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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정체성 넘어… 소외된 자를 향한 위로

    한·일 정체성 넘어… 소외된 자를 향한 위로

    “정의신 연출가는 한국인입니까, 일본인입니까.” 연극인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다. 그에게는 ‘재일한국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른다. ‘야키니쿠 드래곤’(2008)을 비롯해서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2012), ‘나에게 불의 전차를’(2012)까지, 그의 대표작들은 일본과 한국을 함께 품고 있다. 답을 찾아보자면 극 배경과 인물의 흐름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겠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일본 오사카에서 곱창집을 하는 용길이네 가족을 비췄고, ‘봄의 노래는’은 일제강점기 전라도 외딴섬에서 이발소를 하는 홍길이를 그렸다. ‘…불의 전차를’은 1924년 경성, 남사당패와 일본인 교사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점점 한국으로 흘러온다. 그러니 한국인이라고 해도 좋을까.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하는 그의 신작 ‘푸른배 이야기’를 보면 조금은 생각이 정리된다. 일단 일본을 걷어냈다. 모티브는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 ‘아오베카 모노가타리’이지만, 온전히 한국화했다. 소설의 배경은 지바현 우라야스시의 가난한 어촌이다. 도쿄 디즈니랜드가 들어서면서 예전의 소박한 풍경을 잃었다. 연극은 이곳을 인천 남촌도림동으로 옮겼다. 송도 국제도시 개발의 영향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는 현상이 닮았다. 극장에 들어서면 남루한 삶이 엿보인다. 무대 한가운데에 넓은 대청을 펼쳤고, 양쪽에 빨래들이 서너줄씩 널려있다. “조개와 김, 낚시터로 알려져” 있고, “북쪽은 논밭, 서쪽은 바다, 동쪽은 소래강, 그리고 남쪽은 ‘백만 평 앞바다’라고 불리는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 어촌이다. 30년 전 여기서 3년 정도 살았던 ‘나’가 다시 이곳을 찾아 그때를 떠올리는 것이 연극의 큰 줄기다. ‘나’가 기억을 더듬으면서, 웃음을 팔고 음탕한 말을 뱉는 뚝방집 여인들, 담배와 술을 얻어먹고 망가진 파란 배를 파는 뻔뻔한 칠복 할아버지, 부모에게 버림받고 동생을 돌보는 소녀 말순이, 매일 도박판을 벌이고 투닥거리는 부부,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낡은배 하나 갖고 홀로 사는 늙은 선장 등 인물들의 호졸근한 삶이 옴니버스처럼 펼쳐진다. 이들은 애처롭고 무식하면서 과격하지만, 그 이면에는 순수함과 소박함이 있다. 옹심에게 이용당하는 춘식이는 옹심이의 처지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계속 세상에서 상처를 받아왔어요. …그래서 선생님, 어쩔 수 없어요. 뭐라 할 수 없어요.” 이런 식이다. 작품은 일인다역과 다인일역을 넘나든다. 해설자 역할을 하는 ‘나’가 여럿이다. 서상원, 박수영, 김문식, 이철희가 돌아가면서 ‘나’를 연기한다. 상황마다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다. 김정영, 장정애, 송태영 등 배우 14명이 40여명 역할을 해내지만 정신 사납다거나 번잡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속도감 있는 대사와 움직임으로 140분(중간휴식 포함)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간다. 연극은 수미쌍관 구조다. 사람들이 마을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설명하면서 기념촬영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같은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연극처럼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정 연출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푸른배 이야기’를 보면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그의 정체성이 아니라, 그가 연극을 통해 전달하려는, 기억과 역사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위로가 더 큰 의미를 던진다. 공연은 오는 24일까지.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중국통신] 음력 2월 2일은 이발하는 날?

    지난 13일 중국 이발소들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음력 2월 2일, 이른바 ‘춘룽제’(春龍節)를 맞아 머리를 자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기 때문. 첸장완바오(錢江晩報) 등 현지 언론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13일 하루 동안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는 머리를 자른 사람들의 ‘인증샷’이 봇물을 이뤘다. 정월 초하루부터 기른 머리를 음력 2월 2일에 자르는 것은 예부터 전해져 온 풍습 때문이다. 항저우(杭州)에 사는 역사학자 딩윈촨(丁云川)은 “2월 2일은 ‘용이 머리를 드는 날’(龍擡頭)로, 북방지역에서 전해진 문화다.”며 “이 날은 하늘에서 구름과 비를 주관하는 용왕이 고개를 드는 날로, 이 날 이후 비 오는 날이 많아져 춘룽제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또한 춘룽제 전에 머리를 깎으면 한 해의 복이 날아가지만 춘룽제에 맞춰 머리를 자르면 액과 불운이 함께 떨어져나가 일년 동안 평안하다고 믿는다고 딩 선생은 소개했다. 중국통신원 홍진형 agtha_hong@aol.com
  • [DB를 열다] 1964년 손님 없어 한산한 서울의 어느 이발소

    [DB를 열다] 1964년 손님 없어 한산한 서울의 어느 이발소

    1964년 1월 21일에 촬영한 서울 시내의 어느 이발소다. 이발료가 오른 뒤 손님이 없어 한가한 모습을 취재한 것이다. 이즈음 물가는 급등하고 있었다. 이발료는 50원에서 80원으로 60%나 올라 서민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요즘은 목욕탕 이발관이나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으니 옛날 이발소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변두리로 나가야 가끔 눈에 띌 뿐이다. 옛날 이발소 풍경은 사뭇 다르다. 사진에도 보이듯이 우선 벽 위쪽에는 ‘이발소 그림’이 걸려 있다. 주로 값싼 풍경화나 물고기 그림이 벽면을 장식한다. 태극기를 걸어놓은 이발관을 발견하기도 어렵지 않다. 손으로 움직이는 이발기에 머리카락이 끼여 고통스러워할 때도 잦다. 그래도 이발사들의 구수한 세상 이야기를 들으면 용서가 된다. 이발이 끝나고 뜨거운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 놓으면 수염은 부드러워져 깎기 좋은 상태가 된다. 길이 20㎝가 넘는 이발소 면도칼은 가죽띠에 쓱쓱 문지르면 날이 선다. 비누거품을 바르고 면도를 마치면 수건들과 함께 빨랫줄에 수십 장씩 걸어놓은 신문지 쪼가리 중에서 하나를 떼어 칼에 묻은 거품을 닦아 내버린다. 이발소 한쪽에는 타일을 붙인 세면대가 있다. 머리를 박박 감겨주고 나서는 작은 물뿌리개로 시원하게 물을 부어준다. 그 옆에는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연통이 밖으로 연결된 연탄 난로가 있어 물을 데우고 공기도 훈훈하게 해준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낯설지 않다, 지금도 어딘가 있을 모습 같아서

    낯설지 않다, 지금도 어딘가 있을 모습 같아서

    1930년대, 그러니까 대공황의 잿더미 속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신화가 이륙하던 그 시간, 그 시간은 하나의 기념비다. 비슷한 내용인데 강조점에 따라 조금씩 달리 부르는 말들이 많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누군가는 자유민주주의의 갱신, 누군가는 수정자본주의 혹은 혼합경제체제, 누군가는 대압착의 시대, 누군가는 실질적인 사회민주주의의 시대, 누군가는 최첨단 정보기술(IT) 유행을 타고 자본주의 2.0이라 부르는 시대. 국가의 원체험기이기도 하다. 대공황이란 공포에서 길어올려진. 공포에 대처하는 방식은 두 가지. 하나는 파란 약 먹고 꿈꾸는 것이다. 야리야리한 여자아이들이 두 주먹 불끈 쥐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라 신나게 흔들며 노래 부르는 뮤지컬이다. 고전으로 꼽히며 지금도 한국 무대에 종종 선뵈는 ‘애니’, ‘42번가’, ‘시카고’ 같은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빨간 약 먹고 냉정하게 현실을 보는 것이다. “농업안전국(FSA)의 국장이던 경제학자 렉스퍼드 터그웰은 1935년 그의 오랜 조수인 로이 스트라이커에게 역사 관련 분과를 일임했다.” 중요한 것은 1935년이란 시점. 숨 죽이고 있던 기득권층이 마침내 뉴딜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을 때다.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터그웰의 제자이자 사회학자인 스트라이커가 선택한 것은 사진이었다. 왜? “삶의 현실을 포착하는 사진이야말로 경제학적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라 꼴이 어떤지 두 눈 뜨고 똑똑히 보라는 얘기다. ‘지속의 순간들’(제프 다이어 지음, 한유주 옮김, 사흘 펴냄)은 바로 이 시기를 전후해 확립된 다큐사진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를 다룬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다이앤 아버스, 유진 아제, 리처드 애버던, 워커 에번스, 도로시아 랭, 유진 스미스 등 현대다큐 사진을 말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사진을 두고 ‘지속’과 ‘순간’을 얘기하는 것은 지겨운 감이 있다. 지속되면 순간이 아니요, 순간은 지속되지 않는다. 이 둘의 충돌지점이 사진의 매력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저자는 작가의 의도, 시대 배경 등을 모두 뛰어넘어 개별 작품들을 징검다리 삼아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작가나 시대에 따른 연대기적 ‘순간’을 해체한 뒤 저자의 관점에 따라 재배치해서 이를 ‘지속’으로 재해석한다. “이 책을 써내려 가면서 나는 점차 실제로 사진을 찍은 사진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찍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할 정도다. 연대기가 차이, 구분, 범주화라면 저자는 이를 한데 섞어 콜라주를 만든다. 콜라주를 빛내는 것은 저자의 독창적 글쓰기다. 가령 이런 식이다. 책은 폴 스트랜드의 1916년작 ‘맹인’(Blind woman)에서 시작한다. 뉴욕 시내의 맹인이란, 구걸하는 누추한 이들이다. 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포장하거나 위장할 수 없는,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존재다. 맹인들은 주로 아코디언을 들고 있다. 그래서 루스벨트의 죽음에 흑인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담은 에드 클라크의 1945년작 ‘귀향’(Going home)을 들고 나온다. 얼굴을 위장하거나 꾸미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신적 맹인, 그러니까 정신병자 등 특이한 사람들을 열심히 찍은 다이앤 아버스 얘기를 꺼낸다. 그러고는 1932년 어둠에 잠긴 파리 뒷골목을 렌즈에 담은 사진집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브라사이 얘기로 넘어간다. “밝은 한낮의 빛 아래서 당신이 주목하는 것들-색, 머리카락, 옷-은 모두 손쉽게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밤이 되어 집중해서 보아야만 하는 것들-어깨의 경사각, 옷이 닳은 방식, 걸음걸이-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당신의 손금만큼이나 개인적이고 불변적이다.” 그래서 손, 조지아 오키프의 손을 집중적으로 찍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불러낸다.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의 등, 누추하게 낡아버렸거나 절망적인 손에 쥐어져 구겨진 모자, 복잡하게 구겨진 시트가 씌워진 빈 침대, 텅 비거나 부서진 벤치, 창으로 내다보는 도시 이미지, 길과 이발소의 모습, 땅바닥 속으로 꺼져들어가는 이미지로서의 계단, 불안감에 서성이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권력의 상징으로서 보안관의 흔들의자 등 끊임없이 소재를 이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결론? 막바지에는 9·11테러로 충격에 빠진 뉴욕 사람을 찍어둔 사진을 배치해 뒀다. 도입부 맹인 사진과 절묘하게 겹쳐진다. 전망을 잃어버린, 그래서 민낯을 드러내버린 미국인이다. 별다른 장, 절 구분이나 소제목조차 없이 27쪽 맹인 사진에서 468쪽 뉴요커 사진까지 한번에 통으로 쭉 이어지는 본문은, 어쩌면 이 책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속의 순간들 그 자체임을 드러낸다. 저자는 9·11테러에서 멈췄다지만, 그러고 보니 집권 2기 오바마 정부가 다시 불러낸 인물은 루스벨트다. ‘중산층의 아버지’로서 말이다. 흑백 다큐 사진에나 남아 있는 옛 추억이라 밀쳐 뒀던 과거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온전히 미국적 맥락의 작업들임에도 이 사진들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 역시 70% 중산층 복원을 내세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번역자는 짐작하는 그 소설가가 맞다. 출판사에서 먼저 접촉했는데 저자의 매력에 빠져 다른 책들 번역까지 맡았다. 재즈를 다룬 ‘그러나 아름다운’(But Beautiful: A Book About Jazz)을 오는 4월쯤에, 그 뒤 소설 등도 번역해낼 예정이다. 이 책은 보도사진의 아성으로 꼽히는 뉴욕국제사진센터에서 상을 받은 책이다. 2만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66㎡ 넘는 이·미용실 요금 가게 밖에도 붙여야

