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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생존해 있는 3명의 전직 대통령 근황은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생존해 있는 3명의 전직 대통령 근황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을 역임하고 퇴임한 사람은 현재까지 총 10명이다.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제 생존한 전직 대통령은 전두환(84), 노태우(83), 이명박(74) 대통령 등 세 사람이다. ●전두환… 동문 체육대회 챙기는 등 외출 잦아 1931년생으로 가장 고령인 전 전 대통령은 심신쇠약 증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외 활동이 잦은 편이다. 그는 지난해 8월 연희동 이웃사촌으로 와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의 자택을 직접 방문해 병문안을 하면서 화제가 됐다. 지난달에는 부인 이순자 여사의 손을 꼭 잡은 채 대구공고 총동문회 체육대회에 참가해 동문들로부터 깍듯한 환대를 받기도 했다. 현재 회고록 집필도 직접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에는 한·미 법무부 간의 회담 결과에 따라 전 전 대통령의 미국 내 재산 112만 6951달러(약 13억원)가 한국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노태우… 10년 투병에 의사소통도 어려운 편 반면 한 살 아래인 노 전 대통령은 10년 넘게 자택에서 와병 중이다.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입·퇴원을 반복하며 의사소통이나 거동은 힘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엔 천식 증세로 서울대병원 특실에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는 부인 김옥숙 여사의 간호를 받으며 주로 집 안에서 지내고 있다. ●이명박… 회고록 쓰고 4대강 홍보에 외교까지 이들보다 열 살 정도 아래인 이 전 대통령은 가장 활발한 외부 행보를 하고 있다. 재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테니스를 즐기고 올해 1월엔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정책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출간하기도 했다. 평소 골프와 테니스로 건강을 다져 온 이 전 대통령은 2013년엔 자전거를 타고 북한강변을 직접 돌며 4대강 업적을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팔당역에서 출발해 대성리까지 약 25㎞를 자전거로 이동했다. 2013년 퇴임 직후 첫 해외 일정으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외교 행보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데스크 시각]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논란 딛고 성공하려면/이순녀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논란 딛고 성공하려면/이순녀 문화부장

    지난 금요일 광주에 다녀왔다. 25일 공식 개관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1시간 50분, 그리고 광주 송정역에서 동구 금남로 옛 전남도청 부지에 자리한 전당까지 버스로 30여분이 걸렸다. 개관식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때라 준비가 거의 끝났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연면적 16만㎡로 서울 예술의전당, 국립중앙박물관보다 큰 아시아 최대 복합문화시설 규모를 자랑하지만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인 도청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주요 시설을 지하광장 형태로 건립했기 때문에 지상 눈높이에선 건물보다 공원으로 조성된 녹지가 더 많이 보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밖에서 볼 때와 달리 실내로 들어서니 엄청난 규모가 체감됐다. 전당은 도청 건물과 경찰청 건물 6개를 리모델링한 민주평화교류원를 비롯해 신축 건물인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등 5개 원으로 구성돼 있다. 어린이문화원만 해도 2개층 규모에 콘텐츠연구개발실, 체험관, 도서관, 극장, 유아놀이터, 도시락 쉼터 등 10여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눈이 휘둥그레해질 만한 규모다. 아시아 작가, 기획자 대상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아시아문화자원 아카이브 구축 업무를 하는 문화정보원, 첨단 융복합 콘텐츠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혁신적 예술 창작소인 문화창조원도 예술가들이 탐낼 만한 공간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유리문으로 이동식 벽을 설치해 빛과 소음 차단 문제가 지적됐던 예술극장 내 가변형 극장도 암막을 설치해 문제점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총 7000억원이 투입된 전당의 하드웨어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 10년간의 지지부진한 전당 건립 과정에 비하면 상당히 완성도가 높아 보였다. 지하 공간임에도 채광이 좋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 데다 지하철역이 전당과 바로 연결돼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다. 아시아문화예술의 발신지이자 국제문화 교류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향하는 전당의 물적 토대는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문제는 콘텐츠와 안정적인 운영이다. 지난 9월 부분 개관한 예술극장의 경우 개관 페스티벌 객석 점유율이 89%에 이르는 성과를 냈지만 내년 상반기 이후 프로그램이 정해지지 않았다. 독립적인 예술감독 체제로 운영되던 5개 원은 조만간 아시아문화원의 조직 개편에 따라 새로운 체제로 바뀔 예정인데 아시아문화예술의 최첨단을 이끄는 선도적인 역할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문화시설로서 대중성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주목된다. 운영을 국가가 할 것인지 민간 법인이 할 것인지를 두고 정치권이 줄다리기를 하다 향후 5년간 국가 소속 기관으로 운영한 후 결과에 따라 법인화 여부를 결정짓기로 한 애매한 지위도 안정적인 조직 운영에는 걸림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전당 건립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찬밥 취급을 받아 왔다. 개관식에 대통령 대신 총리가 참석하는 것에 대해 서운함을 나타내는 지역 여론도 적지 않다. 애초 건립 배경이 무엇이었든 10년 만에 전당이 마침내 문을 연다. 일각의 우려처럼 ‘예산 먹는 하마’로 전락해 진짜 애물단지가 되지 않도록 전당은 콘텐츠 확보는 물론 국내외 문화관광 거점으로 키워 내 재정 자립을 꾀해야 하고, 정부도 국립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치 논리에 휘둘리기엔 규모가 너무 크다. coral@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사후 ‘평가 반전’… “민주화·하나회 척결 功이 더 크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사후 ‘평가 반전’… “민주화·하나회 척결 功이 더 크다”

    지난 7월 서울신문 창간 111주년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가’란 질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0.3%에 불과했다. 박정희(33.6%)·노무현(29.3%) 전 대통령은 물론 ‘숙명의 맞수’ 김대중 전 대통령(12.8%)에 한참 못 미쳤다. 전두환(1.8%) 전 대통령에 못 미쳤고 이명박(0.9%)·노태우(0.5%) 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난 8월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광복 70주년 여론조사에서도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김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1%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22일 김 전 대통령이 타계한 뒤 고인에 대한 평가는 ‘과’(過)보다 ‘공’(功)으로 무게추가 쏠리는 분위기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인색했던 야권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화의 큰 산”(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온 국민의 애도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긍정 일색이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추모 열기나 삼삼오오 빈소와 분향소를 찾는 일반 조문객들을 보면 ‘외환위기를 불러온 대통령’보다는 민주화 투쟁과 금융실명제 등 개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소모적 정치 갈등이 심한 데다 사회의 큰 어른, 원로가 없는 분위기 속에서 현대사의 주역이었던 분에 대한 좋은 평가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김 전 대통령이 ‘하나회’ 정치군인들을 척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정부)도 불가능했고, 그런 측면들이 뒤늦게 평가받는 것”이라며 “보수·진보의 진영 논리가 뚜렷한 상황에서 고인 같은 자유주의자가 설 땅은 없었다. 그래서 저평가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고인에 대해 야박한 평가를 하지 않는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여전히 3당 합당의 충격은 물론 임기 중 외환위기 초래, 차남 현철씨의 국정 농단 등이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지만 한편으로 잠시 미뤄 놓은 것뿐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 호불호가 아닌 역사적 맥락에 따른 객관적 평가의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치평론가인 박상병 박사는 “대선에서 국민에게 약속했던 시대적 소명을 완수했는지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 예컨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과 첫 정권 교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권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 경제 살리기,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의 혁신”이라면서 “동시에 시대적 소명에 걸맞은 인재풀을 등용했는지, 핵심 공약 사항을 완수했는지 등을 따져 보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념에 치우쳐 평가해서는 안 된다. 호불호에 따라 사적 감정과 이데올로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며 단기간에 평가가 이뤄지는 것도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도 “모든 전직 대통령은 공과가 있다. 쿠데타처럼 비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해 정권을 잡은 사람이 아니라면 지도자로 선출한 국민이 있고 제도적 적통성을 가진다”며 “사후에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중·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을 뜻하는 ‘양김(兩金) 시대’ 이후 통합·화합의 시대정신을 이끌어 갈 새로운 리더십도 필요하다. 김 교수는 “양김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고 불가피하게 보스 정치나 정치의 사유화 측면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리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며 “다양성과 다원성의 기반 위에서 협의성을 높이는 소통형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총재나 제왕적 당권을 가진 사람이 공천권을 손에 쥐고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났다”면서 “다원화된 원내 시스템의 의사 결정 구조를 통해 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권위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시대에 뒤진 폐쇄적 사관학교

