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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美 정부에 “반도체 지원금, 국적 말고 경제 효과 고려해달라” 호소

    삼성전자, 美 정부에 “반도체 지원금, 국적 말고 경제 효과 고려해달라” 호소

    삼성전자가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추진 중인 520억 달러(약 63조 4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 법안에 대해 “기업 국적과 관계없이 미국에서 일으키는 경제 효과,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미국 납세자가 낸 돈은 미국 기업에 돌아가야 한다”며 삼성전자, TSMC 등 타국 경쟁사에 대한 반도체 인센티브 지급 배제를 주장해 온 인텔의 ‘텃세’에 반대 논리를 펼친 것이다.  29일 재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3일 미 상무부에 미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한 방안을 제출하면서 미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에 대한 입장도 전달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뿐 아니라 SK하이닉스, TSMC, 인텔, ASML, AMD, 인피니언 구글 등도 미 상무부에 의견을 각각 제출했다.   미국 상·하원은 각각 처리한 자국 내 반도체 생산과 연구 확대를 위해 연방 자금 520억 달러를 지원하는 ‘미국경쟁법안’의 최종 조율을 위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종 합의와 통과는 올 여름 이후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미 상무부에 제출한 A4 용지 10장 분량의 문건에서 “미 상무부는 기업이 미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늘리고 있는 한 기업의 국적과 관계없이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공정한 판단’을 촉구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주 삼성과 비슷한 주장을 담은 의견서를 냈다. 삼성전자는 자사가 미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중장기적으로 미국 내 투자를 이어갈 것임을 강조하며 이같이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삼성은 미국과 전 세계에서 증가하고 있는 반도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한 생산을 우선시하고 글로벌 생산능력 증대에 나서고 있다”며 “이는 자국 내 더 많은 반도체 제조업을 유치하려는 미국 정부의 목표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짚었다.  이어 삼성전자는 “반도체 금융지원 프로그램의 지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인센티브를 미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에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센티브 지원에 고려해야 하는 기준으로 미국 내에서 미치는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 미국의 전략적 목표에 대한 기여도, 과거 미국 내 반도체 투자 이력, 미국 내 고용 창출 효과와 인력 교육에 대한 투자, 지속가능경영 등 5가지를 제언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미국의 반도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미국 내 인재풀 확대가 절실하다”며 삼성이 지난 40여년간 미국 46개 주에서 2만명의 이상의 인력을 고용해 왔으며 반도체 인력 개발에도 힘써 왔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삼성전자는 20조원을 투입해 지을 텍사스주 테일러시의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통해 2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예정이라는 점, 테일러시에 기술센터를 만들어 관련 기술 체험을 통한 인재 육성 계획 등도 부각시켰다.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TSMC도 삼성과 비슷한 주장을 펼치며 대항전에 나섰다. TSMC는 의견서에서 “본사 위치에 기초한 자의적 편애와 특혜 대우는 보조금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사용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 [열린세상] 제7광구, 한일 관계의 쓰나미가 몰려온다/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열린세상] 제7광구, 한일 관계의 쓰나미가 몰려온다/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 가려 한다. 정치와 외교, 안보, 국민감정 등 한일 관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만한 문제다. 정확히는 석유가스자원 공동개발을 위해 1974년 체결한 ‘한일 남부대륙붕 공동개발협정’. 우리에게는 제7광구로 익숙하다. 우리나라가 설정한 제7광구와 5광구, 일본이 설정한 제3광구를 절충한 지역이다.  1970년대 한일 대륙붕 경쟁은 첩보전과도 같다. 1969년 유엔 극동경제위원회(ECAFE)는 동중국해 대륙붕이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유전이라고 발표했다. 대만과 한국, 일본이 앞다퉈 해저광구를 설정했고 총 17개 중 13개 광구가 중첩됐다. 마침 국제사법재판소는 육지의 자연적 연장 원칙이 대륙붕 경계에 고려돼야 한다는 기준(1969년 북해 대륙붕 사례)을 창출했다. 중간선을 주장하는 일본에는 불리했고, 우리에겐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1973년부터 시작된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는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이라는 새로운 거리개념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일본에 호재였다.  정치가 가동됐다. 양국은 총 8만 2557㎢를 공동개발구역으로 설정했다. 석유 파동도 한몫했다. 협정은 기본적으로 50년을 기준으로 한다. 1978년 발효됐으니 2028년 50년을 맞는다. 협정은 양국이 합의하면 지속되지만 한쪽이 원치 않으면 만료 3년 전에 서면통고를 함으로써 2028년부터 언제든 종료할 수 있다. 양국 합의는 국제사회에서 훌륭한 모델로 평가받았다. 시작도 좋았다. 조광권 설정(8차례)과 7공의 시추 결과 3공에서 석유가스 징후를 발견했다. 2002년엔 3D탐사(536㎢)를 진행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양국의 경제성 평가가 달랐다. 일본의 대륙붕 개발 불참이 시작됐다. 일본의 핑계는 잘 통했다. 그러나 약발 좋은 자구지단(藉口之端·핑곗거리)은 지속되면 관계의 모든 것을 파괴한다. 지금까지 제7광구가 양자 간 문제였다면, 협정 파기가 낳을 미래는 다자 간 문제다. 결과는 돌이킬 수 없다. 우리 마당에 제3국이 진입했을 때 나타나는 위협을 일본은 이미 센카쿠(조어대)와 방공식별구역 분쟁에서 목도하고 있다.  한일이 새로운 대륙붕 합의에 실패할 경우 그 폭발력은 남중국해 이상이다. 시추와 개발이 난발하고, 해경세력은 충돌할 것이다. 50년의 법적 문서가 없어졌으니, 중국의 진입은 예견된다. 삼국 간 대륙붕 전쟁이다. 이 지역은 또한 중국의 태평양, 동해, 북극을 잇는 핵심 통로다. 미중의 새로운 충돌도 피할 수 없다. 빠르면 3년.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에 대한 일본의 첫 번째 반응이 도착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한가운데 있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제7광구에 대한 대한민국 주장의 논거는 명료하고 튼실하다. 한일이 합의한 50년 동안의 법적 문서가 이를 증명해 주지 않는가.  거기부정(擧棋不定)이란 말이 있다. 포석할 자리를 정하지 않고 바둑을 두면 한 집도 이기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일 양국이 새겨들을 말이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사안의 모든 것을 정치 감정으로 쏟아낼 때 제7광구는 전대미문의 분쟁 지역으로 전환된다. 점화의 시작이다. 한일 양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의 파국이고, 누군가에게는 어부지리(漁夫之利)의 기회다.  혹자는 한일 관계를 실타래 같다고 한다. 그러나 실타래의 원래 의미는 쉽게 풀어 쓸 수 있도록 한데 뭉치거나 감아 놓은 것을 말한다. 복잡하지만 제7광구가 한일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일 수 있다. 양국의 현대사에는 끊임없는 정사(正史)와 야사(野史)가 존재한다. 모든 대화 채널이 양국 관계를 보완하며 진행됐다. 대륙붕협정 또한 같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국제 환경변화의 모든 것이 녹아진 결과다. 2025년 혹은 2028년이다. 한일 관계가 쓰나미를 불러들일지 혹은 새로운 시대적 관계로 재정립할지 준비해야 한다.
  • 이스라엘·아랍 4국 중동 새판짜기… 팔레스타인 미루고 ‘反이란·反러’

