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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두기, 길창주, 서영주는 어떻게 탄생했나? 배우들이 밝힌 비하인드 스토리

    강두기, 길창주, 서영주는 어떻게 탄생했나? 배우들이 밝힌 비하인드 스토리

    인기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들이 소회를 밝혔다. 강두기 역의 하도권, 길창주 역의 이용우, 서영주 역의 차엽은 실제 야구선수라고 착각할 정도로 호연을 펼쳤다. 이들이 야구 선수 역할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두기 역의 하도권은 “강두기의 인성을 생각했을 때 고 최동원 선수를 모티브로 삼고 연기를 했다”면서 “이번 드라마를 통해 야구가 굉장히 좋아지게 됐고 야구하는 모든 분들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길창주 역의 이용우는 “JTBC 예능 프로그램 ‘이방인’에서 추신수가 미국에서 생활했을 때 상황이 길창주와 맞는 것 같아서 감정을 많이 이입해서 봤다”고 말했다. 이용우는 “극중 길창주는 아내가 있지만 외로운 사람이라서 친구들도 거의 안 만나고 우울증이 올 정도까지 외롭게 하면서 역할에 몰입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다 활가치서 혹시 해이해지면 역할에 몰입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고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다가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발하게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하도권은 “모든 장르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라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투구폼 뿐만 아니라 마운드 투수들의 디테일 등을 연구해 (굳이) 연기를 하지 않더라도 강두기가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서영주 역의 차엽은 “몰리나, 버스터 포지 같은 메이저리그 포수들의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캐릭터를 연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간에 힘들여서 연기를 포기하고 일반 회사에 다녔던 적도 있었지만, 우연히 독립 영화에 출연했는데 역할이 점점 커져서 다시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놨다. 한편 숱한 화제를 낳으며 야구팬은 물론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열광시킨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14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여현수, 배우→억대 연봉 재무설계사 “180도 달라진 외모”

    여현수, 배우→억대 연봉 재무설계사 “180도 달라진 외모”

    배우 여현수가 억대 연봉의 재무설계사로 돌아왔다. 여현수는 11일 첫 방송된 JTBC ‘돈길만 걸어요-정산회담’에 경제전문가로 출연했다. 이날 여현수는 배우 활동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그는 “은퇴 후 다이어트를 안 하니까 30kg이 금방 쪘다”고 밝혔다. 여현수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주연 배우로 인기를 얻었지만 돌연 은퇴 후 재무설계사가 됐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17년 정도 배우 생활하다가 둘째를 낳았는데 고정 수입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내 꿈을 접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1999년 MBC 2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여현수는 드라마 ‘허준’, ‘나쁜 친구들’, ‘호텔리어’, ‘순수의 시대’, ‘동이’, ‘위험한 여자’, ‘TV방자전’ 등과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 ‘홀리데이’, ‘이방인들’, ‘아티스트 봉만대’ 등에 출연했다. CF 모델 출신 배우 정하윤(본명 정혜미)과 2년여간의 열애 끝에 2013년 9월 결혼해, 2014년 첫째 딸을 얻고 2016년 둘째 아들을 낳았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2030 세대] 다시 두 남자 이야기/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2030 세대] 다시 두 남자 이야기/김현집 미 스탠퍼드대 고전학 박사과정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와 윌리엄 글래드스턴(1809~1898). 익숙지 않은 이 두 남자는 영국의 수상을 지낸 인물들이다. 오랜 앙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글래드스턴은 옥스퍼드 출신의 진지하고 지적인 사내였다. 디즈레일리는 유대인, 곧 이방인이었고 화려한 옷을 즐겨 입고 소설가를 꿈꾸던 남자였다. 일화 하나. 윈스턴 처칠의 어머니 제니 제롬이 어느 날 이 두 남자와 저녁을 함께 했다. “글래드스턴씨 옆에 앉으니, 그가 영국에서 가장 지적인 남자라 생각되더군요. 잠시 후 디즈레일리씨 옆에 앉으니, 내가 영국에서 가장 지적인 여자가 된 느낌이었어요.” 두 남자의 차이를 이보다 더 명확히 꼬집긴 어려워 보인다. 1852년 천둥 번개가 치던 밤, 재무장관이었던 디즈레일리는 야심 찬 예산안을 하원에 제출하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재치 있는 연설로 의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그가 제자리를 찾을 즈음 글래드스턴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더 현란한 웅변가였다. 예산안은 산산조각 났다. 디즈레일리는 재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고 후임자로 글래드스턴이 지명됐다. 두 남자의 싸움이 공개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었다. 다소 유치할 때도 있었다. 1859년 디즈레일리는 지인을 통해 글래드스턴이 코르푸섬의 고등판무관 직책을 맡도록 유혹했다. 글래드스턴의 지중해에 대한 로망을 노린 것이다. 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되는 즉시 의석을 잃는다는 것을 글래드스턴은 뒤늦게 깨달아야 했다.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이 둘의 다툼에 따라 영국의 정세가 들썩이고 바뀌었다. 1866년 글래드스턴은 선거권을 넓힐 선거법 개정안을 제안한다. 디즈레일리는 필사적으로 방어한다. 1867년 보수당이었던 디즈레일리는 자유당의 글래드스턴보다 더 진보적이고 영리한 선거 개정법안을 내고 이를 통과시킨다. 디즈레일리는 노동자와 서민의 영웅으로 올라섰다.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은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황금기를 주도한 인물들로 영국에서 최고의 총리들로 기억된다(디즈레일리는 두 번, 글래드스턴은 네 번 수상을 지냈다). 다툼이라 하기엔 수준이 높았다. 산업혁명 와중 빈곤에 시달리던 영국인들을 위한 개혁으로 대영제국의 국제적인 지위를 확고히 한 위인들이다. 서로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민심에 귀 기울인 점이 같았고, 철저히 국익을 보호한다는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독일 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 이룬 성공의 원인을 경쟁(희랍어로는 아곤·agon) 문화로 봤다. 몇몇 역사학자들도 유럽의 발전 이유를 바로 이웃한 나라와의 치열한 경쟁으로 꼽는다. 글래드스턴의 멋진 서재는 지금도 잘 보존돼 있다. 그가 많은 시간을 머물고 사색했을 그 은밀한 공간에 글래드스턴을 내려다보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평생의 경쟁자이자 적이었던 디즈레일리의 흉상이다.
  • 소설가 카뮈를 있게 만든 부조리, 반항 그리고 사랑

