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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강연장 된 법정/송교수, 호메로스·칸트 인용 ‘경계인의 고통’ 피력

    “주체사상에 대해 자폐적 한계를 느껴 유럽의 사회 사상과 이론을 북한의 이론가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재독 철학자 송두율씨는 16일 서울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 李大敬)의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에서 자신이 수행한 경계인의 역할을 이같이 설명했다. 송씨는 이날 공판에서 북한 주체사상의 한계와 내재적 접근론에 대한 학문적 성과,호메로스의 서사시 등을 통해 복잡한 심경을 표출해 눈길을 끌었다. 송씨는 변호인 반대신문을 통해 “주체사상은 변방의 세계가 자기긍정을 하기 위해 만든 철학으로 긍정적 야만성과 자폐증적 요소를 갖고 있다.”면서 “지난 91년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강의를 통해 주체사상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이어 “검찰은 내재적 접근법이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수단이라고 비판하지만 이는 칸트 철학에 기초한 방법론이며 남북 체제 모두에 대한 접근론으로 국제 학계에서는 한국에서 나온 자생적 이론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검찰의구속기소를 ‘분서갱유’와 ‘마녀사냥’에 빗대 강도높게 비판했다.송씨는 “‘책을 불태우는 자는 언젠가 사람을 불태운다.’는 말처럼 사상 논쟁은 자유에 맡기고 법은 그 테두리 밖에 있어야 한다.”면서 “나를 구속한 것은 책을 태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송씨는 이어 “검찰이 진리와 허위를 규명하는 학문에 적법과 불법으로 나누는 법의 코드를 적용해 중세식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검찰을 정면 비판했다. 법정에서 송씨에 대한 호칭을 놓고 설전도 벌어졌다.검찰은 “교수 송두율이 아니라 피고인으로 재판받는 만큼 변호인이 피고인으로 부르지 않고 송 교수로 호칭하는 것을 제지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송씨는 “오디세이아가 고향 이타카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요정 사이렌의 아름다운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돛에 자신의 몸을 매달았다.”면서 “내 삶의 궤적도 분단된 조국을 보면서 유혹을 벗어나기 위해 사회주의 연구에 몸을 매단 심정”이라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책꽂이

    ●돈은 발이 넷 달린 짐승(박종인 지음,책과길 펴냄) 상고 졸업 학력으로 동양 최초의 본사 임원이 된 BMW코리아 김효준 사장,전쟁고아 출신인 이태섭 국제라이온스협회 회장 등 자수성가형 CEO 32인의 이야기.이들은 모두 “뒤에 따라올 일들을 너무 신경 쓰는 바람에 아무 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을 나는 싫어한다.”는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의 말에 공감한다.요컨대 최고경영자는 하나같이 자신감과 도전정신의 화신이다.1만 1500원. ●독약의 세계사(시부사와 다쓰히코 지음,오근영 옮김,가람기획 펴냄) 독에 얽힌 인간의 욕망과 일화들을 소개.그리스 비극에는 독약이 빈번하게,마치 불길한 운명의 신처럼 등장한다.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의 여인들’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는 아내가 최음제라며 그의 옷에 발라준 히드라의 독 때문에 죽는다.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가 독약 기술자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라신의 페드르도 독을 먹고 자살한다.중세로 넘어오면서 독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생산 기술도 발전,이른바 ‘독의 대중화’가 일어난다.뽑으면 사람 목소리가 난다는 만드라골라라는 독초는 최면음료나 토사제로 오래 전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다.8000원.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루신 지음,이욱연 엮어옮김) 중국 근대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작가,문학사가인 루신(1881∼1936)의 산문집.루신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이래 우리 현실을 읽는 거울 역할을 해왔다.그의 외침은 거침이 없다.“옛날을 흠모하는 자 옛날로 돌아가고,하늘로 오르고 싶은 자 하늘로 올라가고,영혼이 육체를 떠나고 싶어하는 자 이제 떠나게 되리라”(‘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칭칭 감겨 들어라’중에서).루신의 짧고 명징한 한마디 한마디는 투창과 비수가 돼 우리에게 날아온다.9500원. ●보이는 것의 날인(프레드릭 제임슨 지음,남인영 옮김,한나래 펴냄) 영화가 지닌 비판적·유토피아적 잠재성을 고찰한 영화·문화비평서.고립된 영역들로 다뤄져온 문화현상들,이를 테면 작가영화와 장르영화,고급문화와 대중문화,리얼리즘과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살핀다.역사적인 알레고리로서 현대영화를 읽어내는 저자는 ‘언어의 감옥’‘지정학적 미학’ 등의 저서를 남긴 미국의 저명한 문화이론가이자 비평가.2만 5000원. ●살아있는 야생(신디 엥겔 지음,최장욱 옮김,양문 펴냄) 야생동물의 생존전략을 살핀 연구서.코끼리는 나트륨 성분을 섭취하기 위해 소금을 먹는다.소금이 모자라면 새로운 소금동굴을 찾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집단 이동도 마다하지 않는다.침팬지는 털이 난 나뭇잎을 독특한 방법으로 뭉쳐서 삼킨다.잎에 난 털이 창자 주위의 기생충들을 ‘청소’한다.개와 고양이가 가끔 풀을 뜯어먹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이 풀들은 기생충과 함께 소화되지 않고 몸 바깥으로 배설된다.저자는 영국의 방송대학인 오픈 유니버시티에서 환경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동물 자가치료 연구가.1만 1000원.
  • [열린세상] 파병, 서두를 일입니까