    이스라엘·아랍 4국 중동 새판짜기… 팔레스타인 미루고 ‘反이란·反러’

    팔레스타인 문제로 반목하던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외교 수장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협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급변하는 정세 속에 미국의 주도로 ‘관계 정상화’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이에 대한 반발 기류도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이날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등 ‘아브라함 협약’ 당사국들의 외교 수장이 참석한 ‘네게브 서밋’ 행사가 열렸다. 이스라엘은 2020년 9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중재로 이 국가들과 아브라함 협약을 맺은 후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집트의 사메흐 수크리 외무장관과 중동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참석했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이 “역사적인 회담”이라고 평가한 이날 행사의 이면에는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은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해제될 경우 이란과 이란이 지원하는 반군의 위협이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란이 절대 핵무기를 확보해서는 안 된다는 핵심 원칙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확실하다”며 회담 참가국들을 달랬다. 미국 입장으로 보면 대(對)러시아 제재에서 중동의 협조가 절실하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UAE는 미국의 석유 증산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산 곡물 의존도가 높은 모로코도 러시아 규탄에서 한발 뺐다. 팔레스타인 분쟁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손잡은 것을 두고 불편한 기색도 감지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날 회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 가운데 무장 정파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민족과 영토에 대한 이스라엘의 침략을 영구화하는 데 기여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회담 초청을 거절한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만날 예정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 기타 치는 법 배운 ‘기타 노동자 1’… 복직 희망 노래한 언니의 4464일

    기타 치는 법 배운 ‘기타 노동자 1’… 복직 희망 노래한 언니의 4464일

    영화에서 끊임없이 귀를 거슬리게 하는 건 도로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이다. 지금은 주유소로 변해 버린 인천의 옛 공장터에서, 해고 무효확인 소송이 걸린 대법원 앞에서, 오체투지 행진과 천막 농성이 이어지는 광화문과 종로에서, 말소리가 묻힐 정도로 시끄러운 차 소리가 쉴 새 없이 관객의 귀를 때린다. 일터로 돌아가게 해 달라,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 외치는 이들은 내내 길 위에 서 있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재춘언니’는 대한민국에서 최장기 노동 투쟁으로 기록된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4464일을 담은 이수정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콜트·콜텍은 한때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할 만큼 유명한 기타 브랜드였지만 2007년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이후 노조가 결성되며 시작한 복직 투쟁은 노사 합의가 이뤄진 2019년 4월까지 계속됐다. 이 감독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를 다룬 ‘깔깔깔 희망버스’, 세월호 참사 이후 유족들의 진상규명 투쟁을 담은 ‘나쁜 나라’ 등의 다큐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이번 작품에선 30년 동안 기타 기능공으로 일한 노동자 임재춘씨를 조명하며 소심하고 내성적인 그가 어떻게 복직 투쟁에 나섰는지 돌아본다. 이 감독은 “2012년 촬영 시작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찍게 될 줄 몰랐다”면서 “언제부턴가 조급해하지 말고 싸움이 끝날 때까지 함께하자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다큐는 ‘이럴 수밖에 없다’ 또는 ‘이래야 한다’는 당위적이고 비장한 설명을 가미하지 않는다. ‘투쟁’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격한 장면 대신 밴드 연주와 연극, 시, 그림 등 예술 활동을 하며 거대 자본, 법에 맞서는 이들의 모습을 담는 데 집중했다. “노동 운동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버리고 싶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기타 공장 사람들이 하루 12시간씩 일할 때는 정작 기타를 칠 줄도 몰랐대요. 그런데 회사에서 잘린 뒤에야 투쟁하면서 기타를 배우는 과정이 흥미로웠죠.” 노조 지부장 등 명함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임재춘이란 ‘노동자 1’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임씨는 “쑥스러움을 정말 많이 타고, 남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는데 복직 투쟁을 하며 조금씩 바뀌었다”며 “기타를 실제로 배우고, 연극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다 보니 매일 노조끼리 집회를 여는 것보다 더 연대가 잘된 것 같다”고 했다. 제목이 ‘재춘언니’인 건 임씨가 2013년 해고 노동자들과 선보인 연극 ‘햄릿’에서 오필리아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요리를 담당하고, 천막 농성장에 오는 모든 사람을 따스히 맞는 것 역시 그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지점이다. 배려와 보살핌이 여성만의 일은 아니지만, 노동계에서 일반적인 ‘형’, ‘동지’ 대신 ‘언니’로 불리는 임씨의 모습에선 멀리 떨어진 노조 대신 우리 주위의 동료가 보인다. 작품은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회특별상,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비프 메세나상을 받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귀족 노조’, ‘강성 노조’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고 노조 혐오가 극에 달한 이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자와 연대하는 우리 모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돌아보게 한다. 97분, 12세 관람가.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서방정상 모인 날 ICBM 쏜 北… 핵무기 포기로 침공 당한 우크라 영향?

    서방정상 모인 날 ICBM 쏜 北… 핵무기 포기로 침공 당한 우크라 영향?

