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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발소
    202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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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발소 윤락 손님 첫 구속/화대받은 여주인도

    서울 동부경찰서는 4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 K이발소 주인 윤모씨(34·여·서울 성동구 도선동)와 손님 박모씨(37·서울 서초구 방배 4동)등 2명을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혐의로 긴급 구속했다. 최근 윤락행위방지법이 개정된 뒤 이발소 안에서 성행위를 한 혐의로 손님이 입건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여주인 윤씨는 지난 3일 상오 10시20분쯤 안마를 해달라고 찾아온 박씨를 밀실로 안내,성관계를 가진뒤 6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윤씨가 화대로 6만원을 더 요구하며 이발사 윤모씨(50)를 시켜 자신을 감금한채 마구 때리자 밀실 유리창을 깨고 빠져나와 경찰에 신고했다가 함께 붙잡혔다.
  • 지하 이발소서 LP가스 폭발/9명 부상

    28일 하오 6시23분쯤 서울 강동구 성내1동 560의 4 씨티빌딩(지상 4층) 지하 1층 씨티이발소에서 LP가스가 폭발,이발소 주인 김태옥씨가 3도의 화상을 입고 이헌영양(여·4) 등 9명이 다쳤다. 가스폭발에 이은 화재로 이발소 내부 20평 가운데 15평이 불에 타고 지하상가에 입주한 부동산점포와 인근 건물 등의 유리창 50여개가 깨지는 등 5백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내고 20분만에 꺼졌다.
  • 이발소서 윤락행위 면도사·손님 입건

    【부산=이기철기자】 밀실에서 윤락행위를 한 퇴폐 이용업소의 면도사와 손님이 입건됐다. 부산 부산경찰서는 20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2동 「황제」이용원의 면도사 송모씨(34·여·해운대구 반송 3동)와 손님 이모씨(27·남구 대연4동) 등 2명을 윤락행위 방지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달아난 이용원 주인 박용석(43·부산시 사상구 주례동)씨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 LA 코리아타운(세계속 한인촌 탐방:1)

    ◎67년 10여명서 출발… 40만명의 「나성구」로.1만5천업소 성업… 한때 한·흑 갈등도 극복 90여년의 길지 않은 한국 이민사지만 이제 한국인은 지구촌 구석구석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세계 곳곳의 한국인들이 모여사는 한인촌을 몇회에 나누어 소개한다. 「함흥냉면」「숯불구이」「흑염소탕」「만물상」「방아간」「기미 주근깨 없앱니다」….서울거리의 간판이 아니다.로스앤젤레스(LA)코리아타운에서 만날 수 있는 낯익은 한글 간판들이다. 코리아타운에 들어서면 이때문에 누구나 마치 서울 동대문부근 어느 한 곳에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이 곳에서는 보신탕만 빼고 뭐든지 서울에서와 똑같이 먹고 사며 지낼 수 있다.1년 365일 영어한마디 사용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도 있다. 흔히 일컫는 LA는 행정구역상으로 하나의 카운티안에 인구 360만명의 LA시를 비롯,고작 152명의 주민뿐인 버넌시티에 이르기까지 모두 88개의 시티(City)로 구성돼 있다.인근 오렌지카운티를 포함할때 대략 40만명의 한국인이 넓은 의미의 LA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그러나 불법체류자를 합하면 50만명이 넘는 것으로 LA총영사관측은 추정하고 있다. ○곳곳에 한글 간판 미국 이민국 연감에 따르면 93∼94회계연도에 미국에 들어온 비이민 한국인방문객의 수가 39만9천명.이 가운데 27.9%인 12만4천9백44명이 LA를 통해 미국에 들어온 것으로 나타났다.결국 한해 평균 60만명이상의 한국인이 LA지역에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니 「서울시 나성구」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미주지역 한인사회에서 필수책자인 「한인업소 주소록」을 토대로 한 자료는 LA지역이 얼마나 한국화돼 있는가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하와이와 알래스카를 포함한 미 서부지역의 한국인업소 1만8천4백72개가운데 무려 82.7%인 1만5천1백60개 업소가 LA인근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이민가정과 유학생,상사주재원 할 것없이 LA지역에 생활기반을 두고 있는 한국인들의 「정신적인 서울」이 바로 「코리아타운」이다.한인주민만 10여만명,업소가 2천5백개나 몰려 있는 곳이다. LA국제공항에서 북동쪽으로 20여㎞거리에 위치한 「코리아타운」은 서울로 치면 종로거리처럼 LA의 각급 행정기관과 비즈니스센터가 몰려 있는 다운타운에 바짝 붙어 있다.세계영화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는 코리아타운에서 승용차로 10분남짓 거리다.미국 서부 최대의 도시라는 LA에서도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67년 LA에 정착,교민1세의 원조로서 「김방아 할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김명한옹(91)은 『내가 지금의 코리아타운에서 남쪽으로 10블록 떨어진 제퍼슨가에 처음 방앗간을 차렸을 때만해도 한국사람은 10명정도 밖에 살지 않았었다』고 기억하고 있다.그럴진대 이민사가 길지 않은 한인들이 어떻게 이 노른자위 땅에 「작은 한국」을 세우게 됐을까. 60년대말부터 LA다운타운 인근지역은 사실상 슬럼화돼가고 있었다.남부지역에서 올라온 흑인들과 국경을 넘어온 히스패닉(라틴계 중남미인)들이 LA남부지역부터 자리잡기 시작,서서히 다운타운쪽으로 인구이동을 했다고 한다.결국 기존의 백인들이 하나둘 중심가를 떠나기에 이르렀다. 그 무렵 갓 이민길에 오른 한인들은 고국에서 가져온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었다.외환관리법이 엄하던 시절이라 많이 가져올 수도 없었다.그러다보니 생활기반을 잡기에는 백인들이 나가버려 땅값이 곤두박질치고 있던 다운타운 인근지역이 안성맞춤이었다.70년무렵부터 이민자와 유학생들이 찾아들기 시작,당시 1스퀘어피트(약 0.1㎡)당 4달러씩 하던 지금의 올림픽대로를 중심으로 하나둘 한인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동쪽으로 「버몬트」,서쪽으로 「웨스턴애브뉴」,남쪽으로 「올림픽대로」,북쪽으로 「8가(가)」에 이르는 반경 5㎞정도의 구획을 대략적인 경계로 코리아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72년12월.9명의 한인상인들이 「코리아타운번영회」(현 코리아타운교민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이 지역의 상가에 한글간판달기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다.그러나 당시만해도 한인상점의 수가 20개도 채 되지 않아 한인들을 상대로 한 한글간판달기작업은 금세 끝나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미국인들이 주인인 업소들을 찾아다니면서 한글로 간판을 달아야 한국사람들이 당신네 가게가 뭘 파는지 알고 돈을 쓸 것아니냐고 설득,두달동안 61개 업소에 한글간판을 달아주었다』고 초대 번영회장 김진형씨(63·코리아타운한인회 명예회장)는 회고한다. ○영어학원도 등장 「문방구」「이발소」「식품점」같은 한글간판들이 거리에 나붙자 자연스럽게 한인타운이 이뤄지기 시작한 셈이다.교포라면 너도나도 코리아타운에 상점을 빌렸다.웃돈을 얹어주면서 세를 얻어내는 한인들에 밀려 백인들의 상가는 순식간에 빠져나갔다.교민수가 3만명을 넘어서면서 한국종합의료원이 들어섰고,영어학원까지 생겨 74년9월10일에는 첫 코리안퍼레이드행사까지 펼치게 됐다. 70년대 초에 이어 다시 붐을 이룬 79∼81년 무렵의 이민인구를 흡수하면서 한인상가가 급격히 팽창,81년8월 캘리포니아주정부가 「코리아타운」경계구역을 지정하고 그 명칭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82년2월에는 이 지역을 지나는 산타모니카 프리웨이 상에 「코리아타운」 안내표지판이 부착됐다.행정구역상의 명칭은 아니지만 미국 땅위에서 공식적으로는 유일한 한국인 밀집지역으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그러나 「코리아타운」은 90년대들어 불어닥친 캘리포니아지역의 불경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최근 수년간 최악의 분위기에 빠져있는 모습이다.특히 92년 4.29 흑인폭동으로 2천여개의 한인업소가 피해를 당한데다 지난해 노스리지 지진으로 외래관광객마저 격감,만나는 한인들마다 『장사가 안된다』고 울상이다. 잇따라 폭동과 지진이후 한인들마저 「코리아타운」에서 주거지를 옮겨 남쪽의 오렌지카운티나 학군과 주거환경이 좋은 LA동부의 외곽지역으로 이동,새로운 한인촌을 형성하기 시작함으로써 「코리아타운」의 경제력은 크게 위축되고 있다. ○80년대 최대 호황 대로변의 상가 뒤안에 밀집된 낡은 싸구려 임대아파트들은 구매력이 약한 노인층과 흑인 빈민층,히스패닉들의 거처로 변해 어느덧 LA지역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가운데 하나로 소문나있을 정도다.최근에는 한국에서 건너온 조직폭력배들이 기존의 갱들과 세력다툼을 벌이느라 총질을 해대기 일쑤이고 돈많은 조기유학생들이 흥청망청거리는 유흥행각을 펼쳐 한인사회의 골칫거리가 된지 오래다. 주류잡화상인 리커스토어상인들의 모임인 가주한미식품상협회 윤희륜회장(53·LA한인회이사)은 『코리아타운이 너무 넓어져 관리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상징적인 건물양식을 만들어 코리아타운의 역사는 지키되 한인들도 보다 폭넓게 각지로 분산,발전해나갈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LA코리아타운은 4반세기의 역사를 쌓는 시점에서 변신의 새 단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 ◎김진형 코리아타운한인회 명예회장/한인동포사회 정신적 고향/“22년째 코리안 페스티벌에 보람” 『코리아타운은 미국이민사회의 정신적인 고향입니다』 코리아타운 형성을 처음 제안했던 코리아타운한인회 김진형 명예회장(63)은 「코리아타운」의 산 증인이다.관광공사 일본지사에 근무를 마치고 71년 유학생비자로 LA에 발을 디뎠다가 그대로 눌러앉게 됐다는 김회장은 이듬해 한인상인 8명을 발기인으로 규합,「코리아타운 번영회」란 단체를 만들고 현재의 코리아타운 조성작업을 벌인 산파역. 탁월한 서예솜씨를 지닌 김회장은 한글간판달기 운동으로 코리아타운 형성작업에 착수하면서 직접 간판글씨를 써주는등 초기 LA한인타운 건립에 주도적인 몫을 맡았었다. 『LA를 비롯한 남가주 경기는 코리아타운에서 맨먼저 느낄수 있지요.한인봉제업체들을 거친 의류가 백인을 비롯한 미국인들에게 팔리고 그렇게 해서 들어온 달러는 바로 코리아타운에서 쓰여지니까요』 지난 10월까지 22회째 이어져 내려온 LA코리안페스티벌의 창시자이기도한 김회장은 『코리아타운이 제 모습을 갖추면서 미국 주류사회에서 한인들의 위상도 높아진 셈』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LA시정부의 경찰청이 관할하는 인허가심사커미셔너를 맡고 있기도한 김회장은 코리아타운이 최근 침체돼 있는게 사실이라며 안타까워한다.그는 『범죄퇴치와 난립해 있는 한인단체들의 단합,그리고 차이나타운이나 리틀도쿄처럼 재개발을 거쳐 보다 현대적인 상가건물을 새로 지어야한다』고 코리아타운의 방향을 제시했다. 『고국의 동포들이 코리아타운을 이민자들의 거리라고만 여기지 말고 이웃동네처럼 성원과 관심을 보내주셔야 이곳 LA이민사회가 함께 성장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 박물관·도서관·공원 등 일제 휴업/미 연방 업무 중단 이모저모

