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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 일자리 초토화시킨 사람을 국회의원 뽑아준다고?”...前경제수석의 일침

    “청년 일자리 초토화시킨 사람을 국회의원 뽑아준다고?”...前경제수석의 일침

    “생업으로 돈을 벌어 세금을 내본 적이 없는 사람, 세상에 ‘공짜’가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 이런저런 법으로 청년 일자리를 초토화시킨 사람,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입법을 한 사람에겐 4월 총선에서 절대로 표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박병원(72)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은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잃어버린 시대’를 우려하는 상황에 내몰린 가장 큰 이유로 ‘나쁜 정치’를 들었다. 진보·보수 정부에서 경제정책 수립의 중책을 담당했고 우리금융 회장, 은행연합회 회장, 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민간부문 수장으로도 오랜 관록을 지닌 그는 당대의 경제 지략가로 통한다. 서울신문은 한국경제의 심박동을 끌어올릴 방안이 무엇인지 모색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박 이사장과 편집국장 신년 대담을 가졌다.서울 종로구의 사무실 한 켠에 야생화 사진으로 만든 2024년 달력이 걸려 있었다. 지난 여름 보름 남짓 일정으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의 알프스로 트레킹을 다녀왔다는 그는 “백두대간에는 알프스처럼 케이블카, 등반열차를 설치할 수도 없고 (대피소가 아닌) 제대로 된 산장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국립공원이 불필요하게 많은 것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공원으로 지정해 달라고 국가에 요청한 결과입니다. 그래야 도로 등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국립공원이 되면 규제에 묶여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은 지자체들이 국립공원 지정을 풀어달라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규제 때문에 내수로 흐를 돈 놓쳐 -(김태균 편집국장)자연스럽게 규제 이야기로 시작하게 됐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규제 혁신이 핵심 국정과제로 강조되는 것은 그만큼 제대로 된 적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박 이사장)차량호출 서비스 ‘타다’를 금지하는 법이 왜 나왔나. 택시업계가 반대하니까 국회가 앞장서서 입법을 했다. 공인중개사 표를 얻으려고 국회의원들이 ‘직방(부동산 중개서비스)금지법’도 발의했다. 택시기사를 위하고 공인중개사를 위한다는 것인데, 정작 국민 전체를 위하는 의원은 없다. 문재인 정부 때 반도체산업육성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질질 끌었는데 여당 의원 중 한 명이 ‘삼성전자에 이익이 될 테니 못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 논리면 우리는 구멍가게밖에 할 수 없다. 정권과 정치권이 경제 논리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돈 버는 게 죄가 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경제가 잘 되겠는가. 지금도 국회는 끊임없이 규제법안을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의 덫에 갇혀 있다.” -4월에 총선이 치러진다. 국민들의 선택이 중요할 것 같은데. “현역(의원) 출마자들이 재임 중 어떤 나쁜 법안을 만들었고, 어떤 낭비성 예산을 통과시키는 데 참여했는지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광주와 대구를 잇는 ‘달빛철도’에 들어갈 돈이 6조~7조원이라고 한다. 예비타당성 면제 특별법을 만든 의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새만금과 무안·양양·울진·가덕도 공항에 헛된 돈을 쓰고, 저출산으로 소멸할 위기에 처한 나라를 만들어놓은 정치인의 잘못도 따져야 한다. 나랏돈을 잘 썼으면 인구 위기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국회도 문제지만 정부 정책이 국가경쟁력을 잠식했다는 비판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한답시고 교육, 의료, 교통, 통신비를 최대한 억눌러 소비 지출을 최소화함으로써 국민들이 돈을 쓸 여유를 만들어주겠다 했다. 서비스업을 일자리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고, 싼값에만 공급하려고 했다. 애초 가능한 일인가.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공)교육을 만들어놓고 더 좋은 교육은 학원, 해외로 가라고 해놓은 격이니 교육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의료 산업도 마찬가지다. 있는 사람들은 병을 고치러 해외로 나간다. 말도 안 되는 규제 때문에 내수로 흐를 돈을 얼마나 놓치고 있는지 봐야 한다. 국민은 돈을 쓸 각오가 돼 있는데 국가는 그럴 생각이 없다. 정부마다 새로 출범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통신비 인하, 카드 수수료 삭감이다. 도무지 돈을 벌 수 있게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모두에게 고만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건데 이게 과연 국민이 원하는 걸까. 이래 서야 우리 서비스 산업이 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역대 정부가 예외 없이 서비스산업 발전 방안을 내놓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싼값에 고급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건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이다.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거짓말이다. 국민 누구도 ‘남보다 더 나은 교육’, ‘남보다 더 나은 의료’ 서비스는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교육, 의료에서 유출되는 막대한 외화를 우리 대학, 우리 병원으로 돌릴 수 있다면 등록금과 보험 수가를 덜 올리고도 교육의 질을 높이고 병원 적자를 줄일 수 있다.”대한민국은 ‘정치의 덫’에 갇혔다‘타다·직방 금지법’ 기득권 표심용‘예타 면제법’도 수십조 예산 낭비위기 내몬 정치인 왜 책임 안 지나싼값에 고급 서비스? 미션 임파서블!누구도 만족 못 할 공교육·공공의료그러니 사교육이나 해외로 눈 돌려제조업처럼 외국시장과 경쟁해야인구감소 흐름 ‘뉴 노멀’ 되어선 안 돼태어난 아이도 대학 전액 지원 등파괴적 출산 대책 나랏돈 쏟아야청년고용 안정 위한 노동 개혁도●산업 개방 안 하면 목숨 걸고 안 뛰어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서비스업을 제조업처럼 하면 세계 최고로 만들 수 있다. 제조업은 걸음마 단계부터 수출을 했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시장을 개방했다. 그러자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졌다. 여태껏 시장을 개방해서 해당 분야의 산업이 몰락한 사례가 없다. 오히려 개방을 안 한 산업만 성장을 못 했다. 대표적인 게 의료, 교육, 통신, 교통 같은 서비스업이다. 개방을 안 하니까 목숨 걸고 뛰지 않는다. 전부 규제산업이기도 하다. 규제를 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기존 시장 참여자들에게 지원과 보호를 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은 이런 함정에 빠져 있다.” -규제 혁파나 서비스 산업 경쟁력 제고를 외치고는 있는데도 현실에서는 경쟁력이 더 떨어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비싼 땅값·노동시장 경직, 투자하겠나 “투자가 안 이뤄지면 우리 경제는 한 걸음도 못 나간다. 연구개발(R&D)이나 인적 자원 모두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는 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일자리는 기업에 의해 생긴다. 물론 투자는 이익 발생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의 치명적인 결함은 땅값은 너무 비싸고 노동시장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주는 세제 혜택을 안 주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야 어떤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하겠는가. 가뜩이나 투자하기에 별 볼 일 없는 나라인데 정부의 투자 유치 노력은 더 미약해졌다. 투자가 늘어나야 좋은 일자리도 늘어나는데 그게 안 되니 ‘편의점 알바’ 자리밖에 안 생긴다. 2002년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가 각각 동북아와 중동의 금융허브를 만들겠다고 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성적표를 보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정부부처의 뿌리 깊은 규제 신봉과 행정 일선의 낡은 관행도 문제 아닌가. “총리실 규제개혁 자문위원을 1년째 하고 있는데 답답한 게 많다. 일선 공무원들이 책임지기 싫으니까 안 움직이려고 한다. 국회까지 가지 않고 조례나 시행령만 고쳐도 되는 일들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의대 정원 증원만 해도 국회에 안 가도 되는 사안이다. 의사협회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증원에 반대하면서도 ‘의사 수가 늘어나면 국민 의료비용 증가가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비슷한 논리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규제와 관련해 대한민국 경제의 ‘암적인 요소’가 토지 공급 부족이라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서울의 경우 박원순 전 시장 때 재개발 재건축을 금지시킨 게 치명적이었다. 토지 공급 루트는 재개발·재건축 밖에 없는데 그때 완전히 끊겼다. 인재(人災)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가격 폭등도 토지 공급이 끊어진 데서 비롯됐다. 지금 풀고는 있지만 효과는 4~5년 후에 나타난다. 땅값이 비싸니 기업들이 투자를 하기 어렵다. LG필립스가 20년 전 파주 2000만평 부지에 공장을 짓겠다고 했을 때 수도권 인구 집중, 군사시설, 문화재 보호 등을 이유로 인허가를 도저히 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안 해 주면 중국 간다고 하는데 어떡하나’라고 주변을 설득해 결단을 내렸다.” -농사를 안 지을 사람은 농지를 못 사게 해놓은 현행법도 손볼 때 된 것 아닌가. “한국 농지가 미국 농지보다 30배는 비싸다. 누가 농사 짓겠다고 그 큰돈을 내겠는가. 규제 풀어주면 난개발이 이뤄진다는 건 웃기는 소리다. 규제를 없앤다고 해서 설악산, 관악산 꼭대기에 공장을 짓겠나, 만경평야 한복판에 집을 짓겠나. 규제를 풀어도 투자와 개발은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지금은 규제를 풀어주어도 정작 수요가 없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상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인구 위기 때문에 ‘소멸’이 화두로 떠올랐다. “인구가 감소하는 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인구가 증가하는 경제를 운영하는 것보다 100배 이상 힘들다. 일부에서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뉴’도 ‘노멀’도 아닌 극히 비정상적 상황이다. 인구가 감소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수요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인구대책이 경제정책의 제1조가 돼야 한다. 인구 감소는 무조건 반전시켜야 한다. 동원할 수 있는 자원, 낭비되는 재원을 탈탈 털어 출산 장려에 써야 한다. ” -정부는 2006년 이후 저출산 대책에 380조원을 썼다고 한다. 지방정부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우선 380조원을 썼다는 얘기부터 짚어봐야 한다. 덩치 큰 청년임대주택 예산처럼 이것저것 가져다 억지로 짜맞춘 수치다. 가공의 숫자로 국민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인구 정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예산을 ‘하나의 주머니’에 담는 것이다. 부처별로 실시하고 있는 것들 다 집어치우고 한데로 끌어모아야 한다. 돈은 뭉쳐야 힘이 있다. 위원회 같은 형태가 아니라 보건복지부든 기획재정부든 어느 한 부처에서 확실하게 틀어쥐고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출산하는 아이들은 물론 이미 태어난 아이들도 대학 학비를 다 지원한다는 식으로 해야 한다. 국가·지방재정 따질 것 없이 끌어모아 파괴적인 출산 장려책을 펴야 한다.” ●국가 발전 위해 엘리트 이민 허용해야 -저출산 대책이 효과를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우선은 외국에서 우수한 노동력과 두뇌를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할 텐데. “마지못해 ‘이민을 허용한다’는 식의 미지근한 자세로는 안 된다. 육체노동 수요 중심의 발상도 깨뜨려야 한다. 국가발전을 위해 고급인력을 스카우트해야 한다. 그걸 못 하면 수렁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다.” -우리 청년들이 아이 낳을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출발점은 역시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아닐까. “노동개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미 취직한 사람한테 이로운 일은 그 어떤 것도 아직 취직하지 못한 사람에겐 불리한 일이 된다. 대표적인 게 정년 연장이다. 정년은 해고 제한의 반사적 거울이고, 호봉제의 폐해다. 해고가 자유롭거나 연봉제 같은 탄력적 임금체계가 확립되면 정년이 필요 없다. 정년은 회사가 계속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호하는 제도다. 신입사원 3명분의 임금을 가져가는 사람들 때문에 청년들이 희생당하는 제도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유연성 제고라지만, 해고를 쉽게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데. “당장은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양대 노총 눈치를 보는 정치권 때문에 그들의 기득권을 완화하는 것은 어렵다. 대신에 ‘기득권은 건드리지 않을 테니 노동자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해 달라’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테면 신입사원들에 대해서만큼은 연봉제와 성과급, 직무급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임금체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호봉제는 젊은 시절에는 저임금, 나이 들어서는 고임금을 받는 구조다. 평생직장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제도다. 모든 노동자가 같은 것을 원하지 않는데, 왜 그들이 다른 조건으로 취업하는 것을 가로막나. 최저임금위원회의 노사 대표들도 다 교체해야 한다. 실제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를 주고받는 사용자·노동자들이 대표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 박병원 이사장은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은 1975년 행정고시 17회로 입직한 뒤 재정경제원 예산총괄과장과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등 요직을 역임했다. 재경부 1차관을 끝으로 30여년 공직생활을 접은 뒤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대통령실 경제수석(이명박 정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은행연합회 회장, 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냈고 윤석열 정부에서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과 서비스산업 발전 태스크포스(TF)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2월 사단법인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그는 “‘제2의 윤미향’을 막자는 취지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대기업의 후원금, 지원을 받는 법인, 비영리기관이 수만 곳인데 제대로 평가하는 기관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 [씨줄날줄] 대통령 신년 회견/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대통령 신년 회견/이순녀 논설위원