    우크라 사태로 서방 정상 모인 날 ICBM핵보유국 지위 인정받으려는 의도로 보여미국 추가 독자제재 및 유엔 안보리 소집제재 억지력 크지않고 안보리는 중러 변수“1994년 핵무기 포기한 우크라의 러 침공김정은 핵 프로그램 개발 결심 굳혔을 듯”북한이 지난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과 장기적 대결을 철저히 준비해 나갈 것이라며 일정 기간 동안 대화가 아닌 도발에 집중할 뜻을 밝혔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이어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조선중앙통신은 25일 자신들의 전략무기인 “화성포-17형 시험발사가 단행되었다”며 “이번 시험발사를 통해 무기체계의 모든 정수들이 설계상 요구에 정확히 도달되였다”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발사 실패 이후 8일만에 ICBM 발사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김 위원장은 “비할 바 없이 압도적인 군사적 공격 능력을 갖추는 것은 가장 믿음직한 전쟁 억제력, 국가 방위력을 갖추는 것으로 된다”며 “새로운 전략무기(ICBM) 출현은 전세계에 우리 전략 무력의 위력을 다시 한번 똑똑히 인식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에 발사한 화성-17형이 최대 정점고도인 6248.5㎞까지 상승하며 1090㎞를 날았으며 비행시간은 4052초(67분)라고 했다.특히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장기적 대결을 철저히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북한의 대화 참여를 요구하면서도 대화를 위한 유인책 제공에는 선을 그어온 조 바이든 행정부가 향후 획기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는 한 북한은 계획된 도발을 지속할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일각에서는 김일성 110회 생일(4월 15일)을 기점으로 북한이 재차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노동신문은 전날 “김일성 동지 탄생 110돌에 즈음에 7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이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성대히 진행된다”고 밝혔다. 축제 주간을 진행하겠다는 의미여서 그보다는 인민군 창건일(4월 25일)을 D-데이로 삼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이 전날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맞춰 ICBM을 발사한 것에 대해 현지 외교가에서는 ‘빈 집’을 노린 것 보다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을 위해 수십명의 서방 정상들이 모인 상황을 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의미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란 핵합의 등으로 소외된 자국 상황을 도발로 반전시키려는 포석도 있었던 것으로 관측된다.이에 대응해 미국은 24일(현지시간) 미사일 개발을 주도하는 제2자연과학원을 포함해 북한 국적자 1명과 러시아 기관 2곳, 러시아 국적자 1명을 독자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또 북한의 ICBM 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25일 오후 3시에 열린다. 북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안보리가 공개회의를 여는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회의 소집은 미국,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알바니아, 노르웨이 등 6개국이 제안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북 제재의 억지력이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안보리 대북 추가 제재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미 테리 우드로윌슨센터 한국연구센터 센터장은 이날 트위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김정은 입장에서 핵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결심을 한층 굳히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가 1994년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러시아가 쉽게 침공을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핵무기 고도화에 나설 이유가 커졌다는 뜻이다.
  • 文대통령 “尹당선인이 회동 판단해달라”

    文대통령 “尹당선인이 회동 판단해달라”

    靑 “인사는 임기까지 대통령의 몫” 거듭 강조 尹당선인측 감사원 감사위원 등 요구에 선그어인사권과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둘러싼 신구 권력의 갈등이 임계점을 넘어선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다른 이의 말을 듣지 말고, (윤석열) 당선인이 직접 (회동에 대해)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정부 교체기의 신경전을 넘어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정면충돌하면서 국민들이 우려하는 상황을 ‘톱다운’ 방식으로 돌파해보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회의에서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을 예방하는데 협상이나 조건이 필요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문 대통령은 “답답해서 한 말씀 더 드린다. 나는 곧 물러날 대통령이고 윤 당선인은 새 대통령이 되실 분”이라며 “두 사람이 만나 인사하고 덕담을 나누고 혹시 참고될 만한 말을 주고 받는데 무슨 협상이 필요한가. 무슨 회담을 하는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인선 발표과정에서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이 사전협의 여부를 두고 진실공방을 벌이는 상황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선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당선인 측 핵심관계자’들이 강성 발언을 쏟아내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날 오전에도 윤 당선인은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날 한은 총재 인선과 관련, “새 정부와 장기간 일해야 할 사람을 (현 정부가) 마지막에 (지명한 것)”라며 “인사가 급한 것도 아닌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윤 당선인의 발언과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당선인 말씀에 직접 코멘트를 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오늘 다시 얘기를 한 것은,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인사 자체가 회동 의제가 되어서 대통령의 인사가 마치 당선인 측과 합의가 되야 되는것처럼 인식되는 상황을 대통령께서 염두해 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분명한 것은 인사는 대통령의 임기까지 대통령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또 “당선인께서도 대통령 되어 임기 말까지 차기 대통령으로서 인사권한을 행사하면 되는 일”이라며 “과거 대통령 권한대행까지도 마지막 인사를 했던 건 임기 안에 주어진 법적 권한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법적 의무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양측의 견해차 가장 현격한 공석중인 2명의 감사원 감사위원 등에 대한 인사 등은 법적으로 ‘대통령의 몫’이며 당선인 측이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한 셈이다.
  • 국회 패스트트랙 재판… 공수 처지 뒤바뀐 ‘윤핵관’

    국회 패스트트랙 재판… 공수 처지 뒤바뀐 ‘윤핵관’

    국민의힘 장제원·윤한홍 의원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인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관계자)이 차기 정권 ‘실세’로 떠오르면서 이들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받고 있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의 법원 판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성보기)는 지난 21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약식기소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및 보좌관에 대한 12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충돌의 발단이 된 의안들을 국회 의안과에 접수하는 과정을 놓고 공방이 오갔다. 피고인 중 한 명인 장 의원은 현재 당선인의 비서실장을, 윤 의원은 인수위에서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고 있다. 재판을 받는 윤핵관들이 차기 정부에서 주요 공직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면서 처지가 뒤바뀌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당시 패스트트랙 사건에 연루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월 법무부 장관 후보가 됐을 때 “형사 피고인 신분의 첫 법무부 장관 후보자란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대변인 논평을 내고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에도 반발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3일 “재판에 연루된 사람이 국가의 중요한 공직을 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재판이 정리되고 난 다음에 공직에 오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2019년 4월 20대 국회 당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여야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격렬하게 대치했다. 이후 대규모 고소·고발전으로 이어져 민주당 소속 의원 및 보좌관 10명과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및 보좌관 27명 등이 2020년 1월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이 시작된 지 2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공전 중이다. 장 의원 등이 주요 공직에 오르면 기일이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오는 30일에는 민주당 측 공판이 예정돼 있다.
  • 靑 “장제원이 이창용이라 해서 지명” 尹측 “발표 10분 전 전화 왔다”