    내년부터 이발소나 미용실에서는 커트나 염색 등 요금표를 업소 내부에 반드시 부착해야 한다. 면적 66㎡(20평) 이상이면 업소 밖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의 공중위생관리법 시행규칙을 내년 1월 31일부터 시행한다고 10일 밝혔다. 이·미용실이 업소 안팎에 게시하는 요금표에는 재료비와 봉사료, 부가가치세 등이 합산된 최종 소비자가격을 커트, 퍼머, 염색 등 서비스 종류별로 표기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1차로 개선명령이 내려지고, 그래도 안 지키면 15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미용업소의 최종요금 지불 게시 제도는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과 업소 간 건전한 가격경쟁을 위해 도입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소비자 545명을 대상으 설문조사를 한 결과 50.3%가 이·미용업소에 들어갔다가 가격을 보고 되돌아 나온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속고 속이는 인간관계… 여성 애환 그리다

    속고 속이는 인간관계… 여성 애환 그리다

    인생은 배신의 연속일까. 속고 속이며 살아가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진정 부끄러워할 때는 거짓말이 탄로 나는 바로 그 상황이다. 그러니 상대가 너무 많이 알게 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인지도 모른다. 6년 만에 신작 소설집 ‘너 없는 그 자리’(작은 문학동네 펴냄)로 돌아온 작가 이혜경(52)은 독백 형식을 빌려 여성들의 애환을 풀어놓으며 이같이 진지하게 묻는다. ●남자는 속이고 여자는 속은 것일까 1982년에 등단해 현대문학상과 이효석문학상, 이수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한 소설가답게 단편 9편에는 들끓는 여성만의 속내가 한층 농익게 압축됐다. 대표 단편인 ‘너 없는 그 자리’에서 주인공 ‘경원’은 처음에는 여리고 순정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저 멀리 아프리카 케냐로 직장을 옮겼다는 남자 친구 ‘태호’를 기약 없이 기다리며 매일 주인 없는 편지를 써 보낸다. 남자 친구가 보고 싶을 때면 하릴없이 차를 몰아 해변에 가고 인도양 너머 ‘그’를 머릿속에 그려 보기도 한다. 심지어 ‘그’의 친구인 ‘윤성’이 찾아와 “태호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었을 때 자신을 남몰래 짝사랑한 윤성이 기어이 친구의 여자를 노리고 엉뚱한 작업을 걸었다며 치를 떤다. 그러나 ‘큰 키에 마른 몸집이 잎 떨구는 가을 나무를 생각나게 하는’(20쪽) 남자 친구는 사실 케냐에 가지 않았다. 땡볕에 전혀 그을리지 않은 ‘그’는 서울 강남 뱅뱅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운전 중이던 경원에게 목격된다. “당신, 잘 지내요? 그곳은 덥다니, 가뜩이나 더위 많이 타는 당신, 쉬 지치지나 않을지 늘 걱정이에요.”(9쪽)라던 여자의 순정은 일순 무너지고 눈에선 섬광이 터진다. ●“배신으로부터 자신 지키려 안간힘” 더 놀라운 두 번째 반전은 뒤에 숨어 있다. 과연 남자는 속이고 여자는 속은 것일까. 남자는 애초부터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손가락을 다친 여자가 깁스를 풀 때까지 잠시 관심을 기울였을 따름인데 여자가 착각한 것이다. “뭔가 오해를 한 것 같다.”(27쪽)는 말을 친구를 통해 전하기까지 했지만 여자의 착각은 쉽사리 바로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는 병원에 입원한 남자의 어머니를 매일 찾아가고 남자의 생일날 회사 앞에서 무작정 기다려 남자를 당황하게 했다. 결국 남자는 케냐행이란 ‘선의의’ 거짓말을 택한 것이다. 문학평론가 조연정은 “앎은 비극이요, 삶은 축제”라며 “작가 이혜경이 소설에서 그리고자 한 것은 배신과 복수의 흥미로운 드라마가 아니라 세상의 배신으로부터 가까스로 자신을 지켜내려는 가진 것 없는 자의 안간힘”이라고 해석했다. 여자의 뚱딴지같은 시치미야말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살기 쉬우면 울면서 태어났겠나?” 또 다른 수록작 ‘꿈길밖에 길이 없어’에서는 한 남자의 시치미 떼기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저는 왜 미쳐지지도 않는 걸까요?”(190쪽)라던 평화이발소의 이발사 ‘갑선’은 망나니 같은 두 동생 뒤치다꺼리에 평생을 바치다 어느 날 갑자기 짐을 싸 해외여행을 간다며 동네 노인들에게 호기롭게 값비싼 식사까지 대접한다. 단골손님인 ‘김씨’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갑선을 데려간 곳은 호텔이 아닌 정신병동의 병실이었다. ‘감히 핀 꽃’에선 한 중년 여성이 미혼인 여동생에게 전화로 들려주는 독백을 통해 이른바 ‘시월드’(시집살이)의 무궁무진한 반전을 드러낸다. 바깥 살림을 차린 시아버지와 남편의 새 여자까지 받아들인 통 큰 시어머니의 잔인한 삶이다. 가면놀이에 한껏 취해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작가는 말한다. “사는 게 쉬우면 아기가 웃으면서 태어나지 울면서 태어나겠어요? 힘들지만 이렇게 깨닫는 순간 때문에 살아볼 만한 것 같아요.”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4) 1930년대 모던 보이 vs 마르크스 보이