    알려져 있듯이 10일은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다.올해로 55년 됐다.그래서일 것이다.요 며칠은 ‘인권’을 말하는 모임이나 사람들이 꽤나 많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주최로 8일 열린 ‘2003년 한국인권보고대회 및 토론회’는 그 중에도 대표적인 공론장이다.대회에서는 노무현 정권 1년 동안의 인권상황을 토론-평가하고,당면한 국가적 현안들에 대한 특별결의문이 채택-발표됐다.가장 크게 눈에 띈 결의사항은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는 요구다.첫눈 내린 이날 인천공항으로는 이라크에 송전탑 공사하러 갔던 60대와 40대 근로자가 무참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같은 시각 국회에선 국회반전의원모임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에 나섰다.이라크 파병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국민 대 토론회’를 정부와 국회에 제안하는 내용이다.이들은 “국회에서 어물쩍 ‘합의’해 넘기려 하지 말라.국민의 총의를 확실하게 묻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 가톨릭은 주교회의 이름으로 인권주일 담화를 발표했다.제목이 ‘이방인을 환대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이다.인권 손상-침해 우려를 표명한 6개항 의제 가운데 ‘이라크 전투병 파병’이 들어 있다.본래부터 이 전쟁은 단호히 거부된다. 지난달 25일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출범 두 돌을 기념했다.‘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인권 바로 세우기’를 푯대로 내건 인권위는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다.” “인권옹호기관이 아니라 인권심판기관 수준이다.”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몇몇 이슈에 대해서는 ‘똑부러지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해서 평가의 대상이다.그 한가운데 ‘이라크 파병 반대의견 표명’이 있다.중요한 국가정책이든 대통령의 중대한 정치적 결단이든 관계없이,국가인권위는 오로지 ‘보편적 인권’의 편에서만 가감 없이 말해야 한다.그래야 국가인권위가 바로 서고,인권도 바로 설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명분 없고 도덕적이지 않은 전쟁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미국에 이라크 전쟁은 올해 새로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10년 전에 이미 ‘승전’했고 2003년에도 ‘승전’이 선언됐으나 전쟁은 10년 내내 지속되고 지금도 의연히 지속되고 있는,오래된 수렁이다.베트남과 똑같다. 전쟁이란 본래 승자가 없는 법이다.패자만이 남는다.잠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으나 전쟁에서는 궁극적으로 패자가 된다.인류학자 전경수 교수는 최근의 한 글에서,2차대전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만이 예외적일 뿐 모든 전쟁에서 드러나는 ‘항복 이후의 복수’ 양상을 이야기한다.미국은 지구상에서 더 이상 일본처럼 ‘항복 이후의 복수’라는 장르가 없는 상대를 만날 수 없다. 그의 글은 ‘아쉽고,안타깝고,원통한’ 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이렇게 끝난다. “한국군 파병을 요구하는 부시에 대해서 논리적 질문을 할 수 있는 정치가가 없는 것이 아쉽다.그러한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 브레인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파병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제기하고 한국군 참전의 부당함을 설득할 수 있는 이론가가 나서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젊은이들을 부적절한 전장 속의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원통하다.” 이라크 파병 논란에는 ‘국익론’ ‘동맹론’ 같은 신화들이 있다.신화가 아니라 절박한 현실이고,결코 도망갈 수 없는 한계상황일는지 모른다.이런 현실과 한계상황은 우리를 늘 절망적이게 한다.그 중에도 우리를 ‘아쉽고 안타깝고 원통하게’ 하는 것이 있다.우리의 외교력,협상력,담력(膽力) 같은 것이다. 마침 우리의 파병부대 이름,서희(徐熙·942∼998)가 주는 교훈이 있다.공병부대의 이름으로가 아니라,우리 역사가 기록한 최고의 외교역량으로서의 이름이다.문신인 그는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 정벌에 나선 거란(契丹) 장수 소손녕(蕭遜寧)에 맞서,맨주먹으로 적진 담판에 뛰어들어 청천강에서 압록강 사이,옛 고구려 땅인 강동육주(江東六州)를 회복하고 거란군을 철군시켰다.그럴 수 있었던 비밀은 적장 소손녕을 위압-압도한 서희의 기개(氣槪)였다고 전한다. 파병,서두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 달 영 언론인
  • 장엄한 설원위 사랑·질투·살인·용서 에스키모의 원초적인 삶/12일 개봉 아타나주아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 잘 살아 왔다.’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이론을 압축하면 이쯤 되지 않을까? 그가 저서 ‘야생의 사고’를 통해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사유방식과 가치체계를 비판하면서 문화와 인류의 보편성을 강조한 목소리는 후대 이론가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12일 개봉하는 영화 ‘아타나주아(Atanajuat:The fast runner)’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는 우리 식으로 이렇게 살아왔다.’고 외치는 듯 영화는 철저히 ‘그들의 눈’에 맞췄다.그 중심엔 북극 툰드라지대에서 태어나 자란 자카리아 쿠눅 감독이 있고 영화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에스키모 언어와 에스키모 배우들이 가세한다.자신의 고향이자 정신적 원형질을 찾으려는 감독의 열정에 힘입어 영화는 에스키모의 숨결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흘러,2시간40여분의 대서사시가 지루하지 않다. ●에스키모 고대 신화 모티브 에스키모의 고대 신화를 모티브로한 이 영화는 두 가족의 흥망사를 얼개로 진행된다.‘툴루막’은악령의 힘을 빌려 부족의 우두머리가 된 ‘사우리’에 밀려 쫓겨난다. 세월이 훌쩍 뛰어 ‘툴루막’의 두 아들 아막주아(힘센 사나이)와 아타나주아(빠른 이)가 용감한 사냥꾼으로 성장해 부족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자 ‘사우리’의 아들 ‘오키’는 이들을 시기한다.더구나 집안끼리 약혼한 사이인 ‘아투아’가 ‘아타나주아’를 사랑하자 질투는 극에 달한다.사랑을 건 결투에서 패배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감정의 앙금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그러다 ‘오키’의 여동생 ‘푸야’가 아타나주아의 둘째 부인이 되면서 영화는 유혈극 등으로 속도를 낸다.이런 뼈대에다 영화는 장엄한 설원을 배경으로 이글루 만드는 장면 등 이색적인 에스키모인의 의식주,회의 과정,샤머니즘 등의 살을 붙이면서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거기에 사랑과 질투,사기,살인 등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 선을 에스키모라는 특수한 프리즘으로 여과시킨다.밑바닥에는 ‘악’(자기를 죽이려 했던 친구나 남편과 정을 통한 시동생의 후처)을 감싸안는 ‘관용’의 미덕을 보여준다.●문화인류학적 메시지 풍부 달빛 아래 혼자 개썰매를 끌고 가는 장면 등 아름답고 황홀한 이미지들이 그득하다.또 아타나주아가 오키 일당에게 쫓기며 설원 속에서 벌거벗고 달리는 장면은 비슷한 상황을 다룬 액션 영화들의 장면을 압도한다. 논리의 비약과 주술 장면 등이 이해하기 어려운 데다 할리우드에 길들여진 눈에 자연스럽지 못한 장면 전환이며 거친 편집이 거슬릴 수도 있다.하지만 에스키모라는 원초적 감성을 담는 형식으로는 제격이다.‘아타나주아’는 에스키모의 상징인 개썰매 위에 단순히 사람과 짐만 싣는 게 아니라 어떤 문화인류학적 교재보다 더 생생한 영감과 풍부한 메시지를 싣고 있다.그것은 할리우드식 인공 세팅과 가공되고 세련된 연기와는 다른,천연의 무대에서 야생의 배우들이 울리는 ‘날 소리’이다. 이종수기자 vielee@
  • 책꽂이

    ●니체(뤼디거 자프란스키 지음,오윤희 옮김,문예출판사 펴냄) 독일 철학자 니체의 평전. 니체에게 있어 삶과 사상은 둘이 아니었다.니체의 철학은 삶을 대상으로 했으며,니체의 삶은 자신의 철학을 상연하는 무대였다.니체는 28세에 쓴 처녀작 ‘비극의 탄생’에서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 비극의 탄생과 완성을 아폴론적·디오니소스적이라는 두 가지 원리로 해명했다.니체는 1889년 이탈리아 북부도시 토리노의 한 광장에서 채찍질당하는 말을 보호하려 울면서 말의 목에 매달린 채 쓰러진 이후 극심한 정신이상 속에 10년을 더 살았다.그러나 그의 정신의 역사는 그것으로 끝났다.2만 3000원. ●반투 스티브 비코(도널드 우즈 지음,최호정 옮김,그린비 펴냄) 아파르트헤이트가 한창이던 1960년대 초 흑인지도자였던 만델라와 소부퀘가 로벤섬에 수감되고 남아공 흑인운동은 지도력 공백상태에 놓였다.이때 흑인의식의 고취를 주장하며 흑인운동의 전면에 나선 이가 바로 반투 스티브 비코다.그는 30세에 고문으로 숨을 거뒀다. 이 책은 ‘아자니아(Azania)의 검은 거인’ 스티브 비코에 관한 이야기다.아자니아는 ‘흑인들의 땅’이란 뜻으로,남아프리카 공화국 흑인운동가들 사이에서 ‘해방된 아프리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1만 5900원. ●비치:음탕한 계집(엘리자베스 워첼 지음,양지영 등 옮김,황금가지 펴냄) 남성들의 몰이해와 편견에 의해 ‘요부’로 몰리는 여자들의 삶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조명. 남성들의 편견은 구약성서의 ‘삼손과 데릴라’에 잘 나타난다. 강한 남자들은 여자들의 성적인 힘 때문에 약해지고,여자에게는 자신도 억제할 수 없는 유혹의 능력이 있다는 것.미국의 제3세대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이 이야기는 남자의 책임은 간과한 채 모든 문제를 여자에게 돌린 첫 사례라고 평가한다.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손녀 마고 헤밍웨이의 자살,‘큰’ 남편에 가린 ‘작은’ 부인 힐러리 클린턴과 O J 심슨의 아내 니콜 브라운 심슨의 삶을 통해 미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고발한다.2만 2000원. ●아나키즘의 역사(장 프레포지에 지음,이소희 등 옮김,이룸 펴냄) 근대정치의 산물인 ‘정부’를 물리치는 ‘무정부주의’라는 말은 아나키즘이 지닌 역사성을 부정,그 의미를 협소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아나키즘은 단순히 정부나 국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권위와 그로 인한 폐해들에 저항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주장한 슈티르너,아나키즘의 사상적 기초를 세운 프루동,혁명적 아나키즘을 펼친 바쿠닌,종교적인 사상과 아나키즘을 결합시킨 톨스토이,아나키즘적 공산주의를 설파한 크로포트킨,이탈리아 혁명운동의 주역 에리코 말라테스타 등 이론가들의 사상을 소개한다.3만 5000원.
  • [열린세상] 황장엽과 김용순