    [신뢰받는 군을 위하여] 시대에 뒤진 폐쇄적 사관학교

    지난해 2월 공군사관학교는 졸업성적이 1등인 정모(24·여·현재 중위) 생도에게 수석에게 주는 대통령상 대신 국무총리상(차석)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공사 측은 “학업 성적이 우수하지만 2학년 때 군사학에서 D등급, 체력검정에서 세 차례 C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졸업생도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띤 대통령상 수상자로선 부적합하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체력등급이나 군사훈련 성적은 규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 이런 결정은 여론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여생도에 대한 성차별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자 공사는 결국 결정을 번복하고 정 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수여했다. 현재 정 중위는 전투기 조종사가 적성에 맞지 않아 서울대 의대에서 군의관이 되기 위한 위탁 교육을 받고 있다. 같은 시기 육군사관학교는 2015년 입시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과 상관없이 면접 등을 통해 군대가 적성에 맞는 군 적성 우수자를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해군사관학교도 수능 성적과 관계없이 체력검정과 잠재 역량 평가를 중심으로 선발하는 특별전형을 신설했다. 이는 정예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 교육의 본질에 대한 군 당국의 고민을 보여준다. 우리 사관학교는 전장에서 싸워 이길 군인을 양성하는 군사기관의 기능과 학사 학위를 수여하고 군사응용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의 기능을 모두 갖고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군인에 걸맞은 학생을 뽑겠다’는 정책은 ‘무골 기질’을 강화하겠다는 측면에서 일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 군의 사관학교 교육이 실제로 내적 지도력을 갖춘 미래 지휘관 양성에 적합한지는 미지수다. 특히 현재 사관학교는 21세기에 걸맞은 군사기관으로서도, 대학으로서도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군생활 회의로 육사 65기 임관 5년에 14% 전역 새누리당 정미경 의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육사에서 98명, 해사에서 41명, 공사에서 31명이 진로나 적성·건강 문제를 이유로 자퇴했다. 육사는 같은 기간 35명이 품위유지 의무 위반(부정행위, 폭력) 등으로 퇴학당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에 따르면 2010년 입학한 육사 70기의 경우 240명이 입학해 200명이 졸업했다. 16.67%가 중도 탈락한 셈이다. 2009년 졸업한 육사 65기의 경우 장교로 임관한 지 5년 만인 지난해 군 생활에 회의를 느껴 전역한 비율도 14.6%에 달했다. 특히 올해 6월에는 2학년 생도 22명이 과제물 제출 과정에서 표절을 한 것으로 드러나 무더기 징계를 당했고 1명은 조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해 퇴학당했다. 생명을 맡긴 부하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갈 장교의 품성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육사 출신의 한 장성은 22일 “사관학교를 나왔으면 국가관이 투철하고 군인으로서 가치관이 뚜렷해야 하는데 일반 대학생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30여년 전에 구타와 기합으로 상명하복을 가르쳤지만 이제는 왜 복종과 군인 정신이 중요한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시대인데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사관학교 교육이 폐쇄적인 군 특성을 그대로 답습해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는 21세기 다변화된 전장에 걸맞지 않다는 점이다. 공사 수석 졸업생을 교체했다 번복한 해프닝도 결국 군의 고질적인 현행 작전 중심 사고가 배경으로 지적된다. 이는 육군은 보병, 해군은 함정, 공군은 조종 병과가 진급과 서열에서 중심이 돼야 한다는 뿌리 깊은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같은 관행이 수십년간 지속되면서 우리 군의 현실은 미국에 의존하는 타성에 젖어 스스로 전쟁 계획을 수립할 줄 모르고, 육·해·공군 간 상호 합동 작전에 대한 이해도 부족의 결과로 나타났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공병 출신,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명장 하인츠 구데리안은 통신 병과 출신이다. 육사 출신인 최병욱 상명대 군사학과 교수는 “사관학교 교육이 청교도적 성격을 지닌 미국식 모델을 맹목적으로 따라갔지만 현재도 잠재 역량을 갖춘 우수 고급 간부인재 양성기관으로 기능하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군 당국은 지난해 3군 사관학교의 3금(금혼, 금주, 금연) 제도를 완화한다고 밝혔지만 예비역과 군 내부의 반발로 개혁 작업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육사가 1979년 당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생도의 11.7%가 흡연을, 25.4%가 음주를, 3.6%가 이성교제를 해 3금 제도를 위반했다고 고백했다. 당시에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제도를 후배에게 강요하는 셈이다. 최 교수는 “3금 제도는 완벽하게 지키기도 어렵고 오히려 도덕적으로 더 둔감하게 만드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현역 군인이 교수요원으로 후배를 교육하는 사관학교 교육의 폐쇄성과 학문적 역량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육사의 경우 별정직 군무원인 민간인 교수가 160명 가운데 4명에 불과하다. 미래의 군 지휘관이 유연한 군사전략과 다양한 사고를 함양할 기반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독일·일본·호주 등은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교육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실에 따르면 육사 교수 직위(강사 포함) 가운데 박사학위 보유자는 45.9%, 해사는 39.3%, 공사는 70.8%로 나타났다. 이는 박사 학위가 있어야 시간 강사라도 할 수 있는 일반 대학의 풍토와는 다른 점이다. 이상목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장은 “현역 군인이 석사학위만 갖고 가르치는데 깊은 학문적 수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이 같은 교육을 받은 생도가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깊지 않은 수준의 지식을 갖고 배출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래전에 대비하고 육·해·공군의 통합 작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개혁안도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로 독일과 일본, 호주, 캐나다 등은 육·해·공군이 통합된 사관학교에서 장교를 양성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을 맡았던 김태효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는 “따로 놀던 3군의 통합성을 제고하기 위해 사관학교 교육 통합을 해법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각 군의 미온적 입장과 조직 이기주의에 눌려 흐지부지됐다. 국방부는 대신 2012년부터 육·해·공 3군 사관학교 1학년 생도들을 3개조로 나눠 세 차례에 걸쳐 다른 사관학교에서 6주 간격으로 순환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완의 개혁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민주화 ‘巨山’ 떠나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1927~2015

    민주화 ‘巨山’ 떠나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1927~2015

    우리 국민에게 군부 쿠데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금융실명제를 도입했으며 한때 철권을 휘둘렀던 전직 대통령들을 법정에 세우고 일제 잔재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과감히 해체했던,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지극히 무모해 보였던 개혁을 무섭게 밀어붙였던 인물이 영원히 잠들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88세로 서거했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데 이어 이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민주화를 주도하며 대한민국 정치의 격동기를 양분해 이끌었던 ‘양김(兩金) 시대’는 이제 역사 속으로 저물게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날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정오쯤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입원했으며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오 원장은 설명했다. 서거 당시 김 전 대통령 옆에는 차남 현철씨 등 가족이 자리해 임종했으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곁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이명박,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들이 애도를 표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등 여야 지도부는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조의를 표하는 등 사회 각계에서 애도 행렬이 이어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등 해외 주요 인사들도 조의를 전했다. 외교부는 김 전 대통령 조문소를 세계 160여개 재외공관에 설치하기로 했다. 현철씨는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을 묻는 조문객들에게 “사실 2013년 입원하셔서 말씀을 잘하지 못하시고 필담으로 글씨를 좀 쓰셨는데, 평소 안 쓰시던 ‘통합’하고 ‘화합’을 딱 쓰셨다”면서 “무슨 의미냐고 여쭤 보니 ‘우리가 필요한 거라고, 우리가 필요한 거’라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대화를 끝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필담을 포함해 일절 대화가 불가능했다고 현철씨는 덧붙였다. ‘통합’과 ‘화합’이 사실상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이었던 셈이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민주화 이끌어 온 ‘숙명의 맞수’… ‘兩金 시대’ 역사 속으로 지다

