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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책꽂이]

    인간 서애 류성룡 이야기(유창하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서울신문에서 25년간 현장을 뛰었던 언론인이자 언론학 박사인 저자가 조선의 재상 류성룡을 기록했다. 공적 기록과 개인 일화를 찾아 현실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였으며 보통의 인간이자 순수한 촌로, 임진왜란을 온몸으로 버틴 지도자이자 ‘징비록’을 쓴 서애를 되살리며 ‘이 시대의 류성룡은 어디에 있는가’ 묻는다. 240쪽, 1만 4000원.부의 흑역사(니컬러스 색슨 지음, 김진원 옮김, 부키 펴냄) 자본이 자본을 낳는 사회, 거대한 부의 약탈 과정을 낱낱이 파헤치고 비정상적인 금융화가 사회와 개인에 끼치는 영향을 적나라하게 밝힌다. 파생상품, 신탁, 사모투자 등 첨단 금융 기법들의 작동 원리를 속속들이 해부하면서 금융 위기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경고한다. 560쪽. 2만 2000원.따뜻한 인간의 탄생(한스 이저맨 지음, 이경식 옮김, 박한선 해제, 머스트리드북 펴냄) 두 발로 걷고 털이 사라지고 옷을 만들고 집을 짓는 신체적·사회적 변화를 체온의 진화사로 훑었다. 체온 조절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두루 탐색하면서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색다른 메시지를 던진다. 440쪽. 1만 9800원.오무아무아(아비 로브 지음, 강세중 옮김, 우종학 감수) 2017년 하와이 천문대가 발견한 물체 ‘오무아무아’를 전문가들은 소행성이나 혜성이라고 봤다. 하버드대 천문학부 학장을 지낸 저자는 이것이 ‘외계 지성체가 만든 인공물’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했다. 책은 그 비밀을 밝혀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어려운 주제를 유려한 문장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이끈다. 356쪽, 1만 7000원.인생의 맛 모모푸쿠(데이비드 장 지음, 이용재 옮김, 푸른숲 펴냄) 한인 2세대 교포인 셰프가 인생의 쓴맛을 털어놓는다. 저자는 2010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예술가 부문에 뽑혔지만 그의 성공 뒤에는 수십 년 이방인의 삶과, 우울증과 마약에 중독된 시간이 있었다. 그가 걸어온 길에서 성공을 향한 열망을 받쳐 준 희망을 발견한다. 400쪽. 1만 8000원.플라멩코 추는 남자(허태연 지음, 다산책방 펴냄) 반평생을 굴착기 기사로 살아온 67세 남성이 은퇴를 결심하고 스스로를 위한 과제를 골라 하나하나 이뤄내면서 겪는 우여곡절을 펼쳐냈다. “코로나19 시국에 대한 면밀한 반응과 가족에 대한 위로”라는 호평을 받으며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276쪽. 1만 4000원.
  • “한국처럼 사랑 베푼 나라 없어요… 다만 앞날 정해진 바 없어 막막”

    “한국처럼 사랑 베푼 나라 없어요… 다만 앞날 정해진 바 없어 막막”

    진천 임시생활시설 내 야외활동 시작“전 세계 어디도 한국만큼 환대 안 해아이부터 임신부까지 꼼꼼하게 지원”법무부 “5개월 교육 후 자립 도울 것”“한국처럼 이렇게 같이 일하는 직원을 안전한 곳으로 초대하고 사랑을 준 나라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또 감사합니다.” 13일 오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잔디밭 위에 선 세 명의 ‘이방인’들은 취재진을 향해 연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흰색 마스크 위로 드러난 그들의 눈빛은 목숨을 위협받는 불안한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낯선 땅에 첫발을 내디뎠던 순간보다 한결 평온해 보였다. 지난달 26일 작전명 ‘미라클’을 통해 기적같이 한국에 도착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390명은 지난 10일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진천 임시생활시설 내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 인터뷰는 특별기여자들의 얼굴과 이름을 숨겨주는 조건으로 진행됐다. 각각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한국병원과 한국직업훈련원, 차리카 한국 지방재건팀(PRT)에서 근무했던 현지인들로 소회와 포부 등을 밝혔다. 바그람 미군기지 내 한국병원에 근무한 A씨는 “우리를 대피시키기 위해 전 세계가 도움을 줬지만, 한국만큼 고맙고 안전한 나라는 없다”며 “한국 국민들이 많은 후원품을 보내주며 환대해줘서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A씨는 미군의 철수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아프간 주재 한국대사관 측에 도움을 호소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A씨는 “미군이 떠나고 탈레반이 오면 우리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아프간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직접 연락했다”라면서 “김일응(공사참사관)이라는 분께서 아버지처럼 도와주셨다. 특별히 감사하고 외교부 직원이 밤을 새며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와주셨다”고 긴박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조국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국직업훈련원 컴퓨터 관련 교수로 재직한 B씨는 “아프간에 남아있는 친척과 연락해봤는데 여성들은 자유를 억압받고 의료체계가 붕괴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지는 듯하다”며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해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어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묻자 “어린이와 임산부 건강관리부터 물품지원까지 넘치는 사랑을 줘 감사할 뿐”이라면서도 “다만, 앞으로 어디서 살고, 어떻게 자녀를 교육해야 할지 걱정은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임시생활시설 곳곳에서는 한국 생활에 조금씩 안정을 찾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어린 아이들은 숙소 밖 운동장에서 축구 등을 하며 뛰어놀았고, 어른들은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유복렬 법무부 국적·통합정책 단장은 “특별기여자들은 진천에 다음달 말까지 머물고 이후 타지역으로 이동해 총 5개월 동안 사회적응 교육을 받는데, 각자가 가진 능력을 살려 한국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밝혔다.
  • [신간] 시베리아의 이방인들

    [신간] 시베리아의 이방인들

    생존을 위해 시베리아에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준호는 가업을 살릴 시베리아산 소나무를 얻기 위해, 북한의 지석은 공화국의 외화벌이를 위해, 러시아의 빅토르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시베리아로 온다. 준호는 과거 주재원 당시 운전기사였던 빅토르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두 사람은 친해진다.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일 년 만에 연락이 닿은 준호가 시베리아산 소나무를 찾자, 빅토르는 그를 자신이 일하는 벌목장 소장 지석에게 소개해주고 거래가 시작된다. 국적은 다르지만 이처럼 얽히고설킨 관계가 된 이들 젊은이는 각자 실패를 맛보지만 새로운 우정을 꽃피운다. 인종과 국적, 이념보다 더 소중한 건 휴머니즘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문학평론가 방민호씨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묻고 생각하도록 하는 근래 보기 힘든 문제작이며 스케일 작은 ‘문단적 소설들’에 지쳐 있는 독자로 하여금 눈 크게 뜨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시원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장마리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집 ‘선셋 블루스’, 장편 ‘블라인드’ 등을 펴낸 그는 불꽃문학상과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문학사상. 312쪽.
  • [강남순의 낮꿈꾸기] 지구의 공동 소유권자, 난민은 동료 인간이다