    [선택! 역사를 갈랐다] (34) 1930년대 모던 보이 vs 마르크스 보이

    조선시대 서울의 공식 이름은 한성부(漢城府)였다. 사람들은 한양이라 불렀다. 한양은 북한산 남녘과 한강 북쪽 사이에 자리 잡은 양지바른 터전이라는 뜻이다.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면서 한성부를 경성부(京城府)로 바꾸고 경기도에 소속시켜 위상을 낮추었다. 서울을 일본의 오사카나 교토와 같은 지방 도시로 만든 것이었다. 1920년부터 1935년까지 경성의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 1935년에는 44만명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25% 남짓이 일본인이었다. 식민지 도시 경성은 청계천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청계천 이남에는 본정통(오늘날 충무로), 명치정(지금의 명동)에서 일본인 상가를 중심으로 남촌이 생겼다. 진고개 중심의 남촌 상가는 근대의 상품과 화려한 건물, ‘현대인의 신경’인 네온사인으로 덮였다. 카페, 우동집, 빙수집, 찻집이 즐비했다. 남촌은 ‘경성 속의 일본’이었다. 오늘날 명동 부근인 진고개는 본디 변두리 마을이었다.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작은 도쿄’를 세우고 주인으로 들어앉았다. 백화점과 카페, 당구장, 극장 같은 근대 유흥시설이 남촌에 몰려 있었다. 청계천 이북에는 조선인 상가가 많았던 종로통을 중심으로 북촌이 되었다. 북촌 지역은 전통 한옥과 나지막한 상점들이 있었으며 밤거리는 어두컴컴했다. 식민 도시의 ‘원주민 상가’였던 종로는 중심에서 밀려났다. 종로의 밤거리에는 온갖 ‘싸구려’ 물건을 파는 야시가 열렸다. “극도의 생활난에 빠진 빈궁한 사람들이 혹시나 입에 풀칠이나 할까 하는 눈물겨운 생각”으로 야시에서 물건을 팔았다. 경성은 식민지 지배층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하이칼라 경성’과 식민지 빈곤층과 실업자가 넘쳐나는 ‘실업 경성’의 두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쾌락 추구 ‘모던 보이’ 1920년대가 되면서 양복 입은 남자와 양장한 여성이 늘어갔다. 옷과 장신구 등은 유행 바람을 탔다. 헤어스타일도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면도를 하는 것을 ‘신식’으로 가는 길처럼 여겼다. 그럼에도 여자 단발은 아직 문제가 되었다. 단발한 여인들은 ‘단발미인’이라 하여 뭇사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몇몇 여인이 단발했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단발이 크게 번졌다. 일부 여성은 단발에 ‘물결을 일으키는’ 파마도 했다. 겉모습만이 아니다. 생각과 취향이 남다른 사람이 생겨났다. 1920년대 중반부터 그들을 일컬어 모던 보이, 모던 걸이라고 불렀다. 모던 세대들은 사랑법도 새로웠다. 그들은 자유연애를 바랐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누구인지를 딱 부러지게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 모던 세대란 도시와 서구 또는 일본문화를 즐기며 근대를 적극 받아들인 신세대로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대개 이들은 식민지 현실이나 사회모순에 관심을 두지 않고 ‘모던’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모던 보이, 모던 걸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화가 문화 영역에서 터를 잡았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배우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축음기가 보급되면서 대중음악 시장이 커졌다. 1930년대 초반 ‘레코드의 홍수, 유성기의 천하’라는 말이 떠돌았다. 모던 보이는 근대적 유흥공간을 찾아 여가와 유흥도 즐겼다. ‘거리의 오아시스’ 다방에서 근대의 상징처럼 커피를 마시며 서양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 무렵 다방은 하나의 문화공간이기도 하고 ‘도시인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그러나 카페는 문제가 있었다. 도시의 분위기를 좇던 모던 보이를 ‘에로’의 길로 안내한 것이 바로 카페였기 때문이다. 카페란 여급이 술시중을 드는 곳에서 비싸게 술을 먹는 곳이었다. 여급에게 팁도 주어야 했다. 카페는 ‘퇴폐적 취미’를 발산하는 곳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카페를 ‘에로의 신전’ 또는 ‘향락 제작소’라고 불렀다. 모던 보이들은 백화점 가기를 좋아했다. 1930년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이 문을 연 뒤 잇달아 히라다·조지야·미나카이·화신백화점 등이 문을 열었다. 백화점의 화려한 쇼윈도는 ‘시각의 쾌락’을 맛보게 한다. 최첨단 기기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으리으리한 백화점에 들어선다. 갖가지 물건을 쓰임새에 따라 가지런하게 분류해 놓은 백화점은 ‘과학적’이다. 매장 앞에는 ‘어여쁜 숍걸’이 매우 상냥하다. 어디 그뿐인가. 백화점은 호화로운 식당과 전람회를 열 수 있는 전시공간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모던 보이들은 ‘도시의 심장’인 백화점에서 도시의 감각과 유행의 물결을 느꼈다. 모던 보이는 갑자기 닥쳐온 근대 도시의 습속을 하루라도 먼저 몸에 익혀야 했다. 그러한 모던 보이에게 경성은 근대의 훈련장이자 여가와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유흥의 도시였다. 그들은 자기가 경험하는 근대가 ‘혼종의 근대’ 또는 ‘식민지 근대’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식민 도시를 거닐고 근대를 소비했다. ●이재유의 경성 1936년 12월 25일이었다. 농사꾼, 장돌뱅이, 노동자, 학생 등으로 변장한 32명의 경찰이 ‘검거 중대’를 만들어 창동 남쪽에서 시골 농민 차림인 30대 초반의 한 남자를 체포했다. 일제에 맞서 비합법 혁명운동에 몸을 던졌던 이재유였다. 이재유는 식민지 조선에서 보통 사람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불온’했다. 이재유는 일제 식민지 체제에서 해방되고 노동자와 농민이 새 나라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 했다. 이재유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굳게 믿었다. 이재유의 정세 판단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혁명적 낙관주의 없이 어떻게 온몸을 던질 수 있겠는가. 1930년대는 대공황이 닥쳐와 자본주의가 큰 위기에 빠졌다. 숨통을 연장하려는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농민을 더욱 수탈했다. 이에 맞서 곳곳에서 노동자 투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은 아직 공장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농민투쟁도 기껏해야 군단위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툭툭 불거지는 여러 투쟁을 한데 묶어 한꺼번에 타오르는 들불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재유는 1920년대 노동조합·농민조합과는 다른 혁명적 노동조합·혁명적 농민조합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 조직은 선진 활동가들의 비합법 모임이다. 그러나 혁명적 노동조합과 혁명적 농민조합만으로 혁명운동을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재유가 보기에 혁명운동을 앞장서 이끌 혁명가들의 조직인 ‘조선공산당’이 없으면, 혁명이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공황을 벗어나려고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에 뛰어드는 형국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조직하려 해도 당은 꼭 있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재유는 1920년대처럼 전국적인 당 조직을 먼저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역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확장하는 당 조직을 만들려 했다. 그는 운동의 근거지를 경성으로 삼았다. 이관술, 김삼룡, 이현상, 이순금, 정태식 등 수많은 동지가 그와 함께했다. 이재유 수사기록에는 “요즈음 경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거의 모든 공산주의운동의 흑막으로 이재유가 활동함으로써 수많은 청년 남녀가 해를 입었다.”고 적었다. 이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재유 조직에는 학생과 노동자, 농민도 많았다. 이재유는 피검과 고문, 옥살이, 탈옥, 재검거를 되풀이했다. 일제 탄압으로 조직이 무너지면 다시 세우면서 굽힘 없이 혁명운동을 했다. 이재유는 1932년에서 1936년 말까지 ‘경성 트로이카’, ‘경성재건그룹’, ‘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을 만들었다. 이재유에게 경성은 혁명운동의 근거지이자 그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발판이었다. ●모던 보이의 ‘핑크’ vs 이재유의 ‘적색’ 1930년대 일본에서 ‘에로’가 유행했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왜 그랬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1930년대 ‘공황과 전쟁의 시대’를 맞이하여 일본 청년들은 일본의 긴자거리를 배회하며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핑크’가 되거나 진지하게 사회주의 혁명을 실천하는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이 되어 ‘아카(red)’가 되는 것, 둘 가운데 하나였다.” 식민지 조선도 이와 비슷했다. 식민지 조선의 모던 보이는 경성의 혼마치(지금의 충무로)부근을 서성였다. 이 ‘핑크’들은 카페와 기생집을 드나들며 향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와 상반되는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도 조선에 있었다. 1920년대 근대 교육을 받은 젊은이 사이에서 사회주의가 크게 유행하여, “입으로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졌다.”고 했다. 이 새 세대를 일컬어 조선에서도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이라고 불렀다. 1920년대 신문과 잡지에는 거의 빠짐없이 사회주의 관련 글이 실렸고,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비롯해 주요 사회주의 글도 번역됐다. “사회주의를 믿고 안 믿는 것은 다른 문제요, 사회주의가 실현되고 안 되는 것도 다른 문제다. 다만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는 알아야만 행세를 하게 된 것이 오늘의 형편이다.”는 책 광고까지 있었다. 일제 기록에 따르면, “예전의 독립운동이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초조해진 민중에게 사회주의운동은 일종의 자극과 광명을 주었다.” 1905년에 태어난 이재유도 ‘마르크스 보이’였다. 개성 송도고보에 다닐 때부터 ‘마르크스 보이’가 된 이재유는 동맹휴학으로 퇴학당했다. 그 뒤 그는 여러 단체에서 실천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나온 이재유는 1932년 ‘경성트로이카’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적색’ 혁명가가 되었다. ‘트로이카’란 “몇몇 지도부가 먼저 당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세 마리 말이 자유롭게 마차를 끄는 것과 같이 회원 모두가 저마다 자유롭게 선전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이재유는 “일생을 혁명가로서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로 결심했다.” 그는 감옥에서도 조선어 사용금지 반대, ‘수감자 대우 개선’ 등의 투쟁을 했다. 이재유는 형이 다 끝나고도 전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주보호교도소에 갇혔다. ‘핑크’의 모던 보이가 ‘메이크업’한 경성을 누빌 때 지하에서 혁명운동을 했던 이재유, 그는 1944년 10월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비합법 혁명운동사에서 최고의 기록을 남긴 사람”으로 기억했다. 최규진(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 오리고 붙이고… 풍경을 만들다

    오리고 붙이고… 풍경을 만들다

    주변에 그럴듯한 건물 하나 안 보이는 곳에 웬 빈 폐가가 있다. 비라도 조금 쏟아지면 금방 허물어질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사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진이 아니다. 몇 장을 교묘하게 잇대어 만들어 뒀다. 이런 풍경이 있을까 없을까 생각해볼 무렵, 제목에 눈길이 가 닿으면 피식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린벨트 - 세한도’라고 해놔서다. 추사 김정희의 그 세한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묘하게 닮아 있기도 하다. 내년 2월 3일까지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는 기획전 ‘(불)가능한 풍경’은 이런 작품들을 모아 뒀다. 강홍구 외에도 이불·이세현·공성훈·문범 등 중견작가에서 젊은 작가들까지 14명의 작가가 30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사진, 회화, 설치, 영상 등 작품도 다양하다. 전시를 기획한 안소연 부관장은 “현대 작가들에게 풍경은 진부한 이발소 그림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지만, 거꾸로 사실적인 재현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선별되고 편집된 거짓이기도 하다는 역설에 도달하기도 한다.”면서 “이 역설을 다루는 것이 이번 작업들”이라고 설명했다. 일반 3000원, 초·중·고생 2000원. 수능 수험생은 11월 한달 무료. 1577-7595.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후] ‘깡통 대책’만 내놓는 충남도

    충남도가 ‘황량한 내포신도시’와 관련해 여러 대책을 내놓았으나 여전히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권희태 도 정무부지사는 24일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신도시 주민들이 도 신청사 내 금융기관, 체력단련실, 이발소 등 18종의 편익시설을 직원과 공동 이용하도록 해 입주 초기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道 “입주 초기 불편 최소화” 165㎡ 규모의 신청사 지하 농협하나로마트 농수축산물판매장을 도청 이전과 동시에 입주민에게 개방하고, 올해 말 신도시 첫 롯데아파트의 입주시기에 맞춰 아파트단지에 세탁소, 편의점, 피자 및 제과점 등이 문을 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주거공간이 절대 부족한 점을 고려해 신도시 주변 도시형 생활주택 현황을 도 행정포털에 올려 직원들에게 소개하고, 신도시 내 이주자택지 소유자들에게 주택의 조기 착공을 요청하는 안내문을 발송했다. 극동 등 민간아파트 건설업체에도 착공을 앞당겨 달라고 호소했다. 또 내년 3월 문을 여는 내포초·중학교에 우수 교사를 배치하고 방과후 학습을 지원해 도 직원들의 이주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은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노조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해야” 송지영 충남도 노조위원장은 “민간투자가 부족하다는 점을 예상했다면 집행부가 2~3년 전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한다. 최소한의 거주 여건이라도 갖추려면 용도변경을 통해 도시형 생활주택이 들어설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며 “도청 이전을 연기하자는 직원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명품도시’ 청사진만 내걸었지 하나도 된 게 없다. 문화 혜택은 고사하고 우선은 당장 급한 주택 공급을 위해 이제라도 집행부에서 도시형 생활주택 허용 등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충남도는 내포신도시 이전 기간을 오는 12월 18~28일, 신청사 공식 업무 시작 시기를 내년 1월 2일로 확정했다. 이삿짐은 문서, 도면, 컴퓨터, 집기 등 100여종 5만 5354점으로 5t 트럭 279대 분량이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인도-마지막 샹그릴라 라다크(Ladakh)

    인도-마지막 샹그릴라 라다크(Ladakh)

