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이론가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울산지법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협력사업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신입사원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 김나영
    2026-01-2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2
  • 유영수씨·한경희씨/서울 국제만화페스티벌 자원봉사

    ◎전북대 정외과 4년 유영수씨/세종대 영상만화과 1년 한경희씨/“만화는 풍자로 사회를 정화시키는 도구/검찰의 만화가 사법처리 표현자유 침해”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만화인의 길을 간다” 지난 14일부터 21일까지 1주일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 태평양관에서 열린 ‘제3회 서울국제만화페스티발’에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만화문화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이 구름같이 몰려 들었다. 사무국에서 무료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유영수씨(26)도 그중 한사람. 전북대 정외과 4학년에 재학중인 유씨는 한달전에 상경,친척집에 머물며 페스티발 홍보책자 제작작업에 참여하고 행사기간에는 진행을 돌봤다. “문화적 자극을 받기 위해 참여했습니다.만화에 대한 정보도 얻고요” 유씨의 꿈은 만화이론가와 평론가이다.그림에 대한 미련도 있다.전공과 연결시켜 촌철살인의 정치만화를 그려볼 생각이다.대학 만화동아리에서 습작활동을 꾸준히 해온 터다. 신문에 나는 한컷짜리 만화로도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얻고 생각거리를 제공받게 된다는 것이다.만화는 사회·문화의 담론까지도 담아낼 수 있는 효과적이고 복합적인 도구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만화에 대한 애정으로 치자면 한경희씨(23)도 빠지지 않는다. 한씨는 인하대 전자계산공학과 3년을 다니다 올해 세종대 영상만화과에 입학한 만화 마니아다. “만화에 대해 무한한 가능성을 느낍니다.흔히 대본소나 출판 만화를 만화의 전부로 인식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조형물과 컴퓨터애니메이션도 만화의 영역이며 만화적 요소가 가미된 모든 ‘만화적 표현’이 만화의 세계라는게 한씨의 설명이다. 나아가 ‘사회비판의 도구로서 만화는 가장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매체’라며 ‘풍자로 세상을 정화시키는 도구’라고 자랑했다. 유씨와 한씨는 특히 최근의 만화가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가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단견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만화축제기간 ‘만화세상’을 여행하며 새로운 경험과 신선한 자극을 얻느라 여념이 없었다.
  • 백제와 소제의 항주(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7)

    ◎서호호반엔 백낙천·소동파의 숨결이/제방 능수버들·복사꽃길 따라 사랑이 움트고/기생시인 소소소무덤에는 젊은연인 발길 이어져 항주는 굳이 문학이 아니어도 중국에선 지상의 낙원으로 불리어 왔다.거기는 서호가 있고 용정차가 있고 항주 비단이 있는가 하면 일찍이 서시를 낳았다. 서호는 1산·2제·3도를 안고 있다.산은 고산,제는 백제와 소제,도는 소영주·호심정·완공돈을 말한다.서호 북에는 비래봉에 영은사·악묘,서호 남에는 전당강에 육화탑이 우뚝서 있다. ○230년간 남송·오월 도읍지 항주는 수려한 산수에 그치지 않는다.정치의 중심으로도 역사를 주도했다.흔히 남송(1127∼1279)의 서울로만 알려졌지만 그보다 앞서 오대때 오월(893∼978)의 서울이었으니,항주의 서울 노릇도 230년을 기록했다.하지만 남송 150년은 북방 이민족과의 대치속에 기형적인 번영을 누렸으니 우리는 그를 편안왕조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땅이 땅이요,사람이 모이는 남중국의 문화성인 만큼 문인도 많았다. 북송때 사단에서 완약파의 집성자요,격률의 창시자로알려진 청진거사 주방언(1057∼1121)을 비롯해 역시 북송때 고산에 은거하여 ‘매화를 아내 삼고 학으로 자식 삼았던 시인’ 임포(967∼1028),그리고 청나라때 시의 해방과 성령을 주장했던 시인이요 이론가였던 원매(1716∼1797),근대의 개량주의 기수로서 사회 비평시를 썼던 시인이요 사상가였던 공자진(1792∼1841) 등이 모두 항주 사람이다. 그럼에도 지금 항주에는 항주의 문인을 기념하기 위한 시설이나 그들의 유적이 많지 많다.고산에 있는 임포의 ‘방학정’과 그 옆의 송나라때 기생시인이던 소소소의 무덤이 고작이다.오히려 항주에서 벼슬을 했거나 항주에서 객거했던 사람들이 그 치적이나 문적을 남기고 있다. 그중에도 당·송 양대를 대표했던 시인 백낙천(772∼846)과 소동파(1037∼1101)가 쌍벽을 이룬다.그들은 시기를 달리한 채 항주에 와서 자사와 지주를 지내며 선정을 베풀고 명작을 남겼다.그들은 항주 사람이 아니면서 항주 관리를 지냈지만 지금 항주의 명승으로 꼽히는 서호에서 한 사람은 동서 1㎞를 가로로 누웠고,한 사람은 남북 2.8㎞를 세로로 누워 있다. 그 동서를 가로지른 복사꽃·버드나무의 방죽을 백제라 한다.세상은 백락천 재임중(822∼824)에 시설했다지만 백제는 본디 백사제.다만 백락천이 재임중 저수와 배수에 공로를 세운지라 그가 이임할 때 항주 시민들이 길을 막고 눈물로 만류했다는 기록이 보인다.특히 백락천의 시 ‘시민의 곁을 떠나며(별주민)’에선 그 정경이 진솔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백락천이 항주를 떠난뒤 그를 기리기 위해 백사제를 백제로 불렀으니 시인을 향한 연모의 정이 이렇게 방죽처럼 단단해진 것이다. 그 남북을 세로로 뻗은 능수버들과 사철 꽃숲의 장막인 소제야말로 소동파가 재임중 서호를 넓히고 그 청결을 위해 서호의 토사를 준설하여 인공 축성한 방제인 것이다. 소제는 여섯 개의 다리를 거느리고 있다.다리마다 경개를 달리하면서 그 시야도 다르다.연꽃인 양 떠있는 섬들을 보면서 숲속을 거닐수 있다.어느새 사랑의 길로 변했지만 봄날 이른 아침 부연 안개속이 제일이란다.그래서 ‘소제춘효’는 서호 10경의 으뜸으로 꼽혔다. 소제가 끝나는 남단에 빨간 창에 하얀 벽의 날듯한 추녀가 더덩실 서있다.거기엔 3m 높이의 화강석 조각으로 소동파가 서 있다.그것만으로도 ‘소동파기념관’임을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청진거사·시인 임포 등 배출 물론 소동파는 송나라 시단의 엄지손가락이다.거기다 항주에서 두번이나 지방장관을 지냈다.한번은 36세때인 1071년에서 74년까지 통판을 지냈고,한번은 54세때인 1089년에서 91년까지 지주를 지냈다.동파는 비록 남방 여러 곳에 유배당하는 불우함을 겪었지만 항주의 재임 5년동안 항주의 재난을 복구하고 수리를 개선하려 소제를 건축,훌륭한 업적과 미담을 남겼다.동파 스스로도 항주를 고향으로 여기면서 서호에 살고 싶다는 감회를 남긴바 있었다. ‘거항적오세,자의본항인.고산귀무가,욕복서호린,’(항주에 오년 살았거늘/스스로 항주사람이라 여기네.고향에는 살 집도 없기로/서호 호반에 깃들고파라.) ○방축끝 소동파기념관 우뚝 지금 항주는 구석마다 동파가 살아 있다.거리에는 ‘동파로’ ‘학사로’의 이름이 있는가 하면 먹거리로‘동파육’ ‘동파어’ 등이 있다.그중에도 항주시청이 1988년,동파 부항 900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이토록 장엄한 기념관을 서호의 남단에 세운 것을 첫 손에 꼽겠다. 그 안에는 동파의 문학과 항주의 치적을 일목요연하게 자료로 전시했는데 특히 명말의 천재화가 팔대산인의 ‘동파조운도’가 인상적이다.조운은 동파가 항주 재임때의 시첩이었다.동파가 항주로부터 다시 유배를 당하자 조운은 죽기로 그를 따르기로 몸부림치다가 드디어 몇년뒤 죽고 말았는데 그 순정을 그린 것이다. 이 밖에 두어가지 문학유적만을 들고 싶다.동파기념관에서 아득히 보이는 작은 섬 ‘호심정’이 있다.그것은 수면에 찰랑거리는 마름이다.때로는 물결에 삼키어져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그 호심정이 이름을 떨친 것은 명말의 대표적인 유미주의 수필가였던 장대(1597∼1676?)가 소흥사람이면서 항주에 객거할 때 쓴 ‘호심정간설’이란 짧은 글이 세상의 사랑을 받으면서부터였다. 또 하나는 앞에서 말했던 이 고장 출신의 기생 시인 소소소의 무덤이다.서호의 북단,후산으로이어지는 서령교옆에 있다.옛날에는 작은 흙무덤,지금은 날렵한 육각정이 섰다.이름도 ‘모재정’.비록 한낱 노래하는 기생이었지만 그 높은 재주를 기리느라 항주시청이 세워 준 것이다.미색을 기리는 무덤에는 물론 전설이 따랐다.문화혁명 전까지만 해도 항주의 젊은 연인들이 여기 와서 그 흙무덤을 어루만지면 소소소의 영기를 받는다고.그래서 젊은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항주의 시인 용피득씨가 귀띔해 주었다.
  • 중 ‘국가주인’ 노동자 지위 격하/홍콩 영자지 보도

