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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방인의 고독, 섬이 되었다

    이방인의 고독, 섬이 되었다

    올해는 제주에 가고 싶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여행이다. 이름하여 이타미 준의 건축 탐방. 수풍석 미술관·방주 교회·포도 호텔 등 그가 지은 건축물을 돌아보려 한다.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고 한 결심이다. 기예(techne)는 직접 체험해 봐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으니까. 일부러 기술과 예술을 합쳐 부르는 기예라는 단어를 썼다. 건축은 실용적인 동시에 미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건축은 기술도 예술도 아닌, 둘의 융합인 기예일 수밖에 없다. 이타미 준의 건축이 바로 그렇다. 정다운 감독은 그의 기예에 반했다. 이타미 준의 건축이 “사람을 위로하는 공간”임을 체감한 그녀는 내친김에 그에 관한 영화까지 제작했다. 다큐멘터리지만 이 작품에는 소년·청년·노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타미 준의 분신들이다. 그의 생애 주기에 따른 허구화된 표상인 이들은 각각 천진·열정·성숙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 가지 상태를 덧붙여야 한다. 이방인의 고독이다. “나는 일본에서는 조센징,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살고 있어.” 이렇게 토로하면서 이타미 준은 눈물 흘린 적이 있다. 재일한국인으로서 그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에 서 있었다. 자연인 유동룡(이타미 준의 본명)에게 이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그러나 건축가 이타미 준에게 경계의 감각은 기예의 풍부한 자양분이 됐다. 탁월한 기예는 이질적인 요소들의 혼종에서 탄생한다. 완전히 한국적인 것도, 완전히 일본적인 것도 아닌, 이타미 준만의 독특한 건축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경계인의 혼란을 그는 기예로 승화시켰다. “조형은 자연과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추구해야 하고, 공간과 사람, 자신과 타인을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제여야 한다.” 이런 이타미 준의 건축 철학은 그가 추구한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정다운 감독이 강조한 이타미 준 건축의 따스함은 거기에 바탕을 둔다. 이타미 준이 언급한 ‘소통과 관계’는 그의 인생과 그의 건축에 찍힌 인장이다. 그것은 이방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타미 준에게 절대적인 화두였다. 이때 나는 다음의 문구를 떠올린다.“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미숙하고, 모든 곳을 고향으로 여기는 사람은 이미 강하며, 전 세계를 타향으로 여기는 사람은 완벽하다.” 팔레스타인 출신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자주 인용한 구절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을 옹호한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이방인의 고독에 휩싸였다. 하지만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 운명을 껴안았다. 그에게 불확정성은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이타미 준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전 세계를 타향으로 여긴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타미 준은 강함을 넘어 완벽함에 어울리는 건축가가 될 수 있었다. 그 혼자 이룬 것이 아니다. 고향 같은 타향의 시간지형문화재료, 무엇보다 사람과 이타미 준이 교류한 덕분이었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열린세상] NO라고 말하지 않는 도시/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열린세상] NO라고 말하지 않는 도시/김세정 런던 그린우즈 GRM LLP 변호사

    런던은 관광도시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금융 및 상업도시다. 혼란하고 도무지 예측 가능하지 않아 불안하기 짝이 없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와중에서도 영국인들은 유럽의 다른 도시가 런던을 쉽사리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여전히 자신하는 듯한데, 이는 런던이 가진 장점 때문이다. 도시 규모나 인프라 면에서 런던에 비길 도시는 많지 않고, 영어가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는 언어라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이런 뚜렷한 것 말고도 다른 도시에 비해 런던이 가진 큰 장점은 개방성이다. 즉 런던은 이방인을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드러내 놓고 배척하지 않는다. 사실 영국에서 이방인으로 생활하는 경우 비자나 취업 자격 등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요건들을 충족한다면 외국인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받는 차별은 없다. 세금도 영국인들과 똑같이 내고, 회사 설립 역시 영국인들과 같은 조건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주거용 및 사업용 부동산 거래를 하는 데서도 외국인이기 때문에 받는 법적인 제약은 없다. 이런 점은 영국에 투자를 하거나 영국에서 사업을 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에게 중요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법적’이라고 계속 단서를 다는 것은 드러나 있진 않지만 결과적으로 외국인이기 때문에 받는 실질적인 차별이나 제약까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국인과 외국인을 정말 아무런 차별 없이 똑같이 동등하게 대하는 사회라는 것이 과연 있는가 말이다. 아예 외국인에게는 별도의 신고나 허가 등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자국인을 대표자로 세우게 하는 등의 차별적 대우를 법제화해 두는 경우가 많으니, 법적 차별이 없다는 것은 높이 살 수 있는 장점이겠다. 게다가 대개의 양식 있는 영국인은 차별적 발언을 금기시하고 이곳은 ‘우리나라’고 당신은 이방인이라는 식의 티도 내지 않는다. 이런 영국인들에게 약간 놀라고 마음이 서늘해졌던 순간이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의 일이다. 동네 여러 집에서 ‘잉글랜드 깃발’을 게양하기 시작했다. 차들도 온통 잉글랜드 깃발을 꽂거나 붙이고 다녔다. 잉글랜드 깃발이란 영국, 즉 유나이티드 킹덤(The United Kingdom)의 국기인 ‘유니언잭’이 아니라 영국을 구성하는 네 나라(country), 즉 잉글랜드ㆍ스코틀랜드ㆍ웨일스ㆍ북아일랜드 중 잉글랜드의 깃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잉글랜드 사람들이 런던올림픽을 맞이해 모처럼 소위 ‘국뽕’에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거야 사실 한국인 입장에서 매우 익숙한 광경이기는 하다. ‘국뽕’에서는 한국인들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런데도 막상 이방인으로서 이런 열렬한 애국주의적 태도를 보는 것은 그리 마음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서로 어울려 사는 것에 큰 불만 없이 보이던 영국(잉글랜드) 사람들이 ‘우리가 주인이다’라고 매우 강력히 주장하는 것같이 느껴졌고, ‘아니 누가 뭐라 하나, 하지만 굳이 저럴 것까지는 뭐가 있담’ 이런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잉글랜드 사람’만 잉글랜드 국기를 거는 분위기였다. 자기 나라 국기를 거는 집도 몇 보였으나 많지는 않았고, 나란히 있는 집들 중 잉글랜드 깃발을 건 집과 아닌 집이 뚜렷이 구별됐다. 난데없이 출신국을 인증하게 돼 버린 셈이다. 만약 잉글랜드 팀이 지기라도 하면 누군가 불행한 타깃이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생겼다.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권리임에도 그 방식 및 정도에 따라 때로 이방인들에게는 배제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그 방식이 다른 나라를 향해 싫다(NO)고 하는 것이라면, 심지어 공적인 기관들이 나서서 외친다면 그 사회를 개방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 재팬’(NO Japan)이라고 써 있다고 해서 꼭 일본인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혐오와 배제는 쉽사리 깊어지고 넓어지기 마련이니, 이런 모습을 보는 이방인이라면 남의 일이라고만 여기긴 어렵다. 그 이방인이 쉽사리 돌아갈 수 없는 입장이라면 더하다. 관광객으로만 외국에 머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울 중구청이 내걸었던 ‘NO Japan’ 배너를 시민들이 나서서 떼도록 만든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 정우성, 난민에 대한 관심+지원 촉구 “우리도 한때 난민”

    정우성, 난민에 대한 관심+지원 촉구 “우리도 한때 난민”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배우 정우성의 인터뷰가 재조명됐다. 정우성은 지난 5월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방문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도 난민 문제의 아픔을 겪었고, 그 가운데 유엔이나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우성은 “우리도 6·25 전쟁(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때 실향민이고 난민이던 때가 있었다”면서 전 세계 난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그는 “대한민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정학적으로 1000번 넘게 침략당한 나라였고,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서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지만 역사가 반복됐을 때 다른 나라에서 당연히 대한민국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도록 지금 우리의 시민의식과 국가 의식을 보여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우성은 “‘우리’라고 하면 우리나라로 한정시킬 수 있지만, ‘우리’라는 말은 인류 공동체로도 넓힐 수도 있다”면서 “난민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며 공존하고 연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유엔난민기구 홍보대사 활동을 하며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정우성씨는 지난해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 신청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을 때에도 난민을 돕자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냈다. 이 때문에 난민 인정을 반대하는 측으로부터 비판과 악성 댓글을 받기도 했다. 이에 정우성은 “엄마나 청년으로서 느끼는 불안감과 우려를 존중한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온 거부감도 있을 것”이라면서 난민을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일부는 조직적으로 혐오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이런 점은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사회 문제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일에 대한 부담감과 관련해서는 “배우는 직업이며, 배우 이전에 시민이고 국민”이라면서 “배우라서 사회적 공감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답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프랭크 래무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는 “정우성씨가 친선대사로 일하며 한국인들을 설득해 많은 이들이 난민을 이해하게 되고 지지자로 변했다”면서 “기구 내부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 지금 같은 역할을 계속해서 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뉴스부 seoulen@seoul.co.kr
  • 김보미 “45kg→38kg 체중 감량, 얼굴 내려앉는 게 보여”