    새해 벽두에 대통령이 국정 운영 구상을 소상히 밝히고, 기자들이 국민을 대신해 궁금한 사안을 질문하는 신년 기자회견 관행은 역사가 깊다.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이 처음이었으니 반세기가 넘는다. 군사정권 등에선 질문과 답변이 미리 정해진 ‘각본 회견’의 한계가 있었지만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YS) 전 대통령부터 각본 없는 기자회견이 자리잡아 국민 이목을 집중시켰다. 역대 대통령들은 대체로 신년 기자회견을 연례행사로 인식하고 심혈을 기울여 대응했다. 임기 내내 단 한 번도 신년 회견을 하지 않고 국정연설로 대신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일한 예외다. 다만 다른 대통령들도 사정에 따라 연설이나 기자간담회로 대체한 사례가 없지 않다. YS는 집권 4년차인 1996년 1월 9일 국정 연설문만 낭독하고 자리를 떴다. 연설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던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기자회견은 행사 나흘 전에 갑자기 취소됐는데 대선자금 문제 등 민감한 정치 현안에 부담을 느껴 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듬해인 1997년엔 다시 신년 회견을 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부터 매년 신년 회견을 했지만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인 2017년 1월 1일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신년 인사회를 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후 첫 신년 기자회견을 건너뛰었다. 10분 분량의 신년사와 언론 단독 인터뷰를 대국민 소통 창구로 택한 대통령을 향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컸다.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어떤 공식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다. 당선인 시절과 임기 초반에 언론과 적극 소통했던 것과 다른 면모에 실망한 국민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이 어제 신년사를 통해 집권 3년차 국정 운영 방향과 각오를 밝혔다. 20분 동안 생중계된 신년사에서 민생경제, 3대 개혁, 과학기술 강군 등에 매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는 신년사와 별개로 이달 중순쯤 신년 회견을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민감한 현안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그러나 국민 알권리를 대신한 기자 질문에 답하는 것, 그게 국가 지도자의 중요한 소임 아니겠나.
  • 규제 혁파 막는 건 ‘나쁜 정치’…대기업이 돈 벌면 죄 되는 나라, 이런 법 만든 이들 또 뽑겠나

    규제 혁파 막는 건 ‘나쁜 정치’…대기업이 돈 벌면 죄 되는 나라, 이런 법 만든 이들 또 뽑겠나

    “생업으로 돈을 벌어 세금을 내본 적이 없는 사람, 세상에 ‘공짜’가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 이런저런 법으로 청년 일자리를 초토화시킨 사람,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 입법을 한 사람에겐 4월 총선에서 절대로 표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박병원(72)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은 우리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잃어버린 시대’를 우려하는 상황에 내몰린 가장 큰 이유로 ‘나쁜 정치’를 들었다. 진보·보수 정부에서 경제정책 수립의 중책을 담당했고 우리금융 회장, 은행연합회 회장, 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민간부문 수장으로도 오랜 관록을 지닌 그는 당대의 경제 지략가로 통한다. 서울신문은 한국경제의 심박동을 끌어올릴 방안이 무엇인지 모색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박 이사장과 편집국장 신년 대담을 가졌다.서울 종로구의 사무실 한 켠에 야생화 사진으로 만든 2024년 달력이 걸려 있었다. 지난 여름 보름 남짓 일정으로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의 알프스로 트레킹을 다녀왔다는 그는 “백두대간에는 알프스처럼 케이블카, 등반열차를 설치할 수도 없고 (대피소가 아닌) 제대로 된 산장도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국립공원이 불필요하게 많은 것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공원으로 지정해 달라고 국가에 요청한 결과입니다. 그래야 도로 등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국립공원이 되면 규제에 묶여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은 지자체들이 국립공원 지정을 풀어달라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규제 때문에 내수로 흐를 돈 놓쳐 -(김태균 편집국장)자연스럽게 규제 이야기로 시작하게 됐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규제 혁신이 핵심 국정과제로 강조되는 것은 그만큼 제대로 된 적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박 이사장)차량호출 서비스 ‘타다’를 금지하는 법이 왜 나왔나. 택시업계가 반대하니까 국회가 앞장서서 입법을 했다. 공인중개사 표를 얻으려고 국회의원들이 ‘직방(부동산 중개서비스)금지법’도 발의했다. 택시기사를 위하고 공인중개사를 위한다는 것인데, 정작 국민 전체를 위하는 의원은 없다. 문재인 정부 때 반도체산업육성특별법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질질 끌었는데 여당 의원 중 한 명이 ‘삼성전자에 이익이 될 테니 못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 논리면 우리는 구멍가게밖에 할 수 없다. 정권과 정치권이 경제 논리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돈 버는 게 죄가 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경제가 잘 되겠는가. 지금도 국회는 끊임없이 규제법안을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의 덫에 갇혀 있다.” -4월에 총선이 치러진다. 국민들의 선택이 중요할 것 같은데. “현역(의원) 출마자들이 재임 중 어떤 나쁜 법안을 만들었고, 어떤 낭비성 예산을 통과시키는 데 참여했는지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광주와 대구를 잇는 ‘달빛철도’에 들어갈 돈이 6조~7조원이라고 한다. 예비타당성 면제 특별법을 만든 의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새만금과 무안·양양·울진·가덕도 공항에 헛된 돈을 쓰고, 저출산으로 소멸할 위기에 처한 나라를 만들어놓은 정치인의 잘못도 따져야 한다. 나랏돈을 잘 썼으면 인구 위기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국회도 문제지만 정부 정책이 국가경쟁력을 잠식했다는 비판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한답시고 교육, 의료, 교통, 통신비를 최대한 억눌러 소비 지출을 최소화함으로써 국민들이 돈을 쓸 여유를 만들어주겠다 했다. 서비스업을 일자리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고, 싼값에만 공급하려고 했다. 애초 가능한 일인가.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공)교육을 만들어놓고 더 좋은 교육은 학원, 해외로 가라고 해놓은 격이니 교육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 의료 산업도 마찬가지다. 있는 사람들은 병을 고치러 해외로 나간다. 말도 안 되는 규제 때문에 내수로 흐를 돈을 얼마나 놓치고 있는지 봐야 한다. 국민은 돈을 쓸 각오가 돼 있는데 국가는 그럴 생각이 없다. 정부마다 새로 출범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통신비 인하, 카드 수수료 삭감이다. 도무지 돈을 벌 수 있게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모두에게 고만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건데 이게 과연 국민이 원하는 걸까. 이래 서야 우리 서비스 산업이 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역대 정부가 예외 없이 서비스산업 발전 방안을 내놓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싼값에 고급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건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이다.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거짓말이다. 국민 누구도 ‘남보다 더 나은 교육’, ‘남보다 더 나은 의료’ 서비스는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교육, 의료에서 유출되는 막대한 외화를 우리 대학, 우리 병원으로 돌릴 수 있다면 등록금과 보험 수가를 덜 올리고도 교육의 질을 높이고 병원 적자를 줄일 수 있다.”대한민국은 ‘정치의 덫’에 갇혔다‘타다·직방 금지법’ 기득권 표심용‘예타 면제법’도 수십조 예산 낭비위기 내몬 정치인 왜 책임 안 지나싼값에 고급 서비스? 미션 임파서블!누구도 만족 못 할 공교육·공공의료그러니 사교육이나 해외로 눈 돌려제조업처럼 외국시장과 경쟁해야인구감소 흐름 ‘뉴 노멀’ 되어선 안 돼태어난 아이도 대학 전액 지원 등파괴적 출산 대책 나랏돈 쏟아야청년고용 안정 위한 노동 개혁도●산업 개방 안 하면 목숨 걸고 안 뛰어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서비스업을 제조업처럼 하면 세계 최고로 만들 수 있다. 제조업은 걸음마 단계부터 수출을 했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시장을 개방했다. 그러자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졌다. 여태껏 시장을 개방해서 해당 분야의 산업이 몰락한 사례가 없다. 오히려 개방을 안 한 산업만 성장을 못 했다. 대표적인 게 의료, 교육, 통신, 교통 같은 서비스업이다. 개방을 안 하니까 목숨 걸고 뛰지 않는다. 전부 규제산업이기도 하다. 규제를 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기존 시장 참여자들에게 지원과 보호를 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은 이런 함정에 빠져 있다.” -규제 혁파나 서비스 산업 경쟁력 제고를 외치고는 있는데도 현실에서는 경쟁력이 더 떨어지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비싼 땅값·노동시장 경직, 투자하겠나 “투자가 안 이뤄지면 우리 경제는 한 걸음도 못 나간다. 연구개발(R&D)이나 인적 자원 모두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는 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일자리는 기업에 의해 생긴다. 물론 투자는 이익 발생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의 치명적인 결함은 땅값은 너무 비싸고 노동시장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도 주는 세제 혜택을 안 주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야 어떤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하겠는가. 가뜩이나 투자하기에 별 볼 일 없는 나라인데 정부의 투자 유치 노력은 더 미약해졌다. 투자가 늘어나야 좋은 일자리도 늘어나는데 그게 안 되니 ‘편의점 알바’ 자리밖에 안 생긴다. 2002년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가 각각 동북아와 중동의 금융허브를 만들겠다고 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성적표를 보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정부부처의 뿌리 깊은 규제 신봉과 행정 일선의 낡은 관행도 문제 아닌가. “총리실 규제개혁 자문위원을 1년째 하고 있는데 답답한 게 많다. 일선 공무원들이 책임지기 싫으니까 안 움직이려고 한다. 국회까지 가지 않고 조례나 시행령만 고쳐도 되는 일들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의대 정원 증원만 해도 국회에 안 가도 되는 사안이다. 의사협회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증원에 반대하면서도 ‘의사 수가 늘어나면 국민 의료비용 증가가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비슷한 논리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규제와 관련해 대한민국 경제의 ‘암적인 요소’가 토지 공급 부족이라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서울의 경우 박원순 전 시장 때 재개발 재건축을 금지시킨 게 치명적이었다. 토지 공급 루트는 재개발·재건축 밖에 없는데 그때 완전히 끊겼다. 인재(人災)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가격 폭등도 토지 공급이 끊어진 데서 비롯됐다. 지금 풀고는 있지만 효과는 4~5년 후에 나타난다. 땅값이 비싸니 기업들이 투자를 하기 어렵다. LG필립스가 20년 전 파주 2000만평 부지에 공장을 짓겠다고 했을 때 수도권 인구 집중, 군사시설, 문화재 보호 등을 이유로 인허가를 도저히 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안 해 주면 중국 간다고 하는데 어떡하나’라고 주변을 설득해 결단을 내렸다.” -농사를 안 지을 사람은 농지를 못 사게 해놓은 현행법도 손볼 때 된 것 아닌가. “한국 농지가 미국 농지보다 30배는 비싸다. 누가 농사 짓겠다고 그 큰돈을 내겠는가. 규제 풀어주면 난개발이 이뤄진다는 건 웃기는 소리다. 규제를 없앤다고 해서 설악산, 관악산 꼭대기에 공장을 짓겠나, 만경평야 한복판에 집을 짓겠나. 규제를 풀어도 투자와 개발은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지금은 규제를 풀어주어도 정작 수요가 없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상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인구 위기 때문에 ‘소멸’이 화두로 떠올랐다. “인구가 감소하는 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인구가 증가하는 경제를 운영하는 것보다 100배 이상 힘들다. 일부에서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뉴’도 ‘노멀’도 아닌 극히 비정상적 상황이다. 인구가 감소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수요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인구대책이 경제정책의 제1조가 돼야 한다. 인구 감소는 무조건 반전시켜야 한다. 동원할 수 있는 자원, 낭비되는 재원을 탈탈 털어 출산 장려에 써야 한다. ” -정부는 2006년 이후 저출산 대책에 380조원을 썼다고 한다. 지방정부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우선 380조원을 썼다는 얘기부터 짚어봐야 한다. 덩치 큰 청년임대주택 예산처럼 이것저것 가져다 억지로 짜맞춘 수치다. 가공의 숫자로 국민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인구 정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 예산을 ‘하나의 주머니’에 담는 것이다. 부처별로 실시하고 있는 것들 다 집어치우고 한데로 끌어모아야 한다. 돈은 뭉쳐야 힘이 있다. 위원회 같은 형태가 아니라 보건복지부든 기획재정부든 어느 한 부처에서 확실하게 틀어쥐고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출산하는 아이들은 물론 이미 태어난 아이들도 대학 학비를 다 지원한다는 식으로 해야 한다. 국가·지방재정 따질 것 없이 끌어모아 파괴적인 출산 장려책을 펴야 한다.” ●국가 발전 위해 엘리트 이민 허용해야 -저출산 대책이 효과를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우선은 외국에서 우수한 노동력과 두뇌를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할 텐데. “마지못해 ‘이민을 허용한다’는 식의 미지근한 자세로는 안 된다. 육체노동 수요 중심의 발상도 깨뜨려야 한다. 국가발전을 위해 고급인력을 스카우트해야 한다. 그걸 못 하면 수렁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다.” -우리 청년들이 아이 낳을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출발점은 역시 양질의 일자리 확충이 아닐까. “노동개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미 취직한 사람한테 이로운 일은 그 어떤 것도 아직 취직하지 못한 사람에겐 불리한 일이 된다. 대표적인 게 정년 연장이다. 정년은 해고 제한의 반사적 거울이고, 호봉제의 폐해다. 해고가 자유롭거나 연봉제 같은 탄력적 임금체계가 확립되면 정년이 필요 없다. 정년은 회사가 계속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보호하는 제도다. 신입사원 3명분의 임금을 가져가는 사람들 때문에 청년들이 희생당하는 제도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유연성 제고라지만, 해고를 쉽게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데. “당장은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양대 노총 눈치를 보는 정치권 때문에 그들의 기득권을 완화하는 것은 어렵다. 대신에 ‘기득권은 건드리지 않을 테니 노동자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해 달라’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테면 신입사원들에 대해서만큼은 연봉제와 성과급, 직무급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임금체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호봉제는 젊은 시절에는 저임금, 나이 들어서는 고임금을 받는 구조다. 평생직장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제도다. 모든 노동자가 같은 것을 원하지 않는데, 왜 그들이 다른 조건으로 취업하는 것을 가로막나. 최저임금위원회의 노사 대표들도 다 교체해야 한다. 실제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를 주고받는 사용자·노동자들이 대표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 박병원 이사장은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은 1975년 행정고시 17회로 입직한 뒤 재정경제원 예산총괄과장과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등 요직을 역임했다. 재경부 1차관을 끝으로 30여년 공직생활을 접은 뒤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대통령실 경제수석(이명박 정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은행연합회 회장, 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냈고 윤석열 정부에서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과 서비스산업 발전 태스크포스(TF)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2월 사단법인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그는 “‘제2의 윤미향’을 막자는 취지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대기업의 후원금, 지원을 받는 법인, 비영리기관이 수만 곳인데 제대로 평가하는 기관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 [한규섭의 데이터 정치학] ‘정치의 사법화’가 촉발한 ‘사법의 정치화’… 법원 신뢰 추락 우려/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정치커뮤니케이션)