    ◎시장원리따라 ‘고용된 종업원’ 재규정 추진 【홍콩 연합】 중국 지도부는 최근 들어 빈번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소요사태를 진정시키고 국영기업 개혁을 가속화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현재 ‘국가의 주인’으로 규정돼 있는 노동자 지위를 ‘고용된 종업원’으로 현실화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홍콩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20일 북경 소식통들을 인용,보도했다. 강택민 국가주석 겸 당총서기의 측근들이 포함된 개혁 성향의 간부들은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노동자도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에 따라 신분과 보수 등이 결정되는 단순 고용원의 지위로 재규정돼야 한다는 판단 아래 오는 9월 개최되는 당 제15차 전국대표대회(15 전대회)에서 채택을 목표로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중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들은 최근 국유기업 개혁방안을 논의하는 내부회의에서 노동자가 국가의 주인이라는 신분을 계속 향유하는 한 대량 감원 등의 개혁조치가 단행되기 어렵기 때문에 노동자의 지위와 신분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모택동 사상을 추종하는 좌익측은 유인물을 통해 노동자 지위는 당헌과 헌법에 보장돼 있다고 지적하고 노동자 지위를 고용원 신분이나 상품으로 격하시켜서는 안된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좌익 이론가들은 또 공장의 경영간부들의 권한 확대에도 반대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최근 국유기업의 도산결과 많은 실업자가 발생하자 사천성 등 여러지역에서 실업 보상대책 등을 요구하는 노동자 시위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 이론가답게 일목요연하게 답변/황장엽 회견­이모저모

    ◎제스처 써가며 김정일 비난/“서울말 빨라 못알아 듣겠다” 황장엽씨는 10일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2시간여 동안 꼿꼿한 자세를 유지,74세의 고령답지 않은 건강을 과시했다.특히 질문을 일일이 메모해가며 경청한뒤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빠트리지 않고 답변했다. ○…황씨는 질문내용을 잘 이해못했거나,질문요지가 불분명하면 반드시 되묻는 등 치밀한 성격을 드러냈다. 황씨는 여성기자의 질문이 너무 빨라 이를 얼른 알아듣지 못하자 “서울에 온 이후 TV를 보면서 서울말을 익히고 있는데도 여성들이 하는 말은 너무 빨라 가끔 알아듣기가 힘들다”고 조크를 던지는 등 여유를 보였다. 그는 북한 지식층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는 손을 사용해 제스처를 써가면서 “귀와 입,눈을 모두 막고 있기 때문에 지식층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표현할 수가 없다”고 비난했다.이어 북한의 전쟁도발 가능성에 대비하라는 ‘충고’를 하면서 “심장으로 얘기하는 것”이라고 간절함을 표현했다. 황씨가 냉철한 자세를 보인데 반해 김덕홍씨는 웅변가처럼답변해 대조적.김씨는 황씨의 망명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큰 뜻’을 품고 있음을 큰 목소리로 거듭 강조했다. ○…황씨는 답변도중 목소리가 쉰듯 가끔 탁한 소리를 내거나 기침을 해 후두부분에 이상이 있음을 나타냈다. 황씨는 회견초반 “10년전부터 만성 후두염으로 말이 제대로 안나온다.그러나 될 수 있는대로 큰 소리로 해보겠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안기부측은 황씨가 달변에다 출중한 이론가인 점을 고려,회견을 앞두고 아무런 주문도 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황씨가 알아서 자유롭게 하도록 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견중 시종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던 황씨는 회견이 끝난뒤 평양상고 동창인 강기석씨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서로 잠시 껴안으며 눈물을 머금어 눈길을 끌기도. ○…이날 회견은 상오 10시 안기부 엄익준 제3차장의 황씨 조사결과 발표뒤 10시15분쯤 황씨와 김씨가 회견장에 입장한데 이어 황씨가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 낭독후 12시10분까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0여명의 내외신 기자가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견은 TV 라디오로 전국에 생중계된 것은 물론,미 CNN을 통해 전 세계에도생중계됨으로써 국제적 관심도를 반영했다.
  • 삼봉 정도전 개혁가인가 권력화신인가/문집 「삼봉집」1,2권 출간

    ◎저서·개인사·경제­군권장악 배경 등 망라/배불사상 집대성 「불씨잡변」의 의미 재해석 조선 개국의 막후 실력자이자 정치이론가로 조선의 장량을 꿈꾸었던 삼봉 정도전.『한고조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고조를 이용하였다』며 취중진담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과연 야심찬 개혁가인가 권력의 화신인가. 고려 말∼조선 초의 성리학자이자 조선왕조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문집 「삼봉집」(1·2권,민족문화추진회 엮음)이 솔 출판사에서 나왔다.특히 이 책은 최근 인기사극 「용의 눈물」로 인해 정도전의 사상이 재조명되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시의성을 더한다.이 책에는 정도전의 개인사와 다양한 저서,경제·군사권을 거머쥐게 된 배경,북방정책 추진,신권 우위의 관료정치 운영,사회적 폐단을 제거하기 위한 불교·도교 비판 등 삼봉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이 망라돼 있다. 정도전은 원대한 야망을 품고 전제개혁을 주도,경제권을 장악했으며 군사제도 개혁을 통해 병권을 잡았다.병권장악 뒤에는 역성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정몽주 등 반대파를 제거하고 이성계를 추대,조선왕조를 여는데 큰 역할을 했다.그러나 정도전은 새 왕조건설에 분골쇄신한 보람도 없이 권좌에 앉은지 7년만에 세자 방석에 당부,종사를 위태롭게 했다는 죄명으로 방원에게 참수당했다. 정도전의 저술은 크게 시문,경국제세에 관한 것,성리철학과 불교비판에 관한 것,병서,악사 등 다섯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삼봉이 지은 시문은 각종 형식의 시를 비롯해 부 사 소 전 서 기 서 등 다양하다.이 작품들은 대부분 새 왕조창업 이전의 불우했던 시절에 씌여진 것으로 그의 문학적 자질의 비범함을 보여준다.특히 고려말 회진에 유배되었을때 쓴 「금남잡제」와 「금남잡영」,그리고 유랑 독서생활을 하던 시기에 쓴 글들은 삼봉의 호방하면서도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읽게 한다.신숙주는 그의 시문에 대해 『삼봉의 시는 고담웅위하고 문은 통창변박하다』고 평했다. 경국제세에 관한 저술로는 새 왕조의 문물제도와 통치규범을 정리하고 체계화한 것들로 「조선경국전」「경제문감」「경제문감별집」「감사요약」「고려사」 등이있다.「경제문감」에서 삼봉은 재상권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이같은 주장은 현실적으로 삼봉 자신이 실권을 쥐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그러나 그보다는 유가 특히 성리학자들의 정치사상적 이상이 일반적으로 재상중심 체제에 있었다는 사실에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말·선초의 역사적 시점에서 볼때 성리학은 불교보다 한층 전진적인 성격을 지녔다.그런 점에서 정도전의 불교비판은 사상사의 문맥상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창출운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삼봉의 배불사상을 집대성한 것이 그가 죽기 직전에 쓴 「불씨잡변」이다.삼봉은 불교의 교리를 윤회설 인과설 심성설 지옥설 등 10여편으로 나눠 조목조목 비판한다.불교에 대한 그의 철학적 비판은 유교적 편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때문에 그것에는 나름의 억측과 독단이 적지않다.그러나 성리학의 입장에서 불교를 이렇듯 철저하게 비판한 것은 동아시아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것으로 사상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삼봉은 문신이면서도 병법에 조예가 깊었다.그는 부국강병의 이념으로 문과 무를 똑같이 중시했다.그의 숭문숭무정신은 「진법」「오행진출기도」 등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삼봉은 이성계의 창업을 기리기 위해 「문덕곡」「몽금척」 등 악사도 지었다.정치가로서 뿐만 아니라 사상가로서도 일가를 이룬 정도전의 면모를 포괄적으로 다룬 이 책은 조선의 건국이념과 한국학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 유로정책 성장·고용 고려해야/로버트 레빈(해외논단)

