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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라리스 측 “선예와 전속 계약, 긍정적으로 논의 중”

    폴라리스 측 “선예와 전속 계약, 긍정적으로 논의 중”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7일 한 매체는 선예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와 손을 잡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측은 “선예와 전속계약을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다. 하지만 아직 확정된 부분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선예는 2007년 그룹 원더걸스로 데뷔한 이후 2013년 캐나다 교포이자 선교사인 제임스 박과 결혼해 그룹을 탈퇴했다. 현재 두 아이의 엄마인 선예는 최근 JTBC ‘이방인’에 출연해 일상 생활을 공개한 바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2030 세대] 마이너, 검열하는 삶/한승혜 주부

    [2030 세대] 마이너, 검열하는 삶/한승혜 주부

    프랑스로 아이를 데리고 휴가를 갔다. 혼자도 긴장되는 외국 여행에 아이를 동반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떠나기 전부터 대비했는데 개중 인상 깊었던 차이가 식당문화였다.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입구에서부터 직원의 안내를 기다려야 하고, 주문이나 계산 시에도 직원을 큰 소리로 불러서는 안 되며, 눈을 마주친 뒤 테이블 앞으로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그걸 지키지 않아 싫은 소리를 듣거나 불편한 상황에 처했다는 글을 많이 읽었기에 늘 조심했다. 그러다 보니 식사 한 번 하는 것이 매번 큰일이었다. 한번은 한참 동안 기다려도 직원의 대응이 없었다. 지쳐서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조바심이 났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 무리의 미국인이 들어와 아무렇지 않게 직원에게 말을 걸고, 직원도 자연스럽게 응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도 한참 전부터 와 있었다고 뒤늦게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자리를 안내했다. 프랑스의 식당문화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정보였을지도 모른다. 식당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문화란 지역에 따라 다르며, 시간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무례하고 무지한 아시아인’으로 보일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럴 때는 서양인들이 참 부럽다.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설사 에티켓이나 매너에 어긋난 행동을 하더라도 단순한 문화 차이로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 부정적인 피드백이나 반응 앞에서도 쓸데없는 피해의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잘못해도 이상한 ‘개인’으로 남을 뿐 집단 전체로 묶이지 않으리라는 것이. 하루는 파리 라빌레트 과학관에 갔는데 근처의 아주머니가 놀고 있는 아이와 지켜보던 나를 향해 번갈아 손가락질을 하며 화를 냈다. 프랑스어는 모른다고 하니 프랑스에 왔으면 프랑스어를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아주머니가 분노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설마하니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건 것은 아니겠지. 온갖 생각이 맴돌았다. 겉으로는 당당한 양 앉아 있었지만, 마음 한켠은 불안과 불쾌함으로 위축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의 사소한 장난을 두고도 평소보다 호되게 혼을 냈다. 아이는 잘못이 없었는데.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개인이 아닌 이방인이자, 동양인임을.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삶이 한국이라고 편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조금 떠들기만 해도, 장난을 치기만 해도, 잠시 떼를 쓰기만 해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개념 부모’나 ‘맘충’이 될까 봐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언가 잘못했을까 봐 항상 스스로를 검열하며 지냈다. ‘나’의 실수가 아니라 ‘애엄마들’의 실수가 되니까. ‘나’의 잘못이 아닌 ‘여성’의 잘못이 되니까. 소수자들은 혹독한 검열을 거치며 살게 된다. 검열은 소수자일수록 더욱 심해지기 마련이므로.
  • ‘맘충’을 피하려고 검열하는 소수자의 삶이란!

    ‘맘충’을 피하려고 검열하는 소수자의 삶이란!

    프랑스로 아이를 데리고 휴가를 다녀왔다. 혼자라도 긴장이 되는 외국행에 아이까지 동반하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떠나기 전부터 이것저것 공부하면서 대비했다.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개중 인상 깊었던 것은 프랑스의 식당문화였다.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입구에서부터 직원의 안내를 기다려야 하고, 주문이나 계산 시에도 서버를 소리내어 불러서는 안되며, 눈을 마주친 뒤 테이블 앞으로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걸 지키지 않아 싫은 소리를 듣거나 불편한 상황에 처했다는 글을 많이 읽었기에 늘 조심하려고 했다. 기분 나쁜 일은 되도록 안 만드는 편이 좋으니까. 그렇게 기다리는 과정이 많다보니 식사 한 번 하는 것이 매번 큰일이었다. 한 번은 식당 앞에 서있는데 한참 동안 직원의 대응이 없었다. 날이 뜨거웠고, 지쳐서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조바심이 났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 무리의 미국인이 들어오더니 아무렇지 않게 직원에게 말을 걸었는데, 직원 역시 자연스럽게 응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뒤늦게 우리도 한참 전부터 와 있었다고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어쩌면 프랑스의 식당문화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잘못된 정보였을지도 모른다. 무조건 먼저 말을 걸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며 식당에 따라 손님 쪽에서 왔다고 알려줘야 하는 곳이 있는지도 모른다. 문화란 한 국가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르며, 시간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니까. 땡볕에 기다리느라 지쳐서 식사를 마치지도 못하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스스로 바보같이 느껴졌다. 무작정 대기하지만 말고 그 사람들처럼 진작 물어볼 걸.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혹여라도 ‘무례하고 무지한 아시아인’으로 보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서양인들이 참 부럽다.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설사 에티켓이나 매너에 어긋난 행동을 하더라도 단순한 문화 차이로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 그로 인한 부정적인 피드백이나 반응 앞에서도 쓸데없는 피해의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에도 그저 이상한 ‘개인’으로 남을 뿐 집단 전체로 묶이지 않으리라는 것이. 하루는 파리 라빌레트 과학관에 갔는데 근처에 있던 아주머니가 놀고있는 아이와 지켜보던 나를 향해 번갈아 손가락질을 하며 화를 냈다. 프랑스어는 모른다고 하니 프랑스에 왔으면 프랑스어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놀았고 다른 아이와 스친 일 자체가 없었다. 즉 놀이감이나 놀이 순서 등으로 다툴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대체 아주머니가 분노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모르는 별도의 규칙이라도 있는 것인가. 설마하니 요즘 세상에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건 것은 아니겠지. 온갖 생각이 맴돌았다. 잘못한 것이 없으니 겉으로는 당당한 양 앉아 있었지만, 마음 한켠은 불안과 불쾌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위축되어 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의 사소한 장난을 두고도 평소보다 호되게 혼을 냈다. 사실 아이는 잘못이 없었고 정말로 그 아주머니가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의 우리는 그냥 개인이 아닌 이방인이자, 동양인인 것이다. 사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삶이 한국에서라고 편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조금이라도 떠들기만 해도, 장난을 치기만 해도, 잠시 떼를 쓰기만해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개념 부모‘나 ’맘충‘이 될까봐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언가 하나라도 잘못했을까봐 항상 스스로를 검열하며 지냈다. ’나‘의 실수가 아니라 ’애엄마들‘의 실수가 되니까. ’나‘의 잘못이 아닌 ’여성‘이라는 집단의 잘못이 되니까. 아마 어떤 사람들은 그저 여성에 애엄마일 뿐인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더욱 혹독한 검열을 거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검열이라는 것은 소수자일수록 더욱 심해지므로. <글: 한승혜 주부>
  • ‘맘충’을 피하려고 검열하는 인생

    프랑스로 아이를 데리고 휴가를 다녀왔다. 혼자라도 긴장이 되는 외국행에 아이까지 동반하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에 떠나기 전부터 이것저것 공부하면서 대비했다. 여러 가지 차이가 있지만, 개중 인상 깊었던 것은 프랑스의 식당문화였다.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입구에서부터 직원의 안내를 기다려야 하고, 주문이나 계산 시에도 서버를 소리내어 불러서는 안되며, 눈을 마주친 뒤 테이블 앞으로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걸 지키지 않아 싫은 소리를 듣거나 불편한 상황에 처했다는 글을 많이 읽었기에 늘 조심하려고 했다. 기분 나쁜 일은 되도록 안 만드는 편이 좋으니까. 그렇게 기다리는 과정이 많다보니 식사 한 번 하는 것이 매번 큰일이었다. 한 번은 식당 앞에 서있는데 한참 동안 직원의 대응이 없었다. 날이 뜨거웠고, 지쳐서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조바심이 났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 무리의 미국인이 들어오더니 아무렇지 않게 직원에게 말을 걸었는데, 직원 역시 자연스럽게 응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뒤늦게 우리도 한참 전부터 와 있었다고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어쩌면 프랑스의 식당문화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 잘못된 정보였을지도 모른다. 무조건 먼저 말을 걸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며 식당에 따라 손님 쪽에서 왔다고 알려줘야 하는 곳이 있는지도 모른다. 문화란 한 국가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르며, 시간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니까. 땡볕에 기다리느라 지쳐서 식사를 마치지도 못하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스스로 바보같이 느껴졌다. 무작정 대기하지만 말고 그 사람들처럼 진작 물어볼 걸.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혹여라도 ‘무례하고 무지한 아시아인’으로 보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서양인들이 참 부럽다.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설사 에티켓이나 매너에 어긋난 행동을 하더라도 단순한 문화 차이로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 그로 인한 부정적인 피드백이나 반응 앞에서도 쓸데없는 피해의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에도 그저 이상한 ‘개인’으로 남을 뿐 집단 전체로 묶이지 않으리라는 것이. 하루는 파리 라빌레트 과학관에 갔는데 근처에 있던 아주머니가 놀고있는 아이와 지켜보던 나를 향해 번갈아 손가락질을 하며 화를 냈다. 프랑스어는 모른다고 하니 프랑스에 왔으면 프랑스어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놀았고 다른 아이와 스친 일 자체가 없었다. 즉 놀이감이나 놀이 순서 등으로 다툴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대체 아주머니가 분노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모르는 별도의 규칙이라도 있는 것인가. 설마하니 요즘 세상에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시비를 건 것은 아니겠지. 온갖 생각이 맴돌았다. 잘못한 것이 없으니 겉으로는 당당한 양 앉아 있었지만, 마음 한켠은 불안과 불쾌함이 뒤섞인 감정으로 위축되어 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의 사소한 장난을 두고도 평소보다 호되게 혼을 냈다. 사실 아이는 잘못이 없었고 정말로 그 아주머니가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의 우리는 그냥 개인이 아닌 이방인이자, 동양인인 것이다. 사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삶이 한국에서라고 편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조금이라도 떠들기만 해도, 장난을 치기만 해도, 잠시 떼를 쓰기만해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개념 부모‘나 ’맘충‘이 될까봐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언가 하나라도 잘못했을까봐 항상 스스로를 검열하며 지냈다. ’나‘의 실수가 아니라 ’애엄마들‘의 실수가 되니까. ’나‘의 잘못이 아닌 ’여성‘이라는 집단의 잘못이 되니까. 아마 어떤 사람들은 그저 여성에 애엄마일 뿐인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더욱 혹독한 검열을 거치며 살고 있을 것이다. 검열이라는 것은 소수 자성을 띌수록 더욱 심해지므로.<글:한승혜 주부>
  • 45세 이방인, 월드컵 우승 마법 부릴까

