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론가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호반산업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압구정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영양소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메시지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2
  • AI의 무딘 사유 예술로 만나다

    AI의 무딘 사유 예술로 만나다

    구글 ‘딥드림’·오토인코더 등 AI기술 접목한 예술작품 전시 알파고와 인간의 바둑대결 이후 인공지능(AI) 기술과 학문 간 융합을 기반으로 한 연구 성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감성과 창의력의 결정체인 예술과 AI가 결합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국내외 아티스트와 개발자,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창작자들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 4층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에서 열리고 있다.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 AI와 휴머니티’ 전에서는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예술과 인공지능의 접목 가능성, 예술과 인공지능 기술의 상호 연계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프랑스의 뉴미디어아트 작가 모리스 베나윤(홍콩 성시대학 크리에이티브미디어스쿨 교수)이 장 밥티스트 바리에, 토비아스 클랭과 공동으로 작업한 프로젝트 ‘브레인 팩토리’는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감정을 마치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처럼 출력해 보여준다. 관객은 편안한 의자에 앉아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의식을 집중한 뒤 사랑, 욕망, 고통 등 감정이나 의식과 관련된 단어들을 응시한다. 뇌파를 측정하는 헤드셋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작가가 설계한 시스템을 통해 3차원 형태로 변화되고, 최종적으로 3D프린터로 출력된다. 모리스 베나윤 작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에 감정의 본질과 그 역할에 질문을 던져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MIT미디어랩 출신의 작가 하싯 아그라왈의 ‘탄뎀’은 인공지능과 사람이 서로의 시각언어를 교환하며 함께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작품이다. 구글의 AI 이미지 소프트웨어인 ‘딥드림’ 알고리즘의 일부를 활용한 것으로 관객이 터치스크린 위에 그림을 그리면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표현한 새로운 이미지가 오버랩되어 작품이 완성되는 식이다. 테렌스 브로드는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딥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기계학습의 가능성을 연구하며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해 왔다. 이번에 선보인 ‘오토인코딩 블레이드러너’는 인공신경망의 하나인 오토인코더로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스토리 프레임을 학습한 뒤 인공지능이 스스로의 기억을 통해 영화를 재구성하도록 한 것이다. 화면 속의 일그러진 이미지와 변조된 음성이 그로테스크한 이 작품은 뉴욕 휘트니미술관에도 전시 중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인공지능과 예술을 접목시키는 프로그래머이자 아티스트인 진 코건은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으로 관객의 모습을 ‘큐비스트’, ‘칸딘스키’ 등 미술사조 혹은 작가의 스타일로 변형시켜 실시간 송출하는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선보였다. 기술과 예술의 접점을 탐구해 온 국내 작가들의 작품도 흥미롭다.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신승백과 김용훈의 ‘동물분류기’는 인공지능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분류의 자의성과 불완전성에 대해 비판하는 작품이다. 양민하 작가의 ‘해체된 사유와 나열된 언어’는 과학 철학가들과 이론가들이 사유한 언어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어떤 언어로 생성해 내는지, 사유의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해 본 결과물이다. 양 작가는 “과학철학서적 9권을 기초로 35만 문장을 3개월 걸려 입력시켰지만 생성된 문장들은 대부분 무의미하고 불완전한 조합들이었다”며 “AI가 인간의 사유능력을 따라잡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한 것 같다”고 밝혔다. 최승준 작가의 ‘학습을 학습하기-연결과 흐름’은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의 연구과정을 시각화한 것이다. 작가는 “결국은 AI도 인간이 교육시켜야 할 대상이므로 효율성과 합리성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를 참관한 IBM왓슨의 아르만도 아리스멘디 부사장은 “아직은 예술이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프로그래머와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도들이 AI와 예술사에서 중요한 실험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밖에 이번 전시에는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연구하는 창작연구소 나비 E I랩의 아트토이 ‘로보판다’, 소음을 음악으로 만드는 인공지능 로보틱스 시스템 ‘브레멘음악대’, 로봇과 인간이 함께 즐기는 ‘에어하키게임’, 인공지능을 접목한 재활치료기구 ‘네오펙트’도 선보였다. 아트센터 나비(관장 노소영)는 2000년 설립 이래 예술과 기술의 접점에서 다양한 활동을 선보여 왔으며 최근 3년 동안은 로보틱스,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테크놀로지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작품 제작과 전시를 진행해 왔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하얗게 쓴 보라… 혼란도 아름답다

    하얗게 쓴 보라… 혼란도 아름답다

    바이올렛(Violet)이라 쓰고 흰색을 칠했다. 그 뒤의 다른 단어들도 마찬가지로 글과 색이 맞지 않는다. 화이트(White)라는 단어는 검은색이고 레드(Red)는 파란색이다. 붉은 그레이, 노란 그린, 초록색 옐로…. 전시장의 흰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다 보면 이성과 감성이 마구 충돌하는 느낌이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작가로 선정된 코디최(55)가 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선보인 채색화 시리즈다. 지난해부터 독일과 프랑스의 미술관에서 회고전 형식의 개인전을 가지며 국제적으로 조명받고 있는 작가는 2011년 이후 5년 만에 갖는 국내 개인전에서 ‘채색화:아름다운 혼란’이라는 제목으로 회화와 설치작업 신작 14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코디최 작가는 이번 회화 시리즈에 대해 “시각예술로서의 회화와 개념미술 간의 혼란을 유도한 것”이라며 “화면 위에 쓰여진 텍스트를 원래 뜻하는 색과는 다른 색으로 채색함으로써 이성적 사고로 글의 의미를 파악하는 좌뇌와 색을 인지하고 감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우뇌의 기능을 교란시키는 것이 작품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 중반 미국 뉴욕에서 데뷔한 코디최는 개념미술 작가이자 문화이론가로 활동하며 현대사회의 문화정체성과 권력관계에 대해 탐구해 왔다. 감성과 이성, 시각예술과 개념미술, 상업화랑과 예술로서의 미술 사이 갈등으로 인한 혼란과 불안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사회 속 동양계 이방인의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로 작업을 이어 왔다. 그는 “20대 초반에 갑자기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면서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의 차이로 엄청난 컬처 쇼크를 경험했고 그것이 줄곧 제 작품의 주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경험하는 혼란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그는 “뇌의 기능이 아닌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회화, 조각, 설치 등의 작업을 통해 현시대의 다양한 문화가 빚어 내는 충돌과 그 간극에서 탄생한 제3의 문화 혹은 혼종문화와 새로운 사회현상을 주로 다뤄 왔다. 이번 전시는 개념미술 작가로 알려진 그가 회화를 중심으로 갖는 첫 전시이지만 주제 면에서는 일관성을 보인다. ‘에피스테미 사보타쥬’라는 제목이 붙은 그의 명작 시리즈는 인식의 교란을 통해 새로운 사고를 이끌어 내는 작품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명화를 정교하게 재제작하고 손바느질로 만든 텍스트 천 조각을 연결함으로써 교육으로 습득한 명화에 대한 인식과 텍스트 사이에서의 혼란을 경험하게 한다. 전시장 2층에 선보인 설치작업은 컬러 조명과 안개 분사기를 이용해 공간감과 색감의 교란을 연출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뿌연 안개속에서 나이트클럽의 컬러 조명이 계속 돌아가고 영화 ‘라붐’의 주제가 ‘리얼리티’, 클럽 음악 ‘링마이벨’이 계속 흘러나온다. 작가는 “3차원 공간에서 인식의 혼란을 유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1월 30일까지 계속되는 전시는 작가의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출품작 제작기금 마련을 위한 전시이기도 하다고 갤러리 측은 강조했다. 코디최는 “‘베네치안 랩소디’라는 제목으로 베니스가 전 세계 미술과 문화, 관광산업 측면에서 지니는 지정학적 의미를 짚어 보는 전시를 구상하고 있다”면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라스베이거스와 마카오의 간판을 실제 크기로 재제작해 조합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코디최는 대학(고려대 사회학과) 재학 중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가 리오혼도 칼리지에서 예술문화학을, LA아트센터 디자인대학에서 디자인과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1992년부터 10년 동안 뉴욕대학 겸임교수를 지냈고 이후 귀국해 문화이론가로 활동하며 ‘20세기 문화지형도’, ‘동시대 문화지형도’ 등 현대문화에 관한 비평서를 출간했다. 지난해부터 뒤셀도르프 쿤스트할레, 마르세유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고, 내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외에도 스페인 말라가 전시관과 독일 켐니츠미술관 등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다.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사설] 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한다

    어제 ‘서울미래컨퍼런스’ 개최 실직 대책도 서둘러 마련해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어쩌다 빚어진 해프닝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4차 산업혁명을 머리로만 예견하고 입으로만 준비하던 우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새 패러다임은 막연히 불가능하리라 믿고 있던 일들을 눈앞에서 실현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물론이고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로봇공학, 무인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의 산물들은 이미 일상 곳곳에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사회 변혁이나 다름없는 4차 산업혁명의 격랑이 한꺼번에 몰아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여전히 많은 부분이 혼란스럽다. 두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변혁을 감당할 준비를 더 미뤄서는 미래 산업의 낙오자가 된다는 것과 고민할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어제 서울신문은 ‘2016 서울미래컨퍼런스’를 열어 그 해법을 모색했다. 지능과 정보기술(IT)이 융합된 새로운 산업혁명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책을 찾는 자리에는 국내외 명망가들이 참여했다. 이론과 실무의 전문성을 두루 겸비한 이들의 지적은 우리에게 긴장과 기대감을 함께 안겼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AI 전문가로 기조연설을 한 제리 캐플런 스탠퍼드대 교수는 “기계가 바둑에서 사람을 이긴 이야기는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기계는 새보다 더 잘 날고 물고기보다 다이빙을 더 잘하고 있다”고 인공지능의 현주소를 짚었다. 그러고는 “우리의 부(富)를 증대시킬 잠재력이 큰 인공지능이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찾는 일은 인간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이 국가의 미래 성장을 좌우하고 경제·사회 시스템과 노동시장을 통째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이 변화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세계 각국은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는 현실이다. 그런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준비 수준은 걸음마쯤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기술·인프라 수준 등을 따진 최근 해외 유력 기관의 평가에서 한국은 준비 성적이 세계 25위였다. 일본(12위)에는 한참 뒤지며 중국(28위)과도 어금버금하다. 앞으로의 변혁은 산업 전반과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재편할 것이다. 지난 1월 다보스 포럼도 2020년까지 현재의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지고 200만개가 새로 창출되리라고 예견했다. 어제 컨퍼런스에서도 미래 일자리는 핵심 논제였다. AI가 산업현장을 주도하면 실직이 사회문제가 될 것은 불가피하다. 그런 만큼 정부가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두드러졌다. 직업 재훈련 체계를 갖추고 실직자 기초생활 지원책 마련 등 정책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주문을 던진 면면은 책상물림 이론가들이 아니다. 키바 시스템 공동창업자이자 드론 혁신가인 라파엘로 안드레아 등 4차 산업혁명을 현장에서 주도하고 있는 이들이다. 제언들을 곱씹어 봐야 하는 까닭이다.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조선시대 ‘판소리 매니지먼트’ 어떻게 꽃피웠을까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조선시대 ‘판소리 매니지먼트’ 어떻게 꽃피웠을까