    靑 “장제원이 이창용이라 해서 지명” 尹측 “발표 10분 전 전화 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 추진에 대한 이견으로 신구 권력이 정면충돌한 가운데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인선을 놓고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이 폭로전과 함께 ‘진실공방’을 주고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막후 협의 내막을 폭로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신뢰마저 증발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원활한 인수인계는커녕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 전망도 어두워졌다. 청와대는 23일 문 대통령이 한은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한 사실을 발표하며 “윤 당선인 측 의견을 들어 발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양측이 실마리를 찾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잠시 나왔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은 오늘도 ‘(윤 당선인과의 회동을) 언제든 조건 없이 해야 한다’는 취지를 언급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20여분 뒤 윤 당선인 측은 “인사 관련,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적이 없다”고 밝혀 순식간에 냉기류가 흘렀다.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가 한은 총재 인선에 대한 협의를 했다고 설명한 것을 두고도 감사위원 임명 강행을 위한 ‘명분 쌓기’라고 비난했다. ●靑 “尹측서도 이창용에게 의사 타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그쪽 원하는 대로 (한은 인사를) 해 주면 ‘선물’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계기가 돼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도) 잘 풀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철희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의 두 차례 만남에서 ‘협의’가 이뤄졌다는 게 청와대의 주장이다. 언론 하마평에 오른 2명(이 후보자·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 대한 당선인 측 의사를 타진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장 실장이) 이창용이라고 해서 이창용(으로 지명) 한 것”이라고 했다. 당선인 쪽에서도 이 후보자에게 의사 타진을 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오늘 발표한다고 했더니 (장 실장) 본인은 ‘합의한 적이 없다’는 주장을 했고, ‘사람이 바뀌었다’며 다른 사람으로 할 것이란 주장도 하고. 또 하나는 ‘(감사위원, 선관위원과) 패키지로 해야지 왜 이것만 하냐’고 세 가지(주장이) 섞여서 뭐가 진심인지도 모르겠다”고도 했다. 반면 윤 당선인 측은 추천한 사실도, 협의한 바도 없다고 주장했다. 장 실장은 청와대가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이 후보자가) 좋은 사람 같다’(고 했더니) 그걸 가지고 당선인 측 얘기를 들었다? 납득이 가나”라며 “언론에서 이것을 ‘화해의 제스처’라고 분석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수석이 ‘이창용씨 어때요’라고 묻자 괜찮은 분이라고 했다. 그럼 그분에 대해 안 좋은 분이라고 얘기하느냐”고 했다. 장 실장은 청와대의 일방 통보만 있었다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발표 10분 전에 전화가 와서 ‘발표하겠다’고 해서 웃었다”면서 “일방적으로 발표하려면 마음대로 하시라. 저희는 그런 분을 추천하고 동의한 적이 없다(고 했다)”고 했다. 윤 당선인 역시 한은 총재 인선 소식을 듣고 “장 실장이 무슨 추천을 했느냐”며 허허 웃기만 했다고 장 실장은 전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경제전문가 기용에 대한 당선인의 구상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한은 총재로) 맞다는 얘기가 나올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文·尹 회동 전망 더 어두워져 양측 협상 파트너가 감정싸움을 벌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신구 권력 회동도 더 어려워진 모양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진실공방을 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자꾸 거짓말하면 다 공개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양측 대리인이 만나서 나눈 얘기가 전부 ‘협의’인데 ‘농담’처럼 한 얘기라는 장 실장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뭘 공개하는지 모르겠지만, 공개하라”고 받아쳤다. 정치권에서는 갈등의 ‘핵심’으로 꼽히는 감사원 감사위원 인선 문제에 대한 이견이 해소되지 않아 절충점을 찾기가 더욱 험난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감사원의 의사결정기구인 감사위원회는 총 7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되는데 현재 두 자리가 공석이다. 2명 모두 당선인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게 윤 당선인 측 생각이지만, 청와대에서는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애초 청와대는 임기가 정해져 있는 독립 기관의 경우에는 대통령 재임 중 가급적 인사를 하되, 충분히 협의하자는 뜻을 당선인 측에 전달했다고 주장한다. 이 관계자는 “인사권을 행사한다는 게 ‘사인’을 한다는 거지 우리 사람을 하겠다는 게 아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2명의 감사위원 중 한 명씩 추천하는 ‘절충안’도 제시됐지만, 윤 당선인 측은 ‘비토’를 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인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평행선을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감사위원 중 3명은 문 대통령이 임명한, 성향이 분명한 사람”이라며 “(인적 구성을) 4대3으로 만들고 나가면 어떤 감사가 진행될 수 있나”라고 주장했다. 현재 감사위원 중 최재해 감사원장, 김인회·임찬우 위원 등 3명은 문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성향으로 분류된다. 때문에 1명만 더 청와대가 선호하는 인사를 임명하면 다음 정권에서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감사가 쉽지 않다는 게 윤 당선인 측의 판단인 셈이다. 이처럼 집무실 이전에 대한 이견과 함께 감사위원 선임도 교착상황에 놓여 갈등 봉합은 요원한 상황이다. 청와대는 회동과 관련, 달라진 게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역대 대통령과 당선인이 만날 때 조건을 걸고 만난 적이 없지 않느냐, (두 분이) 빨리 만나는 게 좋은 것 같고, (한은 총재를 제외한) 나머지 세 자리는 빨리 협의를 하자고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반면 장 실장은 실무 협의 재개 가능성에 대해 “만나서 얼굴 붉히고 헤어지면 더 안 좋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 2년 넘게 진행 중인 ‘국회 패스트트랙’ 재판…처지 뒤바뀐 ‘윤핵관’

    2년 넘게 진행 중인 ‘국회 패스트트랙’ 재판…처지 뒤바뀐 ‘윤핵관’

    국민의힘 장제원·윤한홍 의원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인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이 차기 정권 ‘실세’로 떠오르면서 이들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받고 있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의 법원 판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성보기)는 지난 21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 및 보좌관에 대한 12번째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충돌의 발단이 된 의안들을 국회 의안과에 접수하는 과정을 놓고 공방이 오갔다. 피고인 중 한 명인 장 의원은 현재 당선인의 비서실장을, 윤 의원은 인수위에서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고 있다. 재판을 받는 윤핵관들이 차기 정부에서 주요 공직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오면서 처지가 뒤바뀌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당시 패스트트랙 사건에 연루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월 법무부 장관 후보가 됐을 때 “형사 피고인 신분의 첫 법무부 장관 후보자란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대변인 논평을 내고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에도 반발했다.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3일 “재판에 연루된 사람이 국가의 중요한 공직을 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재판이 정리되고 난 다음에 공직에 오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2019년 4월 20대 국회 당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여야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격렬하게 대치했다. 이후 대규모 고소·고발전으로 이어져 민주당 소속 의원 및 보좌관 10명과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 및 보좌관 27명 등이 2020년 1월 재판에 넘겨졌다.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들은 채이배 전 바른미래당 의원을 감금하고 회의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회의실을 점거한 혐의를 받는다.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은 국회 의안과·회의실 등에서 한국당 당직자 등을 폭행한 혐의다. 재판이 시작된 지 2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공전 중이다. 민주당 관련 재판은 2020년 11월부터 6개월간 재판이 미뤄져 지난해 5월 재개됐다. 피고인 측이 계속 기일 변경을 요청하자 재판부는 기일 지정을 미리 조율해 정해두자는 공판 준비 명령서를 보내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관련 재판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장 의원 등이 주요 공직에 오르면 기일이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30일에는 민주당 측 공판이 예정돼 있다.
  • [속보] 러 “우크라 협상 기간에 휴전 없다… 진전 미흡”