    민주화 이끌어 온 ‘숙명의 맞수’… ‘兩金 시대’ 역사 속으로 지다

    현대사의 격랑 속에 때로는 동지로, 때론 맞수로 ‘숙명적 관계’를 이어 온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민주화 시대를 연 두 전직 대통령은 정치사에서 양김(兩金)으로 일컬어진다. 여기에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합치면 3김(三金)이 된다. 한국 현대 정치사는 세 사람의 협력과 갈등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양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3김 가운데는 김 전 총리만 남아 3김 시대의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DJ는) 나하고 가장 오랜 경쟁 관계이자 협력 관계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특수 관계다.”(2009년 8월 김영삼 전 대통령,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면서) 22일 타계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일생을 되돌아볼 때 함께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숙명의 맞수’이자 ‘동지’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둘은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과 맞선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는 든든한 ‘동지’였지만 권력 앞에선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경쟁자’였다. ‘양김’은 1970년대 유신체제하에서 야당의 차세대 주자로 자리매김하며 고비마다 협력과 경쟁을 이어 갔다. 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을 시작으로 70년 대선 후보 경선, 87년 대선, 92년 대선까지 정치적 명운을 건 승부를 벌였다.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국회 등원은 훨씬 빨랐던 YS가 첫 승부였던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맞붙었던 1970년 대선 경선에서는 1차 투표에서 승리하고도 결선투표에서 DJ에게 역전패했다. YS는 1971년 대선에서 DJ를 도와 “김대중의 승리는 우리들의 승리이며 곧 나의 승리”라면서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95만표 차로 패배했다. YS의 상도동계와 DJ의 동교동계는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했고 1985년 2월 총선에서 신민당의 극적 승리를 일궈 냈다. 양김은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며 6월 민주항쟁을 이끌고 직선제 개헌을 쟁취해 냈다. 하지만 협력은 여기까지였다. YS와 DJ는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실패한 뒤 DJ는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양김은 국민적 여망을 저버리고 대선에 뛰어들었고, 결국 정권 창출에 실패했다. 훗날 DJ는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 “너무도 후회스럽다”고 자책했다. YS도 DJ 서거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천추의 한이 됐지. 국민한테도 미안하고…”라고 회고했다. 이후 대립 구도는 가속화했다. YS는 1990년 1월 당시 여당인 민정당 및 김종필(JP) 총재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결행했다. YS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고 했다. 집권당인 민주자유당의 후보로 1992년 대선에서 DJ와 마지막 대결을 벌인 끝에 먼저 청와대에 입성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났던 DJ는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제1야당 대표로 정계에 복귀했다. 1997년 4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돼 YS에게 권좌를 넘겨받았다. 양김은 1987년 단일화 실패 이후 2009년 DJ가 서거할 때까지 22년간 반목을 이어 갔다. DJ는 3당 합당 이후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YS를 비난했고 YS도 퇴임 후 DJ의 노벨상 수상까지 깎아내렸다. 두 사람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조우’했지만 서로 외면한 채 다른 곳을 응시했다. DJ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독재’라는 표현을 써 가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자 YS는 “이제 그 입을 닫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YS가 사경을 헤매던 DJ를 문병한 뒤 취재진에게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밝히면서 한국 현대사의 두 거목은 극적으로 화해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상도동 막내 ‘무대’ 손 떨며 오열… 동교동계 한화갑 “참 아쉽다”

    상도동 막내 ‘무대’ 손 떨며 오열… 동교동계 한화갑 “참 아쉽다”

    22일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정치인과 각계 인사의 조문 행렬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김 전 대통령의 측근 그룹인 ‘상도동계’ 인사들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과 주요 여야 정치인 등 3200여명(오후 10시 30분 현재)이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었다. 비보를 접하고 가장 먼저 장례식장으로 달려온 사람은 김 전 대통령과 정치 역정을 함께한 상도동계 인사들이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마지막 국회의장을 지내고 현재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 전 의장은 오전 2시 30분쯤 처음으로 장례식장을 찾았다. 상도동계 막내였던 김 대표도 이날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날이 밝자마자 빈소를 찾아 오열했다. 손이 떨렸는지 불붙인 향을 바닥에 떨어트리기도 했다. 김 대표는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며 “그는 최초의 문민정부를 연 대통령이었고, 대통령 재임 중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위대한 개혁 업적을 만든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들은 뒤이어 장례식장을 찾은 서 최고위원과 함께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등 상주와 마찬가지로 조문객을 맞았다.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출신 박찬종 전 의원은 “직정경행(直情徑行·생각한 것을 꾸밈없이 행동으로 나타냄)의 신념의 지도자, 안식하소서”라고 명복을 빌었다. 상도동계와 정치적 협력 관계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동교동계’에서는 한화갑 전 의원이 참석했다. 그는 “오늘같이 사회가 복잡하고 대립하면서 과거 지도자들의 지도력이 필요할 때 이런 분을 잃게 돼 참 아쉽다”고 밝혔다.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을 포함한 다른 동교동계 인사들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23일 함께 조문할 계획이다. 권 고문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항상 약속 장소에 15분 먼저 와 계셨다. 집에 온 손님에게는 손수 커피나 차를 끓여 대접했다”고 회고했다. ‘이명박 정부’ 인사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임태희 전 대통령 실장, 김효재 전 정무수석, 이동관 전 홍보수석,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친이(친이명박)계’는 이 전 대통령이 오전 11시쯤 장례식장 입구에 도착하자 동행했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간 이 전 대통령은 빈소에 15분가량 머물렀다. 이 전 대통령은 문상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문재인 대표 등 새정치연합 지도부와 조우했지만 악수만 나눈 뒤 바로 헤어졌다. 문 대표는 빈소를 방문한 뒤 침통한 표정으로 “중·고교 선배이시고 (제가) 동향 후배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고인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좀 더 비통하다”고 말했다. 그는 트위터에 “민주화의 큰 산이었고 문민정부를 통해 민주정부로 가는 길을 연 그의 서거를 애도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오후에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과 조문했다. 김 전 대통령 장의(葬儀) 위원장으로 결정된 황 총리는 방명록에 ‘민주화를 이루시고 국가 개혁을 이끄신 발자취를 우리 모두 기억하겠습니다’라는 글귀를 남기고 20분간 유족과 장례 절차를 상의했다. 청와대에서는 이병기 비서실장과 현기환 정무수석이 빈소를 찾았다. 주요 여야 정치인도 빈소로 몰려들었다. 새누리당에서는 원유철 원내대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이인제 최고위원 등이 모습을 보였고 새정치연합에서는 정세균 의원을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전 의원, 안철수 의원, 손학규 전 상임고문 등이 고인을 기렸다.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국회에 입성한 손 전 고문은 칩거 중인 전남 강진 토담집에서 서울로 상경해 “현대 민주주의 역사라고 하면 김영삼 정부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으로 생각된다”며 명복을 빌었다. 안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말씀처럼 통합과 화합을 위한 정치로 국민으로부터 다시 신뢰받는 정치를 하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당초 24일 문 대표가 제안한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로 했지만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 이후로 미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가 영결식을 26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에서 거행하기로 하면서 국회 본회의도 오전 10시로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본회의는 통상 오후 2시에 열리지만 시간이 겹치면서 여야가 모처럼 의견을 같이한 셈이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악연’ 전두환 “좋은 곳 가셨을 것”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22일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치권 인사들은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보도자료를 통해 “근래 언론 보도를 통해 병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는데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며 “기독교 신앙이 깊었던 분이니까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문상을 하지 못한 노태우 전 대통령도 측근들에게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전직 대통령은 문민정부 시절 김 전 대통령이 ‘과거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추진했을 당시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된 ‘악연’이 있다. 빈소를 직접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완전한 한 축이 떠났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대병원에 계실 때 병문안을 갔었는데 그때 꼭 완쾌해서 전직 대통령끼리 자주 뵙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고 회고한 뒤 “오늘 퇴원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 나라의 마지막 남은 민주화의 상징이 떠나셨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김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양김’으로 불리는 두 전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의 동지이자 영원한 정치적 경쟁자였던 점에서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은 남편과 함께 민주화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했다”고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도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과 문민정부 출범을 통해 민주주의의 길을 넓힌 지도자로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에도 영향을 끼친 분”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화의 최선봉장이었던 이 시대의 영웅을 잃은 슬픔을 무엇에 비견하리오”라며 깊이 애도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노무현·이명박·김무성·손학규… ‘정치적 자손’ 숱하게 발탁