    전북 고창이 가진 문화적 유산이 적지 않지만 읍내로 한정하면 읍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창읍성은 단종 원년(1453)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쌓은 석성(石城)이다. 1684m에 이르는 성곽이 잘 보존되고 있는 데다 내부의 고창현 관아도 단계적으로 복원되고 있다. 그런데 고창읍성 밖을 돌아보면 일대는 마치 동리 신재효(1812~1884)를 기리는 거대한 기념물 같다. 그의 옛집을 중심으로 동리국악당, 고창판소리박물관, 판소리전수관, 고창문화의전당이 에워싸고 있다. 관아 복원조차 동리와의 연관성이 우선시되고 있는 듯하다. 아전의 사무공간인 작청(作廳) 복원이 그렇다. 신재효는 고창현의 아전이었다고 한다. 신재효는 ‘춘향가’를 비롯한 판소리 여섯 마당을 개작하고 판소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 이론가이자 연출가였다. 나아가 소리꾼을 양성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소리판의 최대 패트런이었다. 그의 ‘광대 매니지먼트’는 오늘날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연예인 발굴 및 교육, 유통 등 종합 관리 시스템을 연상케 한다.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신재효의 옛집은 아호를 따서 동리정사(桐里精舍)라고 불린다. 동리의 옛집이라고 하지만 정면 6칸의 사랑채만 남았다. 초가지붕의 사랑채는 요즘 감각으로는 조촐하지만, 그 시절에는 이것만으로도 작은 집이 아니었을 것이다. 철종 1년(1850)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는 신재효의 사랑채는 광무 3년(1899) 동리의 아들이 고쳐 지었다고 한다.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고창경찰서 부속 건물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 사랑채는 작은 마당에 있어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동리가 광대들의 패트런으로 한창 명성을 날리던 시절에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리의 집안은 대대로 고창과 무장의 경주인(京主人)이었다. 서울에 머물며 지방관이 올라오면 접대하고 보호하는 책임을 졌다. 그러다 동리의 아버지 신광흡이 1808년을 전후해 상당한 독점적 지위를 누린 관약국을 고창현으로부터 허가받아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재효의 옛집은 고창읍성의 정문 공북루를 나서자마자 나타나는데, 그런 위치에 집을 지었다는 것도 동리 집안이 이 고을에서 차지하고 있던 위상을 보여 준다. 고창판소리박물관에는 신재효와 교유하던 서호생(西湖生)이 동리의 옛집을 둘러보고 묘사한 여섯폭 병풍이 남아 있다. ‘작은 집이 있고, 정자가 있고, 다락도 있고, 배도 있고, 시도 있고, 그림도 있고, 노래도 있고, 거문고도 있는데, 그 가운데 내가 있어 흰수염 날리며 분수를 알고 족한 줄 안다’는 화제시(畵題詩)가 보인다. 이기화 전 고창문화원장이 재구성한 풍경은 좀더 구체적이다. ‘관아 입구 통로 쪽에는 열네 칸 줄행랑을 지어 위엄을 갖추었고, 서쪽 안채와의 사이 넓은 마당 가운데 큰 동산을 지어 중심을 삼고…사랑채의 서쪽에는 동쪽에서 끌어들인 시냇물 줄기에 연방죽을 파고 그 위에 연당을 지어 전원생활을 상징하였으며, 연당을 지나 서쪽으로 시냇물을 따라가면 안채와 사랑채의 사잇문을 지나 안채에 이르도록 하였다.’ 이 같은 신재효 옛집의 구조는 ‘동리가 광대를 후원하여 판소리 음악교육기관을 설립해서 운영했을 뿐 아니라 공동생활권을 형성하여 판소리 전문교육을 실시했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에도 부합한다. 우선 사랑채는 서재이고, 소리꾼을 지도한 장소이자 공연장이었다. 퇴마루를 가진 두 개의 안방과 대청, 건넌방은 판소리를 지도하는 공간으로 쓰다가 필요할 때 네 짝의 미서기문을 열어젖히면 적지 않은 청중이 모일 수 있는 널찍한 공연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열네 칸 줄행랑 당연히 합숙소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신재효 시절의 집터는 1만 3000㎡(약 4000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랑채 북쪽 경찰서가 들어섰던 판소리박물관 정원과 판소리박물관 본관 및 미술관 자리도 모두 집터라는 것이다. 그러니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고는 해도 옛 모습을 되찾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동리 옛집 복원은 건축물이라는 유형유산의 복원이자 당대의 판소리 문화라는 무형유산의 복원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신재효의 옛집뿐 아니라 동리의 ‘판소리 매니지먼트’가 이 집에서 어떻게 의도되고 실천될 수 있었는지까지 복원해야 할 것이다. dcsuh@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도심형 최고급 주상복합 원조…美 종교재단 파워 담긴 당당함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도심형 최고급 주상복합 원조…美 종교재단 파워 담긴 당당함