    [강남순의 낮꿈꾸기] 지구의 공동 소유권자, 난민은 동료 인간이다

    “난민들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얼굴을 지니고, 이름이 있고, 삶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간으로 대우받아야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4월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유럽의 난민 위기가 극심할 때 그리스를 방문했다. 그리스 방문 후 그는 시리아에서 온 12명의 무슬림 난민들을 바티칸으로 데리고 갔다. 그 12명 중에는 6명의 아이가 포함됐다. ●세계 곳곳의 난민 문제 우리의 평화와도 관련 어떤 사건이 등장할 때 우리는 종종 인간을 숫자로만 기억하면서, 그 인간이 개별적으로 얼굴을 지닌 존재임을 잊곤 한다. 2019년 12월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코로나19 사태에서 인간은 코로나 확진자 ○○명 또는 사망자 ○○명이라는 숫자로 표기된다. 또한 한국, 유럽 또는 북미 등으로 유입되는 난민도 숫자에 불과하다. ‘제주도 예멘 난민 500명’이란 신문 기사의 표제어는 여전히 우리의 뇌리에서 그 난민을 ‘500명’이라는 숫자로만 기억하게 한다. 그러나 그 수가 많든 적든, 그 숫자 속의 인간은 각기 다른 고유한 얼굴과 이름을 지닌 인간이다. ‘얼굴’은 한 사람이 단지 숫자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고귀한 존재라는 인간의 개별성을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우리는 얼굴을 통해 타자의 존재를 인식한다. 마치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얼굴은 한 사람의 존재와 만나게 하는 ‘문’이다. 이 점에서 숫자가 아닌 얼굴에 대한 기억은, 나와 타자의 인간됨을 지켜내는 소중한 토대다. “난민들은 숫자가 아니다”라는 선언은, 바로 우리가 개개인을 단지 숫자가 아닌 고유한 존재로 보면서 그들 모두 나와 같이 존엄성을 지닌 인간임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인식이 우리가 난민 디아스포라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한 출발점이다.난민 문제는 21세기 이 세계가 대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 중 하나다. 2001년부터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은 등록된 수만 250만명이 넘는다. 이는 아시아 가운데 가장 많고 세계에서는 시리아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2021년 8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점령한 후 난민 문제가 또다시 긴급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포함해서 세계 곳곳의 난민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 난민은 우리의 동료 인간이다. 또한 한국의 평화는 세계의 평화와 분리될 수 없다. 세계 곳곳의 난민은 나, 우리의 평화를 일구어 내는 데에 결정적인 문제 중 하나다. 동질성을 나누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색채를 지닌 이들이 동료 인간으로 서로를 환영하는 ‘코즈모폴리턴 환대’ 개념이, 21세기에 다시 긴급한 정치사회적 주제로 부상하는 이유다. 한국은 독립된 나라이면서 동시에 이 세계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한국만의 평화’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한국을 포함해 세계 전체가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면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1795년에 ‘영구적 평화’라는 글을 출판한다. 칸트는 이 세계의 평화를 일구어내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세계 시민의식, 둘째, 환대에 대한 보편적 의무 그리고 셋째, 이 지구 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의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현재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위기를 넘어서서 평화를 이루며 함께 사는 삶을 이루는 데 직접적으로 연결된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다. 첫째, 세계 시민의식, 즉 코즈모폴리턴 의식은 우리 모두 두 가지 소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하나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소속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태양 아래 모두가 소속돼 있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소속성이다. 이 두 종류의 소속성은 서로 갈등 관계에 있지 않다. 우리는 한국인이면서도, 동시에 태양 아래에 있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소속성을 지닌다. 둘째, 환대에 대한 보편적 의무란 우리가 사는 나라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라는 것이다. 그 환대의 전제조건은 단 한 가지, 즉 “지구상에 거하는 인간”이다. ‘지구상에 거한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 태어난 곳이 달라도, 태양 아래 속한 세계 시민으로 ‘동료 인간’이라는 정체성에 근거한다. ‘지구상에 거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칸트는 ‘코즈모폴리턴 환대’라고 명명한다. 셋째, 모든 사람의 평화와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 주고 존중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이란 추상적 범주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 그 고유한 얼굴을 의미한다. 칸트의 코즈모폴리턴 환대 개념은 21세기 현대 세계가 대면하고 있는 심각한 위기 중 하나인 난민 문제에 중요한 원리를 제공한다. 칸트는 그의 코즈모폴리턴 환대 개념에서 “환대란 이방인이 타국에 도착했을 때, 적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방인의 권리를 의미”하며 이 권리는 “모든 인간이 이 지구 표면의 공공 소유권을 지닌다는 사실에 근거한다”고 강조한다. 어디에 살든 인간이라면 이 지구 표면의 ‘공동 소유권’을 지닌다. 물론 이러한 지구 공동 소유권에 대한 의식은 땅 투기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한국 사회에서,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한 의식인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본래적 의미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점차 많아질 때, 도처에 있는 ‘난민 디아스포라’에 대한 의식을 전적으로 바꾸게 한다. 누구도 이 지구의 영토에 대한 절대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아니, 주장해서는 안 된다. 모든 인간은 이 지구에 손님으로, 임시 거주자로, ‘난민 디아스포라’로서 잠시 머무는 것일 뿐이다. ‘지구의 공동 소유권’이라는 의식, 또한 모든 이들이 ‘동료 인간’이라는 코즈모폴리턴 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한국이라는 특정한 영토의 절대적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이 땅에 오는 이들을 적대하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 2021년 8월 26일 378명의 아프간 국민이 한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국을 도운 ‘협력자’라는 범주에 들어간 이들이다. 그래서 난민이 아니라 “특별 공로자”라고 명명한다고 한다. 이들을 이렇게 한국에 정착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들 ‘특별 공로자’만을 한국이라는 영토의 ‘포용의 원’에 넣는 것은 지나치게 작은 출발점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그 작은 환대의 원을 이제 더욱 확장해야 한다. 한국을 직접적으로 돕지 않았다 해도,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수밖에 없는 난민에 대해 인류공동체로서의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설사 그들의 종교, 언어, 문화, 생활방식 등 여러 가지가 한국 문화에서는 여전히 낯선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와 ‘그들’이 지닌 가장 중요한 공동 기반이 있다. 이 지구의 ‘공동 소유권’을 나누는 세계 시민으로서 ‘동료 인간’이라는 점이다. ●‘난민 환대’는 시혜가 아닌 인간의 권리·책임 2020년 9월 9일 독일 베를린을 포함해서 40여개의 도시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있었다.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있는 난민 수용소에서 대형 화재가 나서 그곳에 수용됐던 난민 1만 2000여명이 어려움을 겪자 독일 시민들이 나선 것이다. 시위 시민들은 “난민 수용소를 해체하고 당장 (난민을) 데려오라”, “유럽연합(EU)은 부끄러운 줄 알아라” 등의 글귀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독일의 180여개 지방자치단체가 난민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독일이 난민 수용에 이렇게 적극적인 이유에 대해 각기 다른 여러 분석이 있다. 그런데 칸트의 ‘코즈모폴리턴 환대’를 사회정치적으로 확산하는 이러한 의식은, 아무리 나치 시대의 과오에 대한 역사적 사죄의 의미가 있다고 해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같은 정치가들의 난민에 대한 정치 철학과 결단, 그리고 시민들의 성숙한 세계 시민의식이 없다면 상상하기 어렵다. “난민은 숫자가 아니다”라는 선언, 그리고 이 지구 위에 거하는 모든 이들이 ‘지구의 공동 소유권’을 지닌 동료인간이라는 코즈모폴리턴 의식은 지금 이미 한국에 들어온 “특별 공로자”만이 아니라, 오늘 하루도 생존하기 위해 절규하고 있는 모든 ‘난민’들에게도 최대한의 환대를 실천해야 하는 우리의 책임성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여러 가지 현실적인 한계와 제한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 시민들, 종교단체들 등 한국을 구성하는 이들이 ‘난민 디아스포라’에 대한 환대를 확산할 때, 한국은 물론 세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난민에 대한 환대는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난민에 대한 환대는 인간으로서의 권리이며 동시에 책임이다. 살아감이란 결국 ‘함께-평화롭게-살아감’이기 때문이다. 글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부커상·코스타상·대거상 수상 작가들… ‘영연방 소설의 바다’에 빠져보세요

