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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공포 속 시민에 “문 열어 두겠다” 대피처 제공… 잇단 헌혈 행렬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공포 속 시민에 “문 열어 두겠다” 대피처 제공… 잇단 헌혈 행렬

    “자유여, 너의 수호자와 함께 싸워라. 쓰러져 가는 네 적이 우리의 영광을 보기를.”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 북부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 운집한 8만 관중은 이 같은 내용의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귀가했다. 파리에서 12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과 자신들이 운집한 경기장 근처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감행됐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동요하기보다 “용기를 잃지 말라”고 서로를 격려했다. 경기장 바깥 파리 시민들은 트위터에 ‘#PorteOuverte’란 해시태그를 달았다. ‘문을 열어 두겠다’는 의미로 공포의 파리 거리에서 대피할 곳이 없는 이들에게 자신의 집을 대피처로 제공한다는 뜻을 담았다. 트위터 사용자들은 ‘거리에서 헤매는 중이라면, 마티르 우리 집에 2~3명이 머물 수 있다’는 식으로 집 근처 도로와 수용 인원을 알렸다. 몇 시간 만에 ‘porteouverte.eu’란 사이트에 대피처가 될 파리의 집 지도가 완성되는 등 ‘집단 지성’이 빛을 발했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인들은 맞서야 할 것으로 ‘공포’를, 지켜야 할 가치로 ‘지성’을 강조했다. 바타클랑 극장 참사 현장에 있다 극장 천장 위 좁은 공간에 숨어 겨우 살아남은 샤를(34)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공포에 굴복하지 않겠다. (테러범들은) 엿이나 먹어라. 나는 다음주에도 공연에 가겠다. 일상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뉴스위크 칼럼니스트인 재닌 디 지오바니는 “2005년 파리폭동 당시 표출됐던 무슬림 이민자들의 소외감과 막막함은 잊은 채 이번 테러를 계기로 프랑스와 유럽에서 극우 정당들이 힘을 얻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테러 이튿날 조화와 촛불을 들고 참사 현장을 찾은 추모객들은 충격과 공포로 비틀거리면서도 서로를 얼싸안으며 ‘연대’(솔리다리테)를 강조했다. 주말이었음에도 부상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시민들이 헌혈센터 앞에 줄을 섰고 14일 독일 피아니스트인 다비드 마르텔로는 테러 현장에 그랜드피아노를 가져다 놓고 “국가도, 종교도, 죽을 일도, 죽일 일도 없는 세상을 상상하라”는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을 연주했다. 테러 직후 ‘연대의 정신’이 분출하는 국면이 마무리되면, 여론은 결국 곧 ‘테러에 대항하는 제한적 연대’를 지지하는 쪽으로 흐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 거리의 프랑스인들은 저마다 “이슬람국가(IS)가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선언을 헤드라인으로 굵게 쓴 신문을 쥐고 있었다. 테러 이튿날부터 에펠탑을 점등하지 않은 탓에 파리의 밤은 어두워졌다. 디즈니랜드 파리, 박물관, 미술관 등을 비롯해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아걸었고 록 밴드 U2 등이 공연을 취소했다. 연간 8000만명을 끌어들여 국내총생산(GDP)의 7%를 담당하는 에펠탑과 노트르담 성당 등 주요 관광지 주변엔 방탄복과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이 배치됐다.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유로스타는 손님 없이 텅 빈 채 운행됐다고 BBC가 전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인간의 강’…열화상 카메라에 포착된 난민행렬

    ‘인간의 강’…열화상 카메라에 포착된 난민행렬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국경지대에서 이동 중인 난민들의 기나긴 행렬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 공개돼 시선을 끈다. 난민들은 그동안 주로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를 경유한 뒤 헝가리를 지나 서유럽으로 이동하는 경로를 선택해 왔으나 지난 17일 헝가리가 자국 국경을 봉쇄하면서 대부분 서쪽으로 진로를 변경, 슬로베니아로 유입되는 상태다. 이에 따라 지난 1주일 동안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넘어가기 위해 슬로베니아에 입국한 난민은 5만 8000여 명에 이른다. 이 숫자는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로, 슬로베니아 당국은 23일(이하 현지시간)이후 24시간 동안에만 1만 3000명의 난민이 자국에 수용된 상태라고 발표했다. 급속도로 몰려드는 난민들에 대해 슬로베니아는 하루에 이들 중 2500명만을 받아들이겠다는 지침을 밝혔다. 때문에 상당수 난민들은 슬로베니아 국경지대에 머물고 있다. 해당 사진은 슬로베니아 경찰이 공중에서 열화상 카메라를 사용해 촬영한 것으로, 유럽 난민대책 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24일 밤사이에 이동 중인 난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슬로베니아 당국은 급작스럽게 몰려든 이민자 이동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해당 촬영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국은 수용 캠프에 머무는 인원이 수용한계를 넘어서면서 이민자들 사이에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국경에 위치한 브레지스 난민 수용 캠프에서는 24일 두 무리 난민들 간에 폭력 사태가 발생, 이를 저지하기 위해 최루액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슬로베니아 경찰은 밝혔다. 사진=ⓒ데일리메일캡처(위,가운데)/ 게티이미지/멀티비츠 이미지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고령화 접어든 선진국, 난민이 성장동력 될 것”

    “유입된 난민이 고령화된 선진국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은 7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연차총회 개막을 맞아 공개한 ‘글로벌 모니터링 리포트 2015/2016:인구 변화 시대의 개발 목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세계의 노동가능인구(15~64세) 비율은 2012년 65.8%로 정점을 찍었다가 2050년에 62.7%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15세 미만 아동의 비율은 1960년대 38%에서 2050년 21%로 하락하는 반면,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1960년대 5%에서 2050년 16%로 3배가량 늘 것으로 추산된다. 선진국의 경우 2015년부터 2050년까지 노동가능인구가 감소하지만, 라틴아메리카·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은 연평균 0.5~2.5%의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노동가능인구가 빈곤국에 몰리면서 부의 불균형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전 세계 빈민의 90%가 빈곤국의 청년층인 반면, 세계 부의 75%는 출산율이 낮고 노인층이 많은 선진국에 집중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최근 유럽의 난민 위기처럼 빈곤국에서 선진국으로 이주하려는 대규모 난민의 행렬은 고착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고령화되는 선진국들이 빈곤국으로부터 온 난민과 이민자를 자국의 경제에 참가시킨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며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이민자들은 자신들에게 지출되는 복지비용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낸다”고 강조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이민자를 형제처럼 대하고 전세계 사형제도 폐지 나서야”

    “이민자를 형제처럼 대하고 전세계 사형제도 폐지 나서야”