    [속보] 러 “우크라 협상 기간에 휴전 없다… 진전 미흡”

    “우크라, 여러 차례 휴전 체제 위반”러는 적극적, 우크라는 협상 소극적 주장 펴“우크라, 휴전을 군대 재편성 기회로 이용”우크라, 러에 즉각 적대 행위 중단 요구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평화 협상 기간에도 군사작전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협상 진전이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1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와의 협상 기간 중 휴전 체제 도입 문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군이 휴전을 군대 재편성을 위한 기회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러, 내실 있는 준비 많이 돼 있는데”“우크라, 더 유연하고 건설적이어야” 그는 “문제는 (군사)작전 중단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부대에 의해 (군대) 재편성과 러시아 군인들에 대한 공격 지속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우크라이나 측이 여러 차례 휴전 체제를 위반했으며 이는 협상 과정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어 “협상 진전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면서 “러시아 측은 신속하고 내실 있게 (협상) 작업을 할 훨씬 더 많은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 그 가능성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측이 더 유연하고 건설적으로 되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러시아는 평화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소극적이란 주장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측에 즉각적인 적대행위의 중단과 크림반도·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와 동맹 미가입 명문화, 돈바스 지역의 친러 반군이 설립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의 독립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문서화 할만한 어떤 합의도 없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담판 가능성에 대해선 “이를 위해선 (양국 대표단이) 협상을 추진하고 결과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면서 “아직 양국 정상이 문서화해야 할만한 어떠한 합의도 없다”고 거듭 밝혔다. 한편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21일 새벽 공군기에서 발사된 고정밀 순항미사일로 우크라이나 서북부 리우네주의 ‘노바 류보미르카’ 군사훈련장에 있는 훈련센터를 타격해 80명 이상의 외국 용병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을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또 역시 고정밀 순항미사일로 리우네주 셀레츠 지역의 탄약고와 기계화여단 본부도 파괴했다고 덧붙였다.로이터 “러군, 우크라 부두에 대형 상륙 지원 선박 정박” 또 러시아군은 이날 우크라이나 베르스크의 항구 부두에 대형 상륙 지원 선박을 댔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곳은 러시아군에 포위된 아조우해(아조프해) 연안 도시 마리우폴에서 서남쪽으로 70㎞ 지점에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마리우폴을 제외한 아조우해 연안 대부분을 장악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마리우폴은 항복을 거부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매체인 즈베즈다 웹사이트는 “이 항구의 이용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 “이제 특수 작전의 남부 측면은 장비와 탄약을 포함해 어느 때나 필요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즈베즈다 웹사이트는 이 같은 선박 10척이 작전에 참여하고 있으며 각각의 선박은 탱크 20대 혹은 병력 수송용 장갑 차량 40대까지 실어나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우크라 “러, 의료진·환자 인간 방패 삼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4차 평화협상이 이어지는 중에도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도시 공략을 강화하며 폭격을 퍼부었다. 아조프해에 면한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벌써 21일째 포위된 채 집중 포격을 당하면서 거의 폐허로 변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최대 물동항 오데사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인 미콜라이우에서도 교전 강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2014년 러시아에 강제 병합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친러 분리주의 반군에 장악된 동부 ‘돈바스’ 지역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에 2주 넘게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CNN은 사실상 마리우폴 전역이 전장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지방 당국은 이날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의 중환자 전담 병원을 장악해 일반 시민과 의료진, 환자들을 몰아넣고 인간방패로 삼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北 ‘300㎜ 방사포’ 서울 사정권… 권력교체기, 남측 떠보기?

    北 ‘300㎜ 방사포’ 서울 사정권… 권력교체기, 남측 떠보기?

    북한이 20일 방사포(다연장로켓)를 발사한 것은 동계군사훈련의 일환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지만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유지하고 권력 교체기에 있는 남측의 대비 태세를 파악하는 등 다목적 포석이 실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의 방사포 발사는 2020년 3월 강원 원산 인근에서 진행한 240㎜, 600㎜ 발사 이후 처음이다. 이날 방사포 발사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실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는 발표를 하기 3시간 40분 전쯤 이뤄졌다. 다만 두 사안의 직접적 연관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방사포는 여러 발의 로켓포를 발사대에 수납해 동시 발사할 수 있게 만든 장치로, 미사일과 달리 유도장치가 없고 사거리도 비교적 짧다. 300㎜ 방사포는 사정거리가 250~300㎞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부를 사정권으로 둔다. 600㎜는 사거리 400㎞ 이상으로, 평택·오산 등 주한미군기지도 사정권에 들어간다. 군 당국은 이번 발사를 일상적 훈련 차원으로 보고 있으며, 방사포 제원도 300㎜ 이하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신형대구경조종방사포 등 유도 기능을 추가하고 사거리를 늘린 방사포는 탄도미사일로 분류해 발사 사실을 공개하지만 이날 합동참모본부의 공식 입장은 없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서해에서 600㎜ 방사포를 쏘면 중국 해안에 다다르기 때문에 예민하게 생각할 것”이라며 “남측 예비 사단과 북방한계선(NLL) 접근 우리 측 함대를 겨냥한 300㎜ 이하를 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수순까지 염두에 두고 발사를 진행한 것이란 관측도 일각에선 제기된다. 신종우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군사력 강화라기보다는 한반도의 긴장을 올리겠다는 뜻”이라며 “그동안 서해 NLL상에서 해상 적대 행위 금지가 이어져 왔는데, 군사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는 위협 차원에서 한 것 같다”고 밝혔다. 남측의 권력 교체기를 겨냥한 무력시위란 분석도 나온다. 문근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남측 정권 교체 시기에 우리 반응을 떠보는 것도 있고, 북한으로선 어떤 무기를 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가 하는 것을 검증하는 단계로 종류별로 쏘면서 반응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 [속보] 문재인 대통령·윤석열 당선인 회동 위해…실무협의 재개

    [속보] 문재인 대통령·윤석열 당선인 회동 위해…실무협의 재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회동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협의가 다음주 재개된다. 회동이 지난 16일 한 차례 무산되면서 신구 권력 충돌로 비친 상황서 물밑 협의를 통해 회동 성사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공식 출범하고 문재인 정부로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받기 시작한 윤 당선인측은 회동을 미룰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윤 당선인측 관계자는 19일 언론 통화에서 “회동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다음주 초에는 실무 접촉을 시도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전날 언론 공지를 통해 “국민들 보시기에 바람직한 결과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조만간 직접 만나 회동 의제 등을 조율할 가능성이 나온다. 두 사람은 지난 사흘간 회동 무산의 원인에 대해 함구한 채 냉각기를 가졌다. 청와대도 회동이 미뤄질 경우 원활한 권력 이양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실무협의를 진행하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낙관할 수만 없다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는 윤 당선인측이 회동 의제로 시사했던 인사 협의·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등을 요구하면 회동이 어렵다는 기류다. 문 대통령이 전날 “무슨 조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결국 ‘조건 없이 일단 만나자’는 데 중점을 둔 발언이란 것이다. 이에 따라 회동이 이뤄진다고 해도 구체적인 합의를 끌어내기보다 덕담을 주고받는 수준에서 회동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단독] 번지수 잘못 찍고 달리는 정부… 억울·허탈·불쾌함만 배달됐다