    # 사무실 같은 아파트 구도심의 유서 깊은 중심 상업가로인 종로는 세종대로 사거리를 건너면서 새문안로로 이름이 바뀐다. 이전에는 신문로(新門路)라고 불렸는데 아직 이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인다. 조선 초기에 서대문, 즉 돈의문이 폐쇄되었다가 다시 대대적인 수리 끝에 재사용되는 과정에서 ‘새문’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 그 유래다. 한양 도성의 동서 방향 중심은 지금의 탑골공원 부근이지만, 지형적인 이유 때문에 실제 중심인 세종대로는 이보다 훨씬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그 결과 새문안로의 도성 내 구간은 770m 정도로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이 구간에는 흥국생명, 포시즌즈 호텔, 대우건설, 금호아시아나 그룹 등 한국의 중요한 대기업과 국제적 호텔 등이 밀집해 있다. 게다가 길의 북쪽에 경희궁과 서울시립역사박물관 등이 자리잡고 있으니 공공적인 성격 또한 매우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매우 인지도가 높은 길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새문, 즉 돈의문 조금 못 미친 곳의 새문안로 남쪽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보인다. 콘크리트에 시멘트 미장을 하고 거기에 페인트를 바른, 사실상 이보다 더 저렴할 수 없는 외부 마감 덕분에 존재감이 더욱 없어 보인다. 하지만 ‘피어선 아파트’라는 건물의 이름을 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피어선은 도대체 어떤 의미이며, 사무실처럼 생긴 건물이 아파트라니? 아서 태펀 피어선은 근대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이론가로서 미국 장로교의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연희전문학교와 새문안교회를 세운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박사와의 인연으로 병약한 중에도 1910년 12월 조선에 입국,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그러나 불과 6주 만인 1911년 1월 다시 조선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고, 같은 해 6월 3일에 세상을 떠났다. 조선에 성경학교를 세우라는 유언을 남겨 그 이듬해인 1912년에 현재 평택대학교의 전신인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 설립되었다. 이후 1968년 피어선기념성서신학교로 개명한 후 재단의 자금 마련을 위해 진행한 사업이 바로 피어선 아파트다. 중림동 천주교 약현성당이 성요셉 아파트를 지은 것과 사업의 목적이나 시기 면에서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건축물 관리대장에 의하면 피어선 아파트는 1971년 11월 10일에 사용승인을 받았다. 경희궁 터에 있던 서울고등학교가 아직 서초동으로 이전하기 전이었다. 그 당시 교정을 드나들던 학생들에게 길 건너편의 최신식 도심 맨션은 매우 색다른 풍경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위치부터가 독보적이었다. 일단 사대문 안, 그것도 궁궐과 명문 고등학교 바로 맞은편이라는 입지는 이 연재에 자주 등장하는 서대문 바로 너머의 충정로나 홍제동 등 신개발지들이 견주기 어려운 것이었다. 같은 사대문 안이지만 도로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세워진 낙원상가나, 태평양 전쟁 후반기에 폭격을 대비한 소개공지대에 들어선 세운상가 등과도 확연히 다르다. 그야말로 구도심의 가장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위치의 하나에 자리잡은 것이다. 미국계 종교 재단의 파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시기의 다른 여러 아파트들이 다 그러했듯이 피어선 아파트도 건립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 심지어 ‘서울에도 선진국 도시처럼 도심에 주상복합건축이 들어섰으니 한번 살아 봐야겠다’는 이유로 입주한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다. 1974년 7월 9일자 매일경제신문의 기사를 보면, 도심의 업무지구가 확대되고 한강변에 맨션아파트가 계속 들어서는 와중에 도심의 업무지구를 중심으로 ‘비원 근처의 가든 타워 아파트, 신문로의 피어선 아파트, 삼익건설(?)이 지은 사직 아파트, 남산에 솟은 외국인 전용 아파트 등 초고급 아파트’ 등이 들어섰음을 알리고 있다. 한마디로 피어선 아파트는 그 당시 가장 앞선 아파트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다. 지금의 피어선 아파트는 과거의 그런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더 이상 아파트도 아니다. 건축물 관리대장을 보면 분명히 대부분의 층에 아직 아파트라는 용도가 적혀 있고, 심지어 건물 1층에 아직도 ‘피어선 아파트’라는 명패가 남아 있지만 주거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건물 성격의 변화를 잘 알려주는 자료가 하나 있다. 1990년 9월 14일자 대법원 판결문이다. 다름 아닌 상수도 사용료 부과처분에 대한 내용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는 점포 및 사무실로, 4층부터 11층까지는 79세대의 아파트로 건축되어 개인에게 분양된 복합건물인데, 그 후 세대별 아파트의 소유자 및 그로부터 임차한 사람들이 개인사무실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최근에 이르러서는 79세대 중 75세대가 주거용 아파트가 아닌 회사사무실, 건축사 또는 법률사무소, 치과병원 등 개인사무실 및 영업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사실….’ 이후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게 건물의 용도가 당초와 완전히 달라졌으므로 상수도 요금 산정을 위한 요율 또한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건물을 ‘피어선 아파트’가 아닌 ‘피어선 빌딩’이라고 부르고 심지어 건물 내에서도 두 가지 이름이 혼재되어 있는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오히려 이 건물은 위치적 장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료 덕분에 각종 시민단체들이 대거 둥지를 틀고 있는, 이른바 ‘비정부기구(NGO)의 메카’로 더 잘 알려졌다. 1층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보면 원조 시민단체의 하나인 소비자시민의모임을 비롯해서 한국투명성기구, 에너지시민연대 등의 이름이 보인다. # 도심 공동 주거의 선구자적 역할 새문안로 맞은편에서 바라본 피어선 아파트는 좌우 대칭의 반듯한 건물이다. 정면 네 칸에 양쪽에 좁은 칸이 하나씩 더 붙어 있다. 대충 나누어 그린 입면 같지만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있다. 일단 정면 네 칸의 간격이 다르다. 가운데 두 칸이 넓고 양쪽 두 칸이 다소 좁다. 그래서 건물 가운데가 조금 앞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생긴다.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보는 이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분명히 정면에서 보면 11층 건물인데 건축물 관리대장에는 지하 1층 지상 10층으로 되어 있다. 즉 육안상 1층으로 보이는, 가로에 면한 부분이 알고 보면 법적으로 지하 1층이다. 그 이유는 건물 뒤로 돌아가 보면 알 수 있다. 뒷부분이 땅에 묻혀 있는 것이다. 건축법상 지하층 산정 기준에 따른 결과다. 위에서 언급한 대법원 판결문 또한 법적인 층수가 아닌 육안상의 층수를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이 글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육안상 층수를 기준으로 한다). 양쪽 측면의 좁은 칸에는 역시 콘크리트로 만든 차양 같은 것이 붙어 있는데 3층 이하는 없고 그 위부터 꼭대기 층까지는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법원 판결문에 나오는 것처럼 저층부 3개 층의 사무실과 그 위의 아파트가 나뉘는 부분을 정확하게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두 부분은 층고도 서로 다르다. 이렇게 건물을 ‘읽으면’ 그 연혁과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건축 답사가 주는 즐거움의 하나다. 지하 1층, 즉 가로에 면한 층에는 좌측부터 볼링장, 맥도날드, 하나은행 현금 코너 등이 입주해 있고 차량 통로를 지나 작은 꽃집이 하나 있다. 볼링장은 한 층 아래로 내려가는데 그렇다면 법적 지하 2층이 되는 셈이지만 건축물 관리대장에 언급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그 좌측에는 마치 달아낸 것처럼 아주 작은 김밥집이 있다. 김밥도 맛있고 주인이 재미있는 분이어서 꽤 알려진 집인데 평일에는 오전 11시쯤부터 길게 줄을 선다. 건물 정면에 로비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하나은행 현금 코너를 통해 내부로 들어갈 수는 있으나 정작 주출입구는 차량 통로의 중간에 측면으로 나 있다. 가로변 상가와 건물의 출입 동선을 분리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평소에는 이상할지 모르지만 비가 올 때 차에서 내리거나 차를 탈 때 편리할 것이다. 이 역시 자동차를 중시하는 미국식 사고의 영향으로 생각한다. 뒤로 돌아가면 꽤 널찍한 주차장이 있는 등 당시 건물치고는 자동차에 대한 신경을 많이 쓴 것을 알 수 있다. 건축물 관리대장에는 주차대수가 0으로 나와 있는데 주차장법 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서 그렇거나, 아니면 주차장이 나중에 추가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피어선 아파트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면 엘리베이터가 2층부터 있다는 등의 기록이 나온다.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1층까지 연결되어 있다. 기록이 맞는다면 역시 당초 1층 상가에 출입하는 동선과 그 위 입주자들의 동선을 분리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있다. 새문안로가 북쪽에 있으므로 피어선 아파트는 북향 건물이다. 그런데 주차장 쪽으로 가서 남쪽을 보면 드디어 이 건물의 원래 정체가 잘 드러난다. 주거 기능은 상실했지만 아직도 발코니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주거 세대의 용도가 다른 것으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하드웨어로서 건축이 갖는 끈질김이 느껴진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상상을 해 본다. 피어선 아파트가 공동 주거로서의 본래의 기능을 되찾으면 어떨까?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아직도 건축물 관리대장에 ‘아파트’가 명기되어 있고 저렇게 발코니까지 남아 있다. 필요하다면, 그리고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그렇게 되는 것에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서울 구도심의 주거 기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요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만 건물 남쪽의 지형이 높고 (정동은 의외로 지형의 고저차가 심한 곳이다. 그런 이유로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이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인 정동 1번지에서 첫 방송을 시작했다) 높은 건물이 많아 남쪽으로의 채광과 경관은 사실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 피어선 아파트 바로 남쪽의 경향신문사 사옥은 구 문화방송 사옥인데 김수근이 설계하여 1967년에 완공되었다. 전면부와 후면부 모두 상당히 고층인 데다가 피어선 아파트 건립 당시에 이미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피어선 아파트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남쪽이 매우 답답했을 것이다. 당시 도심형 최고급 주상복합건축으로서의 피어선 아파트의 선구적인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정작 그 자신은 공동 주거 기능을 상실했지만 길 건너 광화문 일대, 특히 세종문화회관 주변 지역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대단지형 주상복합인 경희궁의 아침, 스페이스본 등은 물론이고 거리에 면한 단독 건물 중에서도 주상복합이 많다. 세종 아파트, 신문로 주상복합, 세종로 대우 아파트 등이 그것이다. 이 건물들은 모두 겉에서 보면 일반 사무용 건물인지 아파트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세종로 대우 아파트는 특이하게도 중정형인데, 개인적으로 청년 시절 첫 직장에서 참여했던 프로젝트라서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렇게 일반 건물과 주거가 별다른 구별 없이 섞여 있는 것이 주거가 도심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피어선 아파트가 남긴 도시적 유전자다.
  • 한국 첫 재즈클럽 ‘야누스’에 대한 임인건의 기억,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 발매

    한국 첫 재즈클럽 ‘야누스’에 대한 임인건의 기억,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 발매

    1989년 국내 최초의 뉴에이지 피아노 솔로 앨범 ‘비단구두’를 발표한 이래, 끊임없이 음악적 변화를 꾀하며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30여년 경력의 피아니스트 임인건이 첫 한국 재즈 클럽 ‘야누스’의 추억을 담은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를 발표한다. 지금까지 야누스와 재즈 1세대에 대한 조명은 종종 있어왔다. 임인건은 1세대와 함께 연주하며 야누스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해왔지만 1세대에 비해 어린 나이, 그리고 1.5세대로 분류되는 애매한 위치 때문에 그 조명에서 다소 비껴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제주도에 내려가기 전까지 25년간 꾸준하게 야누스 무대에 섰으며, 지금까지도 야누스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품고 음악 활동을 해왔다. 2013년 제주에 정착한 뒤론 1세대 재즈 뮤지션들과 제주도에서 함께 공연을 열면서 야누스를 회상하곤 했다. 2015년, 클라리넷 연주자 이동기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과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 역시 재정적인 문제로 야누스를 정리하고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임인건은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야누스를 기억하는 앨범을 준비했다. 그 동안의 재즈 1세대를 재조명하는 앨범들이 재즈 스탠다드 곡을 연주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임인건이 야누스 시절의 기억과 함께 야누스의 선배 뮤지션들을 위해 만든 곡들로 채워져 있다. 앨범의 시작을 여는 ‘I’ll Remember 이판근‘은 야누스의 이론가였던 이판근을 기리는 곡이자 이판근이 임인건과 함께 만든 곡이다. 박성연이 부른 타이틀 ’바람이 부네요‘에는 인생을 살아온 이가 들려줄 수 있는 깊은 울림이 담겨 있고, 이동기가 다시 부른 ’하도리 가는 길‘은 그동안 이 노래를 불러온 장필순, 요조, 강아솔과는 또 다른 매력을 전해준다. 두 곡 모두 아름답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노래들이다. 김수열의 테너 색소폰과 이원술의 베이스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Mr.김수열’이나 김수열과 이동기, 최선배가 모두 참여한 ’야누스 블루스‘ 등 임인건이 선배 뮤지션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곡을 만들었다고 전한다.재즈 1세대라 불리는 야누스 멤버들도 앨범에 많은 공을 들였다. 박성연은 입원중에도 일주일에 이틀씩 병원에서 나와 자택에서 노래 연습을 했고, 이동기, 김수열, 최선배 등 연주자들도 겨울부터 세 차례 진행된 녹음일정을 열정적으로 소화했다. 재즈 1세대뿐 아니라 후배 재즈 뮤지션들도 이번 앨범에 적극적으로 함께했다. 박성연이 부른 또 다른 보컬곡 ‘길 없는 길’은 보컬 코러스 편곡을 맡은 말로를 비롯하여 김마리아, 김미정, 도승은, 말로, 박라온, 써니킴, 웅산, 임경은, 장정미, 허소영 등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내 재즈 보컬 열 명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김수열, 이동기, 최선배 등만이 남아있는 1세대 연주자들의 빈 자리는 젊은 연주자들이 채웠다. 이원술이 모든 편곡과 베이스 연주를 맡았으며 오정수(기타), 허여정(드럼), 임주찬(드럼) 등이 참여했고 배선용(트럼펫)과 김지석(색소폰) 같은 젊은 관악기 연주자들도 소리를 보탰다. 뿐만 아니라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바람이 부네요’ 합창 버전은 재즈 아카데미 차윤섭 학장과 재즈 보컬리스트 조정희의 지휘 아래 팬덤커머스 올윈(www.allwin.com)을 통해 신청한 일반인 70여명과 재즈 아카데미 학생들 20명이 함께 노래하여 이번 앨범에 의미를 더했다. 이들은 오는 3일 오후 7시 성수동에 위치한 성수 아트홀에서 열리는 앨범 발매 콘서트에도 박성연, 이동기, 김수열, 최선배, 김준 등 1세대 뮤지션과 말로, 웅산 등 후배 뮤지션들이 출연할 예정이며, 공연 티켓은 인터파크 티켓(ticket.interpark.com), 멜론 티켓(ticket.melon.com)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임인건의 지금까지의 앨범들 중 가장 재즈의 색이 진하게 묻어나면서도, 그 안에 임인건 특유의 서정과 포크적인 정서가 자리잡고 있는 이번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는 타이틀 ‘바람이 부네요’를 비롯하여 총 12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8월 31일 각종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음반은 야누스의 추억이 담긴 52페이지의 부클릿과 CD로 구성된 박스 세트로 9월 7일 출시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영호 공사 귀순…김정은 일가 등 북한 핵심 정보 취득 가능성

