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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

    ■서울신문 ◇논설위원실 △수석논설위원 이동구 △논설위원 전경하 이지운 장세훈 ◇젠더연구소 △연구위원(상임) 조희선 ◇편집국 △부국장 겸 산업부장 김성수 △디지털미디어센터장 겸 소셜미디어랩 부장 이호정 △사회2부장 주현진 △정책뉴스부장 박상숙 △경제부장 김경두 △문화부장 최여경 △체육부장 안동환 △사진부장 안주영 △온라인뉴스부장 조현석 △국제부 선임기자 이기철 △문화부 선임기자 손원천 △정치부 차장 이경주 △경제부 차장 이두걸 △사회2부 차장 김승훈 △국제부 차장 안석 △사진부 차장 도준석 ◇광고국 △광고기획팀 팀장 조병준 ■오렌지라이프 ◇승진 △고객지원SMG 그룹장(부장) 김동욱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진료부원장 겸 공공의료사업단장 이재협 △기획조정실장 김덕겸 △교육수련실장 박민현 △의생명연구소장 겸 물류기획실장 신기철 △대외협력실장 송경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부서장 전보 △인재경영실 김흥선 △혁신전략실 이창섭 △기금관리실 황성익 △성과관리실 유창욱 △사회가치실 모혜란 △기업금융처 이광진 △재도약성장처 윤용일 △리스크관리처 박은숙 △수출마케팅사업처 김현진 △국제협력처 김이원 △기업인력지원처 김희수 △중소벤처기업연수원 박윤식 △대구경북연수원 이우수 △부산경남연수원 박효철 △수도권경영지원처 신기철 △서울지역본부 채무석 △서울동남부지부 이미자 △서울북부지부 권오윤 △인천지역본부 김종균 △인천서부지부 김춘근 △경기동부지부 최득룡 △경기서부지부 박노우 △경기북부지부 이수형 △강원영동지부 김상구 △서부권경영지원처 최천세 △대전세종지역본부 황창범 △충북지역본부 문현선 △충북북부지부 배경화 △전북서부지부 김근영 △광주지역본부 이종철 △전남지역본부 구본종 △동부권경영지원처 김정열 △대구지역본부 천병우 △경북동부지부 송경준 △부산지역본부 김성규 △부산동부지부 정장식 △울산지역본부 권오민 △경남지역본부 홍병진
  • [인사] 오렌지라이프,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산업통상자원부

    ■ 오렌지라이프 ◇ 승진 △ 고객지원SMG 그룹장(부장) 김동욱 ■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 진료부원장 겸 공공의료사업단장 이재협 △ 기획조정실장 김덕겸 △ 교육수련실장 박민현 △ 의생명연구소장 겸 물류기획실장 신기철 △ 대외협력실장 송경준 ■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 부서장 전보 △ 인재경영실 김흥선 △ 혁신전략실 이창섭 △ 기금관리실 황성익 △ 성과관리실 유창욱 △ 사회가치실 모혜란 △ 기업금융처 이광진 △ 재도약성장처 윤용일 △ 리스크관리처 박은숙 △ 수출마케팅사업처 김현진 △ 국제협력처 김이원 △ 기업인력지원처 김희수 △ 중소벤처기업연수원 박윤식 △ 대구경북연수원 이우수 △ 부산경남연수원 박효철 △ 수도권경영지원처 신기철 △ 서울지역본부 채무석 △ 서울동남부지부 이미자 △ 서울북부지부 권오윤 △ 인천지역본부 김종균 △ 인천서부지부 김춘근 △ 경기동부지부 최득룡 △ 경기서부지부 박노우 △ 경기북부지부 이수형 △ 강원영동지부 김상구 △ 서부권경영지원처 최천세 △ 대전세종지역본부 황창범 △ 충북지역본부 문현선 △ 충북북부지부 배경화 △ 전북서부지부 김근영 △ 광주지역본부 이종철 △ 전남지역본부 구본종 △ 동부권경영지원처 김정열 △ 대구지역본부 천병우 △ 경북동부지부 송경준 △ 부산지역본부 김성규 △ 부산동부지부 정장식 △ 울산지역본부 권오민 △ 경남지역본부 홍병진 ■ 산업통상자원부 ◇ 국장급 승진 △ 코트라 방산물자교역지원센터 파견 김대자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곗돈 2천만원으로 음반…40대에 가수 도전한 나, 칭찬하고 싶죠”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곗돈 2천만원으로 음반…40대에 가수 도전한 나, 칭찬하고 싶죠”

    ‘늦깎이 데뷔’ 김가인이 말하는 가수 도전기“40대 중후반이던 그때, 참 많이 울었습니다.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죠. 남편이 하던 사업은 쫄딱 망해 거리에 내쫓겼고… 그 뒤 남편은 직장암 수술도 받아야 했습니다. 제 인생이 너무 허망하고, 남는 게 아무것도 없겠다 싶더군요. 정말 어려운 살림 속에서 차곡차곡 붓던 곗돈으로 CD 음반을 덜컥 냈지요. 지금 생각해봐도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러나 요즘엔 가수 활동을 하는 제 자신을 제가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가 없다’는 게 요즘 코드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는 게 요즘 확실한 대세다. 77세의 ‘할담비’ 지병수씨, 동갑내기의 모델 최순화씨가 이런 코드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10대 어린 나이에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쳐 가수로 데뷔하는 풍토인 요즘, 대중가요 가수로서는 은퇴를 고민할 40대 중후반에 가수를 시작했다는 그를 찾아갔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군자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사하며 명함을 건네자 그는 두 개를 줬다. 하나는 ‘가수 김가인’이었고, 다른 하나의 명함에는 생계를 위한 직장과 본명이 적혀 있었다. 그는 또하나의 명함을 건네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실, 대중가요에 별다른 흥미가 없는 기자도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는 늦깎이 가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그를 몰랐다. - 언제 가수로 데뷔했나. “그때가 12년 전, 40대 중후반이었던 2007년이었어요. 제가 ‘배호 가요제’에 입상하고 난 다음 입상자들의 노래를 모은 옴니버스 CD가 나왔는데 너무 무성의한 거예요. 그때 제생활이 너무 힘들어 미칠 지경이었데…, 예전에 방송국에서 노래로 출연할 때 작곡가 홍성욱 선생님을 알게 됐습니다. 홍성욱 선생님께 전화해서 ‘제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찾아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찾아가니 마침 작사 선생님하고 같이 음악 이야기를 하고 계시기에 저한테 노래를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2008년 11월쯤 제노래 CD가 처음 나왔습니다. CD를 내는 데 드는 돈은 동네 언니들과 같이 붓던 곗돈 2000만원을 타서 마련했습니다.” “매일 울던 40대 중후반… 제인생 너무 허망해월세 내기도 어렵던 시절…계돈 타서 CD 덜컥어디서 이런 용기 나왔는지 몰라… 절박한 듯”- 생활이 어려웠는데 곗돈으로 CD를 낸다? “남편이나 아들·딸에겐 음반이 나올 때까진 비밀로 했습니다. 말을 안했던 거죠. 지금 생각해도 무슨 용기였는지…. 그때 남편이 난리를 쳤지요. ‘먹고 살기도 힘든 데, 제정신이냐’고. 당시 전세는커녕 월세 내기도 어려웠거든요. 큰 애가 고등학생쯤 됐을까 그 애도 ‘우리 형편에 자비 음반이라니…’라고 큰소리칠 정도 였으니까요. 계라는 것이 곗돈을 타기 전에는 한 달에 80만원을 넣다가 타고나면 다달에 100만원을 붓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게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절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CD를 내니 일이 잘 풀렸나. “CD를 내고 나면 다 알아주고, 가수가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제 노래를 알려야 하고, 소속사가 없으니 제가 일을 다 잡아야 했습니다. 고지식해서 어디 아쉬운 소리 할 줄 모르는 홍성욱 선생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물론 매니저를 둘 형편이 안 되니, 지방 공연이라도 있을라치면 제가 직접 차를 몰고 갑니다. 요즘엔 케이블 가요 전문 방송과 유튜브로 홍보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지상파 방송에도 좀 나가야 하는데 …. 노래교실 홍보 활동은 물론이고 버스가 3~4대 동시에 가는 산악회에도 따라가 홍보합니다. 방송보다는 나약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오가는 길에 제 CD를 틀 수 있으니, 가만히 있다고 알려지는 것은 아니니깐요.” - 지금도 가족들이 반대하나. “지금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가족들이 다 응원합니다. 애들은 ‘우리 엄마, 정말 대단하다’고 말합니다. 연말 봉사로 작은 음악회라도 할라치면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참석해서 축하도 해주고요. 엄마가 가수 활동을 하는 것은 아이들이 많이 좋아하기도 합니다.” “CD 내자 신랑 ‘살기도 어려운데 제정신이냐’지금은 가족 모두 응원…자녀들 적극 도와줘이미자 모창 활동도…방송 출연에 지방 공연도”-이미자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했다던데. “이미자 선생님의 이미테이션 가수로 KBS TV 아침마당에도 나왔습니다. 이미자·나훈아·남진·조용필·김건모 이미테이션 가수 특집프로에도 나가고. 20대 초반에 제가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를 부르면 주변에선 모창을 한다고 했어요. 저는 모창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불렀는데, 그렇게 들렸나 봐요. 한번은 모 대학교 교수님 회갑연에 가서 이미자 선생님 노래를 몇 곡 불러드렸는데, 갑자기 다른 가수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그래서 신곡 몇 곡을 불러줬어요. 나중엔 소속사를 통해 들으니 ‘노래 너무 잘했고, 공연 너무 좋았다’고 했다더군요. 소속사 관계자도 그런 칭찬 처음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땐 정말 기분이 뿌듯했습니다. 수년 전 제가 이미자 선생님 이미테이션 공연으로 울산에 갔다가 옛날에 같이 오디션에 갔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울면서 밤새도록 이야기했지요. 이젠 그래도 제이름으로 된 CD앨범을 3집까지 낸 걸요.” - 생활이 왜 갑자기 어려워졌나. “남편이랑 일찍 결혼했습니다. 남편과는 1988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남편은 제가 결혼하기 전인 1983년 대전MBC 신인가요 경연대회에서 주말, 월말에 진출하자 친오빠랑 같이 응원도 왔어요. 성실했던 남편 덕분에 우유 대리점을 하면서 먹고 살만했습니다만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에 대기업의 농간에 의한 ‘고름 우유’ 파동이 생겼습니다. 2000년 쫄딱 망했습니다. 집도 절도 없이 가족들이 거리에 나앉았습니다. 1년 정도 흩어져 살았지요. 시댁과 친정, 친척 집으로. 남편이 직장암 수술도 받았습니다. 저는 지인의 도움으로 작은 방을 마련하고선 보험 일을 시작했지요.” - 생활이 어려운데 가수가 되나. “처음엔 보험일 적응에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보험을 7~8년 하다 보니 갑자기 내 인생이 너무 불쌍하고, 남는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02년쯤부터 어릴 적의 꿈인 가수에 도전했습니다. KBS의 도전 주부가요 스타, SBS의 스타에 도전한다 등에 출연해 입상하면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배호 가요제에 입상하면서 가수가 되고 싶어서 작곡가 홍성욱 선생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가수활동을 하는 요즘도 돈은 못 벌고 있습니다.” “어릴적 친구랑 기획사 찾아가 오디션도 봐노래 부르니 ‘시골에 땅 얼마나 있나’ 물어가슴에 상처 남아…꿈까지 포기한 것 아냐요즘 제 노래 특징은 향토에 역사성 물씬”- 꿈이라고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질이 있었나.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어릴 적 대전으로 이사와 살았는데, 명절이면 열렸던 지역콩쿠르대회는 휩쓸었습니다. 제가 아마 어머니의 끼를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중고교 시절에는 제 성격이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그런 성격도 노래하면서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에 가수가 되려고 친구와 같이 기차 타고 서울에 와 오디션도 봤습니다. 서울역 앞에 있던 기획사를 찾아가니 노래를 이것저것 불러 보라고 하더군요. 노래 부르고나니 ‘어디서 왔느냐, 부모님 뭐 하시느냐, 시골에 땅이 얼마나 있느냐’를 꼬치꼬치 물어보더라고요. 노래만 잘해서 가수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꿈을 접었습니다. 40여년 전 이야깁니다. 상처를 입었지만 제가 꿈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던가봐요.” - 노래 제목이 추풍령, 양구 등 향토적이다. “네, 그렇지요. ‘양구에 오시면 십 년이 젊어집니다’라는 노래 덕분에 제가 2016년 양구군 홍보대사도 되었습니다. 양구군에 있는 ‘아! 파로호’를 녹음하기 전에 파로호에 가서 술도 뿌리고 절도 하는 등 제사도 지냈습니다. 사실 파로호에는 중국군뿐만 아니라 우리 어린 군인들도 많이 전사해 수장됐다고 하더라고요. 가슴이 많이 저렸습니다. 그리고 요즘엔 ‘추풍령을 아시나요’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녹음은 했지만, 아직 발표를 하지 못한 게 ‘남한산성’ ‘아아 황산벌’이 있습니다. ‘퇴촌에 살리라’도 있고. 그리고 보니 지역에 역사성을 갖춰내요. 작사를 해 주시는 이재준 선생님이 언론인 출신이어서 그런 것인가요? 황토색 짙은 노래 몇 곡 더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에 대한 노래를 한번 불러보고 싶습니다.” “꿈 있다면 나이와 관계없이 도전이 중요사람들 알아보지 못하지만 만족하고 행복해이런 것이 성공…돈 많이 벌어야 성공인가?”- 40대 후반에 나의 길을 찾아간다는 게 쉽지 않다.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꿈이 있다면 나이와 관계없이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을 때 하는 것이지,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도 40대 후반,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울 때 시작했지만 그런 저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한 번씩 봉사활동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제 노래도 들려줄 수 있고 …. 이런 것이 성공이지, 많은 사람이 알아보고 돈을 많이 벌어야만 성공인가요. 체력이 다할 때까지 계속 할 겁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열아홉 순정’처럼 변함없는 소리…‘엘리지 여왕’의 더 깊어진 울림