    ◎미국인·관광객 큰 불편 미 연방정부의 업무가 중단된 14일 연방산하의 대부분 기관들이 일부 필수업무를 제외한 대민업무등 모든 업무를 중단함으로써 미국민들은 물론 미국을 찾은 관광객들까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이날 아침 2백만 연방공무원들은 일단 출근한뒤 앨리스 리블린 예산국장의 각급 정부기관 폐쇄공문에 따라 1백20만명의 「필수」요원만 남고 80만명의 「비필수」요원들은 이 날짜로 잠정 해고된채 즉시 귀가조치가 내려졌다.이들은 설사 급료를 안받고 일하고 싶은 경우라도 자원봉사를 금지하는 연방법에 따라 무조건 귀가해야 했다.연방기관및 박물관·도서관·공원 등 「비필수」 국립공공시설들이 밀집한 워싱턴 시가지는 낮에도 철시한듯 한산한 분위기를 이뤘으며 미처 영문을 모른 관광객들만 헛걸음을 치며 아쉬워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가장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은 클린턴 대통령으로 백악관 비서실직원 4백30명중 90명만이 필수요원으로 남아 근무했으며 관리요원도 70명중 7명,영부인 보조직원도 16명중 4명만필수요원으로 판정됐다. 국무부도 인원부족으로 전통을 자랑하는 「정오브리핑」을 중단했으며 비자및 여권발급 업무도 중단했다.또 전세계의 미국 대사관과 문화원등 공관들도 직원축소 및 업무단축에 들어갔다. ○…워싱턴의 몰공원을 중심으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들은 모두 문을 닫았으며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루던 워싱턴기념탑도 무기한 휴관 공고가 나붙었다.또 밤에는 시내 공원들의 불마저 꺼버려 워싱턴 시가지가 칠흑같은 어둠에 덮였다. 또한 미국의 대표적 관광지인 뉴욕 자유의 여신상은 이날 아침 연방폐쇄 공문이 내려오기전 두대의 유람선이 출발한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리버티섬으로 향하는 배들이 발이 묶여 관광객들은 멀리서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한편 국회의사당은 예산안 타결을 위해 많은 상·하원의원들과 보좌관들이 출근,전과 다름없이 북적거렸다.그러나 관광객 대상의 가이드 투어가 취소됐으며 상원사무처 직영의 상원 구내식당과 이발소등이 모두 폐쇄됨으로써 개인이 운영하는 하원 구내식당과 이발소는 손님들이 쏟아져들어 즐거운 비명을 올리기도 했다.하루에도 전세계에서 온 수천명의 학자 일반인들이 찾아드는 국회도서관도 문을 닫았다.또한 정부문서 열람실이 있는 칼리지파크의 정부문서보관소 분관도 휴관공고를 내걸고 열람자들을 돌려보냈다.
  • 63조원 새해 예산/신규 사업

    ◎노인 복지타운 5곳·장례식장 10개 건립/46억원 투입,치매전문병원 3개 설립/65세 이상 의보수혜 일수 3백65일로/전문번역가 양성… 한국문학 세계화 부축/회화교육위한 외국어 교원연수원 설립/고엽제 후유의증환자에 매월 수당 지급 내년 예산엔 색다른 정책사업들이 많다.그 중에서도 한국문학 세계화지원 금고나 고엽제 후유의증(응증)수당 신설,장례예식장·치매전문 요양병원·노인종합복지타운·외국어교원연수원 신설이 눈길을 끈다. ◇한국문학 지원 한국문학의 세계적 발전기틀을 마련,한국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자는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의 착상에서 비롯됐다. 문학수준은 높은 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번역이 이뤄지지 못해 우리 문학의 진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못했던 게 문학계 현실이다.산발적인 번역작업이 있었지만 출판업계의 영세성때문에 한국 문학작품의 해외 번역·출판은 고작 3백여종에 불과하다. 정부는 따라서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을 선정,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번역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국문학 세계화 지원금고」를 신설해 2001년까지 총 1백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내년에 우선 10억원을 들여 전문 번역인의 양성과 해외 번역 및 출판·홍보를 지원할 생각이다.이 금고의 설치를 계기로 전문적인 해외 번역을 통해 우리문학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림으로써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날을 기대해 볼 만하게 됐다. ◇고엽제 환자 지원 월남전에 참전했던 고엽제 환자는 후유증과 후유의증 환자로 나뉜다.고엽제 후유증은 말초신경병 등 10가지의 질병이 있고,이 중 말초신경병이 83% 가량 된다.후유증 환자는 현재 6백여명 가량.「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상이군인과 같이 연금과 취업알선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는 보훈병원에서 무료로 진료만 받을 뿐 연금이나 수당지급은 않고 있다.당뇨와 고혈압 등에 시달리는 이들 환자는 약 1천6백50여명에 이른다.그러나 내년부터 이들에도 「후유의증 수당」이 신설돼,월 20만원씩 지급된다.국가 유공자에게 지급하는 생활보조 수당의 성격이다. 박세직 의원 등 국회의원 63명이후유의증 환자에게도 수당을 지급할 수 있도록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진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발의,올 정기국회에 통과할 예정으로 있다.월남전 참전용사들의 힘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오는 98년까지 계획으로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에 들어가 역학조사 결과 후유의증이 고엽제와 관련된 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수당지급은 중단된다.98년까지 한시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장례예식장 내년에 장례예식장이 선보인다.가정의례에 관한 제도개선을 위해 내년에 국고로 57억원(사업비의 50%)을 지원,전국에 10개소의 장례예식장을 세우기로 했다. 주거문화가 과거의 단독주택 위주에서 아파트같은 공동 주택으로 바뀜에 따라 장례관습이 달라져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시범사업으로 하며 운영은 민간이 하게 된다.현행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에도 장례예식장을 도입할 수 있는 근거는 있으나 병원영안실이 하고 있다.일본 등의 선진국은 이미 장례예식장을 도입,운영한 지 오래다.혼례식장처럼 일정한 곳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설립지역은 보건복지부가 나중에 정한다.10개소 중 2∼3개소는 서울에 설치될 전망이다. ◇치매요양병원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지만 현재 전국에는 10만여명의 치매노인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이 중 10% 안팎은 치료가 가능한 환자들이다. 치매환자는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다.그러나 병원에서 치료가 되지 않으면 불치병으로 분류돼 요양시설에 가야 한다.정부는 65세 이상의 노령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치매노인 환자도 급증할 것으로 보고 내년에 46억원을 들여 3개소에 치매노인 전문요양병원을 짓기로 했다.사업비의 50%를 국고에서 보조한다. 시·도립 병원형태로 운영하며 기존 의료법인에 건립 및 운영을 위탁할 수도 있다.공중 보건의와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배치된다.정부는 치매노인 환자들이 전문 요양병원을 많이 이용할 것에 대비,현재 2백10일인 65세 이상 노인의 의료보험 수혜일수를 내년부터 3백65일로 늘려,연중 의보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노인 복지타운 현재 대전시 동구에서 시범사업으로 건설 중인 「실버토피아」에서 노인종합복지타운의 도입을 착상했다.내년에 국고로 54억원(사업비의 50%)을 보조,전국 5개 곳에 노인종합복지타운을 세울 계획이다. 시·도에서 운영하며 이발소나 목욕탕 등의 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소외감을 덜어주기 위해 레저스포츠 시설 등 각종 휴식시설과 목욕탕·이발소도 갖춘다. ◇외국어 연수원 외국어 교사들에게 정통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연수원으로 내년에 25억원을 들여 청주 한국교원대부지 2천1백45평에 설립된다.외국어 교사들이 회화보다는 문법위주로 배워 회화교육에 비중이 더해지는 최근 추세와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어 교사들이 유창한 회화실력을 갖추도록 전국 중·고교에서 선발,4∼5개월간 합숙 회화교육을 시키겠다는 구상이다.운영성과를 보아 국민학교 교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이곳에서는 외국인 강사와 24시간 숙식하며,말도 외국어로만 해야 한다. 지난 해부터 운용하고 있는 원어민교사(네이티브 스피커)를 내년에 59명에서 2백명으로늘려 이 중 20여명을 연수원에 배치할 계획이다.미국의 중동부 등 표준어를 사용하는 곳에서 집중 선발된 원어민 교사들은 지난 해부터 국내에 들어와 시·군 교육청에서 외국어 교사들을 지도하고 있다.
  • 통계로 본 광복 이후 우리의 문화생활 변천