    태영호 공사 귀순…김정은 일가 등 북한 핵심 정보 취득 가능성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귀순한 태영호(55) 북한 공사가 갖고 왔을 북한 관련 정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태영호는 북한 내 최고위층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로 망명한 북한의 최고위급 외교관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북한 권력층 내부와 관련한 민감한 정보를 갖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 태 공사는 지난해 에릭 클랩턴의 런던 공연 당시 현장을 찾은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가 김정은 일가와 관련한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들었을 가능성이 대두되는 대목이다. 태 공사의 부인인 오혜선(50)도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1984년 사망)의 일가로 알려졌다. 빨치산 가문 부부가 탈북해 한국행을 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진 만큼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북한 내 이너서클 관련 정보가 나올지 주목된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로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인 황장엽(2010년 작고) 씨도 지난 1997년 망명 이후 각종 저술 활동과 강연 등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 바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18일 “영국 런던이 북한의 유럽 내 외교의 거점”이라면서 “외교와 관련한 많은 정보가 유통되는 한가운데 있었다는 점에서 북한·유럽연합(EU) 관계, 북한 경제 상황 등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영호 공사가) 김정철을 수행하면서 이런저런 소식을 들었을 수 있으며, 외교가에서 떠도는 이야기들도 많이 접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 공사가 고위 인사인 데다 핵심정보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국가정보원 산하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조사 후 탈북자 사회정착시설인 하나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사회로 배출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들은 보통 유관기관의 탈북 경위 조사를 받은 이후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서 정착 교육을 받게 되지만, 국정원장의 신변보호 결정이 내려지면 하나원에 가지 않고 별도의 장소에서 교육 절차를 거친다. 통일부 당국자는 “예단할 수는 없지만 신변보호 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국정원장이 보호 결정을 할 가능성 있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치녀·한남충·홍어·종북·일베·개돼지…혐오발언, 이기려면 맞받아쳐라

    김치녀·한남충·홍어·종북·일베·개돼지…혐오발언, 이기려면 맞받아쳐라

    소용돌이치는 혐오세태 속 상처받는 말의 효과와 역설 조명 혐오표현 국가 개입 땐 재생산 초래 발언자도 예상 못한 맞대응 전략 제시 혐오 발언/주디스 버틀러 지음/유민석 옮김/알렙/372쪽/1만 8000원 김치녀, 한남충, 홍어, 종북, 일베, 메갈리안, 개·돼지 발언…. 최근 한국에서 혐오 발언을 둘러싼 논쟁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 규제의 이유로 발언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가 거침없이 들먹거려진다. ‘젠더 트러블’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미국 철학자이자 세계적인 젠더이론가 주디스 버틀러가 1997년 쓴 이 책은 그 같은 혐오 발언을 둘러싼 통념과 주장을 보기 좋게 뒤집어 신선하다. 언어학자나 철학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이론가들이 바라보는 혐오 발언은 피해와 상처, 공포에 집중돼 있다. 혐오발언은 권력을 가진 자가 의도적으로 행사하는 차별행위이고 이 말들은 곧 행위자가 되며 수신자를 열등한 지위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혐오 발언은 강자의 차별을 정당화하고 약자들을 발언하지 못하도록 침묵시킨다”는 철학자 레이 랭턴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를테면 ‘백인 전용’이란 말이 유색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면서 결과적으로 유색인종을 종속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주장들을 철저히 부정하고 조목조목 반박한다. 그 전복적 사유의 바탕은 흥미롭게도 수사학의 기본 원리이다. “말하는 자는 그 발언의 창시자가 아니며, 말은 항상 통제할 수 없다. 말의 의미는 끝없이 변화·탈선하고, 듣는 이에 따라 말하는 자의 의도와 정반대의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 원리를 뒤집어 해석하면 언어는 화자가 의도한 대로 타인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게 아니며 발언과 행위, 언어와 효과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는 주장으로 귀착된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한창 논쟁 중인 ‘퀴어’(queer)는 원 화자(話者)의 의도와 행위 효과가 전도된 도드라진 사례이다. 퀴어는 애초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나 혐오의 의도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동성애 운동의 상징으로 재전유돼 널리 쓰이고 있다. 저자는 물론 혐오 발언이 고통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혐오 발언 자체의 위험성과 폐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혐오 발화자를 기소하지 않거나 면책해 주자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다양한 형태의 상처를 주는 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반포르노그래피 논증이며 군대 내 동성애자의 자기 선언, 국가 검열, 십자가 소각…. 그 과정에서 여러 갈래의 의문을 세밀하게 풀어내는 흐름이 독특하다. 혐오 발언은 그 말을 건네받은 자에게 직접적이거나 인과적으로 영향을 주는가? 혐오 발언은 상처를 주는 것 외에 다른 의미나 힘, 효과를 가질 수는 없는가? 혐오 발언자는 얼마나 권력을 갖고 있으며 그 사람만 처벌하면 혐오 발언이 사라지는가?…. “혐오 발언은 막강한 힘이나 마법적 효력을 가진 것이 아니다.” 책은 그 전제 아래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규제의 문제를 적잖이 할애하고 있다. 그 논지의 핵심은 국가 차원의 규제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규제는 발언을 재의미부여하고 재수행함으로써 이런 발언에 도전하도록 일깨워질 자들을 침묵시키도록 작동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사법적 판단은 자의적·편파적일 수 있는 만큼 국가에 판단을 맡긴다면 법원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혐오 발언은 면죄부를 받는 셈이 된다. 오히려 소수자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목에서 저자는 국가가 혐오 표현을 승인함으로써 혐오 발언을 오히려 생산한다고까지 지적하고 있다. “혐오 발언을 그저 피해와 상처, 공포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말자.” 저자의 주장은 결국 혐오 발언이 품고 있는 저항과 전복의 가능성으로 치닫는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행위와 상처 간에는 저항의 장소로 활용될 수 있는 잠재적 간격이 존재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되받아쳐 말하기가 가능해진다. 발언자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되받아쳐 말하거나 발언을 전도함으로써 발언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정치적 실천으로 맞받아치기, 뒤집기, 해체하기 같은 혐오 발언의 맞대응 전략들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상처를 주는 말은 그것이 작동했던 과거의 영토를 파괴하는 재사용 속에서 저항의 도구가 된다.” 출간 20년 만에 소개된 번역서로, 시차가 있긴 하지만 이 땅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혐오 세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교재로 읽어볼 만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문화마당] 장관의 길, 배우의 길/정재왈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