    [한규섭의 데이터 정치학] ‘정치의 사법화’가 촉발한 ‘사법의 정치화’… 법원 신뢰 추락 우려/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정치커뮤니케이션)

    한국 정치의 굵직한 흐름이 사법부 결정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전직 대통령들 대다수가 사법적 문제로 감옥에 가거나 탄핵됐다. 한국 정치에서는 정치와 사법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이에 따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가 맞는 후보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일이 일상화돼 버렸다. 미국에서도 종신제인 연방대법관 가운데 공석이 생기면 정부 이념 및 정책 지향성과 일치하는 후보를 임명하는 것이 상식이다. 미국은 대법원이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역할까지 담당하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극심한 ‘정치의 사법화’로 인한 ‘사법의 정치화’에 있다. 사실 우리 체제에서는 낙태나 소수자 우대 정책 등 정책적 함의를 가진 판결을 통한 사회 변화에 대법원보다 헌법재판소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한편 우리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 인사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대법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미국보다 훨씬 많다.우선 어느 정부든 지난 정권 인사에 대한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을 경우 무리하게 수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정치적 타격이 커진다. 가령 문재인 정부 시절 박근혜 정부 관련 인사들의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면 정권의 정당성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현재 진행 중인 다수의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민주당에 치명타,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정권에 큰 타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재판 결과도 각종 선거에서 여야의 유불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역 의원들의 경우 당선이 취소되거나 의원직 박탈 등 의석 축소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어 정치적 함의가 크다. 마찬가지로 공무원들도 사법적 불이익에 대한 우려를 가질 수 있어 충성도 제고를 위해 대법관 코드 인사가 중요할 수 있다.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 325건 분석 이 글에서는 이용훈, 양승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 시기인 2006년 3월~2023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325건을 계량적으로 분석해 대법관별 판결 성향을 추정했다. 분석에 포함된 대법원장 및 대법관은 총 50명이다. 이를 위해 ‘잠재변수 모형’이라는 통계 모형을 적용했다. 이 모형에서는 판결에 대한 주관적 판단 없이 계속해서 동일한 판결을 내리는 대법관들을 군집화해 유사한 점수가 부여되도록 한다. 연구자의 주관적 판단이 관여할 여지 없이 대법관별로 상대적인 판결 성향을 추정할 수 있어 미국에서는 학계와 언론에서 널리 활용되는 방식이다. 분석값은 대법관 50명의 평균값인 0을 기준으로 점수가 낮을수록 진보 성향, 높을수록 보수 성향을 의미하도록 방향성을 지정했다. 우선 분석에 포함된 50명 대법관 중 속칭 ‘독수리 5형제’(김영란(-1.585), 전수안(-1.360), 박시환(-1.193))에 속한 3명과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오경미(-1.438), 이흥구(-1.082) 대법관이 가장 진보적인 성향의 대법관으로 분류됐다. 가장 보수적인 대법관은 안대희(1.6 48), 김황식(1.359), 오석준(1.003), 민일영(0.803), 신영철(0.729) 대법관 등이었다. 이 중 안대희, 김황식 대법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독수리 5형제 등 역대급 강성 진보 대법관들을 다수 임명한 것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를 의식한 임명이 아니었나 추론해 볼 수 있다. 판결 참여 빈도가 아직 많지 않아 정확한 추정은 어려우나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오석준 대법관이 전체에서 세 번째로 보수적인 대법관이었던 점도 주목할 만하다.●‘중도’ 지향 대법관 임명 가능성 희박 임명권자별로 나눠 분석해 보면 진보 정부 중 문재인(-0.358)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가장 진보적이었으며 이어 노무현(-0.117), 김대중(0.032) 대통령 순이었다. 반면 박근혜(0.099), 이명박(0.171)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결과는 대법관 판결 경향이 임명권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는 것을 계량적으로 보여 준다. 문제는 정치 양극화의 극단화에 따른 정치의 사법화가 극심해짐에 따라 사법의 정치화 또한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는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친인척, 측근, 참모, 여야 의원들까지 모두 사법적 결정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일이 늘어 최근 들어 정치의 사법화 범위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렇다 보니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은 잠재적 사법 처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정치와 행정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충성’을 담보하는 대법관을 임명할 동기도 함께 늘어난다. 후보의 중립성이나 전문성보다는 이념적 선명성이 중요한 척도가 되는 듯하다. 잠재적 대법관 후보들 입장에서는 특정 진영에 줄을 서 선명성 경쟁을 벌일 동기가 커진다. 자신이 줄 선 진영의 정부가 들어왔을 때 운이 맞으면 대법관에 임명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는 것이다. 반면 이런 환경에서는 중도를 지향하는 법관이 대법관이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진다.●정권 바뀌자 돌아선 ‘변신 로봇형’도 실제로 대법관 성향을 시계열적으로 분석해 보면 최근 몇 년간 대법관들 간의 판결 경향 간극은 과거보다 커져 양극화가 심화됐다. 가령 그해에 가장 진보적인 대법관과 보수적인 대법관 간 경향성 차이를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 초기였던 2018년에는 0.490 정도였던 것이 2022년과 2023년에는 각각 1.803과 2.916으로 크게 늘어난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 정부에서 임명했던 대법관들조차 보수적인 판결을 내릴 수 없다가 현 정부 들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대법관들과 현 보수 대법관들 모두 자신들이 속한 진영에 극도로 충실한 판결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더 많은 대법관들이 예전보다 더 진영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심지어 정권이 바뀐 뒤 정권 코드에 맞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변신 로봇형’ 대법관도 꽤 있었다. 한 예로 ‘50억 클럽’ 의혹의 중심인물로 이재명 대표가 2018년 경기지사 선거에서 ‘친형 정신병원 강제 입원’ 논란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놓고 재판 거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권순일 대법관은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과 2015년에는 0.76, 0.52로 상당히 보수적인 판결 점수를 보였던 권 대법관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8년부터는 0.37(2018년), -0.84(2019년), -1.04(2020년)로 완벽하게 ‘진보’ 대법관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연방대법관의 종신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임기제인 우리 대법원 특성상 정권이 바뀌면서 단기간 내에 유사한 사안에 대한 판결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장기간에 걸친 사회 분위기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법의 정치화에 따른 것이다. 최근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의 1심 재판부는 2020년 1월 기소된 지 무려 3년 10개월 만에 송철호·황운하·백원우씨 등 핵심 피고인의 선거 개입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아 “재판 지연의 결정판”이란 평가를 받았다. 사법의 정치화가 사법부에 대한 신뢰 추락을 가져올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모든 사회 기관을 통틀어 가장 낮은 사회적 신뢰를 받는 것이 국회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은 많이 보도된 바 있다. 대법원이나 대법관들이 국회나 국회의원들과 동급의 평가를 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결론 내린다면 너무 나가는 걸까.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정치커뮤니케이션)
  • 윤정부, 노사법치주의 통했나?…근로손실일수 최근 10년 중 가장 적어

