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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향한 우리의 노력/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열린세상]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향한 우리의 노력/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에 다니는 다문화가정 학생은 4만 7000여명으로 2014년에는 7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140만여명, 전체 인구의 2.8%를 차지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당연한 추세다. 이제 다문화 사회는 다른 나라의 일이 아닌 우리 사회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까지 다문화 정책은 배우자와 자녀들의 생활 적응과 편의 개선에 집중되어 왔다. 언어, 교육, 의료, 주거, 복지 등 그들이 사회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기본환경 조성이 그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 동화되기를 원하는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문화를 알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새로운 이주민이 살아왔던 나라에 대한 관심과 존중 측면에서 말이다. 2년 전 아세안 10개 회원국가들의 전통무용을 한무대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세안 국가들의 문화는 비슷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각 나라별 춤사위를 동시에 접하면서 서로간의 미묘한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한·중·일 3국이 지리적으로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듯이 그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세계경제의 침체 가운데서도 아세안의 약진은 단연 눈에 띈다. 올해 이들의 평균 성장률은 5%대다. 세계 평균보다 약 2% 포인트나 높다. 그뿐만 아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6억명의 아세안이 향후 10년 안에 10억명의 거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규모 면에서 아세안은 우리의 두번째 무역파트너이자 외국인 직접투자 대상이기도 하다. 경제교류 증가는 필연적으로 인적 교류도 수반한다. 작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아세안 국가 방문객은 124만명에 이른다. 부지불식간에 이들이 우리 사회 속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여름, 한·아세안 포럼 참석차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방문했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 한류 바람이 가장 거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가 만난 베트남 여성 외교관은 한국 아이돌 스타들의 면면을 훤히 꿰차고 있어 대화에 막힘이 없었다. 한국 드라마가 전체 시청시간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놀랄 일도 아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젊은이들의 선망 아이콘이고, 지난 십년간 베트남으로의 수출은 8배나 증가하였다. 고무적인 것은 이 현상이 아세안 국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포럼에서는 한국과 아세안 간의 문화교류 세션이 열렸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한·아세안 간의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전통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에서 양방향적 문화 교류와 활발한 인적 교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공적 기관들이 문화 교류를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민간 예술단체 간의 공동 작업을 지원하는 방식이 상호 이해 증진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상업적 측면에 치우진 민간의 일방적 교류는 오히려 역풍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수용하는 우리 국민들의 능력도 높여야 한다. 프랑스는 이슬람 등 문화 다양성에 대한 자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문화부 산하에 ‘세계 문화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소외되기 쉬운 제3세계 국가들의 공연을 연중 무대에 올리고 있다. 아울러 매년 두서너 국가와 상호 교류의 해를 지정해 상호 교차적으로 대대적인 문화교류 행사도 펼친다. 일례로 작년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면서 우리나라와는 2015년 가을부터 2016년 봄까지 상호 교류의 해를 시행하기로 합의하였다. 다문화 사회는 분명 우리에게 기회다. 뉴욕, 파리, 런던 등 세계적 문화도시들이 갖는 공통점이 무엇인가. 다국적, 다민족, 다문화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다. 자국의 전통과 타문화의 장점을 결합시켜 진일보한 문화를 탄생시키는 창의적 유연성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적 풍요’를 만드는 힘이다. 조화로운 다문화 사회를 위해 각종 지원과 제도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도모하는 정부 차원의 미래지향적이고 심층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씨줄날줄] 신의 직장/오승호 논설위원

    구글은 미국에서 ‘신의 직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사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지난 1월 발표한 미국 내 최고의 직장 100곳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매출과 이익, 주가, 채용, 직원들의 직장에 대한 충성도 등에서 모두 최고의 점수를 받은 영향이 컸다. 구글은 사원 복지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출산 직후 세탁이나 청소 대행을 위해 500달러의 보너스가 지급된다. 지난해 여름에는 축구장과 야구장, 테니스코트, 롤러 하키링크, 볼링 레슨과 댄스 교실이 운영되는 댄스 스튜디오 시설도 갖췄다. 사원 식당은 무료다. 세계적인 호텔그룹 ‘힐튼 월드와이드’도 꿈의 직장으로 꼽힌다. 이 기업은 미국 취직 정보 사이트 커리어블리스(CareerBliss)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기업 1위에 뽑혔다. 연봉, 기업문화와 명성, 성장 기회, 작업 환경, 상사와 동료의 관계 등이 행복한 직장의 기준이었다. 이 회사의 평균 연봉은 5만 7970달러(약 6700만원)로 2, 3위를 차지한 플루어(8만 7589달러)나 존슨앤드존슨(8만 1850달러)에 비해 적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연봉이 큰 작용을 한다. 온라인 취업 포털 ‘사람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입 구직자 1062명 가운데 59.6%는 대기업을 목표로 구직 활동을 하는 이유로 ‘연봉 수준이 높아서’를 꼽았다. 이들의 희망 연봉은 평균 3110만원으로 외국계 기업이나 공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희망자들의 수준을 웃돌았다. 경기 침체의 영향 때문일까. 우리나라 미혼 여성들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세계 121개 나라 가운데 경제력을 1순위로 꼽은 비율(36.2%)이 가장 높다는 조사도 있다. 올해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1인당 평균 보수액은 한국거래소가 1억 1453만원으로 가장 많고, 한국예탁결제원(9895만원), 코스콤(9403만원), 수출입은행(9364만원) 등의 순이다. 민간기업 가운데도 평균 연봉이 1억원 안팎인 곳이 적지 않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1974년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소득이 늘어도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6위에 머물고 있는 것도 한 예라 할 수 있다. 부(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소득 분배를 개선하고,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는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 더욱 절실한 때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서울광장] 나로호, 그 성공을 넘어/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나로호, 그 성공을 넘어/진경호 논설위원

    지난 늦여름 찾은 인도의 풍경은 각종 경제지표들이 보여 주는 모습 그대로였다. 찬연한 궁전 타지마할에 어린 17세기 무굴제국의 영화(榮華)를 꿈꾸며 연평균 8%대의 고속성장을 이어 가고 있지만, 그 타지마할로 가는 길은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GNP) 1474달러-우리의 1978년(1431달러) 수준과 비슷하다-가 말해 주듯 몹시 비루했다. 오토바이를 삼륜차로 개조해 택시로 쓰는 오토릭샤, 폐차를 모르는 녹슨 버스와 트럭, 사람이 페달을 밟아 끄는 사이클릭샤 등 온갖 탈것들이 그곳이 천국일 성물(聖物) 소떼와 뒤엉켜 굴러다녔다. 시끄럽고 더럽고 어수선했다. 6분마다 한 명씩, 1년이면 9만명의 아이들이 납치돼 농장으로 팔려 가거나 구걸에 동원된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관광객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이 에워쌌다. 3000년 넘게 수천 개의 신분으로 사람을 갈라 온 카스트 제도와 1990년대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이어져 온 허가경제 체제가 빚어낸 극심한 정치 부패도 여전한 듯했다. 지난해 매출 101억 달러로 인도를 대표하는 컨설팅 기업 TCS의 해외영업총괄본부장 시다르탄은 인터뷰 내내 모기업인 타타그룹과 자신들의 눈부신 성장을 힘줘 말했으나, ‘언제쯤 인도의 부패가 사라질 것으로 보느냐.’는 말미의 질문에 “다음 세대쯤이면 나아질까. 우리 세대엔 어렵다고 본다.”며 끝내 고개를 떨궜다. 대체 이 나라가 2050년이면 미국과 중국을 제치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한 세계 유수의 이런저런 보고서들은 뭘 근거로 그런 큰소리를 쳤을까. 짧은 방문 일정 탓에 미처 보지 못했을 많은 답 가운데 하나를 인도 남동부 안드라프라데시 주(州) 스리하리코타에 있는 사티시 다완 우주센터에서 찾았다. 무장 병력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는 출입사무소를 두 곳이나 거쳐 들어선 로켓 발사 기지는 기대를 여지없이 끌어내리기에 충분할 만큼 초라했다. 컴퓨터와 각종 장비는 TV로 봤던 평양의 어느 연구 시설을 떠올리게 했다. 오래됐고 낡았다. 그러나 그런 기지에서 인도는 지난달 9일 프랑스와 일본의 상업위성을 실은 로켓을 쏘아 올렸다. 1975년 아리야바타 이후 벌써 100번째 위성로켓이다. 내년엔 아시아 최초로 화성에 무인 우주선을 보낸다는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다. 앞서 두 차례의 실패를 딛고 이달 말 위성로켓 나로호 발사 첫 성공을 목매어 기원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인도가 이런 우주강국으로 자리한 배경엔 무엇보다 막대한 투자가 있다. 국민소득이 우리의 15분의1에 불과하지만 우주개발 예산은 연간 12억 달러로, 우리 1억 7100만 달러의 7배에 이른다. 돈을 쏟아부으니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다. 인도를 우주강국으로 만든 보다 근본적 이유는 저변, 즉 풍부한 과학기술 인력이다. 우리의 경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인력 700명을 포함해 나라 전체의 우주개발 인력이 2000명 선에 불과하건만 인도는 인도우주개발기구(ISRO) 인력만 1만 6000여명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인력의 36%가 인도인이고, 매년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이공계 인력의 5분의1을 중국과 인도가 맡고 있다. 인도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인도공과대학(IIT)을 중심으로 지금도 매년 수십만 명의 과학기술 인력이 쏟아진다. 우주가 밥 먹여 주는 시대다. 현재 우주개발 시장의 규모는 대략 3000억 달러로 이미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 규모 2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나, 잠재적 가치를 따진다면 아직도 턱없이 작다. 후발 주자로서 뛰어들 여지가 얼마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처럼 보잘 것 없는 과학기술 인력 양성으론 요원하다. 인도 기술인력 수입으로 삼성전자 수원 공장에 카레 냄새가 진동하는 수준으로는 말이다. 나로호 3차 발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국 사람이다. 과학기술 인력 양성,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한다. jade@seoul.co.kr
  • 인도-마지막 샹그릴라 라다크(Ladakh)

    인도-마지막 샹그릴라 라다크(Ladakh)