    45세 이방인, 월드컵 우승 마법 부릴까

    스페인 출신… 4강 감독 중 최연소 역대 외국감독 성적 준우승이 최고 4강팀 중 3개국이 모두 자국 감독1930년 우루과이에서 첫 대회가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축구대회에서는 4년 전 브라질 대회까지 모두 자국인 감독을 앉힌 나라들이 우승했다. 단 한 번의 예외가 없다 보니 ‘월드컵의 전통’이 되다시피 했는데 벨기에가 이 전통을 깰 수 있을까.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감독은 19명이다. 1934년과 1938년 대회 2연패를 일군 비토리오 포조(이탈리아)가 유일하게 혼자서 두 번이나 경험했다. 11일 4강전을 시작하는 러시아월드컵에서도 확률적으로는 자국인 감독이 우승할 가능성이 더 크다. 4강에 오른 나라 가운데 프랑스와 잉글랜드, 크로아티아가 자국인 감독이 지휘하고 벨기에만 유일하게 외국인 감독이다. 네 나라 사령탑 가운데 가장 젊은 로베르토 마르티네스(45) 벨기에 감독은 스페인 사람이다. 마르티네스 감독은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 지휘봉을 처음 잡았고 이후 2009년 위건, 2013년 에버턴 감독을 역임했다. 2016년 8월 마크 빌모츠의 후임으로 벨기에 대표팀을 맡아 최근 23경기 연속 무패 행진(18승5무)을 잇고 있다. 그는 특히 수석코치로 티에리 앙리(프랑스)를 영입해 다국적 코칭스태프를 꾸렸으며 2009년 영국 여성 베스 톰프슨과 결혼하는 등 코스모폴리탄 기질을 갖고 있다. 독일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로만쉬어(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 등 다양한 언어로 갈라져 있어 선수들이 라커룸이나 기자회견 등에서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벨기에 대표팀의 특성에 딱 들어맞는 감독인 셈이다. 그는 또 대학에서 물리치료를 전공했고,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는 등 공부하는 지도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외국인 감독이 거둔 최고의 성적은 준우승이다. 19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개최국 대표팀을 이끈 잉글랜드 출신의 조지 레이너 감독,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지휘한 에른스트 하펠(오스트리아) 감독인데 마르티네스가 그들을 뛰어넘을지 주목된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천재적 필력에도… 당나라·신라서 모두 소외당한 ‘한문학의 시조’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천재적 필력에도… 당나라·신라서 모두 소외당한 ‘한문학의 시조’

    “오직 세상의 사람들만이 모두 너를 죽여 시체를 늘어놓으려고 생각한 것이 아니요, 땅속의 귀신들까지도 이미 암암리에 너를 처단할 논의를 마쳤느니라.”(不唯天下之人, 皆思顯戮 ; 抑亦地中之鬼, 已議陰誅)이 살벌한 표현은 최치원(崔致遠·857∼?)의 문명(文名)을 천하에 떨치게 한 ‘격황소서’(檄黃巢書)의 한 구절이다. 흔히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불린다. 그 논조가 얼마나 준엄했는지 황소는 격문을 읽다 이 구절에 이르자 간담이 서늘해져서 저도 모르게 침상에서 떨어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글이 실린 출전이 바로 최치원의 문집인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이다. 중국 당나라 말에 황소라는 장수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최치원은 토벌대장인 고변의 휘하에서 비서 역할을 하는 종사관이었다. 계원필경은 이 기간에 최치원이 지은 수많은 글을 엄선해 편찬한 문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집 계원필경은 우리나라 천여 년 문학사에서 현재 전하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문집이다. 그런 까닭에 최치원은 흔히 한문학의 비조로 불린다. 이에 대해 홍만종은 “최치원은 문체를 크게 구비하여 우리나라 문학의 시조가 되었다”라고 했다. 신위는 “공이 높은 시조로서 처음으로 개창하였다”라고 말했다. 계원필경의 서문을 쓴 홍석주나 서유구 등도 비슷한 평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최치원의 문학에 대한 평가가 찬양 일변도인 것은 아니다. 이규보는 “최치원은 미개지를 개척한 큰 공이 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종주로 여긴다”라고 칭찬했다. 그는 격황소서에 대해서도 “귀신을 울리고 바람을 놀라게 하는 솜씨”라고 극찬하면서도 “그러나 그의 시가 대단히 높지는 않으니 아마도 그가 중국에 들어간 때가 만당 이후에 해당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성현도 “지금 그가 지은 것을 보자면 비록 시구에 능하기는 해도 뜻이 정밀하지 못하며, 비록 사륙문에 재주가 있으나 말이 정제되지 못하였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서거정, 허균 등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 바 있다. 계원필경 산문은 대부분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 위주로 돼 있다. 최치원이 모시던 상사인 고변의 ‘변’(騈)과 그가 쓴 글이 사륙 ‘변’(騈)려문으로 같은 한자를 쓰는 일은 한마디로 ‘기이한 인연’이다. 사륙변려문은 글자 수를 4·6자, 4·6자로 배열하거나 아니면 4·4자, 6·6자 등으로 배열하는 등 대구를 철저하게 지키는 정형성이 특징이다. 변려문은 전체를 대구로 구성하는 데다 특히 어려운 고사를 많이 사용해 글이 매우 까다로운 특징이 있다. 그만큼 번역하기가 어려우며 각주도 일반 산문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서거정 같은 대학자도 계원필경에 대해 “이해되지 못하는 곳이 많다”면서 “괴상하고 궁벽하여 족히 천하를 움직이기에 충분하지 않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오히려 그만큼 최치원의 학문 수준이 높았음을 방증한다.최치원이 일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이면에는 당을 시대로 구분했을 때 가장 낮게 평가되는 만당(晩唐) 때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후대에 진실성이 모자랐다고 비판받는 변려문에 치우쳤다는 점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그러나 후대에도 변려문은 옥책문, 전문, 반교문 등 궁중 의례문에 꾸준히 사용됐다. 또 매우 중요한 실용문인 상량문도 반드시 변려문으로 지어져 그 역할이 지속됐다. 관점에 따라 평가를 달리하기는 하지만, 이규보와 성현의 견해를 잘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듯 그에 관한 평가가 반드시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계원필경은 최치원의 학문적 역량이나 당시의 시대상 등을 알려 주는 더없이 귀중한 문헌이다.#영원한 이방인, 전설을 넘어 신화가 되다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 가서 7년 만인 18세의 나이에 유학생을 상대로 한 과거인 빈공과에 합격하고 관직 생활에 들어섰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선주의 율수현위가 되어 하급 지방관을 지냈는데, 이때 지은 작품을 모아 ‘중산복궤집’(中山覆集)이라는 문집을 엮었다. 몇 년 뒤 23세 때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고변의 종사관이 돼 약 4년간 군영에서 수많은 문서를 도맡아 저술하였다. 특히 24세 때 서두에 소개한 ‘격황소서’로 온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28세에 귀국을 결심하고 당나라를 떠나 이듬해 3월 신라로 돌아왔는데, 그의 유학 과정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유명하다. “무협의 겹겹 봉우리 나이에 베옷으로 중국에 들어갔다가, 은하계 여러 별자리의 나이에 비단옷으로 동국에 돌아오다.”(巫峽重峯之歲, 絲入中原; 銀河列宿之年, 錦還東國) 무협의 봉우리 12개는 유학 갈 때 나이를 나타내며, 하늘의 대표적인 별자리 28개는 중국을 떠날 때 나이를 나타내는 식으로 활용한 것이다. 비단옷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출세하여 금의환향했다는 의미이지만, 신라에서의 삶은 기대에 충족되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큰 포부를 펴보려고 의욕을 가졌으나 골품제 한계로 좌절을 겪었다. 몰락해 가는 신라 말 정세 탓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여건도 마땅치 않았다. 10여년 동안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전전하다가 40여세 장년의 나이에 관직을 버리고 사방을 소요했다. 경주의 남산, 영주의 빙산, 합천 청량사와 해인사, 지리산 쌍계사, 합포의 월영대 등에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마침내 은거를 결심하고 해인사에 들어가 머물렀는데,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마지막 삶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가야산의 신선이 되었다는 설화가 널리 퍼져 마침내 신화가 되었다. 유학 생활한 당나라에서나 고국인 신라에서나 세상에서 소외된 이방인으로서 그의 내면 정서를 잘 드러내 주는 시는 가장 널리 알려진 ‘추야우중‘(秋夜雨中)이다. 秋風唯苦吟 갈바람 속 고심하며 시만 읊나니 世路少知音 이 세상에 진정한 벗 거의 없어라 窓外三更雨 창 밖에는 한밤중에 비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불 앞엔 만 리 먼 곳 그리는 마음 이 시에서 ‘만리심’(萬里心)을 신라에서 당나라를 향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그렇게 한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이역만리 당나라에 있을 때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분명한 근거가 없을 때에는 상식을 따르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김영봉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계원필경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집… 中 회남시에서 지은 글 모음 최치원의 문집으로,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문집이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모두 20권 4책으로 편찬됐는데, 1∼16권은 회남 절도사인 고변의 막부에서 종사관으로서 고변을 대신해 지은 글이다. 따라서 글의 주인공은 최치원이 아니고 고변으로 돼 있다. 17권 이후가 자신에 대한 글이다. 대부분 산문이고 시는 17권에 30수, 20권에 27제(題) 30수가 실려 있다. 국역본 해제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그동안 책 이름 중 ‘계원’의 뜻을 ‘문장가들이 모인 곳’이라거나 ‘한림원’ 등으로 잘못 풀이하고 있기에 이 기회에 분명하게 바로잡는다. 계원은 사전적으로는 몇 가지 뜻이 있으나 계원필경의 ‘계원’은 최치원이 글을 지을 때 머물렀던 회남의 별칭이다. 즉 계원필경집은 ‘계원(회남)에서 문필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지은 글 모음’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중국 회남시에는 ‘계원촌’(桂苑村)이라는 지명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는 또 다른 저술인 중산복궤집의 작명 원리와 똑같다. 여기에서도 ‘중산’은 글을 지은 곳의 지명을 가리킨다. 최치원의 다른 시문집으로 ‘고운선생문집’(孤雲先生文集·고운집)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동문선(東文選) 등 여러 문헌에 산재한 작품을 수집해 1926년에 간행한 것이어서 문헌적 가치는 높지 않다.
  • [러시아의 외침-우뜨라 라시야] 신태용호 여정서 느끼는 러시아제국의 저력·숨결