    지난달 27일 북한의 대남담당 비서 김용순이 사망했다는 공식 부고가 있었다.그리고 같은 날 북한의 국제담당 비서였던 황장엽씨가 논란 끝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한때 북한 최고지도층에 함께 몸담았던 두 사람이 서로 엇갈린 인생을 극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알다시피 황장엽 전 비서는 북한의 대표적인 사상이론가로서 주체사상의 체계화에 깊이 관여했고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를 사실상 완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젊은 나이에 김일성대학 총장을 역임했고,1970년대에 주체사상 이론화 작업을 주도한 이후 당 사상담당 비서와 국제담당 비서를 거쳐 1997년에 남쪽으로 망명했다. 김용순 비서 역시 일찍부터 대외관계 부문에서 당 사업을 시작,당 국제부장과 국제담당 비서를 역임하다가 1990년대부터 대남담당 비서 역할을 맡아왔다.특히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실무를 챙기면서 김정일 위원장 곁을 떠나지 않던 김용순 비서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황장엽씨와 김용순 비서의 상이한 인생 궤적에 대해 아직 나이어린 필자가 가타부타평가할 수 있는 계제는 아닌 듯싶다.그러나 두 사람의 삶이 우리의 대북정책 방향과 관련하여 상충되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필자에게 또 한번의 진지한 고민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황장엽씨는 북한 붕괴를 위해 대북 압박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대표적인 논객이다.남쪽으로 망명 이후 황장엽씨는 줄곧 김정일 정권의 부도덕성을 강조했고,북한체제의 근본변화를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압박과 봉쇄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주장했다.특히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도 그들과 절대 협상하거나 양보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 붕괴하도록 고사작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결국 황장엽씨는 일관된 봉쇄전략을 통해 북한 스스로 내파(內破)하도록 해야 한다는 ‘북한 붕괴론’과 ‘대북 봉쇄론’의 상징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김용순 비서는 북한이 대외관계의 개선을 통해 스스로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는 강력한 의지의 인물이었다.1992년에는 미국을 방문해 아놀드 켄터 미 국무부 차관과 회담을 갖고 당시 교착상태에 놓여 있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문제를 타결짓기도 했다.2000년 남북정상회담 성사과정과 이후 남북관계의 개선과 화해협력의 발전과정에 김용순 비서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은 다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김용순 비서는,북한이 대외관계 개선을 통해 나름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지금,북한 지도부의 입장을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지금 우리에게 김용순 비서와 황장엽 전 비서의 엇갈린 인생은 북한 붕괴론과 대북 봉쇄론 그리고 북한 변화론과 화해협력의 남북관계 중 어느 것이 보다 정당한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고민케 하고 있다.황장엽씨로 대표되는 북한 붕괴론에 따른다면 지금이라도 화해의 남북관계는 걷어치우고 대북 봉쇄와 압박을 가속화해서 북한 스스로 붕괴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고,김용순 비서로 대표되는 북한 변화론에 따른다면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황장엽씨의 북한 붕괴론은 1990년대 이후 체제위기를 겪으면서도 ‘그럭저럭 버티기’에 성공한 북한의 내구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또한 대북 압박이 북한의 내적 통합에 기여하고 남북관계 경색과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북한 스스로의 변화 가능성과 이에 따른 점진적 평화통일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북핵문제에서도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강경기조를 정당화할 뿐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는 문제해결을 가로막고 있다는 평가다. 방미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피해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미국행 비행기를 탄 황장엽씨의 현실과 남한 정부 인사가 공식적으로 김용순 비서에게 인간적 조의를 표시하는 지금의 모습에서 북한 붕괴론과 북한 변화론 중 우리가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지는 조금씩 자명해지고 있는 것 같다.황장엽씨로 상징되는 북한 붕괴론이 우리의 입장에서 가능하지도,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응당 황장엽류의 대북관은 폐기되어야 한다. 김 근 식 경남대 극동문제硏교수 정치학
  • 책꽂이

    ●한국인만 몰랐던 파란 아리랑(앤소니 파라-호커리 지음,김영일 옳김,한국언론인협회 펴냄)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영국군 그로스터 부대의 임진강전투와 안소니 파라­호커리 대위의 공산당 포로생활을 그렸다.한국전쟁은 이제 한국인들도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역사의 화석이 돼 가고 있다.하지만 머나먼 이국 땅에서 목숨까지 바쳐야 했던 외국인 참전용사들이 하고픈 이야기는 너무 많다.그것은 바로 자유와 평화다.9900원. ●잉여 쾌락의 시대(권택영 지음,문예출판사 펴냄) 슬로베니아 출신의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헤겔의 관념철학,대중문화론,미학,정치이론을 결합해 독특한 학문영역을 추구하는 문화이론가.지젝은 “욕망이 대상의 고유가치와 교환가치의 차액인 잉여 쾌락에 의해 지속된다.”는 잉여쾌락 이론을 제시했다.그의 학문에는 ‘기생학문적’이라는 비판과 ‘동유럽 인문학의 기적’이라는 찬사 등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다.지젝의 이론을 소개하고 그의 학문적 성과를 정리했다.부제는 ‘지젝이 본 후기산업 사회’.1만원.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워런 코언 지음,하세봉ㆍ이수진 옮김,문화디자인 펴냄) 20세기 미국인과 동아시아인의 접촉이 정치·문화적인 관점에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가를 분석.‘우드로 윌슨 국제센터’ 아시아 담당 수석연구원인 저자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의한 국제 질서를 옹호한다.미국의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해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미국화’가 일방적이고 수동적으로 이뤄졌다고 보지 않는다.미국 또한 1965년 이민법 개정 이후 미국으로 동아시아인들의 이민물결이 활발해져 미국문화가 매우 풍부해졌다는 주장을 편다.8000원.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다(홍수환 지음,해토 펴냄) WBA 챔피언을 지낸 저자가 권투선수 시절의 어려움과 은퇴후 여러 번의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경험을 토대로 쓴 인생경영 지침서.“같은 물이지만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는 말이 있다.똑같은 상황이라도 받아들이기에 따라 득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한다.” 이 책에는 권투를 접은 뒤에도 늘 새로운 도전을즐기며 생활하는 저자 나름의 잠언이 가득하다.9000원.
  • 윤성식 감사원장 내정자/盧대통령과 코드맞는 ‘감사 이론가’

    경제·경영·회계·행정 등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식을 갖춘 진보적 성향의 ‘감사 전문학자’로 알려져 있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성격이지만,이론적인 측면에서는 자기 주장이 강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다.미국 버클리대에서 ‘감사의 효과’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SSCI(사회과학 인용색인) 인증 국제학술지에 감사관련 논문을 기고할 정도로 감사분야에서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그러나 감사의 이론과 현실을 어느 정도 접목시킬 지는 미지수다.저서인 ‘정부 개혁의 비전과 전략’은 노무현 대통령이 탐독한 뒤 공무원들에게 독서를 권유해 필독서가 됐다.부인 이향진(45)씨와 2남. ▲전남 해남(50) ▲광주일고 ▲고려대 ▲미국 텍사스대 교수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
  • 한나라 최병렬체제 출범/한나라 全大후 정국전망

    자기 주장이 강한 최병렬 후보가 한나라당 새 대표로 선출됨으로써 정치권은 보다 분명한 모습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최 의원의 성품으로 보아 당내에서도,대여(對與)관계에서도 “되는 것은 되고,안 되는 것은 안 된다.”며 야당의 ‘색깔’과 ‘입장’이 확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계는 보수-진보로 나뉘어지는 계기를 맞게 될 수 있다.한나라당은 그간 보수 색채가 강했으면서도 이를 내놓고 주장하지는 않았다.나름대로 ‘보수이론가’를 자처하는 최 대표가 야당의 선봉에 섬으로써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한층 더 이념의 대립구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여권에서 추진중인 개혁신당과 맞물려 정계의 지각변동이 일찍 찾아올 수도 있다.내년 총선도 보수-진보의 대결이라는 틀 안에서 치러질 여지가 많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과 최 대표 등 여야 사령탑 모두의 정치적 근거지가 부산·경남(PK)이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PK 목장의 혈투’가 예상되기도 한다.이 곳에서부터 바람을 일으키려는 여권 신당과 이를 사전 차단하려는 야당간 싸움이 ‘부산고와 부산상고의 대결’라는 얘기도 나온다.노 대통령은 부산상고,최 대표는 부산고를 나왔다. ●‘강력한 대여투쟁’ 최 대표는 대여관계에 있어 강경 기조를 예고했다.26일 대표 수락연설은 대여 견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정당 사상 가장 큰 규모인 전국 22만여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뽑혔다는 점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는 평이다.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나 최 대표나 모두 논리에 밝고,이에 근거한 언행에 추진력을 갖고 있는 등 비슷한 면이 많아 극한 충돌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의 화합과 개혁’ 최 대표는 우선 당 분위기 수습에 진력할 것으로 보인다.조만간 다른 5명의 후보,소장·개혁파 의원,당 중진 등 그룹별로 잇따라 회합을 갖고 협력을 요청키로 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분위기가 추슬러질지는 미지수다.최 대표의 반대진영에 섰던 인사들은 한동안 팔짱을 낀 채 ‘일단 오는 30일 총무·의장 경선과 향후 당직 인선을 지켜봐야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포스트 이회창’ 시대의 첫 대표이지만,당에 이회창 전 총재의 잔영은 한동안 남아있을 듯하다.최 대표 스스로 이 전 총재를 불러낸 까닭이다.자신의 입지강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겠으나,친 이회창 인사들과의 우호관계 유지에도 힘쓸 것으로 보인다. 이지운기자 jj@
  • 책꽂이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의 인간 드라마(후쿠시마 아키라 등 지음,고은진 옮김,이손 펴냄) 정신분석학 이론가,예술가 등 88명의 생애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분석.책에 따르면 히틀러는 시체애호자,도스토예프스키는 부친살해 충동소유자,미시마 유키오는 마조히스트,헤세는 피해망상증 환자다.르네상스 시대의 만능 예술가이자 동성애,미소년과의 교제 등으로도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억눌린 성적 탐구심에 대해서도 다룬다.1만 2000원. ●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정찬주 지음,해들누리 펴냄) 솔바람 잦은 남도 산골에 ‘이불재’란 집을 짓고 사는 저자의 불교 명상에세이.‘첫마음으로 돌아가는 이야기,회향편’이란 부제가 붙었다.희양산 백련암,지리산 법계사,내장산 벽련암,조서산 선림사,사자산 쌍봉사,모악산 용천사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9500원. ●역사학이란 무엇인가(한스 위르겐 괴르츠 지음,최대희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근대 역사이론의 출발점이 된 계몽주의와 역사주의를 개괄.계몽주의는 역사를 신의 영역에서 끌어내리고 왕과 귀족의 역사를 민중의 역사로 전복시켰으며,랑케를 중심으로 형성된 역사주의는 역사를 지식인 계층의 교양으로 격상시켰다.하지만 두 이론은 각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파버·클룩센·뤼젠 등 역사가들이 계몽주의와 역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벌인 논쟁들을 정리했다.1만 5000원. ●홍승기의 시네마법정(홍승기 지음,생각의 나무 펴냄) 영화의 배경이 됐던 실제 사건들,또는 그와 유사하거나 상반된 판례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한 예로 변호사인 저자는 영화 ‘클래스 액션’을 다루면서 1978년 미국 제조물 책임소송 사상 최고액의 평결로 화제를 모았던 ‘그림쇼 대 포드 자동차 사건’과 우리나라에서도 공포된 ‘제조물책임법’을 알기 쉽게 해설한다.1만 2000원. ●펭귄도감(우에다 가즈오키 지음,문명식 옮김,한길사 펴냄) 펭귄의 고향은 남극.하지만 펭귄은 뉴질랜드의 깊은 숲 속이나 남아메리카의 사막에도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적도 바로 밑의 갈라파고스 제도에도 둥지를 튼다.‘물 속을 나는 새’ 펭귄의 신비를 밝힌다.1만 2000원. ●세상에서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고바야시 유타카 글·그림,길지연 옮김,미래M&B 펴냄) 20여년동안 내전과 외세의 침략에 시달려온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시골마을이 배경.혼자 외롭게 버찌를 따서 장에 내다판 돈으로 새끼양을 산 야모는 전장에 나간 형을 하염없이 기다린다.전쟁으로 파괴돼 지금은 형체도 없어진 한 마을의 전설 같은 후일담.5세 이상.9000원.
  • 금융당국, 시민단체에 귀기울이나

