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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11월 안보리 진출… 긍지 갖자”­김 대통령

    ◎「청와대 오찬회동」 대화록/“유엔총회때 연설 하셔야죠… 북선 누가옵니까”­DJ/“지도자들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뒷받침을”­KT 김영삼 대통령은 23일 낮 새정치 국민회의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을 비롯한 여야대표와 전·현직 3부요인 등 24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했다. 다음은 윤여전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오찬회동 대화요지. ▲김대통령=옛 총독부건물을 헌 것은 국민 절대 다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그 건물은 사무실로 지은 것이지 박물관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우리 문화재 가운데 현재 그 건물에 있는 것은 5천여점이고 20여만점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새(임시)박물관을 짓고 있고 문화재 보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홍구 총리=정부가 홍보를 잘못한 부분도 있습니다.하나는 총독부 건물을 두고는 경복궁을 복원하지 못한다는 것,또하나는 따로 역사박물관을 짓고 있어 문화재 수장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보다 적극 알려야 했습니다. ▲김대통령=비가 많이 와서 대부분 해갈이 돼 다행입니다.전남지역에 90㎜가왔고 경북지역에도 10㎜가 왔으나 앞으로 더 올 것이라고 합니다. (김대중 위원장에게) 요즘 수고를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김위원장=(가볍게 목례를 한뒤)유엔총회때 가셔서 연설을 하셔야죠.10월인가요.북한에서는 누가 오게 됩니까. ▲김대통령=10월에 가는데 첫날 제가 연설을 하고 다음날 북한이 연설을 하는데 누가 오는지는 알수 없고 연설만 신청해 놓고 있습니다. (이기택 민주당 총재에게)요새 고생 많이 하시지요. ▲이총재=야당이 원래 그렇습니다.고생에는 이골이 났습니다.국가지도자들이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뒷받침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김대통령=(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에게)고희때 제가 생신을 차려드린 기억이 있는데 벌써 팔순이 넘으셨으니…. ▲이전총재=그때는 어려울때인데 성대하게 치러줘 정말 감사했습니다. ▲김대통령=그때 등산을 배웠습니다.처음에는 10명미만이 갔고 나중에는 50∼1백명으로 늘어났어요.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결심,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 시점입니다.조국광복을 위해 애쓴 분,그중에서도 들판에서 이름없이 사라진 분들을 생각할 때 광복 50주년은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광복은 통일을 성취해야만 달성됩니다.냉전이 종식됐다고 하지만 한반도 만은 냉전이 계속되는 불행한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6·25때 유엔 안보리 결의로 16개국이 참전,우리의 자유를 지켜줬는데 우리가 비상임이사국으로 오는 10월이나 11월 안보리에 진출하게 됩니다.우리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2차대전후 많은 신생국이 생겼지만 그중에서 한국은 전쟁의 참화로 가장 어려운 나라였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문민민주주의를 성취하고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됐습니다.세계에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이는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국민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1백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당시 우리 지도자들이 친일·친로로 갈라져 싸우다 결국 나라를 잃고 말았습니다.국론이 갈라져 나라를 잃은 것인데 지금도 힘이 있어야 나라를 지키고 평화도 지킬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한반도에서 우리가 이만큼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도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취임직후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에서 탈퇴,지난 2년여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임기중 어떻게 해서든 전쟁은 막아야 겠다는 각오아래 노력해왔습니다. 앞으로 변화와 개혁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갈 것입니다.광복절을 계기로 국민대화합을 위해 대사면을 단행했습니다.일반사면은 건국후 두번 있었는데 법무부에서 대상자 선정작업이 끝나면 정기국회의 동의를 거쳐 시행할 것입니다.대상은 1천만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변화와 개혁,세계화를 통해 일류국가를 만드는데 국민 모두가 동참하도록 해야합니다.우리의 경제력이 이만큼 컸기 때문에 국론분열만 없으면 세계 중심국가가 될수 있다는 점과 광복 5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러분의 협조를 바랍니다.부정부패척결은 앞으로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며 이번 사면에서도 그런 사람은 제외시켰습니다. 여러분이 애국적 견지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중심국가가 될수 있는기틀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고 국민들의 성원이 합쳐지면 반드시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나라를 물려 줄수 있게될 것으로 믿습니다.
  • “일류국가 건설 국민통합 협조를”/김 대통령

    ◎김대중씨 등 각계 원로 회동서 당부/세계화­개혁 계속 추진/대화합차원 10월 1천만명 일반사면 김영삼대통령은 23일 낮 청와대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창당준비위원장 등 여야 정당대표,전현직 국회의장·국무총리,그리고 김승곤광복회장 등 각계 지도자 24명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광복 50주년과 집권후반기 출범을 계기로 한 국민화합등 국정운영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올해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1백주년임을 상기시킨 뒤 『당시 우리 지도자들이 친일·친로로 갈라져 싸우다 결국 나라를 잃었지만 오늘날도 국론이 갈라지지 않고 힘이 있어야만 나라도 지키고 평화도 지킬 수 있다』고 말하고 『이제 국론분열만 없다면 세계 일류 중심국가가 될 수 있다』면서 국민통합과 국민동참을 위해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윤여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대통령은 『광복 50주년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것』이라고 강조하고 『완전한 광복은 통일을 이뤄야만 성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앞으로도 변화와 개혁을 꾸준히 추진할 것이며 부정부패척결 만큼은 결코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세계화와 변화·개혁을 통해 일류국가를 만드는데 국민 모두가 동참하도록 여러분들이 애국적 견지에서 도와달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광복절을 계기로 대화합을 위해 특별사면을 단행했으며 앞으로 정기국회의 동의를 얻어 1천만명으로 예상되는 사람에 대한 일반사면도 단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대통령과 김대중 위원장의 이날 만남은 지난 92년 8월 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회에서 여야대표회담을 가진 이후 3년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것으로 향후 여야관계 정립및 정국운영에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1시간10분동안 진행된 오찬에는 김위원장이외에 김승곤 광복회장,김계수 광복기념사업회장,황낙주 국회의장,이만섭 전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김덕주·이일규 전대법원장,이홍구 국무총리,이영덕·이회창·황인성·현승종·정원식·강영훈·노신영·신현확 전총리,김용준 헌법재판소장,조규광 전 헌법재판소장,김윤환 민자당 대표위원,이기택 민주당 총재,이철승·이민우·유치송 전 야당총재등이 참석했다.
  • 김대통령 「대화합 큰 정치」시동/오늘 김대중씨 등 원로초청 오찬

    ◎집권후반 국정운영에 협조당부 김영삼 대통령은 23일 낮 청와대에서 새정치국민회의(가칭)의 김대중창당준비위원장을 비롯한 여야정당대표 등 정계원로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임기후반을 맞아 국민대화합의 새정치를 펴나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힌 뒤 향후 정국운영방향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윤여전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김대통령이 김위원장을 포함한 여야정당대표와 전·현직 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헌법재판소장,전야당당수,김승곤 광복회장 등 29명을 23일 오찬에 초청했다고 밝히고 『이번 회동은 광복 50주년을 되새기고 김대통령의 임기후반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각계원로들을 만난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대변인은 김대통령이 원로들과의 오찬회동에 이어 김위원장을 별도로 만날 계획은 없느냐는 기자질문에 『별도의 회동이나 예우는 일체 계획된 게 없다』고 말하고 『오찬모임은 당초 17∼18일께로 계획돼 있었으나 윤관 대법원장의 중국방문으로 다소 늦춰졌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오찬 초청에 새정치국민회의 박지원 대변인은 『21일 김영구 정무1장관으로부터 오찬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으며 김대중 위원장은 국가적 정부행사에 대통령의 초청을 받은 만큼 이에 응하기로 했다』고 말했고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도 『대화합 차원에서 참석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와 박준규 최고고문,노재봉·이현재 전총리는 선약등의 이유로,김재순 전국회의장은 외유중이어서 불참의사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의 이날 만남은 14대 대선을 앞두고 지난 92년 8월 국회에서 여야대표회담을 가진 이후 3년만에 이뤄지는 것으로 단독회동은 아니지만 신당창당을 계기로 청와대측이 김위원장의 정치적 위상을 배려한 첫 공식자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광복 50주년의 진정한 뜻이 통일에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세계화 및 선진화를 달성하기 위해 과거와 같은 낡은 틀의 정치를 털어버리고 대통합과 화합의 새정치를 펼쳐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협조를 당부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 초청자는 김대중 위원장 이외에 김승곤 광복회장,김계수 광복기념사업회장,황낙주 국회의장,이만섭·박준규·김재순 전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김덕주·이일규 전대법원장,이홍구 국무총리,이영덕·이회창·황인성·현승종·정원식·노재봉·강영훈·이현재·노신영·신현확 전총리,김용준 헌법재판소장,조규광 전헌법재판소장,김윤환 민자당대표위원,이기택 민주당총재,김종필 자민련총재,이철승·이민우·유치송 전야당총재등 29명이다.
  • 「5대 개혁과제」 복귀용 구호 인상/DJ 회견 내용속의 「비논리」