    김보미 “45kg→38kg 체중 감량, 얼굴 내려앉는 게 보여”

    배우 김보미(32)가 발레리나 역 소화를 위해 38kg까지 체중을 감량했음을 고백했다. 김보미는 최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최윤교 극본, 이정섭 연출)에서는 발레니나 이연서(신혜선 분)의 라이벌 금니나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세종대학교 무용학과 출신인 자신의 전공을 제대로 살려 고난도의 발레동작을 대역 없이 소화해냈다. ‘단 하나의 사랑’을 통해 몸도 마음도 힘든 연기를 해봤다는 김보미는 “체중 관리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니까 알고 시작했는데 심리적 부분이 많이 힘들었다. 원래 내 성격은 털털하다. 그런데 니나는 순하고 순진하고 여리고 그런 캐릭터라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게 마음이 힘들었다. 니나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하지 않아야 했던 행동들이 많을 테니, 그런 행동들도 모두 줄이며 살았다.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동안은 ‘왔어?’하며 반갑게 인사했는데 니나를 준비하고 살던 기간에는 ‘어’라는 반응이 끝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 밥도 막 먹지 않고, 무용 시간에는 어떤 모습일 것이고, 엄마의 말도 잘 듣고 나쁜짓도 못하고, ‘안 된다’는 말도 못하고 살았을 아이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만 니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내니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체중은 45kg에서 38kg까지 줄었다. 처음에는 39kg까지 뺐지만, 촬영을 시작한 뒤에는 38kg까지 줄었다고. 김보미는 “6kg을 뺐다. 45kg으로 시작해서 39kg까지 뺐다. 그런데 촬영 시작하고 첫 방송 보고는 얼굴이 너무 내려앉는 것이 보이더라. 연기자의 눈으로 시선이 가야 하는데 얼굴로 가기에 그때부터는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38kg까지 빠졌고, 더 많이 먹어도 40kg 이상으로는 찌지 않더라. 드라마가 끝나고 나니 42kg까지 체중을 회복했지만, 방송 내내 살이 찌지 않았다. 체중감량보다 중요했던 것은 근육을 만드는 것인데, 발레리나의 몸으로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발레를 그만둔 지 거의 10년이 넘었다는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다시 토슈즈를 신었다. 몸을 만들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발레 연습을 했다. 김보미는 “발레단도 ‘백조의 호수’가 어려운 작품이라고 한다. 10년을 쉬었다. 거짓말 안 하고 매일 연습했다. 감독님에게도 보여드리고 싶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전했다. 김보미는 “‘단 하나의 사랑’ 봐주신 팬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니나를 조금 더 안쓰럽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또 마지막은 너무 좋게 변했다는 평으로 예쁘게 봐주는 것도 감사하다. 시청자 분들께도 감사하지만 우리 드라마 배우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다시 만나고 싶은 배우들이 이팀에서 많았던 거 같다”고 종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2008년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조연으로 데뷔한 김보미는 영화 ‘써니’(2011, 강형철 감독)에서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소녀 류복희 역으로 출연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드라마 SBS ‘내 딸 꽃님이’(2011), MBC ‘구가의 서’(2013), SBS ‘별에서 온 그대’(2013)에 쉼 없이 출연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특히 ‘별에서 온 그대’에서는 극중 천송이(전지현)의 스타일리스트인 민아로 출연, 시청자들에게 각인됐고 중국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SBS ‘닥터 이방인’(2014), SBS ‘냄새를 보는 소녀’(2015), KBS2 ‘어셈블리’(2015), OCN ‘동네의 영웅’(2016), JTBC ‘맨투맨’(2017) 등에 출연했다. 김보미는 당분간 휴식 기간을 가지며, 차기작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종석 열애설’ 권나라, 이상형과 일치? “분당 이나영”

    ‘이종석 열애설’ 권나라, 이상형과 일치? “분당 이나영”

    배우 이종석(30)과 그룹 헬로비너스 출신 배우 권나라(28) 측이 열애설을 부인했다. 이종석과 권나라 소속사 에이맨프로젝트 관계자는 1일 “당일 보도된 열애설은 사실무근”이라며 “이종석과 권나라는 친한 연예계 선후배 사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날 한 매체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종석과 권나라가 열애 중이며, 권나라가 최근 소속사를 옮긴 것도 이종석이 직접 영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종석이 권나라에게 먼저 호감을 보였고 열렬한 구애를 펼쳤다”며 “이미 우리들 사이에서 권나라는 ‘이종석의 여자’로 통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나라는 연습생 때부터 172㎝의 큰 키와 작은 얼굴로 ‘분당 이나영’으로 불리며 주목 받았다. 이종석은 데뷔 후 줄곧 영화배우 이나영의 팬이라고 밝혀온 바 있다. 2012년 헬로비너스 멤버로 데뷔한 권나라는 드라마 ‘수상한 파트너’(2017), ‘나의 아저씨’(2018), ‘친애하는 판사님께’(2018), ‘닥터 프리즈너’(2019)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자리매김 했다. 하반기 방송 예정인 JTBC 새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출연한다. 이종석은 지난 3월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대체복무 중이다. 2005년 패션모델로 데뷔한 이종석은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2010)를 비롯해 ‘시크릿 가든’(2010~2011),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2012), ‘학교 2013’(2012~2013),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닥터 이방인’(2014), ‘피노키오’(2014~2015), ‘W’(2016), ‘당신이 잠든 사이에’(2017) 등에 출연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월간 윤종신 7월호 ‘인공지능’, 30일 공개 “이별남 전격해부”

    월간 윤종신 7월호 ‘인공지능’, 30일 공개 “이별남 전격해부”

    가수 윤종신의 월간 음악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 7월호 ‘인공지능’이 30일 오후 6시에 공개된다. ‘인공지능’은 7월호부터 10월호까지 총 네 달에 걸쳐 발표될 ‘윤종신 발라드 속 이별남 전격해부 4부작’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다. 윤종신은 20대 때부터 자신이 불러온 발라드 속 남자 주인공들을 소환해보고, 이별에 얽혀 있는 각양각색의 감정들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인공지능’은 이별 후 질척이는 남자의 심리를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곡이다. ‘만약 연애에 대해 조언해주는 AI가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라는 즐거운 상상에서 출발했으며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 <그녀>에서 영감을 얻었다. 가사 속 화자는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는 남자에게 따끔한 충고를 건네는 ‘AI’인데, 이미 끝난 관계에 미련을 갖는 남자를 만류하는 ‘AI’의 어조가 단호하면서도 시니컬하다. 윤종신은 “이번 달은 이별을 시니컬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보통 남자들이 자기감정에 허우적거리다가 이미 묻어버린 사랑까지 파헤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는데, 오랜 습관을 그리움이라고 착각하고는 좋았던 추억까지 망쳐버린다”며 “이별이 빚어내는 모순과 혼돈을 미화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종신은 ‘이방인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지금까지의 작업을 차분히 돌아보고 그 과정을 새로운 노래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조정석, ‘녹두꽃’으로 입증한 대체불가 ‘믿.보.배’의 진가