    시민단체 이론가들이 속속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돼 화제다. 9일 금감위와 금감원은 이달부터 금융·경제전문가 및 시민단체 인사를 초빙,강의를 듣는 ‘외부인사 초빙 특강 및 토론’을 정례화하기로 했다. 특강 일자는 매월 둘째 토요일이며 수강 대상자는 금감위 공무원 및 금감원 팀장급 등이 될 전망이다. 특히 스타트를 끊는 두명이 때때로 금감위·금감원 정책에 배치되는 주장을 제기해온 시민단체 이론가들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오는 14일에는 권영준(경희대 교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협의회 의장이,내달 12일에는 김상조(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이 각각 초빙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외부인사 정기 특강은 최근 이정재 금감원장과 금감원 국실장간의 워크숍에서 나온 아이디어”라면서 “금융정책을 수행하는 금융당국이 정책에 비판적일수 있는 외부인사의 의견까지 수렴,시장에 대한 이해의 외연을 넓히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이같은 기획이 마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손정숙기자 jssohn@
  • 필담으로 나눈 ‘문학과 삶’ 이야기 / 日 두 작가 화제의 편지모음집

    “남자와 여자가 세상에 있는 한 연애는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어떤 불신의 시대에도 사랑은 태어나겠지요.그런데 왜 연애소설을 쓰기 어려워졌는가 하면,그 이유 중 하나는 예전의 연애소설이 그려낸 것 같은 고양된 정열이 불가능해졌고…”(26쪽) 1996년 4월7일부터 1년 4개월동안 일본 아사히신문에 문학편지가 연재돼 화제였다.서로 모르는 두 작가가 문학의 진정성만을 토대로 소포클레스,플로베르,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토마스 만,루신 등 동서고금을 아우르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 화제의 주인공은 일본의 대표적 작가 쓰지 구니오와 미즈무라 미나에.두 사람 모두 불문학을 전공한 이론가이자 작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쓰지는 도쿄대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릿쿄대 교수 등을 지낸 뒤 37세에 소설 ‘회랑에서’로 등단한 뒤 꾸준한 창작활동으로 ‘제4회 근대문학상’등을 받았고 99년 7월 사망했다.미즈무라는 열두살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와 스탠퍼드대 객원교수를 지냈다.95년 두번째 작품 ‘사소설’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화제의 편지를 묶은 ‘필담’(현대문학사)이 나왔다.둘을 이어준 다리는 ‘문학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과 ‘이야기’라는 것.그 다리 위로 다양한 문학 이야기가 넘나들었다.젊은 미즈무라가 여성의 눈으로 질문을 던지거나 모나게 해석하면,연륜이 쌓인 쓰지가 넓게 받아들이면서 논의의 깊이를 더해갔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미즈무라가 샬럿 브론티의 ‘제인 에어’를 예로 들면서 “제인의 아름다움을 ‘미덕’이라고 이름붙이는 것은 작가의 향기로운 꿈과 드높은 도전을 오독하는 것”이라며 “‘미의 보상’으로 ‘미덕’을 여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너무 진부한 생각”(56쪽)이라며 날을 세운다.그러면 쓰지는 샬럿 브론티가 강조한 게 ‘미’가 아니라 ‘자유의지’임을 인정한 뒤 그것이 일본문학에서는 늦게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한다. 문단의 선후배가 나누는 이야기는 ‘문학 안’에 머물지 않은 채 삶에 대한 지혜를 담았고 그 분위기는 아주 아늑하다. 이종수기자
  • 책꽂이

    ●빅 초이 최희섭(이상영 지음,아름다운 사람들 펴냄) ‘동양인 타자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통념은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타격왕과 MVP를 차지하면서 깨졌다.그러나 ‘동양인이 장타력을 갖춘 파워히터로서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말은 여전히 남았다.시카고 컵스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그런 시각을 ‘편견’으로 만든,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그 진출 타자 최희섭에 대한 기록.1만원. ●베네치아 미술(존 스티어 지음,정은진 옮김,시공사 펴냄) 베네치아 미술은 중부 이탈리아의 ‘조각적인’ 양식과 대조되는 ‘회화적인’ 양식을 띤다.이런 차이점은 라파엘로와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티치아노를 비롯한 베네치아 화파에선 색채,빛,공간이 우선하며 형태는 이차적인 문제다.현대미술의 또 다른 뿌리를 이루는 베네치아 회화를 다뤘다.1만5000원. ●내 영혼의 빛(예후다 베르그 지음,구자명 옮김,나무와 숲 펴냄) 카발라는 중세 유대교 학자들의 신비철학을 말한다.이 독특한 고대의 지혜 체계는 지난 2000년 동안 이단적 마법 또는사교적 관행과 동일시돼 서구의 종교 및 문화권력으로부터 박해받았다.‘유대 비밀의 지혜서,카발라’란 부제의 이 책은 카발라가 삶의 한 대안으로 현대인의 삶에 투영될 수 있는 방식을 보여준다.1만 2000원. ●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김욱 지음,책세상 펴냄) 마키아벨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명제 때문에 종종 사악하고 비정한 정치이론가로 지탄받았다.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평가 외에,인간에 대한 인식을 정치학의 토대로 정립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저자(서남대 교수)는 이런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한국 헌정사에 투영시켜 역대 대통령들의 마키아벨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분석한다.4900원. ●그 섬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이창형 글,김재홍 그림,바우솔 펴냄) 모아이라는 이름의 돌조각상으로 유명한 남태평양의 이스터섬을 배경으로 한 국산 환경동화.사이좋게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이스터섬 주민들이 늘어가는 외지인들의 발길에 조금씩 본모습을 잃어가는데….초등저학년용.6800원. ●커다랗고 커다랗고 커다란(후나자키 야스코 글,니시카와 오사무 그림,정유나 옮김,중앙출판사 펴냄) 침대든 집이든 뭐든 커다란 것만 쓰는 곰아저씨가 주인공.그런 곰아저씨는 숲속 친구들을 자상하게 배려하는 ‘큰 마음’까지 가졌다.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수상한 일본인 그림작가.4∼7세용.8000원.
  • 책 / 오만과 편견