    ‘열아홉 순정’처럼 변함없는 소리…‘엘리지 여왕’의 더 깊어진 울림

    세종문화회관서 2시간 공연 나이 무색한 무대…박수갈채 무대 위 ‘여왕’은 건재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힘과 울림이 여든을 앞둔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무대에) 섰다”는 말은 괜한 걱정에서 보탠 것 아니었을까.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애절함과 에너지는 2시간 동안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수 이미자(78)가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노래 인생 60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순수예술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이 무대에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섰던 30년 전 공연 이후 데뷔 40주년, 45주년, 50주년, 그리고 이날 60주년을 그는 이곳에서 기념했다. 반짝이는 은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이미자는 첫 곡으로 30주년 기념곡 ‘노래는 나의 인생’을 부르며 60년 세월을 반추했다. 5년마다 열리는 이미자의 공연에 35년째 사회를 맡고 있는 김동건 아나운서가 이날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이미자는 태어날 때 조물주에게서 ‘노래를 100년 해라. 그러면 변하지 않는 목소리를 주겠다’는 말을 듣고 약속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한 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래를 부를 것”이라며 이미자를 소개했다. 이미자는 ‘여로’, ‘아씨’, ‘울어라 열풍아’, ‘황포돛대’, ‘흑산도 아가씨’ 등 히트곡 다섯 곡을 내리 불렀다. 세월에 녹슬기는커녕 오래 담금질한 쇠처럼 단단하고 잘 익은 술처럼 깊은 맛을 내는 그의 노래에 2500여 관객의 박수갈채는 커져만 갔다. 이미자는 ‘5년 전과 변한 게 없다’는 사회자의 말에 “성량이나 가창력이 전보다 힘이 없다”고 겸손해하며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느끼신다면 다행으로 생각하겠다. 긴 세월 동안 너무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런 은혜로 오늘날까지 공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500곡의 발표곡, 히트곡만 해도 400곡을 아우르는 그의 공연은 다채롭게 구성됐다. 한때는 경쟁자였지만 지금은 그리운 동료로 남은 현미, 패티김, 고 최희준의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한국 가요사의 원류 격인 ‘황성옛터’ 등을 메들리로 부르기도 했다. ‘꽃마차’를 부를 때는 어깨춤을 곁들였다. ‘섬마을 선생님’에서는 힘차게 무대 양 끝을 오가며 객석을 향해 손짓하며 눈을 맞췄다. 관객들은 박자에 맞춰 흥겨운 박수를 쳤다. 바리톤 고성현과 듀엣 무대를 선보였고, 독일 출신 전통가요 가수 로미나가 ‘삼백리 한려수도’를 불러 특별함을 더했다. 이미자는 35주간 레코드 차트 1위를 했던 국민가요 ‘동백아가씨’와 60주년 기념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를 본 공연 마지막 곡으로 부른 뒤 끝내 눈물을 보였다. 사회자가 ‘관객분들이 100주년에도 오시기로 약속했다’고 농담 섞인 말을 건네자 이미자는 ‘열아홉 순정’의 소녀가 된 듯 수줍게 웃으며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이미자는 10일 서울 콘서트 사흘째 공연을 마무리한다. 이어 다음달까지 군산, 광주, 천안, 광양, 성남, 울산 등에서 차례로 팬들을 만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4년 생사 모르던 아들 찾아준 성남 ‘천사표 통장’

    4년 생사 모르던 아들 찾아준 성남 ‘천사표 통장’

    통장 도움으로 극적 상봉… 감사편지“4년이나 생사를 알 수 없던 아들의 소식을 알게 도와준 천사표 통장님께 전해 주세요.” 지난달 16일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4동 행정복지센터에 날아든 팔순 어르신의 감사 손편지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편지엔 전남 목포 등기 소인이 찍혀 있었다. 이씨(82)라고만 밝혀 달라는 어르신은 통장의 이름을 몰라 편지에 ‘통장님’이라고 썼다. 어르신의 아들(45)은 2006년 시각장애 2급 판정을 받고 비관하다 부모 도움을 안 받고 살아 보겠다며 집을 나간 후 소식을 끊었다. 아들 주소지가 수정구 태평4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어르신은 지난달 11일 무작정 성남으로 갔다. 주소를 적은 메모 한 장을 손에 쥐고 골목골목을 헤매고 있을 때 이미자(52·여) 3통장을 만났다. 길 안내를 받아 함께 주소지를 찾아갔지만 아들은 그곳에 살고 있지 않았다. 이 통장은 어르신을 인근 식당으로 모시고 가 식사 대접을 하면서 기운을 북돋워 줬다. 사연을 듣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어르신은 그다음날 밤 10시 30분 성남에서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통장들끼리 수소문한 끝에 아들이 사는 집을 알아냈고, 부인과 함께 잘 지낸다는 소식을 알린 것이다. 어르신은 편지에 “아들을 만났으니 염려하지 마시라”고 적었다. 종일 자기 일처럼 걱정해 주던 통장을 ‘천사 같은 분’ 이라고 표현했다. 태평4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편지를 받은 이 통장은 “병석에 계신 아버지 생각에 어르신 손을 잡아드렸다. 이렇게 편지까지 써 주셔서 제가 더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아들 찾게 도와준 천사같은 통장님께” 성남 태평4동에 날아든 손편지