    마지막 샹그릴라 라다크 Ladakh 신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절경을 한곳에 모두 모아놓고 자신의 정원으로 삼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추위와 폭설, 분쟁 등의 이유로 긴 세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고 지금도 일 년에 고작 3개월 정도만 여행자들의 자유로운 방황이 허락되는 곳.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샹그릴라’라는 수식어를 겸허히 인정하게 되는 그곳,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김수진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인도정부관광청 www.incredibleindia.co.kr 1 카르길-스리나가르 이동 구간에는 유목민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드넓은 자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그들은 소박하지만 실로 위대하다 2 레-카르길 이동 구간에는 웅장한 사막, 협곡, 바위산의 절경이 이어진다 3 꼬마아이부터 10대, 80대까지, 라다크 여행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승려들을 만나게 된다 4 바람에 휘날리는 ‘타르촉’이 무미건조한 라다크 지역에 화려한 색감을 더해 준다 5 라마유르 곰파 축제를 찾은 라다키 할머니들. 잠시 졸기도 하지만 정성을 다해 불교 의식을 참관하고 있다 인도지만 인도가 아닌, 라다크 뉴델리공항에 도착해 새벽녘 몇 시간을 뜬 눈으로 보낸 후, 인도 국내선을 타고 라다크로 향하는 길. 비행기 안에서 눈을 붙이고 피곤함을 달랠 계획이었다. 하지만 라다크의 레Leh 공항까지 창밖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풍경에 잠 따위는 잊어버린 지 오래. 만년설로 뒤덮인 황홀한 산맥들이 손에 닿을 듯 발바닥을 간질이는가 하면, 벌거벗은 모래산, 바위산이 자신만만하게 요염한 자태를 드러낸다. 게다가 도무지 생명체라고는 존재할 수 없을 듯한 메마른 땅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미지의 초록세상. 이제껏 그 어느 비행기 안에서 봤던 영화보다 한층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 장면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거짓말 같은 풍광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즈음, 산 위를 배회하던 비행기는 3,500m 높이의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진부하지만 가장 적합한 표현인 듯하다)과 코를 감치고 드는 알싸한 바람이 반갑게 맞이한다. 인도어를 모르는 가이드 라다크가 속해 있는 잠무카슈미르 주는 중국, 티베트,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전략적인 요충지라는 이유로 오랜 세월 여행자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1974년경에야 외부에 개방됐다. 그나마도 1년 중 라다크 여행이 가능한 시기는 6월부터 9월까지 정도. 혹독한 추위와 폭설로 인한 도로 통제 때문에 일반인들이 라다크를 여행할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길어야 고작 3~4달 정도가 전부다. 라다크는 인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잠무카슈미르 주에 속하나, 단지 행정구역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라다크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인도와는 내적, 외적으로 참 다른 모습을 품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라다크는 아주 오래 전에는 티베트의 일부였으며 10세기경에는 9백년 정도 독립된 왕국을 유지했다. 그러다 19세기 무렵 힌두 도그라스의 침입을 받으면서 인도에 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라다크는 인도 라다크라기보다 그냥 라다크다. 역사적이니 행정적이니 하는 복잡한 내용보다는 직접적으로 라다크의 상황을 깨닫게 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게 낫겠다. 우리 팀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라다키(라다크 사람)였다.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신나는 인도 노래가 나온다. 노래가 하도 흥겨워서 “이거 무슨 내용이에요” 하고 물으니 “인도 가수가 인도어로 노래하는 거라 저도 모르겠어요” 한다. 공식적으로 인도에는 14개의 공용어가 있고 영어가 상용어이며 수백 개에 달하는 지역 언어가 있다. 인도어는 그렇다 하더라도 같은 주에 속해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 갔을 때도 라다크 사람인 가이드가 그들과 언어가 전혀 달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가이드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 오히려 이방인인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인도 사람들끼리 언어가 통하지 않아 한국인이 그들의 소통을 도와주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언어뿐이 아니다. 종교적으로 보더라도 인도는 힌두교도가 80%가 넘고 이슬람교도가 13% 정도에 달하며 불교도는 1% 정도다. 최근에는 불교도가 기독교도보다도 숫자가 적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라다크에서는 다르다. 카르길Kargil을 제외한 거의 전 지역의 라다키들이 티베트 불교도이며, 곳곳에 ‘곰파’라고 불리는 불교사원이 가득하다. 1 연륜이 느껴지는 노승의 손. 척박한 땅에서 삶을 이어가는 라다키들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일까 2 고지대에 위치한 곰파들은 하늘과 맞닿아 더욱 신성하게 느껴진다 3 곰파를 방문하면 마니차(겉에는 만트라가, 안에는 경문이 들어 있는 통으로,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를 돌리는 경험은 필수. 꼭 곰파만이 아니라 라다크 곳곳에서 마니차를 만나게 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라다크의 ‘조용한 곳’ 곰파에 가다 라다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곰파를 둘러보는 것. 해발 약 3,500m 높이에 위치한 레는 라다크의 수도로 예전에는 히말라야 설산을 지나는 대상들이 머물렀던 실크로드 요충지이자 인도에서 불교가 전파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한 신라시대 혜초 스님과 <대당서역기>를 남긴 중국 당나라 현장 스님 역시 인도로 가던 길에 이 지역에 들렀다고 한다. 그런 역사를 반증하듯 라다크에는 오래되고 유명한 곰파가 많다. 그래서 라다크에서 곰파 탐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여행 코스.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이 지역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스폿들이기 때문이다. 곰파는 티베트어로 ‘조용한 곳’을 뜻하는데, 그에 걸맞게 다소 외떨어진 산 위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다. 라다크에서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헤미스 곰파Hemis Gompa에 이르는 길 역시 만만치 않다. 헤미스 곰파는 큰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멀리서는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거의 입구까지 가야지만 건물이 보이는데, 이는 사원으로의 접근이 어려울수록 참된 경지에 이른다는 종교적인 믿음 때문이다. 헤미스 곰파는 1630년 남걀 왕조 때 건립됐으며 매년 6월 열리는 ‘헤미스 축제’가 유명하다. 특히 12년에 한 번씩 원숭이 해마다 특별한 ‘탕카(티베트 탱화)’가 공개되는데, 이때는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레에서 남쪽으로 17km 떨어진 틱세 곰파Tiksey Gompa는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엽서 같은 풍경이 멀리서 봐도 눈에 띈다. 라다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곰파로 손꼽히는데, 느낌은 사뭇 다르지만 그리스 산토리니 같은 분위기도 얼핏 풍긴다. 언덕에 펼쳐진 곰파 자체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이곳에서 내다보는 전망 또한 기가 막히다. 잠시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히말라야 산맥의 운치를 즐겨 봐도 좋다. 라다크에서 가장 큰 20m 높이의 미륵불이 모셔진 전각도 놓치지 말고 살펴보자. 곰파 중에 드물게 평지에 위치한 알치 곰파Alchi Gompa도 인상적이다. 라다크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곰파 중 하나로 카슈미르 양식이 티베트 양식과 결합된 유일한 사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독특한 건축 양식은 물론, 내부의 프레스코화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각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좁고 내부는 어둡지만 그 속에서 빛을 발하는 벽화와 불상들은 입장객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든다. 특히 독특한 3층 건물로 이뤄진 숨첵Sumtsek 전은 꼭 들러 보자. 관세음보살상과 1,000여 개에 달하는 소형 좌불상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레-스리나가르 고속도로 인근에 위치한 라마유루 곰파Lamayuru Gompa를 찾았을 때는 운이 좋게도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라마유루 승려들이 모두 모여 가면춤을 추는 축제로 어떻게 알고들 모였는지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부터, 동네 꼬맹이들과 할머니들까지, 나이와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경건하고도 흥겨운 축제 한판이 벌어진다. 승무복의 화려한 빛깔은 색이 바랬어도 공들인 손짓 몸짓 하나하나는 눈부시기 그지없다. 하늘과 가까워 더욱 따갑게 느껴지는 태양 아래서, 그들의 정성 어린 춤사위를 바라보면서 라다키들에게 종교와 곰파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금씩 이해할 것 같았다. 카르길에서 스리나가르로 가는 길에 만나는 그림은 또 다르다. 이제껏 라다크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푸르른 초원이 등장하며 곳곳에는 꽃까지 피어 있고 멀리로는 만년설의 모자를 쓴 산들이 덤덤하게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라다크로 가는 3개의 관문 곰파 여행과 함께 라다크 여행의 핵심은 레-스리나가르Srinagar 이동 구간이다. 라다크 여행은 주로 스리나가르나 레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육로가 아닌 항공으로 라다크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스리나가르 공항이나 레 공항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스리나가르는 라다크가 속해 있는 잠무카슈미르 주의 주도이며, 레는 라다크의 수도이다. 잠무카슈미르 주는 라다크 지역, 잠무 지역, 카슈미르 지역으로 이뤄지는데, 3개 지역 모두 문화와 언어, 생활방식이 다르다. 레와 스리나가르만 방문하더라도 그 차이는 확연하다. 고산지대에 형성된 레는 라다크 여행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돌로 지어진 9층짜리 레 왕궁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박한 시내에는 작은 상점들과 시장이 들어서 있다. 시장에는 척박한 자연환경을 잊게 해주는 싱싱한 채소와 과일들이 가득하고 불교 관련 용품과 히말라야 지역의 특산품들이 많이 보인다. 또한 티베트 망명자 시장과 네팔 시장 등 소규모 특색 있는 시장들은 라다크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황량하고 험준한 땅에 삶의 터전을 꾸려낸 이들이라 그런지 레에서 만나는 라다키들은 당차고도 위대해 보인다. 레와 스리나가르를 잇는 도로는 총 434km 정도로 오가는 데 이틀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레에서 출발하든 스리나가르에서 출발하든 보통 하룻밤은 카르길Kargil 마을에서 묵게 된다. 카르길은 대단한 볼거리는 없지만 라다크에서 유일하게 이슬람 구역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시간이 된다면 카르길 시장에 가보길 권한다. 레의 시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승복을 입은 라마승이나 라다크 전통 복장을 한 여성들 대신 히잡을 쓴 여성들과 마주하게 된다. 곰파와 타르촉(불교 경전 등을 적어 놓은 갖가지 색의 깃발), 라마승들이 가득하던 라다크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한편, 카슈미르 지역 해발고도 1,585m에 위치한 스리나가르는 풍경, 언어, 풍습, 종교,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라다크와 완전히 다르다. 고도가 레와는 약 2,000m 정도 차이가 나니 풍경이 다른 것도 당연하다. 또한 인구의 97%가 이슬람교도로 티베트 불교문화가 전반에 깔려 있는 레와는 생활 문화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라다크가 회색빛 천지라면 스리나가르는 초록이 반기는 곳이다. 어둠이 깔릴 무렵 스리나가르에 도착했을 때, 달 호수Dal Lake는 풍선을 든 아이들, 노천카페, 야시장 등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막 라다크를 떠나온 사람이라면 물이 풍성한 호수의 풍경도, 여름밤 호수 주변으로 펼쳐지는 유원지 같은 풍경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고산병 방지를 위한 고도 적응 측면으로 본다면 스리나가르로 들어가 레로 이동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으나 기후, 문화 적응 측면에서 본다면 레로 들어가 스리나가르를 거쳐 델리로 가는 게 나을 듯하다. 레에서 바로 델리나 서울로 간다면 찌는 듯한 무더위에 몸은 힘들고, 번잡한 도시 풍경에 마음은 답답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리나가르는 레보다는 덥고 델리나 서울보다 시원한 기후에, 레보다는 번잡하지만 델리나 서울보다는 한가로와 어찌 보면 도시인의 라다크 여행에 완충지 같은 역할을 해준다. 1 스리나가르는 라다크와 인접해 있지만 종교도 사는 모습도 아주 다르다. 라다크에서는 볼 수 없는 커다란 호수가 있어 인상적이다. 이른 아침, 노를 저어 어디론가 향하는 여자들의 자태가 한 폭의 그림 같다 2 달 호수에서 노를 저어 가는 노인의 모습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3 카르길 시장의 이발소 풍경 4 시장의 과일 가게. 푸근한 주인아저씨의 미소가 넉넉하다 ▶travie info 스리나가르 여행의 백미, 하우스보트와 시카라 스리나가르에는 달 호수 등 3개의 유명한 호수가 있어, 물 위에서 즐길거리 또한 다양하다. 그중 하우스보트 체험은 꼭 한번 해봐야 한다. 하우스보트는 이름처럼 배를 집으로 사용하는 공간. 과거 식민지 시대에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물 위에서 배를 집 삼아 살았던 것인데, 지금은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이용되는 곳이 많다. 일반 호텔처럼 모던하고 깔끔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고택에 머무는 기분을 낼 수 있다. 물 위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갖가지 보트 상점들을 만나게 된다. 음료수와 과자 등을 실은 매점 같은 작은 배부터, 기념품, 꽃 등을 파는 배들이 오가는 풍경이 정겹기 그지없다. 또, ‘시카라’라고 불리는 작지만 화려한 배를 타고 달 호수를 떠다니는 경험도 멋지다. 1 높은 낭떠러지 길을 지나는 양떼들. 보는 사람은 조마조마한데 양들은 의외로 여유로워 보인다. 양치기 아저씨에 업혀 가는 녀석은 말썽을 핀 걸까, 아픈 걸까? 2 카르길-스리나가르 구간에서는 양떼, 산양떼, 말떼 등 다양한 가축들의 이동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3 도로 양 옆으로 높이 쌓여 있는 만년설이 위용을 뽐낸다 길에서 만나는 최고의 여행 Every Moment, Best Memory 세계적인 명산인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을 끼고 위치한 라다크는 어찌 보면 여행 목적지라는 개념이 따로 없다. 고로 목적지를 향한 이동이라는 개념도 무의미하다. 어디를 향해 가든 여정의 모든 순간이 최고의 여행이 된다. 장시간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지치거나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나도 다이내믹하기 때문이다. 스리나가르에서 레로 여행하는 사람도 많지만, 우리는 레에서 스리나가르로 이동했다. 하루는 레에서 카르길까지 234km를, 또 하루는 카르길에서 스리나가르까지 204km를 이동했다. 이따금씩 쭉 뻗은 도로를 달리기도 했으나 주로 좁고 험한 길을 내처 달렸다. 울퉁불퉁, 덜컹덜컹, 꼬불꼬불, 아슬아슬 달리는 길, 어질어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은 고지대에서 일어나는 고산병이나 아찔한 질주로 인한 불안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지칠 줄 모르고 순간순간 모습을 바꾸는 절경이 어지럼증을 배가시킨다. 레에서 카르길로 향하는 첫째 날, 고산지대 사막과 오아시스, 바위산, 협곡 등 거칠고도 웅장한 풍경이 이어졌다. 어느 하나 놓치기 아쉽지만, 특히 포투 라Fotu La(스리나가르-레 고속도로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산길로 해발 4,108m)와 나미카 라Namika La(해발 3,700m 높이의 산길)에서는 반드시 차를 세우고 대자연과 교감해야 한다. 그곳에 서면 누구나 마음 속 잡념을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내 눈 앞에 존재하는 자연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튿날, 가르길에서 스리나가르로 향했다. 초원을 지나 얼마를 달리다 보면 거짓말처럼 빙하가 코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추운 지역, 드라스Drass’라는 표지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길의 클라이맥스는 조지 라Zoji La. 산을 따라 꼬불꼬불 나 있는 이 도로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산길이 해발 약 3,528m까지 이어진다. 차창으로 아래를 쳐다보면 끝없는 낭떠러지다. 물론, 안전 펜스 같은 것도 없다. 육로로 스리나가르와 레를 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다. 하지만 설사 다른 길이 있다 하더라도 많은 여행자들이 이 길을 택할 만큼 이 길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길 위에서 바라보는 히말라야 산악지대의 웅장한 자태와 멀리서 바라보는 조지 라 패스, 그 길의 신비로운 그림은 일생에 한번 마주할까말까 한 위대한 순간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레에서 스리나가르로 가는 길, 마음은 수백 번 요동쳤다. ‘바그다드 카페’가 홀홀히 나타날 듯한 풍요롭고(사막은 보통 황량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라다크의 사막은 한없이 풍요로웠다) 단단한 사막을 만나는 순간, 철퍼덕 주저앉아 <바그다드 카페>의 주제곡인 제베타 스틸Jevetta Steele의 ‘콜링 유Calling You’를 미치도록 듣고 싶었다. 그랜드캐니언에서 봤음 직한 층층이 쌓인 단층과 위용 있는 바위산과 절벽을 불쑥 마주했을 때는 그대로 그 자리에 몇 시간이고 서서 마냥 바라보고 싶었으며, 설산을 배경으로 꽃향기 가득한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 순간에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마구 들판을 뛰어다니고 싶었다. 어디 그뿐이랴. 산악빙하를 만지는 순간에는 그만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릴 정도로 감동에 벅찼다. 사막, 바위산, 협곡, 초원, 빙하를 하루 이틀 사이에 모두 접하면서, 눈에 와 닿는 시각적인 풍경에 더해,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 경이로운 질감 때문에 더욱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1 카르길 마을에서 만난 행복한 여인들. 한 손에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는 머리에 인 짐을 붙잡고 어디론가 향한다. 맨발의 발걸음이 사뿐사뿐하다 2 카르길 시장 치킨집 앞에서 만난 그녀는 델리대학교에 재학 중이란다. ‘이 집 닭이 정말 맛있다’며 꼭 먹어 보라고 추천한다 3 라다크에서 차들은 모두 과격하게 달린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하나같이 해맑은 표정의 순수한 사람들 4 라다크로 가족여행 온 시크교 아이들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으리 아찔할 정도로 찬란한 풍광만으로도 감흥은 충분했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순수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여행의 순간을 감동으로 만들었다.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슴에 계속 새겼던 말은 ‘동정금물’. 현대문명사회의 기준으로 그들의 삶을, 행복을 감히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질 중심적인 사회에 길들여진 나 자신이 물질이라는 잣대로 그들의 행복도를 가늠하는 실수를 범할까 두려웠다. 그들이 물질적으로 덜 가졌다고 해서, 덜 행복하다 그 누가 얘기할 수 있겠는가. 사람 사는 곳 중에 세계에서 시베리아 툰드라 다음으로 춥다는 라다크 지역에서 유목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만났을 때, 가슴이 울컥했다. 그들은 안락한 보호막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보다 강인하고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초원을 배경으로 한 유목민들의 삶의 모습은 이방인의 ‘철없는’ 시각으로는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물론 초원을 벗어나자마자 찾아오는 빙하 지역의 풍경은 그들의 혹독한 겨울을 상기시켜 주었으나 적어도 그 순간만은 참 평화로워 보였다. 혹독한 겨울을 반증하듯 볼이 발그스레하게 튼 꼬맹이 승려부터 연륜이 느껴지는 노승까지…. 자줏빛의 승복 하나로 고귀해 보이던 라마승들. 낯선 이방인들을 바라보던 라다키들의 순순한 눈망울. 라다키 전통 복장을 입고 총총히 걸어가던 할머니들. 카르길에서 아기를 업고 머리에 짐을 이고 맨발로 지나던 한 무리의 여성들. 그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참 이상했다. 우리가 보기엔 물질적으로 가진 것도 없고 척박하고 혹독한 터전에서 살아가는 그들이건만, 모두들 웃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라다크에서 서울로 돌아온 날, 서울 거리의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하고 지친 얼굴들. 그 순간, 라다크를 세계에 남은 ‘마지막 샹그릴라’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travie info 라다크 스타일 운전에 익숙해지기 경적을 울려주세요! 처음 라다크에서 차를 타면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다. 트럭이나 버스의 후면에는 ‘Horn Please’, ‘Horn OK Please’, ‘Blow Horn’ 등의 글자가 붙어 있다. ‘please’라는 단어까지 붙여 가며 경적을 울려 달라고 하는 이유는 좁은 길 때문에 아예 왼쪽 사이드미러를 닫고 다니는 차들을 많기 때문이다. 연신 이어지는 경적소리와 추월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다니면서 사고가 발생하거나 시비가 붙는 경우는 거의 없다. Speed thrills but kills 라다크 산길을 달리다 보면 기발한 교통 표지판이 눈에 띈다. ‘스피드는 짜릿하지만, 목숨을 앗아갑니다Speed thrills but kills.’, ‘인생은 짧습니다. 워낙에도 짧은 인생을 더 짧게 만들지 마세요Life is short. Don’t make it shorter.’,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개라고 하지만 당신의 목숨은 단 하나A cat has nine lives. But you have one only.’, ‘서두르지 않으면 걱정도 없습니다.No hurry, no worry.’ 등 재치 넘치는 문구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라다크 가는 길에 델리 서울에서 라다크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델리Delhi에 내려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인도를 바라보다 인디아 게이트 뉴델리의 중심도로인 라즈파트Raj Path를 따라 한쪽으로는 대통령관저가 자리하고 있고 다른 한쪽으로 전쟁기념물인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가 자리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인도 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물로, 벽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9만명에 달하는 인도 병사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아픔과 환희를 품고 있는 곳 붉은성 붉은 사암으로 지은 높은 벽 때문에 ‘붉은 성Red Fort’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무굴 제국의 샤 자한 황제가 아그라 성에서의 천도를 목적으로 공들여 지었던 건축물이다. 화려하고 정교한 치장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세포이 항쟁 당시 영국군에 의해 크게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초대 총리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던 곳도 여기다. 시장과 어우러지는 모스크 자마 마스지드 델리 최대의 이슬람 사원. 사원 주변으로 ‘찬드니 초크Chandni Chowk’라는 대규모 시장이 형성돼 있는데, 번잡한 시장과 성스러운 모스크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붉은 사암으로 지은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는 웅장하고 화려하다. 인도와 이슬람 양식이 융합된 건축 형태로, 무굴 제국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뜨거운 태양 아래 화려한 역사 꾸뜹 미나르 델리를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로, 높이 5층 규모(72.5m)의 웅장한 탑이다. 인도 최초 이슬람 왕조의 술탄이었던 꾸뜹우드딘 에이백이 세운 승전탑이라 꾸뜹 미나르Qutb Minar(탑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의미 있는 유적지. 승전탑 외에도 모스크 등 여러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흔적만 남았다. 흔적만 남은 유적군을 돌아보더라도 이슬람 왕조의 번성기를 상상할 수 있다. 원래는 탑 꼭대기 전망대까지 입장이 가능했으나 1970년대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내부 관람은 금지된 상태다. 델리에서 만나는 타지마할 후마윤 무덤 후마윤 무덤을 보면 누구나 타지마할을 떠올린다.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실제로 타지마할은 후마윤 무덤Humayun’s Tomb을 모델로 지은 건축물이다. 무굴 제국 왕비 하지 베굼이 남편이자 2대 황제였던 후마윤을 기리기 위해 건설한 묘 건축물로, 페르시아 양식이 곁들여진 무굴 제국 건축물의 초기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 사암으로 된 건물에 흰색 대리석 돔이 어우러진 풍경이 세련미가 넘친다. 건물 안에는 후마윤 무덤 외 150여 명의 무덤이 함께 안치돼 있다. 델리 시민들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정원의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건물 안은 대리석으로 된 묘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경건하면서도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돈다. 인도 라다크 여행자를 위한 ★★★★★ Travie writer 김수진의 ‘주관적인’ 여행 정보 Ladakh 1 레의 따뜻한 인심이 느껴지는 휴식처 라피카 호텔Hotel Rafica ★★★☆ 단아하고 정겨운 표정이 레와 잘 어울린다. 작은 정원까지 있어 마치 집 같은 느낌이다. 사장을 비롯해 직원들도 친절하고 정감 있다. 여행 중 궁금하거나 필요한 사항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면 정성껏 응대해 준다. 틀에 박힌 도시 호텔의 서비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이 넘쳐난다. 레의 주요 시장 거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여서, 걸어서 시내를 둘러보기도 좋다. 주소 Fort Road Leh-Ladakh 문의 +91 1982 252258 www.hotelraficaluh.com Ladakh 2 소박한 식당, 화려한 전망 니란자나 호텔 레스토랑Hotel Niranjana Restaurant ★★★ 라마유르 곰파 바로 옆에 위치한 호텔. 이름은 호텔이지만 게스트하우스 같은 느낌이다. 간소한 스타일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라마유르 곰파를 방문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인도 음식과 티베트 음식 등을 판매하며, 점심은 뷔페식으로 제공되기도 한다. 소박한 가게지만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예술이다. 위치 라마유르 곰파 바로 옆 문의 +91 1982 224555 가격대 1인 기준, Rs.70 정도 Delhi 럭셔리한 궁전에서의 하룻밤 릴라 호텔The Leela Palace New Delhi ★★★★ 40도를 넘는 델리의 한여름 폭염을 피해 릴라 팰리스 호텔에 들어서자 딴 세상이 펼쳐진다. 폭염을 잊게 해주는 시원한 환경과 델리 도심의 소음을 잊게 해주는 고즈넉한 분위기. 인테리어에서 인도 정통 양식을 살린 품격 있는 모던함이 묻어난다. 고급스럽고도 시크한 레스토랑과 바도 유명하다. 인도풍 정원과 전망 좋은 야외 인피니티 풀은 보너스. 주소 Chanakyapuri, Diplomatic Enclave New Delhi 문의 +91 (11) 3933 1234 www.theleela.com Srinagar 호수 위에 떠 있는 특별한 호텔 빌루 하우스보트Habib-Ullah Billoo & Sons ★★★☆ 스리나가르 달 호수에는 꽤나 많은 하우스보트들이 모여 있는데, 여러 업체들이 운영하고 있어 저마다 이름도 다르고 스타일도 조금씩 다르다. 이곳은 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하우스보트로, 내부에서 그 역사를 느껴 볼 수 있다. 달 호수 선착장에서 시카라를 타고 들어가게 되며 보트 안에서 아침,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보트 안에 주방이 따로 마련돼 있어 직원이 즉석에서 식사를 만들어 내놓는다. 하우스보트 특성상 습하고 다소 꿉꿉한 느낌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 체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경험이므로 놓치지 말자. 주소 Nehru Park, Dal Lake, Srinagar 문의 +91 9858070475 라다크 가는 길 라다크로 들어가는 방법은 항공과 육로 중 선택해야 한다. 델리에서 레로 가는 항공편은 매일 이용이 가능하며 에어인디아, 제트에어웨이즈, 킹피셔에어라인이 운항된다. 스리나가르-레 항공편도 일주일에 1~2회 운항 중이다. 육로를 이용할 경우에는 마날리로 들어가 버스나 지프로 레까지 이동한다. 단, 마날리에서 레로 가는 버스는 6월에서 9월 정도까지만 운행되는데 그나마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운행이 중단되기 때문에 사전에 확인하고 이용해야 한다. 24시간 정도 소요. 고산병 라다크는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여행 전 고산병에 대비해야 한다. 항공편으로 레에 도착하면 첫날은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휴식을 취하면서 고도에 적응하는 것이 좋다. 여행시에도 뛰거나 지나치게 빨리 움직이는 행동은 금물. 항상 여유를 갖고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고산병 예방약이나 1회용 산소를 준비하면 도움이 된다. 주의사항 라다크는 오지이기 때문에 전기, 수도 사정이 좋지 않다. 호텔에서도 가끔 정전이 되거나 수압이 약할 때가 있다. 인도 정부 관광청 Indiatourism 주소 Tokyo Isei Building,7~8Fl.1-8-17,Ginza,Chuo-ku,Tokyo,Japan 문의 +81-3-3561-0651/52 www.incredibleindia.org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옥수수의 추억