    ◎정국 위기론­뚜렷한 근거없이 아전인수식 진단/민주당 내분­상당부분 자기책임… KT에 떠넘겨/통일의 주역­지역 등권론 외치며 민족통합 될까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18일 기자회견내용은 2년7개월만에 대국민약속을 뒤엎고 정계에 복귀,민주당을 깨고 신당을 창당해야만 하는 불가피성을 국민에게 이해시키기에 미흡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반응이다.「솔직하고 진솔한 자세」를 다짐했지만 정작 회견의 많은 부분은 아전인수식 변명으로 일관한 인상이 짙다는 지적이다. 김이사장은 정계은퇴 번복에 대한 사죄대목은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한마디로 넘어가고 은퇴당시와 현재의 상황변화가 엄청나 번복이 불가피하다는 점만 강조했다.현상황을 「심각한 국가적 위기」라고 진단하는 그는 『은퇴당시 기대대로 정부와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있었다면 정계에 복귀할 엄두도 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말하자면 정부와 야당인 민주당이 모두 잘못해 국가적 위기상황을 초래,그 해결을 위해 자신의 정계복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현시국을 국가적 위기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의 인식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런 상황이 곧바로 자신의 정계복귀를 정당화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각론으로 들어가 민주당의 난맥상과 관련,김이사장은 「9인9색」의 계파정치를 문제삼았다.그러나 그 원인의 대부분을 그 자신이 제공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즉 은퇴이후에도 권노갑 부총재를 대리인으로 하여 당무에 대한 수렴청정을 계속해왔으며 이것이 곧 이기택총재의 지도력 약화,민주당의 분란으로 연결돼왔다는 것이다. 이총재측은 『김이사장측이 이총재와 당을 흔들어 내분을 일으켜놓고 그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며 적반하장이라고 비난하고 있다.「한지붕밑 아홉가족」이 된 것도 김이사장의 원격조정을 위한 「분리·견제」전술의 결과라는 주장이다.또 총재를 「얼굴사장」으로 격하시키고 「오너」가 설쳐댄 결과 이총재가 대통령의 대화상대가 될 수 없었다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느냐고 따진다. 경기지사 선거패배의 책임을 묻는 것 또한 명분이 약하다는 분석이다.서울에서 승리한 것은 오로지 김이사장의 공로이고 경기도 패배는 이총재만의 책임이라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며 책임을 묻더라도 당헌·당규절차에 따라 전당대회를 통해 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전당대회에서의 폭력사태등 불상사가 우려된다고 했지만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일체 생략한 채 신당을 창당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이사장이 제시한 신당의 5대개혁과제에도 모순이 적지 않다.우선 젊은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를 표방했지만 정국을 「후(후)3김시대」로 역류시킨 그가 과연 이런 역할을 자임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또 개혁과제로 「단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의 주역」을 자임하고 나선 데 대해서도 지역등권론을 들고나와 지역분할구도를 더욱 강화시킨 그가 민족의 대통합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체적으로 김이사장이 제시한 신당의 개혁과제는 앞으로의 추진과정을 지켜봐야겠으나 자신의 정계복귀를 정당화하는 구호에 불과한 인상이라는 게정치권의 중론이다. ◎「대권 4수의 길」 DJ의 정당편력/87년 평민당 창당… 두번째 대권도전 고배/「꼬마 민주당」과 합당… 92년 대선 패배후 은퇴 「대권4수」의 길로 다시 들어선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40여년동안 숱한 정당생활을 거쳤다. 김이사장은 30살 때이던 지난 54년 목포에서 무소속 후보로 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원내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김영삼대통령이 25살의 나이로 최연소 당선기록을 세운 때였다.58년 4대 총선에 민주당후보로 나섰으나 낙선했고 5대 때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으나 5·16으로 며칠만에 내놓았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정당에 참여한 전력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광복직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좌익정당인 신민당에 잠시 참여했다.좌익에 환멸을 느껴 탈퇴했지만 이 경력은 그에게서 평생 「색깔론」의 꼬리를 떼어놓지 못하게 한 빌미가 됐다. DJ(김이사장)는 첫 소속정당인 민주당에 입당하면서부터 장 면박사의 총애를 받아 민주당 구파의 맥을 잇게 된다.60년 신구파의 대립으로 구파가 분당,신민당을 창당할 때 그는 민주당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5·16」으로 정치규제에 묶여 있던 인사들과 63년 민주당 재창당에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다.65년에는 민주당이 윤보선총재가 이끄는 민정당과 통합,민중당을 창당할 때 합당 중재역을 맡았다. 그는 67년 양대 선거에 대비해 야권 통합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민중당과 신한당이 통합된 신민당에 참여했다.김대통령과의 경쟁은 원내총무 경선에서 처음 시작됐고 그는 패배했다. 이어 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대선 첫 패배를 맛보게 된다.72년 유신이후 망명생활을 하다 73년 일본에서 납치사건을 겪고부터 「재야」에 몸담게 된다.80년 「서울의 봄」 때도 김영삼총재의 신민당에 입당하지 않고 재야에 남아있었다. 80년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은뒤 무기징역,20년형으로 감형되는 과정을 거쳐 82년 도미,민주화 투쟁을 계속했다. 3년 뒤인 85년 2·12 총선 직전 귀국,김대통령과 함께 민추협공동의장 자격으로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며 정치재개의 발판을 마련했다. 87년 이른바 「이민우구상」 등과 관련,김대통령과 함께 신민당의 대다수 의원들을 이끌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 문제로 김대통령과 결별,제갈길로 나섰다.이 때 평민당을 창당,대선에 두번째 도전해 다시 실패하지만 이듬해 여소야대 정국아래 제1야당의 총재가 됐다.그러나 90년 「3당통합」으로 하루아침에 소수야당의 총재로 전락했고 몇차례의 재야인사들을 흡수하면서 당명을 신민당으로 바꾸었다.이어 14대 총선에 대비,이기택 총재의 「꼬마민주당」과 합당,이총재와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듬 해인 92년 대통령선거에 세번째 도전하게 되지만 또다시 패배한 뒤 93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 민주당/신당창당설로 뒤숭숭