    유럽의 단일통화는 각국의 중앙은행이나 경제학자들이 내세우는 것 같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경제성장,고용창출을 고려한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기준을 갖고 만들어야 한다고 로버트 레빈 미국 랜드연구소 명예 책임연구원이 주장했다.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최근호에 실린 그의 기고문 「유럽,성장과 고용을 위한 통화가 필요하다」를 요약한다. 얼마전 치러진 프랑스 총선에서 좌파가 승리했다.총선 전 야당이었던 사회당 당수 리오넬 조스팽은 이제 총리가 됐다.사회당이 내세우고 있는 정책들의 의미가 여전히 불확실하긴 하지만 한가지는 아주 분명하다.유럽연합이 유럽의 단일통화로 채택한 유로(Euro)의 탄생이 앞으로 해결해야할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프랑스 선거결과는 프랑스 유권자들이 유럽통합을 선언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가 엄격한 긴축재정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을 입증했다.프랑스 선거결과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규정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가치를재평가하려는 독일정부의 움직임과 때맞춰 나왔다.독일은 이 문제로 정부와 중앙은행이 갈등을 빚고 있다. ○99년 탄생까지 어려움 산적 어쨌던 이 두가지 사건,즉 프랑스선거결과와 독일정부­중앙은행의 갈등은 99년으로 예정된 단일 통화 유로가 제때 탄생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거나 아니면 원래의 안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질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다행히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로 시작해 리오넬 조스팽으로 끝난,5월1일부터 6월1일까지 한달 동안에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은 유로의 탄생을 가능케 만들었다.영국의 새 정부는 유로에 대해 『노』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요구하는 유로의 조건에 대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도버해협 양쪽의 새 정부들이 다음과 같은 새로운 모델의 유럽 단일통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독일 경제상황 변수로 작용 ▲성장을 보장하는 통화 ▲고용을 촉진하는 통화 ▲단일통화 추진과정에서 구조 개혁으로 인해 피해를 겪는 사람들을 위한 보완 대책을 마련하는 것 ▲이탈리아·스페인·영국을 포함,서구의 주요 경제국을 참여시키는 통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중앙은행들과 경제 이론가들의 엄격한 규칙보다는 정치지도자들의 현실적인 생각이 최종적으로 반영되는 통화. 그러나 독일은 아직 그같이 유연한 기준의 통화를 받아들이기보다 마르크화의 굳건함을 원하고 있다.앞으로 1년간 독일은 헬무트 콜 총리가 선거를 위해 뛸 것이다.그러나 독일경제가 현재와 같이 계속 침체된다면 그는 프랑스 총선에서 패배한 알렝 쥐페 전 총리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그래서 아마도 콜총리조차도 정권을 내놓는 쪽을 택하기보다는 유럽통화의 재설계에 참여할 지 모른다.유럽단일통화의 출현은 아마 독일정부가 융통성있고 성장지향적인 통화의 필요성에 대해 동참할 때 중요한 전진의 발걸음을 내디딜수 있을 것이다.〈미 랜드연 명예 책임연구원/정리=유상덕 기자〉
  • 주목받는 「페미니즘」 이론·소설 신간

    ◎페미니즘,무엇이 문제인가­자기모순에 빠진 여성 해방전략/여자들의 꿈­여성들에 의한 여성들의 꿈 해석/속상하고 창피한 마음­「선구자」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 18편/「도둑신부」 1,2권­미학적·시적장치속의 여성 내면세계 페미니즘 혹은 여성주의라는 말은 이제 진부하게 들릴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페미니즘과 관련된 책 또한 대형서점의 한 코너를 차지할 만큼 많이 늘었다.그러나 이론서는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대중서적은 너무 가벼운,「넘고 처지는」 형편이다.최근 이문열의 장편소설 「선택」을 둘러싼 페미니즘 논쟁이 한창인 가운데 다양한 페미니즘 관련서적들이 쏟아져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우선 꼽을만한 것은 「페미니즘,무엇이 문제인가」(캐롤린 라마자노글루 지음,문예출판사),「여자들의 꿈」(루시 구디슨 지음,또 하나의 문화),「문학과 페미니즘」(팸 모리스 지음,문예출판사),「속상하고 창피한 마음」(버지니아 울프 지음,하늘연못),「도둑신부」(마가렛 애트우드 지음,문학사상사),「매스미디어와 여성」(김선남 지음,범우사) 등 6편. 「페미니즘,무엇이 문제인가」는 여성들간에도 이해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남성에 의한 여성억압」이라는 공분모 이외의 사항은 페미니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이러한 차이가 명확히 정의되고 해명돼야만 자기모순에 빠진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을 세울수 있다는 것.이 책은 계급·노동·권력·국가·민족·인종·문화·이데올로기 등에 의해 야기되는 여성들간의 차이를 꼼꼼히 분석,이것을 페미니즘 이론으로 구성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프랑스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자신의 저서 「제2의 성」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들의 꿈을 통해 꿈을 꾸고 있다』고 지적했다.최근 선보인 「여자들의 꿈」은 보부아르의 이러한 입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프로이트나 융 등 남성이론가들이 세워놓은 꿈 해석체계로는 여자들의 꿈을 제대로 다룰수 없다는게 지은이의 견해.여성들의 꿈에는 임신과 양육,모녀관계,여자들간의 우정 등 남성들이 겪어보지 못한 문제들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는것이다. 「문학과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문학비평과 이론을 포괄적으로 다룬 책.문학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접근방식이 가져다줄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는 한편 문학텍스트에서 제기되는 여성론 관련 문제들을 독자 스스로 풀어가게 한다.페미니즘 이론가 크리스테바의 논의를 후기구조주의,상호텍스트성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이 책은 무엇보다 프랑스 페미니즘이 도외시하거나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계급이나 인종,동성연애 등의 문제를 들추어내고 있어 관심을 끈다. 페미니즘 이론을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들도 적잖이 나와 있다.선구적 페미니스트로 높이 평가되는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 18편을 묶은 「속상하고 창피한 마음」과 페미니즘 문학의 거장인 캐나다 여성작가 애트우드의 「도둑신부」(1·2권)가 대표적인 예.두 작품은 모두 한 차원 높은 성숙한 시각에서 페미니즘을 다룬다.특히 여성 내면에 깃든 악마성과 여성의 자아정체성 문제를 다룬 「도둑신부」는 그 주제의식을 투쟁적 정치구호가 아니라 미학적이고 시적인 소설적 장치속에 용해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이밖에 「매스미디어와 여성」은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성차별적 여성표상과 그 속성을 파헤친 책으로,매스미디어 여성 종사자들의 페미니즘 의식이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밝혀 주목된다. 90년대 들어 두드러진 지적 흐름중 하나는 현대사회의 한 조류인 포스트모더니즘과 정신분석학의 융성이 페미니즘의 지평을 넓혀줬다는 것이다.최근 출간되고 있는 페미니즘 관련서들은 교육·환경이론 등에까지 쟁점을 확대해가고 있다.이것은 60년대에 태동된 「이상주의적 정치운동」인 페미니즘이 21세기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보편적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반증이다.문제는 페미니즘을 「시장성있는 문화상품」으로 착각,그것을 상업적으로 포장하려는 유사 페니미즘 출판물의 범람을 막는 일이다.
  • 청문회 이모저모/위원들 한 전 수석 예우 “신경”