    “교황님이 왜 좋으냐고요? 그는 내가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을 멋있게 느끼게 해 주니까요.” 23일 오전 11시 30분(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남쪽 공원 ‘디엘립스’에서 만난 10대 소년, 소녀들은 교황의 방미에 왜 열광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집안이 가톨릭이라는 한 소년은 “교황님을 트위터를 통해 매일 접해서인지 직접 만나니 너무 친근하다”며 “교황님의 모든 연설과 미사를 듣기 위해 (교황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고 ‘열성 팬’의 모습을 보였다. 교황은 이날 새벽부터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기다린 수만 명의 인파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백악관 인근을 20여분간 돌았다. 경비가 삼엄했지만 교황은 아기 2명을 직접 안고 입을 맞췄으며 경호원이 번쩍 들어 데려온 한 소녀에게도 입을 맞추며 축복을 내렸다. 교황에게 편지와 노란 티셔츠 선물을 전한 이 행운의 소녀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소피 크루즈(5)로, 멕시코 출신 불법체류 부모를 둔 이른바 ‘앵커 베이비’다. 크루즈는 “부모님이 언제 추방당할지 몰라 슬프다”며 “아빠는 매일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미 언론은 “한 소녀가 교황에게 이민 문제를 제대로 전했다”고 평했다. 교황은 앞서 백악관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서 “이민자 가정의 아들로서, 그런 가정으로 주로 이뤄진 이 나라에 손님으로 와서 기쁘다”고 밝혔다. 교황은 퍼레이드 후 세인트매슈성당에서 한 연설에서도 “이민자 가정이 이 나라를 부유하게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연설에서 주교들을 향해 “(사제들의 성 학대) 희생자들을 치유에 이르게 하려는 여러분의 노력을 지지하며 그런 범죄가 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미 언론은 “교황이 사제 성 학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지 않기로 한 대신 이 같은 언급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너무 미온적인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어 성모국립대성당으로 자리를 옮겨 2시간이 넘는 미사를 집전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 논란이 돼 온 스페인 출신 선교사 후니페로 세라(1713~1784) 신부를 성인으로 선포해 미국에서 이뤄진 첫 시성(諡聖)을 주관했다. 세라 신부는 1769년 스페인의 캘리포니아 통치 당시 원주민 선교를 위해 이주한 뒤 선교원을 세우고 원주민들을 대거 개종시켜 미국에 가톨릭 기반을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원주민 후손들은 세라 신부가 원주민을 잔혹하게 강제 개종시켰다며 시성 반대 청원 캠페인을 벌이는 등 시성 추진에 반대해 왔다. 교황은 24일에도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오전에는 교황으로선 처음으로 미 의회에서 상·하원 합동연설을 해 주목받았다. 교황은 연설에 앞서 가톨릭 신자인 존 베이너(공화당) 하원의장과 별도로 만났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입장한 교황은 연설에서 “자유와 용기의 나라인 미 의회에서 연설하게 돼 감사하다”며 “의회는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하며, 입법 활동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바탕이 된다”고 미 정치권에 일침을 가했다. 교황은 이어 “미국인의 정신에 영원히 흐르는 기본 가치를 만든 사람들”로 아브라함 링컨 전 대통령,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가톨릭 사회운동가 도로시 데이(여), 가톨릭 영성작가 토머스 머튼을 꼽으며 이들의 자유와 평등, 정의, 소통 정신에 대해 강조했다. 교황은 “우리, 이 대륙의 사람들은 이방인(외국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들 대부분도 한때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도 이민자의 아들로서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베이너 의장을 비롯, 쿠바계 공화당 대선 후보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은 눈물을 보이며 박수를 쳤다. 교황은 또 “우리 세계는 세계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본 적이 없는 규모의 난민 위기를 맞고 있다”며 “이 대륙에서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찾고 더 큰 기회를 찾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그들(이민자)의 숫자에 놀라서는 안 되며, 그들을 인간으로 바라보고 얼굴을 보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서 그들의 상황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응답해야 한다. 항상 인간적이고 공정하며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사형제와 기후변화, 무기 살상, 가족 해체 문제 등에 대해서도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사역 초기부터 전 세계에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왔다”며 ”나는 이 길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신성하고 모든 인간은 빼앗을 수 없는 존엄성을 부여 받았으며,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 재활하면 사회에 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 의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나는 인간의 활동으로 초래된 환경적 악화의 심각한 영향을 피하기 위해 용기 있고 책임 있는 노력을 요구한다”며 “우리는 변화를 만들 수 있으며, 미국과 미 의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금은 용감한 행동과 전략이 필요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교황은 이어 “개인과 사회에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기려는 이들에게 살상 무기가 왜 판매되고 있는지 우리에게 물어야 한다”며 “슬프게도 답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단순히 돈 때문”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무기 판매로 얻은 돈은 ”피에 적셔진 돈이며 그 피는 무고한 이들의 것인 경우도 많다“며 ”문제를 직시하고 무기 거래를 중단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미국 내 총기 거래도 함께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교황은 이어 세인트패트릭성당과 자선단체 ‘가톨릭체리티’를 방문해 노숙자 등과 만나는 등 몸을 낮춘 서민 행보를 이어 갔다. 교황은 이날 오후 뉴욕으로 떠나 25일 오전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27일까지 필라델피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나우! 지구촌] ‘이민자 공격 비판’ 22년 전 노래 독일서 열풍

    [나우! 지구촌] ‘이민자 공격 비판’ 22년 전 노래 독일서 열풍

    메르켈 총리의 적극적인 수용정책에도 불구하고 독일 내에서 극우주의자들에 의한 이민자 캠프 방화 범죄가 일어나 충격을 안겨준 가운데, 독일 국민들이 이를 성토할 목적으로 극우주의자 반대 메시지를 담은 22년 전 록 음악을 다시 음원 차트 최상위에 진입시키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9일(현지시간) 독일 펑크 밴드 ‘디 애어츠테’(Die Ärzte)가 1993년 발표한 곡 ‘슈라이 나흐 리베’(Schrei nach Liebe, 사랑을 울부짖어 갈구하다)가 현재 독일 음원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순위 최상위에 진입해 있으며 곧 1위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곡은 지난 90년대 초 이민자들에 대한 독일 신나치주의자들의 폭력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시기에 맞춰, 이들의 잔혹한 행동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곡의 제목인 ‘사랑을 울부짖어 갈구하다’는 당시 젊은 신나치주의자들이 사실상 관심과 사랑에 매우 목말라 있는 자들이며 이러한 결핍감을 외부인들에 대한 부당한 폭력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을 꼬집는 것이다. 이 곡에서 디 애어츠테는 ‘당신들의 폭력은 사랑에 대한 조용한 울부짖음일 뿐이지. 오오, 멍청한 자들이여’라고 노래하며 신나치주의자들을 조롱, 비판하고 있다. 발매 된지 무려 22년이나 지난 낡은 록음악을 다시 수면 위로 부상시킨 움직임을 시작한 것은 독일 오스나브뤼크 지역에 살고 있는 46세의 음악 교사 게르하르트 토게스다. 그는 이 운동을 펼친 것이 “이민자 차별에 맞서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캠페인이 시작된 지 불과 일주일여 만에 이번 곡은 올해 단일음원 최다 판매기록을 경신한 상태다. 소식을 접한 디 애어츠테 또한 음원 판매에 따른 수익 전액을 독일의 난민 구호 인권단체 ‘프로 아쥘’(Pro-Asyl)측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다른 반(反)나치 곡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곡을 선택해준 만큼 기쁘게 지원 하겠다”며 “나치주의자(극우주의자) 여러분들은 (우리 곡이) 즐겁지 않은 여흥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당신은 누군가 안아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그래서 나치가 된 거야’라고 말하는 이 노래가 독일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독일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지에서 몰려드는 대규모 이민자 행렬로 혼란을 겪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총 80만 명의 이민자들을 수용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 경찰에 따르면 올해에만 총 250번에 걸쳐 이민자 구호소에 대한 공격이 벌어졌으며 지난달에는 드레스덴 지역에서 새 이민자 캠프 설립에 반대하는 신나치주의자들의 과격시위가 발생, 30여명의 경관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이민자 공격 비판’ 22년 전 노래…독일 ‘음원차트 재석권’

    ‘이민자 공격 비판’ 22년 전 노래…독일 ‘음원차트 재석권’

    메르켈 총리의 적극적인 수용정책에도 불구하고 독일 내에서 극우주의자들에 의한 이민자 캠프 방화 범죄가 일어나 충격을 안겨준 가운데, 독일 국민들이 이를 성토할 목적으로 극우주의자 반대 메시지를 담은 22년 전 록 음악을 다시 음원 차트 최상위에 진입시키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9일(현지시간) 독일 펑크 밴드 ‘디 애어츠테’(Die Ärzte)가 1993년 발표한 곡 ‘슈라이 나흐 리베’(Schrei nach Liebe, 사랑을 울부짖어 갈구하다)가 현재 독일 음원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순위 최상위에 진입해 있으며 곧 1위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곡은 지난 90년대 초 이민자들에 대한 독일 신나치주의자들의 폭력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시기에 맞춰, 이들의 잔혹한 행동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곡의 제목인 ‘사랑을 울부짖어 갈구하다’는 당시 젊은 신나치주의자들이 사실상 관심과 사랑에 매우 목말라 있는 자들이며 이러한 결핍감을 외부인들에 대한 부당한 폭력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을 꼬집는 것이다. 이 곡에서 디 애어츠테는 ‘당신들의 폭력은 사랑에 대한 조용한 울부짖음일 뿐이지. 오오, 멍청한 자들이여’라고 노래하며 신나치주의자들을 조롱, 비판하고 있다. 발매 된지 무려 22년이나 지난 낡은 록음악을 다시 수면 위로 부상시킨 움직임을 시작한 것은 독일 오스나브뤼크 지역에 살고 있는 46세의 음악 교사 게르하르트 토게스다. 그는 이 운동을 펼친 것이 “이민자 차별에 맞서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캠페인이 시작된 지 불과 일주일여 만에 이번 곡은 올해 단일음원 최다 판매기록을 경신한 상태다. 소식을 접한 디 애어츠테 또한 음원 판매에 따른 수익 전액을 독일의 난민 구호 인권단체 ‘프로 아쥘’(Pro-Asyl)측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다른 반(反)나치 곡을 사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곡을 선택해준 만큼 기쁘게 지원 하겠다”며 “나치주의자(극우주의자) 여러분들은 (우리 곡이) 즐겁지 않은 여흥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당신은 누군가 안아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그래서 나치가 된 거야’라고 말하는 이 노래가 독일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독일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지에서 몰려드는 대규모 이민자 행렬로 혼란을 겪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총 80만 명의 이민자들을 수용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 경찰에 따르면 올해에만 총 250번에 걸쳐 이민자 구호소에 대한 공격이 벌어졌으며 지난달에는 드레스덴 지역에서 새 이민자 캠프 설립에 반대하는 신나치주의자들의 과격시위가 발생, 30여명의 경관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열차 매달리다 떨어져 죽고… 온몸 짓밟히고 “우리가 나쁜 무리라니” 부서지는 ‘영국행 꿈’