    윤정부, 노사법치주의 통했나?…근로손실일수 최근 10년 중 가장 적어

    올해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손실일수가 최근 10년간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으로 내세운 ‘노사법치’가 연착륙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노사관계가 확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2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1월 30일 기준 근로손실일수는 33만 726일로 최근 10년 사이 가장 낮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11월 30일까지 근로손실일수도 56만 357일로, 역대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의 같은기간 평균(152만 2545일)의 36.8%를 기록했다. 근로손실일수는 노사분규로 발생한 사회적 손실을 근로일수로 측정한 지표로, 파업 참가자와 파업시간을 곱한 뒤 1일 근로시간(8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올해 노사분규 1건당 평균 지속일수도 9일에 불과했다. 2015년(29.9일) 이후 가장 짧았고 최근 지난해(14.9일)보다 약 40% 감소하는 등 노사관계 지표가 매우 안정적으로 나타났다. 고용부는 “일부 사업장의 노사 분규가 발생했지만 다수 사업장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임단협을 타결했다”면서 “노사법치 원칙이 현장에 확산되면서 노조가 파업에 신중해지는 등 자율과 상생의 노사관계가 정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노사의 불법·부조리에 엄정 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건설 현장 채용 및 월례비 등 부당한 관행 단속과 함께 임금체불·포괄임금 오남용·부당노동행위·직장내 괴롭힘·불공정채용 등 노동관계법 위반에 강력 대응하고 있다. 302억원의 임금을 체불한 전자제품 제조업체 대표를 구속하고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제기된 유통업체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착수했다. 포괄임금 오남용 기획감독도 최초로 실시했다. 또 100인 이상 사업장의 단체협약을 조사해 위법한 우선·특별채용 조항을 확인·시정했다. 9년만에 근로시간면제제도 위반 의심사업장에 대한 기획 근로감독도 진행했다. 특히 올해 10월 1일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공시 제도가 시행됐다. 노동계의 반발이 거셌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포함해 조합원 1000인 이상 노조·산하 조직 739개 중 91.3%인 675개가 회계를 공시했다. 정부는 노사법치주의를 차질없이 추진해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노사 관행을 뿌리내리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산업현장에서 법 테두리 내의 노동운동이 정착되고 노사관계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노사관계뿐 아니라 노동시장 전반에 법치를 확립해 공정과 상식이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복귀와 관련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노동시장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새만금 일구는 미래 개척자들[윤석열 정부-2023 공직열전]

    새만금 일구는 미래 개척자들[윤석열 정부-2023 공직열전]

    새만금개발청은 단군 이래 최대 간척사업인 새만금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2013년 9월 문을 열었다. 개청 후에 ▲기본계획 수립 ▲법령 정비 ▲국가산단 조성 및 투자유치 등 성과를 냈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 1년 6개월 만에 8조 7000억원의 투자 유치를 끌어내며 역대 최대 성과를 이뤘다. 입주 기업의 성장 동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킬러 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와 식품허브지원 TF를 신설하고 원스톱 행정 지원 서비스를 강화했다. 앞으로 입주 기업들이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비상하도록 뒷받침하고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도약시키는 역할이 남았다.김경안 청장은 새만금 방조제가 착공된 1991년부터 30년 넘게 새만금에서 지역 목소리를 대변한 자타공인 새만금 전문가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 오래 몸담은 그는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새만금TF 전문위원으로 새만금종합개발계획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참여했다. 현 정부 출범 당시에도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새만금발전기획단장을 맡아 국제투자진흥지구 지정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고, 지난 7월 청장에 부임했다. 강한 추진력이 돋보이는 김 청장은 전임 김규현 청장과 함께 현 정부 들어 새만금 사업 시작 이후 최대 규모인 9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윤순희 차장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일 처리로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외유내강형 리더다. 국무총리비서실, 대통령실 등을 거친 윤 차장은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남다르고 현안 관리에 탁월한 엘리트다. 휴직계를 내고 민간기업 유한킴벌리에서 일한 독특한 이력도 있다. 현장에서 체득한 기업 경영마인드를 바탕으로 유연하게 새만금청의 기업지원 정책을 기획하고 있다. 평소 독서를 좋아하고 트렌드에도 관심이 많다. 정인권 기획조정관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돌부처’ 스타일이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 다양한 부처에서 핵심 보직을 맡았고 국무총리실 국정과제과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등 파견 경력도 있어 업무 전반을 아우르는 이해력을 갖췄다. 변화에 유연하고 결단력도 있다. 직원들과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새만금청의 대표 미식가다. 이동민 개발전략국장은 개발 분야에 잔뼈가 굵다. 새만금 국제투자진흥지구 개발을 진두지휘하며 김 청장 등을 보필해 사상 최대 투자 유치 성과인 9조원을 달성했다. 이 국장은 상황에 알맞은 조언을 통해 직원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유능한 멘토라는 평가도 받는다. 뮤지컬 공연 관람이 취미다. 가끔 사석에서 뮤지컬 곡을 부르기도 하는데 실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김민수 개발사업국장 직무대리는 새만금 사업을 위해 국토를 넓힌 네덜란드에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새만금에 ‘진심’이다. 특유의 조정 능력으로 국무조정실에서 새만금 주요 현안을 둘러싼 관련 부처 간 이견 조정에 힘썼다. 간척 사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새만금 사업의 진행 상황을 세세하게 파악해 새만금의 차세대 아이콘으로 통한다. 아이들 사진찍기가 취미인 가정적인 스타일이다. 이범 대변인은 중국 베이징에서 유학하고 산둥성 옌타이시정부 연수를 마친 중국통이다. 베이징공업대에서 도시계획 석사 과정을 마쳤을 정도로 학구파다. 국토부 주요 부서를 두루 경험했고 새만금의 해외 투자와 첨단전략기업 유치에 힘썼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대변인을 맡았고 MZ 세대 직원들과 새로운 콘텐츠 구상에도 몰두하고 있다. 매일 새벽 아내와 테니스를 치며 체력을 다진다. 그동안 공직열전에 관심을 가져 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윤석열 정부 2023 공직열전’ 시리즈는 서울신문 홈페이지에 수록돼 있습니다.
  • [서울광장] 위기의 EBS, ‘펭수’ 능가할 자구책 내야/박현갑 논설위원

    [서울광장] 위기의 EBS, ‘펭수’ 능가할 자구책 내야/박현갑 논설위원

    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교육 외 문제로 주목받은 건 인기 캐릭터 ‘펭수’ 덕분이었다.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헤엄쳐 온 11세 펭귄인 펭수가 2019년 가을부터 방송에 나오면서 어린이와 학부모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국민들의 펭수 사랑은 국회로 이어졌다.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회는 펭수를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EBS 경영에 큰 도움이 됐다는 펭수에게 회사가 저작권을 제대로 주는지 등을 묻겠다는 취지였다. EBS는 펭수 방송으로 2019년 11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101억 3000만원의 수익을 올렸지만 수익 배분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런 의문은 사장을 상대로 질의하면 될 터였다. 펭수 연기자를 부르겠다는 건 국감을 정치적 이슈 선점 기회로 활용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펭수는 국감에 나오지 않았다. EBS는 지금도 펭수 방송으로 연간 30억~40억원 수익을 낸다고 한다. 하지만 EBS는 위기 상황이다. 지난해 256억원 적자에 이어 올해도 300억원 정도의 적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방송공사(KBS)의 수신료 분리징수에 따른 수신료 수입,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재 판매 수입, 매체환경 변화에 따른 광고 수입 하락 등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이를 타개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3월 취임한 김유열 사장은 이달 들어 노조로부터 자진사퇴를 요구받고 있다. EBS는 학교교육 보완과 국민의 평생교육 등에 이바지하는 교육방송을 목적으로 2000년에 설립됐다. 10년이 지나면서 가속화된 매체 및 교육환경 변화로 새로운 위상 정립이 시급하다. 교육방송의 위상 재정립은 공영방송의 전체 시스템 개선과 맞물린 데다 여야 간 이견으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공사 임직원들로서는 이런 근본적인 틀 변화만 기다릴 게 아니라 시급한 경영 개선부터 해야 한다. 전체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출판 및 광고사업 등을 통한 수입 확보는 임직원의 몫이다. 나머지 30%의 수입원인 수신료, 방송발전기금, 교육보조금 등 공적재원은 정부 협조가 필요하다. 그런데 수신료는 이미 줄기 시작했고, 교육부의 교육보조금이나 방통위의 방송발전기금도 자체 예산 감액으로 대폭 확충은 힘든 상황이다. 다행인 건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들이 EBS의 공적 기능 강화를 위한 재원 확대에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은 현행 수신료 규모는 유지하되, 한국전력공사의 위탁수수료 비중은 줄이고 EBS 지원금액은 수신료 수입의 30%로 올리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까지 냈다. 하지만 KBS가 현행 수신료 인상 없이는 EBS 지원 확대는 어렵다고 해 진척이 없다. KBS 반대로 수신료 조정이 어렵다면 각각 300억원대 수준인 교육보조금과 방송발전기금이라도 확충할 수 있도록 교육부와 방통위가 협조해야 한다. 정부가 지원할 명분은 차고도 넘친다. 윤석열 정부는 3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교육개혁을 내걸고 교육 카르텔 척결과 공교육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임직원 자구책을 전제로 공적 지원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3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교육방송을 방문해 “사교육을 받지 않고 EBS 같은 수능 강의만으로도 대학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방송 시스템 개선을 강조한 바 있다. 인터넷 강의 접속장애 개선 등 구체적 사항까지 거론하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EBS를 공교육을 살리는 전진기지이자 사교육 없는 교육의 본산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통령의 관심으로 그해 11월 치러진 2011학년도 수능의 EBS 연계율은 70%나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교육개혁에 대한 의지도 대단하다. 윤 대통령이 EBS를 방문해서 교육방송의 임직원을 만나 보면 어떤가. 재원 지원 등의 방안을 논의하며 공교육 개혁의 불씨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 “당정분리·인적쇄신·중도공략… 2011년 박근혜 비대위서 배워야”

    “당정분리·인적쇄신·중도공략… 2011년 박근혜 비대위서 배워야”