    “아들 찾게 도와준 천사같은 통장님께” 성남 태평4동에 날아든 손편지

    “아들 찾게 도와준 천사표 통장님께 전해주세요”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4동 행정복지센터에 날아든 팔순 어르신의 감사 편지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4월 16일 수정구 태평4동 행정복지센터에 목포 등기 소인이 찍힌 손편지가 도착했다. 목포에 사는 이씨 어르신(82·남·)이 4년간 생사를 알 수 없던 아들의 소식을 알게 도와준 이미자 3통장(여·52)에게 전해 달라며 태평4동에 보내온 편지였다. 당시 어르신은 통장의 이름을 몰라 편지에 ‘통장님’이라고 썼다. 이씨 어르신의 아들(45세)은 2006년 시각 장애 2급 판정을 받고 장애를 비관하다 부모의 도움을 안 받고 살아보겠다며 집을 나간 후 소식을 끊었다. 아들 주소지가 수정구 태평4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어르신은 4월 11일 무작정 성남으로 올라왔다. 주소를 적은 메모 한 장을 손에 쥐고 골목골목을 헤매고 있을 때 이 통장을 만났다. 통장이 길을 안내해줘 함께 주소지를 찾아갔지만 아들은 그곳에 살고 있지 않았다. 이 통장은 어르신을 인근 식당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 대접을 하면서 기운을 북돋아 줬다. 사연 듣고서 주위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보고 연락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어르신은 위로를 뒤로 한 채 그날 저녁 목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인 4월 12일 밤 10시 30분 성남에서 만났던 이 통장에게서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지역 통장들끼리 수소문 끝에 아들이 사는 집을 알아냈고, 아들 내외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줬던 것이다. 어르신은 편지에 지금 소식을 궁금해 할 통장님께 아들을 만났으니 염려하지 마시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 종일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 주고, 관심 가져 주고, 아들 소식까지 전해준 통장을 ‘천사 같은 분’ 이라고 표현했다. 태평4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어르신의 손편지를 전달받은 이 통장은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가 생각나 어르신의 손을 잡아드렸다”면서 “이렇게 편지까지 써 주셔서 제가 더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4년간 150만명…명소가 된 경북도청

    4년간 150만명…명소가 된 경북도청

    도청 앞 천년숲 산책로·휴식공간도 탄성경북도청 신청사가 관광명소로 주목을 받고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21일 “2015년 4월 도청 신청사 준공 이후 4년 동안 방문객이 150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준공 첫해 7만 6262명, 2016년 69만 9732명, 2017년 38만 9678명, 2018년 27만 7208명, 올 들어 5만 7000여명이다. 특히 방문객이 가장 많았던 해인 2016년 4~5월만 각 10만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요즘도 평일 700~800명, 휴일 1000명 정도가 꾸준히 찾고 있다. 이처럼 신청사 방문객이 몰리는 것은 24만 5000㎡의 넓은 부지에 한국 전통문화를 담은 한옥의 멋스러움과 현대의 첨단 건축기술이 잘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미가 담겼다는 입소문을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도 관계자는 설명했다. 특히 한옥의 우아한 곡선미를 담은 65만장의 기와지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조경도 일품이다. 향토 수종으로만 선별해 소나무 등 키 큰 나무 5500그루, 철쭉 등 키 작은 나무 18만 2000그루가 식재됐다. 도청 앞 천년숲은 전통수종 88종, 25만 8000그루가 어우러지면서 산책로와 휴식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도는 방문객 편의를 위해 신청사 해설사 6명을 배치했으며, 전화(054-880-8883) 및 인터넷을 통해 방문 예약을 받고 있다.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한다. 영화 상영과 공연을 비롯해 청사 곳곳에 수백점의 미술, 서예, 도예, 조각 등 각종 예술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방문객 이미자(66·경기 수원)씨는 “도청 신청사가 말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웅장한 것에 놀랐다”면서 “어느 관광지보다 인상 깊고 즐겁게 구경했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출퇴근 20분 단축… 서리풀터널 열린다

    출퇴근 20분 단축… 서리풀터널 열린다

    서울시, 국방부와 6년 협의 끝 협약 체결 40년 만에 완전 연결… 22일 정식 개통 터널 상부엔 벚꽃길… 숲 도서관도 지어서울시는 서초대로 내방역에서 서초역에 이르는 구간을 직선으로 잇는 서리풀터널을 22일 개통한다고 18일 밝혔다. 내방역에서 강남역 통행시간이 출퇴근 시간대 기준 25~35분에서 5~12분으로 20분 이상 단축된다. 전체 1280m 길이로 서초동 서리풀공원 밑을 왕복 6∼8차로로 관통하는 터널이다. 이수역사거리∼강남역사거리를 잇는 서초대로(총 3.8㎞)는 1977년 개통했지만 지금까지 공원에 있는 국군정보사령부 부지로 인해 단절돼 있었다. 때문에 이 구간을 차량으로 이동하려면 방배로, 효령로, 서초중앙로 등 주변도로로 우회해야만 했다. 서울시는 단절된 구간 연결을 위해 국방부와 6년에 걸친 협의 끝에 부지 보상 협약을 체결하고 2015년 군부대 이전을 끌어낸 뒤 3년 5개월 만에 공사를 마무리했다. 시 설계용역에 따르면 서리풀터널 개통 후 30년간 차량운행비, 소음 절감 등으로 발생하는 편익은 1890억원으로 총사업비 1506억원을 뛰어넘는다. 서울시는 정식 개통을 하루 앞둔 21일 오후 3시 박원순 시장과 조은희 서초구청장, 이창우 동작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내방역 측 터널 입구에서 개통식을 연다. 서초구는 오후 5시부터 대법원 앞 특설무대에서 개통을 축하하는 감사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미자, 윤형주, 혜은이, 거미 등이 출연한다. 터널 내부에서는 시민을 위한 야광인형극, 레이저 조명쇼 등이 펼쳐진다. 차량 통행 전 터널 안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서초구는 터널 상부에는 녹지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1.2㎞에 이르는 벚꽃길을 10월까지 조성하고, 2021년에는 전국 최초로 숲을 주제로 하는 ‘방배 숲 도서관’을 지어 서리풀공원과 어우러지는 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조 구청장은 “서리풀터널 개통은 동서의 길을 여는 의미를 넘어 서초의 미래를 열고 서초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 시장은 “서리풀터널 개통으로 강남 도심 간선도로인 서초대로가 40년 만에 완전 연결됐다. 강남지역 동·서축 연계도로망 구축으로 주변 남부순환로, 사평로 등의 교통이 분산되어 도로 정체가 해소될 것”이라며 “교통여건이 개선될 뿐 아니라 지역 간 동반 성장 및 지역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상투는 장발일까요?”

    [그때의 사회면] “상투는 장발일까요?”

    “하이힐을 벗고 단화를 신어라. 다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점으로 돌려라. 귀부인과 같은 그 손가락으로 쌀을 씻어라. 달랑거리는 핸드백을 내던지고 두툼한 책가방을 들어라.” 고려대 학생들이 이화여대 앞에서 ‘퇴폐풍조 배격’ 시위를 벌이며 이런 글이 적힌 전단을 나눠줬다(매일경제 1971년 9월 19일자). 남녀 갈등을 초래할,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시위다. 대마초, 장발, 미니스커트를 필두로 한 히피 문화에 당국이 칼을 빼들었던 때가 1971년이다. 퇴폐 단속은 정부 부처 합동으로 일시에 작전처럼 펼쳐졌다. 정부는 10월 유신을 앞두고 국민의 ‘군기’를 잡으려는 목적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퇴폐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했다. 방송가에도 단속 바람이 몰아쳤다. 라디오나 TV 프로그램은 안보 방송 위주로 개편됐다. ‘송년 대잔치’, ‘이미자의 가요 앨범’ 같은 건전한 오락 프로와 가요 프로도 퇴폐라는 올가미를 쓰고 폐지되거나 축소됐다(동아일보 1971년 12월 13일자). ‘히식스’, ‘키보이스’ 같은 보컬 그룹사운드들도 설 자리를 잃고 가요계는 소위 ‘뽕짝’ 중심으로 되돌아갔다. 퇴폐 단속은 1971~72년 무렵 절정을 이루었다. 심지어 사립초등학교 교육이 엄청난 낭비이며, 학교를 폐지해야 한다는 칼럼이 지면에 버젓이 실렸다(매일경제 1971년 10월 18일자). ‘꽃반지 끼고’라는 가요가 여고생들에게 퇴락과 탈선을 부를 염려가 있다는 글도 게재됐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축제를 무기한 연기하는 한편 검소한 복장을 입기로 결의했다. 상투 머리도 장발로 보고 단속해야 하는지를 놓고 경찰이 고민하다 상부에 문의했더니 “그냥 두라”고 해 단속하지 않았다(경향신문 1972년 1월 31일자). 유명한 뮤직 다방인 서울 명동 심지다방은 대마초 거래와 흡연을 묵인했다는 이유로 폐쇄됐다. 도서잡지윤리위원회는 주간지의 ‘운세풀이’가 교통사고, 사업 실패, 가정불화를 아무런 근거 없이 예언해 불안감을 일으킨다며 게재를 중지시켰다.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미니 당구장에는 탈선 오락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밤새 춤을 추는 고고족들을 경찰이 덮쳤고, 급기야 1972년 10월 12일 서울시장은 서울시내 모든 유흥업소에서 고고춤을 금지시켰다. 선정적, 자극적 음악으로 퇴폐풍조를 야기한다는 이유였다. 강력한 단속에도 연예계에 대마초 파동이 일자 박정희 대통령은 법무부 초도 순시에서 “공산당과 결전을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환각제가 나도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마초 사범에게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라고 지시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향군, 추모의벽 건립 성금 5억여원 모금