    조정석, ‘녹두꽃’으로 입증한 대체불가 ‘믿.보.배’의 진가

    배우 조정석이 ‘녹두꽃’으로 명불허전 명품 연기를 선보이며 자신의 진가를 증명했다. 조정석은 어제(13일) 종영된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 악명 높은 이방인 백가의 장남이자 얼자 ‘백이강’ 역을 맡아 매회 몰입도 높은 열연을 펼치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얻었다. 어제(13일) 방송된 ‘녹두꽃’ 마지막화에서는 고부관아의 형옥에서 다시 재회한 조정석과 윤시윤(백이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장면에서 조정석은 윤시윤을 향해 덤덤하게 “내 손으로 너를 죽이지 않게 혀줘서 고맙다”고 전하며 “대신 다음에 누가 니 목심 가지러 오믄 기꺼이 줘. 나가 먼저 가서 터 잡아 놓을팅게 저승이라고 겁내덜 말고 그냥 오라고” 말해 엇갈린 형제의 애틋하고도 안타까운 마지막을 그려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또한 조정석은 눈물 대신 애틋한 석별의 감정으로 전봉준을 떠나보내며 시청자들을 가슴을 울렸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여전히 일본군에 대항하는 의병으로 투지에 불타는 모습을 보여주며 강렬한 인상을 남김과 동시에 짙은 여운과 감동을 선사했다. 이처럼 조정석은 드라마 ‘녹두꽃’을 통해 동학농민혁명 앞에서 다른 운명을 선택 했던 잔혹한 운명의 이복형제 이야기와 그 속에서 그려진 애틋한 형제애를 묵직한 연기로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뜨거운 감동을 안겼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지만 조명되지 않았던 동학농민혁명 역사 속 가상의 인물들의 삶을 투영한 이 드라마에서 조정석은 진정성 있는 연기와 현장을 아우르는 역할을 하며 웰메이드 사극의 탄생을 견인했다. 조정석은 자신의 숙명 앞에서 몸을 던져 살다가 농민군을 만나고, 혁명에 가담하면서 변주 하는 백이강의 드라마틱한 삶을 조정석만의 페이소스로 디테일한 연기를 표현해 시청자들이 극에 몰입 할 수 있도록 견인했을 뿐만 아니라, 정의를 위해 목숨을 던져 싸우는 황토현 전투, 우금티(우금치) 전투를 비롯해 숭고한 희생들이 이어진 이야기가 펼쳐지며 역사적인 의미를 전달했다. 또한 후반부 전봉준의 죽음과 우금티(우금치) 전투의 패배 등 외피는 비극일 수 있으나 조정석이 보여준 각 인물과의 연기 호흡은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해 결국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희망과 연대의 주제를 느끼게 했다. 이처럼 조정석은 이번 ‘녹두꽃’을 통해 그간 ‘오 나의 귀신님’, ‘질투의 화신’ 등 현대극에서 보여줬던 다양한 연기에 또 한번 확장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탄탄한 연기력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이끌며 믿고 보는 배우 조정석의 진가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조정석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 녹두꽃의 종영을 뒤로 하고 오는 7월 31일 영화 ‘엑시트’로 스크린 활약에 나선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녹두꽃’ 오늘 종영..조정석 “인간의 존엄성 깨달은 시간”

    ‘녹두꽃’ 오늘 종영..조정석 “인간의 존엄성 깨달은 시간”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이 오늘(13일) 종영하는 가운데, 주연 배우 조정석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종영 소감을 밝혔다. 조정석은 출연 중인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의 종영을 앞두고 ‘녹두꽃’ 대본을 들고 찍은 사진과 함께 종영에 대한 소감을 전하며 시청자들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그간 조정석은 드라마 ‘녹두꽃’에서 악명 높은 이방인 백가의 장남이자 얼자 ‘백이강’ 역을 맡아 매회 완벽한 사투리 구사와 몰입도 높은 연기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믿고 보는 배우 조정석의 진가를 입증시켰다. 매회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감정 연기를 선보이며 대체불가한 존재감을 보여준 조정석은 “유의미한 한시대를 담는 녹두꽃이라는 작품을 만난 것 자체가 저에게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지난 6개월이라는 시간이 개인적으로 너무 뜻깊고 행복했습니다.”라며 “감독님 작가님 그리고 좋은 선후배님들과 모든 스텝들 그리고 잊지 못할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었던 보조출연자분들 한 분 한 분까지 감사드리고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고 전하며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어 “그 어느 때보다도 책임감이 강했던 작품이었고 배역과 캐릭터를 떠나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깨닫는 좋은 경험의 시간이었습니다”라며 종영에 대한 소감을 전한 조정석은 “녹두꽃을 사랑해주신 많은 시청자분들께 감사 인사드리며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덧붙였다. 조정석의 열연이 담긴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의 마지막회는 오늘(13일) 밤 10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초대받은 남자 울프, 18번홀 이글로 생애 첫 PGA 투어 우승

    초대받은 남자 울프, 18번홀 이글로 생애 첫 PGA 투어 우승

    최종합계 21언더파 263타 .. 브라이슨 디섐보·콜린 모리카와 따돌리고 ‘초대받은 손님’ 매슈 울프(미국)가 마지막 홀 터진 이글에 힘입어 짜릿한 1타 차 우승컵을 들어올렸다.울프는 8일(한국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블레인의 TPC 트윈시티스(파71·7164야드)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3M오픈 4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5개, 보기 1개로 6언더파 65타를 쳤다. 최종합계 21언더파 263타를 적어낸 울프는 브라이슨 디섐보, 콜린 모리카와(이상 미국)를 1타 차로 따돌리고 생애 첫 PGA 투어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상금은 115만 2000달러(약 13억 5000만원)다. 프로로 전향한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울프는 스폰서 초청 선수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나왔다. 지난주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네이트 래슐리(미국)가 ‘대기 선수’로 출전해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2주 연속 정규멤버 외의 선수들이 ‘깜짝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17번홀까지 1타 앞선 디섐보, 나란히 19언더파 동타를 친 모리카와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울프는 18번홀 225야드를 남기고 5번 아이언으로 친 공을 깃대에서 약 8m 남짓한 지점으로 보낸 뒤 그린 경계 지역에서 시도한 이글 퍼트를 그대로 홀 안에 떨어뜨리면서 우승 경쟁에 방점을 찍었다. 1999년생으로 올해 20세인 울프는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출신으로 올해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디비전1 개인전 우승을 차지한 선수다.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을 통해 PGA 투어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번 대회가 통산 네 번째 대회였다. 이 대회 전까지 최고 성적은 피닉스오픈 당시 공동 50위였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고단한 항해 끝에 만난 해방의 횃불

    고단한 항해 끝에 만난 해방의 횃불

    미국 뉴욕을 거닐다 보면 멜팅 포트(melting pot)라는 말이 온몸으로 와 닿는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한데 모여 사는 도시가 또 있을까? 이민자들이 타운을 구성해 문화를 유지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 모자이크 시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미국경제 활황기였던 20세기 초, 뉴욕은 부푼 꿈을 안고 미 대륙으로 오던 이민자들이 첫발을 내딛는 도시였다. 그들에게 미국은 어떤 곳이었을까. 드넓은 광야와 풍부한 일자리, 열심히만 일하면 성공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나라. 뉴욕으로 향하는 이민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대부분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화물과 다름없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보름이 넘는 뱃길을 따라 뉴욕으로 향한다. 뉴욕항의 입구이자 허드슨강 초입에 다다르니, 리버티섬 한가운데 커다랗게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이 눈에 들어온다. 고단한 항해의 끝, 이민자들에게 횃불을 치켜든 ‘자유의 여신상’은 희망의 메시지이자 해방의 상징으로 와 닿았을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당시의 배 못지않게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으로 다가갔다. 맨해튼의 마천루가 점점 작아지면서 자유의 여신상은 커졌고 심장박동은 빨라졌으며 관광객들은 환호를 보냈다. 모두가 달뜬 모습이었다.자유의 여신상 기단에는 에마 라자루스의 시, ‘새로운 거상’이 적혀 있다. ‘너의 지치고 가난한/자유를 갈망하는 이들/너의 풍요의 기슭에서 버림받은 가련한 이들을 내게 보내라/세파에 시달린/갈 곳 없는 이들을 내게 보내라/내가 황금의 문 곁에서 등불을 들어 올릴 테니!’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갈망해 뉴욕으로 온 이들은 이민자를 상징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1876년)을 기념해 프랑스가 제작해 선물한 것으로 1886년 미국에 세워졌을 때는 짙은 황금빛이었지만 지금은 구리에 녹이 슬어 청록색으로 변했다. 여신상 발 아래 부서진 족쇄와 쇠사슬은 노예제 폐지를 표현한 것이다. 내부 뼈대는 에펠탑을 만든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미국의 정치적 동맹과 자유, 평화, 인권 같은 민주주의 상징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1984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바로 옆 엘리스섬은 뉴욕 이민자들이 입국할 때 검문소 역할을 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이민사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이민사 박물관을 둘러보면 자유의 여신상이 가진 의미를 좀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한 세기 전, 미국 땅을 처음 밟을 때 가지고 온 오래된 가죽가방, 양복, 빛바랜 여권 사진에서 가난한 이방인의 고단했던 이야기가 소리 없이 들려온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아스달 연대기’ 측 “충격적 대반전 드러난다” 궁금증 UP