    자라면서 옥수수 참 많이 먹었습니다. 원두밭 가장자리에 비잉∼ 둘러 키 큰 옥수수와 수수 등속을 심어 생울을 만들었는데, 덕분에 돈부콩 꽃이 끝물에 들 지금쯤이면 옥수수 먹는 재미로 날을 보내곤 했습니다. 더러 짚불에 묻어 구워먹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옥수수는 삶는 게 제격입니다. 요즘처럼 팔 요량이면 큼지막한 솥단지를 걸고 삶아야겠지만 그 땐 그걸 사고팔 일이 없었던 시절이라 밥 지을 때 소댕 젖히고 몇 개 얹어두면 밥냄새가 배어 구수하게 삶기곤 했지요. 지금도 저의 옥수수에는 오래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지리산도 막막한 산골에서 낳고 자란 외할머니는 막 따 껍질을 까 놓은 날옥수수의 알갱이를 어린 손주가 빼먹기라도 할라치면 까실한 손으로 제 뺨을 감싸시며 “꾸버 무라. 그래야 맛있제.”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럴 때면 외장아찌 같은 얼굴 주름에서 삶은 옥수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한 날, 무슨 해찰을 부리다 그랬는지 몸통만한 모탕을 들고 벌을 서는데, 그걸 보신 외할머니가 안돼 보였던지 “내 늑 아부지한테 말 하꾸마. 거 내려 놓고 얼른 할매 따라 원두밭 가자.”시며 채근하십니다. 아무리 외할머니지만 아버지의 징벌을 그렇게 토막내도 될까 싶어 머뭇거리는데 옆에서 어머니가 눈을 찡긋거려 못 이긴 척 외할머니를 따라 나섭니다. 가보니 잔뜩 배가 부른 옥수수가 지천에 널렸습니다. 삶아 먹으려면 수염이 풋풋한 것을 골라 따면 됩니다. 그게 알이 덜 여물어 보드랍고 차지니까요. 이른 저녁을 먹고 평상에서 뒹굴다가 소쿠리에서 삶은 옥수수 하나 집어듭니다. 여름밤, 모기 끓는다며 일찍 소등한 평상에 누워 옥수수를 먹자니 쏟아질 듯 별들이 박힌 은하를 가로질러 별똥별 하나 길게 꼬리를 끌며 사라집니다. 옥수수는 제게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무엇입니다. 그 안에 담긴 사연이 너무 아름다워섭니다. 그게 어디 저만의 일이겠습니까. 오늘 귀갓길에 옥수수 몇개 사가는 건 어떨까요. 농약 안 치는 옥수수의 건강성과 그리고 풀꽃처럼 소박한 추억을 위해. jeshim@seoul.co.kr
  • 광화문~숭례문 ‘꿈의 숲’ 만든다

    광화문~숭례문 ‘꿈의 숲’ 만든다

    서울시가 국가 상징 거리인 광화문 삼거리에서 숭례문까지의 거리를 울창한 숲이 우거진 공원으로 조성, 보행자 중심 거리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계획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로·태평로 등에 나무를 심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세계적 명소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13일 “세종로·태평로 밑에 지하철이 지나가고 있지만 나무를 심는 데 기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여름철 땡볕에 나무 한 그루 없는 광화문광장은 잘못된 광장”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동차 중심인 서울의 패러다임을 사람 중심으로 바꿔 나갈 것”이라면서 “23일 세종로에 처음으로 보행자 전용 거리를 시범 운영한 뒤 이를 정례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숭례문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서울시의 ‘꿈의 숲’은 박원순 시장의 보행친화도시 계획에 따라 2015년 서울성곽 유네스코 등재 계획과 함께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에 따르면 서울성곽 유네스코 등재 계획과 병행해 시민들의 보행 연결성을 확보하는 내용의 ‘프로미나드(promenade) 구축 계획’을 추진한다. 프로미나드는 ‘산책로’를 뜻하는 말로, 서울 도심에 자전거와 사람만 다닐 수 있는 보행 전용 도로를 만들어 보행의 연결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우선 광화문 삼거리에서 세종로 사거리를 거쳐, 덕수궁을 지나 숭례문까지 보행자들이 차량에 방해받지 않고 걸을 수 있도록 보행자 중심 거리를 만들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해 꿈의 숲으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럴 경우 현재 도로의 차선은 왕복 2차선 정도로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는 본격적인 꿈의 숲 사업에 앞서 광화문 삼거리에서 세종로 사거리로 향하는 550m 구간을 보행자와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보행 전용 거리로 시범운영할 계획이다. 오는 23일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광화문삼거리~세종로 사거리 간 양방향 도로의 차량통행이 전면 통제된다. 오전 9시에서 오후 7시까지는 광화문 삼거리에서 세종로 사거리 방향 도로만 통제되고, 세종로 사거리에서 광화문 삼거리 방향 도로는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시는 보행자 전용 거리 시범 운영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상인과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정례화할 방침이다. 시는 보행친화도시 추진 계획을 통해 자전거의 교통분담률을 현재 2.58%에서 2014년까지 5%로 높이고, 승용차의 교통분담률을 1% 이상 낮출 계획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北 “수해지원 받겠다”… 제의 7일만에 수용