    소설가 카뮈를 있게 만든 부조리, 반항 그리고 사랑

    카뮈/최수철 지음/아르테/284쪽/1만 8800원20세기 최고의 문제작 ‘이방인’, ‘페스트’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카뮈’는 불세출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생애를 최수철 작가가 직접 답사한 흔적이다. 불문학 전공자인 최 작가는 ‘이방인’을 번역하고, ‘페스트’에 영감을 받아 동명의 소설을 썼다. 카뮈의 인생은 전반기 무대인 알제리와 후반기 무대인 프랑스로 나뉜다. 프랑스 이민자 3세대로 가난한 포도주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카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성장기 대부분을 보냈다. 가족들 대부분은 문맹이었고, 어머니와 외삼촌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데다 말을 못 했다. 질곡 같은 가난 속에서 카뮈가 탐닉한 것은 오로지 지중해의 태양과 바다였다. 다행히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스승 제르맹에 의해 그는 상급학교에 진학한다. 가난과 질병, 프랑스인이자 알제리인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에 시달렸던 카뮈는 어딜 가나 ‘이방인’이었다. 가난을 수치스러워하는 한편, 그런 감정을 가진 자신이 수치스러웠던 그는 스스로에게도 거리를 뒀다. 그에 대한 최 작가의 진단은 이렇다. ‘카뮈의 말대로, 우리가 자신을 삶을 연기하는 배우로 인식하면 세상은 달리 보인다. 세상과 우리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서 좀더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되기 때문이다.’(31쪽) 카뮈의 작품을 만난 독자들의 오랜 미스터리, ‘이방인’이나 ‘페스트’는 왜 이렇게 불친절한가에 대한 해답도 그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짐작이 간다. ‘작가수첩’에 카뮈는 이렇게 썼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 진정한 예술 작품은 가장 말이 적은 작품이다.(중략) 예술 작품이 경험 속에서 다듬어낸 어떤 몫, 내적인 광채가 제한되지 않은 채 요약되는 다이아몬드의 면 같은 것일 때 (중략) 온갖 경험의 암시로 인하여 풍요로운 작품이 생겨나는 것이다.’(126~127쪽) 역설적으로 카뮈는 가장 적은 말로, 가장 많은 말을 하고자 했다. 최 작가가 결론 내린 카뮈의 여정은 ‘부조리에서 반항을 거쳐 사랑으로 가는 도정’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객관적으로 세상을 응시하려는 태도, 삶의 유한성과 존재의 하찮음을 존중하는 감각을 거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카뮈를 다시 읽으며 최 작가의 글을 상기한다면, 더이상 ‘이방인’은 ‘의무감에 읽는 고전’이 아닐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극단 바람풀 ‘최후만찬’, 2020 서울연극인대상 대상 수상

    극단 바람풀 ‘최후만찬’, 2020 서울연극인대상 대상 수상

    극단 바람풀의 연극 ‘최후만찬’(작 정궈웨이·연출 박정석)이 지난 20일 열린 2020 서울연극인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또 작품에 출연한 배우 권지숙이 연기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다.‘최후만찬’은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홍콩 작품으로, 오랜 시간 서로를 외면해 왔던 모자간의 얼어붙은 관계가 저녁식사를 통해 해소되는 과정을 그려낸 가족극이다. 소극장 연극의 묘미를 보여주며 집중도 있게 극을 끌어낸 점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연출상은 강한 실험 정신을 선보인 ‘길’의 김승철, 극작상은 ‘세월은 사흘 못 본 사이의 벚꽃’의 하일호가 받았다. 신인 연기상은 ‘카르멘’ 양성훈·‘이방인’ 주영호가 각각 수상했다. 이 밖에 스태프상 음악부문은 ‘카르멘’ 심연주, 무대부문은 ‘길’ 박찬호가 받았다. 2014년부터 시작한 서울연극인대상은 올해 공공기관의 공모 또는 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지 않고 극단 자립으로 제작된 작품을 대상으로 했다. 3월부터 12월까지 무대에 올라간 작품 중 대상을 비롯한 6개 부문, 8명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윤종신, ‘음원 사재기’ 논란에 일침 “판이 잘못된 것”

    윤종신, ‘음원 사재기’ 논란에 일침 “판이 잘못된 것”

    가수 윤종신이 ‘음원 사재기’ 논란에 대해 일침했다. 윤종신은 6일 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러 음원 차트를 캡처한 사진과 함께 “싸우지 말아요. 애꿎은 뮤지션들끼리. 판이 잘못된 걸. 매시간 차트 봐서 뭐해요. No Stats in Platform. 플랫폼은 ‘나’에게 신경써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차트 존재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 그는 “정 Chart가 좋으면 Chart Man에게. #이방인 #오지랖”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윤종신은 ‘이방인 프로젝트’를 위해 지난해 말 국내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해외로 출국한 바 있다. 해외에 체류 중에도 가요계 대선배로서 일침을 아끼지 않은 것. 앞서 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조작된 세계 음원 사재기인가? 바이럴 마케팅인가?’라는 주제로 음원 사재기에 대한 의혹을 파헤치는 내용이 공개됐다. 방송 이후 아이유, 선미, 김진호, 정준일, 현아 등 가수들은 자신의 SNS를 통해 “하지 맙시다. 제발”, “연예계 관계자들 중 ‘그알’을 보며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등의 글을 올리며 음원 사재기를 비판했다. 반면 음원 사재기 의혹에 휩싸인 가수들 측은 방송에 해명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오해를 불러올 수 있게 편집됐다면서 “실체 없는 의혹 제기로 심각한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맛의 정수가 담긴 ‘골수 요리’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맛의 정수가 담긴 ‘골수 요리’