    향군, 추모의벽 건립 성금 5억여원 모금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은 지난해 10월 15일부터 지난달까지 ‘추모의 벽 건립 성금’을 모금한 결과 약 5억 1350만원을 모았다고 2일 밝혔다. 향군 관계자는 “김진호 향군회장이 개인적으로 1000만원을 기탁했으며 정경두 국방부 장관, 박한기 합참의장,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상돈 국회의원, 해리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등이 참여했다”며 “이상용, 신수지 등 향군상조회 홍보대사들도 성금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외 월남전참전자회(2000여만원), 대한항공(1000만원), 삼성물산(900만원) 등도 참여했다. ‘추모의 벽’은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참전기념공원 내에 둘레 50m, 높이 2.2m의 유리벽을 설치하고, 6·25 전쟁에 참전했다 희생된 전사자의 이름을 새기는 사업이다. 이곳에 기릴 대상은 3만 6000명의 전사자와 카투사 8000여명이다. 아래는 성금 접수 명단.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향군 본부 : 17,192,000원 여성부회장 양승숙 1,000,000원 *향군 산하업체 : 24,050,500원 통일전망대 - 김광천 200,000원, 이상배 50,000원, 유광호 50,000원, 한성남50,000원, 박덕용 50,000원 *향군 각급회 : 286,043,194원 서울시회 - 서울시임직원일동 200,000원, 송파구회 오월성 50,000원, 부산시회 - 부산시회 4,135,900원 경기도회 - 황신철 1,000,000원, 이희숙 50,000원, 김현주 30,000원, 가평군회 - 가평군회 장석윤 100,000원, 김동규 20,000원, 신부근 10,000원, 강진선 10,000원, 제갈준성 10,000원, 목진호 10,000원, 김종수 10,000원, 김형재 10,000원, 임종근 10,000원, 이경한 10,000원, 오금석 10,000원, 김용기 10,000원, 과천시회 - 박희옥 30,000원, 이주식 20,000원, 광주시회 - 김영중 50,000원, 노홍옥 50,000원, 조례숙 10,000원, 최명순 10,000원, 유희자 10,000원, 김경희 10,000원, 이영춘 10,000원, 박미숙 10,000원, 최진숙 10,000원, 이경옥 10,000원, 정윤서 10,000원, 박민숙 10,000원, 양경수 10,000원, 고미자 10,000원, 최광희 10,000원, 백현자 10,000원, 이도화 10,000원, 장경남 10,000원, 안경순 10,000원, 이미녀 10,000원, 손정금 10,000원, 유미숙 10,000원, 허남순 10,000원, 조은숙 10,000원, 박옥선 10,000원, 장경화 10,000원, 강순정 10,000원, 광주시여성회 250,000원 고양시회 - 구자현 100,000원, 구리시회 - 구리시회 60,000원 군포시회 - 최길영 20,000원, 신민호 10,000원, 이사회일동 100,000원, 김포시회 - 권상일 20,000원, 경인호 20,000원, 김정관 20,000원, 김종곤 20,000원, 김창회 20,000원, 김태일 20,000원, 박명산 20,000원, 서창원 10,000원, 성대용 10,000원, 오길웅 20,000원, 유성무 10,000원, 이남섭 10,000원, 이인남 20,000원, 이종하 20,000원, 조헌오 10,000원, 조화연 10,000원, 차주억 10,000원, 최광신 10,000원, 최기석 10,000원, 홍순표 10,000원, 광명시회 - 한병기 20,000원, 홍춘화 20,000원, 손장현 20,000원, 김종도 20,000원, 장영환 20,000원, 문영태 20,000원, 유기호 20,000원, 김복수 20,000원, 채갑봉 20,000원, 이재일 20,000원, 남양주시회- 고승봉 50,000원, 동두천시회 - 유재중 50,000원, 조시찬 20,000원, 양순종 100,000원, 전창국 20,000원, 윤재문 30,000원, 최성규 20,000원, 김삼동 50,000원, 심경택 20,000원, 박성준 20,000원, 송낙용 50,000원, 김송원 50,000원, 김종윤 20,000원, 김용구 20,000원, 이정하 100,000원, 임상우 50,000원, 김순금 10,000원, 김찬호 10,000원, 박미자 10,000원, 최양미 10,000원, 오외선 10,000원, 원귀례 10,000원, 김달순 5,000원, 최순자 5,000원, 김종란 5,000원, 송순애 5,000원, 박인경 5,000원, 이복순 5,000원, 이용례 5,000원, 한옥순 5,000원, 부천시회 - 우종섭 100,000원, 이양일 50,000원, 박용범 50,000원, 이상배 50,000원, 주수종 10,000원, 이병국 10,000원, 장종환 10,000원, 김성복 10,000원, 오기수 10,000원, 박원규 10,000원, 윤성근 10,000원, 금세준 10,000원, 수원시회 - 김영경 100,000원, 이사친목회 300,000원, 홍승훈 100,000원, 박유갑 100,000원, 오미선 40,000원, 김동완 50,000원, 박영구 10,000원, 하정숙 30,000원, 최정윤 20,000원, 이화장 20,000원, 안종분 10,000원, 김옥자 10,000원, 최은희 10,000원, 강은희 10,000원, 김현숙 10,000원, 이은순 10,000원, 유동화 10,000원, 최덕순 10,000원, 인혜연 10,000원, 김영자 10,000원, 이상란 10,000원, 정영란 10,000원, 김상숙 10,000원, 이미자 10,000원, 박미옥 10,000원, 이인주 10,000원, 박종순 10,000원, 정원록 10,000원, 주윤주 10,000원, 정경미 10,000원, 조병희 10,000원, 이상후 20,000원, 원창범 50,000원, 우제태 30,000원, 김용제 20,000원, 이수한 10,000원, 한교훈 100,000원, 김석우 100,000원, 심상희 20,000원, 권기종 20,000원, 이규옥 10,000원, 강용기 20,000원, 시흥시회 - 100,000원, 안산시회 - 김성수 10,000원, 권혁근 10,000원, 한기복 10,000원, 오영풍 10,000원, 조덕수 10,000원, 백병진 10,000원, 이명복 10,000원, 양흥주 10,000원, 반병부 10,000원, 이종문 10,000원, 한혁동 10,000원, 정동환 10,000원, 정창섭 10,000원, 김홍경 10,000원, 김소동 10,000원, 구권회 10,000원, 예병린 10,000원, 최원갑 10,000원, 박병욱 10,000원, 김태조 10,000원, 조현모 10,000원, 조당환 10,000원, 신정식 10,000원, 박병헌 10,000원, 이종찬 10,000원, 홍순목 10,000원, 정효영 10,000원, 전연호 10,000원, 장자량 10,000원, 윤복한 10,000원, 이남선 10,000원, 최완길 10,000원, 김임현 10,000원, 김진욱 10,000원, 안성시회 - 천동현 10,000원, 이건종 10,000원, 윤석진 10,000원, 유만곤 10,000원, 이철용 10,000원, 정재군 10,000원, 정영택 10,000원, 최종철 10,000원, 임용재 10,000원, 유원형 10,000원, 김형준 10,000원, 윤병준 10,000원, 이승재 10,000원, 한상수 10,000원, 전해인 10,000원, 백두경 10,000원, 윤택수 10,000원, 오세관 10,000원, 김건호 10,000원, 김선태 10,000원, 변영규 10,000원, 이영찬 10,000원, 김규철 10,000원, 백문기 10,000원, 성낙천 10,000원, 김성환 10,000원, 신용섭 10,000원, 이재원 10,000원, 김형진 10,000원, 양주시회 - 박윤이 100,000원, 장계숙 40,000원, 이순배 30,000원, 양인란 10,000원, 김두식 50,000원, 이윤섭 10,000원, 오수태 50,000원, 조광래 20,000원, 민범식 50,000원, 노익환 50,000원, 이경세 50,000원, 배상기 50,000원, 최호문 30,000원, 유문환 50,000원, 최희동 20,000원, 김대업 50,000원, 구성율 20,000원, 이성곤 30,000원, 김종학 30,000원, 양평시회 - 용석종 50,000원, 고은진 30,000원, 강하구 20,000원, 용환철 20,000원, 송호철 20,000원, 김재기 10,000원, 김용록 10,000원, 김호상 10,000원, 한상덕 10,000원, 김영욱 10,000원, 백승옥 10,000원, 권혁송 10,000원, 유영하 10,000원, 한응섭 10,000원, 정춘식 10,000원, 경승수 10,000원, 박현수 10,000원, 조병내 10,000원, 조한충 10,000원, 김영춘 10,000원, 명상덕 10,000원, 이용호 10,000원, 이종섭 10,000원, 조진철 10,000원, 용환영 10,000원, 장세적 10,000원, 김민섭 10,000원, 신동은 10,000원, 문영선 10,000원, 김동선 10,000원, 이정인 10,000원, 여주시회 - 여주시회 100,000원, 김병노 20,000원, 권일영 20,000원, 김일영 20,000원, 양승만 20,000원, 우희준 20,000원, 유호진 20,000원, 임병수 20,000원, 서정식 20,000원, 조봉행 20,000원, 황성기 20,000원, 의왕시회 - 김명옥 50,000원, 이원표 100,000원, 정영현 50,000원, 방태정 10,000원, 김남수 20,000원, 정연복 10,000원, 이상옥 30,000원, 한춘자 20,000원, 차영자 20,000원 의정부시회 - 최종팔 50,000원, 이원복 50,000원, 정명철 30,000원, 진귀화 50,000원, 고한서 10,000원, 이유한 10,000원, 어만용 20,000원, 신용봉 20,000원, 강영봉 10,000원, 임동창 50,000원, 송명원 10,000원, 김완희 10,000원, 남승진 10,000원, 용인시회 - 김제진 10,000원, 정관선 10,000원, 이덕주 10,000원, 김남순 10,000원, 엄기형 10,000원, 허권 10,000원, 심재호 10,000원, 이진규 10,000원, 허정 10,000원, 정우철 10,000원, 홍종민 10,000원, 강병옥 10,000원, 오태환 10,000원, 이경호 10,000원, 이창구 10,000원, 이태용 10,000원, 이용택 10,000원, 평택시회 - 서달원 50,000원, 김수배 20,000원, 박태곤 20,000원, 홍지선 20,000원, 백한기 20,000원, 포천시회 - 포천시회 130,000원, 화성 오산시회 - 강원식 30,000원, 이기동 100,000원, 김태식 50,000원, 김재규 10,000원, 여성회 100,000원, 정두식 50,000원, 나득주 10,000원, 이경주 5,000원, 이환용 50,000원, 조관연 50,000원, 김용택 10,000원, 최수교 30,000원, 이월중 10,000원, 박종하 100,000원, 박종찬 20,000원, 연기용 10,000원, 김기두 10,000원, 강광현 10,000원, 김영웅 10,000원, 김용화 10,000원, 이인숙 10,000원, 조순단 10,000원, 김해자 10,000원, 신경순 10,000원, 최자연 10,000원, 조연이 5,000원, 김연숙 10,000원, 황윤옥 10,000원, 김경애 15,000원, 윤은주 10,000원, 홍성만 10,000원, 최달균 10,000원, 김황영 100,000원, 인천시회 - 김형년 1,000,000원, 중구회 400,000원, 충북도회 - 음성군회 1,000,000원, 청주시 내수읍회 조적재 외 100,000원, 청주시회 청년단 박병준 외 160,000원, 대전·충남도회 - 대전대덕구회 1,000,000원 대구시회 - 중구 동인동회 이원록 100,000원, 손재권 300,000원, 남구회 이충도 80,000원, 최무홍 40,000원, 신창준 40,000원, 이준부 40,000원, 정기종 40,000원, 이상길 40,000원, 남구회 복덩 1동 50,000원, 대명 2동 50,000원, 대명 3동 50,000원, 남구회 이대선 90,000원, 고혁주 40,000원, 권헌표 40,000원, 홍윤표 40,000원, 김정태 40,000원, 서구회 이사회일동 300,000원, 동구회 이기조 50,000원, 김광일 50,000원, 구본준 50,000원, 황서미 50,000원, 동구향군산악회 회원일동 300,000원, 전북도회 - 전북도회 4,000,000원 광주 전남도회 - 순천시회 양동조 회장, 국장, 이사 외 1,000,000원, 나주시회 김경근 300,000원, 이도형 200,000원 경북도회 - 영천시회 김의곤 144,000원, 김제태 144,000원, 홍순태 120,000원, 하상곤 120,000원, 김영욱 120,000원, 김철호 120,000원, 윤상철 120,000원, 청송군여성회 90,000원, 경남 울산시회 - 경남울산도회 이명기 1,000,000원, 김주진 500,000원, 거창군 이사?읍?면회장 360,000원, 마산시회 110,000원, 양산시회 200,000원, 송유철 100,000원, 거제시회 130,000원, 양산시회장 1,000,000원, 제주도회 - 제주시회 1,800,000원, 해외지회 - 미중서부회 3,572,993원, 미동부지회 1,621,108원, 미북동부지회 1,680,500원 *참전친목단체/유관단체 : 57,120,425원 월남전참전자회 12,374,500원, 월남참전자회 원주지회 95,000원,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삼척시회 200,000원, 대한민국월남 동해시회 160,000원, 월남참전자 춘천지회 370,000원, 월남참전자 정선군회 200,000원, 월남참전자회 양구군회 171,000원, 월남전참전자회 양양군회 46,000원, 월남참전자회 속조시회 200,000원, 정보통신장교동우회 310,000원, 육군3사관학교 총동문회 3,960,000원, 육종전우회 2,720,000원, 단기간부사 KE 1,000,000원, 육군재정동우회 500,000원,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 100,000원, 향군장학재단 신승호 100,000원, 월남전참전자회 청주시회 서수웅 10,000원, 이장훈 10,000원, 박미조 1,000원, 정기천 2,000원, 유흥열 10,000원, 박용순 50,000원, 유상호 20,000원, 육군예비사관학교 총동문회 150,000원, *기업/일반회원 : 129,094,803원 대한항공 10,000,000원, 삼성물산(주) 9,000,000원, 반경남 ROTC 22기 1,000,000원, 고정환 200,000원, 김동신 180,000원, 김광오 100,000원, 현정렬 50,000원, 정익모 10,000원, 송낙용 50,000원, 오송희 50,000원, 조만행 10,000원, 신민호 60,000원, 김영재 10,000원, 김영조 50,000원, 장용현 10,000원, 박준호 2,000원, 장사복 50,000원, 최병주 160,000원, 박필수 20,000원, 강찬우 1,000원, 김주현 10,000원, 문희준 10,000원, 준위 김종학 30,000원, 김윤환 10,000원, 김정근 30,000원, 이창권 10,000원, 이준범 50,000원, 대한민국 100,000원, ROTC 2기 노병량 100,000원
  • 장윤정 폭풍 오열, 잘 지내는 줄 알았더니..