    [러시아의 외침-우뜨라 라시야] 신태용호 여정서 느끼는 러시아제국의 저력·숨결

    축구대표팀이 스웨덴에 분패한 현장은 과거 러시아제국의 ‘주머니’로 불렸던 니즈니노브고로드였다. 13세기에 박람회가 열릴 정도로 일찍이 우랄과 페르시아를 잇는 활발한 교역의 중심지였다. 볼가강과 오카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던 옛 경기장을 폭파하고 새로 스타디움을 지으며 이웃 주에서까지 근로자들을 징발해 값싼 임금으로 착취했다고 말들이 많았다. 옛사람들이 교역의 터전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던 크렘린(성채) 위에 동상 하나가 두 강이 유유히 합류하는 것을 고즈넉이 굽어보고 있다. 대문호 막심 고리키다. 숱한 저작들로 러시아의 양심을 깨운 그가 강의 역사, 교역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주시하고 있다.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의 무대 상트페테르부르크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대표팀은 23일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이 열리는 로스토프나도누로 21일 다시 떠난다. 1980년대 많은 이들의 눈을 밝혔던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의 무대다. 신태용호의 발걸음이 몽골의 유럽 침공 루트였으며 중국의 종이 제조술이 전해진 경로였던 고리키의 고향에서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향을 거쳐 27일 독일전이 열리는 타타르족의 터전인 카잔까지 이어지는 것은 우연치곤 흥미롭다. 러시아제국의 저력과 숨결, 웅혼함이 느껴지는 여정이다. 지난 12일 대표팀이 러시아에 입성한 뒤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기자를 매번 놀라게 했다. 보행자가 길을 건너면 자동차가 먼저 멈춰 선다. 운전자들은 거의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버스에 오른 이방인에게 서로 길 안내를 하겠다며 승객들과 차장이 입씨름을 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의 기자단의 숙소에 도착한 것은 지난 16일 밤 10시 30분이었다. 지친 몸으로 샤워를 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여성 콘시어지가 커피와 호박케이크, 초콜릿 등을 담은 쟁반을 내밀며 미소 지었다. 19일 이른 새벽 공항으로 떠나는 일행에게 호박케이크, 샌드위치, 과일 등이 담긴 봉지를 건넸다. 그 도시의 어느 레스토랑 매니저는 생각이 안 나는 영어 단어를 떠올리느라 연신 몸을 흔들어 대면서 우리 일행과 의사소통을 하려고 진땀을 흘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크렘린, KGB, 체첸이나 크림반도 진압과 같은 근육질 이미지의 정부, 체제와 길거리에서 만난 장삼이사 러시아인들은 많이 달랐다. 근엄한 얼굴로 안 된다고 하면서도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슬쩍 알려 주는 친절을 경험한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월드컵이 러 이미지 바꾸고 있어 당연한 얘기지만 일주일여 러시아의 서부를 조금 돌아보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 그릇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도 러시아 어디에선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폭압적이고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가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 러시아월드컵이 다른 어느 곳보다 러시아를 변화시키고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와 희망이다. bsnim@seoul.co.kr
  • [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중국에 발령 나면 배우자가 두 번 운다

    [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중국에 발령 나면 배우자가 두 번 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만날 때, 헤어질 때. 떠날 때, 돌아올 때. 신록이 싱그러운 6월은 귀환의 계절. 방학 혹은 졸업으로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유학생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간다. 객지 생활 내내 그리워했던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은 어떤 길일까.중국 유학생 베로니카. 캐나다에 있는 동안 중국을 그리워하다가 몇 년 전 중국을 찾았을 때 충격을 받는다. 현금 결제 문화. 캐나다에 있을 때는 카드 결제. 현금 없이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됐는데 그 습관 때문에 낭패를 본다. 최근 방문 시 다시 한번 충격을 받는다. 그사이에 현금 대신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로 바뀐다. 현지 핸드폰이 없으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국에 있는 동안 캐나다가 그립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유학 온 지 5년 만에 한국에 돌아가는 기회. 이국 생활에 지칠 때마다 한국만 가면 모든 것이 다 좋기만 할 것이라 상상한다. 그런데 막상 가서 지내는 동안 이방인 된 듯한 느낌이랄까,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 힘든 묘한 느낌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더니 다시 미국에 돌아와 비행기에서 내릴 때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이 든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느낌에 스스로 놀라고 의아했었다. 우리나라 한 대기업의 해외 파견자들 사이에 회자하는 흥미로운 이야기. ‘중국으로 발령 나면 배우자가 두 번 운다’고. 설명은 이렇다. 중국으로 발령을 받고 집에 돌아가 소식을 전하면 배우자가 ‘왜 하필이면 중국이냐’며 가기 싫다고 울고, 가서 몇 년 살다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면 오히려 그때는 ‘돌아가기 싫다’며 운다는 것이다. 떠나는 길도 돌아오는 길도 모두 만만치 않은 글로벌 여정의 복잡함, 그리고 오묘함.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처럼 객지의 삶은 힘들다. 물 바뀐 물고기, 옮겨 심은 나무, 외국 생활하는 사람. 다 비슷하다. 처음에는 시들시들하다가 조금씩 나아진다.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원동력이 적응력이지만, 우리의 적응력은 무한하지 않다. 오히려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문화 환경에 들어가면 제한된 적응력 때문에 고생을 한다. 극복을 못 하는 사람들은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익숙한 환경인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이 스트레스? 얼핏 이해가 어렵지만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 일컬어 ‘역문화 충격’(reverse culture shock). 흥미로운 것은 역문화 충격이 문화 충격보다 더 힘들다는 점. 왜 그럴까? 예상치 못했던 충격이라 그렇다. 외국에 갈 때는 힘든 걸 예상하지만 고국에 돌아올 때는 자신도 고국도 그사이 바뀐 것을 모르고 익숙환 환경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편안함을 예상했다가 어려움을 당하니 당황하게 된다. 회사가 귀환자들의 역문화 충격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가중시키기도 한다. 한 대형 은행에서 글로벌 선진 금융 기법을 배워 오라고 해 뉴욕으로 파견을 나간 K. 일년 동안 열심히 배운 뒤 한국에 돌아오니 그사이에 잊혀진 존재가 돼 있다. 국제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지방의 한 부서로 발령을 받고 크게 실망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알고 귀환 발령을 받으면 아예 현지에서 사표를 내고 그곳에 눌러앉는 사례도 많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시대에 개인을 넘어서 회사, 크게는 국가적 손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돈의 관점에서만 볼 일은 아니다. 리암은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캐나다로 돌아온다. 수도 시설이 없어 우물 하나 파는 데 드는 비용이 400만원. 가난한 주민들은 꿈도 못 꾼다. 리암은 강물을 끌어다가 식수 및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 와중에 말라리아에도 걸린다. 그리고 캐나다로 돌아오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물을 펑펑 허비하는 사람들. 충격을 받는다. 자신에 대한 충격. 리암은 바뀐다. 물통에 물을 받아 샤워를 한다. 시인 프루스트는 말한다. 진정한 여정의 목적은 새로운 경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글로벌 여정의 궁극적 목적도 내 나라 및 나 자신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얻는 일이다. 역문화 충격이란 그 눈이 내 안에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겪는 탄생의 고통이다.
  • [노주석의 서울살이] 표석이 불친절하다