    당시 총선 완승 이끈 ‘리더십 교본’대립보다 비전 차별화 전략 필요朴, 김종인·이준석 등 인재 영입외연 확장 위한 위원 구성이 핵심野보다 과감한 민생해법 내놔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등판할 때까지 찬성파가 훨씬 많았지만 총선 승리가 달린 ‘한동훈 비대위’의 미래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여당 내에서는 한 장관이 ‘혁신의 아이콘’으로 새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지만 정치 경험이 부족한 만큼 ‘여의도 화법’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보다는 가장 성공했던 ‘2011년 박근혜 비대위’를 교본으로 삼아 달라는 목소리가 크다. 윤재옥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21일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한 뒤 “한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과) 신뢰 관계가 있으니 소통의 질이 훨씬 좋아지고 진솔한 소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그간 총선 앞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수직적 당정 관계’가 나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동훈 비대위’ 출범 여부를 협의한 중진회의, 의원총회,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 상임고문단 간담회 등에서도 ‘수직적 당정 관계’ 해소가 총선 승리를 위한 가장 큰 과제로 꼽혔다. 이명박 정부 4년차에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 역시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변경하며 당시 정권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다만 ‘박근혜 비대위’와는 환경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은 윤석열 정부 초기인 만큼 과도한 차별화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스타 정치인이었지만 한 장관은 정치 신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보다 차기 대권 주자, 미래 권력으로서 비전을 제시하는 차별화 전략이 주효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살아 있는 권력과 어떤 차별화된 형태를 취할 거냐가 성공을 좌우할 것이다. 읍참마속에 가까운 끊어 내기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비대위원 구성과 인적 쇄신은 성패의 핵심으로 꼽힌다. ‘박근혜 비대위’는 박근혜의 이름값뿐 아니라 김종인·이준석 등 조야의 유명인이 합류하면서 자연스레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내 인사도 쇄신파 ‘민본 21’ 소속인 주광덕·김세연 의원을 지명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기 진짜 뭘 바꾸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신선하고 의미 있는 사람을 많이 데려왔다”고 회상했다. 이와 관련해 윤 권한대행은 “(‘한동훈 비대위’가) 청년층, 중도, 수도권 등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되는 분들을 중심으로 진용을 갖추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비대위’는 여론조사 하위 25%인 현역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초고강도 인적 교체에도 잡음을 최소화하는 강한 카리스마를 보였다. 한 장관 역시 당장 장제원 의원이 촉발한 불출마 선언 등 인적 쇄신 흐름을 어떻게 이어 갈지가 관건이다. 여당 내 한 의원은 “한 장관은 당내 의원들과 별다른 인연이 없고 누구 눈치 볼 것도 없다. 공천 과정에서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을 단행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검사 공천이 쉽지 않아 전문가 그룹과 다양한 인재군을 발굴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 승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중도층 공략은 정책으로 구현해야 한다. ‘박근혜 비대위’는 좌파 정책이라고 손가락질받던 경제민주화와 과감한 복지를 정책으로 앞세웠다. 그 결과 19대 총선에서 152석을 얻었고 18대 대선 승리까지 이어졌다.
  • ‘탈여의도’ 직설 화법엔 호불호… 尹心은 정치 디딤돌이자 걸림돌… 비대위 성공 땐 대권주자 직행

    [정치인 한동훈] 내년 4월 총선을 111일 앞두고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의 구원투수로 21일 낙점된 한동훈(50)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이던 시절부터 자타공인 ‘2인자’로 통했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법무부 수장을 지내며 특유의 ‘탈여의도’ 화법 등으로 팬덤이 형성될 만큼 정치적 인기를 얻었고,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혁신을 통한 총선 승리라는 책무를 맡게 됐다. 한동훈 비대위가 성공한다면 한 장관이 강력한 여당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장관 한동훈이 아닌 ‘정치인 한동훈’에 대한 정치권의 시선은 엇갈리는데 직설적 화법 때문이다. 야당의 거친 공격을 받아치는데 능하고 예우보다는 ‘할 말은 한다’는 스타일이라 ‘속 시원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등 우호적인 반응이 나온다. 특히 한 장관이 야당 의원들과 적극적으로 설전을 벌인 ‘전투력’은 압권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尹 아바타?] 한 장관은 최근 ‘윤석열 아바타’라는 민주당의 비판에 “이재명 대표를 맹종하니 남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받아쳤고, 소위 ‘한동훈 비대위’를 반대하는 당내 세력에 “당원·지지자가 반대하면 비대위원장을 맡을 이유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범죄자의 말을 받아치는 ‘서초동 사투리’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군중 연설이 필요한 선거판에서 유권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강남키드·엘리트 검사] 그는 강원도 춘천 태생이지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고를 졸업해 ‘강남 키드’로 통한다. 이념보다 능력을 중시한다는 이미지가 구축된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대 법대에서 22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SK 분식회계 사건’,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사건’, ‘론스타 부실 매각 사건’ 등을 수사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때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적폐 청산’ 수사를 주도했고 ‘다스 비자금 횡령 사건’을 맡아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후 최연소 검사장에 올랐지만 윤 대통령이 당시 ‘조국 수사’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한 장관도 한직을 맴돌았다. 이후 윤 대통령의 집권 후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 지난해 5월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뒤 총 75건의 법률·시행령·규칙 등을 입법예고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마련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관 완전 박탈)에 맞서 ‘검수원복’(원상복구)을 추진했다.
  • [속보] 강정애 보훈장관 후보자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속보] 강정애 보훈장관 후보자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국회 정무위원회는 21일 전체회의에서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정무위는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에 앞서 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진행, 전문성과 도덕성 등을 검증했다. 야당 측 위원들을 중심으로 과거 논문 자기표절 논란과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신청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강 후보자가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큰 흠결이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인 강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및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때 인사혁신처 자체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5~2019년 보훈기금운용심의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사청문 요청사유서에서 강 후보자에 대해 “혁신적 행정가로서의 역량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았다”며 “인사·조직 분야 전문가로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 강남 키드에서 특수부 검사, 정치인까지…‘국민의힘 구원투수’ 한동훈은 누구?

    강남 키드에서 특수부 검사, 정치인까지…‘국민의힘 구원투수’ 한동훈은 누구?

    내년 4월 총선을 111일 앞두고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의 구원투수로 21일 낙점된 한동훈(50)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검사 시절부터 자타공인 ‘2인자’로 통했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법무부 수장을 지내며 특유의 ‘탈여의도’ 화법 등으로 팬덤이 형성될 정도의 정치적 인기를 얻었고,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혁신을 통한 총선 승리라는 책무를 맡게 됐다. 한동훈 비대위가 성공한다면 한 장관은 강력한 여당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장관 한동훈이 아닌 ‘정치인 한동훈’에 대한 정치권의 시선은 엇갈리는데, 직설적 화법 때문이다. 야당의 거친 공격을 받아치는데 능하고 예우보다는 ‘할 말은 한다’는 스타일에 ‘속 시원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등 우호적인 반응이 나온다. 특히 한 장관이 야당 의원들과 적극적으로 설전을 벌인 ‘전투력’은 압권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장관은 최근 ‘윤석열 아바타’라는 민주당의 비판에 “이재명 대표를 맹종하니 남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받아쳤고, 소위 ‘한동훈 비대위’를 반대하는 당내 세력에 “당원·지지자가 반대하면 비대위원장을 맡을 이유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범죄자의 말을 받아치는 ‘서초동 사투리’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군중 연설이 필요한 선거판에서 유권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그는 강원도 춘천 태생이나 서울 압구정동 현대고를 졸업해 ‘강남 키드’로 통한다. 이념보다 능력을 중시한다는 이미지가 구축된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대 법대에서 22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SK 분식회계 사건’,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사건’, ‘론스터 부실 매각 사건’ 등을 수사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때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적폐 청산’ 수사를 주도했고 ‘다스 비자금 횡령 사건’을 맡아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후 최연소 검사장에 올랐지만, 윤 대통령이 당시 ‘조국 수사’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한 장관도 한직을 맴돌았다. 이후 윤 대통령의 집권 후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 지난해 5월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뒤 총 75건의 법률·시행령·규칙 등을 입법예고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마련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관 완전 박탈)에 맞서 ‘검수원복’(원상복구)을 추진했다.
  • 강정애 보훈장관 후보 “홍범도 장군 행적, 국가정체성 논란 야기”

    강정애 보훈장관 후보 “홍범도 장군 행적, 국가정체성 논란 야기”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21일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가로서 예우를 받아야 하지만 이 분의 행적이 우리나라의 정체성 등 여러 논란을 야기하기에 이 부분은 다시 한번 점검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후보자는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홍 장군의 육군사관학교(육사) 내 흉상 철거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김 의원은 후보자의 시부인 권태휴 선생이 몸담은 조선의용대를 약산 김원봉이 창설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시부에 대해) 그런(좌익 논란에 대한) 공격이 들어와도 이렇게 답변하시겠나”라고 물었다. 이에 강 후보자는 “1945년 광복 이전에는 모두가 독립을 위해 (운동을) 했기 때문에 계열이 달라도 독립운동에 애쓴 부분이 있다. 그러나 1945년 이후 국익과 국가 정체성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받기 어렵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 견해”라고 했다. 이어 “저희 시부모, 시조부는 김원봉과 결을 달리 해서 대한민국 독립 이후 건군을 하고 발전소를 짓는 등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홍 장군과) 같은 선상에서 얘기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정부 수립 초대 대통령”이라고 표현한 강 후보자는 “‘건국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써야한다”라고 했다. 건국절 논란에 대한 야당 의원 질의에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답변한 강 후보자는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뉴라이트냐고 묻자 “뉴라이트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자문단 위원으로 참여해서 인연이 이어지긴 했지만, 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도 참여한 바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강 후보자는 민주당 단독으로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에 대해 “법안 조문으로는 다양한 민주화운동 가운데 어떤 사건이 민주유공 사건인지 예측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안다”며 “어떤 법안이 통과되려면 국민 전체의 공감과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민주유공자법은 그런 과정이 미흡했다”라고 했다. 강 후보자가 과거 작성한 논문의 자기표절 논란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김한규 민주당 의원은 강 후보자가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교수에 임용되기까지 작성한 8편의 논문 가운데 상당수가 자기표절이라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업무방해다. 전문성도 없는데 도덕성과 학자로서의 자질도 없는 후보자는 정말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강 후보자는 “제가 특별한 의도를 가진 게 아니다. 의도를 가졌으면 절대 그렇게 안 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관행이었지만) 현재 잣대로 보면 너무나 잘못됐고 죄송한 부분”이라고 했다.
  • [기고] 과잉 통합시대 국민통합과 4월 총선/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고] 과잉 통합시대 국민통합과 4월 총선/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총선을 앞둔 정치권 행보가 바쁘다. 여당 대표가 사임하고 대통령 최측근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여당발 인적 쇄신은 야당으로 불씨가 옮겨 붙을 태세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정치권이 구태를 벗을까? 순진한 생각이다. 언제 한번 인적 쇄신 없이 치른 총선이 있었던가? 때마다 국회의 ‘현역의원 물갈이’는 40%를 웃돈다. 사람을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태의 진짜 원인은 법과 제도다. 특히 선거법과 정당제도를 혁신하면 거짓말 같은 선물이 두 개나 주어질 수 있다. 협력적 정치문화의 제도화와 국민통합의 가속화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첫째, 선거법 개정으로 대표성을 강화하면 다원적 정치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일당 독주를 막으면 협력적 정치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다. 지금처럼 제왕적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형성된 적대적 공생관계의 양당체제가 지속되면 그 자리에 누굴 두든 ‘그 밥에 그 나물’이 될 수밖에 없다. ‘다당제는 내각제’라는 도식적 사고에 빠져 병립형으로, 위성정당으로 비례대표 제도를 왜곡하는 건 무지에 기득권 수호의 욕망을 덧칠한 후안무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혁신은 사람이 아니라 법과 제도의 혁신이다. 법과 제도는 행위맥락과 거래비용에 대한 행위자들의 인식과 전략적 선택을 제약하는 게임규칙으로 작동하며 행태와 문화를 교정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기능한다. 둘째, 선거법과 정당제도의 혁신은 국민통합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모든 정부가 통합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런데 통합이 한 번이라도 국정관리의 우선순위를 바꾼 적이 있던가? 통합은 ‘우리끼리의 통합’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며 다른 정파를 고립시키고 일등 시민과 이등 시민을 구분 짓는, 또 다른 투쟁과 배제의 수단일 뿐이었다. 국민통합이 정치적 수사로 소진되고 마는 건 체계통합과 결합하지 않아서다. 통합을 말하면서 광범위한 국가 단위의 통합 즉, 다양한 사회체계 간의 균형과 조화를 외면하고 국가적 정체성과 응집을 말하는 건 명백한 허구라고, 독일 사회학자 루만도 말했다. 정치체계와 사법체계가 다른 사회체계들을 위협하고 군림하는 과잉 통합시대의 한국 사회에선 더더욱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체계통합은 견제와 균형의 사회체제를, 국민통합은 소속감과 유대감 증진을 핵심으로 한다. 전자를 위해선 선거법 개정으로 국회의 대표성을 강화하고 후자를 위해선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 단순 민원처리로 전락한 국가 옴부즈만 기능을 강화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배려를 깊이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결속이 당장의 과실이다. 저출산고령화와 이주노동자문제, 병역자원 부족, 연금 고갈 등 국가적 난제 해결의 실마리는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내년 총선으로 열리는 정치공간이 국민통합과 체계통합이 공진하는 혁신의 계기가 돼야 한다. 4월의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 [씨줄날줄] 비빔밥의 위상/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비빔밥의 위상/이순녀 논설위원