    ◎충분한 소명기회 주며 동료애 발휘 국회 한보국조특위는 24일 국회에서 정일기 전 한보철강사장과 한이헌 전 청와대경제수석을 증인으로 출석시킨 가운데 외압대출과 비자금 조성여부를 추궁했으나 증인들의 「모르쇠 전략」에 말려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 전 수석이 현역의원(신한국당)인 점을 감안한 듯 특위위원들은 여야를 떠나 『증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양해해 달라』며 예우에 신경쓰는 모습. 여야위원들은 다른 증인들과 달리 중간에 한 전 수석의 말을 가로막거나 호통치는 일이 거의없이 충분한 소명기회를 주는 등 따뜻한 동료애(?)를 발휘. 이런 우호적 분위기가 계속돼,이날 청문회는 밤늦게까지 계속되던 다른 청문회와 달리 이례적으로 하오 6시55분에 종료. 한편 신한국당 박희태 총무 등 당직자들이 청문회장을 찾아 동료의원이기도 한 한 전 수석을 지원차 방청해 눈길. ○…특히 한 전 수석에 대한 첫 신문 의원으로 나선 자민련 이상만 의원과 한 전 수석은 과거 경제기획원시절 이의원은 국장,한 전 수석은 그 밑에서 과장을 한 선후배여서 눈길.이 때문인지 이의원은 평소와 달리 각별한 배려속에 신문을 진행.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경제통인 탓인지 특혜대출 부분에 대해서는 『경제수석이 그걸 몰랐다는 말이냐』『경제수석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론가답게 이따금 설전을 전개. ○…이에 앞서 현경대 위원장은 이날 하오 한 전 수석에 대한 신문에 앞서 특위에 온 시민들의 격려 편지중 한통을 소개. 현위원장은 『국민들의 진실규명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목적달성이 제대로 안돼 답답하다.그러나 국민의 질책과 성원을 토대로 끝까지 최선을 달해달라』는 편지내용을 공개.이어 『격려편지와 함께 특위 위원들이 휴식시간중 커피나 한잔하라며 우편환으로 4만원이 동봉돼 왔다』고 말하자 청문회장은 한때 웃음. ○…상오 증인으로 나온 정 전 사장은 대출외압이나 비자금 조성의혹에 대해 『소관사항이 아니다』라며 「신종 모르쇠 전략」을 구사. 그러나 회계담당을 한 탓인지 답변도중 전문용어를 구사,의원들이 『무슨 뜻이죠』라고 묻는 등 곤욕스런 모습을연출. 한편 개인적 이유로 사퇴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던 국민회의 김원길 의원은 동료의원들의 만류를 받아들여 청문회장에 나와 신문을 계속.
  • 양자강 하류지역(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5)

    ◎7천년의 역사·문화가 살아 숨쉰다/송·원·명·청대 거치며 걸출한 문인·묵객 대거 배출/당도·양주·항주·소주·소흥 등서 중국문학 꽃피워 지난달 12일부터 서울신문에 연재하는 「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가 5회째를 맞는다. 그동안 중국의 국민시인 이태백이 만년을 보낸 양자강 하류의 당도시와 꽃과 술과 물의 마을 양주,한말의 망명시인 김택영이 묻힌 남통,송나라 시인 진관이 공부한 고우시 등을 찾았다.이처럼 중국문학 대가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양자강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6천300㎞의 강이다. 양자강의 지리조건과 역사는 황하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장강으로 불리는 양자강,그 길다란 용틀임은 황하의 스무줄기에 상당한 수량을 유출하면서 그 겨드랑이에 중국의 쌀 수요량 10분의4를 산출하는 세칭 어미지향을 거느리고 있다. 그럼에도 인문사회의 역사는 황하보다 천년이 넘게 뒤져 있다.장강유역에 주대의 유물이 간혹 보이지만 역사의 기록은 기원전 6,7세기의 춘추시대 오 월에서 비롯된다.그마저 정치의 중심이나 번영의 시장으로 각광을 받기는 송원 양대부터임을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마저 생생하게 기록했다.항주는 세상에서 제일 화려하다고. 물론 남송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건너온 것은 아니었다.벌써 춘추전국때 오월문화를 비롯해서 육조때의 남조문화가 바탕을 닦은 것이다.그 빛과 힘은 양자강의 하류에 응집되었다.여기서 말하는 양자강 하류란 강서성 호구로 부터 안휘성 동남단과 양자강삼각주,곧 양자강 남북연안에 위치한 절강성과 강소성 상해 등 3개 시·성을 통칭하고 있다. 양자강 하류지역은 남송·원·명·청을 거쳐 민국과 신중국에 이르기까지 줄곧 상승의 기세다.비단과 도자기를 비롯 쌀·차 등 농산품의 생산과 수출로 경제의 번영을 누리면서 희곡과 미술 등의 예술로 강남문화를 일구었는가 하면 성리학과 실학의 연구로 근대화·민주화의 앞장에 섰다.거기다 근대문학의 가장 뜨거운 산지가 됨으로써 문인을 배출하는 못자리가 되었다. 필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했던 「중국고대문학사」와 「중국근대문학사」에 등장하는 문인들을 그 출생지와 활동지별로분류한 나머지 그 전체의 4할쯤이 이곳서 태어나고 이곳에 작품을 썼다는 일차적인 통계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물론 송대 이후 특히 명·청 양대에 집중되어 있다.따라서 시와 산문·평론등 귀족문학은 물론 시민문학으로서 그 광장을 넓혀 소설과 희곡등 다양한 꽃을 피웠다. 그러니까 황하는 열악한 지리환경을 극복한 채 정치문화의 번영을 누렸고 양자강은 풍요로운 지리환경임에도 중화문화의 종속적인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남송때에야 그 지기와 인걸을 발휘했던 것이다. 1949년,새로운 중국이 건설되고 한중관계가 단절된 뒤 중국의 고고학계에는 지각변동에 상당하는 새로운 발굴과 함께 새로운 발견,새로운 학설이 잇따라 발표되었다.그것은 1953년 섬서의 서안교외인 반파에서 기원전 5000년에서 3300년까지 존재했을 신석기 문화유적을 발견하여 북방의 문화사를 2000년이나 소급한 일이 있었다.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제까지 적막한 옥토로만 여겼던 장강 하류지역에서 연거푸 놀라운 문화가 햇빛을 보기 시작하 것이다. 1958년 상해 근교 청포현 숭택에서 기원전 3400년에서 4000년의 정제 석기를,1959년 절강 가흥근교인 마가빈에서 기원전 5000년에서 4000년의 신석기와 홍도를,다시 1973년과 1977년 두차례에 걸쳐 절강 여요현 나강향 하무도에서 기원전 5000년의 쌀과 목조건축·방직·축목등의 유적을 각각 발굴 연구하면서 7000년이나 숨겼던 비밀이 어렴풋 풀리게 된 것이다. 문학은 자연지리적 환경보다는 인문사회적 환경의 산물이요,중국은 황하와 장강을 중심한 남북문화지만 선후적 관계보다는 개성적 차이로 발전되었다는 1차적 결론을 얻을수 있었다.그것은 장강삼각주의 지형이 말해 준다.그 서북에 낮은 산악과 구릉이 남북으로 누워있을뿐,절대의 면적이 수로가 사통팔달하는 대평원이어서 배산임수해야 인물을 낸다는 통속적인 풍수설을 뒤엎고 있다.또한 장강 삼각주에서 출토된 신석기 유물들은 북방의 동시대 유적인 반파의 그것보다 오히려 정교한 데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과 목적으로 필자는 안휘성의 동남단인 당도에서 출발,장강삼각주의 문학 유적을 전전하면서 그 현장을 확인키로 했다.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을 길러준 남경을 거쳐 「서유기」의 저자 오승은의 고향 회남과 「경화연」의 저자 이여진의 고향 연운항,송나라 문호 소동파가 최후를 마친 상주,「삼국지」를 재현시킨 북고산의 진강,원말의 영웅소설 「수호전」의 배경이요 그 저자 시내암과 청나라의 이름난 시인이자 화가인 정판교의 고향인 흥화.명말의 시인 전겸익의 고향인 상숙,역시 명말 시인 진자룡의 고향인 송강,명나라 후칠자의 수령인 왕세정의 고향 태창,역시 명말의 시인 고염무의 고향으로 지방극 곤극의 고장인 곤산,명말의 문인이자 여행가인 서하객의 고향 강음,당나라때 대시인 백거이 위응물 유우석 등이 벼슬살이했던 소주.청말의 문학평론가 왕국유의 고향인 가흥,만당의 시인 두목이 벼슬했던 호주,송나라의 거물 사객인 주방언과 청나라때 문학이론가 원매 등의 고향이요,당 송의 대시인이었던 백낙천과 소동파가 치적을 남겼던 항주.명나라때 시인이요 대사상가였던 왕양명과 역시 시인이었던 황종희의 고향 여요,한나라때의사상가였던 왕충의 고향 상우,송나라 대시인 이었던 육유와 현대문학의 비조인 노신의 고향 소흥,청나라때 희곡가 이어와 중국 현대시단의 거성인 애청의 고향인 금화 등이 앞으로 연재의 대상이 된다. 그 많은 곳을 되돌아보면 청록색의 망망대야,그 풍요로운 평원과 수향에서 중국문학사의 절반이 이룩된 것을 볼수 있었다.
  • “환영” 일색… “황풍 불까” 촉각도/정치권 반응