    [단독] 번지수 잘못 찍고 달리는 정부… 억울·허탈·불쾌함만 배달됐다

    정부는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 부과되는 ‘배달비’가 외식비 인상의 주범이라 판단하고 지난 2월 ‘배달비 공시제’를 도입했다. 배달앱별 배달비가 일제히 공개되면 소비자들이 배달비가 비싼 앱에서 음식을 주문하지 않게 돼 배달앱 플랫폼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릴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었다. 소비자들이 내는 배달비를 정하는 건 배달앱이 아니라 음식점이고, 배달비는 배달앱이 아닌 음식점 몫인데도 정부는 번지수를 잘못 짚고 배달앱만 주야장천 압박했다. 정부가 배달앱과 음식점의 계약 체계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앱에 적힌 배달비 금액만 보고 엉뚱한 처방을 내린 것이다. 배달비 공시제가 아마추어 수준에도 못 미치는 물가 정책이자 ‘탁상행정의 끝판왕’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장모(35)씨는 최근 배달앱으로 치킨을 주문하기 전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홈페이지를 찾았다. 정부가 공개한 서울 지역 치킨·떡볶이 프랜차이즈 배달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배달비 공개 자료에는 배달앱별 배달비가 적혀 있었다. 장씨는 한 배달앱의 2㎞ 미만 배달비가 3000원임을 확인한 뒤 앱에 접속해 집 근처 치킨집을 찾았다. 그런데 앱에 적힌 추가 배달비는 4000원이었다. 다른 앱의 배달비도 정부가 공개한 배달비와 많이 달랐다. 장씨는 “배달비 1000원 아끼느니 그냥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하는 편이 낫겠다”면서 “배달앱별 메뉴의 배달비를 한눈에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두 곳 샘플 조사에 불과했다. 이럴 거면 왜 공개했느냐”며 허탈해했다. ●배달비, 음식점의 앱 수수료 보전금 17일 정부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공개한 치킨·떡볶이 프랜차이즈 배달비는 전수 조사 결과가 아니었다. 서울시 25개구 내 가장 인구가 많은 1개동에 있는 프랜차이즈 2곳의 4㎞ 미만 최소주문액을 기준으로 한 배달비였다. 앱별, 업체별, 거리별, 주문액별로 달라지는 배달비 정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요식업계 관계자는 “배달앱에 배달비가 모두 공개돼 있고, 소비자들은 앱에서 배달비를 얼마든지 비교할 수 있다”면서 “정부가 이런 초보적인 수준의 데이터 공개로 음식점들이 경각심을 느끼고 배달비를 내릴 거라 생각했다는 것에 헛웃음만 나온다”고 말했다. 배달·음식점 업계는 정부의 배달비 공시제도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소비자물가 상승을 외식업계 탓으로 돌리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치킨집 주인은 “물가를 잡지 못한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배달비를 공개하며 비난의 화살을 외식업계로 향하게 했다”면서 “가격 경쟁은 손님이 많을 때나 가능하지 코로나19로 골목 상권이 다 죽었는데 누가 배달비를 경쟁적으로 낮추려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정부가 배달비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아이디어 수준의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는 비판도 나온다. 배달 업계에서 통용되는 배달비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음식점이 배달앱에 중개수수료와 함께 내는 배달비, 배달앱이 라이더에게 건당 지급하는 배달비(배달료), 그리고 소비자가 음식을 주문할 때 내는 배달비(배달팁)가 바로 그것이다. 흔히 앱으로 음식을 주문할 때 음식 비용은 음식점에 지불되고, 배달팁은 라이더 몫이 되는 것으로 아는 소비자들이 많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소비자가 배달앱에서 치킨값 2만원과 배달비 4000원을 더한 2만 4000원을 결제하면 이 금액은 모두 배달앱으로 넘어간다. 배달앱은 음식점과 계약한 수수료·배달비를 정산하고 남은 금액을 음식 업체에 지불한다. 수수료율 15%(3000원)에 배달비가 6000원이면 9000원은 배달앱이, 나머지 1만 5000원은 음식점이 가져가는 구조다. 배달앱에 적힌 배달비 금액은 배달앱이 아니라 음식 업체가 정한다. 배달의민족 측도 배탈팁 안내에 “배달팁은 가게에서 책정한 금액이다. 배민은 배달팁 결제만 대행할 뿐 금액은 가게로 전달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소비자가 내는 배달비는 음식점이 배달앱에 내는 수수료 부담을 보전하기 위한 금액인 셈이다. 그런데도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성명서에서 “배달앱이 소비자가 지불하는 배달비 책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소비자가 내는 배달비를 음식점이 정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의도한 대로 소비자가 내는 배달비를 낮추려면 음식점주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깎아 주는 방법이 유일하다. 정부가 배달비 공시제를 통해 배달앱 측에 배달비를 내리라고 아무리 압박해도 애초부터 내릴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유가 등 인상에 배달비 안 잡힐 것” 배달앱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부과되는 배달비를 배달앱에 내리라고 하는데 억울하다”고 했고, 서울 성북구의 한 분식집 주인은 “배달앱 수수료도 부담인데 배달비까지 내리면 남는 게 없다”면서 “정부의 배달비 공개 때문에 장사 안될까 봐 배달비를 내릴 음식점이 어딨겠느냐”고 말했다. 배달앱은 음식점을 상대로 다양한 수수료율과 배달비로 구성된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수수료 절약형·배달비 절약형 등 마치 통신요금제와 비슷하다. 음식점주들은 자신이 판매하는 음식 단가에 따라 유리한 요금 상품을 선택해 가입할 수 있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배달비는 정부의 배달비 공시제를 비웃듯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인 라이더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유가 인상 등이 맞물린 결과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청년들은 최근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 배달플랫폼지부와 노사 협상을 통해 배달료 산정 기준을 ‘직선거리’에서 ‘실거리’로 변경하기로 합의했다. 지금까지 라이더들은 배달지까지 직선거리를 기준으로 500m 이내면 3000원, 500m~1.5㎞는 3500원, 1.5㎞를 초과하면 500m당 500원씩 할증된 금액을 받았다. 앞으로는 내비게이션상 실제 이동거리를 기준으로 배달료를 받게 된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이동하거나 길을 따라 둘러서 가는 배달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배달 인건비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배달앱이 라이더에게 지급하는 배달비가 오르면 배달앱이 음식점에서 받는 수수료와 배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 그러면 음식점도 인상된 중개 수수료를 충당하려고 소비자에게 더 많은 배달비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유가 인상 등에 따른 소비자물가 인상(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한 배달비 역시 잡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 달러 패권 흔드는 中 위안화… 사우디, 원유 결제 허용 검토