    부커상·코스타상·대거상 수상 작가들… ‘영연방 소설의 바다’에 빠져보세요

    영국이나 호주 등 영연방 출신 유명 작가들의 국내 미발표작이 최근 잇달아 번역 출간되고 있다. 부커상 등 굵직한 문학상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국·일본 작가 위주였던 국내 외국 문학 시장에서 영국 현대소설의 입지도 강화되고 있다.●홀링허스트 ‘이방인의 아이’ 인간 심리 분석 부커상과 서머싯몸상, 빌화이트헤드상을 휩쓴 영국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67)의 장편소설 ‘이방인의 아이’(2011)와 ‘스파숄트 어페어’(2017)가 민음사에서 최근 나왔다. 동성애 작가이기도 한 홀링허스트는 부커상 수상작인 ‘아름다움의 선’(2004) 등 영국 퀴어(성소수자) 문학을 대표하는 역작들을 냈다. ‘이방인의 아이’는 1차 세계대전을 앞둔 1913년 여름 주인공 조지 솔이 자신의 전원주택으로 매력 넘치는 친구 세실 밸런스를 초대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밸런스는 솔의 여동생을 비롯해 모든 남녀의 시선을 사로잡고, 솔의 삶은 밸런스를 집에 데려온 순간부터 송두리째 흔들린다. 작가는 성과 계급, 사랑과 환멸, 거짓, 선망, 증오 등 인간 내면의 불가해한 심리를 예리하게 펼쳐 낸다. ‘스파숄트 어페어’는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최근까지의 긴 시간을 다룬다. 전쟁 와중에 옥스퍼드에 머물던 남자들이 청년 데이비드 스파숄트의 외모에 매료된다. 데이비드는 성공한 기업가가 돼 아들 조니를 얻지만, 동성애자인 조니는 아버지가 스캔들에 휘말려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케리 ‘오스카와 루신다’ 부조리한 사회 풍자 문학동네는 부커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호주의 거장 피터 케리(78)에게 첫 번째 부커상을 안겨 준 1988년 소설 ‘오스카와 루신다’(1·2권)를 최근 펴냈다. 19세기 중반 영국 죄수의 유배지이자 사회 부적응자들의 도피처였던 호주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런던에서 호주로 가는 배에서 우연히 만난 영국국교회 사제와 부잣집 상속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찰스 디킨스에 비견되기도 하는 케리는 부조리극, 블랙 유머, 사회 풍자 등을 결합해 풍부한 서사를 보여 준다.●앳킨슨 ‘폐허 속의 신’ 전쟁의 참혹함 고발 코스타상을 받은 영국 작가 케이트 앳킨슨(70)의 2015년 작 ‘폐허 속의 신’은 문학사상에서 번역 출간됐다. 작가의 전작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2013)의 자매편에 해당하는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전작의 주인공 어설라 토드의 남동생 테디의 가족을 중심으로 전후 영국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테디가 전후 딸 비올라를 낳고 안락한 삶을 유지하지만, 독일에 적대적이지 않은 비올라와의 세대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윤리나 도덕이 설 자리가 없는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다.●그리피스 ‘낯선 자의 일기’ 미스터리·공포 오싹 이 밖에 영미권 양대 추리문학상인 대거상(영국)과 에드거상(미국)을 모두 수상한 엘리 그리피스(58·영국)의 소설 ‘낯선 자의 일기’(2018)도 나무옆의자에서 번역됐다. 지난해 에드거상 최우수 장편소설상 수상작인 이 고딕 스릴러 소설은 40대 중반 고교 교사 클레어가 동료의 살인 사건 이후 용의자로 지목받고 기이한 일들을 겪는 미스터리와 공포를 그렸다. ●“영연방 작가 상호 교류해 발전 가능성 커”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한강 작가가 2016년 맨부커상(부커상의 2002~2018년 이름) 수상 등 국내 작가들의 해외 문학상 수상이 이어지고, 이런 상을 받은 영어권 작가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꾸준히 높아진 결과 미발표작들이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기욱 인제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영어권 문학은 영국뿐 아니라 호주, 캐나다 등 영연방 국가의 뛰어난 작가들이 영문학 감수성을 통해 상호 교류한 만큼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수연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지난 몇십년간 영국 문학이 예전만큼 주목은 못 받았지만 홀링허스트같이 독자들의 새로운 관심을 반영하는 작가들이 나오고 있다”며 “우리 문학도 국제적으로 활발히 번역되는 만큼 우수한 영미권 소설 출간은 독자로서 반가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 영연방 유명 소설 잇단 출간…부커상 등 유명 문학상 작가들의 향연

    영연방 유명 소설 잇단 출간…부커상 등 유명 문학상 작가들의 향연

    영국이나 호주 등 영연방 출신 유명 작가들의 국내 미발표작이 최근 잇달아 번역 출간되고 있다. 부커상 등 굵직한 문학상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국·일본 작가 위주였던 국내 외국 문학 시장에서 영국 현대소설의 입지도 강화되고 있다. 부커상과 서머싯몸상, 빌화이트헤드상을 휩쓴 영국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67)의 장편소설 ‘이방인의 아이’(2011)와 ‘스파숄트 어페어’(2017)가 민음사에서 최근 나왔다. 동성애 작가이기도 한 홀링허스트는 부커상 수상작인 ‘아름다움의 선’(2004) 등 영국 퀴어(성소수자) 문학을 대표하는 역작들을 냈다.‘이방인의 아이’는 1차 세계대전을 앞둔 1913년 여름 주인공 조지 솔이 자신의 전원주택으로 매력 넘치는 친구 세실 밸런스를 초대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밸런스는 솔의 여동생을 비롯해 모든 남녀의 시선을 사로잡고, 솔의 삶은 밸런스를 집에 데려온 순간부터 송두리째 흔들린다. 작가는 성과 계급, 사랑과 환멸, 거짓, 선망, 증오 등 인간 내면의 불가해한 심리를 예리하게 펼쳐 낸다.‘스파숄트 어페어’는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최근까지의 긴 시간을 다룬다. 전쟁 와중에 옥스퍼드에 머물던 남자들이 청년 데이비드 스파숄트의 외모에 매료된다. 데이비드는 성공한 기업가가 돼 아들 조니를 얻지만, 동성애자인 조니는 아버지가 스캔들에 휘말려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문학동네는 부커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호주의 거장 피터 케리(78)에게 첫 번째 부커상을 안겨 준 1988년 소설 ‘오스카와 루신다’(1·2권)를 최근 펴냈다. 19세기 중반 영국 죄수의 유배지이자 사회 부적응자들의 도피처였던 호주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런던에서 호주로 가는 배에서 우연히 만난 영국국교회 사제와 부잣집 상속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찰스 디킨스에 비견되기도 하는 케리는 부조리극, 블랙 유머, 사회 풍자 등을 결합해 풍부한 서사를 보여 준다.코스타상을 받은 영국 작가 케이트 앳킨슨(70)의 2015년 작 ‘폐허 속의 신’은 문학사상에서 번역 출간됐다. 작가의 전작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2013)의 자매편에 해당하는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전작의 주인공 어설라 토드의 남동생 테디의 가족을 중심으로 전후 영국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테디가 전후 딸 비올라를 낳고 안락한 삶을 유지하지만, 독일에 적대적이지 않은 비올라와의 세대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윤리나 도덕이 설 자리가 없는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다.이 밖에 영미권 양대 추리문학상인 대거상(영국)과 에드거상(미국)을 모두 수상한 엘리 그리피스(58·영국)의 소설 ‘낯선 자의 일기’(2018)도 나무옆의자에서 번역됐다. 지난해 에드거상 최우수 장편소설상 수상작인 이 고딕 스릴러 소설은 40대 중반 고교 교사 클레어가 동료의 살인 사건 이후 용의자로 지목받고 기이한 일들을 겪는 미스터리와 공포를 그렸다.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한강 작가가 2016년 맨부커상(부커상의 2002~2018년 이름) 수상 등 국내 작가들의 해외 문학상 수상이 이어지고, 이런 상을 받은 영어권 작가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꾸준히 높아진 결과 미발표작들이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기욱 인제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영어권 문학은 영국뿐 아니라 호주, 캐나다 등 영연방 국가의 뛰어난 작가들이 영문학 감수성을 통해 상호 교류한 만큼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수연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지난 몇십년간 영국 문학이 예전만큼 주목은 못 받았지만 홀링허스트같이 독자들의 새로운 관심을 반영하는 작가들이 나오고 있다”며 “우리 문학도 국제적으로 활발히 번역되는 만큼 우수한 영미권 소설 출간은 독자로서 반가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 돌아온 둘리 아빠, 이번엔 사후인생

    돌아온 둘리 아빠, 이번엔 사후인생

    국내 유명 만화가 두 명이 ‘인생’을 소재로 한 신작을 최근 잇달아 출간해 눈길을 끈다. 지난해 만화형소설(그래픽노블) ‘풀’로 미국 하비상(국제도서 부문)을 수상한 김금숙 작가가 최근 미발표 데뷔작 ‘이방인’(딸기책방)을 출간했다. 프랑스에서 만나 부부가 된 지수와 프레드릭의 시각을 통해 개를 먹거나 아파트를 선호하는 한국 문화 등 문화 차이에 관한 부부의 생각을 그렸다. 갈등하고 화해하는 이방인 커플의 일상은 웃음과 공감을 자아내고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계인의 시각을 잘 보여 준다. 실제 프랑스인과 결혼해 2007년 한국에 들어온 작가가 남편과 자신이 겪은 문화적 차이를 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구상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한 독립 출판사와 계약을 했지만, 무산됐던 작품을 국내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됐다. 14년 전 그린 작품에서 지금과 같은 원숙미를 찾기는 어렵지만, 일상을 진솔하게 그려낸 자전적 이야기에선 청량감이 엿보인다.‘아이 공룡 둘리’로 유명한 김수정 작가는 21년 만에 신작 만화 ‘사망유희’(둘리나라)를 냈다. 2000년대 이후 TV 애니메이션 제작 사업이나 소설 집필 등 ‘외도’의 길을 걸었던 작가가 다시 본업인 만화에 충실하겠다며, 투박해진 손으로 종이에 직접 그렸다. 작가가 ‘삐끕(B급)만화’로 규정한 이 책은 사후세계 등을 소재로 한 네 가지 단편을 통해 삶과 죽음의 희비 쌍곡선을 묘사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직후의 영혼을 유쾌하게 묘사한 ‘어둠의 느와르’와 어린 딸을 학대한 계모의 최후를 다룬 ‘너 죽으면 어디로 갈거나’ 등을 통해 “이유 없는 죽음은 없으며 죄짓고 살지 말자”는 단순 명쾌한 메시지를 던진다.작가는 2000년 스포츠서울에 4개월간 연재했던 마지막 만화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작은 악마 동동 김수정 스페셜 만화’(둘리나라)도 함께 냈다. 1985년 야심작으로 내놓은 ‘아리아리 동동’ 후속작으로 저승사자인 주인공 동동이 인간 세계로 내려와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다. 밝고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도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바탕에 깔렸다.
  • ‘만화 거장’ 김금숙·김수정 ‘인생’ 소재로 한 신작 화제