    마지막 샹그릴라 라다크 Ladakh 신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절경을 한곳에 모두 모아놓고 자신의 정원으로 삼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추위와 폭설, 분쟁 등의 이유로 긴 세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고 지금도 일 년에 고작 3개월 정도만 여행자들의 자유로운 방황이 허락되는 곳.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샹그릴라’라는 수식어를 겸허히 인정하게 되는 그곳,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김수진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인도정부관광청 www.incredibleindia.co.kr 1 카르길-스리나가르 이동 구간에는 유목민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드넓은 자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그들은 소박하지만 실로 위대하다 2 레-카르길 이동 구간에는 웅장한 사막, 협곡, 바위산의 절경이 이어진다 3 꼬마아이부터 10대, 80대까지, 라다크 여행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승려들을 만나게 된다 4 바람에 휘날리는 ‘타르촉’이 무미건조한 라다크 지역에 화려한 색감을 더해 준다 5 라마유르 곰파 축제를 찾은 라다키 할머니들. 잠시 졸기도 하지만 정성을 다해 불교 의식을 참관하고 있다 인도지만 인도가 아닌, 라다크 뉴델리공항에 도착해 새벽녘 몇 시간을 뜬 눈으로 보낸 후, 인도 국내선을 타고 라다크로 향하는 길. 비행기 안에서 눈을 붙이고 피곤함을 달랠 계획이었다. 하지만 라다크의 레Leh 공항까지 창밖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풍경에 잠 따위는 잊어버린 지 오래. 만년설로 뒤덮인 황홀한 산맥들이 손에 닿을 듯 발바닥을 간질이는가 하면, 벌거벗은 모래산, 바위산이 자신만만하게 요염한 자태를 드러낸다. 게다가 도무지 생명체라고는 존재할 수 없을 듯한 메마른 땅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미지의 초록세상. 이제껏 그 어느 비행기 안에서 봤던 영화보다 한층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장면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거짓말 같은 풍광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즈음, 산 위를 배회하던 비행기는 3,500m 높이의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진부하지만 가장 적합한 표현인 듯하다)과 코를 감치고 드는 알싸한 바람이 반갑게 맞이한다. 인도어를 모르는 가이드 라다크가 속해 있는 잠무카슈미르 주는 중국, 티베트,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전략적인 요충지라는 이유로 오랜 세월 여행자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1974년경에야 외부에 개방됐다. 그나마도 1년 중 라다크 여행이 가능한 시기는 6월부터 9월까지 정도. 혹독한 추위와 폭설로 인한 도로 통제 때문에 일반인들이 라다크를 여행할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길어야 고작 3~4달 정도가 전부다. 라다크는 인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잠무카슈미르 주에 속하나, 단지 행정구역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라다크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인도와는 내적, 외적으로 참 다른 모습을 품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라다크는 아주 오래 전에는 티베트의 일부였으며 10세기경에는 9백년 정도 독립된 왕국을 유지했다. 그러다 19세기 무렵 힌두 도그라스의 침입을 받으면서 인도에 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라다크는 인도 라다크라기보다 그냥 라다크다. 역사적이니 행정적이니 하는 복잡한 내용보다는 직접적으로 라다크의 상황을 깨닫게 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게 낫겠다. 우리 팀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라다키(라다크 사람)였다.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신나는 인도 노래가 나온다. 노래가 하도 흥겨워서 “이거 무슨 내용이에요” 하고 물으니 “인도 가수가 인도어로 노래하는 거라 저도 모르겠어요” 한다. 공식적으로 인도에는 14개의 공용어가 있고 영어가 상용어이며 수백 개에 달하는 지역 언어가 있다. 인도어는 그렇다 하더라도 같은 주에 속해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 갔을 때도 라다크 사람인 가이드가 그들과 언어가 전혀 달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가이드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 오히려 이방인인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인도 사람들끼리 언어가 통하지 않아 한국인이 그들의 소통을 도와주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언어뿐이 아니다. 종교적으로 보더라도 인도는 힌두교도가 80%가 넘고 이슬람교도가 13% 정도에 달하며 불교도는 1% 정도다. 최근에는 불교도가 기독교도보다도 숫자가 적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라다크에서는 다르다. 카르길Kargil을 제외한 거의 전 지역의 라다키들이 티베트 불교도이며, 곳곳에 ‘곰파’라고 불리는 불교사원이 가득하다. 1 연륜이 느껴지는 노승의 손.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이어가는 라다키들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2 고지대에 위치한 곰파들은 하늘과 맞닿아 더욱 신성하게 느껴진다 3 곰파를 방문하면 마니차(겉에는 만트라가, 안에는 경문이 들어 있는 통으로,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를 돌리는 경험은 필수. 꼭 곰파만이 아니라 라다크 곳곳에서 마니차를 만나게 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라다크의 ‘조용한 곳’ 곰파에 가다 라다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곰파를 둘러보는 것. 해발 약 3,500m 높이에 위치한 레는 라다크의 수도로 예전에는 히말라야 설산을 지나는 대상들이 머물렀던 실크로드 요충지이자 인도에서 불교가 전파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한 신라시대 혜초 스님과 <대당서역기>를 남긴 중국 당나라 현장 스님 역시 인도로 가던 길에 이 지역에 들렀다고 한다. 그런 역사를 반증하듯 라다크에는 오래되고 유명한 곰파가 많다. 그래서 라다크에서 곰파 탐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여행 코스.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이 지역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스폿들이기 때문이다. 곰파는 티베트어로 ‘조용한 곳’을 뜻하는데, 그에 걸맞게 다소 외떨어진 산 위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다. 라다크에서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헤미스 곰파Hemis Gompa에 이르는 길 역시 만만치 않다. 헤미스 곰파는 큰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멀리서는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거의 입구까지 가야지만 건물이 보이는데, 이는 사원으로의 접근이 어려울수록 참된 경지에 이른다는 종교적인 믿음 때문이다. 헤미스 곰파는 1630년 남걀 왕조 때 건립됐으며 매년 6월 열리는 ‘헤미스 축제’가 유명하다. 특히 12년에 한 번씩 원숭이 해마다 특별한 ‘탕카(티베트 탱화)’가 공개되는데, 이때는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레에서 남쪽으로 17km 떨어진 틱세 곰파Tiksey Gompa는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엽서 같은 풍경이 멀리서 봐도 눈에 띈다. 라다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곰파로 손꼽히는데, 느낌은 사뭇 다르지만 그리스 산토리니 같은 분위기도 얼핏 풍긴다. 언덕에 펼쳐진 곰파 자체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이곳에서 내다보는 전망 또한 기가 막히다. 잠시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히말라야 산맥의 운치를 즐겨 봐도 좋다. 라다크에서 가장 큰 20m 높이의 미륵불이 모셔진 전각도 놓치지 말고 살펴보자. 곰파 중에 드물게 평지에 위치한 알치 곰파Alchi Gompa도 인상적이다. 라다크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곰파 중 하나로 카슈미르 양식이 티베트 양식과 결합된 유일한 사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독특한 건축 양식은 물론, 내부의 프레스코화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각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좁고 내부는 어둡지만 그 속에서 빛을 발하는 벽화와 불상들은 입장객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든다. 특히 독특한 3층 건물로 이뤄진 숨첵Sumtsek 전은 꼭 들러 보자. 관세음보살상과 1,000여 개에 달하는 소형 좌불상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레-스리나가르 고속도로 인근에 위치한 라마유루 곰파Lamayuru Gompa를 찾았을 때는 운이 좋게도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라마유루 승려들이 모두 모여 가면춤을 추는 축제로 어떻게 알고들 모였는지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부터, 동네 꼬맹이들과 할머니들까지, 나이와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경건하고도 흥겨운 축제 한판이 벌어진다. 승무복의 화려한 빛깔은 색이 바랬어도 공들인 손짓 몸짓 하나하나는 눈부시기 그지없다. 하늘과 가까워 더욱 따갑게 느껴지는 태양 아래서, 그들의 정성 어린 춤사위를 바라보면서 라다키들에게 종교와 곰파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금씩 이해할 것 같았다. 카르길에서 스리나가르로 가는 길에 만나는 그림은 또 다르다. 이제껏 라다크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푸르른 초원이 등장하며 곳곳에는 꽃까지 피어 있고 멀리로는 만년설의 모자를 쓴 산들이 덤덤하게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라다크로 가는 3개의 관문 곰파 여행과 함께 라다크 여행의 핵심은 레-스리나가르Srinagar 이동 구간이다. 라다크 여행은 주로 스리나가르나 레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육로가 아닌 항공으로 라다크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스리나가르 공항이나 레 공항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스리나가르는 라다크가 속해 있는 잠무카슈미르 주의 주도이며, 레는 라다크의 수도이다. 잠무카슈미르 주는 라다크 지역, 잠무 지역, 카슈미르 지역으로 이뤄지는데, 3개 지역 모두 문화와 언어, 생활방식이 다르다. 레와 스리나가르만 방문하더라도 그 차이는 확연하다. 고산지대에 형성된 레는 라다크 여행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돌로 지어진 9층짜리 레 왕궁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박한 시내에는 작은 상점들과 시장이 들어서 있다. 시장에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잊게 해주는 싱싱한 채소와 과일들이 가득하고 불교 관련 용품과 히말라야 지역의 특산품들이 많이 보인다. 또한 티베트 망명자 시장과 네팔 시장 등 소규모 특색 있는 시장들은 라다크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황량하고 험준한 땅에 삶의 터전을 꾸려낸 이들이라 그런지 레에서 만나는 라다키들은 당차고도 위대해 보인다. 레와 스리나가르를 잇는 도로는 총 434km 정도로 오가는 데 이틀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레에서 출발하든 스리나가르에서 출발하든 보통 하룻밤은 카르길Kargil 마을에서 묵게 된다. 카르길은 대단한 볼거리는 없지만 라다크에서 유일하게 이슬람 구역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시간이 된다면 카르길 시장에 가보길 권한다. 레의 시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승복을 입은 라마승이나 라다크 전통 복장을 한 여성들 대신 히잡을 쓴 여성들과 마주하게 된다. 곰파와 타르촉(불교 경전 등을 적어 놓은 갖가지 색의 깃발), 라마승들이 가득하던 라다크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한편, 카슈미르 지역 해발고도 1,585m에 위치한 스리나가르는 풍경, 언어, 풍습, 종교,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라다크와 완전히 다르다. 고도가 레와는 약 2,000m 정도 차이가 나니 풍경이 다른 것도 당연하다. 또한 인구의 97%가 이슬람교도로 티베트 불교문화가 전반에 깔려 있는 레와는 생활 문화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라다크가 회색빛 천지라면 스리나가르는 초록이 반기는 곳이다. 어둠이 깔릴 무렵 스리나가르에 도착했을 때, 달 호수Dal Lake는 풍선을 든 아이들, 노천카페, 야시장 등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막 라다크를 떠나온 사람이라면 물이 풍성한 호수의 풍경도, 여름밤 호수 주변으로 펼쳐지는 유원지 같은 풍경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고산병 방지를 위한 고도 적응 측면으로 본다면 스리나가르로 들어가 레로 이동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으나 기후, 문화 적응 측면에서 본다면 레로 들어가 스리나가르를 거쳐 델리로 가는 게 나을 듯하다. 레에서 바로 델리나 서울로 간다면 찌는 듯한 무더위에 몸은 힘들고, 번잡한 도시 풍경에 마음은 답답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리나가르는 레보다는 덥고 델리나 서울보다 시원한 기후에, 레보다는 번잡하지만 델리나 서울보다는 한가로와 어찌 보면 도시인의 라다크 여행에 완충지 같은 역할을 해준다. 1 스리나가르는 라다크와 인접해 있지만 종교도 사는 모습도 아주 다르다. 라다크에서는 볼 수 없는 커다란 호수가 있어 인상적이다. 이른 아침, 노를 저어 어디론가 향하는 여자들의 자태가 한 폭의 그림 같다 2 달 호수에서 노를 저어 가는 노인의 모습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3 카르길 시장의 이발소 풍경 4 시장의 과일 가게. 푸근한 주인아저씨의 미소가 넉넉하다 ▶travie info 스리나가르 여행의 백미, 하우스보트와 시카라 스리나가르에는 달 호수 등 3개의 유명한 호수가 있어, 물 위에서 즐길거리 또한 다양하다. 그중 하우스보트 체험은 꼭 한번 해봐야 한다. 하우스보트는 이름처럼 배를 집으로 사용하는 공간. 과거 식민지 시대에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물 위에서 배를 집 삼아 살았던 것인데, 지금은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이용되는 곳이 많다. 일반 호텔처럼 모던하고 깔끔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고택에 머무는 기분을 낼 수 있다. 물 위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갖가지 보트 상점들을 만나게 된다. 음료수와 과자 등을 실은 매점 같은 작은 배부터, 기념품, 꽃 등을 파는 배들이 오가는 풍경이 정겹기 그지없다. 또, ‘시카라’라고 불리는 작지만 화려한 배를 타고 달 호수를 떠다니는 경험도 멋지다. 1 높은 낭떠러지 길을 지나는 양떼들. 보는 사람은 조마조마한데 양들은 의외로 여유로워 보인다. 양치기 아저씨에 업혀 가는 녀석은 말썽을 핀 걸까, 아픈 걸까? 2 카르길-스리나가르 구간에서는 양떼, 산양떼, 말떼 등 다양한 가축들의 이동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3 도로 양 옆으로 높이 쌓여 있는 만년설이 위용을 뽐낸다 길에서 만나는 최고의 여행 Every Moment, Best Memory 세계적인 명산인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을 끼고 위치한 라다크는 어찌 보면 여행 목적지라는 개념이 따로 없다. 고로 목적지를 향한 이동이라는 개념도 무의미하다. 어디를 향해 가든 여정의 모든 순간이 최고의 여행이 된다. 장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지치거나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나도 다이내믹하기 때문이다. 스리나가르에서 레로 여행하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는 레에서 스리나가르로 이동했다. 하루는 레에서 카르길까지 234km를, 또 하루는 카르길에서 스리나가르까지 204km를 이동했다. 이따금씩 쭉 뻗은 도로를 달리기도 했으나 주로 좁고 험한 길을 내처 달렸다. 울퉁불퉁, 덜컹덜컹, 꼬불꼬불, 아슬아슬 달리는 길, 어질어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은 고지대에서 일어나는 고산병이나 아찔한 질주로 인한 불안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지칠 줄 모르고 순간순간 모습을 바꾸는 절경이 어지럼증을 배가시킨다. 레에서 카르길로 향하는 첫째 날, 고산지대 사막과 오아시스, 바위산, 협곡 등 거칠고도 웅장한 풍경이 이어졌다. 어느 하나 놓치기 아쉽지만, 특히 포투 라Fotu La(스리나가르-레 고속도로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산길로 해발 4,108m)와 나미카 라Namika La(해발 3,700m 높이의 산길)에서는 반드시 차를 세우고 대자연과 교감해야 한다. 그곳에 서면 누구나 마음 속 잡념을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내 눈 앞에 존재하는 자연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튿날, 가르길에서 스리나가르로 향했다. 초원을 지나 얼마를 달리다 보면 거짓말처럼 빙하가 코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추운 지역, 드라스Drass’라는 표지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길의 클라이맥스는 조지 라Zoji La. 산을 따라 꼬불꼬불 나 있는 이 도로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산길이 해발 약 3,528m까지 이어진다. 차창으로 아래를 쳐다보면 끝없는 낭떠러지다. 물론, 안전 펜스 같은 것도 없다. 육로로 스리나가르와 레를 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다. 하지만 설사 다른 길이 있다 하더라도 많은 여행자들이 이 길을 택할 만큼 이 길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길 위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 산악지대의 웅장한 자태와 멀리서 바라보는 조지 라 패스, 그 길의 신비로운 그림은 일생에 한번 마주할까말까 한 위대한 순간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레에서 스리나가르로 가는 길, 마음은 수백 번 요동쳤다. ‘바그다드 카페’가 홀홀히 나타날 듯한 풍요롭고(사막은 보통 황량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라다크의 사막은 한없이 풍요로웠다) 단단한 사막을 만나는 순간, 철퍼덕 주저앉아 <바그다드 카페>의 주제곡인 제베타 스틸Jevetta Steele의 ‘콜링 유Calling You’를 미치도록 듣고 싶었다. 그랜드캐니언에서 봤음 직한 층층이 쌓인 단층과 위용 있는 바위산과 절벽을 불쑥 마주했을 때는 그대로 그 자리에 몇 시간이고 서서 마냥 바라보고 싶었으며, 설산을 배경으로 꽃향기 가득한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 순간에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마구 들판을 뛰어다니고 싶었다. 어디 그뿐이랴. 산악빙하를 만지는 순간에는 그만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릴 정도로 감동에 벅찼다. 사막, 바위산, 협곡, 초원, 빙하를 하루 이틀 사이에 모두 접하면서, 눈에 와 닿는 시각적인 풍경에 더해,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 경이로운 질감 때문에 더욱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1 카르길 마을에서 만난 행복한 여인들. 한 손에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는 머리에 인 짐을 붙잡고 어디론가 향한다. 맨발의 발걸음이 사뿐사뿐하다 2 카르길 시장 치킨집 앞에서 만난 그녀는 델리대학교에 재학 중이란다. ‘이 집 닭이 정말 맛있다’며 꼭 먹어 보라고 추천한다 3 라다크에서 차들은 모두 과격하게 달린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하나같이 해맑은 표정의 순수한 사람들 4 라다크로 가족여행 온 시크교 아이들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으리 아찔할 정도로 찬란한 풍광만으로도 감흥은 충분했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순수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여행의 순간을 감동으로 만들었다.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슴에 계속 새겼던 말은 ‘동정금물’. 현대문명사회의 기준으로 그들의 삶을, 행복을 감히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질 중심적인 사회에 길들여진 나 자신이 물질이라는 잣대로 그들의 행복도를 가늠하는 실수를 범할까 두려웠다. 그들이 물질적으로 덜 가졌다고 해서, 덜 행복하다 그 누가 얘기할 수 있겠는가. 사람 사는 곳 중에 세계에서 시베리아 툰드라 다음으로 춥다는 라다크 지역에서 유목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만났을 때, 가슴이 울컥했다. 그들은 안락한 보호막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보다 강인하고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초원을 배경으로 한 유목민들의 삶의 모습은 이방인의 ‘철없는’ 시각으로는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물론 초원을 벗어나자마자 찾아오는 빙하 지역의 풍경은 그들의 혹독한 겨울을 상기시켜 주었으나 적어도 그 순간만은 참 평화로워 보였다. 혹독한 겨울을 반증하듯 볼이 발그스레하게 튼 꼬맹이 승려부터 연륜이 느껴지는 노승까지…. 자줏빛의 승복 하나로 고귀해 보이던 라마승들. 낯선 이방인들을 바라보던 라다키들의 순순한 눈망울. 라다키 전통 복장을 입고 총총히 걸어가던 할머니들. 카르길에서 아기를 업고 머리에 짐을 이고 맨발로 지나던 한 무리의 여성들. 그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참 이상했다. 우리가 보기엔 물질적으로 가진 것도 없고 척박하고 혹독한 터전에서 살아가는 그들이건만, 모두들 웃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라다크에서 서울로 돌아온 날, 서울 거리의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하고 지친 얼굴들. 그 순간, 라다크를 세계에 남은 ‘마지막 샹그릴라’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travie info 라다크 스타일 운전에 익숙해지기 경적을 울려주세요! 처음 라다크에서 차를 타면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다. 트럭이나 버스의 후면에는 ‘Horn Please’, ‘Horn OK Please’, ‘Blow Horn’ 등의 글자가 붙어 있다. ‘please’라는 단어까지 붙여 가며 경적을 울려 달라고 하는 이유는 좁은 길 때문에 아예 왼쪽 사이드미러를 닫고 다니는 차들을 많기 때문이다. 연신 이어지는 경적소리와 추월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다니면서 사고가 발생하거나 시비가 붙는 경우는 거의 없다. Speed thrills but kills 라다크 산길을 달리다 보면 기발한 교통 표지판이 눈에 띈다. ‘스피드는 짜릿하지만, 목숨을 앗아갑니다Speed thrills but kills.’, ‘인생은 짧습니다. 워낙에도 짧은 인생을 더 짧게 만들지 마세요Life is short. Don’t make it shorter.’,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개라고 하지만 당신의 목숨은 단 하나A cat has nine lives. But you have one only.’, ‘서두르지 않으면 걱정도 없습니다.No hurry, no worry.’ 등 재치 넘치는 문구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라다크 가는 길에 델리 서울에서 라다크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델리Delhi에 내려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인도를 바라보다 인디아 게이트 뉴델리의 중심도로인 라즈파트Raj Path를 따라 한쪽으로는 대통령관저가 자리하고 있고 다른 한쪽으로 전쟁기념물인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가 자리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인도 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물로, 벽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9만명에 달하는 인도 병사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아픔과 환희를 품고 있는 곳 붉은성 붉은 사암으로 지은 높은 벽 때문에 ‘붉은 성Red Fort’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무굴 제국의 샤 자한 황제가 아그라 성에서의 천도를 목적으로 공들여 지었던 건축물이다. 화려하고 정교한 치장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세포이 항쟁 당시 영국군에 의해 크게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초대 총리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던 곳도 여기다. 시장과 어우러지는 모스크 자마 마스지드 델리 최대의 이슬람 사원. 사원 주변으로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라는 대규모 시장이 형성돼 있는데, 번잡한 시장과 성스러운 모스크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붉은 사암으로 지은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는 웅장하고 화려하다. 인도와 이슬람 양식이 융합된 건축 형태로, 무굴 제국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뜨거운 태양 아래 화려한 역사 꾸뜹 미나르 델리를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로, 높이 5층 규모(72.5m)의 웅장한 탑이다. 인도 최초 이슬람 왕조의 술탄이었던 꾸뜹우드딘 에이백이 세운 승전탑이라 꾸뜹 미나르Qutb Minar(탑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의미 있는 유적지. 승전탑 외에도 모스크 등 여러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흔적만 남았다. 흔적만 남은 유적군을 돌아보더라도 이슬람 왕조의 번성기를 상상할 수 있다. 원래는 탑 꼭대기 전망대까지 입장이 가능했으나 1970년대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내부 관람은 금지된 상태다. 델리에서 만나는 타지마할 후마윤 무덤 후마윤 무덤을 보면 누구나 타지마할을 떠올린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실제로 타지마할은 후마윤 무덤Humayun’s Tomb을 모델로 지은 건축물이다. 무굴 제국 왕비 하지 베굼이 남편이자 2대 황제였던 후마윤을 기리기 위해 건설한 묘 건축물로, 페르시아 양식이 곁들여진 무굴 제국 건축물의 초기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 사암으로 된 건물에 흰색 대리석 돔이 어우러진 풍경이 세련미가 넘친다. 건물 안에는 후마윤 무덤 외 150여 명의 무덤이 함께 안치돼 있다. 델리 시민들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정원의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건물 안은 대리석으로 된 묘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경건하면서도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돈다. 인도 라다크 여행자를 위한 ★★★★★ Travie writer 김수진의 ‘주관적인’ 여행 정보 Ladakh 1 레의 따뜻한 인심이 느껴지는 휴식처 라피카 호텔Hotel Rafica ★★★☆ 단아하고 정겨운 표정이 레와 잘 어울린다. 작은 정원까지 있어 마치 집 같은 느낌이다. 사장을 비롯해 직원들도 친절하고 정감 있다. 여행 중 궁금하거나 필요한 사항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면 정성껏 응대해 준다. 틀에 박힌 도시 호텔의 서비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이 넘쳐난다. 레의 주요 시장 거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여서, 걸어서 시내를 둘러보기도 좋다. 주소 Fort Road Leh-Ladakh 문의 +91 1982 252258 www.hotelraficaluh.com Ladakh 2 소박한 식당, 화려한 전망 니란자나 호텔 레스토랑Hotel Niranjana Restaurant ★★★ 라마유르 곰파 바로 옆에 위치한 호텔. 이름은 호텔이지만 게스트하우스 같은 느낌이다. 간소한 스타일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라마유르 곰파를 방문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인도 음식과 티베트 음식 등을 판매하며, 점심은 뷔페식으로 제공되기도 한다. 소박한 가게지만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예술이다. 위치 라마유르 곰파 바로 옆 문의 +91 1982 224555 가격대 1인 기준, Rs.70 정도 Delhi 럭셔리한 궁전에서의 하룻밤 릴라 호텔The Leela Palace New Delhi ★★★★ 40도를 넘는 델리의 한여름 폭염을 피해 릴라 팰리스 호텔에 들어서자 딴 세상이 펼쳐진다. 폭염을 잊게 해주는 시원한 환경과 델리 도심의 소음을 잊게 해주는 고즈넉한 분위기. 인테리어에서 인도 정통 양식을 살린 품격 있는 모던함이 묻어난다. 고급스럽고도 시크한 레스토랑과 바도 유명하다. 인도풍 정원과 전망 좋은 야외 인피니티 풀은 보너스. 주소 Chanakyapuri, Diplomatic Enclave New Delhi 문의 +91 (11) 3933 1234 www.theleela.com Srinagar 호수 위에 떠 있는 특별한 호텔 빌루 하우스보트Habib-Ullah Billoo & Sons ★★★☆ 스리나가르 달 호수에는 꽤나 많은 하우스보트들이 모여 있는데, 여러 업체들이 운영하고 있어 저마다 이름도 다르고 스타일도 조금씩 다르다. 이곳은 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하우스보트로, 내부에서 그 역사를 느껴 볼 수 있다. 달 호수 선착장에서 시카라를 타고 들어가게 되며 보트 안에서 아침,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보트 안에 주방이 따로 마련돼 있어 직원이 즉석에서 식사를 만들어 내놓는다. 하우스보트 특성상 습하고 다소 꿉꿉한 느낌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 체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경험이므로 놓치지 말자. 주소 Nehru Park, Dal Lake, Srinagar 문의 +91 9858070475 라다크 가는 길 라다크로 들어가는 방법은 항공과 육로 중 선택해야 한다. 델리에서 레로 가는 항공편은 매일 이용이 가능하며 에어인디아, 제트에어웨이즈, 킹피셔에어라인이 운항된다. 스리나가르-레 항공편도 일주일에 1~2회 운항 중이다. 육로를 이용할 경우에는 마날리로 들어가 버스나 지프로 레까지 이동한다. 단, 마날리에서 레로 가는 버스는 6월에서 9월 정도까지만 운행되는데 그나마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운행이 중단되기 때문에 사전에 확인하고 이용해야 한다. 24시간 정도 소요. 고산병 라다크는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여행 전 고산병에 대비해야 한다. 항공편으로 레에 도착하면 첫날은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휴식을 취하면서 고도에 적응하는 것이 좋다. 여행시에도 뛰거나 지나치게 빨리 움직이는 행동은 금물. 항상 여유를 갖고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고산병 예방약이나 1회용 산소를 준비하면 도움이 된다. 주의사항 라다크는 오지이기 때문에 전기, 수도 사정이 좋지 않다. 호텔에서도 가끔 정전이 되거나 수압이 약할 때가 있다. 인도 정부 관광청 Indiatourism 주소 Tokyo Isei Building,7~8Fl.1-8-17,Ginza,Chuo-ku,Tokyo,Japan 문의 +81-3-3561-0651/52 www.incredibleindia.org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아름다운 간이역 걸으며 추억여행 어때요