    노무현·이명박·김무성·손학규… ‘정치적 자손’ 숱하게 발탁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인맥은 상도동계가 핵심이다. YS는 특유의 ‘인물 발탁’으로 한국 정치사에 수많은 ‘정치적 자손’을 남겼다. 이 중엔 YS보다 먼저 세상을 등진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여의도를 호령하는 인물들도 있다. ●‘정치인 양성 사관학교’ 상도동계 1세대인 ‘좌(左)동영 우(右)형우’를 비롯해 서석재·김덕룡 전 의원,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4선 정병국·이병석 의원 등은 모두 YS와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거나 YS가 발탁한 인사들이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가 발탁했다. 진보 진영의 야권 인사들도 YS가 제도권 정치로 흡수했다. ●김무성 1987년 막내로 입문 김 대표는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거쳐 1987년 상도동계 막내로 입문한 뒤 김영삼 정권 초대 민정수석비서관, 최연소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서 최고위원은 YS의 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 문민정부 정무장관을 역임했다. 최형우 전 의원은 고 김동영 의원과 함께 민주화 운동 시절 YS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정치적 동지다. 문민정부 2인자로 내무부 장관을 지냈지만 1997년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고문과 여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 정계에서 물러났다. 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한 4선 김동영 전 의원은 1991년 55세로 일찍 세상을 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북고 동기로 민정당 출신인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은 당시 대구·경북 의원들을 결집시켜 김영삼 정권 탄생에 공을 세운 한국 정치사의 대표적 킹메이커다. 2009년 별세한 서석재 전 의원은 김동영·최형우·김덕룡과 함께 민주계 ‘실세 4인방’으로 불렸다. 164㎝ 단신으로 별명이 ‘작은 거인’이었던 그는 조직의 귀재로,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설을 제기한 뒤 총무처 장관직에서 8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YS는 이를 두고두고 안타까워했다. ●2012년 대선후보 놓고 갈려 상도동계는 2012년 대선 때 지지 후보를 놓고 갈렸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상도동계의 드문 호남 인맥인 김덕룡 전 의원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며 다른 길을 걸었다.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 당시 YS에게 영입돼 부산 동구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에 반발하며 YS와 갈라서게 된다. 이 전 대통령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으로 깜짝 발탁됐다. 세 차례 대권에 도전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YS 정부 최연소 노동부 장관 출신인 이인제 최고위원도 YS가 발굴했다. 특히 이 전 총재는 김영삼 정권에서 감사원장·총리로 중용되는 등 YS가 직접 대권 가도를 놓아줬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서강대 교수 시절 광명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민중당 소속 운동권 정치가였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은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총재였던 YS가 영입했다. 15대 총선 때는 ‘YS 키즈’가 대거 배출됐다. 정의화 국회의장,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박종철 검사’ 안상수 창원시장, 이완구 전 국무총리 모두 신한국당 초선 동기다. ‘YS의 영원한 입’ 박종웅 전 의원, 홍인길 전 총무수석도 YS 직계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상도동 가신그룹] ‘킹메이커’ 김윤환에 좌는 김동영 우는 최형우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인맥 계보는 상도동 가신 그룹이 핵심이다.  상도동계 핵심은 최형우·서석재·김덕룡·김윤환 전 의원, 김동영 전 장관, 서청원·김무성 의원 등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YS 집권을 전후한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중반 사이 정치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이들은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도 있다.  한국 정치사의 대표적 킹메이커인 김윤환 전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 정무수석을 역임한 그는 문민정부 출범 때 대구·경북 의원들을 결집시켜 김영삼 정권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아호 허주(虛舟)로 더 유명한 그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대권을 노렸으나 이회창 후보에게 투항하면서 꿈을 접었다. 이 후보의 대선 패배 뒤에는 “권력은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발언을 남겼고, 2000년 한나라당 공천 탈락 후 민주국민당을 창당했지만 낙선, 2003년 말 신장암으로 별세했다.  상도동의 ‘좌동영 우형우’ 가운데 한 명인 최형우 전 의원은 일찍 세상을 뜬 김동영 전 장관과 함께 YS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1971년 야당 신민당 소속으로 8대 국회 첫 배지를 달며 YS와 인연을 맺은 그는 YS 당선 이후 민자당 사무총장으로서 공직자 재산공개를 주도하는 등 변화와 개혁의 선봉에 섰지만 1994년 부천세무서 탈세 사건으로 경질됐다. 1996년 15대 총선에 당선돼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됐으나 1997년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정계를 은퇴했다.  2009년 별세한 서석재 전 의원은 김동영·최형우·김덕룡과 함께 민주계 실세 4인방이었다. 164㎝의 단신인 탓에 ‘작은 거인’이란 별명으로 불린 그는 조직의 귀재였다. 1992년 대선 당시 나라사랑실천본부란 사조직을 이끌며 YS 당선에 일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를 총무처 장관에 발탁했으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4000억원 비자금설을 주장해 8개월 여만에 물러났다. YS는 이를 두고두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김덕룡 전 의원은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지지를 선택하며 상도동계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앞서 2007년 대선 경선 때 이명박 후보 지지 핵심멤버인 6인회 멤버로 박근혜 당시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 1970년 신민당 총재 비서실장으로 정계 입문해 5선을 지낸 관록의 정치인이다.  반면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낙천, 총선 공천헌금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정치적 암흑기를 겪다 최근 복권돼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부활했고, 10·30 재보선을 통해 원내 복귀에도 성공했다. 기자 출신으로 민한당 국회의원 시절이던 1981년 YS와 처음 만난 그는 1989년 민주당 총재 비서실장, 1996년 신한국당 원내총무 등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2002년 한나라당 불법대선자금 사건을 책임지고 탈당, 실형 선고를 받는 등 부침을 겪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연을 맺고 친박(친박근혜)계 원조 좌장 역할을 해 왔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현재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4·24 재보선으로 복귀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상도동계의 막내다. 1992년 대선에서 정책보좌역을 맡으며 YS와 첫 인연을 맺었다.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별명도 보스 정치의 한복판이었던 상도동에서 정치 역정을 겪으며 얻게 됐다.  YS의 가신이자 대변인격으로 불렸던 박종웅 전 의원은 현재 대한석유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는 YS 퇴임 이후에도 대립했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연대21이라는 조직을 주도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원했지만 18대 총선 때 부산 사하구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낙천했다.  부인 손명순 여사는 한때 건강이 악화됐지만 최근에는 기력을 많이 회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대선 때도 고인과 함께 투표소에 나와 한 표를 행사했다. ‘YS 황태자’로 불렸던 차남 현철씨(전 여의도연구소장)는 지난해 총선 공천 때 경남 거제에서 낙천한 뒤 탈당해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권부의 핵심에 있었지만 집권 말기 조세포탈 혐의로 실형을 살기도 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女생도, 사관학교 수석하고 받은 것이 ‘충격’