    ‘아스달 연대기’ 측 “충격적 대반전 드러난다” 궁금증 UP

    ‘아스달 연대기’의 장동건-송중기-김지원-김옥빈이 본격적인 서사가 펼쳐질 5, 6회에서 풀어나갈 ‘핵심사건 #4’가 공개됐다. 오는 15일, 16일 방송될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의 5, 6화에서는 아스달에 총집결한 장동건-송중기-김지원-김옥빈 등 네 사람의 운명적 격전이 예고되고 있는 터. 이와 관련 5, 6화를 휘감게 될, ‘인물별 핵심사건’ 4가지를 키워드를 통해 정리해본다. ◆#계략/ 타곤(장동건) - “신의 영능이 임했습니다” (신성재판 모독) 지난 ‘아스달 연대기’ 4화에서는 타곤(장동건 분)이 아사씨의 제관만이 한다는 올림사니(죽기 전 혹은 죽은 후에 신께로 인도하는 의식)를 전쟁 중에 해왔다는 사실이 누군가의 발고로 밝혀져 신성재판에 회부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이 신성재판 회부는 타곤이 태알하(김옥빈)를 통해 산웅(김의성)에게 폭로하라고 계획했던 일. 이후 타곤은 신성재판 하루 전날, 대제관인 아사론(이도경)을 은밀하게 만났고, 타곤과 아사론, 두 사람이 모두 사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리고 타곤은 대칸부대와 와한족 포로들을 끌고 아스달로 금의환향을 함과 동시에 흰산족 제관들을 따라 신성재판으로 향했다. 신성재판에서 타곤과 합의를 마친 아사론은 타곤에게 신의 영능이 임했다며, 타곤의 올림사니는 정당하고 마땅하다고 발표한 후 오히려 타곤을 발고한 산웅을 위기로 몰고 갔다. 아버지 산웅을 해하기 위해 아사론과 모략을 벌여 신성재판까지 이용하는 천재적인 지략을 발휘한 타곤이 아스달 최고 권력인 제의까지 넘보며, 강력한 권력욕을 드러내는 것. 5, 6화에서는 은섬과 산웅 있는 곳으로 홀로 돌진한 타곤이 자신 때문에 위기에 처한 산웅의 목숨을 구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그가 꽁꽁 숨겨둔 아이의 정체와 그 아이를 숨길 수밖에 없던 사정이 공개되며 흡입력 있는 스토리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납치/ 은섬(송중기) - “나는 와한의 전사 은섬이다” (연맹장 납치 성공기) 은섬(송중기)은 폐허가 된 와한족 마을에서 만난 와한족 아이 도티(고나희)와 함께 탄야(김지원)와 와한족을 구하기 위해 아스달로 향했다. 가는 도중 은섬은 자신이 ‘이그트’(사람과 뇌안탈의 혼혈)이며, 이그트는 사람과 뇌안탈의 잡종이고, 뇌안탈은 괴물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고, 혼란에 빠진 은섬은 연이어 만난 채은(고보결)에게 이그트는 괴물은 아니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무서운 존재라는 말을 듣게 됐다. 결국 아스달에 입성한 은섬은 아스달의 거대한 문명과 전쟁포로로 끌려온 아이들의 노동 착취 현장을 본 후 충격을 받고, 연맹장 산웅을 납치해 와한족과 교환할 계획을 세웠다. 은섬은 와한전사의 복장으로 환복한 채, 대신전에서 쫓겨나온 산웅을 납치하는 데 성공했고, 아스달 장터의 건물에 서서 “나는 와한의 전사, 은섬이다!”라며 와한족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요구했다. 이에 자신이 올라가겠다며 무장을 벗고 나선 타곤은 은섬과 산웅이 있는 문을 열었고, 순간 타곤과 은섬은 서로를 향해 돌격했다. 돌진하는 두 사람의 강렬한 엔딩과 맞물려 오직 탄야와 와한족 밖에 모르는 ‘아스달의 이방인’ 은섬과 ‘아스달 최고의 전사’ 타곤, 그리고 산웅이 처음으로 3자 대면을 펼치면서, 5, 6화에서 본격적인 은섬과 타곤의 대립이 가시화될 예정. 천재적인 지략가인 타곤을 대적하기 위해 은섬이 꺼낸 비장의 카드는 어떤 것이 될지, 은섬이 처하게 될 운명에 귀추가 주목된다. ◆#저주/ 탄야(김지원) - “나 와한의 탄야는 너희들을 저주한다” (저주 폭주) ‘아스달 연대기’ 3, 4화에서는 이전과 180도 달라진 탄야(김지원)의 각성이 확연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와한족 씨족어머니 후계자인 탄야는 대칸부대의 갑작스러운 침략으로 아스달에 끌려오면서 와한족과 함께 모진 고난을 겪었던 상태. 아픈 와한족 아이를 처참하게 죽여 버린 무광(황희)의 횡포는 탄야의 분노를 극에 달하게 만들었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초설어머니(김호정)까지 무광이 처치하려고 하자 탄야는 결국 분노의 저주를 퍼부으며 폭주했다. 눈 주변에 피를 바른 탄야는 마치 지옥의 길로 인도하듯 “나 와한의 탄야, 너희들을 저주한다. 나를 처음 손대는 자가 가장 참혹하게 죽으리라”라는 서슬 퍼런 저주를 쏟아냈고, 대칸부대원들은 얼어붙었다. 결국 초설어머니 임종을 지키게 된 탄야는 죽기 전 초설로부터 “흰늑대할머니의 별다야(별자리를 간략히 그린 신물)를 찾아라”라는 사명을 받았다. 더욱이 흰늑대할머니가 왔다는 아스달에 입성하게 된 탄야가 연맹장 산웅의 납치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그 납치범이 은섬임을 알게 된 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 은섬과 타곤의 대립이 탄야와 와한족의 운명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줄지 관심이 쏠린 가운데, 와한족을 위해 저주의 예언자로 변신한 탄야는 아스달 최고의 전사, 타곤에게도 저주의 말을 퍼부어 그를 얼어붙게 만들 수 있을지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첩자/ 태알하(김옥빈) - “여마리(첩자)인걸 알았어?” (이중행각) 전쟁 중인 타곤을 찾아가 밀회를 나눴던 태알하(김옥빈)는 타곤의 아버지이자 아스달 연맹장인 산웅과 은밀하게 만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 충격을 자아냈다. 태알하가 아버지인 미홀(조성하)의 명령에 따라 타곤과 산웅의 사이를 줄타기하며 오가는 여마리(첩자)였던 것. 미홀은 태알하를 통해 산웅과 혼인하도록 이끌고, 타곤의 동태를 시시각각 보고하게끔 만들었지만 태알하의 완벽할 줄 알았던 여마리 작전은 타곤을 마음에 품으면서 흔들렸다. 타곤의 지시대로 태알하가 타곤의 올림사니를 산웅에게 폭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홀은 분노하며 타곤을 독살하라고 시켰지만 태알하는 타곤을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태알하가 여마리인 것을 눈치챘던 타곤은 태알하가 자신이 데려온 이그트를 미홀에게 밝히지 않은 사실을 들며 진짜 자신을 품었냐 물었고, 태알하는 눈물을 글썽이며 애틋한 감정을 드러냈다. 결국 태알하는 타곤의 독이든 술잔을 쳐내면서 “뭔지 모르겠지만 그 계획 성공해. 실패하면 나도 이제 죽어“라며 타곤의 목숨을 살렸다. 또 한 번 아버지의 뜻을 어긴 태알하가 끝내 속내를 밝히지 않고 4화가 마무리된 상황. 더욱이 5, 6화에서 타곤과 태알하가 또다시 은밀한 만남을 갖는 장면이 담기면서, 태알하가 타곤을 향한 마음을 적극적으로 내비쳐 연인으로 발전할 지, 야심 있는 그를 도와 권력을 위한 동지가 될지, 파란만장한 그녀의 운명에 이목이 집중된다. 제작진은 “5, 6화에서는 타곤-은섬-탄야-태알하, 네 사람 전부 아스달에 모여 서로 대립하면서 격동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더욱이 5, 6화에서는 그동안 꽁꽁 숨겨져왔던 충격적인 대 반전이 드러나면서 ‘아스달’을 요동치게 만든다”며 “앞으로 아스달에서는 어떤 대전쟁이 일어나게 될지 네 사람의 운명과 행보를 지켜봐 달라”고 전했다. 한편, tvN ‘아스달 연대기’ 5화는 오는 15일 오후 9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효율적 사업’이었던 한국인 해외 입양