    북한이 우리 정부의 대북 수해지원 제의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10일 통보해 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북측이 오늘 오전 조선적십자회 장재언 위원장 명의로 수해지원을 받겠다는 의사와 함께 지원 품목과 수량을 알려 달라고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북측의 입장 통보는 우리 정부가 지난 3일 대북 수해지원을 제의한 지 7일 만에 나온 것이다. 정부는 세부 협의를 위해 이른 시일 내에 북측과 추가 접촉에 나설 예정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원 품목과 수량에 대해 “판문점 적십자 채널을 통한 문서교환 등의 방식으로 북측과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이 통지문을 통해 “지난해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지원 품목과 수량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신경전도 예상된다. 북측은 지난해 수해지원 협의 과정에서 식량과 시멘트, 복구 장비 등을 통 크게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우리 정부는 비축 및 전용 우려 때문에 영·유아용 영양식, 과자, 초코파이, 라면 등 50억원 규모의 지원을 역제의했다. 결국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아 무산된 전례가 있다. 그러나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이날 간부회의를 통해 “북한으로부터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런 조건 없이 수해지원 제의를 한 것”이라고 밝힌 만큼 전향적인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관계자는 “지원 품목과 관련해 북측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본 뒤 정부 내 협의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혔다. 따라서 대북 수해지원 규모는 일단 지난해 준비했던 50억원 수준보다는 많을 것이란 전망과 함께 쌀과 시멘트의 경우 제한된 수량 내에서 지원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수해지원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그만큼 올해 수해가 심각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한 매체가 최근까지 보도한 수해 집계에 따르면 올여름 제15호 태풍 ‘볼라벤’ 등으로 수백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주택 1만 5000여 채와 농경지 11만 5000여 정보(1140㎢)가 피해를 봤다. 이런 맥락에서 수해복구 물자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절실한 만큼 남측의 제의를 고민 끝에 수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기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의 제스처를 보여 주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수해지원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질 경우 이산가족을 비롯한 인도적 문제와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천안함·연평도 사건, 금강산 관광 등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당국 간 후속 대화의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데스크 시각] ‘네 탓’만 있는 시리아 해법/이순녀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네 탓’만 있는 시리아 해법/이순녀 국제부 차장

    봄에 시작된 싸움은 다음 봄에도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여름이 지나고, 또다시 가을을 맞았지만 싸움은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1년 반이 흐르는 동안 2만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10배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조국을 등졌다. 시리아 유혈사태가 끝모를 나락으로 치닫고 있다. 2010년 말부터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의 여파로 지난해 3월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무차별적으로 탄압하는 정부군에 맞서 시위대가 무장하면서 내전으로 비화됐다. 도미노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튀니지를 비롯해 이집트, 리비아, 예멘은 모두 해가 바뀌기 전 정권교체를 이뤄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시리아는 아직도 피의 보복으로 얼룩진 시간을 역주행하고 있다. 시리아 사태가 이렇게 장기화되리라고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도, 반군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군은 알아사드 대통령이 튀니지의 벤 알리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처럼 민주화 세력에 무릎을 꿇거나 아니면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사례처럼 서방의 군사 개입으로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반면 알아사드는 다른 독재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더 강하게 밀고 나가면 머지않아 시위가 진압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쪽의 예상은 모두 틀렸다.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 전까지 얌전한 샌님처럼 보였던 알아사드 대통령은 1982년 화학무기를 사용해 반정부 시위대 2만명을 학살했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독재자 아들의 본색을 드러냈다. 어린아이까지 무참히 살해되는 혹독한 내전의 와중에도 부인과 함께 해외 호화쇼핑을 즐기는 후안무치하고 잔인한 면모가 만천하에 공개됐다. 반정부 시위가 종파 간 분쟁으로 변질되고, 국제적인 대리전 양상으로 확산되면서 알아사드의 계산도 어긋나고 있다. 아버지는 대학살로 시위를 무력화했지만 지금 반군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민들의 희생만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지난 8월 한달에만 5440명이 사망했고, 반정부 시위 이후 지금까지 숨진 희생자는 2만 5000명 전후로 추정되고 있다. 고향을 떠나는 난민의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달에만 10만명이 탈출했고, 전체 난민 수는 23만 5000여명에 이른다. 접경국인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는 물론이고 터키, 그리스를 거쳐 북유럽까지 건너 가는 난민들도 적지 않다.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는데도 이를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답답하기만 하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얽혀 일치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0월과 지난 2월 시리아 제재안을 채택하려 했으나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최근에서야 중국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러시아도 방향 선회를 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네 탓’하기에 바쁘다. 종파에 따라 갈린 시리아 주변국들의 태도도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이란은 시아파의 분파인 알아사드 정권을,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수니파인 반군을 각각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공공연하게 자기 편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열린 유엔총회에서 “주변 국가들이 시리아 정부와 반군에 무기를 제공하면서 충돌이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하기까지 했다. 최후의 카드라고 할 수 있는 서방의 군사 개입은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알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경우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알아사드 대통령은 오히려 “서방이 군사 개입하면 화학무기를 살포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평화적 해법이 우선이지만 언제까지 무고한 시민들이 더 희생되어야 하는지 우려스럽다. coral@seoul.co.kr
  • “수돗물 값싸 펑펑…요금 600원 더 내면 수질·가뭄 걱정 없어”

    “수돗물 값싸 펑펑…요금 600원 더 내면 수질·가뭄 걱정 없어”

    기후 변화로 인해 물의 양적 관리와 함께 질적 관리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7월 뜨거운 폭염과 함께 북한강 일대에 녹조가 발생하면서 상수원 수질에 대한 국민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상·하수도관 노후화가 물관리에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재정적인 이유로 관거 교체 작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신문은 5일 민경석 경북대 환경공학과 교수와 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권형준 한국수자원공사 경영관리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보이지 않는 생명줄 수도는 과연 안전한가’라는 주제로 대담을 갖고, 우리나라의 물관리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최근 전국 하천에 녹조현상이 심각했다. 지난해 11월에도 녹조로 인한 수돗물 악취가 문제가 됐었는데 원인이 무엇인가. 민경석 교수(이하 민) 한강에서 녹조가 나타나 국민의 관심사가 됐지만, 사실 낙동강이나 영산강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발생했다. 이번 여름 발생한 녹조 원인은 객관적으로 따져야 한다. 과거보다 갑자기 수질이 나빠져 녹조가 생긴 것이 아니다. 된더위로 인한 온도 상승과 일조량 증가, 질소인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정수처리 공정으로도 수돗물의 독소물질 제거는 가능하다. 녹조 발생을 근본적으로 막아야 하지만 일단 녹조가 발생해도 고도정수처리를 하면 독소, 맛과 냄새를 제거할 수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물 관리를 둘러싼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안정적 물 공급 대책이 요구되는데. 권형준 경영관리실장(이하 권) 한마디로 투자가 필요하다. 4대강사업으로 물 공급을 늘리는 예산은 증가했다. 하지만 수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한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물 관리를 위해 투자되는 재원은 국가 재정과 물 사용자가 내는 수도요금이 전부다. 하지만 국가 재정 투입은 한계가 있다. 수도요금도 공공물가 관리라는 명목으로 꽁꽁 묶여 있다. 물값 인상이 아닌 물값 현실화를 추진하면 가구당 600~1000원 정도의 부담이 더 생긴다. 이 정도만 물값을 현실화해도 국민이 양적·질적으로 더 나은 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연례행사처럼 가뭄피해를 겪고 있다. 민 우리나라 급수보급률은 94.1%에 달하지만 대도시의 이야기다. 면 단위 지역은 55.9%에 불과하다. 지역별로 급수혜택의 격차가 커 일부 지역에선 고질적 가뭄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에 필수적인 물의 균등 제공, 즉 국민 물 복지 향상을 위해 미급수지역에 대한 수돗물 공급 확대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올봄 극심한 가뭄에도 광역상수도는 풍부한 수량을 확보해 물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에 긴급 지원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뭄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4대강 사업 이후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커졌다.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 권 올봄 4대강에서 떨어진 지역은 가뭄 피해가 컸지만 4대강 인근지역은 가뭄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광역상수도망이 갖춰지면 이런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2014억원을 투자해 428㎞의 광역상수도 관로를 신규로 설치해 기존의 광역상수도망과 연결하면 올해와 같은 최악의 가뭄에도 총 184곳에 하루 91만㎥의 용수 공급이 가능하다. 추가 부담 수도요금도 3.3원에 불과하다. →최근 수도 사고가 증가하고 있다. 원인이 뭔가. 윤원철 교수(이하 윤) 1970~198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에 묻은 대형 수도관들이 점차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 현재 광역상수도 관로 4957㎞ 중 22%인 1074㎞가 20년 이상된 노후 관로다. 하지만 개량 실적은 필요수준 대비 39%에 그치고 있다. →결국 재원문제다. 정부가 수자원 인프라 투자에 인색한 이유가 뭔가. 권 복지 등 다른 부문에 예산이 늘면서 인프라 투자에 대한 예산이 줄었다. 또 정부의 재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수도 요금을 현실화하는 게 해답이지만 시민들은 수도요금을 사용료라고 생각하지 않고 세금이라고 생각한다. 인식을 바꿔야 할 때다. 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공공요금을 준조세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한다고 해도 지자체의 여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근본적인 재원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때문에 관거 개선 등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소비자의 실제 비용부담으로 해결해야 한다. →수도 요금 현실화에 부정적인 이유는. 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물가 안정이다.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을 올리는 것이 물가를 잡는 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도 요금의 경우 가구당 600원 정도만 올려도 서비스의 질이 개선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물가 관리에 큰 부담이 가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것이 부담이 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라면 국가에서 복지 차원으로 수도 요금을 안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전체 경제를 생각했을 때도 더 유용하다. 상수도 관거의 노후화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치러야 하는 비용은 수조원대에 이른다. 민 지난해 구미에서 물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때 경제적 피해가 엄청났다. 관거에 대한 투자를 늦추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요금 현실화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좋지 않다. 민 수도 요금을 세금이 아닌 비용으로 생각해야 한다. 1000원 미만의 돈으로 양적·질적으로 더 나은 수자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윤 나중에 사고가 터지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더 크다. 정부도 수도 요금을 물가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 권 요금 현실화가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측면이 있다. 광역상수도 요금은 2005년부터 7년간 동결돼 있어 생산원가의 81% 수준에 불과하다. 이것으로는 노후시설 개량이나 고도정수처리시설 설치 등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국민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정리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별과 함께 30년… ‘별박사’ 이태형