    女생도, 사관학교 수석하고 받은 것이 ‘충격’

    지난해 2월 공군사관학교는 졸업성적이 1등인 정모(24·여·현재 중위) 생도에게 수석에게 주는 대통령상 대신 국무총리상(차석)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공사 측은 “학업 성적이 우수하지만 2학년 때 군사학에서 D등급, 체력검정에서 세 차례 C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졸업생도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띤 대통령상 수상자로선 부적합하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체력등급이나 군사훈련 성적은 규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 이런 결정은 여론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여생도에 대한 성차별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자 공사는 결국 결정을 번복하고 정 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수여했다. 현재 정 중위는 전투기 조종사가 적성에 맞지 않아 서울대 의대에서 군의관이 되기 위한 위탁 교육을 받고 있다. 같은 시기 육군사관학교는 2015년 입시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과 상관없이 면접 등을 통해 군대가 적성에 맞는 군 적성 우수자를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해군사관학교도 수능 성적과 관계없이 체력검정과 잠재 역량 평가를 중심으로 선발하는 특별전형을 신설했다. 이는 정예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 교육의 본질에 대한 군 당국의 고민을 보여준다. 우리 사관학교는 전장에서 싸워 이길 군인을 양성하는 군사기관의 기능과 학사 학위를 수여하고 군사응용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의 기능을 모두 갖고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 군인에 걸맞은 학생을 뽑겠다’는 정책은 ‘무골 기질’을 강화하겠다는 측면에서 일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 군의 사관학교 교육이 실제로 내적 지도력을 갖춘 미래 지휘관 양성에 적합한지는 미지수다. 특히 현재 사관학교는 21세기에 걸맞은 군사기관으로서도, 대학으로서도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군생활 회의로 육사 65기 임관 5년에 14% 전역 새누리당 정미경 의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육사에서 98명, 해사에서 41명, 공사에서 31명이 진로나 적성·건강 문제를 이유로 자퇴했다. 육사는 같은 기간 35명이 품위유지 의무 위반(부정행위, 폭력) 등으로 퇴학당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에 따르면 2010년 입학한 육사 70기의 경우 240명이 입학해 200명이 졸업했다. 16.67%가 중도 탈락한 셈이다. 2009년 졸업한 육사 65기의 경우 장교로 임관한 지 5년 만인 지난해 군 생활에 회의를 느껴 전역한 비율도 14.6%에 달했다. 특히 올해 6월에는 2학년 생도 22명이 과제물 제출 과정에서 표절을 한 것으로 드러나 무더기 징계를 당했고 1명은 조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해 퇴학당했다. 생명을 맡긴 부하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갈 장교의 품성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육사 출신의 한 장성은 22일 “사관학교를 나왔으면 국가관이 투철하고 군인으로서 가치관이 뚜렷해야 하는데 일반 대학생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30여년 전에 구타와 기합으로 상명하복을 가르쳤지만 이제는 왜 복종과 군인 정신이 중요한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시대인데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사관학교 교육이 폐쇄적인 군 특성을 그대로 답습해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는 21세기 다변화된 전장에 걸맞지 않다는 점이다. 공사 수석 졸업생을 교체했다 번복한 해프닝도 결국 군의 고질적인 현행 작전 중심 사고가 배경으로 지적된다. 이는 육군은 보병, 해군은 함정, 공군은 조종 병과가 진급과 서열에서 중심이 돼야 한다는 뿌리 깊은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같은 관행이 수십년간 지속되면서 우리 군의 현실은 미국에 의존하는 타성에 젖어 스스로 전쟁 계획을 수립할 줄 모르고, 육·해·공군 간 상호 합동 작전에 대한 이해도 부족의 결과로 나타났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공병 출신,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명장 하인츠 구데리안은 통신 병과 출신이다. 육사 출신인 최병욱 상명대 군사학과 교수는 “사관학교 교육이 청교도적 성격을 지닌 미국식 모델을 맹목적으로 따라갔지만 현재도 잠재 역량을 갖춘 우수 고급 간부인재 양성기관으로 기능하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군 당국은 지난해 3군 사관학교의 3금(금혼, 금주, 금연) 제도를 완화한다고 밝혔지만 예비역과 군 내부의 반발로 개혁 작업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육사가 1979년 당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 생도의 11.7%가 흡연을, 25.4%가 음주를, 3.6%가 이성교제를 해 3금 제도를 위반했다고 고백했다. 당시에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제도를 후배에게 강요하는 셈이다. 최 교수는 “3금 제도는 완벽하게 지키기도 어렵고 오히려 도덕적으로 더 둔감하게 만드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현역 군인이 교수요원으로 후배를 교육하는 사관학교 교육의 폐쇄성과 학문적 역량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육사의 경우 별정직 군무원인 민간인 교수가 160명 가운데 4명에 불과하다. 미래의 군 지휘관이 유연한 군사전략과 다양한 사고를 함양할 기반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독일·일본·호주 등은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교육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실에 따르면 육사 교수 직위(강사 포함) 가운데 박사학위 보유자는 45.9%, 해사는 39.3%, 공사는 70.8%로 나타났다. 이는 박사 학위가 있어야 시간 강사라도 할 수 있는 일반 대학의 풍토와는 다른 점이다. 이상목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장은 “현역 군인이 석사학위만 갖고 가르치는데 깊은 학문적 수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이 같은 교육을 받은 생도가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깊지 않은 수준의 지식을 갖고 배출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래전에 대비하고 육·해·공군의 통합 작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개혁안도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로 독일과 일본, 호주, 캐나다 등은 육·해·공군이 통합된 사관학교에서 장교를 양성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을 맡았던 김태효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는 “따로 놀던 3군의 통합성을 제고하기 위해 사관학교 교육 통합을 해법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각 군의 미온적 입장과 조직 이기주의에 눌려 흐지부지됐다. 국방부는 대신 2012년부터 육·해·공 3군 사관학교 1학년 생도들을 3개조로 나눠 세 차례에 걸쳐 다른 사관학교에서 6주 간격으로 순환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완의 개혁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정현용 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군복 벗어 보니 직업 군인 선택한 게 후회”

    [정현용 기자의 밀리터리 인사이드] “군복 벗어 보니 직업 군인 선택한 게 후회”