    음식의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종종 ‘굳이 이런 것까지 먹어야 하나’ 싶은 것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의구심은 문화에 따라 상대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운 김이나 간장 게장은 이역만리에 사는 이방인에겐 못 먹을 기괴한 음식으로 비치기도 한다. 한국의 여러 음식을 소개하는 외국인 유투버의 영상만 봐도 음식이라는 건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문화의 산물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음식에 열망은 크지만 무지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메뉴판에 있는 ‘본 매로우’라는 단어가 매력적으로 보여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는 척 주문을 했다. 스테이크 전문 식당이었고, 본은 뼈니까 뼈에 붙은 살이겠거니 짐작했다. 눈앞에 놓인 접시를 보고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접시 위에는 검게 그을린 뼈, 그리고 그 사이에 마치 고름처럼 생긴 무언가 있었다. 소 다리뼈의 골수라고 설명해 준 서버는, 동공의 흔들림을 눈치챘을 터. 그때 정확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굳이 이런 것까지 먹을 생각을 대체 누가 했을까.’동물의 골수, 그러니까 뼈 안에서 혈액을 만드는 부드러운 조직은 구석기 시대 인류 말고도 육식을 하는 동물이라면 누구나 탐을 내던 식재료였다. 대부분 지방으로 이뤄져 칼로리가 높고 철분, 인, 비타민 등의 함유량이 살코기에 비해 많아 효율적인 에너지원이었다. 혹자는 인류가 아직 치명적인 사냥 기술을 습득하기 이전에 동물들이 먹다 남긴 뼈를 주워다 골수를 섭취했고 그로 인해 두뇌가 발달할 수 있었다고도 주장한다. 단지 쪼개진 동물뼈를 통해 추론한 것이라 그대로 믿기에는 다소 의심이 가지만, 어쨌거나 동물 뼈에서 골수를 따로 빼내거나 그것을 요리해 먹는다는 건 비인간적이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어떤 주기를 따라 패션의 유행이 반복되듯 골수 요리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부유층은 구운 골수 요리를 꽤 선호했다. 당시 상류층의 연회나 만찬에 빠지지 않았고, 뼈의 좁은 홈을 따라 골수를 쉽게 파내도록 특수한 은제 도구도 등장했다. 주방도구의 역사를 서술한 영국 음식작가 비 윌슨은 “자잘한 부엌 용품은 그 사회가 무엇에 집착했는지를 보여 준다”고 했다. 그 말대로라면 전용 도구의 존재는 당대에 인기가 높았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20세기에 접어들자 지방이 건강의 주적으로 꼽히면서 골수 요리는 더이상 현대 미식가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구식 요리로 전락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여전히 골수를 요리해 냈다. 이내 지방에 씌워진 누명이 벗겨지고, 고기와 과일을 먹던 구석기인처럼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구석기식 다이어트’가 영미권에 유행하면서 골수 요리는 단숨에 ‘힙한’ 요리로 재조명됐다. 2011년 캐나다 음식작가 제니퍼 맥 라간이 자투리 부위의 활용법과 의미를 다룬 책을 출간하면서 북미 지역에서 골수의 위상이 높아졌다. 그동안 미국에서 개 사료로 쓰던 값싼 소뼈가 일시적으로 품귀현상을 빚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골수 요리는 어떤 맛이길래 사랑을 받게 된 것일까. 조그만 단서라도 얻기 위해 영국 런던의 세인트 존 레스토랑을 찾았다. 1994년 문을 연 세인트 존의 셰프 퍼거스 핸더슨은 영국 전통요리의 부활을 시도해 영국인들 사이에선 ‘셰프들의 셰프’로 통한다. 핸더슨의 골수 요리는 유명세에 비하면 무척이나 소박하다. 오븐에 두 번 구운 골수와 파슬리 샐러드, 구운 토스트, 그리고 영국산 바다 소금이 전부다. 뼈 안에 든 골수를 살살 긁어 먼저 맛을 봤다. 소고기를 굽고 난 후 남은 기름을 긁어먹는 듯한데 조금 더 풍미가 강하다. 소의 향이 깊게 배인 기름이라고 하면 조금 이해될까. 남은 골수를 토스트 위에 펴 바르고 약간의 소금을 더한 후 케이퍼, 양파가 어우러진 파슬리 샐러드를 얹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기름진 골수의 맛이 파슬리 샐러드의 신맛, 토스트의 탄내와 어우려서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맥라간은 골수 요리를 두고 ‘가난한 자의 푸아그라’라고 극찬했다. 잘 구워 간을 한 골수는 푸아그라 못지않게 풍미가 훌륭하다는 것이다. 지방이 풍부해 전통적으로 버터나 라드의 대체제로도 사용됐다. 지방이 적은 소고기 스테이크에 버터소스를 끼얹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훨씬 풍미가 강력한 지방인 골수를 고기와 함께 먹으면 맛이 더 배가된다는 것이다. 뼈를 갈라 안에 든 골수를 먹는 것이 기이하게 보일 수 있지만 남김없이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의식하지 않았지만 골수 요리를 자주 즐기고 있다. 진하게 우려낸 사골 국물도 결국 넓은 범위에서 보면 골수 요리의 하나이니까.
  • 獨 축구스타 외질은 왜 ‘中저격수’ 자처했나

    獨 축구스타 외질은 왜 ‘中저격수’ 자처했나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선수 메수트 외질(31)이 중국 위구르족 인권 문제를 비판했다가 역풍을 맞고 있다. 그의 소속팀 아스널의 중국 내 중계가 금지되면서 ‘제2의 휴스턴 로키츠 사태’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미국프로농구(NBA) 휴스턴 로키츠 구단주도 홍콩 시위 사태를 옹호하는 내용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을 올렸다가 중국에서 보이콧을 당했다. 독일 국적의 외질은 왜 축구계 퇴출을 각오하고 ‘중국 저격수’ 역할을 자처했을까. ●홍콩 지지 역풍 ‘제2 휴스턴 로키츠’ 될판 16일 중국 최대 스포츠지 티탄저우바오는 “중국 공산당은 지난 10월 데릴 모레이 휴스턴 로키츠 단장의 SNS 게시물보다 외질에게 더 큰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 반영하듯 CCTV는 아스날 경기 생중계를 다른 경기로 대체했다. 앞서 외질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중국은 코란을 불태우고 이슬람사원을 폐쇄한다. 이슬람 신학교를 금지하고 이슬람 신학자를 죽인다. 이슬람 형제를 강제 수용소에 가두고 이슬람 여자들을 중국 남성들과 강제로 결혼시킨다”고 비난했다. 특히 그는 신장위구르자치구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단체들을 ‘동투르키스탄’으로 지칭하며 이들을 중국의 탄압에 저항하는 이슬람 전사로 묘사했다. 사실상 중국인들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려는 표현이다.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과거 ‘돌궐’(투르크)에서 찾는다. 돌궐은 중국 역사에서 ‘흉노’로 불리던 민족들 가운데 하나로 중앙아시아와 만주 지역에 걸쳐 생활했다. 전성기에는 고구려와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중국 대륙을 위협했다. 터키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기는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돌궐은 내부 분열과 중국의 압박 등으로 서쪽으로 이동해 지중해 지역까지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가 중앙아시아 지역에 정착해 위구르족으로 성장했다고 믿는다. 중국이 위구르족을 탄압할 때마다 터키가 성명을 내 강하게 규탄하는 데는 이같은 민족적 동질감이 자리잡고 있다. ●터키 출신 獨서 차별… 인권문제 거론한 듯 외질은 1988년 독일 겔젠키르헨에서 터키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2009년 성인 대표팀에 발탁된 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우승에 크게 기여해 ‘독일 사회통합의 성공 사례’로 여겨졌다. 왕성한 기부 활동 덕분에 미담도 많았다. 하지만 러시아월드컵을 눈앞에 둔 지난해 5월 영국 런던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가 ‘독재자를 옹호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는 “내 가족의 고향 지도자에 대한 예우였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반발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이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외질을 희생양으로 삼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결국 그는 인종차별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며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외질은 터키인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독일 국적을 택했다. 이슬람교 신자임에도 스스로를 독일인으로 여기며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터키 대통령 기념사진 촬영을 계기로 독일 사회의 뿌리깊은 민족 차별을 경험한 뒤로 마음의 상처가 깊어진 것 같다. 이제 그는 터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자 위구르족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며 ‘길고 긴 싸움’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풀이된다. 앞으로 그가 속한 축구팀은 중국 업체의 후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명문 클럽들에게 이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외질은 아스날을 끝으로 유럽 빅리그 생활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가 이런 불이익을 예상하고도 중국을 비난한 것은 최근 독일에서 느낀 민족적 설움이 그만큼 컸다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가천대 6회 ‘생명과 나눔’ 성과 발표회