    ◎KT등 반DJ파 제거 노린 승부수/당내반발 만만찮아 실현은 미지수/16일 김대중씨 회견… 중대기로 될듯 DJ(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신당창당설로 민주당이 중대기로에 처해 있다.동교동계가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한편으로 신당창당을 비판하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다.정치권도 정계개편의 서막으로 이어질지 온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신당 창당은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개연성이 많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결국 신당은 김이사장의 의중에 달려 있다.9일로 예정했던 제주 휴가를 돌연 취소한 김이사장의 「주말구상」이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김이사장은 오는 16일쯤 자신의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신당 구상은 DJ가 6·27지방선거기간중 반DJ 깃발을 든 이기택 총재 및 이부영·노무현 부총재등과 결별하기로 마음을 굳히면서 여러 방안의 하나로 검토돼 왔다.이 과정에서 지금의 단일지도체제 유지와 이총재 배제를 전제로 단일성 집단지도체제·공동대표제·3인 지도체제·당고문체제등 많은 시나리오가 그것들이다. 이종찬·정대철 고문중 한명을 차기총재로 한다든가 김상현 고문을 이들중 한명과 함께 공동대표로 할 것이라는 얘기들이 당사를 맴돌았다. ○…신당문제는 지난달 30일 서울 서교호텔에서 열린 동교동계 참모회의에서 처음 거론됐다.이 자리에는 DJ와 권노갑·김근태 부총재,정대철·이종찬 고문,이해찬 서울시부시장,임채정 의원등이 참석했고 임의원이 문제제기를 했다고 한다.그러나 김부총재와 정고문은 명분이 약하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했고 나머지 4명은 찬성했다는 것이다.이때부터 신당설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김이사장의 일부 측근들은 늦어도 10월초까지 매듭짓는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흘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아태재단을 축으로 민자당과 자민련의 수도권지역 의원을 비롯,전직 고위공무원,재계·법조계·학계 인사,군장성출신 등 구여권세력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포섭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DJ는 특히 신당의 총선승리에 최선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신당의 고문을 맡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으며 신당의 대표에는 이종찬 고문을 사실상확정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는 당내인사들에 대한 「줄서기」작업도 본격화해 이총재계라 하더라도 수도권출신 의원들은 모두 신당행에 동참할 것으로 판단,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총재는 「제2의 이민우」로,민주당은 미니정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지난 87년 「이민우 파동」 때 양 김(김영삼·김대중)은 신민당을 버리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동교동계 내부에서도 반론이 적지 않다.신당은 DJ가 대권도전을 위해 또다시 사당을 만드는 것이고 「호남당」의 색채를 더욱 뚜렷이 한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명분도 약하다고 지적한다.특히 몇몇 호남출신 의원들은 『국민들이 민주당에 표를 줬지 신당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김상현 고문은 『신당창당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전제,『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결정에 따르는게 순리』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김원기 부총재도 『신당문제를 논의하는데 참여한 적이 없다』고 가세했다.두사람은 임시국회가 끝난뒤 당권도전을 공식선언하겠다고 밝혔다. 김근태 부총재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도 신당창당은 저지되어야 한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정대철고문도 『신당문제로 DJ와 논의한 적은 없으나 정도는 아니다』라고 역시 반대입장을 개진했다. 개혁그룹은 신당설을 이총재와 김상현고문을 겨냥한 「협박용」으로 해석한다. ○…이총재측은 신당창당에 몹시 비판적이다.하지만 이총재는 이날 측근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그러나 『동교동계가 당을 떠나면 당을 지키는 명분이 생긴다.비호남권인사 영입작업을 잘하면 이총재가 정치적 구심점이 될 수도 있다』고 오히려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총재는 이와 관련,『DJ가 민주당에 복귀할 경우 반DJ인사들의 돌출행동등 장애물이 많고 구여권세력의 결집을 위해서는 간판으로 볼때 민주당보다는 신당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신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나름의 대책을 강구중임을 암시했다.그러나 이총재 진영은 아직까지 「벼랑끝」은 아니라는 생각이다(강창성 의원).자파세력 결집만 확실히 하면 동교동측과의 「마지막 협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일각에서는 총재에서 공동대표로 「강등」되더라도 타협의 여지는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 민주 분당 급속 가시화/동교계 “호남·수도권 중심 신당검토”

    ◎이 총재측,비호남권 결집 착수 지방선거 이전부터 예상됐던 민주당의 내부 갈등에 따른 분당이 급속히 가시화하고 있다. 오는 8월 정기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최대계파인 동교동계가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을 따르는 호남권 및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신당창당을 본격 검토하고 있고 이에 맞서 이기택 총재측은 비호남권 세력결집에 나설 태세여서 정계 및 야권재편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동교동계 일각에서는 지역분할구도가 심화된 가운데 신당을 창당한다면 「호남당」이나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를 위한 사당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강하게 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어 아직 신당창당은 유동적이다. 김이사장은 그러나 신당이 「지역당」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 자신의 정계복귀에 피해를 줄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이종찬·정대철 고문과 김원기 부총재 및 비주류 김상현 고문간에 후보단일화를 이뤄 전당대회를 치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으며 김이사장은 이고문을 의중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동교동계의 권노갑 부총재는 8일 『더이상 이총재와 당을 함께 할 수 없다는게 김이사장의 확고한 방침』이라면서 『현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중의 하나로 신당창당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박지원 대변인도 『동교동계는 전당대회에서 경선을 통해 당권을 장악하는 방법과 신당을 창당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중』이라면서 『신당창당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총재 진영은 동교동계의 신당창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비호남권과 개혁그룹등을 결집해 민주당을 재건하는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총재는 이와 관련,『지금의 상황은 지난 87년 「이민우파동」때와는 분명 사정이 다르다』며 『아직은 좀더 지켜보겠다』면서 구체적인 언급을 유보했으며 측근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동교동계가 우리와 결별하기 위해 검토중인 신당창당은 결코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신당창당을 강행할 경우 비호남권의 강력한 야당을 구축하는 방향으로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 중대안성캠퍼스 연극과/탤런트 이민우 수석합격(조약돌)

    ○…탤런트 이민우군(본명 이동민·19·서울 오산고3)이 3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중앙대 안성캠퍼스 연극학과(연기전공)에 수석으로 합격해 화제. 중앙대는 20일 95학년도 입시사정결과 이군이 1천점 만점에 8백77.04점을 얻어 25명 모집에 9백49명이 지원,대학내 최고경쟁률을 보인 이 학과에 최고점수로 합격했다고 발표. 아역 탤런트로 연기생활을 시작한 이군은 최근 방영을 마친 KBS 일일드라마 「당신이 그리워질때」 등 여러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 범주류 “파경”… 「새짝」 찾기 나설듯/민주당의 향후 진로

    ◎조기 전당대회로 홀로서기 모색/KT/“KT 「제2 이민우」 만들겠다” 별러/동교/“감정골 너무 깊다”… 일부선 분당 점치기도 대여투쟁의 노선을 둘러싼 민주당의 갈등은 28일 최고위원회의의 결론과 29일 의원총회의 추인으로 일시 봉합되기는 했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이번 사태로 각 계파,특히 동교동계와 이기택 대표쪽 사이의 앙금은 「갈데까지 간」 양상이며 상황의 진전에 따라서는 제2,제3의 내분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앞으로의 민주당 진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진다.일부에서는 『분당 시나리오의 서곡이 아니냐』고까지 말한다. 이날 의총에서도 발언에 나선 15명의 의원 대부분이 「최고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빠른시일안에 국회에 등원할 것을 주장했다.주류·비주류 가릴 것 없이 이대표의 투쟁노선에 불만을 터뜨린 것에 다름아니다. 삐꺽거리고 있는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이라는 얘기도 된다. 무엇보다 최고위원회의 결정이 뇌관 역할을 하고 있다.우선 민자당이 주요 안건을 강행처리하려고 할때 이대표가 내릴 「결단」의 풀이부터가 다르다.이대표 쪽은 결단이 원내복귀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12·12」 장외투쟁은 다음달 12일까지 지속된다는 점을 강조한다.그러나 많은 최고위원들은 민자당의 강행처리는 곧 국회등원이라고 받아들인다.두번째는 주요 안건의 범주이다.이대표 쪽은 새해 예산안,WTO 가입비준 동의안과 추곡수매등 세가지로 한정하고 있으나 대다수 의원들은 『중요 민생법안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고개를 젓고 있다. 이래저래 민주당은 민자당이 강행처리 방침을 세운다면 또 한차례 폭풍권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특히 민자당이 이들 안건을 처리하겠다고 애드벌룬을 띄울 때마다 민주당은 진의 파악을 위해 우왕좌왕할 것이 뻔하다. 결국 민주당은 다음주 국회등원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지만 이것은 바로 비등점을 향해 치닫는 「갈등의 전주곡」일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또한 이번 갈등은 곪을대로 곪은 이대표와 동교동계의 불화를 확인한 계기가 됐으며 당연히 민주당의 당권및 대권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전당대회의 조기개최가 현실화될 공산도 크다. 그전처럼 이대표와 동교동계의 협력관계는 이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범주류의 와해」를 의미한다.각자 제갈길로 나간다는 뜻이다.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면서까지 홀로서기에 본격 시동을 건 이대표는 「12·12」투쟁 주도로 야당지도자로서의 이미지 제고와 지도력 회복에 성공한 만큼 더 이상 「고용사장」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생각이다.이번 투쟁에 적극 동참한 개혁모임의 계속적인 협조를 이끌어내고 사조직인 통일산하회를 중심으로 영남권과 중부권의 지지를 끌어모으면 「해볼만한 싸움」이라는 것이다.그는 김대중씨가 「장외」에 있는 현실도 충분히 활용할 심산 같다. 하지만 동교동계가 생각하고 있는 「주판알」은 너무 다르다.김대중씨에게 참기 힘든 무례를 범한 이대표와의 신뢰는 이제 깨졌으며 그는 결국 「제2의 이민우」가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독자후보를 내든지 제3의 인물을 내든지 여하튼 이대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조기 전당대회도 불사한다는 쪽으로 내부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비주류 수장인 김상현고문은 이런 갈등을 십분 활용,어느 때 보다 당권 장악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결국 민주당은 앞으로 「어제의 적이 오늘은 친구」가 되는 복잡한 양상을 띠며 뜨거운 겨울나기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의원총회 주변/DJ비난 발언에 고함·몸싸움/동교계 “등원”­개혁모임 “장외” 주장 민주당은 29일 의원총회를 열어 다음달 12일까지 「12·12사건」 관련자의 기소를 위해 장외투쟁을 계속하기로 결의했다.겉으로는 전날 최고위원들이 마라톤 회의 끝에 마련한 결론을 추인하는 모양을 갖춘 셈이다.그러나 이날 추인은 사실상 그동안 국회등원을 주장해 온 동교동계와 비주류측의 묵시적 양해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전날 최고위원회의의 결론 가운데 민자당이 주요현안을 강행처리 하려 할 때 내릴 이기택 대표의 결단이 곧 등원이라는 전제 또는 기대 아래 이뤄진 추인인 것이다.따라서 이날결의는 「장외투쟁 계속」 보다는 「결단을 통한 등원」에 무게를 두고 있어 등원문제를 둘러싼 제2의 내분을 유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오10시에 시작된 이날 총회는 2시간40분동안 무려 15명의 의원이 발언에 나서 등원문제등 「12·12투쟁」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전개.특히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등원촉구발언을 둘러싸고 일부 의원들이 심한 몸싸움까지 벌이는 등 험악한 장면도 연출. 두번째 발언자로 나선 「개혁모임」소속의 제정구 의원은 김이사장의 발언에 대해 『하나의 밀알도 때와 장소를 가려 뿌려야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법』이라면서 『김이사장의 등원촉구는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비난.제의원은 이어 『김이사장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우리당의 분열을 심화시킨 결과를 가져 왔다』고 지적하고 『김이사장의 첫 실수』라고 공격. 김이사장에 대한 제의원의 비난이 계속되자 동교동계 의원들은 일제히 『발언 그만해』『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고 박광태의원은 단상으로 달려가 제의원을심하게 밀치며 발언을 제지. ○…이날 회의에서 이희천·오탄·박상천·박태영·한화갑의원 등은 즉각 등원할 것을 주장.반면 「개혁모임」의 장영달의원과 김인곤의원은 장외투쟁을 계속할 것을 주장해 대조. 이희천의원은 『농민들이 추곡수매동의에 대한 우리 당의 역할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면서 즉각 등원할 것을 주장.이에 오탄의원도 『총회의 의결을 통해 즉각 등원하자』고 호응.율사출신인 박상천의원도 『여당이 지자제법 개정안과 민간운동지원법제정안,통합선거법개정안등 악법을 기습처리할 우려가 크다』면서 등원을 촉구.또 한화갑의원은 『6·29때 처럼 국민들의 지지가 완전히 모아지지 않았다』면서 『단칼로 끝내려 해서는 안된다』고 원내·외 병행투쟁을 주장.이밖에 임복진의원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악기를 드는 법이 있느냐』면서 『지휘석에 선 이기택대표는 유감스럽게도 손에 악기를 들었다』고 이대표의 의원직 사퇴행위를 간접 비난. 이에 맞서 홍사덕·이해찬의원 등은 『최고회의의 결론에 안도한다』면서 『이제 부천집회를 성공시키기 위해 당력을 모을 때』라고 내분 중단을 촉구. 한편 이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동교동계와의 불화설을 의식한 듯,『12·12투쟁에 당권이나 정략차원의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
  • 노 전대통령/“「12·12 논란」 관심없다”