    임지현·사카이 나오키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서구의 근대 시민사회는 자신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자기 경계 밖의 사람들을 타자(他者)화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자유·평등·박애라는 서구 시민사회의 보편적인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시민혁명 자체는 이미 ‘차별’과 ‘배제’의 논리 위에서 출발했다. 그러한 차별과 배제의 논리는 제국주의를 통해 비유럽세계로 전파됐고,결과적으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주변부 민족주의의 논리는 제국의 오만을 모방한 편견으로 이어졌다.서구적 근대의 특징인 ‘경계짓기’의 논리가 전 지구적 근대의 논리로 보편화된 것이다. ‘오만과 편견’(임지현·사카이 나오키 지음,휴머니스트 펴냄)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근대적인 정체성이 어떻게 선을 긋고 경계를 나누면서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제해 왔는가를 추적한다.책은 그 논의의 실마리를 한·일 두 지식인의 대담이라는 색다른 형식을 통해 풀어간다. 주인공은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와 사카이 나오키 미국 코넬대아시아연구과 교수.한국의 민족주의에 내재된 폐쇄성과 억압성을 비판하는 글을 꾸준히 발표해온 임 교수는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일상적 파시즘’ ‘탈민족주의’ 같은 생소한 담론들을 공론화시켜왔다. 사카이 교수는 문화이론가 가라타니 고진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손꼽히는 사상가.서구중심적인 사유의 틀에서 벗어나 내셔널리즘의 일본적 특수성을 날카롭게 분석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3년 동안 ‘경계짓기로서의 근대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서울과 도쿄,뉴욕에서 모두 10차례의 대담을 나눴다.이 책은 그 고단한 과정의 산물이다.이들은 ‘인종’ 내지 ‘민족’이라는 근대의 견고한 장벽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하나씩 허문다. ●21세기 美 헤게모니 방식 한·일 삶에도 침투 임 교수는 먼저 사람이 사람을 타자화하는 과정은 근대 국민국가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특별히 부각된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이를 뒷받침하는 예로 그는 서기 169년 비잔틴을 정복한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 셉티무스 세베루스가 흑인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로마제국의 ‘관용적인’ 시민권 정책 탓도 있지만,흑인이 로마황제가 됐다는 것은 인종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경계가 그만큼 단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고대 그리스의 경우 ‘바르바로이(Barbaroe)’는 원래 야만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쓰는 사람을 뜻했다.이 말이 ‘야만인’이라는 뜻으로 바뀐 것은 페르시아전쟁을 겪으면서부터다.이처럼 고대의 경우에도 자신의 정체성,즉 그리스인의 정체성은 페르시아라는 타자를 매개로만 가능했다. 사카이 교수 또한 국민국가의 형성이란 관점에서 인종과 민족의 정체성 문제에 접근한다. 19세기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원래 유대인이나 이탈리아인,그리고 아일랜드인은 백인으로 간주되지 않았다.스스로의 사회적 저항 과정을 통해 흑인을 타자화하고 흑인이라는 범주를 변형시킴으로써 자신들을 백인화하고 백인지상주의를 내면화해갔다는 게 그의 견해다. 책을 위한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두 차례의 세계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2001년 9·11테러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다.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의 미국 헤게모니 작동방식은 19세기 유럽의 사회제국주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해졌다.저자들은 미국의 헤게모니는 국제정치의 영역에서만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범한 한국인과 일본인의 일상적 삶 속에도 미시정치의 방식으로 침투해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 ‘보편적 존재로서의 남성,타자화되는 여성’이라는 제목 아래 젠더(gender)의 문제도 다룬다.“‘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은 자연적인 차이에 기초하기보다는 국민국가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근대 자본주의가 성립하면서 이러한 가부장제는 더욱 강화됐다.가부장제를 전근대의 산물로 보는 시각에서 자본주의 임노동체계의 성립과 관련된 근대의 산물로 바라보는 새로운 이해방식이 필요하다.”(임 교수) ●상품 고급화에도 백인‘기호’가 필요한 시대 사카이 교수도 비슷한 맥락에서 차별과 편견을 잉태한 제국의 오만을 지적한다.“인종의 위계질서는 사회적 신분이나 식민지 관계를 통해 학습돼왔다.그러나 오늘날은 욕망의 상품화를 통해 학습되는 방식으로 변했다.상품이 고급스럽다는 것을 호소하려면 반드시 인종의 위계질서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급 레스토랑은 백인 여성을 모델로 써야 하고,고급 승용차의 경우는 철두철미하게 ‘백인’이라는 기호를 사용해야 한다.” 이 책은 기획단계에서부터 해외시장 진출을 전제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기획’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국내 책 기획에 해외의 필자를 끌어들여 출판기획의 시공간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카프´ 주역 탄생 100주년 윤기정 외아들 화진씨

    “소학교 3학년 때인 46년 서울역에서 ‘내 잠깐 다녀올게.’라고 하시며 떠난 게 마지막이었죠.가족을 버리고 어떻게 떠날 수 있었을까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대표적 이론가로 활동하다 월북한 아버지 윤기정(1903∼?)을 생각하면, 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전문위원 윤화진(67)박사의 가슴은 꽉 막혀온다.열살 이후 부르지 못한 아버지란 말은 그리움과 갈등으로 얼기설기 얽혀 있다.윤기정은 1925년 카프 초대국장을 지낸 뒤 계급문학으로서 목적의식을 강화한 1,2차 방향전환을 주도해 2차례나 투옥됐으며,광복 후 소설가 이기영 주도의 조선프롤레타리아문예동맹의 서기장으로 활동하다가 월북했다.이후 조소문화공동협력위원장 등을 지낸 뒤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얘기 나오면 요즘도 소화안돼 분단의 상처로 신음하는 불구의 조국은 월북작가의 아들에게 한을 안겨주었다.“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요즘도 소화가 안 된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의식은 무겁다.그 때문에 대산문화재단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주관으로 24,25일 열리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 자신의 부친이 새롭게 조명받는 것과 관련한 인터뷰도 처음엔 한사코 거절했다. 힘들게 연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드라마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근본적 치유보다는 몇몇 가족이 만나서 울고불고 하는 장면의 연출만으로 쓰라림을 달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50년 넘게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된 게 분하고 억울하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는 하나의 사회 캠페인 차원으로 승화해야 합니다.가족이었다는 이유로 인해 평생 가슴 졸여온 ‘고난의 연대’를 그 후손들에게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지요.말하자면 법적인 해방에서 나아가 심리적 자유까지도 보장해야 합니다.” 한번 트인 말꼬는 그동안 살아온 숱한 어려웠던 이야기로 이어졌다.34년 카프2차 검거 때 투옥돼 전주에서 출옥한 뒤 낳은 외동아들이 그였다.당연히 그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그러나 그 내리사랑과는 별개로, 아버지는 자신의 사상적 자유와 이상을 위해 월북했다. 다행히 집안에는 재산이 많았다.“할아버지가 일찍 사금융에 눈을 떠 돈을 버셨고,어머니가 시집올 때 경기 파주 일대의 많은 땅을 갖고 오셨습니다.광복전 해마다 추수 때면 쌀을 가득 실은 소달구지 10여대가 집앞에 늘어섰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부 덕분에 아버지 윤기정을 비롯,카프의 맹원들이 일제의 감옥에 갇히면 변호사 비용을 댔다고 한다.또 박세영이나 송영 등이 자기 집으로 찾아와 기댈 수 있는 둥지가 되었다는 것이 윤씨의 기억이다. 그러나 광복 후 토지개혁으로 땅은 다 날아갔고 가재도구 등을 팔아가면서 살아갔다.윤씨는 어쩔 수 없이 소년가장이 되었고 안 해본 일이 없다.할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았는지 이재에도 밝아 조부모는 “공부는 접고 장사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가족만을 위해 살자’ 결심 윤씨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정신적 고통이었다.6·25 직전까지 1주에 한번 꼴로 급습해서 집안을 뒤지는 ‘권력의 감시’는 한창 자라나는 윤씨의 예민한 의식을 어두움으로 채색했다. “굉장히 많던 책과 아버님 사진 등을 모두 불태웠어요.조부모님은 “너는 사상의 ‘사’자 근처에도 가지마라.”고 타일렀어요.” 그는 “가족만을 위해 살자.”고 결심했다.역사에 남을 인물은 못 되더라도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멍에를 가족들에게는 씌우지 않겠다고 독하게 다짐했다. “그런 상황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를 못한다.”는 윤씨가 잊지 못할 사건은 두가지.첫 사건은 그가 고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대남방송을 통해 안부를 물은 것.“북에 계신 아버지가 대남방송을 했어요.그 대응으로 육군정보국의 장교가 찾아와 ‘네가 대북방송으로 회답을 해야겠다.’고 말하더군요.집안에선 야단이 났지요.그래서 ‘지금 내 주위에선 아무도 아버지의 월북을 모르는데 그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하다.’고 했지요.천우신조일까요?이해심 깊어보이는 그 장교는 ‘열심히 살아라.’라며 돌아갔어요.지금도 그분께 감사하고 있어요.” 두번째 일은 유학과 관련돼 있다.윤씨는 62년 방한한 미국 경제학자 로스토의 서울대 강연을 듣다가 영어로 공격적인질문을 던지면서 벌인 논쟁이 계기가 돼 미국 정부 장학생으로 발탁된다.그러나 반공 이데올로기의 서슬이 시퍼런 시대에 월북작가의 아들에게 외국행을 허락할 리 만무였다.하지만 집안 사정을 잘 아는 고교 동창생이 마침 치안국 정보과 경위로 있어서 미국 길을 터주었다. ●잠재의식은 여전히 검열받는 중 우여곡절 끝에 64년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에서 학위를 받고 67년 귀국해서 연세대 강사,한국투자금융 심사담당관 생활을 지낸 뒤 68년 아시아개발은행 전문위원에 발탁,27년 동안 경제개발 전문가로 일했다.95년 귀국해 재벌그룹 고문,중견건설회사 회장을 지낸 뒤 지금은 미국계 벤처기업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체험에서 우러나온 말로 인터뷰를 정리했다.“역경도 많았지만 열심히 노력한 결과,나름대로 만족도 하고 보람도 있었다.그러나 가족이나 친지의 일로 불이익을 받는 일은 문명국인 법치국가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이제 법적인 불이익은 주지 않지만 당사자들의 잠재의식은 여전히 검열받는 ‘심리적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끝을 흐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종수기자 vielee@
  • Book소리 / 공들인 ‘평전’이어야 빛난다