    ‘효율적 사업’이었던 한국인 해외 입양

    해외에 입양된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적잖다. 출생에 얽힌 비밀만큼 극적인 설정을 찾기 힘든 까닭이다. 반면 해외 입양인들의 회고록이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낮은 편이다. 입양인을 소재로 하는 픽션에는 흥미를 갖지만 실제 입양인들의 애환을 외면하는 건 어쩌면 해외 입양에 숨겨진 부끄러운 역사를 들추기 싫어서일지도 모른다. 해외 입양은 생각보다 역사가 길지는 않다. 한국의 경우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70여년간 약 20만명의 아이가 해외로 입양됐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숫자다. 특히 한국 아동의 대부분은 미국인이 입양했다. 보스턴칼리지 역사학과 부교수로서 미국 역사 속 이민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저자는 한국의 해외 입양이 한미의 특수한 역학 관계에 따른 ‘전쟁의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전쟁 중 미군 병사와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동은 ‘일민주의’(一民主義)를 국가 정책으로 내세운 당시 이승만 정부로선 배척해야 하는 이방인이었다. ‘튀기’, ‘사생아’라는 딱지 때문에 온갖 차별을 겪은 한국 혼혈 아동을 강력하게 원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사회에서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던 미국은 그에 걸맞은 이미지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인도적 차원에서 아동 구호에 힘쓰는 미군의 활동은 미국이 ‘인정 많은 세계의 아버지’라는 모습을 구축하는 데 딱 들어맞았다. 그 과정에서 한국과의 계층적 관계는 강화되었고, 한국이 미국의 질서에 순응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었다. 저자는 이외에도 ‘기독교적 미국주의’에 입각해 한국 아동을 입양한 미국인들 사이에서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한국 아동 입양이 한국과 미국의 사회복지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입양이 어떻게 ‘효율적인 사업’으로 발전했는지 등 입양의 역사를 세세하게 짚는다. 저자는 서문에서 “미혼모들과 그 자녀들을 끊임없이 소외시키는 사회 구조를, 나아가 일반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어떻게 하면 변화시킬 수 있을지 이 책에서 작은 영감이라도 얻기를 바란다”고 했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현실 관찰하다가 金·트럼프 만남 상상” “선 너머 北 아닌 선 그은 이들에 화내야”

    “현실 관찰하다가 金·트럼프 만남 상상” “선 너머 北 아닌 선 그은 이들에 화내야”

    ‘오늘 김정은과 한잔한다. (중략) 참이슬 두 잔을 원샷으로 들이켠 후 난 그에게 묻는다. “형, 오늘 몇 명이나 죽였어?”’ 지난달 21일 한국문학번역원 주최로 열린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 행사에서 한국계 독일인 박본(32) 극작가가 선보인 짧은 소설 ‘동한국’의 한 구절이다. ‘김정은’은 짐작대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반면 ‘DMZ의 나라에서’라는 주제로 토론에 나선 김연수(49) 작가의 문제의식은 훨씬 묵직했다. 그는 ‘정전 체제 이후의 문학에 대해’라는 글에서 “1948년 이래 한국문학은 ‘이렇게 우리는 죽을 수 없다’는 콤플렉스와 ‘그건 모두 우리의 잘못이다’는 죄의식에 볼모로 사로잡힌 셈”이라고 적었다. 김 작가는 “우리가 화를 내야 할 대상은 선 너머의 북한이 아니라 선을 그은 사람”이라며 “까뮈의 소설 ‘이방인’처럼 불합리하게 우리에게 받아들여진 상황에 대해 하다 못해 신에게라도 화를 내야 마땅한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 이후, ‘김 위원장을 형이라고 부르는 1987년생’ 박본과 ‘누군가에게는 김 위원장이 형이라는 사실에 놀란 1970년생’ 김연수가 마주 앉았다. 둘은 김정은부터 최근 화두인 백석 시인에 이르기까지, ‘60년 정전 체제 이후의 문학’에 대해 유쾌하게 논했다. -행사장에서 박 작가의 소설 ‘동한국’이 화제가 됐다. 김연수 작가(이하 김) ‘역시 젊음이 아름답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단순히 ‘젊음만의 문제는 아니겠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한국에서 이 또래의 젊은 작가가, 그런 작품을 발표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국외자의 자유로움이 있구나’ 생각하면서도 ‘그런 자유로움을 왜 우리는 가질 수 없을까’ 고민했다. 박본 작가(이하 박) 국외자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독일에서도 다 그런 건 아니니까. 희곡 ‘으르렁대는 은하수’에서 김 위원장을 등장시켰을 때,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누구를 조롱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모두가 싫어하는 인물에 대해서도 호감을 갖도록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픽션이라서, 거짓말이라서 가능했다. -박 작가는 2016년에 쓴 희곡 ‘으르렁대는 은하수’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대화를 나누는 전복적 상상력을 선보였는데 몇 년 뒤,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났다. 박 뉴스 봤을 때 진짜 이상했다.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기분이었다. 그 작품을 쓸 때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대선 후보도 아니었으니까. 당시는 ‘아무도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나라도 한 번 써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김 10여년 전 애니메이션 ‘심슨네 가족들’에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 건 관찰력이나 정보를 종합하는 능력의 소산이라 볼 수 있다. 문학이 가진 힘 중에 ‘핍진성’을 믿는데, 현실을 오래 관찰하다 보니 허구지만 현실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들게 되고, 가끔씩은 현실과 일치하는 일이 일어난다. 신 내린 것처럼. -정전 상태의 한국에서 김 위원장을 사랑스럽게 그리는 것이 가능한가. 김 사람마다 개인적인 면도 있고, 공적인 부분들도 있다. 김 위원장도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으니 누군가의 아버지일 테지만 그래도 박 작가처럼 발랄하게 그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웃음). 베를린 장벽에 ‘형제의 키스’(1979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와 동독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의 입맞춤을 묘사한 벽화)라는 작품이 있지 않나.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현실과 관계없는 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상상은 그 자체로 실제화될 수 없는데도, 우리는 상상만으로 감옥까지 갔던 전력이 있다. 이번 행사 제목이 ‘In a Nation Shadowed by DMZ’였는데 그 말이 딱 맞다. 그 시대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림자는 남아 (우리) 마음에 계속 그늘이 있는 거다. ‘세상이 바뀌는 걸 좀 더 앞당기겠다’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 한국은 자주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룬 나라다. 옛 소련 같은 나라는 (분열되기 전) 자신들이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가졌었는지, 과거를 생각하며 갖는 고통이 있다. 반대로 한국은 억압만 받아서 ‘큰 한국’을 상상하지 못한다. 통일이 되면 더 큰 힘을 가질 수도 있다는 비전과 상상이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옛 환상에 시달리지만 한국은 ‘앞으로’가 있다. 김 2005년, 독일 뉘른베르크를 여행할 때였다. 호텔 문이 잘 안 열려 불만을 표하니까 호텔 직원이 그러더라. “너희 나라는 잘살아서 그런 것도 잘되지만, 우리는 아니다”라고. 세계가 바뀌는 대충격이었다. 이전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엄청나게 다른 나라라는 생각이 들더라. 통일이 되면 또 어찌 될지 모른다. -60여년 정전 체제를 뛰어넘는 문학은 어떠해야 하나. 김 다시 쓰고 싶다. 예를 들면 지금 백석 시인에 대해 쓰고 있는데, 시인의 경우 북한에서 숙청이 되고 난 후로는 시를 못 쓰고 살았다. 최대한의 능력을 동원해서 시인의 삶을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념 말고 사람들 개개인의 삶을 쓰다 보면 그 당시 북한 체제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남한은 어땠는지를 알 수 있을 거다. 박 책의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문학보다 다른 걸로 극복해야 한다(웃음). 이야기에 개인적인 내러티브를 담으면 좋을 것 같다. 일본으로 건너간 북한인이 다시 북한을 찾아 가족들과 만나는 다큐멘터리를 굉장히 재밌게 봤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윤종신, ‘라디오스타’ 하차→한국 떠난다 “이방인 프로젝트”[전문]

    윤종신, ‘라디오스타’ 하차→한국 떠난다 “이방인 프로젝트”[전문]