    ‘만화 거장’ 김금숙·김수정 ‘인생’ 소재로 한 신작 화제

    국내 유명 만화가 두 명이 ‘인생’을 소재로 한 신작을 최근 잇달아 출간해 눈길을 끈다. 지난해 만화형소설(그래픽노블) ‘풀’로 미국 하비상(국제도서 부문)을 수상한 김금숙 작가가 최근 미발표 데뷔작 ‘이방인’(딸기책방)을 출간했다. 프랑스에서 만나 부부가 된 지수와 프레드릭의 시각을 통해 개를 먹거나 아파트를 선호하는 한국 문화 등 문화 차이에 관한 부부의 생각을 그렸다. 갈등하고 화해하는 이방인 커플의 일상은 웃음과 공감을 자아내고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계인의 시각을 잘 보여 준다.실제 프랑스인과 결혼해 2007년 한국에 들어온 작가가 남편과 자신이 겪은 문화적 차이를 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구상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한 독립 출판사와 계약을 했지만, 무산됐던 작품을 국내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됐다. 14년 전 그린 작품에서 지금과 같은 원숙미를 찾기는 어렵지만, 일상을 진솔하게 그려낸 자전적 이야기에선 청량감이 엿보인다.‘아이 공룡 둘리’로 유명한 김수정 작가는 21년 만에 신작 만화 ‘사망유희’(둘리나라)를 냈다. 2000년대 이후 TV 애니메이션 제작 사업이나 소설 집필 등 ‘외도’의 길을 걸었던 작가가 다시 본업인 만화에 충실하겠다며, 투박해진 손으로 종이에 직접 그렸다. 작가가 ‘삐끕(B급)만화’로 규정한 이 책은 사후세계 등을 소재로 한 네 가지 단편을 통해 삶과 죽음의 희비 쌍곡선을 묘사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직후의 영혼을 유쾌하게 묘사한 ‘어둠의 느와르’와 어린 딸을 학대한 계모의 최후를 다룬 ‘너 죽으면 어디로 갈거나’ 등을 통해 “이유 없는 죽음은 없으며 죄짓고 살지 말자”는 단순 명쾌한 메시지를 던진다.작가는 2000년 스포츠서울에 4개월간 연재했던 마지막 만화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작은 악마 동동 김수정 스페셜 만화’(둘리나라)도 함께 냈다. 1985년 야심작으로 내놓은 ‘아리아리 동동’ 후속작으로 저승사자인 주인공 동동이 인간 세계로 내려와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다. 밝고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도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바탕에 깔렸다.
  • 국산 수제맥주는 ‘진짜 우리 술’인가?(1) [지효준의 맥주탐험]

    국산 수제맥주는 ‘진짜 우리 술’인가?(1) [지효준의 맥주탐험]

    우리나라의 펍(선술집)과 온라인 매체에서 국산 수제맥주를 소개할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바로 ‘자랑스런 우리나라 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양조장에서 만든 수제맥주가 ‘대한민국 전통주’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맥주 자체가 ‘외국에서 유래된 술’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국산 수제맥주는 우리나라 양조장에서 생산하고 있음에도 온라인 판매가 금지돼 있는 등 전통주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대 수제맥주는 미국에서 시작된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 운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모든 수제맥주는 ‘드링크 로컬, 서포트 커뮤니티’(Drink Local, Support Community)라는 철학을 공유한다. ‘우리 지역에서 만든 맥주를 마시며 우리 동네를 응원하자’는 뜻이다.현재 미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맥주 스타일인 ‘인디아 페일 에일’(IPA)을 보자. 영국 런던의 양조업자 조지 호지슨이 고온다습한 인도 기후에 맞춰 기존 맥주에 홉을 더 많이 넣고 알콜 도수도 높여 풍미가 진하고 쓴맛이 강하다. IPA는 탄생 초기만 해도 유럽 지역의 재료들만 사용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IPA의 원조인 영국에서도 다른 나라의 원료로 수제맥주를 만드는 일이 흔하다. 미국의 한 양조장은 1만년 전 고대 중국의 술에서 영감을 얻어 맥주를 생산한다. 각 지역의 특산품을 활용해 독특한 IPA를 출시하는 사례도 흔하다. 미국 수제맥주 트랜드의 중심에 서 있는 ‘이블트윈 브루잉 뉴욕시티’(Evil Twin Brewing NYC)는 덴마크 출신 예프 야닛 비야르쇠(Jeppe Jarnit Bjersø)가 만든 펍이다. 예프는 ‘미켈러’(덴마크 대표 수제맥주 브루어리) 창업자 미켈 보리 비야르쇠(Mikkel Borg Bjergsø)의 쌍둥이 동생이다. 유럽 덴마크에서 시작한 이블트윈 뉴욕시티는 한때 집시 양조장(다른 양조장의 시설을 빌려 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이었지만, 현재는 뉴요커들이 ‘우리 동네 양조장’으로 당당하게 손가락을 치켜 세울만큼 인정을 받고 있는 양조장으로 성장했다. 수제맥주의 세계에서는 양조장의 브루어가 어느 나라 출신인지, 양조장이 어떤 스타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크래프트 맥주의 핵심 가치는 양조 행위 자체에 있다고 보며, 해당 지역 특유의 느낌을 담아낸 모든 맥주를 ‘동네 맥주’로 지칭하고 지지한다.필자가 거주하는 중국에서도 이런 철학을 받아들여 다양한 재료로 ‘중국 특색 수제맥주’를 선보인다. 그들 역시 ‘수제맥주도 우리 술’이라는 관점을 받아들여 수제맥주를 중국 전통주와 동등하게 대우한다. 최근 중국 대표 수제맥주 대회인 ‘따스베이’(大师杯)를 운영하는 리웨이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 당시 “해외에서 유래한 수제맥주가 중국의 술이 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의 대한 그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수제맥주의 가장 큰 매력은 ‘포용성’에 있습니다. 전세계 각지에서 탄생한 맥주를 존중하고 이들 모두를 각기 다른 맥주로 인정합니다. 설령 다른 나라의 재료를 사용해서 맥주를 만들어도 우리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생각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만의 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안타깝지만 대한민국에서 수제맥주는 ‘진짜 우리 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 정부가 규정한 ‘전통주’라는 기준에 부합할 때만 법적·제도적으로 ‘대한민국 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 수많은 수제맥주 브루어들이 ‘자랑스런 우리동네 술’을 빚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 국제 크래프트 비어 전시회’(Beijing International Craft Brewing Exhibition)에서 여러 주류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눴다. 대한민국 수제맥주의 현실을 설명한 뒤 수제맥주의 전통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그들은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참으로 신기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기준으로 술의 전통성을 나누는지 궁금하다. 국가가 그런 요소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나는 이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처럼, 정부가 어떤 대상에 대한 전통성을 칼로 무 자르듯 명확히 규정할 수 있는가. 어느 누구를 ‘장인’으로 인정하거나 혹은 부정할 수 있는가. 근본적으로 이런 가치를 재단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2편에 계속됩니다.)정리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이념·국적·성별… 유령만큼 무서운 혐오

    이념·국적·성별… 유령만큼 무서운 혐오

    일제강점기와 분단, 6·25전쟁과 개발독재를 모두 거쳐 온 한국 현대사의 질곡엔 ‘한’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좌익과 우익의 증오, 화교에 대한 혐오 등 세월의 광기를 업은 적개심은 때로는 귀신이나 유령의 형태로 나타나 우리 내면의 근원적 공포감을 자극하지 않을까. 여성주의 스릴러 소설 ‘음복’으로 지난해 젊은 작가상을 거머쥔 강화길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대불호텔의 유령’은 이처럼 우리 사회 원한과 혐오의 정서를 귀신 들린 건물을 배경으로 구현했다. 평소 악령에 시달리는 소설가인 ‘나’는 엄마 친구 아들 ‘진’이 들려준 국내 최초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 이야기에 끌려 터만 남은 그곳을 방문한다. 한 여성의 환영을 목격한 나는 이 호텔에 출몰하는 유령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한다. 이어지는 1955년 이야기는 대불호텔에 이끌리듯 찾아온 네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호텔 운영을 맡은 고연주와, 좌익에 연루된 부모의 존재를 숨긴 호텔 일을 하는 지영현, 호텔에 장기 투숙한 미국인 소설가 셜리 잭슨, 호텔 중식당에서 일하는 화교이자 진의 외할아버지 뢰이한이다. 이념 차이에 따른 증오, 화교에 대한 혐오, 젊은 여성에 대한 질의와 적개심에 시달리는 이들은 유령의 소행으로 보이는 환각에 시달리며 공포를 느낀다. 작가는 소외된 여성과 이방인이 품어야 했던 어둑한 마음을 심령현상으로 풀어냈다. ‘고딕 호러’ 소설 형식을 빌려 이방인에 대한 혐오가 주는 폐해를 공포라는 감정으로 전달하려는 의도다. 서로를 믿지 못한 끝에 해치게 하는 유구한 저주에 자신도 사로잡혀 있었는지 모른다는 서늘한 자각은 무더위를 잊을 만한 긴장감을 준다. 다만 작가는 혐오에 그치지 않고 혐오와 원한을 이겨 내는 ‘사랑의 힘’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뢰이한과 진의 외할머니 박지운, 그리고 나와 진 사이의 애틋한 감정은 악의와 내면화된 억압을 극복할 원동력은 사랑에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결국 사랑이 해법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책을 덮고도 곱씹게 된다.
  • 엄선된 명작, 강렬 디자인… 뜨는 단편 문학집