    ◎지난해 1백29만명 해외관광/TV 영향… 70년후 영화제작편수 감소/독서인구비율 계속 늘어나 92년 64%/자가용 급증… 1대당 인구수 9명으로 30년 전인 지난 65년 우리 국민의 문화 생활비에서 담뱃값 및 이·미용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6.5%와 28.2%로,당시 문화생활 관련 비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었다.담배를 피우거나,목욕탕·이발소·미장원에 가는 일이 문화생활의 성격을 띤 활동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뜻한다.일 이외의 여가를 즐길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문화생활을 위한 선택의 폭도 다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해의 경우 담뱃값과 이·미용비가 문화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와 13.4%로 크게 낮아졌다.반면 외식비는 11.2%에서 44.8%로 크게 증가,문화생활 소비지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통계청이 광복 50주년을 맞아 24일 낸 「통계로 본 광복이후 한국인의 문화생활 변천」이라는 자료의 주요 내용이다. ◇문화활동=문화생활의 한 매체인 영화제작 편수는 광복 당시인 45년 5편에서 60년에는 87편,70년 2백9편으로 크게 늘었다.그러나 80년에는 91편,90년 1백11편,93년 63편으로 70년 이후부터는 오히려 감소 추세다. 60년,7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집안에서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큰 낙이었으며,집 밖에서는 기껏해야 영화를 보러가는 것이 문화생활의 전부였었으나 70년대 이후 TV와 VTR 등 전자제품의 보급이 확산되며 영화 관람객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TV의 보급률은 70년 6.4%에서 91년에는 99.9%로,VTR는 85년 4.1%에서 91년 50.1%로 각각 늘어났다.1인당 연평균 영화관람 횟수는 65년 4.3회에서 지난 해에는 1.1회로 줄었다. 극장수도 71년 7백17개로 정점을 이룬 이후 점차 감소,93년에는 6백40개로 줄었다.연 영화관람객 수는 69년 1억7천3백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서발행 종수는 47년 1천28종이었으나,70년 2천6백33종,80년 2만9백86종,94년 2만9천5백64종으로 크게 늘었다.독서인구 비율도 84년 56.1%에서 89년 61.3%,92년 64.1%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인당 국내 여행 횟수는 84년 2회에서 93년에는 5회 가량인 4.8회로 증가했다.해외관광을 위해 출국한 사람도 83년 2천4백43명으로 내국인 출국자의 0.5%에 불과했으나 지난 해에는 1백29만여명으로 내국인 출국자의 40.9%를 차지했다.출국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관광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문화시설 및 공간=공공 도서관 수는 48년 29개에서 93년에는 6백88개로 23.7배,장서수는 96만8천7백18권에서 1천8백21만6천권으로 18·8배가 각각 늘었다.박물관 관람객 수는 해방 당시 4천5백명에서 93년에는 4백86만3천명으로 1천배 이상 늘었다. ◇문화관련 용품=자가용 한 대당 인구수는 45년 3만7천7백47명에서 지난 해에는 9명으로 줄었다.자가용 승용차 보급의 확대는 가족단위의 여행을 보편화함으로써,가족단위 외식의 증가 및 외식산업의 발달에 기여했다. ◇문화생활 관련 소비지출=가계소비 지출 중 문화생활 관련 지출은 63년 월 평균 6백34원(10.1%)에서 지난 해에는 21만8천82원(19.1%)으로 늘었다.
  • 윤락 선도(외언내언)

    현재 윤락여성은 윤락양태에 따라 여러유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 첫째가 거리의 창녀(Streetwalkers)이다. 거리,바,호텔로비등 손님을 접하기 쉬운 장소에서 직접 손님을 찾는다.조직화 되어있지 않고 자영적이다.둘째는 매음굴의 창녀들(brothelinmates)이 있다.집촌화된 지역에서 전문적으로 몸을 팔며 펨프 포주의 보호와 협조를 받는다.셋째로 호스티스 웨이트리스 바걸 댄서 스트립퍼 등으로 때에 따라 윤락행위를 하고 상당한 수입도 올리는 계층이다.넷째는 콜걸(call girl)로 여관 숙박업소 혹은 여행사등에 적을 두고 개별 연락으로 나가 윤락행위를 한다.다섯째는 상층의 독립 전문적인 윤락여성들로 이들은 파트타임으로 상류층 남성만을 상대한다.고객간 소개로 은밀하게 접촉하고 활동이 자율적이며 구속도 없다.여섯째로 안마시술소 이발소등 퇴폐업소에서 면도 안마등을 해주면서 윤락행위를 하는 경우다. 최근 미국의 한 사회학 조사서에 분류된 세계적 유형인데 한국에도 이같이 다양한 형태의 윤락여성이 모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윤락관련 실무자들의 말이다. 우리 윤락여성 관련 공식 조사집계에 따르면 현 윤락여성수는 5천9백48명이다.이는 집촌형태로 종사하고 있는 수만을 주로 파악한 것이다.민간단체에서는 유흥업소 종사자로서 간헐적으로 윤락행위를 하고 있는 수까지 합할 경우 그 수는 자그마치 1백20만명을 넘나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요즘 윤락여성은 어린나이에 윤락에 빠져들고 이들의 91.6%가 집에서 가출한 경험이 있는 것이 일반적 특징이다.이중에서도 31.1%가 20세미만에 이길로 흘러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거의가 중고시절 가출한 경우이다.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것과 친지나 친구 평소 안면있는 사람들 유혹으로 자진해 윤락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윤락여성들의 수용·보호시설 방화참사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가출방지와 가출자 보호의 근본대책 연구와 강구가 급하다.
  • 중기대출 부동산담보 제한 폐지/21일부터

    ◎콘도 등 11개 업종 신금대출 허용 오는 21일부터 제1·2금융권의 중소기업에 대한 부동산의 담보취득 제한이 폐지된다.호텔이나 여관업 등 11개 특정 업종에 대한 상호신용금고의 여신금지제도도 없어진다. 재정경제원은 15일 이같은 내용의 「중소사업자에 대한 금융지원 세부대책」을 마련,관련규정을 고쳐 2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대책은 중소기업의 담보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은행 등 제1·2금융권의 중소기업에 대한 부동산 담보취득 제한을 없앴다.이제까지 ▲95년 5월 15일 이후에 취득한 부동산 ▲절반 이상이 여신금지 업종에 제공된 부동산(제3자 명의 부동산 포함)은 은행의 담보대상에서 제외됐다.그러나 대기업에 대한 부동산의 담보취득 제한규정은 계속 유지토록 했다. 또 영세 중소업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호신용금고의 여신관련 규제도 완화,11개의 특정업종에 대한 여신금지 제도를 없앴다.대상업종은 ▲불건전 오락기구 제조업 ▲호텔업과 여관업,콘도미니엄(관광호텔 제외) ▲건평 33평 또는 대지 1백평을 초과하는 식당업 ▲주점업(유흥·극장식 등) ▲댄스홀,댄스교습소 ▲전자오락실 ▲헬스클럽 ▲골프장 ▲도박장 ▲사치성 이발소,미장원 ▲욕탕업(대중탕 제외)등이다. 그러나 이들 업종에 대한 상호신용금고의 여신편중을 막기 위해 여신총액은 금고 자기자본의 1백% 이내로 제한했다.2백36개 상호신용금고의 자기자본이 1조8천억원으로 이 중 8천억원이 여신이 허용되는 7개 업종에 지원돼 11개 특정업종의 경우 최대 1조원 가량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 “영혼을 그리는 예술”/초상화 미서 다시 인기