    “사단의 참모 직위를 맡으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주말 출근도 했고 자기 계발을 할 여력이 없었지요. 장기 선발에서 떨어지고 사회에 나와 일반 지원자들과 함께 취업 준비를 하면서 군생활을 한 게 후회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대다수 기업들이 전역 군인을 영업직군으로만 뽑습니다. 주요 직군에 발을 들이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일반 지원자들의 각종 자격증과 어학 수준 등 스펙이 경쟁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하기 때문이죠. 전역 군인 선배인 지인도 기업에서 역량 부족을 이유로 압박을 받아 퇴사하고 택시기사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내 미래 모습이 아닌가 두려움이 듭니다”(전역자 A씨) 정부는 역대 정부 최초로 ‘명예로운 보훈’을 국정 과제로 채택했습니다. 지난달 20~26일 제대군인 주간을 맞아 거창한 행사도 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열띤 홍보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달라”는 제대군인들의 아우성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위 사연은 한 제대군인이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올린 많은 글 중 하나입니다. 연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수입이 끊겨 참담한 지경에 놓이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재취업률 58.7%… 비정규직이 62.6% 국가보훈처 조사 결과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 전역한 제대군인의 취업률은 58.7%. 5544명만이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올 상반기까지 3614명이 취업했습니다. 보훈처는 제대군인 일자리 확보를 국정 과제로 추진하기 시작한 2013년 초와 비교하면 지난해 말 기준 취업률은 6.1% 포인트 상승한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10명 가운데 4명은 여전히 취업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보훈처 제대군인지원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구한 제대군인 3061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917명(62.6%)이 비정규직으로 분류됐다는 통계만 봐도 구직자들의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국내 임금노동자 비정규직 비율(32.4%)의 두 배입니다. 조사 대상자 평균 연소득은 2525만원으로, 2000만원이 안 되는 제대군인이 810명(26.5%)에 달했습니다. 연소득 4000만원 이상은 224명(7.3%)에 그쳤죠. 직원 수 100명 이상인 국내 기업 1만 4000여곳 가운데 제대군인을 채용한 회사는 1700여곳으로, 12%에 그쳤다고 보훈처는 지적했습니다.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일반 공무원과 달리 직업군인은 계급별 정년제도가 있습니다.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진급하지 못하면 대위는 43세, 소령은 45세, 중령은 53세, 대령은 56세에 군복을 벗고 사회로 나오게 됩니다. 상사는 53세, 원사와 준위는 55세입니다. 대부분 중도에 군복을 벗고 싶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중령 진급 경쟁률만 10대1, 대령 진급은 20대1에 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회로 나와야 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가운데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복무 기간 20년을 채우지 못한 대위와 소령, 중사, 상사 등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10년 이상 장기복무 제대군인의 평균 연령은 45세이고, 부사관 출신 제대군인의 80%는 고졸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경기불황으로 일반인 재취업도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기업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제대군인은 정부 지원 없이는 사실상 취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정부 지원은 제대군인은 물론 인력 수요자인 기업의 눈높이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훈처는 기업에 ‘보훈특별채용’이라는 명목으로 제대군인 채용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20인 이상 근무하는 기업(제조업 200인 이상) 직원의 3~8%를 국가유공자, 유공자 자녀와 제대군인으로 의무 채용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비율을 채우지 않으면 5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하고 있지만 이 제도를 제대로 지키는 기업은 많지 않습니다. 일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오히려 보훈처를 ‘갑’이라고 칭하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요. 이유가 있습니다. “채용에 필요한 인력은 정보기술(IT) 전문 인력인데 반강제적으로 전문성도 없는 제대군인을 추천해 왔다”거나 “온라인 시스템이 없는지 오프라인 이력서를 잔뜩 꺼내 주며 선택해 보라고 했다”, “보훈처 담당자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고용해 지원 직종과 관련없는 자리를 줬다”고 토로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반면 보훈처 직원들은 “밤낮으로 제대군인을 채용해 달라고 기업에 읍소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합니다. 재취업과 관련해 아무런 유인책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양쪽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 지원 없으면 사실상 취업 자체가 불가능 법은 존재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훈가족이라는 것 하나로 기업에 의무고용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제도는 더욱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방법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제대군인과 기업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세제 지원이나 실질적인 인건비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입니다. 오히려 올해 3월 육군 내부에서는 의무고용 과태료를 현행 5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대폭 상향하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기업과의 의식 간극을 좁히기는커녕 갈등을 부추기는 모양새입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은 제대 전 최대 1년의 직업교육 지원을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물론 제대군인지원센터, 지자체 일자리센터 등을 통해 전역 후 일자리 소개나 교육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전역해 냉혹한 현실에 맞닥뜨리기 전 미리 충분히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격오지에서 근무하는 군인일수록 혜택받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지난해 전역 예정자와 지휘관, 인사 실무자 등 6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역 예정자의 33%, 지휘관의 30%가 전직지원제도를 잘 모른다고 밝혔습니다. 전역 예정인 중기복무자 10명 가운데 6명은 교육비 지원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오면 다시 취업 사교육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육군 부사관 정원은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이후 급증해 인건비만 해마다 1000억원 이상 부족할 정도입니다. 군 조직 개편에 따라 앞으로도 부사관 정원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계급 정년에 따라 전역하는 부사관도 급증할 수밖에 없는데 취업 지원 제도는 제자리입니다. 영관급 장교의 재취업률이 50% 이상인 반면 준·부사관의 취업률은 40%에도 못 미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만큼 향후 부사관 전역 예정자에 대한 집중적인 재취업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대 군인 채용한 기업은 83%가 만족 기술직 자격 취득이나 현장 실습과 관련한 교육지원 체계는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제대군인의 취업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직 부족한 수준입니다. 인력 수요가 비교적 많은 사회복지직 등에 대한 교육 지원을 강화하고, 제대군인이 선호하는 사무직 교육은 한글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 단순한 사무프로그램 사용법을 알려주는 기존 방식 대신 적극적으로 기업과 연대해 현장에서 업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기업도 사회 공헌의 한 방향으로 제대군인 재취업 환경을 조성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8년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업의 제대군인 활용 실태조사’에서 제대군인 채용에 대해 조사 대상 기업의 82.5%가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특히 군 복무 결과로 리더십과 성실성, 책임감, 추진력이 돋보인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부족한 전문성을 정부와 군에서 채워 준다면 사회에 성공적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정부는 제대군인에 대한 일자리 확충을 목표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성과 보여 주기식 취업자 수나 상담자 수에만 치중한다면 제대군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고 표현하기 어려울 겁니다. 기업과 제대군인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라를 지키느라 한 곳에 제대로 정착하지도 못하고 전국을 떠돌다 사회로 돌아오는 제대군인이 많습니다. 더이상 “직업군인 된 것을 후회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희망을 주시기 바랍니다. junghy77@seoul.co.kr
  • [서울~세종 민자고속도] 민자 유치로 6년 묵은 사업비 이견 해소… 오송 지선 건설 제시로 노선 논란도 뚫어