    엄선된 명작, 강렬 디자인… 뜨는 단편 문학집

    읽기 좋은 작품을 엄선한 단편문학 세트가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끈다. 알찬 구성에 감각적인 디자인을 입혀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은 최근 일본 근현대 단편집 10권을 출간했다. 2017년 12월 5권을 출간한 데 이어 이번에 2차분 5권을 추가로 냈다. 인생, 재난, 근대, 동물, 광기, 남녀, 계절, 일상, 허무, 구원 등 10개 주제로 작가 42명의 단편문학 127편을 담았다. 참여한 역자만 63명에 이른다. 19세기 말 메이지 시대 작품부터 전쟁 이후 작품까지 일본 근현대 문학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사카구치 안고 등 한국에 널리 알려진 작가들 외에 가지이 모토지로, 니이미 난키치, 도쿠다 슈세이, 우메자키 하루오 등 조금 생소한 작가들 작품도 수록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초역 작품도 여러 편 담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한 줌의 흙’과 ‘의혹’, 사카구치 안고의 ‘죽음과 콧노래’, ‘진주’ 등 20편이다. 출판사 측은 “국내 일본 문학 출간은 인기 작가 작품이거나 대중적 작품, 추리 소설류에 편중된 감이 있다. 이런 풍토에서 벗어나 기본적이고 우수한 일본 근현대 단편 명작들을 골랐다”고 설명했다.출판사 열린책들은 창립 35주년을 기념해 세계문학 중단편 20권 세트를 출간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꼭 읽어 봐야 할 고전 중에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20편을 선정하고,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디자인을 입힌 문고판으로 다시 만들었다. 작품 개성과 분위기에 따라 정오를 뜻하는 ‘눈’(noon) 세트와 자정을 뜻하는 ‘미드나이트’(midnight) 10권으로 나눠 세트를 구성했다. 밝고 경쾌하고 서정적인 작품인 눈 시리즈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벨킨 이야기’ 등을 수록했다. 미드나이트 편은 어둡고 무겁고 강렬한 작품으로 구성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등이다.
  • 문학 거장과 함께 보내는 휴가… 노벨상 거머쥔 통찰력 맛보기

    문학 거장과 함께 보내는 휴가… 노벨상 거머쥔 통찰력 맛보기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 가운데 국내 독자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설과 에세이가 최근 잇달아 번역 출간됐다. 스릴러와 같은 장르 문학이 대세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독자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거장들의 통찰력을 맛볼 기회다.도서출판 해냄은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는 우화적 비유·풍자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대표 문인 주제 사라마구(1922~2010)의 유고작 ‘스카이라이트’를 펴냈다.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등으로 유명한 사라마구는 199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카이라이트’는 그가 1953년에 쓴 초기작이지만 작가가 별세한 이듬해인 2011년에야 세상에 나왔다.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반 포르투갈 리스본을 무대로 한 이 소설은 작은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일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구두장이, 영업사원, 부유한 사업가의 내연녀 등은 서로 갈등하지만 타인을 향한 연민은 버리지 않는다. 소설은 여성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비난하며 동성애에 관대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갔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이렇게 비범한 정직성과 통찰력 있는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시간문제였을 뿐”이라고 극찬했다.민음사는 제3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인도계 영국 작가 비디아다르 수라지프라사드 나이폴(1932~2018)의 소설집 ‘자유 국가에서’를 출간했다. 2001년 노벨상 수상자인 나이폴의 1971년 부커상 수상작이다. 단편 네 편과 중편 한 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식민지를 둘러싼 다양한 방랑자들의 굴곡진 삶을 제시하며 정체성을 둘러싼 이방인의 고뇌를 다룬다. 영국 식민지 트리니다드섬에서 인도계 이주민 3세로 태어난 작가는 강대국에 정착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고단함은 물론 서구 강대국 출신이 옛 식민지 여행에서 겪는 씁쓸함도 이야기한다.‘데미안’으로 유명한 독일 대문호 헤르만 헤세(1877~1962)가 나무와 삶에 대해 써 내려간 시와 에세이를 담은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은 창비에서 나왔다. 1946년 노벨상을 받은 헤세가 생전에 나무와 삶에 대해 쓴 시 21편과 에세이 18편을 독일의 헤세 전문가 폴커 미헬스가 2014년에 엮었다. “가장 위대한 도서관은 자연”이라 말하던 헤세는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을 ‘고독한 사람들’이라 칭하며 그것이 전하는 삶의 의미를 새긴다.이에 앞서 ‘양철북’의 작가이자 1999년 노벨상 수상자인 독일 귄터 그라스(1927~2015)의 1961년 소설 ‘고양이와 쥐’도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1970년대 한국에 처음 소개된 지 50여년 만에 박경희 번역가가 새로운 번역으로 선보인 이 책은 나치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어떻게 전쟁에 동원했는지 조명하며 나치에 동조한 독일 소시민들에게도 집단적 죄과가 있음을 꼬집는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문학 시장이 판타지, SF 등 장르 소설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지만, 코로나19로 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세계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들의 책들을 재조명하는 경향도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간접 체험하게 된다”며 “현재와 공간적·시간적 거리가 있는 거장들의 작품이 창의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 사라마구·나이폴·헤세…휴가철 노벨문학상 거장들 통찰력 맛본다

    사라마구·나이폴·헤세…휴가철 노벨문학상 거장들 통찰력 맛본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 가운데 국내 독자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설과 에세이가 최근 잇달아 번역 출간됐다. 스릴러와 같은 장르 문학이 대세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독자의 선택권이 넓어지고 거장들의 통찰력을 맛볼 기회다.도서출판 해냄은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는 우화적 비유·풍자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대표 문인 주제 사라마구(1922~2010)의 유고작 ‘스카이라이트’를 펴냈다.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등으로 유명한 사라마구는 199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카이라이트’는 그가 1953년에 쓴 초기작이지만 작가가 별세한 이듬해인 2011년에야 세상에 나왔다.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반 포르투갈 리스본을 무대로 한 이 소설은 작은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일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구두장이, 영업사원, 부유한 사업가의 내연녀 등은 서로 갈등하지만 타인을 향한 연민은 버리지 않는다. 소설은 여성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비난하며 동성애에 관대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갔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이렇게 비범한 정직성과 통찰력 있는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시간문제였을 뿐”이라고 극찬했다.민음사는 제3세계 문학을 대표하는 인도계 영국 작가 비디아다르 수라지프라사드 나이폴(1932~2018)의 소설집 ‘자유국가에서’를 출간했다. 2001년 노벨상 수상자인 나이폴의 1971년 부커상 수상작이다. 단편 네 편과 중편 한 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식민지를 둘러싼 다양한 방랑자들의 굴곡진 삶을 제시하며 정체성을 둘러싼 이방인의 고뇌를 다룬다.영국 식민지 트리니다드섬에서 인도계 이주민 3세로 태어난 작가는 강대국에 정착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고단함은 물론 서구 강대국 출신이 옛 식민지 여행에서 겪는 씁쓸함도 이야기한다.‘데미안’으로 유명한 독일 대문호 헤르만 헤세(1877~1962)가 나무와 삶에 대해 써 내려간 시와 에세이를 담은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은 창비에서 나왔다. 1946년 노벨상을 받은 헤세가 생전에 나무와 삶에 대해 쓴 시 21편과 에세이 18편을 독일의 헤세 전문가 폴커 미헬스가 2014년에 엮었다. “가장 위대한 도서관은 자연”이라 말하던 헤세는 홀로 서 있는 나무들을 ‘고독한 사람들’이라 칭하며 그것이 전하는 삶의 의미를 새긴다.이에 앞서 ‘양철북’의 작가이자 1999년 노벨상 수상자인 독일 귄터 그라스(1927~2015)의 1961년 소설 ‘고양이와 쥐’도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1970년대 한국에 처음 소개된 지 50여년 만에 박경희 번역가가 새로운 번역으로 선보인 이 책은 나치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어떻게 전쟁에 동원했는지 조명하며 나치에 동조한 독일 소시민들에게도 집단적 죄과가 있음을 꼬집는다.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문학 시장이 판타지, SF 등 장르 소설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지만, 코로나19로 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세계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들의 책들을 재조명하는 경향도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간접 체험하게 된다”며 “현재와 공간적·시간적 거리가 있는 거장들의 작품이 창의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 [유정훈의 간 맞추기] 고양이와 편견/변호사