    아름다운 간이역 걸으며 추억여행 어때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을 감상하면서 전통 체험 축제를 즐겨 보세요.’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주민들이 15일 ‘추억의 체험 축제’를 연다. 올해로 2회째다. 화본리는 팔공산과 화성산, 화산 등 높은 산 3개에 둘러싸인 오지 중의 오지로 노선버스가 하루에 오전, 오후 1차례씩 들어가는 산골마을이다. ●전국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역’ 하지만 1930년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주변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화본역이 있다. 화본역은 네티즌이 뽑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선정됐다. 마을에는 100여 가구 120여명의 주민이 산다. 70~80대 고령층이 주류다. 50~60대는 20여명에 불과하다. 이 축제는 지난해 주민들이 마을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기획하고 십시일반 비용을 마련해 시작됐다. 화본역이 네티즌으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뽑힌 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폐선 철로 및 간이역 관광자원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사업은 국비 등 45억원을 투입해 화본역사와 관사를 복원하고 급수탑을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화본역은 서울 청량리와 부산진구 부전을 잇는 중앙선 역으로 지금도 상·하행선 하루 세 차례씩 총 여섯 번의 열차가 정차한다. 지난해 축제 때는 2000여명이 찾았다. 올해는 마을기금 등 모두 3000여만원을 들여 축제를 마련했다. 이번 축제는 오전 10시부터 1960~70년대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화본마을 추억의 학교를 비롯해 인근 화본역과 삼국유사 벽화마을 등에서 시작된다. 팽이치기, 딱지치기, 미꾸라지 잡기, 농산물 수확 및 구워 먹기, 봉선화 물들이기, 솟대 및 장승 만들기, 삼국유사 목판 탁본 뜨기 등의 체험 행사가 다채롭다. 또 참가자 노래자랑과 공연, 행운권 추첨 등의 각종 이벤트 행사가 펼쳐지고 눈깔사탕 등 추억의 과자와 농특산물을 시중가보다 20~30% 이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추억의 학교에 전시된 1960년대 전파상과 만화방, 이발소, ‘포니2 픽업’ 자동차와 타자기, 아이스케키통, 잡지와 포스터 등을 구경하는 것은 덤이다. 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은 관광객은 최근 리모델링이 마무리된 화본역사의 관사나 민박을 이용하면 된다. ●마을 알리려 시작… 올해 두 번째 군위군은 추억의 축제를 활용해 15~16일 이틀간 전국 가족 여행 체험단 및 파워 블로거 등 100여명을 대상으로 화본마을을 비롯해 김수환 추기경 생가,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각사, 경주에 있는 석굴암보다 제작 연대가 1세기 정도 앞선 것으로 알려진 군위삼존석굴(국보 제109호) 등을 둘러보는 팸투어를 실시한다. 화본마을운영위원회 윤진기(67) 위원장은 “추억의 체험 축제는 특히 가족과 연인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동 - 부녀회 - 지역상권 허브 형성… 서대문 충현동 복지공동체 눈길