    [문화마당] 장관의 길, 배우의 길/정재왈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

    지난주 막 내린 연극 ‘햄릿’을 국립극장에서 봤다. 여러 모로 화제가 많았던 작품이다. 우선 권위의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들이 꾸미는 무대라는 점.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이론가 겸 연출가 이해랑은 1951년 ‘햄릿’을 국내 최초로 전막 공연했던 인물이다. 한국 연극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 때문에 사후에도 그를 기리며 따르는 이들이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그들을 중심으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였다. 수상자 출연진 대부분이 50∼60대다 보니 ‘햄릿’ 캐스트는 그 자체가 연령을 파괴하는 파격이었다. 원작대로라면 청년이어야 할 주인공 햄릿과 오필리어 역을 맡은 배우의 실제 나이는 60대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테지만 이런 캐스팅은 도리어 참신한 연출과 해석으로 비쳐 작품의 신선미를 더해 주었다. 또한 가십성 이야기도 화제였다. 전직 장관 두 명(손숙 전 환경부 장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출연한다는 점.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무대 밖 연극인의 사회적인 기여도와 위상을 보여 주는 사례여서 화제가 되는 것이다. 그 장관 출신 출연 배우 중 단연 주목할 이는 햄릿 역이었다. 평소 ‘햄릿’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며 스스로 ‘영원한 햄릿’으로 남고 싶은 사람 유인촌 전 장관이었다. 한국에서 배우가 장관이었던 적은 그가 처음은 아니다. 영화 ‘서편제’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배우 김명곤이 앞서 그 길을 열었다. 그는 오히려 배우보다는 ‘광대’라는 말을 좋아했다. 배우이건 광대이건 다 같이 무대 연기자라는 점에서 둘 사이의 차이는 없다. 연극 ‘햄릿’에서 60대 유인촌 햄릿은 펄펄 날았다. 능청맞고 집요하고, 심지어 전략적으로 보이기까지 해서 상식 밖이었다. 흔히 우유부단한 인간형의 대명사로 통하는 그 햄릿이 아니었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비장미의 절정이었다. 비탄에 몸부림치는 호레이쇼를 뒤로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햄릿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나의 무대, 나의 연극, 배우는 나야, 자넨 관객이고. 사라지는 건 내 몫이고 남는 것은 자네 몫이지.” 장관을 그만둔 뒤 배우 유인촌을 무대에서 보는 일은 한동안 어려웠다. 현직에 있을 때 논쟁적 인물이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 때문에 연극을 비롯한 문화예술계에서도 서먹서먹한 이들이 많았다. 휴식 기간이 필요했던 걸까. 하지만 시간이 흘러 햄릿의 독백처럼 ‘남는 것은 자네 몫’이 된 지금 유인촌은 명불허전을 입증하며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왜소할 대로 왜소해진 요즘 연극에서 과연 이만한 무게와 부피를 가진 배우를 찾을 수 있을까. 결코 없다는 사실을 연극 ‘햄릿’은 증명했다. 예술가들의 중심 무대인 문화예술계도 엄연한 사회의 중요한 한 영역이자 축소판이다. 그 판을 벗어나 무슨 역할을 하든 그 또한 개인의 몫이다. 모두가 세상을 무대로 한 배우요, 저마다 등퇴장할 때가 있다고 말한 이는 셰익스피어다. 각자의 무대에서 저마다 최선을 다하며 등퇴장을 거듭할 따름인데, 연극 ‘햄릿’을 보면서 한 배우의 범상치 않은 행로를 실감했다. 어찌 보아 세상이란 큰 무대에선 ‘장관의 길’과 ‘배우의 길’이 같은 길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모두가 배우인 마당에서 말이다. 여하튼 무게를 단다면 어느 쪽이 더 나갈지 모르겠으나 장관의 길은 이미 지나온 길, 배우 유인촌을 연극의 길에서 자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족탈불급의 경지를 ‘햄릿 유인촌’은 보여 주었고, 그래서 그 소중한 배우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 [경희대 특집] 폴 케네디, 미래 위한 대학 역할 강조

    [경희대 특집] 폴 케네디, 미래 위한 대학 역할 강조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경고한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파국의 징후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인구 증가, 산업화, 환경 파괴, 천연자원 고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민족 분쟁, 군비 경쟁, 실업, 빈부 격차가 고착화된 지 오래다.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현대 문명의 위기는 만성질환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인류가 사라지지 않고서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질병처럼. 하지만 인류가 처한 문제는 만성질환이 아니라 급성질환일 수도 있다. 공멸을 가져올지도 모를 유례없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1972년 출간된 ‘성장의 한계’는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을 100년으로 보았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100년 안에 암울한 미래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50년 남짓이다. 50년 안에 현재의 문명을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함께 사라질지도 모른다. ●보코바 “인간의 삶엔 평화가 기초해야” 지난 세기 중반부터 고등교육기관의 사회적·지구적 책임을 강조해 온 경희대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도서를 잇달아 발행하며 문명 전환을 시대의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미원렉처’ 시리즈와 ‘문명 전환’ 시리즈를 기획해 지구적 차원의 복합 위기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미원렉처는 경희대학교 설립자 고 조영식 박사의 호를 따서 만든 특별 강연이다. 국내외 석학과 실천인을 연사로 초빙해 인간, 세계, 문명의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고 있다. 이 특강 시리즈를 경희대 출판문화원에서 책으로 엮은 게 미원렉처 시리즈다. 지금까지 7차례 개최됐으며 그중 5개 강연이 책으로 발행됐다. 경제, 정치, 역사 등 여러 분야 석학들과 국제기구 전문가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문명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고 있다. ‘강대국의 흥망’이란 저서로 유명한 폴 케네디 교수는 ‘교육과 인류의 미래’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대학의 역할은 복잡다단한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스스로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완전히 다른 사유 방식이다. 사유 방식이 변해야만 더 높은 수준의 교육과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케네디 교수는 대학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인류와 문명’은 고이치로 마쓰우라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강연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속 불가능한 현재의 삶을 지속 가능한 삶으로 바꿔야 하는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강조한다. 지구 자원의 과잉 개발을 멈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구적 문명을 창조해 지구적 방식으로 행동하는 길밖에 없다고 논한다. 저명한 사회학자 프레드 불럭 교수는 ‘지구적 근대성, 그 위기의 근원’에서 경제 위기를 넘어 근대성 자체까지 위협을 받게 된 원인을 먼저 분석한다.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분법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것을 문제라고 했다. 이분법 구조를 벗어나 위축된 집단적 상상력을 다시 활성화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유네스코와 21세기 고등교육’에서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인간의 존엄과 삶의 능력에 평화가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평화의 또 다른 기반으로 문화적 다양성의 존중을 제시한다. 인간의 선천적 존엄을 보호하고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21세기 평화의 토대이자 새로운 휴머니즘의 뿌리다. 피터 카젠스타인 교수는 ‘세계 정치와 문명: 동서양을 넘어서’에서 정치와 문명의 문제를 다원주의 시각에서 풀어낸다. 그는 문명 간의 차이가 충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문명의 본질을 이용하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서로 교류하고 진화하면서 공존하는 문명의 본질은 다원주의적 경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미지의 세계로 향해야 한다. 미원렉처 시리즈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논제를 보다 쉽게 풀이한다면, 문명 전환 시리즈는 전문적으로 새로운 문명을 논하는 총서 성격의 시리즈다. 경희대 출판문화원은 그 첫 번째 책으로 어빈 라슬로 교수의 ‘의식 혁명’(가제)을 준비 중이다. 헝가리 태생의 과학철학자이며 시스템이론가인 라슬로 교수는 과학과 영성을 결합한 새로운 과학을 기반으로 인간과 우주의 연관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일체성을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벨 “존중하고 차이 인정해야 공존가능” 의식 혁명에서 라슬로 교수는 다른 두 전문가와 대담을 나누며 우리가 처한 위기와 전환을 진단하고 예술, 과학, 교육, 목표와 가치, 세계관, 종교, 영성의 역할을 숙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식의 역할을 중시한다. 현재 우리 의식의 상태가 다른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핵심 사안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은 9월 21일 개최되는 경희대 Peace BAR Festival ‘지구 문명의 미래: 실존 혁명을 향하여’에 맞춰 발간될 예정이다. 경희대 출판문화원은 문명 전환 시리즈를 통해 문명 전환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 도서를 발행할 계획이다. 한편 경희대 출판문화원은 지난 5월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연설문집인 ‘불가능의 예술’을 발간하기도 했다.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모색하는 경희대학교의 교육철학과 하벨의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벨은 지구 문명을 위해 실천 도덕으로서의 정치를 추구했다. 다문화적 공존의 정신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지구촌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도덕의 핵심인 책임감은 우리의 삶을 넘어 자연, 지구, 심지어 우주까지 이어진다. 하벨은 인간, 자연, 지구, 우주가 신비롭게 연결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인류 문명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문명 전환의 시대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현대의 위기는 우리 인류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공멸이냐, 공생이냐.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면서 미래를 창출하는 데 있다. 폴 케네디의 말처럼 대학이 대학 본연의 역할과 책임을 재확인하고 대학의 공공성을 실천해야 할 때다. ‘대학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강조하는 경희대가 출판하는 책들을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김상욱의 과학공부(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펴냄) 철학 하는 과학자로 알려진 저자가 과학에 대한 지적 탐구와 인문학적 통찰을 수준 높은 유머와 명쾌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336쪽. 1만 6000원. 파나소닉 V자 회복의 진실(히라카와 노리요시 지음, HS애드 펴냄) 일류 기업인 파나소닉의 추락과 부활을 회고한 책. V자로 극적 회복을 이뤄낸 쓰가 가즈히로 사장의 경영 비법을 소개한다. 216쪽. 1만 5000원. 군자를 버린 논어(공자 지음, 임자헌 옮김, 루페 펴냄) 소장 여성 한학자 임자헌씨가 종래의 고답적인 고문체를 버리고, 과감히 현대적 용어와 일상어로 논어를 재번역했다. 384쪽. 1만 4800원.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제임스 노우드 프랫 지음, 문기영 옮김, 글항아리 펴냄) 100년 역사의 티(Tea) 하우스에서 스타벅스까지 100여종의 차와 브랜드, 70여곳의 다원을 총망라한 홍차 애호가의 바이블. 460쪽. 2만 2000원.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필리페 판 파레이스 지음, 조현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현대 기본소득 논의의 선도적인 이론가이자 옹호자인 저자의 대표작이자 기본소득론의 가장 체계적인 교과서로 평가받는다. 560쪽. 2만 5000원. 할머니의 여름휴가(안녕달 글·그림, 창비 펴냄) 수박 수영장 작가의 두 번째 창작 그림책. 작가 특유의 엉뚱한 상상력으로 휴가와 여행의 즐거움을 따스하게 그려냈다. 56쪽. 1만 2000원.
  • ‘도광양회’ 주창 中외교 원로 우젠민 별세

    ‘도광양회’ 주창 中외교 원로 우젠민 별세

    중국의 유연한 외교를 주창해 온 외교원로 우젠민(吳建民·77) 전 중국 외교학원 원장이 지난 18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우 전 원장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외교전략인 ‘도광양회’(韜光養晦·칼집에 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힘을 기르며 기다린다)의 신봉자로 대표적인 온건파 외교관이었다. 인민일보 등에 따르면 우 전 원장은 이날 새벽 4시쯤 후베이성 우한의 한 지하차도에서 타고 가던 뷰익 승용차가 난간을 들이받으면서 동승한 우한대 정보학원 주샤오츠(朱曉馳) 교수와 함께 사망했다. 우 전 원장은 우한대로 강연을 하러 가던 길이었다. 우 전 원장은 1939년 충칭에서 태어나 1959년 베이징외국어학원 불문과를 졸업한 뒤 외교부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우 전 원장은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 등 중국의 전직 지도자들의 프랑스어 전담 통역사로 일했다. 1971년 중국이 유엔 상임이사국에 올랐을 당시 중국의 첫 유엔 상주직원으로 파견돼 근무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외교학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후진을 양성했다. 그는 생전에 중국 외교가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포로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대국굴기’ 외교를 뒷받침하는 민족주의적 이론가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구멍 뚫린 필름… 검은 동그라미 사진… 감춰진 진실은