    ◎여­“한반도 평화정착 기여 기대”/야­“황 리스트 정치 이용 없어야” 황장엽씨의 서울도착에 대해 정치권은 20일 일단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여야간에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냈다.신한국당은 남북관계의 중요성을 감안,초당적인 대처에 무게를 둔 반면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은 정부 여당이 「김현철 청문회」와 연말 대선 정국에서 황씨의 망명을 정치적 호재로 이용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특히 정치권은 국내 친북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담은 이른바 「황장엽리스트」가 존재하는지를 둘러싸고 한바탕 논란을 벌인바 있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만에 하나 「황풍」이 메가톤급 「북풍」으로 정치권에 회오리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신한국당 이윤성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목숨을 건 그의 망명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이대변인은 이어 『남북관계·통일문제 등과 연관된 중요성을 고려할 때 초당적이고 민족적인 관점에서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국민회의 윤호중 부대변인은 성명에서 『황씨는 과거 허물을 반성,정확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전쟁 억지와 평화통일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이른바 「황장엽 리스트」가 화제가 되었던 점에 미루어 처신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윤부대변인은 『특히 정부여당은 황씨의 망명을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리고 남북문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민련 안택수 대변인은 『주체사상을 창안한 이론가이자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전범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한다』며 『북의 모든 정보를 한 점 남기지 말고 사실대로 우리측에 전달할때 우리 국민은 그의 정치적 망명을 인정하고 안정된 노후를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김정일 찬양어 제조 경쟁적

    ◎“인류의 태양·민족 구세주” 백두산 아들…/공식권력승계 앞두고 신격화에 혈안 올해안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를 앞두고 북한의 신문·방송 등 선전매체들은 김정일을 찬양하고 신격화하는 수식어들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각종 행사에서는 김정일에 대해 「인류의 태양」,「천재적 사상 이론가」,「걸출한 정치이론가」,「조국의 수호자」,「민족의 구세주」,「민족의 영수」,「장군중의 천하명장」,「통일장군」등의 수식어가 붙여지고 있다.또 「운명의 태양」,「영원한 하늘」,「운명의 하늘」,「인류의 태양」,「인민의 영도자」,「정의의 수호자」,「탁월한 수령」,「백두산의 아들」 등 다양한 수식어가 등장하고 있다.최근 노동신문은 김정일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김일성의 유업을 잘 수행하고 있다면서 김정일을 「위대한 수령」,「후계수령」이라고 호칭했다.
  • 예체능·사범계도 특차모집/경희대 내년 입시

    경희대는 9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예체능 및 사범계열에도 특차전형을 실시하기로 했다. 특히 체육학과의 경우 체육이론가 양성을 위해 정원의 10%를 체육실기가 아닌 수능성적 상위 5%이내 수험생 중에서 선발한다.체육특기자 이외의 특차모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 황장엽 망명이후의 남북관계(서울신문 포럼)

    ◎국내외 석학·전문가의 이슈진단/북 체제 와해 가속화… 연착륙 유도 재고해야/정부차원의 지원 「선대화 원칙」 고수 바람직/미 대북정책 너무 유연… 강력한 메시지 필요 □참석자 ·김석규­외무부 제1차관보 주이탈리아 대사 주러시아 대사 현 외교안보연구원장 ·안영대­남북특사교환회담 수석대표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및 대변인 통일원 차관 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 ·대릴 플렁크­현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소 수석연구원 서울신문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관심 현안을 심도있게 토론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서울신문 포럼」을 신설했습니다. 서울신문 국제전략연구소가 주관하는 이 지상포럼은 매월 1회 서울신문에 게재되며 첫회인 이번달 포럼은 「황장엽 망명 이후의 남북관계」를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 북한노동당 비서의 망명사건은 북한이 이제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체제적으로도 와해단계에 돌입했음을 보여주고 있다.황장엽 비서의 망명은 아울러 우리가이제 북한에서 일어날 예기치 못할 비상사태와 그에 따를 미증유의 대혼란에 본격 대비할 때가 됐음을 시사하고 있다.이에 서울신문은 송영대 민족통일중앙협의회의장과 김석규 외교안보연구원장,대릴 플렁크 미국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참석하는 「서울신문포럼」을 마련,황장엽 망명 이후의 한반도 사태를 분석하고 어느 때보다도 긴요한 한미 공조체제의 현주소와 과제를 심층 진단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 북한노동당 비서의 망명사건은 북한이 이제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체제적으로도 와해단계에 돌입했음을 보여주고있다.황장엽 비서의 망명은 아울러 우리가 이제 북한에서 일어날 예기치 못할 비상사태와 그에 따를 미증유의 대혼란에 본격 대비할 때가 됐음을 시사하고 있다.이에 서울신문은 송영대 민족통일중앙협의회의장과 김석규 외교안보연구원장,대릴 플렁크 미국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참석하는 「서울신문포럼」을 마련,황장엽 망명 이후의 한반도 사태를 분석하고 어느 때보다도 긴요한 한미 공조체제의현주소와 과제를 심층진단했다. ○군중심 위기관리체제 ▲김석규 원장=북한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그런데 황장엽이란 주체사상의 최고 이론가요,북한의 대표적 엘리트가 망명해온 것은 북한이 이제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이념적,정치적으로도 와해의 길로 들어섰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이제 이념적,경제적으로 동시에 와해되고 있는 북한을 과연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의 심각한 과제로 다가왔습니다. ▲송영대 의장=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우선 황장엽 망명이 북한내부에 미치는 영향부터 살펴봅시다.그동안 김정일 체제를 지탱해온 기둥은 군부,주체사상,엘리트집단,중국의 지원,경제력 등 크게 5개로 나누어볼수 있습니다.이중 군부는 김정일이 가장 의존하는 기본조직이고 지금도 군 주도의 위기관리 체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두번째 기둥인 주체사상은 이번 황의 망명으로 퇴락으로 접어들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저는 북한 엘리트들이 겉으로는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내심으로는 체제의 장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는 이중적 의식을 가진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북한지원 태도도 그 질에 있어서 과거와 좀 달라지리라고 봅니다.그간 북중관계는 김일성,등소평이라는 혁명 1세대간의 의리에 기초한 혈맹적 유대관계였습니다.이 두 사람이 죽은 마당에 양국관계는 냉혹한 국가간 관계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플렁크 연구원=중국의 대북 지원의 성격이 종전과 달라질 것이라는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그리고 이는 향후 한반도의 장래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아시다시피 중국은 북한 체제가 붕괴되고 한국주도로 통일이 됐을때 이 통일한국은 미국과 계속 동맹관계를 유지할 것이고 그같은 강력한 통일한국의 탄생이 중국의 안보환경에 불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이같은 우려 때문에도 중국은 그동안 김정일정권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 왔던게 사실입니다.이것이 앞서 지적한 환경변화들로 인해 바뀌게 됐습니다.북한으로서는 가장 큰 후원세력이 사라지는 셈이지요. ▲송의장=앞으로 난민문제,혹은 제2의 황장엽사건이 일어날 경우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절대 필요하지요.덧붙여 황장엽의 귀순을 우리가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 한마디 하겠습니다.남북관계에서 그의 망명이 갖는 정치적 의미,그리고 그가 갖는 정보가치를 놓고 볼 때 우리는 분명 그를 환영해야 합니다.그러나 한편으로 그가 창시한 주체사상이 결과적으로 김일성부자의 독재유지에 기여했고 남한의 주사파들에게 영향을 미쳐 이념적으로 오도한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원장=현재 한미 공조체제는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끌기 위해 식량원조 등을 하는 소위 관여(engagement)정책과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연합방위태세를 굳건히하는 양면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흔히 우리정부의 대북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들이 있는데 사실 우리 정책은 확고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남북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로 나아간다는 기본이 흔들린 적은 없습니다. ▲플렁크=현재 클린턴행정부에서 대북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중에는 한미공조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인사들이 많습니다.이들은 한국정부가 신뢰할만한 대북정책을 세울 능력이 없다는 가정에 기초해 대북정책을 입안하고 있습니다.이들은 북한에 대해서는 유연성과 타협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잘못된 생각들을 갖고 있지요.클린턴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여러 면에서 잘못됐습니다. ○남북대화 따로 추진을 ▲송의장=우선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일관성 문제에 대해 일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는 선평화공존 후통일입니다.그런데 북한은 남북대화를 거부하면서 잠수함사건을 일으키고 남의 식량지원에 악의적인 선전으로 나옵니다.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로서는 이같은 북한의 잘못된 태도를 교정시키기 위해 때로 강경정책을 쓰지 않을수 없습니다.즉 대전략은 평화공존인데 경우에 따라 전술적 목적으로 강경책을 쓰는 것이지요. 소프트 랜딩 정책이 오늘의 북한상황으로 미루어 실현성이 있느냐 여부는 검증돼야 합니다.그리고 실현됐을때 그 결과에 대해서도 예측을 해봐야 합니다. ▲김원장=소프트 랜딩 정책의 출발점은 북한의 붕괴과정을 좀더 연성으로 유도하겠다는 것이지요.이 과정에서 미국은 모든 문제는 남북대화를 통해 풀어야한다는 점을 북한에 분명히 주지시켜 주어야 합니다.미국은 이 점에서 우리와 입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송의장=이와 관련,북한에 대해 정부차원의 지원과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구분하는 시각이 필요합니다.인도적 입장에서는 굶주리는 동포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그러나 정부차원의 지원은 북한의 태도,즉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를 봐가며 결정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한반도 평화문제는 기본적으로 민족문제입니다.그리고 4자회담이 열리더라도 대북지원은 4자회담의 틀안에서 논의하는 것보다는 남북대화쪽으로 떼내어서 추진하는 것이 당사자 해결원칙에도 부합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플렁크=클린턴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너무 유화적이고 무기력합니다.붕괴과정에서 북한이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자제시키고 가능한한 붕괴를 연기시키겠다는 논리입니다.타협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연기전술」이지요.나는 이런 타협정책만으로는 한반도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김원장=미국이 인도적 대북지원에 동참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이런 점이 자칫 우리가 북한의 요구에 끌려가는 것으로 비칠수도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인도적인 지원 외에 정부차원의 지원은 어떤 경우라도 남북대화 없이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확고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송의장=북한 식량난 해결을 위해 주로 강조되는 것이 외부의 지원인데 이것은 균형된 시각이 아닙니다.외부 지원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기본적인 것은 북한 스스로의 구조적 개선노력입니다.무엇보다 경제회생을 위한 자본배분을 다시 해야합니다.지금 북한은 GNP의 25%에 해당되는 연간 56억 달러를 군사비로 쓰고 있습니다.이를 줄여 소비재 산업으로 돌리고 특히 소위 기념비적이라는 소모성 대형 건축물,김정일 별장 등의 건설비용을 줄이는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합니다.그렇지 않은상태에서의 외부지원은 밑빠지 독의 물붓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플렁크=나는 기본적으로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공조는 적지않은 긴장관계에 있다는 판단입니다.한국정부내에는 미국의 대북 관여정책에 대해 매우 심각한 불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봅니다.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대북 공동전선이 미국의 시각에서 입안되고 미국의 주도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한국은 명백히 2차적인 지위로 전락해버렸습니다.지금 한국은 각종 정치.경제적 스캔들에 휘말려 불안정한 상황입니다.아울러 금년중 대통령선거전이 시작됩니다.클린턴행정부는 한국정부가 대북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더욱더 미국 주도로 이끌어나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이런 표현을 써서 미안합니다만 어느 의미에서 미국행정부가 이런 상황을 「즐기고(pleased)」있다고도 봅니다.미국은 한국의 입장과 무관하게 더 빨리 대북관계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대화 응하면 적극 지원 ▲플렁크=제네바 합의도 실패작이 아닌가요.이 합의로 한미의안보증진에 도움된게 무엇입니까.남북한 긴장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높아졌고 지난 3년동안 한반도에서 군사적 신뢰증진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단순히 북한의 핵계획을 동결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미국은 북한에 대해 남북대화에 응하고 긴장완화 조치를 취하라는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김원장=가장 중요한 일이 남북대화라는데는 이견이 있을수 없겠지요.거듭 말씀드리지만 북한의 붕괴과정은 이미 시작됐습니다.물론 우리의 예상보다 이 체제가 다소간 더 오래 끌지는 모릅니다.하지만 영구히 끌고갈수는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과연 우리가 북한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할 것인가를 결정하는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북한이 우리와 대화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그들이 대화 테이블로 나와 우리와 대화를 하겠다면 우리는 언제든 그들을 도울 자세가 돼 있습니다.
  • 김정일 과도기적 체제 구축 가속/오코노기 마사오(지구촌 칼럼)

