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 새틀짜기] 복수노조·전임자 급여 최대쟁점
현대자동차의 12년 연속파업, 포항지역 건설노조원들의 포스코 본사 불법점거 농성 등 올해도 노사의 극한 대립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을 갈망하고 있다. 정부도 노동계와 경영계가 모두 만족하는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이 절실하다고 판단,2003년 9월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일명 노사관계 로드맵)’을 마련해 노사정위원회에 부쳤다. 노사정위의 논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이제 입법화를 위한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 노사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이 법안의 쟁점들을 짚어본다.
■ 경총 입장 들어보니
경영계 역시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와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를 노사관계 로드맵의 핵심사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노사관계 로드맵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교섭창구 단일화와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문제만큼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총은 이들 2가지 사안이 노사간 대립과 갈등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단초가 된다고 믿고 있다.
경총은 우선 ‘1사 1교섭 1단체협약’을 원칙으로 해 사업장 내 모든 노조가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섭권은 조합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를 교섭 당사자로 인정하고,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투표를 통해 조합원 다수의 찬성을 얻는 노동조합을 교섭당사자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또 근로자간 근로조건의 통일을 위해 단일화의 대상 및 교섭단위는 근로조건 결정권이 있는 하나의 사업장을 기준으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소수 노조의 난립방지, 실질적인 단결체로서의 요건 미비로 인한 잦은 해산 및 이합집산 방지, 대표성 여부에 대한 논란방지 등을 위해 단결권을 침해하지 않는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노조의 설립요건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근로자 20인 이상의 동의’ 또는 ‘조합원 지위를 취득할 수 있는 근로자 10% 이상의 동의’ 등의 규정 도입을 바라고 있다.
특히 경영계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는 노사관계 안정을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할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내년부터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노조 규모별로 노사협의로 최소한도의 전임자 급여 지원에 대해 금지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예외규정은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법제화는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노동계 입장 들어보니
“노사관계 로드맵은 노조활동을 묶고 부당노동행위 요건의 완화를 통한 고용 유연화에 초점이 모아진 정부의 독단적인 안에 가깝습니다.”
이민우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노사관계 로드맵에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노동계의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한국노총은 그동안 정부가 제시한 노사관계 로드맵이 노사를 배제한 채 정부가 독단적으로 내놓는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노사관계 로드맵이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의 요건을 완화하는 고용 유연화를 강조한 나머지 파업을 최소화하고 노조활동을 저해하는 등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와 노동 3권의 실질적 보장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국제기준을 준수한다고 하지만 최대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국제기준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수노조 문제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기준인 ‘결사의 자유’ 원칙에 따라 하나의 기업단위에서 복수의 노조가 설립된다 하더라도 노조설립 자체를 금지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복수의 노조가 설립된다 해도 과반수를 확보한 노조든 여러 개의 노조끼리 연합해 단일화한 노조든 단체교섭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복수의 노조가 조직된다 해도 노동3권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완강했다. 이 국장은 “ILO에서도 해당 국가가 입법적으로 관여할 대상이 아닌 것으로, 노사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정부에 수차례에 걸쳐 권고했다.”면서 “이 조항은 삭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 대표자에 대한 임금지급 문제는 “앞으로 노사관계에 있어서 대화와 참여의 동반자적 노사관계로 나아갈 것인지, 대결과 갈등의 대립적 노사관계로 갈 것인지에 바탕이 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노조 전임자 급여 ·복수 노조 설립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 노사관계법과 제도를 국제기준과 우리의 현실에 맞게 개선하자는 것이 국정과제의 하나로 떠올랐다. 이에 정부는 2003년 5월부터 12월까지 노사관계 전문가 15인으로 ‘노사관계제도 선진화 연구위원회’를 구성,‘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노동조합 및 노동조합조정법, 노동위원회법,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근로기준법 등 4개법 분야의 34개 개선과제를 담고 있다. 정부는 2004년 6월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구성, 이를 논의한 뒤 2007년 1월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 대표들의 불참으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하다 지난 5월부터 입법화를 위한 논의가 다시 진행돼 노사정이 막바지 합의안 도출을 시도하고 있다.
●합의 시도, 하지만 전망은…
노사정은 10일 열리는 제8차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로드맵의 주요 항목에 대해 합의안 도출을 시도할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민주노총에서 열린 제7차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 이수영 경총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이상수 노동부장관, 조성준 노사정위원장 등이 약속한 것이다. 이들은 이미 7차 회의에서 실업자 조합원 자격 부여, 쟁의행위 규제 합리화 등 17개 과제에 대해 결론을 도출키로 의견을 모았다. 정부는 합의가 도출되는 항목부터 입법화를 추진,9월쯤 예고를 거쳐 연내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특히 노동계는 오는 29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ILO 아태총회와 전임자·복수노조 문제 등에 대한 내부 논의에 시간이 소요된다며 논의 시한을 또다시 연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영계는 외형상 로드맵의 입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나, 논의에는 다소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노동계가 반대하는 전임자 급여 금지규정이 개정될 경우 로드맵 자체가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임자 문제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관건
로드맵 34개 과제 가운데 현재 입법화가 추진되고 있는 것은 24개 과제다. 여기에는 실업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는 것 등을 비롯해 긴급조정제도, 직권중재제도, 부당해고제도, 경영상 해고제도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한마디로 노동운동, 나아가서는 노사관계에 일대 전환을 가져올 새로운 법·제도가 만들어지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최대의 분수령은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원 금지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가 어떻게 합의돼 조정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 부분은 노사 모두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노조 전임자 급여지원은 노사자율로 정할 사항”이라면서 “급여지원을 중단하면 노조존립을 위협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경영계는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원은 잘못된 관행이며 이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또 복수노조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는 노조의 힘 분산과 노동3권의 훼손 등을, 경영계는 교섭상의 혼란을 각각 우려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복수노조 허용은 노사관계에 일대 변화를 초래할 사안인 만큼 공정한 대표와 단체교섭의 효율적인 진행 등을 고려, 과반수 대표제나 비례 대표제 등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