    [김문이 만난사람] 별과 함께 30년… ‘별박사’ 이태형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노랫말이든, 시나 소설이든 사랑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를 꼽는다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겠다. 추억과 사랑, 행복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거야.’라고 했고,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고 읊었다. 우리나라에서 1년 중 하늘이 가장 청명한 계절은 가을이다. 그만큼 별이 잘 보이고, 또 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맑게 갠 가을 저녁 잠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이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오면서 누구나 시인이 되고 우주 탐험가가 된다. 특히 영화나 만화에 자주 등장했던 ‘안드로메다 은하’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은하철도 999’를 타고 즐겁게 우주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할 수 있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어떻게 하면 가장 즐겁게 별과 만날 수 있을까. ‘별박사’로 소문난 이태형(49)씨. 그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몇 가지 있다. 대학 때부터 별이 좋아 별을 쫓아다니다가 1989년 국내 처음 별자리 여행 안내서인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을 펴내 베스트셀러(30만부) 작가가 됐다. 또한 1998년 한국인 최초로 ‘통일’이라는 우리말 이름의 소행성을 발견해 화제가 됐다. 아울러 1999년 국내 최초로 시민천문대(영월, 대전, 김해 등)의 기획과 기본 설계를 맡아 과학기술부 선정 ‘신지식인’으로 뽑혔다. 요즘에도 또 하나의 최초를 만들어내고 있다. 200자 원고지 1800쪽 분량의 책 ‘생활천문학’ 발간을 앞두고 있는 것. ‘생활천문학’은 그가 맨 처음 개척한 분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는 11년째 충남대 겸임교수로 있으면서 국내 유일의 ‘생활천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백령도, 독도, 백두산과 한라산 등 국내는 물론 극지방의 오로라, 킬리만자로의 밤하늘 등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별을 관찰해 오고 있다. 이쯤 되면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별따라 30년’인 셈이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이씨를 만났다. 먼저 ‘생활천문학’에 대한 얘기부터 나왔다. “대개 ‘천문학’이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잖아요. ‘생활천문학’은 딱딱한 물리나 수학 없이 생활과 근접시켜 하늘과 우주를 이해해 보자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하늘이 왜 파란색을 띠는지, 별은 수소이기 때문에 스스로 탄다고 해서 스타(star)라는 것, 블랙홀은 뚱뚱한 돼지의 시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달을 보고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 등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가 ‘생활천문학자’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설명이 다시 이어진다. “밤하늘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의 질문에 좋은 부모가 되려면 귀찮다고 아무렇게나 대답하면 안 됩니다. 부모와 함께 시골에 놀러 가면 아이들이 별을 보고 ‘별이 몇개나 돼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면 부모들은 ‘아주 많아’라고 대충 넘어가려 합니다. 궁금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럴 땐 이렇게 대답해 줘야 좋습니다. ‘아빠도 세어 본 적이 없는데 우리 같이 세어볼까’라고 한 뒤 같이 누워서 별을 세어 보는 것입니다. 육안으로 셀 수 있는 반짝이는 별은 1000개가 넘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 별자리를 알고 또 별자리 지도를 그려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지요. ‘생활천문학’의 출발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 달이 지구의 자전을 일정하게 방해하기 때문에 하루 24시간이 유지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음력의 시간이 정해지는 과정을 알면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가을철 별자리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잖아요. 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하늘 높은 곳에 살찐 말의 별자리가 있는 계절’로 번역됩니다. 가을 밤 하늘의 중앙 높은 곳에는 살찐 말의 별자리가 늠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그 주인공이 바로 천마 페가수스입니다. 말이 있으면 백마탄 왕자와 공주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페르세우스 왕자와 안드로메다 공주 두 별자리가 페가수스 자리 바로 앞에 나와 있습니다.” 이를 알면 나머지 별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공주와 왕자가 결혼한 뒤 맑게 갠 어느 날 사랑하는 천마 페가수스를 타고 바닷가로 놀러 간 모습을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남쪽 바다에 물병자리, 물고기 자리, 고래 자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여름에는 견우와 직녀성이 별자리 여행의 중심축이라면 가을에는 페가수스 자리를 찾으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이씨는 강조한다. 아울러 추수 때가 되면 풍성한 수확의 계절을 알리는 것처럼, 은하수 역시 우리의 머리 위에서 가장 풍성하게 자리한 것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제를 바꿨다. 천왕성을 발견한 사람이 별에 관심이 많은 오르간 연주자였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통일’이란 소행성을 발견하게 된 과정을 물었다. 우주에는 행성보다 작은 소행성이 무수히 많으며 지금까지 명명된 것만 6000여개에 이른다. “1998년 9월이었지요. 날씨가 너무 좋아 얼른 비무장지대 인근의 경기도 연천으로 달려갔습니다. 조용한 시골일수록 별이 더 밝게 보이거든요. 그날 따라 유난히 반짝거리는 별 2~3개를 보게 됐습니다. 못 보던 별이었지요. 이튿날 밤 같은 시간에 다시 그곳으로 가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며칠 후 대전에서도 똑같은 별을 발견한 뒤 자신감을 얻어 국제천문연맹(IAU)을 통해 고유번호를 받았고 나중에 ‘통일’이라는 명칭을 붙이게 됐지요.” 이전에 일본인 천문가들에 의해 발견된 ‘세종’, ‘관륵’ 등의 한국명 소행성이 있었지만 한국인이 최초로 발견한 소행성은 ‘통일’이 처음이었다. ‘통일’로 명명한 이유에 대해 그는 “휴전선 부근에서 발견한 것도 있지만 별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생각은 똑같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천문연구원들에 의해 ‘보현산’, ‘최무선’, ‘이천’, ‘장영실’, ‘이순지’ 등의 소행성을 잇따라 발견하게 됐다. 이씨는 어떻게 별과 인연을 맺었을까.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랄 때에는 항상 많은 별을 봤기 때문에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생활을 하면서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자 별의 소중함을 깨닫고 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대학 2학년 때 ‘별보는 동아리’에 가입한 뒤 한 달에 한 번씩 시골에 가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밤을 새웠다. 이런 과정을 대학노트에 깨알같이 적어 놨다가 책을 펴낸 것이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이었고 뜻하지 않게 베스트셀러가 돼 유명해졌다. 원래 그는 대학 때 화학을 전공했고 도시행정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별의 대중화에 앞장서기 위해 박사과정은 전공을 바꿔 천문학을 공부했다. “요즘 성폭행이며 묻지마 범죄 같은 각종 사건이 생기고 있잖아요. 그런데 천문대 주변에서 사건이 생겼다는 얘기는 못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것은 별을 바라보는 천문대에는 정서적으로 꿈과 낭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별을 보게 하고 별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분명 더 좋은 꿈을 이룰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별 이야기만큼 세대를 뛰어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람은 별의 부스러기’라고 표현했다. 별에서 뻥 터져나온 물질이 지구가 됐고 인간은 그런 지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별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아무리 ‘웬수 같은’ 사람이라도 본질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별은 자신에게 변치 않는 믿음이요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언제 어디에 가든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연구소를 나서면서 ‘어린 왕자’의 대목이 새삼 떠올랐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이태형 박사는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베스트셀러 저자… 시민천문대 기획 신지식인에 196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한 뒤 동아리 ‘아마추어 천문학회’에 가입해 과학캠프에서 초등학생을 상대로 별에 대해 상담을 해주었다. 대학 3학년 때에는 ‘전국 대학생 아마추어천문회’ 회장을 맡아 여러 행사를 주도했다. 대학 졸업 후 동대학 환경대학원에서 도시행정을 전공했고 경희대 우주과학과에서 천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8년 한국인 최초로 소행성 ‘통일’을 발견했으며 1999년 국내 처음으로 시민천문대(영월, 대전, 김해)를 기획해 과학기술부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사단법인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장(2001~2005)과 대전시민천문대장(2001)을 지냈다. 과학기술부 차세대 교과서 집필위원(고등학교 지구과학, 2004~2006), 교육과학기술부 교육과정 심의위원(지구과학, 2005~2008) 등을 지냈다. 지난해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월하정인 제작일자를 고증했으며 지금은 천문우주기획 대표이사, 충남대학교 천문우주과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1989, 김영사), ‘별밤 365일’(1990, 현암사), ‘쉽게 찾는 우리 별자리’(1993, 현암사), ‘YTN 사이언스플러스 어린이우주백과 10권’(2005, 리틀어문각), ‘별난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주견문록’(2009, 사이언스주니어) 등이 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이 너그러운 그늘이 소산댁 할머니에겐 또 하나의 친정입니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이 너그러운 그늘이 소산댁 할머니에겐 또 하나의 친정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명실상부한 정자나무로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으려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그리는 어린 시절 풍경에 오롯이 떠오르는 나무여야 한다. 나무는 먼 길을 휘휘 달려서 다다른 고향 마을의 면사무소 앞 조붓한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가는 길 곁에 있으면 좋다. 면사무소 울타리를 따라 소방소 파출소를 지나고, 빨간색 표지판이 반기는 우체국에 들러 도시에 남겨둔 벗들에게 고향 소식을 담은 손편지를 쓸 수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다. 우체통에 편지를 접어 넣은 뒤, 가만가만 마을 안으로 돌아들면, 우뚝 서서 반기는 큰 나무, 그 아래 평상에서 늙은 어머니가 집 떠난 자식들을 기다리며 앉아 있다면, 고향 정자나무의 풍경은 비로소 완성된다. ●열여섯 각시 설움부터 여든 노인 푸념까지 품어 전남 담양 무정면 봉안리 술지마을의 정자나무 풍경이 꼭 그랬다. 나무를 찾아 무정면사무소 앞에 자동차를 세우고 천천히 골목길을 돌아드는데, 반갑게 나선 건 아담한 우체국이었다. 편지 한 장 쓰지 않고서는 지나치기 어려울 듯한 시골 우체국이다. 우체국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오른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길을 막아선다. 그 우람한 나무 그늘 아래 놓인 반듯한 평상 위에는 어느 시골 마을에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우리네 어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우리 마을에서는 이 나무 그늘이 제일 시원해. 우리 집은 저 위에 있는데, 더워 견딜 수가 없으면 여기로 나오지.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여기는 시원하거든.” 열여섯에 이 마을로 시집 와서 산다는 소산댁(80) 할머니는 긴 무더위에 대한 푸념을 그렇게 털어놓았다.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82호인 ‘담양 봉안리 은행나무’다. 천연기념물이라고는 하지만, 봉안리 은행나무는 여느 천연기념물처럼 가까이 하기 어려운 위엄을 갖추었다거나 독불장군처럼 홀로 우쭐대지 않는다. 그저 여느 시골 마을이라면 있음직한, 그렇고 그런 큰 나무다. 누구라도 품어 안을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갖춘 외할머니 품처럼 편안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나무가 작아서 하찮아 보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무는 한눈에도 늠름한 위용을 갖추었다. 키는 15m나 되고, 줄기 둘레는 8m를 넘는다. 새로 돋은 맹아지 하나가 줄기 곁에 바짝 붙어서 자라났다. 맹아지는 얼핏 봐서 또 하나의 다른 가지로 보이지 않고, 그저 하나의 줄기에 난 굴곡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바짝 붙어있다. 그 덕에 나무의 줄기는 실제보다 더 굵고 우람하게 다가온다. ●지금도 정월대보름 마을사람들 모여 당산제 “은행이 무지하게 많이 맺혀. 좀 지나 가을 되면 하도 많이 떨어져서 냄새도 심하지만, 이 옆을 지날 때에는 조심해야 해. 은행 열매의 독이 오를 수도 있거든. 옛날에는 열매를 주워서 동네 자금을 만들어 썼는데, 요즘은 그냥 두더라고. 아무나 와서 주워가도 되지만, 독 오르니까 조심해야 해.” 자식들을 모두 대처로 내보내고 홀로 시골 집을 지키고 있는 소산댁 할머니는 마을 일에 무관심한 듯, 마치 남의 일처럼 이야기한다. 자신의 몸 간수만으로도 살기 힘든데, 마을에서 은행을 줍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투다. “안 아픈 데가 없어. 이 나이 되면 다 그렇겠지만, 온몸이 다 쑤시고 아파. 나무야 나보다 많이 살았지만, 저리 튼튼해 보이잖아. 하긴 나무가 아픈지 아닌지 내가 어찌 알겠어?” 건강 체질로 보이는 노인이지만, 할머니는 그 나이쯤의 노인들에게 자연스레 찾아오는 잔병 치레로 고생이 많은 모양이다. 허리도 꼿꼿하고, 음성도 강렬하고, 귀나 눈도 전혀 어둡지 않다. 그리고 가만히 나무를 쳐다보며 마치 ‘나무는 아프지 않아 좋겠다.’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봉안리 은행나무는 500살을 넘긴 늙은 나무다. 나무라고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어디 아픔이 없었을까만, 겉으로는 소산댁 할머니처럼 건강해 보인다. 나무는 때때로 통곡의 울음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가 아파했던 것은 대개의 큰 나무들이 그런 것처럼 임진왜란이나 6·25전쟁처럼 나라에 큰 일이 벌어지던 때였다. 나무 그늘에서 자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땅에 일어나는 불길한 일을 나무도 아파했다는 이야기다. 나무는 오랫동안 마을의 당산나무로 살아왔다. 지금도 정월대보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정성껏 당산제를 지낸다. 모두 합하면 150가구 정도 되는 비교적 큰 마을이어서, 당산제를 올릴 때면 나무 앞의 작은 길과 나무 옆의 공터가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다고 한다. ●500년 사람살이 흔적을 담다 나무가 그저 크기만 하다고 해서 푸근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큰 나무는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제압해 주눅이 들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정작 나무가 푸근하게 느껴지는 건 어떻게 우리와 더불어 살아왔는지에 대한 흔적에 달려있지 싶다. 봉안리 은행나무는 지난 500년 동안 마을 어귀에서 마을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의 평안한 쉼터로 살아왔다. 봄이면 어김없이 연초록의 잎을 내고 꽃을 피웠으며, 여름 되면 푸른 잎으로 수굿이 빛과 바람을 모아 열매를 무성히 맺어 마을 살림살이를 보탰다. 마을 사람들이나 그들의 오두막집이 바뀌어도 나무는 언제나 고향 마을 지킴이로 그 자리를 똑같이 지켰다. 팔십 평생을 살아온 늙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이마에 흐른 땀을 가만가만 식혀주며 나무는 사람살이의 안녕을 기원했고, 이 땅에 평화가 깨질 때마다 큰 울음을 울었다.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맨 앞에 떠오르는 나무가 아닐 수 없다. 글 사진 담양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담양군 무정면 봉안리 1043-3 술지마을. 88올림픽고속도로의 담양나들목으로 나가면 담양공고 교차로가 나온다. 1㎞ 쯤 직진하면 담양경찰서 앞 백동사거리에 이른다.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옥과 방면으로 5.2㎞ 남짓 가면 왼쪽으로 무정면사무소가 나오고 면사무소 뒤편으로 농공단지와 마을이 이어진다. 비교적 큰 마을이다. 봉안리 은행나무를 찾아가려면 면사무소 앞에 마련한 조붓한 주차 공간에 자동차를 세우고, 예쁜 우체국이 있는 마을 길을 따라 100m 쯤 걸어가야 한다.
  • 이번 주 불볕더위 가고 ‘가을장마’ 온다