    ◎세대교체 급피치… 붉은기­군중시사상 강조 황장엽 비서가 북경을 떠나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멀지않아 한국에 도착할 것이다.이 망명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두가지의 해석이 존재한다.즉,황비서에 대한 냉담한 견해와 동정적인 견해이다. ○냉담·동정 견해 엇갈려 냉담한 견해에 따르면 황비서는 김일성시대에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 및 노동당 이데올로기 담당비서를 역임한 순수한 이론가로 관제 이데올로기를 창조한 「어용학자」인 셈이다.그 공적으로 최고인민회의의 의장을 경험하고 당서열 26위까지 올랐다.이 어용학자가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지도체제의 형성으로부터 배제돼 숙청을 두려워해 한국에의 망명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한편 동정적인 해석에 의하면 황비서는 지조가 굳은 조선의 전통적 지식인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체계화한 주체사상이 독재정권의 정당화를 위해 왜곡되고 있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따라서 그는 민족적인 사명감을 갖고 국외로 탈출했다.주체사상을 바르게 전하는 것,전쟁의 참화로부터 민족을 구해 평화통일을 촉진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황장엽의 망명에는 이들 두가지 측면이 공존한다고 생각된다.그같은 관점에서 말하면 김정일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새로운 지도체제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며,또 그가 북한의 식량위기의 심각함을 지적하고 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면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지도체제는 무엇일까.7월 이후 신체제 발족을 앞에 두고 윤곽을 드러낸데 불과하지만 이런 의미에서는 2월15일에 거행된 김정일 비서의 55세 생일 경축행사를 주목하는 것이 좋다.왜냐하면 그 경축행사에서는 선전·선동담당비서이며 황비서의 라이벌인 김기남이 중요한 보고를 담당했으며 부총리겸 외상이며 김정일의 후견인으로 주목되는 김영남이 축하문을 낭독했기 때문이다. 흥미를 끄는 것은 두 사람의 보고와 축하문 속에 붉은기 사상과 군중시사상이라는 두가지 사상이 김정일 비서의 독창적 이데올로기로서 공식화된 점이다.그 상세한 내용은 불명확하지만 붉은기 사상이란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과 수령의 결사옹호 정신이다.군중시 사상이란 「군이 바로 당이며 국가이며 인민」이라고 하는 「위대한 혼연일체」인 듯하다.「붉은기 사상」이란 용어가 북한 미디어에 처음 나타난 것이 지난해 1월1일 노동신문 등 3개지 공동사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출현과 황씨의 망명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쟁 위험성 경고 주목 다음으로 새로운 지도체제이지만 2월22일에 사망한 최광 인민무력부장의 장의위원회 서열에 그것을 알기 위한 힌트가 있다.그 장의위원회의 명단으로부터는 제6위의 강성산,12위의 서윤석,20위의 최영림,22위의 연형묵,28위의 서관희등 유력한 지도자들의 이름이 탈락돼 있어 이것이 이러저러한 억측을 부르고 있다. 사실,일본과 한국의 일부 주간지와 월간지 가운데는 최광에 이은 김광진 인민무력부제1부부장의 사인에 의문을 품거나 마치 북한 지도부내에 김정일파와 반김정일파 사이의 격렬한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있는 듯이 전하는 기사도 있다.그러나 만일 그러하다면 인민무력부의 수뇌가 살해됐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엄령이 포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또 이러한 수뇌가 반김정일파라면 배반자를 위해 국장이 거행된 셈이 된다. 따라서 현재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격렬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김정일의 새로운 지도체제 형성이다.장의위원회의 명단으로부터는 신구세대교체,군대중시 경향,직무상의 실패에 따른 좌천등의 요소를 읽어내야 할 것이다.황씨의 망명과 최광의 사망은 7월 이후를 향해 이미 진전되고 있던 신지도체제의 형성을 가속화하고 있을 뿐이다. ○식량원조 획득이 관건 한편 황씨 망명후의 진술서와 그 이전의 서한 가운데 북한의 위기적인 상황이 식량사정 및 경제적 곤란을 들어 설명돼 있는 것도 주목되지 않으면 안된다.스스로의 망명에도 불구하고 황씨는 북한의 내부붕괴 가능성을 부정하고 오히려 전쟁의 위험성에 대해 되풀이해서 경고하고 있다.농민폭동이 불가능하며 북한 지도부의 정치적 단결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식량위기가 이대로 심각해지면 내부붕괴보다는 전쟁 시나리오가 나서게 된다는 주장에는 명확한 논리적 일관성이 존재한다. 만일김정일이 망명사건에의 보복을 주장하는 강경파를 억제하지 목하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기술자 파견도 4자회담에 관한 공동설명회도 실현 불가능했을 것이며,남북한간의 격렬한 소모전으로 김정일 비서의 최고지도자에의 취임마저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이야말로 전쟁시나리오의 서곡이었다.이런 의미에서 북한 지도부가 감정적 반발을 억제해 외교의 유연성과 기동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특별히 강조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사태를 전망하는 최대의 가늠자는 앞으로 한 두달 안에 북한이 식량원조를 획득하는데 성공해 7월이후 김정일이 정말로 국가주석과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여부이다.북한의 연착륙이 가능한지 아닌지 여부와 같은 논의는 5년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김구와 황장엽(김호준 정치평론)