    동 - 부녀회 - 지역상권 허브 형성… 서대문 충현동 복지공동체 눈길

    서대문구가 중점 추진하는 ‘동 복지 허브화 사업’에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동 복지 허브화 사업은 복지사업의 중심을 동 주민센터로 옮기고 동장을 복지동장으로, 통장을 복지도우미로 정해 현장에서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행정시스템을 의미한다. 또 관공서 중심이 아닌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지원을 이끌어 내는 독특한 현장복지행정 체계를 구축했다. 구는 지난 1월 충현동과 남가좌2동을 복지허브 시범동으로 정했다. 특히 충현동의 복지사업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9일 구에 따르면 충현동은 지난 1월부터 7개월 동안 생활이 어려운 54개 가정에 4700여만원 상당의 현금과 물품을 지원했다. 주민 복지를 행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사각지대와 틈새가정 발굴에 집중한 성과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한 가정에는 각 지역 민간단체의 도움을 받아 ‘희망아름드리’ 결연을 맺고 1200만원을 지원했다. 이 사업은 150만원의 단기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복지 수혜자가 30%를 적립하면 나머지 70%를 외부에서 후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새마을부녀회도 발벗고 나섰다. 이들은 수시로 독거노인과 장애인가정 등 30가구에 3~4가지 반찬을 만들어 전달하고 있다. 지역 내 정육점에서도 매월 고기 10㎏을 지원하는 등 후원자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지역 치과들은 협약식을 체결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발치와 신경치료 등의 간단한 치과치료는 물론 아동 치아교정도 무상으로 제공했다. 자원봉사 대학생 5명과 주민센터에서 근무 중인 대학생 공익요원 2명은 ‘희망멘토링’에 참여해 지역 아동의 성적 향상과 진로상담을 맡고 있다. 최경구 충현동장은 “이발소·식당·미용실·안경점 등 지역 전체 사업장으로 재능기부 대상을 확대해 전국 최고의 복지마을공동체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三代의 이야기속 질곡의 한국사 100년이…

    三代의 이야기속 질곡의 한국사 100년이…

    일제강점기와 분단, 6·25 전쟁, 1950년대 빈곤과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발전, 1970·80년대 민주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은 역사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집안이든 삼대(三代)의 인생을 털어 보면 행복 또는 불행의 형태로 100여년의 근·현대사들이 씨줄날줄로 촘촘히 엮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만화가 정용연(44)의 3권짜리 ‘정가네 소사’(휴머니스트 펴냄)에는 그 정씨 집안 남자들과 며느리, 손녀의 인생을 통해 어쩌면 그렇게 한국사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을까 싶은 내용이 섬세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전남 장성 출신의 증조할아버지는 한학자로, 아버지 정동호에게 명심보감이며 한학을 가르쳤다. 만주로 이전해 농사를 지었지만 수확하기 전에 해방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귀국길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의무병이었던 아버지는 한학을 배운 덕분에 군대에서 일본어 의학책을 읽으며 의술을 익혔지만,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탓에 무면허 의사로 살아야 했다. 학업을 연장하기에는 찢어지게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전북 김제평야 천석지기의 아들이던 외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식민지 한국에 돌아왔지만 금광을 찾아 헤매다 가산을 모두 탕진했다. 첩에게 남편을 빼앗기고도 무너진 가정을 일으켜 세운 사람은 외할머니. 곱게 자란 양반집 아씨가 비단을 팔러 다니며 자식들을 키웠다. 성냥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는 무면허 의사 아버지와 만나 살림을 꾸렸지만, 서울 산동네를 전전하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밖에 정가네 소사에는 빨치산이 된 육촌 할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엮여 육군사관학교 진학이 좌절된 형이나, 이발 기술로 돈을 벌었지만 못된 아가씨에게 홀랑 날리고 1980년대 중동개발 붐이 일 때 사우디로 간 순호 당숙, ‘청량리 588’의 서러운 아가씨가 있다. 또한 정부가 농가의 수입원으로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려 양잠을 권유했지만, 핑퐁 외교의 결과로 일본이 비단실 수입처를 중국으로 바꾸는 바람에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았던 1970년대 농촌 현실 등이 독자들을 매콤하고 아련한 1970~80년대의 추억으로 인도한다. 그래픽 노블 분위기의 자전 만화인데 정용연 작가는 “외할아버지를 방탕하게 그리고 아버지를 무능하게 그리게 돼서 정말 미안한데, 사실과 다르게 포장하기는 어려웠다.”고 30일 말했다. 정 작가는 “기억에 의존해 쓱쓱 그린 만화가 아니라 보이스카우트의 복장이나 순호 당숙의 이발소에 걸린 1983년 3월의 달력, 아버지의 군복 등 대부분 고증을 거친 것으로 생활사 사료로도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헹궈 줄 때 조리개를 이용한다든지, 가스레인지 탓에 사라진 귀한 성냥의 존재 등도 신기하다. 옴니버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겹치기도 하는데, 기억을 덧댄 부분이 풍성해서 지루하지는 않다. 7년에 걸쳐 600쪽의 원고를 그렸다. 이 책을 기획한 위원석 교양만화 주간은 “100년 역사가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면서 “웹툰에 익숙한 청소년들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적지 않아 한 번쯤 꼭 읽어봐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CEO 칼럼] 이발소와 사진관, 코닥의 교훈/윤문석 VMware Korea 지사장