    ◎어제 당정회모임서 심경 밝혀/“역사는 거스를수 없는 물결/현정부 잘하니 힘껏 도와야” 노태우 전대통령이 「지난 역사」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12·12사건」 기소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18일 서울 플라자호텔에 헌정회 원로들을 초청,오찬을 나누면서다. 이날 모임은 노전대통령이 지난 1월 헌정회의 원로자문회의 의장을 맡은 뒤 미뤄왔던 상견례를 겸한 정계원로들과의 회동이었다. 최근 입주를 마친 대구 지묘동 아파트에 머물다 이날 서울에 올라온 노전대통령은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약속시간인 낮12시 정각 오찬장에 들어섰다. 최근 변호사개업을 한 정해창 전비서실장과 손주환 전정무수석이 수행했다. 노전대통령은 야당의 「12·12 기소투쟁」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들에게 『관심없다.지나간 일이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완곡하게 드러냈다. 이어 미리 와있던 윤치영 전공화당의장,안호상 전문교부장관,백남억 전공화당의장,윤길중 전민정당대표,이민우 전신민당총재,김주인 헌정회장등 15명의 참석자들과 악수를나눈 뒤 오찬인사말을 시작했다. 「12·12」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을 의식한듯 노전대통령은 『사회일각에서 현대사를 왜곡,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분명히 역사는 도도히 흐르는 물결이며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나라 헌정사를 잘 지켜준 선배들 덕에 오늘이 있다』는 요지로 인사를 마친 노전대통령은 『나는 호가 없으나 주변에서는 중용을 지키는 집이라면서 용당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일부 참석자들이 『재임 때 「물태우」 소리를 들었으니 수당도 괜찮겠다』고 농을 건넨 뒤 『그러나 물도 고요한 중용을 의미한다』고 치켜 세우자 노대통령은 웃으면서 화제를 현실정치로 돌렸다. 『재임 때 클린턴 아칸소주지사의 방문을 받고 헌칠한 인물을 칭찬해 주었더니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전화로 감사를 표하더라』고 밝히고 『정상외교란 말한마디부터 중요한 것이며 김영삼 대통령이 이를 잘하고 있으니 선배들이 많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 「10·26」 15주 대대적 추도식

    ◎전대통령·총리­정당대표 등 거물급 대거 참석/고문직 수락한 김대중씨,행사참석은 “사양” 26일 상오 11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박정희 전대통령의 묘소에는 여야 정치권을 비롯,각계의 전·현직 거물급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박전대통령의 15주기 추도식을 위해서이다. 지난 해까지는 「제3공화국」 인사들의 친목모임인 「민족중흥동지회」(회장 백남억) 주최로 조용히 치러졌던 박전대통령 추모 행사는 지난 4월 동지회 총회의 결의에 따라 올해는 「범국민적 추도식」으로 변경됐다.당연히 참석대상자들의 면면도 각계를 망라하게 됐다. 79년 국장 때 집행위원장을 맡은 신현확 전국무총리가 추도위원장을 맡아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들을 고문으로 위촉,참석을 약속받았다.이기택 민주당대표는 본인이 고사해 빠졌지만 김종필·김동길·박찬종·이종찬씨등 여야정당대표들도 모두 고문직을 수락했고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도 다른 일정을 내세워 행사에는 참석할 수 없다고 했지만 고문직은 수락했다. 이들을 포함,김재순·강영훈·김덕주씨등 전직 3부요인과 이철승·이민우씨등 전직정당대표,최종현 선경그룹회장등 재계인사,김수환 추기경·한경직목사·탄성스님등 종교계 원로등 모두 49명이 고문으로 위촉돼 있다. 박전대통령과 정치적 신조를 달리했거나 적어도 무관심 그룹에 포함돼 있던 각계 원로들까지 자리를 함께 하는데 대해 추도위측은 『79년 치러진 고인의 국장을 기준으로 추도식 참가인사들을 구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 주최측은 초청장에서 「어른의 위대한 치적 속에 살면서도 그 치적에 걸맞게 모시지 못하는 우리들…」이라는 표현으로 이번 추도식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백남억회장도 미리 배포한 식사에서 『오늘날의 우리 국력을 배양해 주신 그 어른의 높은 경륜과 탁월하신 영도력』이라고 박전대통령의 업적을 기렸다. 그 무렵 역사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최규하 전대통령도 『남북관계가 복잡 미묘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 국가안전을 위한 그 분의 철석같은 의지와 경륜을 그린다』는 요지의 추도사를 준비해 놓았다. 반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은 공식적발언을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중흥동지회 명예회장인 민자당의 김종필대표는 『겨울이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세한후 지송청)고 고인의 「지도력」을 기리는 인사말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의 인식은 최근 잇따른 대형 사고의 근원을 「부실한 개발독재 정권의 유산」으로 여기고 있는 현정권 핵심인사들의 생각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도 사실이다.
  • 「박 전대통령 재평가」 방향에 촉각