    ’18년 만의 폭염’으로 기록된 올여름 더위가 이번 주부터 눈에 띄게 꺾이고 ‘가을장마’가 찾아올 전망이다. 19일 기상청에 따르면 화요일인 21일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에, 22일은 남부 지방에 비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절기상 처서(處暑)인 23일부터 다음날까지는 전국에 걸쳐 비가 예상되고 중부지방은 25일까지 이어지겠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도 구름이 많아 햇볕이 따갑지는 않겠다. 이 때문에 이번 주 내내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28∼30도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막바지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남부지방도 낮 기온이 평년 수준인 30도 안팎으로 떨어질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더위가 수그러드는 이유는 지난달 하순부터 우리나라를 완전히 뒤덮어 폭염을 불러왔던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정점을 찍고서 점차 물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빠지면서 그 둘레가 우리나라에 걸치면 대기가 불안정해 소나기가 내리기 쉽다. 북서쪽에서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접근하면서 때때로 강한 비가 내리기도 한다. 가을 직전에 찾아오는 2차 우기, 이른바 ‘가을장마’다. 가을장마는 보통 8월 하순에서 9월 초순까지 우리나라에 자주 비를 뿌리다가 북태평양 고기압이 완전히 물러나면서 끝난다. 최근에는 이 시기에 내리는 비의 양이 크게 늘었다. 1961∼1990년 서울의 8월 하순 강수량은 평균 85㎜, 9월 초순은 100.1㎜로 장맛비가 집중되는 7월 중순 152㎜와 차이가 많이 났다. 그러나 1981∼2010년에는 8월 하순 평균 강수량이 127.8㎜로 크게 늘어 7월 중순(159.3㎜)에 근접했다. 이는 가을장마가 강해졌다기보다는 여름 내내 비가 많이 내리는 형태로 기후가 변화한 결과라고 기상청은 분석했다. 1980년대만 해도 8월 하순이면 우리나라 상공에 정체전선이 형성되면서 비가 며칠 동안 계속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한여름에도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잦아져 두 번의 우기를 명확하게 구분 짓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기상청 이우진 예보국장은 “과거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약해지는 시기에 장마와 유사한 패턴의 강수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요즘은 여름 후반부에 국지성 호우가 내리면서 휴식기 없이 내내 강수가 이어지는 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북태평양 고기압이 우리나라 상공을 장악한 지난달 하순부터 이달 초순까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가을장마가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날씨를 보면 중부지방은 이미 가을장마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된다. 지난주 서울에는 16일 하루를 빼놓고 모두 강수가 기록됐다. 15일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차갑고 건조한 상층 기압골과 부딪혀 강수대가 동서로 길쭉하게 형성되고 전국을 남북으로 오르내리면서 제법 ‘장마다운’ 비가 쏟아졌다. 이렇게 ‘진짜’ 장마처럼 비가 자주 오는 날씨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기상청은 예상했다. 김현경 기후예측과장은 “9월 초순까지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해 그 가장자리에서 대기 불안정에 의한 소낙성 강수가 자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영화 ‘도둑들’ 개봉 22일 만에 1000만 관객

    영화 ‘도둑들’ 개봉 22일 만에 1000만 관객

    영화 ‘도둑들’이 개봉 2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 영화로는 여섯 번째, 외국 영화를 포함하면 일곱 번째다. ‘도둑들’의 투자·배급사 쇼박스는 15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도둑들’이 오후 3~4시쯤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넘었다. 지난달 25일 개봉 이후 평일 20만~30만명, 휴일 50만명의 관객을 꾸준히 유지한 결과”라고 밝혔다. ‘도둑들’의 1000만 클럽 가입은 한국 영화 최대 흥행작인 ‘괴물’(최종 관객 1301만명)이 21일 만에 100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두 번째로 빠른 속도다. 역대 최고 흥행작인 ‘아바타’(2009년·1362만명)를 넘어설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38일 만에 1000만명을 돌파했던 ‘아바타는 3차원(3D) 영상으로 재관람하려는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역대 최고 관객 동원 영화가 됐다. ‘범죄의 재구성’(2004년·212만명), ‘타짜’(2006년·684만명), ‘전우치’(20 09년·613만명) 등 흥행 불패를 이어 온 최동훈 감독의 영화라고는 하지만 1000만 클럽에 가입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손익분기점 450만명을 100만~200만명 웃도는 수준이 될 것으로 봤다. 개성 넘치는 도둑들이 모의해 보석을 훔친다는 뼈대에 대해서는 할리우드 영화 ‘오션스 일레븐’의 아류란 지적도 받았다. ‘실미도’(북파공작원), ‘왕의 남자’(정치비판, 동성애), ‘괴물’(반미, 환경), ‘아바타’(환경), ‘해운대’(쓰나미) 등 묵직한 주제의식이나 사회적 이슈로 흥행몰이를 한 다른 1000만 영화들과 달리 순수 오락영화란 점도 약점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웬걸! 관객은 ‘도둑들’에 열광했다. 의미를 담거나 교훈을 주는 작품보다 가벼운 장르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의 취향 변화는 물론 여름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읽어낸 덕이다. 할리우드 케이퍼무비(범죄를 모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공식에 충실한 한편 로맨스를 덧입히고 한국 관객이 좋아하는 홍콩 누아르식 액션을 버무렸다. 15일 맥스무비에 따르면 ‘도둑들’의 예매자 중 20대가 25%, 30대가 40%, 40대 이상이 32%였다. 또 여성 관객 비중이 55%에 이르렀다. 1000만 관객이 들려면 중년(혹은 아줌마) 관객을 움직여야 한다는 충무로 속설에 들어맞는 셈이다. 개봉 시기도 적절했다. 런던올림픽과 MBC 파업으로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이 결방한 데다 최장기 폭염이 겹치면서 극장(영화) 수요가 늘어났다. 여름철 대목인데도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도둑들’을 피하려고 다른 영화들이 개봉을 늦춘 탓에 경쟁도 덜했다. 한편 ‘도둑들’은 수익에서도 대박이 터졌다. 1000만 관객에 따른 매출은 700억원에 이른다. 극장 몫(350억원)과 총제작비(145억원), 배급수수료(40억원) 등 투자금을 뺀 순익은 138억원이다. 메인투자사 쇼박스나 최 감독의 부인 안수현 PD가 대표로 있는 제작사 케이퍼필름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3) 노론 명문 가문 박지원 vs 남인 몰락 가문 정약용

    [선택! 역사를 갈랐다] (23) 노론 명문 가문 박지원 vs 남인 몰락 가문 정약용

    연암은 아무런 관직도 없이 중국에 갔다. 집안 덕이었다. 건륭제의 칠순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단 책임자(정사)로 금성도위 박명원이 임명되었는데 그가 연암의 삼종형(팔촌)이어서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산은 중국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연암(1737~1805)과 다산(1762~1836)은 모두 영조 시대에 태어났다. 다만 연암이 다산보다 25세 위다. 연암의 집안은 반남 박씨로 노론 명문가로 꼽혔다. 다산의 집안은 압해 정씨로 정치적으로 실세한 남인 몰락 가문이었다.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두 사람은 대표적인 실학자로 나란히 거론된다. 그런데 두 사람은 같다고 보면 문득 다르고 다르다고 보면 문득 같다. 연암은 당대의 주류 다수파에 속했으면서도 비주류 소수파의 모습이 보인다. 다산은 당대의 비주류 소수파에 속했으면서도 주류 다수파의 모습이 보인다. 연암은 16세에 결혼해 장인의 지도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학업에 임했다. 공부가 늦은 감이 있다. 다산은 어린 시절부터 잘나갔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아버지의 지도를 받으면서 일찌감치 학업에 정진했다. 7세에 시를 쓰기 시작하고 10세에 시집을 만들 정도였다. 연암은 몇 차례 과거를 봤지만 이내 단념하고 말았다. 다산은 과거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과거에 합격해 22세에 성균관에 들어갔고 28세에 벼슬길에 나갔다. 과거를 통과하지 않았던 연암은 50세가 넘어서야 정조의 배려와 친구의 천거로 벼슬에 나아갔다. 55세에 첫 지방수령직으로 안의현감에 임명되었다. 지방관 경력을 잠시 비교해보자. 다산은 36세의 나이에 곡산부사로 나갔다. 같은 해에 연암은 61세에 면천군수로, 그 후 64세에 양양부사로 승진되었다. 다산은 30대 부사, 연암은 60대 부사였다. 아무튼 문과에 급제하지 않고도 양양부사에 임명된 사람은 연암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과거 단념·서얼들과 교류… 연암의 ‘강남 스타일’ 과거를 단념한 연암은 30대였던 1760년대 후반부터 탑골공원 근처에 살면서 홍대용,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과 교유했다. 주로 노론 출신이라는 점과 이덕무 등이 신분상 천대받은 서얼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들은 이른바 ‘북학파’ ‘연암그룹’ 또는 ‘백탑시사’ 등으로 불린다. 10대의 다산은 줄곧 둘째 형 정약전과 함께 다녔고 성호 이익의 가르침을 받은 권철신, 이가환 등을 만나고 한국 천주교를 스스로 일으킨 이벽, 이승훈과 어울렸다. 이들은 ‘성호학파’ 또는 ‘기호남인’으로 불린다. 다산은 15세에 결혼한 후 서울 남촌에서 살았다. 연암은 고관대작들이 많이 사는 서울 북촌에 살았으니 요즘으로 치면 연암은 강남, 다산은 강북에 산 셈이다. 두 사람은 문장가, 학자로서 스타일이 사뭇 다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때 연암은 사마천의 마음을 읽으라 했다. 다산은 연표를 꼼꼼히 챙기라 했다. 연암은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 마음을 비우라 했다. 다산은 글을 쓰려면 속을 꽉 채우라 했다. 연암은 시를 별로 남기지 않았는데 다산은 마치 일기 쓰듯 많은 시를 남겼다. 연암은 글쓰기엔 요령이 있다고 가르치는데 다산은 문장학이야말로 유학의 큰 해악이라고 내쳤다. 연암은 문장가, 다산은 학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글쓰기에는 두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은밀하게 감추는 방법과 들춰내 드러내는 방법이 그것이다. 연암의 글은 감추는 방법을 잘 활용했다. 다 읽고 나서도 그의 뜻을 제대로 포착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다산의 글은 명징하게 드러내는 방법을 주로 했다. 읽노라면 곡진한 느낌을 준다. 연암은 인상파 화가인 듯하고, 다산은 사실주의 작가인 듯하다. 연암은 정조에 의해 당시의 자유분방한 문체를 주도한 죄인으로 지목되었다. 다산은 정조의 우등생이요 모범생이었다. 다산은 정조의 순정한 문체 주장에 적극 동조했다. 다산은 당시 사교라 불린 천주교에 감화돼 적극 동조했다가 나중에 태도를 바꾸어 거리를 두었다. 반성문도 썼다. 연암은 천주교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폭력적 탄압에는 반대했다. 이렇듯 다르다 보니 동시대 인물인데도 두 사람이 만났는지조차 의문스럽다. 나이도 차이나고 사는 동네도 달랐지 않은가. 두 사람을 연결하는 인물로 박제가(1750~1805)를 생각할 수 있다. 그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낮에는 규장각에서 다산과 함께 근무했고 저녁에 퇴근하면 연암그룹과 어울렸을 것이다. 박제가를 통해, 또 베스트셀러 작가 연암의 이름이 이미 높았기에 다산은 연암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혹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치면 다산이 손위인 연암에게 먼저 인사를 했을 것이다. 인사를 받은 연암은 어떻게 대꾸했을까? 젊은 친구가 누군지 몰라 심드렁하게 인사만 받았을까, 자신보다 품계가 높은 관리라 공손하게 인사를 받았을까. 다산이 18년 유배 기간이 끝날 무렵에 마무리한 ‘경세유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규장각 검서관 박제가가 지은 ‘북학의’ 6권을 보았으며 유신(儒臣) 박지원이 저술한 ‘열하일기’ 20권을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실린 중국의 기구 이용 제도는 보통 사람이 헤아리기 힘든 것이 많았다.” 다산의 ‘경세유표’는 유가적 이상에 입각한 국정 전반의 제도 개혁안이다. 여기서 다산은 청나라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北學)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여 오로지 그것을 직무로 하는 관청을 별도로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이용감’이었다. 다산은 ‘경세유표’에서 제안한 제도 중 꼭 그대로 시행되길 바라는 열다섯 가지를 꼽았는데 이용감 설치는 그중 하나다. ●저자와 독자 그 이상의 연결고리 ‘열하일기’ 이로 볼 때 두 사람은 ‘열하일기’로 연결되고 있었다. 물론 저자와 독자의 관계였지만. ‘열하일기’는 연암이 중국에 다녀와서 쓴 책이다.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야구도하기’ 또는 유명한 소설 ‘허생전’을 교과서에서 읽었을 텐데 모두 ‘열하일기’에 실려 있다. 그래서 ‘열하일기’를 여행기 또는 문학작품으로만 생각할지 모른다. 그 해 여름, 44세 연암은 붓 두 자루, 먹 하나, 작은 공책 네 권 등 간단한 행장으로 중국을 향했다. 압록강을 눈앞에 두고 자객 형가를 생각했다. 진시황을 죽이러 적국이며 강대국인 진나라로 강을 건너가기 직전의 형가가 하필 떠올랐을까! 연암은 국경을 넘어 살림살이가 넉넉해 보이는 여염집을 보고서는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변방의 촌마을이 이 정도라니. 연암은 중국에서 정말 볼 만한 것은 큰 누각이나 성곽이 아니라 깨진 기왓장과 똥거름이라고 했다. 민간의 이용후생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연암은 도중에 목격한 수레, 벽돌, 목축, 선박 등 여러 제도들을 소개했다. 허구적이고 자폐적인 북벌론의 미몽에서 깨어나 북학을 해야만 북벌도 가능할 터. 대내용 북벌만 강경하게 외칠 뿐 민생은 나아지지 않는 조선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열하일기’를 통해 연암은 여정의 진행에 따라 보고 들은 것들을 전하면서 갖가지 주제를 넘나들었다. 형식 또한 일기 형식으로 시작해 다양한 산문 형식을 시도했다. 이러한 다양한 주제와 형식에도 불구하고 ‘열하일기’ 전체에 흐르는 주제의 하나는 ‘천하의 정세를 살피는 것’이었다. 연암은 사신의 일행이면서 공식 임무가 없었다. 새벽이면 일행보다 먼저 출발해 여기저기 많은 곳을 둘러보려고 했고 저녁이면 몰래 숙소를 벗어나 중국 지식인들과 만나 필담을 나누다 새벽에 들어오곤 했다. 청 황실의 대내외 통제 술책을 간파하면서 지금 태평연월을 누리고 있는 천하가 장차 어찌 될지 변역의 기미를 살폈다. ‘열하일기’는 현실적 존재인 청 왕조를 오랑캐라 외면하고 무시하는 자폐에 대한 질타였다. 다양한 주제를 통해 조선의 식자층 내지 지배층에 고정관념과 좁은 소견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을 갖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내 눈으로만 보는 자폐와 남의 눈으로만 보는 자아 상실의 극단은 늘 경계할 병통이다. 또한 천하대세를 전망하고 변역의 기미를 놓치지 않는 예민함은 지금도 절실하다. 아, 아깝다. 또 다른 위대한 저술가 다산은 해외 여행 갈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그도 외국에 다녀왔다면 필시 굉장한 저서를 낳았을 터이다. 다산이 유배 18년 동안에 육경사서와 정치·경제·행정·역사·지리·언어·국방·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이룬 저서가 모두 500권이 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그는 다만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에 관한 책을 부지런히 찾아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당대에 큰 반향을 일으킨 연암의 역저 ‘열하일기’는 점차 위축되었다. 그릇된 문체의 본산으로 지목되고 오랑캐 연호를 사용한 원고라는 비난을 들으면서 후손조차 문집 간행을 보류했을 정도다. 나라를 잃은 1911년에 와서야 활자로 간행되었다. 다산의 역저 ‘경세유표’ 등도 빛을 보지 못하다가 조선왕조가 망할 때에 가서야 주목을 받았다. 연암은 문체 문제로, 다산은 천주교 문제로 각각 정조의 지적을 받았지만 두 사람 다 정조에게 능력을 인정받았다. 정조가 죽자 다산은 유배를 가고 연암은 몇 년 후 세상을 떴다. 조선왕조는 망하기 직전인 1910년 다산과 연암에게 시호를 내렸는데 둘 다 ‘문도공’(文度公)이었다. 만시지탄. 그들은 글로써 세상을 바꾸고자 필생의 역저를 남겼다. 그 진가는 뜻있는 독자들에게 달렸다. 김태희(다산연구소 기획실장)
  • [13일 TV 하이라이트]