    ◎“인간탐구” 미술 추세 반영… 전시회 잇따라/초상화­조각 접목 등 새장르 시도도 활발 미술의 각부문에 대해 비평가들이 구태여 등급을 매긴다면 초상화는 매우 낮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19세기에도 그랬을 테지만 사진이 등장하고 입체파와 추상적 표현주의에 이어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각광을 받으면서 초상화는 더욱 시대착오적인 유물정도로 인식돼온 듯하다.그러나 요즘 미국에서는 초상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주문이 늘어나고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도 쇄도해 초상화가들이 바쁜 나날을 보낸다.전시회도 우후죽순처럼 많이 예정돼 있다.정체성의 혼란,인간의 육체와 그 취약함을 강조하려는 현대미술 추세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최근 들어 갑자기 대학원 특강에 불려다니기 바쁜 아론 시클러 미국초상화가회장은 『예전에는 비웃을 정도의 하질로 취급받았지만 이제는 그런 모욕적인 대접은 안받는다』고 변화를 말한다. 허드슨강 미술관은 최근 「얼굴 만들기:미국 초상화」란 주제로 2백년 역사의 미국 초상화전시회를 열었다.현대미술이 광범위한 문화 연구에서 인간 개인에 대한 탐구로 이동한 흐름을 한눈에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성과 인종,계층에 대한 관심 증대가 자연스럽게 초상화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세부기법은 물론 판에 박은 듯했던 예전과는 달리 엄청나게 다양해졌다.초상화와 조각을 접목시켜 소위 「초상건설」이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작품 활동에 몰두하는 조나단 샌틀로퍼는 『초상화는 재창조된다면 결코 죽지않는다』고 말한다.뉴욕의 신현대미술관 이사인 마르시아 터커는 인간 신체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자아와 세계가 접속하는데 초점을 두는 요즘 초상화 작품들은 전통적인 초상화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신체의 형식적 기능을 표현하는데 정열을 쏟았던 필립 펄스타인도 이제 감정 표현을 시도한다.초콜릿과 돼지비계로 자신의 흉상을 조각한 작품으로 알려진 젊은 여성화가인 재닌 안토니는 분장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1년간 연구한 끝에 가발과 접합제,화장품 등을 사용해 부성과 모성을 서로 바꾸는 작품을 완성했다.흑인 하층민의 배경과 역사를 탐색하는 작품에 주력하는 흑인화가 데이빗 하몬드는 할렘가에서 도로공사로 인해 흙밖으로 튀어나온 돌을 주워 그곳 이발소에서 나온 머리카락과 그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식으로 치장한 작품을 소중히 여긴다.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나를 아는가」 캠페인처럼 초상화가 광고의 주요부분이 돼버리기도 했다. 도시사회의 냉정함에서 주로 주제를 찾는 알렉스 카츠는 5년전 한 소설가가 부부를 그린 자신의 초상화 작품들을 보고 책을 쓰면서 예측했던 작품모델의 이혼 가능성이 결과적으로 95%이상 맞아떨어졌다고 한다.초상화는 영혼을 묘사하는 일이기도 해서 초상화가와 대상인물간의 진지한 접촉이 신통력의 경지에까지 이르게도 하는 모양이다.
  • 뇌성마비 장애인들 컴퓨터 동호회결성/PC통신 통해“마음 연 대화”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 참여 확산/하이텔에 게시파네 문집도 펴낼 계획/월 1회 모임 열어 세상사 얘기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즐겁고 유익한 얘기 나눠요』 11일 하오 1시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2동 179의46 차강석(29)씨의 방.PC통신 하이텔의 대화방이 열리자 차씨의 눈빛이 환해졌다.자신의 감정을 얼굴표정이나 말로 자유롭게 나타낼 수 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지만 PC통신을 통해 친구와 만나는 반가움만은 분명하게 읽을 수 있었다. 식사도 혼자 할 수 없을 만큼 심한 장애를 앓고 있는 차씨로서는 왼손 가운데손가락 하나로 컴퓨터 자판을 떠듬떠듬 누르는 일도 힘겨운 일이다.짧은 문장 하나를 쓰는데도 1분은 족히 걸렸다.오타도 부지기수.그러나 차씨는 대충 뜻을 이해하고 넘어갈만한 사소한 실수도 반드시 지우고 다시 써내려갈 정도로 정성스럽다. 차씨는 자꾸만 뒤틀리는 자신의 왼손목을 오른손으로 움켜쥔 채 몸부림치듯 자판을 두드린다.컴퓨터 통신을 하느라 자주 밤을 새우는 바람에 요즘 독감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고 가족들이 전했다. 『정상인들은 컴퓨터통신을 취미나 가벼운 놀이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중증 장애인들에게는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며 사회참여의 기회입니다』 20년 넘는 세월을 집안에서만 생활하면서 부끄러움 탓에 학교는 물론 이발소도 못간 차씨가 활짝 열린 세상을 맛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 차씨가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PC통신모임 결성을 제안하자 기다렸다는듯 수많은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호응했다.「행동은 제대로 할 수 없지만 생각만큼은 성인처럼 하자」는 뜻에서 모임의 이름을 「뇌성회」로 지었다.뇌성회는 벌써 자원봉사자를 포함,60명의 회원을 거느린 덩치있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일그러지는 얼굴,뒤틀리는 팔다리,힘을 쓸수록 심해지는 마비증세….이 때문에 남들 앞에 나서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여느 장애인 모임에도 적극 참여할 수 없는 뇌성마비 장애인들에게 PC통신은 그야말로 훌륭한 친구였다.모두들 순식간에 컴퓨터도사가 됐다. 매월 두번째 일요일 하오 3시에는 어김없이 전 회원이 참여하는 대화방을 연다.최신 치료법과 함께 조금이라도 더 「쉽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여러가지 사회현상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지난번 고려대 황윤성 교수가 뇌성마비를 딛고 공식임용된 뉴스가 전해졌을 때는 대화방이 떠들썩했다. 최근에는 장애인에게 컴퓨터보내기 운동을 펴고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세상을 향해 열린 「창」과도 같은 컴퓨터를 선물하자는 취지에서다.기증받은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자판,모뎀 등을 조립,대전의 한 회원에게 전달하기도 했으나 아직은 기증자가 많지 않다는게 차씨의 아쉬움이다.장애인이 컴퓨터를 살때 세제혜택을 주자는 것도 그의 간절한 바람이다. 뇌성회의 앞날에 대해 차씨는 『회원이 1백명을 넘어서면 하이텔에 독자적인 게시판도 만들고 문집도 펴낼 계획』이라는 말을 힘겨운 몸짓으로 컴퓨터에 써보였다.
  • 쌀·쇠고기 등 방출 대폭 확대/이달중/생활물가 안정에 총력

    이달 중 쌀·쇠고기·양파·명태·물오징어·김 등 올들어 값이 오를 기미를 보이는 일부 농·축·수산물의 수입 또는 정부보유 물량 방출이 대폭 확대된다.필기구·비누류·가공식품과 외식비·목욕료 등 개인서비스 요금은 관계부처 합동으로 지도·단속을 벌여 작년 12월 이후 값이 오른 품목은 이전 수준으로 환원 조치된다. 정부는 5일 이석채 재정경제원 차관 주재로 물가대책 차관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연초 물가 안정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기로 했다.특히 연초에 물가불안 심리가 생기지 않도록 개인서비스 요금과 가공식품 등 서민들의 가계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생활물가의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 보유미를 조기에 공매하고 이달 중 양파 6천t을 수입하며,수입 쇠고기 고급육의 방출량을 하루 1백30t에서 2백∼2백50t으로 늘린다.명태·물오징어·김도 작년 말 이전 수준으로 값이 떨어질 때까지 정부비축 물량을 집중 방출하기로 했다. 개인서비스 요금의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내무부·보건복지부·국세청과 각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기관이 합동 단속반을 편성,목욕탕·이발소·음식점·학원 등을 대상으로 값을 올리지 않도록 강력히 지도하기로 했다.
  • 구두 닦는 값 가장 많이 올랐다/물가협,서비스료 집계