    2009년 12월 21일자 미국 뉴욕타임스에 한국 음식 전면광고가 실렸다. ‘오늘 점심 비빔밥 어때요?’(How about BIBIMBAP for lunch today)라는 카피 아래 형형색색의 고명이 올려진 비빔밥 사진이 지면을 가득 메운 것.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팀이 한식을 대표하는 비빔밥을 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제작한 광고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한식 세계화 사업과 맞물려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닷새 뒤 일본 산케이신문에 비빔밥을 폄하하는 칼럼이 실렸다. 구로다 가쓰히로 서울지국장은 뉴욕타임스 비빔밥 광고를 거론하며 “밥 위에 채소와 달걀 등이 얹어져 아름답게 보이지만, 먹을 때는 뒤섞여져 정체불명의 음식을 먹는다”고 비판했다. “광고 사진을 보고 비빔밥을 먹으러 간 미국인이 이 ‘양두구육’(羊頭狗肉·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에 경악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비아냥에 많은 한국인이 분노했다. 비빔밥처럼 재료와 요리법이 무궁무진한 음식도 드물다. 전주비빔밥, 진주비빔밥, 안동 헛제삿밥 등 격식을 갖춘 일품요리부터 뜨거운 밥에 남은 반찬 대충 얹어 간장이나 고추장 넣고 쓱쓱 비벼 먹는 간편한 한 끼까지 천차만별이다. 일본 언론인은 여러 재료가 뒤섞여 정체불명의 음식이 된다고 했지만 비빔밥의 본질은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각양각색의 재료들이 각자의 고유한 풍미를 잃지 않으면서 조화로운 제3의 맛을 이뤄 낸다. 세계적 아티스트 백남준은 비빔밥 정신을 아는 한국인은 여러 장르를 혼합하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잘 적응할 것이라는 ‘비빔밥 문화론’을 펼치기도 했다. 화합을 상징하는 음식인 비빔밥이 특히 빛을 발하는 건 정상회담 때다. 지난해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공식 만찬 석상에는 ‘팔도 산채 비빔밥’이 올랐다. 2017년 6월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만찬 테이블에도 ‘허브로 조미한 캐롤라이나산 황금미(米) 비빔밥’이 메인 메뉴로 올라 주목받았다. 비빔밥이 구글이 선정한 ‘올해의 검색어’ 레시피 부문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비빔밥의 위상과 인기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 前정권 참여 이력 잊으셨나요… 장관 후보자들의 선택적 ‘프로필 세탁’ [관가 블로그]

    前정권 참여 이력 잊으셨나요… 장관 후보자들의 선택적 ‘프로필 세탁’ [관가 블로그]

    박상우, 신남방경제연구회 지워송미령, 文정부 새만금 위원 누락강정애, 김대중 시절 이사직 삭제 윤석열 정부가 지난 4일 발표한 신임 장관 후보자들의 프로필에서는 이전 정권 이력들은 상당 부분 흔적을 감췄다. 현 정부가 여전히 각을 세우고 있는 문재인 정부 이력이 ‘득 될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으로서 주택·토지 분야를 진두지휘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으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전에 임명된 공공기관 수장들이 대거 교체될 때도 전문성을 인정받아 3년 임기를 모두 채웠다. 그의 프로필에서 슬쩍 지워진 이력은 ‘신남방경제연구회 대표’다. 박 후보자는 LH에서 물러난 뒤 사비를 들여 신남방경제연구회를 만들었다. 연구회에는 도시·부동산·건설 분야 전문가 등이 참여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외교정책이던 신남방 정책과 맞물려 동남아시아·인도 등을 본격 연구하고 한국과 신남방의 교류 플랫폼 구실을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연구회가 본격 해외 진출을 하려던 때 코로나19 팬데믹이 불거졌다. 현 정부 들어 신남방 정책을 폐기하고 ‘인도태평양전략’에 올인하고 나선 것 역시 영향을 미쳤다. 결국 연구회는 교류 플랫폼 역할까지 나아가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대표적인 도농 균형 발전 전문가’라고 소개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는 1997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들어간 뒤 농업·농촌정책 연구 외길을 걸었다. 지난 3월부터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서 농어촌분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현 정부 농정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농촌계획학회 부회장을 지내고 ‘농촌 유토피아’라는 책을 내는 등 국토균형발전에 전문성이 높은 송 후보자는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어 2019년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일했고 2021년 한국농어촌공사 비상임이사를 지냈다. 송 후보자 측이 배포한 프로필에는 이런 경력이 없다. 특히 그는 2018년 이낙연 국무총리 시절 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임명돼 전북 김제의 새만금 현장을 방문해 동서도로와 산업단지 부지를 살펴보고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송 후보자가 참여한 제20차 새만금위원회는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를 위한 부지 매립과 준공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했다. 지난 8월 전 세계 여론을 들끓게 한 ‘잼버리 사태’가 불거지면서 새만금 사업은 오명을 얻게 됐다. 해당 이력 역시 송 후보자 프로필에서 찾아볼 수 없다.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의 프로필에서는 김대중 정부 시절 임명됐던 국무총리실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직이 빠졌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새 장관 후보자들의 ‘프로필 골라 쓰기’가 현 세태를 보여 준다고 말한다. 중앙부처 사무관 A씨는 “전 정권에서 핵심 국정과제만 맡아도 다음 정권에서 찍히는 상황이라 장관 후보자들이 오죽했으면 지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정치보다 능력을 우선시하는 인사가 돼야 공무원들의 적극 행정도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전관업체 입찰 원천 차단… LH가 연결고리 된 ‘건설 카르텔’ 막는다

    전관업체 입찰 원천 차단… LH가 연결고리 된 ‘건설 카르텔’ 막는다

    철근 누락 땐 원스트라이크아웃전관 취업제한 강화해 개입 방지건설사 불법 ‘최대 5배’ 손배 부과민간 역할 늘면 분양가 상승 우려경쟁 밀려 공공 역할 후퇴할 수도토지·주택 조직 칸막이 해소안 빠져 2021년 3월 부동산 투기 사태를 시작으로 올 들어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철근 누락 사태에 이르기까지 국민 신뢰를 갉아먹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쇄신을 위한 정부의 선택은 공공주택 공급 시장의 민간 개방과 전관 카르텔의 혁파다. 발주 규모만 연간 10조원에 공공주택 공급 물량의 72%를 독점하는 LH와 민간의 경쟁체제를 열어 LH에 과도한 힘이 부여되며 나타난 악순환을 끊고 전관 제한을 강화해 LH가 연결고리가 된 건설 카르텔의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다. 다만 공공주택사업에서 민간 역할이 늘어나면 분양가 상승 우려와 함께 LH의 공공 역할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국토교통부가 꼽은 LH의 ‘부실 3종세트’는 ▲LH 독점적 지위 ▲전관 카르텔 ▲미흡한 감리체계다. 이번 혁파안에는 철근 누락 등 안전 항목을 위반하면 일정 기간 LH 사업 수주를 곧장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를 시행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국토부는 우선 공공주택사업의 민간 개방과 함께 LH의 거대 발주처 지위를 조정하기로 했다. 현재는 LH가 설계·시공·감리 등 건설 전 과정의 업체를 직접 선정한다. 앞으로는 설계와 시공업체 선정 및 계약체결 권한을 조달청에 위탁한다. LH는 선정된 업체의 용역 수행만 관리한다. 특히 전관을 통한 이권 개입 가능성이 상존하는 감리체계는 확 뜯어고친다. 국토부는 LH 대신 국토안전관리원이 감리 업체와 직접 계약을 체결해 관리 감독하도록 했다.전관 카르텔도 깨뜨린다. 2018~22년 LH 설계·감리용역 수주업체 상위 10개사 중 1개사를 빼면 모두 LH 전관업체였다. 전관의 영향력을 새삼 확인시켰다. 앞으로 전관업체 입찰은 막고 전관의 취업 제한을 강화해 전관이 LH 사업에 발을 못 들이게 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또 설계·시공·감리의 상호견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불법을 저지른 건설사에는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내용도 담았다. 공공주택사업에 민간 건설사가 참여하면 경쟁을 통해 분양가는 싸지고 아파트의 품질은 향상될 것이란 게 정부의 기대다. 반대로 민간이 시행에 참여하며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도 상당하다. 수많은 점검 절차가 더해지는 것 또한 분양가 상승 요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국토부는 민간 건설사에 LH가 감정가 이하로 땅을 매각하고 주택도시기금을 민간 건설사에도 저리 융자해 주면 사업성이 보완되기 때문에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LH가 그간 해 온 국민주거생활 향상이란 공공 역할이 퇴색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LH는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5개 지구를 비롯해 22개 신도시, 111만 가구의 주택 공급 기반을 마련하며 수도권 주택난 해소에 기여했다. 지금까지 총 298만 가구를 공급했다. 우리나라 전체 아파트의 25%다. 만약 민간이 공공분양 시행에 발을 들이면 경쟁에서 밀린 LH의 공공주택 공급 역할은 축소를 넘어 폐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 시행이 LH보다 품질 면에서 효과적이고 국민 입장에서 좋다고 하면 LH는 주택건설사업에서 손을 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행에서 LH와 민간의 경쟁 구도는 불가능하다면서 이번 조치는 사실상 LH의 사업시행권을 민간에 일부 떼어 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민간이 메기가 되는 게 아니라 민간에 먹잇감을 떼어 주는 것”이라면서 “LH가 발주하는 사업인데 LH와 민간이 입찰 경쟁하듯 할 수 없다. LH가 공공주택 분양을 통해 돈 버는 것을 포기하고 일부 물량을 떼어 민간에 개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LH 업무 중 민간과 중복되는 택지개발 사업을 못 하게 해 주택난에 시달린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임 교수는 LH가 아닌 중앙정부의 독점을 깨고 지방정부에 공공주택사업을 이양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제언했다. 혁신안만 세 번째 내놓은 LH이기에 내부 개혁이 빠진 이번 안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LH는 2021년 직원 및 관계자들의 부동산 투기로 곤욕을 치르며 그해 6월 전 직원 재산등록 및 부동산 거래 정기조사, 조직·인력 슬림화 등 1차 혁신을 했고 올해 1월엔 부채 감축 등을 골자로 한 2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무량판 사태로 다시 비난의 화살이 겨눠지며 내놓은 이번 3차 혁신안에는 고질적인 문제로 거론되던 토지공사 출신과 주택공사 출신의 조직 칸막이 해소안은 빠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직 분할도 검토했지만 오히려 인력이 늘어나고 비효율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서 현 체제를 유지하는 범위에서 LH의 막대한 권한과 이권을 해소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한준 LH 사장은 “정부 혁신안뿐만 아니라 자체 개선 사항을 발굴해 철저하게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 [데스크 시각] 은행은 14년 전 고무신을 꺾어 신었다/유영규 경제부장