    가수 윤종신이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MBC ‘라디오스타’에서 자진 하차한다. JTBC ‘방구석1열’에서도 하차하며 모든 방송 활동을 접는다. 4일 윤종신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태어난지 50년 노래 만들고 부른 지 30년 되는 해가 되었어요. 2010년 시작한 ‘월간윤종신’, 내년 2020년 그 월간윤종신이 10주년을 맞게 된다”면서 “그 10주년이 되는 해에 제가 많은 노래들 속에서 그리고 꿈꾸고 바랐던 한 프로젝트 2020 월간윤종신 ‘이방인 프로젝트’ ‘NOMAD PROJECT’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랑하는 가족들과 미스틱 스토리 식구들의 고마운 동의 속에 2020년 월간 윤종신은 제가 살아온 이 곳을 떠나 좀 더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곳을 떠돌며 이방인의 시선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보려 한다”고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다. 윤종신은 “저라는 사람의 인생으로서 창작자로서 2020년은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재작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왔고 남은 기간 착실히 준비해서 올해 10월에 떠나보려한다”면서 “해왔던 방송들은 아쉽지만 그 전에 유종의 미를 잘 거두려 한다. 도태되지 않고 고인 물이 되지 않으려는 한 창작자의 몸부림이라 생각해 주시고, 2020 월간윤종신 ‘이방인 프로젝트’ 잘 준비하겠다”고 전했다.이날 ‘라디오스타’ 측 관계자는 “제작진과 잘 상의한 끝에 하차하기로 했다”며 “하차 시기는 조율 중이다”라고 밝혔다. 윤종신은 지난 2007년부터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의 원년 멤버로, 12년간 MC 자리를 지키며 프로그램을 이끈 바 있다. <이하 윤종신이 SNS에 남긴 글 전문> 2019년, 태어난지 50년 노래 만들고 부른 지 30년 되는 해가 되었어요. 그동안 많은 노랠 만들고 부르고 방송에 나와 웃고 웃기고 울기도 하며 미스틱이라는 회사도 만들어 보고 참 부지런히 걷고 뛰고 달리며 지금까지 왔네요. 그러다 2010년 시작한 ‘월간윤종신’, 내년 2020년 그 월간윤종신이 10주년을 맞게 됩니다. 그 10주년이 되는 해에 제가 많은 노래들 속에서 그리고 꿈꾸고 바랐던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합니다. 2020 월간윤종신 ‘이방인 프로젝트’ ‘NOMAD PROJECT’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며 제 노래 속에서 외로움 그리움 쓸쓸함을 노래해 왔지만 정작 저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고 정든 안방을 떠나보지 않은 채 상상만으로 이방인,낯선 시선,떠남 등의 감정을 표현해 왔던 무경험의 창작자란 생각을 몇해전 부터 하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가족들과 미스틱 스토리 식구들의 고마운 동의 속에 2020년 월간 윤종신은 제가 살아온 이 곳을 떠나 좀 더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곳을 떠돌며 이방인의 시선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월간윤종신 노래 외에도 미스틱 스토리 그리고 몇몇 뜻이 맞는 제작팀과 떠나간 곳에서 여러 경험을 담은 컨텐츠를 해보려 합니다. 저라는 사람의 인생으로서 창작자로서 2020년은 큰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 재작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왔고 남은 기간 착실히 준비해서 올해 10월에 떠나보려 합니다. 해왔던 방송들은 아쉽지만 그 전에 유종의 미를 잘 거두려 합니다. 갑자기 떠나기 직전에 여러분께 알리는 건 도리가 아닌것 같아 이 즈음 이렇게 글 올립니다. 도태되지 않고 고인 물이 되지 않으려는 한 창작자의 몸부림이라 생각해 주시고, 2020 월간윤종신 ‘이방인 프로젝트’ 잘 준비하겠습니다. #윤종신 #2020 #월간윤종신 #이방인프로젝트 #NomadProject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우리도 한때 난민… 공생·연대해야” 배우 정우성 ‘난민 혐오’를 꼬집다

    “우리도 한때 난민… 공생·연대해야” 배우 정우성 ‘난민 혐오’를 꼬집다

    “불안감 이해… 가짜뉴스는 걸러내야 배우 이전 시민으로 사회 공감 당연”“나는 배우이기 이전에 시민입니다.” 난민 인권운동에 앞장서 온 배우 정우성씨가 우리 사회 일각의 ‘난민 혐오’ 목소리에 일침을 가했다. 정씨는 지난해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이 늘어나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난민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악플’(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 28일 정씨는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방문 기자간담회에서 “난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의 난민 반대 정서에 대해 “엄마나 청년으로서 느끼는 불안감과 우려를 존중한다”면서도 “낯선 이방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온 거부감도 있겠지만, 일부는 대중적인 혐오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악의를 가진 표현과 가짜뉴스에 마음이 아팠다”면서 “가짜뉴스를 잘 걸러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우로서 사회 문제를 얘기하는 부담감에 대해서는 “배우는 직업이며, 배우 이전에 시민이고 국민”이라며 “배우라서 사회적 공감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애 발견” 정씨는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세계 최대 규모 난민촌인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다. 로힝야 난민은 2017년 8월 미얀마에서 발생한 ‘인종 청소’를 피해 이웃 국가인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그 과정에서 로힝야족 대다수는 가족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정씨는 “난민촌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남편이 총살당한 것을 목격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딸로 속여 데려와 함께 키우고 있다’는 말을 해줬다”면서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에게는 2017년 12월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그는 “그곳 난민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안고 살아간다”면서 “막연한 희망조차 없는 모습이 다른 어떤 난민촌보다 처참했다”고 전했다. ●새달 에세이 출간… “난민도 사람” 한국 사회가 난민 문제에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역시 난민의 아픔을 겪었고 유엔과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현명하게 공생하고 연대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제주 예멘 난민과 관련해 정씨는 “난민 입국 허용은 특수한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에게 한국에서 잠깐 존엄을 지키고 자립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다음달 20일 난민 문제를 다룬 책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을 출간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먼 타국의 난민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난민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란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우리도 한때 난민… 공생·연대해야” 배우 정우성 ‘난민 혐오’를 꼬집다

    “우리도 한때 난민… 공생·연대해야” 배우 정우성 ‘난민 혐오’를 꼬집다

    “불안감 이해… 가짜뉴스는 걸러내야 배우 이전 시민으로 사회 공감 당연”“나는 배우이기 이전에 시민입니다.” 난민 인권운동에 앞장서 온 배우 정우성씨가 우리 사회 일각의 ‘난민 혐오’ 목소리에 일침을 가했다. 정씨는 지난해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이 늘어나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난민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악플’(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 28일 정씨는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방문 기자간담회에서 “난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의 난민 반대 정서에 대해 “엄마나 청년으로서 느끼는 불안감과 우려를 존중한다”면서도 “낯선 이방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온 거부감도 있겠지만, 일부는 대중적인 혐오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악의를 가진 표현과 가짜뉴스에 마음이 아팠다”면서 “가짜뉴스를 잘 걸러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우로서 사회 문제를 얘기하는 부담감에 대해서는 “배우는 직업이며, 배우 이전에 시민이고 국민”이라며 “배우라서 사회적 공감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애 발견” 정씨는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세계 최대 규모 난민촌인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다. 로힝야 난민은 2017년 8월 미얀마에서 발생한 ‘인종 청소’를 피해 이웃 국가인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그 과정에서 로힝야족 대다수는 가족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정씨는 “난민촌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남편이 총살당한 것을 목격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딸로 속여 데려와 함께 키우고 있다’는 말을 해줬다”면서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에게는 2017년 12월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그는 “그곳 난민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안고 살아간다”면서 “막연한 희망조차 없는 모습이 다른 어떤 난민촌보다 처참했다”고 전했다. ●새달 에세이 출간… “난민 삶·꿈 전할 것” 한국 사회가 난민 문제에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역시 난민의 아픔을 겪었고 유엔과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현명하게 공생하고 연대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제주 예멘 난민과 관련해 정씨는 “난민 입국 허용은 특수한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에게 한국에서 잠깐 존엄을 지키고 자립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다음달 20일 난민 문제를 다룬 책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을 출간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먼 타국의 난민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책을 통해서라도 난민의 삶과 꿈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난민 소신 발언’ 정우성 “배우이기 앞서 시민…악플도 존중”

    ‘난민 소신 발언’ 정우성 “배우이기 앞서 시민…악플도 존중”

    “난민에 대한 두려움 이해…가짜뉴스는 마음 아파”로힝야 난민촌 방문 후 “한때 난민이던 우리도 나서야”난민 인권운동에 앞장서 온 배우 정우성(46)씨가 우리 사회 일각의 ‘난민 혐오’ 목소리에 일침을 가했다. 정씨는 지난해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이 늘어나 사회 이슈가 됐을 때 난민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악플’(악성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다. 28일 정씨는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방문 기자간담회에서 “난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의 난민 반대 정서에 대해 “엄마나 청년으로서 느끼는 불안감과 우려를 존중한다”면서도 “낯선 이방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온 거부감도 있겠지만, 일부는 대중적인 혐오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악의를 가진 표현과 가짜뉴스에 마음이 아팠다”면서 “가짜뉴스를 잘 걸러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우로서 사회 문제를 얘기하는 부담감에 대해서는 “배우는 직업이며, 배우 이전에 시민이고 국민”이라며 “배우라서 사회적 공감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정씨는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세계 최대 규모 난민촌인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다. 로힝야 난민은 2017년 8월 미얀마에서 발생한 ‘인종 청소’를 피해 이웃 국가인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그 과정에서 로힝야족 대다수는 가족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정씨는 “난민촌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남편이 총살당한 것을 목격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딸로 속여 데려와 함께 키우고 있다’는 말을 해줬다”면서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에게는 2017년 12월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그는 “그곳 난민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안고 살아간다”면서 “막연한 희망조차 없는 모습이 다른 어떤 난민촌보다 처참했다”고 전했다.한국 사회가 난민 문제에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역시 난민의 아픔을 겪었고 유엔과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현명하게 공생하고 연대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제주 예멘 난민과 관련해 정씨는 “난민 입국 허용은 특수한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에게 한국에서 잠깐 존엄을 지키고 자립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다음달 20일 난민 문제를 다룬 책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을 출간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먼 타국의 난민까지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 “난민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란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정우성 “우리도 한때 난민…받았던 도움 돌려줄 때”