    달러 패권 흔드는 中 위안화… 사우디, 원유 결제 허용 검토

    미국 등 서구세계의 러시아 경제 제재로 3차 오일쇼크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가운데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면서 미국의 ‘달러 패권’에 균열이 초래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사우디 정부가 중국으로 수출하는 일부 원유에 대해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해 큰 충격을 받았고,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자신들과 앙숙인 이란과 핵합의까지 복원하려고 해 갈등이 커진 상황에서 이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매체는 설명했다. 그간 사우디는 미국의 핵심 우방국을 자처해 왔다. 하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18년 사우디 반체제 인사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책임을 물어 배후로 지목받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다. 이에 서운함을 느낀 사우디 정부가 미국의 공백을 메울 새 안보·경제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입증하듯 전날 WSJ는 “사우디가 시진핑 주석에게 수도 리야드를 공식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이슬람 금식기간 라마단(4월)이 끝난 뒤인 5월 중 성사가 유력하다”고 전했다. 시 주석이 이를 수락하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해외를 찾는다. 사우디 원유 생산량의 4분의1 이상을 사주는 ‘최대 수요처’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미국은 달러 가치를 금과 동일하게 유지하던 금본위제를 1971년 폐지했다.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위협받자 묘안을 냈다. 1975년 사우디 왕실에 ‘중동의 맹주국 지위를 보장할 테니 대신 원유 결제는 오직 달러화로만 하라’고 비공식 제안을 한 것이다. 이른바 ‘페트로 달러’ 체제다. 사우디가 50년 가까이 지켜오던 약속을 깨고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면 국제 원유시장에 엄청난 파급효과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산유국도 사우디를 따라 위안화를 받으면 미국의 기축통화국 지위가 흔들릴 수 있어서다. 다만 사우디가 실제로 위안화 결제를 허용할지를 두고 전망이 엇갈린다. 워싱턴 조야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행동을 보고만 있을 리 없어서다. 그간 페트로 달러 체제에 반기를 든 이란과 이라크, 리비아, 베네수엘라 등은 예외 없이 미국의 경제 제재나 군사행동 대상이 됐다. 미 정부 고위 관리가 사우디의 위안화 허용 가능성을 두고 WSJ에 “미국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꺼내는 단골 소재일 뿐”이라고 일축한 것도 역사적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 [특파원 칼럼] 윤석열 당선인에게 일본은 필요한 국가입니까/김진아 도쿄특파원

    [특파원 칼럼] 윤석열 당선인에게 일본은 필요한 국가입니까/김진아 도쿄특파원

    “한일 관계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바탕으로 건전한 관계를 되찾고 싶다.” 지난 10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당선을 축하하며 이같이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한미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앞으로 새 정부의 움직임도 보고 싶고 새 정부와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의 메시지 그 자체로 보면 그동안 냉랭했던 문재인 정부와 다른 새로운 보수 성향 정부를 맞이해 기대감에 차 있어 보인다. 하지만 축하의 메시지에 녹아 있는 일본의 속내는 변하지 않은 듯하다. 기시다 총리가 윤 당선인의 당선을 축하하며 ‘나라와 나라 사이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라고 언급한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가 강조하는 국가 간 약속이란 1965년 한일 기본 조약과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말한다.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는 이 두 합의로 해결됐다는 게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외치고 삼권 분립에 따라 사법부의 판결을 행정부가 뭐라 할 수 없다는 한국의 입장은 일본에 통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어두운 역사를 지워 버리고 싶은 일본은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한국이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이런 기본 입장이 변하지 않은 일본이다. 기시다 총리의 축하 메시지에 일본의 태도 변화라고 기대하는 건 확대 해석에 불과할 수 있다. 일본의 기본 입장이 변함이 없는 가운데 윤 당선인은 한일 관계의 ‘미래’를 강조했다. 윤 당선인은 10일 당선 후 기자회견에서 “다른 모든 국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한일 관계는 과거보다는 미래에 어떻게 하는 것이 양국에 이익이 되고 양국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지 그걸 우리가 잘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대선 공약집에는 한일 외교 정책의 큰 제목이 ‘김대중ㆍ오부치 선언 2.0 시대를 실현하겠다’라고 돼 있다. 한일 관계 개선의 큰 획을 그은 이 선언문에는 “양국 정상은 한일 양국이 21세기의 확고한 선린우호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는 내용이 있다. 윤 당선인의 대일 정책은 이 선언문처럼 큰 틀에서 과거는 과거대로, 미래는 미래대로 함께한다는 생각이겠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은 모호하다. 역사 문제의 피해자가 생존해 있고, 국민은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한일 관계의 가장 큰 현안인 역사 문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과제다. 국민 감정과 역사 문제를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정치권도 지지 기반을 다지기 위해 악용해 오면서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기도 했다. 고위 외교관 출신인 다나카 히토시 일본총합연구소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1월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총리가 바뀌든 한국에서 대통령이 바뀌든 그것만으로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는 없다”며 “한국과 일본이 서로가 필요한지에 대해 먼저 의미를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변화를 촉구하기에 앞서 일본은 어떤 나라이고 필요한 국가인지 윤 당선인의 입장부터 정하는 게 난제 중의 난제인 한일 관계를 푸는 데 우선이다.
  • 전두환·노태우부터 한명숙까지 …정권마다 ‘국민 통합’ 내세워 사면