    장윤정 폭풍 오열, 잘 지내는 줄 알았더니..

    ‘미스트롯’ 마스터 장윤정이 심사 도중 폭풍 오열을 쏟아내면서, 녹화 마비 사태가 발생했다. 28일 방송되는 TV조선 예능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은 ‘제2의 트로트 전성기’를 이끌 ‘100억 트롯걸’을 뽑는, 국내 최초 신개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리틀 주현미, 리틀 이미자 등 무서운 10대들부터 트로트 만학도를 꿈꾸는 30대까지, 1539세대를 아우르는 지원자들, 편견 없는 트로트 심사를 위해 구성된 12인의 마스터 군단, 사상 최초로 진행될 강렬한 레드 드레스 오프닝 등이 예고되면서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와 관련 ‘제2의 장윤정’을 찾기 위해 ‘미스트롯’ 12인의 마스터 군단에 합류한 장윤정이 ‘100인 예선전’을 심사하던 와중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고개를 떨구고 마는 사태가 빚어져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윤정은 ‘미스트롯’ 무대를 심사하기 위해 출산 2개월 만에 15kg을 감량하는 등 다부진 각오와 열정으로 임했던 상황. 특히 장윤정은 ‘트롯 여제’다운 면모로 어떤 경우에도 냉정을 잃지 않은 날카로운 심사평을 남겨 무대 위 지원자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심사를 진행하던 장윤정이 한 여성이 무대 위에 등장하자마자 깜짝 놀라며 “네가 여기 왜 있어”라는 말과 함께 말을 잇지 못하고 숨죽인 울음을 토해냈던 것. 급기야 장윤정이 오열을 멈추지 못하면서, 결국 잠시 녹화가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더욱이 이후 감정을 다듬은 장윤정이 무대 위 등장한 참가자가 자신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10년 지기 친구라는 사실과 애틋한 스토리를 밝혀, 녹화장에 정적을 불러일으켰던 터. 이로 인해 12인의 마스터 군단 신지, 장영란을 비롯해 대기실에 있던 오디션 참가자들까지 눈물을 터트리면서, 현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지원자 역시 회한 어린 감정에 북받치는 눈물을 참기 위해 눈을 꼭 감고 노래를 부르며 ‘애환 가득한 무대’를 완성,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노래가 끝난 후 장윤정은 심사평에 앞서 “늘 너무 착해서 손해를 보는 친구다. 저 친구가 저렇게 착해서 아직까지 내 곁으로 올 수 없는 게 아닐까 늘 고민했다”라며 ‘10년 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녀’를 향한 안타까움을 터트렸다. 과연 장윤정의 폭풍 오열을 불러일으킨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지, ‘10년 지기’ 두 사람의 사연에 궁금증이 쏟아지고 있다. 제작진은 “‘미스트롯’에는 빛나는 스타가 되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을 감내한 지원자들이 등장해 오랜 시간을 갈망했던 꿈을 펼쳐냈다. 이 중 장윤정의 10년 지기인 ‘그녀’는 사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다 아는 ‘그녀’였기에 더욱 시선이 쏠렸다”라며 “절실한 진심이 담긴 트로트를 펼쳐낼 ‘미스트롯’ 이야기에 많은 기대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TV조선 ‘미스트롯’은 28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동백꽃 피고 지고… 한국인과 울고 웃은 60년 노래 인생