    ◎15주기 대규모 추도식 추진 안팍/전현직 요인 망라… 민주·공화계 시각차 뚜렷 최규하·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과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박정희 전대통령의 추도위원회 고문직을 수락한 것은 박전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의미하는 것일까. 현실정치에서 한걸음 물러난 자리에 있으면서도 현실정치 무대에서 적지않은 무게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지난날의 상이한 정치적 족적에도 불구,추도위 고문직을 일제히 수락한 배경은 무엇일까. 민자당 김종필대표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민족중흥동지회(회장 백남억)는 그동안 유관단체와 공동으로 박전대통령의 추모식을 조촐히 치러왔으나 오는 26일의 15주기 추도식은 추모위를 구성,범국민적 행사로 치르기로 지난 4월 총회에서 결정했다.그리고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박전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해왔고 5·16 기념행사에 주빈역을 해온 김대표는 전직대통령들과 김이사장등을 추도위에 「영입」함으로써 「범국민적」 추도의 모양을 갖추는데 일단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신현확전총리가 추모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79년 「10·26」후 국장집행위원장을 지냈기 때문이며 추모위는 전현직대통령과 3부요인,정당대표등 42명의 고문과 당시 장례위원을 맡았던 6백56명가운데 생존자등을 중심으로 8백26명의 위원을 선정했다.이에따라 윤치영 이철승 유치송 이민우 고흥문씨등 정계원로와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 이종찬의원등이 전직 정당대표자격으로,김대표와 이기택민주당대표 박찬종·김동길신민당공동대표가 현직 정당대표로 고문에 포함됐으며 김상협 강영훈씨등도 전직 총리자격으로 위촉됐다. 민자당 일각에서는 이번 추모식 행사를 계기로 김종필대표와 김대중씨의 회동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지난번 대선을 앞두고 박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던 김이사장은 최근의 정치적 행보 확장의 연장선상에서,지난해 「기승전결」론으로 김영삼대통령의 「5·16은 쿠데타」라는 역사규정에 이의를 제기했던 김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3공」의 정치이념을 정당화하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다는 얘기다. 물론 민주계의 한 당직자는 『추도는 추도일뿐 민주화를 선택한 국민이 유신으로 얼룩진 지난날을 오늘의 좌표로 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그분들도 잘 알것』이라고 추도식의 의미를 축소했다.그러나 공화계의 한 의원은 『어제는 오늘의 어머니』라는 김대표의 말을 인용한뒤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포용을 통해 내일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시각차를 드러냈다.
  • 「조문」·「주사파」 이념논쟁 계기/보수목소리 높아간다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조문논쟁과 박홍서강대총장의 「주사파」배후 발언,6·25관련문서 공개등 일련의 상황이 정치권에 남북관계와 관련한 이념적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일단은 북한을 보다 냉정히 바라보고 남북관계의 한계를 명확히 긋자는 보수 쪽이 논쟁의 기선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그것이 현재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사회 여론의 대체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최근들어 진보,혹은 좌경으로 비쳐지는 세력에 대한 이들의 공세는 한층 거칠어지고 있다.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는 지난 25일 김영삼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근래에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냉각되는 것은 「주사파」폭력세력이 만연하게 만든데 대한 비판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사상적으로 의혹이 있는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경질해야 한다』고까지 나왔다. 지난 16일 이철승·민관식·이민우·유치송씨등 과거 정치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자유민주 민족회의」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조선노동당」의 하층세력이 문화·언론·학계·종교·노동계등 각분야에 침투,「사회주의 혁명론」으로 우리의 건국이념을 송두리째 말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서 『김일성 독재체제와 반민족 노선을 계승하는 자와는 남북정상회담을 배격한다』고 강경한 대북관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정부·여당내의 강경보수세력과 장외의 남북대화 반대세력이 정치적 입지강화를 위해 매카시즘과 공안기류를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김일성의 사망 후 6·25전쟁 관련문서 공개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총체적인 목적의식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민자당은 물론 민주당의 이러한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박범진대변인은 『남북정상 회담 때문에 문서의 공개를 미뤄왔다가 이번에 내놓은 것이 수구세력의 기득권 강화라고 보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김일성주의를 신봉한다고 밝히는 주사파를 비판하는게 어떻게 수구보수냐』고 공박 했다. 신경식국회문공위원장도 『낡은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주사파를 진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보수쪽의 지나친 주장에는 민자당도 거리를 두고 있다. 박대변인은 헌정회의 청와대 특정인사 거명에 대해 『너무 노골적인 주장』이라고 못마땅해 했다. 한편에서는 최근 보수 쪽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일종의 반작용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재야성향의 정치학자 출신으로 민자당에 들어온 손학규부대변인은 『70년대까지는 숨죽여 지냈던 진보세력이 80년대 들어와 민주주의와 통일이라는 가치를 우리사회에 착근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그 역할의 틈새에서 주사파나 과격노동운동등 사회통합을 해치는 세력도 자리잡게 됐다』면서 『그에 맞서 80년대 이후 눌려있던 보수세력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며,이는 사회를 균형있게 중심잡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 민주 국회상위장­특위장­사무총장 프로필

    ◎김덕규 행정경제위/말솜씨 좋은 외유내강형 3선 재주와 말솜씨가 빼어난 외유내강형의 3선의원. 6·3세대로 구신민당 송원영원내총무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제11대 때 민한당의 전국구 의원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발발이」란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지역구 관리에 열성적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야당사무총장을 무난히 수행한 것이 이번 발탁의 배경이라는 관측. 부인 이정이(51)씨와 사이에 2남. ▲전북 무주(53) ▲고대정외과졸 ▲11·13·14대 의원 ◎이영권 교육위/교수출신 집념형… 지자에 밝아 80년 신군부가 득세하자 광운대 교수을 떠나 민권당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당시 전두환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외곬수라는 얘기를 듣고 있으나 집념 하나만은 알아준다는 평가. 당 지자제특위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지방자치문제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당내 비주류로 김상현고문과 친하며 이번 국회직 인선에서도 비주류몫으로 상임위원장을 맡았다는 것이 정설. 부인 오금련씨(55)와 사이에 1남. ▲전남 장흥(58) ▲조선대 법대졸 ▲민권당대변인 ▲12·13·14대 의원 ▲민주당 전남지부장·당무위원 ◎박상천 보사위원장/정연한 논리·예리한 분석 강점 검사출신의 논리가 정연한 재선의원.민자당의 박희태법사위원장과 고시 13회 동기로 13대 때는 두사람이 여야 대변인으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용호상박의 입씨름을 벌이기도.탁월한 법률지식 못지 않게 정치감각도 수준급. 현안에 대한 분석이 예리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소신이 너무 강하고 지나치게 다혈질이라는 지적. 부인 김금자씨(45)와 사이에 1남2녀. ▲전남 고흥(56) ▲서울 법대 졸 ▲순천지청장 ▲13·14대의원 ▲신민당 대변인 ▲국회법률특위간사 ◎조순승 상공자원위/진솔한 성격에 당내신망 높아 미국 미시간대 정치학박사 출신의 야당내 외교통일문제 전문가.미국에서 오래 교수생활을 하다 13대 총선에서 김대중 당시 평민당총재의 권유로 고향인 전남 구례·승주에서 당선된 재선의원. 소탈한 외모대로 담백하고 진솔한 성격으로 당내에서 두루 신망이 높다.미국 조야에 지인이 많아 대미통상문제를풀어 나가는데 역할이 기대된다는 평가.부인 김덕애씨(64)와의 사이에 1남1녀. ▲전남 승주(65) ▲서울대 정치학과졸 정치학박사 ▲미 미조리대 교수 ▲13·14대 의원 ▲민주당 통일국제위원장 ◎홍사덕 노동환경위/이지적 풍모의 「차세대 정치인」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능란한 화술이 돋보이는 3선.중앙일보 기자출신으로 제12대 때는 신민당 대변인으로 특유의 정치적 감각을 발휘,이민우총재의 「삼양동정치」를 좌우한다는 평판속에 양금의 눈총을 받기도.13대 때는 무소속으로 서울 강남을에서 출마,낙선했으나 14대에서 설욕하는 저력을 보이며 차세대 정치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부인 임경미씨(51)와 사이에 1남2녀. ▲경북 영주(51) ▲서울대 외교학과졸 ▲한국기자협회부회장 ▲11·12·14대 의원 ▲신민당대변인 ▲구민주당부총재 ◎장경우 체신과학위/인선직전 입당… 실리밝은 3선 27일 밤 민주당 전격입당으로 상임위원장을 차지할 정도로 실리에 밝은 3선.막판까지 통합신당의 원내총무직과 민주당 상임위원장직을 저울질 하다 민주당쪽을택했다. 제11대 때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13·14대 안산·옹진에서 연속 당선.지난 92년 민자당 대통령후보경선 때 이종찬후보진영에 가담,이의원과 함께 새한국당을 창당했으나 끝내 이의원 곁을 떠났다. 부인 김수복씨(47)와의 사이에 3남. ▲경기 시흥(52) ▲고대 경영대졸 ▲11·13·14대의원 ▲민자당 제1사무부총장 ▲새한국당 사무총장 ◎최락도 사무총장/원만한 성격·논리 대응력 겸비 모나지 않은 성격이면서도 논리적 대응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3선의원.특정 계보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스타일. 두번째 출마한 11대 총선에서 아깝게 낙선하자 득표가 저조했던 지역에서 리어카행상을 하며 선거운동을 벌인 집념의 정치인. 3군데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한 학구파.부인 강금순여사(56)와 사이에 2남2녀. ▲전북 김제(56) ▲중앙대 법대 졸 ▲5공특위 간사 ▲민주당 전북도지부장 ▲민주당 당기위원장 ▲12·13·14대 의원 ◎이우정 여성특위/인권·여송운동 헌신 재야 출신 인권운동과 여성해방운동에 평생을 바쳐온재야출신 원로이면서도 대인관계가 원만하다.고령에도 불구,아직도 목소리가 앳되어 인기. 70년대 3·1구국선언등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초대 여성단체연합회장을 역임하는등 여성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아 신설된 국회여성특위 위원장감으로는 최적격이라는 평가.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과 두터운 교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14대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신소설 「자유종」의 작가인 이해조씨의 손녀로 독신이다. ▲경기 포천출신(71) ▲한신대졸 ▲서울여대교수 ▲여성단체연합회장 ▲신민당수석최고위원 ▲민주당최고위원·당무위원
  • 정계원로들 목소리 낸다/“대화합” 분위기 맞물려 관심