    가천대 6회 ‘생명과 나눔’ 성과 발표회

    가천대학교는 16일 제6회 생명과 나눔 성과발표 대회를 바이오나노연구원 대강당에서 열었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는 ‘생명과 나눔’ 수업 교양필수 2학점을 한 학기동안 수강한 학생 1700여명 중 우수한 조별과제 성과를 낸 42개 팀 250여명을 대상으로 예선을 통해 선발된 10개 팀 50명이 참여했다. 참가 학생들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위기와 나눔의 실천방안’을 대주제로 사회적 갈등과 소통, 양극화와 분배, 이방인과 세계시민, 자본주의 사회적 가치, 저출산과 사회적 양육 등 5가지 세부 주제에 대해 자신들의 아이디어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교육양극화와 공유’를 주제로 발표한 박예인(여·20·법학과1) 학생은 교육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봉사활동검색 어플리케이션 개발안을 제시했다. 사용자 활동 데이터를 분석해 인공지능(AI)을 활용할 계획이다. 대회이후 어플리케이션을 출시, 구체적 실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참여학생들은 사회적 기업을 통한 아동복지, 선플로 만드는 인터넷 문화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가천대는 학생들의 원인 분석과 문제해결 방안 등을 종합 평가해 순위별로 장학금을 수여했다. 홍을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생명과 나눔 교과목은 생명의 가치를 토론하고 모색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강의로 해를 거듭하면 할 수록 발전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뿌듯하다”며 “학생들이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10살 보트피플 ‘루’, 사라진 생명 대신한 현실의 삶은…

    10살 보트피플 ‘루’, 사라진 생명 대신한 현실의 삶은…

    ‘나는 불꽃이 터지고 빛줄기가 화환처럼 펼쳐지고 로켓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환한 하늘의 그림자에서 태어났다. 나의 탄생은 사라진 다른 생명들을 대신하는 임무를 지녔고, 나의 삶은 어머니의 삶을 이어 갈 의무를 지녔다.’(11쪽) 소녀는 1968년 베트남 전쟁 중 북베트남 인민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펼친 대공세 속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이름에 철자 부호만 하나 다른 이름을 하고. 그러나 조국의 역사는 어머니를 이어 가야 한다는 임무에서 소녀를 떼어냈다. 불과 열 살 때였다. 소설 ‘루’는 열 살 때 베트남을 떠나 캐나다 퀘벡에 정착한 보트피플인 작가 킴 투이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의 데뷔작인 ‘루’는 출간 10년 만에 지난해 성추문으로 취소된 노벨문학상을 대신하는 뉴아카데미 문학상 최종심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다른 이주문학에서 흔히 보이는 분위기와 달리 ‘루’는 시종일관 평온하다. 이국의 땅에서 겪는 소외감과 조국에 대한 향수보다는 지금 현실의 삶에 집중한다. 말레이시아 수용소의 2000명 난민 중 한 명으로, 분뇨 구덩이 위에서 파리들의 노래를 듣는 삶을 거쳐 소녀는 퀘벡의 작은 도시 그랜비로 간다. 그랜비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같은 정성’으로 이방인들을 품어 주었다. 베트남어로 ‘루’라는 말이 ‘자장가’라는 걸 상기해 보면 소녀에게 베트남은 이국으로 온 이들에게 삶의 고단함을 달래 주는 자장가이며 그랜비는 지나간 고통을 달래 주는 자장가다. “인생이라는 싸움에서는 슬퍼하면 진다”는 베트남 속담 그대로 소녀는 운명을 조용히 감내하지만, 그 수동성 속에는 강함이 있다. 킴 투이는 모국어인 베트남어 대신 퀘벡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소설을 쓴다. “베트남어는 유년기의 언어이며, 프랑스어는 글을 쓰고 사랑을 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루’와 함께 출간된 ‘만’ 역시 보트피플로 캐나다에 정착한 베트남 남자에게 시집간 베트남 여인 ‘만’이 식당을 운영하며 겪는 이야기다. ‘만’이 여러 사연을 담은 베트남 음식을 만들며 사랑을 베풀 듯 킴 투이도 언어로 그 과정을 지나오고 있는 듯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앞면만 덩그러니… 포르투갈 식민지 처연함이

    앞면만 덩그러니… 포르투갈 식민지 처연함이

    마카오에 10년 만에 갔을 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코타이 지역엔 거대한 쇼핑몰과 카지노, 대형 리조트가 번쩍거려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방불케 했다. 자본의 향기가 넘쳐흐르는 이곳에서 허름한 배낭을 메고 온 나는 외로운 이방인이 돼 버렸다. 카지노에서 욕망에 잠깐 취하기도 했다. 3만원이 15만원으로 불어난 초심자의 행운을 안고 마카오 반도로 향했다. 역시! 마카오는 다닥다닥 붙은 낡은 아파트가 보여야 정겹다. 건물이 빽빽하게 늘어서 햇빛 한 줌도 잘 들어오지 않는 서민의 골목, 쿰쿰한 냄새가 퍼져 나오는 노포 앞에서 ‘난닝구’만 입고 부채질하는 할아버지, 읽을 수 없는 한자로 써 있는 빨간 메뉴판, 냄새와 소리가 만들어 낸 행복한 현기증. 웃음이 번졌다. 1557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442년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에서 포르투갈의 흔적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카오의 명물인 에그타르트조차 포르투갈이 이 땅에 남겨 놓은 유산이다. 옛 포르투갈의 수도원에서는 옷을 빳빳하게 만들기 위해 계란 흰자를 썼다. 수녀들은 남는 노른자를 처리하기 위해 고민하다 에그타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유명하다는 에그타르트 집에 갔다. 에그타르트를 한 입 무는 순간, ‘바사삭’ 겉면이 부서지면서 무릎에 빵가루가 쌓였다. 겉은 탱탱하고 속은 촉촉한 커스터드 크림이 입안 가득 퍼졌다. 풍성한 맛에 마음까지 풍성해졌다. 그 옛날 수녀들 덕분에 종교적 신념은 몰라도 에그타르트에 대한 신념은 확실히 생겼다. 먹거리도 그렇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올라있는 마카오 역사지구 대부분이 포르투갈의 문화를 담고 있다. 물결무늬의 타일 바닥과 노란색, 민트색의 콜로니얼 건물로 잘 알려진 세나도 광장을 비롯해 25개 건축물 모두가 해당한다. 광장을 따라 언덕을 향해 10분쯤 걸으면 드디어 마카오를 대표하는 ‘성 바울 대성당의 유적’이 처연한 자태를 드러낸다. 1602년 이탈리아 예수회가 설계했고 일본의 종교 박해를 피해 나가사키에서 건너온 일본인 기독교 석공과 중국인 공예가들의 도움으로 완성됐다. 1640년이 돼서야 완공된 성 바울 대성당은 당시 아시아 최대의 유럽풍 성당이면서 교육기관이었다. 1835년 대화재로 인해 몸통을 상실한 채 지금은 정면만 덜렁 남아 있지만 언제나 북적거리는 사람들 덕분에 외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파괴된 그리스 신전에서 원형을 상상해 보듯 성 바울 대성당의 형태를 머릿속에 그려 보는 것은 여행자의 몫이다.‘성모 마리아와 천사, 포르투갈 범선이 섬세하게 조각돼 있는 아름다운 창문으로 햇빛이 가늘게 들어온다. 포르투갈인, 중국인이 한데 섞인 성당에 경건한 성가가 퍼진다.’ 내가 상상해 보는 300년 전 마카오의 한 풍경이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뮤지컬 ‘더 스트레인저’ 5일 개막...신민, 3년만의 복귀작