    ◎금년중 50%… 상수도료 43%로 2위 올해 서비스 요금중 구두닦는 값이 가장 많이 올랐다.지난해 1천원에서 1천5백원으로 50%나 인상됐다. 가정용 상수도 요금은 25㎥당 2천4백30원에서 3천4백90원으로 43.6%가 올라 2위를 차지했다.같은 도내에서 2.5t 트럭 1대를 이용할 때 작년에 3만원이던 이사 비용은 4만원으로,30원이던 공중 전화료는 40원으로 각각 33·3%씩 인상돼 그 뒤를 이었다. 한국물가협회가 9일 발표한 주요 서비스 요금 동향에 따르면 국내 소포우편물 요금은 2㎏ 기준으로 지난 해보다 25% 올라 1천원이 됐고,롯데월드의 놀이시설 이용료는 21.4% 인상된 1만7천원이었다. 연극 관람료(1만원에서 1만2천원),대중음식점의 된장찌개류(2천5백원에서 3천원),목욕탕 내 이발소 요금(5천원에서 6천원),2.5t 트럭의 50㎞까지의 화물수송비(3만7천4백20원에서 4만4천9백원),드림랜드 놀이시설 이용료(1만원에서 1만2천원)등도 모두 20%나 올랐다.
  • 35년만의 동창회/문정희 시인(굄돌)

    유난스러웠던 여름의 폭염과 연일 날아든 무서운 뉴스에 몸과 마음이 잔뜩 움츠러든 내게 뜻밖에 예쁜 소식하나가 날아들었다.그것은 바로 국민학교 동창회를 하자는 것이었다.아아,몇년만이던가.따져보니 무려 35년만이었다. 몇십리를 걸어가야했던 산너머 큰학교에서 따로 나와 흙벽돌로 동네부근에 새로지은 분교의 친구들.나는 그 친구들과 4학년까지 함께 공부하다가 도회로 전학을 했었다.35년의 시간을 뚫고 약속장소로 가는동안 내 가슴속에는 검정 책보를 허리에 매고 양철 필통을 딸그락 거리던 아이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학예회때 나의 꼬마신랑이었던 담재는 어떻게 되었을까.『나는 나는 장차 녹두장군이 될테야』하고 두팔을 휘젓던 우승이는? 아니,구구단을 못외서 캄캄하도록 교실에 남아있던 착한 순이의 모습하며….너무 흥분했던 탓인가.정시에 약속장소인 음식점에 닿으니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나는 망연히 혼자 앉아서 무덤가에서 듣던 선생님의 옛날 얘기와 다리밑에서 송사리를 잡던 추억을 떠올리고 있었다.조금후 『아니이거 정희 아니여,일찍 왔구먼』하고 중년의 낯선 남자가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는다.이어서 또 한명의 서먹한 얼굴의 중년남자가 앞에 앉으며 『아니,그 예쁘던 얼굴이 어디로 갔는가.영 딴사람이 됐구먼』하고 적기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기막혀 한다. 이어서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주름살을 매달고 있는데도 모양을 내고 줄줄이 나타났다.우리들은 서로들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악을 쓰며 추억들을 떠올렸다.그러는 사이 한 친구는 돋보기를 쓰고 주소록 작성을 하고 있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만을 겨우 나온 나의 친구들.그러나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서 아파트 경비원도 되었고,이발소를 운영하기도 하고 또 은행원도 돼있었다.우리는 밤이 깊도록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헤어졌다.비로소 가을바람이 전신으로 불어오는 밤이었다.
  • 부산 가덕도/새항만 최적지 대기업 개발붐(심층취재)

    ◎정부계획 미확정… 업체마다 설계 부산/삼성/동북아 최대 컨테이너항만 구축/현대/제철·자동차공장/대우/교량 4개 건설/시·항만청선 신공항·국제첨단단지 조성 입안 부산에서 가장 큰 섬인 가덕도의 개발론이 최근 부쩍 들끓고 있다.정부기관과 재벌등이 앞다퉈 장미빛 설계도를 제시하는등 나름대로 개발계획을 밝히고 있다.특히 가덕도 입성을 둘러싸고 대기업들의 승부는 불꽃을 튀긴다. 이는 가덕도가 동북아 최고의 거점항만으로 성장하기 위한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최적의 요충지로 평가받고 있는데다 신항만개발에 투자한 비용은 3∼5년정도 지나면 회수할수 있다는 대략적인 계산이 나오고 있어 대기업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국내 수출입 컨테이너화물의 46%가 부산및 경남·북에서 나오고 있고 경부고속전철과 구포∼대구고속도로등이 2000년초에 완공될 것으로 보여 가덕도는 항만을 비롯,철도·도로등의 연계수송망을 모두 갖추게 된다.또 마산·울산·양산·진해등과 입지적으로 연결하기가 손쉽다. 특히 도시공학전문가들은 부산이 연간 3백만TEU이상의 컨테이너화물이 도심을 통과해 교통체증등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지적,가덕도개발은 단순히 항만개발의 차원을 넘어서 부산의 도시구조를 변모시킬수 있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개발의 필요성◁ 용지난에 부딪혀 바다밖에 뻗어나갈 곳이 없는 부산에서는 2000년대 환태평양시대의 국제교역중심지로서 역할을 하기위해 80년대 후반부터 가덕도개발론이 조금씩 제기됐다. 가덕도개발계획은 그러나 그동안 인공섬건설계획에 밀리고 「국토종합발전 10개년계획」에 제외돼 표류하다 지난 5월 인공섬계획의 무기 연기가 발표됨에 따라 물밑에서 다시 전면에 부상했다.전국 수출입 컨테이너화물의 95%이상을 처리해온 부산항에 부가가치가 높은 환적화물의 물동량이 급증하고 있어 항만개발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돼 왔다. 또 부산항은 중국·러시아등과 연결할수 있는 동북아지역의 관문에 자리잡고 있어 환적화물처리및 중계거점항으로서 다른 항에 비해 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있다. 특히 항만전문가들은 부산항이 오는 2001년에는 연간 69만∼1백2만TEU,2011년엔 1백41만∼2백20만TEU의 시설부족현상을 초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따라서 선석당 연간 처리능력이 30만TEU로 볼때 최소한 8개이상의 컨테이너전용 선석이 모자라 신항만건설이 필수적이다. 가덕도항만건설에 드는 비용은 대략적으로 외곽시설 5천억원,접안시설 9천억원,매립과 준설에 1조원등 모두 2조4천억원정도 추산되고 있으나 2003년 완공후의 개발효과는 하역요금이 현재보다 1백%인상된다고 가정했을 경우 연간 매출액이 8천억원정도로 개발후 3년남짓 지나면 투자금액이 회수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개발구상들◁ ▲해운항만청=해운항만청이 지난 89년 마련한 「부산항 광역개발 기본계획」에서 가덕도에 총 2조3천억원을 들여 4백만평 매립을 통해 53개 선석을 갖춘 컨테이너항으로 개발,연간 7천만t의 하역능력을 갖춘 동북아 최대의 신항만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이를 위해 해항청은 지난달말 「가덕도 신항만개발 타당성조사및 기본계획」 용역조사를위해 25억원을 경제기획원에 요청했다. 해항청이 구상하고 있는 개발계획은 95년부터 96년까지 2년동안 기본계획과 실시설계를 끝낸뒤 97년에 민자유치계획상 사업시행자를 선정,98년이후 공사에 착수한다는 것이다.항만공사는 2003년까지 끝낸뒤 곧바로 배후도시·주거시설·상업시설등의 착공에 들어가 2007년 모두 완공,신항만 개발을 완전히 끝낸다는 계획이다. ▲부산시=부산시는 가덕도를 환태평양의 전진기지와 대륙횡단철도의 최남단기지로서 기능을 할수있는 신항만·신공항·국제첨단업무단지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부산시가 마련한 「가덕도 종합개발계획안」은 가덕도일대에 1천3백87만여평을 조성,자유무역지대·항만물류기지·국제교역·공업지역·공원지역·관광위락시설·일반상업·문화복지시설·주거지역등 9개 용도로 개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건설부등 관계부처와 협의에 들어갔다. 시는 지난 93년6월과 94년6월등 2차례에 걸쳐 눌차만 48만평을 자연환경보전지역에서 도시지역으로 전환하는 국토이용계획변경을 건설부등에 신청했으나 환경처와 수산청등의 반대로 무산,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신호공단에 승용차공장유치를 위해 온갖 힘을 쏟고있는 삼성그룹은 「부산지역 발전에 대한 사업기본계획」을 마련,오는 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동안 3조7천억원을 들여 유통기능·국제업무·도시기능등을 갖춘 동북아 최대의 컨테이너항만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또 신호공단에 승용차공장이 유치되면 가덕도에 3백90만평의 매립지를 조성,자동차부품공장을 건설한다는 복안도 갖고있다. ▲현대=민간기업으로는 가장 먼저 가덕도 개발론을 들고나온 현대그룹은 지난 8월초 모두 8조7천억원을 들여 가덕도에 연간 조강능력 9백3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신호공단에는 연산 3백50만t의 냉연·강관공장을 세운다는 청사진을 밝혔으나 부산시민들에 의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자 제철공장뿐 아니라 자동차공장까지 건설하겠다고 태도를 전환하고 있다. ▲대우=대우는 가덕도종합개발 1차계획을 세우고 총사업비 9천7백억원을 들여 섬과 섬을 연결하는 4개의 교량으로 경남 거제도∼강서구 가덕도∼부산 내륙을 잇는 9·6㎞의 해상교통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마련,9월초 건설부와 경제기획원들에 의향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이처럼 가덕도 개발계획이 무성한 가운데 대우가 6백80만평,현대가 4백8만평,삼성이 3백90만평의 해상을 매립하겠다고 밝혀 부산시의 7백53만평이나 해항청의 4백만평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나 재계가 가덕도개발에는 모두 같은 목소리이지만 개발모델이 서로 달라 사전에 충분한 조율을 통해 무분별하고 졸속적인 「거품개발」이 되지 않도록 국가의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져야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개발의 문제점◁ 가덕도개발은 92년부터 2001년까지인 「제3차 국토종합개발 10개년계획」과 「제7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아 개발을 위한 예산확보가 어려워 추진되지 못하면서 개발계획이 헛돌았다. 가덕도개발에 가장 먼저 부딪힐 문제점은 가덕도주민을 위한 어업권보상문제.주민의 75%이상인 3천여명이 양식·어업등을 비롯한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어 항만개발을 위해 바다등을매립할 경우 갑자기 생활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을 달래는 것이 선결과제로 대두된다.전문가들은 대략적인 계산으로 어업권보상비로 5천억원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가덕도주변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진우도·견마도등 11개 무인도와 한려수도와 맞닿은 수려한 해안절경의 보전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남는다. 이와함께 가덕도주변의 일부 무인도가 벌써 외지인들이 소유하고 있는등 부동산 투기바람을 잠재우는 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공단보다 항만­위락단지 조성을”/민간참여 컨소시엄 형태 바람직/황영우 부산발전연연구위원·도시행정학박사(전문가 의견) 가덕도는 부산시의 마지막 남은 귀중한 자산이다.따라서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먼 안목을 내다보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개발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가덕도를 산업기지화하는것은 지역 특성상 무리가 따르고 특정 대기업에 대한 특혜의 소지가 많은 만큼 개발에 신중을 기해야한다. 부산이 뻗어나갈곳은 결국 해양뿐이라는 지적이 관·학계에서 일고있다.이는 바다를 매립, 용지를 확보해 산업공단을 짓자는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부존자원인 해양의 특색을 살려 활용하자는것이다. 가덕도의 경우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고있다.항만개발과 함께 해양특성을 살릴수있는 항만물류기지 해양레포츠등 위락단지 조성이 장기적 안목으로 볼때 산업단지 유치보다는 부가가치가 더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따라서 가덕도는 항만·물류기지 위락단지조성등으로 개발방향이 잡혀야한다.가덕도와 거제도를 잇는 연륙교를 건설,주변의 해상관광자원을 개발하는 방안이 한 예가 될수있다. 이와함께 최근 해운항만청의 가덕도 신항만건설·대기업들의 산업공단유치등 각종 개발계획등은 자칫하면 이들 대기업들의 이익에 묻혀 가덕도가 무분별하게 개발될 경우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기형적인 개발이 될수있다는 점을 유념하지 않으면 않된다. 부산시가 개발마스터플랜등 종합계획을 마련한뒤 개발하기 손쉬운것부터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일을 추진해 나가야한다. 특히 관 주도의 개발이 재정적 뒷받침이 되지않아 개발이 지연되는 사례가많았던 선례를 감안, 관주도가 아닌 제3섹터개념을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어야한다.이를위해 민간참여 컨소시엄형태인 가칭 「가덕도 개발공사」라는 추진본부의 설립도 한 방안이 될수 있다. 현재 개발이 활발히 논의되고있는 가덕도 동쪽해안은 문화재보호구역 자연생태계보전구역 연안오염특별구역 군사시설지역등에 묶혀 해제에 따른 문제점이 많은만큼 땅의 효율면에서는 동안 보다떨어지지만 규제가 덜한 서쪽 일부 해안개발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는것도 검토해 볼만한 방안이다. 나아가 매립에 따른 환경파괴의 위혐이 뒤따르는 만큼 철저한 환경보전대책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이와함께 4천여주민들이 생활터전을 잃는만큼 충분한 보상과 함께 주민고용을 최우선하는등 생계대책마련도 뒤따라야 할것이다. ▷가덕도 현황◁ ◎영도의 1.5배크기… 인구 4천명/해안선 7천여m·수심 8∼30m 지난 89년 1월 당시 경남 의창군(현재의 창원군)에서 부산시로 편입된 가덕도는 행정구역상 부산시 강서구 천가동.영도의 약 1.5배인 20.96㎦에 6백35만평규모로 1천2백여가구 4천1백여주민이 어업·양식등 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부산의 서쪽 외곽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남 거제도,진해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된다.아직 개발되지 않은 해안 가운데 유일하게 그린벨트에서 제외됐다.또 섬북쪽으로는 신호지방공단·녹산국가공단·지사과학공단등이 자립잡고 있어 21세기 부산의 신경제권의 중심축으로 성장할 수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있다. 컨테이너 전용부두 9개 선석등의 건설이 필요한 해안선 4천6백m를 포함,총 해안선이 모두 7천6백m이며 수심이 8∼30m정도로 신항만의 자연적 입지조건으로도 적격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일부지역이 철새보호지구로서 문화재보호구역·자연환경보전구역·자연생태계보전구역·연안오염특별구역등으로 문화부와 환경처등으로부터 지정돼 그동안 개발이 사실상 제한됐다. 현재 약국·파출소·우체국·이발소등이 하나씩 있을뿐 대중목욕탕도 없는등 도시근린시설이 전혀 갖춰져있지 않은 부산지역의 오지로 편입당시부터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다.
  • 일 「라면 박물관」 큰 인기