    [서울~세종 민자고속도] 민자 유치로 6년 묵은 사업비 이견 해소… 오송 지선 건설 제시로 노선 논란도 뚫어

    19일 확정된 서울~세종고속도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사업에 본격적인 발동이 걸린 지 6년 만에 추진하게 됐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있다고 판정 난 사업이다. 서울∼세종고속도로는 흔히 ‘제2경부고속도로’로 불렸다. 국가 기간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의 교통혼잡을 완화하는 것이 주목적인 고속도로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2003년 9월이었다. 당시 경기도는 경부고속도로 수도권 구간이 포화했다며 서울외곽순환도로 하남나들목에서 용인을 거쳐 경부고속도로 오산나들목까지 53㎞에 제2경부고속도로를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정부도 2004년 11월 ‘장기 수도권 고속도로망 계획’을 짜면서 서울∼용인 구간(39.5㎞)을 반영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경기도 포천~구리고속도로와 연결, 세종시 장군면까지 128.8㎞에 왕복 6차로로 제2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사업비는 6조 7037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2008년 7월부터 2009년 6월까지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됐다. 비용 대비 편익비율(B/C)이 1.19로 경제성이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2009년 12월에 나온 타당성 조사(기본 조사) 때는 1.28로 더 높아졌다. 그러나 사업비 조달 방식과 노선을 놓고 의견이 분분해 추진 동력을 잃었고 시간만 허비했다. 특히 재정을 4대강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바람에 7조원 가까운 사업비 조달이 걸림돌이 됐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민자사업이고, 건설사들도 적극 달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도로공사는 재정을 투입해 건설하자고 주장했지만 재정 부족과 도공 부채 비율 증가를 들어 허용하지 않았다. 도공이 자체 채권을 발행해 공사비를 부담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공이 운영 중인 기존 경부·중부고속도로의 통행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하지 않은 것은 기존 고속도로의 수도권 지·정체가 워낙 심해 고속도로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과, 새로운 고속도로를 건설해도 수요가 충분하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노선도 논란이 됐었다. 특히 충북지역과 이 지역 정치인들은 중부고속도로 확장을 고집했고 세종·대전·충남은 중부고속도로 확장과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을 함께 추진하자는 목소리를 냈다. 결국 정부는 충북을 설득해 고속도로를 신설하는 대신 서울~세종고속도로와 오송을 연결하는 지선 건설 방안을 제시해 반발을 무마했다. 금융시장 변화도 사업 추진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금리가 떨어져 민자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인 높은 금융비용을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도입된 손익공유형(BTO-a) 민자사업 방식도 도움이 됐다. 그동안 추진된 민자사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이 사라져 위험부담을 사업자가 전적으로 떠안기 때문에 조달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손익공유형은 손실과 이익을 정부가 분담해 리스크를 덜어 조달금리를 낮출 수 있는 제도이다. 강희업 국토부 도로정책과장은 “최근 건설한 민자도로의 통행료는 재정도로 대비 1.24배인데 서울∼세종고속도로의 통행료는 이보다는 낮게 책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박근혜 정부 月평균 336명 노무현 정부 月평균 622명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지난 14일 발생한 민중총궐기대회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이 극명하게 갈리는 가운데 불법 집회·시위 가담자에 대한 사법 처리는 현 정부보다 역대 정부가 조금 더 가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17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정부별 불법 집단행위 검거 현황’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10월 현재까지 1만 1440명의 불법 가담자가 경찰에 적발됐다. 월평균 336명씩이다. 구속된 인원은 모두 84명으로 월 2명꼴로 철창 신세를 졌다. 노무현 정부 5년(2003~2007년) 동안에는 3만 7351명이 검거됐다. 월평균 622명으로 현 정부보다 월 286명이 더 경찰에 붙잡혔다. 구속된 시위자는 1264명, 월평균 21명으로 집계됐다. 이 또한 현 정부보다 월 19명이 더 많았다. 이명박 정부(2008~2012년)에서는 피검거자 수 2만 3720명(월 395명), 이 가운데 피구속자 수 489명(월 8명)으로 노무현 정부보다는 적었지만 박근혜 정부보다는 많았다. 전체 집회 건수는 현 정부가 1만 9430건으로 다른 정부를 압도했다. 노무현 정부는 1만 1297건, 이명박 정부는 1만 538건이었다. 임기가 2년이나 더 남았는데도 다른 정부 5년 동안 발생한 집회 건수를 이미 초과한 것이다. 집회 건수는 많았지만 불법 폭력시위 비율은 현 정부가 0.32%(62건)로 가장 낮았다. 이명박 정부가 0.50%(53건), 노무현 정부가 0.76%(86건)씩을 기록했다. 한편 새누리당은 이날 강신명 경찰청장을 국회로 불러 부상당한 경찰 현황을 따져 물으며 지난 14일 사건이 ‘불법 폭력 시위’라는 점을 부각하는 데 애썼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살수테러’, ‘살인적 진압’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경찰의 과잉 진압을 질타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열린세상] 슬로건의 재구성/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열린세상] 슬로건의 재구성/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길고 지루하게 요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써 놓은 글이나 말을 접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핵심 메시지가 뚜렷이 전달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는 대중을 설득할 수가 없다. 간결한 한 줄의 ‘힘’이 안 나올 때, 대중들은 그 상품이나 정치인이 무엇을 설파하고자 하는지 알 길이 없다. 핵심적인 한 줄로 간결하게 담아야 전달이 된다. 그래서 나온 말이 ‘한 줄로 설득하라’는 것이다. 성공적인 슬로건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죽어 있는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데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효과적이다. “스테이크를 팔지 말고 ‘지글거림’을 팔아라”라고 하는 말이 있다. 한 줄의 글을 읽었을 때 어떤 풍경이 떠오른다면 그것도 성공이다. 정치인도 새로운 비전을 비주얼로 보여 줄 수 있을 때 훨씬 설득력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에 청계천이라는 비주얼을 만들어서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청계천을 보면서 그가 대통령이 돼서도 이렇게 깔끔한 변화의 그림을 보여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고건 전 총리는 서울시장 시절 지하철 5·6·7·8호선을 완성했다. 하지만 지하철은 땅속에 있어서일까. 크게 그림으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동사는 명사보다 훨씬 생생하다. 동사의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글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이 유명한 광고 문구를 생각해 보라. ‘사랑은 변하는 거야’나 ‘사랑은 바뀌는 거야’라고 할 때보다 얼마나 더 파워가 있는가. ‘움직인다’는 동사 하나를 가지고 이 광고 문구는 명문장이 됐다.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전략은 효과적이다. 진솔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어갈 수 있다. ‘평균 이하 여섯 남자’(무한도전 프로그램 소개), ‘우리 사장님이 휴가 갔어요’(어느 대리점 광고 문구),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바나나 맛의 우유). 이런 슬로건은 솔직함을 바탕으로 한다. 대립된 개념을 활용한 워딩은 강하고 명쾌하다. 명언을 만드는 비결도 그 안에 있다. ‘빨래, 뼈 빠지게 하지 말고 때 빠지게 하셔야죠’(세제), ‘머리 좋은 사람보다 머리 많은 사람이 부럽다’(탈모방지제), ‘두면 고물, 주면 보물’(아름다운 가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자유’(리조트). 동음이의어나 중의법을 사용해 문장을 만들면 재치와 함께 심오함을 함께 전할 수 있다. ‘도로명주소를 알려주소’(행정자치부),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장기전세주택),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교실 급훈), ‘꿈을 꾸면 꿈을 이룰 수 없다’(교실 급훈), ‘하고 싶은 일을 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못 한다’, ‘우리는 주먹다짐합니다’(대한적십자사, 헌혈 독려). 이런 건 좋은 예다. 양립할 수 없는 것끼리 충돌시킴으로써 긴장감을 빚어낼 수도 있다. ‘철의 마음은 따뜻하다’(포스코) 역설적으로 상식을 뒤집거나 논리를 뛰어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침대), ‘어제보다 어린 피부’(화장품), ‘쓰레기는 죽지 않는다. 다만 재활용될 뿐이다’(공익광고협의회). 서울시의 새로운 슬로건 “I.SEOUL.YOU”를 두고 시끄럽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건 실패한 슬로건이다. 슬로건의 뜻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면 그건 이미 실패한 슬로건이다. 슬로건은 한눈에 마음에 와서 확 꽂혀야 한다. 꽂히기는커녕 이건 설명을 들어도 뭘 하자는 건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 설명이라기보다 논란을 잠재우려는 억지 아전인수격 해석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온라인에서는 패러디와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I.SEOUL.YOU”(전셋값을 마구 올리겠어), “I.INCHEON.YOU”(널 빚더미로 만들어 주겠어), “I.DAEGU.YOU”(너를 쪄 죽이겠어), “I.DAEJEON.YOU”(널 심심하게 해 주겠어). 이 정도 비아냥을 받게 되면 이미 실패한 슬로건이다.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한 정치적 슬로건 만들기는 그만두자. 서울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데 득이 되기보다는 해가 되는 슬로건이다. 제발 뜻도 안 통하는 콩글리시 슬로건을 폐기해 주기 바란다. 이런 엉터리 영어 슬로건은 세계적으로 너무 부끄럽다.
  • “경찰차에 밧줄 걸어 불법” VS “입구 없는 차벽 위헌”

    “경찰차에 밧줄 걸어 불법” VS “입구 없는 차벽 위헌”