    뮤지컬 ‘더 스트레인저’ 5일 개막...신민, 3년만의 복귀작

    창작 뮤지컬 ‘더 스트레인저’가 대학로 마당세실극장에서 5일 개막한다. ‘더 스트레인저’는 절벽 끝으로 내몰린 네 명의 청년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죽은 사람들의 유품을 청소하는 특수청소용역회사 직원, 음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지만 투병 중인 음악가, 폭력적인 가정에서 벗어나 가출 청소년 집단에 의지했지만 그마저도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가출청소년 등이 어느 날 같은 공간에 모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특히 이 작품에는 아이돌 그룹 D-Code 출신 뮤지컬 배우 신민이 ‘러브인뉴욕 올댓재즈’ 이후 3년만에 무대에 복귀한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죽은 자의 공간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대행 업체 하늘 이사의 직원 오현재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락밴드 ‘헬로 스트레인저’의 리더이자 그룹 시나위의 보컬인 강한이 작곡과 편곡을 맡았으며, 뮤지컬 ‘홍길동’, ‘싯다르타’의 김승원이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아이돌 그룹 VX의 김동준을 비롯해 뮤지컬배우 김석환, 신은미, 이승연, 이겨례 등이 출연한다. ‘더 스트레인저’는 오는 12월 29일까지 공연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이센스, 2년 만의 단독 콘서트 확정 ‘언제 어디서?’

    이센스, 2년 만의 단독 콘서트 확정 ‘언제 어디서?’

    래퍼 이센스의 2년 만의 단독 콘서트 ‘E SENS [Strange No More] LIVE IN CONCERT’가 오는 12월 28일과 12월 29일 서울 광장동 YES24 라이브홀에서 개최된다. 이미 이센스는 지난주 자신의 공식 채널들을 통해 새로운 소식을 발표할 것이라고 깜짝 예고를 한 바 있다. 공연의 예매는 오는 12일 오후 8시 YES24에서 단독으로 진행된다. 콘서트는 이센스와 그의 게스트들로 꾸며질 예정이며, 콘서트 게스트는 추후 발표된다. 이센스는 정규 1집 ‘The Anecdote’로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상을 수상하고, 힙합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2만 5천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한국 힙합의 가장 상징적인 래퍼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이센스는 지난 7월, 정규 2집 ‘이방인’을 발매하며 단 3일 만에 한정반 1만 7천장을 품절시키고, 각종 평론 매체에서 올해 발매된 힙합 앨범 중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았다. 이후 2년 전인 지난 2017년 열렸던 ‘E SENS The Anecdote’ 전국투어는 대구, 광주, 부산, 대전, 서울, 전국 5개도시에서 양일간 진행되었으며, 티켓 오픈 하루 만에 4개 도시가 양일 모두 매진되는 기염을 토하며,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증명한 바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자치광장] ‘박물관 도시’로 거듭나는 용산/성장현 용산구청장

    [자치광장] ‘박물관 도시’로 거듭나는 용산/성장현 용산구청장

    “인도교의 아치가 끊어지고 철로는 엿가락처럼 녹아내렸다. … 1950년 6월 28일, 맏이 나이 14세 일이었다. … 1957년 맏이는 부서진 인도교 대신 임시 부교가 개통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새로 생긴 다리를 보니 정말 전쟁이 끝났구나 싶었다.”(‘용산을 그리다’ 52쪽)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중 근현대 100여년의 시간은 용산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주둔했고 해방 후 미8군이 그 자리를 이어받으며 용산은 자연스럽게 ‘한국 안의 이방인 동네’로 각인됐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역사가 용산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세계 각국의 문화가 공존하면서 ‘역동적인 도시’라는 이미지를 입혔고, 낙후된 도시 공간을 재구성하기 위한 개발 사업들이 도시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군부대가 나간 자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공원도 들어선다. 효창공원은 또 어떠한가. 한겨울 시린 찬바람보다도 더 잔인했던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조국독립을 위해 싸운 순국선열들이 잠들어 계신다. 뿐만 아니다. 용산은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까지 박물관들의 보고(寶庫)다. 지방자치시대, 전국의 226개 지방정부는 차치하더라도 서울시 25개 자치구 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좁은 공간 안에서 지리적 차별성을 논하긴 어렵고 마천루(摩天樓) 대결도 더이상 답이 될 수 없다. ‘용산다움’이 필요했다. 근현대 100년의 역사를 지키고 한국 안의 작은 지구촌이라는 독창적인 문화도 살려 나가야 한다.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 용산을 박물관의 도시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역사적 배경 위에 용산만의 독창적인 문화와 감성을 더하는 작업이라 하겠다. 용산은 이미 밑그림을 완성했다. 민선 5기 구청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에 심혈을 기울여 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용산역사박물관 건립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지어진 옛 용산철도병원(등록문화재 제428호) 실내를 리모델링해 2021년 개관할 계획이다. 물론 박물관이라고 해서 과거만 기록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미래상도 함께 담아 ‘세계의 중심도시 용산’의 경쟁력을 더해 갈 것이다.
  • 한국 배우는 이방인, 한류 전하는 메신저