    [CEO 칼럼] 이발소와 사진관, 코닥의 교훈/윤문석 VMware Korea 지사장

    130년 역사의 사진 기업 코닥이 올해 초에 파산을 선언했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과 같은 아성이 ‘디지털’이라는, ‘스스로 주도한 혁신’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원인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코닥이 미래보다 현재에 집착하며 시장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랬기에 ‘디지털 카메라’를 가장 먼저 개발하고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세계 필름 시장을 지배했던 일본의 코니카와 독일의 아그파가 변화의 물결 속에 속절없이 사업을 접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했던 후지는 의료, 전자소재, 화장품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가까스로 이름을 지켰다. 그러나 코닥은 1등이라는 현실에만 안주해 변화와 혁신을 외면함으로써 스스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무심한 변화’가 일어나는 일상의 공간은 또 다른 배움터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과거 동네마다 이발소와 사진관이 즐비했던 때가 있었다. 불과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발소와 사진관은 꽤 장사가 잘됐다. 사진은 찍으면 반드시 현상 인화를 맡겨야 했고, 머리는 매번 자르고 가꿔야 해서 정기적으로 손님이 끊이지 않는 업종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식 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미용실의 출현으로 손님을 빼앗기더니, ‘남성용’ 프랜차이즈까지 생겨나면서 이발소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사진관은 이발소보다는 조금 더 명맥이 길었던 것 같다.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막 열렸을 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진관을 찾았고, 사진을 인화했다. 하지만 온라인 사진 현상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굳이 사진을 현상하지 않아도 보고 즐길 수 있는 모바일 기기들이 보편화되면서 사진관도 운명을 달리했다. 젊어서 배운 이발 기술로 부지런히 일하며 한 가정을 건사해온 어느 이발사나 은퇴 후 귀향하겠다던 어느 사진사는 파도 같은 변화에 떠밀려 가게를 닫고 지금 어디선가 새로운 업종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소규모 점포들도 이럴진대, 기업들은 또 어떠할 것인가. 2009년 11월 28일은 국내에서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날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해 마지 않았던 이날의 주인공은 단연 애플이었고, ‘피처폰 시대’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던 국내 제조사들은 급작스럽게 한 시대의 종막을 지켜보아야 했다. 하지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경기는 계속해야 하는 법. 스마트폰의 시대에 발맞춰 우리 기업들은 지난한 혁신을 거듭해 어려움을 극복했고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와신상담의 저력을 세인들에게 확인시켰다. 여러 산업 분야 가운데 정보기술(IT) 업종만큼 변화와 혁신이 급격하고 드라마처럼 전개되는 곳도 없다. IT 기업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고객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남다른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와 개발에 골몰하고 있다.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고 그에 따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따라 기업의 부침과 존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작고한 스티브 잡스가 ‘혁신의 아이콘’이라면, IT 기업은 ‘혁신의 적자(嫡子)’라고 말할 수 있다. IT 기업들이 발굴한 기술과 서비스는 일반 기업들의 혁신에 필요한 다양한 계기와 동력이 되고 있다. 기업들은 ‘신기술’과 그것이 몰고 올 경제·사회적 변화를 눈여겨보고, 신속하게 제 것으로 만들어 혁신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트렌드 변화에 대한 통찰력, 적응력을 바탕으로 유연한 조직과 마인드를 갖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경영의 단초를 확보할 수 있다. 부릅뜬 두 눈으로 내일의 먹거리를 찾고, 가슴으로 소비자의 감성과 요구를 읽어내야 하며, 잰걸음으로 부단한 혁신을 이뤄내야 하는 시대다.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6) 울산 동구 전하로 -현대중공업 ‘전하문’서 만세대까지 691m

    [길을 품은 우리 동네] (6) 울산 동구 전하로 -현대중공업 ‘전하문’서 만세대까지 691m

    무더위가 본격화된 지난 주말 오후. 울산 동구 전하로에서 17년째 이발소를 하는 김재원(48)씨는 연신 헛부채질만 해댔다. 손님은 없었고 (실제로) 파리가 날아 다녔다. 다달이 가게세 내기도 버겁다고 푸념한다. 32년 전 대구에서 이사온 김씨는 지그시 눈 감고 20여년 전 한 날을 떠올렸다. 집안까지 날아들던 최루탄이며, 하루가 멀다하고 가게 앞을 오가며 데모하던 이들과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길 위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졌던 시절이었다. 그때야 “절마들이 배가 불러가 저리 데모질이네.”라고 욕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립기만 하다. 전하로의 술집이며, 이발소며, 여관이며, 식당, 옷가게 등은 배 만드는 거친 사내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때로는 어깨동무 노랫가락에, 때로는 싸움박질에 늘 흥청거렸다. 그 시절 왁자지껄함은 낮도 밤도 가리지 않았다. 울산의 최근 수십년 역사를 고스란히 목격하고 품어온 전하로의 결을 하나씩 더듬어 봤다. 오후 퇴근시간 즈음이었을까.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자 오토바이 수백대가 거리로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잿빛 작업복에 흰 안전모, 그리고 갈색 작업화 차림이었다. 전하로를 따라 올라오는 오토바이 물결 뒤로 거대한 크레인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현대중공업(방어진순환도로 1000번)의 배 만드는 노동자들이었다. 쇠와 불을 능숙히 부리고, 거친 바닷물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내들은 퇴근길에도 거침이 없었다. 물론, 근사한 오토바이는 없었다. 대부분 125㏄ 스쿠터였다. 하루의 노동을 마친 이의 지친 표정이지만 세상에 주눅들지 않는 기계 노동자 특유의 당당한 자부심이 함께 배어 있었다. 전하로는 울산 동구를 커다랗게 감싸고 도는 방어진순환도로의 오지벌 삼거리에 있는 현대중공업 ‘전하문’(4.5도크 문)에서 ‘만세대’까지 이어지는 691m 길이다. 사람과 차가 경계없이 섞여 지나다니니 차도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다. 완만하게 경사진 전하로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녹수길, 바드래길이 얼기설기 뻗쳐 있고, 왼쪽으로 진성길이 얽어져 있다. ●사람사는 맛 나는 돌멩이·최루탄의 길 최근 20~30년 동안 돈을 벌려는 사람들은 모두 울산 전하로로 모였다. 1972년 현대중공업이 들어서며 사람이 북적거리고 돈이 돌자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장사가 없었다. 이름 그대로 ‘밭 아래 마을’이었던 전하동(田下洞)의 전하로는 울산 최고의 번화한 거리로 자리 잡았다. 1만 6000명 남짓이던 인구수는 17만명이 넘게 불어났다. 라면집, 막걸리집, 여관, 당구장, 옷가게, 식료품가게, 자전거포 등등 부지런하기만 하면 누구든 돈을 벌 수 있을 때였다. 마치 개척시대 금을 좇아 미국 서부로 몰려들었듯 전국 팔도에서 울산 동구로 모여들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외침이 전국을 휩쓸던 시기, 이곳은 오히려 조용했다. 하지만 그 외침이 잦아드는 시기에 전하로 등 이곳저곳의 길은 비로소 용광로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절박한 심정으로 부르짖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민주노조 건설을 촉발시킨 1987년 7~9월 투쟁이 시작됐다. 공장과 ‘만세대’를 잇는 이 길 위에서 노동자들은 돌을 던지고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그것도 옛 얘기가 됐다. 1989년 128일의 파업과 1990년 골리앗 투쟁 등 1980~1990년대 노동자 대투쟁의 신화를 써 내려가던 현대중공업은 벌써 17년째 무분규 사업장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계 안팎의 논란 속에서도 중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노사가 상생하며 지역의 시민들과 연대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운동을 힘겹게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배 만들려 온 이들이 살던 ‘만세대’ 그 시절 전국 각지에서 배를 만들기 위해 모여든 이들이 살던 곳이 바로 ‘만세대’다. 원래 이름은 일산 1~3지구다. 15~20평 아파트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5층 아파트였지만, 족히 1만 세대는 살겠다 싶어서 그냥 ‘만세대’라고 불렀다. 지금은 e-편한 세상이니, 푸르지오니 하는 32~56평 아파트가 주를 이루는 28~35층짜리 근사한 중대형 고층아파트로 변신하는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풍요로워진 셈이다. 그들만큼 전하로의 상인들도 넉넉해졌을까. 울산 동구에 등록된 오토바이만 10만대다. 출퇴근의 오토바이 물결은 아예 울산 동구의 상징 비슷하게 됐다. 오토바이 점포를 운영하는 정인욱(55)씨에게 “돈을 잘 벌겠다.”고 묻자 아래 위로 훑어본다. 그는 “동구에만 오토바이 점포가 50개가 있어요. 한 달에 세 대 정도 팔라나? 대부분 펑크난 바퀴 때우러 오는 사람들이지, 뭐. 때우면 3000원 받는데, 어쨌든 그것만으로도 먹고는 사니까 다행이지.”라고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렇다. 오토바이 점포는 사정이 나은 축이었다. 전하로가 시작하는 지점 60m 즈음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전하1길 전하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찬수(68)씨는 “밥을 못 먹고 살 정도”라면서 “옛날에는 밥은 잘 먹었지.”라고 옛시절을 떠올리며 푸념했다. 1982년부터 문을 연 박씨의 옷가게는 일반 옷 외에도 현대중공업의 작업화, 작업복 등을 주로 팔았다. 1년에 1벌씩 지급되는 작업복으로 부족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여벌의 옷을 찾았던 까닭에 가게가 늘 문전성시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이발소를 운영하는 김재원씨 역시 “현대중공업 사람들은 이제 퇴근 뒤 술먹으려면 아예 더 번화한 남구로, 대왕암공원 쪽으로 가버린다.”면서 “낮에도 이렇게 썰렁하지만 밤에도 한산하기만 하니 데모 많던 옛날이 차라리 훨씬 좋았다.”고 편치 않은 속을 내비쳤다. 노래방, 휴대전화 가게, 삼겹살집, PC방 등 가게들은 그 옛날 어느 때처럼 전하로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뜨거웠던 한 장면을 기억하고, 그 역사가 침잠해 가는 과정을 지켜본 울산 동구 전하로는 ‘제2의 영화’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글 사진 울산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7회는 광주시 남구 ‘정율성로’를 소개합니다.
  • [연극리뷰] ‘봄의 노래는… ’