    [노주석의 서울살이] 표석이 불친절하다

    서울은 오래된 도시다. ‘정도 600년’이라는 옛 구호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도 더러 계시지만 ‘서울 2000년’설이 정립된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로마처럼 2000년 된 판테온 신전의 실물을 보여 줄 수 없는 게 서울의 한계다. 그렇다고 서울의 기원을 무작정 늘린 건 아니다. 삼국사기의 ‘한성백제 기원전 18년 건국’ 기록을 우리 손으로 부인할 까닭은 없지 않은가. 서울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한강의 기적이라는 파란만장한 대사건을 거치면서 성장했다. 조선 초기에 비해 인구는 100배가 늘고, 면적은 30배가 넓어졌다. 경기도를 야금야금 서울로 편입시킨 덕분이다. 예를 들어 서울 도봉구는 일제강점기에는 경기도 양주군과 고양군이었는데 1949년에 서울로 편입됐다. 서울은 지구상에서 가장 압축적으로 성장한 글로벌 도시다. 문화재 약탈·파괴와 역사왜곡, 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역사의 향기는 자취를 감췄다. 원주민이 사라지고, 정체성을 상실한 서울은 ‘이방인의 도시’, ‘만인의 타향’이 됐다. 서울은 표석(標石)의 도시다. 사라진 것에 대한 ‘애도의 염’으로 가득 찼다. 불행하게도 300여개의 표석이 남았을 뿐이다. 종로·중구 도심에만 표석의 70% 이상이 몰려 있다. 오래된 도시가 남긴 역사문화의 파편이다. 표석은 특정 시공간을 거쳐 간 인물이나, 발생한 사건의 전말을 묵묵히 말해 준다. 어떤 사람과 사건을 통해 명멸하고 진화했는지 온몸으로 증언한다. 도시의 사연을 전해 주는 표석은 거리 인문학의 보물 창고다. 거리의 인문학 열풍이 뜨겁다. 인문학을 즐기려고 너나없이 거리로 나선다. 서울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서울의 역사성을 느끼려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장소의 역사에 한 번 놀라고, 장소의 끈질긴 관성에 두 번 놀란다. 필자가 표석의 숫자를 300여개라고 애매하게 표기한 것은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 어려워서다. 표석의 명멸과 부침 그리고 진화가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표석의 도시, 서울의 표석 현황을 알려 주는 곳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0년에 개발한 문화콘텐츠닷컴 자료에 의존해야 한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표석은 1985년부터 모두 363개가 설치됐다고 한다. 또 다른 서울시 자료를 보면 335개가 세워졌다고 적혀 있다. 317개에서 363개까지 고무줄처럼 오르내린다. 건립, 철거, 수정되기를 거듭한 탓이다. 다른 한편으론 31조원의 예산을 쓰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그 많은 기관, 그 많은 사이트 중에 표석의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는 곳이 없는 탓이다. 역사도시 타령은 공염불이다. 도시 스토리텔링은 구두선이다. 표석 디자인도 어지럽다. 표석의 종류만 7~8가지쯤 된다. 판석기본형에 판석기둥형, 주사위형, 벽돌기둥형, 책형, 책상형, 벽돌벽부형까지 너무나 다양한다. 진짜 표석인지 분간도 어렵다. 건립 주체를 알 수 없고, 소재도 벽돌과 함석, 유리, 자연석 등 중구난방이다. 다양화도 좋지만, 이 정도면 표석이 아니라 차라리 표지판이나 안내판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표석의 위치가 이리저리 바뀌는 것도 마땅치 않다. 도로가 새로 놓이거나 화단이나 전봇대가 바뀌면 슬그머니 딴 곳에 가 있다. 늘 보도 모퉁이에 없는 듯 숨어 있다. 표석의 권위는 사라지고, 장기판의 졸 신세다. 표석의 문구는 불친절의 극치를 이룬다. 무얼 알려 주려는지 요령부득이다. 친절한 표석이 서울의 표정을 풍부하게 하고, 정체성을 세우는 기본이 된다. 300개가 넘는 표석을 관광자원화해야 비로소 자랑할 만한 역사도시가 될 것이다.
  •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더 낮은 곳으로… 순례하는 여행자, ‘손’보다 ‘발’로 먼저 쓴 서울 이야기

    [김응교 교수-작가의 탄생] 더 낮은 곳으로… 순례하는 여행자, ‘손’보다 ‘발’로 먼저 쓴 서울 이야기

    정말 칠십대 노인일까. 너무 젊게 보이는 그가 다가왔다. 낮게 웃는 편한 얼굴을 대하자 190㎝ 정도의 큰 키가 주는 위압감은 금세 사라졌다. 2013년 10월 12일, 동국대 정각원에서 그와 대담하기로 한 날이었다.“김 선생 작품 중 영어로 출판된 책이 있어요? 읽고 싶어요.” 만나자마자 상대의 책을 읽고 싶다고 묻는 외국 작가는 처음이었다. 후에 알았는데 그는 만나기로 한 작가가 있으면, 되도록 그의 작품을 읽고 만난다고 한다. 상대의 책을 읽고 만나려는 예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날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모두 겸손하게 받아줬다. ●“서울은 아름답게 반짝이는 깨진 유리 간직”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78)는 1940년에 프랑스 니스에서 영국계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개할 때 그는 프랑스혁명 때 공포정치를 피해 모리셔스 섬에 정착한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말하곤 한다. 태어나자마자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에서 빈궁한 생활을 경험했고,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에서 지냈던 체험은 그의 소설 곳곳에 나온다. 오랫동안, 나는 어머니가 흑인이기를 꿈꿔 왔다. 아프리카에서 이 나라, 이 도시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그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난 어떤 이야기를, 어떤 과거를 혼자 지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은퇴할 나이가 되어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프리카인은 바로 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이해해 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 추억을 담아 이 작은 책을 썼다. (르 클레지오, ‘아프리카인’, 문학동네, 2005, 7~8쪽) 1960년 젊은 시절,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에 대항하는 프랑스군에 참전해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다는 그는 태국에서 지내며 유교, 도교, 불교적 가치를 익히기도 했다. 그는 늘 순례하는 여행자였다. 그의 노마드적 삶은 고독한 구도자의 순례길이었다. 그가 살아온 이력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한 인물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소외된 사람들, 제3세계의 시각에서 그는 글을 써 왔다. 단순한 이국인의 눈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소설 속에 들어가 그늘진 등장인물의 말을 대신해 주려고 한다. 작중인물에 작가가 거의 빙의(憑依)된 상태라고나 할까. 어릴 때 아버지가 보는 잡지에서 한국전쟁 사진을 처음 봤던 그는 2001년에 한국을 방문하고 독학으로 한글을 공부한다. 2007년부터 1년간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지내며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 “김소월 시 ‘진달래꽃’, 윤동주 시 ‘별헤는 밤’, 황석영 소설 ‘삼포 가는 길’, 이청준 소설 ‘예언자’를 좋아합니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문학 작품도 대부분 여행이나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담은 작품들이다. 지난해에 낸 중편소설 ‘빛나’를 읽으면 그가 서울을 샅샅이 몸으로 체험하며 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는 유리창에 비친 사람들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 영상은 흐릿하기 일쑤다. 게다가 내가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도 금방 들킨다. 모든 사람이 유리창을 향해 있기에, 그들에게도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잘 보인다. 그런 면에서 버스가 훨씬 쉽고 편하다. 낮에는 창문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마음껏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르 클레지오, ‘빛나’, 서울셀렉션, 2017, 14쪽) 그는 손으로 쓰기 전에 발로 쓴다. 몸으로 세포로 체험해 보고 쓴 글이다. 이 소설에는 어떤 길이 있을까. “흥미로운 서울을 저는 ‘깨진 거울’로 생각합니다. 전체보다는 깨진 조각으로 빛나고 있는 유리 같아요. 그래서 서울은 다양한 인상을 줘요. 판타지가 넘치고, 다양한 상상력이나 감성이 충만합니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깨진 유리를 서울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깨진 유리처럼 조각조각 이야기들이 나온다. 주인공 ‘빛나’는 전신이 마비된 다른 여성에게 서울에서 본 다섯 가지 이야기를 해 준다. 이야기들은 전혀 관계가 없으면서도 각기 나름의 빛을 반사한다. 처음엔 집중해서 읽기가 어렵다. 너무도 어려운 퍼즐 맞추기와 비슷하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서로 연결된다. 지하철 같은 칸에 탔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운명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빛나’, 190쪽)조금 맞추기 시작하면 조각난 이야기끼리 연결되면서 헤어나기 힘들 정도의 흡인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첫째, 열아홉 살 주인공 ‘빛나’는 전라도에서 자라다 서울로 왔다. 반지하방에서 쥐와 고군분투하던 빛나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여인 살로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알바를 맡는다. 고단하게 살아가는 ‘빛나’는 청년실업시대의 청년이다. ‘빛나’는 얼굴 없는 스토커를 통해 대도시의 공포를 체험하기도 한다. 딸이 둘 있는 르 클레지오는 여성을 소설 주인공으로 쓰길 좋아하는데 이 소설 역시 여성이 주인공이다. 둘째, 희귀한 병에 걸려 전신마비가 된 채 죽어가는 40대 환자 살로메와의 만남이다. 대도시 서울에 사는 몸과 마음이 병든 ‘부서진 주체’의 모습이다. 병든 그녀는 더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빛나’를 따라다니는 스토커를 고용하기도 한다. 셋째, 비둘기를 키우는 조한수씨 부부 이야기다. 38선을 넘어오던 어릴 때, 조씨 어머니는 비둘기 한 쌍을 데려왔다. 나이가 든 조씨는 비둘기에게 북녘 고향땅으로 편지 나르는 훈련을 시킨다. 북쪽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며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는 슬픈 실향민의 모습이다. 넷째, 미용실에 홀연히 나타난 키티라는 고양이 이야기다. 키티 목에 걸린 작은 가방에 쪽지를 넣으면서 주민들은 대화를 한다. 키티가 전해주는 신비한 이야기를 미용실 원장은 기다린다. 메신저 고양이의 역할에 어두운 동네에 작은 빛이 드리운다. 아파트에 고립된 사람들을 따뜻하게 이어 주던 키티는 어느 날 조용히 사라진다. 다섯째, 나비라는 아이돌 가수의 길이다. 교회에서 찬양하면서 행복했던 나비는 목사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아픔을 이겨내고 가수의 길을 걷던 나비는 마침내 탐욕스러운 사내의 희생양이 되어 모든 걸 빼앗기고 목숨을 끊는다. 아이돌 스타의 성공과 슬픔, 그 그늘진 뒷골목이다. 여섯째, 부모에게서 버림받는 아이와 몰래 그 아이를 키우는 간호사 이야기다. 보육원에서 양부모를 기다리는 아기들과 달리 자란 나오미는 성장하면서 이상한 능력을 보인다.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 영혼이 병든 환자들, 분단으로 고통받는 실향민, 소비사회에서 소비되는 아이돌,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 등 작가가 조명하는 여섯 가지 순례길은 외면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주변인 곁으로 다가가는 그의 관심은 제주도 해녀를 담은 소설 ‘폭풍우’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2011년 명예 제주도민이 됐다. 작가는 방배동 서래마을, 신촌, 당산동, 오류동 등 서울 곳곳을 조명한다. “서울에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살아요. 다채로운 이야기와 신화가 창조되는 서울은 ‘다층성’이 두드러지는 공간이지요. 풍부한 상상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서울의 다층성을 강조하는 그의 말대로, 이 작품에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이 등장한다. 대도시의 풍광, 분단 문제, 종교 문제, 대중문화의 문제 등 다양한 주제들이 녹아 있다. 상황 설정이나 섬세한 묘사가 자연스러워 읽다가, 가끔 한국인이 쓴 소설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은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황금물고기’ ‘라가’ ‘빛나’에는 비극적인 운명에 견디며 맞서는 인물들이 나온다. 이 모든 이야기를 나누던 살로메가 세상을 등지고 ‘빛나’는 단독자로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강남에는 비가 내리고, 인천 쪽에는 태양이 빛난다. 비를 뚫고 북한산이 북쪽에서 거인처럼 떠오른다. 이 도시에서 나는 혼자다. 내 삶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빛나’, 237쪽) ‘빛나’라는 이름은 ‘빛나다’에서 만든 이름이다. 화려한 도시 이면에 울적한 어둠을 담아낸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빛나’라는 제목처럼 빛나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처받은 사람들 곁으로 처음 만났던 6년 전 그날, 그는 넘어져 팔을 크게 다쳐 병원에 들러 일곱 바늘을 꿰매고 왔다. 오랜 강연과 대담을 마치고 사람들이 그 곁으로 와서 사진 찍으려 했다. 붕대를 감은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계속 사인해줬다. 사진 찍기를 바라는 분들을 외면치 않고 나직하게 웃으며 받아주셨다. 사진 찍다가 옆에 앉은 나에게 또 “김 선생의 비평이든 작품을 읽고 싶다”고 또 말했다. 나는 선생님 귀에 가까이 대고 소곤대듯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는 수준이 낮은 작가예요.” 그러자 그는 갑자기 내 오른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힘내라는 뜻일까. 그 미소와 큰 손길이 고마웠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가다가 광화문에서 시위대를 만났다. 그는 저 시위는 어떤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세세히 물었다. 그날, 왜 그가 모리셔스 섬을 점령한 영국을 부당하게 생각하여 아버지의 모국어인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작가 언어’로 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이민자들은 사회를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존재”라고 했던 그의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촛불혁명을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으로 평가하는 르 클레지오는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모든 사람, 특히 낮고 상처받은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는 문사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중국서 뺨맞은 기자, 트럼프 보좌관으로 일한다