    철조망이 둘린 칼레 난민촌에선 익숙한 지명이 수두룩하다. 천막 사이의 큰길은 ‘퀸 엘리자베스 거리’, 중심가는 ‘뉴런던’이라 불린다. 이곳의 수단 출신 한 난민은 ‘런던’이란 지명이 박힌 티셔츠를 입었고, 에리트레아 출신 중년 여성은 ‘유니언잭’이 새겨진 담요를 둘렀다. 외신들이 전한 난민촌 모습에선 이미 영국에 닿아있는 듯한 불법 이민자들의 심정이 읽힌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영국의 바이스뉴스가 보도한 수단 출신 브리한(27)의 삶이 그렇다. 브리한은 지중해에서 침몰한 난민선에서 스페인 상선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이때 형제와 친구를 모두 잃었다. 이탈리아 람페두사에 도착한 그는 맹목적으로 칼레로 향했다. 머릿속에선 바닷속에 빠져 죽은 지인들의 얼굴만 맴돌았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들인 돈은 모두 5000달러(약 590만원). 브로커에게 지불한 난민선 탑승비 3000달러와 칼레까지 오는 여비 2000달러다. 브리한은 최근 보름간 숲속 나무 밑에서 선잠을 잤다. 이른 새벽이면 4~5명씩 짝을 이뤄 몸을 숨길 영국행 트럭이나 열차의 빈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사랑하는 동료와 가족을 잃으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읍소했다. 파키스탄에서 건너온 후세인(25)은 동행했던 사촌형이 이틀 전 숨졌다. 영국행 열차에 몰래 매달린 사촌형이 눈앞에서 떨어져 철로에서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여태껏 시신도 수습하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난민촌 주민들의 목숨을 건 탈출 이야기를 전했다. 에티오피아 출신 테웨드로스(20)는 2년 전 아버지가 군인들에게 학살당한 뒤 고국을 등졌다. 강제노동과 인신매매에 시달리며 리비아에서 수개월을 버틴 끝에 난민선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는 격앙돼 있었다. 이틀 전 유로터널 앞에 길게 늘어선 운송트럭 행렬에 몸을 숨기려다 경찰에 죽을 만큼 뭇매를 맞은 탓이다. 난민촌 매점에서 일하는 시리아 출신 라에드(30)와 압둘라(28)는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을 피해 탈출했다. 라에드는 “IS가 어린이, 부녀자를 가리지 않고 눈앞에서 총과 폭탄으로 잔인하게 죽였다”면서 “삼촌 일가도 몰살당했다”고 치를 떨었다. 에리트레아 군인 출신인 베라카트(28)는 지난 4월 수단에서 난민선을 타고 14시간 항해 끝에 지중해를 건넜다. 기독교도인 그는 “난민촌 교회에서 마음껏 예배를 드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4개월간 난민촌에 머문 수단 출신 아딜(24)은 “우리를 ‘나쁜 무리’로 묘사하는 건 쉬워도 이곳 현실을 제대로 알긴 어렵다”고 항변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올 들어 지중해를 건넌 18만 5000여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가리켜 ‘떼’라고 비하한 표현에 모두 분개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인도적 의료기관인 ‘메디신스 드 몽드’의 레이 데인 사무국장은 “최근 영국행이 어려워지면서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너려는 등 극단적 시도를 벌이는 난민이 늘고있다”며 “정부가 좀 더 인도적 요구에 귀 기울여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문 꽉 잠그는 英·佛… 갈 곳 잃은 난민 ‘칼레의 기적’은 없다

    [글로벌 인사이트] 문 꽉 잠그는 英·佛… 갈 곳 잃은 난민 ‘칼레의 기적’은 없다

    인구 7만 5000여명에 불과한 프랑스 북서부의 작은 항구도시 칼레가 최근 난민 문제로 다시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영국과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칼레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도시에는 부두노동자, 정원사, 난방기구 수리원 등으로 이뤄진 순수 아마추어 축구팀(4부 리그) ‘라싱 유니온FC 칼레’가 있었다. 조기 축구회 수준이던 팀은 2000년 3월 1, 2부 팀들을 잇따라 제물로 삼으며 82년 만에 프랑스컵 결승에 오르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결승에선 패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칼레의 기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다양한 인종으로 이뤄진 FC칼레는 ‘공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런데 이제 칼레에선 ‘지구는 둥글다’는 진리마저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이곳의 난민 수용소가 ‘정글’로 불리면서부터다. 칼레의 난민 문제가 처음 불거진 건 ‘칼레의 기적’과 비슷한 시기였다. 1999년 말 정세가 불안한 중동쪽 난민들이 이곳에 모여들자 첫 수용소가 들어섰다. 이후 망명을 요청하는 난민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혼란이 커졌다. 2002년 당시 프랑스 내무장관이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반(反)이민정책을 내세워 수용소들을 해체했다. 쫓겨난 난민은 이때부터 칼레항 근처에 천막을 치고 하루하루의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칼레는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 땅이자, 영국으로 건너가는 관문이다. 요즘은 내전과 기아, 죽음의 위협을 벗어나 ‘브리티시 드림’을 꿈꾸며 몰려든 아프리카·아시아계 난민 3000여명으로 붐빈다. 수단·에리트레아·시리아·아프가니스탄 출신 등이 다수로, 지난해 9월부터 부쩍 많아졌다. 그런데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닿은 사람은 출발자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들은 칼레에서 마지막 여행을 준비한다. 난민들이 해저터널에 진입하려고 시도하면서 터널 양쪽에선 극심한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발이 묶인 난민과 이들을 막으려는 경찰 간 충돌도 끊이지 않는다. 해법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여전히 결론은 없다. ●메르켈 “난민이 그리스보다 더 큰 문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6일 “난민이 그리스보다 유럽연합(EU)에 더 큰 위기”라고 경고했다. EU 회원국이 난민을 분산 수용하는 ‘난민 쿼터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으나 일부 국가가 거부하면서 이곳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지고 있다. EU가 프랑스에 난민 수용을 위한 자금 지원에 나서고, 사태 해결을 놓고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비난하는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불법 노동자들을 방치하는 영국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다. 영국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런던을 황금의 땅 ‘엘도라도’로 여기는 난민들을 향해 “우리의 거리라고 황금으로 포장돼 있는 건 아니다”면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다. 영국에선 이미 반이민 정서가 정점에 이르렀다. 왜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영국행을 택할까. 불법 이민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보장되는 인간다운 삶 덕분이다. 영국에선 난민이 망명을 신청할 경우 결혼한 성인에게 일주일에 72파운드(약 13만원)를 지급한다. 인도적 차원에서 주택과 건강보험도 지원한다. 또 미성년 자녀에게는 무료 교육과 차등적 지원금까지 주어진다. 확연한 차이는 일자리다. 영국의 실업률은 5% 안팎으로 프랑스의 절반 수준이다. 증빙 서류 없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널려 있다. 독립 통화권을 형성한 영국은 다른 EU 국가들과 달리 탄탄한 경제 기반을 갖고 있다. 아울러 영국으로 향하는 이민자의 다수는 과거 영국의 식민지 출신이다. 영어에 익숙하고 출신지별로 이민사회가 형성돼 있어 정착하기도 쉽다. ●인간답게 살 권리 갖춘 영국, ‘엘도라도’ 아니다 칼레에선 절박한 표정으로 철조망을 기어오르는 난민과 맞닥뜨리는 게 예삿일이 됐다. 항구로 향하는 지름길마다 ‘그들만의’ 출입구가 마련돼 있다. 영국행 화물차나 트럭, 열차 등에 몰래 몸을 숨기기 위해선 이 철조망을 넘어야 한다. 잠행에 성공하거나 목숨을 잃는 것, 둘 중 하나다. 단속에 걸려 쫓겨나면 운이 좋은 편이다. ‘불귀의 길’이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는 난민 행렬은 줄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올 들어 영국행 밀입국 시도가 4만건 가까이 있었다고 추정했다. 차에 치이고 질식해 매주 10명 이상 죽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호단체들은 “이보다 훨씬 많이 목숨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영국 정부는 국경 통제 외에 이민법을 강화하는 등 두꺼운 벽을 쌓고 있다. 난민 심사에서 탈락하더라도 주당 36파운드(약 6만 7000원)씩 주던 1만명 규모의 바우처제는 조만간 폐지될 예정이다. 집주인이 방을 얻으려는 세입자에게 체류 자격을 의무적으로 확인하고 불법 이민자를 퇴거시키는 조치도 마련했다. 제임스 브로큰셔 영국 이민장관은 “우리가 만만한 나라가 아니란 걸 알리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독립 50년… 강소국 싱가포르 계속될까