    ◎50∼60년대 회사원의 「퇴근길 한잔 골목」 재현/라면역사도 한눈에… 두달만에 33만명 찾아 50∼60년대 일본 샐러리맨들이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술한잔과 라면으로 회포를 풀었던 「라멘(라면의 일본식 발음)골목」.일본 경제부흥의 뒤꼍에서 직장인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라멘골목을 완벽히 재현,지난 3월 요코하마에 문을 연 「라멘박물관」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라멘박물관에는 라멘에 관해서는 없는 것이 없다.우선 박물관 지상층 전시장에는 중국 면이 일본으로 건너와 라멘이 된 라멘의 초창기 모습이 전시돼 있다.50년대 사용된 금이 간 식탁,행상들의 호객용 피리,라멘집의 커튼인 「노렌」,라멘뽑는 기계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그리고 현재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인스턴트 라멘이 모두 망라돼 있으며 1백엔으로 비디오게임을 통해 라멘먹기대회에 참가할 수도 있다. 이같은 전시물보다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50년대말 도시풍경이 그대로 살아 있는 지하의 「라멘골목」이다.이곳에는 삿포로·도쿄·구마모토 등지로 나눠져 당시 정경을 연출하며 지역별 특색 있는 라멘을 실제로 판매한다. 지하1층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사이로 왕년의 영화배우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거리에는 나무 울타리,찢어진 선거포스터,집집마다 놓여있는 우유통,대나무 끝에 매달려 있는 옷가지들이 보인다.좀 더 걸어가보면 일본 전통술집인 이자카야가 줄지어 있다.이곳에서는 마치 넥타이를 풀어젖힌 샐러리맨들이 술주정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하 2층은 역도산의 프로레슬링경기가 길한쪽 텔레비전에서 방송되고 있는 광장이다.광장은 옷가게·이발소·라멘집으로 둘러싸여 있다. 라멘박물관 전시의 역사적 고증을 책임진 음식문화연구가 게이코 코수게씨에 따르면 지난 58년 니신사에서 인스턴트 「치킨 라멘」을 발매한 이후 라멘이 일상용어가 됐다 한다. 박물관 설립자인 요지 이와오카씨는 열렬한 라멘애호가.그는 처음에는 일본 전역의 라멘을 맛볼 수 있는 장소만을 생각했으나 준비과정에서 라멘을 일본문화유산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게 돼 박물관설립에까지 나섰다. 지난 90년 박물관 설립을 계획하고 설립위원 20명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략 1천여개의 라멘가게를 들렀다.모든 라멘을 맛본 뒤 이 가운데 8곳을 선정,박물관에 전시하기까지에는 3년반의 시간이 걸렸다.라멘가게 주인들은 좀더 새롭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간적 여유를 원했으며 박물관 관계자들은 이를 선정하는데 꽤나 고심했기 때문이다. 향수도 느끼고 진귀한 라멘도 먹을 수 있는 이 박물관은 사업적으로도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개장 첫달인 3월에는 16만명이,4월에는 17만명이 찾았다. 박물관에서 사업및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히로미 사와다씨는 『어떤 날은 방문객이 너무 많아 라멘의 양을 충당할 수가 없을 정도』라며 『앞으로는 계절에 맞게 가키고리(향기나는 얼음) 등도 내놓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물론 50년대를 기억하는 중년층 이상에 특히 인기가 높다.하지만 대화가 부족한 요즘 핵가족들이 이곳을 찾으면 30년전 저녁놀을 배경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멘 국물을 먹으며 굳어진 혀를 풀고 마음을 덥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며 박물관 관계자들은 가족 나들이 장소로 이곳을 꼭 권한다.
  • 일하는 노인수기 대상 전순옥할머니(인터뷰)