    [유정훈의 간 맞추기] 고양이와 편견/변호사

    얼마 전 주말에 업무로 서울을 떠난 지인의 집에 머물며 고양이를 봐 주게 됐다. 고양이 밥을 주는 것은 명분이고, 한옥에 대한 로망이 있는 우리 부부에게 한옥 스테이를 시켜 주려는 호의였을 것이다. 시류에 맞지 않게 “고양이 안 좋아한다”라는 말을 하고 다니던 사람이 덜컥 고양이와 주말을 보내게 됐다. 고양이의 행동 양식은 낯설었다. 자기 공간에 이방인이 들어왔으니, 불편을 느끼는 쪽은 사실 고양이였을 것이다. 집과 정원을 오가는 구멍이 있는데 굳이 현관 앞에 와서 내가 문을 열도록 한 다음 밥그릇으로 향하고, 사료를 먹고 나면 유유히 구멍을 통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얘가 지금 나를 집사로 훈련시키나’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고양이를 보며 내가 그동안 정확하지 않은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 개는 키웠지만 고양이를 기른 적은 없다. 고양이 집사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진은 많이 봤지만 고양이를 실제 가까이 접한 적은 없어 익숙하지 않다”라고 해야 할 것을 “고양이 싫어해요”라며 뭉갠 것이다. 불과 이틀 정도 고양이와 같은 공간에서 지냈을 뿐이지만 앞으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적, 어딘가에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접한 경험은 없는 대상과 싸움을 하는 경우가 꽤 있다. 1970~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면 북한 사람은 머리에 뿔이 난 것처럼 여겼던 기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을 때가 있을 것이다. 동성동본 금혼, 호주제가 폐지된 지 10년이 넘게 지났으니 한국 사회는 전통적 윤리·도덕의 쇠퇴와 가정의 해체로 벌써 망했어야 하는데, 다들 본인의 선택에 따라 결혼할 사람은 결혼하고 비혼할 사람은 비혼하고 애 낳을 사람은 애 낳으며 잘살고 있다. 미국에서 트럼프를 적극 지지하는 주 가운데는 멕시코 국경과 한참 떨어져 있거나 원체 백인 비중이 높아 소수인종이나 이민자를 별로 겪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다. 한 번도 만나 보지 않은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와 싸우느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개신교회는 수도 없이 많다. 낯선 존재, 익숙하지 않은 현상 앞에서 일단 움츠러들고 경계하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 본능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존재인가. 설혹 그런 본능이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해 알아보는 것조차 거부하는 편견과 혐오를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편견을 없애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직접 만나 보고 겪어 보는 것은 꽤 괜찮은 방법이다. 고양이와 주말을 한 번 보냈다고 해서 바로 고양이 입양을 알아보러 다니거나 한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고양이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에서는 자유로워졌다.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가능성이 넓어지고 좋아진 것이다. 고양이를 집에 모시는 것 같은 개인적 선택이든 차별과 혐오로 문제 될 수 있는 사회적 이슈이든, 접해 보지도 않은 대상 때문에 스스로를 벽에 가둘 이유는 없지 않은가.
  • 뱀파이어는 왜 외로운 사람을 찾아왔나

    뱀파이어는 왜 외로운 사람을 찾아왔나

    치매와 불구 환자들이 대부분인 인천 철마재활병원에서 자살 사건이 네 차례나 연이어 발생한다. 우연이라기엔 수상한 낌새에 형사 수연은 수사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만난 의문의 여성 완다는 자신이 ‘뱀파이어 헌터’라며 이 사건이 뱀파이어의 소행이라고 말한다. 이 병원 간호사 난주는 빚 독촉에 시달리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허덕대며 고단한 삶에 절망한다. 어느 날 나타난 뱀파이어는 자신이 구원해 주겠다고 손을 내밀고, 난주는 그의 손을 잡고 싶어 한다. SF소설 ‘천 개의 파랑’으로 혜성처럼 떠오른 천선란 작가의 신작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와 인간의 애증을 세 여성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작가가 창조한 뱀파이어는 외로운 사람들의 피 냄새를 맡고 그들을 찾아 헤매면서도 아름답고 로맨틱한 존재로 나타난다. 수연은 경찰 생활을 통해 고독에 무감각해졌고, 완다는 어렸을 때 프랑스 가정에 입양된 외로운 이방인이다. 착한 딸이었던 난주는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사람에게서 치유받지 못하고 사람 때문에 거듭 고통을 당했던 이들이 뱀파이어에게 끌리는 것은 필연적 흐름이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끔찍한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안온한 피난처이자 완벽한 구원이죠.”(272쪽) 사람을 죽인 뱀파이어의 항변은 우리 주변 이웃들을 외롭게 방치해 둔 인간 사회에 대한 질타로 풀이된다. 아울러 작가는 뱀파이어가 견뎌야만 하는 현실과 시간을 통해 우리 사회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은유적으로 지적했다. 생존을 위해 피를 마셔야 한다는 이유로 배척당해야 했던 존재, 인간보다 훨씬 오래 살면서도 존재를 숨겨야 하는 고통을 감내할 이들을 무작정 배제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하는 섬세한 시선이 엿보인다. 이야기의 흐름을 좇으며 읽다가도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인간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속도위반과 방어운전/전곡선사박물관장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속도위반과 방어운전/전곡선사박물관장

    오늘도 일기예보는 아직 장마가 시작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어제도 비가 내렸고 내일도 비 예보다. 비 오는 횟수도 많아졌고 강도도 세졌다. 장마도 아닌데 웬 비가 이리 자주 오지? 요새 날씨가 좀 이상하다면서 막연한 불안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그것도 잠시 무심하게 우산을 챙기며 또 하루를 보내곤 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무더위 속에 하나같이 두꺼운 오리털 파카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광경은 처음 자카르타에 발을 디딘 이방인에게는 불가사의에 가까운 놀라운 장면이었다. 도대체 왜? 하지만 열대의 뜨거운 한낮을 적시는 엄청난 소나기 스콜을 경험하고 나서는 한여름의 오리털 파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소나기에 옷이 흠뻑 젖은 채로 오토바이를 타다간 금방 감기에 걸리기 때문에 더워도 오리털 파카를 입는 것이었다. 오리털 파카는 생존의 지혜였다. 그리고 그때 자카르타에서 만났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퍼붓는 열대 지방의 스콜 같은 소나기가 어느새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일상이 돼 버렸다. ‘검은모루’라는 이름의 구석기유적이 있다. 전곡리, 석장리와 더불어 국사교과서의 맨 앞장을 장식하는, 북한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이 바로 검은모루 유적이다. 북한학자들은 약 100만년 정도 된 유적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 검은모루 유적을 발굴해 보니 물소며 원숭이, 코끼리 같이 지금은 한반도에 살지 않는 더운 지역에 사는 동물들의 화석이 출토됐다는 것인데, 한반도가 한때는 열대지방이었다니 믿기 힘든 사실이다. 군대 운전병 출신인 나는 대구의 동촌 강가에서 운전 교육을 받았다. 지독한 매연을 뿜어대는 M60 트럭 수십 대를 세워 놓고 그 밑을 눈물 콧물이 범벅된 채로 기어다녀야 하는 얼차려로 하루를 마감하던 고달픈 훈련병들을 쥐처럼 잘 다뤄서 고양이중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운전교관은 항상 ‘속도위반하지 말고 방어운전만 잘하면 사고가 나더라도 죽지는 않는다’고 강조하곤 했다. 속도위반과 방어운전이 머릿속에 각인된 모범 운전자가 탄생하는 과정이었다. 자카르타에서 만나던 세찬 소나기를 자주 접하는 요즘 기후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인류의 진화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 진화와 적응이 가능한 기후변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인간이 개입한 기후변화의 속도위반은 미처 적응할 시간도 없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속도위반에 대처할 생존의 방어운전이 절실한 이유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조절하기 위한 탄소중립운동도 방어운전의 한 방법일 것이다. 앞으로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한강에서 물소떼나 코끼리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저 그때가 아주 천천히 오기만을, 그래서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 [단독] ‘감금·폭행’ 한국은 외면했지만… 터키대사관이 손잡아 줬다