    ◎신당추진세속 「DJ회동」 돌출/박준규씨/「청와대독대」이후 행보에 촉각/김재순씨/DJ 북핵발언 비난,복귀 경계/이철승씨 정계 원로들이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해 개혁의 열풍속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계를 떠나 「조용히」 지내오던 이 원로들이 최근들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이같은 변화는 김영삼대통령의 「대화합」내지 「소외인사 감싸기」분위기와 맞물려 이들의 재기여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야당시절 양김씨와 경쟁하던 이철승전신민당대표최고위원은 광복후 우익민족운동가들의 모임인 건국애국단체총연합회의 공동의장을 맡아 보수우익성향의 원로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는 한국정책연구회가 펴내는 6월호 「민주정론」에 현시국을 『6·25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진단하는등 각종 여론매체를 통해 우익계의 소신을 아낌없이 피력해오고 있다.이 자리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의 오류에 대해 핵주권포기를 꼽고 『남북평화협상은 인도주의 인권옹호,반핵,경제협력의 순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나아가 제2의 6·25를 피하기 위해 ▲해이된 반공의식 강화 ▲안보대책기구의 범국민적인 기구로의 확대 ▲통일문제의 초당적 대처 ▲북한의 대남통일전선전술을 막기 위한 「역통일전선전략」개발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이민우전신민당총재등 원로정객이나 헌정회자문위원등 과거 우익민족운동을 이끌어온 인사들과도 자주 접촉하며 정국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그는 지난 10일 헌정회간부들과 청와대오찬에 참석,안보문제에 관한 소신을 건의할 생각이었으나 개인적인 일로 불참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민주정론」지에 특히 최근 북핵과 관련한 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의 발언을 강력히 비난하는 내용을 실은데 이어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를 경계했다. 지난해 「격화소양」(구두를 신고 가려운 곳을 긁음)이란 개혁에 대한 비판론을 남기고 정계를 은퇴한 박준규전국회의장은 「정치성향」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재산파동때 쌓인 감정의 앙금을 그대로 드러내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신당을 준비하고 있다는풍문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이러한 소문은 지난 21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비밀회동했다는 얘기와 겹쳐 정가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동안 칩거생활을 해오던 그는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에 개인사무실을 내면서부터 부쩍 바빠졌다.자서전 준비로 기정사실화되기도 한 「완전한 은퇴설」도 주춤한 느낌이다.그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채문식전국회의장·신현확전국무총리·백남억전공화당의장등 구여권인사들은 물론 이철승·고흥문·이중재씨등 구야권 원로들과도 자주 만난다.또 그는 지난해 외유중 경북고 총동창회회장으로 뽑힌 뒤 고향인 대구에도 수시로 내려간다. 역시 「토사구팽」이란 말은 남기고 정계를 떠난 김재순전국회의장은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김대통령과 단둘이 만났다.이자리에서 그는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에 대해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는 절대로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고 진단하고 김대통령의 통치에 대한 바람도 표시했다.그동안 신중한 행보를 보여온 그의 이날 독대는 처음이 아니라는 항간의소문도 있지만 김대통령으로부터 원로로서의 「대접」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됐다는 것이 정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민자당 고문으로 있는 박용만전의원은 당측의 「강제예편」움직임에 강력히 반발,『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민자당고문회의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당지도부에 「원로대접」을 요구하고 있다.지난해 명주·양양보선에서 패배,민자당고문으로서 「이름」만 유지하던 김명윤전의원은 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일선에 복귀했다. 이밖에 이민우전신민당총재·유치송전민한당총재등 정계원로등도 곧 김대통령과 면담,국정운영에 대한 자문과 협조를 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민추협/「결성 10돌」… 그 발자취와 역사적 위상

    ◎「어둠」의 시대 “민주”의 외침/84년 YS·DJ “합작”… 5공박해 극복/85년 「2·12총선」서 돌풍… 직선제 투쟁/내일 기념식… 심포지엄 등 열고 「기념 사업회」 계획 80년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앞장서 이끌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 10주년 기념식및 리셉션이 16일 하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이날 기념식에는 민추협 초기의 지도위원및 후기 상임위원·운영위원과 집행부의 국장·부장급등을 포함해 모두 3백∼4백여명이 참석,여와 야로 나뉜 오늘날의 처지를 떠나 오랜만에 동지애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이에 앞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는 기념심포지엄이 열려 장을병성균관대총장의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민추협 역할의 평가와 현대사적 조명」이라는 주제발표와 대학교수·언론인·변호사등의 토론이 벌어진다. 이들 행사를 마련한 「민추협 결성 1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는 민추협의 공동의장권한대행과 부의장을 맡았던 김상현민주당고문·김명윤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수석부의장을 책임대표로,이민우전신민당총재와 최형우내무부장관,박종율 조연하 홍영기 김윤식 용남진씨가 준비위원대표로 구성됐다.준비위는 16일 행사를 계기로 「민추협운동 기념사업회」(가칭)를 발족시킬 계획이기도 하다. 민추협은 84년 5월18일 서울 남산의 외교구락부에서 민주화투쟁을 기치로 내걸고 발족했다. 바로 1년전 이날 가택연금 상태에서 단식투쟁에 돌입,23일이란 장기단식 기록을 세운 뒤 민주화운동의 기회를 찾던 상도동의 김영삼씨가 오랜 정치적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동교동의 김대중씨와 모처럼 손을 잡고 공동의장을 맡았다.그러나 김대중씨는 사형집행정지 상태로 미국에 머물던 시기여서 그의 의장직은 김상현씨가 권한을 대행했다.김영삼씨는 지금 문민정부의 대통령이고 김대중씨는 세번째 대선에서 패배,정계를 은퇴했다. 그때까지도 정치활동 규제에 묶여 있던 인사들이 구성한 민추협은 한달 뒤인 6월 운영위원 64명을 인선하고 민주화투쟁을 정식으로 선언,민주화대장정의 막을 열었다.당시 전두환정권은 사무실에 집기마저들여놓지 못하게 하는등 탄압을 했으며 이 때문에 돗자리를 깔고 회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민추협은 같은 해 9월 헌법연구특위등 17개 부서에 달하는 실무기구를 구성해 정당에 버금가는 조직을 갖추면서 여러 민주세력과 연대투쟁에 들어갔다. 이듬해 1월에는 다음달 2·12총선에서 제1야당의 돌풍을 일으킨 이른바 「통합신당」을 창당,정치활동 재개에 들어갔다.김대중씨는 2·12총선을 4일 앞두고 귀국,김포공항에서 곧바로 연행돼 가택에 연금됐다가 선거결과에 충격을 받은 「5공」으로부터 한달만에 연금이 해제되면서 공동의장 일을 본격적으로 맡게 됐다. 86년 2월 민추협은 드디어 「1천만명 개헌서명운동」을 선언,직선제 개헌투쟁을 전개했다.87년 4·13호헌선언에 이어 6월10일 노태우민정당대표가 차기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던 날 모든 민주세력과 연대해 6·10항쟁을 벌였다. 이같은 투쟁과정에서 민추협에 대한 「5공」의 탄압은 끊임 없이 계속됐다.85년5월 미국문화원 점거사건과 86년2월 직선제 개헌투쟁 때는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87년2월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따른 「고문살인및 용공조작 폭로대회」등 일이 있을 때마다 사무실이 원천봉쇄되고 지도부는 수 없이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러나 민추협은 「6·29선언」이후 두 김씨의 대권다툼을 계기로 공중분해돼 3년 남짓의 민주화대장정을 마감하고 말았다. 민추협 참여인사들은 세상을 떠났거나 정계를 은퇴한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가 문민정부의 여야 핵심세력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신상우 황명수 최형우 김덕용 강삼재 번형식 신진욱(이상 민자),이기택 한화갑 이철 홍영기 김영배 신기하 최락도 김종완(이상 민주),박찬종(신정당),양순직의원(무소속)등이 아직 정계일선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이들 말고 이민우 김명윤 박용만 예춘호 김동영 김녹영 문부식 이중재 명화섭 김현규 김창근 김윤식 김충섭 박종태 손주항 최영근 안필수 용남진 박한상 이상민 조병봉 김현수 권오대 김두오 김길준 김창환 송좌빈 이우태 이종남 정채권 정헌주 태륜기 권대복씨 등도 상임운영위원이나 지도위원등으로 참여했던 민추협인사들이다.김광일씨는 국민고충처리위원장으로,김도현씨는 문화체육부차관으로 재직하고 있다.김대통령을 그림자 같이 따라 다니던 청와대의 이원종정무·홍인길총무수석비서관과 최기선인천시장등 이른바 「상도동 가신그룹」들이 민추협 출신들임은 말할 것도 없다.김동영전정무장관과 김녹영전국회부의장은 작고했으나 창립10주년 기념식 때 특별공로패를 받게 돼있다.
  • 설연휴/특집드라마 5편 선뵌다