    [데스크 시각] 은행은 14년 전 고무신을 꺾어 신었다/유영규 경제부장

    14년 전 일이다. 경제부로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된 터라 한은을 출입했던 선배의 지시에 현장으로 달려가는 일이 많았다. 그날 아침에도 전화가 왔다.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 첫날이니 르포 기사를 써 보라는 지시였다. “그동안 은행권에선 팔 수 없던 펀드를 파는 첫날이니 불법행위나 불완전판매는 없는지 등을 스케치해 보라”고 주문했다. 먼저 찾은 곳은 은행이었다. 펀드에 가입하고 싶다고 하자 여직원은 투자성향을 확인하는 ‘투자자 정보 확인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내가 첫 손님인 듯했다. 수수료부터 투자 위험, 환매 등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 설명을 마치고 판매할 펀드까지 모두 설명하는 데 총 70분이 넘게 걸렸다. 법이 바뀌어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종이 서류도 많았고, 시행 첫날이라 직원들도 업무에 익숙하지 않았다. 긴 설명이 힘들었는지 창구 직원은 가쁜 숨을 내쉬며 물었다. “고객님 얼마를 넣으실 건가요?” 미안한 마음에 비상금 700만원을 탈탈 털어 넣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14개로 나뉜 금융시장 관련 법률을 하나로 통합하고 금융회사 간 판매 장벽을 허무는 자통법을 시행했다. 은행과 보험을 제외한 자본시장 금융업 사이의 겸영을 허용해 ‘한국판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금융사 간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 시장엔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머지않아 한국은 동북아의 금융 허브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터져 나왔지만, 다른 한쪽에선 불완전판매가 늘고 개인투자자들의 투기적 수요만 부추길 것을 걱정했다. 잊힌 기억이 떠오른 건 홍콩H지수를 토대로 발행된 주가연계증권(ELS)에서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는 뉴스를 보면서다. 내년 상반기에만 최소 4조원대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소식에 투자자들은 말 그대로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ELS는 개별 주식 가격이나 주가지수 움직임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는 금융상품이다. 금융상품이지만 구성을 보면 도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가 또는 지수가 떨어지거나 올라도 미리 정해진 구간 안에서만 움직이면 약정한 수익률을 지급한다. 단 미리 정한 수준보다 가격이 내려갈 시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엎어 놓은 컵 세 개를 놓고 빙글빙글 돌리며 구슬이 어디 들었는지를 맞히면 돈을 내주는 야바위를 닮았다. 생각해 보면 은행의 변심은 14년 전 그날부터였다. 은행은 서민들의 오랜 이웃이었다. 집마다 은행통장이 몇 개 있는지가 근면성실함을 보여 주는 척도였다. 과거 은행은 돼지저금통 같은 푼돈에도 친절했다. 적어도 은행에 돈을 넣어 두면 손해나는 일은 없었다. 그런 은행이 예적금을 팔던 창구에 적립식펀드와 파생상품 파는 창구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증권이나 보험사 등과 무한 경쟁을 하려면 전통적인 이자수익을 넘어 비이자수익이 필요했다. 주가지수연동예금(ELD), 파생결합펀드(DLF), ELS 등 암호 같은 이름의 파생상품들이 예적금 통장을 대신 서민들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도, 불완전판매라는 용어가 은행 창구에 등장한 것도 그날 이후다. 자통법이 도입된 지 14년이 지난 우린 어디에 서 있을까. 은행과 증권사는 남부럽지 않게 몸집을 불렸지만, 고객 자산도 불어났는지 의문이다. ‘한국판 골드만삭스’ 역시 만들어 내지 못했다. ‘동북아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던 당찬 포부도, ‘메가뱅크’를 만들겠다는 외침도 구닥다리 표어가 됐다. 오히려 들리는 건 잊을 듯하면 하면 터져 나오는 대형 금융사고로 인한 비명이다.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 얼마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지목된 최상목 전 경제수석은 당시 재경부에서 증권제도과장과 금융정책과장을 거치며 자통법을 만들어 낸 실무 설계자다. 14년 전 계획이 어디까지 완성됐고,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부총리가 된다면 꼬이고 엉킨 실타래를 잘 풀어내길 바란다.
  • “동해 유전·가스전 적극 발굴… 10년 계획으로 대륙붕 탐사해야”[공기업 다시 뛴다]

    “동해 유전·가스전 적극 발굴… 10년 계획으로 대륙붕 탐사해야”[공기업 다시 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 자원 개발입니다. 3면을 접하고 있는 자원 자산인 바다를 놓쳐선 안 됩니다. 석유가 전혀 안 나오는 경우는 있어도 석유가 난 곳에 가스전 하나만 발견되고 만 곳은 없습니다. 동해 해저에서 기름이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10년 계획으로 꾸준히 대륙붕을 탐사해야 합니다. 기존 동해 가스전의 최소 4배 규모의 신규 유전·가스전을 발굴하고 적극적인 해상 탐사 활동으로 영유권 행사를 확장해야 합니다. 석유나 가스가 안 나오면 탄소 중립을 위해 우리가 제일 잘하는 탄소포집·저장(CCS)을 국내에서 할 수 있도록 이산화탄소 지중저장소가 있는지 찾아야죠.” 국내 최고 석유산업 전문가로 꼽히는 김동섭(66)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원안보의 핵심은 자급자족인데 동해 심해의 초기 매장량 탐사 결과가 괜찮다”며 지난해 시작한 대륙붕 중장기 탐사계획인 ‘광개토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을 세계 95번째 산유국으로 만들고 2021년 말 생산 종료된 동해1·2가스전을 언급하며 “동해가스전에서 17년간 2조 6000억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대륙붕 탐사를 시작한 지 20년 만인 1998년 울산 남동쪽 58㎞에서 발견된 동해1·2가스전에서 석유공사는 2004년 천연가스 및 원유 개발·생산에 성공했다. 김 사장은 남미의 가난한 농업국가 가이아나가 1916년 석유 탐사를 시작한 지 100년 만인 2015년 심해 2000m에서 초대형 유전들을 발견해 국운이 바뀐 점을 언급한 뒤 “가능성이 10%만 있어도 해야 한다. 한 번 하고 ‘돈 없다’, ‘경제성 없다’ 하지 말고 최소 5번은 뚫어 봐야 한다. 꾸준히 하면 지질 데이터가 축적되고 분쟁 시 국제 법정에서도 유리하다”고 말했다.일본과 중국은 정부 주도로 자원 개발이 적극 진행 중인데 한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외교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전략 실패와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헐값 매각하는 등 손실이 컸다. 이후 10년간 투자를 하지 못해 생산광구 노후화로 생산량이 감소하고 환경복구 비용까지 더해져 재무 위기를 초래했다. 김 사장은 “너무 크게 일을 벌였다가 문제가 터지자 확 줄여 버리면서 ‘잃어버린 10년’이 됐다”면서 “자원 개발은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는 것이라 리더의 혜안도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꾸준함”이라며 에너지 안보의 최전선에 선 공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한일 대륙붕 경계에서 시추 작업을 하는 일본과 서해 잠정조치구역에서 시추선으로 해상 구조물을 설치하는 중국의 압력으로부터 자원 영토를 확장하려면 중장기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해외 탐사광구에서는 성공적으로 생산이 이뤄지는 광구 주변을 샅샅이 탐색·개발하는 ‘니어필드’ 전략을 펼치고 있다. 김 사장은 “아랍에미리트(UAE) 할리바 유전은 핵심 생산광구 근처에서 유전을 발견해 지난해 조기 생산에 성공했고 베트남 15-1광구도 생산량을 늘렸다”면서 “생산광구 연계개발 전략으로 지난해 전체 생산량은 5년 만에 반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르무즈, 파나마, 수에즈 운하 등 위험지역을 통과하지 않고도 공급이 가능하도록 베트남, 호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 초점을 맞춰 자원을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동 산유국과 연계해 국제공동 비축유를 확보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UAE 국영석유회사 애드녹(ADNOC), 미국 엑손모빌과 글로벌 네트워크도 강화하고 있다. 김 사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중동 순방 당시 전쟁 등 비상시에 쓸 수 있는 사우디 원유 530만 배럴, UAE 원유 400만 배럴을 확보했고 쿠웨이트와도 협의하고 있다”면서 “비축 저장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임대료도 꽤 받는다”고 밝혔다. 이어 “전 국민의 4개월치 사용분인 9600만 배럴(용량 1억 4000만 배럴)이 국내 9개 기지에 비축돼 있고 정유사 분까지 더하면 원유 수입이 다 막혀도 에너지용 석유를 8개월간 쓸 수 있다”고 했다. 김 사장은 2021년 9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추진실을 신설하고 동해가스전을 활용한 부유식 해상풍력, CCS, 수소, 암모니아 등 신에너지 사업 다각화에도 나섰다. 그는 “석유가 석탄을 앞지르는 데 100년이 걸린 만큼 에너지 전환시대에는 석유와 신재생에너지의 아름다운 동행이 필요하다”면서 “저탄소시대에 석유회사가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CCS다. 동해 대륙붕 저장소에 이산화탄소를 2028년까지 120만t 저장하면 전기차 70만~80만대를 대체하는 효과가 예상되는데 예비타당성조사가 늦어져 내년 예산에 반영이 안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석유공사는 지난해 매출 3조 6400억원에 영업이익 1조 7000억원 등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올해 원유와 가스 가격 하락에도 최근 10년간 두 번째로 많은 매출 3조원에 85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김 사장은 “석유시대는 당분간 지속된다. 경험도 쌓였고 전략도 탄탄한 만큼 꾸준한 성과 창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 “수포자 지도부” “무대책 살 떨려”… 與 수도권 출마자들 불만 폭발