    중국서 뺨맞은 기자, 트럼프 보좌관으로 일한다

    전직 베이징 특파원들이 중국에 가장 적대적인 정책을 펴는 미국과 호주에서 관료로 일하며 중요 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인 매트 포팅어(45)다. 포팅어는 미 매사추세츠주립대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로이터통신에서 3년 기자 생활을 한 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합류해 2001년부터 중국 베이징 특파원으로 활약했다. 그가 WSJ에서 미 해병대로 전직하기 직전에 쓴 ‘펜보다 강하다’란 칼럼을 보면 베이징 특파원들이 얼마나 중국 정부로부터 혹독한 대접을 받는지 잘 드러난다.  7년간 중국에서 지낸 포팅어는 중국 정부가 핵연료를 다른 나라에 판다는 내용을 취재하다가 스타벅스에서 정부 관련자로부터 얼굴을 맞았다. 지방을 돌며 관리들의 부패상을 취재하다가 공안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취재수첩을 일일이 찢어 변기에 흘려보내야만 했다. 포팅어는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던 중 31살의 나이에 미 해병대에 자원입대하기로 결심하고 5년간 근무했다.  해병대 근무를 시작하기 전 포팅어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 서방의 시각은 이방인일 뿐이다”라며 “언론 자유와 투표권이 없는 중국에서 근무하며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미국을 보호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됐다”고 전했다. 현재 포팅어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에 동행하고, 대북 정책에 대한 백 브리핑을 하는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외교 정책을 세우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호주는 중국을 겨냥한 내정간섭 금지법을 추진하는 등 지구 상에서 가장 중국과 불화하는 국가다. 외국 스파이의 정치 로비 활동 등을 금지한 내정간섭 금지법의 토대를 만든 장본인은 바로 전직 베이징 특파원으로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페어팩스 미디어에서 일했던 존 가노다. 호주 국가안보 정보기구(ASIO)에서 말콤 턴불 호주 총리의 자문관으로 2년간 일했던 가노는 지금은 공무원 신분을 벗어나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지난해 베이징 외신기자협회(FCCC)는 ‘접근 금지’란 연례 취재 환경 보고서를 펴냈다. 모두 218명의 회원 가운데 117명이 설문에 응답했으며 이 가운데 40%가 취재환경이 전년보다 악화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6년 보고서의 29%보다 더 늘어난 수치다. 중국 정부의 취재 활동 제한은 비자 발급 거부, 감시, 구금 등으로 이뤄지며 특히 신장 자치구와 북한 접경지대에서 취재 거부를 당한 사례가 많았다.  두 명의 전직 베이징 특파원을 모두 잘 아는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 정부는 전직 베이징 특파원들이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만약 중국이 특파원들에게 좀 더 나은 대접을 했다면 이들의 중국에 대한 강경한 시각이 바뀔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증오·이념의 ‘페스트’ 극복하는 분단 한반도 은유”

    “증오·이념의 ‘페스트’ 극복하는 분단 한반도 은유”

    “페스트(흑사병)는 ‘보이지 않는 공포’라 더 두렵고 정신마저 황폐화시키는 존재예요. 스스로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그래서 헌법마저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에서 가해진 ‘블랙리스트’도 일종의 페스트죠. 하지만 공포와 부조리가 전부는 아니에요. 카뮈는 화해와 휴머니티, 저항 정신을 통해 페스트를 극복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 줘요. 그게 페스트를 국립극단 무대에 올리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해요.”지난 18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페스트’는 박근형(55) 연출가가 5년 만에 국립극단에 복귀한 작품이다. 그가 2013년 9월 국립극단에서 초연한 연극 ‘개구리’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악평을 받으면서 정부 검열과 블랙리스트 사태의 발단이 됐다. 지난 22일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박 연출가와 페스트의 무대를 만든 박상봉(39) 디자이너를 만났다. 박 연출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부터 ‘페스트’까지 두 사람이 ‘합’을 맞춘 작품만 7편에 달한다. 1947년 발표된 ‘페스트’는 ‘이방인’과 함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카뮈의 대표작이다. 지중해의 소도시 ‘오랑’에서 어느 날 쥐들이 떼로 죽은 후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처절하게 죽어간다. 페스트가 점령한 도시는 외부와 차단돼 고립되고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카뮈의 페스트는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변주된 고전이지만 2015년 한국에서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라는 현실 상황이 됐다. 페스트를 직접 각색한 박 연출가는 “병균이 재난이 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한국 사회와 연결됐다”며 “하지만 작품을 구상하면서 동시대 문제로 다루고 싶었던 건 메르스가 아니라 증오와 이념이 지배하는 분단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카뮈의 페스트를 비틀어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 빗댄 건 ‘박근형표’ 반전이었다. 그는 원작의 해안 도시 ‘오랑’을 연극에서는 고립된 섬으로 바꾸고, 거대한 철문 방화벽을 무대에 내리는 방식으로 한반도의 ‘장벽’을 상징화한다. 박 연출가는 오랑을 한반도로, 장벽은 남북을 가른 휴전선으로 대입해 연상했다고 한다. “남북 간 적대감이야말로 거대한 페스트 같은 거예요.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는 집단 최면이나 광기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원인인 페스트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그것에 대응하는 태도, 그것을 극복하고 마침내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박 디자이너는 “작품에서 보면 권력자가 장벽을 더 높게 올리고, 군인들이 감시하면서 공포를 키우고, 페스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전가한다”며 “박 연출가가 무대에 장벽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아, 남북 분단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박 디자이너의 토로다. “장벽이 필요하다는 연출가의 주문을 어떻게 소화할까 꽤 고민했어요. 그러다 철로 된 방화벽을 떠올렸죠. 그건 소방법에 따라 공연장에 설치돼 있던 진짜 방화벽이에요. 큰 부담을 덜었죠.” 연극 ‘페스트’의 무대는 극도로 절제돼 있다. 격랑이 이는 바다, 바람 등 자연의 물성을 이미지화한 수조와 커튼을 제외한 소품이나 장치는 무대에서 치워 버렸다. “연극의 공간은 심리적 공간이에요. 고립감이든 공포심이든 배우들이 표현해 내고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박근형 연출가의 미학은 소극장에서 더 생생해져요. 군더더기 없는 무대를 만든 이유죠. 배우들의 존재감이 제대로 드러나는 무대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한 결과물이죠.”(박상봉)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시간을 돌린 도시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시간을 돌린 도시