    전두환·노태우부터 한명숙까지 …정권마다 ‘국민 통합’ 내세워 사면

    역대 정부는 임기 말이면 정치인 특별사면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을 맞은 상태에서 ‘국민 통합’을 내세워 정치인 특사를 단행해 왔던 것이다. 정치 보복을 예방하기 위해 특사를 활용했다는 비판이 뒤따르기도 했다. ●김대중·전두환 서로 사면 주고받아 대표적으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사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말에 이뤄졌다. 김 전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은 1997년 12월 청와대 회동에서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혐의로 수감 중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특사에 합의했다. 당시 청와대는 “15대 대선의 종료에 즈음해 국민대통합을 이뤄 당면한 경제난국 극복에 국가 역량을 총집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반대로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사면 혜택을 입기도 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임기가 막바지에 이른 전 전 대통령은 당시 김대중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대표를 비롯한 ‘시국사범’을 대규모로 사면했다. 10년의 시간 차를 두고 전·현직 대통령이 서로 사면을 주고받은 것이다.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도 거의 예외 없이 임기 말에 정치인 사면을 단행했다. 그때마다 여야 인사를 섞어 발표하며 국민 통합이란 대의명분을 앞세웠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박 전 대통령 ‘깜짝 특사’를 발표하며 여권 인사인 한명숙 전 총리를 함께 명단에 올린 것이 가장 최근 사례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임기 말인 1992년 12월 밀입북 사건의 임수경씨, 전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 중앙본부장 등에 대한 사면을 함께 단행했다. ●정치보복 예방에 특사 활용 비판도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 접어든 2007년 2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인사를 섞어 사면했다.이명박 전 대통령도 2013년 1월 ‘친이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에다 ‘친박계’ 서청원(오른쪽) 전 친박연대 대표를 함께 사면한 바 있다.
  • ‘MB맨’ 외교안보 전면에… 한미 동맹·대북 원칙론 부활 ‘차별화’

    ‘MB맨’ 외교안보 전면에… 한미 동맹·대북 원칙론 부활 ‘차별화’

    김성한, MB 때 외교안보 밑그림한미 동맹 중심축으로 관계 개선 김태효 ‘北 완전 비핵화’ 강경 기조이종섭, 사드 추가 배치 공약 수립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안보분과 간사에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2차관, 위원에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수석비서관급)을 임명했다. 특히 김 전 차관과 김 전 기획관은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브레인이었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중시 속 원칙주의적인 대북 기조가 부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 테이블로 북한을 이끌고자 종전선언을 비롯한 체제보장 조치를 모색했던 문재인 정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될 것이란 의미다. 김 전 차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외교안보자문위원과 외교통상부 2차관(2012~2013년)을 역임했다. 당선인과는 대광초등학교 동창으로 정치 입문부터 외교안보 분야 자문을 했다. 지난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 때 윤 당선인이 사용한 휴대전화가 김 전 차관의 것으로 확인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전 차관은 윤 당선인의 선거대책본부 외교안보 분야의 좌장을 맡아 외교안보 공약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는 미중 갈등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과 균형을 견지한 문재인 정부와 달리 한미동맹을 확고한 중심축에 놓겠다는 입장이다. 김 전 차관은 최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윤 당선인의 공약에 대해 “한미동맹이 한국 외교안보의 중심축”이라며 “그것을 전제로 한중 관계를 풀어 나가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미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이 되게 되면, 또 중심축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되면 중국도 한국에 대해 상당히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전 기획관은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상임자문위원을 맡은 뒤 2008년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실 대외전략비서관과 기획관을 역임했다. 2012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처리’ 논란으로 물러날 때까지 4년 4개월여간 청와대에 몸담아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실세’로 불렸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인 ‘비핵 개방 3000’(북한이 비핵화·개방에 나서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상향)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북한이 2011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남측의 제의로 했다고 폭로하면서 접촉 당사자라고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김 전 기획관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해야 비로소 국제사회가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원칙적 상호주의를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단계에 따른 단계적·동시적 접근법과는 다른 ‘그랜드바겐’(일괄타결)을 신봉한다. 그는 2015년 언론 인터뷰에서 “억지로 희박한 가능성을 믿고 북한 정권과 협상을 하면서 보상을 하고 합의에 목맬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스스로 우리의 안보를 지키고 억지력을 갖추고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있겠느냐 하는 것을 (찾는 데) 국제공조를 이루며 또 한국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는 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김 전 기획관과 더불어 외교안보분과 위원에 임명된 이종섭 예비역 육군 중장(육사 40기)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방부 정책기획차장을, 박근혜 정부 때 중장으로 진급해 제7군단장을, 문재인 정부에서 합동참모차장을 역임했다. 그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유사시 대북 선제타격 등 윤 당선인의 안보 공약 수립에 참여했다.
  • 靑 임기말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정치인 특별사면’ 카드

    靑 임기말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정치인 특별사면’ 카드

    역대 정부는 임기 말이면 정치인 특별사면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을 맞은 상태에서 ‘국민 통합’을 내세워 정치인 특사를 단행해 왔던 것이다. 정치 보복을 예방하기 위해 특사를 활용했다는 비판이 뒤따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사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말에 이뤄졌다. 김 전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은 1997년 12월 청와대 회동에서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혐의로 수감 중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특사에 합의했다. 당시 청와대는 “15대 대선의 종료에 즈음해 국민대통합을 이뤄 당면한 경제난국 극복에 국가 역량을 총집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반대로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사면 혜택을 입기도 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임기가 막바지에 이른 전 전 대통령은 당시 김대중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대표를 비롯한 ‘시국사범’을 대규모로 사면했다. 10년의 시간 차를 두고 전·현직 대통령이 서로 사면을 주고받은 것이다.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도 거의 예외 없이 임기 말에 정치인 사면을 단행했다. 그때마다 여야 인사를 섞어 발표하며 국민 통합이란 대의명분을 앞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박 전 대통령 ‘깜짝 특사’를 발표하며 여권 인사인 한명숙 전 총리를 함께 명단에 올린 것이 가장 최근 사례다.노태우 전 대통령도 임기 말인 1992년 12월 밀입북 사건의 임수경씨, 전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전 새마을운동 중앙본부장 등에 대한 사면을 함께 단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 접어든 2007년 2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인사를 섞어 사면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13년 1월 ‘친이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에다 ‘친박계’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를 함께 사면한 바 있다.
  • 이란 핵합의 ‘우크라 암초’

    이란 핵합의 ‘우크라 암초’

    11개월간의 논의 끝에 타결을 앞뒀던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협상이 우크라이나 전쟁발(發) 암초를 잇따라 만났다. ● 유가 치솟자 , 협상 우위 노려 13일(현지시간) 이란 국영 IRNA통신 및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란 의회 의원 290명 중 160명은 이날 성명에서 서방이 설정한 ‘인위적인 데드라인’에 구애받지 말고 이란의 요구를 밀어붙여야 한다고 이란의 협상팀에 촉구했다. 이란은 2018년 5월 미국의 탈퇴로 JCPOA가 파기되고 제재가 부활한 일이 향후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번 재협상에서 미국 측의 확고한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데,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자 자국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 타결 코앞 서방·러 새 요구 걸림돌 앞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이란과 러시아 간 교역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서면 보증을 미국에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러시아가 요구를 굽히지 않으면 JCPOA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다른 나라에 부여하는 ‘대체 합의’를 모색할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JCPOA 복원으로 이란에 대한 제재가 풀리면 하루 최대 100만 배럴의 신규 원유가 시장에 공급될 것으로 WSJ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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