    구멍 뚫린 필름… 검은 동그라미 사진… 감춰진 진실은

    한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은 검은 동그라미로 한쪽 눈이 가려져 있어 기괴하기까지 하다. 검은 동그라미의 정체가 궁금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저항주의 예술가 벤 샨이 1936년 아칸소의 재정착민 가정에서 촬영한 이 사진의 필름은 펀치로 구멍을 뚫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왜, 누가 이런 행위를 가했을까? ‘검은 목요일’인 1929년 10월 24일 이후 미국은 대공황의 시대를 맞았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시작했고, 신설된 농업안정국(FSA)은 농촌 지원사업에 나선다. FSA에서 정보수집을 담당하는 부서 책임자로 임명된 경제학자 로이 스트라이커는 두 가지 임무를 맡았다. 대공황 여파로 미국 농촌에 불어닥친 빈곤의 실상을 기록해 정부관계자와 국민들에게 알리고, 뉴딜의 일환인 FSA 정책 실시로 농촌의 빈곤이 어떻게 개선돼 가는지를 기록하고 홍보하는 것이었다. 스트라이커는 숫자나 자료보다는 이미지를 선호했다. 워커 에번스, 도로시어 랭, 아서 로드스타인, 벤 샨, 칼 마이던스, 러셀 리, 티어도어 정 등 당대 유명 사진 작가들을 고용해 농촌 마을의 모습을 찍도록 주문했다. 사진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붙었다. 마을 중심가에 대한 전체 장면을 담고 주요 건물을 담을 것, 거리의 사람들을 담되 전형적인 인물을 담아야 하며 얼굴, 옷, 활동이 드러나야 할 것 등이다. 사진가들이 농촌 현지에서 보내온 사진 중에서 스트라이커는 FSA의 이념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사진 원본(필름)에 펀치로 구멍을 뚫어 배제했다. 여러 번 반복된 컷이나 기술적으로 실패한 컷, 너무 예술적인 사진도 배제됐다. 흑인과 멕시코인이 들어간 사진도 가차 없이 잘렸다. 전체 17만 네거티브 사진 중에서 펀치된 컷은 10만여개에 이른다. 펀치된 사진은 FSA의 공식 사진 아카이브와는 다른 ‘죽은’(killed)파일로 분류돼 미 의회도서관 홈페이지(www.loc.gov/pictures/collection/fsa)에 남았다. 아카이브는 2011년부터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갤러리 룩스에서 열리고 있는 ‘폐기된 사진의 귀환: FSA 펀치 사진전’은 거대한 사진 아카이브 중에서 펀치로 구멍이 뚫린 250여장의 사진으로 구성된다. 상업 갤러리에서 하기 어려운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전시다. 이 전시를 기획한 사진이론가 박상우 중부대 교수는 “펀치된 사진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담론을 통째로 흔들 수 있는 요소를 지녔다”면서 “다큐멘터리 사진도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배제라는 행위를 통해 구축된 역사일 수 있으며 사진 자체에 따라붙는 객관성, 사실성, 진실성이 얼마나 신화적이고 허구적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라이커는 사진의 취사선택뿐 아니라 미디어를 통한 배포에도 개입했다. 그는 정부가 발간하는 다양한 보고서를 꼼꼼히 읽고 미디어 관계자들을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정부와 미디어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파악한 뒤 고용된 사진가들에게 주문했다. 도로시어 랭의 유명한 사진 ‘이주 어머니’(1936년)는 스트라이커가 선택해 미디어에 실리고 수많은 대중에 노출된 케이스다. 박 교수는 “롤랑 바르트는 사진에서 찍는 자, 찍히는 자, 보는 자에 주목했지만 펀치 사진은 또 다른 주체, 즉 선택하는 자의 존재와 선택의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갤러리 룩스는 전시와 연계해 오는 13일 오후 2시부터 갤러리 지하에서 ‘이미지 파괴와 새로운 사진이론’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박상우, 이영준, 박평종이 발제자로 나선다. 전시는 6월 4일까지. (02)720-8488.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함혜리기자의 미술관 기행]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Pinacoteca di Brera)

    [함혜리기자의 미술관 기행]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Pinacoteca di Brera)

    이탈리아 밀라노를 찾는 여행자들은 밀라노 대성당과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 다시 밀라노를 찾게 되거나 처음 밀라노를 여행하게 된다면 꼭 방문해야 할 곳이 있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브레라 미술관이다. 로마의 바티칸,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높이 평가받는 곳으로 특히 회화 컬렉션이 워낙 유명하기에 회화관이라는 뜻을 강조해 ‘피나코테카’로 불린다.  브레라 거리(Via Brera)에는 참신한 디자인의 액세서리 전문점과 가구, 갤러리, 인테리어 점, 주방용품점이 늘어서 있다. 옛 골목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브레라 거리 28번지에 미술아카데미와 미술관이 있다. 거리에서 보면 입구는 평범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중정을 둔 매우 아름다운 벽돌 건물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1층에 브레라 미술아카데미가 있고 2층에 미술관이 있는 브레라 궁(Palazzo Brera) 건물은 처음 지어진 17세기 당시에는 예수회의 밀라노 본부였다. 14세기 부터 있던 수도원 자리에 바로크 건축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리치니 부자의 설계로 1627년 완성된 건물의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차분하고 기능에 충실하다. 하느님에 대한 절대 순종을 강조하며 높은 도덕심과 인내, 소명에 따르는 생활을 통해 각자의 인격을 완성하고 교육하고 봉사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예수회의 건물다운 엄격하지만 아름다운 외관이다.  이곳이 미술관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1773년 예수회 해체를 명하자 이곳은 원래의 목적을 잃게 된다. 계몽군주를 자처하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이곳을 문화와 예술을 계몽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명했다. 그에 따라 미술 교육기관 브레라 아카데미가 들어섰고 학생들이 고상하고 세련된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조각과 회화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천문대와 도서관이 들어섰다. 건물은 1776년 아카데미의 교수 주세페 피에르 마리니의 설계로 추가 증축을 거쳤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기증한 소규모 컬렉션은 요제프 2세(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아들)가 이탈리아 북부 지방을 통치할 때 종교기관을 환속시키면서 많이 늘어났다. 수도원들이 문을 닫고 몰수한 교회의 제단화들을 옮겨 왔고, 아카데미 교수들이 이탈리아 명작 회화 컬렉션을 확보하면서 미술관의 규모를 갖추자 1786년 작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미술품은 나폴레옹 통치 시대(1799~1815)에 크게 증가했다. 나폴레옹은 밀라노를 이탈리아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북이탈리아 전역의 궁전과 귀족들로부터 약탈한 미술품들을 브레라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나폴레옹 군대는 수천점에 달하는 회화 작품을 북부와 중부 이탈리아의 교회와 귀족들로부터 압수해 브레라로 보내왔다. 그동안 쌓인 방대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1809년 새로운 미술관을 개관했다.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프랑스 군대가 철수한 이후에도 몰수된 예술품은 그 자리에 남아 오늘날 브레라 미술관의 주요 컬렉션을 이루고 있다. 미술관은 개관 이후 브레라 아카데미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1882년 공식 분리돼 북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국립미술관으로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미대 학생들로 북적이는 브레라 미술아카데미를 지나서 오른 쪽 큰 계단을 올라가면 미술관이다. 왼쪽에 안내 데스크가 있고 오른 쪽부터 전시실이 이어진다. 방을 따라서 관람하다보면 처음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브레라 미술관의 컬렉션은 13세기에서 20세기까지를 아우른다.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바로크, 베네치아 화파와 롬바르디아 화파의 그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북이탈리아 르네상스 부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만테냐의 작품을 비롯한 북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컬렉션은 이 미술관의 백미로 꼽힌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북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1431~1506)의 ‘죽은 예수’(1475~1478년)다. 7번 방에 있는 이 그림은 엄격한 사실과 자유로운 상상력, 원근법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만테냐의 대표작으로 독특한 앵글로 잡은 구도와 사실적인 표현이 인상적이다. 만테냐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미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만테냐는 관람자(혹은 화가 자신)의 시선을 대리석 침대에 누인 예수의 발 아래에서 시작해 화면 상단에 머리를 그리고, 왼쪽 구석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며 슬퍼하는 마리아와 요한의 얼굴을 측면으로 그렸다. 2차원 화면이지만 정확한 원근법을 구사해 마치 조각 작품을 보는 것 같다. 파도바 근처의 이초라 디 칼투로 출신인 만테냐는 스카르초네 밑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지만 파도바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조각가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았다. 만테냐의 작품이 견고한 조각적 성격을 띠는 것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베네치아 화파의 시조인 야코포 벨리니의 사위가 되면서 자연스레 베네치아 화파의 영향을 받아 강한 조각적 성격은 조금 누그러뜨리고 엄격한 북방적 사실주의를 견지하며 북이탈리아 화파의 르네상스 양식을 수립했다. 이 작품에서도 못에 박혀 심하게 상한 발바닥이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다. 죽은 예수의 얼굴도 초라하고 비극적이며 이를 보고 눈물 흘리는 마리아의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해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만테냐가 만토바의 산탄드레아 성당에 있는 자기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미술관에는 만테냐가 1453년 완성한 성누가 제단화도 있다. 만테냐가 성 귀스티나 성당의 성누가 예배당을 장식하기 위해 22세에 완성한 초기의 작품으로 12개의 패널로 이뤄져 있다. 만테냐의 또 다른 작품 ‘아기 천사들과 성모자’(1485년)는 원래 베네치아의 성 마리아 마지오레 수도원에 있던 것이 나폴레옹 시대에 브레라로 옮겨졌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뒤로는 구름 사이로 수많은 아기 천사들이 있는 작품으로 아기 천사들의 다양한 표정이 사랑스럽다.  지오바니 벨리니(1430~1516)의 ‘피에타’(1460년)도 브레라 미술관에서 놓치면 안될 마스터피스로 꼽힌다.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스승인 조바니는 야코포 벨리니의 아들로 형 젠틸레와 함께 3부자가 베네치아 화파의 중심을 이뤘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벨리니의 ‘피에타’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와 그를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 제자 요한의 슬퍼하는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의 ‘성모의 결혼’(1504년)은 브레라 아카데미 초기에 유입된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이다. 중앙에 사제를 두고 요셉이 마리아에게 반지를 끼워주기 위해 나서는 장면을 그린 작품은 라파엘로 특유의 우아함과 섬세함과 고요함, 조화로운 채색과 구도, 각 인물과 사물의 정교하고 부드러운 묘사가 매우 아름답다.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명인 라파엘로는 우르비노 공작의 궁정화가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태어나 문화의 중심지였던 우르비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라파엘로는 1500년경 페루자 부근에 있던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으며 제단화와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성모의 결혼’은 그가 수련기간 동안 그린 마지막 작품이다. 원래 시타 디 카스텔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 있는 산 주세페 예배당의 패널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라파엘로는 전경에 인물들을 반원 형태로 배치하고 뒤로는 아치들이 반복되어 있는 웅장한 신전을 배치했다. 중심 인물들 뒤로 기하학적으로 연결된 길을 통해 시선을 자연스럽게 신전으로 이동시킨다. 전경의 인물과 공간, 건축물의 아치들을 조화롭게 연출하면서 화면에 통일감을 주고 있다. 스승인 페로지노가 페루지아의 두오모를 위해 그린 같은 제목의 제단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확실하지만 공간과 인물의 조화에서 이미 스승을 능가함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스스로 매우 만족했던지 당시 갓 스물을 넘긴 라파엘로는 화면 속 신전의 중앙 아치에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완성한 날짜를 적어 넣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1416~1492)의 ‘몬테펠트로 제단화’(1474년)도 놓치면 안될 작품. 그는 이론가로서 ‘투시화법에 대하여’라는 책을 저술하고 건축물이 조화롭게 배치된 패널화 ‘이상도시’(1470년)를 통해 원근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엄밀한 원근법으로 재현된 건물의 내부에 성모가 아기예수를 무릎 위에 눕히고 있고 그 앞에 갑옷을 입은 우르비노 공작 몬테펠트로가 무릎을 꿇고 있다. 그 주위는 성녀와 성인들이 에워싸고 있다. 원근법에 따라 그려진 공간에 인물의 크기도 위치에 따라 비례를 정확하게 계산해 그려 착시를 일으킬 정도다. 맑은 색채와 위엄 있고 당당해 보이는 인물 표현이 당시로서는 매우 전위적이다.  벨리니 형제가 그린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는 성마르코’(1506년)와 베네치아 화파의 또 다른 거장 틴토레토의 ‘성마르코 유해의 발견’(1566년), 카라바조의 ‘엠마우스에서의 저녁식사’(1605년) 등 마스터피스들을 감상하다보면 다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다. 북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 프란체스코 아이예즈의 달콤한 ‘입맞춤’(1859년) 앞에서 피곤을 달래보자. 아이에즈는 브레라 아카데미의 원장을 지냈고 30년간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화가로 부드럽고 세밀한 묘사, 인물의 정교한 감정표현에서 뛰어났다. 고성의 으슥한 계단 앞에서 두 남녀가 입을 맞추는 작품은 매우 낭만적이다. 남자는 아마도 떠돌이 음유시인이고, 여자는 양가집 규수일 수 있겠다. 달콤해 보이는 그림 뒤에는 정치적인 은유가 내포돼 있다고 한다. 남자의 옷 색깔이 붉은 색, 여자의 비단 드레스 색깔이 푸른색인데 이는 각각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상징한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두 남녀의 입맞춤을 통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불안한 동맹관계를 표현했다. 미술관이 있는 팔라초 브레라의 담을 끼고 오른편에 팔레트를 손에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프란체스코 아이예즈의 동상이 서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보이스피싱으로 먹고 사는 도시가 있다고?