    일부 시위대의 폭력적인 행태와 경찰의 물대포, 캡사이신 진압 등으로 아수라장이 됐던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민중총궐기대회’ 이후 시위와 진압의 합법성 및 정당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불법 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는 주장과 ‘경찰의 과잉·강경 진압’이라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논란의 주요 쟁점을 관련 법과 법원 판례 등으로 진단해 본다. 민중총궐기대회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합법적인 집회’인가 ‘불법적인 시위’인가 여부다. 관련 법과 서울시 조례 등에 따르면 이번 대회는 합법 집회로 시작됐지만 결론적으로는 불법 시위로 변질됐다. 주최 측은 이날 오후 2시부터 각각 사전에 집회를 신고한 서울광장과 대학로, 서울역 광장 등에서 예정대로 행사를 열었다. 여기까지는 모두 합법적이다. 그러나 오후 4시부터 광화문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하면서 ‘불법’으로 바뀌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법원은 물론 외국 대사관 등의 반경 100m 이내에서의 집회나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광화문광장은 청와대와는 1㎞가량 떨어져 있지만 미국 대사관 등이 인접해 있어 법률상 집회·시위 금지 구역에 해당한다. 서울시도 광화문광장에서 문화 행사가 아닌 정치적 집회·시위는 조례를 통해 금지하고 있다. 이는 경찰이 14일 집회에 대한 진압을 ‘불법 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시위대가 경찰이 설치한 1차 방어 차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경찰 버스에 밧줄을 걸어 당기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공무집행 방해와 공용물 손상 등에 해당해 완전한 불법 집회로 변질됐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집회 주최 측은 “경찰의 차벽 설치는 위헌”이라고 결정한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경찰이 먼저 불법을 저지르고도 모든 잘못을 시위대에 떠넘기고 있다고 반발한다. 헌재는 이명박 정부가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추모 및 반정부 집회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서울광장 전체를 경찰 버스로 막은 것과 관련해 “일체의 집회는 물론 통행조차 금지한 경찰의 차벽 설치는 전면적이고 극단적 조치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했다”며 재판관 7(위헌) 대 2(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최소한의 통행권조차 보장하지 않은 채 광화문광장 일대를 삼중으로 차단했고, 특히 집회 시작 전에 삼중 차벽을 설치한 것은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최 측은 주장한다. 헌재의 위헌 결정을 거스르고 설치한 차벽은 정상적인 ‘폴리스라인’으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집회 당일 경찰의 물대포 직사 살수의 적절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뜨겁다. 당시 농민 백모(69)씨가 직사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현재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의 살수차 운영 지침을 보면 ‘경고 방송→분산 살수→곡사 살수→직사 살수’의 단계를 거치도록 돼 있다. 직사 살수 요건으로 ‘쇠파이프·죽봉·화염병·돌 등 폭력시위용품을 소지하거나 경찰관 폭행 또는 병력과 몸싸움을 하는 경우’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직사 살수 때 안전을 고려해 시위자의 가슴 아랫부분을 겨냥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과 목격담을 종합하면 백씨는 폭력시위용품을 소지하지 않았으나 경찰은 물대포를 곡사 등의 단계 없이 얼굴 부위에 직사했다. 경찰은 백씨가 경찰 버스에 걸린 밧줄을 당기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2011년 경찰의 물대포 발사로 다친 시위 참가자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광화문광장] “대통령 밥상이 궁금하다?”

    [광화문광장] “대통령 밥상이 궁금하다?”

    “한식을 세계문화유산으로~ 한식을 한류의 중심으로” “2015한식의날 대축제”가 13일부터 14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떡퍼포먼스를 시작으로 각 대학 조리학과 학생들이 출전하는 한식음식요리대회가 오후 1시부터 1시간동안 열리는 등 다양한 공연행사도 준비돼 있다. 각 행사장부스에는 우수한식기업, 대학작품, 프랜차이즈기업홍보 등 분야별 전시행사가 마련돼 있으며 전통차, 전통음식도 맛볼 수 있다. 특별히 “청와대밥상” 코너에는 박정희, 이명박,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들의 식단이 진열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구조적 저성장 불황에 빠진 한국경제 규제 개혁·노동 공급 확대로 극복해야”

    “구조적 저성장 불황에 빠진 한국경제 규제 개혁·노동 공급 확대로 극복해야”

    “한국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저성장의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집단 간 이익·손해 프레임에서 벗어나 규제 개혁과 노동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 10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나온 주장이다. ‘우리 경제의 진단과 구조개혁’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가 직면한 불황은 경기 순환이 아닌 구조적 저성장에 따른 불황”이라면서 “경기 순환적 불황이라면 2~3년에 끝나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5년간 평균 성장률은 3%에 그쳤고, 박근혜 정부도 3%를 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경제의 성장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요인으로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가 지목됐다. 이재준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는 “지금의 출산 장려책으로는 고령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면서 “이보다는 여성과 청년층, 노령층의 노동 공급 확대가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정책 설계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도 도마에 올랐다. 김진국(한국규제학회 회장) 배재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규제 개혁이 어려운 까닭은 정권마다 바뀌는 추진 체계, 규제 개혁의 노하우 상실, 정치권의 편향된 단견 때문”이라면서 “규제 비용 총량제와 네거티브 규제 등을 특징으로 하는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박근혜 정부의 규제 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등록 규제 수에 큰 변화가 없다”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제조업규제 지수’(PMR)를 봐도 한국의 PMR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주된 원인으로는 규제 신설과 강화 경향이 높은 ‘의원 입법 발의’를 꼽았다. 김 연구위원은 “사전 규제심사를 받는 정부 발의 법률과 달리 의원 입법은 규제 영향 평가를 받지 않고 규제 일몰제도 피할 수 있다”면서 “의원 입법 절차에 ‘규제 영향 분석서’를 첨부하도록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이종걸 “박원순 흠집내기 옹졸해”

    이종걸 “박원순 흠집내기 옹졸해”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여당의 공세에 대해 “박 시장에 대한 과도한 흠집내기는 바로 청와대의 옹졸함”이라며 “공세를 보면 전방위적 발목잡기 대책회의가 만들어진 듯하다”고 비판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노무현 정부 때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권 도전 프로젝트라고 짐작됐던 청계천 사업에 대해 노 대통령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직접 지원했던 것을 기억한다”며 박 시장에 대한 여당의 정치공세를 꼬집었다. 이어 “행정부는 박 시장의 정책을 위험물 취급한다”면서 “안전문제로 철거할 도심 고가를 도심재생으로 추진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서울지방경찰청이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 위에 청와대가 있는 것”이라며 “박 시장에 대한 정치공작에 단호하게 맞서겠다”고 밝혔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대화·협력 우선… 北과 윈윈하는 상황 만들어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이 7일 싱가포르에서 분단 66년 만에 첫 정상회담을 갖고 ‘하나의 중국’을 재확인했다. 2000년 분단 55년 만에 첫 정상회담을 가진 우리보다는 11년 늦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한반도의 대화를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는 평가와 남북한 간에는 핵·미사일 문제, 인권 등 민감한 이슈가 많아 양안 관계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엇갈린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당국 간 회담을 개최할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북한 핵, 인권 문제 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명분을 줘야 하는데 아직 북한이 나올 준비가 안 됐다”고 했다.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남북한 간에 정상회담은커녕 당국 간 회담도 지지부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안 정상회담이 한반도에 큰 변화를 부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특히 우리는 내년부터 총선이라는 정치 스케줄이 있어서 아마 정상회담 얘기 나오면 여야 다 뜬금없는 카드라고 얘기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두 정상의 만남은 그 자체로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정상회담을 개최할 필요성을 부각시킨다”면서 “현재 이를 이끌 마땅한 동력이 없지만 대화와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중국의 변화에서 보듯이 우리도 유연한 자세로 북한과 윈윈하는 상황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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