    동백꽃 피고 지고… 한국인과 울고 웃은 60년 노래 인생

    “노래 비판받을 땐 발라드 부를까 생각도 어려웠던 때와 목소리 어울려 사랑받아”감사·공감·순수 타이틀 붙은 60곡 발매 “팬들 사랑 덕분” 간담회 내내 서서 답변“1960년대 초 ‘동백 아가씨’가 히트하면서 가장 바빴습니다. 가장 기뻐야 했을 때 저에게는 항상 꼬리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미자의 노래는 ‘질이 낮다’, ‘천박하다’, ‘술집에서 젓가락 두들기면서 부르는 노래다’ 같은 꼬리표에 소외감도 들었습니다. 나도 서구풍의 발라드를 부를 수 있는데 바꿔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엘레지의 여왕’ 가수 이미자(78)씨가 데뷔 60주년을 맞았다. 2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60주년 기념 음반 및 신곡 발표회에서 이씨는 “어려웠던 시대에 노랫말이나 제 목소리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사랑받았다고 생각한다”며 “6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제가 잘 절제하면서 지탱해 왔구나 하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1973년 베트남전쟁서 한국군을 위한 최초의 위문 공연 개최, 2002년 평양 최초 단독 공연 개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과 노래를 취입한 가수 등 이씨는 한국 가요의 산 역사 그 자체다. 이씨는 60주년을 맞아 신곡과 옛 곡을 리마스터링한 기념앨범 ‘노래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을 발매했다. 앨범은 각각 ‘감사, 공감, 순수’의 타이틀이 붙은 3장의 CD로 구성됐다. 1번 CD의 첫 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는 60주년을 기념해 새로 만든 곡이다. ‘역사의 뒤안길을 함께 걸으며 동백꽃도 피고 지고 울고 웃었네.’ 지난 60년 세월 동안 한국인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이씨는 이 가사가 가장 와닿는다고 했다. 앨범에는 50주년, 45주년 기념곡과 함께 ‘섬마을 처녀’ 등 이씨의 대표곡들과 ‘황성 옛터’, ‘애수의 소야곡’ 등 이씨가 길이길이 남기고 싶은 우리의 전통 가요들도 함께 수록됐다. 이씨는 요즘 가요들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소홀하다며 “가요는 가사 전달이 중요하다”고 거푸 강조했다. 그는 “기쁨과 슬픔 등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노래 장르가 가요”라며 “요즘 서구풍의 노래들이 많이 몰려오는데 가슴이 아파도 노래에 슬픈 표정이 하나도 없고, 발음을 정확하게 들을 수도 없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앨범을 녹음하며 가사 전달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했다. 60주년을 버틴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는 ‘팬들의 사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저의 3대 히트곡인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가 전부 금지곡으로 묶였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곡들을 팬들이 한사코 불러주셔서 그 힘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오신 기자님들 부모님의 사랑이 컸기에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됐다”며 “다시 한 번 모든 분들의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그 힘으로 거장은 1시간여 간담회 내내 꼿꼿이 서서 답변했다. “이렇게 뜻깊은 날에 가만히 앉아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는 편안하니까 신경쓰지 마시고….”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금요칼럼] 20세기 한국 음악과 근·현대 무형문화유산/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20세기 한국 음악과 근·현대 무형문화유산/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유튜브는 축복이다. 최근 아르메니아 출신 미국 작곡가 앨런 호바네스(1911~2000)의 ‘Mountains and rivers without end’를 발견해 즐겁게 들었다. 번역하면 ‘끝없이 펼쳐진 산과 강’이란 뜻인데 우리에게는 강산무진(江山無盡)이라는 한문식 표현이 오히려 익숙하다. ‘강산무진’이라면 작가 김훈의 소설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시겠다. 호바네스와 김훈의 ‘강산무진’은 음악과 문학으로 장르가 갈리지만 둘 다 조선시대 화가 이인문(1745~1821)의 ‘강산무진도’를 모티브로 삼았다. ‘강산무진도’는 길이가 856㎝에 이르는 대작이다. 호바네스는 1963년 한국을 방문한 길에 덕수궁미술관에서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봤다고 한다. 호바네스는 당시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한없이 긴 산줄기와 강을 따라 떠나는 나그네 길과도 같았다. 안개 속을 헤치고 시작하는 여정은 웅장한 산, 유장한 강, 숲과 폭포, 마을과 사찰을 지나면서 끝없이 이어지다 다시 안개 속에 묻혀 허무 속에 녹아 사라진다’ 내친김에 역시 미국 작곡가 루 해리슨(1917~2003)의 ‘퍼시피카 론도’도 유튜브에서 찾았다. 해리슨은 인도네시아 전통음악 가믈란을 세계에 알린 작곡가이지만, 한국 음악을 재해석하는 작업에도 열중했다. 관현악 모음곡 ‘퍼시피카 론도’는 한국에서 멕시코에 이르는 태평양연안국가의 전통음악을 사실상 편곡한 작품이다. 박(拍)과 편종을 염두에 두었을 울림이 인상적이다. 1950~1960년대 서구 음악계는 기존의 창작 분위기에서 한계를 느끼자 그 돌파구를 동양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호바네스와 해리슨 역시 중국·일본·인도·인도네시아 등의 다양한 동양 음악을 섭렵했고 특히 한국 전통 음악에 특별한 애정을 가졌다. 호바네스와 해리슨이 한국을 찾은 1960년대 초반은 국내에서도 창작 국악이 본격 선을 보이던 시대다. 가야금 창작음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황병기(1936~2018)의 ‘숲’이 발표된 것도 1963년이다. 한국 음악의 시선에서 서양 음악을 바라보고 쓴 작품이 ‘숲’이라면 서양 음악의 시선에서 한국 음악에 눈뜨며 만든 것이 호바네스와 해리슨의 작품이다. 그런데 ‘강산무진’도 그렇고, ‘퍼시피카 론도’도 그렇고 유튜브에는 한국 음악과의 연관성을 소개하는 아무런 설명도 붙어 있지 않아 섭섭했다. 댓글에서도 이런 인식은 보이지 않았다. ‘숲’을 비롯한 황병기의 작품들이 ‘창작 국악의 고전’으로 활발히 연주되는 것과 달리 호바네스와 해리슨의 작품은 국내 연주회장에서는 듣기가 어렵다. 한국 음악의 역사에서 황병기는 물론 두 미국 작곡가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이런 역사적인 작품들은 문화재 정책 차원에서 ‘근·현대 무형문화유산’이라는 새로운 보존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미래 한국 문화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 싶다. 최근 목포의 근대문화유산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던 것처럼 근대 유형문화재는 문화재청이 등록 보호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무형문화재에는 아직 제도적 보존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다. ‘숲’ 정도라면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 호바네스와 해리슨의 작품도 분명 가치가 있다고 본다. 친일 논란이 불거지지만 않았다면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은 당연히 문화재적 가치가 있었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들었을 김정길의 ‘서울올림픽 팡파르’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학창시절 그의 작품 ‘추초문’도 인상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중음악도 예외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나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의 ‘고향역’은 문화재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노래는 국경도 세대도 상관없어… 젊은팬들이 ‘누나, 언니’라 불러요”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노래는 국경도 세대도 상관없어… 젊은팬들이 ‘누나, 언니’라 불러요”

    올해 유엔서 전 세계 젊은이를 상대로 방탄소년단(BTS)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호소했다. BTS에 앞서 이 같은 주장을 편 가수가 있다. 트로트에 전자댄스음악(EDM)을 접목시킨 강한 중독성으로 올해 수능금지곡 1위가 된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부른 가수 김연자(60)씨다. 자기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15세에 신인가요 경연대회에서 패티김의 ‘살짜기 옵서예’로 우승하며 일본으로 진출, 22년간 우리 대중가요를 알리는 트로트 가수로 지내다 5년 전 이 노래를 발표했다. 그런데 최근 수능금지곡 1위 선정에다 대학축제 섭외로까지 연결되는 등 이 노래로 역주행을 거듭하면서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라는 노랫말처럼 트로트 가수에서 청춘가수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은평구의 한 커피집에서 김씨를 만났다.→‘아모르 파티’라는 노래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윤일상 작곡가, 신철 프로듀서랑 만나 식사를 했다. 얘기 도중 윤 선생님이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으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소신껏 얘기했다. 인생찬가를 부르고 싶다고. 난 열네 살 때부터 노래하고 있다.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 슬럼프도 있었지만, 그것도 다 내 인생이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발판 아니냐. 그래서 인생찬가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인생찬가라는 게 무슨 말인가. -성인가요는 대체로 “당신이 좋아, 싫어…”라며 연인 등 타인을 대상으로 한다. 제 나이 때에 맞는 스케일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이게 나온 것이다. 굉장히 기대감을 갖고 기다린 곡이고 전혀 다른 세계의 EDM곡이었다. 처음엔 놀랐다. 하지만 싫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작곡가 선생님이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내가 활동한 것을 다 모니터링한 것 같더라. 김연자란 가수가 안 한 노래가 EDM이다. 그래서 윤 선생님이 “김연자는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난 뭐든지 싫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일단 해 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안 될 때는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노랫말이 의미 있어 보이더라. 본인은 어떤가. -이건우 작사가 선생님이 철학을 전공해 가사가 의미 있다. 노랫말 중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에 대해선 젊었을 때는 그랬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는 진짜다. →난생처음 대학축제 무대도 두 번이나 선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5월 부산대 학생축제에 갔다. 학생회 측에서 연락이 왔더라. ‘아모르 파티’ 노래가 좋다고. 그런데 왜 트로트 가수를 불렀느냐고 교내에서 논란이 된 모양이더라. 나중에 학생회장이 트로트 가수 초청을 비판하는 관련 기사 댓글은 안 봤으면 했다고 하더라. 난 SNS도 못하지만 댓글을 안 보는 스타일이다. 내 소신껏 열심히 할 뿐이다. 몇 곡을 부르고 마지막에 ‘아모르 파티’를 불렀는데 학생들이 함께 불러 주는 등 난리가 났다. 그래서 지난 11월 가을축제에도 갔다. 이번엔 개런티 없이 장학금도 주고 왔다. 한창 활동하던 80년대 군 위문은 수도 없이 많이 갔지만 대학축제는 처음이었다. →학생들 앞에 서니 기분은 어땠나. -어른들과 달라 긴장됐다. 쑥스럽기도 했다. 제가 부르는 노래가 ‘아모르 파티’ 외에는 성인가요 아니냐. 그런데 학생들이 크게 호응해 주고 어른들도 많이 계시더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10대나 20대들이 ‘아모르 파티’에 환호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노래에는 국경이 없듯 세대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아모르 파티’라는 노래가 좋으니 김연자를 아는 것 같다. 노래가 좋아서 말이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가사도 지금 현재 상황에 딱 맞지 않느냐.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직장도 안 잡히고 아르바이트하는 등 좌절의 시간을 보내는데 위로하는 노래라는 분석도 있더라. 그렇다고 생각한다. 젊을 때는 아무래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를 때 아니냐. 방황도 많이 하는 시기지만 이를 지나면 충분히 행복한 길이 있을 것이다. 힘들겠지만, 미래를 위한 희생 아니냐. →본인은 젊었을 때 어땠나. -엄청 고생했다. 우리 때는 너무 가난해서 오로지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뿐이었다. 바로 앞의 생활이 급급했다. 열네 살 때 광주에서 상경했다. 미아리의 작은아버지 집에서 지냈는데 한방에서 사촌동생 등 5명이 함께 지냈다. 작은아버지가 많이 도와주려고 했다. 청계천에 있던 오아시스 레코드를 소개받아 낮에는 2층 연습실에서 노래연습하고 밤에는 3층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만드는 공장 사람들이랑 일했다. 가수 나훈아, 방주연 등이 당시 오아시스 레코드 소속이었다. 평론가 한 분이 밤무대 일을 해 보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생계가 어려워 하고 싶었으나 나이가 걱정이었는데 “나이는 속이면 되지”라고 하더라. 그래서 한 달에 7만원을 받으며 3곳에서 밤무대를 뛰었다. 공장 일은 신곡을 내면서 관뒀다. 이 무렵 가족도 상경했다. 그러다 일본에서 가수 오디션 본다는 얘기에 참가했다. 서울에선 밤무대 서는 것 외에 딱히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말로 오디션을 봐 통과했다. 17세 때다. 그런데 당시 편법으로 일본에 취업하는 일이 많아서였는지 취업비자를 신청해도 비자가 나오지 않더라. 열 달 이상을 기다리다 1977년 8월에 일본으로 갔다. 가서 3년 전속으로 노래하며 신곡도 냈으나 해고 통지를 받아 귀국해서 메들리를 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다. 1집은 그런대로 팔리고 3집이 360만장이나 팔리며 성공의 길에 접어들었다. 성공하기까지 7년 이상 고생을 많이 했다. →노래를 부르면 청중들이 환호하는 호칭도 바뀌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과거 팬들은 “연자씨~”라고 불렀다. 그런데 요즘은 애들이 “누나! 언니!” 한다. 젊은 에너지를 받아서 기분이 좋더라. 좋은 향신료 받는 기분이다. →대학 행사 초청이 많았다고 들었다. -초청은 많이 왔으나 아쉽게도 행사가 미리미리 잡히지 않느냐. 그래서 많이 못 가고 대구의 전문대 한 곳에 갔다. →올 한 해 평가와 새해 계획이 궁금하다. -올 한 해 기뻤던 일은 ‘아모르 파티’로 새롭게 주목받은 것이고 슬픈 일은 없는 것 같다. 새해엔 윤일상 작곡가에게 ‘아모르 파티’ 후속곡을 받고 전국투어도 계획 중이다. 신곡은 곧 나올 것이다. 노래는 작곡가나 작사가 등 전문가에게 다 맡긴다. 난 도마 위에 있는 요리감이다. “절 요리해 주십시요” 하고 그분들에게 맡긴다. 그분들은 시야도 넓고 유행도 잘 따른다. →삶에 대해 겸손한 것 같다. -겸손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릴 땐 자신만만했다. 제가 잘나서 인기 있는 줄 알았다. 노래도 내가 좋아한 곡을 골랐다. 하지만 히트곡 근처에도 못 갔다.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걸 알았다. 우리는 유행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 그걸 캐치할 수 있는 사람은 여러 변화를 챙기는 안테나를 많이 세운 작곡가나 작사가 분들이다. 그런 사람들이라야 시대 흐름을 알 수 있고. 그래서 알아서 하시라고 한다. →10대 때 선호한 가수는. -이미자, 패티김 등의 노래를 불렀다. 이미자 선생님 노래는 부모님도 좋아해서 금방 불렀다. 패티김 노래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15세 때 패티김의 ‘살짜기 옵셔예’라는 곡으로 당시 TBC 가요 신인스타라는 노래자랑대회에서 우승했다. 상이 전속 1년이었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불렀다고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가요교실이라는 음악학원을 다녔다. 공짜로 중2 때까지 5년을 다녔다. 돈이 없다고 하자 학원장이 공짜로 다니게 해 주더라. 당시 또래 친구들은 동요를 좋아했다. 난 누구 영향인지 모르겠는데 트로트를 불렀다. 당시 아버지가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발소 영업이 끝나면 전축에 이미자 음반을 틀어놓고 노래 연습을 했다. →그럼 노래 때문에 별명도 있었겠다. -별명이라기보다 동네서 노래로 유명했다. 중학교 다닐 때는 학교 선생님이 나를 보면 불러서 노래 부르라는 얘기도 종종 했다. 음악 시간에 트로트를 부르기가 뭐해서 보리밭 부른 기억이 있다. 글 사진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국경에 다다른 캐러밴 행렬…美, 최루가스 쏘며 월경 막아