    보이스피싱으로 먹고 사는 도시가 있다고?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가 기승을 부려 한국에서도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의 진(鎭)급 소도시에서 전체 인구의 29%가량이 해당 범죄 경력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눈길을 끌고 있다.  28일 신경보(新京報)에 따르면 중국 후난(湖南)성 솽펑(雙峰)현은 전화·전신사기의 온상으로 악명이 높다. 특히 솽펑현의 저우마제진(지도)은 인구 7만명 가운데 2만명이 각종 서류위조, 전화·전신 사기에 가담한 경력이 있다.  솽펑현의 거리 곳곳에 걸린 “전민 총동원으로 전화·전신 사기에 결연히 대응”, “솽펑현에 드리워진 악명을 벗자”, “전화·전신사기범 엄격 처벌” 등의 표어와 현수막이 솽펑현의 악명을 반증한다.  지난달 솽펑현 우더화(吳德華) 당서기는 “전화·전신사기 범죄의 온상이라는 ‘모자’를 벗자”고 호소했는가 하면 현(縣)정부는 주민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각종 사기범죄가 난무해 현 전체인민이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게 됐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이런 범죄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쓰기 전까지 솽펑현은 청나라 말기 4대 명신 중 한 명이자 문학가로 유명한 쩡궈판(曾國藩), 중국 공산당 초기 이론가 겸 혁명가인 차이허린(蔡和林)의 고향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개혁개방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던 1990년대말 배금주의 물결이 중국을 휩쓸면서 솽펑현도 변했다.  솽팡현 주민들은 애초 문서위조로 큰돈을 벌기 시작했다.10위안(1800원) 가량) 비용으로 학력을 위조해주면 수천 위안을 벌 수 있었다. 농민공으로 도시로 나가 천대받으면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손쉬운 돈벌이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들어 인터넷 조회가 일반화되면서 학력위조가 어렵게 되자 포토샵 사기, 전화·전신사기로 발전했다. 사기범들은 1만 위안 정도로 살 수 있는 문자 발송기를 사용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사기극을 벌였다. 휴대전화로 고위 관리의 사진을 여성 사진과 합성한 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와 함께 보내면 즉시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관리들은 자신의 성추문이 폭로될 것이 두려워 돈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수법이 의의로 성공률이 높다고 알려져 차츰 더 많은 사람이 이 업종에 뛰어들었다.  중국 관영 CCTV는 최근 보도에서 범죄가 번성할 때 저우마제진 주민들이 은행· 우체국 부근에 둘러앉아 도박·잡담·술을 즐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휴대전화를 이용해 돈을 사취하는 모습이 일상이었다고 보도했다.  저우마제진은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시골에서 보기 어려운 번듯한 가옥이 즐비한 것도 모두 이런 식으로 축재한 결과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심지어 솽팡현 부모들은 자녀에게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친척집 등에 보내 위조사기 수법을 배우도록 해 생업으로 삼게 했다고 CCTV는 소개했다.  저우마제진의 부진장인 주웨이화(朱衛華)는 이런 축재방식이 보편화하면서 주민의 죄의식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특정 세대 전체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솽펑현에서 이런 악성 범죄가 줄어들기는커녕 더더욱 확산하자 급기야 중국 국무원은 이 지역을 아예 중점관리지구로 정하고 연말까지 전화·전신사기 범죄 발생 건수를 작년보다 90% 이상 낮추지 않으면 해당 관리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중국 문화대혁명 주도한 마지막 생존자 치번위 별세

    중국 문화대혁명 주도한 마지막 생존자 치번위 별세

    중국의 문화대혁명(문혁)을 주도했던 핵심 인물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던 극좌 사회주의 이론가 치번위(戚本禹)가 세상을 떠났다. 85세. 21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중앙문혁소조의 마지막 일원이었던 치번위가 전날 오전 상하이에서 암으로 숨졌다. 1931년 산둥성에서 태어난 치번위는 중학생 때 중국 공산당 지하당에 가입했고 1950년 마오쩌둥(毛澤東)의 부인 장칭(江靑)이 운영하는 마오 주석 개인 사무실의 기밀 담당 비서로 선발됐다. 문혁이 본격화된 1966년 중앙문혁소조 조원으로 선임된 치번위는 당 중앙판공청 비서국 부국장, 당 이론지 훙치(紅旗) 부편집장 등 요직을 맡았다. 치번위는 문화대혁명 4인방(장칭, 왕훙원, 장춘차오, 야오원위안) 중 한 명인 야오원위안과 함께 ‘난야요베이치’(南姚北戚·남에는 야오원위안, 북에는 치번위)로 불리며 홍위병 운동을 주도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에펠탑·모네 말고… 프랑스 시각예술의 오늘