    한국 배우는 이방인, 한류 전하는 메신저

    ‘겨울연가’에서 ‘방탄소년단’까지 지난 20년간 한류(韓流)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 하지만 ‘진출’ 개념의 일방적인 문화 전파로 일부 국가에서는 반한류 감정도 생겼다. 수출 일변도의 한류를 ‘쌍방향 문화교류’로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사업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05년부터 시작한 ‘문화동반자사업’(Cultural Partnership Initiative·CPI)이다. ‘한류의 지속성 유지와 전파’를 위해 개발도상국의 문화, 예술, 문화산업 분야 전문가를 문화체육관광부 및 산하 기관에서 초청해 공동 창작활동을 진행하고 기관별 특성에 맞는 전문 연수를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총 27개국에서 60명이 초청을 받아 활동 중이다.중부지방의 단풍이 절정의 자태를 뽐내던 10월 하순. 경기 수원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의 보존과학실에서는 문화동반자사업 연수생들의 현장실습이 한창이었다. 광주시 분원리 가마터에서 발굴한 토기의 파편을 조립하는 작업이다. 연수생들은 산산조각이 난 파편 100여개를 마치 퍼즐 맞추기를 하듯 하나씩 제자리에 끼워 넣는 김범준 연구관의 손놀림을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문화재재단의 초청을 받아 연수 중인 레레는 미얀마 고고학국립박물관 보존과학 담당관이다. 그는 “보존과학은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아 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연수가 한국문화 속에 담긴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기대를 내비쳤다.2012년부터 문화동반자사업에 참여한 한국문화재재단은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택견수업과 공방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이크’, ‘에크’ 연수생들이 ‘택견’ 특유의 기합소리를 내며 사범의 지도에 맞춰 발짓을 따라 하고 있다. 택견 한복을 입은 모습도, 발음과 자세도 많이 어색하지만 표정만큼은 진지하다. 페루의 문화부 무형유산국 연구원인 아르테타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대표적인 무형유산의 전승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싶었다”며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닦을 수 있는 무예가 무척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갓’ 공방으로 자리를 옮겨 제작과정을 체험한 이방인들은 특히 대나무를 얇게 잘라내서 만드는 ‘양태(갓의 테) 기법’을 보고 “한국적인 전통을 활용한 최고의 명품”이라며 감탄을 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의 진옥섭 이사장은 “문화동반자사업이 개도국과의 문화교류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며 “현재 캄보디아, 미얀마 등에서 세계문화유산을 보존·복원하는 협력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케이팝으로 시작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점차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한국어’와 ‘한글’의 인기가 대단하다. 문화동반자사업에서도 한국어 연수는 모두에게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베트남의 팜씨는 “베트남에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데다 한류 열풍도 있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이 많다”며 “오리지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의 문화동반자 연수생들은 지난달 국립국악원 초청 공연에서 한국 연주자들과 함께 제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비슈구르, 마두금, 단니, 텔렘퐁 등 이름만 들어도 특이한 각국의 고유 악기를 통해 국가 간에 음악적 자산을 나눌 수 있도록 기획한 공연이다. 몽골의 비슈구르 연주자인 잉크첸은 “정서적으로 음악이 비슷한 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연주활동을 통해서 문화예술교류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수생들은 우리 것을 가감 없이 자연스럽게 세계에 알리는 메신저들이다. 이들의 배움은 곧 세계와의 소통이다. 문화동반자사업을 통해 ‘한류’가 국제사회에 도움을 주는 ‘공헌사업’으로 다변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마루창작소, 웹툰 ‘Korean Friends’로 한류의 새 지평 열어

    마루창작소, 웹툰 ‘Korean Friends’로 한류의 새 지평 열어

    최근 뜨거워진 한류 열풍으로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K-POP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화, 음식, 소비재상품, 콘텐츠, 여행 등 다양한 산업을 아우르는 상품들이 기획되고 있으며, 한류에 대한 관심이 경제적인 성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웹툰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 웹툰 시장 규모가 곧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웹툰은 대한민국의 문화를 알리는 한류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한국 웹툰 산업의 중심이 되는 국내 주요 업체들도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콘텐츠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 관광정보 웹툰 플랫폼 기업인 마루창작소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코너에 웹툰 <조선손님유람기>를 연재하며 업계 이목을 끌고 있다. <조선손님유람기>는 조선에서 온 이방인들의 시선으로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여행한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통해, 국내 관광정보를 유쾌하고 재미있게 소개한다. 최근에는 본 웹툰의 캐릭터를 활용하여 글로벌 독자들을 대상으로 제작한 SNS 웹툰인 <Korean Friends>를 새롭게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Korean Friends>는 매회 한국의 음식, 언어, 문화, 관광정보, 미신 등 한국 고유의 문화를 독창적이면서도 흥미롭게 담아내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코리아투어코믹스 외에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글로벌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이목을 끌고 있다. 시간 여행을 하는 선비 ‘김산’과 패랭이 쓴 진돗개, 한복 입은 고양이 등의 창작 캐릭터가 등장한다. 전통적인 헤어스타일에 현대적인 의상을 갖춘 캐릭터들은 상반된 복장을 통해 대조적인 매력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잘 담아냈다는 특징이 있다. 외국인들을 위한 지침서가 아닌 한국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정보성에만 국한되지 않은 개성 있는 콘텐츠이다. ‘사찰에서 물고기가 달린 종, 풍경은 왜 달아놓는가’, ‘불금’과 ‘썸’, ‘오빠’는 언제 사용하는 말인가’ 등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아이템이 그 예시이다.특히 캐릭터들에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하는 장편 만화 프리퀄 시리즈가 별도로 제작되어 독자들은 각 캐릭터들이 대한민국으로 타임 슬립한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마루창작소 관계자는 “<Korean Friends>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진돗개와 고양이 캐릭터를 통해 애견인과 애묘인들에게도 광범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웹툰”이라면서 “웹툰 론칭 2개월 만에 SNS 팔로워가 급증하며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류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들에게 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마루창작소는 2015년 설립되어 국내 관광정보를 재미있고 코믹한 웹툰으로 제작하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정보 웹툰 플랫폼 기업이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한국의 다양한 축제를 ‘웹툰’을 통해 소개하며 쉽고 재미있게 축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리뷰형 웹툰을 제작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968년 국내 첫 치즈공장 설립… ‘임실의 기적’ 만들어