    ●사랑아 사랑아(KBS2 오전 9시) 승희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노경(오창석)은 서진과 헤어지려는 마음을 먹는다. 윤식은 승아가 요정에서 일한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 명월관으로 찾아간다. 한편 바자회를 돕는 서진을 보며 서진이 좋은 사람이라 느끼며 마음 아파하는 승희. 서진은 우연히 노경이 쓴 ‘바보’라는 낙서를 발견하게 된다. ●월화드라마 해운대 연인들(KBS2 밤 9시 55분) 해운대호텔 양만호 사장은 죽기 직전 친아들을 꼭 보고 싶다면서 아들 태성이를 찾아 달라고 한다. 한편 태성은 밤중에 바다로 몰래 나가는 소라를 뒤쫓는다. 그런 태성을 도둑으로 오해하고, 태성과 한바탕 몸싸움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소라. 이때 삼촌수산에 해운대 호텔 양가죽파 일당들이 나타난다. ●스탠바이(MBC 밤 7시 45분) 기우는 수현과 사귀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견제하며 빈정거리는 석진에게 화가 난다. 그래서 기우는 레스토랑 2인 식사권을 명목으로 수영 대결을 하기로 한다. 한편 준금은 정우 가방을 샀다며 여성용 가방을 꺼내고, 마음에 안 들면 자기가 갖겠다면서 가져간다. 준금의 속셈을 안 정우는 또다시 준금이 여자 옷을 사오자 그 옷을 입겠다고 나선다. ●백세 건강스페셜(SBS 낮 12시 30분) 췌장은 무게 80~100g, 길이 15㎝, 평평한 모양의 장기로 위장 뒤편에 있는 기관이다. 이곳의 주된 역할은 소화액을 만드는 외분비와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글루카곤 등 여러 호르몬을 만들어 혈액 속으로 분비하는 내분비의 2가지 기능을 하고 있다. 프로그램에서는 췌장암의 여러 검사법과 정확한 치료법에 대해 알아본다. ●하나뿐인 지구(EBS 밤 11시 10분) 한여름 대지를 식혀줄 장맛비가 내리자. 달성습지에서는 ‘맹맹’ 하는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바로 멸종위기종 맹꽁이의 울음소리다. 비가 내리자 맹꽁이가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그램에서는 모습을 드러낸 맹꽁이를 따라가 본다. 그리고 평소 자세히 볼 수 없었던 녀석의 생김새를 아주 가까이에서 살펴본다. ●경찰 25시(OBS 밤 11시 5분) 이른 새벽의 을왕리 해수욕장 파출소로 찾아온 한 남자. 그는 전날 밤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의 행방을 알 수 없다며 찾아왔다. 후배와 몸싸움을 하러 가서는 민소매 속옷에 반바지만 입고는 맨발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싸움을 하고 돌아온 후배는 실종자의 행적을 둘러대고 귀가 한 후 연락두절 상태라는데….
  • 옛 선비들의 ‘즐겨찾기’… 충북 괴산 화양구곡·수옥폭포

    옛 선비들의 ‘즐겨찾기’… 충북 괴산 화양구곡·수옥폭포

    지난달 23일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 작은 경사가 있었습니다. 면내 인구가 감소하다 2005년 이후 7년여만에 다시 3000명을 넘어선 겁니다. 괴산군에서 새 입주민들에게 기념품을 전달하는 등 소박한 잔치를 벌였다지요. 수십, 수백만명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대도시 사람들로선 외려 3000명이란 얼마나 적은 숫자인가 가늠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괴산은 그만큼 오지입니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습니다. 공해시설이 드무니 물 맑은 거야 당연하겠습니다. 그처럼 맑은 땅이 수도권에서 2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다면 믿기시겠습니까. 말복을 지나며 더위가 한풀 꺾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한낮의 폭염은 땅이라도 녹일 기세입니다. 때늦은 피서를 계획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괴산을 첫 줄에 올려놓는 건 어떻겠습니까. 괴산은 전형적인 산악 지형이다. 군자산 등 소박하면서도 거친 산들이 사방을 둘러쳤다. 그 사이로 남한강의 지류인 달천과 쌍천, 성환천, 음성천 등이 흘러간다. 말 그대로, 둘러보니 청산이요 굽어보니 벽계수다. 산이 깊고 물이 많으니 계곡과 폭포가 발달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괴산의 계곡과 폭포는 칠성면에서부터 청천면 화양리에 이르는 구간에 집중돼 있다. 위로는 경북 문경의 새재(鳥嶺), 아래로는 경북 상주의 대야산 등 거친 산들과 등을 맞댄 지역이다. 1957년 이 일대의 계곡을 막아 괴산호를 만드는 통에 다소 옛멋을 잃긴 했으나 조선시대부터 여러 구곡(九曲)이 있었을 만큼 경치가 빼어난 구간이었다. 선유(仙遊)와 쌍곡(雙谷), 갈은(葛隱), 고산(孤山), 연하(煙霞), 풍계(豊溪), 그리고 화양구곡(華陽九曲) 등이 대표적인 계곡들이다. 이 가운데 연하구곡은 괴산호 아래에 잠겼고 풍계구곡은 문헌상으로만 남아 있다. ●선비들의 유토피아 구곡… 우암 송시열 자취 서려 구곡이란 선비의 유토피아다. 몸을 정갈하게 하고 마음을 씻는 곳이다. 옛 선비들이 ‘즐겨찾기’ 해뒀던 곳인데 후세인들 다를까. 괴산 내 구곡 가운데 가장 앞줄에 서는 건 화양구곡이다. 속한 행정구역명부터 독특하다. 청천면이다. 푸를 청(靑)에 개울 천(川)을 쓴다. 계곡의 푸른 기운이 담긴 물이 흘러가는 고을이라는 뜻이겠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화양동 하면 ‘전국구’ 관광 명소였다. 여름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피서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요즘 주가가 다소 떨어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사람이 정한 이름값에 따라 풍경의 깊이가 달라질 리는 없다. 가파르게 솟은 기암이 하늘을 떠받친 듯하다는 경천벽과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는 운영담, 의종의 어필이 새겨져 있다는 첨성대 등 경승지들이 줄줄이 늘어서 객들을 기다린다.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금사담이다. 맑은 물 아래로 금싸라기 같은 모래가 흐른다는 곳. 너른 바위와 못으로 이뤄져 물놀이를 즐기기에 맞춤하다. 화양구곡은 조선 후기 정치계를 호령했던 우암 송시열의 자취가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읍궁암(3곡)은 북벌을 꿈꿨던 효종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것을 슬퍼한 우암이 매일 새벽 활처럼 엎드려 통곡했다는 바위다. 그가 말년에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했다는 암서재와 화양서원, 만동묘 등도 볼거리를 더한다. 선유구곡은 화양구곡과 인접해 있다. 예부터 화양구곡의 유명세에 가려져 있긴 했으나 풍경의 아름다움으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신선들이 금단을 만들어 먹었다는 연단로와 40m는 족히 넘는 너럭바위 위로 물이 부서지는 와룡폭, 신선들이 바둑을 두며 더위를 씻었다는 기국암 등 볼거리가 널렸다. 뜻밖의 놀라운 풍경을 선사하는 곳은 쌍곡구곡이다. 군자산과 보배산, 칠보산, 비학산 등의 준봉을 끼고 흐르는 계곡이다. 모래 한 알까지 보일 만큼 맑은 계곡물과 계곡 따라 이어진 기암절벽이 울창한 숲과 잘 어우러져 있다. 계곡물은 내곡천과 외곡천의 두 줄기로 흘러가는데 ‘쌍곡’이란 이름은 여기서 비롯됐다. 퇴계 이황 등 유학자와 문인들이 즐겨 찾아 ‘쌍계’(雙溪)라고도 불린다. 1984년 속리산 국립공원에 편입됐다. 쌍곡구곡의 길이는 약 11㎞에 이른다. 그런데도 계곡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방도로 옆에 푹 꺼져 있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간혹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이 제2곡 소금강이다. 쌍곡 입구에서 2.3㎞쯤 떨어진 곳으로 옹골찬 바위산들이 남성적인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제5곡 쌍벽도 볼 만하다. 계곡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 솟은 10여m의 바위들이 5m 남짓 거리를 두고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빼어난 절경… 사극 촬영지로 명성 높아 괴산엔 용추, 쌍곡, 대왕, 와룡 등 이름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폭포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수옥(漱玉)폭포는 그중 앞줄에 선다. 괴산과 문경 사이의 새재 3관문에서 소조령을 향해 흘러내리던 계류가 20m 절벽 아래로 떨어지며 형성된 3단 폭포다. 연풍면 원풍리에 조성된 수옥정 관광지 안에 있다. 수옥폭포의 빼어남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이 증명한다. 지난해 인기를 얻었던 TV 드라마 ‘계백’과 ‘공주의 남자’ 등이 수옥폭포에서 촬영됐고 ‘왕건’ ‘여인천하’ ‘다모’ ‘주몽’ ‘선덕여왕’ ‘동이’ ‘전설의 고향’ 등의 사극에서도 배경 화면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화가로 꼽히는 김홍도는 연풍현감을 지내는 동안 수옥폭포와 그 아래 수옥정을 소재로 ‘모정풍류’를 남겼다. 괴산군청에 따르면 김홍도는 정조의 초상화를 그린 공로로 당시 중인 신분으로는 파격적으로 정6품 벼슬에 해당하는 현감을 하사받아 1791년 12월~1795년 1월 지금의 괴산군 연풍면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한양으로 올라가 도화원에서만 근무했으니 현감 노릇을 한 것은 연풍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셈이다. 수옥폭포 상류엔 수옥정 물놀이장이 있다. 계곡물을 이용해 조성한 수영장이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청소년 2500원, 어린이 2000원이다. 쌍곡폭포는 쌍곡구곡의 본류에서 벗어나 있다. 군내버스 종점인 절말에서 살구나무골을 따라 700m쯤 오르면 닿는다. 8m 남짓한 크기의 반석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아낙네의 치마폭처럼 펼쳐져 여성적인 향취가 물씬 풍긴다. 폭포 아래로는 넓고 깊은 웅덩이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이마의 땀을 말리는 풍경이다. 청천면 사담리의 공림사 일대를 흔히 사담동천(沙潭洞天)이라 부른다. 사담은 고운 모래밭과 깊은 못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고 동천은 산과 내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곳이란 뜻이다. 공주폭포와 대왕폭포는 바로 이 사담동천 내에 숨어 있다. 집 몇 채가 고작인 사담리 중대방래에서 대왕봉 쪽 계곡 길로 30분 거리에 있는 공주폭포는 새색시처럼 단아하면서 조형미가 빼어나다. 흡사 공주의 속살을 훔쳐보는 듯한 은밀한 느낌을 자아낸다. 공주폭포 위쪽의 대왕폭포는 거대한 암벽을 타고 내리는 30여m의 물줄기가 일품이다.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수량이 적어 그저 거대한 바윗덩어리로 보일 수도 있다. 자태로만 보자면 가장 빼어난 폭포는 청천면 사기막리의 용추폭포다. 사기막리 마을에서 1.5㎞쯤 걸어 들어가야 만날 수 있을 만큼 외진 곳에 숨어 있다. 폭포는 2단 구조다. 너럭바위를 연상시키는 암반 사이로 떨어진 폭포수가 깊은 소를 만들고 곧이어 경사 완만한 폭포를 이룬 뒤 계곡 아래로 흘러간다. 글 사진 괴산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나들목으로 나와 34번 국도를 타는 게 일반적이긴 하나 다소 돌더라도 교통량 적고 주변 풍경도 빼어난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 혹은 연풍나들목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맛집 강이 많은 지역 특성상 민물고기 매운탕으로 유명한 집들이 많다. 괴강매운탕 본가할머니집(832-2974)과 충북 향토음식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우리매운탕(834-0005)이 그중 알려졌다. 둘 다 괴산읍에 있다. 얼음골식당(833-9117)은 쌉싸름한 지칭개 등의 약초에 오리를 넣은 지칭개약초오리백숙으로 유명하다. ▲잘 곳 쌍곡, 화양동 등 계곡 주변에 펜션이 많다. 괴산펜션넷(www.goesanps.com) 참조.
  • [사설] 녹조 원인 제대로 규명해 대책 마련하라