    9일로 독립 50주년을 맞은 동남아시아의 도시국가 싱가포르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생존을 위협받던 약소국에서 독립 후 반세기도 되지 않아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강소국으로 탈바꿈한 싱가포르는 최근 경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며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3월 타계한 ‘국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확립한 강소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이날 싱가포르에선 독립기념일 행사가 성대하게 진행됐다.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말레이시아 연방이 됐다가 1965년 연방에서 탈퇴, 독립국가 지위를 얻은 지 꼭 반세기가 지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오전 9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된 기념행사는 리 전 총리가 생전 낭독한 독립선언문이 전국에 울려 퍼지며 막을 올렸다. 5만명이 운집한 행렬에선 국제 금융허브로 탈바꿈한 역사를 자축했다. 퍼레이드 말미에는 싱가포르 공군의 F16 전투기 20대가 상공에서 숫자 ‘50’을 형상화했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와 달리 국민 다수가 정치 개혁이 미진한 싱가포르의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민자 증가와 빈부 격차 심화, 저성장과 물가 상승 등이 사회적 긴장을 조성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인구 540만명 가운데 40%가량은 외국인 노동자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가장 빈부 격차가 심하고, 세제 혜택을 노리고 몰려든 거부들 탓에 주택 가격과 물가는 급등했다.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독립 축하 메시지에서 “앞으로의 여정은 알 수 없고 우리 자신과 후손들을 위해 계속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다. 전문가들도 싱가포르가 경제와 사회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선 시민 자유를 확대하고 정치 개혁을 선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소외·불안·공허… 화려한 도시의 민낯

    소외·불안·공허… 화려한 도시의 민낯

    소나무 판재 14장을 세로로 이어 붙인 커다란 화면의 한가운데에 푸른색 여객선이 속절없이 가라앉고 있다. 그 옆으로 노란 깃발을 들고 시위하는 행렬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근엄한 판사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두꺼운 보호복을 입은 전투경찰의 모습도 보인다. 한국 화단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 서용선(64)의 신작 목조판각화 ‘2014 뉴스와 사건’이다. 목판에 새긴 형상과 덧입혀진 색채는 사건을 즉각적으로 인식하게 하면서 강렬한 흡인력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전기톱날 자국과 칼질 자국이 그대로 드러나 소나무 향이 진하게 배어나는 ‘2014 뉴스와 사건’ 작품 앞에서 작가는 “지난해 텔레비전과 인터넷 등에서 매일 되풀이되곤 했던 사건과 뉴스들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도시와 현실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치밀하게 짜인 화면, 거친 붓터치와 강렬한 원색, 그리고 붉은색과 초록색 선이 그어진 인물들로 역사와 신화, 전쟁과 도시 등 다양한 주제에 진지하게 접근해 온 그의 대규모 초대전이 사간동 금호미술관과 학고재 갤러리 공동기획으로 열리고 있다. ‘서용선의 도시 그리기: 유토피즘과 그 현실 사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전시에는 그가 1980년대 중반부터 천착했던 ‘도시’를 소재로 한 회화, 드로잉, 조각 등 100여점이 소개된다.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베를린, 뉴욕, 서울, 베이징, 멜버른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제시한다. 전시회나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계기로 2~3개월씩 머물렀던 도시의 지하철, 거리, 카페, 광장에서 관찰한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그 도시에 따른 분위기와 문화와 역사적 특색을 읽어 낼 수 있다. “도시마다 역사가 다르고, 사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달라집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도시를 만들고, 밑바닥을 이루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그들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도 궁금했습니다.”는 그는 “모든 것이 편리하고 사방으로 통하도록 발전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있음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소외되고 공허한 표정을 하고 있다. 작품 속 장소와 인물은 대도시 공간의 긴장감에 압도당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서울의 번화가를 그린 ‘역삼역 4’에선 지하철 입구를 오르며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사람의 모습이 담겼다. 통나무를 전기톱으로 거칠게 조각해 표현한 두상들은 한결같이 불안하고 고민스러워 보인다. 중국의 풍경은 버스 안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자기 방어적인 모습과 자본주의가 빠르게 확산하는 거리를 무심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다. 이민자들의 도시 뉴욕의 지하철 역을 그린 ‘루즈벨트역’은 유대인, 흑인, 동양인 등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지만 저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뉴욕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도시의 관찰자인 동시에 구성원이다. 그런 까닭에 어느 도시를 가든지 그곳 사람들에게서 동질성을 발견한다는 그의 작품은 도시의 삶이 주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다루고 있다.. “도시라는 것 자체가 이상적인 삶을 찾으려는 것이지만 그렇게 쉽지 만은 않습니다. 인간의 삶도 이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지만 전쟁이나 경제난 등 위협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삶은 항상 불안정하지요. 불만 보고 덤벼드는 불나방 같은 측면을 도시인에게서 발견합니다. ” 1980년대 ‘소나무’ 연작으로 데뷔한 작가는 계유정난(癸酉靖難·1453년)과 한국전쟁 등 역사적 사건부터 마고(麻姑) 신화, 도시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로 시선을 확장해 자신이 관찰한 주변과 사회, 역사의 모습을 담아 왔다. 2008년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서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14년 제 26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작가로 선정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전시는 5월 17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이스라엘서 아프리카 불법이민자 파업 이틀째 “난민에게도 자유를 달라”