    1948년4월19일 김구는 역사적인 남북협상의 장도에 올랐다. 이날 경교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군중들이 모여 그의 북행길을 막았다. 『못가십니다. 가시면 공산당 놈들에게 붙들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생명이 위험합니다』 군중들은 함성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김구의 신변안전이 염려돼 평양행 중지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가 탈 자동차가 떠나지 못하도록 땅에 드러누운 청년도 있었다. 『여러분! 38선이 굳어지면 민족의 앞날이 불행합니다. 내 나이 일흔셋이니 살만큼 살았소.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주저할 것이 없소. 어서 길을 열어 민족의 운명을 타개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 경교장 베란다에서 군중 해산을 호소하는 김구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48년초 한반도는 미소의 치열한 각축속에 남북분단의 고착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김구의 북행은 남북에 각기 단독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고 남북총선을 통해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정치협상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협상상대인 김일성 김두봉 등 북의 공산주의자들도 남의 이승만과 마찬가지로이미 단독정부 구성을 추진중이어서 김구의 북행은 실패로 끝나고 16일만에 서울로 귀환한다. 김구는 북행 두달전에 발표한 저 유명한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장문의 성명에서 피를 토하듯 통일조국의 건설을 위해 신명을 바칠 각오를 밝힌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는 그의 절규 속에는 확실히 한국민족주의의 고귀한 이상이 담겨 있다. ○통일정부 수립위해 북행 그로부터 꼭 29년후 북한 주체사상의 설계사 황장엽이 남행을 결행했다. 그는 자신의 망명동기에 대해 『우리 민족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문제를 …북을 떠나 남의 인사들과 협의해 보기로 결심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올해 74세의 황장엽은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북경주재 한국대사관에서 쓴 자술서에서 『나의 여생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술회했다. 김구의 북행과 황장엽의 남행은 동기면에서많은 유사성이 발견된다. 그 유사성은 「민족」 「통일」 「여생」의 세 단어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황장엽의 경우 민족진영의 거두 김구처럼 대표성도 없고 그를 기다리는 협상테이블도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망명동기를 거창하게 『민족문제 협의』라고 밝힌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망명은 현실도피라기 보다 민족문제에 대한 도전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의 망명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평범한 진리에 다시 눈을 뜨고 북한동포의 아픔을 우리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각성을 가져야 한다. 북한주민의 굶주림에는 관심이 없이 시위만 벌이는 남한사회에 대해 그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힐난했다. 그의 이 원망(?)은 따지고 보면 민족주의와 동의어인 동포애의 갈구다. 황장엽을 김구에 비교하는 것에 불쾌감을 나타낼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에 붙어 호의호식하던 어용학자를 감히 민족해방과 조국독립에 평생을 바친 큰 지도자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다니 가당치 않은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망명이 김구가 생전에 그토록 목말라했던 민족주의, 남북의 대결정책에 짓눌려서 꺼져만가는 그 민족주의의 불꽃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면 저 세상의 김구도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 ○민족주의 불꽃 다시 지피자 김일성·김정일체제의 사상적 기저를 제공해온 북한 제1의 이론가 황장엽은 자신의 망명이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결행된 것이라고 토로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고민하게 만들었으며 그가 협의코자 하는 민족문제의 타개책은 무엇인지 우리는 진지하게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황장엽은 한반도에 두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하는 남북간의 국가연합이 북한이 갖고 있는 통일정책의 기본이며 통일의 최종단계라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이번 망명전에 작성했다는 이른바 「귀순결심 서신」에서는 남한을 주체로 한 통일론을 강력히 시사했다. 우리는 그의 통일론이 왜 바뀌었는지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또 진정한 통일의 길이 무엇인지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해야 한다. 그의 망명을 우발적 사건으로 넘겨서는 안된다. 북을 자극하거나 정치적 목적에이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통일문제를 민족적 토대에서 새롭게 접근하고 해결하는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구는 『마음속의 38선이 무너져야 땅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또 공산주의자도 껍질을 벗기면 같은 피를 가진 한 민족임을 일깨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황장엽의 망명이 김구의 바다같은 민족주의를 오늘에 다시 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논설위원실장〉
  • 미륵/요헨 힐트만 지음(화제의 책)

    ◎전남 운주사 「천불천탑」 소고 독일의 미술가이자 예술이론가인 힐트만 교수(함부르크대)가 전남 화순군 만산계곡에 있는 운주사 천불천탑의 용화세계를 주제로 쓴 책.그는 운주사 천불천탑을 신앙과 예술과 생활이 절묘하게 결합된 공간으로 본다.나아가 현대 산업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예술적 대안으로까지 승화시킨다. 힐트만 교수는 이 책에서 천불동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예술론,역사관을 펼친다.그는 천불동의 석불과 석탑을 「서구식 미학교육을 받은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이는 석불을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표정을 지닌 천진한 돌부처로,석탑을 어린아이들의 마을꾸미기 놀이와 같은 탑쌓기로 접근하는 그의 자세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은이의 분방한 상상력과 어우러져 서사시적인 분위기를 더해주는 사진들도 눈길을 줄만한 대목.힐트만 교수가 직접 찍은 80여컷의 이 사진작품들에는 『땅에서 자라난 것같은 농부의 심성을 닮은 미륵석불과 하늘로 오르려는 석탑의 형상미』를 하나의 통일체로 간주하는,지은이 특유의 예술적 감수성이 흠뻑 배어 있다.학고재,이경재 등 옮김,1만5천원.
  • 황 망명 북한정권 붕괴 가능성 시사(해외사설)

    휘발성이 강한 한반도 문제가 북한의 고위관리가 남한으로 불쑥 망명을 신청하면서 그 위험도를 더해가고 있다.중국은 오래된 이념동지인 북한과 새로운 무역파트너로 등장한 한국사이에서 황장엽의 망명이라는 한편의 긴박한 드라마로 고민하고 있다.하지만 이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궁핍해진 스탈린식 부랑국가인 북한에 이 문제로 인해 어느정도의 중요한 정치적 변화가 나타날 것인가하는 점이다. 황장엽이 최근 열병처럼 번지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신념의 위기의식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한 상상의 비약이 필요하다.그는 사악한 폭군인 김일성을 언제나 만족스럽게 해준 것은 아니기때문에 김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자리에는 오를 수 없었던 저명한 공산당 이론가이며 지식인이었다.그러나 그는 학생과 기술자,그리고 지식인들이 포함된 어느정도의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으며 북한인으로는 드물게 알려진 바깥세계에 그런대로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정치적 망명을 원해 한국대사관에 걸어들어 갔으며 남북한 사이에 화해와 통일을 자극하고자 했다고 말했다.그의 서신에는 북한의 불바다발언과 백성이 굶고 있는데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미친짓이라고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있다.그는 전에 그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르쳐준 제자이고 지금은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일이 그를 일컬어 천재라고 말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그의 망명신청이 미국과 한국으로의 성급한 접근을 서두를 것이냐 혹은 한걸음 물러날 것인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북한정권의 붕괴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북한의 폭력성과 정전협정위반 사례들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말것과 철의 장막뒤편 평양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잘 살펴봐야 할 것을 요구한다. 그와동시에 이번 고위인사의 망명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실상과 정치지도역량이 어떤지를 살피는 역량을 가다듬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그를 알고 있는 서방세계 사람들은 그가 단순히 북한을 알려주는 정보원의 역할뿐만아니라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하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만들려는 미국의 노력이 중대한 국면을 맞을때는 중재자로서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 황장엽 망명이후 김정일 선택/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 칼럼)