    [단독] ‘감금·폭행’ 한국은 외면했지만… 터키대사관이 손잡아 줬다

    작가를 꿈꾸던 20대 청년은 글을 가르쳐 준다는 지인을 따라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터키에 도착했다. 이국 땅에 발을 디딘 첫날, 지인의 폭행과 함께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됐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검찰은 한국인 여성을 고문·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인 남성에게 징역 23년 7개월에서 최대 징역 46년을 구형했다. 피해 여성 김은지(22·가명)씨는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끔찍한 경험을 낱낱이 털어놨다. 그는 이스탄불 한국영사관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소극적인 대처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낯선 땅에서 험한 일을 당한 이방인의 손을 잡아 준 건 같은 국적의 동포가 아니라 터키인들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3월 지인의 소개로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작가로 알려진 가해자 이모(44)씨를 알게 됐다. 외국에 거주하는 이씨와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던 김씨는 영상통화도 하고 일상 사진과 고민을 주고받으며 친해졌다. 이씨는 작가를 꿈꾸던 김씨의 글을 봐 주기도 했다. 이씨는 김씨에게 자신이 있는 외국으로 오면 글을 가르쳐 주고, 작가가 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직장만 다니다 보면 꿈을 펼치지 못할 것 같았던 김씨는 이씨를 따라 외국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카타르 도하에서 처음 만난 둘은 비자 문제 등으로 곧바로 터키 이스탄불로 향했다. 터키에 도착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악몽이 시작됐다. 김씨는 이씨의 폭행이 매일 반복됐고, 성폭행은 총 5~6차례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안와골절 상해를 입었고, 물건으로 500번 넘게 맞으면서 머리가 찢어져 열 바늘을 꿰맸다. 이씨는 김씨가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감금했고, 밥과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김씨가 이씨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석 달 뒤였다. 지난 3월 10일 김씨는 빵과 수프를 가져오라는 이씨의 지시를 받고 주방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숙소를 빌려준 집주인을 마주쳤다. 심하게 멍이 들고 부은 김씨의 얼굴을 본 집주인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고, 김씨는 “한국영사관에 도움을 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고 4시간 뒤 한국영사관 사건·사고 실무관과 현지 경찰이 도착했다. 이씨는 현지 경찰에게 잡혀 가고, 김씨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후 같은 달 16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에는 인천시 여성긴급센터와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안와골절 수술비와 머리를 꿰매는 수술을 지원받았다. 김씨는 한국영사관의 소극적인 대응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씨는 이씨의 구형 전후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수차례 전화로 문의했지만 “급한 일이 아니면 메일로 보내 달라”는 답변만 받았다고 전했다. 재판이 3심까지 길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현지 변호사 선임이나 비자 등에 대한 설명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스탄불 한국영사관 측은 “사건 진행에 대해 여러 번 메일을 보냈고, 진행된 사안에 대해 답변을 줬다”고 해명했다. 김씨는 외교부 역시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변호사 선임, 비자 발급, 사건 진행 상황, 범죄 피해 지원 등 여러 가지를 문의하러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방문했다. 그러나 외교부에서는 방문 상담 예약이 필요하다며 영사콜센터로 전화하라고 안내했다. 김씨는 영사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외교부의 소극적인 대응에 불만을 드러냈지만 콜센터가 제대로 응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교부는 응대를 소홀히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억울했던 김씨는 한국에 있는 터키 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김씨는 그제야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터키 대사관은 김씨가 터키에서 진료받은 병원의 기록 등을 법원에 제출하는 것을 도와주고, 비자와 변호사 선임 등에 대해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오히려 사건 이후 현지에서 알게 된 민간 번역사무소 대표가 김씨의 진단서와 사건경위서 등을 번역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가해자인 이씨가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는 사실도 현지인을 통해 전해 들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는 오는 9월 7일 이씨의 선고 공판을 보기 위해 터키에 다시 갈 예정이다. 현지 숙박은 김씨의 최초 신고를 도와준 에어비앤비 집주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한국 정부로부터 개인 재판에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옥 같았던 터키로 향하는 이유에 대해 김씨는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터키에서 이 사건을 대충 다루거나, 한국으로 사건을 이관해 이씨가 더 낮은 형량을 받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단독]터키서 성폭행으로 46년 구형받은 한국 남성…피해자 “이스탄불은 지옥이었다”

    [단독]터키서 성폭행으로 46년 구형받은 한국 남성…피해자 “이스탄불은 지옥이었다”

    작가를 꿈꾸던 20대 청년은 글을 가르쳐준다는 지인을 따라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터키에 도착했다. 이국 땅에 발을 딛은 첫날, 지인의 폭행과 함께 지옥 같은 삶이 시작됐다. 지난 15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검찰은 한국인 여성을 고문·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인 남성에게 징역 23년 7월에서 최대 징역 46년을 구형했다. 피해 여성 김은지(가명·22)씨는 2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끔찍한 경험을 낱낱이 털어놨다. 그는 이스탄불 한국영사관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소극적인 대처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낯선 땅에서 험한 일을 당한 이방인의 손을 잡아준 건 같은 국적의 동포가 아니라 터키인들이었다. 고민 들어주던 그 사람, 터키 도착하자 돌변 김씨는 지난해 3월 지인의 소개로 가해자 이모(44)씨를 알게 됐다. 이씨는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외국에 거주하는 이씨와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던 김씨는 자주 영상통화도 하고 일상 사진과 고민을 주고받으며 친해졌다. 이씨는 작가를 꿈꾸던 김씨의 글을 봐주기도 하고, 당시 김씨가 다니던 직장에 대한 고민도 들어줬다. 이씨는 김씨에게 자신이 있는 외국으로 오면 글을 가르쳐주고, 작가가 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직장만 다니다 보면 꿈을 펼치지 못할 것 같았던 김씨는 이씨를 따라 외국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카타르 도하에서 처음 만난 둘은 비자 문제 등으로 곧바로 터키 이스탄불로 향했다. 500번 넘게 머리 맞아 열바늘 꿰매 터키에 도착하자마자 이씨의 범행이 시작됐다. 김씨는 폭행이 매일 반복됐고, 성폭행은 총 5~6차례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안와골절 상해를 입었고, 물건으로 500번 넘게 맞으면서 머리가 찢어져 열바늘을 꿰맸다. 이씨는 김씨가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감금했고, 밥과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김씨는 “‘성매매를 시키겠다’, ‘마음에 안 들면 날 죽이고 자신은 도망가면 된다’는 등 협박을 일삼아 더 무서웠다”고 말했다. 이씨가 휴대전화를 수시로 검사했기 때문에 신고할 틈도 없었다. 김씨가 이씨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석달 뒤였다. 지난 3월 10일 김씨는 빵과 스프를 가져오라는 이씨의 지시를 받고 주방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숙소를 빌려준 집주인을 마주쳤다. 심하게 멍이 들고 부은 김씨의 얼굴을 본 집주인은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고, 김씨는 한국영사관에 도움을 청해달라 요청했다. 신고 4시간 뒤 한국영사관 사건·사고 실무관과 현지 경찰이 도착했다. 이씨는 현지 경찰에게 잡혀가고, 김씨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후 같은 달 16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에는 인천시 여성긴급센터와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안와골절 수술비와 머리를 꿰매는 수술을 지원받았다. 영사콜센터로 구조 요청 메시지 보냈지만… 현지에서 범죄 피해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집주인이 이씨를 신고하기 이틀 전, 김씨는 카카오톡 ‘영사콜센터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통해 “지금 제가 영사관으로 가야 하는데 현재 여권도 없고, 현지에서 말도 안 통하고 휴대전화 유심도 없다. 살려달라, 전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콜센터 답장을 보고 김씨는 절망에 빠졌다. 이스탄불 한국 영사관번호와 앙카라에 있는 한국대사관 번호를 알려주며 직접 전화를 하든지 전화가 없으면 집주인에게 휴대전화를 빌려서 전화하라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국영사관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씨는 이씨의 구형 전후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러 차례 전화로 문의했지만 “급한 일이 아니면 메일로 보내달라”는 답변만 받았다고 전했다. 재판이 3심까지 길어질 수 있는데도 변호사 선임이나 비자 등에 대한 설명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이스탄불 한국영사관 측은 “사건 진행에 대해 여러 번 메일을 보냈고, 진행된 사안에 대해 답변을 줬다”고 해명했다. 가해자, 현지법원에 탄원서 제출…9월 선고공판 외교부도 찾아갔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김씨는 변호사 선임, 비자 발급, 사건 진행 상황, 범죄 피해 지원 등 여러 가지를 문의하러 서울 중구 외교부 청사를 방문했다. 그러나 외교부에서는 방문 상담 예약이 필요하다며 영사콜센터로 전화하라고 안내했다. 김씨는 영사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외교부의 소극적인 대응에 불만을 드러냈지만 콜센터가 제대로 응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교부는 응대를 소홀히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김씨의 사정을 고려해 기존 매뉴얼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서 “번역에 대해서도 일부 도움을 주었다. 영사콜센터 카카오톡 답변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억울했던 김씨는 한국에 있는 터키 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김씨는 그제야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터키 대사관은 김씨가 터키에서 진료받은 병원의 기록 등을 법원에 제출하는 것을 도와주고, 비자와 변호사 선임 등에 대해 알아봐주겠다고 했다. 한국영사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자 김씨가 직접 인터넷으로 터키어-한국어 번역을 검색하던 중 알게 된 현지 번역사무소 대표가 김씨의 진단서와 사건경위서 등을 번역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가해자인 이씨가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는 사실도 현지인을 통해 전해들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피해자 “형량 낮은 한국으로 사건이송될까 두려워” 김씨는 오는 9월 7일 터키에 다시 갈 예정이다. 이씨의 선고 공판을 보기 위해서다. 김씨는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터키에서 이 사건을 대충 다루거나, 한국으로 사건을 이관해 이씨가 더 낮은 형량을 받게 될까 두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터키 숙박은 김씨의 최초 신고를 도와준 에어비앤비 집주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한국 정부로부터 개인 재판에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직도 터키에서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씨가 두려워 이름도 바꾸기로 했다. 김씨는 “가해자가 혹시나 나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무서워서 개명을 신청했다”면서 “내가 나쁘게 살아서 이런 벌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괴로워했다.
  •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세계의 문을 연 사람들/무용평론가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세계의 문을 연 사람들/무용평론가