    ◎TV3사 인간애다룬 작품 주종… 컴퓨터 그래픽기법등 도입/K 「이선풍…」/무술가미 오락사극/「너의 빰…」 교포행로 그려/M 「어머니」/상반된 모성애 조명/「마흔살…」/인간소외 묘사/S 「모레내…」/노인·어린이들의 일상생활 그린 휴먼드라마 황금연휴를 맞게 될 설날에 맞춰 방송3사가 특집드라마 5편을 마련했다.이들 드라마는 오락성보다는 온가족이 둘러앉아 시청할 수 있는 따뜻한 인간애를 다룬 훈훈한 작품들이 주종을 이룬다. KBS­TV에서는 오락사극에 최첨단 컴퓨터그래픽을 도입하는가 하면 영화감독 이장호에게 TV드라마 연출을 맡기는등 뭔가 색다르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두편의 설날특집극 2부작 「이선풍 저승유람기」와 「너의 뺨에 입맞추리」를 선보인다.「이선풍 저승유람기」(이환경극본 안영동연출)는 명랑한 소재에 무술을 가미한 오락사극으로 용인민속촌이 설악산 안에 들어가 있고 대감집이 흔들바위 밑에 있는등 화면을 컴퓨터그래픽으로 합성,볼거리를 제공한다.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내수사 별제 선풍(김갑수반)은 횡령독직 혐의로 잡혀간다.형식적으로 솥에서 삶아죽이는 사형을 집행하고 장사까지 지낸뒤 살려줘 「살아있지만 죽은」삶을 살아야 하는 사형보다 더한 형벌인 팽형을 선고받은 이선풍이 기생 월향(김혜리반)과 친구의 도움으로 누명을 벗기위해 애쓰는 과정이 줄거리. 「너의 뺨에 입맞추리」는 재미작가 민예영 원작 「적선」「B교수와 결혼상담소」「프린스 구」등 3편을 영화감독 이장호가 극화한 작품.박철수감독에 이어 영화감독 이장호씨가 처음으로 TV드라마 연출을 시도한 것으로 TV에 영화적 기법을 도입해 관심을 모은다.미국에서 귀국한 김혜영(이휘향반),박칠구(윤문식반),화자(변은영반)등 세 재미교포의 한국에서의 행로를 그리고 있다. MBC-TV는 설날특집으로 「어머니」와 「마흔 살에 얻은 행복」등 드라마 2편과 지난해 창사특집으로 방송됐던 화제작 「명태」를 재방송한다.오는 9일 하오10시부터 1백분동안 방송되는 「어머니」(김운경극본 황은진연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어머니라는 상반된 입장에 선 두 어머니의 사랑을 대비시킨 작품으로 정혜선 사미자 이정길 이민우등이 주요 배역진으로 등장한다.한편 「마흔살에 얻은 행복」(유재용원작 주찬옥극본 정세호연출)은 잡화점 주인인 한 남자를 통해 인간소외와 고독을 묘사한 작품으로 정한헌 이주경 박규채 김영옥등이 나선다.11일 하오7시30분부터 90분동안 방송된다.이들 두 작품은 (주)인풍비젼과 MBC프로덕션등 독립 프로덕션사에서 제작했다. SBS-TV의 설날 특집드라마 2부작 「모래내에서 생긴 일」(이철수극본 김한영연출)은 노인과 어린이들의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아기자기한 로맨스에 무술과 기상천외한 액션을 가미한 휴먼드라마로 9∼10일 하오7시부터 1시간씩 방송된다.
  • “한시대 안팎을 이끌고…” 추모행렬/정 전총리·문목사 빈소주변

    ◎이만섭 국회의장 등 분향행렬 잇따라/정 전총리/김일성 조전보내… 기증 안구 이식 성공/문목사 정일권전국무총리와 문익환목사의 빈소에는 20일에도 각계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정전총리의 빈소에는 20일 상오 10시쯤 이만섭국회의장이 다녀간 것을 비롯,박준규전국회의장·현승종전국무총리·김덕안기부장·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이홍구전통일원장관·이민우전신민당총재·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 등이 다녀갔다. ○…정씨의 빈소에는 미망인 박혜수씨(47),외아들 기훈군(14)과 딸이 조문객을 맞았고 친자확인소송을 내 관심을 모았던 정성일씨(29)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날 빈소 주위에는 전육군참모총장에 대한 예우로 육해공군 의장대 장병 2명이 번갈아 교대근무를 했으며 수방사 소속 헌병 10여명이 교통정리를 했다. ○…정전총리의 영결식은 22일 상오 10시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사회장으로 열리며 유해는 동작동 국립묘지 장군묘역에 안장된다. ○…문목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도봉구 수유동 한신대 본관 201호 강의실에는 아침 일찍부터 김수환추기경·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유준상·조세형·신순범·신상우·정상용·한영수의원 등이 조문했으며 문목사의 동생 동환씨도 부인과 함께 미국에서 귀국, 조문객을 맞이하던 조카 성근··김씨에게 『이게 어찌된 일이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까지 문목사의 빈소에는 1만5천여명의 조문객이 다녀갔으며 빈소 주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50여개의 조화와 문목사의 영정,일대기를 적은 벽보 등이 진열됐고 일본·홍콩·호주 등 아시아 각 지역의 교단에서 보낸 애도전문과 추도문이 줄을 이었다. ○…문익환목사 장례위원회는 이날 『지난 19일 일본 도쿄에 본부를 둔 해외범민족통일연합(범민련)본부를 통해 북한의 김일성주석 명의로 된 조전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장례위원회가 유족과의 협의를 거쳐 공개한 이 조전에는 『문목사가 뜻하지 않은 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에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명망있는 통일애국인사를 잃은 것은 우리민족에게 큰 손실이지만 그가 통일애국의길에 남긴 업적은 국내외 동포들에게 기억될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문목사가 생전에 기증의사를 밝힌 안구의 각막이 이날 하오 6시쯤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에서 김재호교수의 집도로 한모씨(22·여)와 이모군(6)에게 각각 성공적으로 이식됐다.
  • 남북한 모든 땅이름 한눈에/「한국지명사전」 자연지등 2만여개 수록

    한국의 행정지명,자연지및 인공물의 이름등 땅이름을 망라한 사전이 나왔다. 한국교열기자회는 관훈클럽신영기금의 지원을 받아 최근 「1993∼1994 한국지명사전」을 냈다. 이책은 93년 8월 현재를 기준삼아 남북한의 전지명을 한권의 분량에 담았다. 이·동이상의 행정지명을 비롯해 「지리산」「죽령」등 자연지,「안동댐」「온양온천」등 인공물의 이름까지 모두 2만3천2백90의 땅이름이 한자표기와 함께 가나다순으로 실려 있다. 또 각 시·군 항목에는 간략한 지역사와 93년 3월1일 현재의 인구·면적등이 덧붙여져 있으며 광복 당시의 북한지역 행정구역이 별도 수록됐다. 이처럼 ▲한자표기가 돼 있고 ▲인공물의 이름까지 적힌 지명사전이 한권짜리로 나온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지난 70년대초 지명사전이 나왔었으나 당시 그 책에 수록된 이름이 4천여개에 불과했던데다 그나마 절판된 상태였다. 연합통신 논설위원인 이민우씨가 엮었으며 한국교열기자회에서 냈다.
  • 6월 국민항쟁을 생각하며/김도현 평통자문회의 사무차장(특별기고)