    이스라엘의 경제 중심지 텔아비브에서 아프리카 출신 불법 이민자들이 불법 이민자 구금 정책에 반대하며 사흘간 파업에 돌입하는 동시에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6일(현지시간) AFP,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파업 이틀째인 이날 미국 대사관 앞에서 아프리카 이주민 1만여명이 집회를 벌였다. 시위 행렬은 캐나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영국 등 서구권 대사관과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이스라엘 사무소로 이어졌다. 전날인 5일에는 3만여명이 행진과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자 시위다. 이들은 ‘동포들에게 자유를 달라’ 등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족의 생계 책임자까지 가두는 바람에 이민자들이 고난과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이는 1951년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 지난달 통과된 새 법안은 체류 비자가 없는 이민자들을 구금할 수 있고, 네게브 사막 감옥에 무기한으로 가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이스라엘의 유대교 사회 구조를 위협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권 단체들은 법안이 통과된 뒤 3주 만에 300명이 체포됐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불법 이민자는 수단, 에리트레아 등 아프리카 출신으로 최대 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2006년부터 이집트 쪽 국경을 통해 들어왔다고 이스라엘의 관계자는 말했다. UNHCR 이스라엘 사무소는 “불법 이민자 대부분은 난민으로서 국제협약에 따른 보호를 받아야 한다”면서 “피난처를 찾아온 이들을 무기한 가두는 것은 난민협약에 위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1500명 ‘자유’ 찾다 망망대해서 ‘최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죽음의 항해’를 떠난 아프리카인 가운데 1500명이 지난해 지중해에 수장됐다. 유럽행 이민선 행렬의 연간 희생자 규모로는 사상 최대다. 여기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과 유럽 당국의 ‘방조’가 한몫했다는 주장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이민선의 조난 요청이 있었지만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 47개국의 인권을 감시하는 유럽평의회는 28일(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나토 전함이나 유럽 해안경비대의 실책이 바다에서 표류 중이던 이민자 수십명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폭로했다. 보고서는 유엔과 나토, 유럽 각국이 지난해 리비아 내전 때문에 북아프리카에서 탈출하려는 망명자 수가 급증했는데도 장기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로 인해 조난을 당한 이민선과 가까운 거리에서 항해하던 군이나 민간 선박이 이들을 구조하는 데 실패하거나 구조 요청을 받고서도 해안경비대가 즉각 대처하지 않거나 어느 주체가 구조에 나설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희생자 수만 늘렸다는 것이다. 한 예로 지난해 5월 트리폴리에서 리비아전을 피해 이민선에 올라탄 아프리카인 72명이 조난을 당해 2주 동안이나 해류에 몸을 맡긴 채 떠돌아야 했던 일이 있었다. 유럽 해안경비대는 비상 호출을 통해 이를 인지하고 선박 위치를 파악했지만 구조 시도는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배에 타고 있던 이민자 가운데 아기 2명을 포함해 9명이 폭우와 굶주림 등으로 숨졌다. 보고서의 저자이자 유럽평의회 이민·망명·난민위원회 특별 조사위원인 티네케 스트릭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유럽의 이중 잣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면서 “우리는 인권과 국제적인 의무에 따라 이를 지켜야 한다는 중요성에 대해 떠들면서도 동시에 신원을 알지 못한다거나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이민자들을 죽게 내버려 두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데스크 시각] 미스라타와 후쿠시마 단상/박찬구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미스라타와 후쿠시마 단상/박찬구 국제부 차장

    리비아 서북부의 지중해 항구도시 미스라타가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불과 한두달 전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했던 미스라타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친위대와 무장 시민군의 사활을 건 혈전과 카디피군의 무차별 학살로 외신의 국제면을 달구고 있다. 반군 근거지인 벵가지에서 긴급 투입된 지원병들이 채 48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철수할 정도로 전장은 처참하고 무자비하다고 외신은 전한다. 식품점 앞에서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이 포탄 세례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혁명의 ‘동력’인지, ‘도구’(툴·tool)인지를 두고 서방 언론에서 논쟁의 도마에 올랐던 소셜네트워크도, 전략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습도 유령도시의 잔혹성을 제어하지는 못하고 있다. 수주째 카다피군의 포위 공격을 받으며 최소한의 생존 조건도 보장되지 않는 곳, 포로로 붙잡힌 10대 카다피 병사가 ‘지옥’(hell)이라며 몸서리치는 곳, 그런 미스라타에서 무엇이 시민군의 저항을 지탱하고 있는 것일까. 리비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미스라타의 시민들은 42년 독재를 청산할 정치체제로 미국식 민주주의가 좋은지, 유럽식 민주주의가 바람직한지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한다. 카다피의 주장처럼 탈레반의 무장 세력이나 권력에 굶주린 폭도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반(反)독재와 체제 변혁을 향한 갈망과 의지, 행동하는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수도 트리폴리의 길목에서 카다피군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해석이 그래서 나온다. 피로 쟁취한 반독재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한국 현대사도 갖고 있기 때문에 미스라타의 참상이 숙연하게 와 닿는다. 리비아의 향배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미스라타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은 유럽에 또 다른 불씨를 던지고 있다. 바로 포화와 혼란을 피해 유럽으로 향하는 북아프리카 난민들의 엑소더스 행렬이다. 때마침 강경 우파의 부상과 맞물려 유럽 각국은 국경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 유럽연합(EU) 이상주의자들이 설계한 다양성 속의 조화, 문화 이질성의 포용과 존중이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복지 시스템의 과부하에 허덕이는 유럽 각국에서는 말 그대로 ‘이상’에 그치고 있다. 저출산과 부족한 노동력의 틈새를 메우던 이민 정책도 더 이상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역사 진보의 염원과 민주화 투쟁의 이면에서 발생한 엑소더스 행렬이 불법 이민자로 전락하고, 선의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유럽연합의 이상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현 상황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북아프리카와 유럽의 사례에서처럼 한 지역의 격동과 위기는 이제 더 이상 지역적이지도, 제한적이지도 않다. 미스라타의 격전만큼이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전에서 새 나온 방사성물질이 한반도는 물론 지구 곳곳으로 퍼지고 있고, 대지진과 쓰나미로 생긴 ‘쓰레기 섬’은 태평양을 횡단해 하와이와 미국 서부 해안까지 이를 전망이다. 후쿠시마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저주 받은 땅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문명에 의존하는 강도가 높을수록 후과는 광범위하고 장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기에는, 그 대가가 너무나 치명적이다. 관전자로 머문다면, 미스라타나 후쿠시마는 호기심이나 막연한 걱정거리, 아니면 무관심의 영역에 머물고 말 일이다. 반면 미스라타 시민의 의지와 후쿠시마 원전 근로자의 목숨 건 사투에서 실천과 행동의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반전(反戰)과 인도주의, 그린 에너지로 테제를 국한시킬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지금 여기 나부터 작은 의지와 힘을 모아 지역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그 힘이 초(超)국경의 위기와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동력의 일부로 작용한다면, 적어도 지속가능한 지구 네트워크의 일원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라는 진부한 문구를 굳이 되새기지 않더라도…. ckpark@seoul.co.kr
  • [특파원 칼럼] 노무현과 베레고부아/이종수 파리특파원

    [특파원 칼럼] 노무현과 베레고부아/이종수 파리특파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프랑스 교민 사회에도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대표부, 한인회관 등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한국에서는 프랑스 정부 수반인 총리를 지낸 뒤 자살한 피에르 베레고부아의 삶이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의 극적인 인생이 너무 닮아서다. 물론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문화 맥락은 다르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과 베레고부아의 삶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베레고부아의 삶을 찬찬히 뜯어보면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기막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1993년 5월1일. 프랑스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발생했다. 중부 도시 네베르의 시장이던 피에르 베르고부아 전 총리가 운하를 산책하다가 자살을 시도했다.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쏘아 혼수 상태이던 그는 헬리콥터로 파리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숨졌다. 베레고부아의 삶은 ‘노동자 출신의 총리’로 압축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교를 다니던 중 아버지의 병이 위독하자 공부를 접고 기계공 자격증을 따서 16세 때부터 직물공장 직공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국립철도회사에서 일하다 2차대전 때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뒤 전후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이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거쳐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거쳐 1992년 4월 총리에 오른다. 그야말로 자수성가의 대명사였다. 또 재경부장관을 지낼 때까지 자기 집 한 채도 갖지 않은 청렴한 정치인으로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1993년 2월 풍자 전문 주간지 ‘르 카나르 앙세네’가 베레고부아의 부도덕성을 꼬집는 기사를 보도하면서 불운이 시작됐다. 신문은 그가 재경부장관이었던 1986년에 사업가인 친구 로제 파트리스 펠라에게 무이자로 100만프랑(당시 환율·약 1억 4000만원)을 빌려서 파리 16구의 아파트를 샀다고 전했다. 베레고부아는 원금을 나눠서 갚았지만 언론은 무이자로 돈을 빌린 것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한 특혜였다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3월 총선을 앞둔 우파 야당은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결국 사회당은 577석 가운데 97석만 건지는 최악의 성적으로 참패했고 베레고부아는 예상보다 1년 앞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두달 뒤 자살했다. 베레고부아의 자살은 큰 파문을 던졌다. 미테랑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야당·언론·판사 등을 개에 비유하면서 베레고부아의 명예와 삶을 앗아갔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당 정권과 언론의 전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베레고부아의 자살을 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혹자는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하려는 ‘도덕적 항거’로 본다. 총리 취임식에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할 정도로 도덕성을 강조한 그에게 부패혐의는 견딜 수 없는 ‘주홍글씨’였을 거라는 시각이다. 또 총선 패배에 대한 자책감과 가족을 옥죄어 오는 수사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견해도 있다.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베레고부아는 총선 패배로 몹시 우울했고 당시 수사판사는 펠라에게서 각각 돈과 선물을 받은 혐의로 베레고부아의 딸과 아내를 조사했다. 기자는 베레고부아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몇가지 ‘불온한 상상’을 하게 됐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에 흐르고 있는 주류의 비주류에 대한 보이지 않는 ‘선긋기’다. “베레고부아의 성(姓)에 ‘드’(De, 귀족 출신을 상징)가 들어갔더라도 야당이나 언론이 그렇게 몰아붙였을까?” 혹은 “그가 프랑스 엘리트의 산실인 그랑제콜 출신이었어도 그토록 궁지에 빠트렸을까.” 이종수 파리특파원 vielee@seoul.co.kr
  • [월드이슈] 밀항선 침몰 수백명 사망 ‘죽음의 항해’