    ◎이발사 일 30여년째… “이젠 베테랑이죠” 올해 67세된 할머니 이발사가 일하는 노인수기 당선자로 뽑혀 화제가 되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명륜이용원 주인 이발사인 전순옥할머니는 최근 사회복지법인 은초록이 주관한 「일하는 노인수기」 공모에서 대상을 탔다. 『이발기와 가위,빗을 가지고 온 정성을 모아서 매만지면 추하고 부스스했던 머리들이 멋쟁이 미남,새신랑들이 되고 훌륭한 인재와 고관 관리들이 되는데 일하는 보람을 느낍니다』­전할머니가 이발사 일을 하게된 것은 30여년전 이발관을 차렸던 남편이 중풍으로 눕게 되면서부터.이때부터 할머니는 21년간 남편을 수발하며 이발일로 4남매의 교육과 생계를 도맡아야 했다.처음 아이들이나 지나가는 불쌍한 사람들을 데려다 모델로 삼고 이발을 배웠으나 이제 멀리 70리 밖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올 정도로 전할머니는 베테랑이 됐다. 더욱이 전할머니는 생활이 어려운중에도 용돈이 부족한 노인들은 무료로 이발해주는등 이웃을 돕고 봉사하는 삶을 실천해와 모범이 되고 있다.4남매를 육군장교 회사원 등으로 모두 훌륭히 장성시켰음에도 지금도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이발소 문을 여는 그는 『돈 벌면서 봉사하고 손자들에게 용돈도 줄 수 있어 좋다』면서 『힘 있을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할머니는 또 『요즘은 이발일을 배우려는 이들이 별로 없어 앞으로 이발사를 구할 좋은 대책이 있길 바란다』고 말해 철저한 직업정신을 보여줬다.
  • 하노이거리 노점상들로 장사진(생동하는 베트남:상)

    올해부터 한국은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다.유니세프(유엔아동구호기금)한국위원회가 올해 1월1일을 기해 출범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가 변한 것이다.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첫 지원대상국으로 베트남 선정하고 베트남방문단을 최근 파견했다.방문단의 일원으로 베트남을 다녀온 임영숙서울신문논설위원의 방문기를 싣는다. ◎농촌개발사업 한창… 양어장 겸용의 화장실 분리/흙바닥 교실·「베니어판 공책」에도 교육열기 후끈 베트남에서 우리는 대책없는 가난과 남누를 보게 될것으로 생각했다.19세기말부터 시작된 프랑스로부터의 기나긴 독립투쟁에 이어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10년 전쟁을 치르고 다시 캄보디아와 전쟁을 벌였다가 지난 89년에야 전쟁없는 평화를 맛보게 된 나라,개방과 개혁을 표방하는 「도이 모이」(쇄신)정책에 따라 시장경제가 도입되고 최근 외국자본이 물밀듯 들어가고 있다지만 아직도 연평균 국민소득 2백달러 수준의 세계 최빈국 10개국중 하나가 베트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우리의 50∼60년대를 연상시킬 만큼 가난하긴 해도 남루하지는 않았으며 5모작까지 벼를 재배할수 있는 축복받은 자연(베트남은 세계 제3위의 쌀 수출국이다)과 강인하고 부지런한 국민성으로 인해 오히려 풍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세계 최빈국중 하나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베트남방문단의 첫 방문지였던 하노이 교외의 농촌마을은 우루과이 라운드 파동을 겪고 있는 한국의 농촌보다 훨씬 여유있게 보일 정도였다.이 마을은 하노이에서 12㎞정도 떨어진곳에 위치한 두륭군 순흥리.지난 80년대부터 시작된 농촌개발사업의 시범마을로 베트남의 연평균 국민소득보다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곳이다.베트남의 농촌개발사업은 우리의 새마을운동과 같은 것으로 현재 14개리에서 실시되고 있는데 앞으로 전국적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 베트남정부의 계획이다. 집집마다 과수원이 있어 태국 원산의 과일 홍시엔나무가 무성하고 그레이프프루트 장미꽃등 이른바 경제수목의 묘목이 심겨 있다.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홍시엔 나무 밑에는 사람의 머리털과돼지털등이 뿌려져 있는데 열매맛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또한 대부분의 집에서 닭 돼지 개등의 가축을 기르고 양어장이 있는 집도 보인다. 베트남의 농촌에 있는 연못은 물고기를 기르는 양어장이자 화장실로서 물고기들이 사람의 배설물을 먹으며 자란다.그러나 이 마을에는 농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듯한 콘크리트 구조물의 화장실이 골목길에 따로 있었다. 전쟁영웅 출신이라는 이 마을 이장집에서는 마침 마을회의가 열리고 있었다.참석한 10여명의 마을 원로들은 대체로 준수한 외모와 품위를 지니고 있다.한반도 전체의 약 1.5배가 되는 면적에 남북간의 길이가 우리나라의 함경북도 나진에서 제주도를 잇는 정도인 1천5백㎞에 이르는 국토를 지닌 베트남에서는 사람들의 외모도 남북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듯싶다. 베트남에는 『임금님의 권세도 마을 입구에서 멈춘다』는 속담이 있을만큼 지방자치의 전통이 강하고 유교적 가족주의가 뿌리 깊어 공산주의 사회인데도 마을 원로들이 공동체 현안을 자치적으로 해결해 왔다고 한다.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인 이장집의 중앙에는 조상을 모시는 제단이 있고 제단 양옆으로 평상이 놓여 있다.왼쪽 평상옆에 손님을 위한 응접세트가 있어 그곳에서 마을회의가 열리고 있었다.평상이 바로 침실역할을 하여 방이 되는 셈인데 제단으로 공간의 구분이 이루어질뿐 벽이 없는 점이 특이하다.베트남 농촌의 가옥구조는 기본적으로 이런 형식이라고 한다. 중국의 북동쪽에 자리잡아 「동이」,서남쪽에 위치해서 「남만」으로 불리며 오만한 중국인들로부터 똑같이 오랑캐 취급을 받아온 한국과 베트남은 역사 문화 풍습등 여러면에서 유사점이 많다.우연하게도 두나라 다 삼국시대와 이씨왕조를 거쳤고 한자로 과거시험을 보았다.베트남 말 역시 한자를 뿌리로 하고 있어 「동서남북」을 「동 떠이 남 박」으로 읽는등 한자에서 파생된 비슷한 발음의 말들을 두나라 말에서 쉽게 찾을수 있다.근대에 들어서는 일본의 잔혹한 지배를 받는 경험을 공유하며 똑같이 냉전의 희생양으로서 남북분단과 동족상쟁의 비극을 겪는다.그러면서도 끈질긴 노력으로 한쪽은 통일을이루어내고 또 한쪽은 경제발전을 이루어 낸다. ○대로에 이발소 차려 통일은 됐으나 가난한 베트남은 지금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그 노력은 거의 폭발적인 힘으로 하노이 거리에서 분출되고 있었다.지난 90년 사유재산이 인정된 후 나타난 현상이라는데 『저렇게 모두 장사에 나서면 물건은 누가 살까』싶을 만큼 거리에 장사꾼들이 많다.길가에 좌판을 벌여놓고 돼지고기도 팔고 옷감도 팔고 주로 플라스틱과 양은 제품인 그릇도 판다.어엿한 가게도 안쪽은 텅 비워 놓고 집밖에 물건을 진열해 놓았다.물건이 많지 않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가능한한 눈길을 많이 끌기 위해서다.심지어 빵 두개를 달랑 조그만 진열대 위에 올려 놓고 파는 사람도 있으며 자동차가 달리는 큰길가에 의자를 놓고 이발소를 차린 경우도 보인다. 하노이 시외로 나가 보아도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경제활동을 위해 이동중이다.시내버스가 없는 하노이의 주요교통수단은 자전거와 오토바이와 시클러(자전거로 미는 인력거)다.그러나 시골길에선 시클러가 보이지 않고 대신 물소 두 마리가 이끄는 짐수레가 보인다.그런데 물소가 끄는 짐수레는 물론이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도 뒷바퀴 양쪽에 짐을 가득 담은 광주리를 매단채 달린다.이런 활력이 가난한 베트남을 남루하게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베트남은 53개의 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가난한 성 가운데 하나라는 화빈성에서도 베트남의 여유를 볼수 있었다.하노이에서 자동차로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화빈성은 산간지역으로 소수민족이 많이 산다.성인민위원회는 유니세프 방문단 일행을 위해 소수민족공연을 마련해 주었고 그 공연이 바로 베트남의 문화적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여주었다.베트남의 소수민족은 53개 종족으로 중국의 소수민족보다 2개종족이 적을 뿐이다.전체인구의 12%에 이르는 이 소수민족들의 춤이나 음악·의상의 다양함은 베트남문화를 살찌우기에 충분했다. 또한 화빈성에는 베트남 최대의 수력발전소가 지금 건설중에 있다.베트남 전국에 필요한 전력의 60%를 공급하게 될 이 발전소 건설의 자재는 한국의 현대건설이 공급하고 있다.수력발전소 건설은 거대한 댐을 만들어 냈고 2만여명의 주민이 이주해야 했다.그 결과 고립된 산간마을에는 다학급학교를 세우는 지혜로움도 베트남은 지니고 있었는데 화빈성 다박군 솜머리학교는 불과 16명의 학생을 위한 것이었다. ○“자전거위의 호랑이” 우리의 남다른 교육열이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룬 원동력이라고 하지만 베트남은 한국보다 더욱 어린이와 교육을 위한 투자에 열성인 듯싶다.전국단위의 어린이보호위원회를 구성하고 장관급을 위원장으로 앉혀 정부 주요부처와 같은 기능을 하도록 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베트남밖에 없다.또한 베트남은 「어린이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비준한 나라다.경제발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도 정부예산의 40%를 교육 보건등 사회복지에 사용하고 있다.베트남은 미래를 위해 투자할 줄 아는 나라인 것이다. 우리가 지난 30년 사이에 이루어낸 경제발전을 베트남은 10∼15년 사이에 달성해 낼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그래서 베트남은 「자전거 위의 호랑이」로 불린다.그 가능성에 우리는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지금 일어서는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다.그래야만 한국은 진정한 국제화를 이룰수 있으며 내일의 우리 살길도 거기서 배울수 있게 된다.그런점에서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첫번째 지원국으로 베트남을 선정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솜머리의 수몰지역 주민들은 우리일행을 신기한듯 구경하다가 눈길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었다.흑치의 한 할머니(베트남 여성들은 치아건강을 위해 이빨을 검게 물들였는데 지금은 사라져가는 풍습이라고 한다)는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끌고가 차를 대접하고 그들의 주식인 카사바(감자와 비슷함)를 듬뿍 싸주었다.또한 솜머리학교 어린이들은 우리 일행을 배 타는곳까지 배웅하고 파파야 열매를 한개씩 선물했다.비록 그들이 연평균소득 30달러의 가난속에 있고 대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초가지붕 흙바닥의 간이학교에서 공책도 없이 합판에 분필로 글씨를 써가며 공부하고 있을지라도 마음은 그렇게 풍요로웠다.
  • “북한은 뇌물 판치는 요지경”/브라질 기자 방북기 요약