    드레스덴은 흔히 ‘엘베강의 피렌체’라 불린다. 바슈타이 일대를 ‘작센 스위스’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왜 ‘자체발광’의 아름다움을 가진 곳에 굳이 이웃 나라의 도시 이름을 얹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만큼 고전적인 풍경을 갈무리한 곳이라 이해하면 될 듯하다. 독일 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등 연합국의 폭격으로 도시의 90% 이상이 파괴됐던 곳이다. ‘융단 폭격’의 기원이 된 곳도 바로 여기다. 하지만 드레스덴 사람들은 절망의 땅에서 희망을 일궜다. 전쟁만큼 고된 시간을 거쳐 거의 완벽하게 도시를 되돌려 놨다. 이방인이 이 도시에서 마주하는 건 우아한 중세의 시간이다. 엘베강을 따라 돌거나, 두 발로 옛 시가지를 걸을 때마다 늘 경탄할 만한 풍경들이 따라온다.먼저 옛 시가지의 프라우엔 교회부터 찾는다. 바로크풍의 거대한 돔이 인상적인 교회다. 드레스덴 재건의 상징 같은 곳이기도 하다. 2차대전 뒤 드레스덴 사람들은 산산이 부서진 프라우엔 교회의 돌들을 모아 번호를 매겨 보관했다고 한다. 그 돌 하나하나에 재건의 희망과 의지도 새겼을 터다. 교회 재건의 모티브를 제공한 이는 독일 태생의 미국인 생물학자 귄터 블로벨이다. 그가 1999년 노벨 의학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을 모두 기부한 이후 국민 성금과 정부의 지원이 이어졌다. 프라우엔 교회는 안팎이 예술 작품이다. 외형은 웅장하고 내부는 우아하다. 교회 가장 높은 곳은 전망대다. 늘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전망대에 서면 여태 지나온 곳과 앞으로 가야 할 곳이 한눈에 담긴다.드레스덴에서도 바로크 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건물은 츠빙거 궁전이다. 18세기 초 지어졌다가 2차대전 때 완파됐고, 이후 20년간 복원 작업을 거쳐 옛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는 미술관, 박물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미술관이 인상적이다. 대표적인 소장품은 ‘시스티나의 성모’다. 르네상스 시대 3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라파엘로의 걸작이다. 그림은 1514년 완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교황과 성녀 바르바라를 정돈된 구도로 그려 냈다. 이 밖에 렘브란트의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1635), 베르메르의 ‘뚜쟁이’(1656년) 등 수많은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드레스덴을 말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1670∼1733)다. 작센의 제후이자 폴란드의 왕이었던 인물이다. 마초들에겐 354명의 자녀를 뒀다는 그의 ‘전설적인 강건함’에 더 귀가 솔깃할 법하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선출권을 가진 선제후였던 그는 당대 최고의 바로크 예술품들을 수집하고 드레스덴궁을 미술관처럼 꾸미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곳이 바로 현 드레스덴궁의 ‘그린 볼트’다. 은의 방, 청동의 방 등 7개의 방에 당대 최고의 예술품들을 채워 넣었다.가장 널리 알려진 건 보석의 방이다. 41캐럿짜리 녹색 다이아몬드 등의 보물들이 가득하다. 그가 수집한 예술품들은 지난해 말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왕이 사랑한 보물’전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선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 전시되지 못한 작품이 ‘무굴 제국 아우랑제브 황제의 왕좌’다. 무굴제국 황제의 연회장을 보석과 귀금속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5000개의 다이아몬드와 각각 500개의 루비, 에메랄드가 쓰였다고 한다. 전시된 보물들은 진품이다. 2차대전 동안 작센 스위스 국립공원에 보관된 덕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브륄의 테라스’도 필수 방문 코스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유럽의 발코니”라고 상찬했다는 곳이다. 원래 강변의 성벽이었다가 사람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브륄의 테라스’라 불리게 됐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빼어나다. 옛 시가지의 건물과 발 아래 엘베강 일대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테라스는 무료로 상시 개방된다. 아울러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심장이 묻혔다는 가톨릭 궁전교회와 국립 오페라하우스, 슈탈호프 외벽에 그려진 101m 길이의 ‘군주의 행렬’ 벽화 등도 빠짐없이 둘러봐야 한다.이제 엘베강을 따라 드레스덴을 돌아볼 차례다. 수백년 전부터 이 강을 오갔던 증기선들이 여태 운항하고 있다. 물론 증기선 안팎으로 시설 개·보수는 했지만, 증기를 이용해 수차를 돌리는 방식은 여태 이어지고 있다.‘브륄의 테라스’ 앞 선착장이 출발지다. 증기선이 물살을 헤치며 나갈 때마다 사뭇 다른 풍경들이 다가섰다 사라진다. 필니츠궁은 또 하나의 바로크 걸작으로 꼽히는 건물이다. 아우구스투스가 부인을 위해 지은 여름 별궁으로 알려졌다. 강변 쪽 건물은 ‘물의 궁전’, 그 뒤로 바로크 양식의 정원을 갖춘 건물은 ‘산의 궁전’이라 불린다. 저물녘에는 공연도 열린다. 증기선 관광객을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이긴 해도 거대한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오페라를 감상하는 듯하다. 드레스덴은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여러 차례 방문했던 곳이다. 1869~71년 사이엔 실제 거주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의 딸이 태어나고 드레스덴의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디 이터널 허즈밴드’, ‘악령’ 등의 초고가 작성되기도 했다. 엘베 강변에 그의 동상이 서게 된 데는 이 같은 사연들이 얽혀 있다. 2006년엔 메르켈 독일 총리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해 동상 제막식을 갖기도 했다. 글 사진 드레스덴(독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600년 역사 깨운다 광장의 울림 퍼진다 ‘서울의 찬가’ 울린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600년 역사 깨운다 광장의 울림 퍼진다 ‘서울의 찬가’ 울린다

    서울신문이 지난 12일부터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 등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를 시작했다. 올해로 세 번째다. 미래유산이란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진 않았지만 미래 세대에 물려줄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서울 근현대 문화유산이다. 지난해 투어와 비교할 때 유형의 유산에서 무형의 유산으로, 사대문 안에서 사대문 밖으로 답사 영역을 넓힌 게 특징이다. 투어는 지난해 참가자들이 재체험을 희망한 사대문 안 주요코스 6개, 문학과 영화를 중심으로 새로 선정된 무형 서울미래유산 6개, 그리고 지역별·어젠다별·계절별 코스 23개 등 총 35개 코스로 편성했다. 오는 12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열리며 혹서기인 7, 8월 두 달 동안은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5회 동안 야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2일(토)과 마지막 날인 9월 26일(수) 2회는 ‘한가위 특별투어’로 운영한다. 전문성을 갖춘 18명의 베테랑 해설자가 투입되며 매회 3명 이상의 진행요원이 안전한 투어를 보장한다. 국내 도보답사 프로그램 중 처음으로 오디오 가이드시스템을 도입했다. 소음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뿐더러 해설사 앞에 있어야만 들리던 불편도 해소할 수 있어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편안하게 답사여행을 할 수 있다. 이르면 7월부터 서울시 각 중학교에서 추천, 선발된 ‘미래청소년 기자단’도 동행해 탐방 분위기를 풋풋하게 띄울 예정이다. 참가 신청은 서울미래유산(futureheritage.seoul.go.kr)에서 참여하기, 탐방, 접수 순으로 하면 된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그주 참여자를 선착순으로 30명 받는다. 대기자도 10명 선착순 모집한다. 무료다.# 도로원표·광화문지하보도…걸음마다 미래유산 2018년 첫 투어가 시작된 5월의 두 번째 토요일인 지난 12일 온종일 비가 내렸다. 이날 10시쯤 종각역 4번 출구 앞에서 집결해 오디오 가이드시스템을 지급한 뒤 사용법을 시연할 예정이었지만 빗줄기가 굵어져 역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등행사 등으로 광화문과 종로 일대 차량 진입이 통제돼 불참 및 지각자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우였다. 답사용 단체 카톡방에서 교통통제 및 집결지 변경을 알리는 긴급 메시지를 수신한 예약자 30여명이 예외 없이 시간을 지켰다. 형형색색 우산을 받쳐 든 참가자들은 진행자들의 ‘철통 호위’를 받는 가운데 이기훈 해설사와 함께 정시에 보신각을 출발했다. 지난달 새로 설치한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을 보고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서울 공인 맛집인 청일집, 미진, 청진옥을 둘러봤다. 중학천을 따라 고종즉위40년기념 칭경비전과 교보문고 앞 벤치에 편안하게 모신 ‘3대’의 작가 횡보 염상섭도 만났다. 도로원표와 광화문지하보도, 충무공 동상, 세종대왕 동상을 차례차례 누볐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에서 비에 젖은 백악산과 경복궁의 운치를 만끽한 뒤 세종로공원에 서 있는 ‘서울의 찬가’ 노래비에 얽힌 해설과 세종문화회관 40년사를 들으면서 비에 젖은 세종로 투어를 마무리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처음 지급된 고감도 오디오 가이드시스템 덕분에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큰 불편 없이 낭만적인 투어를 즐길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참가자 단체 카톡방에서 바로바로 찾아볼 수 있는 해설 자료는 덤이었다. ‘한국의 얼굴’이자 서울의 중앙인 광화문광장과 세종로의 지층은 현재 아스팔트 지상보다 무려 8m 아래에 있다. 태조 이성계와 삼봉 정도전이 활보하던 최초의 인공도로면 위에 조선 중후기 도로 층이 쌓이고, 또 19세기와 일제강점기 때 지층 등 모두 11개의 지층이 겹겹이 덮여 지금의 표면을 이뤘다. 광화문 8m 지층 속에 600년 묵은 역사가 차곡차곡 쌓인 셈이다.# 서울의 주축은 백악~경복궁~숭례문~관악 서울은 산과 성곽의 도시이다. 유교와 풍수의 원리가 겹겹이 에워쌌다. 성곽으로 둘러싼 경계에 내사산이 있고 외곽에 외사산이 있다. 내사산 북쪽의 백악산(북악산)은 현무, 동쪽의 낙산(낙타산)은 청룡, 서쪽의 인왕산은 백호, 남쪽의 남산(목멱산)은 주작이 각각 수호신이다. 외사산 북쪽 삼각산(북한산)은 백두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조산(祖山·풍수설에서 혈에서 가장 멀리 있는 용의 봉우리)이요, 지리산에서 뻗은 관악산은 아침마다 임금을 알현하는 조산(朝山)이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은 북악을 조산으로 자리를 잡았다. 근정전은 도시의 중앙에서 서쪽으로 쏠린 상태에서 남향을 바라보고 앉았고 남북 간 축선인 주작대로는 삼각산과 관악산 축선상에 놓였다. 도시 중앙에 동서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종로(운종가)이다. 오늘의 세종로사거리에는 황토마루(黃土峴)라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었다. 관청가인 육조거리와 운종가가 만나는 지점이다. 육조거리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주작대로는 직통으로 연결하지 않았다. 광화문광장 끝자락에서 왼쪽으로 꺾어 종로 보신각까지 간 뒤 지금의 남대문로를 통해 숭례문까지 이르는 이른바 정(丁)자형 길이다. 서울의 주축(主軸)은 백악~경복궁~숭례문~관악이었다. 서울 중앙의 매력에서 음식을 뺄 수 없다. 서울음식이란 무엇일까. 명물 음식점은 도심재개발로 옛 터를 잃고 빌딩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투어단은 이날 빈대떡의 청일집, 해장국의 청진옥, 메밀국수의 미진을 순례하면서 서울음식의 정체성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미래유산 목록에 오른 42개의 음식점 중 종로구에는 이들 3곳을 포함해 이문 설농탕(설렁탕), 진아춘(중식), 형제추어탕(추어탕), 열차집(빈대떡), 원조할머니 기름떡볶이(떡볶이), 유진식당(냉면) 등 모두 9곳이 포진한다. 중구에는 용금옥(추어탕), 은호식당(꼬리곰탕), 문화옥(설렁탕), 우래옥(냉면), 안동장(중식), 명동 할매낙지(낙지볶음), 부민옥(해장국), 오장동 함흥냉면(냉면), 고려 삼계탕(삼계탕), 유림면옥(메밀국수), 산골막국수(막국수), 진주회관(콩국수), 라 칸티나(양식), 무교동 북어국집(북엇국), 전주중앙회관(비빔밥) 등 무려 15곳이 선정됐다. 종로·중구 2개 구에만 전체의 절반이 넘는 24곳이 집중돼 있다.# 궁중요리 등 서울 전통음식은 잊혀져 가 한결같이 서민음식이다. 궁중요리와 반가음식의 고향인 서울에서 살아남은 미래유산은 서울의 전통요리가 아니라 지방과 외국에서 온 이방인들이 퍼뜨린 팔도요리와 외국음식이란 점이 특징이다. 보통 서울음식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궁중요리와 설렁탕, 빈대떡, 민어탕, 불고기에서 서울음식의 지평이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서울음식은 종로의 설렁탕과 빈대떡, 신당동 떡볶이, 을지로 평양냉면과 골뱅이, 동대문 닭 한마리, 오장동 함흥냉면, 신림동 순대, 마포 돼지갈비, 왕십리 곱창, 장충동 족발, 성북동 칼국수처럼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특정 음식이 손꼽힌다. 서울로 모여든 이북 사람, 영호남 사람이 음식과 함께 서울이라는 문화공동체 안에 두루 섞였다. 비빔밥 문화이다. 안타깝게도 서울토박이 음식은 뒷전으로 밀렸다. 글 노주석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이원석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사방 동촌(대학로 일대) ●일시 및 집결장소 : 5월 19일(토) 오전 10시 혜화역 2번 출구 마로니에공원 좋은공연안내센터 앞
  • 미공개 5·18 관련 영상물, 38년 만에 일반에 첫 공개