    [월드이슈] 밀항선 침몰 수백명 사망 ‘죽음의 항해’

    감비아 소년 비랄(15)에게 리비아는 ‘약속의 땅’이었다. 넉넉한 월급과 좋은 집이 꿈이었던 그에게 리비아는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8개월 전 모험을 감행했다. 호주머니엔 감비아 돈 3만 5000달라시(약 170만원)가 들어 있었다. 사막의 열풍과 낯선 외국어에 부딪히며 세네갈, 말리, 니제르를 거쳐 아프리카의 북쪽 끝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같은 꿈을 품은 불법이민자 15명과 방 하나를 나눠 쓰며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코트디부아르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하던 쿤(24)도 9개월 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리비아로 잠입했다. 트럭 화물칸에 숨어 800㎞의 긴 여행을 자처한 것은 “리비아로 오면 일자리도 많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매형의 조언 탓이었다. 이들은 강풍이 사납게 일던 지난달 29일 새벽 5시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15㎞ 떨어진 잔주르에서 한 배를 탔다. 낡고 조악한 배에 들어찬 사람은 257명. 이탈리아 람페두사섬으로 향하는 밀항선이었다. 12시간 뒤 이들의 운명은 바다 한복판에서 갈렸다. 비랄과 쿤 등 21명은 구조돼 불법 이민자로 리비아 난민센터에 갇혔다. 그러나 나머지는 배와 함께 지중해 바닷속에 영원히 수장됐다. 지난달 29~30일 리비아 연안에서 이민선 3척이 강풍에 침몰했다. 빈곤와 실업에서 벗어나려던 중동·아프리카 출신 불법 이민자 수백명과 그들의 꿈도 함께 가라앉았다. 이들이 밀항을 감행한 리비아~유럽을 잇는 1770㎞의 해안선에는 최근 불법이민 행렬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국제이민기구(IOM)에 따르면 지난해 람페두사섬에만 3만 6000명이 건너왔다. 작년 같은 기간의 1만 9000명에 비해 2배 늘었다. 정원이 850명인 섬의 난민센터에는 2000여명이 수용돼 인권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엔최고난민대표 안토니오 쿠테레스는 지난달 31일 “분쟁과 빈곤, 박해에 처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절박한 수단으로 탈출하는 비극적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렇듯 지중해와 대서양 등은 밀입국자들을 태운 조악한 배와 경비정 간의 신경전으로 몸살을 앓는다. 이 과정에서 어린이를 포함해 매년 수천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법무안보 담당 집행위원 프랑코 프라티니는 2006년 여름에만 3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민자들은 어선이나 구명보트 등 장거리 항해가 불가능한 낡은 배에 정원의 몇 배를 초과해 탑승하거나 공기가 통하지 않는 컨테이너로 이동해 밀항은 이미 ‘목숨을 내놓고’ 이뤄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밀입국 알선업도 조직적으로 발달해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다. 밀입국자들은 브로커에게 1인당 1000~2000달러(약 131만~262만원)를 쥐여 준다. IOM은 이들의 몸값만 연간 100억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정했다. IOM의 ‘세계 이민 2008’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오는 거점은 지중해 연안의 남유럽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순으로 비중이 높다. 스페인에는 2003년에만 100만명의 불법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탈리아에는 2006년에만 2만 2016명이 밀입국했는데 이는 3년 전에 비해 50% 증가한 수치다. 밀입국 루트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예전엔 지브롤터 해협에 집중됐던 것이 모로코의 항구도시 세이투·멜리야를 거쳐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경로로 확대됐다. 요즘은 서부 아프리카에서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로 잠입하거나,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와 벵가지에서 몰타나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바닷길을 많이 택하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출발·경유·도착지에 해당하는 국가들에 해상 구조, 밀입국업자 적발 등 실질적인 대처를 촉구하고 있다. EU는 올해 업무계획에 회원국간 통합된 이민정책과 국경관리, 불법이민자 단속을 위한 국경수비대(Frontex) 가동을 내걸었으나 실효성은 불투명하다. 본국송환 프로그램은 불법이민자 한 명을 스페인에서 에콰도르로 보내는 데 4900달러가 드는 등 비용 장벽이 높아 실행이 안 되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이춘규 선임기자 글로벌 뷰] 경제난에 이민자 고국행 러시

    이민, 이주노동자가 세계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급격히 줄고 있다. 후발국에서 선진국으로, 저개발국에서 신흥국으로 유입되어 온 이민 인구가 올해는 무려 30% 정도 줄어들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기존의 이민, 이주노동자들이 모국으로 돌아가는 대역류현상도 예상된다. 역류는 수백만~수천만명 규모가 될 것이란 분석까지 나왔다.1970년대 이후 전 세계는 평시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대이민의 시대’였다. 개도국의 근면한 사람들이 빈곤의 굴레에서 탈출을 꿈꾸며 이민대열에 합류했다. 매년 수백~수천만명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었다. 이민자들은 세계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세계화의 산물인 상품, 서비스, 돈과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에 이상기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경기가 침체되면서 이민자들의 역류현상은 시작됐다. 향후 수개월간 역류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국립경제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올 1·4분기 아일랜드에서는 약 3만명의 외국국적 노동자가 본국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옛 소련권서 서유럽으로 이동한 이주노동자 수십만명도 귀국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지난해 인도네시아인 노동자 20여만명이 귀국했다.멕시코인들도 2000년부터 06년 사이 매년 100여만명씩 미국에 이주했다. 하지만 올해 멕시코 이민은 39% 정도 줄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에 거주 중인 1300만명의 멕시코인들 중 상당수가 귀국할 전망이다. 중동국가에서도 1300만명의 외국인노동자 가운데 수백만명의 귀국행렬이 시작됐다. 이주노동자들은 이국땅에서 노동, 모국으로 송금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고국으로의 대역류는 개발도상국에는 큰 타격이 되고 있다. 개도국으로의 송금액은 10년 전에는 730억달러였지만 지난해는 2830억달러로 팽창했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송금의 비율이 타지키스탄 45%, 몰도바 35%, 온두라스 25%나 될 정도다.그런데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선진국 시민들은 일자리 때문에 이민의 역류를 환영하고 있다는 조사가 있다. 각국은 국경관리를 강화하고 불법이민 고용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민을 더 위축시키는 요인이다.결국 세계적 경제위기가 이민의 자유이동에 급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자유로운 대이민의 시대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위기가 빨리 수습되지 않으면 대이민의 시대가 천천히 막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는 뉴스위크 일본판 최신호의 보도가 주목된다.taein@seoul.co.kr
  • 불황 ‘이민 발목’

    불황 ‘이민 발목’

