 건네는 흔한 차 대접의 호사를 모두 누리려면 미리 배를 든든히 채워 두고 갈 일이다. 하동군 화개면 용강리, 화개장터에서 마을버스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신작로를 기준으로 차 시배지와 쌍계사, 용강마을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신라 흥덕왕 3년, 당시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쌍계사 주변에 처음 차를 심은 차 시배지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시작된 자생차밭은 화개 지역에만 350ha에 이르니 면적만으로 따지면 전남 보성보다 넓다. 지천이 차밭이고, 차밭이 지천인 이곳은 명실상부 차 동네이다. 용강리를 가득 메운 다향삼매에 빠져 길을 걷다보니 어느덧 하루해가 뉘엿뉘엿 저문다. 지리산이 품은 사람들 용강에서의 아침은 등산으로 시작됐다. 아침 산행에 동행한 이는 남난희(52) 씨다. 한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산악인으로 명성을 날리며 산을 오르던 그녀는, 지금은 아들과 함께 지리산 화개골에서 차와 된장을 만들며 소박하고 여유롭게 살고 있다. 알피니스트로서의 산이 도전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의 산은 자신의 품 안에 생활의 터전을 내준 삶의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을 버리니 산을 얻었다”는 그녀의 말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산행은 불일평전을 거쳐 불일암과 불일폭포로 이어졌다. 자생차의 고장답게 등산로 주위로 키 작은 차들이 자라고 있다.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지 않은 말 그대로 자생차는 가지를 치지 않아 새순은 얼마 되지 않고 묵은 잎만 커다랗게 잘 자란다고 한다. 불일암에서 108배를 마친 우리는 내려오는 길에 불일산장에 들러 잠시 몸을 쉬었다.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 잡은 불일평전(平田; 높은 곳에 있는 평평한 땅)에는 작은 산장과 함께 돌탑 무더기와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의 차밭은 30여 년 전 산장을 지은 故 변규하 선생이 조성한 것이다. 지리산의 정기를 머금은 차나무는 군침이 돌기에 충분했다. 남난희 씨는 이곳 차밭에 새순이 올라오면 산을 오르내리는 것도 잊고 하루 종일 찻잎을 따기도 한다. “산의 정기를 받아 자라서인지, 이곳의 차는 서툰 제 솜씨에도 특별한 향과 맛이 다관 안에서 피어납니다.” 남난희 씨의 말이다. 좋은 차밭이 있는 곳에 향기로운 차 한 잔이 빠질 수 있을까. 산장 안에 마련된 작은 다실 겸 서재는 이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쉼의 공간이다. 맑은 공기와 함께 향긋한 차 한 잔이라니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차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 좁은 계단식 차밭과 차밭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앉아 있는 집이 사람 사는 동네임을 짐작케 할 뿐, 움직임도 소리도 없다. 산행으로 노곤해진 몸을 잠시 쉴 겸 남난희 씨의 집에서 자연 밥상으로 요기를 하고 그녀가 덖은 차를 맛볼 수 있었다. “처음 차를 덖을 때는 만드는 방법을 몰라 맨땅에 가마솥을 걸고 차를 덖기 시작했어요. 땅에 걸어두었으니 엉거주춤한 자세로 차를 덖었죠. 이마며 등이며 온통 땀이 범벅이고, 뿌연 먼지는 올라오고, 솥은 얇아서 차는 타고 딱 죽을 맛이더라고요. 이놈의 차는 누가 이렇게 만들기 시작했는지 부아가 나기도 했어요. 그래서 솥 밑에 진흙을 덧대기도 하고…, 정말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갖은 고생 끝에 만들어진 차는 제대로 덖이지 않아도 뿌듯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처음 성취했을 때의 뿌듯함, 그것은 차의 질과는 상관없었다. ‘부르릉’ 정적을 깨고 빨간 헬멧을 쓴 우체부 아저씨가 들어온다. 자연스레 찻자리는 세 명이 함께한다. 화개면 토박이인 장영철(44) 씨는 생업인 우편집배원 일 말고 차도 만들고 있다. 자신이 마실거리를 자급자족하는 정도라지만 어릴 적부터 차와 함께 살아온 그에게는 차사랑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장영철 씨로부터 어릴 적부터 보아온, 지금 그가 만들고 있는 발효차 제다법을 듣는다. “발효차는 세작이 아닌 중작을 이용, 솥에 덖지 않고 찻잎을 햇볕에 말리는 시들리기를 먼저 합니다. 햇볕이 많이 드는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1시경에 말리는데 이때 제대로 시들리지 않으면 찻잎이 청동구리빛(붉은색)이 아닌 뿌옇게 변합니다. 