    1968년 국내 첫 치즈공장 설립… ‘임실의 기적’ 만들어

    벨기에 출신 ‘파란 눈의 사제’ 지정환 신부는 ‘임실치즈의 아버지’로 불린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던 1959년 낯선 땅을 밟은 이방인은 1964년 임실성당 신부로 부임했다. 그는 굶주림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작은 산골을 보고 양이나 젖소를 키워 치즈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965년 산양 두 마리로 무모한 도전을 시작해 다음해는 임실산양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효소는 막걸리 누룩, 발효통은 약탕기로 대신해 치즈 생산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직접 치즈 제조기술을 배워와 1967년 대한민국 최초로 카망베르 치즈 개발에 성공했다. 1968년에는 정과 망치만으로 우리나라 최초 치즈공장을 설립했다. 1972년에는 모차렐라 치즈를 생산해 조선호텔에 납품하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했다. 이후 임실치즈는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지정환 신부는 1964년부터 현재까지 임실치즈 생산과정이 담긴 기록물을 임실군에 기증했다. 그는 지난 4월 “임실을 사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선종했다. 정부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임실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충남 천안시, 아프리카 돼지열병 공포에도 신바람 나는 흥타령춤축제 강행

    충남 천안시, 아프리카 돼지열병 공포에도 신바람 나는 흥타령춤축제 강행

    ‘대법원의 시장 당선무효형 심사 착수, 위협적인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엄습에도 신바람 나는 흥타령춤축제’ 국내 최대 양돈지역 충남에서도 두번째 규모(25만 마리)를 자랑하는 천안시에서 지난 주말 이 같은 혼돈스러운 광경이 동시에 벌어졌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충남을 덮치면 국내 양돈산업 자체가 풍비박산 날 위기에 빠지자 충남 홍성군은 물론 천안과 인접한 경기 안성도 줄줄이 축제를 취소했지만 천안시는 버젓이 축제를 강행했다.천안시는 지난 25일부터 29일까지 펼쳐진 제16회 천안흥타령춤축제 관람객이 지난해 120만명을 웃도는 123만명에 이르러 성공적이었다고 30일 자랑했다. 축제비용으로 예산 27억원이 투입됐다. 흥겨운 춤과 노래가 펼쳐지던 시간, 경기 강화도는 돼지를 전량 살처분하고 홍성과 경기 양주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 신고가 잇따르며 급격한 확산 양상을 보여 공포에 휩싸였다. 축제가 열리던 천안삼거리공원 등과 가까운 시내 축사에서 농민들은 돼지우리를 소독하느라 땀을 흘렸고, 성환읍과 병천면 소독시설은 오가는 차량에 연신 소독약을 뿌리며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경로 등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핵심 창궐지인 경기 주민들은 축제장을 들락거렸지만 정작 시민인 천안 양돈 농민은 금족령이 내려졌다. 축제장에 ‘양돈농가 축제장 출입금지’라고 쓴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축제를 취소나 연기하지 않으면서 다같이 즐기는 축제에서 그들은 철저히 이방인이 됐다.그 즈음 천안 정가에 당선무효 위기에 몰린 구본영 천안시장에 대한 대법원 심리가 착수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구 시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800만원에 추징금 2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2014년 5월 천안 두정동 모 음식점에서 김모 전 천안시체육회 상임부회장으로부터 현금 2000만원이 든 가방을 받아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지난해 지방선거 전부터 수사를 받아온 구 시장은 취임 후에도 발목이 잡혀 시정에 적잖은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도희 천안시의원은 “구 시장이 재판에 신경을 쓰느라 하이닉스 유치 실패 등 적잖은 시정 차질이 있었다”며 “시장이 물러날 위기에 있고,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닦쳐오고 있는 마당에 100만명 이상이 왔다갔다 하는 축제를 연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시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준비해 놓은 축제여서 취소하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입국심사 통과 가능?” 윤종신, 출국 앞두고 여권사진 공개 [EN스타]

    “입국심사 통과 가능?” 윤종신, 출국 앞두고 여권사진 공개 [EN스타]

    가수 윤종신이 여권 사진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윤종신은 25일 “뭐 준비할 게 많구나”라는 글과 함께 여권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에는 안경을 벗고 미소를 짓고 있는 윤종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훈훈한 외모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어 윤종신은 “너덜너덜..지난 여권”이라는 글과 함께 과거 여권 사진을 공개했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젊은 시절의 모습이 놀라움을 안겼다. 이에 방송인 홍석천은 “이미그레이션(입국심사)에서 잡힐 듯”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한편 윤종신은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이방인 프로젝트’를 선언하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10월 출국을 앞두고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한국도 네팔도 외면한 청년의 죽음…“아이 두고 왜” 아내의 통곡