    에펠탑·모네 말고… 프랑스 시각예술의 오늘

    한국과 프랑스의 국교 수립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 시각예술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다양한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얼핏 보기에 난해하지만 독특하고 창조적이며 사회적 메시지와 철학적 깊이가 담긴 ‘프렌치 스타일’을 멀리까지 가지 않고도 감상할 수 있는 찬스다. ●국립현대미술관 ‘질 바비에’展 국립현대미술관은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 프리쉬라벨드메와 공동으로 조형예술가 질 바비에(51)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에코 시스템:질 바비에’전을 서울관에서 열고 있다. 남태평양의 바누아투공화국 태생으로 마르세유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영국의 수학자 존 콘웨이가 고안한 ‘생명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세포 증식의 개념을 작품에 도입했다. ‘생명게임’은 임의적으로 배열된 세포들이 기본 법칙에 의해 자동으로 생성·소멸하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증식의 퍼즐을 만들어 낸다는 논리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에서 그는 변이와 증식으로 가득한 기이한 세계를 100여점의 드로잉과 설치 작품으로 보여 준다. 작가의 두상을 주물로 떠서 만든 분홍색 머리에 바나나가 박힌 ‘바나나가 박힌 머리’, 입에서 플라스틱 말풍선이 면 가닥처럼 뿜어져 나오는 ‘다변증’ 등은 자아와 정체성 탐구를 위해 자기 파괴와 생성을 시도한 것이다. 인간주사위 사전을 가로세로 각 2m의 종이에 옮겨 놓은 ‘백과사전’ 연작, 기억을 해체한 뒤 재구성한 ‘블랙 드로잉’ 연작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바비에는 “합리적이지 않은 것, 사회 통념에 반하는 것이 때로는 사람에게 더 큰 자유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나의 작품을 예술이라는 넓은 세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봐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보이지 않는 가족’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일우스페이스에서는 프랑스의 문화 비평가이자 이론가인 롤랑 바르트(1915~1980)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 담긴 사진론에 기반을 둔 전시 ‘보이지 않는 가족’전이 열린다. 바르트는 파리에서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세계 순회전시 ‘인간가족’을 관람한 뒤 이 전시가 개인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인간가족’전은 세계 각국의 사진작가가 보내온 200만점의 사진 가운데 500여점을 골라 출생부터 사춘기를 거쳐 가족을 형성하는 모습을 연대기 순으로 펼쳐 놓은 것이었다. 바르트는 사진이 삶의 여정을 단순화하고 획일화하며 기독교적인 시각을 주입한다고 분석하고 1980년 저서 ‘카메라 루시다’를 통해 위인보다 약자, 집단보다는 개인, 서사적 역사보다는 사소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는 예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5월 29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선 바르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워커 에번스, 윌리엄 클라인, 신디 셔먼, 제프 쿤스 등 1960~1970년대 이후 현대 사진가, 미술가 90명의 작품 20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같은 기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도시괴담’전은 서울시립미술관의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파리의 실험적인 전시공간인 팔레드도쿄의 파비옹이 협업해 진행한 레지던시 교류 프로젝트 결과를 보여 준다. ●이응노미술관 뉴미디어 아트 프로젝트 대전시립 이응노미술관은 6월 26일까지 프랑스 2인조 작가 르네 쉴트라&마리아 바르텔레미를 초청해 이응노의 문자추상 작품과 실험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2016 이응노미술관 뉴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레티나:움직이는 이미지’전을 열고 있다. 파리와 툴루즈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두 사람은 광섬유, 영상,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학 등 과학 원리를 예술과 접목한 신작 ‘레티나’를 선보인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한나 아렌트의 말(한나 아렌트 지음, 윤철희 옮김, 마음산책 펴냄) 독일 태생의 유대계 미국 정치이론가인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 등 자신이 주창한 주요 개념에 대한 설명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인터뷰집이다. 208쪽. 1만 4500원. 2030 대담한 도전(최윤식 지음, 지식노마드 펴냄) 대표적인 미래학자로 꼽히는 저자가 앞으로 5년 동안 한국 등 아시아에서 벌어질 금융 위기를 예측하고 미래 산업에 대한 치열한 각축전을 전망한다. 740쪽. 2만 8000원. 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존 서덜랜드 지음, 이강선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서양 문학의 시작인 신화부터 서사시, 셰익스피어와 카프카, 보르헤스, 마르케스 등 남미 문학까지 모든 장르를 설명하는 문학 역사의 개설서다. 376쪽. 1만 8000원. GDP의 정치학(로렌조 피오라몬티 지음, 김현우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우리가 알고 있는 혹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국내총생산(GDP)의 수학적 객관성 뒤에 숨어 있는 불평등을 파헤친다. 239쪽. 1만 5000원. 명랑 시인의 귀촌 특강(남이영 지음, 세종서적 펴냄) 1억원으로 내집 갖기에 성공한 저자가 실패 없는 귀촌 생활을 위해 귀촌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실전 노하우를 전한다. 295쪽. 1만 4000원. 산 아줌마(윤나리 글·그림, 현북스 펴냄) 놀아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계절마다 다른 놀이를 선사하는 산 아줌마의 손길과 품이 따스하다. 현북스의 2015년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 공모전 우수작. 40쪽. 1만 2000원.
  • [새 영화] 파리의 한국남자

    [새 영화] 파리의 한국남자

    한 한국 남자가 초췌한 모습으로 노트르담 다리 밑에서 노숙을 하며 프랑스 파리를 2년째 떠돌고 있다. 행복을 만끽하던 파리 신혼 여행 중 나이 어린 아내를 잃어버렸다. 어느 날 오후 한 카페에서 잠시 담배를 사러 간 사이 아내가 사라진 것. 아내가 납치돼 인신매매된 것으로 여기는 남자는 파리 사창가를 뒤진다. 어려서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 매춘부는 그에게 묻는다. “아내를 다시 찾는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28일 개봉한 ‘파리의 한국남자’는 독립 영화계에서 분투하는 전수일 감독의 열 번째 작품이다. 전 감독은 인간의 삶과 갈등을 깊게 들여다보는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국제영화제의 단골 손님이다. 영화는 전 감독이 파리 유학 시절 지인에게 들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전 감독은 “우연한 사건에 의해 운명이 바뀌게 된 주인공이 그 운명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따라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파리는 낭만의 도시로 묘사되는 일이 많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게 흥미롭다. 어두컴컴한 다리 밑, 국제 창녀 거리, 차이나타운, 숲 속 사창가, 노숙자 쉼터, 포르노 영화관 등 이면이 비쳐진다.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끊임없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카메라가 불편할 수도 있다. 일부 노출 장면이 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가는 장면도 끼어든다. 아내가 스스로 떠났는지, 납치됐는지조차 애매모호하다.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전 감독은 “답을 써놓고 반전을 넣어 의문을 해결하는 관습적인 영화에서 벗어나려고 했다”고 말했다. 배우 조재현이 ‘내 안에 우는 바람’(1997), ‘콘돌은 날아간다’(2013)에 이어 전 감독과 세 번째 협업을 하며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는 “독립영화계에서 자유로운 소재와 자본으로 자기 색깔의 영화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야 상업영화에도 자극이 되는데 독립 영화는 만들기도, 관객과 만나기도 더 어려워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열악한 상황에서도 열 번째 독립영화를 찍은 전 감독이 존경스럽다고 치켜세웠다. 전 감독의 지인이자 프랑스 영화계 인사들이 우정 출연했다고 하니 한 번 눈여겨볼 일. 영화이론가 자크 오몽 교수가 노숙자 쉼터의 군복 노인을, 영화평론가 벵상 말로자가 매춘부의 고객 등을 연기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 86분.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문화마당] 서양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서양/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문화마당] 서양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서양/코디 최 미술가·문화이론가

    과거 서양의 아시아 식민화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물리적인 공간의 지배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정신적인 폭력에 시달린 아시아의 문화 공간이며, 이 공간은 서양 속에 존재하지 않는 서양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실례로 한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려주는 팝송 중에는 미국에서 거의 들을 수 없는 곡들이 종종 방송되는 것과 미국 거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MTV 가수들의 패션을 홍대 거리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서양에는 없는 얼굴 작은 미인, 키 큰 미남과 같은 서구미의 기준이 우리 사회에 일반화된 것 등을 감안할 때, 우리 속에 있는 서양은 서양 속에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아시아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문화 연구가 필요하다. 첫째, 상대적인 입장과 관점에서 재해석을 시도하고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찾아야 한다. 둘째, 틀에 박혀 있는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개선해야 한다. 셋째, 적개심과 저항을 절충할 수 있는 문화와 언어를 찾아야 한다. 이것은 보편적 실재 또는 보편적 특성의 행동 양식을 이룩하는 것으로 ‘식민주의의 진정한 완성’이며 동시에 ‘탈식민지 사상’이다. 또한 이는 문화적 갈등과 불균형 구조를 초월하고 관점을 바꾸어 새로운 시각을 가짐으로써 서로 연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침략자적 입장을 취하는 새로운 문화는 전통 문화 또는 이미 정착돼 있는 문화에 침투해 주도권을 잡으려고 시도하는데, 이에 대해 기존 문화권은 종종 상반된 두 가지 태도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무저항적 수용이며, 다른 하나는 격렬한 충돌이다. 예컨대 1990년대 들어 미국 힙합문화의 침략에 대해 무조건 수용하며 따라가던 세력과 우리 가은 세계적인 것이라며 전통을 찾으려고 저항하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인도의 문화학자이며 심리학자인 애슈스 난디는 이 두 가지 모두 본질적으로 식민지 근성의 뿌리에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난디는 제3의 방법론을 제시하는데 ‘관찰자로서의 반대론자’가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무저항적·수용적 태도로 서양의 문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영원히 변화될 수 없는 우리의 본질을 발견해야 하며, 문화 식민화 과정을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바라봄에 따라 서양 문화와 아시아 문화 사이의 과거, 현재, 미래를 순차적이고 단계적인 연속선상의 역사적 관계로 바라보게 될 때 그 속에서 미래 문화의 비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반드시 강조돼야 할 것은 설령 서양문화권에서는 가볍게 취급해 쉽게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학술적 기대치 때문에 무시되는 아시아의 문화라 해도 아시아 사회는 그들의 독특한 입장과 개념 그리고 그들의 언어 체계 아래 명확한 사상과 감정을 포용한 자체의 미래를 찾아내야 한다. 이는 곧 자신의 자생적 문화의 미래와 그 실체를 찾아가는 대안이 된다. 만약 이와 같은 연구를 하지 않을 경우 전통 문화는 진부한 과거에 수감돼 있는 죄인이 되며, 현재와 미래는 오로지 서구의 문명화 과정에만 끌려가게 된다. 우리가 가져야 할 서양 문명과 문화에 대한 입장이 무저항적 수용과 충돌을 벗어나 신중하게 자체의 근거를 지키며 진리를 간파하고 서로를 존중할 때 각자의 피해를 줄일 수 있고, 동시에 타 문화에 대한 수준 높은 저항주의와 미래 문화 창조가 가능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