시들리기가 끝나면 바로 멍석에 놓고 비비는데 이때 덖음차보다 더 많이 비비고 털고 말리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이때도 시간에 따라 찻잎의 색이 변하는데 차를 우릴 때 맑은 탕색을 얻기 위해서는 손을 바지런히 움직이고, 차를 털어 말릴 때 찻잎이 포개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과정이 끝나면 자루에 넣어 흙방에 2~3년 동안 숙성시킵니다.” 계곡 바닥 돌 위에 쌓인 가랑잎을 건져 물에 달여 마시기도 했다는 그의 차사랑은 참말 유별나다. 하지만 장영철 씨와 남난희 씨는 자신이 만드는 차의 제다법을 이야기하면서도 조심스럽다. 자칫 자신이 만드는 차가 최고의 차라고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차 동네 사람답게 서로가 서로의 차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투기식으로 이루어지는 차 농사에는 걱정의 말을 더한다. “사람들의 차 관심이 높아지고, 곳곳의 논밭이 차밭으로 바뀌고 있어요. 이곳뿐 아니라 지역 특산물이 성행하고 있는 곳은 모두 마찬가지일 겁니다. 돈이 되는 농사만 선택하게 되니 걱정이에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남난희 씨의 말이다. 장영철 씨는 제대로 된 발효차가 아닌 편법을 이용, 발효차를 만드는 일부 사람들에게 쓴 소리도 한다. “발효차를 만드는 사람들 중 일부는 비닐에 넣어 차를 발효시킨다고 합니다. 그건 발효가 아닌 띄우는 겁니다. 이런 차는 먹었을 때 매스꺼움을 느낍니다.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행동이 대다수의 차농들과 우리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남난희 씨의 집을 나와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조용한 마을 분위기와는 달리 회관 안에는 삼삼오오 모인 노인들로 북적인다. 점에 10원 하는 화투놀이가 한창이다. 마을회관은 심심풀이 화투놀이와 함께 주전부리와 담소가 있는 곳이다. 문득 들이닥친 기자는 어느새 점 10원 화투판을 벌이는 마을 어른들을 잡으러 온 경찰이 되었다. 모두 징역 갈지 모른다는 농으로 화답하자 이내 데면데면함은 어데 가고 찐 밤과 떡이 상에 오른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이곳에 지금처럼 차 농사가 시작된 것은 20~30여 년 전이라고 한다. 그 전에는 모두 야생의 차나무에서 아무렇게나 훑은 찻잎을 고뿔에 걸렸을 때 마시거나 피부병이 났을 때 몸에 바르는 약으로 여겼다. “그 전에는 이만큼 잭살나무(차나무)가 번성할 줄 몰랐제. 산에 드문드문 있는 게 전부였당게. 어릴 적부터 잭살나무 가지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쭉쭉 훑어다 똘배(돌배)랑 같이 가마솥에 푹푹 끓여서 마시곤 했제. 시한(겨울)에 고뿔에 걸려도 그것만 마시면 뚝 떨어졌당게.” 이동문 할아버지의 말이다. 박상감 할머니는 “잭살나무 열매를 따 돌절구에 찧고, 그것을 가마솥에 쪄서 기름을 짜 머릿기름이나 지짐이를 부치는 데도 사용했지. 그뿐인감. 옛날에 약이 어딨당가, 헌데나 몸이 간지러울 때도 잭살나무 잎을 삶아서 그 물을 바르면 간지럼증도 낳고 피부병도 낳았지”라고 떠올린다. 주전부리를 먹으며 마을 어른들과 즐거운 대화가 오가던 중 따뜻한 차가 나온다. 발효차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 와서 마신 차가 모두 발효차이다. 겨울에는 발효차가 제일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 난 잎하고 세작, 중작 대부분 죄다 내다 팔아. 그러다 보니 내가 먹을 건 태반 뻣센 잎이라 발효차를 많이 만들어. 뻣센 잎은 발효차가 더 맛나당게. 뭐 나 먹을 거로 녹차도 조금 만드는디, 그래도 아무 때나 먹을라면 발효차가 제일이지. 세작·중작은 비싼게 팔아야 하고. 근디 요새는 하도 차농사를 많이 하다 보니께 값이 많이 떨어졌당게. 우전의 경우 온종일 두 명이 따야 1kg을 따는디, 그전에는 그것이 6~7만 원이었는디, 지금은 5만 원 조금 더 돼. 그러니 어디 품삯 무서워서 놉(인부)을 부리것능가. 그나마 돈을 조금 만지는 것이 세작·중작인디, 그것도 힘들어. 놉이 있어야 말이제. 다 같은 시기에 차를 따니 서울에서도 불러오고 진주에서도 불러오고. 그래서 차 딸 때는 송장도 일어나서 차를 따야 한다는 말도 있당게.” 이귀례 할머니의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공간, 자신의 품을 기꺼이 내준 자연. 자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의 것을 얻어 살고, 또 그곳에서 아픔을 다독이고, 잠시 빌린 것이기에 다시 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삶이라고 받아들인다. 그 동네에 차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 글 임종관 ·사진 월간 《다도》 찾아가는 방법 승용차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 ⇒ 88고속도로 ⇒ 지리산 나들목 ⇒ 구례 ⇒ 화개 ⇒ 용강리(쌍계사)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장수 나들목 ⇒ 88고속도로 ⇒ 지리산 나들목 ⇒ 구례 ⇒ 화개 ⇒ 용강리(쌍계사) 대중교통 서울 남부터미널, 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 광주 유스퀘어(구 광천터미널), 서울 용산역 관광안내 전화 055-880-2114