    역사를 생동감 있게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산 인물들의 평전을 읽는 것이다.더구나 시대에 자신을 대입시켜 읽는다면 어떤 역사책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박제화한 인물들을 피가 돌고 살냄새 나는 인간으로 재발견하게 된다는 점도 평전 읽기의 매력이다.예컨대 마르크스 평전을 읽다 보면 위대한 공산주의 이론가보다는 모순덩어리요 극단적인 성격을 지닌 ‘인간’을 만나게 된다.그의 약점과 컴플렉스,슬픔,순된 성격까지도 모두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나온 신간들 중엔 평전 형식의 책들이 적지않다.특히 ‘퓰리처 평전’(작가정신)이나 ‘호치민 평전’(푸른숲),‘김시습 평전’(돌베개) 같은 책들은 독자들의 역사인물에 대한 관심과 평전 독서욕구에 부응하고 있다는 평이다. ‘평전 바람’은 2000년에 나온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5000부만 나가도 성공이라고 했던 ‘체 게바라 평전’은 사회주의 계열 책들의 출판을 선도하며 지금까지 13만부 이상 팔려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그러나 우리의 평전출판,특히 국내 인물에 대한 평전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평전은 소설적 상상력과 구성력,대중적 글쓰기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탐구 대상에 대한 학문적인 토대가 탄탄해야 한다.그렇지 못한 채 씌어진 평전은 대상 인물의 삶과 정신적·사상적 궤적을 깊이 있게 다루기 어렵다. 평전 문화가 형성되기 위해선 또한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평전’으로서의 최소한의 균형 감각을 잃어버린 ‘위인전’ 수준의 평전도 넘쳐난다. ‘김시습 평전’은 그런 점에서 평전출판의 한 모델을 제시한다.저자인 심경호 교수(고려대 한문학과)는 김시습이란 인물에 대해 오래 천착해온 학자이지만,자료를 발굴하고 고쳐 쓰고 하느라 5년여만에 책을 냈다.장기적인 투자에 인색한 국내 출판계,어설픈 지식과 대중적인 글쓰기 재주만 믿고 평전 집필에 달려드는 작가들 모두 반성재료로 삼을 만하다. 김종면기자 jmkim@
  • 부시의 전쟁 / 전문가들이 분석한 이라크전 戰略