    [연극리뷰] ‘봄의 노래는… ’

    1막은 잔잔했고 2막에선 감정이 휘몰아쳤다. 휴머니즘에 강한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그의 2012년 신작,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가 그렇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조선 남도의 외딴섬에 있는 홍길이네 이발소의 가족과 그곳에 주둔 중인 일본군, 조선인이지만 일본 헌병에 자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에 희생된 자들의 아픔을 말한다. 1막은 평탄한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액자구조 형식을 취한 연극은 백발의 노인이 된 영순과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으로 부인 영순 곁을 맴도는 홍길의 대화로 시작된다. 68년 전 이들은 바다 내음이 봄의 남풍을 타고 코를 찌르던 지금의 봄과 같은 절기에 이뤄진 둘째 딸 미희의 결혼식을 떠올리고 극은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홍길이네 가족의 과거는 따뜻하면서도 아프다. 홍길과 영순에게는 왼쪽 발이 부러져 발목이 90도 정도 돌아간 절름발이 진희, 가수를 꿈꾸며 일본 부대의 클럽에서 노래하는 둘째 딸 선희와 그녀의 전 남편 춘근, 남편 만석이 자신보다 큰언니 진희를 더 사랑한다는 사실에 늘 질투하는 셋째 딸 미희, 당차고 사회 의식이 강한 넷째 딸 정희가 늘 곁에 있다. 홍길이네 이발소에 오가는 사람 중엔 홍길이네 가족 외에도 전쟁터에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일본군 중좌 시노다, 조선인이지만 어려운 집안 살림을 일으키고자 일본 헌병에 지원해 일본인과 조선인 모두에게 미움받는 대운이 있다. 2막 대부분의 장면에선 정의신 작가 특유의 눈물샘 자극 효과가 발동된다. 공연 시간 내내 등장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일화가 주변 경계인, 가족, 한·일 양국의 역사, 그 역사 속에 희생된 사람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일본군 기지를 폭파하려다 정희가 일본군에 체포되면서 평화롭던 홍길이네 가족에게 위기가 닥치고 정희로 인한 슬픔을 토해 내는 영순 역의 배우 고순희가 선보이는 눈물 명연기는 관객의 눈물까지 훔치게 한다. 작품은 관객을 적절히 웃겼다 적절히 울린다. 연출은 관객에게 아예 맘껏 울라는 듯 슬픈 장면이 끝나면 비교적 긴 암전 시간에 애절한 음악을 흘려보낸다.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한쪽 다리가 절단된 연기를 펼치는 시노다 역의 배우 서상원은 2시간 가까이 한쪽 다리를 접어 고정한 채 목발에 의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끔 등장하는 가족들의 몸싸움 장면에선 모든 배우들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음주 연기도 실제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며 때론 격한 감정을, 때론 정감 있는 모습을 보이는 배우들의 감정선도 풍부하다.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는 7월 1일까지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전석 2만 5000원. (02)758-2150.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뮤지컬 ‘울지마 톤즈’ 7월 15일까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새천년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마을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에서 선교활동을 한 고 이태석 신부의 감동실화. 한 신부의 열정으로 내전과 가난으로 웃음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이 감동을 준다. 3만~7만원. 1661-1476.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12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연극 ‘아키니쿠 드래곤’의 정의신 작가가 신작으로 극단 미추와 남산예술센터가 함께한다. 광복 직전 1944년을 배경으로 한 이번 공연은 남도의 외딴섬에서 살아가는 ‘홍길이네 이발소’ 가족과 주둔 중인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1만 5000~2만 5000원. (02)758-2150.
  • [교정 참여인사] │박애상│ 류해언 김천소년교도소 교정위원

    [교정 참여인사] │박애상│ 류해언 김천소년교도소 교정위원

    대구 광성교회 목사로 25년 2개월째 기독교를 통해 수용자를 교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연고가 없는 수용자 1645명을 상대로 위로회를 열어 생활지원금을 주는 등의 활동을 했다. 검정고시에 응시하는 수용자 322명에게는 도시락, 다과, 학용품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 성경 퀴즈대회와 생일교화행사 등을 열어 음식 및 생필품, 교양도서를 지원했다. 1996년부터 출소자들을 패션회사의 재봉사, 목재회사, 이발소 등에 취업시켜 출소자들의 사회정착을 도왔다. 교회당 장의자 등 종교행사 물품과 복사기 등 학과 교육물품도 지원해 교정행정 발전에 기여했다.
  • “오직 청소년을 위하여”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성인들을 위한 공연, ‘7080 세대’를 위한 공연, 어린이 공연 등이 넘쳐난다. 그러나 중간에 애매하게 존재하는 세대, 청소년을 위한 공연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서 준비했다. 오직 청소년을 위한 공연, 6년째 국립극장에서 주최하는 ‘국립극장 청소년공연예술제’다. ●16개 공연 100회 가량 무대에 30일까지 진행되는 예술제에선 국립극장의 전속단체 작품들과 국내외 우수작 등 16개 공연이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 달오름 극장 등에서 100회가량 오르고, 야외무대에선 특별부대행사가 진행된다. 올해 축제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해외 우수작 3개 공연이 모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라는 것. 한국과 벨기에의 합작 총체극 ‘병사이야기’와 이탈리아 코미디 마임극 ‘칼로니의 새 이발사’, 덴마크의 댄스극 ‘디스커버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병사이야기’는 연극과 인형극, 음악극이 함께 어우러진 총체극으로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병사와 악마의 거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극사실적인 묘사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조각가 최수앙이 만든 인형작품이 극에 사용된다. 인형을 통해 병사의 갈등에서 비롯된 긴장을 물리적 공간에 구체화한다. 음악은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 오케스트라의 각 고음과 저음 악기군을 대표하는 악기 7개로 편성했다. 현악기(바이올린, 더블베이스), 목관악기(클라리넷, 바순), 금관악기(트럼펫, 트롬본), 타악기(북, 탬버린, 트라이앵글)이 사용되며 내레이션, 대사, 팬터마임, 음악, 낭독 등이 혼합돼 있다. 12~13일 달오름 극장, 3만원. ‘칼로니의 새 이발사’는 1950년대 이탈리아 옛 이발소의 모습을 재현하며 이곳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경쾌한 라이브 연주와 곡예, 배우들의 연기 등 다양한 요소로 코믹하게 풀어낸 작품. ‘칼로니의 새 이발사’는 서커스와 거리 공연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이탈리아 ‘테아트로 네세사리오’ 극단의 대표 작품이라 더욱 주목된다. 16~17일 KB국민은행청소년하늘극장, 3만원. ●댄스극 ‘디스커버리’ 안무에 김덕현 참여 댄스극 ‘디스커버리’는 덴마크 모던댄스 컴퍼니 어퍼컷댄스극단의 무용수들이 수년간 협력작업을 통해 춤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세계적인 브레이크 댄서인 한국인 김덕현이 안무에 직접 참여했다. 한 소년이 집을 떠나 여행하면서 삶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탄탄한 안무가 돋보인다. 19~20일 KB국민은행청소년하늘극장. 전석 3만 원. 이 외에도 17~20일 달오름 극장에서는 환상적인 동화의 세계로 떠나는 마법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3만~7만원), 20~27일 별오름 극장에선 ‘찰리아저씨의 레인보우 매직 콘서트’(2만원) 등도 공연한다. (02)2280-4114.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씽씽한 음악도시, 빵빵한 음악축제!

    씽씽한 음악도시, 빵빵한 음악축제!

    새달 5일부터 16일 동안 경기도 의정부는 음악도시로 변신한다. ‘씽씽(Ssing-Ssing)한 음악도시, 빵빵(Fun-Fun)한 음악축제’를 내건 제11회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세계 음악극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자신감이 대단하다. 음악극축제 집행위원장을 맡은 최진용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은 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설명회를 열고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는 축제가 자리 잡는 분수령이라는 10년을 넘기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한다.”면서 “축제에는 인간이 뿜어내는 사랑, 행복, 활기, 즐거움의 에너지로 가득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는 6개국, 7개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 주빈국은 스페인의 북동부 ‘카탈루냐’로 정해 이 지역 작품을 개막일과 폐막일에 공연한다. 카탈루냐는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과 아름다운 동화책 등으로 예술적 수준이 뛰어나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지역이다. 개막작인 극단 엔필라트의 ‘플렉스’(PLECS)는 5일부터 이틀간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에 오른다. 천막에서 보는 서양 서커스를 토대로, 일상의 물건을 활용한 장난기 넘치는 상상력에 아크로바틱 댄스를 접목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 폐막작으로, 19~20일에 공연하는 다이비나스의 ‘싱!싱!싱!’(Sing!Sing!Sing!)은 1950년대 스윙 초창기 특유의 화려함과 발랄함을 재연했다. 7중주단 밴드의 라이브 연주와 여성 보컬 3인의 노래가 매력적이다. 의정부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는 사각 링에서 악기와 채소 등으로 음악 배틀을 벌이는 호주 오닉스 프로덕션의 ‘루프 더 루프’(10~11일), 마을 신사들이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 이발소를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테아트로 네세사리오의 ‘칼로니 이발소’(12~13일)를 올린다. 슬로베니아의 ‘핑크 노이즈’(5~6일), 프랑스의 ‘자전거 피아노’(12~13일), 영국·호주의 ‘파밀리에’(18~20일) 등 독특한 작품들이 의정부역을 비롯한 시내에서 관객을 만난다. 올해 축제는 창작에 탄력을 붙였다. 최 대표는 “축제는 준비 과정에서도 시민이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우수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창구로서 역할도 해야 한다.”면서 대표작으로 ‘합창뮤지컬 의정부 사랑가’(13일)를 꼽았다. 지난해 의정부 시민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열어 선발한 시민 배우 20여명이 7개월 동안 연습해 만든 작품이다. 서사민요 ‘진주난봉가’를 재해석해 해학과 감동을 녹여냈다.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발레뮤지컬 ‘에디뜨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10~12일)도 관심을 끈다. 연출을 맡은 서미숙 서발레단 대표는 “피아프의 노래와 발레, 영상 등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작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아프 노래의 감동을 살리기 위해 프랑스 배우를 캐스팅하고, 프랑스어로 공연한다. 한국의 대표 발레리노 이원국이 안무했다. 작가 이중섭의 삶과 작품 세계를 그린 오페라 ‘나는 이중섭이다’(18~20일),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각색해 판소리로 만든 ‘현제와 구모텔’(6일)도 준비했다. 이 밖에 이번 축제의 명예위원장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15일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스페셜 콘서트를 열고, 의정부시민으로서 명예대사가 된 가수 타이거JK와 윤미래는 20일 대극장 야외무대에서 피날레 콘서트를 올린다. (031)828-5892~7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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