    ◎촬영금지구역도 담배두갑에 OK/외국인 관광땐 「판문점긴장」 연출도 브라질의 유력시사주간지 「이스투 에」지는 2일자 최신호에서 레난 올리베이라기자가 지난달 북한을 방문한뒤 쓴 「북한,붉은 베고니아꽃들」이라는 방문기를 특집기사로 실었다.올리베이라기자의 기사를 요약했다. 토요일인 12일 하오2시쯤 평양시내 한 이발소안.라디오에서는 김일성우상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쉴새없이 흘러나왔다.이때 한 술취한 행인이 들어와 외투를 벗어 던지다가 베고니아꽃(일명 김정일화)화병을 쓰러트렸다.이어 행인이 라디오에 대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꺼버리라고 외쳤다.그러자 한 손님이 벌떡 일어나 『경찰을 불러! 위대한 지도자를 욕하고 있어』라고 소리쳤다.그뒤 라디오를 끄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북한은 판문점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었다.북한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올때마다 쇼를 연출한다.관광버스가 도착하면 북한군인들은 콘크리트벽 위로 달려가 무서운 얼굴로 남쪽을 응시한다.판문점주변을 구경한 관광객들은 분계선 뒤쪽의 강당에서 주체사상교육을 받는다.이때 군인들은 콘크리트벽에서 소리없이 빠져나와 막사로 돌아가 다음 관광버스가 올때까지 대기한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오는 기차는 국경지역에서 창문을 가린다.창밖의 모습을 사진찍다 들키면 카메라를 압수한다고 열차경비원이 경고했다.그러나 경비원에게 일제 마일드세븐 담배 두갑을 주면 어디서든 촬영이 가능하다.평양시내에서도 기념사진은 지정장소에서만 찍게돼있으나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마일드세븐 다섯갑에서부터 초콜릿 몇개 또는 미화 1백5달러를 요구한다. 주민들은 외국인 출입이 금지된 극장에만 간다.놀라운 것은 공장이나 관청에서 얻은 관람권을 식량표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한 우체국직원은 『아내의 출산이 가까워 쌀을 좀더 사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평양의 백화점에는 플라스틱구두·우산·선글라스등이 눈에 많이 띄었으나 식품부에는 고기부스러기만이 있었다. 북한에는 8가지 종류의 화폐가 있다.파란색과 붉은색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국가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고 호박색은 북한주민용이지만 호박색 지폐로는 살것이 없다. 수돗물은 3일에 한번씩 나오고 건물은 전력부족으로 난방시설이 없다.공공교통수단인 수입전차나 지하철은 중심가에만 있다.지붕이 나무로 된 버스는 기름부족으로 제대로 운행되지 못해 주민 대부분은 걸어다닌다. 국립박물관에는 역사 전시물보다 김일성 우상화 작품이 더 많았다.그림중에는 김일성이 세계를 손에든 모습도 있었다.북한관광은 히틀러로 분장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독재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 농촌위주 개발정책 펴야/장재우(쌀정책을 말한다)

    ◎공단유치 농외소득 보장… 문화혜택도 쌀시장이 개방된 우리의 농촌을 생각해 보자. 먼저 쌀농사를 생업으로 해왔던 많은 수의 농민들이 그 기반을 잃게 될 것이다.생업을 잃은 농민들은 생계를 위해 농촌을 떠나게 될 것이고 이들은 또 도시 어디에선가 일자리를 구해야 할 것이다.농촌인구의 유출은 농촌사회를 크게 변화시키게 된다. ○떠나는 농민 막아야 지금까지 농민들을 상대로 해왔던 가게들은 장사가 될리 없을 것이고 이발소나 주막들도 찾는 손님이 없어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그밖에 농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던 마을회관이나 경로당도 줄어드는 농촌인구와 함께 그 역할을 마감하게 되고 일선 국민학교나 농촌지도소 같은 기관들도 문을 닫는 곳이 늘어만 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촌은 자연히 활력을 잃게 될 것이고 마침내는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마을이 텅 비게 된다면 남아있는 가옥들과 시설들은 누가 관리해야 할 것이며 또 어떻게 이용해야 할 것인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농촌을 살려야하고 농촌을 지켜야 한다. 농촌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농민들의 유출을 막아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농촌지역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아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농촌지역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인구유입정책이 우선 필요하다.사람이 있어야 마을의 세력도 커지고 또 이들을 기반으로 장사도 할 수 있고 학교나 공공시설 들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또 사람들이 북적대야 농민들도 일할 의욕이 생기고 신바람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촌에 사람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먼저 농촌지역에 차별적인 개발정책이 필요하다.개발의 축이 도시중심에서 농촌중심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것이다.과거의 경제개발은 「특정지역」을 중심으로하는 지역중심의 개발정책이었다.그러나 이러한 경제개발 정책은 지역간의 경제적 격차를 확대시키면서 한편으로는 지역간의 갈등을 노출시키는 부작용을 노출시켰다.이와같은 지역개발정책이 이제부터는 「농촌」이라는 특수사회를 우선하는 「농촌개발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구유입시책 긴요 여기서 농촌개발정책은 두가지 의미를 포함한다.하나는 농촌지역에서 공업과 서비스산업을 도입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농촌지역을 주거공간의 중심지로 삼아가자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농촌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대폭적인 혜택을 주어야 한다.혜택은 경제적인 혜택과 문화적인 혜택으로 구분하여 적극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예를 들면 농촌지역에 주택을 건립하려는 사람들에게 주택자금을 우선적으로 공급해주고 또 이들에게 생활과 관련된 여러가지 세금을 감면해 주어 농촌생활이 도시생활 보다 생활비가 절대적으로 덜 들도록 해 주어야 한다.특히 농촌에 거주하며 도시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기업과 기관들이 교통비를 넉넉히 지급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농촌지역의 주거환경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농촌지역의 도로를 넓히고 교통체계를 확립해서 농촌에 사는 주민들의 도시와의 접근이 한결 편리하도록해야 한다.그리고 모든 공공시설이나 학교 의료기관도 도시 중심보다는 도시밖으로 유도하여 도시주민이나 농촌주민들 모두가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농민들의 소득을 충분하게 확보해주는 정책도 중요하다.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농촌지역 개발에 따른 농외취업의 기회를 확보해서 농외소득을 높여가는 방법도 있고 농업내부적으로는 경영규모의 확대나 경영의 다각화를 통해서 농산물 가격하락으로 소득을 보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할 점은 농민들의 소득보상이 단지 농민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어떻게 해서든지 농업과 연계시켜 농업을 살려 가면서 농업이 갖는 공익적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도시민 이해 따라야 마지막으로 이와같은 획기적인 정책의 계획과 실천은 농민들이나 정부의 힘만으로는 이루어 내기 어렵다. 정책을 추진하는데 도시민들의 농업과 농민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정부와 농민,그리고 도시민을 포함하는 모든 국민들이 농촌의 현실을 이해하고 자기를 양보하면서 더불어 살려고하는 의지를 보이게 될때 우리의 농촌도 죽어가는농촌에서 활기넘치는 농촌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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