    미공개 5·18 관련 영상물, 38년 만에 일반에 첫 공개

    9일 미공개 5·18 관련 영상물이 38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됐다. 첫 영상은 1980년 5월 21일 낮 광주 금남로. M16 소총을 등 뒤로 가로질러 맨 공수여단 계엄군 병력과 주먹을 하늘로 내뻗는 군중이 대치한다. 계엄군과 군중 사이에서는 확성기를 손에 쥔 여성이 애절한 몸짓으로 시민을 향해 외친다. 이 여성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배우 이요원이 열연한 ‘신애’의 실존인물 전옥주씨다. 차창이 산산이 부서진 택시들이 바리케이드처럼 방치된 도로를 따라 무장한 계엄군 병력이 대열을 맞춰 이동한다. 적십자병원, 전남대병원, 광주기독병원으로 옮겨간 흑백 영상은 참혹하게 훼손돼 태극기에 덮인 주검들을 비춘다. 이날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에서 상영한 5·18 최초공개 영상은 ‘택시운전사’와 ‘화려한 휴가’를 통해 은막에 올랐던 장면들을 연상케 했다. 직접 마주했던 그 날,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장면이 펼쳐진 72분 동안 객석을 가득 채운 250여명 관객 사이에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잔학한 폭력에 학생시위가 시민항쟁으로 치달은 20일부터 시내버스와 택시가 시민을 태우고 다시 거리를 달리는 30일까지 광주 상황이 흑백 영상으로 부활했다. 음성은 녹음되지 않았지만, 항쟁에 나선 군중의 함성과 주검을 붙들고 오열하는 유가족의 통곡이 화면을 뚫고 나와 극장 안을 메아리치는 듯했다. 고립된 도시에서 주먹밥과 음식을 나누고 헌혈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흑백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광주로 모여든 외신기자와 통역사 등 진실을 기록하고 노력했던 이방인의 모습까지 담담하게 담아냈다. 사진으로만 접했던 5월 30일 망월동 묘지 상황도 살아 움직이는 영상으로 펼쳐졌다. 카메라는 도로정비용 트럭 짐칸에 실려 온 관들, 상복을 입은 아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은 상복 차림의 여성을 따라가자 객석 곳곳에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나의갑 5·18기록관장은 이날 상영에 앞서 “이 영상에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슬프거나 씩씩하거나’로 짓고 싶다”라며 “광주는 참혹하고 외로웠지만, 피를 나누고 주먹밥을 나눴기에 씩씩했을 것이다. 광주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한민국 만세!” 샘 오취리, 남북정상회담 소감...‘한국인 오칠희 씨!’

    “대한민국 만세!” 샘 오취리, 남북정상회담 소감...‘한국인 오칠희 씨!’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가 남북정상회담에 감격했다.27일 방송인 샘 오취리(28·Okyere Samuel)가 SNS를 통해 벅찬 소감을 전했다. 오취리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진짜 감동! 이건 엄청난 일이고, 역사다. 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사진 속에는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오취리는 이어 “대한민국 만세!”라며 “좋은 결과가 있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를 본 네티즌은 “정말 감동입니다”, “샘 오취리. 정말 뼛속까지 한국인이냐구요”, “역시 대한외국인”, “오칠희! 함께 기뻐해줘서 고마워요”, “한국인 오칠희 씨! 만세!”라는 반응을 보였다. 가나 출신인 샘 오취리는 그동안 우리나라 역사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지난 3.1절에는 SNS에 태극기 사진을 게재하며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오취리가 우리나라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모습에 많은 팬들이 뜨거운 환호를 보내고 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난 남북정상회담은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샘 오취리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글로벌 메타모포시스

    [남상훈의 글로벌 리더십 읽기] 글로벌 메타모포시스

    4월은 잔인한 달. 시인은 노래한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처절하다. 갈라지고 찢어진다. 글로벌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시인의 이야기를 새겨들어야 한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과정은 잔인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환경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이방인을 만든다. 뼛속까지 저려 오는 외로움. 부당한 차별의 억울함.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좋다. 구글은 글로벌 능력을 키우기 위해 인터넷도 되지 않는 개발도상국에 직원들을 던져 놓는다. 매년 이맘때면 나 자신도 이방인이 돼 본다.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마스트리흐트. 유로 연합 조약이 맺어진 유서 깊은 곳. 오래된 골목들이 구불구불 미로처럼 이어진다. 쉽게 길을 잃는다. 학생들이 캐나다와 페루에서 이 구석을 찾아온다.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먼저 이방인이 되는 훈련을 받는다. 무뚝뚝한 이곳 사람들. 생경한 언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방음 유리벽 저편에서 우스꽝스런 표정과 손짓을 해 가며 전화를 걸고 있는 듯하다. 유럽은 매력적이다. 조깅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 간편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호텔을 나선다. 벨기에를 향해 뛴다. 광활한 우주 속의 한 점에 불과한 지구. 그 표면에 임의로 국경선을 그어 놓고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자유를 막고 있는 정치적 현실은 부조리다. 저항하는 마음으로 뛴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비가 나타난다. 아직 때가 안 됐을 텐데. 올해 첫 나비를 유럽에서 만난다. 내 몇 걸음 앞에 내려앉아 날개를 접고 쉰다. 나도 잠시 멈추고 나비를 바라본다. 장자를 생각한다. 깜빡 잠이 든다.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비가 된다. 날아오르는 자유의 느낌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저 아래 보이는 꽃, 언덕, 강, 그리고 마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평화롭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온다. 깬다. 꿈이었구나. 드물게 아름다운 꿈이었는데 더 길게 꾸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다 질문이 생긴다. 나는 무엇인가. 나비 꿈을 꾼 사람인가, 아니면 사람 꿈을 꾸고 있는 나비인가. 왜 장자가 연약한 나비를 골랐을까. 힘센 독수리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덩치와 완력으로 상대방을 강요하는 자는 진정한 리더가 아니다. 몸보다 마음이 따라오게 해야 한다. 그래서 드물다. 나비는 다른 생명체가 갖지 못한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메타모포시스(metamorphosis). 한 마리의 나비가 완성되기 위해 세 번이나 죽었다 살아나야 한다. 알, 애벌레, 고치. 글로벌 리더가 되는 과정은 나비의 메타모포시스를 닮았다. 외국에 나가면 처음에는 보호를 받는다. 알의 단계. 고급 호텔에 묵으며 관광객처럼 즐긴다. 자신들을 맞아 주는 사람들도 각별히 친절하다. 외국 생활이 고국에서의 생활보다 낫다고 느껴진다. 자신의 앞에 놓인 글로벌 여정이 장밋빛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단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알이 쪼개지며 애벌레가 나온다. 애벌레는 갈등의 시기. 바닥에 기어다닌다. 생긴 모습도 징그럽다. 새들이나 다른 곤충들에게 먹히기도 한다. 이방인의 삶이다. 걸어가다 자전거에 부딪힐 뻔한다. 상대방이 오히려 화를 낸다. 현지인들이 적대적으로 보인다. 무시당하고 따돌림받는다. 마음에 상처가 쌓인다. 향수병에 걸린다. 만사가 지루해지고, 짜증을 잘 내며, 냉소적이 된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니 바보가 된 느낌도 든다. 의욕을 잃는다. 포기해야 하는가. 고치가 된다. 답을 구한다. 스스로 성찰한다. 오랜 수감 생활을 마치고 풀려난 만델라가 어느 날 비행기를 탄다. 마침 조종사가 흑인. 순간 만델라의 마음에 불안감이 스친다. 그리고 깨닫는다. 흑백차별 때문에 평생 투쟁하고 감옥까지 갔다 왔는데 그런 내가 흑인을 차별하다니. 그걸 몰랐다니. 마음속의 장벽이 무너진다. 나비가 된다. 이제 날 수 있다. 마음이 바다가 된다. 흑도 백도 다 품는다. 대해불기청탁. 큰 바다는 맑은 물도 탁한 물도 다 받아들인다. 만델라는 그렇게 가장 위대한 글로벌 리더 중 한 사람이 된다. 나비가 되고자 하면 먼저 애벌레가 돼야 한다. 고치를 틀고 그 안에 들어가야 한다. 아픔과 찢어짐 없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없다. 참으로 잔인한 여정이다.
  • ‘이방인2’ 차인표♥신애라 부부 “결국 출연 불발...스케줄 조율 실패”