    대기업 부장 이모(43)씨는 경기 용인시에 있는 아파트 가격이 지난해 초 8억원에서 최근 5억 5000만원으로 떨어지면서 캐나다 투자이민을 포기해야 했다. 캐나다 달러로 90만달러에 이르렀던 이씨의 자산가치가 환율 폭등과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60만달러로 떨어져 80만달러 이상의 자산을 소유해야 이민을 허가하는 캐나다 이민법의 조건에 맞추지 못하게 됐다. 이씨는 “경기악화로 명퇴를 해야 할 것 같아 한국을 떠나려 했는데, 오히려 악화된 경기에 발목이 잡혔다.”고 말했다. 미국으로 취업이민을 가려 했던 김모(34)씨는 2006년부터 미국 내 이민브로커를 통해 이민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최근 미국 경기가 악화되면서 김씨를 채용하려던 업체가 부도 나 이민에 실패했다. 미국 내 브로커는 연락을 끊었고 미국 변호사는 환불규정이 없다고 통보해 왔다. 결국 김씨는 수속 비용만 날렸다. 고환율과 세계경제 악화의 영향으로 이민 행렬이 얼어붙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인 한국전람의 ‘해외이민·투자 박람회’의 방문객은 2005년 3만 3773명에서 2008년 4만 3901명으로 늘었다. 갈수록 이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박람회에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기술이민 희망자가 73.06%로 가장 많았고, 사업이민 20.29%, 투자이민 16.38%, 은퇴이민 6.65% 등이었다. 하지만 27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실제로 해외이주신고서를 낸 사람은 2005년 6851명에서 올해 1979명으로 3분의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민박람회에는 갈수록 사람이 붐비는 반면, 이민절차에 필요한 서류인 해외이주신고서를 낸 사람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것은 해외이민을 계획하는 사람은 많은데 실제 이민 가는 사람은 줄어들었음을 보여 준다. 이민을 계획했다가 포기한 사람들은 대부분 고환율과 경기둔화로 인한 자산가치의 하락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47)씨는 캐나다 투자이민을 계획했으나 10억원 상당의 부동산이 팔리지 않아 결국 이민을 포기했다. 이씨의 경우 수억원대의 펀드와 주식까지 폭락하면서 캐나다에서 유학 중인 아들(16)을 귀국시켜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취업이민 역시 미국 기업들이 고용을 철회해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 충남 서산의 정유회사에 종사하는 이모(44)씨는 처가가 있는 버지니아의 옷수선 공장에 취업하는 조건으로 사설 이주공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고용주가 경기악화를 이유로 갑자기 올해 고용을 철회했다.K이주공사 관계자는 “최근처럼 미국 이민자가 줄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면서 “단순노동업체를 중심으로 미국 고용주들이 도산하거나 신규채용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구직난에 따른 취업이민 희망자가 늘어나면서 브로커의 횡포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천에 사는 황모(45·여)씨는 2005년 8월 H이주공사와 펜실베이니아 병원에 간호조무사로 취업하는 숙련공 취업이민 계약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취업이민 절차를 진행하던 업체가 문을 닫아 버려 황씨는 이미 지불한 2만 9000달러를 환불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주공사 쪽은 이를 거절했다. 황씨는 “나 같은 피해자만 70명에 이른다.”면서 “미국으로 이민 가면 두 아이도 취업고통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이제 어떡하냐.”고 호소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 多문화가 경쟁력이다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 多문화가 경쟁력이다

    지난 15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지하철 4호선 안산역 앞. 저녁 어스름, 네온사인에 하나둘 불이 켜지자 역앞의 거리에는 외국인들이 모여들어 강남의 중심가 못지않게 활기찼다. 대부분 인근 반월·시화공단에서 고단한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행렬은 500여m 떨어진 원곡본동 사무소까지 이어졌다. 왕중왕관점(王中王串店), 산동제일가(山東第一家) 등의 한자식 간판은 중국이나 동남아에 온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100여곳의 외국 음식점이 영업 중이며 200여곳의 외국 상점이 밀집해 있다. 각국 음식의 백화점인 셈이다. ●3명 중 2명은 외국인 ‘국경없는 마을’로 불리는 이곳만큼은 한국인이 외국인이다. 안산시에 등록된 외국인은 지난 4월말 현재 59개국 3만 2940명이며 원곡동에 밀집해 있다. 불법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6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원곡동에는 내국인이 2만 250명에 불과해 전체 주민의 60%가 외국인이다. 외국인 가운데 조선족 등 중국계가 67%를 차지한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몽골 등이 뒤를 잇는다. 원곡동이 국내 최대의 외국인 밀집지역이 된 것은 산업연수생제도가 도입된 1993년부터. 반월·시화공단과 가깝고 집값이 싼 이곳에 이들이 하나둘씩 정착하면서 밀집촌이 형성됐다. 초기에는 내·외국인간 갈등도 적지 않았으나 이제 공존하는 법을 배워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전문가와 주민들의 판단이다.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가 최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외국인이 거주하면서 불편한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56%가 “없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44%의 주민이 “불편하고 불안하다.”고 말해 이질감은 남아있다. 지난해 초 이곳에서 중국인에 의한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해 주민들이 불안에 떨기도 했다. ●원곡동은 다문화가 공존하는 곳 그렇지만 많은 주민은 이방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외국인들이 살면서 쓰는 돈이 지역경제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원곡동에 사는 성인 외국인 3만여명이 1명당 월 30만원을 생활비로 쓴다고 가정했을 때 매월 100억원가량의 돈이 지역에 풀린다.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이영자(47·여)씨는 “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주 고객이다. 일요일에는 전국 각지의 외국인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매상이 크게 오른다.”고 말했다. 원곡본동 임승원 동장도 “과거에는 주민들이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을 꺼리는 경향이 없지 않았으나 외국인들이 지역경제를 위해 나름대로 역할을 하면서 같은 주민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쌓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가 공존하는 원곡동에는 이곳만의 풍경이 존재한다. 식재료 등 물가가 전국에서 가장 싼 동네로 알려졌다. 상인들이 수입의 70∼80%를 고국에 송금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형편을 고려해 가급적 비싼 물건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시금치 한 묶음 1500원, 무 1개 1000원, 파 한묶음 1000원, 쇠고기와 생 삼겹살, 돼지갈비는 1근에 4000원씩 판매한다. 다른 지역보다 40∼50% 싼 가격이라고 상인들은 말했다. 이곳에 은행이 4개나 있는 것도 특이하다. 고국에 송금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토·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노래방 업소 기계에는 7개 나라의 노래가 입력돼 있는 것도 이곳만의 풍속이다. 이들도 한국인처럼 2차 후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물가 가장 싼 휴대전화 천국 PC방도 이들의 해방구이다. 시간당 500∼1000원을 받는 PC방에는 주말과 휴일, 외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렇다고 게임을 목적으로 찾는 것은 아니다. 게임은 주민등록번호 등을 입력하는 절차 때문에 외국인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대신 이곳에서 고국의 가족과 친구들을 화상 채팅이나 이메일을 통해 만난다.PC방 업주 김모(56)씨는 “가게 단골은 인도네시아인이다. 휴일에는 지방에 흩어져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사랑방처럼 모여 향수를 달래고 있다.”고 말했다. W미용실 주인 최소정(35·여)씨는 “머리를 깎을 때 국가 성향이 고스란히 나온다.”고 전했다. 태국 출신 사람들은 대충 손질해도 무난히 넘어가지만 무슬림 국가 사람들은 자기 맘에 쏙 들지 않으면 심하게 화를 내는 등 까다롭다. 원곡동은 또 휴대전화 천국이다. 한집 건너 하나씩 휴대전화 가게가 있다. 원곡동 주변에만 100여곳에 휴대전화 판매점이 성업 중이다. 한 휴대전화 판매점의 점원은 “외국인들은 첫 월급을 타면 맨 먼저 하는 게 휴대전화 사는 것”이라며 “구직 등 새로운 정보를 얻고 친구와 연락하기 위해선 휴대전화가 필수”라고 말했다. 매년 4월 이곳에서 열리는 ‘국경없는 마을배 안산월드컵’ 축구대회도 볼만하다. 올해는 12개국 출신 외국인 근로자들로 구성된 팀들이 참여, 수준높은 경기를 보여줬다. ●집값 상승·구직난에 시름 원곡동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조선족 동포에 대한 비자 발급이 완화된 이후 이들이 대거 몰려오면서 구직난과 집값 상승 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M부동산 이모(67)씨는 “외국인들이 세들어 사는 원룸은 월세가 올해 초만 해도 20만∼25만원이었는데 최근 30만원선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방글라데시인은 “두달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놀고 있는데 방세 낼 돈이 없고 물가도 올라 친구집에 얹혀 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안산시 관계자는 “얼마 전부터 원곡동 거주 외국인들이 인근 선부동으로 집을 옮기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선부동이 깨끗하고 주거 환경이 좋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외국인들이 이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원곡동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산시에는 결혼 이민자 수가 3353명(4월말 현재)에 이른다. 이들은 1018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이 중 424명은 안산시내 학교에 다니고 있다. 토착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주민통역지원센터 서민우(34) 상담팀장은 “이제 우리 사회는 다문화공동체로 가고 있고 외국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권과 자유를 가진 우리 사회의 일부”라고 단정했다. 안산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그래픽 김선영기자 ksy@seoul.co.kr
  •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3) 영향력 키우는 교민사회