    국경에 다다른 캐러밴 행렬…美, 최루가스 쏘며 월경 막아

    중미 이미자들, 콘크리트 월경 시도하며 무력시위美당국, 샌디에이고 연결 검문소 교통·보행 금지미국 캘리포니아주와 경계를 접한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로 몰려든 이민자 수백 명이 25일(현지시간) 자신들의 조속한 미국 망명 신청을 압박하려고 무력시위를 벌였다고 밀레니오 TV 등 현지언론이 보도했다. 이민자들은 이날 손으로 그린 미국과 온두라스 국기를 들고 “우리는 범죄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국제 노동자들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미 국경을 향해 행진했다. 플라스틱 보호 장구를 착용한 멕시코 경찰이 미국 국경 검문소 앞에서 행진하던 이민자들을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일부 이민자 남성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있는 콘크리트 수로를 가로질러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하자 미 요원들이 최루가스를 쏘며 저지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부모를 따라 행진에 동참한 아이들이 최루가스 폭발음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기침을 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미 국경 순찰 헬리콥터가 국경을 따라 저공비행을 하고 미 요원들은 국경 철제 펜스 뒤에서 경계를 섰다. 현재 멕시코를 경유한 중미 이민자 5000여명이 티후아나의 스포츠 단지와 주변에서 노숙하고 있다. 중미 이민자 대다수가 미국 망명신청을 희망하고 있지만 산 이시드로 미 국경검문소는 하루에 100건 미만의 망명신청을 처리하고 있다.시위가 격화하자 국토안보부 산하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이날 샌디에이고-티후아나 국경에 있는 산 이시드로 검문소에서 양방향에 걸쳐 교통과 보행자의 통행을 전면 금지했다. 이민자 권리 지원단체인 푸에블로 신 프론테라스의 이리네오 무히카는 “행진은 이민자들이 처한 곤경을 멕시코와 미국 정부가 더 잘 보게 하려고 이뤄졌다”며 “우리는 모든 이민자를 이곳에 머물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캐러밴(중미 이민자 행렬)이 속속 몰려들자 인구 160만 명이 거주하는 티후아나의 후안 마누엘 가스틀룸 시장은 지난 23일 중미 이민자가 5000 명에 달하면서 인도주의적 위기에 봉착했다며 유엔의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가려는 중미 이민자들이 미국의 망명 심사 기간 멕시코에서 대기하도록 하는 방안이 양국 정부 간에 합의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지만 다음 달 1일 출범하는 멕시코 차기 정부는 “안전한 제3국 역할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이미자, 10년간 44억원 넘는 탈세..방식 보니

    이미자, 10년간 44억원 넘는 탈세..방식 보니

    가수 이미자(77)가 법원이 부과한 19억 원의 종합소득세 중 일부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미자는 10년 간 44억 원이 넘는 소득 신고를 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성용 부장판사)는 이미자가 반포세무서를 상대로 낸 종합소득세 등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이미자는 각종 공연을 통해 얻은 이익 중 상당한 부분을 매니저 권모(사망)씨를 통해 현금으로 받은 뒤 이를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세무조사 결과 드러났다. 매니저로부터 받은 돈을 자신의 계좌가 아닌 남편의 계좌에 입금하거나, 아들에게 약 20억원을 현금으로 증여하는 방식 등이 동원됐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이런 방법으로 탈루한 수입금액은 총 44억5천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조사결과에 따라 반포세무서는 이미자에게 19억9천여만원의 종합소득세를 경정·고지했다. 이미자는 이 가운데 2006∼2010년 귀속 종합소득세 9억7천여만원은 5년의 과세가능기간(부과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2011∼2014년의 부정 과소신고 가산세 중 1억4천여만원은 일반 과소신고 가산세가 적용돼야 한다는 이유로 각각 취소해 달라고 국세청 심사를 청구했다가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국세기본법은 과세가능기간을 5년으로 정하되 과세가 필요한 사실을 발견하기 곤란하게 하거나 허위사실을 지어내는 등 부정한 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10년으로 연장하도록 규정한다. 아울러 소득을 낮게 신고했을 때 10%의 가산세를 부과하되, 여기에도 부정행위가 개입한 경우 가산세를 40%로 높인다. 이미자와 남편은 “매니저 권씨를 절대적으로 신뢰해 시키는 대로 했을 뿐, 탈법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며 부정행위를 부인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종합소득세를 단순히 적게 신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은닉행위를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미자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미자가 공연료 수입액을 몰랐을 리 없는데도 그에 현저히 미달하는 금액만 신고하면서 매니저 말만 믿고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공연기획사들도 이미자의 요구에 따라 출연료를 나눠 지급했는데, 이는 거래처에 허위증빙을 하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미자는 1959년 ‘열아홉순정’으로 데뷔한 이후 1964년 ‘동백아가씨’로 35주 동안 가요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중가수로 큰 인기를 모았다. 현재도 현역으로 활동 중이며, 트로트의 여왕, 엘레지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40억대 소득 신고 누락’ 이미자, 19억원 소득세 취소 소송 ‘패소’

    ‘40억대 소득 신고 누락’ 이미자, 19억원 소득세 취소 소송 ‘패소’