    정우성 “우리도 한때 난민…받았던 도움 돌려줄 때”

    “난민 반대 일정 부분 이해…혐오 목적은 가슴 아파배우 이전에 시민이고 국민…사회적 공감 포기 못해로힝야 난민 처참…아시아 국가들 리더십 발휘해야”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배우 정우성씨가 “우리도 6·25 전쟁(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한때 실향민이고 난민이던 때가 있었다”면서 전 세계 난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정우성씨는 28일 서울 중구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방문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도 난민 문제의 아픔을 겪었고, 그 가운데 유엔이나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정학적으로 1000번 넘게 침략당한 나라였고,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서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지만 역사가 반복됐을 때 다른 나라에서 당연히 대한민국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도록 지금 우리의 시민의식과 국가 의식을 보여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우성씨는 “‘우리’라고 하면 우리나라로 한정시킬 수 있지만, ‘우리’라는 말은 인류 공동체로도 넓힐 수도 있다”면서 “난민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며 공존하고 연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유엔난민기구 홍보대사 활동을 하며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정우성씨는 지난해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 신청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을 때에도 난민을 돕자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냈다. 이 때문에 난민 인정을 반대하는 측으로부터 비판과 악성 댓글을 받기도 했다. 정우성씨는 “엄마나 청년으로서 느끼는 불안감과 우려를 존중한다. 낯선 이방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온 거부감도 있을 것”이라면서 난민을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일부는 조직적으로 혐오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이런 점은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사회 문제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는 일에 대한 부담감과 관련해서는 “배우는 직업이며, 배우 이전에 시민이고 국민”이라면서 “배우라서 사회적 공감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답했다. 이번에 직접 만나고 온 로힝야 난민들과 관련해서는 “다른 난민들은 언젠가 내 땅에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지만, 로힝야 난민들은 이런 희망도 없어 보였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처참하고 불행한 난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로힝야 난민은 2017년 8월 미얀마 리카인주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를 피해 이웃 국가인 방글라데시로 피신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대부분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영국의 식민지화와 태평양전쟁, 그리고 미얀마 국내 정치 문제들을 겪으며 미얀마의 다른 민족들과 갈등이 깊어졌다. 미얀마의 현 체제 하에서 주류에서 밀려난 로힝야족은 폭력 사태가 벌어진 뒤 방글라데시로 피했는데, 현재 이들이 머무는 방글라데시의 쿠투팔롱 난민촌은 70만명이 넘는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이다. 정우성씨는 “모든 부모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교육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서 “로힝야 난민 아이들은 사실상 교육이라는 희망의 끈이 끊긴 상태여서 로힝야 난민들도 이 부분을 가장 걱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로힝야 난민들이 방글라데시 지역 주민들과 상생하며 잘 지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금 상태가 이어질 순 없다”면서 “대한민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우리 모두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프랭크 래무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는 “정우성씨가 친선대사로 일하며 한국인들을 설득해 많은 이들이 난민을 이해하게 되고 지지자로 변했다”면서 “기구 내부에서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 지금 같은 역할을 계속해서 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예술의 태양이 지지 않는, 낭만의 도시…전쟁의 아픔 감도는, 잃어버린 도시