    [최종찬기자의 시드니 뒤집어보기] (3) 영향력 키우는 교민사회

    # 사례1 미용원장 최미씨 시드니 김선영 미용실 원장인 최미(46)씨는 호주의 미용 한류를 이끌고 있는 교민 1.5세대다. 기능올림픽 수상자로 한국 유행의 메카인 명동 김선영 미용실의 베테랑 미용사였던 그녀는 팍팍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삶을 꿈꾸다 1989년 호주로 기술이민을 왔다. 그녀는 정착 초기에 ‘정신적 시차’로 많이 힘들었다. 미용실로 출근할 때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까마득한 후배들이 할 허드렛일까지 혼자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살기에 뻑뻑한 호주 교민들과 미용코드도 안 맞아 결국 한달 만에 미용실을 그만뒀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오기가 발동해 그녀는 다시 가위를 들었다. 같은 해 스승인 서울 명동의 김선영 원장을 찾아가 미용실 브랜드를 쓰게 해달라고 간청해 끝내 허락을 얻어냈다. 그리고 호주로 돌아와 미용실을 열고 선진 헤어비법을 발휘하면서 손님을 끌기 시작해 ‘성공 열매’를 얻게 됐다. 지금은 목 좋은 네 곳에 미용실을 두고 있으며 직원도 50여명에 달한다. 자신의 숙원인 미용학교도 만들어 후배 미용사를 양성하고 있다. 최 원장은 “손님은 하루평균 400명에 달한다.”며 “손님의 30%는 교민들이고 70%는 아시아계와 백인들”이라고 설명했다. # 사례2 로펌 변호사 김성호씨 시드니 도심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김성호(43)씨는 잘나가는 교민 1.5세대다. 그는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78년 중학교 2학년때 가족 모두가 멜번으로 이민 오면서 호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게 됐다. 당시 멜번의 한국인은 350명에 불과했고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했다. 거주지역과 학교에서도 한국인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외로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이용했다. 남들보다 몇 가마의 땀을 더 흘린 결과 호주사회에 빨리 적응하게 됐다.84년 시드니로 가족과 함께 이사한 김씨는 92년 뉴사우스웨일스대학에서 유기화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호주국립과학 기술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첨단 연구주제와 관련된 특허와 투자 전문 변호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2000년 시드니 테크놀로지대 법대에 들어가 다시 학구열을 불사른 끝에 마침내 꿈을 이뤘다. 김 변호사는 “한국인 고객을 상대로 민사와 무역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며 “유학생들과 위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들의 법적 문제에도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역사가 40년에 불과한 호주 교민사회가 척박한 환경에도 잘 자라는 유칼립투스처럼 호주대륙에 힘차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호주 방문자를 제외한 호주 교민의 수는 2006년 현재 5만 2763명이다. 유학생과 워킹홀리데이 비자 소지자까지 합치면 10만명이 넘는다. 호주 교민들은 6개주 가운데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에 가장 많이 산다. 전체 교민의 62%가 몰려 있다. 빅토리아는 11.9%로 그 다음이며 남부 호주(4.1%), 노던주(4.1%), 타스마니아(1.7%) 순이다. 시드니엔 코리아타운이 5곳 형성돼 있다. 라이드, 캔터베리, 버우드, 광역시드니, 스트라스필드가 그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스트라스필드다. 중심가 상권 70% 이상을 교민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민 역사 40년 이민자는 5만명 이들이 일년에 한 번 한 자리에 모인다.‘한국의 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작년엔 이스트우드 공원에서 열렸다.9월30일 알맞게 달궈진 남반구의 봄햇살이 나들이를 손짓하는 토요일, 푸른색 잔디가 눈시린 이곳에 9000여명의 ‘검은 머리’들이 모였다. 올해도 9월 마지막주에 이스트우드에서 열릴 예정이다. 앞서 9월22일부터 이틀 동안 시드니 도심 달링하버와 팜그로브 야외광장에서 한가위 축제가 열린다. 올해 처음 시도하는 행사로 이틀간 5만명의 관람객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달링하버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매일 몰리는 곳이므로 한국 알리기에 안성맞춤인 자리다. 호주 정·관계 인사, 외교사절 등 많은 귀빈들을 초청한다. 행사 첫날엔 꼬마 신랑신부의 전통결혼 가마행렬이 달링하버를 순회하는 길놀이를 시작으로 광장 중심무대선 축제 개막식과 난타 공연단의 특별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이어 한국 전통무용, 태권도 시범, 사물놀이, 강강술래, 아시아 민족 찬조공연이 진행된다. 특히 개막식의 피날레를 장식할 강강술래춤은 교민들과 호주인들이 함께 손잡고 친교를 기원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야외 광장 여기저기서 전통 도자기 제작시연, 연꽃 만들기 등 문화체험 행사도 진행되며 호주인들과 함께 제기차기, 윷놀이, 팔씨름 등 한국 전통민속놀이도 즐기게 된다. 교민사회가 이렇게 빨리 성장한 것은 교민들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다. 시드니의 신흥주거지 콩코드웨스트에 사는 이은석(43)씨는 “신이 내린 직장이란 공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2004년에 이민 왔다.”면서 “처음 1년간은 사업 아이템을 찾아 고생도 했지만 한국인의 근면함을 무기로 언어와 인종 장벽을 뚫고 지금은 홍보회사와 용역회사를 운영하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핑에 사는 김인구(49)씨도 “아이들 교육과 여유 있는 생활을 위해 메이저 신문사를 그만두고 사업이민으로 왔다.”며 “교포신문의 간부로 부지런히 일해 현재 이 신문의 경영상태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교민 사회 성장비결은 성실 특히 그동안 깊은 반목과 갈등으로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한인회도 세대교체의 열망을 실현해 젊은 회장을 뽑고 교민사회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일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성장한 교민사회가 앞으로 정치권까지 발을 넓힌다면 교민사회의 위상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현재 지방의회에 교포 두 명이 입성해 있다. 캔터베리 시의원인 남기성(58)씨와 스트라스필드 시의원인 권기범(45)씨가 이들이다. 똑똑하고 패기 있는 젊은 교포들이 가능한 한 많이 정치권에 진출해 교민들의 권익을 위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낸다면 교민사회의 앞날은 ‘쾌청의 기상도’를 보일 것이다. siinjc@seoul.co.kr
  • 곤살레스 美법무도 결국 사임

    미국 연방검사 무더기 해임 사태와 관련해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아온 알베르토 곤살레스(52)법무장관이 결국 사퇴했다. 곤살레스 장관은 27일 법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그는 “어제 조지 부시대통령을 만나 9월17일자로 장관직을 그만 두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CNN은 차기 법무장관으로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장관이 지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곤살레스 장관의 사임은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부시 대통령 최측근들의 릴레이 사퇴 행렬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미 언론들은 곤살레스 장관이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전 세계은행 총재, 칼 로브 백악관 정치담당 고문에 이어 부시 행정부에서 지난해 11월 이후 4번째로 중도하차한 최측근 고위인사라고 보도했다. 임기 17개월을 남겨 두고 가까운 지인들이 줄줄이 사퇴함에 따라 부시 대통령의 레임덕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곤살레스 장관은 1997년 부시의 고문으로 신임을 쌓은 뒤 2001년 백악관 입성 때 법률 고문으로 동행했다.2005년 법무장관에 발탁되면서 불법 이민자 후손으로 히스패닉계 사상 최고위 미국 관리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올초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연방검사들을 무더기로 해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줄곧 사퇴 압력을 받아 왔다. 지난 6월 상원 불신임 결의안은 민주당 의원이 전원 찬성표를 던졌음에도 공화당 의원들 대다수가 반대해 무산됐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선 양당 소속 의원들이 법무장관의 신뢰성과 업무수행능력 등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럼에도 당시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물고 있다.”며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분명히 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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