    2016년 세무조사를 받은 가수 이미자씨가 10년간 44억원이 넘는 소득 신고를 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19억원대 종합소득세 중 일부를 취소해달라는 이씨의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이성용)는 이씨가 반포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종합소득세 등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씨는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콘서트를 하며 벌어들인 수익을 매니저 권모(사망)씨에게 맡겼고, 권씨는 이씨의 출연료를 본인 명의로 계좌로 받는 방식으로 소득 신고를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권씨에게 받은 돈을 자신이 아닌 남편의 계좌에 입금하거나 아들에게 약 20억원을 현금으로 증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10년간 탈루한 수입금액은 총 44억 5000여만원으로 조사됐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이 같은 이씨의 소득 신고 누락 사실을 반포세무서에 통보했고, 반포세무서는 이씨에게 해당 기간 귀속 종합소득세인 19억 9000여만원의 경정을 고지했다. 이씨는 2006~2010년 귀속 종합소득세 9억 7000여만원은 5년의 과세가능기간이 지났고, 2011~2014년 부정 과소신고 가산세 중 1억 4000여만원은 일반 과소신고 가산세가 적용돼야 한다는 이유로 각각 취소해 달라며 국세청 심사를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씨가 종합소득세를 단순히 과소 신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은닉행위를 통해 반포세무서의 조세부과와 징수를 현저하게 곤란하게 했다”면서 “이 행위에 대해 ‘사기 혹은 그 밖의 부정한 행위, 부당한 방법’으로 장기부과 제척기간과 부정 과소 신고가산세를 적용한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국세기본법은 과세가능기간을 5년으로 정했지만 과세가 필요한 사실을 발견하기 곤란하게 하거나 허위사실을 지어내는 등 부정한 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10년으로 연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재판부는 또 “이씨가 공연료 수입액을 몰랐을 리 없는데도 그에 현저히 미달하는 금액만 신고하면서 매니저 말만 믿고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공연기획사들도 이씨의 요구에 따라 출연료를 나눠 지급했는데, 이는 거래처에 허위증빙을 하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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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선거관리위원회◇1급(상임위원)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상임위원 정영식 △서울특별시선관위 상임위원 임성규 ◇2급(이사관)△중앙선관위 홍보국장(대변인 겸임) 문응철 △중앙선관위 조사국장 박찬진 △중앙선관위 사무처 이명행 △경상북도선관위 사무처 최호길 △경상남도선관위 사무처장 신영식 ◇3급(부이사관)△중앙선관위 시설과장 조용칠 △중앙선관위 조사2과장 김수연 △선거연수원 전임교수 박종진 △중앙선관위 사무처 정창영 △충청남도선관위 관리과장 김영갑 △경상북도선관위 관리과장 서동화 △서울특별시선관위 사무처장 탁덕균 △광주광역시선관위 사무처장 이남오 △전라북도선관위 사무처장 한영석 △경상북도선관위 사무처장 김종대 ■서울시교육청 ◇지방부이사관 승진 △학생교육원 총무부장 이숙자 ◇지방서기관 승진 △평생진로교육국 평생교육과 박정신 △교육행정국 교육정보화과장 오동훈 △서울시교육청 김중락 △교육시설관리본부 총무부장 김경희 △교육연수원 행정지원과장 김필곤 △학생교육원 행정지원과장 박상근 △서부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최성목 △북부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박상길 △고덕평생학습관장 어영경 △서대문도서관장 김명선 ◇지방서기관 전보△학교보건진흥원장 강동호 △학생체육관장 이정순 ■호서대학교 △생명보건대학장 박승미 △대학원장 오삼권 △연합신학대학원장 현우식 △글로벌창업대학원장 문남미 △기획부처장 류문상·박차식·곽경대 △교무부처장 김영희·이원근 △산학협력단장 김성동 △산학협력부단장 이문범 ■중소기업진흥공단 ◇승진△재도약성장처 배동식△국제협력처 천병우△강원지역본부 김은광△전북서부지부 신기철△전남지역본부 채무석△전남동부지부 김흥선△경남서부지부 김정원(이상 1급)△감사실 이찬호△기금관리실 황성익△정보관리실 박태인△진단성장처 김양호△워싱턴수출인큐베이터 박창기△기업인력지원처 김상구△중소기업연수원 백종엽△서울동남부지부 이미자△인천지역본부 김영대△경기지역본부 임동환△서부권경영지원처 배상태△충북북부지부 문용운△광주지역본부 윤영회(이상 2급)△비서실 김영호△혁신전략실 황호근△성과관리실 이정훈△정보관리실 이중석△기업금융처 김중건△기업금융처 최준영△융합금융처 국도형△수출마케팅사업처 김근호△해외직판사업처 박성태△국제협력처 조종범△산티아고수출인큐베이터 이재경△성과보상사업처 정윤섭△호남연수원 위성우△수도권경영지원처 김성재△전북지역본부 정옥열△전남동부지부 임진강△제주지역본부 박철수◇부서장 전보△기획조정실장 이종철△인재경영실장 이성희△기금관리실장 이승지△성과관리실장 배경화△고객행복실장 이미자△정보관리실장 박태인△기업금융처장 박홍주△재도약성장처장 최학수△수출마케팅사업처장 권오민△해외직판사업처장 신기철△창업기술처장 김성희△성과보상사업처장 홍병진△중소기업연수원장 김성환△호남연수원장 최천세△대구경북연수원장 김정원△부산경남연수원장 김성규△글로벌리더십연수원장 이태연△수도권경영지원처장 김창철△서울동남부지부장 권오윤△인천지역본부장 석동인△인천서부지부장 윤인규△경기동부지부장 최명선△경기서부지부장 주상식△경기북부지부장 채무석△서부권경영지원처장 박윤식△대전세종지역본부장 유창욱△충남지역본부장 배동식△충북지역본부장 박충환△전북지역본부장 조한교△전북서부지부장 차동인△광주지역본부장 윤용일△전남지역본부장 김희수△대구지역본부장 구재호△경북지역본부장 송경준△부산지역본부장 김병수△부산동부지부장 김영대△울산지역본부장 정태식△경남지역본부장 위봉수△경남서부지부장 이찬호
  • ‘한국 보수의 본류’…화려한 JP의 인맥

    ‘한국 보수의 본류’…화려한 JP의 인맥

    ‘3김 정치’의 한축을 차지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에게는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달리 가신그룹이 없다. YS에게는 상도동계, DJ에게는 동교동계 등 정치적 둥지를 중심으로 한 측근그룹이 있었지만, JP에게는 딱히 청구동계로 부를 만한 그룹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 김씨가 오랜 세월 대권을 향해 부단히 돌진해 마침내 정권을 창출한 반면 JP는 ‘영원한 2인자’로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보수의 본류라고 불리는 JP의 화려한 인맥은 우리 사회 곳곳에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다. 우선 그가 정치일선에서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정당인 자민련을 꼽을 수 있다. 한때 그의 오른팔로 불렸던 김용환 전 재무부 장관과 김광수·한영수·강창희·김현욱·이긍규·이태섭·구천서·함석재·이동복·이건개·이양희 전 의원 등이 JP의 근위병들이었다. 자민련 출신 중 자유선진당 변웅전 전 대표가 2012년까지 현직을 유지하고 모두 정계를 떠났다. 그의 인맥은 1951년 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 박영옥씨와 결혼하면서 기반을 닦는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에 동참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인맥이 펼쳐진다. 박 전 대통령 시절 남덕우 전 국무총리, 신직수·김재춘 전 중앙정보부장, 윤천주 전 문교부 장관 등과 민족중흥회를 구성해 JP가 정치를 재개한 1987년 3공화국의 맥을 잇는다는 취지로 그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민족중흥회는 그해 신민주공화당 창당의 주축이 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윤주영 전 문공부 장관이 이끄는 신민주공화당 사무처 요원들의 모임인 ‘은행나무 동지회’도 있다. 이들은 JP의 말년에도 청구동을 출입하며 끈끈한 동지애를 과시했다. 또 1995년 측근들이 만든 ‘97회’(회장 박창규)도 JP의 든든한 인맥 중 하나다. ‘97회’는 JP가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에 있을 때 1997년 대선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결성된 대선 조직이었다. JP의 모교인 공주고동창회, 육사 동기들의 모임인 ‘육사 8기회’ 등 정치권 외곽조직도 그를 둘러싸고 있다. 지연과 혈연을 중심으로 뭉친 충청향우회와 가락종친회도 JP의 인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가락종친회는 JP가 첫번째 국무총리를 지낸 1971년부터 그가 공을 들여온 혈맥이다. JP는 문화·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영화감독 김수용, 고(故) 조병화 시인, 소설가 홍성유, 화가 김흥수, 가수 이미자씨와 친분이 두텁고 가수 패티 김의 주례를 서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가 한창인 2016년 말에는 박 전 대통령과의 사촌형부-조카 인연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해 11월 시사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 내려오라고 ‘네가 무슨 대통령이냐’고 해도 거기 앉아있을 것이다. 그 고집을 꺾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헌정사상 최초 파면되자 “대통령이 힘이 빠지면 나라가 결딴난다”는 성원으로 가족애를 보이기도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하동출신 작사가 정두수 전국가요제 7월 개최

    하동출신 작사가 정두수 전국가요제 7월 개최

    경남 하동출신 정두수(1937~2016) 작사가의 음악 업적을 기억하고 노래 재능이 우수한 신인 가수를 발굴하기 위한 ‘정두수 전국가요제’가 오는 7월 하동에서 열린다.한국연예예술인협회 하동지회는 30일 신인가수 등용문인 ‘제7회 정두수 전국가요제’를 제4회 섬진강재첩축제 기간인 오는 7월 22일 하동군 송림공원 특설무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까지 ‘섬진강 전국가요제’라는 이름으로 섬진강 재첩축제때 열었던 가요제 명칭을 올해부터 하동 정두수 전국가요제로 바꾸었다. 한국연예예술인협회 하동지회는 한국 가요계의 대표 작사가로 꼽히는 정두수 선생을 추모하는 가요제로 위상을 높이고 대한민국 명품 가요제임을 알리기 위해 명칭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가요제 참가자격은 음반을 출시하지 않고 한국연예예술인협회 회원이 아닌 전국 만 16세 이상으로, 참가곡은 한국어에 기반을 둔 노랫말로 이뤄진 한국가요다. 6월 23일까지 참가접수를 받은 뒤 6월 24일 하동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예선을 거쳐 본선 참가자를 뽑는다. 본선에서 최고상인 대상 1명에게는 상금 500만원과 가수 인증서를 준다. 금상 200만원, 은상 50만원, 동상 30만원, 인기상은 20만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정두수 작사가는 1963년 ‘덕수궁 돌담길’ 노랫말을 지어 대중가요 작사가로 데뷔한 뒤 ‘흑산도 아가씨’(이미자), ‘가슴 아프게’(남진), ‘물레방아 도는데’(나훈아), ‘공항의 이별’(문주란), ‘마포 종점’(은방울 자매) 등 수많은 히트곡의 주옥같은 가사를 썼다. 그가 작사한 노래는 3500여곡에 이른다. 2016년 8월 80세로 별세했다.전국 13곳에 정두수 선생의 노래비가 건립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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