    한강과 낙동강 수계의 녹조가 확산되면서 식수 공급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 말 북한강과 팔당호 상류지역에서 발생한 녹조는 팔당호 하류의 잠실수중보까지 흘러든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가 엊그제 강북·암사·구의·자양·풍납 등 잠실수중보 인근의 5개 취수원 수질을 측정해 보니 3곳이 조류주의보 발령 수준에 이른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지난 6월 말 창녕 함안보 등 하류에서 발견됐던 낙동강 녹조도 최근 대구 근처의 달성보까지 북상했다. 한강과 낙동강은 수도권과 영남권 3800만 주민들의 주요 식수원이다. 식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대책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수질을 오염시키는 녹조는 폭염, 부영양화 물질 유입, 비점 오염원 유입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발생하지만 올여름에는 폭염 장기화로 수온이 상승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환경단체는 녹조 발생 원인을 놓고 ‘4대강 개발 때문이다’ ‘아니다’는 등 ‘진영논리’로만 일관해 아쉬움을 더해주고 있다. 환경부는 4대강 사업 이전에도 한강·낙동강에서 조류가 발생했고, 올해는 가뭄과 수온 상승으로 남조류 세포가 많이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며 4대강 방어막 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환경단체는 한강 녹조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고 낙동강 녹조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녹색연합은 낙동강 중류까지 남조류가 발생한 것은 8개 보로 막혀 낙동강이 거대한 호수로 변했기 때문이라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눈박이식 접근법은 사태해결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4대강 개발업적이 아니라 4대강 수질과 치수관리능력이기 때문이다. 양측은 진지한 자세로 머리를 맞대 한강이건 낙동강이건 조류 발생 원인을 종합적으로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나는 만큼 녹조 발생은 앞으로도 더욱 잦아진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녹조 발생에 따른 식수대책을 낙동강에만 집중해 왔고 오염원이 적은 한강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왔다. 그러나 한강수계도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 고도 정수처리 시설을 조기에 설치해야 할 것이다.
  • 교통사고, 눈 오는 겨울보다 여름에 더 잦다

    교통사고, 눈 오는 겨울보다 여름에 더 잦다

    겨울보다는 여름에 교통사고가 더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위 탓이다. 겨울철 눈길·빙판길 교통사고가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안 그렇다는 얘기다. 경찰청이 보유한 전국 월별 교통사고 통계를 7일 분석한 결과 1977년부터 2011년까지 35년간 혹서기인 7월에 발생한 교통사고는 63만 9237건(8.8%), 8월 사고는 64만 5987건(8.9%)으로 집계됐다. 반면 혹한기인 1월은 51만 1494건(7.0%), 2월은 47만 2535건(6.5%)이었다. 7~8월과 1~2월의 합계로 비교해 보면 각각 128만 5224건과 98만 4029건으로 혹서기가 혹한기보다 30만 1195건 많았다. 연 평균으로 치면 약 8600건에 이른다. 자동차 보급이 늘어난 최근 10년간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를 봐도 7~8월이 많았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교통사고는 7월에는 월 평균 1만 9209건(8.6%), 8월에는 1만 9151건(8.6%)이었다. 반면 1월은 1만 6652건(7.5%), 2월은 1만 4990건(6.7%)이었다. 여름철 교통사고가 더 많은 이유는 더위로 인한 졸음운전과 운전자의 부주의 때문으로 지적됐다. 최석훈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과장은 “여름에 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면 내부 공기 순환이 제대로 안 돼 운전자가 졸게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면서 “고온다습한 날씨에 불쾌지수까지 높아지면 운전자의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름철 교통사고가 겨울보다 잦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5년간 휴가철 7~8월에 발생한 교통사고 가운데 62%가 ‘졸음운전 등으로 인한 전방주시 태만’이었다. 이어 최 과장은 “여름은 겨울보다 낮 시간이 길어 야외활동이 많고, 휴가철이 끼어 있는 것도 사고율을 높이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여름철 뜨거운 햇살 때문에 생기는 눈부심과 도로의 신기루 현상 등도 사고 유발 원인이 된다. 특히 복사열에 가열된 도로에 빛이 굴절돼 마치 도로 위에 물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도로 신기루 현상은 마주오는 차량이나 보행자를 못 보게 할 가능성이 크다. 1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찜통 열대야와 런던올림픽과 같은 수면방해 요인들도 사고율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경찰 관계자는 “통계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시차가 큰 나라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이 벌어질 때 졸음 운전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데스크 시각] 런던올림픽 오심을 바라보는 자세/문소영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런던올림픽 오심을 바라보는 자세/문소영 문화부 차장

    “힘없는 나라의 백성은 어디 가도 서러움을 받는다.” 충남 부여군의 한 음식점에서 머리카락이 하얀 노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보던 신문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그는 이제 주방에서 막 가져온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콩나물 국밥을 먹을 참이다. 아마도 그는 런던올림픽에서 박태환 선수가 수영 자유형 400m 예선에서 1등을 하고도 심판의 오심으로 실격처리됐다는 기사와 유도 남자 66㎏급 조준호가 8강에 올랐지만, 심판의 판정 번복으로 판정패해 억울하다는 식의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을 것이다. 아침 시간이라 식당에는 식사 팀이 두 팀밖에 없었고 그 노인의 발언은 귀에 쏙~ 들어왔다. 귀에 쏙 들어온 이유는 맞장구를 치려는 마음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뭔가 어색하다고 느껴진 탓이다. 88서울올림픽 때 미국의 로이 존스 주니어가 복싱 라이트미들급 결승에서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한국의 박시헌에게 판정패당했던 것은 미국이 힘없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나? 뭐 이런 생각이 느닷없이 튀어올랐다. 여름 휴가지에서 TV 생방송을 더 열심히 챙기고, 박태환의 실격 동영상이 스마트폰으로 무제한 반복 제공되면서 왜 ‘실격’ 판정이 내려진 것이냐며 의아해했지만, 오심의 이유를 힘없는 나라의 백성 탓이라고는 떠올려보지 않았다. 또 10대인 청소년 여행 동반자는 박태환에게 실격을 선언한 심판이 중국계라는 루머가 카카오톡으로 물밀 듯이 쏟아지자, 중국을 비난하는 등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고질적인 불화를 재현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을 못했다. 70세 안팎으로 보이는 그 노인과의 나이 차이를 가늠해 보고, 서로 살아온 세상이 다르고, 경험이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르겠구나 했다. 40대인 소설가 김연수는 최근 펴낸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70대인 그의 아버지가 국가대항 축구경기를 결연한 표정으로 보다가 우리나라가 선제골을 먹으면, 보던 TV를 끄고 결과를 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돌아누워 힘없는 목소리로 “졌다, 졌어.”라고 했다고 써놓지 않았던가. 다른 한편으로 언론들이 ‘힘없는 나라의 백성’이라는 트라우마를 불필요하게 자극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분석을 해봤다. 휴가지에서 돌아와 여러 신문을 펼쳐놓고 비교해 보니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들은 한국이 세계 15위 수준의 교역국가이거나,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로 국격이 높아졌다는 식의 불편한 자랑을 늘어놓다가도, 스포츠에서 과도하게 피해의식을 조장하곤 한다. 일제강점기나 1950년 한국전쟁 직후부터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하던 1960대, 아니 최근까지도 국가대항 스포츠는 그저 스포츠가 아니라 전쟁에 가까운 것이고, 그렇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인들은 달라졌다. 언론이 찌질하게 100년 전 사고로 뒷북을 때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박태환이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고,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에서, 모태범·이승훈·이상화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우리는 올림픽 금메달에 대해 제법 쿨해졌다. 권투니 레슬링이니 하는 격투기 종목만이 아니라, 이른바 선진국형 금메달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먹고살 만해진 결과가 스포츠에도 반영됐다고 흐뭇해했다. 금메달에만 환호하지 않고, 은·동메달에도 환호했다. 2~3년 전처럼 스포츠를 스포츠로 즐기는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경기의 승패나 금메달에 집착할 때는 주로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스포츠를 통해 위로받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가 생길 때였다. 그러나 최근 세계경제 불황이니, 애그플레이션 우려니, 깡통 아파트 속출, 자녀 진학 등의 고통과 불안이 금메달이 추가될 때마다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행인 것은 올림픽 축구팀이 런던올림픽의 주최국인 영국의 텃세를 극복하고 최초로 4강에 올라갔고, 6일 현재 한국은 목표 금메달 10개를 획득했다. 이제 나머지는 덤이니 편히 즐기자. symun@seoul.co.kr
  • [Weekly Health Issue] 폭염이 주는 병

    [Weekly Health Issue] 폭염이 주는 병

    결코 만만하게 볼 더위가 아니다. ‘찜통’이나 ‘가마솥’에 견줄 만큼 혹독한 무더위가 전국 곳곳에서 연일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름은 여름다워야 한다.’던 사람들조차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이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노약자는 물론 평소 건강을 자신하는 사람들도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열성 질환에 노출돼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말이 쉬워 ‘더위 먹었다.’고 하지만 자칫 열사병에라도 걸리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맹위를 더해가는 폭염과 건강 문제에 대해 유준현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와 얘기를 나눴다. ●건강 관점에서 폭염이 왜 문제가 되는가.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일상생활의 리듬이 깨지기 쉽다. 낮에는 더위에 지쳐서 무기력하고, 밤에는 열대야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잦다. 그런 상횡이 반복되면 직무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져 실수나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지며, 신체적으로는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지게 된다. 여기에다 덥고 습한 날씨는 왕성하게 세균을 번식시켜 복통이나 설사 등 장염도 빈발한다. ●인체가 이런 더위를 수용하고 반응하는 과정을 설명해 달라. 날씨가 더우면 체열을 방출하기 위해 피부혈관이 확장되며, 이 때문에 혈류량이 늘어 다시 피부 온도가 올라가 피부혈관이 확장되는 현상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피부 온도가 34.5도를 넘으면 땀이 나기 시작하고 이어 근육 이완, 호흡 증가, 체표면적 증가 등의 신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더위로 인해 유발되는 대표적인 질환을 들어 달라. 열사병이 대표적이다. 주로 고온다습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발생하는 심각한 체온조절 장애를 말한다. 열사병에 걸리면 중추신경계의 장애와 더운 환경 때문에 체열을 효과적으로 방출하지 못해 체온이 상승하는데, 직장 온도가 40도를 넘기도 하며, 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 중에서도 태양 광선에 의한 열사병을 일사병으로 구분하는데, 혹심한 고온에 무방비로 노출될 때 잘 생긴다. ●이런 열성 질환은 유형별로 어떤 증상을 보이는가. 열성 질환은 실신·경련·피로 등과 관련이 많은데, 이 중 열실신(Heat Syncope)은 고온환경에서 일할 때 두통이나 현기증이 나타나며, 주로 폭염 속에 오래 있거나 무리하게 운동이나 작업을 할 때 발생하기 쉽다. 열경련(Heat Cramp)은 임상적으로는 근육 경련이 30초 정도 일어나지만 심하면 2∼3분간 지속되기도 한다. 경련은 어느 근육에나 생기지만 많이 사용하는 피로한 근육, 즉 팔다리의 사지근육이나 복근·배근(등근육)·수지(손가락)의 굴근에서 주로 발생한다. 열피로(Heat Exhaustion)는 좀 심하게 더위를 먹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증상은 대개 어지럽고, 기운이 없으며, 몸이 나른해지고 피로감이 나타난다. 여기에다 흔하게 두통·변비·설사가 동반되기도 하며, 심하면 실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열사병이다. 열사병(Heat Stroke)은 열피로와 달리 아주 심각한 질병이다. 중추신경 장애가 주요 증상이며, 현기증에 오심·구토·두통·발한 정지, 즉 땀이 나지 않으면서 나타나는 피부건조와 허탈·혼수상태·헛소리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이런 열성 질환에 취약한 신체 조건과 질병군이 있을 텐데…. 최근과 같은 폭염이 계속되면 건강한 사람도 견디기 어렵다. 그런 만큼 노인이나 어린이, 심장병 및 뇌졸중 환자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등 건강관리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또 산업현장이나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는 근로자, 야외활동이 많은 군인과 운동선수들도 열성 질환에 노출되기 쉽다. ●증상이 나타날 경우 대처 방법을 유형별로 짚어 달라. 열실신이 발생하면 서늘한 곳에 환자를 눕혀 안정을 취하게 하되 수분 안에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병원으로 옮기거나 의료팀을 불러야 한다. 의식은 2∼3분 안에 회복되는 것이 보통이다. 열경련이나 열피로 증상이 나타날 경우 환자를 서늘한 곳으로 옮긴 뒤 물 1ℓ에 소금 1티스푼을 섞은 식염수를 마시게 하고, 경련이 발생한 근육을 마사지해 준다. 열사병은 지체 없이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환자를 서늘한 장소로 옮겨 열을 식히는 게 중요하다. 환자의 옷을 물로 흠뻑 적신 뒤 선풍기를 틀어 열을 식히는 등 수단을 가리지 말고 열을 내리는 것이 급선무다. ●열성 질환은 유형 별로 어떻게 치료하는가. 대부분의 열성 질환은 환자를 서늘한 곳으로 옮겨 안정을 취하게 하면 저절로 회복된다. 그러나 열사병은 예외다. 열사병의 경우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후유증을 얻거나 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열사병 환자가 병원에 오면 얼음물에 담그거나 냉각팬이나 냉각담요 등을 사용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체열을 낮추는 조치를 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혹서기의 바람직한 열성 질환 예방책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고온·고열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다. 여름에는 낮의 무더위와 열대야 등으로 수면 리듬을 잃기 쉬운데, 이럴 때는 밤새 에어컨을 켜고 자기보다 이른 저녁에 가벼운 운동을 한 뒤 찬물로 목욕을 해 시원한 감각을 느낄 때 잠자리에 들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또 지나치게 에어컨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냉방병을 예방하려면 가능한 한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며, 에어컨을 사용할 때도 실내외 온도차를 5∼8도 이내에서 유지하도록 한다. 또 매 1시간마다 환기를 시키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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