    예술의 태양이 지지 않는, 낭만의 도시…전쟁의 아픔 감도는, 잃어버린 도시

    한국은 어느덧 여름의 길목으로 접어든 5월 중순 무렵, 러시아 서쪽 끝 발트해 연안에 자리 잡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제 막 봄으로 물들고 있었다. 4월까지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고 눈발이 날리던 매서운 날씨는 북극으로 물러가고 한결 따뜻해진 봄바람에 도시 곳곳 꽃나무마다 꽃망울이 움텄다. 밤 10시가 돼야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새벽 4시면 이미 환해진 도시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계절을 만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혹독한 겨울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길고 긴 낮만큼 아름답게 빛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예술과 역사의 흔적을 찾아 걸었다.●‘제정러시아 컬렉션’ 에르미타주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관광명소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이다. 화사한 민트색 외벽과 화려한 황금 장식이 눈에 띄는 바로크 양식 건물이 ‘겨울궁전’으로 불리는 박물관 본관이다. 정면 꼭대기에 삼색기가 휘날려 이곳이 러시아의 자랑임을 말해 주는 듯하다. 겨울궁전 앞 궁전광장 한복판에는 높이 50m에 이르는 알렉산드로프 전승기념비가 우뚝 솟아 있어 위엄을 더한다. 러시아에서는 ‘조국전쟁’으로 부르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34년에 세웠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유럽 미술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세계 최대 미술관 중 하나로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300만점 이상의 소장품이 1000여개의 방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의 많은 소장품이 식민지 약탈품인 반면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컬렉션은 제정러시아 시대부터 이어온 미술품 수집으로 완성됐다는 차이가 있다. 본관 1층에는 고대 이집트부터 그리스, 로마의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2층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돈나 리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루벤스의 ‘바쿠스’ 등 중세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 서유럽 명작들이 빼곡하다. 마티스의 대표작 ‘춤’을 비롯해 모네, 고갱, 피카소 등의 근대 회화 작품은 궁전광장 맞은편 참모본부관에 따로 전시돼 있다. 러시아의 다른 관광지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유료로 이용할 수 있다. ●10세기~근대 미술품 품은 러시아 박물관 꼬박 한나절을 둘러보고 박물관을 나서니 전승기념비 앞에서 버스킹 공연이 한창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지나던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앉아 귀를 기울인다. 뭉게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에 한결 가벼워진 사람들의 옷차림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봄이 왔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수많은 유럽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지만 러시아 본연의 멋을 느끼기엔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도보로 20~30분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러시아 박물관을 찾아가 보자. 알렉산드르 3세의 동생 미하일로프를 위해 지어진 궁전이던 이곳에는 러시아가 비잔틴제국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때인 10세기의 이콘화부터 근대 러시아 화가들의 명화, 각종 민속공예품 등이 전시돼 있다.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가 압도적인 이반 아이바좁스키의 ‘파도’, 제국 시대 말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축제 풍경을 생생히 보여 주는 블라디미르 마콥스키의 작품, 러시아의 전설과 종교적 신비주의를 담아낸 니콜라스 로에리히의 작품 등을 보다 보면 러시아의 옛 시간 어느 한가운데에 뛰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흔적이 그대로 세계적으로 이름난 러시아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문학이다.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이자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푸시킨 동상이 정문 앞에 서 있는 러시아박물관을 떠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관광지가 몰려 있는 시내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곳 부근에 도스토옙스키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블라디미르성당 맞은편에는 오전부터 꽃과 과일, 직물 등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나와 있다. 전통시장에서 나물을 파는 우리네 할머니 같다. 러시아에는 ‘츠베트이’라고 불리는 꽃집이 곳곳에 자주 보인다. 가판에서부터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점까지, 꽃을 파는 가게가 다양하고 꽃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꽃 선물을 많이 한다는 러시아 사람들의 감성이 낭만적인 예술을 꽃피운 원동력 아니었을까.박물관은 눈에 띄는 간판도 없이 나무 문을 닫아 놓고 있다. 반지하 로비에서 시작되는 박물관은 2층 규모로 크지 않다. 작가를 기념해 따로 지어진 박물관이 아니라 그가 말년을 보내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집필한 아파트를 박물관으로 복원했기 때문이다. 작은 박물관에는 그를 좋아하는 전 세계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작가가 생전에 사용했던 필기구와 원고, 흑백사진 등 전시물을 본 뒤 남아 있는 사진을 토대로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방들을 둘러보며 작가의 삶을 상상해 본다. 또 다른 대표작 ‘죄와 벌’의 주무대가 된 센나야 광장을 찾아가 본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집이 있었을 거리와 그가 살해한 전당포 노파의 집 등이 이곳의 오래된 골목에 있었을 거라고 추정된다. 지금은 지하철 3개 노선이 지나는 번화가로 관광객보다는 현지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어스름이 질 무렵엔 주변 옛 건물들에 노란 불빛이 환하게 켜지면서 빛의 광장을 만든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왔다면 발레 공연을 놓치기 아깝다. 모스크바 볼쇼이극장과 함께 러시아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마린스키극장이 있다. 구시가지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수로를 사이에 두고 1860년 개관한 본관과 신식으로 지어진 신관이 마주보고 있다. 러시아 발레를 대표하는 ‘백조의 호수’, 고골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코’ 등 공연을 비롯해 클래식, 오페라 등이 매일 다양하게 펼쳐진다. 시기를 맞춰 간다면 마린스키극장 최초 동양인 수석발레리노인 김기민의 공연도 직접 볼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팽창하던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건설된 계획도시다. 도시의 출발은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였다. 표트르 대제는 1703년 네바강 삼각주에 위치한 토끼섬에 스웨덴 해군의 공격을 막기 위한 요새를 짓기 시작했다. 이후 예카테리나 2세 때에 이르러 지금의 형태로 완성됐다. 요새 한복판에는 건물 본채만큼이나 뾰족하게 솟은 첨탑이 인상적인 성당이 있다. 높이 122.5m의 성당은 섬 주변 어디서든 눈에 띈다. 표트르 대제를 비롯한 로마노프 왕조 황제들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다른 정교회들과 달리 외관은 직선 형태의 서유럽 양식이지만 황금으로 치장된 내부는 러시아 정교회 스타일로 화려하다. 요새 내 입장은 무료지만 네바 강가를 따라 조성된 요새 위 산책로는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성벽 위에 나무데크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강 건너편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성 이삭 성당 등 시가지를 건너다 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제국 시절 수도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는 도시 외곽의 ‘여름궁전’ 페테르고프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앞에서 바로 연결되는 배편을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발치스카야, 아프토바, 레닌스키 프라스펙트 등 역에서 미니버스로 가면 훨씬 저렴하다. 여름궁전의 백미는 발트해를 마주하고 있는 정원의 대폭포다. 궁전 앞에서 계단식 폭포를 따라 물이 흘러내리고 60여개의 크고 작은 분수에서 하늘 높이 물살이 솟구친다. 궁전 자체는 프랑스 베르사유궁전보다 작지만 수로를 따라 바다로 이어지는 화려한 분수만큼은 베르사유궁전이 부럽지 않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국내 여행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분위기의 도시가 있다. 핀란드 국경에서 불과 25㎞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항구도시다. 이곳에 가려면 핀란드역에서 열차를 타야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모두 5개의 기차역이 있는데 주요 행선지에 따라 이름이 붙었다. 핀란드역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북쪽 도시로 향하는 열차뿐 아니라 핀란드 헬싱키까지 가는 열차도 출발한다. 핀란드역 앞 넓은 광장에는 레닌 동상이 네바강을 바라보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공산주의 혁명의 시초이자 소비에트연방의 창시자로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레닌에게 이곳은 각별히 의미 있는 장소다. 반정부 활동을 하다 투옥되고 시베리아 유배를 당한 레닌은 이후 서유럽에서 망명 혁명가로 활동한다. 1917년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동료 혁명가들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에서부터 열차를 타고 핀란드를 거쳐 이곳에 도착한다. 8일간 3200㎞를 달린 잠입 여정은 성공했고 열렬한 군중이 그를 맞았다. 세계 역사를 뒤바꾼 볼셰비키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비보르크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느낌이 조금 다르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에서와 달리 핀란드역에 들어서자 보안검사를 하는 역무원의 눈길이 따갑다. “핀란드로 가는 역인데 제대로 온 것 맞냐”고 묻는 역무원에게 “비보르크까지만 갈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작나무숲이 가로놓은 들판과 러시아 시골 풍경을 따라 1시간가량 달리면 비보르크다. 이곳 역 입구에서도 역무원이 주민이 아닌 낯선 이방인에게 깐깐한 여권 검사를 요구한다. 국내에 출판된 러시아 여행 안내책자에도 없는 비보르크를 일부러 찾아간 것은 1·2차 세계대전 동안 러시아와 핀란드가 여러 차례 쟁탈전을 벌인 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비푸리로 부르던 제2의 도시를 1944년 소련의 침공으로 빼앗겼다.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는 해안공원을 따라 시내의 옛 거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내 쪽으로 들어서자 뚱뚱하고 납작한 모양의 우스꽝스러운 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 중간에 있던 ‘둥근 탑’으로 사라진 성벽과 달리 지금까지 남아 있다. 1층은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근에는 노란색의 아담한 성당 두 개가 마주 보고 서 있다. 그중 하나에는 성서를 핀란드어로 번역하면서 핀란드어 철자법을 확립한 16세기 종교개혁가 미카엘 아그리콜라의 동상이 서 있다. 이 성당 어느 곳엔가 그가 묻혔다고 전해진다. 핀란드 사람들이 ‘잃어버린 도시’로 부르며 이곳으로 여행을 오는 데에는 아그리콜라의 흔적을 찾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비보르크 최고의 명소는 조그마한 섬에 자리한 비보르크성과 그 중심의 성 올라프탑이다. 으리으리한 성채는 아니지만 중앙의 초록 지붕 하얀 탑과 그 둘레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성벽에서 중세 분위기가 느껴진다. 러시아보다는 스웨덴이나 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주변 나라들과 비슷한 건축물이다. 이곳 전망탑에 오르면 비보르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역시 중세풍의 오래된 시계탑과 라트하우스탑 등을 돌아본다. 유럽의 여느 중세도시들처럼 가지런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지는 않다. 폐허로 남겨진 옛 골목에서는 때때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중세의 낭만, 핀란드의 쓸쓸함, 러시아의 황량한 분위기가 뒤섞인 도시는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이곳만의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타베르나’라는 이름의 음식점에서 중세 평민들과 귀족들이 먹었던 식사를 즐기면 비보르크 여행의 색다름이 배가된다. 글 사진 상트페테르부르크·비보르크(러시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여행수첩 →상트페테르부르크 명소 곳곳을 돌아볼 예정이라면 상트페테르부르크카드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카드를 구입하면 일정 기간 동안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제외한 대부분의 박물관과 성당을 추가 금액 없이 입장할 수 있다. 다만 관광지 투어보다 비교적 여유로운 여행을 원한다면 카드를 사는 게 손해일 수도 있으니 여행 계획에 따라 꼼꼼히 비교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미리 구매하면 편하다. →비보르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멀지 않은 도시지만 열차편이 자주 있지는 않다. 미리 열차 시간표를 확인해 보고 여행 계획을 짜는 편이 효율적이다.
  • 송중기, 송혜교와 결혼 후 달라진 비주얼 “충격”

    송중기, 송혜교와 결혼 후 달라진 비주얼 “충격”

    ‘아스달 연대기’ 송중기가 시놉시스부터 신비롭고 경이로운 느낌에 빠져들었던, 뜻깊은 출연 소감을 전했다. 6월 1일 첫 방송을 앞둔 tvN 새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김원석)는 태고의 땅 ‘아스’에서 서로 다른 전설을 써가는 영웅들의 운명적 이야기를 담는다. 송중기는 아사혼(추자현)의 아들이자, 탄야(김지원)가 속해있는 와한족 일원으로 자라난 은섬 역을 맡았다. 극중 은섬은 사람인 아사혼과 뇌안탈 사이에서 태어난 이그트(사람족과 뇌안탈의 혼혈)로 와한족 사이에서 살아왔지만 남다른 용모와 능력, 성격을 지녀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던 인물. 베일에 싸인 비밀스런 운명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무엇보다 송중기는 ‘아스달 연대기’를 처음 접했던 순간에 대해 “시놉시스를 받기 전 감독님과 작가님들이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에 대해 설명해주셨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처음 받은 느낌은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들은 기분이었다”라며 “마치 어릴 적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처음 봤을 때의 신비하고 경이로운 느낌과 비슷했다”라고 감회를 드러냈다. 더불어 송중기는 “‘아스달 연대기’ 전체의 서사가 매우 흥미로웠고, 등장인물 모두 각자의 서사와 각자만의 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며 ‘아스달 연대기’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특히 자신이 맡은 은섬에 대해서는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성장해가는 인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마음 아파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방향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점이 크게 공감됐다”며 “은섬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순수함을 표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라는 포부를 덧붙였다. 송중기는 이번 은섬 역을 통해 소년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은 물론 아스달의 권력자 타곤(장동건)과 대립하는 강인한 전사로서의 모습까지 다양한 매력 발산한다. 이에 송중기는 “‘아스달 연대기’는 시대만 달라질 뿐 욕망, 야심, 그리고 본능 등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사람이 사는 이야기”라며 “우리가 지금은 당연시 여기고 있는 것들이 이 당시에는 굉장히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것들로 여겨지는 부분이 많은데 이런 원초적이고 순수한 지점들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다”라며 자세한 부분은 작품을 통해 확인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송중기는 “다양한 민족, 언어, 새로운 시대를 그리고 있는 ‘아스달 연대기’를 통해 고대 인류의 삶과 생활이 어떠했는지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라며 “은섬이 자신과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성장해 나가는 모습들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시청을 앞둔 관전포인트와 더불어 관심을 부탁했다. 제작진은 “송중기는 은섬을 통해 고대라는 새로운 시대와 배경부터 웅장한 서사의 줄기까지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며 “운명의 비밀을 간직한, 아스달의 이방인 은섬 그 자체로 역대급 변신을 이뤄낸 송중기를 기대해 달라”고 전했다. ‘아스달 연대기’는 6월 1일 토요일 밤 9시 첫 방송된다. 연예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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