    한국도 네팔도 외면한 청년의 죽음…“아이 두고 왜” 아내의 통곡

    자살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 최근 10년(2009~2018년)간 한국에서 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팔 노동자는 모두 43명. 더 큰 비극은 죽음 뒤에서 기다린다. 사람이 죽었는데 한국이나 네팔 정부 어느 곳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통계표에 건조하게 적힌 사망자수 외에 이들이 왜 죽음에 내몰렸는지는 누구도 따져 보려 하지 않았다. 비전문취업비자(E9)로 한국에 들어오는 16개 국가 중 네팔은 지난해 가장 많은 이주노동자(8404명)를 보냈다. 네팔 노동자의 죽음은 우리 곁의 모든 이주 노동자의 얘기일 수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왜 죽음의 땅이 됐을까. 서울신문은 네팔 카트만두와 동카르카, 포카라 등에서 유가족 등 40여명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들었다. 이 가운데 여전히 죽음의 이유를 찾아 헤매는 세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를 정리했다.#28세 게다르 디말시나 유리 테이프가 성의없이 나붙은 사람 키 높이만 한 관이 공항 밖으로 빠져나왔다. 볼품없는 관에는 겨우 스물여덟 된 앳된 남성이 들어 있었다. 네팔 청년 게다르 디말시나였다. 그는 지난달 21일 오전 9시쯤 부산 사하구의 한 수산식품 공장 창고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닷새가 흐른 지난달 26일 시신은 여객기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려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밖에서 기다리던 친척들은 한국 경찰이 보내준 단출한 서류를 넘겨보다가 수군거렸다. “아무리 봐도 자살한 이유가 없어.” 가족들은 게다르가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르에게는 오히려 생의 의지를 다잡을 만한 축복만 있었다. 아내 번더나 디말시나(28)가 불과 25일 전 아빠와 똑 닮은 아이를 낳은 것이다. 번더나의 큰오빠는 “게다르가 아이 출산 나흘 뒤 친구들을 불러 파티할 만큼 기뻐했다”면서 “그런 사람이 왜 20일 후에 느닷없이 자살하겠느냐”며 갑갑해했다. 환갑을 맞은 어머니를 남겨둔 채 먼저 갈 무심한 아들도 아니었다. 가족들을 더 답답하게 만든 건 두 나라 관계기관의 태도였다. 게다르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주한 네팔대사관이나 한국 경찰은 시신을 돌려보내 준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믿는 듯했다. 경찰은 “외관상 타살 흔적이 없고 자살 동기가 명확하다”며 사고 현장의 폐쇄회로(CC)TV를 살피거나 휴대전화 포렌식을 하지 않았다. 번더나의 큰오빠는 취재진에 “어떻게 CCTV와 휴대전화 확인도 하지 않을 수 있느냐. 한국에서는 이래도 되느냐”고 반문했다.경찰이 파악한 ‘명백한 자살 동기’는 가족을 탓하는 내용이었다. 게다르가 아내를 통해 땅을 샀는데 이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힘들어했다는 동료 진술이 있었다는 것이다. 취재진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번더나와 가족들은 “거짓말”이라며 흥분했다. “땅은 1년 전에 샀는데 290만 루피(약 3000만원)였던 토지가 435만 루피(약 4500만원)까지 뛰었다”고 주장했다. 가족들은 게다르의 유품조차 돌려받지 못했다. 한국 경찰 관계자는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 “주한 네팔대사관에 물어보니 유가족들이 물품 받길 원치 않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가족 얘기는 달랐다. 유품 문제를 두고 대사관과 통화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한 네팔대사관 관계자는 “시신과 사망 진단서를 확실하고 빠르게 네팔로 보내는 게 우리 역할”이라면서 “대사관은 중요한 물건이 아니면 보낼 수 없다”고 답했다. 게다르의 시신은 도착 당일 갠지스강 상류의 바그마티강으로 옮겨졌다. 관 뚜껑을 열어 남편을 확인한 번더나는 얼굴을 만지며 통곡했다. “아이를 두고 어떻게….” 가족들은 강물로 게다르의 입을 적신 뒤 불을 입속에 넣어 화장했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떠났다가 죽은 채 고국에 돌아온 그는 4시간 만에 불과 함께 사라졌다.#32세 발 바하두르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던 사람이었어요.” 지난달 30일 네팔 포카라에서 만난 리리 마야 구릉(28·여)은 선글라스 안으로 휴지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매일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남편이 떠오른다”고 했다. 남편 발 바하두르 구릉(당시 32세)은 지난해 6월 12일 서울 중랑구 월릉교에서 몸을 던졌다. 당시 CCTV 화면에는 발 바하두르가 다리 위를 수차례 오가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담겼다. 끝까지 망설였지만 이틀 전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그는 ‘한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 탓에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발 바하두르는 원래 허가받은 노동자로 한국땅을 밟았다. 2017년 10월 E9 비자를 받고 입국한 그는 이듬해 3월 일하던 사업장에서 나와 고용노동부에 구직등록을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구직등록 후 3개월 안에 직장을 못 구하면 체류자격을 상실한다. 잠시 네팔에 돌아와 가족과 보낸 시간을 빼고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맞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시간은 매몰차게 흘렀다. 3개월이 지났고 불법체류자가 됐다. 리리 마야는 한국에 와 남편의 시신을 수습했다. 당시 그를 도왔던 네팔인 라마 다와 파상(43)은 “한국에서 일하다 숨진 이주노동자의 가족들은 사망 소식을 듣고도 형편 탓에 대부분 한국에 오지 못한다”면서 “대사관이 하는 건 없다”고 털어놨다. 발 바하두르는 사망 두 달 전 네팔에서 아내와 즐겁게 데이트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봤던 동네 사람들은 리리 미야에게 “그렇게 행복했던 사람이 한국에 가서 왜 그렇게 됐느냐”고 곧잘 묻는다. 군인이었던 발 바하두르의 아버지는 삼 형제 중 막내인 아들의 사망소식을 듣고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네팔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집에 영정사진을 두고 아침저녁으로 향을 피운다. 일곱 살인 딸이 “이건 죽은 사람한테만 하는 거잖아. 아빠 죽은 거야”라고 물었다. 리리 마야는 “아빠는 외국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곤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저도 죽고 싶었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어요.”#40세 던 라즈 갈레 “나는 결백합니다. 회사가 나를 속였어요.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회사가 나에게 서명을 받았습니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 주세요.” 2011년 6월 대구 달서구의 한 이불공장에서 일하다 스스로 목을 맨 네팔 이주노동자 던 라즈 갈레(당시 40세)가 남긴 영어 유서 중 일부다. 2010년 9월 한국에 온 그는 네팔행 티켓까지 예매해 놓고 비극적 선택을 했다. 지난달 31일 포카라 집에서 만난 그의 아내 만 마야 갈레(48)와 동생 빔 라즈 갈레(36)는 어렵게 8년 전 이야기를 털어놨다. 동생 빔 라즈는 형이 자살한 이유를 모른 채 보낼 수 없다며 한국에 갔다. 아이를 정말 사랑하고 성실했던 형이었기에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형이 남긴 유서를 보고서야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형은 뭔지 모르는 문서에 사인한 후 회사가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하고, 걱정돼 우울증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던 라즈는 네팔어로 된 짧은 유서도 남겼다. “나는 잘못이 없다. 회사에서 몽골 사람과 싸운 적이 있다. 몽골 친구가 한국 사람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회사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던 라즈의 이런 주장을 회사는 모두 부정했다. 괴롭힘이나 따돌림은 없었고, 서류에 서명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던 라즈는 한국에서의 주·야간 교대 근무를 힘들어했다. 특히 사망 두 달 전인 4월 중순부터는 야간 근무만 했다. 만 마야는 “남편이 야간 근무를 하면서 잠을 아예 못 잤다”고 말했다. 당시 대책위 활동을 했던 노조 관계자는 “야간 근무를 하면서 따돌림까지 겹치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것 같다”면서 “나중에는 회사가 사실상 해고할 것처럼 나오자 스트레스를 더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팔에는 외국에서 일하고 온 이웃이 선물을 사와 앞집, 옆집과 나누는 문화가 있다. 만 마야는 “아이가 이웃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을 때 아빠 생각이 났는지 얼굴빛이 안 좋았다”며 눈물을 쏟았다.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은 아빠의 부재를 자각할 무렵 “그렇게 만든 사람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대학생이 된 딸은 여전히 “죽어도 외국은 가지말자”고 말한다. 그래도 만 마야와 빔 라즈는 한국인이 밉지 않다고 했다. “한국에도 네팔처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고 남편은 나쁜 사람을 만났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 때문에 한국인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맞지 않죠. 그래도 나쁜 사람은 꼭 처벌받았으면 좋겠어요.” 카트만두·포카라·동카르카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이주아동이 겪는 각종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주노동자로서 임금체불, 산업재해 은폐 강요, 폭언과 폭행 등 부조리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면 제보(key5088@seoul.co.kr) 부탁드립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아동을 향한 폭언·폭행, 따돌림 등 혐오와 폭력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제보해주신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지며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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