  • [내 책을 말한다] 관찰자의 눈으로 본 한국

    중국에서 교직에 있다가 한국에 귀화하면서 생활하게 된 이후 한국사회의 각계각층과 다양한 사람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여기에 호기심 많은 성격까지 한몫하여 어느덧 일상의 면면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카메라로 들여다보듯, 오랜 시간의 경험과 느낌을 일기로 남기는 것이 습관이 됐다. 처음 한국을 접했을 때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유교적인 문화, 예의 바른 모습, 역동적인 삶, 그리고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존심 강한 한국인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전통적인 과거의 모습이 바뀌며 가치관 또한 혼란에 부딪치는 한국적인 변화된 문화 특성이 자연스레 속속들이 거울에 비치듯 투시됐다. 외적 풍요로움 속에서 정신세계의 공허함을 느끼며 불안, 초조, 외로움, 우울함 등이 사회 전반에 밀려들 것이라 느꼈다. 이러한 사회변화의 과정을 통해 한국 그리고 인간사회의 욕망, 집착, 번뇌, 행복의 본질을 찾아보고, 동시에 한국·중국 문화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쓰기로 했다. ‘살벌한 한국 엉뚱한 한국인’(첸란 지음, 일송북 펴냄)은 그렇게 나왔다. 남녀, 정(情), 자녀, 학(學), 민(民), 업(業), 부, 낙() 등 8개 부분으로 나누어 조명하고, 우리의 삶에 연관성 있는 재미있는 고사성어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게 하고자 했다. 한국과 중국은 유교문화 영향을 받아 비슷한 것 같지만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서로 오해가 많이 생겨 비즈니스에서도 갈등이 빗어지기도 한다. 한국인은 “남편이 집에 있던데, 잘렸어?” “노처녀가 뭘 믿고 버티냐?” 등 솔직하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사례가 많다. 중국인 관료는 선물 받은 골동품의 진위여부를 여러 명의 감정사를 불러 판별하려 하지만 모두 위작인 줄 알면서도 “好?!(좋다)”를 연발하고 진실을 말하기를 꺼린다. 나중에 위작이라는 것이 판명나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않아 책임질 일은 없다고 여긴다. ‘좋다’는 모방을 잘했다거나 색깔이 좋다는 의미도 포함되기에 애매모호하게 표현하여 괜히 상대의 체면을 깎아 기분 상하게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중국인을 두고 외국인은 “속이 시꺼멓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 때문이기에 비난하고 경시하기보단 이해하려는 게 오히려 소통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원제는 ‘타인의 거울에 비친 오늘의 한국인’이었다. 중국사회의 병폐에 대해 한국인에게 소개하는 글을 쓰려는 계획이었다. 중국보다 한발 앞선 한국사회의 관찰자 입장에서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의미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출판사에서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대한 조언과 비판, 그리고 중국과의 다른 점도 비교해 독자들의 궁금증도 풀어주기를 원해 내용을 추가했다. 이방인이 한국인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으로 오해할까 부담이 앞섰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울 역할은 한국인, 중국인을 떠나 모두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용기를 가지고 매절 뒷부분에 글을 더 붙였다. 첸 란 전 북경연합대한국 캠퍼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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