    ‘이방인2’ 차인표♥신애라 부부 “결국 출연 불발...스케줄 조율 실패”

    ‘이방인2’ 배우 차인표-신애라 부부 출연이 불발됐다.11일 JTBC ‘이방인’ 시즌2 출연에 기대를 모았던 배우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일정 조율이 쉽지 않아 결국 출연을 고사했다. 이날 JTBC 측은 다수 매체에 “두 사람이 ‘이방인2’ 출연을 두고 고민했지만, 스케줄 조율에 어려움을 겪고 출연을 고사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차인표, 신애라 부부 출연을 고대했던 팬들의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앞서 JTBC 측은 “‘이방인’ 시즌 2를 준비중이다”라며 “차인표, 신애라 부부가 섭외를 받고 출연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애라는 지난 201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방송 활동이 뜸한 상태다. 차인표는 현재 기러기 아빠 4년 차로, 최근 영화 ‘굿펠라스: 옹알스와 이방인’ 제작과 공동 연출을 맡아 촬영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JTBC ‘이방인’은 사랑, 일 등 각기 다른 이유로 낯선 나라에 사는 이방인들의 일상과 타향에서 겪게 되는 외로움과 갈등, 따가운 시선 등을 이겨낸 과정 등을 담아내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첫 방송된 이후 추신수, 서민정, 선우예권, 한현민 등이 출연, 최근 시즌 1을 마치고, 시즌2로 다시 시청자를 만날 예정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20세기 초 ‘똑똑하다’ 단어는 남성만 지칭

    20세기 초 ‘똑똑하다’ 단어는 남성만 지칭

    시대별 미국인 고정관념 확인 女 수식어 ‘연약한’ 男 ‘수완 좋은’ ‘테러’ ‘폭력’ 이슬람 연관 단어로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화두로 던져진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전문가들은 ‘컴퓨터,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지능사회로의 진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이버 가상 세계와 물리적 현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지능사회의 핵심은 인공지능(AI)이다.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서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상상 밖 속도로 발전하면서 일부에서는 인류 문명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이 카이스트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지난 2월 카이스트와 민간기업이 발족시킨 ‘국방 AI 융합연구센터’에서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킬러로봇을 개발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총장이 적극 해명에 나섬으로써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인공지능 활용 가능성이 다양해지면서 전문가와 일반인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AI 장착 킬러 로봇의 등장은 먼 미래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현재 인공지능은 연구자들이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 역사학과, 컴퓨터공학과, 언어학과, 바이오메디컬 데이터과학과 공동연구팀이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3일자에 발표한 논문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독특한 연구성과이다. 연구팀은 계량언어학적 방법으로 20세기에 미국에서 발행된 책과 논문, 뉴스들을 분석해 여성과 소수 인종에 대한 미국인들의 고정관념(stereotype)과 태도를 분석했다. 이번 연구에는 스탠퍼드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양강의 ‘음식의 언어’를 가르치는 계량언어학자 댄 주래프스키 교수도 참여했다. 주래프스키 교수를 포함한 연구팀은 컴퓨터가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하고 특정 패턴을 자동으로 찾을 수 있는 심화학습(딥러닝) 알고리즘을 설계했다. 연구팀은 구글 북스, 구글 뉴스 데이터셋, 뉴욕타임스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1910년대부터 2005년까지 100년 가까이 발행된 인쇄매체에 등장한 1000억개의 단어를 분석했다. 디지털화되지 않은 20세기 초·중반 인쇄물들을 분석하기 위해 지금까지는 많은 연구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마이크로필름을 일일이 읽어보면서 문장과 단어를 찾아 분석해야 했다. 이제는 AI 덕분에 연구자가 원하는 문장이나 단어를 오류 없이 빠른 속도로 찾을 수 있게 됐다. 연구팀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히스패닉과 아시아인 같은 소수인종을 수식하는 단어들을 찾았다. ‘감정적인’ ‘섬세한’ 등의 단어가 남성보다는 여성을 꾸미는 단어로 많이 등장한다면 이는 해당 시기 미국인의 고정관념이고 인쇄매체에 반복적으로 등장함으로써 편견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세기 초반에는 여성을 묘사할 때 ‘매력적인’ ‘사랑스러운’ ‘연약한’ 같은 단어들이 주로 쓰였다. ‘수완이 좋은’ ‘똑똑한’ 같은 단어들은 남성들에게만 쓰였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중성적인 단어로 변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1910년대에는 주로 감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여성을 묘사했지만 1990년대를 거쳐 21세기가 가까워 오면서는 외적이고 육체적인 매력을 강조하는 단어로 여성을 표현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아시아인에 대해서는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이방인’에게 갖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강했지만 1950년대 이후 아시아 이민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긍정적인 단어들도 쓰이기 시작했다. 한편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차량 폭탄 테러와 2001년 9·11테러를 거치면서 신문과 잡지, 책에서 테러리즘을 연상시키는 폭탄, 테러, 폭력이라는 단어와 이슬람, 모스크 등이 연관 단어로 등장했고 이 때문에 미국인들에게 ‘이슬람=테러’라는 편견을 강화시켰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주래프스키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공지능과 계량언어학은 문헌의 전승 과정, 방언을 비롯한 언어의 변화를 빠르게 분석해 줘 사회 변화를 시간적, 공간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침묵의 한국문학 여성들이 말해요 변화가 시작됐죠”

    “침묵의 한국문학 여성들이 말해요 변화가 시작됐죠”

    “한국 문학은 침묵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 같아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라는 말도 있듯이 여자라면 모름지기 입 다물고 묵묵히 일하는 맏며느리감이어야만 하죠. 이것이야말로 부정과 불의를 키우는 요인입니다. 러시아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침묵으로 일관한 진실은 거짓’이라고 했습니다. 비로소 한국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한 것은 중요합니다. 변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니까요.”문정희(71) 시인의 새 시집 ‘작가의 사랑’(민음사)은 이 땅의 여성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틀에 갇힌 여성에 대한 자유와 해방을 꾸준히 노래해 온 시인은 4년 만에 낸 열네 번째 시집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름을 빼앗기고 무차별하게 짓밟힌 이들의 울음을 곡조에 담아 노래한다. 해방 공간에서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한 김수임,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쿠르상에서 탈락하자 스스로 페미나상을 제정한 프랑스 시인 안나 드와이유, 독재자 앞에서 차도르를 찢은 이탈리아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성폭행을 당한 뒤 휴지에 증거를 들고 파출소로 뛰어갔지만 도움을 받지 못한 이방인 여성 등을 호명한다.특히 문단에서 남성들에게 인격살해당한 작가 김명순의 이야기를 다룬 ‘곡시’는 마치 오늘날 수많은 여성의 현실을 대변하듯 적나라하다. ‘이성의 눈을 감은 채, 사내라는 우월감으로/근대 식민지 문단의 남류들은 죄의식 없이/한 여성을 능멸하고 따돌렸다./(중략)/꿈 많고 재능 많은 그녀의 육체는 성폭행으로/그녀의 작품은 편견과 모욕의 스캔들로 유폐되었다./이제, 이 땅이 모진 식민지를 벗어난 지도 70여년/아직도 여자라는 식민지에는/비명과 피눈물 멈추지 않는다.’(‘곡시’ 중) “김명순은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이자 여성 최초로 시집을 낸 시인이에요. 일본에서 데이트 강간을 당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많은 한국 남성 문인들에게 사회적인 폭력을 당했죠. 이후 행려병자가 되어 문단에서 사라졌어요. 한국 현대문학사는 남성 중심의 기술이 만들어낸 반쪽의 문학사이기 때문이죠. 이 시는 제가 갑자기 쓴 게 아니에요. 4년 전부터 여러 논문을 읽으며 자료 조사를 하다가 2년 전에 한 계간지에 발표했어요. 최근의 흐름과 맞물려 주목받고 있는 걸 보면 이 시가 중요한 분수령을 이루는 역사적 시점에 서 있는 듯합니다.” “눈물에서 태어난 보석” 같은 이 땅의 딸들을 위한 문 시인만의 생명력 넘치는 시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내년이면 등단 50주년을 맞는 시인은 자신이 남성 중심 문단에서 견뎌 온 무수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현재 아픔을 겪고 있는 여성들을 격려했다. “창작 자체에서 좌절감을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패거리의 견제에 의해 기회를 박탈당하고 뒤로 물리는 일은 무수히 겪었죠. 그럴 때마다 난 슬프지 않았어요. 오히려 ‘좀더 앞으로 가자’고 생각했죠. 제가 외국에서 강연할 때도 한 이야기지만 여성의 몸속에 있는 자궁은 단지 여성의 자궁이 아니라 인류의 자궁입니다. 창조의 모태이자 대지모(大地母)죠. 여성들 스스로 사회적 타자, 압박받는 존재가 아니라 아름다운 모태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더이상 머뭇거리거나 슬퍼하거나 그늘에 서 있지 말고 찬란한 꽃을 피웠으면 좋겠습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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