    지난 94년 미국잡지 「아시안 서베이」에서 나와 집사람은 북한의 김일성이 죽으면 북한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었다.김일성은 지배계급뿐 아니라 북한인민마저도 그의 막강한 권력을 믿고 따랐다.반면 그의 아들은 아버지만큼 명망도 없고 난폭한 기질임에도 초월적 권력을 요구해왔다. 김정일정권 초창기부터 그를 싫어하는 지도자그룹이 생기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또 김정일이 바로 북한개혁에 최대장애물이며 폐허화된 북한경제의 주범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자그룹이 생겨나는 것도 당연한지 모른다.이 두 그룹은 새 지도자를 무너뜨려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대세력이 충분한 힘을 가질 정도로 조직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때문에 그럭저럭 김이 권력을 지금까지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김 지지기반 붕괴 김정일은 지배기반을 공고히 하는데 성공하지 못한 것같다.일단 그는 친척과 추종자에게 각종 혜택·특권을 주면서 권력을 유지시키고 있다.부하의 의견을 따르는 척하면서 집단적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다른 한편으로 측근정치,군사력과 비밀경찰에 의존하는 식의 정치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그러한 것은 김정일정권에 화근만 될 것이다.김정일은 개혁의 도입을 온몸으로 막고 있고 결과적으로 북한경제는 황폐화가 가속되고 있다.이러한 현상을 막기는커녕 김정일은 전쟁 히스테리를 보이며 거의 모든 국가자원을 전쟁준비에 투입한다.북한의 실제상황과 북한정권이 말하는 슬로건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서 정권을 지탱시켜온 「노병」,주체사상의 이론가,젊은 지도자세력이 이젠 인내심을 잃고 있다.또 공개적으로 김정일에 도전장을 내게 이르렀다.의심의 여지없이 이러한 움직임 가운데 하나가 황장엽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비서의 한국망명시도다.황의 탈출은 북한지도부를 밑바닥부터 흔들었다.김정일에 대한 반기의 신호탄이자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아무 의미없는 정책에 대한 반란이다.다른 일부지도세력은 해외로 망명하는 식으로 황비서의 길을 따를 것이다.일부는 체제내에서 감히 변화 혹은 개혁을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김정일에 대한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지도층 이반 가속 황의 망명은 베이징과 평양의 관계를 엄청나게 손상시킬 것으로 보인다.김정일은 「마지막 동지」 중국이 더이상 자신의 지지자로 남지 않을 것임을 느낄 것이다.지금까지 중국은 북한에 개혁을 권고해왔으나 오히려 북한은 중국에 대해 문제아로만 남았다.이번 문제로 다시 중국은 당황하게 됐고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한국과의 관계마저 장애물에 봉착했다.황탈출이후 북한은 중국에 대해 압력의 강도를 높일 것이지만 오히려 중국의 화만 자초할 것이다.이번 사건으로 한국과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만일 황이 서울로 가고 평양정부를 공격하기 시작하면 남북한의 관계는 불을 보듯 뻔하다.황서기 입에서 나오는 발표들은 미국·일본 나아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김정일을 더욱 곤경에 빠뜨릴 것이다. ○개방정책이 최선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은 두 가지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우선 김이 계속해서 개혁에 저항하는 일이다.지도자숙청은 계속되고 북한은 새로운 내부테러공포에 휩싸일 것이다.이는 김정일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숙청이나 테러는 북한의 경제·사회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조만간 의외로 빨리 김정일정권은 무너질 것이다.내가 생각하기에 한국과 일부 북한전문가들이 선호하는 이러한 견해는 최선의 선택은 아닌 것 같다.이러한 시나리오는 마침내 북한내 정치엘리트 사이에 권력투쟁을 촉발시킨다.인민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고 권부불신에 따른 지역봉기·내전가능성도 따른다.한국은 개입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양쪽에서 휴전선을 넘는 일이 발생한다.북한의 일부지방조직이 한국정부,정치·사회조직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한국의 정부·민간단체가 이를 도우려는 움직임이 벌어질 것이다.결과적으로 상황은 매우 복잡해질수 있다.체제붕괴위협을 느낀 북한공산지도부는 체제유지에 안간힘을 쓸 것이다.그들은 한국내 좌익에 동정심을 일으키거나 지원을 요청,한반도내에서는 다양한 차원의 국지전이 발발할 수 있을 것이다.혼란은 오랫동안 계속된다는 얘기다. 김정일이 만일 두번째를 선택하면 남북한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다.김정일에게 기회는 있다.제정신으로는 신봉하기 힘든,개인종교에 가까운 주체사상강조를 이제는 포기하고 내부정치·경제개혁,남한에 대한 개방정책을 선택하는 일이다.확실히 김정일은 이러한 선택이 북한식 공산주의의 종언을 구할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그러한 두려움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아직도 두번째의 선택이 그에게는 더 낫다.김정일이 결정적인 선택을 할 시기가 분명히 다가오고 있다.
  • “황 비서는 「까꾸리 참외」 선생님”

    ◎공부시간 아끼려 쌀 생식… 백만단위 암산 “척척”/평양상업학교 교사시절 제자들의 회상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백면서생」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의 평양상업학교 제자들은 13일 「황선생님」을 이렇게 회상했다. 평양상업 15회로 황비서의 제자였던 최재경씨(66·치과의사·서울 종로5가)와 이응준씨(66)가 이 학교 선배(7회)이자 스승인 황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46년 4월 신학기. 첫 인상은 퉁명스러웠다고 최씨 등은 회상했다.수업이외의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때문에 황선생에게는 「까꾸리(거꾸로)참외」라는 별명이 붙었다.참외 밑꼭지가 떫은데 비유한 것. 그러나 황선생은 곧 학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두번째 수업때 출석부를 보지않고 50여명 학생들을 번호순으로 완벽히 호명했다.또 주산 시간에는 수시로 수십,수백만단위 수의 가감승제 암산문제를 낸 뒤 정답을 못대면 호된 꾸지람과 함께 즉각 답을 설명,학생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항상 쌀·콩·솔잎을 밥 대신 날로 먹었다.학생들에게는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일일이음식을 조리해 먹겠느냐』고 했다. 최씨와 이씨는 빛바랜 졸업앨범 「만수대의 향수」속에 있는 스승의 옛 모습을 가리키며 『돌연 사회주의 이론가로 나선 과정과 나중에 염증을 느끼게된 이유는 선생님의 투철한 신념이 답해 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932년 개교한 평양상업은 해방전 경기·부산상고와 함께 3대 상업학교로 이름을 날리며 숱한 인재를 배출했다.졸업생으로 류창순 전 국무총리(2회),김재순 전 국회의장(10회),조근옥 경남대 이사장(15회),송한호 전 통일원차관(15회) 등이 있다.
  • 북서 첫손 꼽히는 인텔리가/눈길끄는 황장엽 가계

    ◎부인 박승옥씨 김정일 가정교사 출신/아들 김일성대 교수… 딸은 유명한 의사 한국 망명 절차를 밟고 있는 황장엽 북한 노동당 당비서는 북한내 최고 인텔리집안 출신이라는 점에서 북한내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던져줄 것으로 보인다. 황비서가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시절인 지난 70년대 중반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녔던 C씨(96년 제3국에서 망명)는 13일 『황총장은 북한이 자랑해온 전형적인 인텔리로서 고지식한 학자적 기풍을 지닌 것으로 학생들에게 알려져 평가가 좋았다』고 말했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황비서는 북한에 부인 박승옥씨와 2남2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그러나 『황비서는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선희·노선·선옥 등 딸 셋과 막내인 아들 경모를 두고 있고 자식들은 모두 수재들』이라고 말했다. 황비서는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유학했고 59년부터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맡아왔으며 87년부터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주체사상을 집대성한 최고 이론가로서 20여차례에 걸쳐 30개국을 방문,주체사상을 강론해 온북한 지식층의 대표적 인물. 또 모스크바 유학시절 황비서와 만나 연애결혼한 부인 박승옥씨는 남편 못지않은 인텔리로 김일성의 딸인 경희(김정일의 친동생)와 경진(김정일의 이복동생)의 가정교사를 지냈으며 남편과 마찬가지로 김정일의 가정교사를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박씨는 특히 영어·러시아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능통,최근까지 평양외국문종합출판사에서 번역업무를 담당해왔다고 C씨는 밝혔다. 황비서의 자식들 중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사람은 외아들인 경모씨.그는 아버지의 모습과 인품·지적능력 등을 꼭 빼닮은 인물로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를 졸업한 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김정일의 최측근인 장성택 누나의 사위라고 C씨는 말했다. 첫째딸인 선희씨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으나 둘째딸인 노선씨는 평양의학대학을 졸업한 재원으로 북한 의학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의료인으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셋째딸 선옥씨는 C씨의 남산인민학교 1년후배로서 남편은 외교부 참사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