    발레리나 박세은이 장안의 화제다. 최근 들려온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 승급 소식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국 발레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전통과 권위 또한 으뜸인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동양인 최초로, 최고 높은 자리 ‘에투알’에 올랐으니 그럴 만도 하다. 타고난 재능, 각고의 노력 그리고 천운까지 따라야 오를 수 있는 귀한 자리이기에 무대 위에서 승급 소식과 함께 솟구친 박세은의 눈물이 더욱 값져 보였다. 골프계에 ‘박세리 키즈’가 있듯이 발레계에는 ‘강수진 키즈’가 있다. 축구 스타 손흥민의 활약을 보면 그보다 앞선 박지성, 더 앞선 차범근이 떠오른다. 우상을 바라보며 꿈을 키운 후배들이 활약하는 시대, 아무도 가지 못한 세계 정상의 길을 향한 선구자의 도전과 노력이 재조명되고 있다. 10년 전 박세은은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제안에도 불구하고 파리오페라발레단 준단원 1년 계약을 선택했다. 주인공 시켜 준다는데 엑스트라를 택한 꼴이니 프랑스 발레를 춤춰 보고 싶다는 열망이 꽤나 컸던 모양이다. 그녀를 사로잡았던 프랑스 스타일의 매력은 무엇일까. 지금은 그 매력의 주인공이 됐지만, 당시로서는 그저 이끌렸다고밖에 할 수 없는 큰 결심이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영감을 주었고, 앞서 그 길을 걸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용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서희,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김기민 등 수석무용수를 포함해 한국인 없는 세계 유명 발레단을 찾기 힘들 정도로 흔한 일이 됐지만 20년 전 김용걸은 국내에서의 탄탄대로를 뒤로한 채 해외 발레단 입단 오디션이라는 낯선 도전을 감행했다. 우연히 보게 된 한 편의 파리오페라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영상에 반해서였다. 딱히 주역 한 명의 춤이 아니라 의상·조명·장식을 포함한 고급스럽고 세련된 무대 전체에 매료된 것이다. 다행히 예상 밖의 좋은 결과에 준단원으로 입단했다. 솔직히 난 최근 박세은의 에투알 등극 소식만큼이나 당시 김용걸의 입단 소식이 놀라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양인 선발도 예외였지만 발레단 자매학교인 파리오페라발레학교 출신이 아닌데 선발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내가 목격한 그 학교의 시스템은 커리큘럼은 물론이고 기숙사 생활을 통한 인성교육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프랑스 발레 무용수 육성에 맞춰져 있었다. 심지어 가혹하리만큼 철저한 식단 관리까지. 그렇게 최소 6년 이상 길러진 졸업생 중 시험을 거쳐 발레단 최하위 등급에 입단하는 사정이니 지금도 소수의 인원만을 외부에서 선발하고 있지만, 김용걸의 입단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간 것과 같았다. 당시 에투알이었던 동료 발레리노 마뉘엘 르그리는 그를 ‘지독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방인으로서의 차별과 프랑스 출신이 아니라는 낯섦을 이겨 내기 위해 그는 남들보다 4배 이상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연습벌레 김용걸은 그렇게 10년 가까이 노력하며 ‘쉬제’ 자리까지 올랐다. 프랑스 발레의 강점은 섬세함과 세련됨에 있다. 무용수의 동작, 시선뿐 아니라 그들의 생각, 습관은 물론 무대 밖 관객들의 공연을 대하는 태도까지 포함한 발레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과 자긍심이 만들어 낸 결과다. 그래서 더욱 프랑스인만의 구성을 지키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파리오페라극장에서 올 2월 발표한 문화 다양성 보고서와 함께 그 기류는 크게 달라질 조짐이다. 박세은의 쾌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조만간 흑인 에투알 탄생도 기대할 만하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의 조류에 동참하는 것도 예술이 나아갈 중요한 방향이다. 한국 여자 골프가 그렇듯 한국 발레가 세계 중심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 [세종로의 아침] 공직자 부동산 투기 유감/박찬구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공직자 부동산 투기 유감/박찬구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개망초꽃이 한창이다. 정부세종청사 안팎 곳곳에서 흰색 무리를 이루고 있다. 홀로 서 있기는 연약해 한데 모여 서로를 의지하는 듯하다. 개망초뿐이랴. 세종은 공존과 상생의 도시다. 정확히는 공존과 상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곳이다. 지역 경제의 활로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외침이 끊이질 않고, 찾는 이가 휑해진 음식점 주인의 시름은 쉬 가시질 않는다. 그들 사이에서 바삐 오가는 공직자들이 마치 이방인처럼 느껴질 정도다. 공존과 상생은 일정 부분 자기 희생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각자도생으로 탐욕을 채우기에 몰두해서야 공동체에 주어진 역할과 목표는 뒷전으로 밀리고 좌초될 수밖에 없다. 사회 구성원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에게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사명감과 소명의식은 팽개치고 잇속 챙기기에 급급해서는 사회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서민들의 박탈감과 열패감을 키울 뿐이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공직자 부동산 투기의 민낯은 ‘힘든 시절,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며 하루하루를 이어 가는 서민들을 분노와 허탈감에 빠지게 한다. 부처 공무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직자 부동산 투기 조사 결과를 보면 국회의원 배지를 단 선량(選良)이나 지역 주민의 삶을 돌보는 일선 지방자치단체 공복(公僕)들도 제 잇속 차리기에 급급했다. 민심의 거센 역풍에 일부 공직자 사이에서는 적폐를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이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핵심은 토지와 건축 같은 부동산 업무를 담당하거나 관련 정보를 다루는 공직자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직자 200만명 전체를 대상으로 한 규제와 관리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실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부동산 관련 정보가 유통되는 경로에 있는 공직자들에게 상하 구분 없이 정기적인 재산 신고와 심의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에 도로가 새로 난다거나 개발 수요가 있을 때 관련 정보를 미리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세제 업무를 담당하거나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 직원, 구·시의회 의원 및 관계자들이 대상으로 거론된다. 한 공직자는 “마을에 도로가 생긴다는 정보를 지자체 직원이나 의회 관계자들이 미리 취득해 인근 토지를 구입하는 사례 등을 예방, 차단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보가 흐르는 곳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감독을 강화하면 부동산 관련 정보가 사사로이 유통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관련 업무와 상관없이 과장급 이상이 재산등록 대상이며, 실장급 이상은 재산을 공개하고 있다. 또 다른 공직자는 “재산신고를 의무화하면 적어도 본인이나 배우자의 행위는 들여다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부동산 관련 정보를 다루는 일선 직원들이 지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수법으로 사익을 챙긴다면 현실적으로 이를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제도적인 한계가 있다. 공무원 행동강령은 직무 관련 영리행위를 금지하고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한 거래를 제한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고 삶의 방식도 다양하다. 때문에 전체를 아우르는 윤리규범과 일정 정도의 자기 희생은 지속가능한 공동체 유지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더불어 서로를 의지하기보다 각자도생으로 탐욕을 앞세우고 치부에 급급한다면 공존과 상생의 가치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비온 뒤 더 파릇해지는 풀잎처럼 공직사회가 거듭나길 바란다. 코로나19 확산에 경제 침체까지, 태풍 속 방파제 끝자락에 내몰린 서민들에게 부동산 없이는 계층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는 열패감까지 안기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c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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