    이라크 전쟁이 결정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전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이제 바그다드 함락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전문가들로부터 이번 전쟁의 전략적 특징과 전후의 국제관계 전망 등을 들어봤다. ●이춘근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 미·영·호주 연합군과 이라크군 간의 전쟁이 시작된 지 3주일째로 접어들고 있다.전쟁 초기 연합군의 첫번째 공격은 F-117 스텔스 전투기 단 2대,크루즈 미사일 40발을 가지고 두 개의 목표물을 집중적으로 강타하는 전략이었다.두 개의 목표물이란 현지 스파이가 알려준,후세인과 각료들이 회의를 하고 있던 중으로 알려진 건물이었다.미국은 이를 ‘참수공격’(斬首攻擊·Decapitation Attack),문자 그대로 목을 자르는 공격이라고 묘사했다.그 이후 진행된 공격 역시 이라크의 전쟁 지휘부를 파괴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10년 전 걸프전쟁 당시 미국 및 다국적 연합군은 후세인의 공화국 수비대를 이라크의 힘의 중심으로 설정하고 이를 철저히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그러나 기대와 달리 후세인 정권이 건재한것을 보고 미국의 전략이론가들은 걸프전쟁의 전략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미국의 전략가들은 독재국가의 경우 힘의 중심은 그 나라의 군사력이 아니라 그 나라의 독재자 그 자신이라고 가정하기 시작했다.2001년 9·11 테러는 국가보다 오사마 빈 라덴,후세인 등 개인을 새로운 힘의 중심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전쟁을 할 경우,특히 테러를 지원하는 독재국가와 전쟁할 경우 그 나라의 군사력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 나라의 지도자를 공격 표적으로 삼는다는 미국의 전략이 확립되었고,이번 이라크 전쟁은 새로운 전략이론을 사상 최초로 현실에 적용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월남전 당시 미국은 월맹의 수도 하노이 주위에 반경 수십 ㎞의 원을 그려 미국 전폭기들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놓을 정도였다.이제 더 이상 그런 전략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라크 지도부,즉 후세인과 후세인을 지지하는 일부 세력을 대상으로 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이번 전쟁은 기왕의 전략론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상당히 많다.전쟁을 개시한 3월20일 당시 이라크 현장에 전개 가능한 연합군 병력은 미군 20만,영국군 4만,호주군 등 합해서 30만명에 미달하는 군사력이었다.이처럼 적은 병력을 가지고 전쟁을 개시한 것은 바로 새로운 전략 때문이다.바그다드까지 진격해서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 전략 목표이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점령이라는 개념은 없다.국토 면적이 남한의 4.5배가 되고 군사력이 40만이나 되는 나라를 점령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면 30만명 수준의 병력으로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이라크 전쟁은 군사전략에서도 특이하지만 전쟁의 파급 효과 역시 큰 충격을 초래할 전쟁이다.이미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전쟁을 ‘세계질서 재편전쟁’(World Reordering War)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평자들마다 생각이 달라 미국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이도 없는 바 아니지만,이번 전쟁은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재편하는 전쟁이 틀림없다.이번 전쟁을 적극 지지하는 미,영,스페인,호주,일본과 이 전쟁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이지정학적으로 각각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반영한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해양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개방성 등을 국가 발전 및 국민 생활의 원동력으로 생각하는 속성이 있다.대륙국가는 어느 정도 관료적·고립적·폐쇄적 속성을 보인다.보다 개방적인 국가들이 테러위협에 더 민감할 것이다. 이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한반도가 국제긴장의 초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그러나 지난 6일 미국의 월포위츠 국방차관은 북한의 경우 이라크와는 상황이 판이하고,판이한 상황에는 다른 전략이 적용된다고 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 중인 이라크 전쟁이 앞으로 미국의 국제전략에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문광건 국방연구원 연구위원 이번 미국의 대 이라크전 수행 과정은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군사전에서 미국에 맞설 나라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특히 이번 전쟁은 미국의 육군과 해군,공군,해병대,특수부대 그리고 중앙정보국(CIA) 등 6개 분야가 완벽한 공조를 통한 군사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그동안 합동능력을 배양해왔다고 한 주장이 이번 전쟁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10년 전에 발생한 걸프전은 초기 정보전쟁 단계의 전투이고,이번은 명실상부한 정보화시대의 전쟁이다.인공위성 등을 통한 정보 획득과 정밀유도 무기 등의 사용으로 전력은 10년 전에 비해 6∼10배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이번 전쟁은 대 테러전 일환으로 1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란 점도 특징이다.따라서 이라크전 이후 미국의 정책은 이란을 겨냥할 것으로 관측된다.미국이 전열을 재정비하는 데 즉 탄약을 채워넣고,정밀 유도 무기를 생산·장착하고 군부대가 다시 이동하기까지는 1년은 걸린다.3단계 작전을 위해서 미국은 그 기간동안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려 할 것이다.미국은 다음 타깃이 북한이든 이란이든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당분간은 외교적 해결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노계룡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지난 걸프전은 미국이 군사혁신을 통해 자신들의 전력을 해·공군 위주로 바꾼 이후 실시한 ‘전력 실험’이었다고 한다면,이번은 이같은 변화된 전력의 철저한 ‘적용’이었다고 볼 수 있다.대량살상무기의 경우 국제여론 때문에 사용을 다소 자제했지만 웬만한 무기는 다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특징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전쟁인 탓에 전후 질서유지가 굉장히 복잡할 것이라는 점이다.예컨대 독일이나 프랑스,러시아의 경우 전후의 정권을 유엔측에 넘기라는 입장이지만 미국으로서는 그럴 이유가 없다.이와 함께 유엔의 기능도 앞으로 문제가 될 것이다.이를테면 러시아가 체첸공화국에 대해 무자비한 테러를 가한다 해도 미국이 목소리를 높이긴 어려울 것이다. 정리 이도운 조승진기자 dawn@
  • 리오리엔트/너희가 세계 경제중심이라고? ‘유럽의 착각’ 깨기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이희재 옮김 / 이산 펴냄 1980년대 초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뇌리엔 안드레 군더 프랑크(75)란 이름이 각인돼 있다.사회과학 붐을 일으킨 진원지였던 종속이론의 대표적 이론가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특히 그의 저작 ‘저발전의 발전’은 종속이론의 물꼬를 연 책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그는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가 저발전의 늪에 빠진 것은 봉건제 때문이 아니라 서양 자본주의의 수탈 때문이라고 주장,종속이론 진영의 우상이 됐다.그러나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이름은 차츰 희미해졌다.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학문적 명성을 안겨준 책이 ‘리오리엔트(ReOrient)’다.그동안 학계에서나 가끔 논의되던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지 4년만에 한국어로 완역돼 나왔다. 도서출판 이산에서 펴낸 ‘리오리엔트’(이희재 옮김)는 서양 지성계에 일대 충격을 던진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철옹성이나 다름없던 서양 근대학문의 역사서술과 사회과학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마르크스나 베버 같은고전적인 이론가는 물론 아날학파의 거장 페르낭 브로델,‘근대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문명의 충돌을 주장한 새뮤얼 헌팅턴까지 그의 비판엔 성역이 없다.비판의 논거는 무엇일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책 제목이 암시하듯 저자는 유럽중심주의에 함몰된 시각을 수정하고 세계사와 현대 경제에 관한 사고의 틀을 완전히 바꿀 것을 요구한다.저자에 따르면 이른바 유럽중심주의란 것은 유럽지향의 역사가와 사회이론가들이 유럽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발명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유럽중심주의는 19세기 후반 이후 오늘날까지 유럽 혹은 서양의 패권을 재생산하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버팀목 구실을 해 왔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배를 통해 전세계로 전파됐다.이같은 견해는 “유럽사는 없다.오직 세계사만이 존재한다.”고 한 프랑스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의 관점과도 맥이 통한다. 책은 유럽중심사관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났는가를 소상히 밝힌다.마르크스는 유럽만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맹아를 지니고 있으며,‘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대표되는 아시아는 정체성이 고착화돼 있다고 믿었다.나아가 아시아가 이런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해선 유럽으로부터 진보의 수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한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자본주의의 피와 살이라고 여긴 베버는 유럽이 아닌 지역의 종교는 모두 신화적이고 신비적이며 주술적인,한마디로 반(反)합리주의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따라서 합리적 정신이란 효모를 가진 ‘서양’은 발흥했고,그것을 결여한 ‘나머지 세계’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저자는 유럽의 역사가로선 예외적으로 넓은 시야를 지닌 페르낭 브로델조차 “중국이 낙후된 것은 이슬람이나 서양보다 덜 발달된 경제구조 때문이었다.”는 식의 그릇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뿐만이 아니다.저자에 의하면 유럽인들은 지리학도 ‘발명’했다.‘유라시아’란 말 자체가 유럽중심적이기 때문이다.유럽은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의 일개 반도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유럽인들은 유럽중심으로 ‘역사의 진전’을 지도상에 표현해 왔다.예컨대 메르카토르 도법에서는 조그만 섬나라인 영국이 인도만큼 크게 그려진다. 이 책은 ‘아시아 시대의 글로벌 경제’란 부제에 걸맞게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세계경제 체제를 조망한다.저자는 유럽의 세계지배는 1800년 이후 지금까지 길어야 200년 남짓 이어진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근대 유럽의 경제성장은 유럽 스스로 달성한 것이 아니고,‘유럽 예외주의’로 이룩한 것도 아니다.1800년 이전의 유럽은 세계경제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중요하지도 앞서지도 않았다.1800년 이전에 세계경제에서 우세를 점한 지역이 있다면 그것은 아시아였다.그 정점에 중국이 있었다.” 그러나 유럽중심자들은 이와 같은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보지 않는다.합리성이나 기업가정신,기술혁신 등을 모두 유럽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예외적 현상으로 간주한다.저자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며 재미있는 비유를 든다.“유럽은 아시아 경제라고 하는 열차의 3등칸에 달랑 표 한 장 끊고올라탔다가 얼마 뒤 객차를 통째로 빌리더니 19세기에 들어서는 아시아인을 열차에서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단순히 아시아의 재부상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쓴 건 아니다.그는 유럽중심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인종중심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에 반대한다.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건 패권을 쥔 중심이 주도하는 일방적 질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지역이 평등하게 교류하면서 공존하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란 인류 보편의 이상이다.이 책은 99년 세계사학회가 수여하는 ‘으뜸저작상’을 받은 데 이어 2000년엔 미국사회학회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비평집 ‘아!우리 소설 우리작가들’출간 문학평론가 김윤식