    한국의 1987년은 민주화운동이 성공할 여건이 안팎으로 무르익고 있었다.여기에 6월의 밝은 태양은 긴 낮과 초여름의 훈훈함으로 보통시민들이 참여할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72년 유신이래 계속된 「직선제개헌」을 표방한 민주화운동은 80년의 좌절을 겪었지만 85년 김영삼 민추협 의장의 신당돌풍으로 더이상 권력의 통제가 잠재울수 없음이 뚜렷해졌다. 오히려 문제가 있다면 민주화운동 주체의 결집과 전략,그리고 비전의 부족이었다.민주화 세력은 85년 인천사태 뒤의 분열,이민우구상의 혼선을 겪은뒤 정치권·개신교·천주교·재야운동권의 재집결과 연대의 절대적 필요성을 절감하고 실무대표들을 내세워 연대투쟁을 구체화 시켜나가면서 대체로 다음 원칙에 합의했다. ①각 부문은 대표모임이나 회의전에 작은 문제까지 충분히 논의,완전한 합의를 이룬다.②이를 위해 주장과 구호의 수준은 낮추어 공통목표와 이익을 표현한다.③평범한 시민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운동방법을 찾는다. 그해 신민당집회와 건국대사태를 넘기며 이 원칙과 연대조직은 틀을 잡아가며 구체적 조직을 출범시킬 87년 새해를 맞았는데,충격적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났다. 조직자체보다 이 천인공노할 사건을 계기로한 국민적 저항운동을 통해 연대투쟁을 발전시키기로 했다.그래서 정부가 아닌 민주세력이 주최하는 「민주국민장」의 형식으로,단발이 아닌 긴 호흡의 운동으로 발전시키기로 하여 1월13일 발생한 이 사건은 2·7추도식 3·3평화대행진으로 이어졌다.고 박군의 앳된 얼굴,그 아버지의 『나는 할말이 없다.종철아 잘 가그래이』하며 재가 된 아들의 뼈를 강물에 날리는 정경까지가 국민을 슬픔과 분노에서 행동으로 옮기도록 움직였다. 5월에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당시 운동권의 정서로는 「민주헌법」「국민운동」이란 표현이 성에 차지 않았겠지만 고집부리지 않았고,정치권은 매사에 앞자리를 운동권에 내어 주었다. 김영삼 민추협의장이 사면복권이 안된 김대중의장의 역할까지 대신해야 할 때가 많았고,따라서 돈이니 구속자지원 같은 일을 맡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와중에 나온 전두환대통령의 「4·13호헌」조치는 달아오르는 민주화운동에 기름을 부어 교수 교사 약사 부동산업자등 정말 보통사람을 호헌철폐 서명운동으로 나서게 했다. 6월10일 민정당은 독재권력후계자를 옹립하는 날로 잡았는데 이에 맞서 민주세력은 국민봉기의 날로 잡았다.그날 시민의 함성과 최루탄 가스로 노태우후보는 기쁨과 따가움의 눈물을 함께 흘려야 했다.그날 행사시간은 하오 6시여서 이것을 머리가 굳은 분들에게 납득시키기에 어렵기도 했지만 당시는 서머타임이 실시되어 퇴근한 젊은 봉급생활자들이 집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훤하게 밝아서 어렵지않게 민주화운동의 물결에 합류할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행진·경적·묵념·9시의 소등 등등 모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되었고,당국의 과잉방어태세는 오히려 긴장감을 고조시켜 관심을 모으게 했다. 6월10일 전국에서 자욱한 최루탄 연기속의 평화적 행진이 오히려 당국을 압도했다.수일간 이어진 명동성당 집회와 계엄령발동설,그리고 김영삼­전두환 담판의 결열은 최후의 결전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넓혀주었다. 6·26행진뒤 마침내 6·29선언이 있었고 그날 낮부터 경찰이 사라진 거리는 정말로 『평화가 왔구나』를 느끼게 했다.우리는 계엄뒤의 행동강령까지 마련했지만 이것이 불필요하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다. 노대통령은 『국민에의 굴복』이라고 했지만 이 말이 진정한 실체를 가진다면 승자와 패자가 따로없는 「국민의 승리」일 것이다.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승자가 되었을 것이다.민주세력 역시 분열로 현실적 승리를 얻지못했다. 그러나 문민정부와 문민대통령의 탄생으로 6월 항쟁은 이제 정치적 실체를 얻고 그 연장 위에서 국민적 절규와 함성,그리고 꿈과 소망을 현실화 해야하고,할수 있는 시대를 맞았다. 6월 항쟁의 위대성은 「국민적 성격」과 「민주통일전선의 성공」에 있다고 생각한다.계급혁명의 한계는 20세기의 세계사가 보여주었다. 독립투쟁에서의 민주통일전선의 실패는 민족분열과 분단을 가져온 근원이 되었다.여기서 우리는 6월 항쟁의 세계사적·민족사적 역사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겨레가 어려울 때는 우리는 보다 큰 공통의 선과 이익과 목표가 무엇인가를 찾고 이것을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필자개인은 당시 민추협의 민주통신,통일민주당의 당보주간을 맡고 있어 정치권의 실무 심부름꾼으로 연락을 하고,사안을 이해시키고,돈을 구하고,글을 쓰고,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으면서 국민항쟁의 뒷줄을 지켰다. 성유보(민통련),이명준(가톨릭),황인성(개신교),김병오·한영애(정치권),오충일(개신교),이길재(천주교),인명진(개신교)등과 함께 열심히 머리를 맛대고 기도하고 숨기도 하고 기뻐도 했다.
  • 이기택대표­박관용실장의 만남/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13일 상오 국회 대표실의 이기택 민주당대표는 무언가 몹시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어떻게 말을 해야하나』 그는 조용히 담배를 피워 물더니 이내 꺼버렸다. 『어서와.얼굴좋네.악수나 한번 합시다』­주돈식정무와 홍인길총무수석을 대동하고 대표실로 들어서는 박관용비서실장을 보고 이대표가 존댓말도,그렇다고 반말도 아닌 첫인사를 건넸다. 『일찍 못찾아와 죄송합니다』 박실장의 인사가 이어졌고,『아니,바쁠테니까….살다보면 가까운 사람도 자주 못만나는 일이 있고 먼 사람도 자주 만나는 일이 있지,뭐』이대표가 정감있게 받아 넘겼다. 이대표는 여기에서 박실장을 「가까운 사람」으로 지칭하는 듯했다.「가장 오래된 깊은 인연의 동지」­두사람의 관계는 이 표현으론 부족할지 모른다.박실장도 이를 염두에 둔듯 『대표와 저는 온 국민이 아는 사이』라고 말을 이었다. 「정치동반자」로서 두사람의 역사는 실로 깊다.박실장은 지난 67년 7대 국회의원으로 출발한 이대표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그가 원내에 입성한 것은 11대때인 지난81년.당시 이대표는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할수 없게되자 대신 박실장이 이대표의 지역구인 부산 동래에서 출마,당선된 것이다.그뒤 4년이 지나 85년 그 유명한 2·12 총선이 실시되자 규제에 풀린 이대표는 해운대로 지역구를 옮겼고 박실장은 그대로 동래를 지켰다.어찌보면 정치인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지역구를 물려준 셈이다.정계은퇴면 몰라도 흔치 않은 일이어서 아직도 정치권에서 회자하고 있다. 기막힌 관계인 두사람이 의견을 달리하게 된 것은 87년 이민우총재의 신민당시절.이때 김영삼대통령이 이총재 노선의 잘못을 지적,통일민주당을 창당하자 박실장은 곧 뒤따랐으나 이대표가 한때 망설이면서 갈라서게 됐다.그뒤 두사람은 각기 다른 길을 걸었고 한사람은 야당대표,다른 한사람은 여권실세인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렇지만 15분간의 대화에서도 드러나듯 두사람은 이날 「웃으며」헤어졌다.『자주 만나자』는 말과 함께. 『동래사람들도 오늘은 좋아하겠제』 박실장을 보낸뒤 이대표가 한 말이었다.재산공개 파문에서 보듯 「정치무상」이 아닌「정치권의 변화」를 느끼게 한 해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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