    “수포자 지도부” “무대책 살 떨려”… 與 수도권 출마자들 불만 폭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출범한 혁신위원회가 사실상 좌초한 데다 ‘서울에서 단 6곳 우세’라는 총선 판세 분석 결과까지 나오자 국민의힘 수도권 의원 등은 10일 ‘당 지도부가 수포자’(수도권을 포기한 자들), ‘살이 떨린다’ 같은 절망에 가까운 불만을 터뜨렸다. 이만희 사무총장이 “최악을 상정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들은 대통령실과 김기현 대표가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으면 내년 4월 총선에서 100석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웅(서울 송파갑) 의원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당 지도부를 ‘수포자’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당심 100%로 전당대회를 치를 때부터 총선 100석은 예견됐던 일”이라며 “홍범도 사건, 해병대(채 상병 사망) 문제 등으로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버리고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와도 어렵다. 유일한 방법은 (치열하게 싸웠던 경쟁자라도 혁신 전권을 줬던)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같은 사람을 앉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환(서울 중랑을) 당협위원장도 통화에서 “당장 내일 선거를 하면 서울은 6석 가져오는 게 끝”이라며 “김 대표나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의 용퇴는 전제 조건이다. 다른 데서 쇄신을 외쳐 봐야 의미가 없다는 건 수도권에서 선거를 뛰는 사람들은 모두 안다”고 밝혔다.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A의원은 “이제는 정말 살 떨린다”며 “수도권에 대한 전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인재 영입 인사들이 와서 100일 남짓한 시간에 각개전투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도부가 영남 일색이라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고 비판했다. 강남갑·을·병, 서초갑·을, 송파을 6곳만 우세라는 판세 분석 결과에 이어 한국갤럽이 지난 5~7일 만 18세 이상 1000명에게 물은 결과 ‘정부 지원론’이 35%, ‘정부 견제론’이 51%로 현 정부 출범 후 최대치의 격차(16% 포인트)를 보였다. 17.15% 포인트 격차로 패배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와 비슷하다. 다만 하태경·서병수 등 중진 의원들이 김 대표의 사퇴를 촉구한 데 대해 ‘단합이 중요하다’는 반박도 나왔다. ‘김기현 1기 지도부’에서 정책위의장을 지낸 3선 박대출(경남 진주갑) 의원은 페이스북에 “합리적이고 강력한 대안 없이 지도부를 흔드는 것은 필패의 지름길”이라고 밝혔다. 초선 김승수(대구 북을) 의원은 ‘의원 단톡방’에 “도를 넘는 내부 총질에 황당하다”는 글을 올렸다. 대통령실, 장차관 출신 인사들도 수도권 험지보다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등 영남권 출마가 예상된다.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 강명구 국정기획비서관(경북 구미을), 전광삼 전 시민소통비서관(대구 북갑) 등 대통령실 인사들은 TK에 몰리고 있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부산 중·영도), 박성훈 해수부 차관(부산 해운대갑), 주진우 법률비서관(부산 수영), 박성근 국무총리비서실장(부산 중·영도) 등도 PK 출마가 유력하다. 자의든 타의든 수도권 험지 출마가 거론되는 이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인천 계양을 등)과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경기 수원병·무), 전희경 전 정무1비서관(경기 의정부갑) 정도다.
  •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 “동해 심해 신규가스전 발굴해야… 4개월치 석유비축 완료”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 “동해 심해 신규가스전 발굴해야… 4개월치 석유비축 완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 자원 개발입니다. 3면에 있는 자원 자산인 바다를 놓쳐선 안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석유가 전혀 안 나오는 경우는 있어도 석유가 난 곳에 가스전 하나만 발견되고 만 곳은 없습니다. 동해 해저에서 기름 가능성을 10년 계획으로 꾸준히, 체계적으로 대륙붕을 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존 동해 가스전의 최소 4배 규모의 신규 가스전을 발굴하고 적극적인 해상 탐사 활동을 통한 영유권 행사로 우리 영토를 확장해야 합니다. 기름이 안 나오면 탄소 중립을 위해 우리가 제일 잘하는 탄소포집·저장(CCS)을 국내에서 할 수 있도록 이산화탄소 지중저장소가 있는지 없는지 찾아야죠.” 국내 최고의 석유산업 전문가인 김동섭(66)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이뤄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원 안보의 핵심은 자급자족인데 동해 심해는 그야말로 새로운 개척지로 (동해 대륙붕과 심해 등) 초기 매장량 탐사 결과가 괜찮다”며 지난해 시작한 국내 대륙붕 중장기 종합 탐사계획인 ‘광개토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김 사장은 한국을 세계 95번째 산유국으로 만들어주고 2021년말 생산이 종료된 동해1·2가스전을 언급하며 “동해가스전은 조금 있었는데도 17년간 2조 6000억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동해1·2가스전은 석유공사가 자체 기술로 대륙붕 탐사를 시작한 지 20년 만에 1998년 울산 남동쪽 58㎞에서 최초로 발견된 뒤 2004년 천연가스와 원유(초경질유)를 개발·생산, 자원 안보에 크게 기여했다. 김 사장은 남미의 가난한 농업국가 가이아나가 1916년 석유탐사 시작한 이후 100년 만인 2015년 심해 2000m에서 초대형 유전들을 발견해 국운이 바뀐 점을 언급한 뒤 “해외는 실패가능성이 있는 건 아예 못하고 성공가능성이 제일 높은 것만 하지만 국내는 다르다”면서 “가능성이 10%만 있어도 양이 많기 때문에 해야 한다. 딱 한 번 뚫어보고 동해에서 기름이 안 나온다고 ‘돈 없다’, ‘경제성 없다’ 하지 말고 최소 5번은 뚫어봐야 한다. 꾸준히 하면 지질 데이터가 축적되고 경험도 많이 쌓이는 만큼 나중에 분쟁이 나더라도 국제 법정에서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일본과 중국은 정부 주도로 자원개발이 적극 진행 중이라고 했다. 한국은 이명박정부 시절 자원외교개발에 급격히 뛰어들었으나 중장기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고가 매입 등 전략 실패와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헐값 매각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석유공사는 큰 손실 이후 10년간 투자를 하지 못해 생산광구 노후화로 생산량이 감소하고 환경복구 비용까지 더해져 재무 위기를 초래했다. 김 사장은 “너무 크게 일을 벌렸다가 문제가 터지자 확 줄여버리면서 잃어버린 10년이 됐다”면서 “자원 개발은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는 것이라 리더는 혜안도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꾸준히 해야 한다. 3년 결과치만 보고 그때그때 비판하다 관두면 우린 계속 뒷북만 치게 될 것”이라며 에너지 안보의 책임을 지고 있는 공기업들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외 자원 확보를 위한 주변국의 경쟁이 치열하다며 “한일 대륙붕 경계 근처에서 시추 작업을 하는 일본과 서해 잠정조치구역 내에서 시추선으로 해상 구조물을 설치하는 중국의 압력으로부터 자원 영토를 확장하려면 지속가능한 중장기 관점의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해외 자원 탐사광구 선정 역시 이미 성공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광구 주변에 생산광구를 연계해 샅샅이 탐색, 개발하는 ‘니어 필드’(near field)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김 사장은 “아랍에미리트(UAE) 할리바 유전은 핵심 생산광구 근처에서 유전을 발견해 지난해 조기 생산에 성공했고 베트남 15-1광구도 생산층 확장으로 생산량을 늘렸다”면서 “현재 북해 톨마운트 가스전 발견 이후 탐사활동을 확대 중인데 이런 생산광구 연계 개발 전략은 비핵심 자산 매각과 보유 광구 생산량의 자연감소에도 지난해 전사 생산량을 오히려 5년 만에 반등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르무즈, 파나마, 수에즈 운하 등 위험지역을 통과하지 않고도 바로 공급이 가능하도록 베트남, 호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 초점을 맞춰 해외 자원을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체계적 국가 자원 안보를 위해 중동 등 산유국과 연계해 국제공동비축유를 확보하고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 UAE 국영석유회사 애드녹(ADNOC), 미국 메이저 석유회사 엑손모빌 등과 글로벌 네트워크도 강화하기로 했다. 김 사장은 “대통령 중동 순방 당시 전쟁 등 비상시 쓸 수 있는 사우디 원유 530만 배럴, UAE 원유 400만 배럴을 유치했고 쿠웨이트도 원해 공동비축을 협의하고 있다”면서 “국내 수급 안정성은 물론 우리 비축저장기술은 40년간 노하우가 축적된 세계 최고 수준이라 비축유 임대수익도 좋다. 전국민 4개월치 에너지 사용분인 현재 9600만 배럴(용량 1억 4000만 배럴)이 국내 9개 기지에 비축돼 있고 정유사 분까지 합치면 당장 원유 수입이 다 막혀도 에너지용 석유를 8개월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석유개발과 비축사업 중심의 사업구조에 동해가스전 생산시설을 활용한 부유식 해상풍력(200㎿)와 CCS, 수소, 암모니아 등 신에너지 사업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기 위해 2021년 9월 ESG추진실을 신설했다. 김 사장은 “석유가 석탄을 앞지르는데 100년이 걸린 만큼 에너지 전환시대에는 석유와 신재생에너지의 아름다운 동행이 필요하다”면서 “저탄소시대에 석유회사가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CCS로 동해 대륙붕 저장소에 이산화탄소를 2028년 120만t만 저장해도 전기차 70만~80만대 대체 효과가 나는데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늦어져 내년 예산에도 반영이 안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2011년 이후 지난 10여년간 국내 석유시장의 기준가격으로 국제유가 급등시 물가 안정의 완충 역할을 해온 알뜰주유소(1291개)와 관련해서는 “국민 편의를 위해 전체 주유소의 10% 전후로 유지하고 미래 수요에 대비해 친환경 알뜰복합스테이션에 전기충전소를 내년엔 4군데 더 확충할 계획”이라고 김 사장은 전했다.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 사장은 굴지의 영국 석유가스회사 로열 더치 셸에서 20년간 전문위원과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장을 지내고 SK이노베이션 기술총괄사장(CTO)을 거쳐 2021년 6월 석유공사 사장에 발탁됐다. 현장에 있을 때부터 쌓았던 세계 주요 석유회사 사장들과의 탄탄한 인맥네트워크는 그의 강점이다. 그의 진두지휘 아래 석유공사는 지난해 매출 3조 6400억원에 영업이익 1조 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익을 냈다. 올해도 원유와 가스 가격이 하락했지만 10년 내 두 번째로 많은 매출 3조원에 8500억원의 영업이익이 날 것으로 전망된다. 재임하는 2년 5개월 동안 9개 지사, MZ직원과의 ‘지그(G9)재그’ 소통과 타운홀미팅, 화끈한 보상의 혁신경진대회를 열어 자본잠식으로 위축됐던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공사 기업문화지수는 2021년 64점에서 올해 81점으로, 취임 당시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D’에서 올해는 사내 모두가 ‘실현불가능 목표’이라 여겼던 ‘B’로 껑충 뛰었다. 김 사장은 내년 목표에 대해 “10년간 새로운 빨대를 만들지 않아 원유 생산이 줄어든 탓에 기름값이 올라도 돈을 벌지 못한다”면서 “개발도상국의 소비 확대 등 석유시대는 당분간 지속되는 만큼 에너지 정책은 장기적 안목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험도 많이 쌓였고 전략도 탄탄하다. 구성원간 신뢰와 긍정,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급성장, 급축소 대신 꾸준한 성장을 통한 성과 창출로 장기적인 자신감 회복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1979년 3월 두 차례의 석유파동 이후 안정적 석유 확보를 위해 설립된 석유공사는 현재 1339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직원(정규직) 1인당 평균 연봉은 올해 기준 8942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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