    “허허한 곳에 던져져 불안과 공포 속에서 혼자 오돌오돌 떨고 있는 존재,그것이 내겐 남들이 애쓴 작품들이다.” 문학평론가 김윤식(67·서울대 명예교수)씨를 거치지 않고 한국 문학을 논한다는 것은 노른자 없는 달걀을 얘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그만큼 한국문학에 끼친 ‘김윤식의 힘’은 우람하고도 오지랖 넓은 것이었다. 한국문학에 대한 그의 치열한 응시와 사유를, 새로 펴낸 그의 문학비평집 ‘아! 우리 소설 우리 작가들’(현대문학 펴냄)을 통해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하게 된다. 문학비평가는 물론 문학사가,문학이론가로서 그가 우리 문단에 남긴 족적이 이만큼 깊고 큼지막한 것은 지난 40여년동안 우리 문단의 생명이 맥동하는 가슴팍에서 한 순간도 진단의 시선을 거두지 않은 데서 비롯되는 힘이다.소설가 박완서씨는 이런 그의 열정을 대동여지도를 낳은 김정호에 견주었다. 그는 최근에 펴낸 산문집 ‘두부’에서 “김정호가 순전히 발로 뛰고 눈으로 더듬어 최초의 우리나라 지도를 만들었듯이 그도 발로 뛰고 눈으로 더듬어 그와 동시대의 우리 문학의 지도를 만들었다.”며 “그는 작가가 공들여 쓴 글이 쓰레기가 될까봐 그걸 참을 수가 없어서 그토록 열심히 많이 읽는 게 아닐까.가치있는 게 쓰레기가 될까봐 눈에 불을 켜고 길목을 밝히는 거,그게 바로 문학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김씨를 평하고 있다. 이런 평가에 어울리게 김씨는 책에서 최근 2년여 동안 발표된 중견 및 신진들의 작품 70여편을 치밀하게 분석해 놓았다.최인훈 박상륭 서정인 박완서 최일남 김원일 신경숙 고은 등 이른바 문학으로 일가를 이룬 ‘8대가’를 앞세웠다.이들의 문학적 성취를 통해 지금 한국문단의 지형도를 그려 보이겠다는 의도다. 예컨대,그는 “근대 이후 우리 소설이 처한 ‘선험적 고향 상실의 잡스러움’”을 거론하며 “박상륭은 종교의 고귀성으로,서정인은 동양의 고전과 희랍신화를 통해,최인훈은 철학과 희곡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고 진단하고 있다.‘쌍자(雙字)모티프’로 신경숙의 작품을 읽고,‘작약꽃 간 지키기’라는 방식으로 고은의 시를 분석해 내는대목에서는 ‘성실’이 대가의 다른 이름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그의 태도는 문단의 신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남들이 공들여 쓴 글이란 내게도 글 쓴 작가에 있어서도 실존적인 인간에 다름아니다.”는 그는 “글쓰기에 생애를 걸라.그렇지 않으면 아예 때려 치우라.”고 회초리를 쳐든다.문학과 문학인에 대한 사랑과 몸소 후진들을 이끄는 솔선수범이 없다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대가의 꾸짖음’이다. 그러나 이런 점 때문에 그를 오만하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40여년을 평단에 몸담은 동안 100권이 넘는 저서를 펴내온 그에게 이만큼 뜻깊은 축복이 있을까.이는 대가든 중견 혹은 신인의 것이든 작품을 대하는 그의 진지함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은 남들이 쓴 글을 읽는 것이다.공들인 글이라 믿기에 공들여 읽고자 애쓴다.글쓴이들 쪽에서 보면 아주 유치하고 조잡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자주는 무성의하거나 폭력으로 보일 수도 있을 터인데,그런 일들은 근본적으로는 내 재능의 부족이거나 자질의 모자람에서 왔을 터이라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다시 박완서씨의 말을 듣자.“그는 한국문단에 이름을 올린 문인은 다 한번씩 출석을 불러 눈빛을 맞추고 얼굴을 익혀온 특별한 평론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물론 작품으로 말이다.그리하여 그가 출석을 안 불러주면 나 문인 맞나? 의심하는 작가도 있을지 모르고,혹은 이름을 불러 야단을 칠까봐 조마조마 안 불러 주기를 바라는 작가도 없으란 법은 없다.” 심재억기자 jeshim@
  • [우리고장이 원조] 홍길동/강원 강릉시,전남 장성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 같은 사람’‘동사무소·면사무소의 서류작성 견본과 이름표 샘플에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는 인물 홍길동…’ 아마도 이땅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걸음마 시절부터 평생 귀가 따갑도록 듣게 되는 이름이 홍길동일 것이다.그만큼 우리네 삶 속에 홍길동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의 출신지는 그의 화려한 명성만큼이나 지방자치단체들간에 논란이 뜨겁다.강원도 강릉시측은 소설 홍길동의 작가 허균이 자기네 고장 출신이라 당연히 강릉이 홍길동의 ‘정신적 고향’이라는 입장이다.반면 전남 장성군은 실존 인물이 자기네 지역에 살았다고 강하게 주장한다.신출귀몰하는 홍길동의 원조 논쟁을 들여다본다. ◈강원 강릉시 홍길동이 등장하는 소설 ‘홍길동전’이 강릉에서 태동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더욱이 홍길동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로 조선중기의 혼란했던 사회상과 계급제도를 적나라하게 꼬집었던 개혁소설이라는 것도 아는 이가 드물다. 이같이 홍길동이 소설 속에서 태어난 강릉시 초당동 울창한 소나무숲에는 작가 허균(許筠,1569∼1618)의 생가가 잘 보존돼 있다.허균이 태어난 외갓집 애일당 터도 강릉시 사천면에 남아 지금은 시비가 세워져 있다.강릉시가 홍길동의 원조를 주장하는 대목이다. 홍길동은 홍길동전에서 태어났고 작가 허균이 자신의 강릉 집에서 집필했으니 당연히 강릉시가 홍길동의 ‘정신적 고향’이라는 논리다.홍길동전은 집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개혁적인 성품도 소설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어 관심을 더한다. 쇠락의 징조를 보이던 선조와 광해군 시대 조선중기의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침울한 계급의 속박 속에 백성들의 불만이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이러한 어지러운 사회를 홍길동이라는 신출귀몰한 주인공을 내세워 통쾌하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으로 소설이 구성돼 있다. 허균의 성향도 개혁적이다.불과 아홉살에 시를 짓고 문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26세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역모를 꾀한 죄인으로 몰려 50세에 처형당하는 비운의 생을 마쳤다. 사회제도의 모순과 정치적부패상을 질타하고,개혁을 주창하는 등 실천적 삶을 살다 정치적인 음해로 인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개혁적인 정치사상가,국방 이론가,진보적 종교가,문학가 등 허균의 이름에 붙는 수식어는 그만큼 다양하다. 강릉시는 해마다 9월이면 허균과 누이동생 허난설헌을 기리는 ‘허균·허난설헌 문화제’를 열고 있다. 백일장과 그림그리기 대회,시 낭송회 등 다채롭고 전통적인 문학 축제로 열리고 있다. 강릉에서 태어난 허균과 홍길동을 널리 알려 시민들에게는 전통문학의 고향이라는 긍지를 심어주고,외지인에게는 전통의 도시를 알리겠다는 복안이기도 하다.소설 속의 홍길동이 문화제를 통해 강릉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는 이유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kdaily.com 정호돈 강릉문화원장 ★정호돈 강릉문화원장 교산(蛟山) 허균 선생은 혼란한 선조∼광해군 때의 조선시대 중기에 활동했던 정치가이자 작가다. 나라 안에는 임진왜란을 치른 뒤 봉건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려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고,당쟁은 더욱 굳어져 파당을 이루던 시절을 살던 사람이다.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유교와 문장을 숭상하던 사회에 반기를 들고 당시 언문으로 천대받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인물로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선생은 또 성리학의 이론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 심취하며,학문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등 획일화된 당시 사회에서 여러 사상을 포용하는 넓은 안목을 지니기도 했다. 이같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강릉시는 4년전부터 지역문화의 계승,지역인물의 선양,지역정신의 창조라는 목표 아래 ‘허균·허난설헌 문화제’를 열고 있다.해마다 9월 중순쯤 여는 문화제는 허균선생 추모제를 비롯해 홍길동 만화그리기,홍길동 창작 탈 만들기,(관노)탈춤추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강릉시를 대표하는 문학인과 작품 홍길동전을 위해 강릉시는 캐릭터를 만들어 활용하고 학자 중심으로 허균·허난설헌 선양회를 구성해 지역문화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전남 장성군 소설 속의 주인공 홍길동이 지난 97년부터 뭇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장성군은 그 해 강릉에서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인 허균의 고향임을 내세워 연고권을 선언하자 즉각 반격했다.마침 서울방송에서도 드라마 ‘홍길동’을 방영하면서 홍길동 캐릭터를 개발한다는 소식에 장성주민들이 방송국으로 몰려가 항의했다. 2000년에는 연극인 윤모씨가 ‘돌아온 영웅 홍길동’이라는 만화영화를 극장용으로 상영하면서 ‘홍길동’을 상표(15개)로 등록하자 취소 소송을 내는 등 지적재산권 분쟁으로 치달았다.이제는 장성군이 홍길동 캐릭터에 대한 소유권자로 인정받고 있다. 내친김에 장성군은 97년 연세대 국학원에 용역조사를 맡겨 홍길동에 대한 체계적인 고증작업을 마쳤다. 이 조사에서 홍길동은 1446년(세종) 장성군 황룡면 아곡리 아치실 마을에서 이곳으로 낙향한 벼슬아치 홍상직과 노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길동은 세조 때 서자의 관리등용을 금지한 경국대전 반포를 기화로 집을 뛰쳐 나온다.이후 월출산(영암)을 근거지로 해 토호와 탐관오리의 재산을 빼앗아 나눠주는 의적으로 통했다. 이후 연산군 때까지 영광 다경포(법성포)와 충남 공주무성산 등지에서 활동하다 1500년(연산 6년)에 의금부에 체포되고 이듬해 일본으로 탈출한 것으로 조사됐다.이를 뒷받침하는 문헌이 적잖다.조선 중기에 요즘의 잡지책으로 보이는 ‘증보 해동이적(황윤석)’에는 ‘조선 중엽 이전에 홍길동이 홍일동의 배다른 동생이다.홍일동은 장성 아차곡 사람이다.’고 적혀 있다. 장성군은 그동안 홍길동 캐릭터 160여종을 개발,지역 특산품 등에 사용하고 있다.기업체에 캐릭터 사용권을 팔아 1억 2600만원을 벌었다.해마다 5월5일에는 홍길동 축제를 열고 있고 올해가 다섯번째다. 또 390억원을 들여 99년부터 홍길동 생가터에다 홍길동 주제공원을 만들고 있다. 군 문화관광과 문화개발팀 박상균(50)씨는 “지난해 발굴 고증을 거쳐 홍길동 생가를 복원해 조선 초기 서민들의 생활도구를 진열하면서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장성 남기창기자 kcnam@kdaily.com ★이병직 前장성문화원장 이병직 前장성문화원장 장성에는 예로부터 ‘홍길동이 장성 사람’이라는 전설이 서너개 있었다.내용인즉 황룡면 아치실에 가면 홍길동 생가터가 있고,그 아래쪽에 길동샘이 있다거나 장성에 사는 양반이 용꿈을 꾼 뒤 노비와 관계해 길동을 낳았다는 것 등이다. 86년 장성군 문화원이 펴낸 ‘문화원보’에 홍길동이 장성사람임을 체계적으로 입증하는 글을 처음으로 기고해 관심을 모았다. 실존인물 홍길동이 연산군 때 화적이라는 대목이 조선왕조실록에서 다섯 차례나 나온다.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 이 인물을 내세워 소설을 썼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왜냐하면 소설속의 홍길동과 실존 인물의 행적이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허균의 행적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는 연산군 때 전북 부안에서 세미 징수관을 했고,전북 함열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장성과 이웃하는 전남 담양 창평에서 살았다는 기록들이 있다. 개혁 사상가로 반골기질이던 허균이 홍길동의 전설을 소재로 해서 자신의 사상을 대변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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